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징2023-02-03 10:14:19
연예인이 밥 먹여 줘? 네!
'케이팝 제너레이션' 리뷰 feat. 덕후의 이야기
케이팝 제너레이션
(TVING, (목) 16:00 공개)
크리에이터: 정형진, 임홍재, 차우진
지난 1월 26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예능 '케이팝 제너레이션'! 보셨나요? 1세대 아이돌 강타부터 4세대 아이돌 엔시티까지 다양한 보이그룹, 걸그룹이 나와 화제가 되었는데요. <케이팝 제너레이션>은 단순히 아이돌을 관찰하는 예능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팬의 이야기이자, K-POP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소위 '머글'도 다가가기 쉬운 프로그램이었답니다!
저도 케이팝 음악을 사랑하고 다양한 아이돌을 찾아보며 좋아하는 입장이지만 찐팬(??) 같이 앨범을 사고... 이런 적은 없거든요. 저에게는 생소한 문화지만 저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그리고 나에게 그런 사랑을 주는 이가 있다면 그건 정말 이상적인 관계다라고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그와 반대로 '탈덕'한 팬의 입장도 나와요
오세연 감독님의 '성덕'이란 영화 아시나요
10대 시절을 바쳤지만 스타에서 범죄자로 추락한 오빠
좋아해서 행복했고 좋아해서 고통받는
실패한 덕후들을 을찾아 나선 X성덕의
덕심 덕질기를 담은, 2022년 실패 없을 올해의 최애작!
영화 '성덕' 줄거리
말 그대로 내가 좋아하던 나의 연예인이 한순간에 범죄자가 되어... 팬을 그만두어야 했던 현실 자각 타임(?!)을 그린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슷한 예로 모 보이그룹의 멤버의 불미스러운 사생활이 터지자 '좋아해서 죄송합니다'라는 영상을 찍은 유튜버 '유덕모' 님의 영상도 있죠 ㅎㅎ 유덕모 님들도 케이팝 제너레이션에 출연하셨어요 ㅋㅋ
또한 케이팝 산업의 다양한 전문가 분들은 물론 실제 일본의 앨범 가게에서도 인터뷰를 따 왔고, LA 에이티즈 생일 카페에도 다녀오셨더라구요! 제작진분들이 정말 케이팝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서 이 나라 저 나라 다녀오신 흔적이 차고 넘쳐 . . . !! 고로 단순히 즐기기 좋은 예능 프로그램임과 동시에 K-POP 업계에 관심 있는 분들이 보기 좋은 현장감 생생한 다큐 같기도 하다는 점!
시청은 TVING에서 하실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바라요~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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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와그작
미국의 어느 도시. 평범한 10대 소녀인 매런은 학교를 다니고 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어울려 다니는 매런. 다른 국적의 10대들과 다를 바 없이 지내고 있다. 오늘은 우리 집에 올래? 매런을 초대하는 친구들. 매런은 당연히 오케이다. 주인공 매런은 그냥 평범한 10대 소녀다.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매런. 어머니가 아주 어렸을 때 매런 가족의 곁을 떠났다. 아버지와 함께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었던 매런. "잘 자요, 아빠!" 다른 날과 비슷하게 아버지에게 인사하는 매런.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대로 자면 뭔가 아쉽다. 일과 때 친구들과 했던 약속이 떠오른다. 방에 있는 창문을 열고 신발을 신은 다음 조심조심히 밖을 나가는 매런. 아버지 모르게 친구 집에 도착한다. "매런, 왔어?" 매런을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들. 친구들과 서로 대화한다. 가장 친한 친구 옆으로 가는 매런. 나른한 피아노와 함께 같이 누웠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매런과 매런의 베프. 그런데 갑자기 매런이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친구의 손가락을 씹어 먹었다.
아수라장이 된 파티장. 우발적으로 튀어나온 행동에 매런은 당황한다. 도망가는 매런. 집에 도착했다. 당황한 아버지. 아버지의 혹시? 는 사실이 됐다. 사람을 뜯어먹은 매런. 어렸을 때 잊었던 기억이 몇 년을 돌아 다시 부녀에게 들이닥쳤다. 급히 도망가는 매런 부녀. 그렇게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될 거 같았다. 천만에. 또다시 연상되는 트라우마에 아버지는 딸 매런을 버리고 도망친다. 매런이 살아오면서 행했던 식인 에피소드를 일일이 녹음한 테이프를 남기고. 혼자가 된 매런.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어머니밖에 없다. 어머니가 있는 미네소타로 향하는 매런. 매런의 세상에는 정말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 식인종은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외로운 삶을 이겨내야 할 것 같았던 그녀에게 또 다른 손님이 등장했다. 먹는 취향이 비슷한, 그러니까 같은 식인종인 '리'다.
로드무비
영화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영화 안에서 차와 풍경을 활용한 연출이 구석구석 돋보인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전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보여줬던 아름다운 영상미가 이 영화에서도 장점으로 발현된 것이다. 이와 관련된 근본은 역시 '보니 앤 클라이드'에서 왔다. 우리나라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한글화 되었던 영화. 무료한 일상에 질려 강도질을 시작했던 커플을 소재로 했던 영화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이 <본즈 앤 올>은 이를 보여주듯 두 커플이 어떻게 식인이라는 본성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에 대한 내용을 품고 있다. 영화에서 모든 이야기에 개연성이 생기는 이유도 이 '로드무비'라는 특성을 십분 활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매런이 배고프다고 했을 때 리가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 리의 생존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어머니는 과연 매런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 리와 매런 둘은 어떻게 만났는지, 엔딩 전개를 위한 준비물까지 이리저리 떠도는 인물들의 특성을 이야기에 잘 넣었기에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 두드러진다.
그런데 이런 로드무비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이유는 역시 두 주인공 리와 매런의 특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리와 매런은 본질적으로 주류에 낄 수 없는 사람이다. 사람을 죽여 식인 한다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매런은 사람을 해치기 싫어한다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데 세상이 그대로 나 둘리가 있나. 이리저리 여행한다는 것은 인물의 입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와도 관련이 있다.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와 여행의 동적 이미지가 닿아 있는 것이다. 이는 영화에서 두 번 반복되는 시퀀스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느 산골에서 두 사람만 조명하는 이미지는 텅 비어 보이는 느낌에도 왠지 따뜻한 느낌이 든다. 이 외에도 영화에서 언제 여행을 멈추고 쉬어가는지, 여행을 아예 그만 둘 때는 언제인지 생각하면 이 역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행을 오히려 인물의 고독과 연대라는 이중적인 성격으로 표현한 것이다.
식인종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세팅인 '식인'은 단순히 자극적으로만 소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팅은 아닌 것 같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누가 봐도 외톨이다. 당연히 식인이라는 습성 때문에도 있지만 이 인물들에게는 큰 결핍이 있다. 외로울 수밖에 없는 매런과 리. 이는 어머니/아버지가 어렸을 때 떠났고 이 둘이 범인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연대를 표현하는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또 이 둘이 '어떻게 생존을 지속하는가'에 대해서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이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식인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 '본능적으로 하는 식인'은 영화에서 어떤 트리거를 통해 두 사람의 사랑과 병치된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두 사람이 먹는 것이 인간으로 표현은 되지만 '소외된 이들이 사랑'을 먹는다라는 의미와도 통한다. 식인이라는 속성이 호러와 로맨스라는 두 극단적인 장르의 구분선을 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인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역시 전 세계 도처에 있는 아웃사이더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숨어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식인은 굉장히 극단적인 세팅이다. 영화는 이 식인을 합리화하지 않는다. 극에서 가족을 등지고 도망치거나 버려졌던 인물들의 특성을 봐도 그렇다. 또 매런과 리 캐릭터의 차이점을 봐도 알 수 있다. 매런은 식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식인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 리는 매런에 비해서 좀 우호적이다. 대신 식인 하는 이유에 나름대로의 원칙을 적용한다. 이 두 속성만 봐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식인에 대해서 '다름을 이해하자!'식의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 것 같다. 대신 영화는 극단적인 세팅으로 두 사람의 고독과 고립감을 증폭시킨다. 이 고립감은 두 영화가 호러-로맨스의 장르 구분을 뛰어넘는 것과 유사하게 로맨스 영화의 장르 특성을 강화한다. 둘 다 외롭고 이해받을 수 없는 존재기 때문에 사랑이 깊어지는 것이다. 소재가 가질 수 있는 아이러니를 잘 잡은 것이다. 또한 본 작은 이런 극단적인 세팅을 소모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중간에 대사로 "우리 같은 사람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어"라고 말하기도 하고, '입'이라는 신체기관이 두 가지의 생존에 기여한다는 점이나, 두 주인공이 서로를 알아봤던 방식까지, 영화는 끊임없이 아웃사이더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있다. 평생을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해 온 관객들이 있다면 이는 깊은 감정적인 공감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를 포함한) 완벽한 사랑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 근데 사실 그런 건 없다.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날도, 좋지 않은 날도 있다. 얼핏 보면, 시선의 전환이 순수한 사랑을 낳을 때도 있는 것 같다. 영화는 이 시선에 대한 영화다.
캐릭터 칭찬해
글쓴이의 관점에서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캐릭터(들) 때문이었다. 첫 번째. 주인공 매런은 공허한 사람이다. 이를 보여주는 영화의 연출과 테일러 러셀의 내면연기가 좋았다. 영화의 분위기를 이끄는 좋은 퍼포먼스였다. 또 남자 주인공이었던 티모시 샬라메는 영화 러닝타임 내내 빛난다. 누가 이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르겠는데 헤어스타일 진짜 잘 골랐다. 티모시 샬라메가 극 중에서 깡마른 체형으로 묘사되고 또 워낙 잘생겼기 때문에 이 헤어스타일을 소화하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다. 첫 등장부터 연출의 수혜를 받았던 리. 단순히 외모뿐만 아니라 감독의 주특기를 가장 잘 받는 인물이 이 '리'다. 이 영화의 굉장히 큰 강점은 색감이다. 빛, 의상, 물건의 색, 피의 색(빨간색), 이런 색상 배치를 자기만의 영상언어로 감독은 표현한다. 이 톤인톤의 색감을 티모시 샬라메는 훌륭하게 소화한다. 이 인물은 개인의 작중 행적에서도 각본의 혜택을 받는다. 영화는 리는 이 인물이 어떻게 하면 더 로맨틱하게 보일 수 있을까?를 전부 다 구현하는 서사를 갖고 있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캐릭터에 대한 존재감을 쾅쾅 남긴다.그러나 이 리 캐릭터에게 아쉬운 점도 있다. 영화 후반부에 터닝포인트가 되는 지점이 있다. 여기서 엔딩까지 좀 갑자기 전개되는 감이 있다. 이 사이에 인물의 내면 묘사가 어느 정도 있었으면 몰입이 더 깊지 않았을까?
아. 위의 두 캐릭터만큼이나 엄청난 존재감을 풍기는 인물이 있다. 바로 마크 라이런스가 맡은 '설리'다. 이 인물은 첫 등장부터 범상치 않다. <더 배트맨>의 리들러가 연상되는 말투를 뽐내며 매런에게 말을 거는 설리. 어딘가 좀 돌아이 같은 이 캐릭터가 영화 끝까지 어떤 방식으로 등장하는지를 주시한다면 영화의 재미가 넓어질 것이다. 이 영화가 각본의 힘이 좋았던 이유는 언제 어디서 어떤게 튀어나올지 예상이 안 되지만 극 내부에서 거의 대부분 설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캐릭터들이 생동감이 있어 살아 숨쉬지만 특히 설리라는 인물은 더더욱 그랬다. 아마 마크 라이런스는 주요 시상식에서 이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뭐 단순히 연출 내적으로 인물들이 또렷하긴 했다. 그러나 글쓴이가 이 인물 연출에서 더 좋았던 점은 이 인물들이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매런. 매런의 어머니. 매런의 아버지. 리. 리의 어머니. 리의 여동생. 리의 아버지. 설리. 중간에 만나는 인물. 다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인물들은 사랑을 갈래만 다른 채로 표현하고 있다. 영화에서 인물 간의 대비를 훌륭하게 조명했기 때문에 이 사랑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글쓴이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재미는 '각기 다른 사랑'이 어떻게 표현됐는지를 알아챌 때 왔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이 사랑에 대해서 어느 쪽에 가중치를 둔 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이 뭘까? 나라는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것. 그런게 사랑 아닐까? 좀 잔인하긴 해도 커플들이 보기 좋은 영화다. <아바타 : 물의 길> 이전에 <더 메뉴>와 함께 보면 좋은 웰메이드 로맨스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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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요리사>가 흥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를 밤새워가며 봤다. 가장 결정적인 부분에서 끊어버리는 미친 편집력, 한 회 한 회 새롭고 다채로운 미션들로 채워진 기획력. 정말이지 1화부터 12화까지 ‘뭐야 왜 벌써 끝나’를 외치며 정주행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요리사들을 경쟁시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정말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흑백요리사>는 이토록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을까. 물론 앞서 말한 쫄깃한 기획과 편집이 한몫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결정적 트리거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있지 않았나 싶다.
사진ⓒ넷플릭스
우리가 한 편의 영화를 볼 때, 또는 소설책을 볼 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취약하고 가진 것 없는 주인공이 상대적으로 더 잘나고 누가 봐도 힘센 경쟁자와 붙을 때가 아닌가. 이 프로그램은 다윗과 골리앗이 붙었을 때 다윗을 더 응원할 수밖에 없는 관객의 마음을 정확히 저격한 것이다. 심지어 제 이름 석 자조차 밝힐 수 없는 흑수저 셰프들은, 관객의 응원 본능에 더 활활 불씨를 지폈더랬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흥미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흑수저를 응원하려면 골리앗이 미워야 하는데, 잘나고 다 가진 백수저 셰프들이 무조건 밉고 싫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은 백수저들이 단순히 덩치만 큰 게 아니라 그 지위를 얻기까지 십수 년을 노력하고 땀 흘린 인간적인 존재들임을 심도 있게 조명한다. 역시 진정한 스토리텔링은 악역에게도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법. 거기에 2차적 열광 포인트가 있었다.
백수저, 괜히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구나.
사진ⓒ넷플릭스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이 다시 심판대에 서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많게는 50년부터 적게는 19년의 요리 경력을 가진 백수저 셰프들은 소위 말해 돈과 명성 모두를 거머쥔 성공한 직업인이다. 다들 서너 개씩 레스토랑을 소유하고 있거나 누구나 아는 굵직한 레스토랑의 총괄 셰프니까. 다시 말해 그들은 이미 요리 실력 최강자이며,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셀럽인 상태였다.
그런 그들이 까마득한 후배들과 겨뤄서 자칫 지기라도 하면 망신살일 뿐인데도 ‘굳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다. 그건 가진 걸 잃고 싶지 않은 방어의 마음보다, 자신의 한계와 매너리즘을 깨고 싶은 용기가 더 크다는 뜻일 테다. 나는 거기서 이미 그들이 평범한 백수저가 아니며, 매력적인 골리앗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진ⓒ넷플릭스
또, 그들은 서로 의견이 달라 싸우는 일은 있었지만, 하나같이 겸손했다. 그 점이 너무도 놀라워 보는 내내 인간적으로 감탄했을 정도였다.
세계대회를 심사하는 50년 경력의 ‘여경래’ 셰프는 학벌도 화려한 이력도 없는 흑수저 ‘철가방 요리사’에게 지고도 분개하기는커녕, “저보다 그 후배가 잘했으니까 이긴 거죠”라며 인자한 미소를 보였고, ‘최현석’ 셰프는 자신보다 후배 격인 안성재 셰프의 다소 날카로운 피드백에도 오히려 자신의 오만함을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셰프들의 셰프로 꼽힐 만큼 대단한 입지의 인물이다)
다른 셰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 후배들의 요리 실력을 인정하고, 칭찬하고, 그들의 모습에서 퇴색됐던 초심을 되찾아 가기도 했다.
사진ⓒ넷플릭스
성공한 사람들은 멋있지만, 그보다 더 멋진 사람은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자세를 낮춰 더 배우려는 사람임을, 백수저 셰프들을 보며 새삼 깨달았다.
흑수저, 이름은 없어도 실력은 있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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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흑수저 셰프들을 바라보는 재미는 그들의 열정과 순수성, 그리고 참신한 요리실력이 아니었나 싶다. 경력으로 치자면 백셰프들에 비해 하염없이 아래지만, 흑수저 셰프들의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 그저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한 흑수저 참가자의 말처럼 전혀 ‘짜치지 않는’ 요리 실력의 소유자들이었던 것.
너무 많은 참가자들이 눈부셨고, 다재다능했지만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세 명이 있다.
사진ⓒ넷플릭스
첫 번째는 강력한 우승 후보이자 나의 원픽이기도 했던 ‘트리플스타’. 그는 거의 기계나 다름없는 칼질에서부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야채 하나하나 일정한 크기로 써는 그 정확함은 그가 완성도 있는 음식을 위해 몇천 번 몇만 번을 노력했는지 느끼게 했다. 맛은 말해 뭐할까. 요리사의 재능과 노력이 만나면 어떤 음식을 꽃피우는지 매회 감탄하며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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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이모카세’. 파인 다이닝 참가자들이 우세한 프로그램에서 한식, 그것도 누구나 아는 집밥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최종 8인에까지 들었던 그녀는 엄마의 손맛 그 자체였다. 부모님의 병세로 인해 음식장사의 길로 접어들어야 했던 이모카세는 하루에 천 그릇씩 안동국수를 말았단다. 그 시간만큼 쌓인 손맛은 얼마나 견고하고 단단했을지. 잘 구운 김 한 장으로 시식단을 홀려버리는 연륜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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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우승자인 ‘나폴리 맛피아(권성준)’ 역시 당연히 기억에 남는다. 그는 우승 소감에서 “10년간 집과 주방만 왔다 갔다 하면서 이렇게 답답하게 사는 게 맞나 싶었는데, 그게 틀리지 않은 것 같다”라고 밝혔는데, 그 한마디 안에 그가 흘렸을 피땀눈물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참가자들 중 유독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던 것도, 그렇게 10년간 매일매일 단련한 내공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를 보면 요리사에게 중요한 자질이 비단 흘러넘치는 열정뿐 아니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히 실력을 다져나가는 지구력이란 걸 여실히 느낀다.
그리고, 안성재
사진ⓒ넷플릭스
이 프로그램의 수많은 눈부신 참가자들만큼 못지않게 매력적이었던 인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심사위원 ‘안성재’가 아닐까 싶다. 그로 말하자면, ‘채소의 익힘 정도’를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븐하게 익지 않은 고기’는 가차 없이 탈락시키는, 엄청나게 엄격하고 정확한 셰프다. 오죽 칼 같았으면 대한민국에 딱 하나 있다는 미슐랭 3스타가 그의 레스토랑 ‘모수’일까.
방송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에 대중들에게는 그간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번 방송을 통해 그의 매력은 가히 초신성처럼 폭발했다. 너무도 멋진 셰프여서다.
사진ⓒ넷플릭스
이제는 재미난 유행어가 되었지만, 그가 프로그램에서 남긴 여러 말을 곱씹다 보면 대한민국 유일 3스타 셰프로서 지닌 단단한 철학과 신념이 느껴진다. 음식의 본질과 멀어진 난해한 요리를 지양하며, 비비지 않은 밥에 ‘비빔밥’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꽃잎을 단순히 예뻐 보이기 위해 디시에 올리지 않는 그 마인드.
셰프란 자신의 창작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존재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오롯이 고객에게 공감과 만족을 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서버라는 것을 그를 통해 배운다.
사진ⓒ넷플릭스
누가 누가 더 맛있게 요리하나. 그 대결 현장만을 비췄던 게 기존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면, 이 프로그램에서는 셰프가 보였다. 이름이 있든 없든, 몇 개의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건 아니건, 그저 맛있는 음식을 정교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진정한 셰프들의 모습.
간절히 우승하길 바랐던 나의 원픽 트리플스타가 떨어져 아쉬웠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 한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한 접시에 담긴 노력과 재능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그리고 이제 와 보니, 백수저와 흑수저로 치사하게 나눈 듯했던 것도, 사실은 계급장 떼고 누가 요리를 잘하나 보여준 가장 공평한 시스템이 아니었나 싶다.
아, 시즌2는 언제 나오지?
■ BOOK 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PDF 인간관계 비법서 『오늘보다 내일 나은 인간관계』 ■ CONTACT 인스타그램 @woodumi 유튜브 『따수운 독설』 작업 문의 deumj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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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에 동화된다
어렸을 적 누군가를 간절히 사랑한 적이 있는가. 이 사람밖에 없다는 확신, 내 곁을 항상 지켜줄 것이라는 생각이 무너지는 관계는 슬픔 그 이상일 것이다. <클레오의 세계>는 클레오(루이스 모루아-팡자니)와 유모 글로리아(일사 모레노 제고)의 유대를 보여주며 클레오의 세계를 동화적인 연출로 표현한 영화다. 클레오가 주는 위로와 극복은 가슴속 한편 그리움을 떠오르게 한다.
※본 영화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으로 참석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클레오의 세계> 스틸컷
동화
<클레오의 세계>는 컷이 지나고, 투박한 드로잉과 밝은 색깔이 어우러진 애니메이션이 등장한다. 클레오가 상상하는 세계를 가시화해 아이만이 느낄 수 있는 순수한 동화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전반적인 따스한 색감이 눈에 띈다. 서아프리카 배경인 글로리아 고향이 따스한 색감이 더해 클레오와 글로리아의 따뜻한 유대를 더하는 효과를 준다. 그리고, 글로리아 가족을 통해 글로리아를 향한 유대의 자각을 겪으며 배워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클레오가 글로리아를 생각하는 순수함과 관계의 정의를 보며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과 만남, 헤어짐을 떠오르게 한다. 클레오의 동화(童話)에 관객들이 동화(同化)된다.
<클레오의 세계> 스틸컷
고래
클레오는 태어날 때 엄마를 잃고, 유모 글로리아 손에서 성장한다. 글로리아가 착용한 목걸이는 고래 꼬리 모양이 있다. 고래는 공동육아로 새끼를 돌본다. 클레오는 글로리아 고향에서 글로리아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 마을 사람들도 만난다. 마치 고래 공동육아처럼 다가온다. 신화적 관점에서 고래는 모성성을 상징하고, 자유와 독립을 상징한다. <클레오의 세계>에서 고래의 상징을 비유하면 글로리아를 향한 애착을 그만하는 클레오의 독립과 클레오를 향한 글로리아의 모성성으로 비유할 수 있다.
<클레오의 세계> 스틸컷
세계
어렸을 때부터 클레오를 키운 글로리아였기에 클레오는 글로리아밖에 모른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자 영원히 내 곁을 지켜주는 수호자의 존재다. 하지만, 글로리아 어머니의 죽음으로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고, 유모 일도 그만해야 했다. 클레오는 글로리아를 만나기 위해 아버지의 도움으로 혼자 그녀의 고향에 간다. 클레오의 세계는 글로리아밖에 없다는 생각만 있었다. 그러나 글로리아의 고향에서 그녀의 가족을 만나고, 동네를 지내며 글로리아 세계를 경험한다. 유모 역할이었던 글로리아에서 어머니이자 딸, 할머니, 건물주 등과 같은 그녀의 다른 면을 보며 인간 글로리아를 바라본다. 그 과정에서 클레오의 시야와 세계가 확장한다. 항상 도움만 받던 클레오가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글로리아를 위로해 주는 장면은 두 인물이 지닌 세계의 교착점이자 클레오가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글로리아 세계를 향한 마지막 마음을 표현한 후 헤어지는 슬픔은 일몰처럼 저물어가지만, 따뜻했던 두 사람의 유대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클레오의 세계> 메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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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이 인정 많다고 누가 그래
경기도의 인지도 없는 도시 출신으로서 가장 공감했던 드라마가 있다. '동백꽃 필무렵"이 그것인데 참 이드라마 보면 볼수록 현실고증이 참 잘되어 있다. 서울 사람들은 시골하면 동막골이나 인터넷이 잘 안터지는 곳을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한국의 평균적인 시골은 다 이런 느낌이다. 적당히 문명화되었지만 새로운 이에게 관심과 텃세를 동시에 부려대고 정이라는 이름의 온갖 오지랖들이 난무하는 곳. 그래도 수많은 규태들이 있는 곳.
1. 규태 캐릭터의 특이성
규태 캐릭터는 드라마에서 흔하게 나온 캐릭터는 아니다. 오히려 내 주변에 산재해 있어 '무슨 이런 일상적 캐릭터가 드라마 캐릭터가 될 수 있어' 라고 생각할 만한 캐릭터이긴 하다. 내 주변에 허세부리고 다니시는 50대 이상의 아저씨들을 종합하면 규태가 된다. 내가 국회의원 누구와 막역하다부터 시장과 호형호제하시는분, 리스한 벤츠를 몰면서 시내에 1차선 도로밖에 없는 곳을 질주하시는 분, 그거 뭐 얼마나 벌어 라고 남의 직업을 까내리며 좋은 땅, 투자처 주입식 교육으로 소개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난 그저 규태가 생각난다.
남의 인생에 왈가왈부하는 유형부터 내 부를 자랑하는 유형까지 몇 가지 유형들이 있는데 나에겐 그분들이 그저 규태같아 보인다. 정리하자면, 나에게 '규태같다' 의 정의는 자신의 고향을 벗어나 본적이 없어 사고의 확장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그저 당신의 인생의 정답을 남에게 설파하고 다니시는 분들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난 내 부모에게 규태가 내 고향의 웬만한 아저씨들을 관통하는 캐릭터인 것 같다고 했을 때, 나의 모는 손뼉을 치며 공감해 주었고, 나의 부는 이해 자체를 못했다. 엄마는 외지 출신이고 아빠는 같은 곳에서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부는 그 아저씨들의 모습이 너무 당연해 자기객관화가 안되었던 것이다. 내가 주장한 '온동네규태설'은 생각보다 내 고향의 50대 이상 분들에게 꽤나 반응이 있었다. 혹자는 웃기다고, 그 다른 혹자는 똑똑하다고. 참 이게 똑똑하다고 칭찬받을 일인가 싶었지만.
2. 정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 견뎌내야 하는 관문, 텃세
시골에 살면 정이 넘치겠지 하겠지만 시골은 텃세가 만연한곳이다. 외지인이 지역 커뮤니티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은 웅성웅성한다, 뭐하던 사람이래, 어디서 이혼하고 왔대, 등등 TMI가 넘쳐난다. 물론 텃세가 가시고 나면 뭐 정 비슷한 따뜻함이 느껴질 때가 있겠지만 선을 잘 그어놔야 당신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소문이 아주 빨라 내가 잠시 한 달동안 시내에 나타난다면 내가 백수가 되었다는 소식이 내 귀로 알아서 찾아오는 동네니 말 다했지 뭐. 내가 뭘 하고 사는지 다들 관심어리게 물어보는 것들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장점이 있다면, 지역 사회에 소속된다는 느낌이 들고 있다면, 그들의 텃세는 언젠가부터 정으로 표현되고 있을 것이다. 텃세가 영원하지는 않기에 잘 버텨내면 기대하지 못한 뜻밖의 개이득이 생기기도 한다. 솔직히 지금까지 시골 동네에 대해 좋은 말만 하진 않았지만 나도 이들의 정이라는 이름의 오지랖을 통해 피해만 당했다고 하기엔 이 오지라퍼들에게 받은 게 참 많긴 했다. 허허
3. 동백꽃 필무렵을 통해 나의 위선을 돌아본다
드라마 상에서 동백이가 사람에게 둘러싸여 살아본 적이 없어 지역 아주머니들의 텃세가 더 서럽고, 이들이 마음을 열어주면서 오지랖을 부려주니 감동하기도 하는 걸 보면서 역시 이런 걸 부담스러워하는 내가 참 그 동네에서 별종이 아닐 수 없었겠다 싶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내가 제일 이상한 애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선을 그어놓고 고슴도치처럼 관심을 거부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오지랖이 난무하는 시골 동네에 살아온 사람이라면 중간은 없는 것 같다. 원래 다 그런거지 하면서 수긍하면서 살던지, 나처럼 치를 떨며 떠나가던지. 정은 정대로 취하고, 자기만의 선을 함께 지켜내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그저 약간의 불편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간 애라고 해도 딱히 할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골의 수많은 오지라퍼들을 싫어했고, 규태들은 더 싫어했지만 이들에게 한 번이라도 도움을 받지 않은 적은 없었기에 지금 이 글은 나의 위선을 고발하는 글이라고 볼 수 있다. 한 드라마를 통해 내 위선을 느낄 수 있어서 이 드라마가 나에겐 꽤나 의미가 있는 드라마다. 그래서 때되면 그렇게 꺼내보게 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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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콘과 윈터 솔져>방패의 의미를 성공적으로 일신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타노스와의 결전 이후 친구이자 리더인 스티브 로저스로부터 방패를 물려받은 '샘 윌슨/팔콘(앤서니 매키)'. 차마 캡틴 아메리카의 무게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던 그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방패를 기증하고, 미 공군과 협업해 세계 각지의 빌런들을 처리하며 지낸다. 한편 샘이 스티브의 후계자가 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실망한 '버키(세바스찬 스탠)'는 그와의 연락을 끊은 채 자신의 윈터 솔져 시절을 속죄하고 참회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미 정부는 그간 뛰어난 공적을 세운 군인 '존 워커(와이엇 러셀)'를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로 임명하고, 전 세계적인 테러 조직 '플래그 스매셔'와 리더인 '칼리(에린 켈리먼)'의 처리를 그에게 맡긴다. 이에 당황한 팔콘은 분노한 윈터 솔져와 함께 방패를 되찾고 진정한 캡틴 아메리카가 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보다 보면 그의 이름에 의문을 표하게 된다. 이름부터 '아메리카'가 들어간 히어로가 정작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권력기관의 지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1편에서 스티브 로저스는 군의 지시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포로들을 구출하더니, 2편에서는 소속된 첩보 기관을 자신의 손으로 파괴하고, 3편에서는 UN의 통제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범죄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오히려 가장 미국적인 영웅이다.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로 매우 강력한 표현의 자유를 명시해 놓을 만큼 개개인의 신념과 자유를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국가다. 따라서 그 어떤 권력과 사상이 칼날이 자신의 목을 겨누더라도 자신의 자유와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굳건함은 '캡틴 아메리카'의 이름에 완벽히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그가 방어용 무기인 방패를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설령 잘못되거나 소수의 의견으로 보이더라도 개인의 자유에 근거한 선택이 궁극적으로는 옳은 길을 인도한다는 믿음은 그에게 있어서 70여 년 간 나치, 하이드라, 타노스로부터 사랑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패였던 것이다.
문제는 시대가 변화하면서 스티브 로저스가 대변하는 미국적 가치의 효용성과 정당성에 금이 갔다는 점이다. 끝내 과거로 돌아가야만 이루지 못한 사랑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스티브는 본질적으로 1940년대에 묶여있는 캐릭터다. 이는 지난날 자신의 악행과 과오를 되돌려야만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버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영웅적인 면모와 공적과 별개로, 과거에 속한 이들은 나날이 변화하는 2021년에 지켜야 할 가치를 온전히 대변할 수 없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의 상징인 의회를 스스로 무너뜨릴 뻔하고, 흑인과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와 증오가 터져 나오는 등 자유가 방종이 되어버리는 시대에 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인 스티브 로저스가 상징하는 가치는 더 이상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팔콘과 윈터 솔져>는 MCU의 두 번째 캡틴 아메리카로 스티브 로저스의 친우인 버키가 아니라 팔콘을 선택하고, 그가 방패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두 측면에서 조명한다. 우선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에서 보이지 않았던 인종차별을 드라마 전면에 부각한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아이제아다. 스티브 로저스와 동일한 혈청을 맞고 한국 전쟁에서 전쟁 영웅이 되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존재가 지워져야 했던 아이제아는 캡틴 아메리카와 그의 방패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의 방패는 흑인들이 흘린 땀과 피로 만들어졌으며 빛에 가려진 그림자로 존재하는 또 다른 미국의 역사, 어벤져스의 일원인 팔콘마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대낮의 길거리에서 체포당하는 현실까지 보호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미국 정부에서 임명한 캡틴 아메리카, 존 워커가 끝내 U.S. 에이전트에 만족해야만 하는 이유다. 그는 또 다른 스티브 로저스가 되고자 노력한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백인이자,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수류탄에 몸을 던질 정도의 정의감을 지닌 그는 스티브의 유니폼을 입고, 그의 방패를 들고, 그처럼 혈청을 맞아 신체적으로도 강해진다. 그러나 이미 변화한 세상과 현재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명확한 과거의 상징을 쫓아기에 그의 노력은 헛되고, 그는 방패의 무게감에 짓눌려 자신을 망칠 뿐이다. 이처럼 새로운 등장인물의 서사를 통해 드라마는 방패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이들의 일상과 경험, 역사까지도 공유하는 히어로만이 새로운 시대에 진정으로 그 방패를 들 자격이 있음을 보여준다. 팔콘의 ost 제목이 'Lousiana Hero'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팔콘이 억압받는 개인들을 어떻게 감싸 안는지를 면밀하게 제시하며 그가 캡틴 아메리카의 정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도 주목한다. 작중 등장인물들은 마치 팬데믹 때문에 현실에서도 개인들이 그러했듯이 하나같이 타노스가 남긴 혼란의 여파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보호받지 못하고, 자유를 억압당한다. 쉴드와 CIA를 거치며 국익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모두에게 잊히고 버려진 샤론 카터, 3개의 명예훈장을 받고도 군에 의해 장기짝처럼 조종당하고 소모품처럼 쫓겨나는 존 워커, 국제송환협의회(Global Repatriation Council)로부터 필요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이리저리 쫓기는 난민들이 반발해 만든 빌런 집단 플래그 스매셔까지. 비록 타노스의 등장 그 이전에 겪은 일이지만 여전히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이사야와 세뇌당한 상태에서 죽인 이들을 기억하며 악몽으로 밤을 지새우는 버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그런 이들을 샘은 스티브와는 다른 방식으로 보호한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 퇴역군인 심리상담사로 처음 등장했었던 샘은 좀처럼 현재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스티브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넸듯이 다른 이들도 지켜준다. 그는 스티브 로저스의 그림자에 짓눌리던 존 워커로 하여금 자신을 옥죄는 방패를 버리고 진정으로 옳은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범죄의 온상인 도시 마드리푸어에서 도피생활을 이어가던 샤론의 사면을 정부와 거래하며, 비록 방법은 정당하지 않았더라도 플래그 스매셔가 왜 폭력으로나마 자신들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는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해준다. 더 나아가 버키가 피해자들에게 속죄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도록 용기를 불어넣고, 스티브의 전시관 옆에 아이제아에 대한 전시공간을 따로 마련해 오래된 상처를 치유한다. 그렇게 팔콘은 자신이 갖고 있던 자질들을 120%로 활용해 2대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난다.
사실 <팔콘과 윈터 솔져>의 짜임새는 결코 뛰어나지 않다. 지난 시리즈에 비해 박진감이 덜한 액션씬, 일관성을 잃은 슈퍼 솔져 혈정의 설정, 카리스마가 다소 부족해진 듯한 윈터 솔져의 묘사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무엇보다도 빌런인 플래시 스매셔에 대한 묘사나 전개가 유난히 허술하다. 루머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본래 플롯에 포함되었던 바이러스 공격이 삭제되었다고도 하는데, 설사 그렇더라도 마지막 에피소드에서조차 빌런들의 목적에 어떤 당위성이 있는지, 어떻게 국제적인 테러 조직이 되었는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특히 플래그 스매셔의 서사가 팔콘이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가 되는 당위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플래그 스매셔의 목적과 당위성, 역사가 잘 드러날수록 샘이 플래그 스매셔의 취지를 옹호하는 선택에도 더욱 힘이 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노스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 질서와 체제는 붕괴되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 와중에 샘 역시 5년간 먼지가 되었다가 돌아왔고, 그간 수입이 없다는 이유로 은행 대출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따라서 다른 인물들보다 플래그 스매셔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고 어떻게든 그들을 도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가 정의와 선함의 상징인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나는 데 큰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는 장치였으며, 드라마는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마지막 장면에서 <팔콘과 윈터 솔져>라는 제목이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져>로 바뀌는 순간 벅차오르는 가슴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팔콘과 윈터 솔져>는 이미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의 탄생을 그려낸다는 본래의 취지를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만큼, 완벽히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드라마 종영 후 들려온 <캡틴 아메리카 4>의 제작 소식은 그 어떤 속편보다도 마블 팬들의 기대감을 키워 버린다.
A(Acceptable, 무난함)
과거와 현재의 무게가 깃든 방패를 들고 진중히 날아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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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쁘진 않았는데 낯설어서 그래
내가 만약 돈이 무진장 많으면 난 어떻게 변할까? 예쁜 여자 만나 행복하게 살겠지. 그럼 나도 감사함을 몰라 점점 이상하게 변할까? 26살쯤 되니 내가 한 건 없고 내 주위 사람들이 나를 만들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이가 먹어서 이 생각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종종 들 곤 한다. 이제까지 만났던 부자들은 다 성격 좋았다. 남들 배려할 줄 알고. 따뜻하고. 근데 이 세상 사람들 다 성격 똑같은 것 아닌 거처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내가 만난 부자들이 못돼먹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그런 존재가 된다는 보장이 있나?
오늘도 글을 쓰면서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을 한다. 사실 간단하다. 그냥 매일 염두하고 책 많이 읽으며 살면 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지금이라도 일단 부자가 되기 위해 비트코인과 주식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싶지만 역시 돈은 일해서 벌어야 얻는 게 많아지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야 사람 고마운 걸 알아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난 일 많이 해서 돈 벌거고 밥맛 떨어지는 나쁜 놈이 될 생각 없다. 이왕에 어려운 사람들 도우고 사는 게 재미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저번 주에 밥 맛 떨어지는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왔다. 다른 때 같으면 영화를 추천했을지도 모르지만 난 사실 잘 모르겠다. 여러분들이 보고 어떤 작품인지 다들 생각해보길 바란다.
인생은 원래 생각지도 못한 것의 연속이지
남자가 느닷없이 한 건물 문을 연다. 시선을 어디로 둘 지 몰라 고정하지 못하는 이 남자. 집주인이 빈 시간에 딱 맞춰 올 정도로 주도면밀했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남자는 뒤적뒤적 집주인의 물건들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남자는 도둑이다. 도둑이 들어간 이 별장의 주인은 IT업계의 억만장자 CEO다. 집주인이 외부 행사로 잠깐 비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도둑. 금세 주인장의 롤렉스와 현금을 찾아 도망치기로 한다. 그렇게 주섬주섬 모든 짐을 챙기고 도망치기만 하면 된다. 아. 그전에 오줌 한번 시원하게 누고 가야지. 마치 자기 집에 온 사람처럼 도둑은 최후의 끝마무리(?)까지 하고 문을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원래 외부 행사로 별장 주인이 자리를 비워야 이치에 맞는데, 느닷없이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생겨버렸다. 당황하는 도둑. 그 주인 부부가 별장에 들어온 것이다. 도둑은 숨었다가 아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혼자 있던 아내. 아내는 인질로 잡혔고 부부는 이도 저도 못 가게 손발이 묶이게 된다. 도둑은 이 집에 있는 모든 카메라를 찾아 기록을 은폐하고 남편이 도주를 위해 제시한 금액을 위해 부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이 이후의 영화가 작품의 줄거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묘하게 느껴지는 계급 차이
이 영화는 계층에 대해 다룬 영화다. 주인공 도둑은 최근에 어떤 일이 있어 빈곤을 겪는 것 같아 보인다. 이 덕에 인물은 도둑질을 계획하게 된다. 이 계획이 원래대로 이뤄졌다?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부부가 들어와서 다 엎어지게 된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세 명이 처해있는 처지를 대비시키며 계급 격차를 부각한다. 예를 들어 50만 달러라는 금액에 대해 논할 때, 도둑이 제시한 15만 달러를 남편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조소한다. 이 대사를 듣고 도둑이 답한 것이 있다. '우리 생각하는 삶의 질이 다르네'였다. 이를 기점으로 영화는 계속해서 남편과 도둑의 관점 차이를 보여준다. 빈곤과 부유의 뚜렷한 대조인 셈이다. 그리고, 계급과 입장에 대한 차이는 하나 더 있다. 이 부분은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엔딩과 관련이 있어서 더 쓸 수는 없을 듯하다. 각본의 완성도를 떠나 인물의 캐릭터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캐릭터의 대비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계급 갈등 문제를 묘사하는 데 있어 살짝 기시감이 드는 부분이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
좁은 공간. 계급 격차.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것 그리고 엔딩까지. 이거, 난 <기생충>에서 본 내용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기생충> 만큼이나 철저하지는 못하다. <기생충>은 계단을 비롯한 여러 도구와 '냄새'라는 모티브로 기득권층의 모순과 계급에 의한 전락을 탄탄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르다. 전적으로 주인공들의 대사에 의존하는 계급 격차를 보여준다. 이러다 보니 극 자체의 보는 재미는 좀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영화 자체가 무난해도 어쩐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뭐 다른 영화를 의식할 필요야 없겠지만 사전 조사가 좀 더 철저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는 감독도 관객이라 연출자가 제일 중요하나, 두번째로는 역시나 타인이 보기 때문에 염두해야 할 구석이 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기생충>과는 다른 스탠스를 유지하며 이런 류의 영화들과는 다른 차이점을 찾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이왕에 미국의 계급 격차를 다룰 것이었다면 밑도 끝도 없이 도둑질하는 것부터 보여줄게 아니던가, 결말을 좀 수정하는 식으로 인물에게 감정 이입할 만한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 별장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굳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거 영화 배경을 바다나 성당으로 바꿨어도 크게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이 역시 뭐 영화를 보는데 심각하게 지장이 가는 건 아니나 극의 전개를 좀 더 천천히, 깊게 제시했으면 극이 충분히 꼼꼼했을 것이라 예상한다.
좀 더 꼼꼼하면 좋았을 걸
이 영화가 조명하는 문제가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닐 것이다. 계급 문제 물론 심각하다. 당연히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배려받아야 하는 것은 맞다. 이 극의 주인공이 벌였던 강도라는 범죄가, 사회가 만든 비율이 단 1%라도 없다면 거짓말 아닌가. 그러나, 한 처지에 있는 인간이기를 떠나서 영화 전체적인 전제들이? 쳐지는 구석이 많다. 빈곤하거나 부유해도 전적으로 사람 아닌가? 영화의 메시지를 위해 인물들이 희생된 느낌이 있다. 또 다른 '계급 격차'역시 묘사가 아쉽다. 이 갈등 역시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이 영화에 굳이 묘사되어야 했나?라는 것도 의문점이다. 결말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순 있으나 깊게 생각하면 몰입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기생충>이 선택과 집중으로 밀도 있는 이야기를 만든 반면 이 <윈드폴>은 분산으로 몰입도가 떨어진다. 배우들의 호연이 좋았고 메시지 자체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이야기라 나쁘지 않았지만 극이 좀 구멍이 나있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부부 둘의 좋은 연기
제시 플레몬스 연기 좋았다. 극을 보면서 주먹으로 한대 치고 싶었다. 자기밖에 몰라 부끄러움을 까먹은 후안무치의 CEO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또 아내 역의 릴리 콜린스도 내면에서 꾹꾹 참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이 둘의 연기만으로도 극을 보는데 무리 없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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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시체로 돌아온 나의 사랑이여! 그대는 축복인가, 재앙인가? 손자이자 아들 '엘리아스'를 잃고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할아버지 '말러'와 엄마 '안나', 아내 '에바'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소식을 듣고 슬픔에 오열하는 남편 '데이빗', 반려자 '엘리자베트'의 장례식을 마치고 텅 빈 집에 돌아온 노부인 '토라'. 원인불명의 정전이 오슬로 전역을 덮친 이후, 죽은 이들이 다시 깨어나 사랑하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무덤에 묻혔던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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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문제아’ 위에 나는 ‘교장’ 있다!
꿈도, 배우고자 하는 열의도 없던 학생들이 모인
그곳에 날라리 교장선생님이 부임했다!
이상한 탈을 쓰고 등교하는 건 기본이요,
점심시간마다 학교를 가득 채우는 버스킹에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리는 교장실까지!
“공부를 포기했다고 인생도 포기한 건 아니야!”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님과
그 안에서 인생의 목표를 찾아가는 아이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날라리 교장쌤의 특별한 ‘인생수업’이 시작된다!
공부보다 중요한 ‘진짜 인생’은 지금부터!
오늘도 신나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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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을 꿈꾸나요?
일만 하며 바쁘게 살아온 캐나다의 자동차 회사 CEO 마크.
문득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에 빠진 그는 자신의 신념에 반대하는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인 이탈리아 아체렌자로 떠난다. 아름다운 작은 마을에서 순수했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던 마크는 할아버지가 남긴 포도밭을 되살리고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하지만, 그의 무모한 도전에 마을 주민들은 꿈 깨라며 만류하고 가족들의 반대에도 부딪히는데…
쉼표가 필요한 당신을 위한 달콤한 인생 리셋 여행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