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3-05-23 07:42:44
화려한 동시에 더럽고 추잡한 그 시대 영화판, 그럼에도 영화를 사랑한다고 외치고 울부짖는 (사랑보단 토로에 가까운) 고백
영화 <바빌론> 리뷰
위플래쉬, 라라랜드로 주목받은 감독 데이미언 셔젤의 최신작.
1920년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기에 있는 영화계 인물들을 담는 이야기로, 말 그대로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판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면 뿐만 아니라, 더럽고 추잡한 똥과 오줌, 구토, 섹스가 난무하는 어두운 이면도 적나라하게 담아낸다.
그렇기에 영화에 대한 고백은 맞지만, 사랑의 의미라기 보다 진실 토로의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정도 담겨있다.
영화가 어떻게 변하든, 영화 속 배우들과 제작자들이 떠나가든, 영화는 불멸하며 그러므로 영화에 관계된 모두는 불멸하며, 그에 대한 사랑도 불멸하다고 3시간 내내 강렬하게 호소하고 울부짖는 영화라 말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 죽는 것" 이라는 원피스에서의 한 대사처럼, 영화 예술 또한 창작자들이 죽어도 그들의 예술은 불멸하기에 그들 또한 불멸한 것이다.
마지막 시퀀스는 영화의 정의와 본질을 아우르는 황홀한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라면 놓치면 안될 영화이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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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서니, 영화는 시(poetry)이자 모호함(ambiguity)이다." 저는 항상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브레이킹 아이스> 안소니 첸 감독 인터뷰 (2)
1편에서 이어집니다.
씨네랩 | 특히, 전작 <일로 일로>는 감독님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들었는데요. 감독님의 작품들은 언제나 사적인 감정에서 출발하지만,그 안에 보편성이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브레이킹 아이스> 역시 본인의 청춘과 닮아 있는 지점이 있을까요? 더불어, 개인적인 기억을 영화로 확장시킬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소니 첸 | 솔직히 말해서 <브레이킹 아이스>가 제 청춘을 많이 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이 시대의 청년들을 담아내려고 했고, 그 세대가 제 세대와는 정말 많이 다르다고 느꼈거든요. 저는 80년대에 태어났지만, 90년대나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와는 정말 다르다고 생각해요. 70~80년대 세대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세대였어요. 그냥 계속해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세대였죠. 그래서 저는 요즘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행하는 '탕핑(躺平, 누워서 산다)' 현상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궁금했어요. 왜 사람들이 일을 멈추고, 꿈을 멈추고,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걸까? 제 세대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가고 또 나아갔으니까요.
제가 기억하기론, 정신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도 사실 불과 10년 정도밖에 안 되었어요. 예전에는, 예를 들어 상사에게 혼이 나더라도 그냥 참아내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나갔거든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내 정신 건강을 챙겨야 해요”라고 말하는 걸 자주 듣게 돼요. 실제로 포스트 프로덕션 회사에서 회의 중에 어떤 젊은 친구가 갑자기 회의실을 나가더니 우는 걸 보기도 했죠.
이런 차이를 이해해 보려 노력하기도 했고, 특히 영화를 팬데믹 기간 중에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심리에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팬데믹 동안 저도 꽤 우울했거든요. 그 불안감, 우울감, 그리고 환멸감을 저 또한 강하게 느꼈어요. 그래서 이 세대의 청년들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사실 제 청춘은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저는 2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학생일 때 결혼했거든요. 그래서 어떤 모험을 즐긴다거나 삶을 허비하는 식의 시간을 거의 보내지 못했죠. 그래서 이 영화는 저에게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다시 젊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또 작품에는 두 개의 내러티브가 있잖아요. 하나는 카메라 앞에서 배우들이 재미있게 연기하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카메라 뒤에서 저와 배우들이 매일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시간이죠. 마치 제가 이 젊은 세대의 일부가 된 것 같았어요. 팬데믹 동안 우울했던 제가 다시 젊음을 되찾은 것 같은…
씨네랩 | 특히, 영화 속 세 인물의 청춘은 모두 다르게 그려지고 있는데요. (꿈에 좌절한 청춘(나나), 타인의 기대에 맞춰 버겁게 달리다 탈이 난 청춘(하이펑), 주어진 삶만 살아내다 의미를 잃은 인물(샤오)를 통해 ‘청춘의 불안’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났던 것 같은데, 세 인물 중 가장 공감가는 인물과, 그리기 가장 어려웠던 인물은 누구였는지 궁금합니다.
안소니 첸 | 저는 '하오펑'을 담아내는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정신 질환을 다루는 게 정말 어렵다고 늘 생각했거든요. 우울증이나 정신 질환을 영화에 담아내는 건 어려운 작업이니까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촬영하면서 점점 더 그(하오펑)와 연결되어 갔어요. 우울과 그의 싸움이 제 싸움처럼 느껴졌거든요. 팬데믹 기간에 제가 느끼던 바로 그 감정들과 씨름하고 있었던 거죠.
아시다시피, 저는 정말 그와는 접점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떤 지점에서 그와 연결된 거죠. 사실 저는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라서, 삶이 저를 절대 쓰러뜨릴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거야, 계속 갈 거야'라는 식으로요. 그런데 그를 촬영하면서, 이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들에 깊이 공감하게 됐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저는 그게 팬데믹 기간 동안 저 자신, 즉 영화감독으로서 겪었던 위기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게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야만 했어요. 영화관이 문을 닫았을 때, 정말 너무 막막했거든요. 언제 다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싶어서 너무 혼란스러웠죠. 아시다시피 저는 잔잔하고 절제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에요. 장르 영화나 공포 영화, 대작 같은 걸 만드는 감독이 아니거든요. 흥행 위주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아니고요. 저는 정말 조용하고 섬세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별다른 사건이 없는 작고 조용한 영화를 보러 극장을 다시 찾게 될 때, 과연 제가 영화감독으로서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약간의 위기나 우울증 같은 것에 빠졌던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새로운 출구를 찾는 거잖아요. 이 영화가 저에게는 새로운 출구였습니다.
이 영화는 제가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저 자신에게 말했어요. 제 첫 두 편의 영화는 싱가포르에서 만들었는데, 이제 제가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고향으로 돌아가, 저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을 거라고 저 스스로 다짐했거든요. 그래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땅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기후에서 영화를 만들도록 스스로 다그쳤습니다. 같이 일해본 적 없는 새로운 스태프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고요. 익숙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보통은 늘 같은 조감독이나 같은 배우들 한두 명이 있었고, 편안함을 주는 익숙한 사람들이 있기 있었죠. 하지만 이번엔, 그냥 저 자신을 그 밖으로 끌어냈고,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은 영화를 만들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고요.
씨네랩 | 저희는 특히, 단군신화가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웠는데요. 영화가 “불안한 청춘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인 만큼, 100일의 인고 끝에 갈망하던 사람이 된 곰의 서사가 청춘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타국의 신화의 어떤 지점이 흥미로웠는지, 극으로 발전시키는데 고민은 없으셨는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안소니 첸 | 음, 중국엔 ‘장백산’이 있고, 아시다시피 한국에는 ‘백두산’이 있잖아요. 산을 처음 본 순간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어요. 저와 제 프로듀서가 함께 그 산을 올랐던 기억이 나는데, ‘천지’라고 불리는 호수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더라고요. 정말 감동적이고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이걸 꼭 영상으로 담고 싶었고, 이곳을 배경으로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산에 대해 조사를 많이 해봤는데, ‘곰’에 관한 이 전설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리고 유명한 한국 노래 ‘아리랑’과도 연결되어 있고요. 그 신화에 대해 더 자세히 읽어봤을 때, 사실 예전에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모든 세부 사항은 알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곰이 인내하고 견뎌내서 결국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했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동했어요. 정말 시적이고 감동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걸 현실로 가져오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본을 쓸 때, ‘우리는 그냥 전설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직접 곰을 보여줄 거야’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고요. 저는 ‘나나’라는 인물의 캐릭터와 이 ‘곰’ 사이에 어떤 유사점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나나가 자신의 실패를 마주해야 하는데, 그 서사에서 위안을 얻거든요. 저는 그 경험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감동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네, 저는 그 신화가 지닌 문화적, 정치적 의미나 부담 같은 건 크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게는 그 신화 자체, 그 전설 자체가 개인적으로 너무나 감동적이었거든요. 그리고 그 ‘곰’을 영화 속에 데려오는 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씨네랩 | 그리고 영화에 아리랑이 등장하죠. 아리랑을 듣는 세 청춘의 모습을 보면서, ‘승화’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승화’는 에너지를 전환하는 개념인 만큼, 물리적, 심리적인 측면에서 모두 활용되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감독님이 영화를 비유할 때 사용하신 얼음이 가지는 물리적인 성질과 세 인물들이 여러 경험을 통해 얻는 심리적인 변화가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을 담고 있는 아리랑이 정말 알맞은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감독님께서는 ‘한’과 ‘아리랑’을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어떤 의미로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안소니 첸 | 네, 백두산에 관한 글을 읽어보다가, 그 민요(아리랑)가 백두산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리랑은 여러 버전이 있잖아요. 그런데 아주 초기 버전에 ‘가장 추운 겨울에도 백두산에는 꽃이 피어난다’는 구절이 있었어요. 그 구절이 너무 감동적이었고, 영화에 꼭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캐스팅팀에게 이 곡에 맞는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죠. 그들이 그 가수를 찾아주었고, 그녀를 캐스팅하고 녹음을 진행했어요. 저는 노래가 위로가 되면서도 동시에 좀 애절하고, 씁쓸한 느낌이 들게 불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복합적인 방식으로 당신을 감동시키는 목소리를 찾는 게 중요했습니다.
제가 항상 믿어왔던 것이기도 하고, 영화 학교 시절, 파벨 파블리코프스키라는 정말 훌륭한 폴란드 감독님께 배웠죠. 그는 영화 <이다>로 오스카를 받았고, 칸에서도 상영된 <콜드 워>라는 영화를 만들었죠. 그분이 영화 학교에서 저에게 늘 말씀하셨어요. "앤서니, 영화는 시(poetry)이자 모호함(ambiguity)이다." 저는 항상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질 때 영화는 정점에 도달할 수 있죠. 제가 하려고 했던 것도 바로 그거였습니다. 저는 항상 시와 모호함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그 모호함은 '이건가? 아니면 저건가?' 같은 질문에서 오는 거죠. 흑백처럼 명확하지 않다는 거예요. 영화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회색 지대'에 있을 때 나타나죠. 뭔가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완벽히 이해하거나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지대요.
그게 파벨 감독님이 학교에서 저에게 가르쳐주신 거고, 아, 사실 저는 최종 편집본을 확정하기 전에 항상 감독님께, “감독님, 바쁘신 거 알지만, 편집을 마쳤어요. 2일 안에 봐주실 수 있나요? 제가 최종 편집본을 확정해야 해서요.”라고 말하며 편집본을 보내드려요. 그리고 감독님은 항상 저를 위해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씨네랩 | 감독님께서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셨는데, 이 부분이 이후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을까요? 질문 드린 이유는, 감독님께서는 작품 간 텀이 긴 편인데, 작품 구상이나 시나리오 작업 등을 긴 호흡으로 작업하는 걸 선호하시는 걸까요?
(*안소니 첸 감독은 2013년 영화 <일로 일로>를 통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을 수상했다.)
안소니 첸 | 예전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하곤 했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정말 특별한데, 어느 순간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충동이 확 일어났거든요. 팬데믹 동안 2년 내내 집에만 앉아 있는 게 너무 지겹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영화감독으로 존재해야 해. 내가 아직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느껴야 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죠.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중국에 있는 제 프로듀서 파트너에게 연락해서 "영화 만들 겁니다!" 했더니, 그가 "무슨 영화요? 대본 있어요?" 묻더라고요. "아니요" 했죠.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정말 미친 일이었어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있었고, 한겨울인 12월에 촬영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8월이었습니다! 12월 1일에 촬영을 시작했는데, 아이디어는 8월에 떠올렸고, 10월 4일에 중국으로 날아갔어요. 그리고 21일 동안 격리까지 해야 했죠. 그 이후에 백두산을 직접 오르고, 연길의 모든 장소를 답사했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을 제가 직접 전화로 캐스팅했어요. 중국에서 정말유명한 배우들이라 보통은 굉장히 바쁘거든요. 그런데 팬데믹 기간 중에는 사람들이 비교적 한가하다는 걸 알게 됐죠. 일이 줄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말 그대로 전화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12월에 시간 되세요?" 했더니 그들이 "네" 하더라고요. 아마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 답사까지 마친 다음에도 완전한 대본이 없었어요. 조금 더 확장된 스토리와 트리트먼트 정도만 있었죠. 그리고 상하이로 돌아갔는데, 배우들이 다 저를 만나러 날아왔던 게 기억나요. 다 같이 점심을 먹었습니다. 세 명 모두요. 중국에는 개별 룸이 많은데, 거대한 원형 테이블에 주동우 배우를 비롯해서 세 배우가 앉아 있었죠. 그들 뒤편에는 매니저들이 있었고요. 점심을 먹는데 그들이 묻더라고요. "그래서 대본은 있나요?" 그때는 이미 10월 말이었죠.
아직 대본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하자, '아, 그럼 스토리가 뭐예요?' 이런 분위기였죠. 그래서 제가 스토리를 들려주기 시작했어요. '피겨 스케이터가 있는데, 투어 가이드로 일하고... 그리고 누구랑 같이 산에 올라가는데, 그러고 나면 이런 일이 벌어지고, 곰을 만나고... 그리고 아주 감동적인 순간이 있고...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이런 식으로 장면들을 묘사해줬어요. 어떤 장면은 대본이고, 어떤 장면은 그냥 제 머릿속에 있는 거였죠.
그리고 마지막에 그들이 저를 보더니 '와, 정말 시적이고 감동적으로 들리네요. 그런데 대본이 없잖아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직도 기억나는데, 그들에게 물었죠. "그래도 이 영화 하실 거예요?" 그랬더니 다들 "네" 하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매니저들은 다들 "아아아아..." 이런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완전히 망할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했던 거죠. 이렇게 모든 사람들을 설득한 거죠.
결국, 촬영 10일 전까지 아무도 대본을 읽지 못했어요. 제가 촬영 10일 전에 최종 대본을 완성했거든요. 그때 연길에 있었는데, 12월 1일에 촬영을 시작했으니 11월 한 달 내내 연길에 있었던 거죠.정말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11월 20일 오전 9시에 대본을 끝냈습니다. 잠을 안 잤죠.
낮에는 장소 답사를 하고 회의를 하면서, 대본을 쓰고 쓰고 또 썼죠. 그 사이에 배우들이 베이징에서 연길로 출발했고, 매니저들이 '지금 출발하는데, 대본을 볼 수 있을까요?' 묻는 겁니다. 프로듀서는 '아, 아직 대본이 준비가 안 됐어요. 10시에 드릴게요'라고말했고, 배우들이 탄 비행기가 오후 3시에 도착했죠. 마침내 제 대본이 완성되었을 때, 팀 전체가 복사하느라 바빴습니다. 아무도 대본을 읽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복사하고 복사하고 또 복사하고... 그리고 저녁 7시가 됐죠.
호텔 방에 배우들, 촬영 감독, 프로듀서, 각 부서 팀장들, 미술 감독까지 다 같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대본을 처음으로 읽었죠. 특히 배우들이 대본을 읽고, 또 읽고, 많이 읽더라고요. 많이 다른 캐릭터들이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촬영 감독님이 "와, 이거 정말 감동적이고 아름답네요"라 말했고, 저는 "좋아요, 그럼 이제 촬영합시다!" 외쳤습니다. 네, 촬영 시작 10일 전에 대본이 완성되었던 거였죠.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에필로그)
인터뷰를 진행하며 안소니 첸 감독님의 MBTI도 살짝 엿볼 수 있었는데요. 확신의 E(외향형)일 것 같았지만, 역시나 E(외향형)이었던 감독님. 관련한 일화도 들어봤습니다.
안소니 첸 | (MBTI 아시나요?) 네, E랑 I 같은 거요. 압니다. 제가 고등학교 16살 때 MBTI 테스트를 해봤어요. 기억은 나는데, 제가 완전 외향형(E)이라는 건 확실히 기억나거든요. 나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외향형인 건 분명해요.
제가 만든 영화 중에 가장 미친 영화였어요. 상하이 격리 호텔에서 대본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첫 주가 지난 후에, 어느 시점에 싱가포르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어요. "나 정말 큰일에 휘말린 것 같아. 이 배우들을 다 영화에 참여하게 했는데, 대본이 안 나오고, 완성된 대본을 만드는 게 너무 힘들어." 그냥 '프로젝트 취소한다고 하고, 코로나에 걸렸다고 말해버릴까?' 싶었죠. 코로나 걸렸다고 하는 게 최고 변명이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기억나는 게, 친구들이 제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야, 네가 이 미친 영화를 만들겠다고 도전을 시작했으니, 그냥 끝내야지."라고요. 그래서 그냥 밀어붙였습니다.
정말 미친 모험이었죠. 제 인생에서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든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아마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아요. 매일 심장마비 올 것 같았거든요. 아시다시피, 너무 불확실하니까요. 보통은 대본 하나 쓰는 데 2년 정도 걸리거든요?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정말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나의 아파트를 찾고 있었는데, 그래서 여러 부동산 중개인들과 약속을 잡고 다른 아파트들을 보러 다녔던 게 기억나요. 중간중간에 시간이 빌 때, 공원을 하나 봤어요. 공원에 들어가서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자고 했죠. 그런데 사람 대신 동물들을 발견했어요. 원숭이랑 사슴 같은 게 있더라고요. '이게 뭐지?'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들이 이곳에 들어가는 장면을 썼습니다. 거기는 동물원이 아니에요. 실제로는 공원인데,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공공 공원이에요. 도심 한가운데 있는 센트럴 파크 같은 곳이라고 상상해보세요. 동물들이 정말 많았죠. 그래서 밤에 그곳을 배경으로 하기로 결정했어요. 정말 비현실적이었고, 제가 본 모든 것이 영화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이렇게 즉흥적이었던 적은 없었어요.
좀 미친 짓이었죠. 하지만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살면서 한 번쯤 미쳐보고 싶다면, 아직 젊을 때 지금 해야 해." 왜냐하면 제가 40대, 50대가 되면서는 이런 종류의 위험을 감수할지 모르겠거든요. 위험을 덜 감수하게 되고, 훨씬 안전하게 가려고 할 테니까요. 그렇죠? 그래서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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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으로 예술을 살아낸 여성들
여성들이 만든 무대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는 그 질문에 대한 섬세한 대답이자, 여성의 자리와 욕망, 그 안의 모순을 함께 비추는 다층적인 기록이다.
여성국극은 여성들만으로 꾸려진 무대로, 출연 배우는 물론, 제작사도, 팬덤도 모두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무대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자리인지 영화는 고요하지만 선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그 무대가 단순한 대체재가 아니라,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스스로 만들어낸 자기완성적인 문화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 무대조차 완벽히 자유롭지는 않다. 남성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절대적인 존재감이나, 여성 역할을 맡은 배우는 더 ‘여자다워야’ 한다는 암묵적 기준은 여성국극 안에서도 바래지 않고 작동하는 어떤 규범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가치 있는 이유는, 이 장르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에게 열정과 꿈, 소속감을 안겨주었는지를 따뜻하게 기억해낸다는 데 있다. 여성국극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 이 모순적 문장이야말로 여성들이 만들어온 문화의 본질이 아닐까. 영화는 그 시간을 고요히 복원하고, 사라진 무대 위의 목소리들을 다시 우리 앞에 데려온다.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를 보며 조용히 바랐다. 자신의 자리를 구하는 여성들에게 마땅히 그 장이 주어지기를.
※ 본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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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픽 어워즈 '2022년 올해의 영화' 6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씨네픽 인스타그램을 통해 씨네픽 팔로워분들의 올해의 영화는 무엇인지 설문을 받아봤는데요!
과연 씨네픽 팔로워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는 무엇일지?!!
지금 한번 만나러 가보시죠!
헤어질 결심
ⓒ 네이버 영화
응답자 중 반 이상의 선택한 올해의 영화는 바로 <헤어질 결심>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세밀한 연출과 매혹적인 배우 앙상블로 호평을 받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볼 때마다 달라지는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보니 N차 관람
열풍이 돌기도 하였다. 뉴욕타임즈, BBC, 포브스 등 주요 외신에서 2022년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며 전 세계를 매혹시킨 마스터피스 다운 저력을 입증했다.
▶ 줄거리: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리멤버
ⓒ 네이버 영화
두 번째 씨네픽 팔로워 선정 '올해의 영화'는 이성민 배우와 남주혁 배우 주연의 영화 <리멤버>
입니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자비 없는 복수 이야기를 탄탄하게 그려내고 이성민 배우와 남주혁
배우의 세대 초월 절친 케미로 호평을 받았다. 개봉 첫날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였고,
상영 당시 관객들의 입소문이 꾸준히 이어졌다.
▶ 줄거리: 가족을 모두 죽게 만든 친일파를 찾아 60년간 계획한 복수를 감행하는 알츠하이머
환자 필주와 의도치 않게 그의 복수에 휘말리게 된 20대 절친 인규의 이야기
수프와 이데올로기
ⓒ 네이버 영화
세 번째 씨네픽 팔로워 선정 '올해의 영화'는 양영희 감독의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입니다.
영화는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과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고, 박찬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 영화계 인사들로부터 열띤 지지를 받으며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다큐멘터리로
떠올랐다. 10월 20일 개봉 이후 끊이지 않는 호평과 입소문으로 장기 상영을 이어가기도 하였다.
▶ 줄거리: 서로의 생각은 다르지만 따뜻한 수프를 나눠 먹게 된 한 가족의 어머니가 평생 숨겨온
비밀을 알게 되며 점점 서로를 마주하는 이야기
썸머 필름을 타고
ⓒ 네이버 영화
네 번째 씨네픽 팔로워 선정 '올해의 영화'는 청춘, 로맨스, 시대극, SF 장르가 어우러진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입니다. 영화는 2022년 재팬 필름 페스티벌 온라인 상영을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알려졌고, 이후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를 장악하며 정식 개봉 요청이 쏟아졌다.
정식 개봉 후, 영화는 폭발적인 입소문을 바탕으로 최고의 좌석 판매율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 줄거리: 시대극 찐팬인 고교생 ‘맨발’이 절친인 ‘킥보드’, ‘블루 하와이’ 그리고 미래에서 온
의문의 소년 ‘린타로’와 함께 영화를 찍으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화이트 노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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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씨네픽 팔로워 선정 '올해의 영화'는 블랙 코미디 장르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화이트 노이즈>입니다. <결혼 이야기> 이후 노아 바움백 감독과 아담 드라이버가 다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영화는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으며, 올해 부산국제
영화제에서도 상영되며 공개 전부터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 줄거리: 불확실한 세상에서 사랑과 죽음, 행복의 가능성이라는 인류 보편의 수수께끼와
씨름하는 동시에 일상적인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려 애쓰는 오늘날 미국 가정의 모습을 담은
블랙 코미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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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씨네픽 팔로워 선정 '올해의 영화'는 마블 루소 형제가 제작하고, 다니엘스 듀오가
연출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입니다. 영화는 해외에서 개봉 당시 10개 관에서
시작해 3,000개 이상 확대하였고, 1억 달러 수익을 올리는 등 글로벌 흥행을 이끌었다. 이에 이어
국내에서도 N차 관람이 이어졌으며, 개봉 4주차에도 좌석 판매율 2위를 유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 줄거리: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양자경 분)’이 어느 날 자신이 멀티버스를 통해
세상을 구원할 주인공임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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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명적 세계에서 몸부림치는 실존, <파닥파닥>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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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부터 이어집니다.)
그 고등어가 재수 없는 이유
<장면 5>
“빨리 우리들처럼 죽은 척 해. 이렇게 해야 살 수 있어요.”
수조 속 물고기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가장하는 것이다. 살아있을수록, 더 싱싱할수록 죽음에 가까워지는 그들이 선택한 방식은 ‘죽은 척하기.’ 그들은 배를 까뒤집고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겨우겨우 삶을 부지한다. <장면 5>, 고등어의 1인칭 시점 카메라로 본 수조 속 물고기들의 생존법은 기괴하다. 고등어가 노래한 OST ‘악몽’의 가사 일부는 아래와 같다.
“그들이 나를 데려간 그곳엔
많은 이들이 죽어있었어, 아니 살아있었어.”
그들은 살아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철학자 야스퍼스로 바라본 벗어날 수 없는 수조 안, 그리고 곧이어 들이닥칠 죽음의 예고는 수조 안 생선들이 맞닥뜨린 한계상황이다. 죽음의 순간을 잠시 미루는 것에 불과한 ‘죽은 척하기’ 생존법으로는 그들을 둘러싼 한계상황을 근본적으로 타파할 수 없다. 이 한계상황에서의 대처방식을 두고 고등어와 다른 수조 속 물고기들은 사사건건 부딪힌다. 야스퍼스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수조 속 물고기들과 고등어가 추구하려는 삶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당장의 배고픔과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는 데 급급한 수조 속 물고기들. 이들의 생존법은 오히려 죽음을 안일하게 망각하는 회피적인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의 상황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안주하는, 비(非)본래적인 삶에 그쳐 있는 것이다.
“살아남으면, 그 다음은요?”
이들에게는 다음이 없다. 잠깐 죽음을 피해봤자 그뿐. 그들은 여전히 수조라는 절망적인 한계상황에 머물러 있다.
반면 수조를 벗어나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무작정 몸을 불사르는 고등어, 고등어에게 바다가 아닌 수조 속에서의 삶은 다른 의미로 진정한 삶이 아니다. 그에게 유리벽에 가로막혀 바다를 포기하고 죽은 척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 ‘파닥파닥’에서 고등어가 그토록 염원하는 바다는 자유이자, 본래적 삶이자, 존재의 의미를 찾아내려는 실존 그 자체를 상징한다. 고등어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실존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이러한 삶의 본래적인 가치를 수조 속 물고기들에게도 계몽시키고자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계몽이라는 작업은 마음만큼 쉽지 않다. 당장 눈앞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우선인 물고기들에게 고등어는 언제나 붕 뜬소리만 해대는 눈엣가시다. 자꾸만 이룰 수 없는 목표에 몰두하고 도전하려는 고등어의 모습이 다른 물고기들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비본래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에만 매몰된 그들에게, 고등어가 본래적 삶의 가치를 계몽하려는 시도는 안주하고 있던 기존의 삶에서 벗어나라고 채찍질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장면 6>
그러나 이토록 바다를 갈망하던 고등어의 희망찬 탈출은 좌절되고 말았다. 말끔히 손질되어 접시에 오른 고등어. <장면 6>의 카메라 앵글은 인간의 시점에서 여러 밑반찬과 함께 식탁에 오른 고등어를 내려다보며 그가 더 이상 실존을 외치던 존재 ‘고등어’가 아닌, 그저 ‘고등어 회’라는 섭취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비극의 정서를 심화시킨다. OST ‘용서해요’ 뮤지컬 시퀀스 직후, 음악 없이 식탁에 접시를 올리는 ‘달그락’ 효과음으로 시작되는 <장면 6>은 직전의 시퀀스에서 고등어와 올드넙치가 죽음의 순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장면과 대조적으로 매정한 현실의 상황을 부각시킨다. 인간의 기호와 즉흥적인 선택으로 뒤바뀐 올드넙치와 고등어의 생사의 갈림길. 장난삼아 그 입에 담배를 물리는 남자는 눈앞의 생선이 얼마나 자유를 부르짖으며 몸부림치다 죽어버렸는지 알 턱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강압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고등어의 죽음은 진정한 삶을 향한 실존의 추구가 종종 극복할 수 없는 숙명과 권력 아래 무참히 짓밟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래도 몸부림쳐야 삶이지
영화 ‘파닥파닥’은 횟집 수조 속 생선이라는 독특한 화자의 시선을 빌려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삶의 불평등, 그리고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을 조명하고 있다. 여기서 바다를 갈망하던 고등어의 죽음을 통해 영화 ‘파닥파닥’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제 포기하고, 저항하지 말고, 늘 그랬듯 수조 속에서의 삶에 안주하라는 회유일까?
<장면 7> <장면 8>
여기서 영화의 마지막, 올드넙치의 탈출이 가지는 상징성에 주목해야 한다. 올드넙치의 탈출에서 ‘모형 칼’은 중요한 모티프다. <장면 7>에서 인간 병사 장식품의 손에 들려 있던 모형 칼은 저항하는 고등어를 찌르며 상처 입힌다. 이는 인간의 막강한 권력이자, 실존의 추구를 좌절시키려는 불평등한 현실의 제약이다. 그러나 고등어의 몸에 박힌 칼은 이제껏 죽음을 회피하며 숨기에 급급했던 올드넙치에게로 전달된다. 탈출하기 직전 인간의 손아귀에 붙잡힌 절망적인 상황, <장면 8>에서 올드넙치는 숨기고 있던 모형 칼을 인간을 향해 날리며 마침내 자유를 손에 얻는다. 고등어로부터 전해져 올드넙치를 바다로 이끌어준 모형 칼은 곧 자유를 향한 갈망이자 저항의 상징이다. 작은 모형 칼은 결코 인간을 해칠 수 있는 대단한 도구가 못 된다. 생선에게 인간은 언제나 압도적인 포식자이자 뒤집을 수 없는 서열. 그럼에도 그는 고등어로부터 이어진 그 칼을 인간에게 겨눔으로써 비로소 죽음의 수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인간과 생선의 서열이 뒤바뀌는 이변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들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불평등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저항을 통해 올드넙치의 삶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언젠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온다고 해도, 올드넙치의 삶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변화했다는 것이다.
“운명이 짓궂은 장난을 치네요, 바보처럼요
하지만 당신은 이미 해낼 수 있어요…내가 항상 같이 할 테니.”
<장면 9> <장면 10>
OST ‘용서해요’의 뮤지컬 시퀀스 속. 좁은 정육면체에 갇혀 있던 <장면 9>에서 그것이 해체되며 자유로워지는 <장면 10>으로의 이행은, 비단 올드넙치뿐만 아니라 고등어 또한 탈출에서 정신적 주체로서 함께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고등어는 육체적으로는 죽음을 맞이했으나, 결국 그 죽음이 누구보다 비관적이고 비본래적인 삶에 매몰되었던 올드넙치를 변화시켰다. 올드넙치와 고등어는 정신적인 동반의 관계를 맺어 함께 바다로 나아간다. 자유를 향한 의지를 이어받은 올드넙치의 탈출은 고등어가 지향했던 실존적인 삶의 추구를 계승한다. 바다를 향해, 진정한 삶을 향해 저항하고 몸부림치는 그 과정 자체가 실존이다. 그 점에서 고등어는 이미 실존을 완수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개인이 처한 절망적인 현실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필연적인 숙명이라는 한계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해야 하며, 그러한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외친다. 언뜻 비극적으로 보였던 고등어의 죽음은 올드넙치의 탈출을 통해 그 의지를 계승하며, 충분히 우리가 우리의 삶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제 ‘파닥파닥’은 단순한 의태어가 아니다. 온갖 불평등과 극복할 수 없는 숙명 속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그럼에도’ 끊임없이 나아가려는 삶을 소망하는 실존적인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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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은 원래 무거운 거야
여기, 자신의 삶을 아름다움과 자유로움으로 멋 부린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하울. 금발에 파란 눈, 반짝이는 장신구와 화려한 패턴의 옷, 여유로운 모습까지. 그럴싸한 겉모습을 가졌는데도 사람들은 몰려들지 않는다. '조심해. 하울은 심장을 잡아먹는대.' 흉흉한 소문 때문에 사람들이 피하기도 하지만, 하울 또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쫓아가는 사람이 있다. 언덕 너머 매서운 바람이 부는 광활하고 어둑한 들판,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노인. 걸음은 느려도 한 순간의 주저함이나 멈칫거림 없는 소피 '할멈'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저주에 걸려서 신체 나이가 아흔 살이 된 소피겠다.
입구에 닿을 듯 말듯하던 소피 할멈을 하울의 성이 마치 퍼올리듯이 움직인다. 이 움직임의 원동력은 캘시퍼, 하울의 심장을 계약조건으로 성의 형태를 유지하는 악마다.
하울이 저주를 풀어주길 바라며 찾아온 소피 할멈. 그런데 저주가 걸렸다기엔 너무 씩씩하고 쾌활하다. 청소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얼굴은 편해 보이기까지 한다. 앳된 모습으로 모자 가게에서 일할 때엔 상상할 수 없던 표정과 말투.
함께 놀러 나가자는 다른 이들의 제안에 소피는 고개를 저었다. 일을 마저 하겠다며. 시끌벅적한 무리가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소피는 모자를 몇 번 뒤적이곤 자리를 뜬다. 모자 가게는 소피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마냥 해맑은 동생과 엄마 사이에서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가야 한다는 중압감이었을 뿐.
해야 하는 일에 오래 골몰한 사람은 점차 자신을 잃는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뭘 원하는지, 뭘 좋아하고 싫어하고 무서워하는지.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까지 사라진다.
자신의 내면이 외적으로 드러난 순간부터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피는 밀대를 가져와 바닥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싹싹 밀고, 옷가지들을 모아 빨래하고, 캘시퍼 주변에 한가득 쌓인 재를 퍼올린다.
방 청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아닐까. 하울의 심장(캘시퍼)은 소피를 퍼올리듯이 안으로 들여보냈다. 반대로, 소피는 하울의 성 안을 가득 메운 먼지와 쓰레기, 재를 퍼올려서 내다 버린다. 어쩌면 하울이 소피에게 허락한 영역은 캘시퍼가 있는 1층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피는 망설임 없이 모든 것을 청소한다. 하울이 아름다움을 위해 마법을 걸어두었던 선반까지도.
마법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하울은 말 그대로 '녹아내린다'. 무언가를 집어던지고 부수며 분노하지 않고 축 늘어진다. 이렇게나 유약한 자가 어떻게 전쟁의 최전선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일까.
하울의 오랜 고용주, 설리만은 말했다. 하울은 어려서부터 실력이 뛰어났다고. 어린 시절의 인정은 양날의 검이다. 용기를 북돋아주는 길잡이가 될 수 있지만, 어른들의 입맛에 자신을 맞추는 시작점이 될지도 모른다. 하울은 후자였다. 어떤 일을 시키든 잘 해내고, 성과를 인정받고, 더 큰 일을 받고, 굴레는 반복된다.
많은 가명을 만들어 각 이름마다 다른 사람인 것처럼 연기하던 하울. 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모두 똑똑하고, 기품 있고, 아름답다. 이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한 가지를 없애야 한다. 하울 자신. 그 열망이 너무 큰 탓이었을까. 조금 더 직접적이고 확실한 선택을 내린다. 어린 시절, 하울은 심장을 꺼내어 악마에게 주었다.
소피는 텅 빈 내면이 외적으로도 드러났고, 하울은 사람들이 혹할 만한 '좋은' 것으로 빈 공간을 숨겼다.
소피의 내면이 아흔 살 노인으로 드러났다면, 하울의 내면은 영화 끝자락에서 나온다. 하울의 심장의 초대를 받아 하울의 내면을 청소하고, 이윽고 가장 깊은 곳, 하울의 본모습을 마주한 소피. 방문을 열자 하울의 방 대신 동굴이 나오고, 그 끝에 온몸을 움츠린 커다란 새가 공포에 떨고 있다.
새보다는 공에 가까운 모양새. 타인의 기대와 욕망이 덕지덕지 묻은 깃털들이 하울을 무겁게 짓이긴다. 소피는 자신의 내면을 겉으로 드러낸 후 한 차례도 망설이지 않는다. 무수한 남색 깃털까지도 털어낸다. 그제야 하울이 보인다. 남색 머리와 그와 비슷한 색을 담은 눈, 흰 티, 까만 바지. 단조롭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있었던 이들은 모두 처음과 모습이 다르다. 금발에 반짝이는 보석, 분홍색 제복의 하울은 수수한 차림새로 바뀌었다. 갈색머리의 소피는 '별빛'색의 단발로, 황야의 마녀는 커다랗고 위엄 있는 모습에서 작고 하찮은 모습으로, 캘시퍼는 자유로운 불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마르클은 어린 아이다.
"마음은 원래 무거운 거야."
어른들은 그 무게를 잊고 산다. 해야 하는 것들에 둘러싸이느라 하고 싶은 것을 모르고, 들끓는 정보를 쫓아가기에 급급하고,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불안과 걱정을 분노로 치장하고, 분노를 힘으로 치환해 과시하려 든다.
소피가 대단한 게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어야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으로 보였으면 하는지, 왜 그러고 싶은지, '현실적'이라는 말을 제거하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다 보면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청소의 시작점이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박윤혜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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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다섯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여러 차례 개봉일을 변경하여 영화팬의 마음을 애타게 했던 <미키 17>이 드디어 개봉합니다!
<미키 17>은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어 세계를 놀라게 했던 <기생충> 이후,봉준호 감독의 첫 차기작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으며, 로버트 패틴슨, 마크 러팔로, 토니 콜렛 등
할리우드 스타의 출연 소식을 알려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미키 17>은 하나의 SF이면서 코미디이기도, 인간 휴먼스토리이기도 하니까관객들이 그냥 그 자체로 편안하게 즐겼으면 좋겠다."라는 소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미키 17
Mickey 17
개요: 모험 | 미국 | 137분
감독: 봉준호
주연: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아키에, 스티븐 연, 토니 코렛, 마크 러팔로
개봉: 2025.02.28.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줄거리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A Complete Unknown
개요: 모험 | 미국 | 137분
감독: 제임스 맨골드
주연: 티모시 샬라메, 에드워드 노튼, 엘르 패닝, 모니카 바바로, 보이드 홀브룩
개봉: 2025.02.26.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줄거리
문화적 격변기, 무명 뮤지션 밥 딜런은 음악을 하기 위해 뉴욕을 찾는다.그곳에서 놀라운 공연을 펼치게 된 밥 딜런은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하고, 당대의 뮤지션들과도 교류하면서 서서히 인기를 끌어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멈추지 않고 새로운 삶을 노래하고자 하는 밥 딜런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뉴포트 페스티벌에서 충격적인 무대를 펼치는데…
시대의 아이콘에서 세기의 전설로!
반항하는 청춘들의 아티스트 밥 딜런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첫 번째 키스
1ST KISS
개요: 드라마 | 일본 | 124분
감독: 츠카하라 아유코
주연: 마츠 다카코, 마츠무라 호쿠토, 요시오카 리호, 모리 나나, 릴리 프랭키
개봉: 2025.02.26.
배급: 메가박스중앙㈜
줄거리
오늘, 내 남편이 죽습니다.
이혼 위기의 칸나(마츠 타카코)는 남편 카케루(마츠무라 호쿠토)를 갑작스런 사고로 잃고 하루 아침에 혼자가 된다.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그녀는 업무에 몰두해야만 하고 늦은 시간, 급한 업무 연락을 받고 다시 출근하던 중 이상한 터널로 향한다.
터널을 지나는 순간 15년 전, 처음 남편을 만난 때로 돌아왔다는 걸 깨닫게 된다.15년 전, 그와 다시 마주친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데…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No Love Lost
개요: 드라마 | 프랑스 | 91분
감독: 에르완 르뒤크
주연: 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 셀레스트 브룬켈
개봉: 2025.02.26.
배급: (주)엣나인필름
줄거리
“아빠, 엄마를 지금도 사랑해?”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순 없어”
17년간 딸 로자의 전부가 되어준 다정한 싱글대디 에티엔. 미술을 사랑하는 딸의 재능을 응원하며,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온 마음을 다해 로자를 키워왔다.
어느 날, TV 속에서 마주친 익숙한 얼굴. 떠나간 로자의 엄마는 잊고 있던 과거를 일깨우며 평온했던두 사람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서로가 전부였던 두 사람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서로의 마음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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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렵게 승인 받은 [아마존 프라임] 영화 입니다. 당연히 재미는 보장합니다.[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아포칼립스z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배급사)의 사용 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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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자산어보 후기 / 실학자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생활 / 한국최초 어류도감 / 화려한 명품조연들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자산어보”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이준익 감독, #흑백영화, #사극, #인생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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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범죄도시2> 론칭 예고편
청불 액션 영화의 레전드 <범죄도시>의 속편으로 괴물형사마석도와 금천서 강력반의 더욱 짜릿해진 범죄소탕 작전을 담은 범죄 액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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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킹메이커> 30초 예고편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정치인 '김운범' 앞에 그와 뜻을 함께하고자 선거 전략가 '서창대'가 찾아온다. 열세인 상황속에서 서창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선거 전략을 펼치고 '김운범'은 선거에 연이어 승리하며, 당을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까지 올라서게 된다. 대통령 선거를 향한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되고 그들은 당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그러던 중 '김운범' 자택에 폭발물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로 '서창대'가 지목되면서 둘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치열한 선거판, 그 중심에 있던 두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