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2-11-24 10:54:45
자신의 알몸 동영상의 유포자를 찾는 어느 한 남자의 이야기
영화 <유포자들> 리뷰
도유빈은 친구인 공상범의 꼬드김으로 클럽에 가게 된다. 클럽은 VIP 고객으로 마련된 자리였고 술을 따라주는 여자 2명이 있었는데 술을 마신 도유빈은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집까지 도착한다. 그런데 도유빈의 알몸이 자신을 맞이했던 여자 2명에게 동영상으로 찍히고 유포가 되기 시작한다. 한편 집에서 일어난 도유빈은 자신의 약혼자인 선애가 유럽에서 돌아오자 자신이 여러 여성과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숨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알몸 노출 사건은 이제 시작일 뿐인데... 과연 자신에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도유빈의 과거가 어떤 사람이었길래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을까?
도유빈은 과거에 자신이 사귄 여자들과 성관계하는 동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배포했다.
과거에 했었던 잘못이 지금에도 계속된다면?
도유빈은 서울의 예술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집안 좋은 여자를 만나 잘 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알몸 노출이 동영상으로 유포되자 그 범인을 찾게 된다. 그 범인은 수화기로 전화하며 도유빈에게 3400만원을 갖고 오라는 협박을 한다. 자신이 온갖 방법을 다 써도 범인이 잡히지 않자 경찰을 불러 조사를 하게 만들고 자신이 과거에 했었던 연인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했다는 것을 밝힌다. 또한 그가 지나가는 여자들을 몰카로 찍은 전교 1등 학생과 자신의 조카를 매로 때리며 혼냈지만 자신에게는 늘 떳떳하지 않았고 숨겨진 성적 사생활을 약혼자인 선애에게 알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자신의 인생을 잘못된 방식으로 끌고 가는 도유빈은 결국 모든 수단을 다해 유포자를 찾는다. 그리고 이 영화는 자신의 잘못을 그저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도유빈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없는 가해자의 태도를 비판한다. 약간 무거운 주제를 다루어서 그런지 심각한 스토리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몰카 범죄에 엄격한 경고를 내리는
영화!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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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는 소설의 기본, 갈등은 최고의 소재"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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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게는 <브로크백 마운틴>부터 가까이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까지, 나는 브로맨스(라 칭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영화에 크게 동하는 편이 아니었다. 반면 <윤희에게>나 <캐롤>과 같은 영화는 겨울이면 생각난다. 그건 아마도 내가 여성이기에 여성-남성, 여성-여성의 감정선은 따라갈 수 있으나 남성-남성의 감정선은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일 거라 짐작한다.
<장르만 로맨스>는 별안간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여, 지금 왓챠 오리지널로 핫하다는 <시멘틱 에러>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 재미있는 걸 왜 여태...
아무튼, <장르만 로맨스>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극중 김현(류승룡 분)의 말처럼, "관계는 소설의 기본, 갈등은 최고의 소재"임을 충실히 살렸다.
출처: 네이버 영화
"사랑 맞아요. 제가 알아요."
중첩된 관계들이 서로의 바깥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 김현-미애-성경 가족, 김현의 새 가족, 김현-남진-유진, 김현-순모-미애 등 이들은 태엽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관계의 중심에는 김현이 있고, 영화는 김현을 중심으로 주변인들을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이 관계들 중 속편한 쪽은 어디에도 없다. 잘나가는 소설가이지만 7년째 작품을 내지 못하는 김현과 그런 김현만 보고 사는 출판사 대표 순모. 순모는 김현의 전 부인 미애와 비밀리에 연애 중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혼란스러운 아들 성경은 이상한 관계에 빠진다. 김현은 친구였던 남진과 절연했는데, 술 취해 찾아간 남진의 집에서 유진을 만난다. 남진은 유진을 사랑하고, 유진은 김현을 사랑한다. 정말 단 하나의 관계도 편치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을 숨기지 않는다. 이 영화의 매력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거나 중상모략을 꾸미거나 누군가를 함정에 빠뜨리는 인물이 없다는 점에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정확하게 사랑한다고 말할 뿐이다.
김현을 찾아온 유진은 다짜고짜 사랑을 고백한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랑. 그래서 상처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랑이다. 그렇게 김현의 집에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 다음 날 학교 강의에서 교수와 학생으로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만 유진은 숨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강의를 듣고, 김현이 앉은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는다.
사랑한다고 해서 일상을 무너뜨리고, 당신이 사랑을 받아주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망가졌다는 식으로 피해자가 되어 죄책감을 전가하지도 않는다. 유진의 아버지 장례식에서, 유진의 마음은 문학적 동경일 거라고 재단하는 김현에게 안겨 유진은 말한다. "사랑 맞아요. 제가 알아요."
오히려 일상이 무너진 건 미애 쪽이다. 십 년 전에 김현과 이혼했는데도 김현에게 애인이 생긴 것 같다는 순모의 말에 날카로워진다. 결국 아들까지 속여가며 강원도 여행을 갔는데도 머릿속에는 김현 생각뿐이다. 바람나 헤어진 전남편에게 애인이 또 생긴다는 것은 충분히 예민할 만한 일이다. 그런 미애를 보며 순모가 불만을 가지는 것또한 그럴 만하다.
김현 때문에 서로 예민해지는 바람에 여행을 망친 미애-순모 커플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가 난다. 보험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동승자 신상까지 조사를 해야 하기에 미애는 택시를 잡아 탄다. 30년지기 친구의 전처와, 전남편의 30년지기 친구가 연애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 때문이다.
순모는 연락이 닿지 않는 미애 때문에 운다. 모든 것이 다 까발려지고 난 뒤에도 운다. 결국 김현에게도 고백한다. "내가 먼저 미애 좋아했어." 미애 앞에서 우는 순모에게 미애는 역시 말한다. 사랑한다고. 화를 내면서도 미애가 타고 떠난 택시의 번호판을 열심히 찍고, 여행일정이 마음에 안 들어도 최선을 다하고, 우는 모습도 좋다고 말하는, 그게 사랑 맞지, 달리 뭐가 사랑일까.
상처받은 사람의 뒷모습은 거의 다 똑같다
김현-미애의 아들 성경을 보자. 성경은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청소년이다. 성경은 가뜩이나 여자친구가 임신을 한 바람에 헤어졌는데 이혼한 부모의 부적절한 행위까지 목격한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쟤 왜 저러나' 싶은 인물이더라도 우리는 성경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게다가 엄마는 눈에 다 보이는 거짓말로, 아빠의 절친과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 세상에 내던져진 성경이라는 존재는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찾아 거리를 배회한다.
떠돌이 강아지가 된 성경에게 나타난 정원. 정원은 옆집 이웃이다. 집 나온 성경을 보살펴주고, 같이 놀아주는 정원의 마음을 성경은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정원도 사랑일 수 있지 않느냐 하겠지만, 우선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사랑은 범죄다. 어른은 어리숙한 미성년자를 사랑할 것이 아니라, 잘 돌봐주어야 한다. 학창시절에 선생님을 사랑하는 학생의 마음은 정상, 그런 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교사는 비정상인 것처럼. 그러나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갈 수 없는 성경은 정원에게 빠진다. 정원을 사랑한다기 보다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여자'라는 환영을 사랑한다.
정원의 남편이 돌아왔을 때 성경은 남편을 패버리고 경찰서에 가는데, 정원의 남편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성인 남자의 눈에 성경은 미성년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상대도 안 되는 놈'일 뿐이다.
집으로 돌아온 성경은 엉엉 울어버린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운다. 표면적으로는 정원의 거절 때문이겠지만, 그동안의 외로움과 서러움, 혼자 남은 아이의 불안과 공포가 내재되었을 것이다. 결국은 성경은 사랑의 경험으로 성경은 성장할 것이다. 이성의 사랑과 찌질하게 우는 자신을 도닥여주는 부모의 사랑.
사실 아들이 거리를 떠돌며 사랑을 갈구할 때, 아버지 김현은 유진의 집에 있었다. 유진의 소설 때문이었다. 학부생의 습작이라고 무시했던 작품을 출판사에서 호평하자, 김현도 작품을 읽어 보고는 7년만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 김현과 유진이 같이 작업하여 장편 하나를 완성해낸다.
예술계의 사정과 젊은이의 재능을 이용하는... 뭐 그런 이야기들은 일단 차치하도록 하자. 그들은 같이 쓴다. 쓰고, 이야기하고, 싸우고, 술 마시고, 또 쓴다. 왕가위의 <아비정전>을 조그만 TV로 보며, 유진은 자신이 아비(장국영 분)와 닮았다고 말한다. "상처받은 사람의 뒷모습은 거의 다 똑같거든요."
급기야 술에 취한 김현은 골목에서 유진의 뒷모습을 휴대폰으로 촬영하는데... (나 이런 거 좋아했네, 라는 말을 이해했다.)
유진은 게이라는 이유로 학과 내에서 조롱받고, 남진의 질투심으로 김현과 유진이 연인관계라고 소문이 퍼져 김현이 두문불출하고 있을 때, 스스로 뉴스에 출연해서 자신이 김현을 사랑하는 건 맞지만 그런 관계는 아니라고 일축한다. 이토록 정확하고 성실한 사랑을 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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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만우절 딱 하루에만 존재하는 나라가 있다. 리투아니아 내에 있는 '우주피스 공화국'이다. 면적 0.6제곱킬로미터로, 공원 크기의 나라이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정식 국가라고. 김현은 유진의 집에서 우주피스 공화국의 사진을 본다.
뉴스를 보고 찾아간 유진이 집을 내놓고 사라지고 자신에게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김현은 베낭을 메고 리투아니아로 향한다. 그리고 기적처럼(예상되기는 해도) 그곳에서 유진을 다시 만난다. 유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김현에게 유진은 다시 외친다. 사랑한다고. 어쨌든 만우절이고, 만우절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날이다.
어디에선가 어려운 사랑을 하고 있는 모두를 위한 이야기.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황인찬, <무화과 숲>)이라는 시가 떠오르는 이야기.
관람 포인트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런 장르에 홀린 것 같다. 이렇게 영화 속 인물들이 잘 되길 빌어본 게 얼마만인지... 추천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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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초의 신이 있기 전에 클로이 자오 있나니
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던 감독이 MCU의 메가폰을 잡는다고 한다.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았던 클로이 자오가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우리나라는 이 요소만큼이나 중요했던 부분이 있는데, 바로 마동석이 길가메시 역으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외적으로는 이런 요소로 화제를 모았다. 또 영화 내적으로도 이 작품은 중요했다. <어벤저스 : 엔드게임> 이후 새로운 분기점이 필요했던 마블은 올해 영화로는 차기 블랙 위도우를 비롯한 다양한 히어로를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해 11월 12일에 한국에서 공식 출시되는 디즈니 플러스에서 포스트 캡틴 아메리카나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서 다룰 멀티버스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덕후몰이를 가장 잘하는 사람들 답게 세계관을 촘촘하게 잘 만들고 있다.
마블 빠인 나는 개봉날에 이 작품을 보고 왔다. 사실 다 봤어서 하는 이야기긴 하지만 이 작품이 그 정도로 극적인 스토리를 가진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박적으로 챙겨본 이유는 나의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는데, 예전에 마블 히어로라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만 알던 시절에 손흥민 선수의 축구 기사를 읽다 무의식적으로 내린 스크롤바에 스포일러를 당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마블 영화를 챙겨본다. 이렇게 빠르게 마블의 영화들을 보면 장점이 또 있는데, 바로 영화 후기를 쓸 때 읽는 사람들에게 신선하다는 것이다. 이왕에 빠르게 영화를 본 김에 늘 감성적인 글만 쓸 순 없으니 액션 영화 리뷰를 하려고 한다. 오늘도 허접한 나의 글솜씨를 읽어주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스토리의 완성도는 어떤가요? 꼼꼼하나요?
만약 내가 한 편의 소설을 쓴다고 가정했을 때, 나는 등장인물을 5명 이상으로 설정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것은 당연하다. 글을 읽어서 5명의 주인공들이 독자들의 머릿속에 남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나는 5명의 캐릭터를 다 살릴 만큼 능력이 없다. 창작자의 관점에서 이런 다수의 등장인물이 주는 단점은 이런 것들일 것이다. 반대로 관객의 입장에서도 다수 등장인물이 나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개연성이 아다리가 딱딱 떨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잉여의 등장인물이 있다는 건 줄거리 몰입을 깬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아니 그럼 이 사람이 왜 이 영화에 있는 거지?'라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이 지점을 깔끔하게 대처했다. 극장을 나왔을 때 10명의 영웅 캐릭터 모두 기억할 수 있었다. 단순히 MCU의 새 판 짜기로 얼굴 비추는 히어로들이 아니다. 각자가 나름의 역할을 한다. 또 이들이 신들이라고 해서 인간과 다른 먼 세계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연애도 하고 배신도 하고 썸도 타며 질투도 하고 스마트폰에 중독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잘 묘사하기 때문에 각자의 인물이 가진 감정선을 이해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왜?라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드라마 영화로서는 사실 꽤나 괜찮은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토리가 아예 구멍이 없냐? 이건 아니다. 후반부에 살짝 머리를 갸우뚱하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전체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에 큰 무리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감독 클로이 자오의 트레이드 마크인 '아름다운 영상미!' 볼 수 있나요?
<노매드랜드>는 방랑하는 한 인물의 시선을 카메라가 담는다. 이 인물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외로움이다. 미국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사람 한 명이 덩그러니 있는 모습을 통해 고립이라는 이미지를 전한다. <노매드 랜드>가 사용했던 이 카메라 워킹을 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이터널스>는 나름의 영상미를 보여준다. 첫째. CG가 아주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아리솀 캐릭터는 인간형의 신이 아니라 <닥터 스트레인지>의 '도르마무'와 같은 귀신형 신인데,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데 비해 구체적으로 구현을 잘해놓아서 보면서 적지 않게 놀랐다. 이렇게 CG로 만든 시각 디자인도 좋았지만 자연물을 찍었던 영상미도 좋았다고 본다. 후반부 빌런과 격투하는 갯벌 비슷한 곳은 어떻게 그곳을 섭외했는지 살짝 신기할 정도다. 또 중반부 주인공 일행이 길가메시의 집으로 갈 때 이 거처에 대한 묘사도 탁월했다. 현대사회에 있을 법하지만 흔하지도 않아서 이터널스의 신비함을 덧붙이는 연출이었다. 또 영화에서 필수적으로 이 장소를 섭외해야 하는 이유도 분명한데, 나무 덩그러니 하나 있는 모습이 테나라는 인물이 가진 외로움을 극대화시켜준다. 이 외에도 세르시가 초반부에 자동차를 장미꽃으로 바꿀 때 '장미꽃'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센스나, 인트로 전에 액션신에 나오는 장소의 분위기가 CG랑도 잘 맞았다. 감독 클로이 자오의 섬세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액션 맛집 마블, 이번에도 닉값 하나요?
음.. 난 이거 솔직히 조금 아쉬웠다. 예를 들어 길가메시는 완력이 엄청 센 인물로 묘사된다. 도입부에 데비안츠 한 마리를 잡기 위해 힘을 충전해 쾅 한번 내려치는 장면이 있다. 이거, 좀 매가리 없이 맞는다. <범죄도시>의 경우의 석도의 액션신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근데 이 작품과는 반대로 그렇게 터치를 많이 하는 게 아닌데도 액션에 현실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맞는 대상이 인위적으로 만든 CG라서 그런지 <이터널스>에서 의 액션이 그렇게 현실적이라고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생동감의 문제는 맨몸액션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이카리스라는 캐릭터는 눈에서 레이저빔이 나오는데, 난 조금 오그라든다고 생각했다. 이 오그라듦이 영화를 보는데 어마어마하게 페널티가 있고 이런 건 아닌데 클로이 자오 감독이 액션 영화는 서툴다는 느낌이 들긴 할 정도다.
마동석 배우는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나요?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나 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쓰기엔 스포일러가 된다. (아마 이 부분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난 마블에 어떤 돈도 받지 못했다. 진짜로.)
마블의 <라스트 제다이>? 왜 토마토가 썩었나요?
아마 PC(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발 작용으로 평점이 떨어졌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전에 알려진 바와 같이 파스토스 캐릭터가 동성애자로, 마카리 캐릭터가 청각장애로 설정된 건 맞다. 길가메시 캐릭터와 킨고, 세르시가 아시아 쪽 배우들인 것도 맞다. 근데 이런 다양성에 관한 키워드들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크게 장애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 세르시가 여성이라고 해서 남성은 죄다 나사 하나 빠진 미친놈으로 묘사되지도 않고 파스토스의 사랑을 노골적으로, 또 불필요하게 만들지도 않았으며 PC요소가 줄거리 이해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역시 아니다. 뭐 그들 나름대로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고는 볼 수 있겠지만 난 이 영화가 나름대로 균형감각을 잘 유지했다고 보는 쪽이다. 또 로튼토마토 지수가 떨어졌던 이유는 기존의 마블 영화와는 다른 느낌 때문일 텐데, 가령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의 경우 윈터 솔저와 캡틴 아메리카가 맨몸액션을 벌이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부분이다. 이를 호응하듯 올해 개봉했던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에서의 버스 액션은 정말 좋았다. 마블의 특징을 잘 살린 셈이다. 근데 마블의 이런 특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은 아니긴 하다. 10명의 신들의 캐릭터성을 다 살려야 하는데 액션까지 생동감이 있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아마 쿠엔틴 타란티노도 이런 것들을 소화하기엔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또 이 영화는 MCU의 차기 핵심인물들이 나온다는 지점에서 각본을 쓰는 사람의 머리가 복잡한 작품이었을 텐데, 이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이뤄졌다는 것이 어려운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고정적으로 마블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와는 다른 느낌이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도 평점이 낮았던 건 아닐까?라고 나는 추론한다. 아. 일본의 전범국으로서의 부정행위를 묘사하는 장면이 있긴 하다. 근데 일본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뉘앙스도 아니고 이터널스가 인류의 부조리를 슬퍼한다는 느낌으로 잠깐 묘사되기 때문에 크게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클로이 자오 감독이 일본의 전범국으로서의 행위를 미화시킬 이유가 없지 않나..?
앞으로 MCU에서 어떤 포지션을 유지할 작품인가요?
물론 내가 케빈 파이기는 아니기 때문에 이걸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나는 <블랙 위도우>나 <샹치 : 텐 링즈의 전설>보다 더 중요한 시발점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영화의 쿠키는 이 작품에서 자주 묘사되지 않았던 색다른 인물을 보여준다. 이 둘은 원작에서 나름의 포지션들이 있는 캐릭터들로 보이는데, 두 히어로들의 등장 시기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영화가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타노스의 핑거스냅을 완벽하게 틀어막은 어벤저스가 그 이상의 초월자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라는 지점에서 강화인간 말고도 다른 존재들이 묘사가 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타노스라는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외계인들이 필요했던 만큼 추후에 기본 베이스가 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 봐도 될까요?
네. 나는 강추까진 아니더라도 추천하고 싶다.
단순히 마동석 배우가 MCU에 출연했기 때문은 아니다.
난 웃기기도 재밌기도 했어서 나름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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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 속에서도 계속된다
올해 <타이타닉>이 25주년인가를 기념해 재개봉했다. 친구가 같이 보러 가자 했을 때 “잘됐다. 나 <타이타닉> 아직 못 봤어!”라고 대답했더니 친구는 무척 놀랐다. <타이타닉>을 안 봤다고? 물론 누구에게나 ‘아니 그걸 안 봤다고?’의 리스트가 있다. 영화인들조차 (너도나도 모두 다 본 영화로만 구성된) 매우 의외의 리스트를 갖고 있을 것이며, “왜?”라고 묻는다면 거의 별 이유 없을 것이다. 그냥 어쩌다 보니. 내게 <타이타닉>도 그렇다. 스토리가 워낙 알려져 있다 보니 어영부영 스토리를 파악하는 바람에, 다른 거 먼저 보다가… 어쩌다 보니.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스크린에 몰려드는 물을 바라보면서, 등줄기에 불안한 땀이 흘렀다. 잊고 있던 이유를 깨달았다. 처음에는 스토리를 대충 알아서 볼 마음이 크게 안 났던 것 맞는데, 어느 순간 이유가 바뀌었지. 배가 가라앉는 영화를 볼 자신이 없었어. 배가 기울고 거기 있는 사람들이 나오지 못한 이야기를, 우리는 현실에서 보고 말았잖아. 그것도 실시간으로. 며칠씩. 잠을 자고 일어나서 보고, 밥을 먹고 돌아와서 보고. 너무 잔인하고 슬픈 형태로 목격했잖아.
그때 생각했다. 아마 이제 <타이타닉>은 영영 보지 못할 거라고. 어느덧 시간이 오래 지났고, 나는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잊고, <타이타닉>도 조금 땀 흘리면서 괴로워하면서도 보기는 볼 수 있게 되었구나.
내 주변에 세월호의 사고와 직접 관계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나는 세월호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월호는 우리 모두에게 어떤 생채기를 남겼다. 평이한 일상을 살다가 어느 순간, 작은 균열이 생길 때 깨닫게 된다. 살다가 문득 생명에 위협감을 느꼈을 때,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던 단어가 부스스 일어났다. 슬프지만 그건 세월호 이후로 많이 회자된, 각자도생이라는 단어였다. 이 위기에서 나를 구해줄 누군가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는 감각이, 생존 본능 바로 위에 덧입혀져 있었구나.
어떤 일들은 우리를 영원히 바꾼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그 차이는 마스크처럼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아닌, 더 깊고 근본적인 데 도사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부스스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월호 이전의 세상으로도 돌아갈 수 없다.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죽음, 이유 모를 사고에 우리의 일부분이 매이고 말았다. 이제니의 시구처럼 “이제 우리는 영영 아프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영영 슬프게 되었다.”
4월이 되면 이런 시구를 이불처럼 끌어와 덮었다. 언제부터인가 4월이 슬펐다. 꽃이 피고 햇살이 화사해서 더 슬펐다. 툭 건드리면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시로 끌어 덮으며 4월을 보내는 습관이 생겼다.
그건 슬픔도 아니었구나. <장기자랑>을 보면서, 솔직히 한번씩 숨이 턱 막혔다. 영화는 즐겁고 유쾌한 순간들을 많이 담았고 슬픔을 주목하지 않음에도. 그럼에도 짙은 슬픔이 읽힌다.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 볼 길 없는 나로서는, 영영 낫지 않을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건 저런 거구나 하고 그 슬픔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세월호가 나오지 않는, 슬픔의 장면들을 제외한 영화여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슬픔은 배경처럼 존재하고 그 위에서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이.
슬픔에 아둔한 나로서는 이제야 숨이 막혀오는 그 마음을, 어떤 이들은 일찍이 헤아리고 진작에 움직였다. 엄마들을 방 밖으로 끌어냈다. 어느 날 갑자기 유가족의 자리에 놓여 슬픔 외의 감정과 사건을 너무 많이 겪어야 했던, 그 모든 일들을 폭우처럼 맞은 후에 앓기 시작할 때. 이들은 방 밖으로 나왔다. 커피를 배우고, 서로를 만나고. 그러던 중 연극을 해보겠냐는 말에, 어영부영 고개를 끄덕였다가 연극이 시작된다. 세상 모든 일들이 그렇듯, 진짜 “너무 하고 싶어! 꼭 하겠어!”보다는, 애써주는 사람에게 미안해서… 혹은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사람이 부족하다고 하니까… 같은 이유로 연극은 아슬아슬 계속된다.
연극은 아이들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한 여정으로 시작됐다. 여전히 “누구 엄마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라서 무대를 포기할 수가 없다. 무대에서는 밝고 사랑스러운 연기를 잘 (심지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잘) 해내는 엄마들이지만, 무대 뒤에서는 여전히 쉽지 않은 감정들이 몰려온다. 그래도 엄마들은 아이들을 기억하며 힘을 낸다.
영영 아픈 단어로 남아버린 ‘수학여행’이라는 단어를 무대에서 다시 꺼낸다. 아이들이 도달하지 못한 그 섬에 이르러, 어쩌면 가장 아팠을 말들을 입 밖에 낸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입던 옷을 입고, 아이들이 좋아했던 피규어와 봉제 인형을 어루만지며 그 옷도 입어 본다. 아이들의 자리에서, 아이들이 사랑하던 것들의 자리에도 서 본다. 그렇게 타인의 자리에 서 보면서, 같이 극을 만들어간다.
평범한 극 영화처럼, “예술이 주는 치유력”을 만끽하며 “손 맞잡고 해내는 경험으로 성장”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엄마들은 연극을 하면서 변해 간다. 아이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만 어루만지던 엄마들은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자신의 마음도 함께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사람마다 그 농도는 달라서, “그냥 나는 멋지게 살고 싶을 때가 있어요.”라는 말도 함께 품고 무대에 오르는 엄마도 있다. 이미 배우의 마음으로 배역 욕심을 내고, 경쟁하고, 기대하고, 기뻐하고, 서운해하기도 한다. 그 모습이 상큼하고 사랑스럽고 유쾌하다. 제각기 다른 농도와 감정들을 다양하게 품고 무대에 오르지만, 이들을 근본적으로 묶었던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두 줄기 강처럼 두 마음이 흐른다. 하나는 빈 자리를 영영 되짚으며 살아가는 마음, 다른 하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마음. 통상적인 극 영화였다면 아마 전자로 시작해 후자로 나아가며 끝났을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씩씩한 걸음을 내일로 옮겨 가도, 어제의 슬픔 또한 사라지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유가족’에게 기대하는 표정은 얼마나 일관적으로 납작한가. 사실 그 어떤 사고 이후라도 삶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밝은 얼굴로 무대에 오르는 모습과 무대 뒤에서 긴장과 눈물을 삼키는 모습, 덤덤하게 누군가를 위로하고 돌아서서는 자기 불안을 발견하는 모습이 첩첩 공존하면서.
앞으로도 오래 아프고 계속 슬프겠지만, 이 연극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또 다음 작품은 어떤 결을 품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서로 끌어안고 손 맞잡고 인사하면서 무대는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봄이 돌아오고, 아이의 생일도 돌아온다. 여전히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고, 아이들이 좋아하던 과일을 기억해 본다. 슬픔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이 영화처럼 사랑스러운 모양새로. 다음에는 이 배우 분들의 밝은 얼굴을 실제 무대에서 보러 가야겠다. 그땐 나도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표정으로 객석을 채우고 싶다.
*씨네랩의 초청으로 시사회에서 감상 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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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4주 최신 개봉영화!
끝나지 않는 코로나 속에 8월도 끝나가지만
어김없이 돌아온 개봉영화 소개!
88월 4주차에는 어떤 영화가 개봉을 하는지 한번 볼까요?
8월 4주 개봉영화 5편!
귀문 GUIMOON: The Lightless Door , 2021
1990년 집단 살인사건 이후 폐쇄된 귀사리 수련원
영화 "귀문"은 1990년 집단 살인 사건이 발생한 이후 폐쇄된 귀사리 수련원에 무당의 피가 흐르는
심령연구소 소장과 호기심 많은 대학생들이 발을 들이며 벌어지는 극강의 공포를 그린 작품입니다.
끔찍한 살인 사건 이후 괴소문이 끊이지 않는 폐건물을 주 무대로 괴담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찾아간 이들의 공포 체험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데요
2018년 정신병원에서의 공포 체험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킨 '곤지암'을 이을 체험 공포 영화로 거듭날 예정입니다.
영화 "귀문"은 한국 영화 최초 2D, ScreenX, 4DX 동시 제작과 상영 포멧별로 결말이 다른 두 버전으로 제작했는데요
또한 국내 및 전 세계 2,000여 개관 이상 동시 개봉 글로벌 프로젝트 라고 합니다
호러에 도전한 베테랑 김강우와 영화계가 주목하는 김소혜, 이정형, 홍진기의 열연!
첫번째 추천영화 "귀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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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니센스 Reminiscence , 2021
휴 잭맨! 4년 만에 스크린 복귀
영화 '레미니센스'는 가까운 미래, 사라진 사랑을 찾아선 남자가 기억을 통해 과거로의 여행에 얽힌 음모와 진실을 마주하는 이야기입니다.
세계적인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동생인 조나단 놀란이 제작을,
그의 부인이자 '천재적 이야기꾼'이라고 불리는 리사 조이가 각본과 연출을 맡아서 더 기대가 되는 작품이죠
2017년 ‘위대한 쇼맨’과 ‘로건’ 개봉 이후 4년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휴잭맨과
SF,미스터리, 감성과 로맨스가 조화된 놀라운 결말의 기억추적 미스터리!
두번째 추천영화 "레미니센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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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스 인스팅트 Duelles , Mothers’ Instinct , 2018
내가 옆집 아이의 위험을 목격했다면?
영화 "마더스 인스팅트"는 바바라 아벨 작가의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데리어 라 하인(Derrière La Haine)'을 원작으로 탄생한 영화인데요
비극적인 사고로 자매처럼 친한 친구 ‘알리스’와 ‘셀린’의 완벽한 삶과 관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옆집 아이의 위험을 목격한 이웃과 아이 잃은 엄마의 파국을 그린 스릴러 영화인데요
벨기에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 불리는 제10회 마그리트 어워드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주요 9개 부문을 석권하며 마그리트 어워드 사상 단일 영화로 최다 수상 기록을 세운 화제작입니다.
벨기에의 아카데미상을 비롯한 전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 받은영화!
세번째 추천영화 "마더스 인스팅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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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우리 你的婚礼 , My Love , 2021
원작 ‘너의 결혼식’ 리메이크
영화 "여름날 우리"는 요우 용츠에게 풍덩 빠져버린 저우 샤오치가 그녀에게 닿기까지
수많은 여름을 그린 첫사랑 소환 로맨스입니다.
지난 4월 30일 중국에서 개봉 후
개봉주 박스오피스 1위, 노동절 연휴 흥행 1위를 비롯, 누적 수익 약 7억 8,900만 위안(한화 약 1,400억 원)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여름날 우리"는 박보영, 김영광 주연의 '너의 결혼식'의 리메이크 작 인데요
그동안 중국에서 개봉한 한국 리메이크작 중 역대 최고 흥행 기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눈호강을 부르는 비주얼로, 환상 케미를 보여줄 허광한과 장약남의 첫사랑 영화!
네번째 추천영화 "여름날 우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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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논볼 Cannonball , 2019
군대 총기사건의 모티브
자신의 형을 죽인 가해자의 누나가 담임 선생님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한 남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캐논볼"이 개봉을 합니다.
"캐논볼"은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군대 총기사건을 모티프로 서사를 전개합니다.
하지만 군대의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겨진 가족들의 입장에서 서술하죠
"캐논볼"은 '건우와 덴마크' 등 단편 영화를 연출한 정승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백한 영상미로 담아내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드라마 '나빌레라', '허쉬', '스타트업' 등과 개봉 예정 영화 '쇼미더고스트' 등에 출연한 배우 김현목과
'파도를 걷는 소년', '더스트맨', '혼자 사는 사람들' 등에 출연한 배우 김해나의
현실같은 연기로 관객들을 빠지게 할
다섯번째 추천영화 "캐논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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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이면서 자살이자 동시에 사고인 것은?
빌어먹을 인연
독일인 작가 부부 산드라(산드라 휠러)와 사뮈엘(사뮈엘 테이스)이다. 어느 독일의 외딴곳에 사는 두 사람. 두 사람은 아들 다니엘(밀로 다차도 그리너), 강아지 스눕과 함께 살고 있다. 귀여운 다니엘과 대학교수인 사뮈엘, 또 성공한 커리어우먼인 산드라를 보면 이 가족은 행복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자주 다투는 산드라와 사뮈엘. 이 감정싸움은 산드라가 대학생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역시 이어졌다.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 산드라와 조에의 대화를 방해하는 남편 사뮈엘. 산드라는 이제 따지고 싶은 마음마저 없다. 대학생에게 ‘다음에 만나자’라고 약속하고 그녀를 보낸다. 각자의 시간을 갖는 두 사람. 아들 다니엘은 이런 부모의 관계가 익숙하기라도 한 듯 스눕과 함께 산책을 나선다. 눈 밭을 몇 분 돌아다니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강아지 스눕이 이상한 행동을 보여준다. 킁킁 냄새를 맡으며 달려가는 스눕. 다니엘 역시 스눕에게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듯 강아지를 쫓아간다. 강아지가 이끈 곳에는 아버지 사뮈엘의 시체가 있었다. 시체로 발견된 사뮈엘. 그리고 유력한 피의자가 된 산드라. 산드라를 변호해야 하는 변호사 뱅상(스완 아를로드). 이 세 사람과 강아지 스눕은 길고 긴 법정싸움을 맞이한다. 과연 이 추락의 전말에는 어떤 이면이 깔려 있을까?
우리가 아는 법정영화는 아니야
이 영화를 두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기생충>과의 공통점이다. 글쓴이가 <기생충>을 예시로 이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싶은 특징은 <추락의 해부>가 전형적인 범죄/스릴러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생충>이 전형적인 장르물을 표방했다면 문광 부부의 존재가 그렇게 입체적이지 않을 것이다. <기생충>은 문광 부부를 통해 계층 구분을 박살 내며 이 사회에 도사린 문제를 탐구한다. 이 점에서 <기생충>은 목표를 충실하게 이룬 성실한 영화가 됐다고 생각한다. 본작 <추락의 해부> 역시 이와 비슷하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한 남자의 살인사건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과 변호사를 보여주면서 포문을 연다. 살인사건 피해자의 아내가 피의자로 재판대에 선다. 여기까지 보면 그냥 일반적인 범죄물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강화시킨 토대를 바탕으로 어떤 것을 탐구한다. 이 떡밥은 첫 장면부터 읽을 수 있다. 주인공 산드라가 대학생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이 대화는 원활하지 못한데,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이를 중심으로 플롯을 받아들이면 영화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체감할 수 있다. ‘이 것’이 <추락의 해부>에서 유달리 방해받는 느낌이 강한데 이는 감독 쥐스틴 트리에가 형식을 플롯에 녹였다고 볼 수 있다. 미스터리로 이야기를 끌고 가다 자연스럽게 인간 그 이면에 깔려있는 무언가를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전형적인 장르물에서 벗어났다는 점은 살인 사건이라는 소재를 다방면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어떤 관점에서 읽어도 합리적이다. 살인일 수도 있고, 타살일 수도 있고, 사고일 수도 있다. 이 <추락의 해부>의 각본은 이 세 죽음의 구분선을 흐려놓는 연출법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법정 장면을 연출하는 방식이 이 사뮈엘의 죽음을 다층적으로 읽을 수 있게 만드는 요소다. 빠르게 전개하고 싶었으면 전형적인 법정물처럼 더 쉽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재판 장면은 실제 법정을 보는 것처럼 느릿느릿하다. 왜? 재판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최대한 많이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물의 감정선을 폭넓게 담아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두 가지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듦과 동시에 산드라와 사뮈엘의 관계를 비춘다. 이 유별난 관계는 사실상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불완전한 관계를 통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여러 소재가 빛을 발한다.
<결혼의 풍경>과 <살인의 해부>
사실 글쓴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난 작품은 노아 바움벡의 <결혼 이야기>다. 이 <결혼 이야기>의 감독이 1973년 잉베르 베리만이 만든 <결혼의 풍경>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니 이 <추락의 해부>는 <결혼의 풍경>과 많이 닮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 <결혼의 풍경>과 <결혼 이야기>는 협력과는 저 멀리 떨어진 부부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 <추락의 해부> 역시 함께 같이 살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이는 부부가 등장한다. 이 부부를 둘로 가르는 소재가 흥미롭다. 이 두 사람이 갈리는 계기도 앞에서 쓴 <결혼의 풍경> 같은 영화를 인용한 흔적이 난다. 하지만 원작의 여부와는 별개로 이를 표현하는 방식도 고전적인 향을 풍기고 있다. 인물의 내면을 깊숙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글쓴이는 두 주인공의 직업과 관련된 부분에서 ‘고전적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가 편집이나 음향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뛰어나지만 인물을 그리는 방식에서 섬세하다고 느낀 것이 이 지점이다.
또 이 영화에 느껴지는 고전적인 향기는 <살인의 해부>라는 영화에서도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살인의 해부>는 1959년에 발표된 영화다. <12명의 성난 사람들>과 유사하게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법정극을 통해 <살인의 해부>는 말 그대로 살인(자)과 관련된 일들을 나노단위로 분해하면서 인간의 한계와 사법제도의 단점을 폭로한다. <추락의 해부>는 <살인의 해부>가 사법제도를 비판한 것처럼 어떤 것에 대해 역설한다. 논리가 뭘까? 주장은 또 뭘까? 논증은 뭘까? 이 많은 것들을 통해 어떤 것이 증명되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직접 본 것이 아니라면 한계가 있지 않을까? 안다는 건 뭘까? <추락의 해부>는 이 부분에 대해 인간의 인지단계를 해부한다는 점에서 뛰어난 각본 능력이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영화를 담기 위해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 역시 감독 쥐스틴 트리에가 선택한 좋은 수였다. 만약 살인사건이 아니라면 이 영화가 다루다 못해 병치시킨 두 가지 소재가 구현되지 않았을 것 같다.
쫓아가는 카메라
이 영화에서 글쓴이가 가장 좋았던 것은 촬영이다. 이 영화에서 앞/뒤/좌/우로 마치 틀이 있는 것처럼 오고 가는 카메라는 마치 관객을 법정으로 초대한 것처럼 움직인다. 이는 이 영화의 법정에서 산드라가 받는 대접을 생각하면 적절한 촬영방식이었다. 이 부분은 법정 밖에서도 그대로 이어간다. 글쓴이는 이 영화의 카메라가 관객과 다니엘을 일치시킨다고 느꼈다. 다니엘은 극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모르는 것을 새롭게 아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걸 안다'는 건 본디 불안정함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 그대로 반영하듯 카메라를 오른쪽으로 획 돌려서 시체가 발견된다거나 어머니 산드라의 얼굴이 어두컴컴 해진다던가 하는 장면이 몇 보인다. 이런 것들은 영화의 핵심인 인식에 관한 문제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을 보다 용이하게 끌고 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른 맥락으로 읽을 수 있어
글쓴이는 이 영화에 있어 '스눕'이라는 개가 의미심장했다. 이 스눕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적는다면 굉장히 큰 스포일러가 되니 다 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꼭 써야 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인간의 인식론을 떠나 여성영화로서의 측면도 있다고 글쓴이가 주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비단 스눕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사건 구도만 봐도 이 영화가 가진 여성서사로서의 측면을 읽을 수 있다. 이 영화를 이루고 있는 많은 요소들을 주의 깊게 본다면 이 작품이 가진 풍부한 함유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추락의 해부>가 그냥 1차원적인 여성영화인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영화는 여성 영화로 읽을 수 있는 측면을 인물을 중심으로 다방면에 깔아놓고 있다. 주인공 산드라의 행적을 주의 깊게 본다면 이 영화가 가진 입체적인 특징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여성영화로서의 맥락은 이 작품의 엔딩과도 관련이 있다. 많은 관객들의 입장에서 이 영화는 의문점이 많을 것 같다. 이렇게 쭉 달려와서 도착한 결론이 명확하게 끝나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괴물>처럼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는 엔딩을 보여주진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엔딩은 사실상 이 <추락의 해부>가 끌고 가는 핵심 사건을 비유한다는 점에서 원형처럼 돌고 돈다. 산드라를 둘러싼 환경을 구도로 비유한 것이다. 이것을 한 여성 캐릭터가 당당히 주체적으로 서는 과정이라고 이해한다면 이 영화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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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이 번식하는 사악한 방법
논어에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에서 '예가 아닌 것 = 사악한 것'으로 인식되어 이 말은 일본에서 귀와 눈과 입을 가린 원숭이로 표현된 것으로 유명하다. 서양에서는 이를 'See No Evil, Hear No Evil, Speak No Evil'이라고 표현한다. 제목은 그 마지막을 따온 것이다. 원작은 동명의 덴마크 영화지만, 결말이 다르다. 하지만 이번에 개봉한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스픽 노 이블>이 더 제목에 걸맞은 메시지를 주고 있다.
미국인 가족인 벤과 루이스, 딸 아그네스는 이탈리아 휴양지에서 한 영국인 가족 패디, 키아라, 아들 앤트를 만난다. 나중에 벤과 루이스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를 하게 되고, 거기서 패디와 키아라 가족의 초대를 받고 그 집으로 주말여행을 가게 된다. 거기에서 패디 가족의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된다. 줄거리만 보자면 뻔한 스토리의 스릴러물 같고, 캐릭터도 엄청 독특하거나 다층적이진 않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스릴러와 조금 다른 지점이 있다. 광기의 살인마와 그 공포를 기대한다면 초반이 아주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덩치 크고 조금 무례하게 느껴지는 이 묘한 인물인 패디(제임스 맥어보이)는 등장부터 불편하다.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게 조용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벤과 루이스에게, 패디와 키아라 가족은 아무렇지 않게 시끄러움과 무례함으로 조금씩 선을 넘나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버릴 수 없는 것이, 중간중간 들어가는 친절함과 솔직한 모습들이 보여주는 매력이다. 이 영화는 낯선 환경, 낯선 문화, 낯선 사람들,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을 교묘하게 잡아낸다. 불편하지만 감당해야 하고, 싫어도 좋은 척해야 하는 우리의 삶 그 자체다. 영국에서 운전하던 벤은 자신이 살던 미국과 운전 방향을 헷갈려 교통사고를 낼 뻔한다. 서로 다른 삶에서 무엇이 선한지, 무엇이 악한지 구분해 낼 수 있을까? 좌측 운전이 선한가 우측 운전이 선한가?
패디가 이 가족들을 옭아매는 방식은 너무나 헐렁해서, 그냥 벗어나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그 지점에 함정이 있는 것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수준의 불편함이라, 그것은 문화가 다른 외국인들을 만나서도 서로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악인 줄도 모르고 악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만드니까. 그렇게 악은 우리 안에 교묘하게 스며든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앤트의 이상한 행동들이 조금씩 보일 때, 이 영국인 가족의 진실이 드러난다. 패디는 여행 중인 가족들을 초대해 살해하고, 그 아이를 잡아두고 키우고 다시 죽이는 연쇄살인범이었다는 것. 앤트는 이전에 여행온 덴마크 부부의 아들이었고, 앤트의 친부모는 죽었으며 앤트는 혀가 잘린 채 아들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초반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고, 범죄 스릴러에서 종종 나오는 콘셉트의 살인범 유형이라 크게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 영화의 메시지는 반전이나 잔혹한 싸움과 살인의 모습 등이 아니다. 사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악의 대물림이고, 그것이 대물림되는 방식이다.
패디는 자신의 아버지를 언급하며 거의 악마처럼 묘사하고 굉장히 힘들어한다. 그리고 키아라가 자신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라며 고마워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전체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그 아버지라는 인물도 역시 연쇄살인범이었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범죄자였거나, 패디 자신도 친아들이 아닌 납치된 아들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행했던 악한 일들을 증오하지만, 역시 자신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런 일들을 저지르고 있다.
루이스가 죽기 직전 커터칼로 패디를 그어 창고에서 도망칠 때, 갑자기 패디의 부인인 키아라는 자신도 데려가 달라며 자신 역시 피해자라고 말을 한다. 어릴 때 잡혀와서 지금까지 그러고 있다고. 패디가 키아라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그 말은 사실처럼 보인다. 하지만 키아라는 앤트처럼 적극적으로 도망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패디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이것은 피해자에게 자신의 범죄를 돕게 만들어, 가해자로 만들어 묶어두는 악랄한 방식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되었던 <나는 신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사이비 종교의 여신도들에게 성폭행을 하고 그들에게 여자를 데려오게 시킴으로써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다. 그럼으로써 더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 교묘한 가스라이팅이 들어가, 피해자의 정신에는 자신이 원해서 악을 행한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 잡는다.
언듯 스쳐가지만, 패디가 키아라에게 하는 '네가 원해 이 짓을 한 거야''이것은 네 탓이야'라는 가스라이팅은 결혼기간이라고 밝힌 17년간 이어져 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단순 피해자가 아닌 적극적인 범죄자가 되었다. 나 역시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기에 몸서리치게도 끔찍한 부분이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자신의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범죄자와 하나의 정신을 공유한다. 그렇게 악은 대물림되고 번져나간다.
결말에서 가장 악랄한 부분은 바로 부모가 살해당하고 혀를 잘린 채 아들노릇을 해야 했던, 앤트의 모습이다. 벤과 루이스는 쓰러진 패디를 두고 빨리 도망치려 한다. 그러나 앤트는 패디에게 부모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복수를 한다. 그 상황에서 악은, 패디의 입을 통해 사악한 방법으로 자신의 번식을 시도한다. "그래, 그래야 내 아들이지."
나이가 어릴수록, 사람은 주변 어른들에게 큰 영향을 받는다. 부모가 아이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하지만 패디는 자신이 그렇게 벗어나지 못했던 잔혹한 아버지의 악을, 앤트에게 그 말로 물려주려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앤트를 더욱 자극해 앤트는 잔혹하게 패디를 살해한다.
'사악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라고 한 것은, 악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쉽게 스며들고 번지므로 악한 것 근처에는 아예 가까이하지도 말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그것은 분명 복수였다. 그리고 그렇게 끝을 내야,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악은 정말 대가 끊긴 것일까? 적어도 몇 개월 이상 악과 같이 살았던 앤트에게 패디는 어떤 존재가 되었을까. 그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을 평생 되새기며 살게 되진 않을까? 또 우리는 내가 당했던 피해의 악을 다른이에게 같은 모습으로 가해하고 있지는 않을까? 영화 시작에 조용하게 계속 비추던 백미러 속의 앤트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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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네트> 파이널 예고편
예술가들의 도시 LA,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꼬띠아르)`과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아담 드라이버)`는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린다.
함께 인생을 노래하는 두 사람에게 무대는 계속되지만, 그곳엔 빛과 어둠이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