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8-21 12:26:04
낯섦의 두려움과 익숙함의 두려움이 공존하는 곳.
영화 <플레이 그라운드> 리뷰
새로운 공간의 낯섦과 익숙한 존재와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한 두려움은 눈물 짙은 감정으로 되돌아왔다가 되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북적북적한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 노라는 어색함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겨우 말을 내뱉는다. 그 후에도 주위를 계속 돌아보며 익숙한 존재를 찾고 온기만으로도 든든했던 오빠 아벨을 발견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 평화로움과 즐거움으로 가려졌던 '플레이 그라운드'가 사실 폭력으로 점철된 공간이었다는 것을 목격한 노라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유 모를 괴롭힘 앞에 놓인 무력한 자신과 무관심한 주변으로 가득 채워져 오직 두려움이 가득한 시선 만이 남아있었다. '플레이 그라운드'는 다시 이들에게 평화롭고 즐거운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노라는 점점 낯선 공간에서 익숙함을 느끼기 시작하지만 아벨은 익숙한 공간에서 반복되는 폭력으로 인해 침묵을 유지하여 상처도 마음도 숨기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런 모습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노라는 주변에 손을 뻗지만 무관심한 시선이 돌아온다. 심각한 상황이 돼서야 노라가 바라봤던 시선을 어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어른이 개입할수록 더 악화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고 온전한 도움을 바랄 수 없게 된 현실에 그 존재마저 부정하게 된다.
넓디넓은 공간에서 어른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에서 펼쳐져 더욱 잔혹함이 짙게 느껴진다. 어떤 밀폐된 공간이 아니더라도 곳곳에서 펼쳐질 수 있는 학교 폭력 문제를 담아내었다. 손을 뻗어도 한없이 먼 어른이라는 거리를 통해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력함을 느끼기도 한다. 저항 없이 밀려나는 허무함 그 후의 행동은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백지와 같은 아이들의 공간을 조금씩 채워가지만 유난히 낮은 시선 뒤의 무기력함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어른들이 방관한 세계는 작은 세계에도 침투하여 잘못된 혐오와 차별의 말이 쏟아지는 데에도 누구 하나 제지하는 이가 없게 한다. 당연한 진리처럼 자리 잡은 다수의 폭력은 그 앞의 개인이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되어. 인물만 바뀔 뿐 또 다른 모습의 폭력의 대물림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폭력을 이용하는 비극 앞에서 우리의 선택만이 그 비극의 꼬리를 잘라낼 수 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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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메이커(2022)" 영화와 실제 역사 비교영상 (*스포일러)
어디까지 실화이고 어디까지 픽션인가??
- 킹메이커 영화정보
장르: 드라마
감독: 변성현
각본: 변성현, 김민수
제작: 이진희
촬영: 조형래
조명: 이길규
미술: 한아름
음악: 김홍집, 이진희
편집: 김상범
출연: 설경구, 이선균 외
제작사: 씨앗필름
배급사: 대한민국 국기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촬영 기간: 2019년 3월 25일 ~ 2019년 7월 30일
개봉일: 대한민국 2022년 1월 26일
상영타입: 2D : 디지털
화면비: 1.85:1
상영 시간: 1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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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켄지 포이' 인터스텔라 소녀, 이제는 할리우드 성인 배우
? 인터스텔라 소녀 '맥켄지 포이' 배우 소개 영상
머피 가 이제 할리우드 주연급 배우로 성장을 했다니!!
*결말포함 영화리뷰 아닙니다#맥켄지포이 #멕켄지포이 #인터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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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웨이 다운>
세기를 뛰어넘는 두뇌 대결, 200년 전 공학자들의 금고를 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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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시간 여행 : 과거에 갇힌 남자> 메인 예고편
가까운 미래, 과학자 '노만'은 인공지능 ‘애니’와 함께 과거를 바꾸기 위해 시간 여행을 시도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그는 다른 과거의 시점에 갇히게 되고,
'노만'은 그곳에서 타임머신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혹여나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바꿀까봐 혼자서 고립된 생활을 하던 '노만'은
점점 희망을 잃어가던 가운데 우연히 '제니'라는 여성을 마주치게 되는데...
과연 그는 그토록 염원하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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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칠흑 앞에서도 거칠고 꼿꼿한 백白의 지식인
시대의 칠흑 앞에서도 거칠고 꼿꼿한 백白의 지식인
자산어보 玆山魚譜 The Book of Fish | 2019 | 이준익 | 126분
※영화 〈자산어보〉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산어보〉는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 시대극 전문 감독으로 평가될 이준익 감독의 열네 번째 신작이자 〈동주〉에 이은 두 번째 흑백영화다. 정약전의 책 자산어보의 서문에서 출발한 영화는 변화와 혼돈의 시기 속 거칠고도 꼿꼿했던 사람들의 삶을 관찰한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학을 연구하던 천주교 신자였던 정약전은 1801년 신유박해로 동생 정약용과 함께 유배길에 오른다. 어쩌면 살아서는 마지막 모습으로 만날 두 사람은 각자 흑산도와 강진으로 흩어졌고, 정약전은 섬 살이 중 벗으로 만난 어부 장창대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집필한다. 기약 없는 귀양살이에 지친 그의 눈앞에 펼쳐진 온갖 수산물에 대한 궁금증은 구체적인 사물과 현상의 분석을 중요시한 실용주의적 사고에서 나왔다. 영화가 거대한 역사로부터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않았던 개인을 주목했듯 정약전 역시 국가와 가치를 다룬 성리학에서 눈을 돌려 변화와 비판의식을 담아 평가절하된 존재에 애정을 쏟는다.
출처|다음영화
영화는 흑백의 색감만큼이나 선명하고도 확고한 서사적 대비로 관객을 집중시킨다. 전작 〈동주〉에서는 ‘동주’와 ‘몽규’의 닮았지만 서로 다른 이상과 행동을 대비하며 건조한 역사의 문장에 상상력을 더해 살아있는 이야기를 창조한다. 정약전과 창대 역시 사학과 성리학, 명문 사대부와 가난한 천민 출신, 스승과 제자, 이론과 실천 등 모든 면에서 달랐던 두 사람이 흑산도라는 공간에서 대립하며 충돌하다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공유하는 사제이자 벗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그들의 귀향길만큼이나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성향에 따라 ‘자산어보의 삶’과 ‘목민심서의 삶’으로 갈라진다. 비슷한 귀양 기간 정약용은 지역의 유림과 정치, 사회. 경제, 법률 등 분야를 망라한 수백 권의 책을 집필했지만, 정약전은 소나무의 조세 징수나 표류 유람기 등 개별 사건을 다룬 책 몇 권을 썼을 뿐이다. 이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가치관을 표현한다. 같은 실학사상의 주창자였어도 정약용은 신분과 계급, 왕과 천민이 나누어진 수직적 위계 사회를 지향했고, 정약전은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계급과 성별, 직업을 뛰어넘은 수평 사회를 바랐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정약전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영화는 어느 한 사람을 미화하거나 영웅시하지 않는다. 대신 어떠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각자의 인식과 현실을 모두 그려내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닌 차이의 영역으로 영화 속 인물의 행동을 이해하게 만든다. 정약전의 뛰어난 학문적 능력과 지식을 지켜본 창대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스승을 재촉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신념에 따른 그의 행동은 변하지 않는다. 열등감과 출세의 꿈을 펼치기 위해 스승을 등지고 흑산도를 벗어난 창대는 이론의 이상과 실제 현실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약전이 행했던 가치를 이해한다. 창대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할 수는 없다. 태생적 격차와 경제적 빈곤을 딛고 성리학이라는 당대의 정설로 세상을 바라봤을 그에게 입신양명의 꿈은 항상 지니던 열등의식을 타개할 절호의 기회였다. 마찬가지로 실학과 서학을 배우고 이미 사회의 부조리를 먼저 체험한 정약전의 관점에서 조선의 개혁은 필수 불가결했다. 그러나 이미 조정에 눈엣가시였던 정약전에게 15년간의 유배 생활은 그의 발목을 묶어두려던 계략의 일환이다. 이 또한 모르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상황에서 지켜야 할 가치를 정하고 이를 실천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정약전의 입장이 설득력 있지만,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역사의 한 대목에서 고민과 갈등을 반복하는 인간의 삶이 남을 뿐이다.
상업 영화의 정석을 걷는 영화는 긴 이야기를 풀어내며 볼거리와 먹을거리,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다.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흑백 화면의 미묘한 농도로 드러나는 아름다운 풍광과 의미다. 마치 고고한 수묵화 한 점을 감상하듯 관객들은 한반도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영화가 품은 시대성과 미학적 성취도 함께 체험한다. 색을 없애며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의 디테일은 인물의 신념과 가치관을 흑백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유배지에서 지내는 동안 정약전은 오로지 거친 흰옷-색깔을 알지 못하므로 밝은 옷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만을 입고 지낸다. 떨어져도 기워 입은 흔적은 그의 강직하고도 올곧은 성품을 짐작한다. 헤지고 짠물에 절은 의복의 흑산도 주민들과 정약전의 대척점에 있는 육지의 관료와 사대부는 어둡고 짙은 옷으로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깔끔하고 티 없는 의복은 부의 불평등을 용인하는 부패한 사대부의 이미지와 어울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목민관의 삶을 사는 창대의 옷이다. 그는 주류 사회에 편입되었어도 여전히 흰옷을 입어 그들과 거리를 만든다. 『목민심서』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창대의 강직함은 정약전을 닮아있다. 연줄과 비리로 ‘얼룩진’ 목민관과는 다른 삶을 살려는 그의 의지는 결국 미완으로 그쳤지만 여전히 흰옷을 버리지 않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과거의 거친 흰옷으로 갈아입는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 最古의 수산학 연구서인 『자산어보』는 자체적 분류법을 활용해 세계 최초로 수산생물 계군 차이를 기록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박물학의 명저이다. 집요한 관찰력과 기록의 의지, 호기심의 산물인 책의 내용을 담은 영화답게 다양한 수산물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의 역동적인 모습은 흑백의 스크린을 뚫고 그 생명력을 발산하며, 이를 잡아 생계를 이어갔을 그 시대 민중들의 척박한 삶에 움트는 생의 의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수산물의 향연에 음식 장면이 빠질 수 없다. 가거댁이 정약전에게 차려주는 홍어와 문어 요리는 보는 이의 침을 고이게 한다. 희로애락을 포착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정약전의 유배 생활의 동반자 가거댁 역의 이정은 배우의 능청스럽고도 실감 나는 연기는 강약을 조절하며 시대극의 분위기를 이끈다. 흑산도를 벗어나고 싶은 관리 별장 역의 조우진 배우는 코믹 연기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창대의 어머니 역의 방은진 배우 겸 감독은 적은 비중에도 디테일한 연기를 자아낸다. 창대의 아버지로 등장한 김의성 배우와 나주 목사 역의 동방우 배우는 흡입력 있는 악역 연기로 긴장감을 높여준다. 거기에 민도희, 김준한, 강기영, 윤경호 배우의 호연과 봉만대 감독, 달시 파켓 평론가 등 익숙한 카메오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영화의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영화의 중후반을 넘어서며 창대가 뭍으로 나가 부패한 실상을 알아가는 과정은 감정적 호응을 자극하는 장면들과 인위적인 플래시 백의 반복으로 전체 흐름과 결이 맞지 않아 보인다. 정약전이 『자산어보』의 일부 내용을 읽는 보이스오버 장면 역시 창대와의 각별한 관계성과 영화 전반의 주제의식을 드러내 주지만 의도와는 달리 화면과 말의 조합이 직선적으로 흘러간다는 인상을 받는다. 잘 끌어왔던 흑백의 흐름을 깨뜨리는 어떤 씬은 사족으로도 보일만 하며 방해가 될 여지가 있다.
자산어보에서 시대를 앞서간 굳은 신념의 지식인은 정약전뿐만이 아니다. 감독은 역사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물을 놓치지 않았고, 그의 서사를 끌어올려 ‘창대’를 탄생시켰다. 시대의 혼란 속에서 주류적 삶을 버렸던 두 인물의 삶은 오늘의 관객에게 기억할 만한 영화로 남을 것이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파랑달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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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한 고루한 위인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자라난 십 대 소년 '김대건(윤시윤)'. 그는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모방 신부의 권유를 받아들여 먼저 공부를 시작한 '최양업(이호원)', '최방제(임현수)'와 함께 유학길에 나선다. 마카오에 도착한 김대건은 최방제가 열병으로 사망하고, 전쟁으로 인해 마닐라로 대피하는 등 숱한 역경을 겪으면서도 착실히 신학 공부를 이어간다. 심지어 기해박해 당시 아버지 '김제준(최무성)'을 비롯해 수많은 천주교 신자가 순교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더욱 큰 신앙심을 키워나간다. 길고 긴 세월 끝에 마침내 부제 서품을 받은 그는 조선으로 되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여러 방면으로 입국을 시도하고, 바다와 육지를 누비며 조선 최초의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딘다.
영화는 언제나 양날의 검을 지니고 다닌다. 바로 러닝타임이다. 예술 영화처럼 실험적인 작품이 아닌 이상,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 영화가 통상적인 러닝타임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최근에는 2~3시간가량도 길어서 100분 내외로 러닝타임이 줄어드는 추세다. 이는 단점이자 동시에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원작이 있거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룰 때 러닝타임이라는 한계는 치명적이다. 절대적인 시간 자체가 부족하니 원하는 만큼 풍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 가장 영상화가 잘 된 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만 해도 원작 속 온갖 설정과 장면들을 3시간이 넘는 분량 안에 담아내는 데 실패한 바 있다.
하지만 때로는 독특한 장점이 된다. 제작진이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해 창의적인 접근법을 택할 수만 있다면, 다양한 이야기와 감정선을 집약적으로 풀어내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 창업자 간의 소송전을 통해 현재와 과거의 시점을 자유롭게 오가며 '페이스북'이라는 거대한 SNS의 탄생을 그려낸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 세 번의 신제품 발표 프레젠테이션 직전 순간에만 집중해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의 내밀하고도 복잡한 개인사를 폭발력 있게 보여준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안타깝게도 최초의 조선인 가톨릭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일대기를 영상화한 <탄생>은 러닝타임의 한계를 깨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정직하고 고전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시간순으로 스케치한다. 일단 한국 천주교의 초창기를 간단하게 알려주는 자막으로 시작해 소년 김대건이 신부가 되기로 마음먹는 계기를 보여준다. 김대건이 학우인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중국으로 향하고, 마카오와 마닐라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모습도 스쳐 지나간다. 부제 서품을 받은 김대건이 조선에 입국할 경로를 찾는 여정도 적잖은 분량을 차지한다. 간신히 조선에 입국한 후 다시 상하이로 향해 사제 서품을 받고, 조선으로 되돌아와 사목활동을 이어가다가 끝내 체포되고 순교하는 김대건의 모습은 후반부를 장식한다.
영화는 김대건의 일생에서 분기점이라 할 만한 그 어떤 순간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151분이라는 한정된 분량 안에 25년간의 이야기를 전부 배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탄생>은 모든 사건을 최소한으로 다루며 굉장히 빠르게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역사적 사건의 맥락은 대부분 생략되고, 필요한 장면만 선택되어 재현된다. 의주 국경을 넘어 조선으로 들어오는 김대건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국경 근처에서 천주교 신자들과 접선한 그는 국경을 따로 넘은 후 한 나무 밑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약속이 끝나자마자 카메라는 바로 나무 밑에 서 있는 신자들의 모습과 멀쩡하게 접선 장소에 등장하는 김대건을 비춘다. 과정은 사라지고 사건의 결과만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탄생>은 자연히 전반적으로 급하고 드문드문하다. 영화라기보다는 영상화된 위인전에 가까운 보이는 이유다.
위인전의 방식을 답습한 대가는 크다. 김대건이라는 인물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포장하는 데 실패했고, 그는 여전히 전형적인 위인상에 갇혀 버린다. 김대건은 남들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했지만 주경야독하며 따라잡을 정도로 끈기 있고, 목숨을 걸고 만주와 조선 북부를 돌아다닐 정도로 강단이 있다. 다른 약자들이 피해 보는 걸 가만 볼 수 없을 정도로 인정이 많고 따뜻하다. 심지어 그 누구보다도 새로운 세상에 빨리 눈 뜰만큼 사고가 유연하고, 신앙심이 깊은 만큼 조국을 향한 충성심도 강하다. 결함 없이 모범적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성장과 변화는 그저 서술될 뿐 설명되지 않아서 설득력이 부족하고 지루하다.
물론 그의 감정선을 따라 뚝뚝 끊기는 에피소드들을 연결하려고도 노력한다. 큰 효과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의 감정선이 다른 인물들과의 상호작용 안에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김대건 신부와 신학교에서 그를 가르친 다른 신부들과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숱하게 이별하고 재회하고, 목숨을 걸고 조선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동지들이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스토리텔링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단지 지금까지 김대건이 어떻게 지냈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정보를 전달하는 선에서 그친다. 긴 세월 동고동락한 최양업과의 관계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 캐릭터는 김대건이 처한 상황의 변화를 강조하는 데서 역할이 끝난다. 그 결과 김대건 외에 다른 인물들은 기억에 남지 않고, 굵직한 배우들의 출연도 잠깐의 서프라이즈에 그치고 만다.
이는 천주교 신자이거나 한국 천주교에 대한 배경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이상 감정적으로 동요하거나 고조될 장면이 거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례로 조선에서 사목 활동을 하던 앵베르 범 주교가 자수하는 장면은 천주교 신자에게 매우 인상적일 것이다. 한국 천주교가 받은 숱한 박해의 참상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수많은 순교자의 사연을 알고 있다면 그의 용기와 신앙심은 애처로우면서도 감동적이다. 그러나 신자가 아니라면 해당 장면은 그냥 역사적 사건을 건조하게 재현한 장면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제한된 시간 내에서도 김대건이라는 인물을 재해석할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탄생>의 결과물은 더욱 안타깝다. 사실 그 당시 김대건 신부는 단순한 종교인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조선 사람이 꿈꾸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세상을 먼저 목격한 선구자였다.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라틴어를 구사할 줄 알아서 통역가로 활동했고, 영국에서 만든 세계지도를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조선 조정이 체포부터 처형까지 3개월이나 지체할 정도로 아까워했던 지식인이었다.
영화도 '지식인 김대건'의 면모를 강조하려 한다.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자신이 보고 배운 내용을 어떻게 '조선인'으로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김대건의 내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나름대로 당시 시대상을 묘사하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인 이유다. 영화는 아편 전쟁을 겪으며 무너지는 청나라의 현실과 중화 질서가 무너졌는데도 여전히 바다 밖 세상에 무감각한 조선의 실상을 대조한다. 또 러시아의 남진 정책을 영국이 견제하는 '그레이트 게임' 속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이 조선에 야욕을 뻗쳤던 시대상도 꼬집는다.
단순히 시대적 배경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김대건의 구체적인 행적을 묘사하며 재해석에 힘을 더하기도 한다. 그는 조선에서 평화적인 포교와 교역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며 프랑스 군을 설득한다. 프랑스 군의 힘을 빌린다면 천주교 신부라는 지위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조선인으로서 조국과 프랑스의 무력 충돌을 방지하는 걸 더 우선한 것이다. 그와 상하이 주재 영국 영사와의 대담도 인상적이다. 김대건은 대담이 끝난 후 조선이 머지않아 서양 국가들의 사냥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그레이트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조선의 지정학적 가치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영국 측이 이미 파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김대건의 모습은 분명 '최초의 사제'로 고정된 이미지를 뒤흔드는 신선한 해석이다.
하지만 <탄생>은 끝내 전통적인 일대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만 봐도 이 작품이 결국에는 종교적 영화로 귀결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영화는 김대건의 참수형을 끝으로 마무리되는데, 카메라는 김대건의 피가 흐르는 장면을 과하다 싶은 정도로 길게 잡으면서 그의 순교를 극도로 강조한다.
그 때문에 김대건이라는 인물에 대한 재해석 시도는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김대건의 모험가이자 근대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가 빛나는데, 마지막 순간 조선의 첫 신부이자 순교자라는 고정된 이미지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해 신부 김대건이 아니라 조선인 김대건을 다루려는 시도는 그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셈이다.
오히려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재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도 결말까지 종교적 색채를 빼지 않은 결과 한 작품으로서의 구심점마저 약해진 까닭이다. 이처럼 매력적인 재해석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가능성도 보여줬지만, <탄생>은 결국 평범하고 뻔한 종교인의 전기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스스로 잠재우고 만다.
물론 한국 천주교 교회가 볼 때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영화화하는 작업은 충분히 매력적인 시도였을 것이다. 2021년이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이기도 했고, 이를 기념하는 김대건 신부의 조각상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부 벽감에 세워지기로 결정된 사실이 공표되기도 했다. 또 한국사를 공부하다 보면 최소한 이름은 한 번 정도 접할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니 관심을 받기에도 적합했을 것이고, 기존 사극 영화에 자주 등장한 인물도 아니므로 신선한 시도인 것은 맞다.
다만 의도와 목적을 담아낼 그릇을 잘못 고른 선택이 뼈아프다. 사실 김대건 신부의 생애는 워낙 스케일도 크고 공간적 배경도 다양한 만큼 영화보다는 드라마로 만들기 적합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러닝타임의 한계가 뚜렷한 영화를 그릇으로 골랐을 때는 보다 도전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이 필요했다. 특정 순간이나 사건에 집중해 김대건 신부의 몇몇 모습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시도가 더 적절해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부제 신분으로 조선에 입국한 직후부터 체포되어 순교하는 날까지만 다루더라도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김대건의 참모습 대부분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루한 위인전, <탄생>의 만듦새가 끝내 아쉬운 이유다.
D(Dreadful, 끔찍한)
실제 인물의 업적과 배우들의 라인업이 아까운 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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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팔씨름 금메달 리스트가 FML을 극복하는 법
동생이 팔씨름 선수라고 생각해 보세요. 아시다시피 팔씨름은 공인된 경기 스포츠는 아닙니다. 대회에 참가하려면 오히려 돈을 내야 하죠. 돈을 내지 않으면 우승해도 메달을 주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당신의 동생은 어찌나 팔씨름에 진심인지, 코치까지 쓰면서 팔씨름 경기를 준비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동생의 취미 생활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줄 수도 있고, 쓸데없는 일에 왜 이렇게 열중이냐며 나무랄 수도 있겠죠. 어쩌면 그런 동생의 삶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팔씨름의 모든 것>은 바로 그렇게 탄생한 작품입니다. 자신의 동생이자 팔씨름 선수인 '파노스 구시스'를 관찰하는 요르고스 구시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형 또는 누나의 마음으로 '파노스'의 삶을 같이 들여다볼까요?
팔씨름의 모든 것
ARM WRESTLER
이 작품은 <팔씨름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처럼 '파노스'의 일상을 좇으며 낯선 팔씨름 선수의 세계로 관객들을 초대합니다. 순간적인 팔심으로 상대를 압도해야 하는 팔씨름 경기는 1초 만에 승부가 갈리기도 하는 폭발적인 힘겨루기 시합입니다. 그런 만큼 선수와 심판은 모두 규칙에 따라 자세 하나하나를 바로잡으며 대회에 임하죠. 그러면서도 메달은 도떼기시장보다 정신이 없는 곳에서 대충 수여해 버리는 어딘가 이상한 세계이기도 합니다.
"내 동생이 팔씨름 선수라면?"이라는 앞선 질문에 혹시 '잔소리할 것 같다'와 같은 부정적인 답을 떠올리셨나요? 그렇다면 이 영화를 한 번 시청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아마도 그런 말이 쏙 들어갈 거예요. 팔씨름을 향한 '파노스'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거든요. 그에게 '팔씨름 선수'라는 정체성은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게 하는 힘인 듯 보이기도 합니다.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들의 눈은 언제나 반짝거리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도 저렇게 열정과 애정을 쏟는 것이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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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스'는 팔씨름 선수이면서 동시에 카페 주인, 광대, 마술사, 심지어 배우 지망생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팔씨름 선수가 아닐 때 그의 삶은 왠지 자꾸 꼬이기만 합니다. 카페 운영은 지치고, 하고 싶은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죠. "FML(Fuck my luck)"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날들이 반복됩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집중하고 몰두하여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일이 바로 팔씨름이죠.
'파노스'는 꽉 막힌 인생의 해답을 찾지 못합니다. "내가 문제인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죠. 그러나 형이 바라본 동생의 모습은 조금 달랐습니다. 형의 카메라에 담긴 '파노스'는 분명히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팔씨름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자신을 단련해 가듯이 말입니다. 이따금 허탈해하고 분노하고 짜증내면서도, '파노스'는 계속 해서 부딪히며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경기 스포츠는 고통과 한계를 넘어 우승을 쟁취해야 하는 싸움입니다. 다양한 고통과 한계가 산재한다는 점에서 우리네 삶은 경기 스포츠와 비슷한 면모가 있죠. '파노스'는 경기 스포츠를 치르는 것처럼 근성과 노력으로 그러한 일상의 문제들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팔씨름의 모든 것>은 '팔씨름 선수의 일상'이라는 생소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실은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삶의 모습을 포착합니다. 팔씨름 선수인 동생의 내면에 자리한 경기 스포츠인의 자질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형의 마음까지도 함께 담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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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씨름의 모든 것>를 보면서 때때로 다큐멘터리 형식을 띤 극영화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곤 했습니다.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촬영 방식을 따르기보다는 극영화의 모양새를 갖춘 장면이 많았고, 현실을 향한 불만 가득한 한탄이나 카페 손님을 향한 짜증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들도 서슴없이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형제가 촬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삶의 권태를 느끼는 '파노스'의 모습에서 실패로 점철된 삶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던 <성난 사람들>의 '대니'가 겹쳐 보이기도 했는데요. <성난 사람들>에서 다룬 이야기가 다큐멘터리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한 번 감상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단지 팔씨름 선수의 세계를 알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작품을 고르셔도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니까요.
Summary
팔씨름꾼 '파노스'는 살던 마을을 떠나 아테네로 돌아온다. 이 여정에서 '파노스'는 진정한 자신을 억압하는 근육질 남성을 직면한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요르고스 구시스
출연: 파노스 구시스
Schedule in JIFF
2023.04.29(토) CGV전주고사 2관 20:00
2023.05.02(화) CGV전주고사 3관 10:30
2023.05.05(금) CGV전주고사 8관 10:30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4월 27일 - 0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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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도와 비유의 방법론
수학여행 하루 전날을 배경으로 두 여고생 세미와 하은의 미묘한 감정의 기류를 다루는 영화인 <너와 나>는 무엇보다도 감독 조현철의 연출적 야심이 여실히 드러난 영화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 수학여행이라 함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게 될 그 수학여행이다. 두 여학생의 로맨스와 세월호 참사의 조합. 이 영화는 바로 이 이질적인 조합에서부터 출발하는 영화이다.
우선 '왜 두 여학생의 첫사랑과 세월호 참사를 결합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조현철 감독은 인터뷰에서 모종의 개인적인 사건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고 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세월호 참사 역시 자신에게 특별한 사건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창작 동기는 조현철 감독의 개인적인 그 무엇으로 남겨놓자. 그렇다면 그 다음 질문은 이 영화가 그 둘을 어떻게 결합하는지에 관한 것이 되어야 한다. 감독 조현철의 연출적 야심이 드러나는 지점과 이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순간은 바로 이 질문을 떠올릴 때이다.
이 영화는 두 여학생의 로맨스와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 중 어디까지나 전자를 우선시하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에서는 세월호와 관련된 직접적 언급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으며, 심지어 세월호 참사 당일이 되기도 전에 영화가 끝난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이 세월호에 관한 영화임을 환기하고 있는데,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은 매우 문학적이다. 세미는 하은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하은(그리고 이후에 꿈속에서 하은이 된 자신)이 풀밭에 죽은 것처럼 누워있었다고 했고, 또 온 동네가 텅 빈 채로 동네의 알던 모든 사람들과 친구들이 똑같이 누워있었다고, 이유없이 하은이 걱정되고 불안하다고 말한다. 또 그 꿈 속 하은이 된 세미가 버스에서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태풍에 관한 뉴스가 효과음으로 흘러나오며, 개 똘똘이를 찾은 똘똘이의 주인 아주머니는 똘똘이를 자식처럼 아꼈다며 생각보다 훨씬 깊은 감정을 표현한다. 그러니까 이 모든 정황상 이 영화의 사건과 단서들이 세월호를 가리킨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비유와 상징, 환기의 방법을 통해 애써 '세월호'라는 단어를 돌려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미의 꿈속 오열하는 하은이 탑승한 버스에서 태풍 재난 뉴스가 흘러나올 때, 그것은 누가 봐도 그 다음날 있을 재난을 환기하는 것이다. 또, 똘똘이를 잃은 줄 알고 펑펑 우는 주인 아주머니의 눈물은 누가 봐도 똘똘이 이상의 것, 자식을 잃은 부모의 눈물인 것이다(공교롭게도 아주머니 역을 맡은 길해연 배우는 <벌새>에서도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 역할을 연기했다.). <너와 나>는 세월호 참사를 그것의 일부분과 비슷한 특성을 지닌 보조관념들을 가져와 환유의 방식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사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에서 해당 사건을 애써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낯선 일은 전혀 아니다. 같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생일>을 봐도 영화 속에서 지나가듯 '세월호'라는 단어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 사건을 전면에 드러낸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너와 나>는 그 방법에서 <생일>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생일>이 '세월호'라는 단어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면, <너와 나>는 '세월호'라는 단어를 우회하거나 회피한다. 그래서 <생일>은 결과적으로 천천히 간다고 할지라도 명백히 세월호에 관한 영화이지만, <너와 나>는 아무리 돌아서 가도 명백히 세월호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너와 나>는 세월호를 '비유'한 영화고 '환기'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질문은 그 방법이 과연 옳은 방법인지 묻는 것이다. 우선 결론적으로, 나는 이 질문에 대답을 내리지 못했다. 조현철 감독의 이 방법론이 본인의 연출적 야심을 과시한 개성적이고 독특한 방법론인지, 아니면 원관념에 끝내 다가서지 못한 채 보조관념에만 머무르는 머뭇거림인지, 아니면 거대한 참사에 대해 우선 대기한 뒤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신중하고 윤리적인 방법인지는 관객들 각자에 따라 그 판단이 모두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시점까지 <너와 나>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평단과 관객들의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을 볼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현철의 이 방법론에 대해 첫 번째, 혹은 세 번째의 경우로 판단을 내린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두 번째 경우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못하겠다.
위에서 '조현철의 방법론'이라고 지칭한 이 영화의 연출은 비단 세월호 참사를 환유의 방식으로 환기하는 것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세월호 참사보다도 두 여학생의 로맨스를 우선시하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서사를 진행해가는 데도 인물의 심리적 상태를 비유하는 떨어지기 일보직전의 물컵, 인물들 그 자체를 은유하는 동물들 등 비유와 상징을 적극 활용한 '조현철의 방법론'이 드러난다. 여기서 조현철의 방법론이 불편한 이유는 위에서 말한 두 번째 경우와 역시 일맥상통한다. 누가 봐도 명백한 원관념을 굳이 보조관념을 거쳐서 표현하는 것이다. 조금 더 과격하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노골적인 비유와 상징이 과도하게 많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누구나 아는 사실을 애써 감춰 말하는 이 영화의 화술은 가끔은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이 영화에 대한 찬사가 순전히 이 화술에 대한 것이라면 그 부분에서만큼은 온전히 동의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판단을 아직 보류하는 이유는 세 번째 경우 때문이다. 조현철의 방법론을 비극적 참사에 대한 섬세하고 신중한 접근이라고 해석할 때, 위의 두 번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비단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에만 적용되는 연출은 아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를 두고 '그 흔한 사랑해라는 말을 이처럼 간절하고 사무치게 전한다'고 말했다. 즉 이 말은 <너와 나>는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도 감정적 측면이 강력한 영화라는 뜻일 테고 나 역시 동의한다. 그런데 <너와 나>는 그 감정적 에너지에 신파적으로 휘둘리지 않은 채 의외의 지점들에서 거리를 두고 객관성을 확보한다. 그 첫 번째는 이 영화의 과도하리만치 뽀샤시한 화면 톤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세미와 하은이 주고받는 일상적 대화들과 장난들을 보면 상당히 유치하다. 물론 그것은 이 영화가 10대 청소년들의 일상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수많은 tv 드라마들이 10대 청소년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다룰 때 그 현실적인 유치함과 젊은 에너지를 오해한 채 거기에 매몰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것처럼 '오글거려'지게 되는 것인데, 이 영화는 오히려 그러한 장면들을 과하게 뽀샤시한 화면이라는 또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음으로서 하나의 풍경으로 보이게 만든다. 두 번째는 이 영화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강력한 장면 중 하나인 세미의 <체념> 열창 장면이다. 이 장면은 상당히 간단히 설계되어있다. 우선 머뭇거리며 노래를 시작하는 세미를 담은 다음, 가사와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노래방 기계를 바라보는 세미의 시점숏을 보여준다. 그 뮤직비디오에서는 세미와 하은이 제주도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이 흘러나온다. 그리고나서 이번엔 세미의 열창하는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은 다음엔, 다시 뮤직비디오 화면을 보여주는데 이번엔 노래방 기계 속 화면이 아니라 진짜 프레임에 담긴 장면이다. 말했듯이 이 장면은 세미의 감정이 완전히 폭발하는 장면이고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감정적으로 강력한 장면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을 연출할 때도 노래방 기계 속 뮤직비디오 화면이라는 이중의 프레임을 한 번 거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이 연출은 이후 노래방 기계가 없는 뮤직비디오 장면의 감정적 효과를 극대화함과 동시에 강력하고 단순한 감정에 접근하는 데 있어 객관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세미와 하은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한다는 장면 자체는 오글거리는 것을 넘어서서 자칫 코믹할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여기에 이중의 프레임을 씌움으로써 그 상황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도록 유도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이후 노래방 기계가 없어진 장면에서도 이중 프레임을 완전히 벗어던진 채 감정을 폭발시킨 듯 보이지만 <체념>이라는 노래가 계속되고 있기에 여전히 일말의 객관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강력한 감정에 섣불리 접근하는 것을 피하고 신중하게 객관성을 확보하는 태도는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에도 똑같이 관통한다. 이 영화는 세미와 하은 두 인물의 가장 감정적인 순간들마다 두 인물의 대사를 보이스오버 처리하고 그 대신 수많은 평범한 학생들과 사람들의 몽타주 화면을 비춰준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두 여학생의 로맨스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에 대한 이 영화의 대답이다. 이 영화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사랑에 대한 영화다. 세미와 하은의 애틋한 사랑은 다른 수많은 학생들과 평범한 사람들에게로 확장된다. 세미가 조이에게 건네는 '사랑해'라는 말이 화면이 암전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속삭임들로 확장되는 마지막 장면, 나는 세월호를 애도하는 이보다 아름다운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나는 <너와 나>를 열렬히 지지함과 동시에 비판하고 또 그래서 아직 이 영화와 감독 조현철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조현철은 이 장편 데뷔작으로 자신의 연출적 방향성에 대한 선언을 분명히 했으며, 관객들에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더불어 세월호 참사를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애도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올해 한국영화 가장 빛나는 성취'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은 바로 이 질문과 애도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로 한다. 그리고 일단 조현철의 다음 영화를 학수고대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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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넷플릭스에 이 영화가 공개된다고?
영화 <싱크홀>이 티빙,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에 개봉한 이후 순위권에 계속 머물고 있는 지금,
영화 <싱크홀>을 뒤이어 <인질>,<모가디슈>등 올해 개봉한 대작들이
넷플릭스 12월 공개 예정 기대작 반열에 올랐는데요.
어떤 작품이 있는지 함께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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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더 홀 트루스 - 위시트 사사나티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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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opsis : 할머니 집 벽에 이상한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한 남매. 그때부터 섬뜩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숨겨져 왔던 가족의 끔찍한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N 언포기버블 - 노라 핑샤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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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신의 손은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자전적인 성장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포함하여 2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모가디슈 - 류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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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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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긴 예열을 거치면 화끈하게 폭발한다!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을 아는가?
<고질라: 파이널 워즈> 같은 일본에서의 블록버스터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는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과 같은 B급 매니아들의 취향을 정통으로 저격하는 속칭 쌈마이의 귀재라 불리는 감독이다.
이후로도 <다운레이지>, <도어맨>, 죠 단테, 데이빗 슬라이드, 믹 개리스, 알레한드로 브뤼게 감독과 같은 호러 영화의 거장들과 함께한 옴니버스 영화 <나이트메어 시네마> 등 자신의 스타일을 계속 선보여왔다.
현재 기준(2023.06)으로 그의 최신작인 <더 프라이스 위 페이>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미드나잇 패션 섹션에서 소개되었다.
필자는 보통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하면 3대 영화제 초청작을 위주로 보는데, 그래서 그런지 대다수가 예술성이라 솔직히 연속으로 보면 힘이 들때가 있는건 사실이다.
그럴 때 가끔씩 이런 작품(?)으로 환기를 시키는데 그 환기에 딱 적절한 작품이었다.
전당포 강도 두 명은 강도가 성공할 찰나에 총격전이 일어나 인질로 전당포 손님이었단 한 여자를 잡고 도망친다.
그들은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한 농가에 숨게되지만, 경찰에게 체포되는 것보다 더욱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슬래셔 영화".
본 영화는 슬래셔 장르로 진입하기까지의 예열이 예상보다 길게 느껴지는 편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슬래셔 장르로 진입하는 순간 화끈하고 창의적인 고어가 관객들을 반겨준다.
마치 악인전마냥, 선과 악을 대결이 아닌 악과 악의 대결로서, 누가 더 광기가 있는가, 누가 떠 똘끼(?)가 있는가 승부하며 펼쳐지는 강렬한 슬래셔 씬들이 예열까지의 지루함을 한번에 잊게 해준다.
할로윈,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 등 여러 슬래셔 장르의 오마주와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의 세련되고 화끈한 연출이 잘 어우러지는 킬링타임 무비의 수작이라 평할 수 있다.
아쉽게도 현재로서 한국 수입 소식은 들리지 않지만.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 작품이 의외로 소수 개봉이나 VOD로 수입이 잘 된 편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번 작품도 충분히 수입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그것도 2차 시장에서 아주 좋아하는 호러 영화니.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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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실화이고 어디까지 픽션인가??
- 킹메이커 영화정보
장르: 드라마
감독: 변성현
각본: 변성현, 김민수
제작: 이진희
촬영: 조형래
조명: 이길규
미술: 한아름
음악: 김홍집, 이진희
편집: 김상범
출연: 설경구, 이선균 외
제작사: 씨앗필름
배급사: 대한민국 국기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촬영 기간: 2019년 3월 25일 ~ 2019년 7월 30일
개봉일: 대한민국 2022년 1월 26일
상영타입: 2D : 디지털
화면비: 1.85:1
상영 시간: 1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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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 가 이제 할리우드 주연급 배우로 성장을 했다니!!
*결말포함 영화리뷰 아닙니다#맥켄지포이 #멕켄지포이 #인터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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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웨이 다운>
세기를 뛰어넘는 두뇌 대결, 200년 전 공학자들의 금고를 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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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시간 여행 : 과거에 갇힌 남자> 메인 예고편
가까운 미래, 과학자 '노만'은 인공지능 ‘애니’와 함께 과거를 바꾸기 위해 시간 여행을 시도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그는 다른 과거의 시점에 갇히게 되고,
'노만'은 그곳에서 타임머신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혹여나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바꿀까봐 혼자서 고립된 생활을 하던 '노만'은
점점 희망을 잃어가던 가운데 우연히 '제니'라는 여성을 마주치게 되는데...
과연 그는 그토록 염원하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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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칠흑 앞에서도 거칠고 꼿꼿한 백白의 지식인
시대의 칠흑 앞에서도 거칠고 꼿꼿한 백白의 지식인
자산어보 玆山魚譜 The Book of Fish | 2019 | 이준익 | 126분
※영화 〈자산어보〉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산어보〉는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 시대극 전문 감독으로 평가될 이준익 감독의 열네 번째 신작이자 〈동주〉에 이은 두 번째 흑백영화다. 정약전의 책 자산어보의 서문에서 출발한 영화는 변화와 혼돈의 시기 속 거칠고도 꼿꼿했던 사람들의 삶을 관찰한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학을 연구하던 천주교 신자였던 정약전은 1801년 신유박해로 동생 정약용과 함께 유배길에 오른다. 어쩌면 살아서는 마지막 모습으로 만날 두 사람은 각자 흑산도와 강진으로 흩어졌고, 정약전은 섬 살이 중 벗으로 만난 어부 장창대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집필한다. 기약 없는 귀양살이에 지친 그의 눈앞에 펼쳐진 온갖 수산물에 대한 궁금증은 구체적인 사물과 현상의 분석을 중요시한 실용주의적 사고에서 나왔다. 영화가 거대한 역사로부터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않았던 개인을 주목했듯 정약전 역시 국가와 가치를 다룬 성리학에서 눈을 돌려 변화와 비판의식을 담아 평가절하된 존재에 애정을 쏟는다.
출처|다음영화
영화는 흑백의 색감만큼이나 선명하고도 확고한 서사적 대비로 관객을 집중시킨다. 전작 〈동주〉에서는 ‘동주’와 ‘몽규’의 닮았지만 서로 다른 이상과 행동을 대비하며 건조한 역사의 문장에 상상력을 더해 살아있는 이야기를 창조한다. 정약전과 창대 역시 사학과 성리학, 명문 사대부와 가난한 천민 출신, 스승과 제자, 이론과 실천 등 모든 면에서 달랐던 두 사람이 흑산도라는 공간에서 대립하며 충돌하다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공유하는 사제이자 벗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그들의 귀향길만큼이나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성향에 따라 ‘자산어보의 삶’과 ‘목민심서의 삶’으로 갈라진다. 비슷한 귀양 기간 정약용은 지역의 유림과 정치, 사회. 경제, 법률 등 분야를 망라한 수백 권의 책을 집필했지만, 정약전은 소나무의 조세 징수나 표류 유람기 등 개별 사건을 다룬 책 몇 권을 썼을 뿐이다. 이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가치관을 표현한다. 같은 실학사상의 주창자였어도 정약용은 신분과 계급, 왕과 천민이 나누어진 수직적 위계 사회를 지향했고, 정약전은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계급과 성별, 직업을 뛰어넘은 수평 사회를 바랐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정약전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영화는 어느 한 사람을 미화하거나 영웅시하지 않는다. 대신 어떠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각자의 인식과 현실을 모두 그려내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닌 차이의 영역으로 영화 속 인물의 행동을 이해하게 만든다. 정약전의 뛰어난 학문적 능력과 지식을 지켜본 창대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스승을 재촉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신념에 따른 그의 행동은 변하지 않는다. 열등감과 출세의 꿈을 펼치기 위해 스승을 등지고 흑산도를 벗어난 창대는 이론의 이상과 실제 현실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약전이 행했던 가치를 이해한다. 창대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할 수는 없다. 태생적 격차와 경제적 빈곤을 딛고 성리학이라는 당대의 정설로 세상을 바라봤을 그에게 입신양명의 꿈은 항상 지니던 열등의식을 타개할 절호의 기회였다. 마찬가지로 실학과 서학을 배우고 이미 사회의 부조리를 먼저 체험한 정약전의 관점에서 조선의 개혁은 필수 불가결했다. 그러나 이미 조정에 눈엣가시였던 정약전에게 15년간의 유배 생활은 그의 발목을 묶어두려던 계략의 일환이다. 이 또한 모르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상황에서 지켜야 할 가치를 정하고 이를 실천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정약전의 입장이 설득력 있지만,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역사의 한 대목에서 고민과 갈등을 반복하는 인간의 삶이 남을 뿐이다.
상업 영화의 정석을 걷는 영화는 긴 이야기를 풀어내며 볼거리와 먹을거리,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다.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흑백 화면의 미묘한 농도로 드러나는 아름다운 풍광과 의미다. 마치 고고한 수묵화 한 점을 감상하듯 관객들은 한반도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영화가 품은 시대성과 미학적 성취도 함께 체험한다. 색을 없애며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의 디테일은 인물의 신념과 가치관을 흑백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유배지에서 지내는 동안 정약전은 오로지 거친 흰옷-색깔을 알지 못하므로 밝은 옷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만을 입고 지낸다. 떨어져도 기워 입은 흔적은 그의 강직하고도 올곧은 성품을 짐작한다. 헤지고 짠물에 절은 의복의 흑산도 주민들과 정약전의 대척점에 있는 육지의 관료와 사대부는 어둡고 짙은 옷으로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깔끔하고 티 없는 의복은 부의 불평등을 용인하는 부패한 사대부의 이미지와 어울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목민관의 삶을 사는 창대의 옷이다. 그는 주류 사회에 편입되었어도 여전히 흰옷을 입어 그들과 거리를 만든다. 『목민심서』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창대의 강직함은 정약전을 닮아있다. 연줄과 비리로 ‘얼룩진’ 목민관과는 다른 삶을 살려는 그의 의지는 결국 미완으로 그쳤지만 여전히 흰옷을 버리지 않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과거의 거친 흰옷으로 갈아입는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 最古의 수산학 연구서인 『자산어보』는 자체적 분류법을 활용해 세계 최초로 수산생물 계군 차이를 기록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박물학의 명저이다. 집요한 관찰력과 기록의 의지, 호기심의 산물인 책의 내용을 담은 영화답게 다양한 수산물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의 역동적인 모습은 흑백의 스크린을 뚫고 그 생명력을 발산하며, 이를 잡아 생계를 이어갔을 그 시대 민중들의 척박한 삶에 움트는 생의 의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수산물의 향연에 음식 장면이 빠질 수 없다. 가거댁이 정약전에게 차려주는 홍어와 문어 요리는 보는 이의 침을 고이게 한다. 희로애락을 포착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정약전의 유배 생활의 동반자 가거댁 역의 이정은 배우의 능청스럽고도 실감 나는 연기는 강약을 조절하며 시대극의 분위기를 이끈다. 흑산도를 벗어나고 싶은 관리 별장 역의 조우진 배우는 코믹 연기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창대의 어머니 역의 방은진 배우 겸 감독은 적은 비중에도 디테일한 연기를 자아낸다. 창대의 아버지로 등장한 김의성 배우와 나주 목사 역의 동방우 배우는 흡입력 있는 악역 연기로 긴장감을 높여준다. 거기에 민도희, 김준한, 강기영, 윤경호 배우의 호연과 봉만대 감독, 달시 파켓 평론가 등 익숙한 카메오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영화의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영화의 중후반을 넘어서며 창대가 뭍으로 나가 부패한 실상을 알아가는 과정은 감정적 호응을 자극하는 장면들과 인위적인 플래시 백의 반복으로 전체 흐름과 결이 맞지 않아 보인다. 정약전이 『자산어보』의 일부 내용을 읽는 보이스오버 장면 역시 창대와의 각별한 관계성과 영화 전반의 주제의식을 드러내 주지만 의도와는 달리 화면과 말의 조합이 직선적으로 흘러간다는 인상을 받는다. 잘 끌어왔던 흑백의 흐름을 깨뜨리는 어떤 씬은 사족으로도 보일만 하며 방해가 될 여지가 있다.
자산어보에서 시대를 앞서간 굳은 신념의 지식인은 정약전뿐만이 아니다. 감독은 역사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물을 놓치지 않았고, 그의 서사를 끌어올려 ‘창대’를 탄생시켰다. 시대의 혼란 속에서 주류적 삶을 버렸던 두 인물의 삶은 오늘의 관객에게 기억할 만한 영화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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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한 고루한 위인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자라난 십 대 소년 '김대건(윤시윤)'. 그는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모방 신부의 권유를 받아들여 먼저 공부를 시작한 '최양업(이호원)', '최방제(임현수)'와 함께 유학길에 나선다. 마카오에 도착한 김대건은 최방제가 열병으로 사망하고, 전쟁으로 인해 마닐라로 대피하는 등 숱한 역경을 겪으면서도 착실히 신학 공부를 이어간다. 심지어 기해박해 당시 아버지 '김제준(최무성)'을 비롯해 수많은 천주교 신자가 순교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더욱 큰 신앙심을 키워나간다. 길고 긴 세월 끝에 마침내 부제 서품을 받은 그는 조선으로 되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여러 방면으로 입국을 시도하고, 바다와 육지를 누비며 조선 최초의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딘다.
영화는 언제나 양날의 검을 지니고 다닌다. 바로 러닝타임이다. 예술 영화처럼 실험적인 작품이 아닌 이상,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 영화가 통상적인 러닝타임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최근에는 2~3시간가량도 길어서 100분 내외로 러닝타임이 줄어드는 추세다. 이는 단점이자 동시에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원작이 있거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룰 때 러닝타임이라는 한계는 치명적이다. 절대적인 시간 자체가 부족하니 원하는 만큼 풍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 가장 영상화가 잘 된 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만 해도 원작 속 온갖 설정과 장면들을 3시간이 넘는 분량 안에 담아내는 데 실패한 바 있다.
하지만 때로는 독특한 장점이 된다. 제작진이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해 창의적인 접근법을 택할 수만 있다면, 다양한 이야기와 감정선을 집약적으로 풀어내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 창업자 간의 소송전을 통해 현재와 과거의 시점을 자유롭게 오가며 '페이스북'이라는 거대한 SNS의 탄생을 그려낸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 세 번의 신제품 발표 프레젠테이션 직전 순간에만 집중해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의 내밀하고도 복잡한 개인사를 폭발력 있게 보여준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안타깝게도 최초의 조선인 가톨릭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일대기를 영상화한 <탄생>은 러닝타임의 한계를 깨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정직하고 고전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시간순으로 스케치한다. 일단 한국 천주교의 초창기를 간단하게 알려주는 자막으로 시작해 소년 김대건이 신부가 되기로 마음먹는 계기를 보여준다. 김대건이 학우인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중국으로 향하고, 마카오와 마닐라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모습도 스쳐 지나간다. 부제 서품을 받은 김대건이 조선에 입국할 경로를 찾는 여정도 적잖은 분량을 차지한다. 간신히 조선에 입국한 후 다시 상하이로 향해 사제 서품을 받고, 조선으로 되돌아와 사목활동을 이어가다가 끝내 체포되고 순교하는 김대건의 모습은 후반부를 장식한다.
영화는 김대건의 일생에서 분기점이라 할 만한 그 어떤 순간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151분이라는 한정된 분량 안에 25년간의 이야기를 전부 배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탄생>은 모든 사건을 최소한으로 다루며 굉장히 빠르게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역사적 사건의 맥락은 대부분 생략되고, 필요한 장면만 선택되어 재현된다. 의주 국경을 넘어 조선으로 들어오는 김대건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국경 근처에서 천주교 신자들과 접선한 그는 국경을 따로 넘은 후 한 나무 밑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약속이 끝나자마자 카메라는 바로 나무 밑에 서 있는 신자들의 모습과 멀쩡하게 접선 장소에 등장하는 김대건을 비춘다. 과정은 사라지고 사건의 결과만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탄생>은 자연히 전반적으로 급하고 드문드문하다. 영화라기보다는 영상화된 위인전에 가까운 보이는 이유다.
위인전의 방식을 답습한 대가는 크다. 김대건이라는 인물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포장하는 데 실패했고, 그는 여전히 전형적인 위인상에 갇혀 버린다. 김대건은 남들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했지만 주경야독하며 따라잡을 정도로 끈기 있고, 목숨을 걸고 만주와 조선 북부를 돌아다닐 정도로 강단이 있다. 다른 약자들이 피해 보는 걸 가만 볼 수 없을 정도로 인정이 많고 따뜻하다. 심지어 그 누구보다도 새로운 세상에 빨리 눈 뜰만큼 사고가 유연하고, 신앙심이 깊은 만큼 조국을 향한 충성심도 강하다. 결함 없이 모범적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성장과 변화는 그저 서술될 뿐 설명되지 않아서 설득력이 부족하고 지루하다.
물론 그의 감정선을 따라 뚝뚝 끊기는 에피소드들을 연결하려고도 노력한다. 큰 효과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의 감정선이 다른 인물들과의 상호작용 안에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김대건 신부와 신학교에서 그를 가르친 다른 신부들과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숱하게 이별하고 재회하고, 목숨을 걸고 조선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동지들이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스토리텔링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단지 지금까지 김대건이 어떻게 지냈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정보를 전달하는 선에서 그친다. 긴 세월 동고동락한 최양업과의 관계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 캐릭터는 김대건이 처한 상황의 변화를 강조하는 데서 역할이 끝난다. 그 결과 김대건 외에 다른 인물들은 기억에 남지 않고, 굵직한 배우들의 출연도 잠깐의 서프라이즈에 그치고 만다.
이는 천주교 신자이거나 한국 천주교에 대한 배경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이상 감정적으로 동요하거나 고조될 장면이 거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례로 조선에서 사목 활동을 하던 앵베르 범 주교가 자수하는 장면은 천주교 신자에게 매우 인상적일 것이다. 한국 천주교가 받은 숱한 박해의 참상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수많은 순교자의 사연을 알고 있다면 그의 용기와 신앙심은 애처로우면서도 감동적이다. 그러나 신자가 아니라면 해당 장면은 그냥 역사적 사건을 건조하게 재현한 장면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제한된 시간 내에서도 김대건이라는 인물을 재해석할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탄생>의 결과물은 더욱 안타깝다. 사실 그 당시 김대건 신부는 단순한 종교인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조선 사람이 꿈꾸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세상을 먼저 목격한 선구자였다.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라틴어를 구사할 줄 알아서 통역가로 활동했고, 영국에서 만든 세계지도를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조선 조정이 체포부터 처형까지 3개월이나 지체할 정도로 아까워했던 지식인이었다.
영화도 '지식인 김대건'의 면모를 강조하려 한다.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자신이 보고 배운 내용을 어떻게 '조선인'으로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김대건의 내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나름대로 당시 시대상을 묘사하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인 이유다. 영화는 아편 전쟁을 겪으며 무너지는 청나라의 현실과 중화 질서가 무너졌는데도 여전히 바다 밖 세상에 무감각한 조선의 실상을 대조한다. 또 러시아의 남진 정책을 영국이 견제하는 '그레이트 게임' 속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이 조선에 야욕을 뻗쳤던 시대상도 꼬집는다.
단순히 시대적 배경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김대건의 구체적인 행적을 묘사하며 재해석에 힘을 더하기도 한다. 그는 조선에서 평화적인 포교와 교역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며 프랑스 군을 설득한다. 프랑스 군의 힘을 빌린다면 천주교 신부라는 지위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조선인으로서 조국과 프랑스의 무력 충돌을 방지하는 걸 더 우선한 것이다. 그와 상하이 주재 영국 영사와의 대담도 인상적이다. 김대건은 대담이 끝난 후 조선이 머지않아 서양 국가들의 사냥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그레이트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조선의 지정학적 가치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영국 측이 이미 파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김대건의 모습은 분명 '최초의 사제'로 고정된 이미지를 뒤흔드는 신선한 해석이다.
하지만 <탄생>은 끝내 전통적인 일대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만 봐도 이 작품이 결국에는 종교적 영화로 귀결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영화는 김대건의 참수형을 끝으로 마무리되는데, 카메라는 김대건의 피가 흐르는 장면을 과하다 싶은 정도로 길게 잡으면서 그의 순교를 극도로 강조한다.
그 때문에 김대건이라는 인물에 대한 재해석 시도는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김대건의 모험가이자 근대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가 빛나는데, 마지막 순간 조선의 첫 신부이자 순교자라는 고정된 이미지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해 신부 김대건이 아니라 조선인 김대건을 다루려는 시도는 그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셈이다.
오히려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재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도 결말까지 종교적 색채를 빼지 않은 결과 한 작품으로서의 구심점마저 약해진 까닭이다. 이처럼 매력적인 재해석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가능성도 보여줬지만, <탄생>은 결국 평범하고 뻔한 종교인의 전기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스스로 잠재우고 만다.
물론 한국 천주교 교회가 볼 때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영화화하는 작업은 충분히 매력적인 시도였을 것이다. 2021년이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이기도 했고, 이를 기념하는 김대건 신부의 조각상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부 벽감에 세워지기로 결정된 사실이 공표되기도 했다. 또 한국사를 공부하다 보면 최소한 이름은 한 번 정도 접할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니 관심을 받기에도 적합했을 것이고, 기존 사극 영화에 자주 등장한 인물도 아니므로 신선한 시도인 것은 맞다.
다만 의도와 목적을 담아낼 그릇을 잘못 고른 선택이 뼈아프다. 사실 김대건 신부의 생애는 워낙 스케일도 크고 공간적 배경도 다양한 만큼 영화보다는 드라마로 만들기 적합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러닝타임의 한계가 뚜렷한 영화를 그릇으로 골랐을 때는 보다 도전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이 필요했다. 특정 순간이나 사건에 집중해 김대건 신부의 몇몇 모습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시도가 더 적절해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부제 신분으로 조선에 입국한 직후부터 체포되어 순교하는 날까지만 다루더라도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김대건의 참모습 대부분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루한 위인전, <탄생>의 만듦새가 끝내 아쉬운 이유다.
D(Dreadful, 끔찍한)
실제 인물의 업적과 배우들의 라인업이 아까운 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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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팔씨름 금메달 리스트가 FML을 극복하는 법
동생이 팔씨름 선수라고 생각해 보세요. 아시다시피 팔씨름은 공인된 경기 스포츠는 아닙니다. 대회에 참가하려면 오히려 돈을 내야 하죠. 돈을 내지 않으면 우승해도 메달을 주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당신의 동생은 어찌나 팔씨름에 진심인지, 코치까지 쓰면서 팔씨름 경기를 준비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동생의 취미 생활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줄 수도 있고, 쓸데없는 일에 왜 이렇게 열중이냐며 나무랄 수도 있겠죠. 어쩌면 그런 동생의 삶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팔씨름의 모든 것>은 바로 그렇게 탄생한 작품입니다. 자신의 동생이자 팔씨름 선수인 '파노스 구시스'를 관찰하는 요르고스 구시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형 또는 누나의 마음으로 '파노스'의 삶을 같이 들여다볼까요?
팔씨름의 모든 것
ARM WRESTLER
이 작품은 <팔씨름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처럼 '파노스'의 일상을 좇으며 낯선 팔씨름 선수의 세계로 관객들을 초대합니다. 순간적인 팔심으로 상대를 압도해야 하는 팔씨름 경기는 1초 만에 승부가 갈리기도 하는 폭발적인 힘겨루기 시합입니다. 그런 만큼 선수와 심판은 모두 규칙에 따라 자세 하나하나를 바로잡으며 대회에 임하죠. 그러면서도 메달은 도떼기시장보다 정신이 없는 곳에서 대충 수여해 버리는 어딘가 이상한 세계이기도 합니다.
"내 동생이 팔씨름 선수라면?"이라는 앞선 질문에 혹시 '잔소리할 것 같다'와 같은 부정적인 답을 떠올리셨나요? 그렇다면 이 영화를 한 번 시청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아마도 그런 말이 쏙 들어갈 거예요. 팔씨름을 향한 '파노스'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거든요. 그에게 '팔씨름 선수'라는 정체성은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게 하는 힘인 듯 보이기도 합니다.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들의 눈은 언제나 반짝거리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도 저렇게 열정과 애정을 쏟는 것이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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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스'는 팔씨름 선수이면서 동시에 카페 주인, 광대, 마술사, 심지어 배우 지망생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팔씨름 선수가 아닐 때 그의 삶은 왠지 자꾸 꼬이기만 합니다. 카페 운영은 지치고, 하고 싶은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죠. "FML(Fuck my luck)"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날들이 반복됩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집중하고 몰두하여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일이 바로 팔씨름이죠.
'파노스'는 꽉 막힌 인생의 해답을 찾지 못합니다. "내가 문제인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죠. 그러나 형이 바라본 동생의 모습은 조금 달랐습니다. 형의 카메라에 담긴 '파노스'는 분명히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팔씨름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자신을 단련해 가듯이 말입니다. 이따금 허탈해하고 분노하고 짜증내면서도, '파노스'는 계속 해서 부딪히며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경기 스포츠는 고통과 한계를 넘어 우승을 쟁취해야 하는 싸움입니다. 다양한 고통과 한계가 산재한다는 점에서 우리네 삶은 경기 스포츠와 비슷한 면모가 있죠. '파노스'는 경기 스포츠를 치르는 것처럼 근성과 노력으로 그러한 일상의 문제들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팔씨름의 모든 것>은 '팔씨름 선수의 일상'이라는 생소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실은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삶의 모습을 포착합니다. 팔씨름 선수인 동생의 내면에 자리한 경기 스포츠인의 자질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형의 마음까지도 함께 담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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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씨름의 모든 것>를 보면서 때때로 다큐멘터리 형식을 띤 극영화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곤 했습니다.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촬영 방식을 따르기보다는 극영화의 모양새를 갖춘 장면이 많았고, 현실을 향한 불만 가득한 한탄이나 카페 손님을 향한 짜증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들도 서슴없이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형제가 촬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삶의 권태를 느끼는 '파노스'의 모습에서 실패로 점철된 삶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던 <성난 사람들>의 '대니'가 겹쳐 보이기도 했는데요. <성난 사람들>에서 다룬 이야기가 다큐멘터리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한 번 감상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단지 팔씨름 선수의 세계를 알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작품을 고르셔도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니까요.
Summary
팔씨름꾼 '파노스'는 살던 마을을 떠나 아테네로 돌아온다. 이 여정에서 '파노스'는 진정한 자신을 억압하는 근육질 남성을 직면한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요르고스 구시스
출연: 파노스 구시스
Schedule in JIFF
2023.04.29(토) CGV전주고사 2관 20:00
2023.05.02(화) CGV전주고사 3관 10:30
2023.05.05(금) CGV전주고사 8관 10:30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4월 27일 - 0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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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도와 비유의 방법론
수학여행 하루 전날을 배경으로 두 여고생 세미와 하은의 미묘한 감정의 기류를 다루는 영화인 <너와 나>는 무엇보다도 감독 조현철의 연출적 야심이 여실히 드러난 영화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 수학여행이라 함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게 될 그 수학여행이다. 두 여학생의 로맨스와 세월호 참사의 조합. 이 영화는 바로 이 이질적인 조합에서부터 출발하는 영화이다.
우선 '왜 두 여학생의 첫사랑과 세월호 참사를 결합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조현철 감독은 인터뷰에서 모종의 개인적인 사건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고 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세월호 참사 역시 자신에게 특별한 사건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창작 동기는 조현철 감독의 개인적인 그 무엇으로 남겨놓자. 그렇다면 그 다음 질문은 이 영화가 그 둘을 어떻게 결합하는지에 관한 것이 되어야 한다. 감독 조현철의 연출적 야심이 드러나는 지점과 이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순간은 바로 이 질문을 떠올릴 때이다.
이 영화는 두 여학생의 로맨스와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 중 어디까지나 전자를 우선시하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에서는 세월호와 관련된 직접적 언급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으며, 심지어 세월호 참사 당일이 되기도 전에 영화가 끝난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이 세월호에 관한 영화임을 환기하고 있는데,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은 매우 문학적이다. 세미는 하은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하은(그리고 이후에 꿈속에서 하은이 된 자신)이 풀밭에 죽은 것처럼 누워있었다고 했고, 또 온 동네가 텅 빈 채로 동네의 알던 모든 사람들과 친구들이 똑같이 누워있었다고, 이유없이 하은이 걱정되고 불안하다고 말한다. 또 그 꿈 속 하은이 된 세미가 버스에서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태풍에 관한 뉴스가 효과음으로 흘러나오며, 개 똘똘이를 찾은 똘똘이의 주인 아주머니는 똘똘이를 자식처럼 아꼈다며 생각보다 훨씬 깊은 감정을 표현한다. 그러니까 이 모든 정황상 이 영화의 사건과 단서들이 세월호를 가리킨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비유와 상징, 환기의 방법을 통해 애써 '세월호'라는 단어를 돌려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미의 꿈속 오열하는 하은이 탑승한 버스에서 태풍 재난 뉴스가 흘러나올 때, 그것은 누가 봐도 그 다음날 있을 재난을 환기하는 것이다. 또, 똘똘이를 잃은 줄 알고 펑펑 우는 주인 아주머니의 눈물은 누가 봐도 똘똘이 이상의 것, 자식을 잃은 부모의 눈물인 것이다(공교롭게도 아주머니 역을 맡은 길해연 배우는 <벌새>에서도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 역할을 연기했다.). <너와 나>는 세월호 참사를 그것의 일부분과 비슷한 특성을 지닌 보조관념들을 가져와 환유의 방식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사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에서 해당 사건을 애써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낯선 일은 전혀 아니다. 같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생일>을 봐도 영화 속에서 지나가듯 '세월호'라는 단어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 사건을 전면에 드러낸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너와 나>는 그 방법에서 <생일>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생일>이 '세월호'라는 단어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면, <너와 나>는 '세월호'라는 단어를 우회하거나 회피한다. 그래서 <생일>은 결과적으로 천천히 간다고 할지라도 명백히 세월호에 관한 영화이지만, <너와 나>는 아무리 돌아서 가도 명백히 세월호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너와 나>는 세월호를 '비유'한 영화고 '환기'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질문은 그 방법이 과연 옳은 방법인지 묻는 것이다. 우선 결론적으로, 나는 이 질문에 대답을 내리지 못했다. 조현철 감독의 이 방법론이 본인의 연출적 야심을 과시한 개성적이고 독특한 방법론인지, 아니면 원관념에 끝내 다가서지 못한 채 보조관념에만 머무르는 머뭇거림인지, 아니면 거대한 참사에 대해 우선 대기한 뒤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신중하고 윤리적인 방법인지는 관객들 각자에 따라 그 판단이 모두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시점까지 <너와 나>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평단과 관객들의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을 볼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현철의 이 방법론에 대해 첫 번째, 혹은 세 번째의 경우로 판단을 내린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두 번째 경우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못하겠다.
위에서 '조현철의 방법론'이라고 지칭한 이 영화의 연출은 비단 세월호 참사를 환유의 방식으로 환기하는 것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세월호 참사보다도 두 여학생의 로맨스를 우선시하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서사를 진행해가는 데도 인물의 심리적 상태를 비유하는 떨어지기 일보직전의 물컵, 인물들 그 자체를 은유하는 동물들 등 비유와 상징을 적극 활용한 '조현철의 방법론'이 드러난다. 여기서 조현철의 방법론이 불편한 이유는 위에서 말한 두 번째 경우와 역시 일맥상통한다. 누가 봐도 명백한 원관념을 굳이 보조관념을 거쳐서 표현하는 것이다. 조금 더 과격하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노골적인 비유와 상징이 과도하게 많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누구나 아는 사실을 애써 감춰 말하는 이 영화의 화술은 가끔은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이 영화에 대한 찬사가 순전히 이 화술에 대한 것이라면 그 부분에서만큼은 온전히 동의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판단을 아직 보류하는 이유는 세 번째 경우 때문이다. 조현철의 방법론을 비극적 참사에 대한 섬세하고 신중한 접근이라고 해석할 때, 위의 두 번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비단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에만 적용되는 연출은 아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를 두고 '그 흔한 사랑해라는 말을 이처럼 간절하고 사무치게 전한다'고 말했다. 즉 이 말은 <너와 나>는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도 감정적 측면이 강력한 영화라는 뜻일 테고 나 역시 동의한다. 그런데 <너와 나>는 그 감정적 에너지에 신파적으로 휘둘리지 않은 채 의외의 지점들에서 거리를 두고 객관성을 확보한다. 그 첫 번째는 이 영화의 과도하리만치 뽀샤시한 화면 톤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세미와 하은이 주고받는 일상적 대화들과 장난들을 보면 상당히 유치하다. 물론 그것은 이 영화가 10대 청소년들의 일상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수많은 tv 드라마들이 10대 청소년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다룰 때 그 현실적인 유치함과 젊은 에너지를 오해한 채 거기에 매몰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것처럼 '오글거려'지게 되는 것인데, 이 영화는 오히려 그러한 장면들을 과하게 뽀샤시한 화면이라는 또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음으로서 하나의 풍경으로 보이게 만든다. 두 번째는 이 영화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강력한 장면 중 하나인 세미의 <체념> 열창 장면이다. 이 장면은 상당히 간단히 설계되어있다. 우선 머뭇거리며 노래를 시작하는 세미를 담은 다음, 가사와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노래방 기계를 바라보는 세미의 시점숏을 보여준다. 그 뮤직비디오에서는 세미와 하은이 제주도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이 흘러나온다. 그리고나서 이번엔 세미의 열창하는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은 다음엔, 다시 뮤직비디오 화면을 보여주는데 이번엔 노래방 기계 속 화면이 아니라 진짜 프레임에 담긴 장면이다. 말했듯이 이 장면은 세미의 감정이 완전히 폭발하는 장면이고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감정적으로 강력한 장면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을 연출할 때도 노래방 기계 속 뮤직비디오 화면이라는 이중의 프레임을 한 번 거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이 연출은 이후 노래방 기계가 없는 뮤직비디오 장면의 감정적 효과를 극대화함과 동시에 강력하고 단순한 감정에 접근하는 데 있어 객관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세미와 하은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한다는 장면 자체는 오글거리는 것을 넘어서서 자칫 코믹할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여기에 이중의 프레임을 씌움으로써 그 상황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도록 유도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이후 노래방 기계가 없어진 장면에서도 이중 프레임을 완전히 벗어던진 채 감정을 폭발시킨 듯 보이지만 <체념>이라는 노래가 계속되고 있기에 여전히 일말의 객관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강력한 감정에 섣불리 접근하는 것을 피하고 신중하게 객관성을 확보하는 태도는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에도 똑같이 관통한다. 이 영화는 세미와 하은 두 인물의 가장 감정적인 순간들마다 두 인물의 대사를 보이스오버 처리하고 그 대신 수많은 평범한 학생들과 사람들의 몽타주 화면을 비춰준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두 여학생의 로맨스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에 대한 이 영화의 대답이다. 이 영화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사랑에 대한 영화다. 세미와 하은의 애틋한 사랑은 다른 수많은 학생들과 평범한 사람들에게로 확장된다. 세미가 조이에게 건네는 '사랑해'라는 말이 화면이 암전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속삭임들로 확장되는 마지막 장면, 나는 세월호를 애도하는 이보다 아름다운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나는 <너와 나>를 열렬히 지지함과 동시에 비판하고 또 그래서 아직 이 영화와 감독 조현철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조현철은 이 장편 데뷔작으로 자신의 연출적 방향성에 대한 선언을 분명히 했으며, 관객들에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더불어 세월호 참사를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애도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올해 한국영화 가장 빛나는 성취'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은 바로 이 질문과 애도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로 한다. 그리고 일단 조현철의 다음 영화를 학수고대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