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목필2025-02-21 11:22:34
영화 서브스턴스
욕망에 의해 게걸스럽게 해체된 살점의 우화
거부할 수 없는 괴랄한 함정
주인공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유명 여배우지만 50대에 접어들며 흘러가는 세월을 막지 못한 퇴물 배우가 된다. 생일을 맞이해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지만 거울 속 주름지고 더는 탱탱하지 못한 가슴을 보자 우울하기만 하다. 오랫동안 고정이었던 쇼에서 쫓겨나고, 자신의 얼굴이 붙어 있던 광고판이 찢겨 나가는 걸 보는 순간 사고까지 당해 최악의 생일을 맞이한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지만 자신의 꼴이 처첨한 엘리자베스는 좌절감에 눈물을 터뜨린다. 그때, 한 젊은 남자 의사가 그녀의 척추를 꼼꼼히 살피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잔뜩 지친 채 노란 코트를 입고 거리로 나온 엘리자베스는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그가 몰래 남긴 무언가를 발견한다.
THE SUBSTANCE
iT CHANGED MY LiFE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한 색상과 사운드를 통해 ‘욕망’을 드러낸다. 수위도 굉장히 높고, 관객이 불쾌함을 느낄 지점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말 그대로 절정에 치닿는다. 등장하는 색은 크게 빨강, 파랑, 노랑으로 나뉘는데 엘리자베스뿐만 아니라 하비와 투자자들, 대중들의 욕망이 드러나는 곳인 방송국(제작사)과 광고판을 대부분 붉은 색감이다. 하비의 옷도 주황색 계열이나 붉은 옷이 많고,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를 찾으러 갈 때 들고 있는 가방도 붉은 색이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노른자 같은 코트와 새빨간 가방. 그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영화는 색감을 통해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엘리자베스의 나은 버전인 ‘수’의 색은 분홍색이다. 엘리자베스와 방송국의 새빨간 욕망 비슷하지만, 비교적 덜 노골적이고 싱그러워 보인다. 마치 엘리자베스의 욕망까지 젊어진 듯 훨씬 생기 있고 당돌한 수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색감이다.
그와 대비되는 파란색은 엘리자베스가 공허와 허망함을 느끼는 집에 많이 등장한다. 수로 살아갈 때는 따뜻한 햇빛이 들어오는 집이, 다시 원형으로 돌아오면 아주 차가운 물 속처럼 시리도록 푸르다. 당당한 수는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젊은 몸을 즐기는 반면 자존감도, 자신감도 떨어진 엘리자베스는 그저 지난 영광을 그리워하며 불도 채 다 켜지 않고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낮에는 청소하는 사람들이나 TV를 피해 화장실만큼 하얀 벽 뒤로 숨을 뿐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수가 만족스런 숨을 뱉으며 침대로 뛰어들 때의 색도 푸른 계열인 것이다. 다만 엘리자베스의 파란색이 원색이라면, 수가 누운 침대의 파란색은 훨씬 짙어 남색에 가깝다. 이는 외로움이나 공허가 아닌 젊음과 명예에 대한 수의 강렬한 소유욕에 더 가깝다.
화장실과 서브스턴스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은 거부감이 들 정도로 하얗다. 현실에서도 화장실은 매일 무언가를 만들고 없애는 공간이다. 배설물도 그렇고, 묵은 때를 씻어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곳이기도 하며 동시에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공간이자 새로운 내가 태어나는 곳엔 오로지 흰색과 검은색만이 존재한다. 마치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여 선택에 변명의 여지가 없게 만든 공간처럼 느껴진다.
잔인한 장면만큼 불쾌감을 자아는 인물이 있다. 방송국 대표인 ‘하비’이다. 그는 <셰이프 오브 워터>에 나오는 스트릭랜드처럼 볼일을 보고 손을 닦지 않을 뿐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새우를 더럽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인물이다. 그의 입안에서 처참하게 으스러지는 새우의 살점을 보며, 엘리자베스는 불쾌함을 감추지 못한다. 어쩌면 하비가 그 자리에서 먹어 치운 것은 새우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껍데기만 남은 채 그 앞에 쌓인 새우 머리는 엘리자베스‘들’을 연상캐한다.
수의 욕심으로 인해 둘은 완전히 균형을 잃는다. 관절이 완전히 뒤틀리고 급속도로 늙어버린 엘리자베스는 하비가 준 프랑스 요리책을 보며 난잡하게 요리한다. 칠면조 안으로 손을 욱여 넣고 내장을 뽑으며 토크쇼에 나온 수를 향해 저주와 비난을 퍼붓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꼭 동화에 나오는 마녀같다. 기괴하게 뒤틀린 다리와 잔뜩 빠진 머리, 툭 튀어나올 정도로 굽은 등은 어딘가 익숙하다. 이전의 건강함마저 잃은 그녀는 차마 잠들어 있는 수를 헤코지하진 못하고 다른 살덩어리들을 폭행한다. 음식은 먹으면 피와 살이 되어 육신을 이룬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몸을 거부하듯 폭력적으로 요리하며 집을 엉망으로 만든다.
결국, 괴물처럼 변한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 종료를 선택한다. 그러나 수가 죽을 거라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둘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젊고 건강한 몸의 수는 엘리자베스를 무참하게 죽이고 새해 전야 쇼에 나가기 위해 급하게 준비한다. 그녀를 위해 준비된 파란 드레스는 신데렐라의 드레스와 흡사하다. 원형인 엘리자베스가 죽자, 수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듯 치아와 손톱이 빠지고 귀가 떨어지며 천천히 몸이 해체된다. 호박 마차도, 요정 대모도 없는 수에게 유일하게 남은 건 1회 사용 후 폐기해야 했던 서브스턴스 약물 뿐이다. 악착같이 달려 화장실로 뛰어간 수는 남은 서브스턴스를 주입하며 ‘더 나은 나’를 태어나게 한다.
유리병에 담긴 매혹적인 초록색 약물. 먹으면 죽는 독사과처럼 위험한 걸 알면서도 자꾸 원하게 되는 이 약물은 지독한 함정이다. 1회 사용 후 폐기하기에는 너무 많이 남는 양,‘REMEMBER YOU ARE ONE’이라고 계속 강조하면서 막상 종료했더니 완전히 둘로 나뉘어지는 것, 그리고 결코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 증거이다.
괴물이 된 수와 엘리자베스는 푸른 드레스를 입고 모두가 고대한 새해 전야 쇼장으로 향한다. 그토록 원했던 환호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위에 선 ‘몬스터 엘리자베스 수’는 자신의 젊은 몸과 섹스 어필을 원했던 관객들을 위해 엉뚱한 곳에서 가슴을 뱉는다. 그리고 팔이 뜯어지자 터진 피 분수를 모두에게 선사한다. 거리로 나온 몬스터 엘리자베스 수의 몸은 천천히 무너지고 뜯어진다. 잔뜩 뒤틀린 등에 힘겹게 붙어 있던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지난 영광의 자리로 힘겹게 기어가 쏟아지는 별을 감상한다. 그 주변으로 영화 내내 인서트 컷으로 등장했던 야자수가 보인다. 마치 네가 여기로 돌아올 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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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 문> | 차라리 스타워즈 스핀오프였다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변방 행성 벨트의 한 농촌에 마더월드의 군대 임페리움을 이끄는 '노블'(에드 스크레인) 제독이 나타난다. 그는 촌장을 때려죽인 후 다시 돌아올 때까지 군대를 먹일 식량을 준비하라고 협박한 뒤 떠난다. 농촌 주민들이 공포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자, 과거 마더월드의 장교였던 자기 신분을 숨긴 채 지내던 '코라'(소피아 부텔라)가 마침내 목소리를 낸다. 어차피 노블 제독이 우리를 모두 죽일 테니, 그전에 그들과 싸울 준비를 하자고.
이에 친구 '군나르'(미힐 하위스만)와 함께 노블 제독에 맞설 전사를 찾아 나선 코라. 그녀는 항구 도시에서 만난 '카이'(찰리 허냄)의 도움을 받아 은하계 각지에 흩어진 숨은 전사들을 발견한다. 노예가 된 왕자 '타라크'(스타즈 네어), 갓을 쓴 검사 '네메시스'(배두나), 임페리움에 반기를 든 전설적인 장군 '타이투스'(자이먼 혼수), 저항군의 리더 '다리안 블러드엑스'(레이 피셔)까지.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나선다. 마더월드의 폭정에 맞서 벨트를 구할 영웅들과 함께.
황새 쫓다 가랑이 찢어진 뱁새, <레벨 문>
<스타워즈>. 스페이스 오페라의 고전. 첫 등장 이후 40년이 지나도 인기를 유지 중인 미국의 신화. 사실 <스타워즈> 이야기는 명성에 비해 그다지 참신하지 않다. 좋게 말하면 왕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클리셰로 가득하다. 조지 루카스가 조지프 캠벨의 연구를 차용한 결과물이기 때문. 캠벨은 여러 신화가 공유하는 모티브를 정리했고, 그 내용은 루크 스카이워커와 다스 베이더의 서사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대신 <스타워즈>는 다른 영역에서 독자적인 매력을 구축했다. 이야기는 평범해도, 그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관은 특별했다. 다양한 행성과 생명체, 제다이와 시스의 갈등, 현실세계로 역수입된 광선검 결투, 임페리얼급 스타 디스트로이어와 X-윙 같은 전투기, 여러 외피의 드로이드까지. 익숙한 이야기를 따라가면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은하계를 탐험할 수 있는 게 <스타워즈>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이는 넷플릭스의 <스타워즈>를 꿈꾼 잭 스나이더 감독 신작 <레벨 문: 파트 1 불의 아이>의 실수이기도 하다. 본래 스나이더가 <스타워즈> 스핀오프로 기획한 <레벨 문>. 이 프로젝트는 디즈니의 루카스필름 인수 후 취소됐고, 넷플릭스에서 되살아났다. 그런데 이상하다. <레벨 문>은 더 이상 <스타워즈> 세계관에 속하지 않는데, 여전히 <스타워즈>를 답습한다. 그 결과 <레벨 문>은 <스타워즈>의 강점 대신 약점만 노출하고 말았다.
첫 번째 실수: <스타워즈>의 세계를 답습하다
할리우드의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가 <스타워즈>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스타워즈> 세계관을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유사한 세계관 속에서 참신한 이야기를 보여줄 것인가? 가렛 에드워즈의 <크리에이터>는 전자라 할 수 있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감독인 그는 스타워즈 세계관의 근간인 '프런티어 정신'과 '오리엔탈리즘'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독자적인 세계관을 그렸다.
<레벨 문>은 후자다. 이름과 외양만 다를 뿐, <스타워즈>의 세계관을 이어받았다. 마더월드와 은하 제국은 전 우주를 억압하는 군국주의 권력이다. 왕을 시해하고 권력을 찬탈한 섭정 벨리사리우스는 황제를, 반은 인간이고 반은 사이보그인 노블 제독은 다스 베이더의 변형이다. 그들의 관계도 유사하다. 황제가 다스 베이더를 겁박하고 이용했듯이, 섭정 역시 노블 제독을 장기짝으로 다룬다.
주인공 삼인방인 코라, 군나르, 카이는 루크, 레아, 한 솔로 삼총사를 연상케 한다. 루크와 레아의 성별과 신분을 맞바꾸고, 한 솔로를 더 비열하게 만든 게 전부다. 마더월드에 대항하는 저항군과 은하 제국에 맞서는 반란 연합은 규모도, 위상도, 역할도 유사하다. 일반 함선으로는 맞설 수 없는 함선 '킹스 게이즈'의 존재 역시 <스타워즈> 속 스타 디스트로이어의 대체재나 다름없다.
문제는 <스타워즈>의 본래 장점도 세계관이라는 것. 달리 말해 <스타워즈>가 40년이 넘도록 쌓아 올린 세계관을 답습한다면, 그 작품은 결코 <스타워즈>로부터 차별화될 수 없다. 실제로 <레벨 문>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스타워즈>와의 비교를 끝끝내 피하지 못한다. 왜 이 영화가 <스타워즈>가 아닌 다른 제목을 달고 제작되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찾기 어렵다.
두 번째 실수: 또 다른 고전을 답습하다
그렇다면 <레벨 문>은 스토리텔링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스타워즈>의 도식적인 이야기와 확연히 다른, 참신하고 치밀한 이야기로 관객을 매료해야 했다. <레벨 문>은 그러지 못했다. <스타워즈>라는 클래식에 또 다른 고전, <7인의 사무라이>를 더했다. 자연히 <레벨 문>의 러닝타임 148분은 모두가 이미 알고, 예측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로 가득 차 버렸다.
물론 잭 스나이더의 의도는 추측할 수 있다. 그의 연출작은 한 가지 경향성이 있다. '에픽'을 좋아한다는 것. 그는 자기 신념을 관철시키려는 인물의 투쟁을 웅장하고 장엄한 서사시로 그려내는 데 관심이 많다. <300>, <맨 오브 스틸>, <배트맨 대 슈퍼맨>, <왓치맨>, <저스티스 리그> 모두 마찬가지다. 바로 여기서 <스타워즈>를 배경으로 <7인의 사무라이>를 보여주려 한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사실 명작이라는 점과 별개로 <7인의 사무라이>는 스케일이 큰 영화가 아니었다. 한 농촌을 배경으로 도적 떼와 사무라이 7명이 싸우는 이야기였다. 잭 스나이더는 이 이야기를 서사시로 바꾸려 한다. 자유의 투사들이 정의롭지 않고 부당한 탄압에 맞서는 우주적 대서사시를 꿈꾼 셈이다. 그래서 그는 스타워즈를 빼닮은 세계관을 더해 도적 떼를 마더월드로, 7인의 사무라이도 마더월드에 복수하려는 영웅들로 바꿨다.
문제는 잭 스나이더의 큰 그림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선악을 딱 잘라 나눈 이분법적인 구도는 이제 소구력이 없다. 당장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도 은하 제국을 퍼스트 오더로, 반란 연합을 저항군로 변형했다가 발전한 게 없다는 비판을 못 피했다. 파시즘, 공산주의 같은 거악과 싸우는 시대가 아닌 상황에서 이분법적 구도는 구시대적이니까. 근래 히어로 영화, 첩보 영화가 괜히 선악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 게 아니다.
세 번째 실수: 허점이 많은 플롯
큰 그림의 매력이 부족한 가운데, <7인의 사무라이>를 차용한 플롯도 안일하다. 벨트의 한 농촌을 구하기 위해 전사를 모으는 게 주된 내용이지만, 정작 코라가 조력자를 모으는 과정이 빈약하게 제시된다. 일례로 코라가 무슨 수로 타이투스 장군과 블러드엑스 남매를 찾을 것인지 그 계획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항구 도시 술집에서 타이투스 장군을 아는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것 이상의 비전을 못 보여준다.
대신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카이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우주선도 카이에게 빌리고, 티라크와 네메시스라는 전사도 카이에게서 추천받고, 벨트로 돌아가는 항로도 카이가 정한다. 즉, 마더 월드의 폭정에 저항하는 투사로서도, 섭정의 양녀이자 엘리트 군인으로서도 코라는 걸맞은 능력을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니 우연의 일치일 뿐이고, 연속성도 부족한 코라의 여정에는 재미가 붙지 않는다.
각 캐릭터의 매력도 못 살렸다. 시리즈의 시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각 인물을 소개하고 그들이 한 팀이 되는 과정만 잘 보여줘도 <레벨 문>은 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레벨 문>은 그저 캐릭터를 나열할 뿐이다. 그들의 전사, 능력, 심경 변화, 팀에 합류하기로 한 동기 등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노블 제독의 입을 빌려 그들의 프로필을 하나하나 읊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코라와 군나르가 그들을 한 명씩 만나는 내용은 그저 다음 시리즈를 위한 발판 같아 보인다.
마지막 실수: 본연의 장점마저 잃었다
물론 잭 스나이더를 위한 변명이 있기는 하다. 그의 장점은 본래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분량 제한이 없는 스트리밍 환경에서 공개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아미 오브 데드>도 개연성이나 완급 조절 문제를 못 피했을 정도다. 대신 비주얼과 액션 연출은 특출 난 장점이었다. 그가 기획한 DCEU의 비주얼은 만화책을 찢고 나왔다는 평을 받았고, <300>과 <맨 오브 스틸>의 액션은 다른 블록버스터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레벨 문>에서는 잭 스나이더 본연의 장점을 찾기 어렵다. 비교적 저예산으로 스페이스 오페라에 걸맞은 비주얼을 보여주기는 했다. 렌즈 플레어 효과를 적극 활용한 총격씬과 폭발씬은 시선을 사로잡을만하다. 그러나 몇몇 장면에서는 그린 스크린에서 촬영한 티를 숨기지 못했고, 잭 스나이더의 특징인 슬로 모션도 남발돼 몰입도를 저해한다.
또 합을 맞춘 티가 많이 나는 액션씬도 기대 이하다. 코라가 마더월드 군인들과 싸우는 초반부, 네메시스가 광선검 비슷한 검을 든 채 거미 괴물과 맞서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슬로 모션을 남발한 결과 생동감도 살지 않는다. 그나마 타라크가 배누를 길들이는 장면이 인상적이지만, 진부함을 피하지는 못했다.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해리가 히포그리프를, <아바타>에서 제이크가 이크란과 교감하는 장면을 빼닮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스타워즈> 스핀오프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스타워즈>의 일부라면 익숙하거나 진부한 설정도 '<스타워즈>니까'라는 이유로 용인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로그 원>이나 디즈니+ 드라마 <안도르>처럼 호평을 받았을 수도 있다. 제다이와 시스의 대결, 광선검 액션을 반복하는 대신 색다른 이야기를 보여준 것만은 확실하니까.
애초에 기획과 아이디어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스타워즈> 자체가 서부극에 근간을 뒀고, 조지 루카스도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은 흔적이 많기 때문. 그러니 '초심에 가까워진 시리즈' 같은 식의 평가가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스타워즈>가 아니면서 <스타워즈>를 닮으려 애쓰고 있으니, 모두 무의미한 가정일 뿐이다.
종합하면, <레벨 문>은 넷플릭스의 <스타워즈>라는 야심만 있을 뿐, 야심을 실현할 방법론은 볼 수 없는 영화다. 잭 스나이더에게 과제를 잔뜩 안겨준 듯 보이기까지 한다. 언뜻 흥미로워 보이는 아이디어의 스케일만 키우는 대신,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는 근본적 쇄신이 먼저라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 그래야 잭 스나이더와 넷플릭스가 각각 삼부작으로 계획한 <아미 오브 데드>와 <레벨 문> 시리즈도 안정적으로 확장될 수 있을 테니.
Dreadful 끔찍한
<스타워즈>를 기대해도, 잭 스나이더를 기대해도 실망스러운 2시간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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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을 위하여
우린 비행기가 일상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다른 것보다도 서울에서 부산을 갈 때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더 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일상'이란 걸 실감했다. 그렇지만 더 싸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국내를 여행하는 일은(제주도를 빼면)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여행에서의 목적은 전적으로 그 미지의 공간을 감각하는 일에 있으니까. 너무 빠르게 나아가면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고 지나친다. 효율적인 수단을 택하는 건 합리적이지만 여행의 목적으로 떠날 때 합리성만 추구하다가는 여행의 아름다움을 놓치기 일쑤다. 기억 속에 남기고 싶은 여행을 하고 싶다면 어느 정도는 비합리적이어야 한다.
하늘을 나는 일이 일상적이지 않은 시절을 산다는 건 지금 느끼긴 어려운 감정이다. 우주비행을 꿈꾸는 정도라면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볼 수 있겠으나 충분치 않다. 육지의 전장에서 말이 사라지고 나서 하늘을 활공하는 기체는 말이 되었고, 파일럿은 하늘의 기사가 되었다. 그렇게 명예를 운운하기에 좋은 비유가 생겼다. 기술의 발전 초창기엔 언제나 미지의 세계를 쉽게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들이 붙는다. 기존의 사회에 있었던 상징과 의미를 이어 붙인 세계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발전할수록 낭만을 잃는다. '비행정 시대에 지중해의 하늘'에서 명예와 여인과 돈을 걸고 공적과 싸우는 '한 마리 돼지'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낭만을 그리고 있다.
포르코는 비행정을 모는 조종사다. 전쟁에도 참전했던 베테랑 조종사지만 원인 불명의 마법에 걸려 이름처럼 돼지가 된다. 그는 뛰어난 비행술을 살려 현상금 사냥꾼 일을 하며 유유자적 지낸다. 고요한 외딴섬엔 파도 소리와 라디오 소리 말고는 신경 쓰일 일도 없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포르코가 만끽하는 자유의 만족감은 충만하게 느껴진다. 불행하게도 각박한 시대에 자유를 만끽하는 일은 질투를 부른다. 포르코의 활약으로 공적 연합은 번번이 인질극에 실패한다. 이익을 나누기 싫어하는 그들이 '미국인 조종사'를 부른 이유기도 하다. 값비싼 자존심을 내려놓을 정도로 공적 연합은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영화는 포르코가 시시콜콜한 소동에 휘말리는 과정을 풀어낸다.
관조하듯 살아가는 포르코에겐 오래된 옛 친구들이 있다. 과거에 활약했던 인간 조종사 시절을 기억하는 친구들 사이에 우정은 있지만 감정의 교류는 없다. 이 점이 흥미로웠다. 포르코는 자신의 겉모습을 부정하지 않았다. 돼지로 변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인간 시절의 자신을 기억하는 건 옛 친구들 뿐이다. 친구들은 여전하다. 돼지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그를 옛 이름으로 부른다. 기억 속의 사람을 그리워하기에 친구들은 과거의 시절로 그를 소환하고, 포르코는 그런 반응을 무던하게 밀어 넘긴다. 옛 전우 페라린은 취미로 비행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하면서도 공군을 피할 수 있는 활로를 알려준다.
영화에서 부서진 비행정의 잔해들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은 처연하게 아름다웠다. 하늘로 솟구친 비행정이 보는 세상은 고요하다. 프로펠러는 작동을 멈추고 엔진도 꺼진 채 부유하며 날아오른다. 전우들을 떠나보내는 생사의 기로에서 포르코가 느꼈던 감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살아남은 자는 그 몫으로 여러 시선을 견뎌야 한다. 굳이 돼지로 변한 이유를 캐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생존자의 죄책감은 그만큼 무겁다. 현실에서는 죽어서까지 지켜야 할 명예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기에선 그러지 않아도 된다. 교훈은 삶으로 향해야 마땅하다.
지중해의 푸르른 배경과 갖가지 비행기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손이 근질거린다. 꼭 움직이는 형태는 아니더라도 뭐라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상상에 불을 지핀다. 그렇지만 비행기가 많이 나오는 지중해 배경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만들려면 조건이 주렁주렁 달린다. 아예 비현실적인 세계를 만드는 건 품이 더 커지는 일이다. 배보다 배꼽이 커질 일을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러니 무거워지지 않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내려면 주인공 정도는 돼지가 되어야 마땅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비현실적인 이유가 있어 너무 무겁게 흘러가지 않는다. 창공에서 수없이 총알이 뿌려져도 기체는 부서지고 불에 타지만 갈등은 적당히 갈무리된다.
연극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 있다. 예컨대 아이들은 공적에게 자기들은 수영반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를 건넨다. 납치한 아이들을 험하게 다루지 않는 공적들의 모습을 보는 건 마법 같은 일이다. 비행 대회가 한바탕의 축제처럼 열리는 모습도 그렇다. 불법적인 축제까지도 얼떨결에 그러려니 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 삶에 마법처럼 좋은 일이 벌어지길 기대하는 것보다 마법처럼 나쁜 일이 사라지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거대한 쇳덩이를 타고 하늘을 난다는 낭만은 가끔 보면 정말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니 일상에 조금은 더 낭만적인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 IMDB 'Kurenai no b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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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어질 수 없는 부모와 자식의 감정
부모는 누구에게나 특별한 존재다.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 부모는 많은 것을 희생한다. 아이를 좋은 환경에서 키워내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쓰면서 좀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에는 모성이 특히 강조되었지만 현대에는 모성과 부성이 가지는 차이는 적어졌다. 같이 아이를 키워내고, 부모 간에 서로 조율하면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려 하고 그 노력의 마음은 아이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절대적인 존재다. 아이는 부모 옆에서 안정적인 느낌을 받고 성인이 될 때까지 의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나 상황으로 인해 부모 없이 살게 될 때가 있다. 그 상실감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자신만 두고 갔다는 원망과 슬픔이 뒤섞인 감정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 내면 깊숙이 박혀있다. 곁에 있든 없든 계속 영향을 주는 부모라는 존재는 결코 그 미련을 저버릴 수 없는 존재다.
어머니와 딸의 감정을 다루는 영화 <정이>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정이>는 SF 장르를 빌려 부모, 그중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풀어내고 있다. 주인공 윤서현 팀장(강수연)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니는 군인 윤정이 팀장(김현주)으로 내전이 한창인 상황에서 수많은 작전에서 승리를 한 유명한 용병이다. 한 전투에서 사망하게 되면서 자신의 딸에게 돌아가지 못한 윤정이 팀장은 다시 돌아오겠다는 딸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남겨진 딸 윤서현 팀장은 어머니의 뇌를 AI로 옮겨 좀 더 나은 AI전투 로봇을 개발하려는 팀에서 연구를 할 수 있게 된다.
영화의 배경에 대한 설명은 매우 간략하게 전달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지구는 거의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 곳이 되었고, 우주에 쉘터라는 이주 지를 만들었지만 각 쉘터끼리 다른 의견으로 서로 싸우게 된다. 그래서 좀 더 나은 전투 실력을 가진 로봇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인 윤정이 팀장을 모델로 한 AI로봇 개발을 시도하게 되었다. 사실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와 이 배경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굳이 이렇게 큰 배경과 환경을 제시하지 않아도 될 작은 중심 이야기에 너무 거대한 배경을 제시하고 있어 서로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배경을 간략히 제시한 영화는 윤서현 팀장이 자신의 어머니와 똑같은 모습을 한 AI로봇을 개발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AI로봇이 깨어나 시뮬레이션 전투를 하는 모습을 보는 윤서현 팀장의 모습은 복잡해 보인다. 이미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어머니가 다시 전투에서 고통을 받는 모습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고 그 결과에 따라 개선점을 반영하여 다시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은 마치 자신의 어머니를 계속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보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머니의 모습을 한 AI로봇을 개발하는 딸 윤서현 팀장
그래서 영화 내내 윤서현 팀장은 조용하고 어두운 모습을 하고 있다. 어머니와 비슷한 로봇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지만 계속 그가 고통받는 모습을 봐야만 하는 윤서현 팀장의 마음은 무척 복잡해 보인다. 그가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감정의 고민은 영화 후반부에 가서야 드러나기 때문에 중반까지 관객의 입장에서 그가 보여주는 태도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가 본격적으로 다른 행동을 보이는 건, AI로봇이 전투 중 딸인 윤서현 팀장을 떠올리는 듯한 상황 이후다.
AI로봇의 뇌에서 나타나는 이상한 패턴은 딸을 생각하면서 나오는 반응이다. 그건 계속되는 전투 과정에서 그를 강하게 만들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이미 죽음을 맞이했다. 뇌를 복제해 AI로 옮겼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딸에 대한 애착까지 그대로 옮겨졌다. 그래서 로봇의 시뮬레이션 과정에서도 그 애착은 큰 힘을 만들어준다. 그 애착은 모든 부모가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부모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아이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준다. 하지만 때로는 그 애착 때문에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그 애착의 마음을 윤서현 팀장은 정확히 파악하고 AI로봇의 모습을 한 자신의 어머니를 그 애착에서 해방시키려 한다. 자신이 성인이 되어서 까지 어머니를 그리워했고 똑같은 모습을 한 AI로봇 연구를 하게 되었지만 그가 계속 확인한 건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떠올리며 힘내려 노력하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영화는 영화의 배경을 완전한 뒷배경으로 빼놓고 어머니와 자식이 가지는 서로에 대한 마음을 꺼내어 보여준다. 영화가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결국 모든 부모와 자식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마음은 똑같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잘 맞지 않는 SF적 배경과 활용
마치 AI가 성공적으로 개발된다면 영화 속 내전을 모두 끝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전달하며 진행되던 영화는 갑작스럽게 영화의 배경인 내전을 끝내버린다. 애써 쌓아 놓은 배경을 한 번에 뒤집어 버리면서 상황을 급박한 상황으로 밀어 넣는다. 또한 전투 AI를 개발하는 과정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오지만 그중에는 이미 개발된 AI도 섞여 있다. 전투로봇 못지않게 이미 개발된 AI로봇이 엄청나게 좋은 전투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보는 관객들을 의아하게 만든다. 영화는 자신이 진짜 하고자 하는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의 배경을 편리하게 바꿔버리고 인위적으로 급박한 상황을 만들면서 오히려 극적 흥미를 떨어뜨린다.
그리도 다른 SF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도 많이 등장한다. <블레이드 러너 2049>, <아이 로봇>, <엘리시움> 같은 영화들에서 이미 본 적 있는 장면과 설정들이 계속 이어진다. 이런 설정을 복사해온듯한 장면들은 과거 한국 영화 <승리호>에서 느꼈던 기시감과 비슷하다. 좀 더 독창적인 설정과 장면들이 있었다면 좀 더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을 영화는 또 다른 카피본을 본듯한 느낌을 준다.
이 영화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꽤 큰 SF적 배경을 끌어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작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볼 수는 있겠지만 굳이 이런 배경 속에서 그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영화 속 CG만큼은 꽤 괜찮다. 어색함이 들지 않고 꽤 자연스럽게 전투 장면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그 부분만큼은 아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윤서현 팀장 역할을 맡은 강수연의 연기는 극과 완전히 맞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깊은 곳의 울림을 끌어내 괜찮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자식으로서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다. 이번 영화가 그의 유작이라는 점이 무척 아쉽다.
영화는 결국 부모와 자식 간의 끊을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서로의 해방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특히나 자식으로부터 해방되는 부모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다뤄지면서 어떤 방식으로 부모가 마음의 해방을 맞이해야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여러 가지 아쉬움이 드는 완성도의 영화지만 그래도 한 번 즘은 틀어놓고 생각하며 볼 수 있는 한국 SF영화다. 이번 작품은 아쉽지만 앞으로 만들어질 한국의 SF들이 조금은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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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리> - ‘잘못된 믿음에 묶인 소녀의 비명’
캐리 (Carrie)
개봉일 : 1978.09.17 (한국 기준)
감독 : 브라이언 드 팔마
출연 : 씨씨 스페이식, 에이미 어빙, 윌리엄 캇, 낸시 알렌, 존 트라볼타, 베티 버클리
‘잘못된 믿음에 묶인 소녀의 비명’
“소름 끼치는 캐리다!” 영화 속 아이들은 캐리를 이렇게 부른다. 아이들의 시선이 꽂힐 때마다 두려움에 파르르 떨리는 소녀의 속눈썹이 무척 안타깝다. 어리고 나약한 소녀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캐리>는 종교에 관한 그릇된 믿음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자란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캐리의 엄마 마가렛은 “최초의 죄악은 성교다.”라고 외치며 딸의 모든 것을 제어하려고 한다. 그녀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조각상 밑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잘못된 믿음에 바친다.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캐리는 당연하게도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이상한 믿음을 가진 집안의 아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다. 또래 아이들에겐 당연하게 느껴지는 일상들이 캐리에겐 공포와 고통이 되어 다가온다.
만일 상처 입은 약한 소녀에게 주체할 수 없는, 신과 같은 능력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 영화는 가장 나약하고 상처가 많은 인물인 캐리에게 모든 걸 다스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염력을 쥐여준다. 마음 약한 소녀는 당연하게도 그 힘으로 무언가를 지배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소녀의 마음을 다시 붙일 수 없을 만큼 난도질을 해놓는다면? 그렇다면 소녀의 힘은 어느 방향을 향해 발휘될 것인가. 그 순간, 소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흐릿하게 보이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예측해보며 눈 밑이 따가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캐리 시놉시스
여고생 캐리는 병적일 정도로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어머니의 순결 강요로 항상 내성적이고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받고 박대받고 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염력으로 물체를 움직일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 친구들로부터 심한 놀림을 받은 그녀에게 동정을 느낀 어느 한 친구가 그녀를 파티에 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순결을 강요하는 어머니의 강한 반대를 무릎쓰고 멋진 남자와 함께 즐거운 파티 시간을 가진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 다른 음모가 숨어있었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뿌연 연기 속에서 홀로 남아 샤워를 하고 있는 소녀, 캐리가 보인다. 갑작스러운 초경을 맞이한 소녀는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새빨간 피에 공포감을 느낀다. 여태껏 생리가 무엇인지, 여성의 몸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같은 당연한 성교육조차 받지 못한 캐리는 동급생들의 어깨를 붙잡고 늘어진다. 어떤 것이 두려운지, 어떤 것이 무서운지 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도와달라고만 소리치고 있는 캐리의 모습이 너무도 나약하게 느껴진다.
“최초의 죄악은 성교다”
남편 없이 홀로 캐리를 키워온 엄마 화이트는 되바라진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모든 인류의 시작이라 불리는 아담과 이브조차 죄악을 저지른 것이라 칭하는 화이트는 자신의 딸이 죄악을 저지를 수 없도록 모든 걸 관리하려 한다. 그녀가 성교를 죄악이라 칭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종교에 대한 믿음과 캐리와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편의 영향인 걸로 보인다. 화이트는 화살을 잔뜩 맞은 예수상을 집안에 걸어둔다. 어딘가 음산하고 소름 끼치는 분위기가 감도는 집안. 캐리가 깬 거울에 예수상이 비친다.
캐리는 초경을 시작하면서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된다. 마음이 지닌 힘이자 기적이라 불리는 ‘염력’. 그것은 마치 캐리를 불쌍히 여긴 신이 ‘더 이상 세상에 휘둘리지 말라’며 하사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동급생들은 모두 캐리를 괴롭힌다.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모든 아이들이 캐리를 무시한다. 그나마 캐리의 담임인 콜린스 선생님이 캐리를 위로해 주는 듯 보이지만, 사실 콜린스 또한 캐리를 바라보며 위로를 전하는 게 아닌, 거울 속 자신을 향한 칭찬을 반복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이 영화에서 진심으로 캐리를 위하는 인물은 ‘수’뿐이다. 수 또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캐리를 괴롭히거나, 그것을 묵인하던 인물이었지만 점점 더 심해지는 괴롭힘을 보며 캐리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수는 졸업파티를 포기하고 자신의 남자친구 토미를 통해 캐리에게 특별한 하루를 선물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수 덕분에 토미와 함께 졸업파티에 가게 된 캐리는 태어나 처음으로 첫사랑의 설렘을 느껴본다. 화이트는 여전히 자신의 딸을 마녀라 칭하며 말리려 들지만 캐리의 능력 앞에 굴복하고 만다.
“드디어 내 기도를 들어주신 걸까?”
캐리는 별 장식이 반짝이는 졸업 파티장에서 꿈같은 밤을 보낸다. 괴롭힘을 당하고 소름 끼치는 존재로 취급받던 소녀가 가장 빛나는 여왕의 자리에 앉은 순간, 소녀는 처음으로 맑은 웃음을 지어본다. 하지만 누군가의 행복을 절대 두고 볼 수 없는, 욕망이 가득한 입을 가진 아이들은 캐리의 몸에 빨간 피를 붓는다. 진한 빨간색을 띠고 있는 피는 캐리의 잠들어있던 능력과 감정들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캐리는 졸업 파티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집으로 돌아와 피를 씻어낸다. 화이트는 다시 여린 소녀로 돌아온 자신의 딸을 칼로 찌르고, 캐리는 그녀에게 반격한다. 화이트는 옷장 안에 걸려있던 예수상과 비슷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캐리의 집은 무너진다. 단단히 뭉쳐진 잘못된 믿음과 죄악이 한데 뒤섞여 무너지고 있다.
졸업파티가 있던 날 밤, 캐리를 포함해 그녀의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죽게 된다. 동급생중 살아남은 사람은 ‘수’뿐이었다. 진심으로 사죄하고, 하루만이라도 캐리가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유일한 사람. 어느덧 저주로 바뀌어버린 캐리의 능력이 휩쓸고 간 피바람 속에서 그나마 청렴했던 소녀 한 명만이 살아남게 된다. 하지만 반성하고 사과했다 하더라도 그전에 지었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수는 캐리가 피 묻은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붙잡던 순간이 반복되는 꿈을 꾼다. 그 꿈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나약한 소녀에게 쥐어진 초능력은 축복이었을까, 저주였을까? 그리고 이 능력이 축복이 될지 아님 저주가 될지,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누구였을까. 나약한 소녀가 홀로 해냈다기엔 너무도 큰, 피의 파장을 만들어낸 건 바로 그녀를 바라보던 따가운 시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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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기를 어긴 자, '이것'을 벗어날 수 없다
- 저는 머리를 감을 때 절대 눈을 감지 않습니다. 눈을 감고 머리를 감으면 귀신이 자기 머리카락을 갖다 댄다는 속설을 믿거든요. '죽을 사'를 떠올리게 하는 숫자 4와도 거리를 두는 편입니다. 혹시 모를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죠.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괜히 흠칫하게 되는 금기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받은 <세이레>는 바로 이러한 금기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금기를 어긴 자는 과연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11월 17일(목)에 진행된 <세이레>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세이레>는 2022년 11월 24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세이레Seire언뜻 다른 나라 말처럼 보이는 영화의 제목 '세이레'는 아이를 낳고 21일째 되는 날을 이르는 삼칠일의 순우리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아이가 이 세상에 무사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삼칠일 동안 외부인의 침입을 막는 금기를 지켜 왔습니다. 외부와의 통로에 고추와 숯을 엮은 금줄을 쳐 두고선 말이죠.'우진'의 부인 '해미'는 이 금기를 철석같이 믿고 따르지만, 이를 미신이라고 여기는 '우진'은 대수롭지 않게 금기를 어깁니다. 그리고 금기를 깬 '우진'의 주변에서는 자꾸만 불길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죠. 정말 그가 금기를 깼기 때문에 불길한 기운이 '우진'의 근처를 맴도는 걸까요? <세이레>의 서스펜스는 미신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간극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금기를 깬 인물 주변에서 발생하는 기이한 일들은 알게 모르게 수많은 민속 신앙을 믿으며 사는 우리에게 신선한 공포를 선사합니다.⊙ ⊙ ⊙사실 '우진'에게는 비밀이 있습니다. '우진'의 전 연인 '세영'이 임신한 후 아이를 유산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죠. 과거 '우진'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심경의 변화였는지, '우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아내 '해미'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세영'과의 아이는 그토록 거부했으나 '해미'와는 아이를 낳은 '우진'. '해미'의 만류에도 금기를 깨고 기어코 '세영'의 장례식장에 다녀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름 아닌 '세영'을 향한 죄의식 때문이었습니다.'우진'은 표면적으로 삼칠일에는 장례식장에 가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어겼습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자신의 금기를 깼죠. 금기를 어기고 파멸에 이르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흔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금기를 어긴 자에게 내려지는 징벌이 아닙니다. <세이레>는 금기를 어긴 자가 겪는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죠. 사람들은 금기를 어긴 대가를 피하고자 금기를 지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금기를 어긴 자는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금기의 대가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금기를 깨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우진'은 착시와 착란을 겪으며 현실과 비현실의 섬뜩한 교차를 경험합니다.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과는 '우진'에게 내재한 죄의식을 상징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윤기가 나는 멀쩡한 사과지만, 그가 자르는 사과는 모두 속이 까맣게 썩어있습니다. 단순히 썩은 수준이 아니라 끈적끈적한 피를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속에는 '세영'의 유산이 '우진'의 책임이라는 암시도 슬쩍 엿보입니다. '우진'은 자주 건강원에 방문해 즙을 사 먹거나 선물하는데요. 건강원 주인 내외의 대화를 통해 '애를 붙이는 약'과 '애를 떨어뜨리는 약'이 있고, 두 약이 실수로 바뀌기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임신한 '세영'은 '우진'이 준 즙을 먹었고, 훗날 '세영'은 유산 소식을 전하죠. '우진'은 그 소식에 안도하는 듯한 한숨을 내뱉었고요. '우진'이 어긴 금기가 또 있는 걸까요? 해석의 여지를 두는 이러한 장치들은 영화의 미스터리함을 한층 더 높여줍니다.⊙ ⊙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민속 신앙에 관한 색다르고 신선한 접근은 좋았으나, 그 과정에서 '해미'가 다소 비이성적인 인물로만 그려진 것은 씁쓸했습니다. 또 죄의식에 사로잡힌 '우진'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울먹이며 죽은 '세영'의 목을 조르는 장면은 눈을 질끈 감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두려움의 절정을 꼭 건장한 남성이 죽은 여성의 목을 조르는 것으로 표현했어야 할까요? '우진'이 '세영'의 유산에 일말의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로 인해 이 장면은 더욱더 견디기 어려웠습니다.하지만 배우들의 호연은 아쉬움을 초월하는 만족감을 선사했습니다. 죄책감, 두려움, 혼란에 점점 더 강하게 사로잡히는 '우진' 역의 서현우 배우, 그의 비밀을 쥔 쌍둥이 자매 '세영'과 '예영' 역의 류아벨 배우, 민속 신앙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아내 '해미' 역의 심은우 배우는 영화 <세이레>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냈습니다. 민속 신앙과 미신을 흥미롭게 풀어낸 영화 <세이레>를 통해 오싹한 겨울이 오기 전 극장에서 서늘한 기운을 먼저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Summary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초보 아빠 우진(서현우)은 현관문에 금줄을 쳐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금기사항을 철저히 지키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회사 다니면서 틈틈이 육아를 도와주며 바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우진에게 과거의 연인 세영(류아벨)의 부고 문자가 도착한다. 아기가 태어나고, 21일 동안은 장례식장에 가면 안 된다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레 다녀온 우진. 그날 이후, 아기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커져가는데… (출처: 씨네21)Cast감독: 박강출연: 서현우, 류아벨, 심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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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 손발 노동의 숭고함
[각본/감독: 이란희 | 출연: 이봉하, 김아석, 신운섭, 김정연, 이승주, 서광택, 황정용, 이승원, 박재형, 복운석 | 제작: 작업장 ‘봄’ | 배급: ㈜인디스토리 | 러닝타임: 81분 | 극장개봉: 2021년 10월 21일]
<파마><결혼전야><천막> 등에서 우리가 마주한 사회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섬세하게 담아온 이란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 <휴가>는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3관왕을 수상한 수작이다. <휴가>에서 주목할 점은 손에서 시작해 손에서 끝나는 영화라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가구를 만들었을 해고노동자 재복의 두터운 손은 거리의 행인들에게 농성용 전단을 나눠주고 있다. 익명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아 달라며 내미는 그의 손은 난생 처음으로 깊은 모멸을 견디어야 하는 괴로운 손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재복’의 손은 농성장의 동료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는 야무진 손으로 이어진다.
열악한 천막에서 발생하는 자잘한 문제들도 ‘재복’의 손을 거치면 금세 해결된다. ‘재복’의 손은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다. 하지만 수십 년간 성실히 일해온 회사로부터 한 마디 통보도 없이 정리해고를 당하자 부당한 처우에 저항하기 위해 ‘재복’의 손은 밥벌이를 위한 노동을 멈추고 기약 없는 투쟁에 나서게 됐다. 그러던 ‘재복’은 1882 일 간의 농성 중 열흘 간의 휴가를 갖게 되고, 잊고 있던 노동의 즐거움을 다시 찾는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 ‘재복’의 손은 분주하다. 막힌 싱크대를 뚫고, 먼지 쌓인 선풍기를 씻어야 하고, 밀린 이불 빨래 등 집안 구석구석 청소한다. 변변찮게 끼니를 때우는 딸들에게 농성장에서 갈고 닦은 음식 솜씨를 발휘해 든든한 집밥도 차려준다. 잠깐의 휴가에서 큰딸의 대학 예치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재복’은 그곳의 어린 동료 ‘준영’에게 도시락을 권하고, 손수 작성한 산재 신청서도 전한다.
재복의 손은 주저하듯 어눌하고 느린 말투와는 다르게 누구보다 야무지고 요령까지 있어서 묵묵히 많은 일들을 해낸다. 이렇듯 손으로 밥을 짓고, 가구를 만들고,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해내는 노동자의 손은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하게 노동의 가치와 연대의 의미를 보여준다. <휴가>는 대사로 다 전할 수 없는 노동의 숭고함과 ‘재복’의 가족과 동료를 아끼는 마음을 손을 통해 전한다. 이는 언어로 규정지어지는 한계를 넘어서 오히려 관객 저마다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밀도를 조밀하고 풍성하게 확장시키며 영화적 경험을 풍성하게 이끈다. 그리고 손으로 하는 노동은 가장 원초적이지만 그렇기에 몸의 쓰임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노동의 숭고함 역시 확연히 드러난다.
최근 유력한 야권의 대선주자는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는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그러나 <휴가>는 손짓과 발짓을 사용해 자신의 밥줄과 공동체를 책임지는 노동의 숭고함을 과장 없이 담담한 화법으로 드러낸다. ‘재복’이 잊고 있던 것은 노동의 즐거움이지만 우리 사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인간 노동의 가치를 잊고 있고, 회복하려는 노력에도 게을렀다. ‘재복’의 손은 말을 하지 않지만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러닝타임 81 분 내내 단 한 순간도 등장하지 않은 음악의 부재 역시 영화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과 인물들의 감정에 대해 규정짓고, 강요하지 않기 위한 사려 깊은 선택으로 보인다. <휴가>는 이렇듯 부재를 통해 더 많은 것을 관객에게 말을 거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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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사람과의 하루가 매일 반복된다면?
*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팜 스프링스’의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오늘은 어제고, 내일도 오늘이에요…” 인생 최고의 날로 기억될 멋진 결혼식이 열리는 팜스프링스의 리조트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남자 나일스에게 오늘은 100만 번째(?) 결혼식일 뿐이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세라가 나일스의 세상에 개입하면서 똑같았던 하루는 늘 특별한 오늘(!)이 되는데… 진짜 내일 없이 사는, 두 남녀의 썸머 코믹 로맨스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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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행복의 나라> 티저 예고편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 든 변호사 ‘정인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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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이스> 메인 예고편
부산 건설현장 직원들을 상대로 걸려온 전화 한 통.
보이스피싱 전화로 인해 딸의 병원비부터 아파트 중도금까지,
당일 현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 같은 돈을 잃게 된다.
현장작업반장인 전직형사 서준(변요한)은 가족과 동료들의 돈 30억을 되찾기 위해
보이스피싱 조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중국에 위치한 본거지 콜센터 잠입에 성공한 서준,
개인정보확보, 기획실 대본입고, 인출책 섭외, 환전소 작업, 대규모 콜센터까지!
체계적으로 조직화된 보이스피싱의 스케일에 놀라고,
그곳에서 피해자들의 희망과 공포를 파고드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자 기획실 총책 곽프로(김무열)를 드디어 마주한다.
그리고 그가 300억 규모의 새로운 총력전을 기획하는 것을 알게 되는데..
상상이상으로 치밀하게 조직화된 보이스피싱의 실체!
끝까지 쫓아 반드시 되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