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2023-05-17 23:39:42
'지독하게' 유쾌한, 어떤 바다 위의 풍자극
<슬픔의 삼각형> 시사회 리뷰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해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그렇게 호평이 자자하던 <슬픔의 삼각형>을 보고 왔다. 이 영화는 정말이지 '지독하고' '통렬하며' '유쾌한' 풍자극이다. 여러 각도에서 인간 사회의 모순을 꼬집으면서 재미까지 모두 담보했다고나 할까. 한없이 가벼운듯하면서도 담고 있는 메시지는 무겁다. 막이 내리면, 이 영화를 끝없이 곱씹게 되는데, 이것은 그만큼 이 영화가 대단한 인상을 주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크루즈와 무인도 씬들은 무더운 여름날(이제 여름이나 다름없다!)에 보기에 아주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에서는 몇 가지 관람 포인트를 소개하겠다. 지극히 주관적이겠지만.
1. 변화무쌍한 주인공의 지위
주인공인 '칼'의 지위 변화는 정말이지 흥미롭다. 직장, 여자친구 앞, 크루즈, 그리고 섬에서 그는 모두 제각각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칼은 떵떵거렸다가 빌빌 기고, 빌빌 기다가도 큰 소리를 친다. 어라, 이런 남자, 이런 사람. 우리 주변에도 즐비하다.
그의 이러한 변화는 그가 처하는 환경에 기인한다. 그가 상대하는 다른 사람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들의 연결고리를 잘 살펴보는 것은 영화의 이해와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2. 대사에 주목하라: 말이 씨가 되는 법
이 영화 속의 대사와 장면 하나하나는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다. 가장 첫 장면부터 가장 마지막 장면까지! 촘촘하게 연결된 인간 사회에서 갑의 작은 진상짓은 처참한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키고, 그러한 나비효과는 이윽고 전복적인 결말에 이르곤 한다. 재미있는 것은, 갑들은 언제나 자신이 갑질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거다! 이 안의 다양한 '갑'들의 대사와 그들의 행위에 주목하라. 그리고 그들이 어떤 나비효과를 낳는지를 관찰해보라.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모순되었는지를 알아차려 보라!
3.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풍자적 비유들
소위 '갑'의 갑질로 의해 배가 뒤집힌다든가, 걸어가는 백인 부자 손님들이 등장한 바로 다음 씬에 바닥을 닦거나 '보이지 않는' 직원실에 숨어서 개미처럼 일하는 유색인종 직원들의 모습 등은 아주 효과적이고 알기 쉬운 방식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낸다. 이러한 장면적 연출들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리라.
아, 주의해야 할 것도 있다.
이 영화는 시원하면서도 지독하다. 문자 그대로, 아주 원초적인 방식으로 지저분한 씬들이 나오기 때문에, 비위가 많이 약한 사람이라면 몇몇 장면에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본 영화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보러 가고 싶다. 여러분도 한바탕 크루즈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저 멀리, 바다의 한복판에서 우리 삶의 또다른 단면을 되돌아 보면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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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민보다 매력적인 캐릭터 토베 얀손
무민의 정확한 이름은 무민 트롤로 북유럽 설화에 등장하는 트롤을 원형으로 삼고 있다. 처음 보면 하마로 종종 착각하는 무민 캐릭터를 만든 작가가 바로 토베 얀손이다. 이 영화는 토베 얀손의 전기영화로 그가 무민 캐릭터를 탄생시킨 과정도 보여준다. 회화 작가로 성공하고 싶었던 욕망의 좌절 속에서 토베는 나를 닮은 무민 캐릭터로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자유롭게 펼쳐낸다.
<토베를 비추는 무민>
영화 <토베 얀손> 포스터
토베 얀손이 멋진 모험을 하는 와중에 그리는 그림은 곧 그 자신이 된다. 포스터를 보면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토베를 보여주는 프레임이 무민 캐릭터의 형상을 하고 있고, 자유롭게 춤추는 토베의 그림자가 무민으로 보인다. 무민은 집과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줄무늬 앞치마를 입은 무민의 엄마는 무민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며, 검은색 모자를 쓴 무민의 아빠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잘 생각해낸다. 무민 가족의 안정된 사랑 속에서 무민은 모험을 떠나는 용기를 키웠고, 사람을 비롯해 다양한 동물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때로는 겁이 많아 소심해질 때도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나간다.
<회화와 만화 그 사이>
담배 피우는 여인과 무민 캐릭터
청춘의 질풍노도 시기에 전쟁과 여성이라는 제약을 업고 그는 정통 회화와 캐릭터 중심의 만화 작업 사이에서 지독한 혼란을 겪는다. 회화 작가로 성공해 조각가인 아버지와 우표 일러스트레이터인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삼은 신문 만화 연재가 성공을 가져다주지만,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허전하다. 회화는 유부남이자 국회의원인 아토스와의 사랑과 닮았다. 그는 부인과 이혼하고 토베에게 청혼을 하여 안정된 결혼 생활을 만들어주려고 하지만, 토베는 그 시간을 겪으며 자신이 얼마나 비비카를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다.
또한 만화는 연극 연출가인 비비카와의 사랑으로 표현되었다. 토베 자신 또는 토베의 어머니보다 토베의 영혼을 먼저 읽어주는 비비카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비카는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더 자유롭게 살자고 말했지만, 토베는 그럴 수 없었다. 토베는 무민을 만들고 사랑했지만, 남동생에게 넘겨 작업을 이어나가게 한다. 그리고 자신의 관심사를 다른 영역으로 확장해 나간다.
토베는 툴리키라는 다른 여성을 만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하였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보다 두 가지 모두가 어지럽게 섞여 있는 것이 토베와 가장 가까웠다. 실제로 토베는 회화와 만화를 비롯하여 소설, 연극, 시, 노래, 무대미술, 벽화, 일러스트레이션, 광고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끊임없는 창작활동을 이어나갔다.
<불안과 흔들리는 카메라>
아토스와 비비카 그리고 토베
무언가 정해지지 않은 시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불안하고 정착하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리게 된다. 성공 서사가 이어지기 전까지 일종의 흑역사를 담은 전기영화 <토베 얀손>의 카메라는 영화 속에서 자주 흔들린다. 거치하지 않고 몸에 둘러맨 채 흔들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앵글은 토베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영화 색감을 보면 자연스럽게 영화 <캐롤, 2015>이 떠오르는데, 16mm 필름 촬영 방식을 채택한 동일한 카메라로 인공조명 대신 주변 사물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활용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지막에 나오는 토베의 생전 영상은 청춘 그 자체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나면 고전 명곡들이 머릿속을 맴돌 것이다. 익숙한 곡이지만, 막상 들으려고 하면 검색어를 찾지 못해 난감한 상황이 생길 독자들을 위하여 곡명을 몇 가지 적어두고자 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토베처럼 춤을 춰보자.
- 카를로스 가르델 'Por Una Cabeza'(1935)
- 에디프 피아프 'C'est Merveilleux'(1946)
- 베니 굿 맨 'Sing Sing Sing'(1936)
- 글렌 밀러 'In the Mood'(1939)
- 맘보 누아르 트리오 'City'(2019)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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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이 된 후의 타협
최악이 된 후의 타협
오슬로 3부작
요아킴 트리에 감독 자신이 영화를 만들 때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밝혔지만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요아킴 트리에 ‘오슬로 3부작’의 마지막 영화다.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던 장르 영화 <델마>(2017) 뒤에 내놓은 신작으로 장편 데뷔작이었던 <리프라이즈>(2006)와 차기작 <오슬로, 8월 31일>(2011) 이후 10년 만에 찍은 이 영화는 첫 영화였던 <리프라이즈>를 지금의 배경으로 소환해 다시 써 내려간 이야기처럼도 느껴진다.
<리프라이즈>가 오슬로의 두 20대 초반 작가 지망생 청년을 주인공으로 두 인물의 공통된 꿈과 도전까지의 망설임, 과정에서의 실패를 겪으며 가지게 되는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했던 영화라면,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비슷한 골조의 이야기에 29살로 조금 더 나이가 있고 여성인 캐릭터 ‘율리에’를 주인공으로 둔다. 감각적인 연출부터 내레이션 식의 전개, 꿈을 찾는 주인공을 따라가는 방식은 두 영화를 겹쳐 보이게 만든다.
꿈과 현실의 타협
이 영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건 초기작과 유사한 구조의 이야기를 다시금 이야기하는 이유였는데 영화의 결론에 다다를수록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감독은 다양한 관계를 겪는 친구들을 보며 사랑에 대해, 삶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의 타협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고 거기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방점은 바로 이 '타협'에 찍혀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 점이 이 영화를 감독 초기작에 깔려있던 우울한 정서보다도 희망과 공감의 마음으로 보게 만드는 힘이 되지 않을까.
율리에는 20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다짐한다. 시작할 때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작의 충동성만큼이나 한계에 부딪힐 때에도 쉽게 무너지고 갈등한다. 모든 걸 자신의 주관대로 바꿀 수 있다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건 사람 간의 관계도, 내게 주어진 시간도, 나 자신의 몸까지도 마찬가지다. 나를 위했던 선택은 나 자신을 최악이 되게 만들고, 누군가에게까지 나는 결국 최악이 되고야 만다. 누구나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통념이 옆구리를 쿡쿡 쑤시지만 일단은 나의 주관대로, 뜻대로 행동해본다. 율리에의 충동과 갈등 사이의 감정을 연기하는 배우 레나테 라인스베를 보고 있자면 <프란시스 하>와 <매기스 플랜>에서의 그레타 거윅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타협 후에도 계속되는 삶
사실 이 영화는 율리에의 입장에 얼마나 공감 가능한 지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 영화라 할 수도 있다. 율리에라는 인물이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을만한 인물이 아니라 더욱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율리에가 결국 끝까지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 것이며, 유사한 경험을 겪었을 누군가는 공감할 것이다. 이런 점을 보완하는 게 이 영화의 구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영화는 12개의 챕터와 앞뒤의 프롤로그, 에필로그로 구성됐는데 이것이 내레이션과 맞물려 마치 율리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읽는 듯한 인상을 준다.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있게 만든다 하더라도 12개의 챕터는 결코 적지 않은 수이기 때문에 이 구성은 자칫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 수 있기도 한데, 오히려 이 영화는 어떤 챕터는 몇 분도 안돼서 끝나버리는 반면, 어떤 챕터는 다른 챕터에 비해 다소 길게 만들면서 고유의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순간의 감정을 녹여내는 요아킴 트리에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까지 더해져 율리에 삶의 한 부분을 특별한 마법과도 같이 만든다.
한계의 벽에 부딪히고 타협하면서도 율리에의 여정은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율리에의 삶이 계속되는 한 한 챕터의 끝은 또 다른 챕터의 시작이다. 모두가 각자 삶의 챕터를 써 내려가고 있는 만큼, 그리고 꿈과 현실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타협의 시기를 생의 중간에서 언젠가는 마주하게 되는 만큼 정도는 다를 지라도 이 영화를 보며 공감하고 위로받을 이가 적지 않을 것임을 확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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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사라진 노동운동의 A컷을 찾아라!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멜팅 아이스크림(Melting Icecream)
South Korea/2021/70min/홍진훤 감독 작품
모든 달콤한 것들은 녹는다. 녹아 없어지기에 더 달콤하다. 〈멜팅 아이스크림〉에서 ‘달콤한 것’은 노동운동이다. 영화는 9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시대의 노동운동의 푸티지를 몇몇 회고를 동반하여 풀어놓는다. 그리고 이 서사는 수해로 훼손된 투쟁 현장의 A컷 사진을 복구하는 서사와 교차한다.
두 서사의 교차가 의미심장하다. 훼손된 A컷 사진은 노동운동의 은유다. 모든 노동자의 연대 투쟁을 강조했던 사람들은 제도권에 들어간 후 노동을 버리고 ‘민주화’만 강조했다. 노동자와 함께 싸웠으나 성과는 독차지했다. 영화가 세 명의 ‘진보’ 대통령 시대의 노동 투쟁을 보여주는 건 노동을 뺀 민주화가 노동자의 삶과 노동 현장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고발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시민과 노동운동의 거리는 좁혀지길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멀어졌다. 영화의 마지막, 코로나 시대에 ‘필수 노동자’라 일컬어졌지만 금세 버려진 노동자 집회를 무심한 듯 힐끗하고 지나가는 시민들의 모습이 이를 증언한다. 이제는 더 이상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는 노동 문제처럼, 훼손된 A컷 복구도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즉 〈멜팅 아이스크림〉은 철저한 실패에 관한 영화다.
지난 몇 년간 1970~8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관객의 호응을 끌어낸 영화가 많았다. 이들 영화는 반동분자 취급당하던 시민들의 명예를 복권하여 집단의 역량으로 재의미화한다는 점에서 분명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멜팅 아이스크림〉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왜 그들 영화에 함께 싸웠던 노동자(혹은 노동자인 시민)는 등장하지 않는가?
최근 개봉한 영화 〈재춘언니〉, 〈미싱타는 여자들〉이 떠올랐다. 〈멜팅 아이스크림〉의 문제의식에서 보면, 이들은 모두 변방으로 밀려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시 ‘중심’으로 옮기고자 노력하는 영화다. 언젠가 다시 맛볼 날을 기다리며,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즉 노동 관점의 소중함)을 추억한다.
*이 글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 받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기자단으로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상영작은 온오프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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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들이 좋아하는 의외의 영화 8선
작가주의 거장도 상업영화 좋아한다.
호불호가 있는 영화임에도 당당히 좋아한다고 말하는 자신감과 논리.
여러분도 알려진 명작외에 특별히 애착가는 영화가 있나요?
맨 인 블랙 3 | 폴 토마스 앤더슨
" <맨 인 블랙 3> 봤어요? 그건 좋았어요... 시간 여행 이야기가 눈물 나더라고요. 제가 그런 것에 환장하거든요"
<맨 인 블랙 3> 줄거리
알 수 없는 사건으로 현실이 뒤바뀌고 외계인의 공격으로 위험에 빠진 지구. 게다가 MIB 소속 베테랑 요원 ‘케이’는 하룻밤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진다.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케이’뿐인데… 사라진 파트너를 찾고 그동안 감춰졌던 우주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제이’요원은 과거로 위험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 곳에서 심하게 젊은(?) ‘케이’와 마주하게 된다. 이제 이 둘은 24시간 안에 우주의 비밀을 풀고 현재로 돌아와야만 하는 MIB 사상 최고의 미션에 도전하게 되는데!
알프레드 히치콕 | 벤지
"아버지는 비평가나 본인의 만족을 위해서 영화를 만든것이 아니라 관객과 오락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히치콕의 딸 패트리샤는 아버지가 가장 좋아한 영화가 강아지가 주인공인 영화 <벤지>라고 덧붙였습니다.
<벤지> 줄거리
유명한 금괴에 관한 첫 번째 영화. 벤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들를 때마다 음식과 관심을 주는 수많은 마을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의 길을 걸어온 길 잃은 사람이다. 특히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한 쌍의 아이들이 부모님의 뜻에 반하여 그와 함께 놀고 먹이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납치되자 부모와 경찰은 이들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벤지만이 그들을 추적할 수 있지만, 그가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만약 그가 그 날을 살릴 수 있다면, 그는 그가 갈망하던 영구적인 집을 찾을지도 모른다.
마틴 스콜세지 | 엑소시스트 2
"저는 가톨릭의 죄책감을 가졌기 때문에 <엑소시스트> 1편을 좋아했고, 또 무서워 했습니다.
하지만 <엑소시스트 2>는 1편을 능가했습니다"
<엑소시스트 2> 줄거리
17세가 된 소녀 리건은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힘을 발휘하는 일들을 하게 된다. 추기경의 부탁을 받고 필립 라몬트 신부가 리건의 집으로 온다. 리건은 정신과 의사인 터스킨 박사의 정밀검사를 받는데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만 처리하고 악령을 믿지 않는 박사와 신부는 의견 차이를 일으킨다. 리건을 치료하다 죽은 메린 신부의 행적을 조사한 라몬트 신부는 리건에게 분명히 악령이 깃들어 있다고 확신하나, 더스킨 박사는 신부가 악마에 미쳤다며 믿으려하지 않는데..
크리스토퍼 놀란 | 맥그루버
"제가 <맥그루버>의 팬인 것이 들통났는데, 그 영화는 저를 완전히 미치게 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앤 헤서웨이는 놀란이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촬영하는 내내 <맥그루버>의 대사를 자주 언급했다고 말했다.
<맥그루버> 정보
미국 NBC-TV 인기 코미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서 ‘맥가이버’를 패러디하여 2007년 1월부터 새롭게 등장시킨 동명 캐릭터를 대형 스크린에 그려낸 코미디물.
니콜라스 윈딩 레픈 | 개같은 내 인생
"나는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이 영화를 봤어요. 행복해서 울었던 영화는 <멋진 인생> 말고는 이 영화가 유일합니다."
<개같은 내 인생> 줄거리
열두 살 소년 잉마르는 하루도 사고를 치지 않는 날이 없다. 병세가 나날이 악화되는 엄마가 쉴 수 있도록 잉마르는 외삼촌이 사는 시골 마을로 보내지고, 사랑하는 개 시칸과도 헤어져 힘든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잉마르는 러시아 우주선에 태워져 먼 우주로 보내진 강아지 라이카보다는 자신의 처지가 낫다고 위안하며 철학적 사색에 잠기곤 한다. 순박하고 정이 많은 외삼촌과 새로 사귄 마을 친구들, 엉뚱한 괴짜 이웃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던 잉마르는 축구와 권투를 좋아하는 소녀 사가와 친해지면서 점차 웃음을 되찾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잉마르에게 엄마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는데...
스탠리 큐브릭 | 덩크슛
<덩크슛>은 실제로 스탠리 큐브릭이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작품으로 알려짐.
<덩크슛> 줄거리
시드니는 항상 거리의 코트에서 살며 내기 농구를 즐긴다. 어느날 경기를 하는 도중 백인인 빌리가 나타난다. 마피아들에 빚을 지고 여자 친구와 도망치는 떠돌이다. 시드니는 빌리와 내기를 한다. 당연히 사람들은 시드니에게 돈을 건다. 결과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빌리의 승리. 시드니는 거리 코트를 휩쓸기 위해 빌리에게 파트너가 될 것을 제의한다. 둘은 그때부터 허슬러가 된다. 승승장구하며 둘은 거리 코트를 하나씩 점령해 간다. 그렇게 해서 둘은 도박농구로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다른 패거리와의 시합이 벌어진다. 시드니는 전에 없던 무기력함을 보이고 둘은 예상치 못한 패배를 맛본다. 시드니가 다른 패와 짜고 사기를 친 것이다. 둘은 싸운다. 더욱 절친한 농구 도박사로 다시 의기투합한 둘은 5000달러의 상금이 걸린 거리 농구 챔피언쉽에 나가게 된다.
테렌스 맬릭 | 쥬랜더
테렌스 맬릭은 <쥬렌더>에 푹 빠져 재관람하고, 친구들에게 대사를 흉내내며 <쥬랜더>를 포함시킨 영화제를 주최할 정도의 열성 팬으로 알려져 있다.
<쥬랜더> 줄거리
세계 패션 산업이 날로 번창하던 어느 날, 말레이시아 수상이 미성년자의 노동 착취를 뿌리 뽑겠다고 천명하자 패션계는 발칵 뒤집어진다. 자사 물건을 대부분 임금이 산 외국에서 제작해 온 디자이너와 패션계의 거물들은 이제껏 그래왔듯이 방해인물을 제거하기로 합의한다. 필요한 것은 이들의 도구가 되어줄 멍청이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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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면과 혐오, 분노가 만든 폭력의 세계
지금 우리 학교는 (ALL OF US ARE DEAD, 2022)
“외면과 혐오, 분노가 만든 폭력의 세계”
개봉일 : 2022.01.28. (넷플릭스 공개)
감독 : 이재규, 김남수
출연 : 박지후, 윤찬영, 조이현, 로몬, 유인수, 이유미, 임재혁
개인적인 평점 : 3/5
지금 우리 학교는 줄거리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에 고립된 이들과 그들을 구하려는 자들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겪으며 벌어지는 이야기
동명의 웹툰 <지금 우리 학교는>을 원작으로 한 새로운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이 2022년 1월 28일 날짜로 공개됐다. 2021년을 뜨겁게 달궜던 <오징어 게임> 이후, ‘한국 넷플릭스 시리즈’에 대한 관심도가 상당히 높아진 만큼 ‘한국 드라마 콘텐츠’라는 타이틀을 달면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만만치 않은 시기가 아닐까 싶다.
<오징어 게임>에 이어 공개된 <지옥>은 ‘한국 드라마 콘텐츠’로 큰 관심을 받으며 스트리밍 1위를 달성했고, <고요의 바다>는 1위를 찍지 못해 조금 아쉬웠지만 ‘한국형 SF’의 새로운 장을 열며 마무리되었다. 개인적으론 지금까지 공개된 시리즈들 모두 어떤 방향으로든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꽤 괜찮은 성공이 거듭되면서 기대감이 더욱 쌓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어딘가 모자랐던 걸까. 나에게 <지금 우리 학교는> 시리즈는 장단점이 뚜렷한, 완전한 성공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작품으로 남아버렸다.
긴 러닝타임, 길게 늘려진 답답한 이야기
<지금 우리 학교는>은 <킹덤>에 이어 넷플릭스에서 2번째로 제작된 한국형 좀비 드라마다. <킹덤>은 시즌당 4-60분 내외의 러닝타임을 가진 6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것에 비해 <지금 우리 학교는>의 러닝타임은 거의 두 배에 달한다. 그렇다고 <킹덤>이 특히 짧았던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처럼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사용한 <스위트홈>과 최근 공개된 한국 넷플릭스 시리즈 <D.P>, <마이네임>, <고요의 바다>, <지옥> 등이 모두 10편 내외로 구성되었던걸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학교는>은 눈에 띄게 긴 러닝타임을 갖고 있는 시리즈다.
한 회차당 60분 정도, 총 러닝타임은 709분에 달하는데, 처음엔 “원작에도 등장하는 인물이 워낙 많으니까.. 12화인 이유가 있겠지?”싶었는데, 시리즈를 다 보고 나니 “왜 12화까지 만들었지?”싶었다.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비판하고자 하는 부분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많았다는 부분은 어느정도 느낄수 있었으나, 깊게 표현됐다기보단 한번 쓰고 내팽개치고, 또 잠깐 보여주고. 하는 식으로 짧게 반복되니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8-10화 내외로 과감하게 쳐냈다면 지금보다 만족도가 훨씬 올라갔을지도.
여러 인물들이 만나게 되면 당연히 갈등이 생기게 되고, 어느 정도 고구마를 먹은듯한 답답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시청자들이 그 고구마를 견디는 이유는 갈등이 해소될 때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 즉 사이다를 꿀꺽꿀꺽 마시며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인데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사이다가 부족하다. 숨 막히게 반복되는 답답한 상황과 고립. 갈등 요소가 해소되나? 싶은 순간, 갈등을 야기한 인물이 얼렁뚱땅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허탈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래... 상황상 어쩔 수 없지...”, “그래... 얘네 고등학생이잖아...”를 반복하며 마음을 달랬다.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구성과 납작한 인물들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꽤 많은 캐릭터들이 나온다. 초반부엔 이름조차 제대로 외우기 힘들 만큼 말이다. 교내에는 청산과 온조가 주축이 된 무리와 하리와 미진이 주축이 된 무리, 은지와 철수로 구성된 폭력의 피해자 무리, 교내 최고 빌런 귀남까지 총 4개의 시점이 있다. 그리고 학교 밖엔 온조의 아빠 소주 무리와 도시로 들어온 스트리머와 형사 무리, 효산시 봉쇄 작전을 실행하는 사령관까지.
사실 등장인물들이 많은 건 단점이라고 할 수 없으나, 문제는 한 무리 안에서도 인물들이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는 점과 각 무리가 갖고 있는 톤 자체가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곧 멸망해버릴듯한 세상이 주는 절망과 무거움을 작은 코믹 요소들로 중화시키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특정 인물들의 이야기만 너무 큰 변주를 준 느낌이라 아쉬웠다. 톤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다양함보다는 산만함이 크게 느껴졌다.
정말 가감 없이 이야기하자면, 산만한 이야기를 꽉 잡고 갈 중심인물이 많이 없었다는 점도 이 시리즈의 단점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 학교는> 원작을 접한지 오래 지나서, 원작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는 독자는 아니지만 이 시리즈를 보며 이런 생각을 정말 자주 한 것 같다. “얘 웹툰에서도 이랬었나?”
모든 인물들이 매력적이고 입체적일 순 없다. 그래도 이 산만함을 꽉 쥐고 끌어갈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았다면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4-5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캐릭터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 크게 아쉬웠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시청 중에 지쳐버린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단점을 어느 정도 상쇄하는 영리한 좀비 액션
그럼에도 <지금 우리 학교는> 시리즈를 끝까지 완주한 이유.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좀비들과 펼치는 영리한 액션신들 덕분이었다. 학교라는 고립된 공간 속, 길쭉하고 좁은 복도의 특성을 활용한 아슬아슬한 액션, 교내 물품들과 건축 자재들을 이용해 구성한 영리한 액션들과 그 안을 유연하게 비집는 카메라의 시점. 그 모든 액션들을 받아쳐주는 좀비들의 그로테스크한 움직임. 그리고 역하게 느껴질 만큼 잘 만들어진 비주얼까지. 아쉬운 점은 다 미뤄두고, 이 액션신과 배경을 만들기 위해 담당자분들과 배우분들 모두 정말 고생하셨다는 칭찬은 아끼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론 고지대를 선점한 상태로 이어진 액션신들이 인상 깊게 남았다. (특히 도서관 장면)
신선한 얼굴들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신선한 얼굴들이 대거 출연한다. <벌새>로 소중한 날갯짓을 보여준 박지후 배우,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이유미 배우, 여러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탄탄한 연기력을 뽐낸 이상희 배우처럼 은근 낯이 익은 배우들도 있고, 언젠가 한 번쯤 봤었던 <슬의생>의 장윤복 역을 연기했던 조이현 배우, 영화 <생일>에서 설경구 배우의 아들 수호를 연기했던 윤찬영 배우, 조금은 낯설고 새롭게 느껴지는 로몬, 유인수 배우까지. 이 신선한 얼굴들엔 기시감 같은 뻔한 것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보여준 연기와 배우들 간의 합이 빈틈없이 완벽했다고 말하긴 애매하지만, 적어도 이들의 차기작이 궁금해지게 만든 시리즈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순간에 지옥이 된 세상에서 꼬집고자 하는 것. 호불호가 갈리는 표현 방법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효산 고등학교에서 살아남은 학생들과 학교 밖, 효산시에서 살아남은 어른들의 생존기를 그린 작품이다. 바이러스가 무서운 속도로 퍼지며 한순간에 지옥이 된 학교 안에서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뿌리치고, 달려오는 좀비들에 맞서며 구조의 순간을 기다린다. 아이들이 갇힌 세상은 온통 공포와 괴성, 불신으로 가득하다. 학교 밖에서 이 사태를 알게 된 어른들은 아이들을 구하러 지옥으로 몸을 내던지기도 하고, 다수의 생존과 소수의 희생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드라마 안에 그려지는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며 공감과 울분, 분노 등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꼬집고자 하는 방향은 확실하다. 평화로워 보이는 학교가 누군가에겐 지옥일 수 있다는 것.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방관자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 폭력의 구렁텅이가 깊어질수록 그 안에선 더욱 지독한 폭력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폭력이 지배한 세상 속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가면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사회에 만연한 불신과 혐오 등등.. 방향성은 충분히 알겠으나 표현 방식에 대한 호불호가 꽤나 갈리고 있는 모양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이 문제들을 꼬집기 위해 사용된 국회의원 캐릭터와 가해자와 피해자 캐릭터들이 다소 일회성으로 소비되었다는 점과 논란이 될만한 폭력 표현 방식 등이 있겠다.
지옥 같은 학교에서 손을 잡는 아이들
폭력이 만들어낸 작은 멸망과 그 상황에서도 파이 게임을 하는 어른들. 아이들은 어른들을 기다리며 지쳐가고, 끝내 버려졌음을 알게 된 순간 더욱 견고하게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간다. 그들의 작은 세계 속에선 믿음, 사랑, 우정, 희생이 교차하고, 이 모든 감정은 단 하나의 목표. 생존을 위해 사용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생존이란 희망을 놓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천국, 누군가에겐 지옥이던 학교가 이젠 모두에게 공평한 지옥이 되어버린 상황. 희망 같은 건 가질 수 없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잠시나마 희망의 스파크를 튀겨본다. <지금 우리 학교는>을 보면 아이들끼리 손을 잡고 서로에게 몸을 기대며 휴식이나 수면을 취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순간들이 정말 좋았다. 극한의 상황에서 서로에게 기대는, 본능이자 깊은 믿음에서 나오는 행동들이 좋았다. 좀비가 창궐한 와중에도 수능과 고3이 될 내년을 걱정하는 팍팍한 분위기를 잠깐이나마 풀어주는 것 같아서.
좀비물이라기보단 하이틴 로맨스로 본다면
<지금 우리 학교는>을 설명하는 가장 큰 카테고리는 ‘한국형 좀비 드라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분야를 즐겨보는 팬들에게 <지금 우리 학교는>은 부족함이 많은 시리즈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클리셰로 가득한 진행에 생존을 앞에 뒀다기엔 예상보다 더욱 답답하게 행동하는 인물들까지. 특히 좀비물의 스탠더드로 불리는 <워킹데드>나 앞선 한국형 좀비 <킹덤> 정도를 기대했다면..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이틴 로맨스 초점으로 바라본다면.. 어쩌면? 좀비에 집중했을 때보다 조금은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잠깐의 탈출과 고립, 희생과 이별이 반복되며 자연스레 쌓여간 감정들이 언젠가 한 번쯤은 훅- 다가오는 순간이 있을 테니까. 슬픔으로든 아주 큰 분노로든, 그 어떤 형태로든.
감정을 제대로 마무리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남은 건 맞잡은 손뿐인 아쉬움이 가득한 시리즈였지만... 이를 계기로 ‘K-좀비’의 장이 더 넓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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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랑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뻔해진다
어떤 이야기를 단지 '사랑 이야기'라고 말한다면 그게 어떤 것으로 다가오는지. 영화 <반쪽의 이야기>(2020)는 대만계 미국인 감독 앨리스 우(Alice Wu)의 작품이다. 동양인 여성 감독인 그는 커밍아웃을 한 레즈비언이기도 하다. 영화 감독으로서는 조금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그는 MIT와 스탠포드에서 컴퓨터 공학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잠시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했었다고 한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알려진 <세이빙 페이스>(2004)가 토론토국제영화제와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받으면서 감독으로 전업하나 싶었는데, 지금 소개할 <반쪽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까지는 16년이나 걸렸다. 그동안 앨리스 우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감독의 트위터에는 어느 여섯 살짜리 아이가 말했다는 “Drawing is my favorite enemy.”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나의 친애하는 적. 감독은 이 말이 영화 만드는 일에 관해 자신이 느끼는 바와 비슷하다고 인용하고 있다. 그에게 영화를 만드는 일은,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스스로와의 싸움이며 동시에 즐겁지 않은 일,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을 동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할 수밖에 없는 일. 첫 번째 영화와 두 번째 영화 사이의 16년이라는 시간은 그런 것들로 채워지기도 했겠지.
<반쪽의 이야기>는 고등학생인 ‘엘리’(리아 루이스)가 같은 학교 남학생 ‘폴’(대니얼 디머)로부터 연애편지 대필을 부탁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위 ‘하이틴 로맨스’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감독의 전기적 특수성 때문만이 아니라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방식과 전하고 있는 메시지 자체가 이런 종류의 10대들 사랑 이야기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쪽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배경에 대해 하나씩 풀어보겠다.
‘폴’이 부탁한 연애편지라는 건, ‘폴’이 좋아하는 동급 여학생 ‘애스터’(알렉시스 러미어)에게 쓰는 것이다. ‘엘리’는 평소에도 약간의 돈을 받고 학우들의 과제를 대신 써주고는 했다. 대필 이야기를 듣자마자 ‘엘리’는 “세 페이지 이하는 10달러, 열 페이지까지는 20달러, 그 이상은 안 해.”라고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견적을 말한다.
‘엘리’는 저 말을 다른 학우들이 숱하게 부탁했을 과제 이야기겠거니 하고 꺼낸 건데 ‘폴’이 원하는 게 학교 과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라는 걸 알게 되자 그걸 단호하게 거절한다. 누군가의 진심은 대신 써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서. 편지의 명목상의 발신인과 그 수신인을 아주 잘 안다고 해도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을 꾸며낸다는 건 아주 천재적인 작가에게 조차 쉽지 않을 것 같다. 영화 <그녀>(2013)에서 ‘테오도르’(와킨 피닉스)가 쓰는 종류의 조금 간단한 대필 편지 정도면 모르겠지만. ‘엘리’가 편지 대필을 해주기로 하는 계기는 따로 있었다. 당장 50달러가 필요한 일이 있었는데 ‘폴’이 그 돈을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자신이 직접 써도 그게 전해질까 말까 할 텐데 다른 사람이 대신 써주는 편지. 마음이 전해질 수 있을까. ‘폴’이 자기가 일단 써봤다며 내민 편지를 읽더니 ‘엘리’는 거의 다 고쳐야겠다고 말한다. 이제 이 영화의 키워드는 흔하디 흔하지만 ‘진심’이 되었다. 사랑 이야기에 진심이라니. 우여곡절이 있지만 한 사람의 간절하고 지순한 마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전해지고 둘의 관계가 ‘결실’을 맺는 정도의 구조일까.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 원하는 걸 얻는 이야기도 아니다.” 영화 서두에서 ‘엘리’의 내레이션은 이미 <반쪽의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가 아님을 전제한다. 장르의 흔한 공식을 따르기를 애초부터 거부하는 이 영화의 실질적으로 중요한 발단은 따로 있다. ‘폴’의 편지를 대필해주던 ‘엘리’는 한 번이라고 생각했으나 ‘애스터’로부터 답장이 오면서 계속 이어지는 편지 속 이야기의 과정을 통해 ‘애스터’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기왕 쓰는 것 잘 쓰기 위해서 ‘폴’과 계속해서 ‘애스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애스터’의 일상을 몰래 관찰한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 묘사하지는 않지만 ‘엘리’가 ‘애스터’를 좋아하게 된다는 정황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한 가지 더 언급해야겠지만, 이건 '흔한' 퀴어 영화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사랑 영화도 아니고 퀴어 영화도 아닌데 하이틴 로맨스 영화이고 흔한 이야기는 아니라니. 정말 제목처럼 이야기의 반만 꺼낸 셈인데, 글 제목의 뜻에 대해서도 아직 말하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려낸 것 같다.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이 그렇게 숭고하고 대단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영화다. 실은 아주 엉망이고 제멋대로인 게 사랑이라면서.
“
“Love is messy and horrible and selfish …and bold.”
그러니까, ‘엘리’는 사랑이 상대방에 대해 낱낱이 아는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 같다. ‘폴’이 편지 대필을 부탁했을 때 처음 써준 편지에 의도치 않게 ‘애스터’의 답장이 오고 나서, ‘폴’과 ‘엘리’는 이제 정말 작정을 해야만 했다. ‘폴’은 이제 데이트 신청을 하자고 했지만 ‘엘리’는 “다른 남자애들과 똑같아지고 싶냐”라며 편지로 대화를 이어가기로 한다.
‘엘리’에게는 단서가 있었다. 복도에서 우연히 ‘애스터’와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애스터’는 ‘엘리’가 들고 있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있는 나날』을 보고 자기도 그 책을 좋아한다고 언급했다. ‘엘리’는 ‘폴’을 대신해서 그의 이야길 하고 있었다. 사랑이 뭔지 모른다는 핑계로 빔 벤더스 영화 속 대사 언급을 했더니 ‘애스터’가 자신 역시 빔 벤더스를 좋아한다고 답장을 한다든가... 이제 ‘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을 좋아하고 빔 벤더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편지를 대신 써줄 것을 부탁한 이상 그건 자연스럽게 떠안아야만 했을 문제일지 모른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엘리’와 ‘폴’은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애스터’의 일상을 관찰하기 시작하는데, 일단 데이트 약속을 잡았으나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애는 구상화보다 추상화를 더 좋아해. ‘남아있는 나날’ 얘길 꺼내면 영화가 나치 얘기를 줄이면서 얼마나 많은 걸 잃었는지를 말해.” ‘엘리’가 ‘폴’에게 해주는 조언은 대략 이런 것이었는데, 이런 건 ‘애스터’의 취향에 대해 ‘폴’이 학습하도록 하는 정보들이었다.
당연히 첫 데이트는 ‘엘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데, 그럼에도 ‘폴’은 두 번째 데이트 약속을 잡아낸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눈만 깜빡거리며 밀크셰이크에 든 빨대를 쪽쪽거리는 ‘폴’이 ‘애스터’에게는 나름대로 귀여워 보였던 모양. 실제로 ‘애스터’는 “넌 좀 이상하지만 그래서 귀여워”라고 언급한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의 중요한 대목은 이런 것에 있다. 이 일련의 데이트는 ‘폴’의 짐작대로도 되지 않고 ‘엘리’의 짐작대로도 되지 않는다. 가령 ‘엘리’는 ‘폴’ 대신 직접 ‘애스터’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이런저런 조력을 하지만 이건 마치 ‘글로만 배운 연애’ 같아서 가끔은 그것보다 투박하지만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폴’의 것이 통하기도 한다.
일단 제목의 의미 하나가 여기 있다.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그리고 많이 영향 줄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그 영향들이 쌓이고 쌓이는 방식으로 완성되어가는 것 같다. 그러니, 영화 속 ‘반쪽’이라는 건 ‘폴’과 ‘애스터’의 관계를 말하기도 하고 ‘애스터’와 ‘엘리’의 관계를 말하기도 하며, 나아가 ‘폴’과 ‘엘리’ 아빠 ‘에드윈’(예성)의 관계도, ‘엘리’와 ‘에드윈’의 관계도 모두 포함한다. 반쪽의 이야기라는 것은 반쪽과 다른 반쪽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는 것.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이것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앞에서 ‘사랑이 아주 엉망이고 제멋대로인 것’이라는 인용을 했는데 ‘엘리’의 말이다. 관찰하고 계산한 대로, 정해진 공식처럼 흘러가는 게 아니라 불확실함과 의외성이 통하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서로가 만나 각자의 고유함을 바탕으로 조금씩 관계를 다져가고 완성해 나간다는 것. <반쪽의 이야기>는 특정한 가치관에 따라 흘러가지도 않고 누군가의 가치관을 다른 누군가에게 주입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아주 똑똑한 영화다.
‘애스터’는 원래 미대에 진학하고 싶어했는데 어떤 사정으로 포기한 인물이다. 그래서 ‘폴’의 이름으로 ‘엘리’는 ‘애스터’와 그림 이야길 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대화 내용에는 어쩌면 <반쪽의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게 된다. ‘애스터’는 미술 시간에 들었던 그림에 관한 이야길 꺼내고 그림에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선을 그려 넣는 일에 관한 대화가 이어진다.
“
“어쩌면 중요한 건 그거야. 그림을 망가뜨리더라도
그 괜찮은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다는 걸 알아야만 해.
하지만 대담한 선을 그려 넣지 않는다면…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는 영영 모르겠지.”
사랑으로 한정해 볼까.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은 본래 서로가 만나기 전부터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건 그것대로 ‘괜찮은’ 것이다. 굳이 서로가 관계를 맺지 않고 지나가도 괜찮을 일.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을 일. 그러나 한 사람은 용기를 낸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한 사람이 거기 어떤 식으로든 반응한다. 이것이 어떤 흐름을 낳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 그건 훗날 서로가 서로가 아니면 안 되었으리라 믿을 만큼 삶 전체를 바꿔버리는 운명적 관계가 되기도 한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는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해준 그가 고맙다고.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라는 문장이 나온다. 말하자면 ‘훌륭한 그림’을 만드는 건 ‘괜찮은 그림’에 대담하게도 굳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어떤 선 하나를 그려 넣는 행위일 거다. 뚜렷한 정답이 없는. ‘엘리’는 ‘폴’과 ‘애스터’가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애스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졸린 눈을 비벼가며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을 억지로 읽고 그러면서도 자기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 ‘폴’의 방식이 통하기도 하는 것처럼.
영화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이 누가 정해놓거나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마치 대단히 중요한 내용처럼 플라톤이나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사랑이란 완전함에 대한 추구와 갈망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같은 이야기. 보통 영화에서 검은 화면에 자막으로 이런 식으로 뭔가가 적혀 있으면 그건 거의 반드시 중요하거나 상징적인 이야기인데 이 영화에선 별로 그렇지 않다. 전형적인 구성을 기반으로 하면서 그 안에서 영리하게 그걸 비트는 영화라고 해야할지.
가톨릭을 독실하게 믿는 조용한 동네의 고등학교에서 뻔한 하이틴 로맨스처럼 인물 관계를 구성해놓고 <반쪽의 이야기>는 ‘애스터’를 중심으로 ‘엘리’와 ‘폴’ 각자의 내면을 꽤 세밀하게 펼쳐놓는다. 게다가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10대니까, 이들은 얼마든지 삶의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 그래도 되는 존재들이다. ‘엘리’는 ‘폴’이 불쑥 내뱉는 “그게 사랑 아냐? 상대를 사랑하는 데 노력을 쏟는 거.” 같은 말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기도 한다. 사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삶이란 그런 것인지도. ‘나를 뺀 세상의 전부’가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걸 예상치 못한 채 쉽사리 뒤흔들어 놓기도 하는 일 말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10대 중반쯤 되면 보통 사랑에 관해 나름의 기준 내지는 목표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거나 조금씩 갖기 시작하는 것 같다. 가령 ‘폴’에게 사랑은 “치즈프라이를 하나 더 시키는 것”이다. ‘애스터’와 무슨 대화를 할지 말을 어떻게 걸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편지부터 쓰는 것이고, 편지에 대뜸 “맛있는 곳 아는 데 같이 먹으러 가자”거나 “나 트럭도 있고 풋볼 선수야” 같은 이야기나 꺼내보는 것이다. 졸음을 참아가며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을 읽는 것도 물론이고.
50달러를 받기 위해 편지를 정성들여 써주긴 했지만 ‘엘리’는 ‘폴’과 ‘애스터’가 서로 전혀 공통점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엘리’는 두 사람의 첫 데이트가 완전히 실패했다고까지 생각하지만 ‘엘리’의 생각과 달리 ‘폴’과 ‘애스터’의 두 번째 데이트가 성사되고 둘은 키스까지 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듯 보인다. 물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둘이 하나여서 머리도 몸통도 둘 팔 다리도 넷이었는데 신이 하나된 둘의 완전함을 시기하여 둘을 갈라놓았고 평생 동안 서로를 계속해서 찾아다니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영화 제목도 사실 거기서 따온 것인데, 아주 진지한 이야기인 양 플라톤도 인용되고 사르트르도 인용되는데, 아무리 이 영화의 ‘엘리’라는 캐릭터가 다른 학우들의 과제를 대필할 만큼 언어 능력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주인공’이라고 해도, <반쪽의 이야기>는 주인공을 사랑에 관한 각종 문학적 인용에 통달한 지혜로운 인물로 그리거나 그가 깨달음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는 이야기로 서사를 맺을 생각이 없다.
영하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그 근거 중 하나는 저 인용들의 대상이 후반에 가면 ‘엘리 추’ 자신이 된다는 점이다. ‘엘리’에게 어떤 좌절의 상황이 찾아오자 영화가 띄우는 인용은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이며, 속으로만 담아두고 있던 ‘엘리’의 어떤 진심이 발언되는 장면 직후에는 앞에서 소개한 “사랑은 엉망진창에 끔찍하고 이기적이고 대담한 거예요.”가 자막으로 등장한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계속해서 고쳐 써 내려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반쪽의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이며, 그 점은 효과적으로 성취된다.
<반쪽의 이야기>는 흔한 해피엔딩을 거부한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그 모두를 응원하는 방식으로 뭉클하고도 아름답게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갈등이나 오해는 대체로 해소되지만 그것이 사랑의 실현으로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엘리’는 물론이고 ‘폴’에게도 ‘애스터’에게도, 수많은 실패와 좌절, 상처들이 분명 찾아오고 어떤 것은 아주 오래 갈 것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앞에서 제목에 관하여 ‘반쪽과 다른 반쪽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라고 언급했는데, 그 연장선에서 <반쪽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빈번하게 내레이션까지 하며 ‘폴’의 행동을 이끌고 자신도 움직이지만 전지적이지는 않다. 예컨대 전기 요금을 3개월 체납한 것에 대해 ‘엘리’는 아빠에게 전력 회사에 전화해봤는지 묻고 아빠는 동양인인 자기 억양을 못 알아들을 거라며 (통화) 안 해봤다고 한다. 이에 ‘엘리’는 시도는 해보았는지 되묻지만 다음날 자기가 직접 전화를 할 뿐 아빠를 나무라지 않는다.
‘폴’의 이름으로 쓰는 편지를 통해 ‘엘리’는 ‘애스터’와 꽤 여러 주제에 걸쳐 폭넓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내용을 보면 취향을 강요하거나 설득하지 않고 서로의 것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 무엇보다 ‘애스터’에게는 사실 이미 공인된 (약혼 직전의) 남자친구쯤 되는 ‘트리그’(볼프강 노보그라츠)가 있다. 보통의 영화였다면 그는 당연히 주인공과 갈등을 빚는 캐릭터로 쓰였겠지만 여기선 전혀 그렇지 않다. 갈등을 빚지 않는 정도를 넘어 아예 ‘애스터’와 ‘폴/엘리’의 관계를 모르기까지 하지만, 알았다고 해도 이 영화에서는 그것이 갈등 요소로 쓰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 더 짚자면 영화 속 스쿼하미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톨릭을 믿는 보수적인 동네지만 여성이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 역시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얼굴을 붉히거나 뺨을 때리는 등의 일이 살짝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건 당사자만의 문제일 뿐 공동체의 것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이 모든 건 놀랍게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지적인 동양인 여성 캐릭터, 투박하지만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하는 백인 남성 캐릭터, 무엇인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인기 많고 예쁘기까지 한 또 다른 여성 캐릭터라는 아주 전형적인 인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좋은 영화는 전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의 틀을 가지고도 선례를 답습하지 않고 활용과 변주, 시도라는 것을 할 줄 아는 영화라고 <반쪽의 이야기>를 보는 순간 생각하게 된다.
“난 늘 사랑은 한 가지 방식뿐이라 생각했어. 올바른 방식 하나. 하지만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아.”라는 ‘폴’의 말처럼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은 특정한 어떤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모든 종류의 사랑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평등하고도 특별하게 보여준다.
괜찮기만 한 그림과 훌륭한 그림 사이에는 아름다운 실패가 있다. 어떤 그림은 잊히거나 사라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한 번 그린 그림의 순간을 기억하고 다음 그림을 또 그릴 수 있기도 하다. 이 영화를 두 번 더 되풀이해서 보는 며칠 동안 사랑에 관한 시나 산문을 여럿 읽었다. 확신하지 않은 채로, 그리지 않아도 되었을 선을 그려 넣는 일도 가치 있는 것이라고 끌어안으면서, 낙관하지 않되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이 영화를 보고 여러 문장들 중에서도 떠오른 대목이 있어 여기에 덧붙일까 한다.
“두근거리다가 터지는 풍선이 되어 내가 먼저 고백하려고 해요. 바람 앞에서 살랑거림을 주체 못하고 펄럭이는 내 쪽에서 먼저 고백하기로 해요. 달은 밤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밤에 뜨는 건 아닐 테니까요. 해도 마찬가지로 아침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아침마다 뜨는 건 아닐 테니까요.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뒤늦게 뜨는 날이 더 많았을 테니까요. 늦어도 좋으니 일단 뜨기만 하면 세상이 밝아지는 일이니까요.”
(이원하,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에서)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김동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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