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11-02 16:52:38
이번 달이 마지막이라고? 넷플릭스 종료작
넷플릭스 11월 종료작 모음집
11월은 날씨도 급! 추워지고 공휴일이 없어 유독 힘든 달이네요 :)
이런 마음을 위로해줄 넷플릭스 영화들을 가지고 왔어요
11월을 마지막으로 서비스 종료되는 작품을 가져왔으니,
이 리스트에 있는 작품은 11월에 모두 보기로 해요!
1. 로켓맨 - 덱스터 플레처
영국, 미국 ㅣ드라마,판타지,뮤지컬 ㅣ121분
11월 6일 종료 예정



synopsis
재활센터에서 인생을 되돌아보는 가수 엘턴 존.
사랑받지 못해 외로웠던 어린시절부터 대중을 사로잡은 독보적인 음악성과 열광적인 무대까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의 삶과 음악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2. 언더 워터 - 자움 콜렛 세라
미국 ㅣ드라마,스릴러 ㅣ86분
11월 11일 종료 예정



synopsis
인적이 뜸한 외딴 해변.
홀로 파도를 타던 서퍼가 백상아리의 공격을 받았다.
암초 위에서 피를 흘리며 목숨만 부지하는 상황.
구조를 기대할 수 없으니 살아남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상어의 허점을 간파해, 있는 힘껏 헤엄치는 것.
3. 오블리비언 - 조셉 코신스키
미국 ㅣSF, 액션 ㅣ124분
11월 15일 종료 예정



synopsis
외계인 침공 후 폐허가 된 지구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잭.
정체불명의 우주선이 추락하면서부터 망각 저편의 기억이 돌아오는데
그가 알고 있는 세계는 어디까지 진실인가?
4.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열정과 애정
- 비반 키드론
영국,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미국 ㅣ멜로/로맨스, 코미디 ㅣ107분
11월 15일 종료 예정



synopsis
다시 돌아온 브리짓 존스.
사랑스러운 미소도, 숨길 수 없는 허당끼도 여전한데.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동화 속 왕자님 같은 애인이 곁에 있다는 것!
이젠 혼자 뜬눈으로 지새우는 밤 따위, 눈물 젖은 일기를 쓸 일 따윈 없는거지?
5. 퀸 & 슬림 - 멜리나 맷소카스
미국 ㅣ드라마 ㅣ132분
11월 20일 종료 예정



synopsis
첫 데이트와 저녁 식사, 그날은 좋은 날로 기억될 수도 있었다.
집으로 가던 길, 흑인 남녀의 사소한 실수와 차량 검문 그리고 백인 경찰의 돌연한 죽음이 없었다면.
그날 밤, 도망자가 된 둘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6. 천일의 스캔들 - 저스틴 채드윅
영국 ㅣ멜로/로맨스, 드라마 ㅣ115분
11월 21일 종료 예정



synopsis
원대한 야심을 품은 앤, 순수한 마음을 지닌 메리.
변덕 심한 헨리 8세를 차지하기 위한 자매의 경쟁은 갈수록 아슬아슬해진다.
화려한 궁정을 배경으로한 실화 소재 시대극.
7. 엠마 - 어텀 드 와일드
영국 ㅣ멜로/로맨스, 드라마, 코미디 ㅣ124분
11월 26일 종료 예정



synopsis
기품 있는 발걸음과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대저택의 젊은 주인 엠마.
중매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그녀가 결심한다.
친구에게 최고의 짝을 찾아주기로.
하지만 그녀에게 곧 닥쳐온 건 난생처음 느껴보는 당혹스러움과 시련.
8.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
- 게리 위닉
미국 ㅣ멜로/로맨스, 코미디 ㅣ97분
11월 30일 종료 예정



synopsis
지금 이 모습은 싫어.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잠들 땐 분명히 13살이었는데 눈을 떠보니 30살.
섹시한 외모에 근사한 남친까지!
모든 게 완벽한데 뭔가 아쉬운 건 왜지?
씨네랩 에디터 Ria
Relative contents
-
- 안녕들 하십니까
SYNOPSIS.
원주에 60년 된 단관극장이 있다. 극장 주위엔 극장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극장을 부수려는 원주시장이 있다. 아카데미극장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때 아카데미극장밖에 모르던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전주국제영화제)
가까운 상영 일정.
6월 8일 (토) 서울아트시네마 (2024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6월 22일 (토) 메가박스 남춘천 3관 (춘천영화제)
어떤 나라 어떤 도시의 어떤 시장님께 씁니다. 10년쯤 전 유행했던 인삿말로 안부를 여쭙고 싶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저는 별로 안녕하지 못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또 하나의 '안녕하지 못한' 면을 느껴 버렸으니까요. 시장님라도 꼭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재산 축소해서 발표하고, 불통 행정으로 귀 막으셨고, 극장의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하라고 내어준 예산까지 반납하시면서 꽤나 많은 걸 절약하셨는데 뭐 그러고도 안녕하지 못하신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 덕분에 저는 어이가 없어서 103분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느라, 턱 관절조차도 안녕하지 못하답니다. 하지만 얼얼한 턱 관절을 움직여서 꼭 한 번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대체 왜 그러셨어요? 꼭 그래야만... 속이 시원하셨습니까?
원주 아카데미 극장은 1963년에 지은, 현재까지 원형을 보존하는 단관 극장 중 가장 오래된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오래됐다고 다 좋은 건 아니죠. 건물의 안전을 점검하는 것 또한 시정을 두루 돌보아야 할 시장님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암요. 하지만 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적어도 그 방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시민들과 대화 정도는, 아니 대화하는 척만이라도 좀 할 수는 없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제가 시장님이었다면 최소한의 듣는 '척'이라도 했을 것 같아요. 그 정도 정치적 액션 정도는 취해주는 게 시장님께도 유리하지 않나요?
원주 아카데미 극장은 시민들의 애정 어린 손길을 받아 다시 숨결을 부여받은 건물입니다. 오래된 건물도 흔치는 않지만, 오래된 건물 중 이렇게 되살아나는 건물은 더더욱 드물죠. 오고가는 사람들이 늘상 마주치는, "늘 그 자리에" 있는 건물인 동시에, 멈춰있던 시간이 사람들의 애정으로 다시 흘러가게 된 공간. 이런 공간은 전국을 뒤져도 흔치 않을 겁니다. 게다가 이 애정은 진행형이었죠. 누군가의 애정이 깃든 곳을 부수다니,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실 수 있었는지요. 그러고 짓는 게 고작 주차장이라니.
물론 저는 극장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극장을 좋아하는 관객이기 이전에 같은 나라의 행정 체계 안에 사는 시민으로서 심각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예술 공간 어쩌구 하면서 상상력과 미학적 관점 부족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님으로서 실무 능력이 좀 있으셔야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에요. (근데 보통 실무 능력이 없는 분들은 미학적 감각도 같이 없으시더라고요. 정말 신기하게도 말이에요. 이번 결정 또한 미학적으로 너무 구려요. 다 떠나서 일단 구려... 그래서 얼굴이 찌푸려집니다.)
주민들은 무조건 극장을 유지해 달라고 요청한 게 아닙니다. 어거지를 쓴 게 아니었다고요. 토론을 요청했죠. 대화의 장을 열자고 했습니다. 그런 주민들한테 하신 말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냥 시민 누구도 배려하지 않은 발언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음악 활동 하라구요? 음악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건 '고립'이라구요? 이게 뭔... 그런 논리대로라면 버스커버스커였던 장범준도 고립된 겁니까? 그런 논리대로라면, 시정 업무를 보기 위해 시청에 들어가시는 것도 고립일까요?
급기야는 공무원을 우르르 보내셨죠. 공무원들은 무슨 죄인지 참. 지방자치법 55조, 문화재보호법 13조, 산업안전보건법 123조를 위반하시고, 아무 준비되지 않은 막무가내 해체를 통해 석면 관련하여 시민 안전도 위협받았습니다. 아카데미 극장의 붕괴가 필수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하실 필요는 정말로 없었습니다. 적당한 단계를 순차적으로 밟으며 사람들을 설득하고 공감을 얻으실 수 있었을 거예요. 그랬다면 시장님의 리더십이 좋은 방향으로 평가 받았겠죠? 선출직이신데 대체 뭘 믿고 이런 막무가내 위법 행위까지 저지르시는지... 딱히 시장님께 유리하지도 않은 이 모든 행위들의 이유가 무엇인지... 저는 정말로 이해가 안 가서 그렇습니다. 막말로 뽑혔으니 시장이지 임기 끝나면 그냥 동네 아저씨십니다.
만약 아카데미 극장 유지보수를 위해 새로운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 금액이 너무 막대했다면, 시정을 두루 돌보시기 위해 전체 예산을 고려하고자 큰 그림을 그리셨나 보다 하고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비용이 확보가 되어 있었죠. 국비도 도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 받겠다 하셨다면서요.
생각할수록 이해가 안 가는 행위들이 계속되니, 처음에는 토론을 요청하던 시민들의 모임 또한 계속해서 어떤 '저항'에 가까워집니다. 그러니까 시민들이 그냥 청소하고, 모임하고, 기록할 때... 그들이 그냥 그렇게 살 수 있게 잘 좀 해보시지 그러셨어요. 왜 선출직 주제에 이런 저항 받는 자리에 놓이려고 하세요. 이렇게 한 치 앞의 미래를 톺아볼 수 있는 창의력도 상상력도 부재하시면서, 무슨 지방 정치의 일원이 되려고 하세요. 있는 관광 자원도 무너뜨리는 사람이, 없는 자원을 육성하여 지역을 키울 힘이 있겠습니까?
제가 이 영화에서 본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아카데미 극장의 아름다운 면면. 옛날 영사기, 램프, 미싱까지 별게 다 있는데 이 공간이 박물관이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너무 흥미롭고 신선했습니다. 쓸데없이 명랑한 폰트로 '레트로', '빈티지'를 외치는 가짜 감성이 난립하는 시대에, 이토록 우아하고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요. 그러나 이 공간이 이미 무너졌다는 것, 무너지는 내내 저는 SNS로 소식을 접하고 이름을 보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슬퍼집니다.
다른 하나, 두 번째는 시장님의 무능입니다. 영화고 극장이고 다 떠나서, 지방 소멸 걱정 안되십니까? 저는 되게 걱정되거든요. 그래서 한 도시에 이런 관광자원이 있다는 거 정말 잘 다듬어볼 만한 자산이라 생각하는데, 불법을 동원해서 무너뜨린 이런 일은 역사적 오명으로 남지 않겠습니까. 시장님도 아직 젊으신 편인데, 이게 꼭 시장님 사후 먼 미래에 대한 우려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법도 앞으로는 다시 고려해 보시면 어떨까요? 꼭 시민을 이렇게 절박하게 몰아내야만 합니까?
그리고... 영화고 극장이니까 조금 더 첨언하는데요. 제발 도움이 안 될 거면 방해라도 하지 마세요. K콘텐츠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정작 K콘텐츠 만들어가는 사람을 방해하는 '개저씨'가 시장님만 계신 건 아닌데요. 당신들의 근시안적 시선에 대단한 지원이나 조언 바라지 않으니, 그냥 있는 지원 끊어내는 바보 짓이나 하지 말고 차라리 가만히 계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 해봅니다.
제가 103분 동안 너무 궁금해서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거든요. 정치를 잘 모르는 제 머리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서요. 혹시, 아주 혹시라도 이게 그 유명한 '전임자 지우기'는 아니겠지요? 지자체 캐릭터 열풍을 선도한 어떤 동물 캐릭터가 최근에 무슨 못생긴 곡식 캐릭터로 대체된 곳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사람들 해석이 그랬거든요. 참고로 이건 전임자 지우기가 되지 않아요. 캐릭터나 극장 같은 건 잘됐을 때 사람들에게 절대 정치인 이름으로 남지 않습니다. 남을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자의식 과잉이세요. 그냥 캐릭터 이름, 극장 이름만 기억하지, 그런 걸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순리를 거슬러 가며 무너뜨린다? 그 정치인 이름만 오명으로 남는 거예요.
이미 무너뜨린 극장은 시장님 멱살을 잡고 탈탈 흔들어도 다시 돌아오지 않겠죠. 저는 이제 와서 억지를 부리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번 일은 우리가 뼈아프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불통 행정이 얼마나 큰 상실을 불러일으키는지. 그에 맞서는 시민의 연대는 얼마나 힘이 있는지.
네, 이 일은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앞으로 행정의 무능과 불통을 기억할 때 이 일을 사례로 들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름 길이길이 남기시게 된 것 축하드립니다. 지난 지방선거가 2022년이었죠. 2026년까지는 아직 조금 더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바라건대 더 이상의 오명은 남기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시민들과 적극 소통하시고 위법 행위 근절하셔서, 반전의 이름으로 남으실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동료 시민으로서, 시장님의 안녕을 빌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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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로서 드러내라, 예술가로서 저항하라
영화를 볼 때, 저는 자주 영향적 감상에 빠지곤 합니다. 영향적 감상은 '나를 변화시킬 만큼 큰 영향을 주는 영화 감상'이라는 뜻인데요. 영화에 감명을 받고 마음을 다잡는 일이 너무 많아 제가 지어낸 말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습니다. 사진을 아끼는 사람이기에 이번 영화는 제게 특히 더 많은 영향을 주었죠.
사진의 힘은 위대합니다. 사진을 훑는 것만으로 기억의 파편들은 이야기로 재생됩니다. 그리고 여기,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의 파편들을 사진으로 담은 한 사진작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2024년 5월 15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Summary
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사진은 나의 유일한 언어였다. 나는 생생하게 반짝이는 뉴욕에서 죽어가는 친구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포착했고, 있는 그대로의 내 얼굴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이제는 내 모든 명성을 걸고 거대 제약회사에 맞서 싸운다. 생존과 투쟁의 기록이 담긴 나의 일기장을 당신에게 펼쳐 보인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로라 포이트라스
명성을 이용해 폐단을 무너뜨리다
낸 골딘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입니다. 거장이나 대가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엄청난 분이죠. 그런 그가 미술관을 돌며 시위를 벌입니다. 그중에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했던 미술관도 있고, 곧 자신의 회고전을 열 미술관도 있습니다. 낸 골딘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미술관 바닥에 약통을 뿌리고, 바닥에 드러누워 죽은 시늉을 합니다.
그의 저항 운동은 제약사 퍼듀 파마와 그 배후에 있는 새클러 가문을 향합니다. 퍼듀 파마는 '옥시콘틴'이라는 진통제를 만든 회사입니다. 옥시콘틴은 가벼운 고통을 느끼는 환자에게도 의사가 쉽게 처방해 주던 약이었죠. 하지만 이 약은 퍼듀 파마가 매출을 높이기 위해 만든 마약성 진통제였습니다. 퍼듀 파마는 부작용을 은폐하고, 거짓 광고로 현혹하고, 공격적인 영업으로 판매를 촉진했죠. 옥시콘틴을 처방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마약에 중독됐습니다. 옥시콘틴은 판매가 금지되기 전까지 무려 720억 정이 팔렸으며, 이로 인해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퍼듀 파마를 운영하는 새클러 가문은 옥시콘틴으로 벌어들인 돈을 예술계에 후원함으로써 이미지를 세탁했습니다. 전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기부금과 후원금을 제공한 덕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구겐하임 뮤지엄, 루브르 박물관 등 유수의 미술관에 이른바 '새클러 갤러리'라는 이름을 건 전시관이 개관했습니다. 예술을 방패 삼아 탐욕의 벽을 쌓아 올린 새클러 가문의 악명을 알리기 위해서는 내부자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예술계를 움직이는 내부자의 힘, 이를 발휘한 사람이 바로 낸 골딘이었죠.
낸 골딘은 사진작가로서 쌓아온 자신의 명성을 이용했습니다. 위대한 사진작가의 전시를 유치해야 하는 미술관의 입장에서 그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었죠. 미술관들은 하나둘 새클러 가문의 후원을 거부하고, 갤러리에서 새클러의 이름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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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그 자체로 예술
낸 골딘이 새클러 가문에 대한 저항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은 그 역시 옥시콘틴을 복용했다가 약물에 중독된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명성까지 거침없이 이용하는 그의 저항력이 오직 당사자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중첩되어 온 그의 과거가 저항력의 힘과 크기를 키운 것이었죠. 영화는 낸 골딘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강력한 저항력의 출처를 탐색해 나갑니다.
언니의 자살 이후, 어릴 때부터 바깥 생활을 전전해 온 그는 소외된 자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베스트 프렌드들은 대부분 사회에서 터부시되던 성소수자였고, 그 역시 그랬습니다. 낸 골딘은 무언가를 억지로 꾸며내 프레임에 담기보다는 자신의 일상을 고스란히 포착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그에게 사진은 표현의 두려움을 대신할 도구이자 해방처이기 때문이었죠. 낸 골딘은 일상의 모든 아름다운 면과 유혈사태를 가감 없이 사진에 담아냈습니다.
내밀한 일상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소외된 자를 드러내는 예술적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예술과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저항을 실천해 온 셈입니다.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고, 사회에서 바뀌지 않는 것을 바꾸는 것. 정해진 답을 따르는 것은 예술가의 행보와 어울리지 않지만, 낸 골딘이 포착한 기억의 파편들을 보다 보면 '예술가는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물씬 밀려옵니다.
어떠한 행운 또는 불운의 결과로 제게도 권력이 생긴다면, 저도 낸 골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쌓인 기억의 파편으로 저항력의 힘과 크기를 키운 사람,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메시지에 힘을 더하는 사람, 권력을 권력답게 쓰는 사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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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자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지만, 항상 예쁘고 멋진 순간만 포착하려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낸 골딘이 그러했듯이, 있는 그대로의 일상에서 숨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싶어졌습니다. 영향적 감상 끝에, 평소와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으로 가방에 카메라와 삼각대를 넣어봅니다.
One-Liner
예술의 가치는 표현의 자유에서 오고, 표현의 자유는 예술을 저항의 도구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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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더훈리 마이 러브 여름날 우리 너의 결혼식이라는 영화
영화 <여름날 우리, 2021>는 중국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한국영화 <너의 결혼식, 2018>을 리메이크하였다. 2016년 한중 관계가 냉랭해지면서 직접적으로 한국영화가 중국에 개봉하는 것은 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대신 원작 스토리를 중심으로 하는 IP(Intellectual Property) 수출의 유형이 증가하였다. 현재까지 총 25편의 영화 및 드라마가 중국판 리메이크로 재탄생하였다. 제목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한국영화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한 중국 영화는 <니더훈리 你的婚禮>라는 중국어 제목, <마이 러브 My Love>라는 영어 제목, <여름날 우리>라는 한국어 제목이 붙었다. 이번 리뷰는 두 영화를 비교해볼 수 있는 키워드로 정리하고자 한다.
<너의 결혼식>과 <여름날 우리> 포스터
[280만 명, 4400만 명]
<너의 결혼식>은 이석근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집필한 첫 장편 데뷔 영화이다. 현실적으로 잘 녹여낸 우리 모두의 환상인 첫사랑 이야기와 주연배우인 박보영과 김영광의 케미가 잘 어우러져 2018년 8월 2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하였다. 중국은 영화 흥행을 한국과 달리 관객 수가 아닌 수익으로 집계한다. <여름날 우리>도 2021년 4월 30일 중국의 노동절 연휴를 겨냥해 개봉하여 약 6억 위안(1041억 원) 흥행 수입을 올렸다. 좀 더 쉬운 비교를 위해 관객수로 환산하면 약 4400만 명이 영화를 관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환승희, 우영자(尤咏慈)]
<너의 결혼식>에서 박보영이 연기한 환승희는 타이밍 때문에 사랑이 빗나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로 연애의 휴식기에 우연한 만남이 그 의미를 가져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캐릭터의 이름을 환승.희, 황.우연으로 지은 것도 다분히 전략적이다. <여름날 우리>의 우영자는 수영장(游泳池)이라는 단어와 중국어 발음이 '요우용츠'로 비슷하다. 수영 선수인 저우 샤오 치는 이름만으로 운명을 직감한다. <여름날 우리>는 <너의 결혼식>에 비해 남자 주인공의 비중이 조금 더 높은 편이며, 실제 배우 캐스팅도 노력을 기울였다. 드라마 <상견니>로 큰 인기를 얻은 대만 배우 허광한은 이 영화로 중국 본토에 진출하게 되었으며, 엔딩 크레디트에는 그의 이름 옆에 '중화 대만'이 표기되어 있다.
[떡볶이, 꼬치구이]
학창 시절 학교 수업을 빠지고 몰래 먹던 추억의 음식은 나라마다 다를 것이다. 따라서 영화 리메이크에서 등장인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영화 속 음식을 현지화하는 각색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어색하지 않은 대체물을 찾아야 한다. <너의 결혼식>의 떡볶이는 <여름날 우리>에서 꼬치구이로 변신하였다. 그 외에도 남자 주인공이 하는 운동이 럭비에서 수영으로 , 정장 스타일의 교복 케미는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체육복 케미로 바뀌었다. 중국 본토는 실용적인 체육복을 교복으로 입는 경우가 많다.
<너의 결혼식>을 재미있게 보았다면, <여름날 우리>와 틀린 그림 찾기(사실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그림을 찾는 것)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위에서 대표적으로 언급한 것 이외에도 아직 찾지 않은 것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본 리뷰는 브런치 작가 '삐뚜로 빼뚜로'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팀에서 업로드한 게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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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 너머 샹그릴라까지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부모님의 집을 떠난 지 십년도 더 지났고, 밥벌이를 하며 살고 있지만, 아직도 스스로가 어른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가끔 부모님의 집을 찾을 때, (이제는 개념조차 희미한) ‘집 전화’의 수화기를 집어들 때가 있다. 낯선 목소리가 “집에 어른 계시니?” 할 때면, 습관처럼 안 계신다고 대답하고 나서는 끊긴 전화기 앞에서 잠시 상념에 빠진다. 내게 나는 어른이 아닌가? 문득 내 나이를 깨달은 자의, ‘어른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에 빠진다.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그 질문에 대한 어느 아름다운 답안을 이 영화, <벨파스트>에서 찾았다.
영화 <벨파스트>는 동명의 도시 벨파스트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에게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록허트 교수, <오리엔트 특급 살인> 포와로의 배우로도 익숙한 감독 케네스 브래너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재로 만든, 반쯤 자전적인 영화다. 케네스 브래너가 녹아든 주인공 꼬마 ‘버디’는 벨파스트의 한 골목에 살고 있다. 저녁 나절이 되면 밥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이웃들이 끝말잇기처럼 줄줄이 전달해줄 만큼 서로가 서로를 빤히 아는 동네. 그곳에서 쓰레기통 뚜껑을 들고 상상 속의 용을 무찌르면서 놀던 꼬마의 평화로운 세상은, 이내 깨진다.
용을 무찌르는 데 쓰던 방패는, 어느새 실제적으로 눈 앞에 튀는 벽돌 조각을 막아내는 방패가 되고 만다. 아이들이 꿈꾸어야 할 시간을 현실에 매어두는 것, 그게 분쟁이다. 아직 어린 버디에게 더없이 정겨운 고향이었던 벨파스트는, 동시에 폭력과 긴장에 묶인 지역이기도 했던 것이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종교 갈등인 동시에, 아일랜드 독립주의 계열과 친영 계열의 갈등까지 뒤섞여 유독 복잡한 분쟁의 양상을 굳이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화도 분쟁의 내용을 그리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상황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요약 서술되고 넘어가며, 그나마도 속도가 매우 빠르게 처리된다. 텔레비전에서 군대를 보낸다는 소식이 발표되는 동시에 창밖으로 군인들의 발소리가 들리는 식이다.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얼룩들이 아주 최근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정치적인 관점에서 아주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거기에 방점을 찍은 영화는 아니다. 관객으로서 나 또한 그보다는 한 가족의 이야기, 한 사람의 이야기로 주목하고 싶다.
#. 정답은 있는가
‘어른’과 유사하게 되어 가면서 점점 느끼는 게 하나 있다면, 거대하고 거창한 하나의 정답을 맹목적으로 외치는 사람 중에는 가짜의 비율이 높다는 것. 목청만 높이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직접 사유하고 살아낸 것만이 내게 남지만, 그렇게 삶으로 배운 것조차도 하나의 고정된 정답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생각도 언제 깨지고 바뀔지 모른다.
이건 꽤나 속이 복잡해지고 불안해지는 생각이어서, 가끔은 이 마음 끝에서 툭 큰소리를 내게 되기도 한다. 목청만 높이지 말자는 생각 끝에서 목청이 높아지다니 역설적이지만. 허장성세는 결핍에서 나오는 게 맞는 것 같다.
이 영화 속에는 ‘하나의 정답’을 외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답을 종용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맞부딪치는 일도 서슴지 않는 세계가 그려져 있다. 실제 북아일랜드의 정치적 상황을 떠나, 세계 보편적으로 익숙한 상황이 아닌가.
이 문제에 대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름의 방법을 갖고 있다. 할아버지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놓고 끙끙대는 버디에게 “숫자를 애매하게 쓰라”고 하며, 이를 “애매하게 맞추기spread betting”라고 한다. 하나 뿐인 정답을 콕 짚는 대신,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조언을 따른 버디가 반쪽의 성공만 거두고 돌아왔을 때, 할머니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같이 하기do the project together”. 경계를 흩는 것도 좋지만, 궁극적으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눈을 맞추고 함께하는 것이 해결의 열쇠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와 너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고, 나란히 연대하기. 이것은 정답이 아니다. 다만 정답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 변화보다 기억
구불구불해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길처럼, 상황은 계속 바뀐다. 한때 데이트가 끝나고 자신이 집에 데려다 주었을 ‘갈색 스타킹 소녀’가 이제는 평생을 함께한 노년의 여성이 되어, 자신의 노구를 ‘집에 데려와 주겠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잠시 할아버지가 멍해지듯이. "고향을 떠나는leaving home" 행동이 "살아가는moving on" 행위로 해석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듯이. 주부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효소 세제가 한 주부에게 전혀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되듯이.
자꾸 모양을 바꾸는 세상에서 변치 않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할아버지는 “벨파스트 출신의 버디”라는 정체성을 명확하게 기억하라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계속 묻는다. 버디는 그때그때 구체적인 대답을 꺼내는 아이다.
할아버지의 질문들은 버디의 뿌리를 세우는 힘이 될 것이다. 오늘의 버디도 할아버지의 사랑을 풍성하게 느끼지만, 먼 훗날 뒤채고 흔들리는 날에 더욱 느낄 것이다. 이 사랑은 대를 이어 내려온다. 손자의 수학 문제 푸는 법은 도와줄 수 있었지만, 자식의 성장 과정을 옆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할아버지의 사랑이, 그 자식의 마음에 “많이 도와주셨지”라는 아릿한 사랑으로 남아 있듯이. “가라. 돌아보지 마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단호한 얼굴에서 끈끈한 마음이 묻어나듯이.
“돌아보지 마라”는 할머니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이, 버디는 뒤를 돌아본다. 뒤를 돌아보는 마음, 결국 그것이 영화를 만드는 마음일 것이다. 기억하고 재구성하는 마음. 구불구불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앞만 바라보지 않는 마음. 그 마음만이 우리를 바라는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 달까지 가자
우리가 바라는 곳은 어디인가.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달’이 언급된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1969년 7월) 직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니, 광활한 우주를 소재로 한 텔레비전 방송을 보는 장면도 나오고, 버디와 캐서린이 함께 하는 과제도 달 착륙에 관한 것이다. 달 착륙 숙제를 했는지, 함께하고 싶은지 묻는 문장도 의미심장하다. “Have you gone to the moon yet?” 달에 가보았는지 묻고, “Do you want to, with me?” 같이 하겠는지 묻는 문장에도 ‘숙제’라는 목적어는 없다. 숙제를 마치고 최고점을 받은 아이들에게 아빠가 묻는 말 또한, 달까지 가는 방법이다.
할아버지와 아빠의 대화에서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달로 가라Get yourself to the moon”는 말을 한 뒤 할아버지는 “런던은 오직 작은 한 걸음일 뿐”이라며 “벨파스트는 언제든 뒤돌아보면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말하니까.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벨파스트를 갑자기 떠나야 했던 어린 시절이 자신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뿌리를 뽑혀 옮겨 심기는 감각은, 정도와 상황의 차이가 있지만 누구에게나 트라우마로 남는 기억이니까. 그러나 트라우마는 트라우마로만 끝나지 않는다. 순진무구한 버디의 시선을 필터 삼아 걸러진 다음, 이야기에 응집된다.
인류가 처음 달을 밟은 것만큼이나, 벨파스트를 벗어난 삶 또한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을 것이다. 달을 밟기까지 우주비행사와 과학자들이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듯, 버디의 가족 또한 상당한 역경을 겪었다. 그렇게 도달한 자리는 그전까지 있던 곳과 중력부터 다른 곳, 완전히 다른 법칙이 작용하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을 다 넘어서서, 이제 반자전적인 영화로 트라우마를 다독인다. 현대사의 얼룩과 다사다난한 개인사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잘 엮어낸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잘 만든 이야기가 얼마나 힘이 있는지 주목하게 한다.
영화 속 할머니가 서글프게 내뱉은, “벨파스트에는 샹그릴라로 가는 길이 없단다”는 말에 배인 기억을 분명히 인지하면서도, 벨파스트의 기억을 달 너머 샹그릴라에 마침내 이르게 한다. 흑백의 날들에 유일하게 생생한 색채로 그려진 세상에 그 길을 만든다. 이제 벨파스트에는 샹그릴라로 가는 길이 놓였다. 샹그릴라는 스크린 속에 있다는 할머니의 말은, 360도 돌아 맞는 말이다. 스크린 속 샹그릴라로 우리를 데려다주는 힘은, 영화에 있다.
이 영화는 불시착처럼 느껴졌을 어떤 순간을 연착륙시킨다. 기억의 재구성에는 그런 힘이 있다. 스웨터를 풀어 그 털실로 다시 뜨개질을 시작하듯, 같은 재료로 새로운 꿈을 그릴 수 있다.
#. 어른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게 뭘까. 정답 없는 질문을 몇 번이고 읊조린다. 매번 다른 답안을 써낼 수밖에 없는 질문, 그때그때 달라질 답안을 아무도 평가해줄 수 없음에도 이게 최선인지 더 나은 답안이 없는지 계속 고민해야 하는 질문.
그래도 <벨파스트>에서 끌어낸 하나의 답안이, 지금은 꽤나 마음에 든다. 어른이 된다는 건, 불시착처럼 느껴지는 과거의 어떤 순간을 연착륙의 기억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는 것. 그렇게 이야기의 힘으로 나를 지킬 수 있게 된다는 것. 시간의 한 마디를 건너온 사람만이, 분절된 지점을 지나 뒤를 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란 재료를 얻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위니까.
그렇게 달까지 가자. 나의 샹그릴라로. 각자의 기억과 재구성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아폴로 11호 같은 (그리고 누리호 같은) 성공적 발사체를 놓아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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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놓아주다의 의미가 뭔가요?
어떤 이야기들은 쓰고 싶어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쓸 수밖에 없었기에 쓰여진 것 같다. 창작자와 창작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작품들을 마주하게 되면 정말 기쁜 마음으로 그 모든 이별에 함께하고 싶다.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는 영화평론가로 일하고 있는 샌디 탄이 감독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를 만들고, 평론가가 되었다가 영화 학교를 찾아간 그녀는 작품의 앞머리에 이런 내레이션을 넣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뒤로 가야했다.’
1990년대의 싱가폴에서 10대 소녀로 살아가는 영화광 샌디와 친구들은 로드 무비 <셔커스>를 만든다. 그들에겐 교사이자 셔커스의 감독이기도 한 어른 친구가 있었는데, 바로 조지이다. 이후 그는 패기와 열정이 반짝거렸을 셔커스의 필름을 들고 잠적하고, 샌디와 친구들은 필름뿐만 아니라 그 시절을 모두 잃은 듯한 허망함을 느낀다. 특히, 샌디는 셔커스를 잊으려 애썼다.
20년 후 조지가 죽고 셔커스의 필름이 다시 샌디에게 되돌아왔다. 하지만 이 말이 그 때의 셔커스가 돌아왔다는 의미는 아니다. 샌디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절과 아픔을 마주한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보기 두렵다는 이유로 등에 지고 가는 게 아니라 직접 바라보고 끌어안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우린 대상을 온전히 마주하는 순간에만 작별인사를 건넬 수 있다.
‘네가 할 일은 셔커스를 다시 살리는 게 아니라 셔커스에 내세를 주고 우리에게 돌아오게 하는 거야.’
이 글에서만큼은 조지가 왜 필름을 훔쳤을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는 셔커스에서 떼어낼 수 없는 존재지만, 이 멋진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셔커스가 정말 좋았던 건 감독이 상실과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이고, 비슷한 아픔을 겪는 이들이 함께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며, 더하여 영화는 무엇인지, 왜 우리가 영화를 사랑하는 지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실존하지 않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건 어찌나 외롭고 환상적인지. 작품을 보며, 세상에 없는 ‘셔커스’를 그리워하는 샌디와 내 모습이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겹쳐 보였다. 결국 영화라는 이름의 허상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 외로운 사람들이 허상의 존재에 마음을 기워 붙여 무게를 더하고, 부피를 키워온 걸까.
세 친구가 여전히 영화 일을 하고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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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제된 감정 표현의 프랑스 영화 《이리스: 사라진 그녀》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으로 스릴러 장르에서 소개되어 있어서 기대를 하고 봤던 영화 《이리스: 사라진 그녀》.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스릴러와 프랑스의 스릴러의 개념을 조금,,, 아니 많이 달랐던 듯 싶다. 사라진 그녀가 부제인만큼 사라진 대상을 추적하면서 그 스릴을 느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스릴은 느낄 수 없었다.
영화 《이리스: 사라진 그녀》 시놉시스
영화 《이리스: 사라진 그녀》는 한 부유한 은행가의 부인이 갑자기 실종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밖에서 기다리겠다던 부인은 사라지고 남편은 부인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납치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는 부인의 자작극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처음부터 밝히고 시작한다.
납치범과 부인이 한 통속이 되어 남편을 속이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납치범이 아지트로 돌아왔을 때는 부인은 이미 누군가에게 살해되어 있었다. 졸지에 납치살인범이 되어버린 그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암매장을 시도한다.
불안감에 떨던 그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남편을 미행하기 시작하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에게 접근한 부인이 실제 은행장의 부인인 이리스가 아니라 은행장의 내연녀임을 알게되며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자작극이라는 설정은 좋긴 한데,,, 스릴은?
처음에 영화가 진행될 때 아내가 납치되는 것이 자작극임을 밝히고 들어가서 굉장히 스릴 넘치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이 자작극이 어떻게 끝이 날지, 또 자작극을 해서라도 얼마나 남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하지만 굉장히 지루했다. 납치 과정을 추적하고 자작극의 이유를 찾아가야 하는데 굉장히 부산스럽다. 납치와 자작극이라는 서사 아래 너무나도 자질구레한 각 캐릭터별 서사가 갑자기 군데군데 들어와서 몰입에 굉장히 방해가 됐다.
납치된 이리스를 찾는 과정에서 동료 경찰들이 서로 원나잇한 이야기하며 비서의 맥락에서 벗어내 대사하며 부분 부분의 요소들이 전체 서사에서 너무 튀어서 도대체 저 이야기를 왜 하는 걸까? 하는 감정이 들었다.
프랑스 영화는 이런 것일까?
프랑스 영화를 간혹가다가 보는 편이기도 하고, 또 그렇게 챙겨보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영화 《이리스: 사라진 그녀》를 보고 일반화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본 프랑스 영화 작품들은 대체로 배우들의 감정이 굉장히 절제된 연기를 선보이고 있었다.영화 《이리스: 사라진 그녀》에서 부인이 납치되었다는 것 역시 남편과 내연녀의 자작극이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비서도 있고 경찰도 있으니 납치를 당한 피해자로서의 감정 연기를 해야되는데 나는 무슨 버스 놓쳐서 지각한 사람이 ‘아,,, 안타깝다’하는 식의 감정으로 밖에 다가오지 않아서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주로 보는 한국영화나 영국 미국 영화의 경우에는 인물의 표정 변화나 억양이 드라마틱하게 변해서 오히려 과장이 좀 심하다는 느낌이 드는 편인데 영화 《이리스: 사라진 그녀》 에서는 어쩜 저렇게도 절제를 할까?하는 생각이 들드보니 영화의 스릴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반전을 조금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부인의 자작극인 줄 알았지만 납치범 막스가 알고 있던 부인은 은행장의 부인 이리스가 아닌 내연녀였다. 은행장과 내연녀가 자신을 이용한 자작극이라는 것을 막스가 알게 되는 장면이 이 작품의 흐름이 크게 변화하는 지점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했을까? 퇴폐적인 클럽에서 죽은 줄 알았던 내연녀가 춤추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반전의 요소를 줄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많았을텐데 하다 못해 청각 효과라도 조금 넣어주지,,, 솔직히 처음에는 몰랐다. 인식 자체가 되지 않았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절제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것이 반전이다~하고 알려주는 장치도 따로 마련이 되어 있지 않고, 온전히 스토리 전개를 통해 파악을 해야되는 상황에서 그렇다고 그 스토리가 완벽하게 자작극에 맞춰진게 아니라 쓸데없는 캐릭터들의 TMI가 널러있는 상황이다보니 반전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절제된 감정선의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스펙타클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그닥 좋지 않았던 영화 《이리스: 사라진 그녀》. 프랑스 영화는 아무래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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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메모리> 메인 예고편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단 한번의 실패도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킬러 ‘알렉스’(리암 니슨) 어느 날, 그에게 새로운 의뢰가 들어온다. 오직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인 그는 이 사건에 한 소녀가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단칼에 거절한다. 의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모두의 표적이 되어버린 그는 오래된 병으로 인해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붙잡고, 소녀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의뢰에 연관된 모든 것들을 응징하기로 한다. 한편, 멕시코 국경에서 사건을 맹렬히 쫓던 FBI 요원 ‘빈센트’(가이 피어스)는 ‘알렉스’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이 사건의 거대한 비밀과 마주하게 되는데… 사라지는 기억, 더욱 선명해지는 정의! 마지막 응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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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비보의 살아있는 모험> 공식 예고편
[2021월 8월 6일, 넷플릭스 공개]
난 가야 한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노래해야 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킨카주.
비보는 아바나에서 마이애미까지 일생일대의 모험을 떠난다.
오랜 친구가 남긴 사랑의 노래를 전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