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0932023-10-10 15:08:18
영화 인타임 결말 줄거리 등장인물 넷플릭스 | 아만다 사이프리드 주연
시간이 곧 돈이다
모든 비용이 '시간'으로
계산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급여가 시간으로 지급해 주고,
커피 한 잔, 음식값이 시간으로 된다면?
이런 상상을 영화로 만든 작품
'인타임'이 있습니다.
2011년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레전드
작품이라서 다시 한번 보고 왔습니다.
그럼, 시간이 중요한 영화 인타임 리뷰 시작해 보겠습니다.
기본 정보
장르 : 액션, SF, 스릴러
감독 / 각본 : 앤드류 니콜
출연진 : 아만다 사이프리드, 저스트 팀버레이크. 킬리언 머피
개봉일 : 2011년 10월 27일
평점 : 7.41
스트리밍 : NETFLIX, Wavve, Whatch
기획 의도
가까운 미래, 모든 인간은 25세가 되면
신체적인 노화가 멈추고 왼 손목에 새겨진
'카운트 바디 시계'에 1년의 유예 시간을
제공받는다. 이 시간으로 사람들은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내는 등,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시간으로 계산한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을 모두 소진하고 13자리의
시계가 0이 되는 순간, 그 즉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때문에 부자들은 몇 세대에 걸쳐
풍족한 시간을 갖고 인생을 누릴 수 있는 반면,
가난한 자들은 하루를 겨우 버틸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을 노동으로 사거나, 누군가에게 빌리거나,
아니면 훔쳐야만 한다.
살고 싶다면, 시간을 훔쳐라!
등장인물
윌 살라스 | 저스틴 팀브레이크
충분한 시간을 벌지 못하면
더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눈을 뜬다.
실비아 | 아만다 사이프리드
와이스 금융사의 회장 딸
여담
시간 = 화폐라는 소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어요.
다만, 이런 신선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개연성과 미래에 대한 소품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 아쉬움이 한가득 남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시간'의 중요함을 잘 알려준 작품이라
아직도 회자되는 영화 인타임입니다.
후기 및 결말
경호원으로 위장한 윌은 실비아와 함께
회사에 찾아가 실비아의 아버지를 인질로 삼고
금고에 있는 시간을 훔쳐 나갑니다.
빈민가로 향한 윌과 실비아는
시간을 기부하다가 타임키퍼에게
잡힐 뻔하다가 위기를 극복합니다.
이들은 더 큰 규모의 은행을 털며
시간을 나눠주며 시스템을 붕괴하게
만들어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 인타임은 정말 참신한 소재로
아쉬운 전개와 뻔한 스토리로
아쉬움이 정말 많이 남는 작품입니다.
참신한 소재 때문에 7점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영화 인타임 추천드립니다.
한줄평 : 팔씨름하다 골로갈 수 있는 세상.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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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건 2> 만큼 재미있고 <헤어질 결심>처럼 진하게
"작가님, 수고하셨습니다!" 유명 아나운서가 나에게 인사를 한다. "작가님 준비 많이 해오셨어요? 1시간 녹화가 20분이 걸렸네요? 늘 느끼는 거지만 진짜 영잘알이세요." 내가 대답한다. "아, 아닙니다. 그냥 무식하게 시간만 보냈던 것뿐인데요." 대답하자 휴대전화에 카톡 몇 개가 온다. 어느 날에 어떤 영화가 개봉한다는 누군가의 말이다. 어? '어느 날'에 개봉한다고?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아니라? 별 것 아니겠거니 싶어서 그냥 넘어간다.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켜 조회수를 확인해본다. 정말 감사하게도 2만이 찍힌다. 언제부턴가 바라왔던 순간이 현실로 이뤄지고 있었다. 다만 그게 몇 개월째 내내 반복되고 있다는 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프로그램 담당 작가가 나에게 말을 했다. "작가님! 출연료는 다음 주에 입금될 거예요. 금액은 얼마입니다!" 엥? 출연료가 '얼마'라고? 무슨 소리야? 내가 대답한다. "그 얼마가 어느 정도 될까요?" 작가가 대답한다. "그 금액은..."
라는 꿈을 꾸었다. 그럴 리가 없지. 가끔 언제까지 이 글을 쓰는 일에 재미를 붙일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몇몇 분들의 의견에 편승해서 쓰는 글이 아닌, 내 생각을 오롯이 내 마음대로 표현하는 그런 일이다. 나 자신이 '이 정도면 그래도 글 쓰는 사람이라 부를 수 있지' 싶은 것들은 이미 얻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저 멀리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자서 그런 꿈을 꿨던 걸까? 어느 멀티버스 중 하나에는 내가 작가로 명성을 많이 얻은 세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이름이 알려지면 내 안에 있는 어떤 문제들은 해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우리)에게 알파버스의 웨이먼드가 느닷없이 나타나 "아니야"라고 답한다. 준비물은 없다. 단지 모든 것을 모든 곳에서 받아들일 태도만 있으면 된다. 올해 개봉작 중 또 다른 마스터피스가 등장했다. 에블린과 함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멀티버스 속으로 떠나보자.
빈 세탁기처럼 돌아가는 일상
분명히 해야 할 일이 벌어야 할 돈 말고 뭐가 있었는데 말이다. 미국으로 이민 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에블린은 일상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홍콩에서 태어난 에블린. 첫사랑이었던 웨이먼드의 설득에 넘어가 타지 생활 중이었다. 잘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실패만 지속했던 그녀.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지금 현재다. 짜증이 나는 오늘. 남편 웨이먼드는 착할지 몰라도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딸 조이는 틱틱대는 일이 많았다. 아버지 공공은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어서 에블린과 함께 살고 있다. 쌓여가는 빨래물처럼 풀지 못했던 마음속 응어리가 점점 더 높아져간다. 이런 에블린의 일상은 점점 더 그녀를 괴롭하는 중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느 날. 평소처럼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남편 웨이먼드는 타향살이를 시작한 보람도 없이 갑자기 이혼 서류를 들이밀었다. 딸 조이는 여자친구를 데려와 가족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고 있었다. 정말 진절머리가 나는 일상이다. 그런데 세상이 이런 에블린을 딱히 봐주지는 않았다. 국세청은 에블린의 세탁소에 세무조사를 예고했다. 영수증 속에 쌓여있는 에블린. 영업정지와 생계유지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신경이 예민하다. 이 빈 차를 타고 국세청이 아니라 다른 우주로 날아가면 좋으련만. 세상은 야속하게도 에블린의 일상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한숨이 가득한 얼굴. 에블린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남편 웨이먼드와 같이 있었던 에블린. 멍하니 있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남편 웨이먼드의 눈빛이 변한다. "여보. 잘 들어. 지금 당신은 위험해. 난 다른 우주에서 왔어. 이유는 묻지 말고 내가 적어 준 쪽지대로 해."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안 그래도 나사가 좀 빠져 있는 것 같은 웨이먼드. 마침내 미쳐버린 것인가? 에블린은 어리둥절한다. 금세 에블린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는 웨이먼드. 갑자기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우주 속의 에블린. 에블린은 당황한다. 웨이먼드는 이내 자기를 소개한다. 자기는 다른 우주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이며, 지금 세계가 굉장히 위험하다는 말을 전한다. 마냥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이어폰을 꽂고 겪었던 경험 때문에 안 믿기도 어렵다. 이 색다른 경험 덕에 국세청 직원 디어드리 앞에서도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지는 에블린. 에블린은 디어드리 앞에서 웨이먼드가 전한 지시사항을 수행한다. 지시사항은 그냥 헛소리가 아니었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에블린. 그 다른 차원에서 에블린과 웨이먼드는 조우한다. 알파 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세상이 왜 위기에 처했는지를 말한다. 그것은 바로 조부 투파키가 멀티버스를 싸돌아다니며 세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모든 운명의 조부 투파키는 온갖 세계의 에블린을 살해하고 있었다. 꿈꾸는 소리가 아니다. 에블린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전부 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조부 투파키를 제지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강력하고 빠르게
이 영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엄청 정신없다. 일단 핵심 키워드가 너무 많다. 가장 우선은 코미디. 두 번째는 액션. 세 번째는 가족 드라마. 네 번째는 오마주. 다섯 번째는 멀티버스 구현이다. 키워드만 다섯 가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후반부까지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영화가 운명에 관한 작품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영화는 이런 키워드를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로 사정없이 다 때려 박는다. 이렇기 때문에 아마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정신없다’라는 것에 동의하실 것이다. 단기간에 많은 정보를 쑤셔놓는 것은 도박이다. 일례로 <프렌치 디스패치>를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대사가 쉴 틈 없이 쏟아지지만 감독 웨스 앤더슨은 이런저런 설정을 무리 없이 이해한다. 특유의 섬세한 미장센을 중심으로 대사를 받아들여도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의 측면도 있다. 바로 <외계+인> 1부다. 현재의 MCU는 많은 영화들로 이뤄져 있다. 글쓴이는 다른 글에서 최동훈 감독이 마블의 영화들이 쌓아놓은 빌드업을 너무 쉽게 바라본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을 냈다. 이를 보여주듯 너무 많은 떡밥이 있는 <외계+인>. 산만한 줄거리 때문에 호평보단 혹평을 많이 받았다.
이 영화는 확실히 전자다. 이 영화가 이해가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의 많은 요소들은 단적으로만 휙 쓰이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는 영화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쓰이고, 또 주제적인 측면과도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정보가 산발적으로 와다다 쏟아지긴 해도 영화를 보는데 큰 무리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대신 중반부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집중할 필요는 있다. 영화에서 원형의 이미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이 원형의 에너지가 어떤 이유로 중요한가?라는 것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일 것이다. 이때 설명이 후반부에 반복되긴 하지만 대충 보면 중반부에서 이를 놓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분들이 무언가를 마시지 않은 채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 중간에 화장실을 간다? 그럼 영화의 재미가 급전직하하는 단점이 느껴질 수도 있다. <프렌치 디스패치>가 섬세한 방식으로 영화의 이해를 도운 것과 유사하게 이 영화는 광기의 에너지로 관객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강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화는 다방면으로 강점을 가진 영화다. 일단 기본적으로 시각적인 쾌감이 엄청나다. 이 쾌감 중 하나는 액션이다. 전체적으로 액션의 비중이 가장 높은 인물은 주연 양자경이다. 우선 양자경이 그동안의 필모그래피에서 액션 연기를 펼치는 역할을 많이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상영작들을 찾아봤을 때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영화도 있다. 바로 <와호장룡>이다. 장첸, 주윤발, 장쯔이, 양자경이 출연한 이 영화. 웅장한 맨몸액션이 많은 이들에 기억에 남았다. 영화는 이 시절의 홍콩영화를 재현하듯 화려한 맨몸액션을 선보인다. 일단 양자경의 액션 연기는 정말 대단하다. 극에서 일대 다수의 연기를 펼치는 부분이 있다. 템포가 굉장히 빠르고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수직적 운동능력을 선명하게 잘 드러낸다. 이는 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에블린의 액션 신에서 싸움을 잘하는 에블린이 되는 계기가 있다. 영화는 이 에블린이 왜 쿵후의 달인이 될 수밖에 없는지 잠깐 보여주고 이를 편집술로 보여준다. 이는 편집 능력과 시너지가 있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구체적으로 상대방과의 액션 주고받기와 이 능력이 구현되기 위한 전제가 엇나가듯이 편집되며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는 멀티버스라는 키워드를 관객들에게 설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지식 안에서 멀티버스란 것은 없다. 심지어 이 멀티버스의 묘사가 이 영화처럼 이뤄진다면 좀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글쓴이는 이를 관객들에게 경제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액션을 삽입했다고 생각한다. 상황 자체를 많이 만들어서 그 룰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그럼 이야기에 통일성이 생긴다. 이런 토대의 튼튼함은 영화의 설득력으로 이어진다. ‘아. 그래서 그렇구나’라는 이해가 용이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에블린의 액션은 단적으로 시각적인 쾌감만을 전하려고 제시되지 않았다.
또 웨이먼드 역을 맡은 조너던 키 콴의 액션 연기도 굉장하다. 이 웨이먼드 캐릭터가 맡은 역할의 액션 신은 비교적 초반부에 나온다. 어떤 행동을 하고 전투를 시작하는 웨이먼드. 이때 매고 있던 가방을 휘리릭 흔들며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엥? 이거 어디서 봤는데? 갑자기 성룡이 생각난다. 역시 이 웨이먼드의 액션신에서 무언가를 오마주하고 있다. 바로 성룡의 쌍절곤 액션이다. 이는 그냥 얻어걸린 효과가 아닌 듯하다. 배우 조너던 키 쿠안이 성룡을 닮기도 했다. 또 원래 주인공을 양자경이 아닌 성룡을 계획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액션은 영화의 가장 첫 번째 액션 시퀀스이기도 하다. 가방 끈을 쌍절곤 쓰듯이 두들겨 패는 웨이먼드. 극초반부에 유약한 모습만 제시됐던 이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런 액션 신이 대비되는 느낌이 있다. 이는 앞에서 쓴 문단과 비슷한 맥락에서 좋은 효과를 낸다. 이 역시 멀티버스에 대한 설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 측면에서도 기능한다. 영화를 끝까지 보다 보면 이런 멀티버스를 통한 액션신이 웨이먼드라는 인물의 통일성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영화의 연출이 멀티버스라는 모티브를 단순히 설정으로만 쓴 게 아니라 주제적인 측면과도 이어지게 설정했다. 똑똑한 연출의 힘이었다. 아, 이 두 주인공을 빼고 다른 액션 연기를 보여주는 인물들도 있다. 이 인물들의 액션도 잘 뽑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짜 웃긴다. 이런 생각을 하는게 정말 또라이같다.
타율 높은 코미디
또 이 영화는 정말 웃긴 코미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코미디로서 사용했던 소재는 두 가지다. 멀티버스를 통해 다중우주를 보여줬던 시각화와 영화의 핵심 아이디어다. 우선 이 영화가 장르적인 특성이 아닌 선에서 뽑을 수 있는 강점은 설득력이라고 생각한다. 에블린이 각각의 우주 속에 한 명씩은 있을 테니 각자가 온갖 직업을 다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직업인으로서의 광경 묘사에 있어서 구체적이지 않은 부분이 없다. 이 꼼꼼함 묘사가 ‘각종 직업의 에블린’에서 굉장히 강력한 코미디가 작동한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만약 글을 쓰는 에블린이 있다고 해보자. 그럼 글을 쓰는 특징 중 하나를 뽑아 영화에서 어떤 원동력으로 사용한다. 또 그림을 그리는 에블린이 있다고 해보자. 그럼 그림을 그릴 때 자기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그려야 하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풍부한 사람이 유리할 것이다. 영화는 탄탄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왜 멀티버스의 에블린이 필요한지를 빼먹지 않았다. 영화의 설정을 단단히 하는 연출이 코미디 소스로도 작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직업인으로서의 에블린을 가지고 코미디를 만들 때 절대 잊히지 않는 시퀀스가 있다. 바로 어떤 영화를 차용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이고, 어떤 식으로 차용했는지를 쓰면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 영화의 리뷰를 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으면 왠지 직무유기처럼 느껴진다; 또 어떤 멀티버스 중에서 우리가 아는 인간의 물리법칙 외의 것도 있다. 이 부분 역시 골 때리게 잘 설정했다. 쓸데없이 상상력이 고퀄리티라서 놀랐다.
그리고 아마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아이디어가 됐을 키워드 ‘전환’이다. 영화의 메인 세계관은 주인공 에블린이 이끄는 시간대다. 그럼 다중우주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코미디 요소를 하나씩 추가한다. 제일 첫 번째 전환 방식은 적당히 상식 선에서 상황에 안 맞는다. 그런데 이 이후부터의 이야기는 생각하는 수위를 전부 뛰어넘는다. 단 하나 빼고 전부 예상외로 흘러갔다(그리고 이 ‘예상대로 간 코미디’도 정말 웃긴다). 당연히 이렇게 전형성을 탈피한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 말하면 재미가 없어진다. 이런 이유로 구체적인 소재가 뭐였는지는 쓰기 어렵다. 단지 분명한 것은 하나하나 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관객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난 배우들이 제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웃겼을까? 자기들도 엄청 웃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저비용 고효율의 코미디 요소로 사용하는 전환이지만 이것도 단지 웃기려고만 넣은 것은 아니다. 후술하겠지만 이 작품에서 전환이라는 키워드는 영화의 다양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지점이 있다. 우리는 (글쓴이 포함) 보통 세상 사람들을 판단하는 게 쉽다. 왜 저 사람은 저러고 있을까? 에 대해서 각자의 답을 내놓는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세상에만 살고 있기 때문에 단면적인 모습만 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 판단의 오류를 꼬집는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색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신선하다고 느낄 관객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다양성에 관해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설정이 있다. 바로 딸 조이의 퀴어 설정이다. 다양성은 우리 문화예술 매체에서 참 피곤한 소재다. 이른바 PC라고 불리는 이 것은 들어가기만 하면 왓챠피디아에서 투기장이 열린다. 피곤하다. 혹자는 ‘PC 묻었네’라고 영화나 드라마의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억지로 이런 코드를 집어넣었기 때문에 극의 흐름을 깨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 한 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멀티버스 안의 수많은 세상이 있다고 해보자. 거기에는 아시아 인이라는 인종이 아예 없다. 무조건 백인만 있는 우주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화양연화>를 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헤어질 결심> 역시 마찬가지다. <공조 : 인터내셔날>에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이는 문화예술매체의 다양성에만 국한 짓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 웨이먼드 역을 맡은 키 호이 콴이라는 배우는 경력이 중간에 끊겼었다. 유년시절 아역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 사람은 아시아인 역 빼고는 아무것도 맡을 수 없다는 제약 때문에 배우로서의 커리어가 끊겼었다. 할리우드라는 큰 판에 단지 인종이라는 이유로 주류에 끼지 못한다는 것, 아니 낄 기회조차 없다는 것은 많이 불공평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PC’라는 것이 무조건 예술을 해친다고 볼 수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다. 단지 레즈비언이란 이유로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과연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 사람도 인간일 뿐인데. 역시 이런 측면에서도 이 사람들이 이런 대우를 받으라는 법은 없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이 PC라는 ‘정치적 올바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가 소수자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는 선 끝난다면 우리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그 사람의 우주를 전부 들여다봐야 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당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나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살아온 인생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더 많이 써왔으면 어땠을까.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어땠을까. 막연한 질문은 끝이 없다. 이 질문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연다. 삶의 관문에서 막힐 때마다 이 지점으로 돌아와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때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되묻는다. 세상에. 내 운명이란 왜 이따위란 말인가. 지긋지긋한 멍청함 덕에 나 자신을 향해 한숨을 내뱉는다. 이 한숨은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 왠지 잔소리를 하고 싶어 진다. 에블린처럼.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 잊히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지금 현재의 우리도 각자가 생각했던 어느 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글쓴이만 해도 그렇다. 지금 여기서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어렸을 때의 내가 바라왔던 모습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직도 미련이 남는 지점이 있다. ‘그러면 안 됐는데’라는 생각으로 긴 시간 동안 후회하며 보냈다. 막상 이 글을 쓴다고 해서 그런 미련이 완벽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다. 그 선택을 했던 평행세계의 나도 맞이해야 할 필연적인 사건이 있다는 것을. 단지 그 일을 그렇게 보냈다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다. 가능성이란 그런 것이다. 더 이상 꿈꿀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어떤 선택을 하든 ‘통계적인 필연성’에 앞서 지금 없는 것에 가능성을 갖고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삶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 가능성과 희망에 대해서 말한다. 아무 의미 없는 인형 눈알도, 세탁소에 찌들어 보내는 일상도, 밝게 웃는 딸의 웃음도 우리가 어떤 것을 꿈꿀 수 있는 개연성이 된다는 말과 함께 전한다. 모든 것을 모든 곳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하면 지금의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 없었을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풀어야 하는 미스터리의 연속인 걸 너무 잘 아니까 우리는 영화를 보는 것 아니겠어?
메버릭의 박력을 멀티버스로
이렇게 다양한 키워드와 래퍼런스를 때려박은 이 영화. 앞에서도 썼듯 '이걸 다 머릿속에 주워 담아야 영화가 이해되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영화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력이 어마어마하다. 일단 초반부 세탁소 시퀀스부터 BGM이 들어간다.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이야기. 알파 웨이먼드가 에블린을 만나 이어폰을 꽂아주기까지 긴 설명을 하지 않는다. 바로 액션 삽입하고. 액션 중간에 코미디 요소도 있다. 다 짬뽕처럼 다 넣는다. 그 대신 이야기 전반적으로 멀티버스의 인물들마다 갖는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사실 간단하다. 후반부에 주인공 중 어떤 인물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올해 5월에 <탑건 : 메버릭>이 개봉했다. 8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때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가 톰 크루즈를 위시로 한 힘찬 에너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비행기로 활주로를 활공하는 듯한 갈등 구성이 영화가 다이내믹하게 느껴졌던 주요 연출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탑건 : 메버릭>만큼의 박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미지가 나오면, 바로 그다음 정반대의 무언가가 나온다. 또 그 정반대를 대칭 찍고 완벽히 반대 측면에 있는 무언가가 나온다. 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화장법이나 의상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디서 본 적 없는 헤어스타일을 따라와서 보여준다. 그런 이상한 코디법을 받쳐주는 미장센까지 영화는 소재 하나하나가 신선하기 때문에 딸려오는 힘찬 에너지로 2시간 20분 내로 질주한다. 이 영화가 상영관을 얼마만큼 받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탑건 : 메버릭>보다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신에서 볼 수 있는 뭉클함, 코미디 요소로만 국한 짓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탑건 : 메버릭>이 이뤘던 성취를 더 크게 돌며 이뤘다고 생각한다. 색다른 경험이다. 분명 스포일러를 없이 쓰는 것 같은데 쓸 내용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올해 말 <아바타 : 물의 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극장가의 허리케인이 되어 많은 관객을 흡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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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여성 스포츠 영화의 유의미한 변곡점
7★/10★
근래 개봉한 한국의 여성 스포츠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야구소녀〉였다. 여성 야구 선수가 남성들이 절대 다수인 야구판에서 2군 프로 무대에 데뷔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영화다. 주인공 수인의 진심과 도전, 그녀를 ‘여성’이 아닌 ‘야구인’으로 대하는 소수의 남성 친구와 코치, 그들과 수인의 관계성 등이 매력적인 영화였다. 〈모래바람〉은 한국 여성 스포츠 영화 계보에서 또 하나의 유의미한 변곡점이 될 만한 영화다. 두 영화를 비교해보면 그사이 프로 여성 선수에 관한 우리 사회의 관념과 지향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다.
〈야구소녀〉에는 계보가 없다. 수인은 늘 최초고, 혼자다. 그러나 〈모래바람〉에는 계보가 있다. 20년간 여자 씨름 선수로 활약해온 선수가 있고(송송화), 모든 선수가 하나같이 ‘우상’, ‘전설’로 꼽는 절대적 강자(임수정)가 있다. 그리고 이들을 목표로 땀 흘리며 도전하는 후배 선수들(양윤서, 김다혜, 최희화)이 있다. 영화는 1999년 여자 씨름 선수 등록이 가능해진 이후부터 쌓여온 여자 씨름 선수의 계보를 담아낸다. 여성 스포츠 영화에서 계보는 대체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같은 예외적 선례가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여성 스포츠 영화는 계보가 없는 상태에서 사회의 편견과 자기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에 몰두하는 선수 한 명에게 주로 카메라의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이제 여성들은 홀로 고군분투하지 않는다. 여성들에게도 롤 모델이 있다. 그것도 끝내주는 커리어를 가진 롤 모델이.
계보 ‘있음’은 땀 흘리는 여자들이 맺는 유대의 근거이기도 하다. 역시 〈야구소녀〉에는 없던 것이다. 동료인 동시에 라이벌인 여자 씨름 선수들은 서로를 격려하면서도 경쟁에는 모든 것을 건다. 다른 수많은 남성중심적 언어와 마찬가지로, 스포츠‘맨’십이라는 표현 역시 새로운 대체 용어를 고민해봐야 한다.
나이가 들어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선수들의 존재도 〈야구소녀〉에는 없고 〈모래바람〉에는 있다. 20년 동안 선수로 활약한 후 은퇴한 송송화는 현재 협회 이사로 활동하며 심판과 코치에 도전하고 있다. 여자 씨름으로의 진입을 꿈꾸는 어린 여성에게 20년간 선수로 활동한 사람의 존재는 그 자체로 용기를 줄 수밖에 없다. 여자 씨름판의 GOAT인 임수정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언제나 당연히 1등이었던 임수정이 후배들의 도전에 왕좌를 빼앗기는 상황에서 그녀가 느끼는 부담과 좌절의 순간을 밀도 있게 담아낸다. 부상과 기량 하락의 악조건 앞에서도 관성에 젖어 운동하기를 거부하고 칠전팔기 끝에 마침내 정상에 다시 오르고 마는 그녀의 이야기는 송송화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여성 씨름인들이 꿈꿀 수 있는 다양한 미래의 가능성을 펼쳐낸다.
〈모래바람〉에 〈야구소녀〉에는 없는 요소가 있다는 말이 전자가 후자보다 낫다는 말은 아니다. 각자의 완성도를 갖춘 두 영화는, 다만 그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실감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핵심은 더는 ‘독고다이’할 필요가 없다는 것. 계보와 동료가 있는 여성 선수들은 서로에게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가늠해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의 고민을 나누며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최근 여성 생활 스포츠인이 크게 늘었다. 〈골 때리는 그녀들〉, 〈무쇠소녀단〉처럼 아마추어 여성 스포츠인들이 동료들과 함께 도전하는 방송도 잇따라 제작되었다. 그러니까, 〈야구소녀〉에서 〈모래바람〉으로의 여정은 여성 스포츠인, 나아가 모든 여성이 함께 만들어온 변화를 대변한다.
송송화는 씨름 선수인 동시에 주부, 엄마, 아내, 며느리였다. 임수정은 지금도 ‘시집은 언제 가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여성이자 씨름 선수로서 이들은 종종 모순된 요구를 동시에 받았지만 동료들과 함께 ‘씨름하며’ 자기 길을 만들었고, 그 길은 이제 모든 여성 씨름 선수의 길이 되었다. 〈모래바람〉은 씨름판에 카메라를 줌인하여 사회 변화의 커다란 흐름을 가늠케 해주는 영화다. 스포츠 영화의 쾌감과 시의성을 고루 갖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감각하게 해주는 영화인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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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재난 영화 추천 '콘크리트 유토피아' 잔인한가요?
콘크리트 유토피아
23.08.09 개봉
드라마, 15세 관람가
한국, 130분
감독: 엄태화
출연: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등
올 여름 최고 기대작 '콘크리트 유토피아'!
실제로 롯데 배급이라 그런가 홍보도 젤 많이 하더라구요
저는 재난 영화를 좋아해서 <더 문>과 함께
가장 기대하는 작품 TOP 2 였어요 ㅎㅎ
사실 '세상이 멸망하고 아파트 한 채만 남았다'는 소재를 빼면
줄거리 자체는 흔하디 흔한 재난 영화이긴 합니다
싱크홀처럼 특출나게 웃긴 것도 아니고
엑시트처럼 재난 상황에 대비할 교훈을 주는 것도 아니고요
이제는 재난 영화에도 새로운 감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그렇다고 재난 영화가 가져갈 수 있는
대표적인 클리셰들을 빼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개중에는 팀원의 배신, 성별/나이/임무로 갈라치기,
서사 있는 캐릭터의 잔인한 죽음 등이 있을 텐데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그것들을 죄다 뺐어요...
나름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생각했을 텐데
시청자가 기대하는 거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달까요?
트는 주민의 것"
온 세상을 집어삼킨 대지진, 그리고 폐허가 된 서울.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오직 황궁아파트만은 그대로다.
소믄을 들은 외부 생존자들이 황궁아파트로 몰려들자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는 입주민들.
생존을 위해 주민 대표 '영탁'을 중심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아선 채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새로운 규칙을 만든다.
덕분에 더 없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유토피아 황궁아파트.
하지만 끝이 없는 생존의 위기 속
그들 사이에서도 예상치 못한 갈등이 시작되는데...!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 규칙에 따르거나 떠나거나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줄거리
기대했던 바와 실망했던 바를 함께 나열해 보겠습니다
#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 규칙에 따르거나 떠나거나'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캐릭터들은
정말 황궁아파트 주민이기만 하면 모든 것을 다 퍼 줍니다
외부인을 숨겨 주다 걸렸어도
200번 죄송합니다!! 만 외치면 다시 주민이 될 수 있게 해 줘요
저는 인간의 잔혹함은 끝이 없다는 걸 보여 주려고
내쫓는다거나, 죽인다거나, 심지어 먹는 걸 상상했거든요
혹은 노예로 부려먹을 수도 있었겠죠?
황궁아파트는 정말 유토피아가 맞아요
주민 입증만 할 수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받아줄걸요
친구랑 얘기하다가 나온 건데
월세, 전세로 아파트에 들어온 주민이 있고
그 집의 집주인이 나타나서 빚는 갈등도 재미있었을 거 같아요
# 영탁(세범)을 향한 비난
영탁이 영탁이 아니라는(?) 건 영화 초반부터 많이 보여 줬죠
누가 봐도 황궁아파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잖아요
영탁의 신분을 밝히는 게 영화의 절정일 거라 기대했는데
갑자기 외부인들이 처들어오면서
영탁의 신분에 대한 건 갑자기 상관이 없어지게 돼요
모두가 영탁을 쫓아내려고 해서
아파트 vs 영탁 이런 구도로 가는 게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 민성-명화 관계성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딱히 빌런이 없다고 생각해요
굳이 말하자면 명화가 빌런입니다 ㅋㅋ
남편은 목숨 걸고 바깥 세상 나가서 시체 뒤지는데
외부인 숨겨 주는 집안에 음식 퍼다 주질 않나
일 그만하고 그냥 살자며 징징대질 않나...
물론 도덕성, 인간성을 보자면 최고겠죠
하지만 영화 내에서 고구마 백 개 먹은 캐릭터 ㅠㅠ
암튼 캐릭터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민성-명화 부부 관계성보다는
각자의 캐릭터에 치우친 줄거리 위주로 전개해서,
그러다 마지막에만 슬프게 죽어서 그게 좀 아쉬웠어요
사실 슬픈 감정을 느끼기엔
다정한 부부로 보이게 할 만한 이야기가 없었거든요
# 혜원의 역할
박지후 배우님이 항상 같이 무대인사를 도시기에
영화 내에서 당연히 중요한 역할을 하겠거니 했어요
영탁의 신분을 밝혀 주는 증인인 역할... 밖엔 없었죠
그마저도 너무 허무하게 죽어 버렸고요
그 정도 역할은 명화가 충분히 해낼 수 있었지 않나요?
# 부녀회장의 역할
부녀회장은 리더십 있고 전면에 나서는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이 부녀회장은 영화 내용상...
리더십 있는 척지만 내로남불에 이기적인 인물이었어야 합니다
16세부터 60세 남성은 방범대로
외부에 나가서 식량을 구해 오는 역할을 하는데요
부녀회장의 미성년자 아들도 방범대 역할을 해야 해요
이때 부녀회장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아들을 빼내고, 우리집만 좋은 거 먹고 이러는 게...
그 갈등이 점점 커져 절정에 이르렀을 때 팡하고 터졌을 것 같아요
그러다 아들이 죽게 되었을 때도
부녀회장과 방범대간의 갈등이 눈에 보였을 거 같고요
문제점을 짚어 보니 전체적인 그림이 보입니다
캐릭터가 많은 데 비해 제역할을 다하는 인물이 없다는 거죠
위에서 언급한 캐릭터 외에도
황궁아파트에 몰래 숨어든 엄마와 아들
외부인을 숨겨 줘야만 했던 혼자 사는 남자
황궁아파트에 가장 오래 산 노부부
외부인과 싸우다가 배에 칼을 맞은 남자
등 클리셰로 이어가다 눈물샘 폭발시킬 수 있는 캐릭터가
정말정말정말 많이 나왔거든요
툭하면 우는 저인데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유일하게 울었던 부분은
노부부가 외부인 숨겨 주다 걸려서 사과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은 겨우 20초 남짓한 씬이었고요,,
감독님이 클리셰를 따라가기 정말 싫으셨던 게 아니라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캐릭터를 하나도 못 살린 게 맞습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죠
예고편만 봤을 때는
황궁아파트 주민 vs 외부인 으로 세력이 나눠지는 줄 알았어요
'황궁아파트에 숨어든 외부인'이라는 캐릭터는 신선했지만
그 스릴 있고도 어려운 구도를
매력적으로 살리지 못했다는 게 아쉬운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은
줄거리가 아닌 영상미를 따져 보고
영화관에 가서 볼지 말지 정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영화값이 15,000원이나 하기 때문에 ㅠㅠ
그렇게 보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15,000원까진 아니고... 10,000원 정도면 보기 좋습니다
저는 무서운 걸 정말정말 못 보는 사람인데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너무 무서웠어요
칼에 찔리고 바둑판으로 사람 죽이는 장면도 무섭지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가를 보여 주는 장면이 많거든요
시각적보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영화였던 거 같습니다
*스토리: 2/5점
*연출: 3/5점
*영상미: 4/5점
*연기: 5/5점
*OST: 1/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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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허하고도 처연한 연애의 종말
누군가 말했다. 연애는 살면서 다른 사람을 깊이 연구해보게 되는 몇 안 되는 경험이라고.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내 기분은 좌지우지되며 쉽게 내뱉는 말들은 서로 예상치 못한 상처를 주고받는다. 심지어 연애는 쉽게 시작한다 하여 쉽게 끝나지 않고, 힘들게 시작한다고 하여 어렵게 끝나는 것도 아닌지라 누가 손을 놓아버리는지 예측하기 어렵다. 어느 한쪽의 마음이 식어버리는 동시에 이 관계에 사형선고가 내려지며, 통보하는 사람과 통보받는 쪽은 그 둘의 연애가 어떠하였을지라도 그 끝에 다다라야지만 결말을 알 수 있다.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가볍게 시작한 연애의 씁쓸한 대가와 로맨스라고는 조금도 가미되지 않은 현실을 그렸다.
갈비탕 집 아들로 어머니 밑에서 근근이 일을 하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사실은 반 백수나 다름이 없는 영운. 그는 어느 날 당돌하고도 섹시한 여자 연아에게 대시를 받는다. 그렇게 결혼할 약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운은 연아와 화끈한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나 시작이 가벼운 연애였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연애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영운을 향하는 연아의 마음은 어느덧 진심이 되어 그가 결혼한 유부남이 된 후에도 좀처럼 그를 끊어내지 못한다. 같은 동료들에게 횡포를 일삼는 룸살롱 이사에게도 당돌하게 덤비던 연아는, 사랑 앞에서 점점 구차해져만 가고 그런 연아를 지켜보는 영운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괴롭기만 하다.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이것을 현실 연애로 보는 것이 마땅한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히 나뉜다. 누군가는 '우유부단한 쓰레기 남자 주인공에게 휘둘리는 불쌍한 여자 주인공'이라 평하기도 하였으며 또 누군가는 '밑바닥 인생들의 연애'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 영화의 영상이 올라간 유튜브 댓글에는 이 영화를 현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연애를 하였기에 이런 영화에 공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전에 영화의 제작노트를 살펴보면 이러하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특별한 커플, 연아와 영운은 치열한 육박전도 육두문자가 남발하는 황당한 설전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화끈한 연애를 한다. 장난처럼 사랑을 시작한 두 남녀의 대책 없는 연애를 그린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이미 <파이란>의 작가로 진정한 삶과 사랑의 모습을 선보였던 김해곤 감독의 첫 영화로 진짜 솔직하고, 화끈한 연애의 참 맛을 선보인다.영화의 제작노트에서도 쓰여있다시피 이 영화는 현실적인 연애를 다루었노라 말한다. 그렇다면 영화가 말하는 현실은 도대체 무엇일까. 보잘것없는 시골 동네에 사는 반 백수 남자와 룸살롱 여자의 불륜이라 치부해버린다면 이들의 사랑은 남루하기 짝이 없지만, 그들이 한 연애의 속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교적 평범한 연애를 했던 사람일지라도 공감할 부분이 보인다. 더 사랑하는 쪽이 아프고, 끌려다니기 마련이다. 애초에 다리 하나를 걸쳐둔 채 시작한 연애는 그 끝이 초라하고 씁쓸할 뿐이다. 누군가는 더 사랑하는 쪽이 헤어질 때 비로소 웃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연애 당시 자신의 감정을 얼마큼 표현했는가의 차이일 뿐 마음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그래, 굳이 말하자면 언제나 연애에 있어 피폐해지는 것은 더 사랑하는 쪽일 것이다.
연아와 영운은 처음부터 동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먼저 대시한 것도 연아였고, 영운이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첩도 좋고 세컨드도 좋다며 매달리는 쪽도 연아였다. 이 영화를 약혼자에게 배신당한 영운의 여자친구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이 두 사람의 지독히도 구차한 연애는 '당연히 남의 남자를 꼬셨으니 이런 결과를 낳은 거지'라며 말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영운의 약혼자는 그저 두 사람의 갈등 요소로 소비될 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허락받지 못한 불륜의 결과'라기보다는 '가벼운 연애에 뒤따르는 씁쓸함과 초라함'에 더욱 가깝다.
어쩌면 연아가 영훈에게 먼저 대시하였을 때에도, 그리고 영훈이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아와의 이중생활을 시작한 것은 서로 이러다 시들어지면 정리되겠지라는 안일한 가벼움에서 시작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앞서 말하였듯 연애란 쉽게 시작한다 하여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연아는 그토록 당돌하고 앞뒤 가리지 않는 불같은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영운을 먼저 걷어차버리지 못하고 악다구니를 쓰면서까지 품고 마는 것이다. 한번 즈음 나만 놓으면 끝날 관계를 붙잡아본 사람이라면 차마 이 영화가 현실과 동떨어진 연애라고는 단정 짓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속 연아와 영운처럼 4년이라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뒷맛이 씁쓸한 연애를 애써 피해 가야만 할까. 상처 없는 연애란 존재할까. 내가 주는 마음과 신뢰만큼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토로하고 있을 연애 고민들은 세상에서 온전히 사라질 것이다. 아닌 것을 알면서도 기대하는 마음, 아닌 것을 알면서도 시작하는 마음, 아닌 것을 알면서도 붙잡는 그 마음. 그리고 결국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의 그 헛헛함. 서로 가까이 가지 못한 채 그저 처연한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히던 영운과 연아의 마지막은 그래서 더욱 씁쓸하고,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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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
이 글은 영화 [서브스턴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글은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한국어를 매우 잘한다는 가상의 상황에서 편지를 받았다고 제발 믿어주라(?)
사진 출처:다음 영화
리지 씨에게.
안녕하세요.
우선 너무 늦게 당신의 이야기를 영화관에서 만나게 된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저 역시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라는 같잖은 헛소리를 최근까지도 들으면서 자란 사람이기에. 당신의 이야기를 지켜보면서 참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먼저 영화를 본 친구들은 분명 징그럽고 피 튀기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막상 영화관을 나올 때 저를 지배했던 감정은 당신을 향한 슬픔과 동병상련이었습니다. 이런 감정의 부조화는 마치 당신과 또 다른 당신의 관계처럼 저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마음이 꽤 오랫동안 복잡했어요. 어쩌다 거울 속의 당신을 스스로가 미워하게 된 것일까.라는 물음에 제가 감히 답을 낼 수도, 내기도 어려웠거든요. 저의 얕은 생각과 비루한 기억력을 거스르고 또 거슬러 올라가서. 그 미움의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를 더듬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답(?)이 나오더라고요.
단 한마디였습니다. 당신의 빛남(sparkle)을 가져간 것은. 타인. 그것도 당신보다 더 나이가 들었으면 들었지. 아니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남자의 단 한마디. 아마도 당신은 여태껏 스스로 빛을 내는 별(항성)인 줄 알고 살아왔을 텐데. 그 비수는 참 힘이 세서. 당신의 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던 핵융합의 심장부에 꽂혀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당신 안의 반짝임을 스스로가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의 평판을 반사해야만 빛나는 행성이 되어버린 순간이라고 할까요. 아, 그리고 저는 당신이 새우를 씹던 하비의 입을 찢어놓지 않았다는 그 절제력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저였으면 포크로 아마 콧구멍을 후벼 팠을 거예요.
사진 출처:다음 영화
한국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은교]에서는 이런 문장(대사)이 있습니다. 너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말이죠. 분명 당신 또한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패배감과 상실감. 그리고 더 이상 스스로 빛날 수도, 다른 사람들의 관심도 없으니 반사되어 빛나기라도 할 수 없다는 초조함이 아마도 수의 탄생을 부추기는 힘이 되어버렸으리라고 생각해요.
나였어도 그랬을 것입니다. 저 역시 또 다른 나의 탄생을 막을 수 없었을 거예요. 과연 누가 당신의 선택에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그리고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는 가정을 한다면. 차라리 저는 수의 탄생 이후에 당신이 행복하길 바랐습니다. 어쨌거나 서브스턴스 제공사(?)측의 말처럼 당신과 수는 하나였으니까. 두 사람 간의 균형이 지켜질 것이라는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했거든요. 하지만 그렇지 못했어요. 당신이 멍하니 TV앞에 앉아서 수의 탄생 전 보다 더 슬픈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과의 데이트에 앞서 스스로의 모습을 부정이라도 하듯 립스틱을 빡빡 닦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미워하는 듯한 당신의 모습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언젠가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거든요.
물론 그 어떤 위로도 당신에겐 통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수를 탄생시킨 것은 당신이고. 마르지 않을 것만 같은 젊음을 누리고 싶었던 것도. 그리고 그토록 증오했지만. 어쩌면 당신에겐 가장 필요했을 하비의 인정을 바랐던 것도 당신이었을 테니까요. 다시 한번 더 빛나고 싶다는 스스로의 욕망이 이토록 큰지. 당신도 몰랐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래 욕망이라는 게.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깊이의 우물 같은 것이니까요.
사진 출처:다음 영화
육신이라는 게 참 덧없지요.
분명 미워해 마지않던 50대의 당신이었잖아요. 하지만 그마저도 수에게 하루 이틀, 야금야금 빼앗기고 난 후의 당신의 눈빛은 참 아팠습니다. 그리워하고 있더군요. 커다란 액자 속 스스로가 미워했던 그 모습을 말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절박감은 수에게도 찾아왔죠. 그녀가 늦게 깨달은 것인지. 당신이 일찍 깨달은 것인지. 줄 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수의 치아가 뽑혀나가는 그 순간만큼은 그저 한 사람의 절박함과 공포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그토록 기다렸던 시간의 정중앙에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순간으로 기록되어야 할 그 순간에. 피를 흘리다 못해 분사하는 당신의 모습은 여태 하고 싶었던 본심을 모두에게 전달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괴물인가. 아니면 당신들이 괴물인가. 아니지, 우리 모두 괴물인거지.라고 울부짖는 것만 같았어요. 마치 영화 [샤이닝]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그 괴기스럽기도, 또 과장되어 보이기도 하는 장면에서. 저는 허망하게 흩어지는 당신의 살점과 피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어요. 주변 세탁소에서 기함을 토하며 그냥 이 옷을 버리라고 말할 것 같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꼭 당신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아 물론 정상적인?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피를 그만큼 흘릴 수도 없을뿐더러 그만큼 흘리면 명예의 전당까지 기어갈 힘도 없겠지만. 이것은 저의 직업병이며 영화적 허용이라 보고 넘어가도록 하죠(?)
사진 출처:다음 영화
마지막 인사를 뭐라 해야 할지 참으로 많이 망설였습니다.
당신은 그래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이해한다 라는 뭉뚱그린 말로도 그간 입은 상처를 다 보듬을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그동안 외로웠죠.라는 개똥철학도 건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힘내라는 뻘소리도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최후는 바닥에 묻은 케첩의 말로처럼 참 처참했지만. 그러면서도 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끝나버렸죠. 이 모든 것이 아 시발 꿈처럼 느껴지는 마지막이었기에 더 어떤 말로 마무리를 해야 할지 모른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당신이 겪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절대 없어지지 않겠죠. 두 번째 당신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저 역시 그 푸른 드레스를 입은 살덩어리를 괴물이라 부르지 않을 자신은 없습니다. (아마 제가 제일 먼저 도망갈걸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기억될 거예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말이죠. 그게 정말 당신이 원했던 것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추신.
그…. 주삿바늘은 한 번쓰고 버리신 거 맞죠? 어우.. 제발..
[이 글의 TMI]
1. 이렇게 자도 될까 싶을 정도로 연휴 내내 자는 중.
2. 이럴 거면 그냥 겨울잠을 자라.
3. 노동요 추천받습니다.
#영화리뷰 #최신영화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서브스턴스 #데미무어 #영화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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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 그냥 판타지만은 아니다
<모털 엔진>은 원작이 있는 영화다. '견인 도시 연대기'라는 소설이고 총 4부작으로 책이 나눠져 있다. 그중 네 권의 책 중 첫 번째 책의 제목이 '모털 엔진'이다. 각색하기는 했지만 1권의 책의 내용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의 스토리가 너무 방대해서 네 권의 책의 중요 부분들을 추출해서 만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니 책을 빨리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영화를 보고 속편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서 압축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모털 엔진>의 모털, 혹은 모탈(mortal)은 '영원히 살 수 없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이 제목은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아우른다. 60분 전쟁이라 일컬어지는 전쟁으로 인해(아마 핵전쟁일 것으로 보인다) 지구가 멸망한 후, 커다란 엔진으로 움직이는 견인 도시들이 서로 약탈을 일삼고, 땅에 고정해서 살기를 원하는 '반 견인 도시 주의자'들과 다시 전쟁하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반지의 제왕>과 <호빗>의 감독인 '피터 잭슨'이 제작을 맡아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았다. 나 역시 공개된 예고편이 눈길을 사로잡아 많은 기대를 하면서 영화를 보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영화의 영상미(CG)는 좋았으나 기대를 너무 한 것인지 스토리 면에서는 실망감이 컸다. 아마 방대한 스토리를 128분 안에 녹여내려다 보니 개연성도 떨어지고, 공감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사건도 급하고, 러브라인도 급하고, 해결도 급했다. 이런 방식을 삼류라고 볼 수는 없지만 '아, 이렇게 되겠구나'라고 예상하면 그렇게 이뤄졌다. 역시 '왜'가 결여된 이야기는 공감을 얻기 힘든 것 같다. 아마 두 편 정도로 나눠서 제작했다면 더 탄탄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전반적인 세계관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60분 전쟁 이후 1천 년이 지난 시점에서의 현재는 과거 혹은 고대가 된다. 견인 도시 '런던'의 박물관에 미니언즈 대형 피규어가 '미국의 동상'이 되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정도의 미래에서 지금을 바라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사실 과거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탈핵과 방사능이다. 대학원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우리가 방사능 폐기물을 어디에 묻는다고 기록으로 남겼을 때 미래의 후손들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고대의 언어를 해석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미니언즈뿐만 아니라 토스터가 귀중한 유물인 세상에 현재 쓰는 언어가 그대로 남아있을 가능성은 낮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는 교수님의 저 말씀이다.
우리는 지금 과거의 언어를 모두 해석하지 못한다. 그래서 학자들이 '추정'한다. <모털 엔진>에서도 그렇다. 그렇게 과학이 발전했지만 TV 영상 같은 화면을 만들어내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가 되어 있음에도 그 안에는 여전히 60분 전쟁의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부품을 구하러 다니는 존재들도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고대의 무기로 불리는 메두사를 다시 사용하는데 정말 마구 쏘아댄다. 만약에 빔을 맞은 땅이나 건물, 그 안에 핵폐기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영어로, 한글로, 다른 언어로 어디에 묻었다고 아무리 기록을 남긴다고 해도 짧으면 천년, 길면 몇만 년 뒤에나 반감기가 지나서 안정화가 되는 핵폐기물의 존재를 미래의 인간들이 알 수 있을까? 특히 걱정되는 것은 어디에 남겼다는 것은 해석했는데, 위험한 물질이라는 것을 해석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만약에 핵폐기물이 보관된 위치의 표시를 보물이나 메두사 같은 무기의 위치라고 생각하고 파헤치면 그 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도 벽화 등의 기록을 남길 때 그 기록이 후손들에게 남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남겼을 텐데 우리는 무슨 의미인지 해석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상상하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핵으로 만든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쓰고 말면 그만이다. 하지만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의 폐기물을 감당해야 한다. 이런 막무가내 조상들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을까?
움직이는 견인 도시와 반대로 과거처럼 땅에 정착해서 살아야 한다는 반 견인 도시 주의자들은 어느 산맥에 자리를 잡고 '샨 구오'라는 방벽 뒤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장벽이라고 불리는 것은 댐과 닮아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지각의 변동이 있었기 때문에 예전 지구의 4개의 대륙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름도 그렇고 그 방벽은 '산샤댐'이 아닌가 싶었다. 거대한 세력을 피해서 숨은 곳이 댐 뒤라는 것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그만큼 물을 가두기 위해 인간이 얼마나 큰 힘을 쏟았는지 볼 수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왜 그렇게까지 했어야만 했을까?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전 지구적으로, 역사적으로 전쟁은 '땅'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것은 우리가 땅을 소유의 개념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고, 반 견인 도시 주의자들이 지향하는 것처럼 다시 한번 토지를 소유한다면 인간은 또다시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견인 도시가 있음에도 욕심을 내는 사람은 욕심을 내고 있지만 말이다. 과연 땅에 정착해서 사는 것이 정답일지는 우리 모두가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다.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하는 영상은 늘 고민을 던져준다. 정말 먼 미래일지, 아니면 이제 곧 다가올 미래일지, 아니면 그 미래조차 없는 것은 아닐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다.
우리는 천년이 지나고 썩지 않는 과자를 먹으며 살고 있다. 우리의 현재의 삶의 행동들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자기 전에 한 번씩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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