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0932023-10-10 15:08:18
영화 인타임 결말 줄거리 등장인물 넷플릭스 | 아만다 사이프리드 주연
시간이 곧 돈이다
모든 비용이 '시간'으로
계산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급여가 시간으로 지급해 주고,
커피 한 잔, 음식값이 시간으로 된다면?
이런 상상을 영화로 만든 작품
'인타임'이 있습니다.
2011년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레전드
작품이라서 다시 한번 보고 왔습니다.
그럼, 시간이 중요한 영화 인타임 리뷰 시작해 보겠습니다.
기본 정보
장르 : 액션, SF, 스릴러
감독 / 각본 : 앤드류 니콜
출연진 : 아만다 사이프리드, 저스트 팀버레이크. 킬리언 머피
개봉일 : 2011년 10월 27일
평점 : 7.41
스트리밍 : NETFLIX, Wavve, Whatch
기획 의도
가까운 미래, 모든 인간은 25세가 되면
신체적인 노화가 멈추고 왼 손목에 새겨진
'카운트 바디 시계'에 1년의 유예 시간을
제공받는다. 이 시간으로 사람들은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내는 등,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시간으로 계산한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을 모두 소진하고 13자리의
시계가 0이 되는 순간, 그 즉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때문에 부자들은 몇 세대에 걸쳐
풍족한 시간을 갖고 인생을 누릴 수 있는 반면,
가난한 자들은 하루를 겨우 버틸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을 노동으로 사거나, 누군가에게 빌리거나,
아니면 훔쳐야만 한다.
살고 싶다면, 시간을 훔쳐라!
등장인물
윌 살라스 | 저스틴 팀브레이크
충분한 시간을 벌지 못하면
더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눈을 뜬다.
실비아 | 아만다 사이프리드
와이스 금융사의 회장 딸
여담
시간 = 화폐라는 소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어요.
다만, 이런 신선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개연성과 미래에 대한 소품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 아쉬움이 한가득 남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시간'의 중요함을 잘 알려준 작품이라
아직도 회자되는 영화 인타임입니다.
후기 및 결말
경호원으로 위장한 윌은 실비아와 함께
회사에 찾아가 실비아의 아버지를 인질로 삼고
금고에 있는 시간을 훔쳐 나갑니다.
빈민가로 향한 윌과 실비아는
시간을 기부하다가 타임키퍼에게
잡힐 뻔하다가 위기를 극복합니다.
이들은 더 큰 규모의 은행을 털며
시간을 나눠주며 시스템을 붕괴하게
만들어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 인타임은 정말 참신한 소재로
아쉬운 전개와 뻔한 스토리로
아쉬움이 정말 많이 남는 작품입니다.
참신한 소재 때문에 7점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영화 인타임 추천드립니다.
한줄평 : 팔씨름하다 골로갈 수 있는 세상.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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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납작해진다고 네가 튀어나오진 않는다
까놓고 말해 <분노의 추격자>는 새로울 것이 없는 서사에, 이제는 티켓파워를 많이 잃은 주연배우 제라드 버틀러를 얹어 가소로운 액션을 담아낸 진부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원제(<Last Seen Alive>)는 둘째치고라도 번역된 제목부터 80년대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여성 캐릭터에 있어 발전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몇 안되는 여성은 대부분 아내로 그려지고 남성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감정적으로도 무기력한 상태다. 평면적이고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와 더불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남성 캐릭터들조차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좋은 평가를 받아온 남성 중심의 서사는 입체적인 남성 캐릭터를 보완하는 평면적인 여성 캐릭터를 발판삼곤 했다. 하지만 <분노의 추격자>가 얄팍한 긍정 평가조차 받을 수 없는 이유는 여성 캐릭터를 희생시키고도 메인 캐릭터 전부가 개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경찰로 보이는 한 남성과 범죄자로 보이는 다른 남성의 대화로 시작된다. 경찰은 범죄자의 목을 조르고 있고, 대낮에 겁도 없이 여자를 납치했다고 상대방에게 겁을 주고 폭력을 휘두른다. 언뜻 보아서는 선악을 가르기 힘든 두 남성 간의 알력 싸움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플래시 포워드 장면임이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이 첫 장면 때문에 관객은 패터슨 경감(러셀 혼스비 분)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한 상태에서 관람을 시작하는데, 패터슨 경감이 극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거의 없음을 상기해보면 관객에게 강제된 혼란은 무쓸모에 가깝다. 패터슨 경감에게 폭력을 당하는 너클스(이선 엠브리 분) 또한 첫 장면만을 별도로 보았을 때 리사 납치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잔가지에 불과하다. 즉 강렬한 인상을 줄 수도 있었던 첫 플래시 포워드가 시간낭비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조연인 패터슨 경감과 너클스마저 진부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플래시 포워드 장면이 끝나면 윌(제라드 버틀러 분)과 리사 부부가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관객은 어렵지 않게 리사가 납치될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는 히치콕이 말했던 서스펜스 효과와는 정반대로 기능한다. 플래시 포워드 장면을 제외하고라도 서스펜스가 증발한 이유는 이 단순한 장면에서조차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이 윌이고 아내인 리사는 조수석에 앉아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부부의 대화가 진행되며 부부의 문제점이 드러나지만 납치 사건과는 무관하다. 즉 안됐지만 부부가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은 여전히 대부분 서사를 위해 기능하지 못한다. 오히려 플래시 포워드 장면에서 이어지는 긴장감을 떨어트리고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며 오로지 종종 인서트되는 플래시백 장면을 위해서만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의 존재 이유는 서사의 중심인 윌과 윌의 보조 캐릭터로서만 활용되는 리사를 소개하는 것이 전부다.
단순히 리사가 무기력한 캐릭터이고 윌이 그런 리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캐릭터라는, 다분히 구시대적인 성 이분법적 역할 분배는 차치하고라도 여성인 리사에게 불화의 책임마저 떠넘기는 것은 그야말로 무책임한 서사다. 리사는 우울했지만 그 원인이 제시되는 대신 우울감으로 인한 외도라는 결과만이 제시되고 아마도 원인 제공자였을 윌은 순수한 구원자로서 자리매김한다. 윌은 부동산 중개업자로서 가난하지도 않고, 플래시백 장면으로 미루어 리사에게 소홀한 남편도 아니다. 심지어 리사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리사의 외도조차 외면하는데다 우울한 리사를 처가에 데려다주기까지 한다. 인물 설정을 성별에만 기대어 한 것도 통탄스럽지만 한쪽 성별에 갈등의 원인을
전가하는 것은 그 이상의 문제가 된다. 단순히 여성을 무기력하면서 모든 문제의 원인 제공자로 묘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리사를 굳이 구하려는 윌의 서사가 주저앉기 때문이다. 아내이지만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외도까지 한 여성을 목숨을 걸고 구하려는 윌의 캐릭터 또한 설득력을 잃고 무너진다.몰빵직업조차 묘사되지 않고, 아니 직업의 유무조차 묘사되지 않고 완벽해 보이는 남편 뒤로 외도하는 리사를 발판삼는 윌이 리사를 희생해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리사가 스크린에서 사라지고 카메라는 윌에게만 포커스를 맞춘다. 액션이 중점이 되었어야 할 이후 시퀀스들은 <테이큰>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브라이언 밀스(리암 니슨 분)는 전직 요원이었지만 윌은 부동산 중개업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라곤 건강한 신체뿐인 브라이언이 사력을 다해 가족을 구원하고 구시대적 가부장으로 회귀하는 것이 <테이큰>의 셀링 포인트이자 한계였다면 <분노의 추격자>는 양쪽 어딘가에도 미치지 못한다. 윌은 납치된 아내를 찾을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며 가진 것이라곤 분노뿐이다. 윌의 액션은 거칠고 투박하며 많은 것을 가지고도 처가로부터 무시당한다. 브라이언의 전 아내 레노어(팜케 얀센 분)는 딸 킴(매기 그레이스 분)을 제발 찾아달라고 브라이언에게 기대지만 윌의 장인과 장모는 윌조차 의심한다. 윌이 아내를 되찾아온다고 해도 가부장의 권위를 세우기는 어려워 보이며, 이는 구시대적인 사고를 가진 관객에게조차 영화가 소구할 구석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꼴이다.
(아마도 제라드 버틀러의 팬을 제외한) 어느 관객에게도 소구점이 없어 보이는 <분노의 추격자> 혹은 이와 비슷한 영화가 계속해서 양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 서사가 힘을 얻고 인기를 얻어가는 이 시대에도 낡은 가부장의 권위를 어떻게든 세우고 싶어하는 이들이 자본의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인 건 아닐까. 자본을 쥔 이들이 영화를 어떻게 제작할지는 그들의 자유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배우와 캐릭터성을 희생시키는 건 투자한 예산에 대한 무책임이다. 이제는 낡은 서사에 남성 캐릭터를 몰아넣고 어설픈 액션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팔리는 시대는 한참 지났기 때문이다. 납작한 남성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여성 캐릭터들을 더 납작하게 누른다고 해서 남성 캐릭터들이 살아 숨쉬는 건 아니다.
*이미지는 씨네랩 제공 및 네이버영화입니다.
*본 글은 씨네랩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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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 2 | 넓어졌지만 얕아진 종교 디스토피아 세계관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천사가 죽을 날을 고지하고, 고지받은 이를 사자가 시연하기 시작한 뒤로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 새진리회의 교리를 거부하는 화살촉의 만행이 극심해지고, '민혜진'(김현주)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소도와 새진리회의 충돌도 잦아지자 청와대 정무수석 '이수경'(문소리)은 결단을 내린다. 정부가 개입해 혼란을 잠재우기로. 이에 그녀는 부활자 '박정자'(김신록)를 내세워 새진리회의 새 교리를 공표하고, 화살촉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수경의 계획은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부활자, '정진수'(김성철)가 등장했기 때문. 지옥에서 수천 번의 시연을 경험한 뒤 되살아난 그는 재빠르게 이수경과 소도의 계획을 파악하고, 화살촉과 힘을 합쳐 새진리회의 교리 공표식을 습격하기로 결심한다. 목적은 단 하나. 새진리회가 감금하고 있는 박정자를 만나 자기가 부활한 의미와 이유를 알기 위해서.
3년 전, <지옥>이 좋았던 이유
2021년 11월, 넷플릭스로 공개된 연상호 감독의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은 충격적이었다.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에서 종교의 탄생 과정과 의미를 추적하는 스토리라인이 뇌리를 사로잡았기 때문. 죽을 날을 아는 정진수라는 인물을 예수에 빗대며 보여준 고찰은 장르적 재미와 메시지의 깊이 두 마리 토끼를 잡아냈다. 이해 못 할 현상을 죄악과 정죄의 관계성으로 해석하는 대목은 기독교적 세계관의 재해석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지옥>은 자기 해석에 관해 자문자답했기에 더 인상적이었다. 박정민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그는 시연이 낳은 두려움과 혐오를 악용하는 종교조직을 언론인답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파헤쳤다. 온 세상을 삼킨 종교적 광기에 맞서 의문을 제기한 셈이다. 더 나아가 그와 그의 아내는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맹목적인 믿음 외의 길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지옥>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의식도 보여줬다.
<지옥>의 두 번째 시즌은 첫 시즌의 연장선상에 있기에 여전히 흥미롭다. 특히 한국적 맥락에서는 부자연스러울 수 있는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독특한 이미지로 녹여냈기에 더욱 눈길이 간다. 종교라는 사회적 체계에 대한 창작자의 의견이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하면서, 세계관의 확장도 함께 진행되었기에 의미심장한 장면도 적지 않다. 다만 그 과정에서 본연의 색채를 일부 잃어버린 결과 여러 아쉬움도 함께 남기고 말았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론적으로 현대 한국인에게 종교와 정치는 철저히 분리된 영역이다. 이유가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인에게 종교는 정치와 결코 섞여서는 안 될 존재로 인식되었기 때문. 19세기말 아편 전쟁 이후 조선은 근대화의 일환으로 기독교를 수용, 인정했다. 이는 달리 말해 유럽적 종교관을 수용한다는 말이었고, 곧 정교분리와 신앙 자유의 수용을 뜻했다. 즉, 근대적 개념의 종교는 철저히 개인의 내면적 범위로 한정되는 게 핵심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기독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조선의 전통적인 사상체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정치사상으로서의 ‘학(學)’과 믿음으로서의 ‘교(敎)’가 공존하던 기존 사상체계도 근대적 종교로 거듭나야 했다. 그 과정에 유학과 동학 같은 전통적인 학들은 철저히 믿음으로서의 영역에 충실한 유교나 천도교와 같은 형태로 변했다. 그 외에 무속과 같은 전통 신앙들은 종교 영역 외의 사이비 종교와 같이 인식됐다.
물론 정교분리가 항상 지켜지지는 않았다. 기독교를 수용해 근대화를 이루듯이, 종교를 활용해 일제에 맞서려는 시도도 있었다. 일례로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면면만 보더라도 종교가 민족 개념과 결합해 민족적 정치체로 자처한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일제 강점기 때 정교분리와 종교의 사적 영역화는 법제화됐고, 그 이후로도 ‘종교-세속’ 이분법은 어길 경우 사회적 비난을 피하지 못하는 금기로 자리 잡았다.
역사를 역행하는 도전
따라서 <지옥> 시즌 2의 스토리는 신선할 수밖에 없다. 근대화라는 역사적 맥락 안에서 철저히 분리되었던 종교와 정치의 영역이 다시 만나면 발생할 상황을 그려내고자 노력하기 때문. 시즌 1에서 예수의 공생활을 본 따 정진수의 포교활동을 묘사했듯이, 기독교가 정치와 관련을 맺게 되는 과정을 본 따 한국적으로 풀어낸 듯 싶다. 그렇기에 두 번째 시즌은 정교분리라는 원칙을 파괴하고, 역사를 역행하는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특히 <지옥> 시즌 2는 로마 제국을 재통합한 콘스탄티누스 1세를 연상시킨다. 그는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 삼위일체 교리를 둘러싼 논쟁이 극심해지자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열고, 삼위일체 교리를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 파를 지지해 사회를 안정시켰다. 중요한 것은 콘스탄티누스 1세의 결정이 신앙심의 발로가 아니라, 철저히 정치적 결단이었다는 점이다. 즉, 그에게 종교는 단지 로마 제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수경이 <지옥> 시즌 2의 주동 인물인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청와대 정무수석인 그녀는 종교를 정치의 영역으로 포섭한다. 정확히는 종교를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그녀에게는 시연, 천사, 지옥의 존재는 중요한 게 아니다. 단지 청와대와 정부에서 새진리회와 화살촉, 그리고 소도를 정치적으로 관리해 사회적 혼란을 해소하고, 종교적 광기를 이성으로써 통제하여 시스템을 바로잡고자 할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예측할 수 없는 광신도 집단인 화살촉을 제거하기 위해 종교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가장 크고 안정적인 교단인 새진리회와 종교적 해석을 거부하는 소도에게만 발언권과 영향력을 주려고 갖가지 계획을 꾸민다. 새진리회의 교리를 국가적으로 재정립하여 국교 수준의 정통성과 권위를 부여하는 한편, 이와 같은 종교적 해석을 거부하는 시민들에게는 무신론에 가까운 소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속편다운 정체성
이처럼 종교와 정치의 접점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다루는 한편, <지옥> 시즌 2는 종교 자체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며 시리즈의 정체성도 이어간다. 시즌 1이 새진리회와 같이 믿음을 악용하는 체계와 사람을 비판했다면, 이번 시즌은 종교 자체에 대해 근원적인 회의감을 표한다. 특히 '초월적인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인간이 신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다룬다. 그 중심에는 정진수와 박정자가 있다.
부활한 정진수는 어떻게든 박정자를 만나려 한다. 끊임없이 시연받는 지옥의 의미와 자신이 부활한 이유를 알려줄 사람을 찾으려고. 하지만 박정자에게 답이 있을 거라는 그의 기대는 산산조각 난다. 둘의 지옥은 서로 달랐고, 부활 후 그들에게 주어진 것도 달랐으니까. 신의 뜻을 알려고 노력한 정진수는 사자가 된 반면, 주어진 상황을 그저 받아들인 박정자는 그토록 염원하던 아들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정진수와 박정자의 대비는 마치 신의 의도나 계획을 알고 싶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특히 결말에서 아이러니가 극대화된다. 초자연적 현상과 종교 체계를 통제하려는 이수경의 시도가 전부 실패로 귀결되는 순간, 그녀 역시 죽을 날을 고지받기 때문. 수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일제히 고지가 내려지는 광경 역시 새진리회와 화살촉이 그토록 싸우면서 만들어 온 서로의 교리를 모두 무의미하게 만드는 듯 싶다.
이렇게 보면 <지옥> 시즌 2는 종교의 무의미함을 말하는 담대한 작품이다. 종교를 믿거나 이용하는 이들 모두 허상에 빠져 있다고 지적하고 있으니까. 이는 아내 오지원이 정진수 때문에 죽었다며 그를 원망하던 천세형이 죽기 직전 "신은 지금 지옥을 이 세상으로 옮기려고 한다!"라고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살촉에 빠진 오지원처럼 종교에 휩쓸리지 않을 자신만의 기준점이 없다면 종교가 창궐한 세상은 곧 지옥이나 다름없을 테니.
넓어진 만큼 얇아진 이야기
다만 <지옥> 시즌 2의 대담한 상상력은 지난 시즌에 비해 큰 충격을 주지 못한다. 사실 속편인 만큼 신선함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연과 사자들은 더 이상 신기하지 않다. 물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옥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정진수의 박정자를 대비하며 사자와 천사의 존재에 대해 복선을 암시하기도 했다. 전편에 비해 액션의 비중을 늘리고 스케일도 키워서 보는 맛을 살리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문제는 이야기의 깊이와 밀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 특히 단체 간의 갈등과 대립 구도를 그려내는 방식이 다소 평면적이다 보니 주제와 소재의 흥미가 떨어진다. 새진리회는 이수경의 말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소도 역시 지나치게 민혜진의 관점에서 묘사되다 보니 내부의 갈등이 억지스럽다. 이에 더해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고려하더라도 화살촉의 테러나 방송 연출 방식은 다소 극단적이고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몰입도를 유지할 인물도 부족하다. 배우가 바뀐 정진수는 속을 알 수 없어서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잃었다. 그에 반해 이수경은 거의 모든 사건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서 캐릭터가 일차원적으로 보인다. 그 결과 <지옥> 시즌 2는 세계관을 확장시켰을지언정, 확장되는 과정이 느슨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복선 회수보다도 시즌 1의 분위기와 깊이를 되찾는 게 시즌 3의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싶은 이유다.
Acceptable 무난함
종교적 디스토피아를 지탱하려는 광기와 통제하려는 이성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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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한번 자라나는 풀잎들처럼
더운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가워졌다. 앞의 남자는 요즘 유행하는 나이키 덩크와 아이앱 후드를 입었다. 버스에서 내렸다. 누구는 서울 덩크를 신었다. 나도 집에 저런 거 있는데
.항상 어디서 일을 하면 무언가를 사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술도 안 하고 담배도 안 하는 나는 돈 쓰는 것에서 재미를 찾아야 했다.근데 요즘은 또 다르다. 익숙한 것들에서 아무 재미도 찾지 못하겠다. 뭘 원해서 이렇게 살았던 걸까? 열심히 외웠던 단어도, 대비하고 싶던 파트 5도 영 시원찮으니 하루 사는 낙이 뚝뚝 떨어졌다. 영화도 재미가 없다. 돈이 있어도 하루에 쓸 수 있는 범위가 좁고 뭐 좋은 것 사도 입을 일이 없으니 아무 쓸모가 없는 셈이다. 모든 게 식상해진 나는 늘 항상 하던걸 한다. 위로가 되는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나 <소울>을 볼까 생각한다. 아. 이거만 있으면 안 되지. <꿈의 제인>도 있다. 막상 재생하려니 손이 안 간다. 리뷰를 한번 더 써볼까? 할 말은 많은데 다루고 싶은 작품이 없다. <중경삼림>과 <노매드랜드>가 같은 궤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식으로 써내려 보고 싶었는데 막상 하려니 다른 것들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운동도, 공부도, 그 무엇도 나를 채워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난 꽃다발 같은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멀리 돌아온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천천히 걸었다. 찬바람이 드는 가을 왠지 모르게 시든 풀잎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차피 모든 건 다 정해져 있다. 영원한 관계는 애초에 불가능한 개소리고, 많이 사랑한 사람은 무조건 지게 되어있으며 영화는 러닝타임이 있어 언젠가 끝나게 되어있다. 모든 생의 과정이 계단을 오르락 내리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이 들 때 나는 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풀잎들>은 식물 같은 영화다. 영화는 '끝'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내러티브를 만들어나간다. 영화는 이 감독의 초기작들처럼 인물의 위선이나 욕망을 조명하지 않는다. 홍상수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끝이 난 후의 정서다. 이후의 허무함과 우울함을 바탕으로 각본을 썼는데, 이는 끝이 난 다음의 사람들과 흑백영화라는 연출 의도가 버무려져 시너지를 낸다. 홍상수는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영화화하는데 능한 예술가라 생각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보편성에 대해 어느 정도는 깨달은 인물인 것 같다. 예쁘고 멋진 사람들이 거대담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물론 매력 있지만 홍상수는 이와는 반대로 셔츠에 와이드 슬랙스만 입고도 조곤조곤한 톤으로 깊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풀잎들> 이런 특장점이 더 부각되는 영화다. 이 영화는 흑백영화다. 장면 변환도 잘 없고 롱테이크가 주요하다. 간단하다는 뜻이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식물들도 이 특성들이 적용된다. 식물을 오랫동안 째려보면 일단 눈이 아플 것이다. 당연하다. 풀들은 조용히 부대끼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풀잎들처럼 잔잔하다. 조용히 러닝타임 1시간이 지나간다.
근데 이 영화는 절대 조용한 사운드만 품고 있지는 않다. 첫 번째. 두 남녀는 죽은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시끄러운 클래식 소리만큼이나 선명한 목소리가 들린다. 난 너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란 말이 들린다. 둘 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큰 소리가 오간다. 마음이 아파 카페 밖을 나가는 남자. 밖에서 담배 한 개비를 핀다. 아름은 그걸 바라보고 있다. 지켜보는 아름 역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겠지? 아름은 혼잣말을 한다. 사연이 있겠지. 누군 없을까? 저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마치 우리에게 반문하듯 내레이션을 읆는다. 다음 사연이 비친다. 중년 남녀의 이야기다. 남자는 세상을 뜨려고 했었나 보다. 원인은 누군가와의 사랑이다. 그렇게 절체절명의 위기까지 갔는데도 남자는 아직 정신 못 차렸다. 이 악물고 대화 파트너의 집에서 살고 싶어 하던 남자. 같이 대화하던 중년 여자는 당연히 거부한다. 동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 '정리를 해야 할 때'에 관해 논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어차피 끝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무언가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인 셈이다. 아름은 이 중년 남자의 마음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듯하다. 갈 데도 없고 돈도 없고 일도 없고 친구도 없는 이 남자를 보며 '산다는 건 이런 것이다'라고 체념한다. 카메라는 다음 두 사람으로 넘어간다. 다른 중년 남자와 20대 후반쯤 되는 여자가 카페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대화하고 있다. 남자는 배우 일을 하는 사람이고 여자는 남자의 제자쯤 되는 것 같다. 여자는 웃으며 남자에게 '저 연애해요'라고 답하고 남자는 환하게 '그래, 사랑이 최고야. 나머지는 다 사랑이 안 돼서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방금 남자는 아름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대시한다. 둘이 같이 동거하자는 제의다. 남자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나 보다. 아름은 정중하게 거절하고 동생이 있는 쪽으로 이동한다. 아름은 가는 동안 제일 처음 지켜봤던 커플이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휙 지나간다.
동생 커플을 만난 아름. 아름이는 동생과 이야기하다 갑자기 화를 낸다. 사랑은 개뿔. 누군지도 모르면서 연애를 하니? 갑자기 동생 커플에게 비난을 쏟아낸다. 그 옆자리에선 젊은 여자와 중년 교수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년 남자의 친구는 교수고, 이 여자와 불륜관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교수의 친구는 뛰어내려 삶을 마감했다. 교수의 친구가 여자에게 '당신은 그 사람을 갖고 놀았어.'라고 말한다. 여자는 받아들일 수 없는지 시선 피하며 여자를 추궁한다. 여자는 눈물을 흘린다. 바로 다음 장면. 카페 밖에서 중년 남자와 만났던 여자가 느닷없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한다. 마치 올라가서 봤던 것들을 부정이라도 하고 싶었던 듯, 여자는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온다. 무의미한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여자. BGM으로는 클래식이 나온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장면이 끝나고 나서 아름은 동생을 호명한다. 뒷골목에서 동생에게 화를 내는 아름. '넌 누군지 알고 걔를 만나는 거니?'라고 말한다. 동생은 누나에 대해 '좀 힘든 구석이 있어'라고 말한다. 아름은 어느 가게에 들어와서 앞의 네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맥북에 글을 쓴다. '사람들이 만나는구나. 서로 감정이 부딪히고. 서로 힘을 내고. 서로 같이 서서 있게 되는구나. 숨겨서 먹는 소주가 왜 이렇게 맛있어 보일까. 나도 저렇게 하고 싶은데 그럴 일이 있을까. 왜 저렇게 친하게 지내는 걸까. 저게 정말이면 정말 좋겠다. 결국 사람은 감정이고. 감정은 너무 귀하고 싸구려고 너무 그립다.'라고 답한다. 다시 첫 번째 남녀로 돌아간다. 한바탕 불타오르고 난 후 둘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둘은 소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같이 한 잔 들이켜게 되고, 분위기가 무르익는 클래식과 함께 사랑을 약속한다. 그리고 아름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죽은 사람을 팔아서 지금을 행복하려 하는 거니. 그래.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지금은 너무 귀한 거니까. 너희들이 부럽다. 다 죽을 거면서. 죽은 친구가 옆에 있어서 내가 죽는 건 생각하지 않는구나. 그래서 단정하구나. 예쁘고 단정하게 잘 놀자.' 아름의 독백이 끝나고 카메라는 동생 커플이 한복을 입고 사진 찍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낸다.
줄거리에 대해 쭉 썼다. 사실 이것은 그냥 내가 노트북을 가져가서 카페를 관찰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상은 이렇게나 심심하고 별 것 아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영화를 좋아하는 모두들은 이미 우리 삶에서 반전 같은 건 드물다는 걸 알고 있다. 전적으로 영화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라는 뜻이다. 원래 필연적인 결말이 있어서 인생은 허무하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감정을 쓴다. 맛있는 건 언젠가 다 먹게 되어있고 돈도 다 쓰게 되어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떠난다. 빛나던 커리어도 언젠가 끝이 있다. 그걸 애써 부정하면 나 자신만 추해지는 것이다. 근데 나는 항상 더 욕심을 냈다. 결과는 참혹하다. 번번이 좌절한다. 이렇게 나는 나 스스로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타인은 어쩌겠는가. 내 아빠가 대통령이건 법무장관이건 검찰총장이건 원래 자식들은 아버지를 오롯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도 사실 우리 아빠의 전부를 이해한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안다는 게 원래 그런 거고, 우린 절대로 타인의 입장에 서 있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지나가다 본 풀잎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다. 엄연히 남이기 때문이다. 갈라지는 것은 다 이런 이치가 아닐까. 우습게도 우리는 이런 삶의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결말을 맞이한다. 영화도 이와 마찬가지다.
영화는 이를 보여주듯 초반부터 죽음에 대해 제시한다. 근데 이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다방면으로 보여준다. 첫 번째 남녀는 '죽은 후에도 함께 사랑을 약속하는 이들'이라는 키워드로 수식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남녀는 '죽었어도 원래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남녀는 '죽음이 드리우기 전의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남녀는 '죽음을 부정하는 사람들'이라고 쓸 수 있지 않을까. 세 번째 남녀를 제외하곤 이 들의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했다. 첫 번째 남녀는 이내 커플이 되어 서로의 굳건한 사랑을 재확인한다. 네 번째는 후의 미래를 보여주진 않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함께 동석을 하며 술을 마신다. 그러니까 후회와 미련으로 보냈던 사람들의 후는 보여주지 않은데 과거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동석을 시켜 엔딩부에 풀잎들과 함께 노출시킨 것이다. 분명한 연출 의도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홍상수가 허무함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련이 있는 쪽이다. 간단하다. 미래를 바라보지 않은 쪽의 사람들은 말 그대로 미래가 없고, 큰 사건이 있는 후에도 본인의 모습과 변함없이 사는 사람들은 그 후가 있는 것이다. 이는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대칭을 이루는 것과도 닿아 있다. ‘주변인의 죽음을 경험한 남녀’에서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사람이 누나인 커플’로 전환이 이뤄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아름이 ‘잘 알아보고 연애를 해야지’라는 훈수를 뒀다. 완벽한 대칭이다. ‘주변인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상대를 잘 모르면서 필연적인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동격으로 놓인 것이다. 애초부터 우리는 무언가를 정확히 안다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닐까라는, 그런 홍상수의 세계관에 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감독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누구의 딸도 아닌 혜원>에서 이런 이야기를 썼었으니까. 그리고 이 첫 번째 연출 의도와 두 번째 연출 의도는 병렬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두 남녀 중 세 번째, 김새벽과 정진영 배우가 나온 부분들을 보자. 둘은 현재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글은 원래 혼자 쓰는 거예요. 사랑이 최고야. 뭐 이런 주제로 말을 이어간다. 이 현재를 주제로 대화하는 사람들 중 여자가 극의 중반부 즈음에 느닷없이 계단을 왔다 갔다 한다. BGM은 바그너가 만든 ‘탄호이저’와 관련된 음악이 나오는데, 나는 이 탄호이저와 계단을 왔다 갔다 하는 행위도 연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일단 계단을 왔다 갔다 하는 건 사실 되게 해석하기 쉽다.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자가 계단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이런 필멸의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거겠지? 또 바그너가 쓴 탄호이저 극본은 ‘희생에 의한 구원’이 주요 모티브라고 한다. 한 여성이 타락한 남자를 위해 희생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다. 뭐 꿈보다 해몽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것도 이 <풀잎들>을 관통하는 키워드 아닌가? 현재의 문제는 끊임없이 반복되고(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를 피할 수 없기에 현재에 있는 관계 속에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 뭐 그런 의미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종합하면 첫 번째 ‘원인에 대해 모르면서도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들’이 죽음이라는 큰 사건 앞에서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에 대한 이야기가 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감독 홍상수는 반복이라는 모티브를 본인의 필모그래피에서 흥미롭게 끌고 가는 감독이었는데, 이런 부분 역시 풀잎이라는 식물의 속성과 계단이라는 도구의 특징을 활용해서 삶에 은유했다. 참으로 홍상수스러운 연출법과 감정 활용이다.
후반기의 홍상수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영화는 심심할 정도로 잔잔하지만 지켜보는 우리에게 또 다른 메세지를 전한다. 당신은 풀잎이 될 것인가, 지는 꽃이 될 것인가. 우리는 사실 이 답을 알고 있다. 모두 다 언젠가 다시 사라질 운명인데 항상 무언가를 꿈꾸고 있다. 아니, 홍상수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꿈꿔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게 미련 가득한 과거였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났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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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인’이라는 은유, 그 미친 사랑의 노래
7★/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17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전 세계적 호평을 이끌어낸 루카 구아다니노의 차기작은 1977년 개봉한 〈서스페리아〉를 리메이크한 동명의 공포·스릴러 영화였다. 반응은 엇갈렸다. 누군가는 ‘마녀’에 대한 영화의 재해석과 감각적인 연출에 호평을 보냈지만, 다른 누군가는 지나친 난해함과 인위적 기괴함에 거부감을 느꼈다. 그리고 몇 편의 영화를 거친 후, 루카 구아다니노는 두 영화의 특장점인 로맨스와 기괴함을 버무려 〈본즈 앤 올〉로 돌아왔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매런은 소심한 성격이기는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기도 한 여성 청소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매런은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가라는 친구의 초대를 받는다. 매런은 당장이라도 응하고 싶지만 아버지가 문제다. 아버지는 매런이 잠을 자러 방에 들어가면 문 밖에서 방문을 걸어 잠근다. 창문도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만들어두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친구와 놀고 싶었던 매런은 몰래 연장을 활용해 창문을 뚫고 친구네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매런의 아버지는 권위적이거나 통제욕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매런이 남에게 피해를 끼쳐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밤마다 매런을 가둔 것이었다. 매런은 식인 식성을 갖고 태어났다. 세 살 때 유모를 물어뜯어 죽게 했고, 아버지는 그런 매런을 데리고 도망쳤다. 너무도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아버지는 매런을 사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혐오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잘 교육하면 끔찍한 식성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여겼고 매런을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매런은 그날 밤 자신에게 다정히 대해주는 친구의 손가락을 물어뜯어버린다. 결국 아버지는 매런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그녀를 혼자 남겨둔 채 몰래 도망간다. 그래도 자신이 보듬어야 할 딸이라는 괴로움과 선량한 시민이라는 자의식 사이에서 타협한 결과였을 테다.
아버지는 매런을 떠나며 그녀의 어머니에 관한 단서를 남긴다. 매런은 자신의 식성과 어머니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아버지가 남긴 단서를 따라간다. 어머니를 향한 여정에서 매런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식성을 가진 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자신이 남들과 다른 존재라는 사실 앞에서 큰 혼란을 느끼던 매런은 리와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다. 자신 역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 역시 깨닫는다. 그리고 여러 위기를 겪은 후에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리와 ‘하나’가 됨으로써(죽어가는 리를 먹음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완성한다.
매런이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끝내 사랑으로 구원받는다는 영화의 서사는 퀴어 정치와 닮은 데가 있다. 아버지가 떠나 혼자가 된 후, 매런은 설리라는 이름의 나이든 남자를 만난다. 설리는 매런에게 식인 식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점을 알려주고, 사람을 먹는다는 죄책감을 넘어서야만 진입 가능한 세계가 있음을 일깨워준다(퀴어 역시 이성애와 성별 이분법이 규범인 세상에서 혼란스러워하다가 선배들이 먼저 구축한 세계를 만나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핵심은 죄책감의 극복이다. 이들은 자신의 본성이 도덕적, 윤리적이지 못하다는 죄책감을 떨쳐내야만 계속 살아갈 수 있다.
매런이 리와의 사랑으로 절망을 딛고 미래를 상상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매런이 그러하듯, 퀴어들은 내가 남들과 다른 괴물, 괴짜라는 수치심과 고립감에 자신을 혐오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기존 도덕과 규범을 거스르는 존재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사랑은 그들 역시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기존 사회에 충격과 공포, 두려움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퀴어와 식인 습성은 공통점을 지닌다. 〈본즈 앤 올〉의 식인 소재는 용인 가능한 정도에 관한 선을 파격적으로 넘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본즈 앤 올〉, 이 미친 사랑의 영화가 끝내 도달한 곳은 수용할 수 없는 자들의 존재론이다. 모든 배제된 자들의 가장 극단적인 은유인 식인 습성을 지닌 자들은 사랑으로 스스로를 구원했다. 남은 것은 ‘공존’*이다.
*식인 습성을 가진 부족을 조사한 문화인류학 연구를 보면, 식인 풍습은 사냥하듯 누군가를 먹어치우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존속, 사회적 유대 차원의 의례로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본즈 앤 올〉에서는 식인을 은유의 차원에서만 다루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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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음악영화 좋아하시나요?! 예전에 음악영화 뭘 좋아해요?! 라고 물어보면 비긴 어게인, 라라랜드, 위대한 쇼맨?! 이 정도가 다였다면?! 여기에 하나 더 넣을 수 있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나타났어요!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가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살펴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전기, 드라마
감독 : 브라이언 싱어
각본 : 앤서니 매가튼
출연진 : 라미 말렉, 루시 보인턴
개봉일 : 2018년 10월 31일
평점 : 9.45
스트리밍 : tvN , 디즈니 플러스
기획 의도
공항에서 수화물 노동자로 일하며 음악의 꿈을 키우던 이민자 출신의 아웃사이더 '파록 버사라' 보컬을 구하던 로컬 밴드에 들어가게 되면서 '프레디 머큐리'라는 이름으로 밴드 '퀸'을 이끌게 된다. 시대를 앞서가는 독창적인 음악과 화려한 퍼포먼스로 관중들을 사로잡으며 성장하던 '퀸'은 라디오와 방송에서 외면을 받을 것이라는 음악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려 6분 동안 이어지는 실험적인 곡 '보헤미안 랩소디'로 대성공을 거두며 월드 스타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던 '프레디 머큐리'는 솔로 데뷔라는 유혹에 흔들리게 되고 결국 오랜 시간 함께 해왔던 멤버들과 결별을 선언하게 되는데...
세상에서 소외된 아웃사이더에서 전설의 록밴드 '퀸'이 되기까지,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OST
Part 1. Somebody to Love
Part 2. Doing All Right
Part 3. Keep Yourself Alive
Part 4. Killer Queen
Part 5. Fat Bottomed Girls
Part 6. Bohemian Rhapsody
Part 7.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Part 8. We Will Rock You
Part 9. Another One Bites the Dust
Part 10. I Want To break Free
Part 11. Under Pressure
Part 12. Who Wants to Live Forever
여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관객 평점이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한다.
음악영화의 특성상 사운드가 풍부한 영화관에서 듣게 된다면 퀸의 음악을 좀 더 직관적으로 훌륭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영화의 번역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데드풀 번역가 '황석희'가 번역하여 작품을 높은 퀄리티로 감상할 수 있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결말을 살펴보자면...
솔로를 원했던 머큐리는 결국 Queen의 멤버들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사과를 구하며 대망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미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연습을 할 때도 삑사리가 나며 아슬아슬 준비를 하면서 공연에 오르게 되면서 본연의 Queen으로 돌아오며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된다.
전설적인 밴드 퀸을 영화 스크린으로 소한시켜 내가 관객이 된 것 같이 눈과 귀가 즐겁게 해줬던 영화였다.
영화를 봤다면, 당신의 플레이 리스트에 한 곡은 꼭 들어가는 노래! 아! 이 노래 알아! 하면서 따라 부르고
혼자서 흥얼거리게 되는 마법 같은 영화~
한줄평 : 에오! 에에에에오!!! 에에에에에에에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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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을 수 없는 운명일까
이 글은 넷플릭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구글 Chan's Note/
한때 넷플릭스와 후발주자였던 왓챠를 죽어라 비교해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같은, 혹은 비슷한 돈을 내고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 OTT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방법이 공식처럼 나돌던 시절도 있었죠. 각각의 서비스가 가진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이 좋다.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넷플릭스가 가진 오리지널 시리즈의 힘 덕분에 아주 약간 더 넷플릭스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긴 합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날 때마다 저는 넷플릭스에서 가장 먼저 오리지널 시리즈를 훑어보곤 합니다. 위시 리스트는 늘어만 가고 지워갈 수 없음이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그 위시 리스트를 보면 휴가를 받았을 때 심심하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오늘처럼 찰나의 시간이 날 때도 그 작품들 중 하나를 택하면 성공할 확률도 많고요.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보는 내내 마치 불교의 윤회 사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돌고 도는 같은 운명의 굴레에 갇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죠. 그 어떤 주제 의식도 없어 보일 수 있을 만큼 처음엔 이게 뭐야. 싶지만. 다 보고 나니 명작이었구나.를 깨달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기분으로 리스트 중 하나를 지워낼 수 있어서 기분 좋은 토요일입니다.
주인공이 없어 보이는데 다 주인공이네
적절한 균형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진짜 이 캐스팅 실화냐.
이 영화에는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처음에 캐스팅을 흘깃 보고는 와... 피 튀기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경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영화에 대한 내용을 상상했을 땐, 미친 연기력의 향연 같은 영화일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조금 다른 방향을 선택합니다. 마을 자체에서 반복되는 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그리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알 수 없는 힘에 등 떠밀려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운명을 살아야 하는 부속품처럼 느껴집니다.
바꿔 말하면 인물들은 이 영화 안에서 큰 조명을 받지 못합니다. 이 쟁쟁한 스타들 중 누구 하나 톡 튀게 하이라이트를 받는 일은 없다는 것이죠. 두드러진 주인공이 없어 보이는데, 다 주인공인 셈인 영화랄까요.
이야기는 정말 큰 틀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 인물들을 가지고 뜨개질을 해 갑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인물을 엮어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표현일 것 같네요.
뜨개질을 해 가는 속도 역시 정말 일품입니다. 이게 이렇게 연결된다고?라는 생각이 적절한 타이밍에 들 수 있게끔 너무 느슨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빠르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 속도대로 따라만 가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새 이 영화는 우리에게 끝매듭을 마무리하고 있는 시간으로 데려갑니다.
얼굴만 잘 생긴 줄 알았더니. 이것들이.
연기도 잘하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진짜.. 나쁜 역할도 이렇게 잘 어울리는구나.
우리의 마음속에는 덕질을 하게 만드는 많은 배우들이 들어차 있을 겁니다. 그들은 신체적인 뛰어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죠. 소위 말하는 것처럼 키가 크고 잘 생긴 경우를 여기서는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보면 스타들의 "미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배우들의 경우 자신의 이미지가 잘 생겼다.라는 것으로 국한되어버리면. 그걸 오히려 깨기가 정말 힘들다고 합니다. 비슷한 역할만 들어오거나. 혹은 자신의 외모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오히려 힘을 더 많이 써야 된다고 하죠. (참고 1)
그랬기에 저 역시 엘리오가 더 킹 헨리 5세에서 연기자가 되었을 때 기뻐했습니다. 그의 포효 안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우뚝 서겠다는 열망이 담겨있는 듯했죠. 그것을 지켜보며 저 또한 희열을 느꼈던 이유 역시 또 다른 연기자 탄생의 순간에 내가 함께 했다.라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일 테니까요.
이 영화에서는 거의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서로 자기주장을 하느라 바쁩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대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대표적인 영국 배우들은 자신의 악센트를 너무도 감쪽같이 버렸고. 세바스찬 스텐은 처음엔 못 알아볼 정도로 살을 찌운 채 영화에 등장했습니다. 어디서 봤는데 봤는데 하다가 출연 배우 리스트를 보고 그제서야 알아볼 정도로 말입니다.
자신들의 연기 리즈를 갱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그 노력이 빛을 뿜다 못해 섬광처럼 쏟아져내리는 그 자리에서 저는 그들의 진정성에 또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과 악은 과연 무엇인가.
과연 답이 있을까?
사진 출처:다음 영화/ 빌 스카스가드조차 여기서 이런 역할이라니.
전설의 영화 타짜에서. (1편임. 2편도 3편도 아니고 1편임) 평경장은 고니에게 세상이 아름답다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고니는 마치 녹음한 것처럼 그래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평경장은 그런 세상에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며 면박을 주죠. (참고 2)
우리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쁜"것과 "착한"것이 부딪치고, 끝에는 선한 것이 이긴다.를 원하죠. 물론 저 역시도 만약 어벤저스 마지막에 벌크업한 보라돌이 농사꾼이 이겼다면 루소 형제 나오라고 소리쳤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이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나쁘다. 혹은 착하다.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단지 이해한다.는 말 외에는요. 그나마 이 뜨개질에서 가장 굵고 독특한 색을 가진 실에 가까운 톰 홀랜드 역시도 그러합니다. 복수 혹은 죽어 마땅한 놈이라는 이유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데. 속이 마냥 시원하지만은 않더군요. 분명 그는 감옥에서 생의 일부분을 보낼 것이고. 그 일부분 역시 순탄치만은 않을 테니까요. 이 복잡한 우리의 마음을, 마지막 부분의 내레이션이 대변한다고나 할까요.
그만 말해. 이제.
토요일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보면서 최근에 썼던 다크 히어로 관련한 글이 다시 한번 떠올랐습니다. 아주 근소하게나마 시대를 앞서간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고. 선과 악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 수 있었죠. 소비하는 책이나 영화마다 요새 제게 많은 생각을 안겨줘서 감사함과 동시에 여태 대체 어떤 우물 안에서 살았던 것일까.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러닝 타임이 두 시간이 훌쩍 넘지만. 정말 시간 순삭 하게 만드는 영화이니. 꼭 한 보셨으면 합니다.!!
참고 1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랬다고 함. 연기를 안 봐주고 자꾸 얼굴만 봐서 교정기를 끼고 연기했다고 하는데. 아니 그래봐야 교정기 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잖아.
참고 2
진짜.. 거짓말 아니라 타짜 대사 거의 다 외움.
[ 이 글의 TMI]
1.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타이밍이 왔다.
2. 이제 왜 주중에 휴일 없죠?ㅠ 추석까지 존버인가ㅠ
3. 선풍기를 꺼내야 할까.
4. 과일 먹고 싶다. (요새 과일 끊음)
5. 나중에 잠시 회사 가야 하는데. 너무 가기 싫다.
6. 요새 무가당 두유 먹고 있는데(당류 1%, 진짜 그냥 콩물) 그거 먹고 2주일 만에 식욕을 잃음.
7. 그러나 그러기엔 너는 아직도 너무 많이 먹고 있지.
함께 읽으면 좋을까?
https://blog.naver.com/virgonmalta/222244860880
엘리오, 헨리 5세로 왕위에 스스로 앉다;넷플릭스 더 킹 헨리 5세 리뷰
#악마는사라지지않는다 #로버트패틴슨 #세바스찬스탠 #톰홀랜드 #빌스카스가드 #넷플릭스 #넷플릭스추천
* 본 콘텐츠는 블로거 Rigo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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