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예슬2021-11-29 21:52:52
공평한 사회를 위해, 나의 미래를 위해
<창문없는 방> 영화리뷰
<창문 없는 방>은 레바논, 중동지역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 도우미들의 현실을 다룬 영화이다. 레바논 여성들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과 고충을 다루는 내용으로 영화를 보고 나서는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스포일러를 좋아하지 않아 줄거리를 안 읽고 제목만 보고 봤는데 아무 생각 없이 케이크 먹으면서 보다가 답답해서 물을 벌컥벌컥 마신 게 생각이 난다.
영화에서는 여러 사람의 삶을 소개하는데 그중에 영어를 좋아하는 아이가 영어를 더 배우고 싶어서 지인의 소개로 중개인을 만나 레바논에 가게 된 일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기는 나름대로 유학이라는 꿈을 키우고 다시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오지 않고 거기서 계속 거기서 살 거라고 다짐하며 기대를 가득 안은 채 레바논에 간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자기 생각과는 정반대인 노동착취를 당하고 학대받고 온갖 비난을 받았다는 점에서 너무나 분했고, 똑같이 배우고자 하는 학생으로서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카팔라 시스템`을 이용해 권력으로 여성들의 자유, 인권과 존엄성을 짓밟고 무시했다. 여성 인권이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고 하나, <창문 없는 방>을 통해 낱낱이 여성 노동착취를 한 층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그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었다.
당장 내일부터 이런 인권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그래도 서서히 조금씩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묵인이 아닌 여럿의 외침을 통해 한 단계씩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동지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도 아직 여성의 인권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같은 사람으로서 그 나이대에 해야 마땅한 일. 공부면 공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기회, 자신의 노력과 성과에 대해 모두가 수긍하는 보상.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에 막연하게 뿌리 잡고 있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계속 이어져가고 있다. 심지어 누구는 이러한 생각조차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옳지 않다고, 한쪽으로 편향된 사고와 가치관임을 알리도 잘못된 점은 바로 잡아, 떳떳하고 자신 있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실제 여성분들의 삶과 인터뷰를 담아서 조금이나마 이 심각한 상황을 알릴 수 있는 기회여서 좋았다. 길다면 길고 어떻게 보면 짧고도 짧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많은 사람이 여성 인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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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외설적 돈키호테가 쟁취한 표현의 자유
7★/10★
이 영화는 어느 찢어지게 가난한 산골 집안에서 밀주를 팔던 소년 래리 플린트가 세계적 성인 잡지 《허슬러》를 창간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자수성가 성공 스토리는 아니다. 영화에는 래리 플린트가 법정에서 무수한 시련을 겪는 과정과 그의 조력자인 변호사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법정 영화인 것도 아니다. 〈래리 플린트〉는 어느 외설적 돈키호테가 표현의 자유를 주창하며 법, 체제, 규범의 경계선에서 줄타기하며 질문을 생산하는 영화다.
동생과 함께 허접한 스트립 바를 운영하던 래리는 가게를 홍보하기 위한 뉴스레터를 제작하다 성인 잡지 시장의 틈새를 발견한다. 그 영역의 절대 강자라 할 수 있는 《플레이보이》는 선정적이긴 했지만 ‘고급’스러웠다. 외설적인 사진과 수준 높은(혹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기사를 함께 배치하는 전략이었다. 래리는 확신했다. 《플레이보이》를 사는 사람 중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를 읽는 이는 아무도 없을 거라고. 그래서 사진과 어울리는(그러니까 ‘저속한’) 글을 실은 잡지 《허슬러》를 만들었고, 금세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대놓고 ‘외설’을 표방한 래리는 무수한 법적 시비에 휘말렸다. 음란물 유포 조직 범죄를 비롯해 법정 모독죄로 처벌받는 등 감옥신세를 졌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에 대한 일종의 괘씸죄였다. 나중에는 수백만 명의 신도를 가진 유명 목사 제리 폴웰을 풍자하는 글을 실었다가 천문학적인 명예훼손 소송에 시달리기도 했다. 특히 폴웰과의 소송이 중요했는데, 일부 진보 언론의 지지가 있긴 했으나 당시 언론은 이 재판을 두고 ‘성직자 대 포주, 하나님 대 악마’의 재판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래리는 끝내 승리했고 표현의 자유의 수호자가 되었다. “수정헌법 1조가 저 같은 쓰레기를 보호한다면 모든 국민을 보호하겠죠.” 래리 플린트는 음란과 외설의 모호한 기준,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위계,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을 지배하는 도덕 규범의 정치적 허점 등을 파헤치며 무수히 많은 유의미한 논쟁을 촉발했다. 설령 쓰레기 같은 방법을 통해서일지언정.
영화는 이 과정에 그가 겪은 개인사적 어려움을 더한다. 래리는 총격을 받아 하반신이 마비되었고, 이 통증으로 한때 마약성 진통제 남용 문제에 시달렸다. 자기가 운영하던 바에서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만난 아내이자 래리가 가진 외설적 상상력의 원천인 알시아 역시 마약 문제에 시달리다 에이즈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래리가 법정에서 도발을 이어가자 판사는 그의 정신 건강을 의심하며 구속복을 입어야 하는 정신병동에 넣었다. 래리는 이 모든 시련 속에서도 자신을 압박하는 것들에 굴복하기를 거부했다. 〈쇼생크 탈출〉의 앤디와 마찬가지로, 래리 역시 진정한 의미에서 미국식 자유를 체득한 ‘자유인’이었다.
굴복하지 않는 래리의 정신을 그의 남성성과도 연계해볼 수 있겠다. 하반신 마비 후 래리는 성적 기능을 상실한다. 래리가 더한층 투사가 되는 건 이 이후부터다. 그의 캐릭터는 일관됐다. 하지만 이전에는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경제적 성공, 젊고 아름다운 아내, ‘외설’과 화제성의 정점에 있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식 능력을 상실한 후에 그의 지위는 조금 애매해진다. 무려 《허슬러》 발행인이 발기조차 되지 않는 남자라니? 그의 ‘투쟁’은 어쩌면 꺾여버린 자기 남성성의 일부를 여전히 빳빳하게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존 인물 래리가 지미 카터의 시대와 레이건의 시대를 모두 거친 인물이라는 점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영화에는 래리가 종교 생활에 열중인 카터의 누나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카터의 시대에 래리는 소송에 시달렸을지언정 삶이 위태로운 상태까지 몰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레이건의 시대에는 달랐다. 그가 마주한 모든 투쟁의 수준이 더한층 심화되었다. 그를 표현의 자유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만든 건 역설적으로 래리를 지워버리고자 했던 성적 보수주의, 엄숙주의자들이 득세한 세상이었다. 1960~70년대의 페미니스트 해방운동에 대한 반동이 뜻밖에도 래리를 하나의 아이콘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래리 플린트라는 인물을 통해 한 사회의 성 문화와 규범, 도덕과 법의 모순을 폭넓게 살피는 이 입체적인 영화의 유산은 2024년 베니스영화제 상영작 〈디바 푸투라〉로 이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건 ‘포르노/외설 혁명가’의 얼굴이 왜 늘 여성을 착취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성애자 남성 포르노 제작자인가 하는 점이다. 앞선 두 영화뿐 아니라 션 베이커의 〈레드 로켓〉 등 포르노/외설 제작자 혹은 스타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에서는 개별 주제 의식과 완성도를 떠나 ‘포르노-자유-(이성애) 남성’의 상관관계가 굳건하다.* 왜 성을 ‘착취’하는 것도, ‘해방’하는 것도 모두 포르노/외설 제작자 남성인가? 고민해볼 일이다.
*물론 포르노/외설 소재 영화가 늘 그런 건 아니다. 미국 사회와 포르노 스타의 흥망성쇠를 연계한 〈부기 나이트〉, 어느 남성 스트리퍼가 자신과 일을 긍정하는 과정을 그린 〈매직 마이크〉, 게이 포르노 스타를 주인공으로 한 〈킹코브라〉, 여성 스트리퍼들의 이야기를 담은 〈허슬러〉, 여성 성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아노라〉 등의 영화도 있다. 그러나 이들 영화에서 주인공은 성과 자유의 구원자라기보다는 그 한가운데에서 휩쓸리며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는 존재로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남성) 포르노 제작자는 ‘해방’과 ‘자유’의 아이콘인데 반해 포르노 스타는 성별과 성적 지향을 막론하고 어딘가 스산한 결말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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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12월 신작
넷플릭스 12월! 신작 추천5편
종이의집: 공동경제구역 파트2
통일 한국의 조폐국을 강도단이 장악했다
인질들이 건물 안에 갇혀 있는 상황
경찰은 어떻게든 빨리 강도들을 제압하고,
이 작전을 설계한 수수께끼의 인물을 찾아내야 한다
크리에이터: 김홍선, 류용재, 김환채, 최성준
출연: 유지태, 김윤진, 박해수, 전종서, 이원종, 박명훈, 김성오, 김지훈, 장윤주, 이주빈, 이현우, 김지훈, 이규호, 임지연 등
장르: 범죄, 한국드라마, 스릴러
공개: 12월 9일
솔로지옥2
새로운 싱글 출연자들이 사랑을 찾아 외딴섬에 모였다
특별한 사람과 함께 이곳을 탈출해 호화롭고 로맨틱한
휴양지로 떠나게 될 사람은 누구인가?
크리에이터: 김재원, 김나현
출연: 홍진경, 이다희, 규현, 한해
장르: 경쟁, 리얼리티
공개: 12월 13일
위쳐 블로드 오리진
위쳐의 세계가 펼쳐지기 1,000여 년 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제국에 맞서고자 뭉친 엘프 세계의 추방자 일곱 명이
험난한 원정길에 오른는데...
크리에이터: 데클런 더 바라, 로런 슈미트 히스릭
출연: 소피아 브라운, 로런스 오푸어런, 양자경, 미런 맥, 레니 헨리, 제이컵 콜린스 레비
리지 애니스, 휴 노벨리, 프란체스 밀스, 에이미 머리 등
장르: 판타지, 액션, 드라마, 도서원작
공개: 12월 25일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
명석한 두뇌와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특별한 소녀
자신의 이야기를 바꾸려 당당히 나서자
기적과도 같은 결과가 찾아오는데...
감독: 매튜 워처스
출연: 얼리샤 위어, 엠마 톰슨, 라샤나 린치, 시티븐 그레이엄,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신두 비
장르: 뮤지컬, 도서 원작
공개: 12월 25일
구데타마: 엄마 찾아 뒹굴뒹굴
그저 뒹굴대고 싶은 달걀 구데타마
귀찮지만 하룻병아리 샤키피요와 함께 대모험에 나선다
엄마를 찾기로 한 샤키피요의 결심 때문에...
크리에이터: 정지우, 한지완
출연: 나카오 아키요시, 모토라 세리나, 미나가와 사루토키, 타메우치 슌스케,
후쿠시마 세이란 등
장르: 만화, 애니, 키즈
공개: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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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셜미디어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 영화 '소셜 딜레마'
무심코 휴대전화를 꺼낸다. 시간도 때울 겸 평소 즐겨 쓰는 소셜 미디어 앱으로 들어간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브런치 등 형식이나 종류도 다양하다. 화려한 문구와 이미지가 시선을 자극한다. 마음에 드는 영상이 없다면 화면을 당겨서 쉽고 간단하게 새로고침 한다. 새로운 콘텐츠가 알고리즘에 의해 끊임없이 등장한다. 끌리는 콘텐츠를 클릭한다. ‘이것까지만 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난다. 영화 ‘소셜 딜레마’는 누구나 해봤을 경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영화 ‘소셜 딜레마’
영화 ‘소셜 딜레마’는 소셜미디어의 문제점을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이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일했던 실리콘벨리 전문가들의 솔직한 인터뷰를 담았다. 구글 디자이너였던 디자인 사상가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의 경험으로 시작한 영화는 그가 ‘Gmail’에서 했던 업무와 소셜 미디어에 중독된다고 느낀 상황을 설명한다. 이어서 광고로 대표되는 수익 창출 구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결과적으로 소셜미디어가 10대 청소년이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다룬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영리하게 계획된 다큐멘터리
줄거리만 보면 전문가들이 지루한 인터뷰를 늘어놓는 영화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제작진은 무서울 만큼 영리하게 소셜미디어의 위험성을 시청자에게 설득한다. 앞서 언급한 ‘트리스탄 해리스’의 경험을 다룰 때는 애니메이션으로 재연했고 그래프 하나를 표현해도 메시지가 극대화되도록 연출했다.
마지막 필살기로 미국의 한 가정을 묘사한 드라마 장르를 추가했다. 부모님과 삼 남매로 이루어진 가족은 스마트폰 사용으로 갈등을 겪는다. 엄마와 첫째 ‘카산드라(카라 헤이워드)’는 가족들의 잦은 스마트폰을 걱정하는 반면 둘째 '벤(스카일러 지손도)’과 셋째 ‘아일라(소피아 해몬소)’ 는 별일 아닌 걸로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다며 반발한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아일라’는 10대 여성을 대표한 인물이다. 어린 나이부터 소셜미디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하고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한다. 영화는 ‘벤'을 통해 소셜미디어가 사용자를 유혹하는 방식을 SF영화처럼 보여준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접하는 정보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점과 음모론 같은 가짜 뉴스를 믿게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낸다.
‘소셜 딜레마’ 속 드라마는 현실을 극적으로 표현해서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한다. 동시에 드라마가 완벽한 허구는 아님을 증명하듯 ‘#pizzagate’, ‘미얀마 로힝야족 사태’의 실제 뉴스 보도와 각종 연구자료로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이처럼 인터뷰, 드라마, 실제 뉴스 보도를 넘나드는 구성은 당겨진 고무줄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만든다.
소셜미디어는 정말 나쁘기만 할까?
대부분의 기술과 소프트웨어가 그러했듯 개발자들은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소셜미디어를 만들었다. 그래서 영화 속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의 기술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사회의 어두운 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폭발적으로 퍼지면서 발생할 악영향을 지적한다. 인터뷰의 한 가지 예시로 페이스북의 ‘좋아요’ 기능이 있다.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마음과 자신감을 주기 위해 해당 기능을 만들었지만, 역으로 ‘좋아요’를 받지 못해서 좌절하는 상황이 생겼다는 것이다.
기술의 끝은 결국 사람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공감할 한 문장이 소셜미디어를 향한 비평과 자성의 목소리가 필요한 이유이다. 전문가들은 관련 법이 뒤쳐져 있다고 주장하며 기존 미디어나 통신망에서 이루어지는 규제가 디지털 프라이버시에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소셜미디어의 막대한 데이터 수집과 처리에 비용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또한 기업이 광고 위주의 수익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사용자가 권리를 강력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개인도 소셜미디어와 자신 간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알림 설정을 꺼두거나 콘텐츠를 알고리즘의 추천 대신 직접 선택하는 습관을 가질 수도 있다. 한 전문가는 추천 목록을 제어하는 크롬 프로그램을 설치하길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에서 마주하는 정보를 의심해야 한다. 이 글은 ‘소셜 딜레마’를 거짓 없이 설명했을까? 당신을 편향된 시선으로 이끄는 건 아닐까? 검증이 필요하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소셜 딜레마’를 통해 확인해보자.
영화 ‘소셜 딜레마’와 관련해서 참고할만한 다양한 의견을 첨부합니다.
(*아래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조재길 특파원, 한국경제, ‘"삼성전자도 타깃"…美 이어 EU도 빅테크에 '칼' 꺼냈다’
김승현 기자, 조선일보, ‘“넷플릭스 적당히 해라” 페이스북 'SNS 중독’ 다큐에 발끈’
* 본 콘텐츠는 브런치 jadeinx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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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대사 중.
난 당신을 사랑해. 근데 사랑하지 않아.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대사 중.
생각이 많은 듯 한 여자가 어딘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이는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첫 시작 장면이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녀의 이름은 율리에. 율리에는 하고 싶은 일은 참 많은데,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정확히 모르며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이 없어보이기도 하고, 행동 또한 산만하여 정신이 없다.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용감하고 추진력 있는 인물로 비추어질 수도?
성적을 잘 받으면 자신이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열심히 노력해서 들어간 의과 대학을 자신과는 맞지 않다며 바로 접질 않나, 육체가 아닌 정신 쪽 분야를 배우고 싶었다며 전과한 곳에서도 또 맞지 않다며 포기하질 않나, 이번에는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등 율리에는 수차례 이러한 일을 반복 거듭한다.
율리에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게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
나였으면 어땠을까?
사실 율리에의 이러한 모습은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포인트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나는 율리에의 거침없는 모습을 통해 웃음도 웃음이지만, 진지한 측면으로 굉장히 용감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율리에였다면?
원하는 것을 찾아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선뜻 용기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한다며 스스로 합리화하고 변화는 꿈도 꾸지 못했겠지.
인생에서 주인공이 아닌 조연 역할만 하다가 끝났을 것이라는 거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자 세상을 누비던 율리에, 그녀는 어느 파티에서 '악셀'이라는 만화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만다.
율리에와 악셀은 나이 차이가 좀 있는데, 그래서인지 세대 차이 때문에 서로 갈등을 겪는 부분이 많아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이 겪는 힘듦이 사랑의 힘을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었는지 서로를 사랑하며 지내는데...
역시 나이차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가 보다.
율리에와 결혼하여 아기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큰 40대 악셀과
아기보다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기에 꿈을 포기할 수 없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간 율리에.
이 둘의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은 둘의 거리를 점점 멀어지도록 만든다.
비록 여성을 혐오하는 듯한 만화를 그리지만,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어 유명한 만화가로 거듭난 악셀을 바라보는 율리에는 그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와 자신을 비교했을 수도 있고,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회의감과 정체성을 게속해서 돌아보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율리에는 도피하다시피 들어간 아무런 연관도 없는 파티에서 '에이빈드'라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첫 만남에서 대화를 많이 나누며 알게 모르게 서로를 향한 호감을 가지게 되는데...
이 둘은 서로 끌리지만, 각자 자신의 연인이 있기에
우린 바람 안 피웠어요. 전혀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대사 중.
라는 말을 하며 친구로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며 헤어지게 된다.
그렇게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까.
어느 날, 서점 일을 하던 율리에는 우연히 에이빈드를 보게 된다.
에이빈드도 그녀를 알아보고 자신이 일하는 곳을 알려주고 떠나는데..
악셀과의 관계에 지치던 중 에이빈드를 만나 행복해하던 율리에는 그가 알려준 장소로 곧장 향하게 된다.
여기서 포인트! 영화 기법에 주목하라!
율리에가 에이빈드를 만나러 찾아갈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점!
율리에가 스위치를 누르자 모든 것이 멈춰버리며 세상에 움직이는 거라곤 율리에와 에이빈드밖에 없는데..
모든 게 멈춰버리고 율리에와 에이빈드, 둘만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연출과 기법이 새로운 둘 사이의 관계를 집중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했다.
그 속에서 율리에가 그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엿볼 수가 있었고,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있어서 행복해하는 모습들이 단연 돋보였기 때문이다.
약간의 해방감이 엿보였다고 할까.
에이빈드를 통해 자기 인생의 다음 단계를 위해 향하는 모습이 이 연출과 기법으로 인해 돋보여지는 것 같아 가장 인상 깊고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재차 서로의 호감과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둘은 각자 자신의 연인과 헤어질 준비를 하게 된다.
에이빈드와의 만남을 통해 확신과 깨달음을 얻게 된 율리에는 악셀과의 만남을 정리하려 한다.
난 너의 괴짜 같은 면이 좋았어.
악셀은 그런 율리에를 말리며 잡아보려고 애쓰지만, 생각이 굳어진 율리에는 자신의 말을 번복하지 않는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당신을 사랑해. 근데 사랑하지 않아.
라고.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되며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율리에는 자신의 길을 찾고자 노력하던 중 덜컥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더불어 전남친인 악셀이 암에 걸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며 또 한 번 혼란을 겪게 된다.
그럼과 동시에 율리에는 에이빈드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조금씩 엇나가게 된다.
그러는 사이, 율리에는 악셀을 만나면서 그를 통해 과거에는 발견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영화는 사랑을 통한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도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찾아보게끔 고민하게 만든다.
사실 사랑도 사랑이지만, 한 여자가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더 집중해서 보면 또 다른 느낌의 깊이 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다양한 인간관계는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아마 이 영화는 여러 인간관계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보고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깨닫게 해주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닐까 하고 감히 생각해본다.
여러분도 이 영화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 인생은 내 것이니까 되도록이면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자!
*가장 눈여겨 봤던 점!*
율리에의 성장 과정
2. 영화의 연출과 기법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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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KY 데일리]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을 빼앗는 이는,
제20회 BIKY 기획기사 [유스 단편 5]
<곰을 기억하다>
감독장 & 나이트
국가United Kingdom
제작년도2024
Cast Anna Calder Marshall, Lewis Cornay
시놉시스
영국 시골 마을에서 정체 모를 금속음에 집착하는 소년 피터는 소리를 따라 녹음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리가 담긴 장면을 노인에게 보여주자, 그는 어린 시절 곰이 언덕을 떠돌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감각적인 사운드의 디자인, 교차 편집의 스타일을 통해 세대 간의 감정을 연결하고, 과거와 현재를 영화적인 동시에 서정적으로 연결해 냅니다. 환상과 현실의 교차하는 세대 간의 공감을 일으키는 단편.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소음인가? 언젠가부터 그레이힐에 쇠와 같은 무언가가 부딪히는 마찰음이 울려 퍼진다. 마을 전역에 메아리처럼 퍼진다. 창문을 매트리스로 막고, 더 큰 노래로 잠재워보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귀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방송사에서 취재하러 올 정도로 사안이 커질 즈음, 유일하게 신이 난 듯한 소년 ‘피터’가 등장한다. 자신이 들고 있는 드론 카메라보다 훨씬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취재진들에게 말을 건다. 저 엄청난 영상을 찍었는데, 보여 드릴까요? 그들에게 대답을 듣기는 커녕 무시 받았음에도 여전히 장난기 넘치는 눈빛을 보인다. 그런데, 마을의 흥밋거리를 찾아 온 외지인들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또한 소년에게 큰 관심이 없다, 마을의 골칫거리인 ‘소음’의 원인을 파고들고 해결할 만한 유일한 인물임에도.
마을과 묘하게 동떨어져 있는 인물은 피터 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에 남아 있지 말라는 관리인의 말을 듣고도 저항하지 않는 인물이 보인다. 건물 청소부 ‘에바’,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홀로 남아 있던 피터는 갑작스레 들리는 라디오 소리에 그가 지내는 곳으로 이끌려 온다. 자신은 남동생과 함께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이곳에 거주하는 거라며 반사적으로 해명하는 에바는, 그저 예전에 불에 타 사라진 마을의 유물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공간에 매료되었을 뿐인 피터의 모습을 보고 한층 경계를 푼다. 그리고 피터가 계속 자랑해 마지 않았던 어떠한 영상을 함께 본다. 계속 희미하게 들려오던 쇠 마찰음.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한 무언가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가까이서 마주하니 무언가 다르다. ‘곰의 정령’이 돌아왔음을 에바는 바로 알아챈다.
이미 사라진 마을을 찾아 헤매던 곰의 정령은 다함께 춤을 췄던 기억을 더듬으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나,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이미 있었던 소리. 그 소리에 집중하고 추억을 기억해 준 건 피터와 에바 뿐이다. 화재가 일어난 이후 마을의 이름도, 위치도, 모든 게 바뀌어 버린 지금에 와서는 에바와 정령 또한 춤을 온전히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들을 이루던 근간을 잊는다. 이 땅 위에 분명히 있었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곰의 정령은 떠난다. 소리와 함께 기억도 사라진다.
<양>
감독하디 바바이파르
국가Iran
제작년도2024
Cast Rose Tabatabaei(Gelavij Alam)
시놉시스
테헤란에 사는 10살 소녀 로즈는 축제에서 사용을 양들을 구하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은 이란의 전통에 맞서는 과정이 되고, 전통의 엄격함이 지배하는 분위기에서 어린 소녀의 선택과 결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양을 구하기 위한, 어쩌면 소녀를 닮아 있는 양을 둘러싼 모험은 어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희망은 어떻게 피어나는 것일까요.
<할아버지>
감독콩스탕스 들로름, 에르완 딘
국가France
제작년도2024
시놉시스
네 명의 손주가 할아버지 집을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평범한 가족 모임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현실과 환상이 자유롭게 교차한다. 시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 속 각자의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여러 생각과 울림을 준다. 보통의 날들인 것 같지만 아주 특별한 할아버지의 손주들의 만남을 다룬 세대를 잇는 상상력이 번뜩이는 작품.<양>과 <할아버지>는 <곰을 기억하다>와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약간의 몽환적인 이미지를 곁들여 작품의 주제를 표현해낸다. 그리고 인간 이전부터 존재했던 동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양>은 특히나 아이의 시선을 통해 성경 구절 중 하나를 꼬집는다. 어른들이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성경을 차용한다. 이기적인 마음을 성스러운 행위로 탈바꿈하여 양을 죽인다. 수많은 양을 마당에 데려와놓고 그들의 앞에서 동족을 죽이는 모습을 목격한 ‘로즈’는 그날부터 고기 반찬을 입에 대지 않는다. 대신 집에 있던 채소를 한껏 챙겨 그 마당에 들어가 양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리고 줄곧 조용하던 로즈는 엄마에게 이웃집에 대해 질문한다. 양을 제물로 바치는 거라며 별 일 아니라는 듯 차분하게 설명하는 엄마에게 다시 묻는다. 성경이 우리에게 양을 직접 도살하라고 시켰어요? 엄마는 대답하지 못한다. 사사로운 감정과 이해관계에 물들지 않은 아이의 순수함은 무언가 옳지 않다는 강렬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고민하던 로즈는 어느새 세 마리의 양 밖에 남지 않은 마당으로 다시금 몰래 들어가 자신의 집에 데리고 온다.
새를 집에 박제해두고 새에 관련된 영상만 보는 ‘할아버지’의 집에 네 명의 손주가 놀러온다. 그리고 다시금 현실과 환상이 교차된다. 어쩌면 극의 첫 시작부터 환상 속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아이들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일까? 아이들과 즐겁게 대화하고 TV를 감상하던 할아버지는 손주들에게 밥을 챙겨주려는 순간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외마디 소리와 함께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죽음을 모르는 건지, 외면하는 건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할아버지에게 음식을 먹여준다. 아무 일이 없다는 듯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할아버지인 척 문자를 보내고, 박제된 새의 깃털을 뽑고 꼬리를 부러뜨린다. 그리고 깃털이 마구 뽑힌 새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몸에 깃털이 듬성듬성 붙어 있는 할아버지가 아이들의 앞에 나타난다. 아이들은 당연히 할아버지가 돌아올 줄 알았다는 듯 다같이 놀고 TV를 본다. 아이들을 멀쩡히 보내주고 새의 모습을 한 할아버지는 집 난간에서 도약한다. 동시에 나무에 앉아 있던 실제 새도 날아오른다.
새는 할아버지의 손에 박제되어 거짓된 생명을 유지한다. 얼마나 더 생생하게 살아 있어 보이게 만들까, 하는 욕심 뿐이다. 할아버지는 날지 못해 죽었고, 새는 죽은 순간 날지 못하게 되었다. 상반된 죽음이 한데 모이며 환상 속 존재를 만든다. 아이들의 눈에는 두 존재가 겹쳐 보였을까? 죽음을 앞두고 있던 세 마리의 양은 과연 살아 남았을까?
<나는 이르핀에서 죽었다>
감독아나스타시야 팔릴레이예바
국가Czech Republic, Slovakia, Ukraine
제작년도2024
시놉시스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룬 애니메이션인 동시에 기억의 다큐멘터리. 2022년 2월 키이우에서 이르핀으로 피신하여 열흘 간 고립되었던 상황을 회상한다. 컷아웃 기반의 흑백 연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애니메이션 특유의 간결함을 취하는 동시에 전쟁의 공포를 사실적으로 표현해 낸다. 전쟁의 상처와 죽음의 무게를 교차하면서, 개인의 기억을 앞세운 빼어난 작품.
<나를 그려줘>
감독코헤이 키야스
국가Japan
제작년도2024
Cast Kobayashi Momoko(Koyori Edogawa), Takizawa Erika(Kiriko Asai)
시놉시스
고등학교 만화가 지망생 코요리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친구 키리코로부터 “너의 만화가 최고였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또한 키리코는 “나를 그려 줘”라고 요청한다. 소녀들의 성장담을 바탕으로 외면과 내면 사이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학원영화의 감성을 건드리면서 진짜 모습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풋풋한 감성의 드라마.
<나는 이르핀에서 죽었다>와 <나를 그려줘>는 감정의 정적인 표현과 과장된 표현이 대비되어 함께 감상하면 각 작품의 매력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또한 애니메이션과 그림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부분 또한 집중할 만한 부분이다. <나는 이르핀에서 죽었다>는 감독 자신의 경험담을 독백으로 다루고 있는 자전적인 작품이다. 역사 속에서 종식되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고 있던 전쟁이 발발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국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특징이 적극 활용되어, 자신이 경험한 모든 부분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절제하고 비워두고 관객에게 상상의 틈을 열어주면서 세세한 감정을 완성시킨다. 전쟁에 대한 경험이 한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관객들에게 그 감상을 전달할 만큼, 개인의 시간이 죽고 또 죽을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이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나를 그려줘>는 극영화로서, 주인공 ‘코요리’의 성장담을 코믹하게 담고 있으나 <나는 이르핀에서 죽었다>와 주인공이 지닌 ‘사실’을 그림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생님과 학생들을 캐릭터화하여 자신에게 일어나는 은근한 따돌림을 만화로 그려 승화시킨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코요리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궁금해하지 않고 그만두기를 강요한다. 그럴수록 코요리는 그만둘 수 없다. 그런 주인공 앞에 학교 내 유명인사 ‘키리코’가 나타난다. 모든 이들에게 비난 받던 만화를 전적으로 응원한다며 칭찬의 말을 건넨다. 하지만 그 속내는 금방 드러난다. 자신을 그려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의 완벽해보이는 가면을 벗기고 망가트려 달라고 한다. 코요리는 유일하게 호의적으로 다가와준 인물의 특징을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하지만, 가득하다 못해 넘쳐나는 악의로 구성된 그림으로는 키리코를 그려낼 수 없다. 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은 선망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갈등이 극에 달하는 순간, 코요리는 키리코를 그린다. 키리코는 코요리의 그림 속 진실된 자신과 마주한다. 한번도 미소를 잃은 적 없던 그가 포효한다. 만화적인 이미지로 주인공의 감정을 여과없이 표출해내는 장면에서 독특하고 독자적인 연출 방식이 눈에 띈다.
두 작품 모두 각 주인공만이 경험할 수 있는 성장을 다루고 있다.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결정으로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그들의 성장담이 탁월하게 그려진다.
상영일정
2025.07.14(월) 13:30 소극장2025.07.16(수) 10:00 사하구청 대강당
BIKY 2025. 07. 08. (화) ~ 2025. 07. 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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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온 이들의 아름다운 견고함이 바벨탑을 세워 올리다.
브루탈리스트. 이는 건축계의 한 사조인 브루탈리즘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20세기 초부터 그 인기가 시작된 브루탈리즘은 건축에 사용된 자재들을 전부 노출시킨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에는 이에 대해 흉물스럽다거나 아름다워야 할 건물이 그러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았었다. 하지만 현재에도 노출 콘크리트, 노출 인테리어 등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브루탈리즘의 시대적 인정을 반증할 것이다. 필자는 이 브루탈리즘을 '솔직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콘크리트, 철골, 대리석 등 사용하는 자재들을 있는 그대로, 아주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기하학적인 구조와 함께 멋스럽게 표현한 것이 마천루와 같은 건물을 휘황찬란한 유리로 꾸며낸 것만큼이나 멋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러한 점은 영화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한 인물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그의 생애 중 가장 멋있고, 사람들이 감탄하고, 좋아할 부분만을 채용하여 그를 빛내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방법으로는 그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날 것 그대로의 매력을 즐기게 하여 관객 스스로가 인물에게서 희노애락의 복합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이름에서 드러나는 그 사조처럼 인물과 그 인물을 뒷받침해주는 시대적 배경, 영화의 서사적 구조 그리고 메시지까지 단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아주 솔직하면서도 맹렬하게 향해간다.
- 철골만큼이나 단단하지만 그만큼 차가운 영화적 구조
영화는 '서막 - 제1막: 도착의 수수께끼 - 인터미션 - 제2막: 아름다움의 견고한 보존 - 에필로그'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는 마치 한 편의 희곡을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하는데, 특히 본 작품의 유별난 특징이라고 보여지는 것은 바로 인터미션이다. 본 작품의 경우 러닝타임이 215분인데, 본 작품만큼이나 러닝타임이 긴 작품들마저도 별개의 인터미션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본 작품에 왜 인터미션이 존재하는지는 꽤나 중요하게 보여지는데, 이에 대해 필자는 서사의 깊이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서막과 제1막은 가족들 품에서 어쩔 수 없이 도망치게 되어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 작품의 주인공 "라즐로"의 고군분투 적응기를 비춘다. 그 사이에 등장하는 수 없이 많은 사건, 사고들은 관객들이 그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게 하고, 동시에 그의 건축가로서의 탁월한 재능까지도 엿볼 수 있게 한다. 제2막에선 "라즐로"가 "해리슨"을 만나 맡은 프로젝트를 수행해내는 과정, 그 안에서의 갈등, 그 속에 비춰지는 인간의 본질과 아이러니함을 비추면서 에필로그에선 그 이야기들을 모두 마무리하는 메시지를 남기며 정리한다. 위 설명에서 느낄 수 있듯, 각각 파트별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굉장히 많고,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들도 깊이 있으며, 이를 뒷받침해주는 영화적 미장센마저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를 모두 소화해내기엔 관객 이탈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 깊이감을 보존하기 위해 인터미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인터미션 자체에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검은 화면을 유지한 채 무(無)의 상태로 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작중 "라즐로"가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와 조카딸을 데려오기 위해 필요한 사진을 스크린에 띄우고, 동시에 누군가 악보를 보며 피아노를 치는 것만 같은 ost를 사용하게 되면서 인터미션이라는 시간을 공백의 시간이 아니라 연결의 시간,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체험의 시간으로서 이용했다는 것이다.
작품의 유별난 특징은 오프닝 크레딧과 엔딩 크레딧에서도 엿 볼 수 있다. 작품이 시작되고, "라즐로"가 미국에 도착해 연줄이 있는 기회의 땅 '필라델피아'로 떠나는 버스를 타면서 타이틀과 함께 오프닝 크레딧이 시작되는데, 그 방식이 굉장히 흥미롭다. 대부분의 작품들에선 타이틀, 감독 그리고 주연 배우들, 유명 배우 몇 명의 이름들이 디졸브되는 식으로 간단하게 비푼다. 그러나 본 작품의 경우엔 로우 앵글로 저무는 석양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의 1인칭 시점을 스크린에 띄운 채 수평 방향으로 이동하는 오프닝 크레딧을 보여주게 되는데, 한 두명의 이름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스태프들의 이름을 보여준다. 또한 엔딩 크레딧의 경우, 화면이 암전된 후 등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좌측에서부터 우상향하는 식으로 엔딩크레딧을 보여주는데, 이 또한 작품의 매력이다. 이러한 특징들의 이유엔 첫 번째, 작품의 전반적인 유별난 특징, 작품이 지니고 있는 매력들을 오프닝 크레딧을 통해 암시하는 역할을 위함이고, 두 번째, 작품 내 이야기의 주축인 건축에 있어서 사선과 수평이라는 개념을 서사 내에서만 그치지 않고 작품을 구성해나가는 전반에 걸쳐 드러내고자 함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가 과거를 다루는 방식 또한 흥미롭다. 유대계 헝가리인인 천재 건축가,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부자의 이야기를 작품에선 다루게 되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그들의 배경사를 빼놓고 서사를 풀어나가기엔 한계가 존재해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과거사를 스스로의 대사나 행동을 통해 드러내게 하고, 결코 플래시백과 같은 부연의 영화적 장치들을 이용하여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는 길을 달려가는 버스, 나아가는 기차, 앞으로 향하는 배 등의 수평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로우앵글과 롱테이크를 곁들여 계속해서 찍듯 이야기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아가게끔 펼친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면 그들이 앞으로만 달려나간 후 남은 그 흔적들, 그 발자취들이 곧 과거이자 역사였고, 영화는 현재와 앞으로의 지향점만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합쳐 이야기를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이처럼 영화의 본격적인 서사를 이야기하기 전부터 굉장히 많은 요소의 특징들을 캐치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고, 이들 모두는 본격적인 서사와 그 장대한 이야기들을 뒷받침해주는 데에 탁월한 역할들을 해나간다.
- 튼튼한 시멘트벽도 연약한 액체였던 것처럼 - 영화 속 주 인물
필자는 영화 <오펜하이머>를 볼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얘기까지 하는 걸 보면 영화는 그 사람을 칭찬하는 걸까 아님 다른 뜻이 있는 걸까?" 그 인물이 칭찬 받아 마땅한 장면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법한 장면들까지도 서슴없이 보여주는 인물 중심 작품들이 꽤나 존재한다. 이런 작품들을 볼 때면 필자는 위와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남았는데, 본 작품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정도 찾은 것만 같다.
필자의 답은 '인물 중심 영화라고 해서 그 인물을 예찬하기 위해서만 작품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인물을 구사하는 방식마저도 굉장히 솔직하면서도 직설적으로, '브루탈리즘'스럽게 표현하였다.
1. 라즐로 토스
작중 주인공이자 유대계 헝가리인인 "라즐로 토스"는 헝가리에서도 시립 도서관을 지을 정도로 유명한 건축가였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인해 그의 프로젝트는 모두 무산되었고, 가족들과도 강제로 생이별하게 되어 도망치던 중 그의 선택으로 미국에 이민 오게 되었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한 쇼트 이후 곧바로 "라즐로"를 등장시킨다. 어둑한 어딘가, 잠에서 깬 그는 급하게 자신의 짐을 챙긴 채 밖으로 나가려 했다. 너무도 어둑해 이곳이 어디인지 쉽사리 분간이 안 되던 그때, 그는 밖으로 향하였고, 그제서야 관객들은 그곳이 이민선임을 알게 된다. 이후 카메라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여주는데, 이를 뒤틀린 채 보여주게 된다. 이는 마치 미국으로 온 "라즐로"를 향해 미국은 환한 미소보다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작품이 "라즐로"를 다루는 방식이기도 하다.
영화는 "라즐로"가 비운의 천재 건축가로서 그의 고단한 삶을 동정 어린 눈빛으로만 담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삶에 대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의구심을 품게끔 제작되었다. 그가 미국으로 도착하자마자 한 그의 첫 행보는 다름 아닌 사창가에서의 성행위였다. 또한 이민선에서 알게 된 동료에게도 꼭 보자는 약속을 서로에게 연거푸 했음에도 그 이후 그에 대한 언급도, 만남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를 가지고 그의 인성적인 부분을 질타를 하는 것은 다소 지나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그가 무례하게 작업 인부를 쫓아낸다거나 마약에 중독된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에 대한 불쾌한 눈빛을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과는 반대의 면 또한 비추는데, 그의 독창적인 브루탈리즘 건축법을 활용한 건축물들을 통해 인정받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그가 출신, 종교, 외양, 성격 등으로 천대받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에게 동정심이 가게 했고, 그가 건축에 몰입하여 집착하는 모습을 통해 복합적인 감정마저 들게 했다. 이렇듯 영화는 한 인물을 굉장히 솔직하면서도 직접적으로 다뤄, 한 인간에게서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감정을 느끼게 했다. 강직해보이면서도 동시에 시대적 흐름에 한없이 나약해질 수 밖에 없는 한 지식인에 대해 관객이 스스로 평가할 수 있게 했고, 영화는 그의 복합적인 면모가 어떤 식으로 그의 건축에 담겨지는지를 엿볼 수 있게끔 치밀하게 계산되어 표현했다.
2. 해리슨 리 밴 뷰런
영화 속 악역이자, 동시에 영화 내에서 가장 입체적인 면을 지닌 인물이다. 그의 첫 등장은 "라즐로"가 "해리슨"의 아들 "해리"에게 청탁을 받아 "해리슨"의 서재를 공사하던 중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마주한 아수라장이된 집에 화가 나 "라즐로"를 쫓아낸 "해리슨"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다소 다혈질적스러워 보이고,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있어보이기도 한다. 이후 "라즐로"에 대한 사회적 평판, 공사된 서재의 상태 등을 미루어 보아 그에게 사과 겸 스카우트를 하기 위해 "해리슨"은 그를 다시 찾아가게 되고, 파티 이후 "라즐로"와의 독대를 통해 그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이야기 속엔 "해리슨"도 "라즐로"가 겪은 고통과 상처를 지닌 인물임을 눈치챌 수 있다. "해리슨"이 작중 인물들 중 가장 입체적인 특징을 지닌 데에는 바로 이런 지점 때문이다."해리슨"이 없었다면 "라즐로"는 스카우트될 수도, 미국에서 건축가로서 일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한 그에게 숙식을 제공했고,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에겐 다른 직장을 추천해줬으며, "라즐로"가 다른 이들과 스타일 문제로 갈등이 있을 때면 언제나 "라즐로"를 믿어주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 면만 있었다면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해리슨"이라는 인물에 대해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재벌 가문에서 태어나 기업의 후계자가 된 가족경영의 수혜자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가 대사로 말했듯 전쟁 중에 선박을 만드는 사업을 했고, 더 빠르고, 더 싸게 만들어 이득을 본 자수성가형 부자로 추측된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행위를 다시 관찰하면, 다소 어색한 점을 엿볼 수 있다. 책을 좋아한다는 그의 아들의 소개와는 달리 책을 읽는 장면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라즐로"가 만들어준 멋진 서재와 독서용 의자 또한 독서용이 아니라 면도용 의자로 사용되었다. 그의 서재의 책들 또한 모두 초판본이라는 점 그리고 "라즐로"가 만든 서재에 대해 최초엔 부정적으로 생각하다 외부에서 칭찬이 일자 그제서야 "라즐로"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점 또한 그의 근엄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엔 다소 결함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게 된다. 또한 "라즐로"와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품의 중후반부 있었던 일을 미루어본다면 영화는 "해리슨"에 대한 인물 관객 평가를 입체적으로 그리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엘리자베스"가 영국에서 영어를 전공했다고 하자 그는 돌연 "라즐로"에게 그의 구두닦이 같은 영어 발음이나 고치라고 농담한다. 어쩌면 그저 웃자고 한 말일 수 있겠지만 "엘리자베스"를 처음 맞이한 자리에서 "라즐로"를 그런 식으로 비하하려는 태도 그리고 농담 후 급기야 그에게 동전을 던지고, 다시 주워달라는 그의 행동엔 그의 경박스러운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 양질의 교육, 화목한 가정의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인물로 표현된다. 영화는 그의 이러한 점을 그의 경박스러운 태도를 통해 표출시켜 했고, 이를 구체화시켜 "라즐로"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이어지게 했다. 어쩌면 이는 "라즐로"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동안 미국에서 자수성가하기 위해 지나온 세월들과 그 속의 시련과 아픔에 대한 복수의 감정으로도 보여진다. 결국 "라즐로"에 대한 자격지심은 그와 프로젝트를 재개하기 위해 떠난 이탈리아에서 그를 강간하는 것으로서 폭발하고, 이는 "엘리자베스"에 의해 고발되어 그는 행적을 감춘 채 영화 속에서 사라진다.
3. 엘리자베스 토스
서막-제1장과 제2장-에필로그를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엘리자베스"의 유무이다. 서막과 제1장에선 엘리자베스가 등장하지 않은 채 "라즐로"에게 그녀가 보내는 편지의 내레이션으로만 그녀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영화의 초반부에선 그녀가 고국에 남은 채 얼만큼 "라즐로"를 그리워하는지 그리고 그녀도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 등으로만 그녀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다. 인터미션이 끝난 직후 우린 곧바로 "라즐로"가 승강장을 찾아 "엘리자베스"와 조카딸 "조피아"의 실물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영양실조로 인한 골다공증으로 휠체어를 타게 되었고, 다리의 상태만큼이나 그녀의 표정과 몸 상태는 그간의 고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이러한 초반부 등장 방법 그리고 그녀의 전반적인 연약한 외양은 2부의 본격적인 이야기에서 역전이 되고, 어쩌면 그녀는 영화 <브루탈리스트>에서 가장 강직한 모습을 지닌 인물로서 이후 장면들을 휩쓴다.
그녀는 사고로 인해 프로젝트가 무산되어 힘들어 하는 "라즐로"에게 방법을 제시하려 노력했고, 그간의 노력과 고생을 충분히 이해하려 했으며, 어쩌면 "라즐로"는 건축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가족과의 또다른 이별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녀만큼은 가족의 이별에 극렬히 반대했고, 가장 가슴 아파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재벌가 사이에서도 그녀의 지식 수준은 전혀 꿇리지 않았고, 오히려 "해리슨"은 그녀에게도 지적 대화에서 밀려 "라즐로"에게 느꼈던 감정을 그녀에게서도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 신체적으로 매우 연약한 상태의 그녀가 보인 강직한 행보는 오히려 "라즐로"의 강직한 재능과 건축가로서의 재능에 비해 한 없이 연약하고, 나약한 내면과 비교된다. 그녀의 이러한 강인함은 결국 영화의 종반부 "해리슨"에 대한 폭로로 증명된다.
"라즐로"에게 그동안 미국에서 어떠한 상처를 받아왔고, 어떤 고통을 품어왔는지 듣게 되었고, 마침내 그녀는 "해리슨"과 그의 가족들에게 찾아가 강간당한 사실을 폭로한다. 그는 물론 그의 아들 "해리"마저도 이에 반발하여 그녀를 쫓게 되고, "해리"는 그의 아버지에게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물으려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홀연히 종적을 감춘 채 사라졌다. 이 일련의 장면, "엘리자베스"가 집에 도착해 "해리슨"에 대해 폭로하고, 쫓겨난 후 "해리"가 "해리슨"을 찾는 그 과정을 영화는 롱테이크로 촬영했고, 인물의 시점쇼트가 아니라 각 장면 속 중요한 인물이나 행동하는 인물만을 카메라 안에 담아 극의 긴장감을 더했다. 이는 마치 그 사건 속 모든 인물들을 카메라가, 영화가 감시하는 듯한 느낌을 주게 하였고, 이는 결국 답을 내릴 수없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혼란한 인물들을 대변하고, 동시에 자격지심의 폭발, 그로 인해 벌어진 폭로, 또 그로 이어진 가족들의 분열을 일련의 연장선에 두어 관객들이 직접 그들을 평가할 수 있게 촬영하였다.
- 레지스탕스의 염원이 모인 청회색 대리석처럼 모두의 염원이 모여 만들어진 인스티튜트
미국에서 고난에 빠진 "라즐로"를 빼어내 새로운 일자리, 아메리칸 드림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게 한 "해리슨"은 "라즐로"에게 자신의 이름을 담은 건물을 지어달라 부탁했다. 그 부탁이 바로 '밴 뷰런 인스티튜트',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건축물이다. 영화는 그 인스티튜트를 만드는 제작하는 과정부터 디자인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발표함으로써 허가받는 과정들을 모두 세밀하게 담아냈는데, 이 전 과정을 보고난 후면 이 인스티튜트는 그저 서사의 배경이나 건축물 중 하나로 소비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스티튜트를 제작하고자 처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자금을 지원했던 "해리슨"은 몇가지 사항을 첨언한다. 도서관, 체육관, 예배당, 강당이 모두 모인 공간이었으면 하고, 특히 체육관의 경우 자신의 어머니와 어린 시절 레슬링 경기를 하러 다니던 좋은 기억이 있어 꼭 포함시켜줬으면 한다는 점이다. "해리슨"이 건물을 만들고 싶어했던 최초의 이유엔 자신만의 원초적 바람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 장면들에서 "해리슨"은 "라즐로"의 건축에 대해 그리 이해한 것 같진 않지만 주위 평가에 매료되어 그를 예찬하기 바빴고, 이후 장면에서도 술을 모으던 그가 술 수집 취미에 한계를 느끼면서 하늘을 바라보고자 건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는 건축에 이해나 흥미가 다소 떨어지는 인물임을 추측할 수 있다. 그가 인스티튜트를 제작하고자 한 이유는 바로 최근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고,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담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술 수집 취미를 말하는 대사에선 결론적으로 "해리슨"은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한 회의감을 가졌고, 그제서야 하늘을 바라볼 건물을 짓겠다고 말한 것을 미루어 보아 그는 자신만의 바벨탑을 통해 유한한 삶에 대한 욕망을 건물로써 풀고 싶어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는 "라즐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영화의 에필로그를 보면 "조피아"의 연설을 통해 "라즐로"가 어떻게 건물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라즐로"는 인스티튜트를 제작할 당시, 자신과 자신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수용된 수용소의 크기, 사이즈, 소재 등을 차용하여 제작하였고, 인스티튜트를 통해 그 당시의 고통과 상처들을 기억하고, 자신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건축에 담아 제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하나의 공통된 건물을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 다른 생각, 다른 염원을 가진 두 인물이 모여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결국 인스티튜트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인스티튜트를 제작하는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화물을 옮기던 열차가 폭발하여 공사가 중단되었고, 공사 중 "해리슨"의 실종과 "라즐로"의 알 수 없는 행방으로 인해 중단되었고, "조피아"의 연설 중 그녀는 인스티튜트가 1972년까지 제작이 멈췄었다가 다시 재개되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인스티튜트 공사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중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설명하는 방법이 굉장히 인상적인데, 중단되는 이유와 그 근거에 대해서 서사적으로 꽤나 비중있게 다루면서, 이를 재개시킬 수 있었던 과정 그리고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는지 등은 다루지 않는다. 일련의 과정을 실패와 극복이라고 한다면, 보통 실패를 비중있게 다룬 만큼 극복 또한 신중히 다루지만, 영화는 그 사이를 생략시킨 후 "해리슨"의 변호사가 "라즐로"를 다시 찾는 씬, "조피아"의 연설씬을 통해 관객이 그 전 과정을 스스로 상상하게끔 했다.
인스티튜트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십자기 형상 빛 또한 이 점을 공유한다. 시민들에게 건물을 소개해주기 위해 마분지로 만든 모형 건물에 빛을 쏘아 재현하는 씬이 있으나 관객에겐 그 빛이 어떤 형상으로 그려지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이후 장면에서도 언급 정도로만 알 수 있었는데, 영화는 "해리슨"이 사라져 건물 안을 살피던 극의 종반부에서 십자가 모양의 빛 형상을 보여준다. 영화는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을 때 이의 중간부를 생략하고, 종반부에서 모든 실마리를 푸는 식으로 극을 진행한다. 건물을 제작하게 된 계기도, 만드는 과정 속 고난을 이겨낸 과정도,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형상마저도 말이다. 영화가 이렇게 생략을 한 이유엔 영화의 메시지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과거를 다루지 않는다. 과거사가 장황할 것만 같은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지만 오히려 그 과거사에 대해 씬적으로 다루지 않느다. 영화는 당시 이민자들이 겪어야 했던 적응의 시련과 고통, 차별을 담아냈고, 특히 한 명의 지식인이자 예술가, 또 한 명의 나약한 인간이 프로젝트를 수행해내기 위해 수 많은 시행착오들 속에서 살아남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종반부 에필로그에서 "라즐로"의 조카딸 "조피아"의 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말을 전한다. "중요한 건 목적지이지 과정이 아니다." 결국 영화는 이전 배경,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통해 인물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버티고 생존하기 위해 버티는 모습들을 보여주고자 했고, 그 속에 인간으로서 겪는 아이러니함과 복잡한 심적 요소들을 담아 인간 삶의 의미와 그 한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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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착병 환자들의 이선생 찾기는 계속된다
?Rabbitgumi 입니다!
지난 주 영화 독전2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었습니다.
1편의 하이라이트와 결말부 사이의 일을 다루고 있어요.
감독이 바뀌었지만 등장인물은 그대로 입니다.
형사 원호와 락 그리고 브라이언이 극을 이끌죠.
큰칼이라는 강력한 캐릭터도 있죠.
그런데 영화가 많이 느슨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에서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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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영화 후기 / 일본영화다운 제목 / 로맨스 멜로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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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빈의 소원> 30초 예고편
2014년 8월 11일. 할리우드의 명배우이자 코미디언인 로빈 윌리엄스가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특유의 익살스러운 연기로 관객을 울고 웃게 하며
꿈과 희망의 아이콘 같았던 배우였기에 전세계 영화 팬들은 충격이 더 컸다.
하지만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진 무성한 소문과 다르게
그는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가 바라던 진짜 소원은 무엇이었는지
이제 그의 죽음에 둘러싸인 소문과 진실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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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코다> 파이널 예고편
24/7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코다 '루비'는
짝사랑하는 '마일스'를 따라간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기쁨과 숨겨진 재능을 알게 된다.
합창단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일스와의 듀엣 콘서트와 버클리 음대 오디션의 기회까지 얻지만
자신 없이는 어려움을 겪게 될 가족과 노래를 향한 꿈 사이에서 루비는 망설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