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10-14 16:54:33
진정한 멀티버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절찬 상영 중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이틀 전, 바로 화제의 작품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개봉을 했는데요!
지난 9월 20일, 영화 관련 미국 소셜플랫폼인 레터박스에서 2022년 기준 가장 많은 팬을 가진 100편의 영화 순위를 공개했는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6위에 올랐습니다. 놀라운 점은 영화가 해외에서 올해 3월 개봉작이었기에 가장 단기간에
팬을 확보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관람객들의 실시간 반응을 살펴볼까요?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다정함이 온 우주를 구하진 못하더라도
나와 내 세계는 붙들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네이버 /kkdd****)
이게 진짜 멀티버스.
그동안의 멀티버스는 다 "가짜"다...
(CGV / sk**d7091)
씨네랩 에디터 Hizy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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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아이토르가 아닌 루시아라 불러주세요."
2만 종의 벌/20,000 Species of Bees
에스티발리스 우레솔라 솔라구렌 감독/Spain/2023/128min
'국제장편경쟁' 부문
“아이토르!” 스페인의 한적한 숲길. 몇 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른다. 그들의 긴박하고 절박한 표정으로 보아, ‘아이토르’란 이름의 아이가 사라진 듯하다. 그러다 한 아이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그는 잠시간 망설인다. 미세하게 입을 오물거리고 얼굴 근육도 떨린다. 살짝 고개를 수그렸다 다시 든 그가 소리친다. “루시아!” 그 소리를 들은 옆의 어른도 아이와 같은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아이토르” 대신 “루시아”를 외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아이토르’를 고집하고 누군가는 ‘루시아’로 이를 대체한다. 산속에는 ‘아이토르’와 ‘루시아’라는 외침이 함께 울린다. 〈2만 종의 벌〉은 아이토르였으나 이제는 루시아가 된 한 아이의 이야기다.
방학을 맞아 할머니가 있는 시골 마을로 떠난 여덟 살 아이토르와 그의 가족. 시골 마을은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로 북적인다. 어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바쁘고 아이들은 그간의 공백을 아랑곳하지 않고 금세 어울린다. 그런데 이 평화롭고 안온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아이토르다. 긴 머리, 매니큐어를 한 손, 수영장에서 옷을 벗지 않기……. 아이토르는 가족뿐 아니라 마을 사람에게서도 관심을 끈다.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와 함께 길을 걷는 아이토르를 보고 손녀가 참 예쁘다며 덕담을 건넨다. 할머니의 표정은 묘하게 일그러지고 아이토르는 수줍은 듯 웃는다.
아이들이 잠든 저녁. 할머니가 엄마를 부른다. 네가 너무 오냐오냐하며 아이를 키워서 아이토르가 저런 것이라며 엄마를 비난한다. 엄마는 아이가 아직 어리고 정체성을 조금씩 형성해나가는 과정이라며 항변한다. 지난 세대의 성별 가치관으로 아이를 교육하지 않았다는 응수도 덧붙인다. 하지만 엄마 역시 불안하다. 다만 이 불안을 제대로 마주하기에는 아직 용기가 부족할 뿐이다.
아이토르는 왁자지껄한 가족 모임에 끼는 대신 산에서 양봉업을 하는 이모할머니와 금세 친해진다. 이모할머니는 아이토르의 특별함을 알아챈다. 그러고는 두려움과 불안을 마주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아이토르는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털어놓는다. 아이토르는 그전에도 주변에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 보였다. “아빠처럼 되기 싫어요.” “할머니, 전 왜 이래요?” “다들 제가 누군지 아는데 왜 저만 몰라요?” 이런 고민의 연장에서, 아이토르는 이모할머니에게 다시금 묻는다. “제가 죽으면 여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어요?” 이모할머니는 여자가 되기 위해 죽을 필요는 없다고 일러준다. 여러 물음으로 자기 존재를 질문하던 아이토르는 마침내 선언한다. “루시아라고 불러주세요.”
아이토르가 루시아로 불리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다. 아빠는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아이를 너무 오냐오냐했다며 화를 내고, 늘 루시아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려는 엄마도 아이토르를 루시아로 부르는 일만큼은 망설인다. 사실 엄마는 지금 루시아 일 말고도 고민할 것이 많다. 조각 예술가로 일하는 그녀는 교수 임용을 앞두고 있다. 마지막 실기 작품을 준비하는 데 매진 중이던 그녀는, 사실 저명한 조각가인 아버지의 작품을 자기 작품으로 제출해둔 상태다. 그런 그녀에게 루시아의 고백은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아들을 딸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은 루시아만큼 솔직하고 용기 있게 살아가고 있는지.
〈2만 종의 벌〉은 이 모든 과정을 차근히 좇으며 루시아와 그녀를 둘러싼 세계의 변화를 담아낸다. 유독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친구와 둘이 산속 계곡에서 수영을 하려던 루시아. 그녀가 옷을 벗기를 망설이자 친구가 먼저 수영복을 바꿔 입자고 제안한다. 자신의 여야용 수영복이 너무 작아서 불편하다고 말이다. 쭈뼛대는 루시아에게 친구가 말한다. 이미 학교에서 루시아와 같은 친구를 만난 적이 있고 자신은 그런 친구의 모습이 “귀엽다”고 말이다. 그제야 루시아가 환하게 웃는다. 그러고는 둘이 함께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물속으로 나아간다. 루시아가 마주한 미래가 쉽지만은 않겠지만, 마냥 껄끄럽기만 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신중함이 깃든 아름다운 미래 전망으로 이 장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이 장면이 더 많은 사람의 가슴에 새겨지길 바란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는 9월 13일부터 9월 20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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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의 이삭을 주우며 살아가는 사람들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밀레의 명화 <이삭줍는 여인들>을 보고 아녜스 바르다가 현대 사회의 모습까지 확장해서 영화를 진행 시킨 점이 특색 있었다.
이 그림을 보면 따뜻함, 평온함을 느꼈는데 아녜스 바르다는 이 그림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각자의 이유로 버려진 음식을 줍는 사람들, 우리 사회가 주목하지 하지 않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같은 그림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느낌을 떠올리고 그것을 영화로 제작했다는 점이 왜 아녜스 바르다가 누벨바그의 거장이라고 불리는지 깨달을 수 있었던 영화였다.
또 줍는다는 행위가 처음에는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하는 행위,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행위라는 이미지가 바로 떠오른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진행될수록 환경을 위해서, 예술을 위해서 줍는 사람들 등등 다양한 이유와 자신만의 신념을 위해 줍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래서 길에서 무언가를 줍는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영화를 보면서 바뀌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버려진 것들도 주인공이 될 수 있고 그것이 누군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모습, 새로운 탄생 품이 되는 영화의 흐름이
처음엔 버려진 물건을 줍는 사람들과 왜 줍는지 이유에만 집중이 되었다면, 나중에는 버려진 물건들 에게도 시선이 갔다.
그리고 영화의 분위기는 일상적인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어 전체적으로 따뜻한 분위기였지만, 그 일상을 통해 현대 사회의 과소비와 대량 생산 등 현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 봤던 다큐멘터리와 달랐던 점은 어떠한 주제가 있으면 그 주제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인터뷰, 자료들, 주인공의 삶 위주로 나온다.
근데 이 영화는 타인의 일상을 찍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도 하고 자신의 손을 보여주고 직접 버려진 물건을 주워 오는 것을 찍는 등 감독님의 참여가 직접적으로 보였다. 그 점이 기존의 다큐멘터리와 다르고 마치 일기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곰팡이가 마치 추상화 같아서 좋아한다는 장면이다. 곰팡이를 보는 것조차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보는 아녜스 바르다의 시선이 특별했다. 액자 프레임 안에 곰팡이를 담으니까 정말 하나의 작품처럼 보였다. 또한 이 장면도 남들이 신경을 쓰지 않는 것, 더럽다고 생각하는 소재를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 주제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결말 부의 폭풍우 속에서 이삭 줍는 여인들의 그림이 인상 깊었다. 이 영화 처음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평온해 보이는 이삭 줍는 여인들의 그림이 나왔다. 이 영화가 끝난 후 누군가에게는 줍는다는 행위가 생존, 신념, 가치 있는 행위라고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다. 결말에는 같은 이삭 줍는 여인들이지만, 폭풍 속에서 이삭을 줍고 있다. 누군가에겐 줍는다는 것이 폭풍우 같은 환경에서 버티며 줍는다는 것을 표현하였고, 이 영화의 흐름과 주제가 마지막 그림 한 장으로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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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러 vs 액션, 익숙한 것들의 집합체 <스위트홈>
1. 신체능력 5점: 이 배우에 이 무기, 낯설지 않아
2. 판단력 5점: 검술은 거들뿐
3. 정신력 5점: 소주 한 잔으로 몇 모금까지 가능?
4. 필터링 2점: 생각을 그대로 뱉는 편
5. 포커페이스 5점: 비현실적인 초연함, 하지만 사실은....
신체능력, 이 배우에 이 무기, 낯설지 않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모리 역할을 맡은 김남희 배우가 해당 캐릭터 정재헌으로 분했기 때문에 검을 든 모습을 보자마자 친근함을 느꼈다.
"돌잡이에서 칼을 잡았다"라고 말하는 것이 납득이 갈 정도로 멋진 검술 실력을 보여준다.
판단력, 검술은 거들뿐
아무리 검술 실력이 좋다고 해도, 갖가지 능력을 가진 괴물들을 칼 한 자루로 상대하기엔 버거워 보인다.
그런데, 정재헌은 칼 한 자루로도 대체로 문제를 잘 해결한다.
관찰 결과, 그 비결은 상황 판단력!
감상의 재미를 위해 자세한 묘사는 생략한다. 그래도,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자면 상황을 판단하여 치고 빠지기를 잘한다.
정신력, 소주 한 잔으로 몇 모금까지 가능?
과거 알코올 중독이었다는 대사 한 마디, 그리고 빨리 마시고 가라는 식료품 담당의 핀잔을 들어가며 소주 한 잔을 몇 모금에 걸쳐 마시는 장면. 이 장면이 정재헌이라는 캐릭터의 정신력을 아주 잘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잠깐 동안 비친 인물의 성향이 훗날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도 드러난다.
필터링, 생각을 그대로 뱉는 편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도 '방이 더럽다'는 말을 툭 내뱉는다.
목소리와 말투만 들어보면 무척 다정하고 사려 깊을 것 같지만, 정작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뼈 때리는 소리이다.
생각을 말로 옮길 때 필터링이 잘 안 되는 편.
예상치 못한 갭이 캐릭터의 매력도를 더 높여준다.
포커페이스, 비현실적인 초연함, 하지만 사실은....
괴물의 위협을 받고 나서, 중요한 행동을 결정하기에 앞서서도 차분해 보인다.
시청자 눈에도, 옆에 있는 인물의 시선으로도 "떨고 있다고? 하나도 안 그래 보이는데?"라고 생각게 되지만, 정작 정재헌은 '굉장히 떨린다'라고 말한다.
의도치 않은 포커페이스의 달인.
배우 개그 또는 스포일러
존재 자체로도 스포일러가 되는 배우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이 작품에서 한 캐릭터로 분하신 김갑수 배우. "언제 어떻게 돌아가시는 걸까?" 사망 전문 배우로 유명하신 터라, 해당 배우의 캐릭터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다.
드라마<미스터션샤인>과 영화 <박열>에서 악랄한 연기를 선보여준 이정현 배우는 "여기에서는 또 얼마나 나쁜 놈일까?" 비교하며 감상케 된다.
또, 연기 잘하는 조승우 배우가 극찬한 한 배우도 극 중에 등장하는데 "이 작품에서 스쳐가는 조연으로 나온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감상했다.작품 자체 스토리뿐만 아니라 현실에서의 배우 필모그래피를 고려하며 전개를 유추하게 된다.
그 예측이 뒤집어지든, 그대로 이뤄지든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더해져 좋다.
호러가 우선일까, 액션이 우선일까?
한때 재밌게 감상하던 만화가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장르를 설명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sf, 역사, 액션, 개그, 모험 등 잡다한 주제들을 모두 포괄하는 만화였기 때문에 그냥 '장르는 짬뽕이야'라고 소개하곤 했다.이 드라마 <스위트홈>도 그렇다. 장르는 짬뽕 같다. 감상하다 보면 익숙한 요소들이 이것저것 보인다.
돌연변이와 인류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할 법한 고민은 영화 <엑스맨> 시리즈와 게임 <메트로>에서 먼저 들었다.
조용하던 주인공 소년이 돌연변이가 되어 고통스럽게 성장하는 장면은 굉장히 만화 <도쿄 구울>과 닮았다.
생존자들이 괴물과 괴물보다 무서운 인간들에 대항해 살아남으려는 투쟁은 드라마 <워킹데드> 시리즈에서.
캐릭터들에게 함부로 정 주면 매우 가슴앓이하게 될 수 있다는 면에서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리즈가 떠올랐다.
거기에 의사 드라마에서도, 법정 드라마에서도 연애하듯이 세상이 망조 드라마여도 로맨스가 가미되어 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오마주한 듯,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 장면도 보였다.이런 '짬뽕'콘텐츠 중에서도 내가 선호하는 작품들은, 아무리 잡다한 특징을 포괄하고 있더라도 명확한 한 주제가 이끌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스위트홈>은 쭉 끌고 나가는 주 특징이 없는 듯하다.특히, 배경음악과 화면이 조화롭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E-sport 관람은 하지 않아서 이 드라마의 주 배경음악으로 쓰인 Warriors라는 곡을 몰랐다.
하지만, 화면은 호러가 강조되고 있는데 음악은 액션에 힘을 주고 있으니 어색했다.
이 작품은 분명 호러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왜 굳이 액션을 강조하는 음악을 주로 썼을까? 이 점이 아쉽다.
원작과 다른 캐릭터 구성과 전개
N웹툰에서 유료로 전체 스토리를 감상하기는 부담스러워서 서핑을 통해 정보를 찾아봤다.
원작 웹툰의 설정과 드라마를 비교해둔 정보들을 읽다 보니, 원작 그대로의 실사화를 기대하던 팬들에겐 아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한정된 공간 안에서 괴물과의 싸움, 생존을 위한 갈등을 다룰 뿐 아니라 아파트 밖의 상황을 전해줄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추가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해당 요소들로 인해 시즌2를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쉬운 면도 분명 존재하지만, 원작과 다르게 전개되면서
새로 등장할 인물이나 에피소드들을 기대하며 시즌2를 바라고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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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쓴 영화사, 다시 쓴 가족애, 깊은 심연 하나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갑자기 어느 정치인이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법명은 '예술가 법'. 작품 안 내는 예술가를 예술가로 부르지 않는 뭐 그런 것이다. 금세 대체 이 아저씨는 뭐 먹고살까? 밥은 챙겨 먹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홍콩의 왕가위에 대한 궁금증이다. 왕가위 감독은 차기작 대본을 쓰고 있다는 말만 있지 실질적으로 뭔가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걸까? 왕가위가 설마 투자 못 받아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국제적인 거장인데? 또 <헤어질 결심> 개봉 이전에 박찬욱 감독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뭐 <리틀 드러머 걸>을 연출한 사실을 좀 늦게 알아서 김이 새긴 했지만 그의 신작을 두 손 모아 참 오랫동안 바라왔다. 아. 여기에 정말 적합한 사람이 있다. 원빈 배우랑 나홍진 감독은 좀 너무한 것 같다. 농담 반 섞은 말이긴 하지만,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버티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누가 한번 물어봐 줄 사람?
근데 이런 욕심이 작품 적게 낸다고 들거나 안 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영화감독은 영화를 내면 낸 대로 차기작이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드라이브 마이카>를 내고 '와 이거 뭐지' 싶었던 소름이 6개월 후의 <우연과 상상>으로 이어졌다. 6개월이면 짧은 텀이다. 그리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다른 단편도 만들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 사람 분명 열일하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홍상수 감독도 전작 <소설가의 영화>가 너무 좋았어서인지 일 좀 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또 <탑>이 개봉 예정 아닌가? 분명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나는 이 사람을 더 구박하고 싶어 진다. 이런 내 욕심이 무색하게 앞 두 감독은 굉장히 짧은 텀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거 잘 알고 있다. 영화를 만드는 건 많은 돈과 노력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홍상수 감독은 작년, 올해 해마다 두 편씩 만들었다. 이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홍콩의 왕 뭐 감독은 하나 찍는데 10년이 걸리는데 말이지. 그에 비해 2017년 데뷔, 2019년 2번째 작품, 2021년 각본 집필, 2022년 3번째 작품은 '다시 보니 선녀'가 따로 없다. 이 사람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영화를 세 편밖에 안 만든 게 아무튼 기분이 나빠서 짜증이 난다. 어쩌면 거장의 새로운 시작이 될지도 모르는 영화가 이번 주 수요일 개봉했다. 누군가에겐 어렵고 난해하지만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겐 이만한 장르영화가 없을 것이다. <놉>이다.
비극 속으로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주인공 O.J 헤이우드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다. 아버지와 함께 말을 기르는 목장을 운영하던 OJ. 그렇게 별 볼일 없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부자에겐 자부심이 있다. 초창기 할리우드에 말을 여러 번 출연시켰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았던 헤이우드 목장. 지금 당장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여러 난관에 봉착해 있다. 그래도 어떡해. 일은 해야지. 아버지와 함께 목장에서 말을 탄 채로 일을 하고 있던 OJ.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이었다. 갑자기 수상한 구름이 나타났다. 하던 전화가 갑자기 끊기기 시작한다. 전화기 자체가 전원이 잘 안 돌아온다. 뭐지? 이상한 낌새에 뒤를 돌아본 OJ. 옆에서 다른 말을 타고 있는 아버지에 시선이 갔다. 말에 열쇠 하나가 박혔다. 말에서 피가 났다. 아버지가 쓰러졌다. 철렁 내려앉는 OJ. 구름은 온갖 것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쏟아진 것들 중 하나는 아버지의 눈에 박힌 동전이었다. 이 동전 때문에 피를 너무 많이 흘렸던 아버지. 준비도 안된 채로 OJ는 아버지를 떠나보낸다. 아버지가 떠나보내도 삶은 계속됐다. 참 야속하게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목장 운영이었다.
6개월.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빈자리에 신음하고 있었다. 늘 하던 일을 하던 OJ. 한 촬영장에 말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고 말 럭키를 끌고 갔다. 말을 들었으면 좋으련만. 지시에 응하지 않았던 럭키는 결국 일을 망쳐버렸다. 말을 반려당한 OJ. 그때 촬영장에 있던 촬영감독의 안면만 텄던 것 빼고는 소득이 없었다. 도통 되는 일이 없는 주인공. 이제 말을 그냥 팔고 싶어 한다. 잘 알던 주피터 파크에 말을 파려고 했던 OJ. 마음을 먹은 날에 고스트라는 말과 함께 밖에 나와있었다. 어두운 밤. 조용한 목장에 갑자기 이상한 물체가 목장 앞에 나타난다. 모든 걸 빨아들이는 미확인 생물체를 보는 OJ.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경제난에 시달리던 남매. 두 남매의 머릿속에 전구가 반짝인다. 이 영상을 팔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 영상이면 경제난도 해소 될 것 같았다. 남매 OJ와 에메랄드는 이 생물체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한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다. 이 UFO가 끔찍한 비극속으로 남매들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걸.
어떤 맥락에서든 읽힐 수 있는 이야기
엄청난 영화다.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려운, 설명이 복잡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가장 첫 장면에 구약성서 중 하나인 나훔서의 래퍼런스를 딴 한 구절이 나온다. 이걸 보면 종교적인 영화인가? 생각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종교적인 소재가 많이 들어간다. 특히 색깔을 활용한 암시는 극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한다. 이런 상징들이 피상적으로 픽픽 던져지는 게 아니라 영화의 서사와 딱 달라붙은 채로 작동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영화사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가장 첫 시퀀스가 흑인 기수가 말을 탄 채로 달리는 여러 사진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에드워드 머이브리지라는 사람이 탄생시킨 이 영화. 이 영화의 주요한 설정은 남매가 이 연속사진에 있는 기수가 남매의 조상이라는 점이다. 이를 기점으로 영화를 운영시키는 주요 도구들을 암시하는 소재가 제시된다. 또 극에서 모든 일의 발단이 되는 ‘돈이 되는 UFO 영상’을 찍는 행위도 사실 영화의 다른 방식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주인공 중 하나인 주프는 과거에 카메라 앞에서 인기를 누리던 인물이었다. 먼 범위의 무비스타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주요 인물들의 설정과 몇몇 키워드까지 이 작품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암시하는 부분도 있다. 또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작동했던 부분은 두 사람이 남매라는 점이다. 이 지점은 영화 전체적으로 두 인물에게 충분한 서사를 부여한다. 부부, 연인이 아닌 남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가 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런데 이 작동 원리를 구체적으로 쓰기엔 너무 어렵다. 이 작동 원리에는 인간의 어떤 행위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담겨있다. 단순히 쓰기도 어렵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영화의 전체 줄거리와도 관련이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보시는 걸 추천한다. 대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영화는 여러 갈래의 다층적인 이야기를 죄다 때려 박은 느낌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인공 멋있게 묘사해야지. 종교적인 상징도 때려 넣고. 성스러운 존재로 만들고. 완전 캡틴 아메리카 느낌 나게. 멋있게 영화사에 대한 이야기도 넣는 거야. 왜? 간지 나니까. 초반부에 최초의 영화를 보여주는 거지. 뭐 그런 게 아니다. 이 영화는 잘 짜인 문학작품처럼 각기 다른 결론으로 향하는 장점이 있다. 미확인된 현상에 대응하는 인간의 모습이랑 영화사, 가족애, 호러, 스릴러와 뭔 관련이 있을까? 근데 그게 또 인간의 어떤 행위와 관련이 있다고? 그걸 두 시간가량으로 만들었다는 건 사실 잘 상상이 안 될 것이다. 아마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이다. 장르적인 재미 위에 매직아이를 그려놓은 조던 필의 설계는 엄청났다. 아마 올해의 각본으로 많이 거론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야기를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어 붙였다.
솔직히 어려울 것 같긴 해
그렇게 개요가 되는 정보만 얻고 나서 관람을 추천하는 영화지만 분명하게 쓸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첫 번째. 이 영화 재미있다. 두 번째. 좀 어려울 수도 있다.
일단 왜 재미있었냐. 장르적으로도 잘 잡은 호러영화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예고편에서 UFO가 제시됐으니 이에 대한 것은 스포일러가 아닐 것이다. 이 미확인 물체에 대한 시각화와 청각화는 아주 탁월했다. 또 이 물체에 대한 질감이 몇 번 나타난다. 이 부분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조성한 뒷배경이 되기 충분했다. SF/호러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뭘까? 이 판타지적인 요소가 우리의 삶 속에 현실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이를 위해서 영화의 배경이 관객에게 설득이 돼야 한다. 뭐 논리적인 인과관계가 탄탄한 것도 좋은 방식이겠지만 시각적으로도 잘 구현하는 것도 다른 방안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아나 데 아르마스가 연기한 인공지능 캐릭터, <어벤저스 : 엔드게임>에서 후반부 전투신을 묘사하는 방식은 우리가 몰입하기 충분한 연출이었다. 이 말은 즉슨 장면을 구성하는 CG나 인물 설정이 뭔가 작위적인 티가 나면 관객이 몰입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를 잘 알았는지 <놉>에서 묘사한 UFO의 질감은 어디서 본 것 같다. 현실성이 있는 소재(?)로 이루어진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더 기괴하다. 이 ‘현실감 있음’이라는 표현 방식은 이 UFO의 모든 행위와도 관련이 있다. 이 UFO가 만드는 이미지가 끔찍하니까 예고에서 봤던 장면을 보더라도 더 비참한 기분이 든다. 여기서 오는 끔찍함이라는 정서는 호러라는 장르적 특성을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된다. 또 조던 필 감독이 창의성 있게 꼼꼼한 부분까지 영화에 나타난다. 그래서 다들 이 ‘창의성 있는 꼼꼼함’이 관람 후에 기억 속에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호러 영화니까 비명 소리가 들어가겠지? 어떤 비명 소리는 기억에 남을 것이다(글 쓰면서도 생각난다)
근데 장르적으로 재미있긴 하지만 좀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두 이야기가 얽힌 구성을 품고 있다. 주요 이야기는 주인공 OJ와 여동생 에메랄드의 이야기다. 또 다른 이야기는 좀 간단하다고도 느낄 수 있을 이야기다. 이 후자의 이야기는 사실 주인공 OJ의 서사와 큰 연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후자의 이야기에서 감독이 사용한 연출법이 굉장히 끔찍하기 때문에 ‘와 이거 호러영화 맞구나’ 싶은 분들이 아마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가 과연 왜 이야기 중간에 들어갔을까?”를 영화를 보시면서 생각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 영화의 주요 이야기의 원인이 되는 일이기도 하며 결정적으로 어떤 것을 암시하고 있다. 또 조던 필이 해석한 인간의 어떤 행위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이 시퀀스(들)를 삽입했기 때문에 앞에서 상기했던 ‘다방면으로 해석되는 이야기의 강점이 성립되기도 한다. 주의 깊게 보시라. 이 장면들을 넣은 건 그냥 무서운 분위기만 담기 위해서는 아니다.
또한 이 UFO의 본질적인 속성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바와 비슷하게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잘 생각해보고, 어떤 것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 대한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이 UFO의 속성은 이 것이기 때문에 좀 더 자연스러우며 극에서 내적인 탄력을 받는다. 그 속성에 대한 근거가 영화 전반적으로 계속 제시된다. 이 부분을 놓치지 않으셨으면 한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위에서도 썼지만 영화의 엔딩에 대해서 의문부호가 생기실 것 같다. 이 영화의 엔딩은 주요 내러티브의 한 지점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대칭을 이루는 이유는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렇게 근거를 탄탄하게 쌓아 올린 전달 방식 덕에 엔딩이 갖는 내적 논리는 사실 촘촘하게 짜여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읭? 하는 분 많을 것 같다. 근데 여기서 뭔가 엔딩을 바꾸면 오히려 이야기의 균열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공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난 것이 몇 가지 있다. 일단 두 영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E.T>와 <미지와의 조우>다. 또 일본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굉장히 잘 알려진 한 장면을 오마주 한 부분도 있다. 하이라이트에 히치콕의 영화가 생각나는 장면도 있다. 이거 해외 리뷰 기사들 찾아보면 좀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뭐 무조건 다 봐야 한다 이런 건 아니지만 극을 보고 나서 '아 조던 필 감독이 영화사에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구나'라고 생각하면 감상 후의 재미가 넓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영화사와 종교에 대한 부분도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일단 극에서 반복되는 몇 가지 색들 보고 나서 찾아보면 분명히 의미가 있다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영화사의 한 부분과 종교적인 소재가 엇갈리는 한 중간지점이 있다. 최후반부 엔딩 즈음에 나타나는데, 이것에 대해서도 관람 후에 찾아보면 꼼꼼하게 이야기를 설계했다는 것이 느껴지실 것이다. 또 특정 인물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설정된 지점도 눈에 들어온다. 영화 다 보고 나서 어디에 무언가를 검색하면 한 인물의 이름이 가장 먼저 들어올 것이다. 이 사람 유심히 보시라. 이 영화의 맥락을 풍부하게 만드는 좋은 캐릭터 설정이다.
또 감독의 전작 두 편도 보고 가면 좋을 것이다. <겟 아웃>은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렇게 전개될 것이야'라고 예상하는 걸 뒤통수 한번 퍽 치고 전개하는 작품인 <겟 아웃>. 또 <어스>는 엔딩에서 미국인이 묻는 미국이라는 정체성에 관한 영화다. 이렇게 영화들의 핵심 키워드를 전면에 제시해도 스포일러가 아닌 신기한 두 영화. 아마 두 영화의 가치는 직접 보시면서 느껴야 더욱 선명하다. 이야기 전개 방식이 주제의식과 엔딩과도 큰 연관이 있어서 무게감 있게 단점을 찌른다는 느낌이 드는 좋은 작품들이다. 글쓴이 개인적으로는 어스를 더 좋아하는,. 문제의식을 더 잘 찌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리한 방식은 <어스>때보다 더 발전했다. '미국 사회에 여전히 잔존해있는 몇 가지 병폐'에 대한 이야기는 <놉>에서도 역시 제시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얄팍하게 건드리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사실 눈에 안 들어오긴 했어
사실 극에 너무 몰입하고 봐서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없다. 그만큼 영화의 연기 톤을 잘 뺐다는 말이 될 것이다. 또 각본도 잘 썼으니까 크게 이물감을 못 느꼈다는 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의 설득력이 가득 차서 외적인 것들이 눈에 안 들어오는 좋은 영화였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을 적어보면, 키키 파머는 초반부에 살짝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한 러닝타임 25분을 넘어가서는 자연스러웠다. 인물 중 무서워하는 연기는 최고였다. 니머지 두 주인공 다니엘 칼루야와 스티븐 연의 퍼포먼스는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다니엘 칼루야는 기죽었지만 내면의 토양이 단단한 인물이다. 이를 위한 준비물들을 배우는 잘 이해해서 멋지게 소화했다. 또한 스티븐 연은 극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글쓴이는 이 배우가 굉장히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어디에서 힘을 주고 빼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이 장점은 극에서 크게 관통하는 주요한 부분이다. 이 배우의 연기 덕에 호러, 미스터리, SF를 바탕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곁가지를 너무 잘 쳐냈다. 난 <미나리> 때보다 더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안 느낄 것 같긴 하다. 아무튼 두 배우는 감독 조던 필만큼이나 훌륭한 역량을 잘 뽐낸다.
한번 더 가자
감독 조던 필은 이미 주요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다. 첫 작품 <겟 아웃>에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조던 필. 뭐 지금 12월도 되기 3개월이나 남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작품, 각본상에서 이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각본상은 아카데미 수상 유력할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헤어질 결심>이랑 경합일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미국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페널티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작년 <드라이브 마이카>도 <코다>보다 훨씬 훌륭했지만 상은 못 받았으니까. 암튼 이 이야기의 각본은 스필버그의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우주 전쟁>이나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것 보면 스필버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거나/할리우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베테랑이기 때문에 만든 영화 아닌가. 이 영화 역시 할리우드니까 상상할 수 있는 걸 넘어서 조던 필이니까 쓸 수 있는 각본이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M. 샤말란과 비교하는 것 같다. 심심찮게 '전성기의 샤말란'이 언급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난 동의하지 않는다. 난 조던 필이 샤말란보다 더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현재는 그렇다. 그리고 이 감독은 같은 피를 물려준 스필버그가 생각날 만큼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조던 필의 4번째 신작이 기대된다. 이 사람이 성장하는 시기와 내 20대가 비슷한 게 어쩌면 내 미래 세대에게 전해줄 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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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최고의 크리스마스 영화!
올해 최고의 크리스마스 영화다! 진부하고, 광고성 카피처럼 느껴지겠지만,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표현할 적확한 문장은 없을 듯하다. 클레어 키건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영화는 주인공 빌의 이타적 행동을 통해 유독 춥고, 우울한 우리 사회에 잊고 지냈던 온기를 전한다. 그 온기를 전하기 위해서는 작지만 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1985년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 빌(킬리언 머피)은 작은 석탄 가게를 운영하며 아내, 다섯 딸과 오붓하게 살고 있다. 힘든 세상 속에서도 그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유년 시절의 겪은 트라우마로 힘겹게 살아간다. 어느 날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갔다가 창고에 홀로 갇혀 있었던 소녀를 발견한 빌은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는 요청에 머뭇거린다. 결국, 그가 소녀를 데려다준 곳은 수녀원 내부. 이 도시는 수녀원의 권력 아래 돌아가는 곳이기에 빌 역시 원장 수녀의 말에 따르긴 한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 남긴 죄책감과 부채감에 시달린 그는 크리스마스 날 저녁 집이 아닌 수녀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관객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너무나 힘든 세상 에서 타인을 도와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이 물음은 영화의 핵심이자, 관객을 이토록 사소한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요소다.
극 중 빌은 자기 가족을 지키는 것도 버거운 세상에서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수녀원에 감금당해 노동 착취를 당하는 소녀들을 위해 손 한번 쉽게 내밀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녀원의 눈 밖에 나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원장 수녀에게 잘못 걸리면, 그동안 쌓은 평화는 살얼음처럼 쉽게 깨져버린다. 하루아침에 일도 없어지고, 돈이 없어 생활도 못 하며, 아이들의 교육도 중지된다.(빌의 딸들은 수녀원이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를 알기에 빌의 고뇌를 아는 아내는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고, (소녀를 포함한 가난에 허덕이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우리 자식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내의 이런 말이 나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밑바닥부터 시작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며 이 가정을 꾸린 남편의 노고와 지금의 평화가 한순간 깨질 수 있다는 불안은 충분히 이해된다. 아내의 선택적 회피는 어쩌면 온 마을 사람들의 마음처럼 보인다. 추운 겨울, 자신이 어렵게 지킨 온기를 나눠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이런 심리를 조장하는 것처럼 매일 아침 울리는 수녀원의 종소리는 명확하게 그리고 공포스럽게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빌은 용기를 낸다. 그 이유는 자신도 어려운 환경에 놓였었기 때문이다. 하나밖에 없는 엄마가 죽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른들이 보살펴 준 유년 시절의 기억은 자신과 비슷한 곤경에 처한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만든다. 마치 자신을 위로하듯 그의 시선은 어려운 이들로 향하고, 비록 석탄으로 얼룩졌지만 기꺼이 손을 내민다.영화는 빌의 용기를 담담하고 묵묵하게 그린다. 행복한 순간을 연료 삼아 자신의 마음에 불을 지펴도, 그 온기가 퍼질 때쯤 약속이나 한 듯 꺼져버리는 그의 공허함은 영화 전반에 깔린다. 다른 이들에게 석탄을 배달할지언정 정작 자신에겐 불쏘시개 하나 담지 못하는 그의 삶에 수녀원의 소녀는 자신을 구원할 횃불처럼 보인다. 어려운 이를 구하는 동시에 자신을 구하는 선택, 그리고 용기는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현 사회에 큰 울림을 전한다.
앞서 소개했듯이 영화는 클레어 키컨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동명 소설의 중요 소재는 바로 아일랜드에서 벌어졌던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이다. 1922년부터 1996년까지 약 74년간 종교시설 내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건으로, 지난 2004년 <막달레나 시스터즈>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바 있다. 영화는 제2의 <막달레나 시스터즈>보단 한 인물을 통해 이처럼 인권이 유린당하고 이를 타파할 기력조차 없는 세상 속에서 ‘용기’를 갖기가 얼마나 힘겨운지, 그만큼 우리 세상에 얼마나 소중한 빛인지를 알려준다. 이는 동명 소설과도 그 궤를 같이한다. 참고로 영화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비유하자면 <화려한 휴가> 보단 <택시운전사>에 가깝다.
원작을 읽은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클레어 키건의 이 책은 한 번 잡으면 놓지를 못한다. 몇 번씩 읽어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이 빼곡한 이 작품은 두께가 얇아서 쉽게 도전했다가 호되게 혼나는 책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기대를 모았던 건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에 놓인 여백 때문. 책을 읽었을 때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워졌던 이 부분을 영화는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했을까하는 궁금증이 든다. 원작을 읽은 이들에게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팀 밀란츠 감독은 영화적 특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차갑고 무거운 겨울 풍경과 온도로 분위기를 잡고, 수녀원 종소리 등 빌을 포함한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줄 음향에 신경을 많이 쓴 듯하다. 여기에 창문을 소재로 각 공간과 그 안에 있는 이들의 성격과 감정을 잘 표현한다. 창을 통해 밖이 잘 보이는지, 피사체만 보이는지, 아예 보이지 않는지를 공간적으로 비교해 봐도 좋을 듯싶다.빌의 여정을 담은 영화이기에 이 인물을 연기한 킬리언 머피의 모습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이를 아는 듯 그는 대사보단 표정과 눈빛으로 자신 안에서 벌어지는 내적 갈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수녀원 소녀를 도와주지 못한 일 이후, 초점 없이 공허한 눈빛으로 일관하는 그의 모습은 죄책감은 물론, 가족을 위한 자기 합리화를 거쳐 그럼에도 참된 어른이 되지 못한 미안함이 느껴진다. 그의 연기는 책임감도 느껴지는데, 아일랜드 출신인 그는 자국의 아픔이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을 알리고자 주연은 물론, 제작에도 참여했다.
<이처 사소한 것들>은 개봉 전 부터 평단의 사랑을 받았다.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고, 극 중 수녀원의 보스 메리 수녀 역을 맡은 에밀리 왓슨이 은곰상 조연상을 받았다. 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초청하고 지지한 건 1980년대나 지금이나 작품이 담고자 하는 그 용기가 절실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작든 크든 한 개인이 가진 선한 영향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 어느 때보다 내적, 외적 강추위가 예상되는 이번 연말, 고용하고 거룩한 밤을 밝힐 작은 용기를 꺼내어 빛을 내어보자.
덧붙이는말: 쿠키는 없지만,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길 바란다. 엔딩크레딧이 시작되면 귀를 휘감는 수녀원의 종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우리가 봐왔던 빌의 여정을 소리로 들려준다. 그리고 다시 수녀원의 종소리가 들린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그의 용기를 마주한 관객이라면 처음들은 종소리와 마지막의 종소리가 다르게 들릴 것이다. 아니, 다르게 들렸으면 좋겠다. 그래야 빌의 용기가 빛을 내는 거니까 말이다.
사진 제공: 그린나래미디어
평점: 4.0 / 5.0
한줄평: 고요하고 거룩한 밤, 밝게 빛나는 선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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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을 말하지 않지만 가라 앉아 있는,
<애프터썬>은 스토리를 극적으로 만드는 핵심 사건도 없고, 캐릭터의 서사 자체가 극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언뜻 보면 작품 속 인물이 처한 상황과 관객이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기 쉽다. 그저 부녀가 튀르키예에서 함께 노는 시간을 순서대로 보여줄 뿐이기에 단적으로 말하면 다큐멘터리 같은 성질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 영화는 겉보기에는 ‘딸과 아빠’의 추억 속 한 장면을 깊이 파고들어 순간마다 존재했던 아빠의 딸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는 스토리를 지녔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감독이 ‘소피’와 ‘캘럼’, 둘의 ‘가족’이라는 보다 순수한 관계성에 빗대어 보편적인 인간에 해당되는 감정 자체를 다루고 싶어 했다고 본다. 원인은 제각각 다르지만 모두 동일하게 느끼는 감정들. 이에 더해 감각적인 편집과 감성적인 필름 화면으로 예술영화라는 정체성을 강렬하게 인식시킨다.
엔딩 직전, 소피와 캘럼의 여행이 끝나기 전날 밤 둘은 춤을 춘다. 모든 소리와 대사가 뮤트되면서 노래만 나온다. 빛이 점멸된다. 우리는 화면을 제대로 바라보기도 어렵다. 가사만 들린다. '우리 스스로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순 없을까?' 내내 소피에게 웃음만 지어 보였던 캘럼이 서럽게 운다. 자신에게 새겨진 상처는 보살피지 않고 덮는다. 아빠에게 늘 웃어 보였던 소피의 눈은 깊다. 캘럼이 몸을 맡겼던 어두운 바다보다 더. 장난스럽게 캠코더를 손에 들 때를 제외하고는 아빠보다도 의젓한 말과 행동을 보였던 소피는 이미 아빠를 집어 삼킨 밤바다를 직시하고 있었을 터이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슬픔들도 포용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물 속으로 잠식되고 있었을 것이다.
캘럼은 소피에게 타이머를 체크하면서까지 선크림을 꼼꼼히 발라준다. 작열하는 태양의 자국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바르고 또 발라준다. 혹은 지금 함께하는 시간이 만들어내는 흔적을 남겨두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반면 캘럼은 소피와의 시간들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화창한 하늘 아래서 난간에 서 있다든지,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고, 춤은 절대 싫다는 소피까지 끌어 들이면서 흐르는 곡에 몸을 맡긴다. 정작 소피가 담아내는 화면에서는 갖은 이유를 대며 벗어난다. 마구 흔들리고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자신의 잔상을 남기지 않으려는 캘럼은, 이미 보고 듣고 느낀 모든 순간들이 소피라는 한 사람의 삶에 스며든 줄도 모르고 뒤늦게 선크림을 챙긴다. 마지막까지 소피를 위한다.
소피는 그날의 추억을 다시, 또 다시 돌려본다. 결말이 정해져 있는 영상이 끝나면 아빠는 다시 소피가 만든 춤추는 공간으로 간다. 소피의 아빠는 춤과 노래로 가득했던 마지막 장소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소피가 말했다. 얼마나 떨어져 있든, 같은 태양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고 아빠에게 말한다. 이제는 아니다. 같은 태양을 보고 있지 않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태양을 보고 있었던 캘럼과의 시간 후, 소피가 체감해 온 시간들. ‘After the Sun’이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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