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2021-05-11 11:19:38
[넷플릭스] 이레귤러스 [The Irregulars] 영국 드라마
세계관의 고비를 넘으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영드
셜록의 세계관을 약간 빌려서(이름, 캐릭터, 배경 등등) 만든 호러 청춘 로맨스 이레귤러스 [The Irregulars].
19세기 런던, 어느 날부터 과학적으론 설명이 불가능한 초자연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부모를 잃은 소녀 비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돌보기 위해서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왓슨의 의뢰를 받아서 미스터리한 일에 휘말리게 된다.
등장 캐릭터가 매력적인 드라마이긴 한데,
지나칠 정도로 다양성을 넣어서 인지 처음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흑인인 왓슨, 동양인이 비아트리스, 귀족으로 등장하는 흑인들.
역사적 배경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갈아 넣은 드라마라, 셜록의 세계관을 조금이라도 기대했다면 살짝 이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판타지 드라마이고, 역사적 배경을 선택적으로 가져와 썼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러니 19세기 런던은 우리가 아는 역사를 가진 런던은 아니다.
세계관의 이질감을 넘어서면 그때부터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드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매력적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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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놈’과 노랠 부르며 마지막 춤을 출거야
베놈 업고 튀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도망자가 된 남자 에디 브룩(톰 하디)다. 카니지와의 결전 이후 오명을 쓰게 된 에디. 경찰 패트릭 멀리건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제 도망만 가면 된다. 하지만 느닷없이 우주의 힘에 이끌려 다른 우주로 끌려갔다. 끌려간 곳은 아이언맨과 타노스가 결전을 벌이고 있던 멀티버스였다. 바텐더에게 이상한 소리를 한참 늘어놓던 에디. 그러던 도중 또 갑자기 원래 살고 있던 시간선으로 이동했다. 혼란스러운 에디와 브룩. 멕시코를 떠나 어디든 도망쳐야 한다는 건 에디나 베놈이나 같은 생각이었다. 본격적으로 도망갈 준비를 앞둔 에디와 베놈. 이런 에디와 베놈을 널(앤디 서키스)가 노린다.
MCU가 뭐죠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가장 큰 장점은 마블 세계관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마블과 관련된 슈퍼히어로 영화/드라마들이 가진 특징이 있다. 바로 세계관의 다음단계를 위한 발판이 됐다는 점이다.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가 가 그 예시였다. 전자 ‘앤트맨 3’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면 앤트맨이 뭔가 이 MCU에서 대단한 역할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 이 영화에서 앤트맨이 슈퍼히어로로서 다음 스태프로 넘어간다는 장치가 별로 없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에는 정복자 캉이 얼마나 강한지, 또 앤트맨의 딸 캐시가 ‘영 어벤저스’로 활약할 거라는 암시만 있다. 앤트맨이 아버지 역할로서 노력한다는 건 사실 ‘앤트맨’ 1,2편과 어벤저스 시리즈만 봐도 알 수 있는데 3편에서 굳이 동어반복이 이뤄졌다.
이 <베놈 : 라스트 댄스>는 다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파이더맨 세계관에 힌트를 굳이 얻지 않았다. 우선 첫 장면이 의미심장하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쿠키에서 시작한다. 피터 파커(톰 홀랜드)의 주문이 잘못되며 온 우주의 빌런들이 MCU의 세계관으로 모여든다. 이 힘에 이끌린 에디와 베놈. 어떤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바텐더와 타노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전작 <베놈 : 랫 데어 비 카니지>에서 ‘톰스파’와 관련된 장면이 있었기 때문에 이 쿠키영상과 연관 지으면 마블의 스파이더맨 세계관에 편승해 상업적으로 잘 팔릴만한 이야기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본작 <베놈 : 라스트 댄스>는 이 MCU의 멀티버스 세계관을 전적으로 거부하며 시작한다. 초장부터 이 영화는 마블의 연속극이 아닌 에디와 베놈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영화는 그 선언을 충실히 이행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 번째는 에디가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딜레마에 영화가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고, 둘째는 베놈이 슈퍼히어로와 안티히어로 사이에서 인간다운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선택은 슈퍼히어로 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겐 아쉽게 느껴지겠지만 글쓴이는 나름 이 3부작의 마무리를 위해 의도적으로 고른 선택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멀티버스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무의미했나? 글쓴이는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 영화를 가로지르는 핵심 중 하나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포스터에 있는 문장이다)다. 영화 안에서 온갖 고생을 다 겪는 에디와 베놈이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둘은 헤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영화 후반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드라마틱한 선택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역시 영화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에게 캐릭터의 당위성과 핍진성을 부여한다. 쉽게 말해서 이 인물은 멀티버스가 아니면 보여줄 수 있는 위력이 급감된다(심지어 원작 코믹스 상에서도 우주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스파이더맨과 시니스터 식스의 ㅅ자도 안 꺼내고 멀티버스와 에디-베놈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경제적인 선택이 된 것이다.
기대는 플롯
이 영화에서 가장 의아했던 점은 캐릭터다. 이 영화에는 한 가족이 나온다. 이 가족은 에디와 베놈의 사이드킥으로서 조력자가 된다. 슈퍼히어로에서 사이드킥이 등장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인물이 등장하고 퇴장하는 방식은 영화의 또 다른 사이드킥 심비오트와 판이하게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아쉽게 느껴진다. 우선 이 영화에서 심비오트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지극히 합리적이다. 근거를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서도 찾을 수 있고 전작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이 가족은 그냥 단지 우연처럼 만난다. 그리고 그 우연처럼 만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작위적으로 볼 수 있는 건더기가 굉장히 많은 편이다. 이 인물(들)은 목적을 진작에 이룰 수도 있었다. 내지는 목적을 이루지 않더라도 이르게 퇴장하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작위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 선택지만 절묘하게 다 빠져나간다. 아니면 이 가족이 극후반부 엔딩까지 뭔가 유효했나? 그렇지도 못하다. 그냥 단지 영화 안에서 에디가 스스로 탈출할 수 없는 위기와 관련한 인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영화 안에서 에디의 내면을 강조하기 위해 템포가 늘어지는 발단이 되기도 하는데, 극 중에서 꼭 필요한 캐릭터 들인 건 사실이지만 감독의 연출력이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운 지점이다.
또 이 영화에서 수가 얕다고 느껴지는 장면이 크게 두 가지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카타르시스가 강하게 느껴지는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은 전적으로 슈퍼히어로물의 클리셰에 편승했다는 점에서 아쉽다. 이 인물이 후반부에서 감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에는 여지가 없다. 하지만 굳이?라는 점에서 아쉽다. 사실 후반부에서 처지가 바뀌는 수많은 인물들처럼 묘사해도 영화 안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이 인물이 베놈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지도 못했다. 이 영화 3부작에서 베놈이 가진 핵심 테마는 ‘악인을 잡아먹는다’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 테마에 닿지 못하고 그냥 캐릭터가 각성하는 여지만 주고 끝난다. 이런 옅은 연출이라면 사실 굳이 ‘베놈’이 아니어도 된다. 캡틴 아메리카 혈청과 차이점이 없다. 이유와 계기를 생략하고 단지 옆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히어로물의 특성을 부여하려니 붕 뜨는 것이다.
섹시하지 못한 히어로
글쓴이가 생각했을 때 이 베놈의 가장 큰 장점은 기괴함이라고 생각한다. 기괴함이라고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일반적이지 않아야 도드라지는 시각적 특성이다. 심지어 베놈이 하는 짓도 기괴하다. 빌런의 ‘목을 잡아먹는다’가 핵심이다. 두 설정. 시각적으로 기괴하고 악인의 목을 잡아먹는다는 설정은 캐릭터의 비주얼과 표현 수위에 있어 잘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 그 시각적으로 강렬한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해서 템포가 더 빠른다던가 괴이한 비주얼을 보여준다던가 하는 식의 연출이 필요하다(‘데드풀’처럼). 이 시리즈는 베놈의 기괴하고 난폭한 캐릭터성을 뒷받침할 시각적 연출을 보여주기는 한다. 대표적으로 예고에서도 나오는 장면이 있다. 에디와 베놈이 말을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다. 말의 질주와 검은색으로 색감을 묘사하며 마치 오토바이를 타는 것 같은 장면을 멋지게 표현했다. 후반부에서 빌런과 싸우는 캐릭터들의 모습도 베놈의 특성을 잘 살린 멋진 장면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심비오트가 히어로의 개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연출됐는지는 미지수다. 대표적으로 영화 후반부에서 심비오트들이 등장하는 방식을 보면 ‘엑스맨’ 시리즈의 뮤턴트들과 차이점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이 영화에서 베놈과 심비오트들이 왜 악하거나 왜 선한지에 대한 고찰이 없다. 남들이랑 다른 외계인이니까 사람들이 배척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베놈이 ‘악인의 목을 잡아먹는다’라는 자경단 설정도 그렇게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한다. 가령 ‘데어데블’을 보면 변호사 맷 머독과 슈퍼히어로 데어데블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듯한 연출이 자주 등장한다. 드라마의 톤도 전적으로 어두워서 폭력적인 내면과 선한 변호사라는 가치가 충돌한다는 점을 묘사하기에도 충분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베놈은 원초적으로 욕망에만 이끌리는 캐릭터다. 에디가 이 욕망을 핸들링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이 인물의 내면이 평범한 사람인 것만 두드러지고 나머지는 생략됐다는 점이 아쉽다.
영화 안에서 베놈을 둘러싼 세상도 깊이가 얕다는 점이 아쉽다. 물론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나름 현실감이 있다. 특히 위에서 쓴 가족들을 보면 캐릭터의 설정 자체는 아주 설득력 있게 디테일하다. 하지만 이 설득력이 이 영화의 개성을 살리는데 유효한 디테일이었는지는 미지수다. 왜? 영화가 지나치게 설명하려 하는 느낌이 강하니까. 이렇게 자경단을 다뤘던 드라마/영화들은 이 세계관을 깊게 설명하지 않는다. 메인빌런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 자기가 입으로 설명하는 멋없다. ‘데어데블’ 시리즈도 킹핀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구구절절 설명 안 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힘으로 캐릭터를 설명한다. 하다못해 올해 개봉한 <베테랑 2>도 해치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해치의 연쇄살인을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본작 <베놈 : 라스트 댄스>는 한껏 설명하기 바쁘다. 이 설명을 한 번 하면 몰라. 여러 번 반복한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친절한 영화의 태도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소니가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모비우스>가 어색한 캐릭터성으로 낡은 전개를 보여줬던 걸 생각하면 본 작의 단점 역시 이런 특징을 있는 듯 보인다.
예의를 갖추다
글쓴이의 총평은 ‘나름 예의를 갖춘 3부작 마무리’라는 점이다. 나름 에디와 베놈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며 그들도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베놈의 시각적인 특성을 활력 있게 묘사하면서 이야기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가 끊어내지 못했던 애매한 캐릭터 설정이 영화의 발목을 잡으며 플롯 전체와의 이질감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장단점과는 별개로 톰 하디가 감정적으로 관객을 끌고 당기는 박력이 대단하니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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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망무제(一望無際)
구구절절히 설명하면 재미가 없다. 또 과하게 친절하면 매력이 없다. 왠지 모르게 이성관계에서 적용되는 이론을 꺼내오고 싶어진다. 과연 배때지가 불러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인가. 네 연애나 제대로 하고 이런 문장을 쓰라고 하면 사실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인간관계에도 적당한 선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던 말이지만 요즘은 그 말이 맞다고 느꼈다. 오히려 아무 연락도 안 하고 지내야 그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커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 같다. 누군가가 정말 좋았다가도 ‘별 쓰잘데기 없는 소릴 하네’라는 생각이 들면 멀어지게 된다. 너무 많이 말하면 다 알아서 상상력이 줄어드는데, 적게 알면 그만큼 사람이 생각할만한 건덕지가 넓어져 관계를 오래 유지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게 만드는 결말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는 경우가 많았나보다. 한 유령이 있다. 유령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이 유령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마음을 한번 열어보자.
간단하고 단촐하게
<고스트 스토리>는 살아있는 사람에 관한 영화다. 루니 마라와 케이시 에플렉이라는 할리우드의 빅 네임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근데 제작비는 10만 달러로 초초초 저예산 영화에 속한다고 한다. 이런 초저예산 영화의 특성만큼이나 줄거리는 소박하다. C와 M은 다정한 신혼부부다. 근데 갑자기 남편 C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M는 혼자 남겨졌다. 그렇게 C가 떠난 빈자리를 감당하며 일상을 보낸다. C는 이 빈자리를 조용히 관망하기만 한다. 유령이기 때문에 말도 무엇도 할 수 없다. 그가 떠난 빈 집에서 파이를 먹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등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다. M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이내 집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삿짐을 준비하는걸 전부 마무리한 M. 집을 떠나며 무언가 쪽지를 쓰고 벽에 묻는다. 유령이 된 C는 M이 떠난 후 벽을 열심히 파서 쪽지를 보게 된다.
줄거리를 쓰기에 간단한 구성이다. 그 덕에 영화는 딱 두 가지 상황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C와 M이 부부였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C가 세상을 떠나고 M을 지켜본다는 것이다. 이 구분은 유령이냐/유령이 아니냐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안에서 중요한 건 M이 유령이 되고 난 후다. 이 작품은 M의 사후를 조명하는데, 이 과정이 영화라고 할 것도 없이 굉장히 심심하다. 솔직히 루니 마라가 파이 먹는 걸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녀가 파이를 먹는 건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파이 먹는 게 재미있는 분들은 유튜브에 '먹방' 검색하고 아무 영상이나 재생하는 것이 더 도움 될 것이다. 별 것 아닌 일상 속의 시간까지 조명하는 이 영화다. 영화는 M의 시점에서 C를 구경한다. 다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구경만 하는 것이다.
떠나간 이가 느낄 감정들에 대해
누군가의 곁을 떠난 우리. 떠난다는 건 허무함과 우울함의 연속이다. 이를 수식할 수 없을까? 아니다.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이 영화와 같이 조용하다. 바쁘게 사는 것이 그 누군가를 떠나보내기에 아주 좋은 상황이란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바쁘게 보내려고 한다. 치열했던 일상이 끝났다. 하루를 마치고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눕는다. 그러면 알게 된다. 문득 혼자라는 걸. 난 이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사람의 존재는 내 생각보다 컸었다. 그러면 무슨 행동에 전제조건이 붙게 된다. 어떤 일을 ‘그걸 이겨내기 위해’ 했었던 만큼 그 인물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는다. 그러면 일상 속에서 타인의 흔적이 강하게 박혀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이라고 파이를 혼자 먹고 싶어서 먹고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익숙한 상황을 즐기지 못한다는 그 지점은 인간에게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되게 별 것 아닌 순간에서 사람은 그제야 떠난 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외로움과 허전함이라는 감정을 묘사할 때 일반적으로 다른 영화들은 주인공이 갖고있는 정서를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보여줬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해피 투게더>의 경우 왕가위는 아휘 캐릭터가 밥알을 하나씩 하나씩 먹는 장면을 통해 주인공의 감정을 드러냈다. 이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반대의 접근법을 가지고 있다. 관객이 인물을 지켜보며 다양한 생각을 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롱테이크와 장면을 길게 늘이는 방식이 그 예인데, 파이를 먹는 신에서 그게 잘 드러난다. 이 장면은 4분 30초간의 한 장면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부엌 안에 덩그러니 앉아서 파이를 먹는 M. 우리는 그걸 지켜보며 다양한 생각에 빠진다.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한 부엌. 집엔 아무것도 없고 여자 혼자만 있다. 그럼 감정이입이 된다.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고독하다는 걸 나타내는 행위는 없는데도, 인물이 외로움을 느끼는 걸 지켜보는 것이다.
여태까지 없던 방식으로 삶을 돌아보다
우리는 이 외로움이란 정서를 M과 함께 공유하며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우리, 원래 둘이 있으면 뭐든 함께했다. 혼자서 먹을때도 재미있는 이야기 해 줄 생각에 행복하고, 슬픈 일이 있어도 같이 나눌 이가 있다는 사실에 기쁘다. '함께'라는 사실에 기댔다가 누군가가 나를 떠나면 그 기분을 느낄 수 없다는 씁쓸함에 외로워진다. 근데 인간에게 있어 이 시간은 점점 누적된다. 외로움에 지치면 무엇이든 하기 싫어진다. 근데 지치면 지칠수록 시간은 너무나 길어서 사람이 더 고독을 느끼게 된다. 영화로 돌아가서, 한 장면을 4분 30초 동안 본다고 가정해보자. 외로움을 느끼며 시간이 진짜 안 간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난 이 시간이 안 가는 기분이 너무 싫었다. 함께라면 이 파이가 더 맛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이 고개를 들었다. 금새 잊지 못했던 상처가 생각나 또 외로워진다. 그 외로움에 빠져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시간 더럽게 안 간다. 같이 하면 더 많은 걸 하면 시간을 보냈는데, 혼자서 하니까 눈이 파이 먹는 것에만 집중되는 것이다. 이는 이 정서를 100% 의도한 연출이다. 일부러 잔잔하고 조용하게 설정해서 인물이 느낀 고통을 극대화시켰다. 만약 왕가위라면 나레이션에 색감보정에 이것저것 많이 넣었겠지만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인물 하나와 파이 하나만으로도 고독감과 외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는 상실의 의미와 아름다움
감독이 설정한 이 정서를 함께 느끼다 보면 우린 알게 된다. 내가 사랑했던 타인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타인의 존재감을 느낀다. 삶의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우리는 누군가를 기억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함께 있게 된다. 극 중 예언자의 말처럼 존재를 기억하는 데 있어 흔적 같은 건 필요 없다. 우리를 떠난 사람들의 흔적이 굳이 남지 않더라도 어쩌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아름답다. 완전하게 신선한 방식으로 인간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표현했다. 외로움은 우리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이걸 표현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명제일지도 모른다. 또 우리는 각자 다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이가 내 옆을 떠났고 그 인물이 나에게 무슨 느낌을 줬는지는 모두가 다를 것이다. 감독은 이에 대한 공감의 방식으로 색다른 방법을 택했다. 정해지지 않은 유령과도 같은 무언가를 보여줬다. 우리는 이 덕에 각자가 잃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한한 상상을 우리에게 선사한 것이다.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인간의 이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 우리에게 각자가 품고 있는 정서를 드러나게 했다. 일망무제가 딱 적당한 표현이다. 우리 인생은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다. 또 영화와 예술은 이런 우리의 텅 빈 무언가를 꺼내주는 아주 감사한 매개체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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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가는길이 멀었던 이유
다큐멘터리_학교가는 길
감독 : 김정인
개봉일 : 2021.05.05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큐멘터리 학교가는 길 리뷰입니다.
학교가는 길은 2017년 특수학교인 서진학교가 설립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인데요, 서진학교의 설립과정 뿐만 아니라 지역구에서 이루어지는 소외 계층에 대한 대립들, 이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언뜻 보면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람들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에서는 대립하는 사람들 조차도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담은, 다양한 시선으로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학교가는 길은 우리 주변에 정말 이런일이 일어난다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견에 대한 시선들, 배척하는 마음들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학교가 코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2~3시간 가량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들을 보면서 아직도 장애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가겠다는 부모님들의 노력도 엿볼수 있었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해서 사람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제도가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특수학교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삭발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지에 대해서 알고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서울시 강서구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부터 많은 역사들을 알아야 영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제가 설명하기에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 따로 찾아보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저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감독님과,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부모님과도 만날 수 있는 GV 시간을 가졌었는데요, 거기서 감독님께서 하신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 자연스러운 사회의 현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서 그것이 과연 합당한 현실인지 물음표를 던질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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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적인 사랑 얘기에 웬즈데이를 끼얹은 느낌
난 영화를 보기 전에 로그라인을 잘 보진 않는다. 그냥 제목에 혹해서 보는게 대부분이다. 영화보고 글쓰는게 취미인 인간이 할소린가 싶겠지만 그래서 가끔 포스터 보고 혹했다 읭? 하는 경우가 있다. '눈물을 만드는 사람'이 내겐 그랬다.
1차 충격은 이 영화가 이탈리아 영화라는 점이었다. 영화라는 매체에 관심 갖다 보면 자연스레 프랑스 영화는 보게 되는 경우가 있긴 한데, 이탈리아 영화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낯선 이탈리아어가 들려서 감정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잘 캐치하기는 힘들었다. 그저 자막과 배우의 표정에만 집중해야 하니. 그런데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다크하고 주인공의 표정은 참 어둡다. 그래서 이게 로맨스인지 처음엔 감이 안잡힌다. 우선 나조차도 이 영화가 '웬즈데이'같은 오컬트스러운 영화라고 생각하고 봤던 건데 로맨스였던 것이었다. 다시 보니 누가 봐도 로맨스인데, '쟤 바보 아니냐'할 수 있지만 로그라인을 크게 신경안쓴 내탓이다.
2차 충격은 이 영화는 여러가지 동화적 설정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늑대 타령이다. 이 영화의 주된 설정이 남자주인공이 늑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건데, 성안에 갇힌 공주를 사랑하면서도 구할 수 없다고 자신을 가스라이팅하는 인물로 나온다. 뭔가 비련의 남주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내가 이런 느낌을 수용하기엔 너무 냉정한 인간인가 싶었다. 여주 또한 늑대임을 알면서도 사랑한다고 외치는 것을 보아 이들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리고 싶었음을 알 수 있다. 보다보면, 남주는 그저 희생적인 남자인데, 극 초반을 보면 이런 사이코가 없다. 그런데 알고보니 '사랑해서 보호하기 위해 멀리한다'는 생각이었다니, 왜 난 이걸 보면서 세상 오글거렸을까. 나만 오글거린 게 아니었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본 로맨스가 가미된 유럽 영화는 꼭 한 명씩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가 등장하는데 이번 영화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저번에 리뷰한 '립세의 사계'에서도 '치명적인 이성은 어쩔 수 없이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관념을 보여주었는데, 이 영화는 약간 영화 속 인물들이 남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와 비슷해 보인다.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어 모두가 그를 선망하고 갖고 싶어하지만 여주에게만 까칠한 그런 인물. 여주도 이 남자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치명적인 매력에 어쩔 수 없이 빠질 수밖에 없다는 이 감성이 정녕 유럽의 기본적인 감성인 걸까.
이걸 보면 유럽은 아직도 치명적인 매력이란 존재한다고 믿나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하려고 해도 끌릴 수 밖에 없는 매력이란 존재한다고 믿으며, 사랑에 빠지는 행위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상한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코드가 유럽에서는 굉장히 잘 먹히는 코드인가 생각해 본다.
이 영화는 정말 시종일관 어둡다. 그리고 잘 모르는 두 남녀 배우가 참 비주얼적으로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 영화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웬즈데이' 같은 배경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려낸 영화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까. 아련하고 애절한 로맨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뭐 한 번 정도는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여자 주인공이 예쁘게 생겼다고 생각한 것이 이 영화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생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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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는 행복이야말로
먹는 행복은 누구에게나 있다. 뭐, 아무리 소식좌라고는 해도 좋아하는 음식은 있을 것 아닌가. 남극처럼 삶의 낙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가장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는 식욕이다. 이 이야기는 먹방을 빙자한, 한 철부지 남편의 와이프 이해하기 프로젝트를 담은 영화다. 하지만 맛있게들 먹는 모습은 덤이라고나 할까.
1. 모든 욕구가 차단된 곳, 그곳은 남극
영화를 보고 있자면, 누군 허겁지겁 먹고, 누군 천천히 먹고 각기 먹는 스타일들이 다 달라서 그들을 비교하면서 보는 지점들이 재미있었다. 정말 각기 다른 사람들끼리 한 공간에 모여 밥을 먹는 것이 중요하구나 느끼게 되면서도 각자의 밥에 집중하느라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안쓰는 지점도 은근 코믹했다. 온전히 배고픔을 충족하는 사람들을 제 3자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이리 재미있는 것이었나.
이전에 게걸스럽게 먹는 사람들 별로라고 한 적은 있는데 이렇게 아무 욕구도 충족할 수 없는 이 남극이라는 곳에서는 먹는 게 유일한 낙일 수밖에 없으니 게걸스럽게 먹는 이들도 이해가 간다. 가족도 보고 싶고, 여자친구도 보고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그저 얼음만 바라보는 삶에서 우울증 안걸리려면 맛있는 음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2. 가족애가 빛난
이 영화의 감동 포인트는 아무래도 주인공과 딸의 원거리 대화 장면이었다. 딸은 아버지임을 알고 대화하고 아버지는 딸과 대화하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정보가 불공평한 상황을 이용해 딸이 타인인척 접근해 더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가끔은 가족이라는 존재들은 서로가 옆에 없을 때 서로에 대한 감정이 증폭되고 서로에 대한 다정한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오히려 옆에 있을 때 무뚝뚴해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연구대원이 아닌 자신이 불려나온 것이 의아한 아버지도, 그저 아버지와 말하고 싶어 타인인척 귀여운 질문 던지는 딸도 너무 귀엽다.
3. 남에게 밥을 해주는 행복
주인공은 그전까지 와이프에게 반찬투정이나 하는 금쪽이 남편이었다. 하지만 타의이긴 했지만 남극에서 누군가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면서 은근히 기쁨을 느끼던 그는 남극에서 돌아오자 의외로 우울함을 느낀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는 딸이 생일상차려달라는 딸의 말에 묘한 생기가 도는 것을 보니 그는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매력에 빠진 것이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랍스터를 튀겨먹는 장면이 가장 명장면이다. 은근히 웃기고 계속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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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해, 새롭게 뭔가를 떠나보내고 싶은 당신에게
나는 올해를 '여러모로 개 같은 한 해'라고 규정하고 싶다.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게 썩 좋지 않은 해라는 뜻이다.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그거 빼고는 다 구렸으니 다 액땜이라 생각하고 싶다. 안 좋은 일만 주구장창 있으면 다행인데 사실 올해는 생각이 많았던 기간이기도 하다. 두려움. 공포. 아쉬움. 뭐 그런 감정들이 1년 내내 들었다. 누군가에게 기가 막힌 해결책을 들었다고 해서 이게 나아질 거라는 보장이 없다. 이미 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생각이 든다. 매일매일 다가오는 두려움과 공포감에 점점 지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무서운 감정이 계속해서 들기 때문에 이 2021년을 견디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인 건 아마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겠지. 근데 나는 점점 이 사람들에게 마음이 깊어져서 평범하게 잊히는 상황을 혼자 그리고 있다. 알고 있다. 이 두려움은 주위 사람들에 비해 내가 작아 보인다는 열등감에서 비롯됐다는 걸.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내 곁에 사람이 많았으면 좋았겠지? 근데 왕따를 심하게 당해 인간관계 능력이 정말 죽어버렸다는 변명이 무색하게 난 오늘도 혼자인 채로 하루를 보냈다. 내 일상에 많은 것에 만족하다가도 '그때 사람들에게 미안하단 말을 더 할 줄 알았더라면'과 같이 죄책감이 남거나 마음속의 누군가에게 화가 났으니 난 아직도 자기혐오의 늪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상처를 줬다는 무게감을 생각하면 이게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마음은 새 해가 된다면 정말 떠나보내고 싶은 것 중 하나다. 괴롭거든. 좋은 데 들어가서 멋진 사람 만나 꽁냥꽁냥 하는 삶 살아야 사라지지 않을까 싶거든. 난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다. 그러려면 모든 원인이 규명되어 아다리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 나는 왜 이리 꼬였나. 어쩐지 2022년이 돼도 나를 일으키는 건 정말 어려울 것 같다. 세상이 날 버리면 어떡하지. 번뇌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기분이 들 때면 어느 영화 한 편이 생각난다. 그리고, 난 여러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이 작품을 보고 난 후의 마음가짐이 길게 가지 않아도 괜찮다. 29살의 감독 PTA가 제시하는 해결책에 대해 조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1. 어떤 것에 관한 영화인가요?
자기혐오에 관한 영화다. 자기혐오를 나무위키에 검색하면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행위'라는 뜻이 나온다. 자기 스스로를 학대하는 행위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죄책감이 있을 수도 있다. 죄책감은 보통 과거의 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다. 그때 내가 좀 더 용기를 냈더라면. 내가 그때 잘못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누군가에게 욕을 하지 않았더라면. 뭐 이런 식으로 과거의 본인에게서 잘못된 것을 찾는 것이 죄책감의 정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난 적당한 죄책감이야 말로 사람이 얼마나 올곧은지를 보여주는 굉장히 많은 척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직접 느껴보고 경험했던 인간 군상은 대부분 '적당한 죄책감을 가진 사람이란 드물다'였던 것 같다. 보통 죄책감을 느낄 법한 사람이면 감정이 흘러넘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인간은 보통 자기에게 없는 걸 후회하니까. 그렇게 결핍에서 생긴 이 감정은 우울할 때마다 자기혐오로 변해 사람들을 괴롭힌다. 이렇게 사람을 괴롭게 만듦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 과거는 절대 수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죄책감의 원인은 가지각색으로 다양하다. 과거의 누군가가 준 트라우마 뭐 그런 것 때문에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것도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떠나간 이들에게 잘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가능할 것이며 학교폭력과 같이 범죄까진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준 경험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행동으로 보여줘 그것에 상쇄하는 행보로 보여줬다면 용서받을 수 있겠지만 그게 전부 능사는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줬다 하더라도 떨쳐내지 못하는 경우도 불가능한 사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마음은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 사람을 괴롭게 만들기 쉽다. 그렇게 누군가를 못살게 구는 죄책감은 결국 자아존중감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이게 계기가 되어 사소한 일에도 마음의 우물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영화처럼 멍청한 실수를 하기도 하고, 마약 같은 자기 파괴적 행동으로 귀결이 나며, 메마른 자아를 숨기기 위해 화려한 직업을 갖는 등 가지각색으로 있을 것이다. 자기혐오는 이렇게 사람의 결핍에 찰싹 달라붙어 누군가를 피폐하게 만든다.
이 <매그놀리아>는 9명의 내러티브가 분리되어 자기혐오에 대해 다룬다. 죽어가는 남편에 대한 죄책감, 아들과 전 부인을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다는 후회, 아버지에게 받은 핍박과 멸시, 소심한 내면을 꺼내기 어려운 아이와 엄한 아버지, 어릴 땐 잘 나갔지만 지금은 사랑을 나누는 법을 몰라 친구 없이 외로운 소시민 아저씨, 날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 딸에게 못쓸 짓을 했던 바보 같은 과거, 경찰 치고는 어쩐지 허당인 한 인물의 모성 격까지. 가지각색의 사연이 맞물려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사람들 전부 다 과거의 한 에피소드에 붙박여 자기 스스로를 원망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은 이런 다양한 인물을 제시하고, 각자의 내러티브를 한 지점으로 정교하게 맞아떨어지는 지점을 만들어 낸다. 가지각색의 자기혐오에 대해 한 지점 찍고 전환점을 만든 것이다. '아니 9명이 주인공인데 어떻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이 9명이 극에서 중요한 포지션을 균일하게 잡고 있다는 점이나, 자기혐오의 다양한 인물상을 제시했다는 점이나 결말부의 한 지점의 개연성을 위해 무조건 들어가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 글을 읽을 몇 안 되는 분들의 마음에 뭐가 있는지는 모른다. 또 여기 인물과는 다른 상처를 감당하고 있을 수 있다. 난 이 9명의 인간상에 속해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와 타인을 용서하지 못해 마음이 괴로운 이들이라면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도 좋다. 이 영화는 왜 자기혐오가 발생하며, 그게 어떤 영향을 주고 또 어떻게 해야 구원이 이뤄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니까.
2. 러닝타임 180분에 주인공이 9명? 보는 게 어렵지는 않나요?
이야기 잘 만들어서 시간 체감이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나는 감독 PTA의 작품 중에서는 쉬운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마스터>가 잘 만든 작품인 건 맞는데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펀치 드렁크 러브>같은 경우 내용만 보면 로맨스 코미디라 슥 봐도 문제가 있지는 않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다방면의 미장센이나 비유가 한 번만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대신에 이 <매그놀리아>는 9명의 인물이 나오고 초입부에 이게 뭔 소리지? 싶은 오프닝 장면이 있어서 그렇지 크게 받아들이는 게 어렵진 않을 듯. 9명의 인물 그거 스토리 어떻게 다 이해하나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9명의 주인공들이 거의 서로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딸에게 못된 짓을 했던 아버지는 TV쇼 진행자인데, 소심해서 아버지에게 자기 내면을 못 꺼내는 아이는 그 진행자의 출연하는 패널이다. 이런 식으로 감독은 인물들의 자기혐오 원인을 최대한 다양하게 제시한 반면 이 사람들이 만나는 계기를 2~3개로 압축시켜 관객의 오해를 줄였다. 이렇게 그냥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내용을 이해하는데 크게 어렵지는 않을 듯. 또한 영화의 감정이 잔잔한 게 아니라 좀 센 템포로 진행되기 때문에 지루하다던가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3. 배우들의 연기 합은 어떤가요?
줄리안 무어. 톰 크루즈. 필립 셰이모어 호프만. 존 C. 라일리. 윌리엄 H. 메이시 등등. 이름만 봐도 든든한 국밥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 줄리언 무어나 톰 크루즈는 이미 연기 잘하는 거 다 알아서 아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또 영화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필립 셰이모어 호프만 모를 수가 없다. 감독도 PTA라는 할리우드의 빅 네임 아닌가? 영화의 전체적인 톤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니 보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 이 영화가 그냥 단순히 유명한 사람들이 나오고 거장 폴 토머스 앤더슨이 메가폰을 잡았다고 해서 연기력이 좋은 작품은 결코 아니다. 가령 줄리언 무어가 맡은 캐릭터는 죽어가는 남편에 대한 죄책감으로 서서히 미쳐가는 여성이인데, 이 복잡 미묘한 후회와 자기 자신에 대한 화가 이 인물이 만나는 사람에게 잘 느껴지도록 템포 조절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또 톰 크루즈가 맡은 캐릭터는 잘생긴 외모와 입담 말고도 다른 내면을 묘사해야 했는데, 각본이 너무 좋아서 대사들이 사람의 성격을 표현하기에 아주 효과적이다.
4. 보기 전에 알고 가야 할 지식이 있나요?
읽고 나서 알아야 할 지식은 있다. 엔딩부의 한 사건에 대해 찾아보는 걸 추천한다. 그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듯.
5.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1번에서 언급한 바와 비슷한 말을 쓰고 싶다. 자기혐오에 고통받는 사람이라면 정말 추천해주고 싶다. 나는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다. 날 떠났던 사람들에게 돌아가 내가 변했다는 걸 증명하면 이 죄책감이 사라질까. 얼마 전까지, 아니 솔직히 지금도 고민인 내가 존경하는 분에게 평범해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사라질까. 근데 사실 이 질문의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이건 다 내가 인간관계를 좁게 만들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걱정이라는 걸. 난 사람들을 사귀기에 적합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날 떠날 거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잊힐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원인들을 단적으로 해결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해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착하는 것이야 말로 날 더 불행하게 만들겠지. 이 결론이 자기혐오가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원인과 결과를 명백하게 규정짓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걸 반박하는 작품이다. 자기혐오를 가지기에 충분한 인간이라 생각했다면, 단 찰나의 순간으로 감독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라고 답한다. 엔딩부의 한 지점이 그 기분을 느끼게 해 줄 것이라 확신한다. 이제 우리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모두에게 자기 자신을 용서할 자격이 있다는 걸. 그리고 이제 그만하면 됐다. 보내 줄 것들은 보내주자.
6.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왓챠에서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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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1~3》 인문학 결말포함 영화리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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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실은 진짜일까?] https://youtu.be/wfvqm5HBRb0
#3 [빨간 옷의 여자] https://youtu.be/X_fQcoytk70
#4 [오라클은 악마다?] https://youtu.be/fLgWf7NWkn8
#5 [스미스는 왜 졌을까] https://youtu.be/Uas0KZDCQec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간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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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배니싱 : 미제사건> 티저 예고편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전대미문의 사건? 사라진 사람들... 그리고 충격적인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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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억의 전쟁>
그곳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