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목필2025-02-21 11:22:34
영화 서브스턴스
욕망에 의해 게걸스럽게 해체된 살점의 우화
거부할 수 없는 괴랄한 함정
주인공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유명 여배우지만 50대에 접어들며 흘러가는 세월을 막지 못한 퇴물 배우가 된다. 생일을 맞이해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지만 거울 속 주름지고 더는 탱탱하지 못한 가슴을 보자 우울하기만 하다. 오랫동안 고정이었던 쇼에서 쫓겨나고, 자신의 얼굴이 붙어 있던 광고판이 찢겨 나가는 걸 보는 순간 사고까지 당해 최악의 생일을 맞이한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지만 자신의 꼴이 처첨한 엘리자베스는 좌절감에 눈물을 터뜨린다. 그때, 한 젊은 남자 의사가 그녀의 척추를 꼼꼼히 살피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잔뜩 지친 채 노란 코트를 입고 거리로 나온 엘리자베스는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그가 몰래 남긴 무언가를 발견한다.
THE SUBSTANCE
iT CHANGED MY LiFE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한 색상과 사운드를 통해 ‘욕망’을 드러낸다. 수위도 굉장히 높고, 관객이 불쾌함을 느낄 지점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말 그대로 절정에 치닿는다. 등장하는 색은 크게 빨강, 파랑, 노랑으로 나뉘는데 엘리자베스뿐만 아니라 하비와 투자자들, 대중들의 욕망이 드러나는 곳인 방송국(제작사)과 광고판을 대부분 붉은 색감이다. 하비의 옷도 주황색 계열이나 붉은 옷이 많고,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를 찾으러 갈 때 들고 있는 가방도 붉은 색이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노른자 같은 코트와 새빨간 가방. 그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영화는 색감을 통해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엘리자베스의 나은 버전인 ‘수’의 색은 분홍색이다. 엘리자베스와 방송국의 새빨간 욕망 비슷하지만, 비교적 덜 노골적이고 싱그러워 보인다. 마치 엘리자베스의 욕망까지 젊어진 듯 훨씬 생기 있고 당돌한 수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색감이다.
그와 대비되는 파란색은 엘리자베스가 공허와 허망함을 느끼는 집에 많이 등장한다. 수로 살아갈 때는 따뜻한 햇빛이 들어오는 집이, 다시 원형으로 돌아오면 아주 차가운 물 속처럼 시리도록 푸르다. 당당한 수는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젊은 몸을 즐기는 반면 자존감도, 자신감도 떨어진 엘리자베스는 그저 지난 영광을 그리워하며 불도 채 다 켜지 않고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낮에는 청소하는 사람들이나 TV를 피해 화장실만큼 하얀 벽 뒤로 숨을 뿐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수가 만족스런 숨을 뱉으며 침대로 뛰어들 때의 색도 푸른 계열인 것이다. 다만 엘리자베스의 파란색이 원색이라면, 수가 누운 침대의 파란색은 훨씬 짙어 남색에 가깝다. 이는 외로움이나 공허가 아닌 젊음과 명예에 대한 수의 강렬한 소유욕에 더 가깝다.
화장실과 서브스턴스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은 거부감이 들 정도로 하얗다. 현실에서도 화장실은 매일 무언가를 만들고 없애는 공간이다. 배설물도 그렇고, 묵은 때를 씻어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곳이기도 하며 동시에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공간이자 새로운 내가 태어나는 곳엔 오로지 흰색과 검은색만이 존재한다. 마치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여 선택에 변명의 여지가 없게 만든 공간처럼 느껴진다.
잔인한 장면만큼 불쾌감을 자아는 인물이 있다. 방송국 대표인 ‘하비’이다. 그는 <셰이프 오브 워터>에 나오는 스트릭랜드처럼 볼일을 보고 손을 닦지 않을 뿐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새우를 더럽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인물이다. 그의 입안에서 처참하게 으스러지는 새우의 살점을 보며, 엘리자베스는 불쾌함을 감추지 못한다. 어쩌면 하비가 그 자리에서 먹어 치운 것은 새우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껍데기만 남은 채 그 앞에 쌓인 새우 머리는 엘리자베스‘들’을 연상캐한다.
수의 욕심으로 인해 둘은 완전히 균형을 잃는다. 관절이 완전히 뒤틀리고 급속도로 늙어버린 엘리자베스는 하비가 준 프랑스 요리책을 보며 난잡하게 요리한다. 칠면조 안으로 손을 욱여 넣고 내장을 뽑으며 토크쇼에 나온 수를 향해 저주와 비난을 퍼붓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꼭 동화에 나오는 마녀같다. 기괴하게 뒤틀린 다리와 잔뜩 빠진 머리, 툭 튀어나올 정도로 굽은 등은 어딘가 익숙하다. 이전의 건강함마저 잃은 그녀는 차마 잠들어 있는 수를 헤코지하진 못하고 다른 살덩어리들을 폭행한다. 음식은 먹으면 피와 살이 되어 육신을 이룬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몸을 거부하듯 폭력적으로 요리하며 집을 엉망으로 만든다.
결국, 괴물처럼 변한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 종료를 선택한다. 그러나 수가 죽을 거라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둘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젊고 건강한 몸의 수는 엘리자베스를 무참하게 죽이고 새해 전야 쇼에 나가기 위해 급하게 준비한다. 그녀를 위해 준비된 파란 드레스는 신데렐라의 드레스와 흡사하다. 원형인 엘리자베스가 죽자, 수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듯 치아와 손톱이 빠지고 귀가 떨어지며 천천히 몸이 해체된다. 호박 마차도, 요정 대모도 없는 수에게 유일하게 남은 건 1회 사용 후 폐기해야 했던 서브스턴스 약물 뿐이다. 악착같이 달려 화장실로 뛰어간 수는 남은 서브스턴스를 주입하며 ‘더 나은 나’를 태어나게 한다.
유리병에 담긴 매혹적인 초록색 약물. 먹으면 죽는 독사과처럼 위험한 걸 알면서도 자꾸 원하게 되는 이 약물은 지독한 함정이다. 1회 사용 후 폐기하기에는 너무 많이 남는 양,‘REMEMBER YOU ARE ONE’이라고 계속 강조하면서 막상 종료했더니 완전히 둘로 나뉘어지는 것, 그리고 결코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 증거이다.
괴물이 된 수와 엘리자베스는 푸른 드레스를 입고 모두가 고대한 새해 전야 쇼장으로 향한다. 그토록 원했던 환호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위에 선 ‘몬스터 엘리자베스 수’는 자신의 젊은 몸과 섹스 어필을 원했던 관객들을 위해 엉뚱한 곳에서 가슴을 뱉는다. 그리고 팔이 뜯어지자 터진 피 분수를 모두에게 선사한다. 거리로 나온 몬스터 엘리자베스 수의 몸은 천천히 무너지고 뜯어진다. 잔뜩 뒤틀린 등에 힘겹게 붙어 있던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지난 영광의 자리로 힘겹게 기어가 쏟아지는 별을 감상한다. 그 주변으로 영화 내내 인서트 컷으로 등장했던 야자수가 보인다. 마치 네가 여기로 돌아올 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Relative contents
-
- 귀여운 캐릭터의 유통기한이란
* <미니언즈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미니언즈2 (2022)
감독: 카일 발다
출연(목소리): 스티브 카렐, 타라지 P.헨슨, 양자경 등
장르: 애니메이션, 코미디
러닝타임: 87분
개봉일: 2022.07.20
미니 보스와 미니언들의 본격 성장기
트릴로지로 구성된 <슈퍼배드> 시리즈는 악당 '그루'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라면 스핀오프 <미니언즈> 시리즈는 말그대로 그루의 조력자 겸 친구로 등장했던 미니언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작품이다. <슈퍼배드>의 프리퀄로서 미니언이라는 종족의 기원부터 이들이 어린 그루를 만나게 되는 초기 서사를 그렸던 전편에 이어 2편은 11살이 된 그루와 미니언들의 본격적인 성장기를 담고 있다. 6인의 악당을 동경하는 '그루'는 미니언들과 함께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소한 말썽을 피우는 게 전부이지만, 세계 최고의 악당이 되기를 꿈꾼다. 6인의 악당에 한 자리 공석이 생겨 면접을 보러 간 그루는 어리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무시를 당하자 눈앞에서 스톤을 훔쳐 달아나버린다. 하지만 말썽쟁이 미니언 '오토'가 스톤을 잃어버리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그루마저 늙은 악당 '공포의 검은 장갑'에게 납치를 당한다. 그렇게 그루를 구하기 위한 모험을 떠나는 미니언, 그루를 쫓는 악당들, 그리고 잃어버린 스톤을 찾기 위해 떠난 오토의 좌충우돌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신 없는 플롯, 핵심 스토리의 부재
<미니언즈2>는 기존 시리즈 작품들처럼 러닝타임이 짧지만 중심 플롯이 세 개나 등장하기 때문에 많은 사건들과 캐릭터들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미니언즈'의 핵심은 심플함과 직관적인 코미디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플롯을 활용하면서 그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미니언을 두 팀(주인공 3인조와 오토)으로 쪼개고, 그루마저 이들과 떨어뜨려 놓아 함께 있을 때 시너지를 이루는 주인공들의 매력적인 합을 보기가 쉽지 않다. 또한, 중심 축이 되는 스토리라인 부재도 아쉽다. 가장 많은 분량을 가져간 '케빈-밥-스튜어트'의 쿵푸 액션 도전기는 슬랩스틱 개그와 시각 효과를 제외하면 별다른 내용이 없다. 반면 <슈퍼배드>와의 연계성을 가져간 그루의 서사는 떡밥 회수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제공하나 본작이 <미니언즈> 시리즈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 또한 의미 있는 구성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루'와 '미니언'의 비중이 비등비등하게 반영되어 본작이 <미니언즈> 시리즈인지 <슈퍼배드> 시리즈인지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 영어 대사를 소화하지 않는 미니언들이 무작정 큰 비중을 가져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슈퍼배드> 시리즈와 이어지는 '그루'의 서사가 꽤나 중요하게 다뤄지면서 미니언들은 그저 코믹하고 귀여운 요소로 활용되는 것에 그친다. <미니언즈> 전편은 <슈퍼배드>의 주인공인 '그루'가 등장하지 않았지만 마성의 매력을 가진 미니언들만으로 작품을 꽉 채우는데 성공했던 터라 스핀오프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살리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귀여운 매력만으로는 분명한 한계
<슈퍼배드>도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시리즈를 이끌어 왔고, 이러한 롱런의 비결로는 시리즈 초기까지 감초에 불과했던 미니언들의 커진 존재감을 꼽을 수 있다. <미니언즈> 1편은 탄탄한 스토리라인 없이 오로지 미니언들의 귀여움과 코믹한 캐릭터성만을 내세워 <슈퍼배드> 시리즈를 넘어서는 수익을 거두는데 성공했을 정도다. 완성도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오로지 캐릭터의 인기만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시리즈물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대단해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후속작 제작이 지속되면서 더 이상 귀여움만으로는 승부수를 띄우기 어려운 구간에 도달한 듯하다. 미니언의 캐릭터 쇼만으로 작품을 채우기에는 한계가 있는데, 더 이상 이들과 함께 풀어나갈 스토리나 매력적인 사건들이 없다. 사실 몇 편 째 어설픈 빌런과 그루/미니언의 대결 구도만으로 작품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후속작인 이번 작품 역시 흥행에는 성공하고 있지만, 제작이 확정된 <슈퍼배드4>와 그 이후에도 프랜차이즈를 계속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면 날이 갈수록 유치함만 더해지고 있는 각본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줄거리 없이 캐릭터의 인기만으로 흥행을 거두었던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과거에도 많았다. 하지만 빈약한 시나리오 문제는 시리즈가 지속됨에 따라 귀여운 매력의 약발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미니언즈> 시리즈 또한 이와 같은 길을 걷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
- 어린 우울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기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출처 : 왓챠피디아
"나는 쓸모없는 사람일까?"
한 고등학교 교실의 쓰레기통에서 주인 모를 유서 내용의 편지가 발견된다.
대입 시험을 앞두고 교감은 이 일을 묻으려고 하고, 정 선생은 우선 이 편지를 누가 썻는지부터 찾아보자고 한다.
"일기야, 안녕? 오늘부터 매일 일기를 쓰기로 했어"
편지와 학생들의 글씨 모양을 비교하던 정 선생은 편지 속 한 문장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든다.
열심히 쓰다 보면 바라던 어른이 될 거란 믿음으로 써 내려간 열 살 소년의 일기.
정 선생은 일기를 읽으며 묻어뒀던 아픈 과거와 감정들을 마주하고, 학생들을 위해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데...
/
영화의 줄거리와 대표 스틸컷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연소일기>는 이른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심리적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어린 아이와 그런 아이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한 선생님의 이야기로 보여진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니, 단편적으로 스토리를 정리하자면 잘못된 내용은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보고 느낀 스토리는 위 내용이 주가 아니었다.
나는 보통 '공포'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가 아니면 정말 명작이라고 떠들썩한 작품(예를 들면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같은)이 아닌 이상,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 <연소일기>는 이런 예외에 속하는 한 작품이었다. 2024년 11월 13일 개봉일 한참 전부터 포스터 디자인과 스틸컷에 나온 분위기, 스토리 등에 흥미가 생겨 '꼭 봐야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이유인 즉슨,
출처 : (왼)네이버 영화 포토, (오)왓챠피디아
소년의 굳은 표정이며, 시선 처리, 낮게 가라앉은 분위기, 영화 제목의 배치, 색감 등 꽤나 완벽한 포스터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짙은 새빨간 배경색은 옛 홍콩영화의 눅눅한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내는 듯한 느낌을 주어 직관적으로 호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반면에 푸른 색감으로 구성된 포스터는 인물의 배치 자체가 조금 더 여백이 느껴지기는 하나, 그에 따라 이미지에 집중된 포스터보다는 확실히 영화의 내용이나 메시지 자체를 전달하기에 더 효과적이라고 느꼈다. 소년의 얼굴에 집중하여 복합적인 심리를 드러내는 방식과 소년이 처한 환경을 기반으로 심리를 추측하게 하는 방식이 각각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어 흥미롭기도 했다.
출처 : 왓챠피디아
위 두 가지의 스틸컷 또한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학교/학업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의자의 완벽한 배치와 그 가운데 텅빈 공간으로 인해 역으로 압박감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듯한, 나선형의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중심에 서 있음으로써 혼자서는 쉽게 파악할 수 없고 답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 처하고 있을 서사를 가늠하게 하는 주인공의 스토리가 너무 궁금했다.
익히 알고 있겠지만, 홍콩영화는 현재 왕가위 감독의 작품들로서 존재감을 잇고 있을 뿐 최근에 이르러 입에 오르내릴 만한 명작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홍콩영화 특유의 시그니처로 다시금 부상할 수 있는 작품이 기대되는 타이밍이었고, <연소일기>가 그러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어 감각적인 포스터와 스틸컷에 대한 호감과 더불어 기대감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
포인트1. 등장인물이 처한 갈등상황을 다루는 방식
극 초반까지는 주인공이 겪는 학업 스트레스/가정폭력, 정 선생이 겪는 직장 스트레스/유서 쓴 학생에 대한 걱정, 학생들 사이에 만연한 학교폭력/방관 등 '학교'라는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불행'을 그저 가볍게 늘어 놓는 수준이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으나 결말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수습하는 연출 덕분에 다행히 불쾌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보통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의 여러 갈등상황을 나열하다보면, 어느 하나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감독 마음대로 취사 선택하여 실제 그러한 불행을 겪고 있을 사람들에 대한 예의 없이 나몰라라 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연소일기>는 각 에피소드를 가볍게 여길 의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나 결과적으로 어느 하나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어느정도 수습하여 마무리한 정도에 불과했다.
여느 등장인물보다도, 학생들에 대한 집중이 가장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주인공의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학생들의 서사를 사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보고 난 후에도 계속되는 물음이 있다. 그래서 유서를 쓴 학생은 정확히 어떤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나? 그저 지나가는 성장통이었을까? 잠시만, 옆 학교에서 죽었다던 학생은 뭐였지? 왜 옆 학교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학교에서 발생한 유서를 언급하지? 빈센트(극중 학교폭력을 당하던 남학생)는 학교에서 대놓고 폭력을 당하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그렇게 지나가는 건가? 그렇게 오래 고통 받았는데도, 마지막 인사로 치유가 되는 것인가? 등...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얻을 수 없다.
포인트2. 각 나이대의 감정, 경험에 대한 고찰
개인적인 경험에 빗대어 생각하자면, 나 또한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대에 우울을 경험했었기에, 사실 지금에 와서는 그 감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고 희미한 감각일 뿐이지만, 그 당시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감정이었던 것은 확실히 기억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도 우울을 받아들이는 나의 심리적 대처방안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힘든 감정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내 방식은 극중 주인공과 너무나도 달랐다. 극중 아버지에게 훈육이라는 핑계 아래 심각한 폭행을 당하고, 어머니에게 다정함을 조금씩 경험하다가 한번씩 감정적으로 심하게 상처 받고, 유일한 또래인 동생에게 기대어보고 싶지만 늘 무시 당하는 주인공은 '애착인형'과 '만화책 속 대사'만으로 희망을 갖고 삶에 임하는 어찌 보면 과하게 순수한 반응을 보인다. 작품 곳곳에 나오는 주인공의 나레이션도 어린 아이답게 늘 밝다. 유소년 시절에 겪는 우울증을 더욱 심도 있게 표현했다면 영화 분위기와도 조화로운 모습을 보이며 더욱 효과적인 메시지를 던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동심'을 <연소일기>만의 방법으로 연출하고 싶으셨을 것으로 판단된다. 어린 주인공의 대처방식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루어진 시선을 접어두고 납득할 수 있다. 각자의 방식은 충분히 다를 수 있고 감독님께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을 통해 표현하셨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정 선생이 학창시절 우연히 만난 연인 또한 인형을 좋아하고 혼자 목소리 내고 논다는 설정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더빙하는 걸 좋아하고 어른이 되어 어엿한 성우로서 전문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알 거 다 아는 학생이 혼자 놀 때 인형을 가지고 그렇게 논다는 부분은 조금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플롯에 있어 사소한 영향을 끼칠 뿐이지만, 나는 이러한 사소한 디테일에 거슬리면 작품 전체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거 같다.
포인트3. 눈에 띈 연출 방식들
1)
정 선생이 아내에게 남자애 목소리를 왜 내냐며 단순히 로맨스를 연출한 줄 알았던 장면이 마지막에 서사가 다 풀어지며 감정이 짙어지는 타이밍에 주인공의 일기장을 그 목소리로 읽어주는 포인트로 활용한 방식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2)
처음 유서를 발견하고 어떤 학생이냐며 찾아 나서는 정 선생이, 반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그 학생의 목소리로 유서의 한 대목을 읽고, 또 다른 학생이 이어서 읽음으로써 유서 내용이 완성되는 연출은 매우 좋았다.
3)
당연하게도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의 정 선생이 동일시되는 연출로 쭉 이어지는 줄 알고 왜 이렇게 예상하기 쉬운 플롯으로 구성된 걸까, 싶었는데 한 번에 주인공의 동생으로 뒤집는 연출 타이밍이 정말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해당 씬 직전까지도 정 선생이 동생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은연중에 영화를 쉽게 판단하던 내 마음이 어린 정 선생이 주인공을 무시하고 은근히 자기만족감을 충족했던 것과 연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4)
스틸컷과 다른 분위기의, 대부분의 컷들이 과도하게 흔들리고 불안정하도록 연출한 부분도, 전체적으로 가벼운 분위기로 연출되어 무거운 주제를 보고 나왔음에도 마음 속에 무겁게 남는 무언가가 없었던 것도, 각 등장인물마다 심리적인 충격을 받을 때 삐ㅡ 소리로 일차원적인 본능을 건드려 심리적 불안을 조성하는 연출도 크게 취향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5)
엔딩 장면도, 엔딩으로 향하는 빌드업도 내 취향이 아니었다. 주인공에게 무자비한 물리적/심리적 폭력을 일삼았던 아버지는 죽을 때 돼서 갑자기 왜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며, 이 부분을 왜 감정 해소의 절정 씬으로 활용했는지 의문이었다. 또한, 작품이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는 주인공으로 시작했기에, 그러한 주인공의 옛 심정을 이해해보려 하는 정 선생(주인공의 동생)의 현재 장면과 함께 수미상관으로 마무리되는 건 예상 가능한 범위이기도 했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엔딩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주인공의 모습이 왜 나온 걸까? 애초에 판타지 장르도 아니거니와 현실 고발에 가까운 메시지를 계속해서 던지다가 지금의 정 선생과 어린 시절의 형을 둘의 추억 아닌 추억이 존재하는 옥상에서 마주하는 연출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도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두 인물의 복합적인 심리를 다시금 느낄 수 있도록 마무리해준 연출은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백록
-
- 최은영 작가 소설 원작 '그 여름' 리뷰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 여름
(2023.06.07 개봉)
감독: 한지원
더빙: 윤아영, 송하림 등
'그 여름'은 최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였고
라프텔에서 6회짜리 애니메이션으로 공개된 적이 있더라고요
이 소설을 재미있게 봤던 저인지라 굉장히 기대하며 보았고
생각보다는 실망했단 평입니다
아무래도 15,000원 주고 볼 만한 값은 못하더라구요...
왜 실망했는지, 좋았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자세하게 말해 볼게요!
동자를 가진 평범한 학생 '이경'.
여름 햇살을 닮은 고교 축구선수 '수이'.
열여덟 살의 여름, 얘기치 못한 사랑에 빠진
이경과 수이는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며 스물을 맞이한다.
대학에 진학한 이경과 달리
수이는 바로 사회에 뛰어들고,
낯선 행복과 사소한 오해 속에서 새로운 계절을 마주한다.
영화 <그 여름> 줄거리
좋았던 점부터 말해 보자면 담담한 영화였단 거예요
'그 여름'은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요
그들이 왜 동성끼리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가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아서 좋았고
지나친 스킨십과 여성성을 강조하는 장면들이 없어서 다른 동성애 영화들과 차별화 되더라구요
아무래도 동성애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대부분이 청불을 걸고 본격적인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 여름'은 12세 관람가! 적절한 거 같아요
그리고 청춘의 사랑을 배경으로 한 만큼
동성애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 + 일반 커플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를 동시에 다루고 있습니다
학생 시절엔 남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죄책감을 보여 주고
성인이 된 후에는 학생 신분의 이경, 사회인 신분의 수이를 번갈아 비추며
둘의 상황과 배경이 달라 서로를 공감하기 어렵고 배려하는 마음만 커지는 걸 보여 줘요
이경은 수이의 힘듦을 함께 공감하고 싶은 사람이고
수이는 자신의 힘듦을 공유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거든요
또 이경은 수이와 모든 것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고
수이는 이경에게 더 멋진 미래를 선물하기 위해
지금 당장 이리저리 치여야만 하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척하다가,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끝을 맺게 되는 게
대다수의 커플 이야기잖아요...
그 감정선을 굉장히 섬세하게 나타낸 영화라서 캐릭터 공부로는 최고겠더라구요
아, 다만 그런 중간에 은지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요
자신과 대화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이경에게는 최고의 여자가... 나타난 셈이었어요
그게 곧 환승으로 이어지는 거라,, 그 점은 좀 별로더라구요
그렇다면 아쉬운 점은 무엇이었느냐?
이야기 전개가 굉장히 빠르고 엔딩을 애매하게 끝내 버렸어요
아무래도 61분짜리 애니메이션이다 보니까 전개가 빠를 수밖에 없었는데요
연애 -> 권태기 -> 이별의 속도가 빨라서
소설 만큼의 감정 변화를 느끼기 어렵더라고요
씬마다 바뀌는 이경의 마음을 따라가기 벅차요
그리고 이경이 은지와의 바람으로 이별 통보했을 때
수이의 마음이 온몸으로 느껴지기보다는 그냥...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주인공이 바람피우는 캐릭터면 이런 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엔딩은 수이를 그리워하는 이경의 모습으로 끝내는데
사실 요런 장면에선 한국인이 기대하는 바가 생겨요
저 멀리 수이의 모습이 보인다...... 라거나 하는... 열린 결말 말이에요
그런 거 일절 없고 걍 진짜,, 추억만 하다 끝나요
아, 다만 이별 장면을 포함하여 모든 장면들의 대사가 정말 좋았어요
(사실이건최은영작가님솜씨지만^^;;)
그래도 중요한 부분은 자막 처리하기도 하고 나름 센스 있는 연출을 했더라구요
정확한 대사가 기억이 안 나는 관계로 ㅠㅠ
소설 보며 필사해 두었던 문장 몇 개만 쓰겠습니다 . . .
"수이 네가 없는 곳에 행복은 없어."
"날 용서해 줄래."
"내가 널 힘들게 했다면.
그게 뭐였든 너에게 상처를 주고 널 괴롭게 했다면."
한국 애니메이션 기술이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일본을 따라가진 못한다고 생각하는 저인데
그림체부터 모션까지 굉장히 좋더라구요??
나름 재미있게 봤던 '그 여름'이었고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을 영화화 한 거다 보니...
후다닥 끝나는 결말만 아니었다면 더욱 좋았을 듯해요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선우정아님 도망가자 나오는데
그때 눈물 또르르입니다 ㅠㅠ)
-
- 디즈니치곤 심심하게 격려하는 '꿈은 이루어진다'
성덕될 뻔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할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아샤다. 씩씩한 아샤. 아샤는 로사스에 살고 있다. 로샤스는 마법의 왕국이다. 이 왕국의 왕은 매그니피토다. 매그니피토는 1년에 한 번씩 지역 주민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매그니피토를 마음속으로 깊게 존경하고 있는 아샤. 할아버지의 꿈을 이루고 ‘성덕’이 되기 위해 왕의 수습생이 되기 위한 면접을 신청한다. 두근두근 설레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면접 당일날이 됐다. 친구들의 응원을 받고 면접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샤의 꿈이 깨졌다. 매그니피토에게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는 아샤. 아샤는 매그니피토의 꿈을 제지하기 위해 또 다른 소망을 키우기 시작한다.
소원을 빌어
이 영화의 핵심은 꿈이다. 사실 꿈이라는 소재를 예고와 포스터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에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위시>는 꿈을 단순히 소재로만 쓰지 않았다. 플롯의 핵심으로 가져온 것이다. 대표적으로 문제의 발생과 해결방식에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 영화가 상정한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조명하고 싶었던 건 소원의 낭만적인 속성이다. ‘내가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났으면 좋겠어!’라고 바라는 것처럼 사람마다 갖고 있는 막연한 희망을 다룬 것이다. 이 영화의 인물들도 이런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다. 또 이 희망을 이뤄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 이 영화의 위기상황은 ‘이 희망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다룰 때 발생한다. 일의 마무리는 글쓴이가 위에 적었던 다른 꿈의 속성에 근거해서 끝난다.
플롯의 핵심이 아니더라도 꿈을 소재로 다룬 방식도 흥미롭다. 인물의 내면과 꿈의 관계를 연결시키고 있기도 하고 상징화된 무언가를 캐릭터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이 두 요소는 영화를 상큼 발랄하게 만드는 중요한 소재기도 하다. 우선 인물과 꿈의 관계도 영화가 생동감이 생기는 요소기도 한다. 인물들이 꿈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꿈에 대해서 어떤 리액션을 보여주고 있을까? 이 두 질문에서 읽을 수 있는 이 캐릭터들의 모습은 우리가 어렸을 때 봤던 디즈니의 동화책에서도 읽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또 영화 캐릭터에 ‘별’과 ‘마법’이 등장하는 이유도 꿈이 핵심 소재이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둘은 영화에서 특별히 힘을 줬다. 꿈의 속성만 강조하는 선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중요하게 강조한 것이다.
동화책을 읽듯
이 영화를 보다 보면 기획한 의도가 무엇인지 체감이 된다. 글쓴이는 디즈니가 우리가 알고 있는 디즈니 100년 역사를 이 <위시>를 통해 핵심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위시>의 핵심은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격려다. 사실 이 격려가 영화의 소재로 쉽게 전달할 수 있어서 설정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들이 이 전제조건을 아래에 두고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인어공주>도 ‘인어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망을 비는 것으로 시작한다. <피터팬>도, <백설공주>도, 심지어 <소울>와 <엘리멘탈>, <주토피아>도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디즈니 100년간의 필모그래피를 한 번에 요약할 수 있는 문장을 <위시>의 핵심으로 보여준 것이다.
또 이 영화는 전적으로 동화처럼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비판을 많이 받음과 동시에 기획의도를 잘 살렸다고 볼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 풀어쓰자면 이 영화 플롯의 연결고리들이 왠지 불안정하다. 인물이 다른 인물들과 상호작용하는 느낌이 없는 것이다. 알기 쉽게 설명해 보자면, 글쓴이가 지금 앉아있는 카페 사장님에게 A라는 메뉴를 시켰다고 하자. 그런데 사장님은 느닷없이 ‘A는 별로니까 그냥 B 드세요!’라며 새로운 음료를 가져온다. 이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일어날 확률이 적다. 사장님은 글쓴이와 소통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플롯은 앞 문장에서 적었던 예시 사례 같은 느낌이다. 어떤 캐릭터가 있으면 이 영화의 특정 사건이 일어날 일이 없다. 그런데 캐릭터 각자 자기 개성은 강해서 이질감이 든다. 또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근거가 부족해 다른 캐릭터들이 수습하기 바쁜 형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존재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기 쉽다. 또 어떤 관점에서는 인물들이 상호 간의 작용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룰 하에 행동한다. 주인공 아샤의 친구들이 그 근거다. 이런 것들이 이 영화를 상투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다. 문제 해결까지 개성 있게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내내 납작한 채로 뭉특한 것이다.
양가감정이 드네
글쓴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것과 아쉬운 것이 같다. 바로 별 캐릭터다. 이 영화에서 별은 사랑스러운 매력을 풍기며 중반부 이후를 이끈다. 별은 정말 귀엽다. 특히 '힝-' 하는 표정이 아주 인상 깊다. 이 영화가 윗 문단에서 썼듯 상투적인 느낌이 강한데, 이런 플롯에 별 캐릭터는 극에 생동감을 부여하며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인다. 사실 이 영화를 기대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별 때문이라도 글쓴이는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쓴이는 주인공 아샤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이유로 이야기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말이 있다. 글쓴이는 이 별의 존재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생각한다. 이 캐릭터가 할 수 있는 능력이 모호한데, 이 영화가 이를 악용하는 것이다. 이 별의 정체를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풀었다면 이야기에서 의문부호가 드는 지점이 확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부분을 섬세하기 챙기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이 캐릭터를 기획한 의도가 궁금해진다. 다른 캐릭터들은 디즈니의 기존 필모그래피를 연상케 하는 요소가 있지만 별에겐 부족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별은 그냥 단순히 귀여우면서 일만 해결하라고 들어간 캐릭터인 걸까? 단순히 캐릭터가 귀여운 것이 영화의 많은 부분이 차지한다면 사실 그동안 봤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에 좀 못 미치는 것이 아닐까?
기억이 안 나요
이 영화의 장르 특성 중 하나는 뮤지컬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에 들어간 삽입곡이 별로 기억 안 난다. 최근작 <엘리멘탈>에서 Lauv가 불렀던 노래가 인기를 끌고, <겨울왕국>에서 ‘Let it go’가 전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는 것과는 영 정반대다. 그런데 영화에서 음악이 중요하게 들어간다. 플롯을 잇는 연결고리인 것이다. 이런 물리적인 분량과 디즈니의 필모그래피를 생각해 본다면 많이 아쉽다.
하지만 이 영화가 확실하게 성공하하고 있는 지점도 분명 있다. 바로 기존 디즈니 영화들을 오마주한 것이다. 영화 대사에서도 직접적으로 등장하고 몇 장면은 직접 비유하기도 한다. 또 이 영화 자체가 기본적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장면이 몇 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디즈니의 팬들이라면 한 번쯤 관람을 고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 이민자 가정이 겪는 정체성 혼란을 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정착한다. 자신에게 익숙한 고향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나라에서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해외로 발걸음을 돌린다. 그 새로운 곳에서 정착하기 위해 이민자의 삶을 택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작은 일부터 시작해 조금씩 수입이 괜찮은 일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 겨우 자리잡을 수 있을 때 즘에 자신의 모습을 보면 이미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들은 이민1세대로 타국에 살아남아 2세들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선사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한다.
처음 이민을 갔던 부모세대들은 그들 자신을 보살피느라 고향에 남은 가족들을 세심히 살피지는 못한다. 늘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 하지만 먼 거리와 당장 해결해야 하는 생계문제 때문에 긴 시간 방문할 기회를 놓쳐버린다. 또한 그들의 자녀들을 챙기는 시간까지 더하면 그들이 느끼는 고향의 거리감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이민간 나라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부모세대 보다는 좀 더 적응이 빠르지만 그들의 삶 내내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 사람의 자녀라면 그는 한국사람 일까, 미국 사람일까. 어쩌면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한번즘은 고민하고 있을 질문이다.
미국내 중국계 이민자 빌리 가족의 이야기
영화 <페어웰>은 미국에서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는 빌리(아콰피나)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다. 빌리는 아빠(트지마)와 엄마(다이애나 린)과 함께 뉴욕에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아직 완전한 독립 생활을 하지 못하는 빌리지만 중국에 있는 할머니(자오 슈젠)와 통화하면서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할머니에게 위로 받으며 기운을 내고 생활해 가던 빌리는 할머니가 폐암으로 몇 개월 내에 돌아가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할머니가 금방 돌아가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할머니 본인에게는 하지 못한다. 할머니 외의 모든 가족들은 죽음의 순간 직전까지 할머니에게 비밀을 말하지 않기로 한다. 영화는 이 상황에서 가족들과 빌리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를 천천히 보여준다.
빌리의 할머니는 두 아들이 있지만 큰 아들은 일본으로, 작은 아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따로 살고 있다. 자식들을 해외로 보내고 20여년이 넘게 중국에서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의 형제와 친척들과 교류하고, 또 해외의 손주들에게 전화하면서 그 외로움을 달랜다. 꽤 외로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가 비추는 할머니의 모습은 시종일관 밝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이 그동안의 외로움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가족들이 중국으로 돌아와 모이게 된 공식적인 이유는 큰 아들의 아들 즉, 할머니의 손자가 결혼식을 하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할머니가 있는 중국에서 하게 되면서 20여년 동안 한 자리에 모이지 못했던 모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다. 결혼식은 아주 기쁜 일이지만 할머니를 제외한 모든 가족의 표정은 아주 어둡다. 할머니에게는 그 결혼식이 정말로 축하하는 집안의 경사지만, 다른 가족들에게는 죽음을 앞둔 할머니의 환송회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게 대조되는 모습 자체가 그렇게 우울해 보이지 만은 않는다. 그 행사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합쳐져 따뜻함과 미소로 돌아온다. 그래서 영화는 죽음을 다루지만 시종일관 따뜻함을 유지한다.
이민자 2세 빌리가 겪는 정체성 혼란
빌리는 할머니와 20여년을 떨어져 살았지만 그에게 할머니는 꽤 소중한 존재다. 늘 자신의 편이 되어주고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할머니가 곧 돌아가신다는 말을 들은 빌리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단 한치의 주저함도 없는 빌리의 모습은 그가 중국에 있는 가족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빌리는 이민자 2세대로써 미국에서조차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자신이 중국 사람인지 아니면 미국 사람인지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또한 빌리의 아버지 세대도 이런 혼란을 겪는 장면이 나온다. 한참 식구들과 식사를 하며 대화하고 있는 중간, 누군가 묻는다. "중국 사람이에요? 아니면 미국 사람이에요?". 빌리의 큰 아빠는 자신은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하지만, 빌리의 아빠는 자신은 미국 여권을 들고 다니므로 미국 사람이라고 이야기 한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고국에서 오랜 시간 떨어져 살게 된 이민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이민자들을 바라보는 주변인의 태도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다. 빌리가 할머니 댁 근처 호텔로 가서 자신의 방으로 갈 때, 짐을 들어주던 직원이 묻는다. "중국이 더 좋아요? 미국이 더 좋아요?". 이 단순한 질문을 빌리는 회피하려 한다. 사실 주변인의 시선에서는 이 질문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되겠지만 빌리에게는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빌리는 중국인이기도 하지만, 미국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직원의 질문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과 동일한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민자들에게는 고국도 소중하고 자신의 생활터전인 국가도 소중하다. 어느 것을 선택해 선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는 그런 상황들을 작은 에피소드 형태로 보여주며 그들이 항상 처하게 되는 난처한 위치를 관객에게 전한다.
동양적 정서와 서양적 정서 사이에서 갈등하는 빌리
영화는 이런 이민자들의 혼란스런 상황을 보여주면서도 분명한 한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바로 가족이다. 빌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지만 그의 할머니에게는 빌리가 미국 여권을 가졌는지 중국 여권을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소중한 손녀이고 가족일뿐이다. 할머니는 영화 내내 빌리를 하나의 가족으로 대한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에게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옆에서 다른 식구들의 밥을 챙기고 손을 잡으며 이야기를 한다. 가족 간 티격태격 하는 상황에서도 할머니는 따뜻한 말로 각자를 설득해 나간다. 이것이 영화 <페어웰>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정서다.
사실 누군가 죽을 병에 걸리면 당사자에게 말하지 않는 행위는 전형적인 동양 정서다. 그것도 아주 구세대의 정서라고 볼 수 도 있다. 물론 지역이나 가족의 특성에 따라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곳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 <페어웰> 안에서는 이것은 꽤 중요한 정서로 인식된다. 그래서 빌리의 가족들은 할머니에게 차마 그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성장기를 보냈던 빌리는 그나마 가족 중 미국적인 정서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일 것이다. 그는 계속 할머니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부모님과 다른 가족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나간다. 하지만 가족 그리고 할머니와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 역시 가족의 전통대로 할머니에게 말하지 않는 결정을 한다. 그렇게 빌리도 그 가족의 일원으로 같은 결정을 내린다.
영화 <페어웰>은 감독인 룰루 왕의 개인적 가족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감독 자신이 중국계 미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왔고, 중국에도 친척들이 있다.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면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영화적 감성을 넣어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완성하였다. 또한 주인공 빌리 역을 맡은 배우 아콰피나는 과거에는 웃기고 재미있는 캐릭터를 연기해 왔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절제되고 슬픔을 억누르는 감성적인 연기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영화는 무엇보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민 가정의 모습을 잘 담고 있다. 어쩌면 자신의 나라에서만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민자 가정의 모습이 어떤지 알고 싶은 관객들이나, 또 가족 내 이민자가 있는 관객이라면 공감하며 볼 수 있는 따뜻한 영화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페어웰 영화 리뷰>
-
- 평범해진 벌크업
2019년 개봉한 영화 <샤잠!>은 북미 1억 4천만 달러를 포함해 전 세계 3억 6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작품이다.
"마블"을 비롯해 자사의 "DCEU"를 생각하면, 흥행이 조촐하다만 반응이 나쁘지 않았기에 곧장 속편 제작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개봉 일자가 미뤄졌고 겨우 잡은 일정은 <아바타: 물의 길>과 겹쳐 한 번 더 피하게 되었다.
근데, 이번에는 달라진 "DCEU"의 기조로 흥행을 한다 해도 3편 제작도 불투명하다. - <블랙 아담>의 흥행 실패로 전면적인 "리부트"를 선언했다!전작으로부터 여전히, "샤잠"으로 활동하는 "빌리"와 친구들의 앞에 "아틀라스의 딸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빌리"와 친구들에게 "샤잠"으로 변할 수 있는 슈퍼 파워를 빼앗으며, 도시와 가족들을 위험을 빠트리게 하는데...1. 점잖아진 성장
속편에 위치한 영화 <샤잠!: 신들의 분노>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시리즈"에 속한 작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작의 마지막부터 "빌리 뱃슨"을 비롯하여 "샤잠"이 늘어나 "팀"이 되었고, 이번 속편의 빌런으로 등장하는 "아틀라스의 딸들" 역시, 또 하나의 집단이다.
그러면서 "집단 vs 집단"으로 늘어난 캐릭터들로 커진 규모는 교통정리가 소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신들의 분노>는 특별하진 않지만, 벌크업을 이루는 데에 성공한다.이번 속편에 등장하는 메인 빌런 "아틀라스의 딸들"부터 설명이 필요하나 명료한 동기와 "헬렌 미렌"과 "루시 리우"로 맡은 배우들의 매력만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 "샤잠"은 설정에서 다양한 위인들의 재능을 하나씩 분배되어 당위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분산된 캐릭터성으로 '평면적인 캐릭터가 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걱정도 해보지만 이야기는 "빌리"의 성장담으로 "슈퍼 히어로의 고민과 성장"이라는 장르의 특성으로 이어진다.결국, 이번 속편 <신들의 분노>는 너무나도 평범해진 영화가 되었다.
전작 역시, 크게 도드라진 영화는 아니었지만 "유치함"으로 관객들의 호불호를 만들어 편을 가르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속편은 더 극으로 가는 게 아니라 중도를 지향하며, 전작보다 더 대중적인 영화가 되었다. - 이런 부분은 전작보다 더 나아졌다는 인상을 남긴다!2. 그래서, 뭘까?
하지만, 그렇기에 마땅히 특별한 점을 찾기가 어렵기도 하다.
그나마, 찾아본다면 중간에 불타버리는 "슈트"로 <블랙 아담>이 연상된다.
이외에도 <분노의 질주>와 같은 영화들을 말하는 "메타 발언", "애나벨 인형", 다리가 무너지는 장면은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등이 떠오르나 <샤잠!: 신들의 분노>를 봐야 하는 차별화까지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메인 빌런 "헤스페라"의 심리 변화와 갑작스러운 "저스티스 리그"의 캐릭터의 등장은 이야기의 개연성까지 따져볼 부분도 있으니 무난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tmi. 1 - 극 중. "캡틴 마블"이라고 불리는 장면이 있는데, "샤잠"으로 불리기 전에 해당 캐릭터의 이름이 "캡틴 마블"이었다.
· tmi. 1. 1 - 다만, 인수 과정에서 상표 등록을 "마블"에서 하면서 부득이하게 개명했다!
· tmi. 2 - 쿠키 영상은 2개이다.
-
-
-
- 영화 <척살소설가> 메인 예고편
6년 전 실종된 딸을 찾고 있는 관닝.
어느 날 그의 앞에 묘령의 여인 투링이 나타나
소설의 작가인 루쿵원을 죽이면 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거래를 제안한다.
이에 관닝은 그녀의 위험한 제안을 수락하고 루쿵원을 죽이기 위해 접근한다.
한편 루쿵원은 자신의 팬이라 밝힌 관닝을 그의 소설에 등장시키고
관닝은 곧 소설이 현실을 바꿀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현실을 바꿔 딸을 구할 것인가? 소설을 바꿔 딸을 구할 것인가?
소설과 현실이 이어진 평행이론의 세계관!
펜 끝에서 창조되는 새로운 세계의 문이 지금 열린다!
-
-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티저 예고편
디즈니·픽사의 [인사이드 아웃 2]가 새로운 감정들과 함께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