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2022-06-21 13:17:38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인사가 주는 힘
영화 <안녕하세요> 리뷰
안녕하세요는 김환희 배우, 이순재 배우, 유선 배우, 이윤지 배우 등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배우들이 출연하며 제가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작품입니다.
시놉시스는 보육원에서 자란 수미가 호스피스 간호사 서진을 만나게 되며 삶의 마지막을 보내는 사람들을 만나고,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시놉시스의 내용처럼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그 힘으로 더 열심히 살아라" 라는 말과, 죽는 방법을 알기 위해 호스피스에 찾아가고 부부, 할아버지, 할머니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할아버지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며 사람들과 친해지게 됩니다.
곡성 이후 성장한 김환희 배우의 모습과 이순재 할아버지의 연륜있는 연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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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우리의 망각 속에서 계속되는 다음의 피해자
[BIFF 데일리] 우리의 망각 속에서 계속되는 다음의 피해자
영화 다음, 소희 리뷰
감독] 정주리
출연] 김시은, 배두나
시놉시스] 소희(김시은)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인터넷 회사 콜센터에 현장실습생으로 취직한다. 소녀는 대기업에 취직했다며 들뜨지만, 실상은 기대와 다르다. 노동 착취가 예사로 일어나는 콜센터는 그야말로 노동 지옥이다. 그곳의 잔인한 현실은 암울한 사고로 이어지고, 형사 유진(배두나)은 악착같이 진실을 좇는다. 그러나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 앞에서 그녀는 무력함을 절감한다.
특성화고 고교생들의 현장실습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올해만 해도 현장 실습 도중 사망하는 사건이 여럿 발생했지만 이에 대한 조치가 명확히 이뤄졌는지에 대한 후속기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면서 다시 망각의 길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 특성화고 고교생들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다음이라는 묵직한 말
영화 <다음, 소희>는 영화 제목이 주는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소희의 죽음을 통해서 특성화고의 현장실습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경찰 유진은 깨닫지만, 자신의 손으로 바로잡기에는 이미 작동하고 있는 사회 시스템을 멈출 수가 없기에 좌절한다. 이 문제를 여기서 바로잡지 않는다면 소희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소희와 같은 아이들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지만, 정량적 평가라는 교육부의 사회적 시스템으로 인해 이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개인이 현장실습을 나가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진은 죽어버린 소희의 유품, 핸드폰에 유일하게 있었던 춤연습 동영상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어른으로서 아직 꽃도 피지 못한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었을까. 경찰이라는 공무원이었지만 유진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남아있는 현장실습생들을 챙기는 것이었다. 유진은 그렇게 소희가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소희와 함께 춤동아리에서 춤을 추었던 1년 선배를 찾아간다. 같은 현장실습생으로 공장에서 일했지만 사고를 쳐서 택배 물류 작업을 하고 있었던 그에게 유진은 힘든 게 있느면 털어놔도 된다며 누구에게든 말하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자 고맙다며 눈물을 흘린다. 현장실습생이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사내에서 힘들다는 말을 하지도 못했던 이들이기에 당장의 시스템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따뜻한 이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큰 위로와 안식처로 다가왔을 것이다.
아직 이 문제들을 양산하는 사회적 시스템은 그대로 작동 중이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이와 같은 일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아이들은 점점 더 사지로 몰릴 수밖에 없음을 ‘다음’이라는 지목을 통해서 완강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정량적 평가가 만든 악의 굴레
우리가 실적을 평가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정성적인 방법과 정량적인 방법이 있다. 하지만 정성적인 평가의 경우에는 객관적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은 정량적인 평가를 한다. 영화 <다음, 소희>에서는 꾸준히 객관적인 수치에 대한 질문과 그 속에서 배제되고 있는 정성적인 부분이 부각되어 등장한다. 특성화고 특성상 그 해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실적으로 이어지기에 학생들을 공장, 콜센터 등 다양한 곳으로 현장 실습을 내보낸다. 이 아이들의 성격이나 적성, 장래희망을 고려한 것이 아닌 비료공장, 사료공장 등 인력이 필요한 곳이면 내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를 보고 유진은 이게 어떻게 학교냐며 인력사무소 아니냐고 따지지만 취업률을 보고 지원금을 받는 특성화고 특성상 학생들을 유치하고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취업률에 목을 멜 수밖에 없다고 되려 한탄한다.
이에 유진은 교육청으로 향한다. 하지만 교육청에서도 마찬가지다. 장학사는 지방 교육청의 경우 교육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데 다른 지방과의 경쟁에서 밀릴 경우 그 지원금이 낮아지고, 그 경쟁은 특성화고는 취업률, 일반고는 대학진학률로 지표가 설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지원금을 못받으면 당장 문을 닫아야 하는 학교가 생기는 마당에 어떻게 아이들의 성격과 적성을 다 반영하고, 모든 것을 다 갖춘 곳으로만 취업을 보낼 수 있냐며 반문하면서 이것이 현실이라 유진에게 말한다.
유진은 그 앞에 좌절한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정성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 시스템과 싸워보고자 노력했지만 저 위에 있는 교육부까지 가서 따져봤자 이 정량적인 평가의 기준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량적인 평가는 굉장히 객관적이다. 누구나 보면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된다. 하지만 그 정량적인 평가만을 강조하다보면 목적과 수단의 전치현상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이런 정량적인 평가 속에 갇힌 우리 사회의 모습을 학생과 사회인 이 중간 지점에서 모두에게 외면받은 현장실습생을 통해 다시 한 번 꼬집어주고 있었다.
영화 <다음, 소희>는 우리의 망각 속에서 어떤 이들은 계속해서 사지에 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다음이 계속된다는 것을 묵직하게 잘 풀어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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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의 드라마, 아직도 안보셨나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집콕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 이불 속에서 드라마 정주행 하고싶은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OTT 서비스 열풍은 디즈니 플러스, 애플 TV 등 새로운 OTT 플랫폼들의 국내 상륙으로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 <마이 네임> 공개 이후 <지옥>을 공개하여 상승세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습니다.
<오징어 게임>, <마이 네임>, <지옥> 이외에 정주행하기 좋은 넷플릭스 드라마는 어떤 작품이 있을지, 함께 보시죠!
N D.P. - 6부작
출처 : 넷플릭스출연 :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손석구
줄거리 : 탈영병들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 (D.P.) 준호와 호열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을 쫓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하는 이야기
*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웹툰을 사실적으로 각색한 드라마로, 공개되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어일으키며 화제를 모은 드라마입니다.
N 인간수업 - 10부작
출처 : 넷플릭스출연 : 김동희, 정다빈, 박주현, 남윤수, 최민수
줄거리 : 돈을 벌기 위해 죄책감없이 범죄의 길을 선택한 고등학생들이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
* 10대 범죄를 다룬 스릴러 학원물로, 공개 당시 많은 사람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입니다.
N 퀸스 갬빗 - 7부작
출처 : 넷플릭스출연 : 안야 테일러 조이, 빌 캠프, 마리엘 헬러
줄거리 : 1950년대 한 보육원, 체스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소녀. 점점 더 넓은 세계로 향하며, 체스 스타의 여정을 이어간다. 하지만 더 이기고 싶다면 중독부터 극복해야 한다.
* 안야 테일러 조이가 주연을 맡았고, 미니시리즈 부문 포함 에미상 11개 수상, 골든글로브 미니시리즈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작품입니다.
N 에밀리, 파리에 가다 - 10부작
출처 : 넷플릭스출연 : 릴리 콜린스, 필립핀 르로이-뷔리우, 애슐리 박, 루카스 브라보
줄거리 : 봉주르,파리! 낭만의 도시에서 꿈의 직장을 갖게 된 에밀리. 프랑스어는 못하지만, 마케팅이라면 자신 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인생. 사랑과 우정은 여기서도 복잡하다.
* 골든글로브 후보에 오른 시리즈로, <섹스 앤 더 시티>의 대런 스타가 제작을 맡았습니다. 시즌 2가 확정되었다고하니, 아직 시즌1을 안본 분들은 빠른 정주행 추천드려요!
N 보건교사 안은영 - 6부작
출처 : 넷플릭스출연 : 정유미, 남주혁, 문소리, 유태오
줄거리 : 평범한 이름과 달리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건고사 안은영이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교사 홍인표와 함께 이를 해결해가는 이야기.
* 정세랑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잘 다루지 않은 독특한 드라마입니다.
N 브리저튼 - 8부작
출처 : 넷플릭스출연 : 피비 디네버, 레지 장 페이지
줄거리 : 1800년대 런던, 사교계에 첫발을 내딘 브리저튼 가문의 맏딸인 다프네가 최고의 바람둥이 공작인 사이먼과 계약 연애를 시작하며 벌어지는 아찔한 스캔들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로맨스를 담은 이야기.
* 에미상 후보에 오른 드라마로, <그레이 아나토미>의 숀다 라임스가 줄리아 퀸의 베스트 셀러 로맨스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한 시대물 드라마입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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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마음 가는 방향으로
OVERVIEW
비밀 문자 누슈에 대한 매료로 연결된 두 명의 중국인 밀레니얼 여성을 과거와 현재에 걸쳐 따라간다. 수백 년 된 이 언어는 여성 공동체의 연대, 희망, 생존을 위한 은밀한 지원 체계로 작동하면서 중국 여성들을 세대를 넘어 하나로 묶어왔다.
REVIEW
예외는 있었겠지만, 수천 년의 중국 역사에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복종해야 했고 읽거나 쓰는 것을 배울 수 없었다. 하지만 여자들은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비밀 문자인 ‘누슈’를 통해 때로는 신세 한탄을, 때로는 이루지 못할 꿈을 적어 내려가면서 여자들끼리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연대할 수 있었다. 이제 교육 기회가 균등해졌고, 여성의 권리도 전보다 나아지고 있기에 ‘누슈’는 더 이상 계승되기 어려운 ‘잊혀져 가는 문자’가 되어가고 있다. 이 작품은 여성들만이 이해할 수 있었던 문자 ’누슈‘를 각자의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는 두 여성을 통해 ’누슈‘의 역사와 중국 역사 속에서 여성의 의미, 그리고 그들이 ’누슈‘로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조명한다. 물론 ’누슈‘의 원래 의미와는 정반대로, 그저 예쁜 캘리그라피로만 인식하고 상업화하려는 관료들의 모습은 어처구니없기도 하지만, 불평등 속에서 자신의 삶과 생각을 기록하려고 노력해 온 중국 여성들의 ’놀라운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전진수)
세상 다른 수많은 사회처럼, 중국 봉건사회 또한 여성을 기존 제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교육과 사회생활은 요원했고, 자연스레 여성이 스스로 남긴 기록도 많지 않았다. 심지어 전족으로 발 뼈를 부수고 살을 뭉쳐 손쉬운 이동의 자유마저 금했다. 거기서 “노예 같은” 생활을 했다는 여자들은 자기들만 아는 문자를 만든다.
함께 괴로워했던 여자들만의 문자. 그 문자로 시를 짓고 노래를 하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살아가자는 응원을 전했다. 아주 오래 비밀로 내려오던 문자는 세상에 알려진 후로 누슈(女书)라고 불린다. 문자 그대로 여자가 썼다는 담백한 명칭이지만 거기 얽힌 이야기들은 주렁주렁 많다.
영화는 누슈의 어제와 오늘을 고루 비춘다. 누슈의 전승자인 후신이라는 인물을 시작으로, 몇 년 전부터 누슈를 배우기 시작한 쓰무라는 인물을 더하고, 누슈를 실제로 집에서 배운 누슈의 마지막 명장이자 후신을 가르친 허 선생님까지 이어, 누슈를 계속하는 이들을 담는다.
이들은 누슈를 사랑하고, 누슈의 의미를 지키고자 하지만, 가뜩이나 생은 쉽지 않은 것. 의미까지 더해 업고 가기가 쉽지 않다. 세상은 이들의 누슈를 향한 애정과 같은 시선으로 누슈를 바라보지 않는다. 후신의 글자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위한 자리에서 선물로 주어진다. 은밀한 여자들의 글씨였는데, 술잔을 든 남자들을 위한 선물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글씨와 시로 시작한 누슈는 이제 춤과 공연의 대상이다. 누슈 글씨를 쓰고 있는 여자들에게 몰려온 남자들이 "마을 미녀"들이 글을 쓰고 있다며 동물원에 온 것처럼 굴고는 "친구 하자"며 자기들끼리 낄낄거린다.
후신은 누슈로 상당한 성취를 이룬 인물이지만 이혼의 기억을 “여자로서의” 실패로 여기는 마음이 자꾸 올라온다. 다재다능하고 누슈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는 쓰무는 약혼자가 쉼 없이 던지는 말을 들으며 고민에 빠진다. 하루 만에 누슈를 해석해 왔던 듬직한 남자라 생각했응 텐데, 아직 결혼도 하기 전부터 쓰무를 들들 볶으면서도 자기는 부담 주고 있지 않다 말한다. 이들이 사는 오늘의 누슈를, 누슈의 기억을 가진 허 선생님도 바라본다. 그는 오늘날의 누슈가 원래의 누슈와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누슈 작품은 대다수가 자매애에 대한 것이다. 원부가를 지을 수도 있었겠지만, 누슈는 고통이 해소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에 마치 남자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여성 간의 연대와 지지를 택했다.
여전히 마을에는 새 신부가 나오고, 새로운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그중에는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이야기도 있겠지만, 사랑 아닌 것들도 사랑을 가장한다. 그 허위의 이면에는 몰이해와 몰상식이 있다. 누슈를 인정하고 누슈를 위한 행사에 서 있지만 정작 누슈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는 남자들처럼. 사랑과 결혼을 말하며 결국에는 상대가 취해야 할 도리를 가르치려 드는, 결혼도 하기 전부터 임신에 좋다는 쓴 약을 먹이고, 밥 먹으러 가는 길에 입에 귤이나 넣어주고, 여자가 알아들은 말을 굳이 되풀이해 설명하는 남자처럼.
봉건제도 속의 남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남자들의 몰상식이 횡행할 때, 누슈의 노래 가사는 생생하게 살아 여기까지 전해진다. 왜 여자들은 마음껏 놀 수 없는지, 왜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지 묻는 노래 가사는 본질을 비춘다. 이런 질문은 새롭고 급진적인 사상이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자연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것뿐인 것을. 대약진운동의 흐름 아래 남녀가 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일을 했던 시절을 피부로 기억하는 이들은, 따로 교육을 받지 않아도 피부로 안다.
누슈를 둘러싼 남자들의 모습은 촌극에 가깝다. 어떻게 저러나 싶을 만큼 우당탕쿵탕 엉망진창이다. 방향성과 타깃조차 설정하지 않고서 상용화를 하겠다고 설치고, 누슈 관련 행사 무대에 '구색을 맞추기' 위한 여성조차 세워놓지 않은 주제에, 제막식 하나도 제대로 못 해서 현판을 떨어뜨리고 난리가 난다. 그들을 보며 역설적으로 누슈의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21세기에 저러고 있다니 봉건사회에선 어땠을까. 욕하고 때리지 않으면 다행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도망칠 수도 없는 발을 부여잡고 집안 모든 남자들의 발을 씻겨야 했던 여자들의 삶에 누슈가 어떤 의미였을지.
언어의 본질은 소통이다. 허 선생님과 후신 사이의, 편지를 읽고 틀린 문장을 바로잡아 주는 장면이 뭉클하니 아름다웠던 이유는 바로 그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담길 때 비로소 글자는 의미를 갖는다. (마케팅도 거기서 시작했어야 했다. 누슈 상용화로 뭐라도 해보려고 한 멍청한 중국 남자들이여.)
세상의 풍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양한 말을 듣고, 세파에 흔들리고, 그러면서도 후신과 쓰무를 비롯한 동시대의 수많은 여자들은 자기 삶을 살아간다. 어떤 여자는 유리 천장을 깨는 것이 너무 힘드니 그냥 이 자리에서 행복을 찾아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누슈를 받아들인 이들은 앞길을 몰라도 마음 편한 길로 걸어가 보겠다 한다. 내가 떠받들어 살려야 하는 세상이 아니라, 내가 강해질 때 새롭게 피어날 세상임을 인지한 것이다.
이들은 누슈를 통해 과거와 대화하면서 오늘을 넘기고 내일로 향한다. 누슈 가사 속의 든든한 큰언니들이, 괴로운 한 세상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지지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모르고 가는 길이라도 씩씩하게 나아갈 힘이 되어줄 것이다.
2023. 04. 29. 17:00 CGV전주고사 8관 (247)
2023. 04. 30. 19:30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358)
2023. 05. 01. 16:30 CGV전주고사 5관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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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그럼에도 여전히 건재하는 사랑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메리 고 라운드 - <내 심장을 받아줘>
감독: 킴 올브라이트
출연: 안나 맥과이어, 함자 하크, 비나 수드 등
시놉시스: 사람의 심장이 물건으로 만들어졌고 그것을 분리, 교환하는 것이 가능한 대안 세계, 실리와 효율을 추구하는 가상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라이프잽'이 유행한다. 애나벨은 이와 정반대인 가진 사람이다. 그녀의 친구들조차 감정에 치우치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 날 그녀는 한 남자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남자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사랑고백에 이별을 말한다.
감정이 사치가 된 시대에도 '사랑'이 가치 있을 수 있을까? <내 심장을 받아줘>가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이다.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원작의 기본적 설정을 충실히 따라간다. 큰 설정은 두 개다. 하나는 사람의 심장이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물건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심장을 직접 뺐다 꼈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설정부터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독특한 상상력으로 가득 차있다. 일반적으로 자주 접하지 못하는 캐나다의 SF영화인만큼 작은 규모로 제작된 영화인데, 그렇기 때문에 가지는 한계를 역으로 이용한 영화로 보인다.
'자신의 가슴을 찢어 심장을 꺼낸다'는 것이 문자 그대로 본다면 고어 장르를 떠올리게 되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의 경우 장르 영화에 기대할 법한 톤 앤 매너를 분명히 가져가면서도 심장의 시각적 구현이나 주인공 애나벨의 순진무구한 성격이 이 영화만의 비현실적인 공간감을 잘 살려낸다. 원작이 연극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감이 없지 않겠으나, 특히나 각기 다른 심장 생김새가 연극 소품으로 느껴지는 면도 있다. 기술이 보다 발전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대안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아날로그의 방식으로 직접 만든 심장 모형과 카세트테이프를 비롯한 영화의 소품들은 훨씬 이전의 시대를 떠올리게 만들어 시대감의 부조화를 느끼게 만든다. 단순히 이 부조화를 보여주기만 했다면 엉성함에서 그쳤겠지만, 영화는 이렇게 만들어진 아기자기한 아날로그의 감성으로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며 특유의 사랑스러운 톤으로 범론적 주제로 도착하는 데 성공한다.
'사랑'에 대한 영화이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어느 커플이 주인공이지만, 정작 이 영화는 사랑을 그리기에 부족해 보이는 환경에서 시작된다. 영화 속 세계에서 애나벨의 직장과 연결되기도 하는 애플리케이션 '라이프잽'은 사람 간의 관계에서 필수 요소로 취급된다. 사람들은 어플을 삶에 가까이 두며 타인과의 관계 향방을 결정한다. 어플에서 매칭률이 높다면 그 관계가 지속되는 거고, 아니라면 재고해야 한다. AI가 상대에게 줄 선물을 골라주며 취향을 분석해 준다. 서로의 일정을 맞춰 만날 날을 자동으로 지정해 주고, 그것에 당연하게 따른다. 결론적으로 모두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수동적인 삶의 모습이다. 애나벨이 친구들에게 받는 취급처럼 감정은 사치인 세상이며 효율이 중시되는 사회다. 새로운 관계를 꿈꾸거나 그 안에서 설렘이 생길 리 만무하다.
그 속에서 애나벨은 거의 유일하게도 바로 그 '감정'을 잃지 않은 존재다. 심장이 '등불'인 것처럼 주변을 밝게 만들고 자신의 따듯한 감정을 전이시킨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라이프잽의 도움을 받지 않는 '정상적인 사랑'을 꿈꾼다.
"내 심장의 감정으로 영원히 고통받길 바라요."
하지만 희망을 가졌던 애나벨도 조지가 그녀의 사랑고백을 단칼에 거부하면서 무너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연락이 되지 않던 엄마의 죽음까지 겹치고, 너무도 슬픈 감정을 감당할 수 없던 애나벨은 일전에 봤던 남자처럼 심장을 자신의 몸에서 꺼내버린다. 이를 조지에게 보내는 그녀의 행동은 일종의 복수심에서 시작했겠지만, 이를 통해 두 사람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서로의 반대된 입장에서 진실된 관계와 나 자신을 찾아가며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현대 사회를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과장된 영화 속 세계일지라도 기술이 발전되고 사람 간의 직접적 관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그 방향성은 결국 같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심장 각자의 모양이 성격에 따라 다르다는 설정이나 일종의 디스토피아 실험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배경이 정반대의 방향이긴 하나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더 랍스터>를 느슨하게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내 심장을 받아줘>는 서로 간의 유대가 점점 사라져 가는 시대에도 사랑과 감정은 여전히 어딘가에 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진 영화로 다가온다.
상영일정
7/1 14:00 - 15:32 CGV 소풍 10관
7/3 13:30 - 15:02 CGV 소풍 5관
6/30 10:00 ~ 7/9 23:59 온라인 상영(wav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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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가지 위에 남은 두터운 온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스스로 가지를 끊어내는 잎새, 마사.
- 마사를 통해 죽음을 알아가는 잉그리드
- 잉그리드가 남긴 온기
- 엔딩 결말 해석
룸 넥스트 도어 (The Room Next Door, 2024)
빈 가지 위에 남은 두터운 온기
개봉일 : 2024.10.23.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07분
감독 :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 틸다 스윈튼, 줄리안 무어, 존 터투로, 알렉산드로 니볼라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유명 작가인 잉그리드는 친구를 통해 젊은 시절 잡지사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 마사의 암 투병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간다. 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그들이 처음 만났던 젊은 시절엔 상상할 수 없었던 삶과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사의 병은 점점 깊어지고,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죽음의 순간을 함께 해달라’고 부탁한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젊은 시절엔 주로 사랑, 예술을 향한 도발적이고 뜨거운 욕망과 파격적인 여성의 삶을 그리는 감독이었다. 그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욕망, 삶의 뿌리가 되는 어머니와 예술, 고통으로 이야기의 범위를 넓고 깊게 확장해왔다. 이젠 노년의 나이가 된 그가 만든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부당함과 남성 권력이 넘치는 삶 속에서도 자신만의 싸움을 이어가는 한 여성과 그의 곁을 지킨 따스한 여성에게 바치는 헌시이기도 하다.
이별, 고통 속에서도 다시 삶의 불씨를 찾아냈던 전작들에 비해 <룸 넥스트 도어>는 강렬한 붉은빛과 치열함을 조금 덜어낸 미적지근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흘러간다. 영화의 끝에서 고요하게 마지막을 담아내고 그 뒤에 남겨진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알모도바르 감독의 눈은 여느 때보다 영별하고 다정하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스로 가지를 끊어내는 잎새, 마사
의학의 발전, 안정된 사회 등의 이유로 기대수명과 평균 수명 모두 80세가 넘어가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노화와 죽음을 피해 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직 정확히 정의되진 않았지만 우리의 몸은 보통 25세~30세쯤이 되면 노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자라나는 건 길어야 30년, 늙어가는 건 50년. 게다가 낡은 몸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도 버릴 수도 없다니. 살아간다는 건 참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이다.
마사는 이 부당함을 거부한다. 대부분의 사회는 환자에게 스스로 죽을 권리를 주지 않고 심장 또한 주인의 마음에 맞춰 멈춰주지 않는다. 모두가 마사가 죽기보단 병과 싸워 이겨내길 최선을 다하길 바라고 그의 심장은 지나치게 열심히 뛰고 있다. 마사는 암 환자에겐 ‘암과 싸워 이기면 대단한 것, 지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회의 시선이 따라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시선과 튼튼한 심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삶을 마감할 계획을 세운다.
마사는 열려있던 빨간 문을 닫은 후 초록 선베드에 누운 채 스스로 삶을 마무리한다. 그는 가지에서 떨어질 날만을 기다리는 시든 잎새가 되는 것 대신 스스로 몸을 털며 가지를 벗어나는 생생한 잎새가 되길 선택한다. 마사는 원색인 노란색 옷을 차려 입고 스스로 생을 마무리한다. 그 어떤 색을 섞어도 흉내 낼 수 없는, 더 분해하려 해도 분해되지 않는 고유한 샛노란 색의 옷을 입고 말이다. 이 노란색 옷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마사의 확고한 삶과 죽음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평생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전쟁에 뛰어들며 치열하게 살아온 여성 마사는 투병이라는 전쟁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싸우고 병이 할 일을 빼앗으며 끝내 승리를 거머쥔다.
마사를 통해 죽음을 알아가는 잉그리드
처음 카메라에 담긴 마사의 얼굴엔 밝은 빛과 그늘이 반반 공존하고 있다. 마사를 만나러 온 잉그리드는 햇빛 반, 그늘 반으로 구성된 병원 로비로 들어오고 직원의 안내를 따라 그늘진 복도 방향으로 걸어간다. 항상 인생의 밝은 면. ‘삶’만을 생각하며 살던 잉그리드는 그늘 진 복도의 끝에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는 마사를 만나고 그의 죽음을 지켜보며 지금껏 미지의 영역이었던 죽음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간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죽어가고 있기도 하다. 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죽어가는 이인 마사와 집 밖에서 자라나는 푸른 풀이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삶과 죽음도 딱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생명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기 전까진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종군 기자로 일하며 수많은 죽음을 봐온 마사와 다르게 지금껏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없는 잉그리드는 여전히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회피하고 싶어 한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함께 숲속 집에 머물며 죽음을 준비하고 삶을 기대한다. 마사가 삶이라는 빨간 문을 스스로 닫을 준비를 하는 동안 잉그리드는 보색(반대색)인 녹색 스탠드. 즉 죽음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며 죽음이 만든 그늘을 두려워하고 내일도 우리가 살아남길 바란다.
하지만 죽음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찾아오고 잉그리드는 마사의 죽음을 목격한다. 이후 경찰 조사를 마치고 마사의 딸 미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잉그리드는 2층에 올라간다. 삶만을 생각했던 자신이 머물던 1층이 아닌 삶과 죽음을 함께 생각했던 마사가 머물던 2층에. 그리고 그곳에 앉아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죽음과 마사를 생각한다.
다음 날 잉그리드는 미셸과 함께 선베드에 누워 마사가 죽음을 결심하며 읊었던 [죽은 사람들]의 구절을 변주하여 읊는다. “눈이 내린다. 네 딸과 내 위로.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그는 열려있는 문 너머와 마사와 똑닮은 젊은 생명인 미셸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자신도 언젠가 마사처럼 죽음에 가까워질 운명임을 받아들인다.
함께 고독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마음
죽음을 앞둔 마사는 고독하다. 치료를 중단한다고 했을 때 미셸은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무심한 반응을 보였고 남편이었던 프레드는 미셸이 어릴 때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제 남은 건 친구들뿐이다. 그래서 마사는 친구들에게 ‘죽음의 순간을 함께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자주 왕래했던 친구들은 모두 그의 부탁을 거절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남에 가까웠던 잉그리드만이 마사와 함께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잉그리드는 왜 자신이 마사의 부탁을 수락했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숲 속집에 머물면서도 매일 마사가 죽지 않길 바랐고 생판 모르는 트레이너 앞에서 죽어가는 친구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왜 부탁을 들어주었냐는 데이미언의 질문에 그럴싸한 답변을 하지도 못하고 스스로도 마사와 자신이 ‘죽음을 함께할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잉그리드는 아무 이유도 조건도 없이 마사의 손을 잡고 그의 옆자리에 누워 잠을 청한다. 마사는 옆자리에 누운 잉그리드의 기척을 느끼며 슬쩍 웃어 보인다. 아무 조건 없이 누군가의 고독을 함께 바라보고 그것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마음. 그 마음이 남기는 온기는 가히 두텁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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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이야기의 공명, 이야기로 묻고 삶으로 답하다
소통의 부재는 영혼의 부재
우리 집에는 네 명의 인간과 두 마리의 개가 함께 살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같은 종의 동물이라도 각각 전혀 다른 소통방식을 구사한다. 이를테면, ‘네가 먹고 있는 것을 줘.’라고 표현하고 싶을 때도 “달라”라고 부탁하는 인간이 있고, 손으로 뺏어 먹는 인간이 있다. 개는 엎드려서 침을 흘리거나 양손(앞발)을 사람에게 올리기도 한다. 각각의 종은 서로 같은 언어 체계를 공유하지만, 같은 소통방식을 구사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손이 먼저 나가는 인간은 앞발을 올리는 개와 가까운 소통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개도 인간도 종과 언어를 막론하고 저마다 소통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진정한 언어는 침묵일 수도 있고, 육체적 관계일 수도 있고, 운전 방식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한국어와 같은 언어 체계는 진정한 소통방식을 번역한 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언어를 뛰어넘어 소통하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진정한 소통방식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히로시마 연극제의 상주 예술가에게 배정되는 운전사 와타리 미사키(미우라 토코)는 말수가 적지만 차와 상대를 세심하게 배려한다. 그가 밟는 액셀과 브레이크 역시 하나의 소통 수단이다. 미사키는 이를 통해 차 안의 공기와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미사키의 운전은 중력도, 운전하는 사람도 잊게 할 정도로 부드럽다. 이 무저항의 운전은 미사키의 고향 가미주니타키무라에 내리는 눈송이처럼 고요하다. 자신의 존재를 지우며 상대를 편안하게 해 준다. 미사키가 배워야만 했던 소통방식은 그런 것이었다.
배우이자 연극 연출가인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자신의 진짜 마음을 숨기는 방식으로 소통한다. 그의 언어는 침묵 또는 회피라고 할 수 있다. 가후쿠와 드라마 각본가 오토(키리시마 레이카)는 이상적인 부부처럼 보인다. 블라디보스톡 연극제의 항공권 예약이 미뤄져 집으로 돌아간 가후쿠는 아내 오토의 외도를 목격하고 아무 말도 없이 뒤돌아 나간다. 가후쿠가 외면한 진실은 아내의 외도만이 아니다. 그들의 결혼 관계는 사실상 끝났고, 두 사람은 함께할 수 없다는 진실을 그는 끝끝내 마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토의 죽음으로 가후쿠는 자신의 마음과 진실이 마주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단 한 번의 식사 장면이 등장한다. 히로시마 연극제 담당자 윤수(진대연)가 마련한 저녁 식사 자리에는 유나(박유림), 가후쿠, 미사키 그리고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가 함께한다. 이 식사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대부분 번역된 말이다. 전혀 다른 언어들이 오가고 누군가의 입을 빌려 다시 변환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만, 영화의 어떤 장면보다도 따뜻하고, 안정적이며 소통과 공감이 느껴진다. 이 장면은 언어를 뛰어넘는 따뜻한 소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가 소통의 부재를 겪는 것은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영혼이라 부르는 그것이 언어 안에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와 텍스트의 관계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언어와 텍스트는 닭과 달걀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 가후쿠 부부는 4살 딸을 폐렴으로 잃은 후로 관계를 통해 이야기를 잉태하기 시작한다. 오토의 음성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가후쿠의 번역을 거쳐 오토에게 전해진다. 다시 오토에게 돌아온 이야기의 잔상들은 각본, 즉 텍스트로 태어날 준비를 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이야기는 단순히 캐릭터와 플롯이 아니라 무의식과 욕망의 집합체와 같다. 오토의 음성과 그것을 양분 삼아 만들어진 이야기는 오토의 창조물이지만, 독립된 생명체처럼 타인에게 다른 모습으로 뿌리내리게 된다. 가후쿠에게 오토의 이야기는 진실이 드러나기 직전의 두려움과 불안의 기척을 품은 채 마무리되었지만, 다카츠키(오카다 마사키)에게 그 이야기는 불길한 고요함으로 가득 찬 세상의 모습이다.
각본으로 만들어진 텍스트는 결국 발화함으로써 완성된다. 그렇기에 오토는 자신의 이야기와 무의식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완성해줄 누군가를 찾았고, 그가 바로 다카츠키였다. 가후쿠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며 감동하고, 오토의 열렬한 팬인 다카츠키는 ‘바냐’라는 인물에는 쉽게 이입하지 못한다. 다카츠키는 체호프의 ‘바냐’보다 오토의 이야기 속 칠성장어의 전생을 가진 소녀를 닮은 인물이다. 그는 체호프의 성실하며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세계보다 무의미한 기다림과 충동과 욕망의 세계에 끌린다. 불가해하고 불길한 무언가로 가득한 오토의 텍스트야말로 다카츠키의 삶을 담을 텍스트다. 그는 오토와 같은 언어, 즉 같은 소통 방식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이다. 다카츠키는 오토의 텍스트를 완성했으나 바냐가 되어 체호프의 텍스트를 완성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이와 반대로 이성적이며 통제적인 가후쿠는 오토의 텍스트를 똑바로 마주할 수 없다. 가후쿠가 오토에게서 듣는 것은 오직 이야기뿐이다. 자기 안의 진실을 마주하지 못한 가후쿠는 이야기 안의 오토를 외면한다. 가후쿠가 오토의 목소리로 듣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녹음된 ‘바냐 아저씨’의 대본이다. “대사를 입에 올리면 나 자신이 끌려 나와” 오토의 음성으로 울리는 체호프의 텍스트는 가후쿠에게 계속해서 진실보다 깊은 것을 묻는다. 가후쿠는 체호프와 오토가 자신에게 걸어오는 말을 애써 피하고 있다.
오토의 죽음으로부터 2년이 지난 후 히로시마 연극제에 초대된 가후쿠는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의 연출을 맡는다. 가후쿠의 연극은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그리고 한국 수어까지 서로 다른 언어가 한데 어우러진다. 이 특별한 공연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대본 리딩이다. 어떤 감정도 없이 아주 천천히 대본을 읽는 것이다. 배우들은 불완전한 언어를 뛰어넘어 소통하는 동시에 온몸으로 체호프의 텍스트를 체득해야 한다. 언뜻 이해하기 어렵고 지루한 이 과정을 가장 먼저 이해한 것은 수어를 사용하는 유나다. 자신의 언어가 타인에게 닿지 않는 것이 평범한 일인 그에게 보고 느끼며 공감함으로써 기능하는 연기는 몸에 잘 맞는 옷과 같다. “체호프의 글이 내 안에 들어와 움직이지 않던 몸을 움직이게 해 줘요” 체호프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유나와 소통하고 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하루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지만, 영화의 영혼은 체호프의 텍스트에 담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는 ‘바냐’가 한때 누이동생의 남편이자 존경하는 학자였던 교수 세레브랴코프를 원망하고, 교수의 두 번째 부인 옐레나를 사모하게 되며 겪는 갈등을 다룬다. 체호프는 우리가 갈등과 절망, 적의와 증오를 넘어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고난과 슬픔보다 미래의 희망과 기쁨을 꿈꾼다. 체호프의 텍스트는 하마구치 류스케가 선택한 많은 인생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그릇과 같다.
대본 리딩이 주를 이루는 연극 연습과 오토의 목소리로 녹음된 ‘바냐 아저씨’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붉은색 사브 900을 오가며 영화는 체호프의 텍스트를 반복한다. 체호프의 텍스트는 대사뿐만 아니라 이야기로도 반복된다. 누이동생을 잃고, 존경하던 교수에게 실망을 거듭하며 바냐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다. 바냐가 교수를 위해 바쳤던 청춘은 이미 흘러갔고 옐레나에 대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소냐의 사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것은 여전히 엉망이지만 바냐와 소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일을 계속한다. 딸과 아내를 잃은 상처를 마주하게 되는 가후쿠 뿐만 아니라 아이를 잃은 상실을 견뎌내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 유나와 애정과 증오의 대상이었던 엄마를 잃은 미사키의 삶 역시 체호프 텍스트의 또 다른 변주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언어의 불완전함을 뛰어넘어 공명을 시도하는 이야기의 작동방식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는 일견 언어의 무용함을 말하는 듯 하나 각자의 언어와 이로 만들어진 텍스트는 호응하는 삶과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가깝다. 감독은 언어의 가면을 쓴 이야기를 단지 텍스트가 아닌 독립된 생명체처럼 마주 보게 한다. 그렇게 언어와 텍스트는 계속해서 삶과 사람에게 호응을 시도하고 영화는 그 순간을 담아낸다.
삶과 사람을 담는 그릇
가후쿠와 미사키가 지나온 터널처럼 우리가 지나온 궤적을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가 모두에게 필요하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이처럼 불완전한 언어와 불가해한 텍스트에 사람과 삶을 담음으로써 이야기에 힘을 불어넣는다. 언어와 텍스트가 사람과 삶을 만나는 순간 발생하는 에너지는 영화 안팎으로 퍼져나가 관객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카츠키와 가후쿠가 차의 뒷좌석에서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 후 가후쿠는 처음으로 미사키의 옆에 앉는다. 차 안에서 흡연을 피하던 가후쿠는 미사키에게도 담배를 권한다. 차 위를 향해 뻗은 두 사람의 손에서 담배 연기는 망자를 위한 향처럼 피어오른다. “넌 엄마를 죽였고, 난 아내를 죽였어” 오래된 죽음을 놓지 못하고 있던 두 사람은 도망치고 미뤄왔던 애도를 시작한다. 카메라는 나란히 피어오르는 연기에서 멀어져 익스트림 롱숏으로 이리저리 얽혀 있는 도로와 어찌 됐든 앞으로 나아가는 차들을 바라본다. 그 속에서 점처럼 작아진 사브 900도 앞으로 나아갈 거라고 믿으면서.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세상에 가서 이야기해요. 우린 고통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겠지요. 그러면 우린 기쁨에 넘쳐서 미소를 지으며, 지금 우리의 불행을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우린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소냐 역의 유나가 바냐 역의 가후쿠를 감싸 안고 수어로 전하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연극을 보는 듯한 롱숏으로 길게 이어진다. 그리고 이를 응시하는 미사키의 곧은 정면 얼굴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체호프의 텍스트에 대답한다. 체호프의 텍스트와 유나의 언어 그리고 미사키의 삶이 만난 이 장면 하나로 <드라이브 마이 카>는 그 역할을 다한 것이다. 감독이 전작 <해피 아워>(2015)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무게를 기대며 중심을 맞추는 소통에 집중했다면,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사람과 텍스트가, 이야기와 이야기가 마주하는 소통에 집중한다.
가후쿠가 히로시마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시작했던 영화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미사키의 뒷모습을 보며 끝난다. 도망치듯 떠나왔던 가미주니타키무라를 뒤로 하고, 멈춰 설 수밖에 없었던 히로시마를 벗어나 새로운 땅에서 미사키는 앞으로 향한다. 사브 900을 타고 한국 부산의 도로를 달리는 미사키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드라이브를 즐긴다. 끝없이 이어진 도로처럼 삶은 계속 이어지고, 언제나 또 다른 슬픔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멈추지 않는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마침내 텍스트와 언어에 담긴 사람과 삶은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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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션 파서블 영화 후기 / 이선빈, 김영광 케미 / 코믹과 액션 둘 다 잡으려다 아쉬움이 더 커진.. / 마지막 액션씬은 엄지척!!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미션 파서블”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엔드크레딧과 동시에 시작되는 하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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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나병의 영화정보 #10? ?영화 캐스팅이 궁금하다고?!?
?씨나병의 영화정보 #10? ⠀ ?열 번째 주제? ⠀ ?영화 캐스팅이 궁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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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쿠라우> 30초 예고편
미지의 땅 ‘바쿠라우’.
마을 족장 카르멜리타의 장례식 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총격으로 구멍 뚫린 물 수송 차량,
하늘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비행 물체,
마을 곳곳에서 시신까지 발견되며
주민들은 혼란에 빠지는데…
이곳에 절대 발 들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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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피노키오>
140년 간 전세계 사람들을 꿈꾸게 만들었던 명작
동화 ‘피노키오’가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