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5-04 16:33:42
[JIFF 데일리] 탱고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여 안녕>
<부에노스아이레스여 안녕>
시놉시스 : 2001년 11월, 위기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반도네온 연주자 훌리오 파베르는 경제적 어려움과 싸우고 있다. 탱고 밴드를 이끌고 있지만 공연 수입은 갈수록 줄어들고, 가족이 운영하는 신발 가게도 위기에 처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날지 고민하던 중 정부가 은행 계좌가 동결되고, 화끈한 성격의 택시 운전사 마리엘라와의 우연한 만남이 그의 운명을 바꿔 버린다.
폼페이의 이웃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탱고의 도시'라고 불린다고 한다. 영화는 제목에 걸맞게, 근로자 탱고 밴드 '폼페이의 이웃들'이라 불리는 그룹(?)이 연주하는 밴드다. 영화의 주인공, 훌리오 파베르는 반도네온 연주자이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밴드를 운영하고 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에 마주한다. 심지어 그들의 문제는 하나. '보컬'의 부재. 그들은 병원에 있던 '마에스트로'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들의 답변에 단호하게 거절하는 '마에스트로'. 모두가 포기하던 찰나, '마에스트로'가 리허설 장소로 등장한다.
역경과 고난 -1
하지만 이야기는 그저 탱고 밴드 이야기로 흘러가진 않는다. 영화 속 주인공 그리고 그의 밴드들에겐 여러가지 문제들이 닥쳐온다. 훌리오 파베르에게 닥쳐온 첫 번째 시련. 택시 기사와의 사고. '독일' 이민을 계획하며 독일어 라디오를 들으며 가던 훌리오. 그런 훌리오의 차를 택시기사, 마리엘라가 빨간 불 확인을 하지못하고 결국 사고가 난다. 화가 난 훌리오는 마리엘라에게 가 보험증서를 요구하지만, 그녀는 남성우월주의라며 욕을하고 도망간다.
훌리오는 택시회사로 가, 택시회사 사장에게 사고에 대해 설명한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는 마리엘라. 마리엘라 역시 경제적 어려움의 주인공이다. (게다가, 보험증서도 위조 문서) 결국, 수리비는 할부로 갚기로하고 훌리오가 필요할 때마다 기사 역할을 하기로 합의를 본다.
역경과 고난 -2.
이 뿐만이 아니다. 그들에게 닥친 고난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정부의 경제 위기로 '은행 계좌'가 동결된 상황. 독일로의 이민을 준비하던 훌리오에겐 청천벽력이다. 그는 집과 아버지의 가게를 팔아 현금으로 마련하여 은행에 다 넣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춘기 딸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이민을 거부하기까지. 그러던 그에게 밴드의 공연 기회가 생긴다.
바로 정부에서 일하는 사촌의 부탁으로 국회의원 아내의 생일파티 공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그들에겐 새로운 기회다. 그렇지만 다른 위기가 또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탱고의 매력
사실 탱고는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다. 그저 아 이런 느낌이 탱고구나! 만 아는 정도. 근데 이 영화를 통해서 탱고의 매력에 푹 빠졌다. 노래 가사가 오른쪽 자막을 통하여 나오지만, 자막은 보지 않는다. 밴드 연주자들의 표정만 봐도 행복하다. 귀는 탱고를 듣고 눈은 그들을 본다. 그럼 그 순간 스크린에 현혹된다. 내가 음악 영화를 좋아했었나?
영화를 보고 나서 한 생각은 '폼페이의 이웃들'의 연주 장면을 실제로 보고 싶다. 물론 이뤄질 수 없는 꿈이겠지만.
영화는 탱고를 통해서 그들의 연대와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감동까지 선사한다. 앞으로 탱고 연주를 찾아 보게 해준 좋은 영화.
EDITOR_RIA
상영스케줄
2024.05.04(토) 14:00 CGV전주고사 2관
2024.05.07(화) 13:30 CGV전주고사 7관
2024.05.09(목) 14:40 CGV전주고사 1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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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의 밤> 잔인하지만 서정적이고 낯선 누아르
1. '양도수(박호산)' 사장의 명령으로 경쟁 관계에 있는 북성파를 제치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를 맛보던 '박태구(엄태구)'는 돌연 비보를 접한다. 누나와 조카가 모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 북성파가 작업에 들어온 것으로 의심한 태구는 즉시 그들의 보스를 공격하고, 북성파의 2인자인 '마상길(차승원)' 이사의 복수를 피하기 위해 도망가기로 결정한다. 러시아로 가기 전 잠시 들린 제주도에서 태구는 묘한 분위기의 '재연(전여빈)'을 만난다. 사격 연습을 하다가 갑자기 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누는 등 걷잡을 수 없는 그녀로부터 그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동질감을 느끼며 조금씩 편안함을 되찾지만, 태구를 향한 복수의 칼날은 이내 제주도로 들이닥친다.
영화학자 토마스 슈츠는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에서 영화 장르의 변화를 네 단계로 나눴다. 실험 단계에서는 특정한 장르로 부를 수 있을 공통된 움직임이 포착된다. 고전 단계에서 공통의 움직임은 제작자와 관객 모두가 공유며 하나의 장르를 규정하는 특정한 이야기 전개의 공식과 도상(볼거리) 같은 관습으로 자리매김한다. 이후 장르 영화는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는 불균질한 요소들이 더해지는 세련화 단계를 지나 기존에 확립된 장르의 전통을 파괴하는 마지막 바로크 단계에 다다른다. 비록 모든 영화 장르에 적용될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장르의 흐름을 이해하는 기준으로서 위의 과정은 유용하다고 볼 수 있다.
2. 이러한 장르의 변화라는 맥락 안에서 볼 때 박정훈 감독의 누아르 영화 <낙원의 밤>은 분명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한국형 누아르의 진수를 보여준 <신세계>(고전)를 거쳐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마녀>(세련화)로 이어진 박훈정 표 누아르가 한 단계 더 나아가려는 시도가 <낙원의 밤>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외피와 이야기의 발단이 한국형 누아르의 도상과 관습을 충실히 따르는 것에 비해, 중반부에 숨겨둔 진짜 이야기는 장르의 관습에서 탈피하고 있다.
실제로 <낙원의 밤>의 연출, 도입부, 스타일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감독의 전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태구가 북성파 두목을 죽이거나 조폭들이 회동을 하는 장소로 한국의 누아르, 범죄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우나와 중국집이 등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좁은 공간에서 벌어진 액션씬 역시 감독의 전작에서 여러 차례 명장면을 남긴 바 있다. <신세계>에서는 엘리베이터 안, <브이아이피>에서는 중국의 한 아파트 복도와 방이 그 장소였다면 이번에는 차 안, 차와 차가 맞붙은 좁은 공간, 문이 잠긴 식당에서 액션이 펼쳐진다.
이야기의 발단도 마찬가지다. 양 사장의 행동대장인 태구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누나와 조카가 살해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북성파가 자신의 가족을 죽였다고 판단한 그는 복수를 위해 북성파 두목을 살해하고, 필연적으로 뒤따를 복수의 굴레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한다. 이러한 태구의 이야기는 냉혹하고 음울한 담배 연기로 가득한 박훈정 감독의 특유의 연출과 스타일을 만나 또 한 번 사나이들의 의리와 배신,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펼쳐 보이려는 듯 보인다.
3. 그러나 제주도로 장소를 옮긴 후 <낙원의 밤>은 예상된 경로를 벗어난다. 당장 결말부터 각 인물에게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않는다. 발단에서 차례로 등장하는 태구, 양 사장, 마상길은 모두 본래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태구는 완전히 도망치지도 못하고, 가족들의 원한을 진짜 범인에게 갚아주지도 못한다. 마상길과 양 사장은 그들의 거래와 계획을 깔끔히 끝맺는데 실패한다. 대신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충격적이고 하드코어한 결말을 통해 오직 재연만 복수에 성공한다. 이는 마치 <마녀>에서 누아르 영화의 남성 주인공의 자리가 여성에게 넘어간 것을 연상시키는 마무리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방향성이 기존의 장르 관습적 선로에서 벗어나는 분기점은 공항에서 태구와 재연이 만나는 순간이다. 이 장면부터 영화는 그저 처음 만난 두 남녀가 새로이 관계를 만드는 데 주목할 뿐이다. <신세계>에서 '정청'(황정민)과 '이자성'(이정재)의 굳건한 관계가 형성되어 유지될지 혹은 파괴될지가 관건이었던 것과는 다르다. 의리와 정, 피의 복수를 되새기는 사나이들을 강조하는 누아르의 관습을 거부한다. 그러다 보니 복수의 칼날을 가는 마상길이 가끔씩 얼굴을 비추는 것을 빼면 영화는 중반부부터 누아르라는 사실마저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일반적인 누아르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 이는 태구와 재연의 드라마를 유려한 앙상블에 담아낸 두 주연 배우, 엄태구와 전여빈의 퍼포먼스가 유달리 인상 깊은 이유기도 하다.
4. 이때 두 주인공의 관계 맺기의 중심에는 각자의 트라우마가 위치한다. 마치 거울 치료를 하듯이 서로의 과거와 현재로부터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 보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태구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재연을 보면서 마찬가지로 죽을 날이 정해진 누나를 떠올리고, 죽음을 피해 도망치는 자신과 그녀가 동병상련임을 깨닫는다. 재연의 삼촌이 총을 밀수하면서 마련한 선물을 끝내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지켜볼 때는 끝내 생일 선물을 열지 못한 본인의 조카와 재연을 겹쳐 본다.
한편 재연은 온 가족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삼촌의 모습을 제주도로 도망쳐온 태구에게서 본다. 또 가족이 죽는 것을 그저 지켜보아야만 했고, 그래서 복수심을 버릴 수 없는 그녀는 가족의 복수를 한(혹은 했다고 생각한) 태구의 심정을 어렵지 않게 이해한다. 이처럼 회한과 트라우마가 뒤섞이면서 물회를 사이에 두고 애틋해지는 둘의 관계는 묘한 동질감으로 인해 우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가족 간의 정처럼 보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성 간의 사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굳이 이들의 관계를 정의 내리려고 애쓰지 않는다. 구체적인 설명 대신 아름다운 영상 안에 함축적으로 담아낸다. 태구와 재연은 차가운 필터에 포착된 제주도의 아름다운 해변가에서 함께 담배를 피운다. 둘이 서로를 온전히 알아가고,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불운했던 그들의 삶에 마침내 치유와 평화를 얻고 오래간만에 행복해지는 순간,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은 마침내 낙원이 된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담배 연기처럼 금세 사라진다. 아름다운 낙원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듯이 그들은 이내 마상길의 모습으로 자신들을 매섭게 쫓아오는 섬뜩한 복수의 굴레에 다시 빠져든다. 이처럼 태구와 재연의 관계성을 불명확한 경계 안에 담아낸 결과 <낙원의 밤>은 서정적인 누아르라는 차별화된 정체성을 완성한다.
5. 다만 <낙원의 밤>이 거둔 독특한 성과는 결코 매끄럽지 않은 완성도로 인해 빛이 바랜다. 우선 플롯의 치밀함보다는 감정선과 정서를 담아내는 미장센에 힘을 준 결과물은 좋게 말하면 영화를 곱씹어 볼 기회를 주고, 나쁘게 말하면 애매하다. 명확하지 않은 두 인물의 관계성, 그로 인한 예상외의 전개는 창고와 식당에서 펼쳐지는 클라이맥스에 처연함과 잔인함이 맞부딪히는 충격을 가득 불어넣거나 그저 영문을 알 수 없는 당황스러움만을 남기면서 명확한 호불호를 유발한다.
또한 몇몇 한국 영화에서 반복되는 어설픈 유머, 임팩트를 주기 위해 잔뜩 힘을 준 인위적인 명대사들은 개성적인 캐릭터들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듯 보인다. 무자비한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자신의 말과 약속만큼은 칼같이 지키는 마상길, 소시민적인 듯하면서도 비열함을 숨기지 못하는 박 과장과 양 사장처럼 극에 강력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인물들도 끝내 영화의 전반적인 톤에서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지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낙원의 밤>은 새로운 시도의 성취에 온전히 만족할 수는 없는, 끝내 낯섦을 새로움으로 바꾸지는 못한 한국형 누아르 영화에 머문다.
A(Acceptable, 무난함)
불완전한 영화적 시도가 담은 서늘하게 슬픈 청춘들의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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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이 아니야, 영화 <4월 이야기>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아니, 설마 이러다 끝나는 거야? 싶을 때 대화가 시작됐다. 그리고도 별 일 없이, 그녀의 기쁜 말 한 마디로 영화가 끝났다. 좀 밍숭맹숭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그녀, 우즈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우즈키가 야마자키를 만난 건, 그리고 그와 같은 대학에 오고, 그가 다니는 서점에 가고, 그가 그녀를 알아보고, 그와 대화를 나눈 그 모든 것은 '사건'이었다. 기쁘고 감사한 사건들. 나는 그녀가 가기 어려웠던 대학을 간 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간절했고 있는 힘을 다했다. 그것은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을 지언정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사랑의 기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기적이 아니라, 그녀가 이뤄낸 사건이다. 사랑으로, 진심으로 이뤄낸 멋진 사건.
그녀는 조용하지만 꿋꿋하고 강하다. 외로워보이지 않는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해보이는 구석도 있지만 중심이 잡혀 있다. 홋카이도에서 도쿄의 무사시노 대학까지, 모르는 이들과 만나 새로운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거절할 것은 분명하게 거절하고, 천천히지만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그녀가 매일 들리던 서점에서 그와 언제 만나게 될까 무척이나 기다렸다. 한번 마주쳤을 때는 그녀는 흠칫 놀랐고 그는 다른 곳에 신경쓰고 있었다. 영화가 짧은데 이러다 말도 못해보고 끝나는 건 아닌가 싶어 속으로 답답했다.
수많은 날이 지나고 그와 둘이 만날 수 있는 날이 왔다. 그와 그녀가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그런 날. 갑자기 내린 비에 그에게 우산을 빌렸다.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했을 때 그녀는 빨간 우산을 골랐다. 아쉽게도 펼치고 보니 한쪽 귀퉁이가 구부러진 우산. 그러나 그는 그녀가 그 우산을 고를 줄 알았다고 했다. 그 한마디에 그녀는 우산을 바꾸려던 일말의 생각조차 사라졌을 것이다. 한쪽이 구부러졌어도, 그 우산은 의미 있는 우산이다. 그가 그녀를 기억하게 되는 날, 그녀가 고를 것 같다고 생각한 그 우산.
갑자기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서, 오래 기다려본 적이 있는지. 돌아오지 않는 답변에 토라지고, 내가 더 많이 마음을 쏟아 붓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고, 혹시나 진심을 들켰을 때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도망치지는 않았던가. 나는 그렇게 간절했던 적이 있는가.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나에게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만나자마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지는 않는다. 아직 그 사람은 나에게 물음표만 가득한 존재니까. 그러나 사실은 나의 첫인상은 꾸준하게 이어지지 않았던가. 결국은 같은 맥락이 아닌가. 누군가에게 마음이 열리는 순간은 한 순간이 아니던가. 어쩌면 상대방은 기억도 제대로 하지 못할 사소하고, 별 일 아닌 순간에 나는 반하고 만 것은 아닌가.
짧은 영화가 끝났다. 곱씹어보았다. 나는 그녀에 비해 너무나 나약했다. 중심 없이 자존심만 세우고, 뻣뻣하게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물론 너무나 느린, 지금은 혼자만의 사랑이지만 왠지 그녀의 사랑의 끝이 짝사랑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좀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있는 힘을 다해 다가가보지 않았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눈이 마주칠 때까지, 마음에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누군가는 기적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은 아니더라도. 아직은 더 간절하게 이뤄낼 수 있는 사건이 분명히 있을텐데. 우선은 감사하기로 했다. 힘들때만 도움! 하며 찾을 때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누구에게 닿을지도 모르는 채로 감사해했다. 수많은 그를, 만날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앞으로의 일이야 나의 몫이다. 그러나 감사는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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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린 건 많지만 먹을 건 별로 없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이한별/나나/고현정). 그녀에게는 비밀이 있다.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성인 방송 BJ로 활동한다는 것. 그녀가 마스크를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외모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함이다. 외모 때문에 연예인이라는 어린 시절 꿈도 포기해야 했던 그녀. 짝사랑하는 직장 상사 '박기훈'(최다니엘)에게도 무시당하는 모미는 인터넷 방송에서 자기 몸매와 끼를 뽐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어느 날, 모미는 회사에서 박기훈과 막내 여직원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다. 이를 이용해 짝사랑을 이루고 질투심을 해소하려던 그녀. 하지만 그녀의 정체를 아는 동료 '주오남'(안재홍)과 엮이기 시작하면서 그녀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이에 그녀는 주오남과의 문제를 해결하고, 얼굴을 바꿔 새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주오남의 엄마 '김경자'(엄혜란)가 그녀를 추적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마스크걸>, 주객이 전도되다
한국 사회에서 외모지상주의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취업, 연애, 결혼 등 인생의 고비마다 외모가 발목을 잡는다는 경험담은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미디어 역시 현실을 반영한다. 한국의 외모지상주의를 고발하는 작품은 장르를 불문하고 꾸준히 제작됐다. 멀게는 <미녀는 괴로워>부터 가깝게는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여신강림>, 그리고 <기기괴괴 성형수>에 이르기까지.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영상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김용훈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 드라마는 한 여성의 비극을 통해 외모지상주의 폐해를 고발하려 한다. 하지만 <마스크걸>은 절반의 성공이다. 총 3부, 130회에 이르는 웹툰을 410분, 7화 분량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주객이 전도됐기 때문이다.
피카레스크 구성으로 일군 절반의 성공
시작은 인상적이다. 전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처럼 각 중심인물 별로 에피소드를 분배한 선택이 적중했다. 옴니버스 구성, 특히 피카레스크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낸 결과 캐릭터의 동기와 선택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특히 김모미와 주오남, 김경자 중심으로 펼쳐지는 1~3화의 몰입력은 강력하다. 사실 김모미나 주오남은 일반적인 인물이 아니다. 외모로 인한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 마스크걸을 향한 집착은 극단적인 설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가 두 인물의 시점에서 같은 사건을 보여준 덕분에 자칫 지나치게 만화적일 뻔한 캐릭터에게 공감할 수 있는 문이 열린다.
이에 더해 사건의 발단을 맡은 주오남은 물론,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김모미와 김경자의 서사는 유기적으로 얽혀 진행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빠져나갈 수 없는 악연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 장점은 1~3화의 특징 덕분에 더 눈에 띈다. 뒷 에피소드와 달리 도입부는 세 인물의 갈등과 조합이 두드러진다. 같은 사건을 상이한 시점에서 보거나, 시간대가 곧장 이어지는 에피소드이므로.
무너지는 성공 방정식
하지만 중반부부터 <마스크걸>의 성공 방정식은 독이다. 옴니버스, 피카레스크 구성은 필연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형식은 한 가지 공통 주제나 소재를 중심으로 연관이 없을지도 모르는 여러 이야기를 엮는다. 각 에피소드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캐릭터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묘사한다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서사의 연결성이 약해져서 전반적인 디테일이나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마스크걸>의 각색은 옴니버스 구성의 약점을 극대화해 버렸다. 드라마를 7부작으로 구성하면서 원작 내용은 다수 생략됐다. 특히 원작의 1부와 3부 내용에 비해 2부 분량이 대폭 줄었다. 여기에 옴니버스 구조의 특징이 더해졌다. 도입에서 결말로 넘어가는 중간 과정의 디테일이 부재하고, 모미의 행적이 매끄럽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네 번째 에피소드가 문제다. 김춘애에게 초점을 맞춘 부작용이 크다. 초반부 김모미와 후반부 김모미는 별개의 캐릭터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4화에서 처음 등장한 나나의 김모미는 둘의 가교여야 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드라마는 오히려 춘애의 과거사에 주목한다. 모미는 그녀의 인생에 잠시 끼어든 조연일 뿐이다. 춘애가 중요한 캐릭터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녀는 4화 이후 등장이 없다. 그러니 모미의 변화도, 후반부 그녀의 감정선도 부자연스럽다.
예를 들어 그녀가 주오남의 아기를 낳겠다고 말하거나 경찰에 자수한 동기는 이해할 수 있지만, 유추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성형 수술 전과 비교했을 때 감옥 안에서 보이는 모미의 성격이나 행동이 크게 달라진 점도 마찬가지다. 최소한 극 중에서는 잠적 후 술집에서 일하기 전까지 그녀의 행적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 또 작중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모미는 외견상 전혀 임산부로 보이지 않는다.
장르적 쾌감을 잃다
덩달아 다른 문제가 파생된다. 우선 원작의 장르적 쾌감이 약하다. 따져 보면 작중 등장인물은 누구 하나 정상이 없다. 주인공부터가 악인이다. 김모미는 외모지상주의와 파렴치한 인간 때문에 인생이 망가졌다. 하지만 동시에 명백한 살인범이고 살인미수범이다. 주오남도, 김경자도, 김미모도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이처럼 입체적인 인간이 서로를 비난하며 물고 뜯을 때 군상극, 곧 피카레스크의 재미는 극대화된다.
그런데 <마스크걸>은 장르적 재미를 스스로 포기한다. 일례로 원작에 없는 면죄부가 모미에게 매번 주어진다. 성폭행을 시도하던 핸섬스님은 주오남이 대신 죽인다. 강간범 살해는 자기 방어다. 탈옥은 딸을 구하기 위함이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그녀에게는 늘 정당한 이유가 생긴다. 그 결과 <마스크걸>은 피해자인 주인공이 인생 역경을 극복하는 흔한 감동 스토리로 귀결된다.
감독 전작을 고려하면 군상극을 포기한 결정은 의아하다. 마찬가지로 원작(소설)이 있는 군상극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는 악인들과 그들 사이에 낀 소시민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살렸기 때문. 영화는 등장인물을 '짐승'으로 비유했다. 악인들의 욕망과 비윤리적인 행동을 짐승에 빗대고, 동시에 오직 생존이 목적인 소시민들의 짐승적인 본능도 놓치지 않았다. 이를 보면 감독이 각색 능력이 없거나 극단적인 인물을 묘사하는 데 거부감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니 <마스크걸>의 결과물에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차린 건 많은데 먹을 게 없는
군상극을 포기하자 <마스크걸>이 제시한 여러 사회적 주제도 평면적으로 소비되고 만다. 일단 작품의 핵심 주제여야 할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에는 힘이 안 실린다. 모미의 서사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성형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는 데 실패한 대가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주제의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모미의 성형 이유를 그녀가 겪은 차별에서 찾아야 했다. 그녀는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숱한 모욕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녀가 BJ 활동을 하다가 인생이 꼬인 근본적인 원인도 거기에 있다.
그런데 정작 드라마는 그녀가 살인범으로 잡히지 않으려고 성형을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마스크걸'이라는 소재의 파급력도, 성형의 중요성도 약해진다. 고현정의 모미를 굳이 마스크걸이라고 지칭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데서 문제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다른 소재가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도 아니다. <마스크걸>에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 외에도 많은 사회적 이슈가 담겨 있다. 인터넷 방송, 스토커, 몰카, 가정환경의 중요성, 교도소 내 권력 문제... 선악이 공존하는 등장인물의 행동은 도덕적, 종교적 문제로 확장될 여지도 남긴다.
하지만 이 주제들은 극 전반적으로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한 에피소드 내에서의 양념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마스크걸>은 오히려 방향성을 잃는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애매하다. 차린 건 많지만 먹을 게 없는 셈이다.
용두사미로 끝나다
옴니버스 형식의 필연적인 약점. 무리한 축약으로 인한 장르적 재미 감소. 약해진 주제의식. 세 가지 문제가 결합된 결과 <마스크걸>은 용두사미로 끝나고 만다. 독특한 소재를 내세운 도입부와 달리 후반부는 평범하다. 도입부에서 캐릭터에게 몰입할 수 있다는 장점 역시 차별점 있는 캐릭터가 없다는 단점으로 돌변한다.
실제로 후반부는 아들의 원한을 갚겠다는 엄마와 딸을 구하려는 엄마의 싸움이 펼쳐진다. 다른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익히 본 신파로 가득하다. 초반부의 기괴한 분위기와 후반부의 전개를 대조하면 이 결말은 더욱 전형적으로 느껴진다. 이는 여러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와 다를 바 없는 행보다. 원작과 아이디어는 참신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지탱 못하고 무너진다. <택배기사>나 <종이의 집>, <지금 우리 학교는>처럼.
그래도 위안이라면 배우 한 명 한 명의 존재감을 뽐내는 데는 성공했다는 점이다. 배우의 연기력만 감상해도 결말까지 정주행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마스크걸>이 데뷔작인 이한별은 원작 캐릭터와의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며 초반부 눈길을 사로잡았다. 안재홍의 주오남은 괴기한 초반부 분위기를 단숨에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중후반부부터는 엄혜란이 시청자를 빨아들인다. 아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모습은 <더 글로리>에 이어서 다시 한번 분위기를 주도하는 존재감을 뽐냈다. 나나와 고현정 역시 각본상 어느 정도 결함이 있는 캐릭터를 맡았지만, 한계선 내에서는 각자 역할을 충실히 다해냈다.
Poor 형편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를 보는 맛에 정주행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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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HD의 미학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엄청난 강도의 노동을 포함한다는 것을, 친구들끼리 단편영화를 찍으면서야 실감했다. 한 장소, 한 가지의 소품, 한 명의 배우를 화면에 등장시키기 위해서는 주말에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평일에 회사에 가서 하는 일들, 그러니까 전화와 이메일을 주고 받고 회의를 하고 영수증을 모으는 일을 수십 번이고 반복해야 한다. 이렇게 준비한 현장에서는 온갖 장비를 이고 지고 촬영 내용을 기록한다. 필요하다면 이것도 수십 번 반복한다. 그러면 비로소 어떠한 자국도 없이 매끈한 작품이 완성되는 멋진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스타 배우들과 일하면서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영화를 작업해온 미셸 공드리가 팬데믹 이후 영화에 대한 영화를 내놓았다.<공드리의 솔루션북>은 영화 감독인 주인공 ‘마크’가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작품 제작 과정에서 직접 적어 내려가는, 말 그대로 해결책 목록이다. 그는 이제 막 촬영을 마친 영화의 제작을 거절당했다. 자신과 일하던 파트너마저 회사의 편을 들자 그는 제작과 편집 담당인 동료 둘과 필름을 전부 챙겨 시골의 고모 집으로 도망친다. 의욕을 잃은 그는 복용하던 약을 단숨에 끊는다. 그러자 그가 유년기를 보낸 동네에서 아이디어가 끝없이 튀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던 도중 빈 공책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솔루션들을 적기 시작한다.
마크는 관객조차 진력나게 할 정도로 제멋대로이다. 자신을 배신한 동료에게는 분노하고, 회사에서 가장 귀여운 여자 직원과는 어떻게든 잘 되고 싶어 하며, 영화 음악을 작업하면서 동시에 다음 작품도 찍고 싶어 한다. 완성 전에는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신념을 지키면서도 편집에 관여해야 하는 고집도 부린다. 이 와중에 동네 대표도 하고 싶고, 고모의 질병을 돌보고 생일 파티도 열고 싶어 한다. 생각과 계획은 너무 많고 그것을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이 상황을 공드리는 마치 ADHD를 앓는 사람들의 행동처럼 연출했다. 예컨대 마크는 옛날 물건들 중 솔루션 북을 발견하고, 거기에 쓸 테이프를 찾으러 다른 방에 들어 갔다가 솔루션 북은 까맣게 잊고는 종이를 오려 스톱 모션 장면을 찍기 시작한다. ‘증상’에 가까운 이 행동은 미셸 공드리 특유의 꿈 같은 연출, 즉 개연성이 없어 보여도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그의 특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특유의 연출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를 또 다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하는 이 영화는 ADHD 증상을 미학으로 바꾸어 놓는, 베테랑 감독의 영화 언어를 보여 준다.
정신 없는 편집 과정에서 마크는 자신을 지지하는 동료들과 함께 차근차근 할 수도 있는 것을, 괜히 일을 키우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는 아이디어를 들이미는 마크와 당장은 안 된다는 동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그때마다 충동을 참지 못해 물건을 내던지거나 소리치고는 뒤늦게 사과를 하느라 바쁘기도 하다. 그럼에도 모두들 작품을 완성하고 싶어한다. 외딴 시골 동네에서 음악 스튜디오를 찾아 내고 오케스트라를 구하고, 심지어 영사를 척척 준비해 마을에서 상영회를 여는 것은 마크 옆에 있는 샤를로트와 실비아다. 그들은 버겁지만 이 모든 노동과 황당한 아이디어를 감당한다. 이 일을 대하는 태도는 각자 다소 달라 보이지만 이들 모두의 목표는 단 하나, 영화를 끝까지 마치는 것이다.
<공드리의 솔루션북>은 영화 <무드 인디고>를 제작하던 당시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 감독으로서의 자전적인 영화이자 자아성찰이 담긴 코미디이다. 주인공 마크가 제멋대로 굴고 끝내는 옆에 머물던 사람들마저 떠나가게 할 정도로 대책 없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솔직하고 자조적인 유머를 구사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사랑을 발산하는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한계는 바로 선의와 신뢰에 의한 관계들이 없다면 마크는 예술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냉혹한 사실이다. 상품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예술로서 영화를 보아주는 동료들과 자신의 엉뚱한 면을 이해해주는 고모 드니즈가 없다면 그는 수많은 아이디어에 짓눌리다가 영영 작품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들은 작은 마을이 계속 굴러가듯이, 여러 사람의 노동이 모여 완성되는 것이 바로 영화라는 멋진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런 조건 없이 마크를 사랑해 주는 여자들, 특히 조용히 아파트에 들어와 엉망이 된 집을 손수 치워 주고 끝내는 가정이라는 새로운 ‘모험’으로 마크를 끌고 가는 가브리엘은 공드리가 연출하는 초현실적인 비주얼 만큼이나 꿈 같은 캐릭터이다. 마법 같이 이루어진 조건 없는 사랑, 아이를 낳는 것을 자신의 인생의 새로운 시작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 실은 권력이라는 점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다소 씁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쇼트에서 알 수 있는 점은 <공드리의 솔루션북>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걸음 다가가는 시도라는 것이다. 수없이 집적된 아이디어가 성가시게 느껴지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하기 마련이고, 거기서 반짝이는 혁신이 일어나기도 한다. 공드리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 만든 이 작품은 사랑과 관계를 가꾸는 것에 관한 작품이며, 동시에 영화를 제작하는 일이 어지럽고 추상적인 계획과 수백 번의 노동이기도 함을 보여주는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관객 앞에 선을 보이는 순간 영화는 만든 이들의 손을 떠나게 되고 감상과 해석과 왜곡은 전부 관객의 몫이 된다고 말하면서 관객에게 말을 건다. 심지어 마침내 관객의 반응을 조우하는 마크의 기분을 보여 주는 듯한 마지막 장면이 수줍음인지 수치인지 판단하는 것은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다. 이렇게 <공드리의 솔루션북>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 영화에 대한 질문을 하고 결국 관객 가까이까지 다가오는 영화로 마무리된다. <무드 인디고>를 보고 마음껏 슬퍼해도 되듯이,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비극인지 희극인지 논하지 않아도 됨을 깨달았듯이 이번에도 우리는 영화 만들기를 말하는 공드리의 언어를 재미있게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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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최동훈 감독님 열심히 하시잖아
세계가 무너지기 직전
이 영화의 주인공은 도사 무륵(류준열)과 이안(김태리)다. 이안은 드디어 시간의 문을 열 수 있는 신검을 되찾았다. 외계인 죄수를 쫓다 과거에 갇힌 이안. 이안의 아버지 역할을 했던 썬더(김우빈)를 찾아 다시 현대로 돌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 신검에 대해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인물이 있다. 무륵이다. 사실 무륵은 자기 몸 안에 어떤 존재가 있다는 걸 체감한다. 분명 요괴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무륵. 이 이상한 조짐은 삼각산의 두 신선 흑설(염정아)과 청운(조우진)도 알 수 있던 부분이었다. 무륵 안의 요괴를 확인하고 싶은 세 사람(무륵,흑설,청운). 이 세 사람은 신검으로 이(요괴)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신검을 쫓는 인물은 두 명 더 있다. 메인 보스 자장(김의성)과 맹인 검객(진선규)도 무륵과 이안을 쫓고 있던 것이다. 과거는 과거대로, 현대는 현대대로 문제가 일어난다. 신검 따라 움직이던 인물들은 현대의 우리들에게 발생한 문제가 있음을 알아채고, 이를 위해서라면 신검이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1390년의 고려와 2022년의 대한민국 사이를 움직이는 외계+인들. 어떤 인물이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360억짜리 빌드업
이 영화에 대해 가장 먼저 쓰고 싶은 것은 이야기 전개다. 이 영화의 플롯은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바로 우리 모두가 아는 스릴러/케이퍼 무비 장인 최동훈의 외길인생이 본작에서도 느껴지는 것이다. 1편에서 실망한 관객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이 2부에서는 우리가 알던 최동훈의 영화가 돌아왔다. 어떤 점에서? 이 영화 <외계+인 2부>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인물들이 질주하는 플롯을 취하고 있다. 우리가 알던 최동훈의 영화처럼 말이다. 실제로 <도둑들>과 <암살>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바로 ‘보석을 훔치거’나 ‘친일파를 암살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서 우리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캐릭터들이다. <도둑들>의 펩시와 휘발유, 마카오박이나 <암살>의 하와이 피스톨이나 염석진 같은 캐릭터들은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다. 인물들이 간단한 플롯을 휘발유처럼 불태우는 것이다. 영화가 이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덕에 최동훈의 필모그래피는 극의 울림보다 재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장르적인 쾌감을 맨 위에 두면서 각기 다른 인물들로 극의 개성까지 가져가는 것이다.
이 영화의 1부는 기존의 최동훈 필모그래피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듯했다. 이야기는 복잡했고, 인물들은 이 복잡한 설정을 설명하기 위해 소모적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1부와는 다르게 2부는 설명해야 할 것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1부는 말 그대로 할 말이 많았다. 무륵 설명하고. 이안의 사정도 보여줘야 하고. 자장을 비롯한 빌런들의 악랄함도 묘사해야 하고. 썬더와 이안사이의 관계도 넣어야 하고. 가드와 썬더는 또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이야기에 들어가지 않으면 2부에서 매가리가 빠진다. 그런데 단적으로 설명만 하면 안 된다. 2부에서 이 모든 인물들이 영화의 핵심문제를 해결하는 단계가 남아있으니 관객들이 캐릭터에게 정도 붙여야 한다. 이 모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동훈 감독은 여러 장르를 혼합시키는 것을 골랐다. 실제로 1부는 코미디, 액션, 스릴러, 호러, 로맨스, 가족, 판타지, SF, 슈퍼히어로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이야기를 전개했다. 하지만 영화의 이 선택은 패착으로 돌아왔다. 1부의 러닝타임 안에 등장인물에게 정을 붙이는 건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했다. 너무 많은 소재들이 정리가 안된 탓에 영화에 집중하기 어려웠다는 평이 많았다. 이 두 문제는 치명적이다. 인물들에게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이에 대한 여파로 골랐던 여러 장르를 병치시키는 선택은 낡은 연결고리만 강조시키며 단점만 부각했다. 대표적으로 외계인의 능력을 묘사하기 위해 들어갔던 썬더의 대사들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또 이 영화에 도사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시간여행은 안 그래도 복잡한 플롯을 더 꼬아버리는 악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과거 서사가 쭉 전개되다가 현대 이야기가 들어가면 썬더의 목소리톤에 질겁하며 이야기 몰입도가 깨진다. 최동훈 감독이 승부수로 던졌던 선택들이 반만 성공하고 반은 실패한 것이다.
본작 2부에서는 이런 단점들이 최소화될 수밖에 없다. 2부 초반부터 우륵이 왜 신검을 차지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1부를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이안이 왜 절실하게 신검을 얻고 싶은지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가드와 이안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뺀질거리는 도사 듀오의 유머감각도 익숙해진다. 자장의 카리스마와 그의 속사정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부가 2부의 전제조건들을 해결시키니 감독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상으로 현재/과거를 왔다 갔다 하는 플롯도 정돈이 됐다. 이야기를 해결하는 데 있어 순번을 부여해서 순차적으로 해결하는 (비교적) 정돈된 플롯을 보여준다. 어? 인물에게 정을 붙일 수 있고, 순서대로 착착착 이어지는 플롯?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매력을 보여주는 김태리, 류준열 배우? <도둑들>이다. 그리고 플롯을 전복시키는 것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최동훈식 케이퍼무비의 조건들을 이번엔 신선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최동훈의 시그니처에서 한 단계 진화된 측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영화의 엔딩과 관련된 부분인데, 이 거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방식에 이 엔딩은 두 작품을 요약하는 좋은 선택이었다. 상업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은 <외계+인 2부>지만 최동훈의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족쇄를 부수다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캐릭터였다. 바로 김태리 배우가 맡은 이안과 류준열 배우가 맡은 무륵이 그렇다. 사실 1부의 이안/무륵은 아쉬운 감이 있었다. 전자 이안은 섬세한 힘이 부족하면서, 감정적으로 매끄럽지 못했다. 캐릭터를 긴 시간을 들여 설득시켜야 하는데 영화 한 편으로 모든 서사를 설득시키려 했던 욕심이 과했다. 글쓴이는 가드와의 관계에서도 그걸 느꼈고, 이안이 두 도사를 대하는 방식에서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이라면 원래 착해’에 기대는 것이다. 사실 본작 2부에서도 이 단점에서 벗어났다고 보긴 어렵다. 로맨스 영화로서 생뚱맞은 장면이 몇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부실한 서사에도 김태리 배우는 물 만난 고기처럼 활약한다. 감정적으로 화내고 슬퍼하는 장면에서 김태리 배우의 장기가 돋보여 이야기의 윤활유가 된다. 후반부는 사실상 김태리 배우가 이끈다고 볼 수 있는데, 템포를 바꾸는 영화에서 이 인물을 중심으로 따라갈 수 있다는 점은 김태리라는 배우가 가진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류준열 배우가 맡은 무륵은 전적으로 소년만화의 클리셰를 따랐기 때문에 아쉬웠다. ‘슬램덩크’의 정대만이 도술을 쓰면 무륵이 되는 느낌? 하지만 이 인물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서사가 있다. 바로 로맨스 / 성장서사다. 그리고 이 성장서사를 어떻게 소화하는지가 배우의 역량과 관련된 부분일 것이다. 류준열 배우는 이 두 가지를 쉽게 설득시킨다.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볼 수 있었던 내면 연기와 왠지 자연인 류준열에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코미디 연기를 자기 방식으로 십분 소화한다. 어떤 연기는 경우에 따라서 좀 오그라든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오히려 이런 모습이야 말로 이야기의 엔딩과도 이어지며 2부의 서사를 다방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쉽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바로 흑설과 청운 캐릭터다. 이 두 캐릭터는 1,2부에서 핵심 조연을 담당하며 시리즈의 웃음을 담당한다. 사실 글쓴이는 1부에서도 두 캐릭터가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다만 두 배우가 연기를 정말 끝내주게 잘한다는 걸 다시 느꼈다). 2부에서도 여전히 재미없었다. 이번에는 이유를 댈 수 있을 만큼 재미없었다. 왜? 이 2부에서 흑설, 청운 캐릭터의 유머는 1부에서 우리가 봐왔던 이미지의 연장이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어떤 장면에서는 이 부분을 위해 이 캐릭터들이 존재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두 캐릭터 외에 2부의 핵심 조연이 된 인물이 있다. 바로 이하늬, 진선규 배우의 캐릭터들인데 각기 인물들이 할당받은 분량이 이야기 전체와 호응하는지는 의문점이 있다. 굳이 필요했을까 싶은 장면이 몇 있다.
내가 최동훈이야
이 영화에서 낯선 느낌을 받았다고 하지 않으면 무조건 거짓말이다. 사실 이 기시감은 1부 개봉 당시 글쓴이가 봤던 감독의 인터뷰에서 가져온 것이다. 어떤 시리즈인지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지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들이다. 플롯에서 이 시리즈의 일부 장면, 심지어 1편의 플롯을 가져온 느낌이 있다. 그리고 어떤 소재에서는 이 시리즈의 등장인물들과 겹쳐 보이는 점이 있다. 이런 기시감이 든다고 해서 무작정 따라 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최동훈 감독은 이 시리즈에서 매혹됐던 일부 장면들을 갖고 오면서 몇 개는 버렸고 몇 개는 선택했다. 사실 이 취사선택을 고른 연출법으로도 이 ‘외계+인’ 시리즈에 대한 최동훈 감독의 야망이 느껴진다. 한국에서도 이런 시도가 필요하다는 욕심이 보였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요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단점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1부에서 지적받았던 단점이 무엇일까? ‘난잡해요’ ‘대사들이 유치해요’ ‘과거와 현대파트가 호응하지 않는 것 같아요’ 등이 있다. 2부에서 이것들을 해결했다는 것은 ‘비교적’이라는 의미지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2부 자체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슨 말이냐? 영화가 1부와 다른 것들을 시도해야 하지만 전작에서 이야기했던 건 이어야 한다. 전자를 골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과도한 생략과 후자를 골랐기 때문에 느껴지는 ‘낯설게 하기’의 강박이 본작에서 둘 다 느껴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는 1부와 2부가 아예 별개의 영화처럼 느껴진 적도 있다. 또 2부에서 느껴졌던 묘한 인형놀이가 좌왕과 우왕의 서사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아쉬움은 이 영화의 기획의도를 생각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만약 이 ‘외계+인’ 시리즈가 넷플릭스가 투자한 한 6부작 시리즈였으면 어떻게 됐을까? 짧은 기간 동안 긴 분량을 고르기보단 긴 기간 하에 여러 장면을 보여주면서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드라마로 시작했으면 차기작도 만들 수 있다. 시퀄로 이안의 솔로 무비를, 프리퀄로 가드의 영화도 만들 수 있다. 오히려 최동훈 감독이 정말 이 시리즈를 시도하고자 했던 이유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아마 투자자들이 많았나 보다
이 영화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을 수 있다. 워낙 1부가 많은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자연스럽게 안 좋은 평가들이 따라오는 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글쓴이도 1부 리뷰 쓰고 '인터넷에는 재미없다는 말이 많다'식의 악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글쓴이는 이 영화, 그러니까 <외계+인 2부>가 아쉬운 점이 많지만 이런 시도 치고는 완성도가 없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최동훈 감독이기 때문에 이런 중구난방으로 쏴대는 플롯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중구난방으로 쏴대기 때문에 이야기가 난잡하고 유치한 것도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니까 많은 관객들이 이 두 영화의 호불호에 대해 다양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영화 호평하는 사람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너 돈 받았니'같은 소리를 하는 것보다야 훨씬 생산적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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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화를 통한 멋진 이륙, 밋밋한 착륙!
‘이 영화는 실화입니다!’ 점차 새로운 이야기가 고갈되고 있는 영화계에서 실화만큼 든든한 지원군은 없다. 관객에게 어필하기 딱 좋은 마케팅 요소로도 적합하다. 문제는 영화보다 영화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각색하고 풀어내느냐가 관건. <하이재킹>은 실화의 힘으로 멋진 이륙을 해내지만, 결국 밋밋하게 착륙하고야 만다.
때는 1971년 겨울, 속초공항에서 김포행 비행기 한 대가 이륙한다. 이날 여객기 조종은 태인(하정우)와 규식(성동일)이 맡는다. 사고 없이 이륙한 비행기는 곧 아수라장이 된다. 여객기를 통째로 납치하려는 용대(여진구)의 사제 폭탄 때문. 폭발로 인해 베테랑 기장인 규식은 눈을 다치고, 부기장인 태인이 조종간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순식간에 하이재킹에 성공한 용대는 북으로 향하라고 소리친다. 승객의 목숨을 담보로 한 용대의 협박에 무엇보다 사람의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태인은 일단 비행기를 북으로 돌린다. 그 사이 기내에 있는 승무원 옥순(채수빈)과의 공조를 통해 이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하이재킹>은 1971년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실화를 기조로 각색을 더 해 재탄생한 영화가 가장 먼저 비추는 건 공군 전투기 조종사인 태인의 눈을 통해 본 납북 민항기다. 휴전선을 넘기 전 민항기를 공격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어긴 태인은 사람들은 살렸지만(물론, 납북된 사람들이 모두 송환되지 못했다.), 군복은 벗어야 했다. 그만큼 영화는 당시 한국전쟁 이후 서로 다른 이념이 첨예한 대립을 하던 시대적 상황을 먼저 짚고 넘어간다. 그리고 이 대립이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가운데, 감독은 태인에게 60명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또 한 번 휴머니즘을 발휘할 것인가를 되묻는다.
어쩌면 영화는 그 물음에 답하는 것처럼 승객을 위해 몸을 던지고 헌신한 이들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해 벌이는 조종사와 승무원, 그리고 승객들의 공조는 각색을 감안해도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유추할 수 있게끔 한다. 좀 더 상황에 몰입할 수 있는 건 다수의 재난영화에서 볼 수 있는 각양각색 인간들의 모습과 이야기, 그리고 자치 신파로 빠질 수 있는 드라마 요소를 애써 가져가려 하지 않으려는 영화적 성격이 한몫한다. 물론, 승객들의 이야기가 아예 다뤄지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극 중 태인과 용대의 대립을 견고하게 해주는 요소로만 작용한다. 신파를 걷어내고 담백하게 사건을 재조명하려는 감독의 노력이 여기에 비친다.
또 하나의 영화가 가진 차별화 포인트는 용대라는 인물이다. 허구로 만들어진 그는 단순히 북으로 가기 위해 하이재킹을 시도한 빌런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형이 북으로 넘어간 이후 ‘빨갱이’라 낙인찍힌 그는 시대의 희생양으로 묘사된다. 갖은 수모에 따른 분노와 더불어 북에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 이 일을 선택한 용대의 절절한 전사는 관객에게 그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항공기 납치 영화로서의 재미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하이재킹>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난기류를 만난다. 바로 실화가 가진 무게감과 이념 대립의 이야기에 집중한 나머지 장르적 재미는 반감된다는 것. 항공기 납치 사건이 벌어지지만 좁고 한정된 공간 안에서 다루다 보니 서스펜스 전달의 한계는 노출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내부에서는 폭발, 외부에서는 국군 전투기의 고공 장면이 진행되지만, 일회성으로 그쳐 연쇄적 감흥은 떨어진다. 더불어 빌런의 능력치가 기존 장르 영화에 비해 떨어져, 시간이 갈수록 태인과의 대결 구도에서 빗어지는 긴장감은 하강한다.
그럼에도 영화가 중심 고도를 잡고 밋밋하지만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던 건 어떻게든 살고자 했던 실존 인물들의 모습이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하정우, 성동일, 채수빈 등 승객을 위해 몸을 던진 이들의 연기는 당시 실존 인물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공포, 그럼에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느끼게 한다. 이전 작품들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다고 할 수 없지만, 각자 자신이 맡은 임무를 수행하듯 실화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당시 영웅들의 감정을 오롯이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상의 인물이며 빌런으로 나오는 여진구의 연기도 한몫한다.
<하이재킹>을 보고 실화에 더 관심이 생긴다면 지난 2022년 9월에 방송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46회 '필사의 51분, 1971 공중지옥' 편을 추천한다.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가 <하이재킹>이 못다 한 멋진 착륙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사진 제공: (주)키다리스튜디오
평점: 3.0 / 5.0
한줄평: 실화를 통한 멋진 이륙, 밋밋한 착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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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벌어 하루 살아도 행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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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영화리뷰 / 매트릭스4 리저렉션 리뷰(*스포없음)
+ 매트릭스1 오프닝 초반 장면 리뷰
+ 모달 MODAL 101 / 그 외의 상징 해석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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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스파이> 메인 예고편
전운이 감도는 1960년 냉전시대, 소련 군사정보국 ‘올레그 대령’은
정부의 눈을 피해 핵전쟁 위기를 막을 중대 기밀을 CIA에 전하고자 한다.
CIA는 MI6와 협력하여 소련의 기밀 문서를 입수하기 위해
영국 사업가 ‘그레빌 윈’을 스파이로 고용해 잠입에 성공한다.
정체를 감춘 채 런던과 모스크바를 오가는 ‘그레빌 윈’과 ‘올레그 대령’의
은밀하고 위험한 관계가 계속될수록 KGB의 의심은 커져가는데...
가장 평범한 사람의 가장 위대한 첩보 실화
때론, 한 사람의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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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청춘적니> 30초 예고편
17살, 빈 교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링이야오'에게 첫눈에 반한 '뤼친양'.
그의 순수한 고백에 '링이야오' 역시 호감을 느끼며 두 사람은 사랑을 쌓아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랑이 전부일거라고 생각했던 10대와 달리 20대에 들어선 두 사람은 점차 현실적인 문제들로 지쳐가고, 마침내 두 사람이 사랑한 지 10년이 되는 날, '뤼친양'은 '링이야오'를 위해 운명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내 청춘 속 누구보다 빛났던 너, 세상 끝에서 다시 함께하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