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2-15 15:15:10
흉터는 과연 훈장인가.
영화 [브루탈리스트] 리뷰
이 글은 영화 [브루탈리스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단순하게 나쁜 놈들이고, 나는 복잡하게 착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자신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는 얼마나 냉정하고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글귀였다.
그리고 보통의 영화에서는 단순하게 나쁜 놈과 단순하게 착한 놈이 나와서 지지고 볶다가 어느 한쪽의 손이 번쩍 들어 올려지며 승부가 결정지어진다. 그 끝이 감상하는 사람의 선호도와는 다를 수는 있을지언정. 그 끝에는 언제나 확실함이 보장되어 있기에. 영화의 결말은 관객들이 가장 기대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세 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괴롭혔던 이 영화의 결말은, 마치 기회비용이라도 받아내려는 것처럼 더욱더 기다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브루탈리스트의 결말에는 요즘의 우리가 선호하는 "사이다"도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대체 누가 승기를 거머쥔 것인지에 대해서도 쉽사리 답을 내어놓을 수가 없다. 그저 사람이, 그리고 인물이 살아온 인생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라즐로 토스(에드리언 브로디) 개인의 허물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다. 하지만 타인도 복잡하게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그를 들여다보다 보니. 단 하나의 물음만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과연 흉터라는 것은 훈장이 될 수 있을까.
예전의 나였다면. 당연히 그렇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흉터는 남았지만. 새 살이 돋아 났으니 그것이 살아남은 승리자의 징표이며 더 강해졌음을 상징하는 것이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상처를 매번 마주해야 하는 사람의 의견 또한 그럴지에 대해서는 사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영화 속 라즐로는 그가 가진 재주 덕에 건축물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세월을 간직할 수 있다. 그 건축물을 볼 때마다 자신이 설계도를 그리던 순간부터 시작해 공사가 끝나던 생각이 나는 것은 물론. 영화에서처럼 자신을 감싸고 있었던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휘몰아쳐 생각날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자, 크고 작은 상처이며 흉터이자 동시에 훈장이 될 건물의 공개 순간을 보며.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뭉텅이 속에서 조금이라도 우세한 감정은 과연 무엇일 될지. 궁금했다.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그는 늙고 병들었으며 이제는 명민함이라는 화로의 불도 곧 꺼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의 인생을 담고 올려 세운 결과들을 보면서. 당신은 대체 어떻게 느끼고 있냐고. 그 희미하고 복잡한 미소 외에 내던지고 싶은 말은 없느냐고.
라즐로는 내가 세워야 할 건물의 주춧돌을 덩그러니 남긴 채 나를 떠났다. 영화를 보고 나온 직후에는 이 모든 감정을 외면하고 싶어 했으나. 어째서인지 자꾸 곱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마도 나만의 건물은 완성이 될 것이다. 그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의 인생을 오롯이 담아서,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린 다음에야.
그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나 스스로가 질문한 물음에 대한 답을. 혹은 답에 준하는 근사치를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소망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작품들이 훈장에 가깝기를 바란다.
그의 힘들었던 삶을 기리는 공로상 같은 훈장이 아닌. 여태껏 해온 자신의 업적을 인정하는 심플한 훈장이 되기를. 그 이외에 어떤 의미도 담지 않은 훈장이길 바란다. 부디.
마치면서
어떤 영화를 해석하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나 개인 SNS에 올라오는 "끝장 해석" 류의 콘텐츠를 거의 소비하지 않는다. 물론 맞는 방향이나 해석이 있기는 하겠지만. 감상의 영역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은 결국 개인이라는 렌즈를 통해 관찰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무언가와 결합했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될 테니까.
두 세대에 걸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만큼 무자비한(?)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무수히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작품이다. 그 어떤 부분을 붙잡고 늘어져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이 글의 TMI]
1. 베이글 살까 말까.
2. 말린 고구마 친구가 줬는데 혼자 1톤 먹을 기세
3. 청소하기 싫다.
#브루탈리스트 #최신영화 #영화리뷰 #에드리언브로디 #영화리뷰어 #munalogi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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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가짜 페르시아인이 뇌리에 새긴 불편한 진실
이 글은 씨네랩에서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초청 받은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우리 주변의 '가짜'들
살다보면 우리는 숱한 가짜들을 마주한다. 사기꾼이나 거짓말쟁이들을 말하냐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짜란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다른 탈을 뒤집어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이들은 어떠한 목적에 의해 그러한 개인의 고유한 특질을 감추거나 가리고 또다른 가면을 쓴다. 이유는 다양하다. 정말로 자신이 가장한 삶처럼 살고 싶어서일수도 있고, 피치 못하게 그러한 역할을 수행해야 해서일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의 본질과 가면(페르소나)를 양립시켜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이러한 가짜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아주 견고하고 확고한 의지, 혹은 신념이다. 꼭 어떤 것을 해내야만 한다는,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질' 역시 그러한 가짜의 탈을 쓴 사람 중 하나이다.
2. 살기 위해 가짜가 되다.
때는 세계 제2차 대전. 나치 독일의 야욕은 온 유럽을 집어 삼키고, 그들의 광기는 인종학살적인 경지에 이른다. 뛰어난 종만을 살려서 더 나은 인간종을 만들겠다는 우생학의 골조 아래에 숱한 비-아리아인(흔히 전통적인 독일 민족이라고 일컫어지는)들이 '청소'당했는데, 잘 알려졌다시피 유대인은 이들의 대표적인 학살 대상 중 하나였다. 유대인인 '질'은 이들의 인종 청소로부터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수용소로 강제로 끌려가게 된다.
그가 다다른 곳은 소위 '쓸모 없는 인간'은 지워지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곳.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바로 그곳에서 질은 살기 위해 페르시아인을 사칭한다. 정작 페르시아어를 하나도 모르면서!
하늘이 도운 걸까? 이 가짜 페르시아인이 끌려간 곳에는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독일군 대령 '코흐'가 있었다. 질이 알고 있는 단어는 '아버지'를 뜻하는 '바바' 뿐이지만, 살려면 그에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쳐야 했고, 그리하여 이 가짜 페르시아인은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을 위해 필사적으로 단어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단어는 대충 지어낸다 쳐도, 가르칠 단어는 하루가 멀다하고 늘어날텐데 그 많은걸 어떻게 다 기억한단 말인가? 한참을 고전하던 질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의 이름과 인상에서부터 단어를 착안해내고, 그 기발한 발상으로 말미암아 2000개가 넘는 단어를 만들어 낸다. 단어에서 시작되었던 언어는 이윽고 문장이 되고, 문장은 일련의 이야기가 된다. 살기 위해서 만들어낸 가짜가 이름과 이름들이 견고하게 엮임으로써 하나의 실제하는 언어가 된 것이다.
3. 가장 평범한 악인들
질과 코흐는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을 거듭하면서 묘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코흐는 질을 철저하게 착취하는 입장이면서도 그에게 나름대로의 '관용을' '베풀'고, 질은 그 얄팍한 관용 속에서 코흐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알아 나간다.
코흐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이기적이고, 쪼잔하며 얼마쯤 완벽주의자적인 면모도 있다. 요리사였던 그는 수용소의 수감자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그들을 학살하는 독일군 장교들을 배불리 먹인다. 그는 직접 누군가를 죽인 적은 없지만 학대한 적은 있고, 적어도 간접적으로 독일군의 광기어린 살인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냉혈한일 것만 같은 그 코흐도 퇴역 후 낯선 땅에서의 안락한 여생을 꿈꾸고,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가정하며 친애를 표했다. 그는 그 자신이 평범한 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 대단한 만행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평범한 악인은 그뿐만이 아니다. 작중에 나오는 독일군 모두가 그러하다. 그들은 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악행을 합리화한다. 코흐는 스스로의 손을 직접 더럽히지는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얻고, 또 어떤 병사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비논리적인 잣대로 평가된 '유대인들의 저급함'을 학대의 근거로 삼는다. 이러한 믿음은 거의 종교와도 같다. 때때로 종교가 우리 역사를 뒤흔들어 놓았듯이, '그러니까 저들은 그르고 나는 옳다'는 이기적인 신념은 그들을 광기로 몰아넣는다. 그 대단한 파시즘적인 발상에의 추종과 '나 자신의 안락함'을 위한 외면은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을 죽이고, '치우고', '묻었다'.
4. 살아남은 가짜 페르시아인과 가짜 페르시아어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다시 말해, 주인공 질은 살아 남았다. 그리고 그가 만들었던 언어, 즉, 수용소에서 죽어간 약 2000여 명의 사람들의 이름 역시 살아 남았다. 처절한 생존의 의지가 만들어 낸 어떤 기적이다.
페르시아어를 배운 코흐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건 영화를 직접 보는 편이 좋겠다. 이 영화가 악인을 그리는 방식은 대단히 흥미로워서, 이를 관찰하는 것 역시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신념이 가지는 힘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신념은 사람을 죽이고, 어떤 신념은 사람을 살린다. 신념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의 생각이어서 얼마든지 그릇될 수도 있는 것인데, 때때로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나 신봉한 나머지 그것에 매몰되곤 한다. 우리는 언제든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느끼지 못할지라도 그러한 가짜들이 진짜인 우리를 집어 삼키게 될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 영화의 독일군들처럼!
내가 쓰는 가면은 어떨까. 나는 내 가면을 올바르게 닦고 있을까? 나의 본질과 본질이 아닌 것은 어떻게 분리해야 할까? 내가 그러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세계를 배우고, 사람을 만나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수밖에는 없을 거 같다. 나만 생각해서는 내 가면에 내가 잡아먹힐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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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어린 시절에 사랑했던 아버지의 죽음이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남길까?
감독:다미앙 위그
주연: 사르 로지어스(레나 역)
출연: 두니아 엘왈리드,스베레 라우스,발렌티인 다에넨스,힐데 드 베르더메케르,세바스티앵 드와엘
시놉시스
레나는 아빠와 함께 바다를 보며 바다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레나의 아빠는 어부인데 어느 날 해양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아빠의 해양 장례식에서 레나가 목격한 건 배를 치고 지나간 거대한 괴물의 그림자였는데... 그 이후로 레나의 목표는 아빠를 죽게 만든 괴물을 찾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런 레나의 모습에 지인들은 어이가 없어한다. 과연 레나가 그토록 찾는 괴물의 모습은 어디에 있을까?
레나는 자신의 아버지와 무척 친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문이 생긴다. 그것은 바로 심해에 사는 바다 괴물의 그림자를 봤기 때문이다. 심해는 우리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고 빛도 없고 수압도 높아 갈 곳이 못 된다. 그런데 레나라는 어린아이가 본 건 과연 진짜 괴물이었을까? 일단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거나 경험한 사람들은 트라우마가 생긴다고 한다.
그 트라우마가 심해서였을까? 레나는 해양 수족관에서 알바를 하는 빈센트를 만나 아버지의 무덤으로 가서 거대 물고기의 이빨 하나를 찾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죽은 아빠의 난파선에서 DNA 튜브를 몰래 가져와 자신의 아버지가 확실히 바다 괴물에게 죽임을 당한 거라고 믿고 싶어 한다.
결국 이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레나가 친구들과 함께 아버지가 죽은 바다 위치를 찾아가게 되고 레나는 괴물에게 나오라고 울부짖으며 물속에 들어간다. 알고 보니 심해 바다 괴물이 존재했고 분노한 레나는 그 모습을 보자 저항하지 못하고 기절하고 만다. 그러고 나서부터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고 아버지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슬퍼한다.
이 영화가 말해주고 싶은 건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사랑했던 아버지가 죽어서 큰 충격으로 괴물의 환영을 받던 것일까? 아니면 진짜 괴물이 존재해서 아버지를 죽게 만든 걸까? 관객들에게 열린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는 그렇게 끝을 맺는다. 레나가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큰 트라우마가 생긴 건 맞지만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 가장이 죽고 나면 가족들과 지인들이 얼마나 힘들어할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괴물에 집착하던 레나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2023.09.15 (금) 14:00 롯데시네마 은평(롯데몰) 4관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기간: 09월 13일 -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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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과 애(愛)를 위해 날아올라라!
지금까지 차례대로 본 지브리 애니메이션 영화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본 영화다. 비행기 곡예 연출은 물론, 지중해 유럽풍 스타일 양식의 건물들과 풍경,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캐릭터들은 90분이라는 러닝타임을 9분으로 착각할 듯 만든다. <붉은 돼지>를 보기 전, '내가 왜 주인공이 돼지인걸 봐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돼지를 응원하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돼버린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붉은 돼지> 네이버 스틸컷
전쟁
<붉은 돼지>는 전쟁에 아픔과 전쟁으로 변화된 사회에 대해 표현한다. 가령, 돼지 포르코가 인간이었던 시절, 그의 동료들과 독일 전투기와 공중전을 펼치다 본인만 살아남아 적기를 따돌리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쫓기던 중 지친 포르코 눈 앞에 있는 광경은 포르코의 동료 비행기와 적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전투기들이 모여 마치 은하수(milky way)를 떠오르게 만든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희생에 대한 아픔을 잔잔하게 흘러가는 전투기 은하수로 위로와 평안을 빌게 한다.
반면, 전쟁으로 변한 사회는 조금 유쾌하게 표현한다. 포르코가 미국 용병 도널드 커티스의 공격으로 비행기가 부서져 수리를 맡으러 간 단골 정비 가게에서 전쟁과 일자리로 마을에 없는 남성들 대신에 여성들이 포르코의 비행기를 수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전투기 몸체를 직접 도면 설계하고, 엔진 화력 검사와 목공까지 도맡으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여성들의 일자리가 생긴 원인도 전쟁으로 인해 남성들이 징병으로 끌려가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여성들의 일자리가 생겨난 것이기에 <붉은 돼지>는 이런 시대적 상황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리고 여성의 노동이라는 인식은 못마땅해하는 포르코의 태도를 보면, 당시 여성의 노동력에 대한 인식을 인정하지 못하는 시대상의 인식도 드러낸다.
돼지
주인공 포르코는 돼지다. 그가 왜 돼지가 돼버렸는지는 영화 내용으로도 크게 다루지 않는다. 포르코의 친한 친구 지나에 말에 따르면 저주라고 표현되고, N사 <붉은 돼지> 시놉시스를 보면 포르코가 국가와 애정 사이의 고민 중 국가를 택했지만 동료의 죽음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회의감과 계속되는 고민으로 결국 돼지가 돼버렸다고 설명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포르코가 돼지가 돼버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강한 캐릭터성이다. 다른 캐릭터들은 인간의 형태를 띠지만, 주인공 포르코만 돼지라는 캐릭터성을 가진다면 독창적인 캐릭터로 강한 인상을 받아 영화가 끝나도 기억이 오래가는 효과를 지닌다.
두 번째는 상징성이다. 포르코는 전쟁에 대해 회피하는 염세주의 성향을 보인다. 그가 국가에 대한 희생에 비해 변하지 않는 전쟁 사회에 길 잃은 나그네처럼 유유히 살아간다. 먹고 자는 걸 좋아하는 돼지처럼 포르코가 추구하는 염세주의 성향과 돼지는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포르코가 돼지가 된 것은 바로 이런 공통된 상징성이 있어서 아닐까.
액션
지브리 애니메이션 영화 중에서 이만큼 역동적인 모션과 액션이 있는 영화가 있을까. 전투기 곡예 장면은 한 마리의 유연한 용을 보는 듯했고, 커티스와 대결하는 전투기 액션 장면은 백미다. 엄청나게 화려한 전투 장면은 아니더라도 <붉은 돼지> 다운 인상 깊은 전투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신롬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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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뉴커런츠' 경쟁부문 심사의 성대한 시작
- 아름다운 가을 바다를 배경으로 영화인들이 모이는, 명실상부 아시아 최대의 영화 축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가 올해도 성대한 포문을 열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 경쟁 부문인 ‘뉴 커런츠’ 섹션 심사 또한 시작되었다. ‘뉴 커런츠’는 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이끌 신인 감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 경쟁 부문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총 10편을 선정하였으며, 이 중 최우수작 2편이 순위 없이 뉴커런츠상을 받게 된다. 또한 올해는 LG전자와 함께 ‘LG 올레드 뉴 커런츠상’이 신설되어, 해당 1편까지 10편 중 3편이 수상할 예정이다.10편 모두 프로그램 노트만 읽어보아도 다각도로 매력적인 작품들이다.관동 대지진에서 100년이 흐른 2023년을 기억하며 나온 모리 다츠야 감독의 <1923년 9월>,일반적인 성장 서사가 아닌 치열한 ‘청소년 치정 멜로드라마’ 손현록 감독의 <그 여름날의 거짓말>,방글라데시 전통 스포츠를 소재로 한 이퀴발 초두리 감독의 <더 레슬러>,매력적인 이미지의 ‘세련된 괴작’이라는 평을 받은 이종수 감독의 <부모 바보>,중국 본토와 홍콩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씨실 날실처럼 엮은 초이지 감독의 <빌려온 시간>,태국 남부를 배경으로 전통이 금지하는 사랑의 충돌을 담은 파티판 분타릭 감독의 <솔리드 바이 더 씨>,방글라데시의 일가족을 통해 이해와 성장의 이야기를 담은 비플랍 사르카 감독의 <스트레인저>,바라나시에서 일렁이는 빛과 그림자를 투과해 보여주는 라제쉬 잘라 감독의 <스파크>,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사사를 받은 야마모토 아키라 감독의 독특하고 파격적인 작품 <열병을 앓고 난 뒤>,사전 제작 기간에 다양한 초청을 받은 치아 치섬 감독의, 이민자를 소재로 묵직하게 엮어낸 <지금, 오아시스>까지.한국 영화와 일본 영화가 각각 2편씩 있고, 한국 관객들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고 여겨졌던 방글라데시 영화 또한 2편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영화가 각각 1편씩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얼굴을 찾아내겠다는 열의를 밝히며, 심사위원들은 밝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2023년 10월 6일 KNN시어터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는 정성일 영화평론가/감독을 심사위원장으로 하여, 아바 카헨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집행위원장, 인도네시아의 에드윈 감독, 미국의 영화 제작자 크리스티나 오 프로듀서, 한준희 감독까지 총 5인이 자리했다. 정성일 심사위원장은 심사 과정에서 “난투극”이 벌어지길 기대한다며, 쉽게 합의되지 않을 만큼 다양하고 흥미로운 시각들이 오가길 바라는 소회를 밝혔다.
모더레이터를 맡은 남동철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은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이 있는 분들만 모시려고 한 것은 아닌데, 인연이 있는 분들이 심사위원으로 선정되었다”며 가벼운 미소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영화 보러 부산을 찾았다는 한준희 감독부터, 역시 영화과 학생 시절 처음 왔고 뉴커런츠 초청 작품의 감독이기도 했던 에드윈 감독, 이전 회사에서 <더 킹: 헨리 5세>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던 크리스티나 오 프로듀서, 3년째 오고 있는데 올 때마다 생기있고 즐겁다는 아바 카헨 집행위원장, 비평가로도 찾았지만 2번째 연출작이 뉴커런츠 초청되었으나 수상하지 못했다며 질투심까지 담아 열심히 심사하겠다는 정성일 평론가까지 모두 부산과의 인연을 즐겁게 풀어놓았다.
심사위원단은 모두 향후 아시아 영화계를 이끌 감독을 기대하는 마음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특히 정성일 평론가가 고수하겠노라고 밝힌 3가지 원칙은 관객 입장에서도 흥미로운 원칙이었다. “영화 전반적으로 다 괜찮은데 특출하게 좋은 점이 없는 영화 vs 실패작이더라도 한 장면이 전에 없이 새로워 놀라울 정도인 영화”, “동시대에 많은 응원을 받을 만한 영화 vs 미래의 관객이 호응할 만한 영화”, “보면서 ‘이 사람의 최고 걸작이 되겠구나’ 싶은 영화 vs 보면서 ‘이 사람의 다음 영화가 보고 싶다’ 싶은 영화”에서 모두 후자를 택하겠다고 말했는데, 더없이 뉴커런츠라는 부문에 어울리는 기준일 듯싶다.
아바 카헨 집행위원장은 “미장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제스처나 캐릭터 등 영화의 전반적인 부분들을 보겠다”고 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영화를 통해 우리 안에 어떤 감정들을 불러 일으키는지”를 보겠다는 평도 있지 않았다. 에드윈 감독은 여기에 더해, “서로 다른 문화를 어떻게 잇는지, 아시아 사람의 정체성과 다른 문화를 배워 가는 모습”을 살피겠다는 말로 뉴커런츠 부문이 동시대와 미래를 이어갈 부문임을 확고히 했다.
한준희 감독은 “수상이라는 것이 결국 심사위원의 취향, 어떤 작품을 응원하고 지지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이므로 수상 여부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고, 크리스티나 오 프로듀서 또한 “심사는 개인적인 것이 반영되고, 예컨대 자신은 사진을 좋아하여 프레임이 잘 짜인 장면을 좋아한다”고 밝히면서도, 스토리와 캐릭터 같은 굵직한 요소를 함께 언급했다.
전반적으로 좋은 영화를 찾겠다는 기쁜 기대가 묻어나, 수상의 권위는 권위의식보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발생하는 것이리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뉴커런츠 부문의 10개 작품의 프로그램 노트를 보면, 어느 하나 전형적으로 굴러가리라 예상되는 작품이 없다. 모두 신선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영화일 듯하다. 기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각자의 기대를 담아, 부산에서 새로운 바람을 마주해 보자.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상영시간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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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과 사랑의 빛
여름과 사랑의 빛
<녹색 광선>은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 중 하나인 에릭 로메르의 대표작이다. 1990년 국내 개봉 이후 예술 독립 영화관에서 꾸준히 상영되고 있다. <녹색 광선>은 여름 휴가 동안 사랑을 찾아 나서는 ‘델핀’의 이야기다. 여행지에서 운명을 만난다는 낭만은 어느 시대에나 통한다. 특히 배경이 아름다운 휴양지라면 더욱 그렇다.
한 달여 간의 휴가 동안 파리 근교를 떠도는 델핀을 따라 펼쳐지는 유럽의 여름 풍경은 아름답다. 작열하는 햇빛은 눈부시고, 여름을 머금은 나무는 푸르르다. 그러나 델핀은 우울하다. 그녀는 때때로 갑작스럽게 울음을 터트린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됐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녀는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원하지만, 누구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가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델핀은 혼자가 싫지만 가벼운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그녀에게 노력하지 않는 거라고 비난하거나 그녀 탓으로 돌린다. 혹은 그녀가 마음을 닫았다고 단정 짓는다. 델핀은 그들의 말에 흔들린다. 정말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델핀은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휴양지를 옮기며 사람들을 만난다. 델핀은 사람들에게 친절해지려 애써보지만 쉽지 않다. 사람들은 그녀를 자신들만의 이성 체계 안에서만 판단하려 한다. 동물에게서 연민을 느끼고 식물을 친구처럼 여기는 그녀는 그들과 섞이지 못한다. 그녀 자신의 ‘다름’만을 확인할 뿐이다. 그들에게 친절해지기 위해 그녀는 스스로 혼자가 된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세상이 주는 행운의 기운을 믿기 때문이다. 운세에 따르면 녹색은 올해 그녀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다. 행운은 때때로 우연처럼 혹은 운명처럼 그녀를 찾아온다. 그녀의 감각 기관은 무의식적으로 ‘녹색’을 발견한다. 델핀은 우연히 쥘 베른의 동명 소설 <녹색 광선>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쥘 베른은 해가 진 후에 수평선 위로 나타나는 녹색 광선을 보면 자기 자신과 타인의 진심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소설 속 여주인공은 제목처럼 그녀가 만난 젊은이의 마음을 알게 된다.
여름에는 안개가 짙어 녹색 광선을 보기 힘들다. 비아리츠에서 만난 남자도 다른 남자들과 다르지 않다. 도망가는 그녀를 쫓아와 ‘같이 놀자’고 말한다. 하룻밤의 오락 같은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델핀은 다시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기차역 안에는 각기 다른 행선지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여행의 일시적인 흥분은 가라앉고, 모두 현실로 돌아갈 것이다. 그 일상적 공간에서 델핀은 한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그는 먼저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그녀를 바라본다. 델핀은 처음으로 남자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남자와의 대화는 어딘가 다르다. ‘재밌지 않다’는 말에 남자는 ‘왜’냐고 묻는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델핀은 낯섦과 동시에 끌림을 느낀다. 델핀은 남자와 함께 생장 드 뤼로 가기를 스스로 선택한다.
델핀과 남자가 대화하는 기차역의 의자와 배경은 녹색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식당의 테이블도 녹색이다. 길에서 마주친 상점의 이름은 녹색광선이다. 남자와 함께하는 델핀의 주위에 온통 행운의 상징이 가득하다. 델핀은 그녀의 마음을 확실히 알기 위해 일몰을 보러 간다. 그녀는 이제까지 주변인들과 ‘다름’을 느끼고 융화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진실한 자아와 거짓된 자아는 계속 충돌하고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다르다. 지칠 때까지 말을 쏟아내도 남자는 여전히 델핀을 알아가고 싶어한다. 같이 바욘으로 가자는 남자의 말에 델핀은 망설인다. 이번에야말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날이 맑다. 거짓말처럼 녹색 광선이 선명히 빛난다. 그녀는 그곳에서 사랑을 찾는다.
사람들은 쉽게 페르소나를 만들어 살아간다. 혼자가 두렵고 외롭기 때문이다. 서로가 다르지 않은 척 무리 안에 섞여 들고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비교적 쉽다. 하지만 사랑은 본래 한 사람의 세계와 또 다른 한 사람의 세계가 만나, 각자의 치부가 보일 만큼의 정서적 연결을 맺을 때 가능하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비슷한 상태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우선 자신을 가볍게 비우는 데서 시작된다. 델핀은 누구보다도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었다. 나의 세계에서 벗어나 상대의 세계를 배우고, 그 빈자리에 타인을 채워 넣는 일.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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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란 나에게 무엇일까?
영화는 종합예술로
글과 음악 연기, 편집 등
현대 기술과 과거의 고전적인 요소가 섞인 매체이다.
영화란 무엇인가를 정의할 때, 상당히 힘들다.
누군가는 인생이라 답 할수도 있고, 누군가는 즐거움이라 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추억이라 말 할수도 있다.
오늘 소개해볼 영화는 이 제목에 대한 답변으로 가장 제격인 영화이다.
'시네마 천국'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로,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강남 압구정 CGV에 데려가서 보여주신 기억이 거의 10년이 됬음에도 생생하다.
그 당시엔 이 영화를 볼 때 그저 토토가 영화를 좋아하는 모습에 나를 투영하여 보았고,
지금도 그 모습은 여전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1980년대의 유명 영화감독 살바토레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살바토레가 퇴근하며, 동거하는 여자친구로부터 알베르토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고,
고향에 방문하게 된다.
1940년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시칠리아 섬의 지안칼도 마을에 사는 토토는 시간만 나면, 시네마 파라디소에 가는 영화를 좋아하는 소년이였다.
토토는 그런 영사기 기술자인 알베르토에게 기술을 배우고 싶어했으나,
알베르토는 지옥같다며, 이를 거절한다.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토토의 마음은 부모에게는 속을 썩힐 뿐이였다.
전쟁이 한창이던 이탈리아. 토토의 아버지는 전쟁에 나가 집에 어머니 뿐이였으며,
토토에게 우유심부름을 하면, 그 돈으로 영화를 보기 일쑤였으며,
어쩔 때는, 검열당한 필름을 모아뒀다 불이 나서 동생이 다칠 뻔 하며, 어머니는 알베르토와 가까이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다 어느 날, 초등학교 학력 시험을 보러 온 알베르토는, 토토에게 답안지를 보여달라 하고,
토토는 그 대가로 영사 기술을 가르쳐달라 요구한다.
어느 날, 영사기 필름에 불이 붙고 알베르토의 눈이 멀게 된다.
그 동안 알베르토로부터 영사 기술을 배운 토토가 영사기를 돌린다.
직업도 있는 토토는 학교를 그만두고 영사기를 돌리고 싶어하지만, 알베르토의 충고로 학교를 다니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현실에 벽에 부딪힌다.
좋아하는 엘레나의 집은 부유한 상류층이였지만, 토토는 돈도 없으며, 뺵(배경)도 없고 뭐도 없던 현실에 부딪혀,
엘레나는 아버지의 전근으로 이사가고, 토토는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그 후, 알베르토는 로마로 가서 너의 꿈을 펼치라 한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는
왜 영화를 좋아하는지,
동심,
꿈
지금 힘든 10,20,30,40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한번 쯤은 꿈꾸었던 모든 요소들이
황홀하게 어우러졌으며,
매번 영화를 비관적으로만 보는 내가
다시 어린 초등학생 때의 나의 시점으로 돌아가 영화를 돌아보게 만들어준다.
지금에서야 시네마천국을 보면, 그당시의 이태리의 파시즘이 어쩌고, 전쟁피해로 인한 아버지 없는 토토의 이야기니
이렇게 보겠지만, 그 어린 나이에 이 영화를 볼 때 만큼은, 그냥 영화를 사랑하는 문학소년의 모습이 그대로 고스란히 남겨져있다.
그저 토토처럼 영화에 빠져 사는 나의 모습을 회상할 때, 가끔 무료한 내 일상에 지칠 때 보약과도 같은 영화이다.
자신만의 영화의 정의를 한번 쯤 이 영화를 보고 내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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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복 하나씩 교환하자!” 엄마의 강요로 대만 최고의 명문인 제일여고 야간반에 입학하게 된 ‘아이’는 짝퉁 엘리트가 된 것 같아서 부끄럽다. 학교의 전통에 따라 같은 책상을 공유하는 주간반의 책상 짝꿍 ‘민’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지던 중, ‘민’이 주간반과 야간반의 교복을 교환해 함께 땡땡이를 치자고 제안한다. 평범한 자신과는 달리 공부도, 놀기도 잘하는 ‘민’과 어울리며 다채로운 세상을 경험하던 어느 날, 첫눈에 반한 제일고의 인기남 ‘루커’를 ‘민’ 역시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두 사람과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것만 같은 못난 열등감에 ‘루커’의 앞에서 주간반 행세를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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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내일의 기억> 티저 예고편
깨어난 후, 다른 사람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고로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난 수진 옆엔
자상한 남편 지훈이 그녀를 세심하게 돌봐주고 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후,
마주친 이웃들의 위험한 미래가 보이기 시작하자 수진은 혼란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만난 옛 직장 동료는
수진을 걱정하며 지훈에 대한 믿기 힘든 소리를 하고,
때마침 발견한 사진에서 사진 속 남편 자리엔 지훈이 아닌 다른 남자가 있다.
설상가상 수진은 알 수 없는 남자가 자신을 위협하는 환영에 시달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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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최선의 삶> 티저 예고편
그때는 몰랐다 그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열여덟 ‘강이’, ‘아람’, ‘소영’.
더 나아지기 위해서 기꺼이 더 나빠졌던 우리의
이상했고 무서웠고 좋아했던 그 시절의 드라마
최선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