CINELAB2025-01-06 11:27:00
1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하얼빈>, 개봉 2주 차에도 흔들림 없는 선두!

개봉 첫 주에 누적 관객 수 230만 명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던 <하얼빈>이 2주 차에도 여전히 선두를 지켰습니다. <하얼빈>은 12월 24일 개봉한 후, 단 하루도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하얼빈>은 라트비아, 몽골 등지를 아리 알렉사 65 카메라로 촬영하고 아이맥스 포맷으로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관객들의 기대를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음악에 참여하였고, 과거 비틀스가 녹음했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작업하여 사운드의 퀄리티를 높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소 높은 손익분기점 약 650만 명이라는 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편, 봉준호 감독, 최동훈 감독 등 다양한 인사들이 “고결한 인격의 사람들을 품격 넘치는 촬영과 연출로 영접하게 해주신 제작진과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영화”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국내 주말 관객 수 2위는 깜짝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소방관>이 누적 관객 수 350만 명을 기록하며 차지했습니다. <하얼빈>에 이어 또다른 국내 영화 대작이라고 기대받았던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은 3위를 기록하였으나, 개봉 첫 주 누적 관객 수 32만 명으로 다소 아쉬운 성적을 보였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1위의 자리는 <무파사: 라이온 킹>에게 돌아갔습니다. 2,383만 달러의 수익을 추가한 <무파사: 라이온 킹>은 북미 누적 1억 6,800만 달러, 전 세계 4억 7,6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흥행을 이어가고 있으나, 제작비가 2억 달러를 초과한 만큼 새해에도 꾸준한 흥행이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 비해 이르게 개봉했던 <수퍼 소닉3>는 2,120만 달러로 2위를 기록했으며 현재까지 북미 1억 8,750만 달러, 전 세계 3억 3,6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해당 프랜차이즈의 총수익은 10억 달러를 넘어서 프랜차이즈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3위는 <더 위치>, <라이트하우스>를 연출해 믿고 보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로버트 애거스 감독의 신작 <노스페라투>가 차지했습니다. F.W. 무르나우 감독이 만든 역사적인 공포영화 <노스페라투>를 원작으로 하여 릴리 로즈 뎁, 니콜라스 홀트, 빌 스카스가드 등이 출연하는 새로운 <노스페라투>는 북미 누적 수익 6,940만 달러, 전 세계 1억 달러를 돌파하며 인디 영화로서는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 중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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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울어진 선을 찾아서
책에도 유행이 있다. 특히 신간 하나가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릴 때, 사방에서 "그 책 읽었어? 그거 재미있더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여기서 더하면 그 책 제목은 하나의 밈처럼 소비된다. <82년생 김지영>을 변용한 온갖 'OO년생 OOO'처럼.
언제부턴가 'OO의 기쁨과 슬픔'이란 말이 무진장 눈에 띄었다. 주변 회사원들의 추천을 많이 받아, 너무 궁금해 펼칠 수밖에 없었던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왔다.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차용한 제목이라지만, 소설 자체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그 애매한 일의 현장을 생생하게 포착했디에 그 제목은 K-직장인들에게 찰떡 같이 달라붙었다.
영화 <굿 보스>를 보면 <일의 기쁨과 슬픔> 대신 '관리자의 기쁨과 슬픔'이란 말이 떠오른다. 영화의 중심에 놓인 인물은 저울 회사 사장인 블랑코인데, 우수 기업상 최종 심사를 기다리느라 한껏 예민해져 있다. 회사의 모든 요소가 심사위원들 눈에 딱 들도록 유지하기 위해 고심하며 판을 짜고, 설계하고, 공사를 뒤섞어 가며 직원들을 쥐락펴락하려 한다. 이건 그야말로 그 관리직의 기쁨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연기를 해도 그 자리에 30년쯤 존재해온 사람처럼 연기하는 하비에르 바르뎀은 여기서도 빤들빤들해진 중산층 사장의 얼굴을 소화해 낸다. (사장이 다 빤들빤들하다는 게 아니라,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그런 사장이라는 소리다.) 아버지가 창업한 공장을 물려받아 여태까지 운영해 왔으니 일에는 적당히 타성이 붙었고, 연설에 가까운 말 레퍼토리도 생겼다. 그는 "우리는 가족"이라는 반지르르한 말로 공과 사를 적당히 뒤섞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이 영화는 마치 숨은 그림 찾기 같은 느낌이다. 블랑코가 어떤 업주인지 때로는 직접 언급되고 때로는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을 보며, 노동법부터 관습법까지 각종 법과 윤리의 위반 여부를 짚어보게 된다. 왜 회사 직원이 휴일에 블랑코의 집에서 뭔가 수리하고 있는 것인지. 왜 퇴직하는 여성 직원이 울먹거리며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블랑코는 그에게 진정이라는 이름의 침묵을 종용하는지.
불안한 예감은 영화 속에 하나씩, 그러나 얼굴을 찌푸리기엔 너무 코웃음 칠 수밖에 없는 모양새로 펼쳐진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니까. 그렇게 심사위원이 방문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회사를 최적의 상태로 보이게끔 하고 싶어 하는 블랑코 앞에, '감점 요소'들이 나타난다.
부당 해고를 주장하며 회사로 찾아오다가 아예 회사 앞에 진을 치고 앉아버린 (그리고 어쩐지 점점 차림새나 마인드가 힙합에 가까워 가는...) 직원 호세, 아버지 대부터 공장과 연을 맺었고 어린 시절도 함께 보낸 사이지만 일 솜씨가 심각한 직원 미랄레스, 그리고 어쩐지 야릇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인턴 릴리아나...
블랑코는 얽히고설킨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 호세를 회유하려고도 협박하려고도 해보고, 미랄레스를 따로 만나 식사하며 그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원인을 파악해 본다. 그러나 겉핥기 식 회유와 은근한 협박으로만 일 처리를 해온 그는, 여전히 미랄레스의 상황을 두루 살피거나 그의 진심을 알아보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단편적으로 듣고, 아내에게 단편적으로 전하며, 단편적인 정보에서 아내가 끄집어낸 한마디 말을 낼름 받아들여 미랄레스의 사생활에 불쑥 뛰어든다.
블랑코는 직원들의 크고 작은 일에 개입한다. 그 과정에서 미랄레스와 호세, 릴리아나 외에도 다양한 직원들과 마주치고 엮인다. 사생활에 간섭하여 이용하는 모습이 가히 파렴치하지만, 그렇다고 부당한 대우만 내놓는 사람은 아니다. 인간은 다면적이니까. 때로는 "우리는 가족"이라던 블랑코의 말을 상기시키며 도움을 요청하는 직원의 부탁을 들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굿 보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때로는 애매하게 좋은 사람이 더 나쁜 사람이다. 스스로가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상사라고 믿고 있겠지만, 블랑코는 사실 직원들을 저울 위의 물체처럼 취급하고 있다. 가족 같은 존재의 관심이라는 미명 하에 직원들의 삶을 이루는 요소를 공사 할 것 없이 적절히 파악하고, 그 조건들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판을 만들어 간다. 직원을 소중히 여긴다고 믿고 싶겠지만 그가 소중히 여긴 건 물체와 재산이지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면, 설계는 본인만 하는 게 아니라 직원들도 자기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존재들이라는 것. 저울 위의 물체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평형을 맞추는 일은 더욱 미묘하게 어려워져 간다는 것. 그 씨름 속에서 한 명의 건실했을 인간은 단지 말만 남은 인간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
출근할 때마다 정문에 놓인 저울 조형물의 평형이 잘 맞는지 확인할 만큼, 블랑코는 공정과 노력처럼 보이는 것들을 입으로 강조한다. 기실 그가 집착하는 것은 평형이 아니라 평형처럼 보이는 상태다. 그게 진짜 평형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기울어진 선이어도 직선처럼 보이면 그만이다.
<굿 보스>는 이따금씩 코웃음을 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블랙코미디 영화지만, 엔딩이 가까워 오면 묘한 씁쓸함을 남긴다. 영화에 켜켜이 쌓인 정서들이 너무 익숙해서다. 블랑코를 악덕 사장이라고 욕하고 돌아서기는 쉬워도, 그의 수완까지 부정하기는 어렵다. 블랑코를 제외한 다른 직원들 또한 순진무구하게 당하기만 하거나, 의연하게 노동 운동을 벌이는 인물들은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일 해가며, 자기 욕망을 향해 움직이는 보통의 인간들이다.
그리고 직원들의 업무 공간보다 한 계단참 오른 곳에 붕 떠 있는 사무실에서 유리벽으로 그들을 내려다 보며, 블랑코는 자기가 설계한 판을 '그럴듯한' 명목으로 포장해 내놓는다. 삐뚤빼뚤한 선보다 기울어진 수직선이 더 교묘하게 평형인 척할 수 있다. 바른말 고운 말의 외피를 뒤집어쓸 때, 진심처럼 보이는 노력들이 섞일 때, 악은 최악이 된다.
저울 회사의 정문이 어쩐지 아우슈비츠 정문을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너무 과도한 걸까? 그러나 "노동이 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그 문장 또한 아름다운 단어의 외피를 뒤집어썼기에 더 최악이었던 문장이었으니 아주 다른 얘기만도 아니긴 하다. 더불어 이 영화가 스페인이 아닌 한국에서 제작됐다면 한층 더 매운맛이었으리라는 상상은 또 다른 씁쓸함으로 이어진다. 여러 모로 블랙코미디였다.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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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객> 사극이라는 늪에 빠지다
1. 인조반정으로 인해 광해군이 폐위되자 조선 최고의 검객이자 광해군의 호위무사였던 '태율(장혁)'은 자취를 감춘다. 한편 청과 명의 대립으로 조선의 혼란이 극에 달한 사이, 청나라 황족 ‘구루타이’(조 타슬림)는 전쟁포로의 몸값을 인상하고 공녀를 요구하는 등 조선을 압박한다. 이렇게 백성들의 고통이 날로 더해가던 중 구루타이의 수하들에 의해 태율의 딸 '태옥(김현수)'이 공녀로 잡혀가고 만다. 이에 세상을 등진 채 조용히 살고자 했던 태율은 딸을 구하기 위해 다시 한번 검을 잡는다.
각 장르마다 관습이 확립된 가운데 장르 영화에 기대할 수 있는 차별화는 더 이상 완전한 새로움이 아니다. 오히려 부분적인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창의적이고 색다르다. 예를 들어 <아쿠아맨>의 경우 같은 히어로 영화인 <토르>와 정당성을 지닌 형과 왕이 되려는 야심을 지닌 동생 간의 권력 다툼과 숨겨진 가족의 비밀이 판타지 세계에서 펼쳐진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수중 세계라는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데 집중하면서 많은 영화팬들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었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진행이나 인물 간의 관계가 유사하더라도 무엇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결과물은 자신만의 매력을 가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장혁 주연의 <검객>은 변화는 시도했으나 자신만의 정체성을 온전히 확립하는 데는 실패한 영화다.
2. <검객>은 익숙하다. 사랑하는 딸이 돌연히 납치당하자 수년간 현직을 떠나 있던 아버지가 사활을 걸고 딸을 구한다는 전체적인 이야기는 <테이큰> 혹은 <아저씨>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다. 액션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혈혈단신인 주인공이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모습을 주된 볼거리로 삼는다는 측면에서 기존 액션 영화와의 비교를 피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검객>은 사극 장르를 차용해 변화를 꾀한다. 영화는 인조반정과 병자호란 이후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전쟁 포로 반환 문제를 주인공의 서사와 연결한다. 태율은 인조반정 당시 마지막까지 광해군을 지키는 무사였으며, 반정이 성공리에 끝나자 세상을 등지고 산다. 그런 그는 딸이 청나라가 요구한 공녀가 되어 중국으로 끌려가게 되자 그제야 다시 세상으로 나오며,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단순한 납치극과는 다른 결의 감정을 일으킨다. 이렇듯 작중 사극이라는 장르는 단지 외관의 변화뿐만 아니라 충분히 봐 왔던 익숙한 이야기에 새로운 색을 더하는 장치로서 의도되었다.
3. 문제는 <검객>이 사극이라는 장르를 차용해서 다른 액션 영화들과의 차별화를 꾀한 것에 비해, 기존 사극 작품과의 유사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주인공의 무기를 검에서 활로 바꾸면 <검객>은 <최종병기 활>과 그리 다르지 않다. 두 영화 모두 청군이 주인공의 딸/여동생을 끌고 가고, 뛰어난 무사인 주인공은 단신으로 열심히 그들을 뒤쫓으며 마지막에는 비등한 기량의 악역을 제압한다는 스토리라인을 지니고 있다. 병자호란 직후이냐 아니면 시간이 조금 더 흘렀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환향녀(전쟁 포로) 송환이 주요 소재라는 점이나 청나라 사람이 만주어를 사용하는 디테일은 유사성을 더욱 강화한다.
더 나아가 <검객>은 환향녀라는 공통의 소재를 세련된 방식으로 다루지도 못했다. 영화는 크게 두 축으로 진행된다. 초반에는 전쟁포로를 노비로 팔고, 공녀를 요구하는 청나라의 횡포에 어떻게든 맞서려는 조선 조정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러한 정치, 외교적 배경 밑에서는 딸을 지키려는 태율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는 애초에 여동생을 구하려는 오빠의 모습에만 주목한 <최종병기 활>과의 차이점이다. 따라서 영화의 결말은 태율의 딸을 접점으로 같이 묶여 있는 두 플롯을 각각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딸이 청나라 군사들에게 끌려간 직후 영화는 오로지 태율의 액션에만 신경을 쓴다. 딸을 구한 후에도 부녀의 후일담을 잠시 보여줄 뿐, 거시적인 관점에서 청나라의 요구에 조선 조정이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이처럼 미완의 판타지, 개인의 판타지에 머무르는 결말은 왜 굳이 청나라와 조선의 외교적 충돌을 주요하게 다루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4. 태율의 개인 서사 역시 매끄럽지 않다. 그가 인조반정 이후 산으로 숨어 들어가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광해군이 죽을 위기에 처했던 장혁의 삶을 구하고 그의 후원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첫 번째 이유이며,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했던 군주인 광해군을 향한 충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두 번째 이유다. 특히 영화는 전쟁 당시 끌려간 가족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자식이 공녀로 공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백성의 모습을 비교적 자주, 자세히 묘사하며 두 번째 이유에 설득력을 더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는 <검객>의 실수라고 볼 수 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와 같은 한국 사극이 지속적으로 견진한 광해군에 대한 해석을 반복함에 따라 사실관계가 왜곡된 이야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미디어에서 광해군은 주로 대동법을 시행하고 사대 대신 청나라와의 전쟁을 피하는 실리 외교를 통해 민생을 어루만진 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광해군이 대동법의 시행 지역을 경기도에 한정했을 뿐만 아니라 시행 지역 확대를 반대했다는 점과 임진왜란 직후 조선에서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등을 건설해 백성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한 사실은 외면당한다.
또한 영화는 기존의 역사적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청나라가 공녀를 요구했다는 무리수를 둔다. 병자호란 당시 청군이 수십 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갔고, 진군하면서 약탈과 강간을 자행한 것은 사실이다. 끌려갔던 여성들이 조선에 돌아온 후 그들의 처우가 좋지 않았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강대국에 조공의 하나로 여자를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 공녀는 전쟁포로와 그 뜻이 엄연히 다르다. 또한 공녀 제도가 고려말 원나라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다가 조선 세종 때를 임진왜란 이후에 자취를 감춘 만큼, 병자호란 및 청나라와의 관계는 크지 않다. 결국 <검객>은 주인공의 서사를 강조하기 위해서 엄연한 역사적 사실 관계를 왜곡하는 악수를 둔 셈이다.
5. 물론 사극이라는 배경은 <검객>의 액션이 차별화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다. 사극이 아니라면 두 검사의 대결을 360도로 담아내거나 다수의 포수를 상대로 한 명의 검객이 싸움을 벌이는 장면처럼 '검'이라는 무기를 활용한 액션이 장르적 쾌감을 충족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화려한 동작보다는 절제된 움직임으로 간결하고 빠른 검의 움직임으로 구성된 액션은 과묵한 태율이라는 캐릭터의 특성과 그의 감정이 격해지는 모습을 잘 표현한다. 이에 사극에서 장혁이라는 배우가 지닌 특유의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영화는 분명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내러티브의 측면에서 봤을 때 사극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결정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다른 작품과 유사한 서사의 취약점을 완전히 가리지 못했고, 광해군, 인조반정,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룰 때 사실 관계를 왜곡하는 한국 사극의 기존 한계 역시 반복되기 때문이다.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역사적 사건에 기대어 전개되는 영화라는 점에서 이는 극의 개연성과 핍진성을 파괴하는 단점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검객>은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못한 채 조선판 <테이큰>, <최종병기 활>의 리메이크, 그리고 <광해>의 스핀오프에 그친다.
P(Poor 형편없는)
조선판 <테이큰>, <최종병기 활>, <광해>의 스핀오프가 만날 때
* 본 콘텐츠는 브런치 DAY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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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릿마리 여기 있다(Britt-Marie Was Here/2019/스웨덴)
- (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카오스와의 조우>63세의 여성 브릿마리. 영화는 그녀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에서 시작한다. 그녀의 뒷모습은 마치 정지된 듯 활기가 없다. 어쩐지 행복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이다.빨래, 청소, 장보기, 요리... 브릿마리의 일상은 단순하고 규칙적이다. 그녀는 정리와 정돈, 요리를 즐기며 주변이 그녀가 정한대로 되어 있지 않거나 흐트러져 있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남편과 둘만 살고 있고 남편은 아직도 일을 하고 있어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 집에서 지내는 브릿마리를 방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녀는 그럭저럭 불만이 없어 보인다.그런데 어느날, 한 통의 전화가 그녀의 질서정연했던 삶을 혼돈의 세계로 몰아넣고 만다. 남편 켄트가 심장마비로 병원에 입원했다며 보호자를 찾는 전화를 받고 달려간 병실에는 카밀라라는 여성이 먼저 와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셔츠를 빨며 맡았던 향수 냄새가 그녀의 냄새였음을 직접 확인한 순간 부부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며 질서있게 함께 지내던 집은 그녀에게 혼란을 일으키는 곳이 되어 버린다. 그녀는 그것을 견딜 수 없어 모아둔 비상금을 챙겨 가방 하나에 짐을 꾸려넣고 그날로 집을 떠난다.다음날, 그녀가 찾은 고용센터에서 추천한 유일한 직업은 '보르그'라는마을에 위치한 청소년센터의 청소년 지도사 겸 유소년 축구팀 코치.장거리 버스를 한참 타고 저녁 늦게 도착한 '보르그'라는 작은 마을의 청소년센터는 관리가 안 되어 폐가 같았다. 그녀가 그토록 싫어하던 카오스의 공간이었지만 달리 갈 곳이 없는 브릿마리는 그녀 인생만큼이나 엉망진창인 센터의 소파에서 지친 몸과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이튿날 아침, 창문을 깨고 날아들어온 축구공 때문에 잠에서 깬 브릿마리는 축구팀원들과 대면한다. 그녀나 아이들이나 낯설고 한심하기는 마찬가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축구를 가르쳐야 할 브릿마리는 맞닥뜨린 생생한 현실이 두렵고 새로 온 코치가 평범한 할머니라는 것을 안 아이들은 그만 힘이 빠진다.거처로 삼았던 청소년센터에 쥐가 출몰하자 브릿마리는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는 동네 경찰관 스벤의 도움으로 뱅크라는 여성의 집에 방을 얻는다. 뱅크는 한때 유망한 프로 축구선수였고 갑자기 사망한 전임 축구코치 팝스의 딸인데 지금은 시력을 잃어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같이 지내게 된 브릿마리에게도 퉁명스럽게 대할 뿐.브릿마리는 뱅크의 집에서 발견한 축구 지도서로 공부를 하며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이끈다. 아이들도 다른 방법이 없자 차츰 마음을 열고 그녀를 따른다.축구팀원 중 소녀 베가는 왜 축구를 하느냐는 브릿마리의 질문에 우리도 축구팀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며 축구는 베가의 전부라고 덧붙인다.제대로 된 놀이 시설도, 일자리도 별로 없는 작은 마을에서 축구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간절함을 알게 된 브릿마리는 아이들을 도우며 웃음을 찾게된다.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복지센터 공무원이 나타나 청소년센터를 닫을 계획이며 코치에게 자격증이 없으면 팀은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고 통보를 한 것이다.브릿마리 인생도, 축구대회에서 뛰고 싶은 아이들의 꿈도 장애물에 꽉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이웃들이 나선다.축구를 좋아하지만 어려운 환경 때문에 지금은 축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그러나 언젠가 다시 시작할 꿈을 지닌 청년 사미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며 힘을 실어준다. 아버지는 가출하고 어머니는 사망하여 사미가 돌보아 주고 있는 형편이지만 축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베가는 브릿마리에게도 꿈이 있을 것이 아니냐며 그 꿈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결정적으로 축구코치 자격증이 있는 뱅크가 부코치를 자처하며 나섬에따라 축구팀은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깨진 창문을 수리하려 해도 칼투나라는 큰 도시에 유리 주문을 하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 보르그 마을의 어린이 축구팀이 드디어 그 칼투나의 축구팀과 경기하는 날. 두 시즌 내내 칼투나 어린이 축구팀에 한 점도 내지 못했던 보르그 축구팀은 14대0으로 패하다가 후반전에 베가가 상대편 골문을 열어 기록을 깬다. 비록 14대1로 경기에는 졌지만 골을 넣어 당당하게 축구팀임을 증명함으로써 베가는 그녀의 꿈을 이루었다.브릿마리의 꿈은 무엇이냐는 베가의 질문을 곰곰 생각하다가 그녀의 꿈이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는 것이었음을 깨달은 그녀는 파리로 떠나 50년만에 꿈을 성취하고 보르그 청소년 축구팀들에게 드디어 축구장이 생겼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녀의 미소짓는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브릿마리 여기 있다>는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지만 안정적으로 지내던 40년의 결혼생활에 던져진 문제를 통해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겪으며 비로소 주체적인 삶으로 한 걸음 내딛는 한 여성의 성장 영화이다.별로 변화가 없어 예측 가능했고 질서정연했던 환경을 떠나자마자 브릿마리에게 연속적으로 다가온 상황은 혼돈 그 자체였다. 청소년센터는 청소와 정돈이 되어 있지 않아 끔찍했고 어린이들은 제멋대로였다. 브릿마리는 그녀가 그토록 싫어했던 카오스를 이겨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매일 '그저 오늘을 살자, 브릿마리.'라고 주문처럼 외워야 용기를 낼 수 있었다.그리고 그녀는 그 어려움 가운데 성장하게 된다. 익숙하고 편했던 집에서는 습관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생각하지 않고 지냈던 그녀의 꿈과 그녀 삶의 문제가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 가운데에서 하나씩 깨달아진 것이다.절대로 원하지 않았고 의도하지 않았던 불편하고 낯선 상황에 떨어지면 우리는 그것을 '시련'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어쩌면 예측할 수 없어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상태인 '카오스'도 '시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둘의 공통점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하여 통제할 수 없는 것에서 인간이라면 보통 공포를 느끼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지지 않는다면, 브릿마리처럼 매일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용감하게 앞으로 조금씩 전진한다면, 그리고 상냥하고 진실한 이웃들이 함께 해 준다면 우리도 그녀처럼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63세의 평범한 여성 브릿마리의 성장이 부럽고 기쁘다. 그녀가 난관에 부닥쳤을 때 두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가 생긴다. 이 영화의 미덕은 이것이다(©2020.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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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사랑의 시작부터 마침표까지, 변화하는 삶의 궤적 속 찾아오는 감정을 잘 표현한 영화 <여름날 우리>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면 본 영화 <여름날 우리> 하지만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고, 청량함 속에서도 삶의 변화와 감정을 고스란히 잘 담아낸 작품이었다.
영화 <여름날 우리> 시놉시스
처음이었다, 사랑이 싹트는 기분. 너에게 풍덩 빠져버렸던 17살의 여름. 너를 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21살의 여름. 그리고 몇 번의 여름이 지나고 다시 만난 너, 이젠 놓치지 않을 거야. “널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어”
고등학생 수영선수였던 저우 샤오치의 눈에 들어온 요우 용츠. 요우 용츠는 중국어로 수영장과 발음이 비슷하다. 그래서 자우 샤오치는 매일같이 가는 수영장을 갈 때마다 그녀 생각이 떠오른다. 그녀의 눈에 들기 위해 애를 쓰던 저우 샤오치는 수영반의 1등 샤크와 수영대결을 하게 된다. 샤크와의 수영대결에서 졌지만 이를 계기로 저우 샤오치는 용츠와 더욱 가까워진다. 그렇게 친해지나 싶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전학가게 된 용츠를 떠나보내고 다시 활력을 잃었던 샤오치는 용츠가 대학에 입학했음을 알고 사력을 다해 공부를 시작한다. 같은 대학에 입학한 저우 샤오치, 과연 사오치는 용츠와 다시 이어질 수 있을까?
*해당 내용은 네이버 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여름날 우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나의 기대와 다른 상대방, 하지만 그런 상대방도 존중하는 배려
저우 샤오치는 상당히 순수하다. 요우 용츠를 만나기 위해 공부에 뜻이 없었지만 그리고 수영에 딱히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요우 용츠가 있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사력을 다해 노력을 했고 입학에 성공한다. 그런 저우 샤오치는 요우 용츠 역시 자신을 만나면 좋아할 것이라는 빗나가는 센스를 발휘하고 요우 용츠 앞에 나타나지만 요우 용츠는 이미 남친이 있기에 그런 저우 샤오치를 조금은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실망은 접어두고 저우샤오치는 자신 나름 요우 용츠에게 최선을 다하며 남학생으로는 유일하게 여학생회에 들어가고, 함께 치어리딩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계속 각인시킨다. 이런 저우샤우치의 모습을 보면서 남성성만 부각하는 것이 아니어서 좋게 다가왔다.
변화하는 삶 속에서 때때로 등장하는 후회의 감정들
영화 <여름날 우리> 속에서 주인공들의 사회적 위치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고등학생이던 용츠와 샤오치는 공부를 잘하는 용츠와 공부에는 뜻이 없는 샤오치로 등장한다. 대학에 진학해서까지 비슷하게 유지되다가 대학 졸업 후 촉망받는 수영선수 샤오치와 디자이너라는 꿈을 접고 모델일을 해야만 했던 용츠로 그 관계는 역전된다. 그간 어리광을 부리던 샤오치를 받아주는 누나같은 용츠였는데 졸업 후에는 어느샌가 듬직한 샤오치로 성장하고 용츠가 여기에 기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부상을 겪은 샤오치는 더이상 선수생활이 힘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용츠는 디자이너로서 차근차근 장해가며 다시금 관계가 역전된다. 이렇게 변화하는 지위 속에서 등인물들은 후회를 하게 된다. 내가 만약 그 때 안그랬으면 어땠을까? 혹시 그냥 시합에 나갔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면서 이 후회의 감정은 두 사람을 갈라놓게 된다. 어떤 사람이든 언제나 성공을 할수도 그리고 언제나 실패 속에 머물러 있지도 않는다. 그러한 삶의 과정들을 특히 20대에 겪을 수 있는 과정을 영화 여름날의 우리는 잘 표현해주고 있었고, 그 속에서 사소하게, 그리고 관계를 뒤흔들 수 있는 후회라는 감정을 잘 녹여낸 작품이었다.
단 한 끝차이, 너를 위해서와 너 때문에
영화 <여름날의 우리>는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도 변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게 있을지에 대해 질문을 잘 던진 작품이었다. 용츠가 꿈을 향해 한걸을 내딛을 때 샤오치는 꿈으로부터 멀어지는 좌절을 경험한다. 이렇게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면서 상대방이 잘못한 것은 없지만 연인을 '위해서' 한 과거의 행동을 연인 '때문에' 했다며 책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점점 자신의 세계와 멀어져 가는 듯한 상대방을 보면서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을 같기는 어렵다. 더욱 노력을 해야하고 배려를 해야한다. 하지만 이 과정은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자신의 환경이 변화하면서 그 원인의 화살을 남으로 돌리는 이 이기적인 마음이 연인 뿐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얼마나 큰 상처로 다가갈 수 있는지, '너를 위해서'와 '너 때문에' 라는 이 한끗차이가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영화 <여름날 우리>는 가벼운 풋사랑 같은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그 속에서 굉장히 다양한 감정과 변화하는 삶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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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래디 코베의 정육면체는 무엇을 말하는가
전쟁과 홀로코스트로 인해 국경을 넘지 못했던 에르제벳(펠리시티 존스)은 먼저 미국 땅에 당도해 있던 라즐로(애드리언 브로디)가 한창 작업 중인 ‘마가렛 밴 뷰런 인스티튜트’의 도면을 보며 말한다. “당신을 보고 있어.” 라즐로와 오랜 기간 마음을 주고받았을 에르제벳은 헝가리에서 타국으로 건너와 생활하고 있던 남편 라즐로의 속내를 건축 도면에서 읽는다. 건축가이자 남편인 라즐로 토스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그 안에 담겨 있다는 걸 에르제벳은 알고 있다. 에르제벳은 라즐로를 이해하는 만큼 마음과 목소리를 아끼지 않는 동반자다. 에르제벳이 라즐로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터전을 잃은 유대인 건축가가 사라지지 않을 건축물이자 자기 자신을 건설하려는 이야기다.
<브루탈리스트>에서 중요한 것은 이민자의 역사나 자본의 폭력성보다 한 예술가의 집착에 가까운 신념이다. 라즐로는 직접 정육면체를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정육면체를 설명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라즐로는 건축, 즉 자신의 예술품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예술적 신념을 굽히지 않는 건축가에게 3,4미터의 높이나 대리석의 종류와 색은 절대로 사소한 부분이 아니다. 자신의 급여를 내놓아서라도 지켜내야만 한다.
라즐로가 건축을 택한 이유는 그 ‘영속성’에 있다. 시간과 침식 속에서도 견고한 본질을 잃지 않는 것. 파시즘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유린당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춰 해석되더라도 침식되지 않을 건축이야말로 라즐로의 삶이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조피아는 ‘마가렛 리 밴 뷰런 인스티튜트’와 수용소의 유사성을 근거로 홀로코스트의 잔학성과 숭고한 유대주의를 기린다. ‘과정보다 목적지가 중요하다’는 라즐로의 말은 어느새 유대인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정당화하는 언어로 변모한다. 라즐로의 건축물은 영원히 남겠지만 그에 덧붙여지는 메시지는 언제고 달라질 수 있음을 내포한다.
인터미션을 제외하고 4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진 <브루탈리스트>에서 에필로그는 불필요해 보인다. 1980년 제1회 건축 비엔날레에는 ‘라즐로 토스: 현재 속의 과거’라는 이름의 회고전이 진행되고 있고 휠체어에 탄 라즐로를 뒤로 한 채 조피아가 연설을 맡는다. 이 연설은 자못 유대주의를 옹호하는 것으로 읽힌다. 영화의 서막에 등장했던 조피아의 심문 시퀀스가 다시 펼쳐짐으로써 유대인 박해의 부당함과 유대주의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듯하다. 그러나 에필로그 속에서 라즐로의 휠체어를 밀고 있는 조피아의 딸이 젊은 조피아를 연기한 라피 캐시디라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서막에서 조피아는 자신의 정체성과 신분을 심문받는다. 에필로그의 라피 캐시디는 또 한 번 유대주의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앞의 시험대에 서서 정체성을 증명해야만 하는 시험을 받고 있다. 무력하게 앉아 침묵하는 라즐로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이 아니다. 그의 건축물에 유대인을 기리는 특별한 의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라즐로와 조피아가 향하는 목적지가 다름에도 침식되지 않고 영원히 남는 건축물을 꿈꾸는 예술가를 보며 현대를 살아가는 몇몇 관객의 앞에는 처참히 부서진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브래디 코베 감독은 라즐로가 어떤 건물을 지었는지, 이민자가 결국 어떻게 정착을 이뤄냈는지보다 자본과 이데올로기에 유린당하는 예술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이탈리아의 카라라 대리석의 아름다움을 탐미하던 해리슨(가이 피어스)은 술과 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라즐로를 강간한다. 에르제벳은 밴 뷰런 가족의 식사시간에 해리슨의 행동을 폭로한다. 해리슨은 식사 자리에서 사라져 행방이 묘연해진다. 가족과 일꾼들은 해리슨을 찾기 위해 ‘마가렛 밴 뷰런 인스티튜트’를 훑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탈리아의 아름답고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제단 위로 십자가의 달빛이 뒤집혀 떨어진다. 거대 자본에 유린당하는 숭고한 예술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이 신은 감독이 영화를 통해 그려내고자 한 목적지에 가까운 장면이다. 브래디 코베 감독이 선보인 <브루탈리스트>라는 정육면체는 많은 이야를 품고 있지만 빛은 단연코 그 장면을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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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라이트만 담백하고 나머지는 어수선한
전설과 함께
이 영화의 주인공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과 1947년 보스턴 마라톤대회 우승자 서윤복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부분이다. 세계 신기록을 세운 손기정. 하지만 우승의 기쁨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시상식에 올라가는 손기정. 입고 있던 옷에 그려있는 일본 국기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손에 들고 있던 묘목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린다. 뒤집힌 조선 총독부. 손기정을 겁박한다. ‘내 개인의 승리가 아닌 우리 일본 국민의 승리’라는 말을 마지못해 기록한다. 손기정의 육상선수 커리어는 그때 끝났다.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1947년에서 시작된다. 냉면집에서 서빙 일을 하는 서윤복은 돈 생각에 머리가 아프다. 어머니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손기정은 나라가 일제에게 벗어났다 하더라도 영 즐거운 일이 없다. 아들과 떨어진 일상. 매일을 술로 보낸다. 국민적인 영웅이라 ‘손기정 상’ 같은 시상식에 초대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건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그가 친한 동료 남승룡, 냉면집 아르바이트생 서윤복과 함께 보스턴 마라톤 대회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강제규 감독은 충무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1996년 <은행나무 침대>로 데뷔한 강제규 감독은 3년 후의 <쉬리>로 당시 한국영화 관객 신기록을 경신한다. <쉬리> 이후 4년이 지난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로 11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다. <실미도>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일이라 당시의 충무로도 반향이 컸다. 이렇게 강제규 감독이 상업영화라는 분야에 있어 두각을 드러냈던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감정적으로 진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고, 큰 규모의 신을 찍을 때 인물들을 깔끔하게 정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묘사하는 끔찍한 전쟁의 참상은 영화의 후반부를 위해 필수적이다. 격렬하고 광폭한 전쟁이 이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걸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몇 인물들은 전쟁의 광기에 혹해버렸다. 광기에 취한 인물들이 전투 도중이나 군 막사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이 영화에서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전투 장면을 시각화하는 방식에도 감독의 장기가 들어가 있다. 이 <태극기 휘날리며>의 전투 장면은 좋은 의미에서 너절하다. 후반부 진태(장동건)가 피 흘리며 전투를 벌이고 난 후 다음 장면은 깔끔하게 씻은 진석(원빈)이다. 심지어 진태가 처절하게 싸우는 반면 진석은 누군가와 조용한 분위기에서 대화한다. 당연히 진태의 상황이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데, 두 인물 간의 시각적인 대비로 전쟁의 속성을 묘사한 것이다. 이렇게 <태극기 휘날리며>는 칙칙한 색감, 깔끔한 인물 동선, 처절한 전장의 분위기를 카메라로 담으며 한국전쟁이라는 지옥도를 구현한다. 이 지옥도가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후반부 ‘돌아온다고 했잖아요’ 신이 감동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번 강제규 감독의 신작 <보스턴 1947>는 강제규 감독의 장기들이 알차게 들어가 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 신은 당연히 마라톤 장면이다. 이 장면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핵심이 되어 한국사회의 강인함과 서윤복의 단단한 내면을 상징한다. 인물이 뛰어가는 모습을 촬영한 방식이 영화의 몇 사건을 비유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영화는 주인공 3인방을 보스턴에 곱게 보내지 않는다. 몇 가지 위기를 만드는데, 그 위기 이면에는 당시 한국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1947년은 미군정이 한반도를 통치하는 시기였다. 한국정부가 들어서기 전이라 대회 참여의 금전적, 행정적 부분에서 지원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대응하는 과정은 혼자 하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마라톤과 유사하다. 사실상 1부의 초중반부와 2부의 후반부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암시하는 서윤복의 마라톤은 영화의 웅장함에 안성맞춤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이전에 글쓴이를 포함한 적지 않은 관객들이 '또 억지로 눈물 쥐어짜는 요소 넣었겠네' 우려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는 이 우려를 무색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인간의 결기와 의지를 영화 후반부에 방점 찍어 마무리했다. 이 장중한 하이라이트를 위해 강제규 감독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당시 보스턴의 날씨를 구현하기 위해 호주에서 촬영한다거나, 임시완, 배성우 배우가 러닝 연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이나 400여 명의 외국 배우와 함께했다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화라는 양날의 검
이 영화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세 사람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이를 경제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야기 안에서 한국정부가 수립되기 전이라는 설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1,2부의 이야기 이면에 깔려있는 시한폭탄임과 동시에 강제규 감독이 전달하고 싶었던 국민성을 보여주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 설정이 정직하게 작동하는 경우도 있다. 초반부 주인공 3인방은 선수 엔트리 등록을 위해 관련 부처를 찾아간다. 이 장면에서 담당 공무원이 손기정 일행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라고 설명하는 장면은 사실적이다. 영화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손기정 선수와 관련한 부분이 몇 등장하는데, 이 문제와 1947년의 보스턴은 큰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정부의 지원 없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한 것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만 봐도 비슷한 예시가 몇 있다. 또한 궁핍한 한반도를 보여주는 방식도 극 중 등장인물들이 마라토너라는 점에 잘 어울린다. 신발은 이 영화의 인물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영화는 신발을 수급하는 문제를 무작정 으쌰 으쌰가 아니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길 만큼 합리적으로 해결한다. 이 현실성과 관련한 부분은 2부에서도 마찬가지다. 2부에는 역사의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은 꼼꼼함이 느껴진다. 영화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후일담을 찾아보면 이 인물들을 꽤나 잘 살렸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마라톤 장면에서 특정 사건이 약간 영화적인 왜곡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장면 역시 1947년의 보스턴에서 실제로 이뤄졌던 일이라는 것이 놀랍다. 영화가 실화라는 점을 잘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실화라는 틀에 안주한 흔적이 아쉽다. 어쭙잖은 신파극을 가볍게 벗어난 후반부의 하이라이트가 아니더라도 플롯의 나머지 부분들은 예상가능하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인물들이 납작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박은빈 배우가 맡은 역할은 이야기에서 비중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단지 서윤복에게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데에만 그치고 있다. 박은빈 배우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기 전의 작품이 아니었어도 이 인물에 대한 아쉬움은 남을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이 어렵게 대회에 참여해서 상을 받았어. 그럼 곱고 순한 여성 캐릭터는 영화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할 것 같은가? 이 문제의 답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또 영화 1, 2부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무례하다. 구체적으로 2부의 하이라이트 신에서 어떤 두 미국인이 갖고 있는 비중이 크다. 이 두 인물은 관객들에게 '빨리 화 내!' 겁박하는 느낌마저 든다. 인종차별에 대한 논의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던 1947년이라지만 현실감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것이다. 또한 2부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위기를 해결하는 방식은 더 차갑고 냉정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 서윤복이 어떤 모습으로 달리기를 했는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차라리 이 부분을 구현하는 게 이야기의 현실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으로 보인다. 영화의 기획의도에 희생된 인물들이 아쉬웠다.
슬렁슬렁 넘어가다
영화는 인물들의 욕망과 관련한 문제를 손쉽고 전형적으로 해결한다. 먼저 이야기할 것은 주인공 서윤복이다. 서윤복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어머니다. 서윤복은 아픈 어머니를 위해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초반부에서 영화는 서윤복의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하지만 서윤복은 실행력이 있는 사람이다. 서윤복이 초반부에 달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몇 번 대사를 치는 부분에서 주인공이 마냥 이상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준다.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영화의 1부가 가진 큰 과제 중 하나였을 것이다. 영화는 이 문제를 굉장히 쉽게 해결한다. 물론 그 사건이 이 인물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그건 인물의 동기부여에 대한 문제인거지 실제 이 인물이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과는 좀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진다. 사실 이 문제는 2부에서 원인만 달라진 채로 반복된다. 영화 2부에서도 이 부분을 다루기 때문에 1부의 어설픈 마무리가 더 아쉽게 느껴진다. 남승룡의 경우에도 문제를 맺고 끝는것이 불확실하다. 이 인물은 달리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다. 하지만 이 욕망을 가진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남승룡은 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한다. 단 조금의 과정도 없이.
영화가 가진 아쉬운 점 중 하나는 통일성이다. 이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가장 큰 이물감 두 개는 배성우와 하정우 배우다. 우선 배성우 배우와 하정우 배우는 다른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하정우 배우가 맡은 손기정 역은 <수리남>의 강인구와 별 차이가 없다(심지어 헤어스타일도 비슷하다). 이러다 보니 손기정과 남승룡이 아니라 하정우와 배성우 배우 각자가 대화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는 임시완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달리는 신이 아닌 선에서, 이 영화에서 본 임시완 배우는 어쩐지 <미생>과 <불한당>에서 본 기시감이다. 김상호 배우도 이 배우가 등장했던 사극의 어느 장면처럼 연기한다. 대표적으로 이 인물들이 2부에서 밥을 먹는 신이 있다. 배우들의 일상연기에서 자연인으로서의 모습이 더 두드러져 강제규 감독의 역량을 생각한다면 아쉽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비단 연기 말고도 편집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신파극에 대한 반발심리를 너무 의식해서인지 이야기는 생략된 것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특히 남승룡의 서사에서 더 느껴진다. 아마 배성우 배우의 개인적 에피소드 때문인 듯). 이것 덕분에 뚝뚝 끊긴다. 심지어 인물이 오롯이 대사를 칠 때에도 컷전환이 캐릭터를 방해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대표적으로 손기정이 남승룡, 서윤복과 대화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서로 대화하는 신인데 말 중간에 시점이 바뀐다. 그동안 강제규 감독이 규모가 큰 신을 깔끔하게 연출했다는 점과 반대로, 소수의 인원이 대화하는 신에서는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밑반찬이 아쉽네
앞에서 쓴 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기획의도에 충실하다. 스포츠 신파극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관객들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휴먼 드라마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마지막 장면은 멋진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변 등장인물을 콘셉트 아래에 가둬놓은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큰 덩어리들은 있는데 중간단계들이 좁고 얕다. 이 얕은 깊이 덕에 영화 자체가 올드하게 느껴진다. 정작 영화가 우려하는 점은 다 보완했지만 이를 덮기 위한 수가 반대로 단점이 되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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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쟁이] 마블을 거절한 역대급 배우들!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
안녕하세요 마블쟁입니다!!
영어 영상 이후에 정말 편한 마음으로 다시 한국어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마블영화의 캐스팅 이야기들을 가지고 와봤습니다.
배우들 중심으로 풀어봤으니 재미있게 시청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구독 꼭 부탁해요~
2017. 1. 06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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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1] 사랑과 계급에 관한 이탈리아 영화 마틴 에덴 을 관람하고 왔어요!
이탈리아 영화 마틴 에덴 이 궁금하신 분들는 영상 참고 부탁드려요.
간단한 리뷰도 넣어두었습니다.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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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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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이스 로드> 메인 예고편
캐나다 매니토바주,
다이아몬드 광산 폭발 사고로 갱도에 매립된 26명의 광부들.
이들을 구출할 유일한 방법은 제한시간 내
해빙에 접어든 아이스 로드를 횡단해 구조용 파이프를 운반하는 것뿐.
영하 50도에 달하는 극한의 추위와 눈 폭풍이 도사린 ‘하얀 지옥’ 위니펙 호수 위
불가능한 미션의 수행자로 선택된 전문 트러커 ‘마이크’는
대형 트레일러 3대와 구조팀을 이끌고
예측불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는 아이스 로드를 달리기 시작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단 30시간,
살기 위해 멈추지 말고 질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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