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3-10-09 21:07:52
[BIFF 데일리] 지상낙원을 찾는 어리석은 인간의 기대에 대하여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파라다이스'

한 인도인 커플이 지상 낙원 스리랑카를 여행한다. 그러던 중 숙소에 들이닥친 도둑에 의해 핸드폰과 노트북을 잃어버린다. 그 길로 커플은 스리랑카 경찰을 찾아가는데 스리랑카 경찰은 게으름을 피우기 일쑤다. 기름이 모자라서 못간다는둥 이 경찰 생각보다 강적이다. 이에 케사브는 위력을 행사하며 소위 갑질을 시전한다. 그의 갑질에 겁먹은 경찰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긴 한데, 어째 억울한 사람들만 죽어나가는 것 같다. 이들의 여행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1. 지상낙원에서 지옥을 맛본 커플

케사브의 행동은 여러모로 분노를 유발한다. 여행을 와서도 일을 놓지 못하는 워커홀릭인 그는 핸드폰을 잃어버리자 절망하고 예민해지며 소위 진상이 된다. 경찰이 사건을 적당히 뭉개는 걸 보자, 인도 정부에 그를 고발할 것이라는 둥 고압적으로 나가기도 하고 직원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기도 한다.
이런 그의 예민함은 경찰로 하여금 보여주기식 수사를 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억울한 사망자를 만들어내 안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 스리랑카인들의 폭동을 만들어낸다.
그와 대조되는 아내, 암리사는 특히 사슴에 꽂히기도 하며 스리랑카의 전설과 자연에 관심이 많다. 그녀는 자신의 성공이 날아갈 위기에 처한 케사브의 예민함이 억울한 사람들을 향하는데도 뻔뻔한 케사브의 이기적인 행보를 보며 여러번 정떨어져하는 모습을 보인다.
케사브에게 스리랑카라는 지상낙원은 성공을 날려버린 곳으로, 암리사에게는 남편의 이기심을 확인하며 각기 다른 이유의 지옥이 되었다.
2. 지상낙원과는 너무 먼 스리랑카의 현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스리랑카인들이 기름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기름도 부족하니 전기도 부족하고 뭐 하나 있는 게 없다. 경찰도 보면 시민들을 지키기보다는 시민 위에 군림하고 있으니 폭동들이 난무하고 테러가 난무한다.
한 관광객의 위력 행사로 공권력이 시민들의 편이 되지 않는 것만 봐도 그 사회의 참상은 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지나온 역사에도 비슷한 모습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물품조차도 제대로 수급되지 않는 사회에서의 국민들의 고통이 그저 즐기려고 온 관광객의 모습과 대비되며 시타와 라마 전설이 어쩌고저쩌고가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그와중에 자연풍경은 참 아름답고 평화로워서 그들의 참상과 비교되어 더욱 안타끼움을 자아낸다.
3. 전설은 각자만의 버전이 있다.
이 영화의 인상적인 지점이 있다면 영화에 주요한 소재로 쓰인 라마야나 전설의 해석이다. 스리랑카 안에서도 전설에 대한 해석이 다 다르게 퍼져있다. 한 전설을 두고, 어떤 사람은 세기의 러브스토리로 묘사하고, 한 사랑은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린 작품으로 묘사한다. 다 자기가 보고 싶은대로 보는 것이다. 혹은 가장 잘 팔릴 버전으로 왜곡하기도 한다. 다 각자만의 관점대로 해석하고 퍼트린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는 결국 없는 것 같다. 종교인들의 숨과도 같은 성경조차도 이리 다양한 해석본이 있으니 진리라는 것은 어쩌면 없을지도 모르겠다. 당신만의 진리만 있을 뿐.
총평
영화를 보고있자면, 그리고 지상낙원에는 선인들만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지상낙원에 살던 아담과 이브 사이에도 뱀이 등장했던 것처럼 어디에나 케사브나 경찰 같은 기회주의자들은 있다. 그러니 완벽한 선인들만 사는 천국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야 공존하면서 살 수 있다. 공존은 나와 다른 사람까지 사랑하지 않아도 그저 그런 인간도 있다고 인정하되,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그리고 지상 낙원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인정하게 된다. 완벽한 지상낙원은 없기에, 그래서 전설 속에서나 그런 곳들이 존재한다는 것이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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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릴 수 없는 짬뽕 기차, 어눌한 복수의 혈전.
불릿 트레인은 ‘고속열차’라는 뜻 그대로 ‘마리아 비틀’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불운의 킬러 레이디 버그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고속 열차에 탑승하며 일어나는 일로서 미션과 관련된 이들과 뜨거운 혈투를 벌이는 액션이 펼쳐진다. 운명과 운에 초점이 맞춰진 이 이야기는 데이빗 레이치 연출과 브래드 피트의 연기가 더해져 액션에 코믹이 가미된 열차에 우리 모두를 탑승하게 만든다.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등장하는 특별 카메오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레이디 버그는 복귀 미션 수행을 위해 초고속 열차에 탑승한다. 대타로 맡은 회수 의뢰는 가방을 찾아내는 것이었는데, 간단하다고 생각했던 미션이 예상외로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그런 상황이 왠지 모르게 불안하지만 일단 열차에서 내리려고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피 터지는 혈투가 시작된다. 끝인 줄 알았던 상황이 다시 시작됨에 따라 열차 곳곳에 숨은 킬러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인 레이디 버그는 가방을 가지고 무사히 내릴 수 있을까.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난잡한 혈투가 서류 가방과 레이디 버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마주한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불운이 끼쳐오는 걸까. 그가 불러온 불운의 무게가 아닌 많은 이들이 불러온 업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순간이 머지않았다. 꼬인 듯한 이 관계들이 서로 맞물리며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함께 묶인 만큼 끈끈해진 관계가 예상치 못한 반전을 끌어낸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벌어지는 운명의 기차는 수많은 장애물을 뚫고 많은 것들을 파괴하고 나서야 멈춘다.궁극적으로담겨져있는이야기에대한 물음보다는 빠른 속도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강렬한 액션이 돋보이는 불릿 트레인은 킬링타임용으로 적합해 보인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수다스러움 그 자체로 웃기기도 하지만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원작 소설을 그대로 옮겨 온 탓인지 일본 특유의 분위기가 영화 전반부를 지배한다. 어눌한 말투와 어색한 이야기가 합쳐져 미묘한 불편함이 계속해서 따라온다. 서양인 시각에서 동양의 표현은 언제쯤이면 제대로 묘사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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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
왜 우리는 살면서 잔인한 기억을 한 번쯤 겪게 될까요? 월요일에 들었던 질문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금새 나는 한 가지의 끔찍한 순간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번 주의 내가 그 시간에 고통받았냐? 아니다. 지금의 나는 19과 20에 겪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다. 너무 멀리 돌아왔다는 생각을 한 300번째 한 후, 내가 겪었던 고통은 과연 무엇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실 별 것 아니다. 별 것 아니었다는 결론에 달한 것이 나의 트라우마 극복의 전부다. 이겨냈기 때문에 이런 말을 머릿속에 새기는 것일 거다. 근데 이것과 별개로 내가 무언가에 휘둘려 살았던 기억은 나의 행동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대체 왜 그랬지. 이 트라우마가 만든 창피한 경험은 역설적이게도 그 사건과 아무 상관이 없다. 난 누군가를 생각하는 법 자체를 몰랐다. 사랑받는 법도 주는 것도 몰랐기 때문에 방황했던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내가 미쳤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바보 같은 순간이 머릿속에 스쳐가는 오늘이다. 그때의 시간은 어리다는 말로 전부 수식할 수 없으니 오늘 밤도 이불을 뻥뻥 차게 생겼다.
다행인 점은 있다. 내가 미쳤지 싶었던 때에서 얻은 건 있으니 말이다. 이 얻은 것은 두 가지다. 사랑받는 인생은 무엇이고, 그걸 주는 삶이란 또 어떤 것인가? 에 관한 것이다. 이건 살면서 굉장히 중요했다. 내 정신연령이 죽을 때까지 10대에 머무를 순 없잖아? 세상의 모든 애정이 이성 간의 사랑과 그것이 아닌 무언가로 나뉜다면 삶이 퍽퍽해질 것이다. 물론 선을 넘는 건 나 역시 부담스럽겠지만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보내는 따뜻한 무언가를 잘 보듬으려고 한다. 살다 보니 정말 사랑이 전부였다. 내가 무언가를 위해 노력할 때는 보통 내가 좋아하는 타인에게 더 당당해지기 위함이었다. 또 언제는 그가 한 말 한마디가 내 동기부여의 전부가 되기도 했다. 이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이성 간의 무언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누구에게 진심인 편이 된다는 건 굉장히 어렵다는 걸 알았다. 진정성은 사소한 것에서 왔었다. 내가 지키는 소소한 것에서 섬세함이 생기고 그 사람의 말에 설득력이 만들어진다. 그러면 상대방은 보통 '이 사람이 진정성을 갖고 행동하는구나'라고 느껴 나를 좋아해 준다. 보통 그런 지레짐작은 맞는 말이다. 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없이 나 스스로의 이미지를 속이는 것처럼 행동하는 건 싫다. 진실된 사람이라는 말에 유달리 집착했던 나는 앞과 뒤가 다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 태도에는 단점이 있다. 마음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짝사랑을 심하게 한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에 취해있으면 그 사람에게 맞춰진다. 그러면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어 진다. 사랑받기 위해서다. 정서적인 무언가를 받기 위해 계속해서 어떤 행동들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러다가 크게 다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점점 뒤가 없어진다. 모 아니면 도인 내 방식이 가끔 질린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마음을 막을 수 있느냐. 글쎄. 아마 아닐 것이다. 지극히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나는 진정성을 위해 내 언어로만 행동하고 말한다. 그리고 두려워한다. 이 사람이 언젠가 날 떠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날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떠나간 후의 기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잃고 나서 난 이런 것들을 배웠다고 자위하는 건 이제 질렸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무서운 게 많아지는 셈이다. 차라리 누군가를 아껴주지 않는다면 다칠 일도 없을 텐데. 난 오늘도 일어나지 않은 일을 무서워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필연을 운명에 빗댄 영화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이유에는 인생에 대한 절묘한 비유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좀 심각하게 극단적이다. 아버지에게 알맞은 애정을 받지 못한 채로 자란 마츠코. 시크한 아버지가 웃음을 주지 않은 것에 마음이 답답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마츠코는 일찍 취업에 성공해 선생님이 된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다. 교사로서의 일과 도중, 마츠코가 재직하던 중학교 제자가 누군가의 돈을 훔치는 사건이 벌어진다. 마츠코는 이 사건으로 인해 억울하게 학교를 떠나게 되고 작가 지망생인 남자와 동거를 하게 된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지도 못했고 믿었던 학교에서까지 배신당한 마츠코. 이번에는 정말 날 사랑해주는 곳을 찾은 것 같았다. 근데 그건 잠깐 뿐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재림이라는 말과 함께 미래가 밝았던 첫 번째 남자 친구는 예술가의 지나친 우울함 때문인지 자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두 번째 남자 친구는 첫 번째 남자 친구에게 열등감이 가득했던 인물이었다. 마츠코를 얻음으로써 이 열등감을 해소하려 했었다는 이유로 결별을 선언한다. 자기 내적의 무언가 때문에 마츠코를 이용한 것이다. 연이은 이별 후 직장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마츠코. 새로운 일터는 마사지방이었다. 업계 톱으로 잘 나갔던 그녀지만 이내 회사가 무너지게 되고 다시 위기에 봉착한다. 이 시기에 원래 살던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마츠코 연락 없음'이란 글을 읽게 된다. 아버지의 애정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다시 홀로 집을 나와 독립을 시작하고 세 번째 남자 오노 데라를 만나게 된다. 이 남자의 정체는 사기꾼이었다. 후에 마츠코를 배신하자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네 번째 남자를 만나 삶을 살던 도중 경찰에 잡혀가게 된다. 8년형을 선고받고 만기출소로 나온 마츠코.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남자는 교사 시절 도둑 누명을 쓰게 만든 제자였다. 제자 류와의 사랑에 빠지는 데는 성공하지만 정작 끝은 좋지 못했다.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갔다 온 후 마츠코를 돌보기를커녕 주먹 한대 쳐버리고 류는 도망친다. 결국 버림받게 되는 마츠코. 히키코모리처럼 집에서 은둔하며 TV만 보다가 우연히 본 아이돌에게 빠지게 된다. 하는 거라곤 그 아이돌에게 편지 보내는 것 빼곤 아무것도 없던 마츠코. 감옥 동기가 재기할 수 있을 거라며 건넨 명함에 행복 회로를 돌리다 후반부에 허무하게 객사하게 된다. 그게 영화의 끝이다.
이 영화는 많이 비극적이다. 선생님이란 좋은 직업으로 시작해서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 여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과할 정도로 사랑을 찾는다. 2021년의 우리가 보기엔 '굳이 저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다. 영화의 주인공이 보여준 행보와 같은 질문을 우리의 삶에 던질 수 있다. 과연 사랑이 그렇게나 중요할까? 주인공의 자존심까지 다 팔아가며 받고 싶을 만큼 관심과 애정이 우리 삶에서 중요할까?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거 말고 하나 더 있다. 그거 받는다고 해서 우리 삶이 극적으로 나아진다는 보장이 있는가? 어차피 누군가는 어떤 인물의 삶에서 떠나갈 수밖에 없다. 겉보기엔 오해로 멀어지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당연하다. 모든 영화에는 엔딩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필연적인 끝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다. 불륜이든 풋풋한 첫사랑이든 우리는 끝이 어떤 결말로 이뤄질지 뻔히 아는데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연인이 아니고 친구관계이거나 형이나 누나로 불려지는 사이여도 마찬가지다. 단 한 가지의 예외라도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잘 알면서도 우리는 운명을 잊어버리며 살아간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생각해보자.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단지 섹슈얼한 무언가가 아니라 존경과 우정, 공감의 의미여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감정이야 말로 우리 인생의 전부다. 내가 느끼기엔 -내 기준- 이성 간의 사랑보다 이 감사함의 표시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준 형들이 멋있다고 생각해서 난 게이가 아닌 것처럼 세상은 다양한 감정들로 이뤄져 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때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존경이라는 말이 식상해질 때 누군가에 대해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봐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순수한 동기부여는 이런 것들이다. 나를 믿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내 모습을 사랑해줄 인간이 있다면 그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가족이 소중한 이유가 이거 아닐까? 거의 대다수에게 가족이란 어떤 일을 겪어도 내 편인 존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가족들에게 잘하는 것일 테지. 나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근데 난 이기적 이게도 이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사랑받고 싶다. 가족이 주는 무언가는 항상 고마운데. 나는 그 외에서도 쓸모를 찾고 싶다. 난 개 같던 20대의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찾았던 것 같다. 그 뭐 같던 순간에서 제일 찌질한건 나였단 걸 깨달은 후에도 다른 뭔가를 찾았던 것 같다. 이런 인간관계의 결말? 항상 같았다. 난 정말 나밖에 모른다. 친해지는 걸 못해 별것 아닌 것에도 이상한 사람 취급당했던 기억이 생생하고, 또 정신상태가 무너져 있을 때 본능적으로 사랑을 갈구하던 모습이 선하기 때문이다. 알고 있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나란 걸. 남 탓 열심히 해도 어차피 원인은 나에게도 있다. 정말 타인이 100% 잘못해서 무언가 발생한 경우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그 경우가 절대다수라고 하면 그건 추한 남 탓이 될 것이다. 과연 나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인가.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외부에서 우리의 쓸모를 증명받고자 한다. 우리 엄마나 아빠만 해도 자기 직업에 진심인 사람이다. 심지어 아빠는 방송에도 여러 번 나왔고 몇 박사들의 책에도 참여한 바 있다. 단순히 엄마 아빠가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런 걸 하는 건 아닐 것 같다. 대학생 때 보이는 학생회, 대외활동 뭐 이런 것들도 그 예시다.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회 활동과 여의도 중앙정치는 사실 (물리적으로만) 거리가 멀고, 대외활동과 같이 외부의 일은 끝이 다 정해져 있다. 해단식 하면 자주 못 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활동을 한다고 해서 취업문이 활짝 열리지는 않는다. 이렇게 시시하고 재미없게도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정해져 있는 결말로 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이 모든 걸 벌였고 또 넘어지며 좌절한다. 같은 행동을 두 번 세 번 반복하게 되고 비슷한 순간을 마주한다. 씨발. 왜 나는 이거밖에 안 되는 인간이지. 나의 출생만으로도 세상에게 사과할 이유가 생기는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잠수 타다 죽을 때가 되면 내 머리를 방망이로 쳐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싶다.
근데 우리 거의 대부분은 이 미련을 잊어버린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엔 다를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부정한다는 게 아니라 이제 그런 필연이 중요해지지 않아 진다는 뜻이다. 왜? 그게 행복하기 때문이다. 자주 못 보는 사람이더라도, 애초에 표현하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 산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기약하며 말이다. <중경삼림>과 <노매드 랜드>를 봤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난 항상 이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아름다웠던 순간을 다시 돌이키는 것만큼 인생에서 즐거운 건 없다. 토익 공부를 해도, 유럽에 가도, 사고 싶었던걸 사도 항상 무언갈 상상하고 있었다. 현실은 아니었다. 어떤 선택지를 골라서 내 결과 중 아무것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난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마음 한편으론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자. 영원한 건 없다. 뭔 선택지를 골라도 나는 아팠을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받을 줄 몰랐고 하는 것도 서툴렀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영원히 혼자 사는 것이다. 그럼 외롭기만 하지 사람에게 상처 받는 일은 없어 좋을 것이다.
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이 당연한 정답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건넨다. 과연 그게 맞아?라고 말이다. 아니다. 당연히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한심한 순간을 반복한다. 나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홍상수나 윤종신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우리 인생에서 이것에 공감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끝이 정해져 있는 생인데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갈 것인가. 우리는 실패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미워하는 경향이 있다. 퍼주지 말걸. 비극적인 사건에 놓인 우리를 위로하기보단 학대한다. 영화는 이런 우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 극도로 비극적인 인물 설정? 현실적이지 않은 게 맞다. 근데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것에 공감한다. 상처 투성이에 그 아무도 찾지 않는 모습이야 말로 우리의 현실이다. 사람에게 상처 받아 사과받으면 그게 다 없던 일이 되나? 또 그 사람들이 사과를 과연 몇 번이나 했나? 또, 뮤지컬을 중심으로 영화를 전개한 이유? 비비드한 색감? 우리에게 이 마츠코의 삶을 비극이라고 재단할 권리가 있을까? 그 때 만큼은 행복했을텐데. '왜 굳이 3자 주인공이 나왔는가'나 '뮤지컬+색감배치'의 이유는 우리의 인생을 대변한다. 우리는 원래 이 모양 이 꼴로 살 수밖에 없다. 근데 이런 영화와 현실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 왜? 인간의 가치는 무얼 받느냐가 아니라 무얼 주느냐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이다. 비록 비극적인 사건이 연이어 겹쳐 좌절하는 삶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극단적인 비극을 보여준다. 근데 어떻게 전개하나? 도 중요하다. 바로 주인공을 따로 설정해 그 인물로 하여금 마츠코의 일대기를 좇게 만든 것이다. 이럼 뭐가 되냐? 어느 정도 객관화가 된다. 극한의 비극적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마츠코가 어떤 인물인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너무 타인의존적인 측면도 있었던 건 맞지만 당연히 좋은 부분도 많이 볼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군가를 품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 원인이 사랑의 결핍이더라도 괜찮다. 마음의 구멍 한 구석을 인정하게 되는 것도 다 좋으니까, 무서워서 숨지는 말자. 그게 우리가 인생을 사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병의 마수에 빠져 방황하고 나서 얻은 결론도 이와 비슷하다. 어차피 결론이 똑같다면 한 번쯤 또 한 명에게 모든 사랑을 다 가져다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나 자신이 인기가 없더라도 누군가의 인생이 옳다는 증명이 된다면 그 나름대로 성공한 삶일 것이다. 난 나에게 이 말을 해준 사람의 이 문장을 이루기 위해 그 20대를 보내왔고, 한 번도 진정성이 없었던 적 없었으며 나름대로 행복했다. 그래서 난 내가 한 말에 당당하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이 혐오스럽게 느껴지더라도 한 번쯤은 필연에 부딪히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겪는 난제를 돌파하는 방식일 것이다. 영원한건 없다 하더라도 그 순간 만큼은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자. 마음이 괴롭다면 병원에라도 꼭 가자. 그것이야 말로 구멍이 난 사람에게 좋은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400% 확신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모름지기 이 영화가 말해주는 바와 같이, 인간의 가치는 무얼 받느냐가 아니라 뭘 해주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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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4주 차 개봉작,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이번 주에는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영화부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스릴러까지!!
다양한 극장 개봉작부터 OTT 공개 예정작이 기다리고 있는데요.
그럼 5월 넷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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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개봉 영화
안녕하세요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18분
감독: 차봉주
출연: 김환희, 유선, 이순재 등
개봉: 2022.05.25
배급: (주)디스테이션
줄거리
외로운 세상 속에서 죽음을 결심한 열아홉 수미(김환희).
‘죽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수간호사 서진(유선)의 제안에 따라 늘봄 호스피스 병동을 찾아간다.
이 사람들이 곧 죽을 사람들이라고?! 예상치 못한 유쾌함과 따뜻함이 수미를 반기고,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는 그들에게 점차 스며들며 세상의 온기를 배워가기 시작하는데…관전 포인트
곡성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배우 김환희부터 데뷔 67년 차 명배우 이순재까지!
믿고 보는 배우들의 만남과 인생의 가치를 조명하는 따뜻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더 노비스
ⓒ 네이버 영화
개요: 스릴러 | 미국 | 97분
감독: 로런 해더웨이
출연: 이사벨 퍼만, 에이미 포사이스 등
개봉: 2022.05.25
배급: 영화사 진진
줄거리
대학 신입생 ‘알렉스’는 교내 조정부에 가입한 후 동급생 ‘제이미’에게 경쟁심을 느낀다.
늘 최고를 갈망하는 ‘알렉스’는 팀 1군에 들기 위해 훈련을 거듭하고, 스스로를 극한으로 내몰기 시작하는데···
관전 포인트
<위플래쉬>를 비롯해 <헤이트풀8>,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등 40편이 넘는 베테랑 사운드 제작진인 로런 해더웨이의
감독 데뷔작인 <더 노비스>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또한 <오펀: 천사의 비밀>으로 국내에서 알려진 배우인 이사벨 퍼만이 출연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한국 | 90분
감독: 김희성
출연: 조동혁, 이완, 임정은 등
개봉: 2022.05.25
배급: (주)이놀미디어
줄거리
최대 청부폭력조직 '백정파'는 무자비함으로 악명 높은 해결사, 일명 '도깨비'를 앞세워 일대를 장악한다.
그러나, 베일에 싸인 ‘도깨비’ 두현은 친형제 같았던 영민의 죄를 뒤집어쓰고 10년의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한편, 두현이 사라진 사이, ‘도깨비'행세를 하며 조직을 차지한 영민은 두현의 출소 소식을 듣고 불안에 휩싸인다.
영민은 두현을 먼저 치기로 하고 새 삶을 시작하려던 두현은 결국, 진짜 ‘도깨비’의 부활을 선언하며 영민과 조직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하는데...관전 포인트
제1회 아산충무공 국제액션영화제에서 신인 감독상을 수상한 김희성 감독이 참여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강렬한 액션으로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할 것으로 예상한다.
몬스터 싱어: 매직 인 파리
개요: 애니메이션 | 프랑스 | 90분
감독: 비보 버거론
출연: 바네사 파라디, 션 레논, 아담 골드버그 등
개봉: 2022.05.26
배급: (주)다날엔터테인먼트
줄거리
1910년 대홍수로 에펠탑마저 물에 잠긴 파리는 안개 낀 도시 곳곳에서 목격된 미스터리한 괴물로 떠들썩하다.
소문의 주인공은 바로 거대 벼룩 ‘프랑코’ 아름다운 목소리와 마음씨를 가졌지만 무서운 외모 때문에 쫓기던 그는
우연히 인기 가수 ‘루실’을 만나 가면을 쓴 가수로 데뷔한다. 그들의 환상적인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지만 ‘프랑코’를 수상히 여긴경찰이 포위망을 좁혀오고 친구들은 ‘프랑코’를 지키기 위해 비밀 작전을 세우는데!
관전 포인트
세계 명작인 '오페라의 유령'을 기반으로 재탄생한 애니메이션 <몬스터 싱어: 매직 인 파리>는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의 동심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캐릭터와 중독성 강한 음악으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오마주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08분
감독: 신수원
출연: 이정은, 권해효, 탕준상 등
개봉: 2022.05.26
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줄거리
엄마 영화는 재미없다는 아들과 늘상 밥타령인 남편, 잇따른 흥행 실패로 슬럼프에 빠진 중년의 영화감독 지완.
아르바이트 삼아 60년대에 활동한 한국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 홍은원 감독의 작품 <여판사>의 필름을 복원하게 된다.
사라진 필름을 찾아 홍감독의 마지막 행적을 따라가던 지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자 쓴 여성의 그림자와 함께 그 시간 속을 여행하게 되는데...관전 포인트
이정은 배우의 첫 단독 주연작으로 기대를 모은 <오마주>는 도쿄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워싱턴한국영화제 등에
초청을 받았고, 피렌체한국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홍은원 감독에 관한 이야기이자 한국의 모든 여성 영화감독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OTT 공개 예정작
스펜서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영국 | 116분
감독: 파블로 라라인
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샐리 호킨스, 티모시 스폴 등
공개: 2022.05.25
스트리밍: 쿠팡플레이
줄거리
왕비가 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찾기로 결심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새로운 이야기
관전 포인트
이동진 평론가는 <스펜서>를 "마침내 인형의 집을 나서는, 거꾸로 쓴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평론했다.
126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와 더불어 42개 부문에서 수상할 정도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 네이버 영화
개요: 다큐멘터리 | 덴마크 | 89분
감독: 요나스 포헤르
개봉: 2022.05.27
스트리밍: 왓챠
줄거리
가장 보편적인 공간인 '집'의 의미를 물으며 시작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아민'으로 불리길 원하는 한 남성에게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준다.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장 클로드 반담에 빠져있던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해맑은 소년이 코펜하겐의 성공한 학자가 되기까지 25년의 시간 동안, 그는 무채색의 시간 속을 걸어왔다.
진정한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직면해야 했던 한 남자의 실화를 다룬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관전 포인트
선댄스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고,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 장편 국제영화상,
장편 다큐멘터리상 3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되며 기대를 모은 <나의 집은 어디인가>.
가묘한 이야기 4
ⓒ 넷플릭스
개요: SF | 미국
크리에이터: 더퍼 형제
개봉: 2022.05.27
스트리밍: 넷플릭스
줄거리
미국 인디애나주 호킨스에 사는 단짝 친구들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들을 쫓는 미스터리 스릴러.
관전 포인트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글로벌 히트작 <기묘한 이야기>가 2년만에 새로운 시리즈로 다시 찾아왔다.
폭풍 성장한 주인공들의 모습이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지만, 예고편에 등장한 마인드 플레이어의 위협적인 목소리가 공포를 유발했다.
시즌 4에서는 또 어떤 기묘한 일들이 일어날지 두려운 한 편, 기대감을 자아낸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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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보통 가족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보통이 아니다. 이 가족도, 이 영화도, 그리고 감독도. 소위 우리나라 중상류층 가족의 민낯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을 극대화한 한 <보통의 가족>은 스토리만 보면 허진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수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럴 듯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쌓인 고정관념을 벗어던지듯 감독은 보란 듯이 날 선 사회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사랑의 변화 과정을 유려하게 보여줬던 감독은 가족의 변화 과정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보통 가족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걸 하나씩 소개하는 것처럼.
잘나가는 변호사 재완(설경구)과 그의 두 번째 아내인 플로리스트 지수(수현), 자상한 대학병원 소아과 의사 재규(장동건)와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이자 NGO 활동가, 치매 걸린 시어머니의 간병까지 도맡아 하는 연경(김희애)이 저녁 식사 자리를 함께한다. 한 배에서 나왔어도 성격이 전혀 다른 형제는 물론, 자신보다 어린 형님(?)을 모시는 것 자체가 싫은 연경과 그런 동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지수 사이엔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진다. 이들은 보통의 가족처럼 겉과 속이 다른 채로 평온하게 저녁을 즐긴다. 하지만 두 부부는 자녀들의 범죄 장면이 담긴 CCTV를 뉴스에서 보게 된 이후 점점 삶의 나락을 경험한다.
<보통의 가족>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가면을 쓸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작품을 허진호 감독이 맡은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라고 답한 바 있다. 감독의 초기작을 본 이들이라면 그가 꾸준히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탐구해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초기작인 <봄날은 간다> <행복> 등만 봐도 그렇게 변하다는 사랑을 주제로 이 감정에 빠진 순간과 이후 무던해진 순간 속 인물의 다름을 확실히 보여준다. 마치 사랑의 유예기간이 끝나면 사람은 본색을 드러낸다는 것처럼, 두 영화의 인물들은 결국 후회를 할지언정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4명의 인물 또한 보통의 가면을 쓰지만, 결국 후반부 추악한 본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변호사, 의사, NGO 활동가 등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따른 가면을 쓴 인물들은 그에 따른 부와 명예, 그리고 권위를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마주한 자식들의 범죄는 이들의 삶에 위기로 작용한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고, 자식을 위해 이성을 잃는 등 겉으로는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한 듯 보이지만, 결국 이들은 자신들이 쌓아놓은 명성에 큰 타격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보통의 가족>의 원작 소설 <더 디너>는 이탈리아, 미국, 네덜란드에서 무려 세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허진호 감독은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 원작의 내용을 오롯이 가져오면서도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문제를 가져오며 차별화를 꾀한다. 학군, 학폭, 입시 경쟁, 부를 통한 사회 양극화까지 다룬 감독은 관객의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낸다. 특히 범죄 사건과 이를 무마하려는 두 부부의 모습은 자식 가진 부모라면 충분히 이해 가면서도 이들의 도덕적 해이에 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갖게 되는 등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가치관과 위치에 따라 달리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 사건은 스크린 안과 밖 사람들의 두통을 유발한다.
감독은 이 딜레마를 계속해서 관객에게 전하는데, 네 명의 인물을 바꿔가면서 ‘당신이라면 범죄를 저지른 자식들을 어떻게 하겠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마치 빈틈만 보이면 연신 잽을 날리는 것처럼, 감독이 던진 이 질문은 중반부를 지날수록 그 강도가 세지며, 결국 관객은 카운터 펀치를 맞는다.
그 동력은 아귀가 딱딱 맞는 감독의 밀도 높은 연출력에 기인한다. 장면마다 은유와 복선을 심어 놓은 감독의 치밀함은 왜 이제야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세공력이 대단하다. 초반 재벌 2세가 벌인 교통사고가 후반부 이 가족과 충격적인 결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 구조는 관객 입장에서 흥미로운 동시에 충격 그 자체다. 부감숏과 창밖에서 인물들을 보여주는 카메라 워킹을 통해 이들의 행태를 더욱 객관적으로 보려는 의도적 연출과 현악기를 활용해 부모들의 불안한 심리를 보여주는 장면 또한 인상 깊다. 간간히 블랙코미디가 짙은 유머를 집어넣으며 이들을 희화화하는 부분도 잊지 않는다. 물론, 극한 결말로 가기 위한 포석이 자칫 인위적으로 보이는 건 옥에 티지만, 영화 전체 완성도를 저해할 정도는 아니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영화처럼 빈틈이 없다. 각기 다른 이중성의 면모를 연기로 승화시키는 네 배우의 내공은 대단하다. 전반부와 후반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며 격한 감정을 토해내는 김희애, 장동건, 움찔하는 감정을 부여잡고 이성적 판단으로 이 상황을 보려는 설경구, 가장 늦게 가족에 합류해 이 가족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 관객의 눈을 대신하는 수현의 연기는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리며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특히 총 3번의 저녁 식사가 나오는데, 횟수가 거듭될수록 무너지고, 야비하고, 자기합리화에 이견 다툼을 벌이는 모습은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하며 인물들의 추악한 민낯도 비춘다.
<보통의 가족>이 그리려는 건 가면 속 가려진 인간의 본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살다 결국 부와 명예를 가진 기성세대가 자신이 이룬 것들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부조리함 또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 중 하나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부모라면 자식들에게 어떤 걸 전해야 할까? 일단 네 인물처럼만 안 하면 될 것 같다.사진제공: 하이브미디어코프
평점: 3.5 /5.0
한줄평: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한국 가족 군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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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길거리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H
카를로스 파르도 로스|Carlos PARDO ROS
Spain|2022|68min|DCP|Color|Fiction|12|Asian Premiere
시놉시스
1969년 7월 12일, 산 페르민 축제의 황소 몰이 행사 도중 H는 황소에게 심장을 찔려 죽는다. 오늘, H의 유령들은 죽음을 앞둔 육신에서 벗어나려 애쓰며 바로 그 거리에서 웃고, 마시고, 춤을 춘다.
프로그램 노트
“이 영화는 머리가 아닌 뱃속에서 경험해야 합니다.” 카를로스 파르도 로스 감독이 영화를 소개하며 언급한 말이다. 영화는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개최되는 산 페르민 축제를 배경으로 감독의 삼촌인 H가 황소 돌진으로 사망한 사건을 조사하는 내용이다. 가족 구성원이 사건을 추적하는 전형적인 다큐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전혀 다른 상황을 배치해 감독의 소개말이 사실로 증명됨을 보여준다. H는 기억의 공백을 채우는 영화이자,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교차하며 서로의 공간을 완성하는 미스터리에 대한 탐구이다. 다양한 스토리텔링과 영화의 형식이 쌓여 마침내 우리는 하나의 삶과 밤의 끝으로 향하는 진정한 탐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문성경)
우주 속을 부유하듯, 길거리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듯
H는 황소 몰이 행사 중 갑자기 돌진한 황소에게 심장을 찔려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H의 영혼을 찾아 축제의 현장으로, 취한 사람들이 잔뜩 있는 길거리로 나선다. 이 영화는 단순히 줄거리를 보고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삼촌의 죽음에 대해 파헤치는 작품이 아니다.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우리는 주인공을 따라 우주 속을 부유하듯 조금은 붕 뜬 느낌으로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술 취한 사람들이 잔뜩 있는 축제 현장의 길거리를 정처 없이 돌아다닌다. 단순히 축제 속의 사람들을 지켜 보는 것을 넘어서서 관객인 '내'가 이 축제의 현장에 있는 느낌을 준다. 시각적인 것을 넘어서 체험적인 작품이다. 영화제에서 먼저 접할 수 있는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영화이다.
시놉시스에서는 H의 유령들이 죽음을 앞둔 육신에서 벗어나려 애쓰며 축제의 광란의 현장에서 웃고, 마시고, 춤을 춘다며 이 작품을 소개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폭력적이다. 왜냐면, 그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의 몸을 벗어나기 위한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H> 상영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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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박찬욱이하고는 못 헤어지겠다!
영화제에서의 수상 소식은 관객들에게 해당 영화의 관심을 모으는 것도 있지만, 영화를 보는 데에 있어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준다. 앞서 개봉한 <브로커>가 "남우주연상"이었다면, 이번 <헤어질 결심>은 "감독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집중할 것은 정해졌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남편의 자살 사건으로 과부가 된 젊은 중국 여자 "서래"와 이를 조사하는 형사 "해준"이 만나며,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작품이다.
특히, 이번 <헤어질 결심> "15세 이용가"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2006> 이후 16년 만이다! (물론, 앞선 게시물에서도 말했지만 국내 영화의 15세는 그래도 나온다!)그도 그럴 것이 그가 연출해온 이력에 쓰여있는 단 하나의 작품만을 봤어도 알겠지만, 대다수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렇기에 이번 영화는 대충 친화적으로 보이겠으나... 아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가 자연스레 떠오를 정도로 옛 흑백 영화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요즘 스타일이 아니다! - 먼저, 개봉한 <브로커>의 1,232,709명(06.29 기준)은 책정된 손익 분기점 150만명에 모자라다. 결론은 '흥행과 예술성은 별개다.'라는 것인데, 영화 <헤어질 결심>라고 다를까?1. 내 눈을 바라봐?
영화를 보는 데에 스크린은 해당 작품의 눈이다.
관객 본인의 시점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 해당 작품 내의 등장인물들의 눈일수도 있고, 이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감독(창작자)의 의도된 견해일 수도 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가장 중요한 감각은 "시각(눈)"이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신생아는 눈을 꼭 감은 채 태어난다. - 이는 완전한 시력이 아닌 것도 있지만, 빛에 눈을 보호하려는 목적이다. (물론, 뜬다고 해도 세세한 형체는 못 본다)
그래서, 아이들은 "모유"의 맛과 향으로 엄마를 구분하는데 그렇게 본 엄마는 내 엄마가 맞을까?지면의 수증기가 올라와 "가시거리"를 감소시켜 사람들의 시야에 방해되는 "안개", 역시 중요한 소재이다. (해당 영화에서는 음악으로까지 들려준다) 이처럼 본 작품은 '보고 있는 게 맞아?'를 의심하게 만드는데, 극 중. "서래"와 "해준"의 만남에 있는 색깔에서도 이를 넌지시 말한다. 흔히, 빨간색은 정열적인 사랑을 뜻하지만 위험을 의미한다. 그와 달리, 초록색은 안전을 의미하면서 식어버린 사랑 (흐르지 않아 썩어버린 피)을 의미하는데, 둘의 만남에서 계속해 교차되는 이 색깔은 누구의 감정을 말하는 걸까?
2.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죠?
앞서 말한 "안개"는 "가시거리"를 감소시켜 사람들의 시야에 방해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거리가 짧아져 보이는 것이 없다는 말인데, 사람들 간의 거리는 친함 혹은 사랑을 판단하는 객관적인 지표이다. <헤어질 결심>에서 극 중. "해준"이 망원경으로 "서래"를 보거나 "서래"의 음성을 녹음해 그 뜻을 해석해 상황을 정리한다. 근데, 재밌는 건 이 모든 것들을 "해준" 혼자서만 했다는 것이다.특히, "서래"의 음성을 녹음해 "해준"이 해석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텍스트'에는 뜻이 있지만, 이를 말하는 문장의 구성과 발음에 따라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 '배'라는 하나의 단어에도 신체, 과일, 이동 수단 등으로 여러 뜻이 존재하듯이 말이다. "서래"가 말했지만 이를 읽는 "해준"은 자신이 그 상황을 상상하며 정리한다.
분명히, "서래"의 입장도 있지만 이를 배제한 채 자신의 주관으로 채워 넣으며 스스로 "내적 친밀감"을 만든다.
그렇게,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3. 사랑에 매달리는 순간, 승부는 결정된다.
근데, 이는 "해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극 중. 한국말이 서툰 중국 여성이라는 설정의 "서래"는 한국어는 단순한 어휘만을 구사하고 속담과 격언 같은 어려운 표현들은 중국 말로 말한다. 그러면서, 웃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는데 왜 그러는 걸까? 말하는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은 다했으니 속 시원하겠지만, 듣는 사람은 '이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라는 정리가 남았다. 관계란, 평등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로 정리하는 감독의 정리는 사랑의 잔인함을 토로한다.물론, 여기까지 감독의 역량과 실력만을 말했지만 이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배우들의 활약도 넘어갈 수 없다. "해준"역의 '박해일'분의 연기도 충분히, 인상적이나 "서래"역의 '탕웨이'분은 '왜, 연기 부문에 언급이 되지 않았을까?'가 의문이 생길 정도로 '미스터리의 여인'을 제대로 수행해 주었다. - 어찌 보면,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이 더 먼저 나간 이유에 합당한 답변일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박배우님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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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메이커,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을 아는 남자와 대통령이 되고 싶은 남자가 만났다!
영화 킹메이커가 지난 주 개봉했습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선거 전략가로 불렸던 엄창록 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재구성된 영화인데요.
영화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아주 좋습니다.
영화 속 두 인물의 우정과 관계도 눈에 들어오는데요.
대선이 다가오는 요즘 이 영화를 본다면, 정치란 무엇이고 또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지 생각해보는 영화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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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특종의 탄생> 공식 예고편
한 시간 만에 모든 걸 바꿔놓은 TV 방송. 그 인터뷰는 어떻게 성사될 수 있었을까?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에게 불명예를 안겨준 뉴스나이트 인터뷰가 영화로 새롭게 탄생했다. 질리언 앤더슨, 킬리 호스, 빌리 파이퍼, 루퍼스 슈얼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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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애프터 : 관계의 함정> 메인 예고편
첫사랑, 첫키스, 첫경험, 설렘 가득했던 처음을 뒤로 하고
꿈을 위해 잠시 서로를 떠나게 된 하딘과 테사.
각자 영국 런던과 미국 시애틀에서 롱디 연애를 앞둔 두 사람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콤한 사랑을 속삭인다.
하지만 연애와 꿈의 갈림길에 선 둘은 서로에게 감춘 '누군가'의 존재와
예상치 못한 비밀까지 알게 되면서 사랑의 클라이맥스에 치닫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