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예슬2021-11-25 20:52:49
남들의 시선이 아닌 내 시선으로 살아가기를, <스왈로우>
스왈로우 리뷰
넓고 쾌적한 집, 다정한 남편, 경제적으로 남부럽지 않은 이 배경은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스왈로우를 보며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 사람이 행복해보이는지 자유로워보이는지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이 말은 헌터의 인생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먹어서는 안 될 것들을 먹는 헌터를 보며 시각적으로 보기에 불쾌했고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괴롭기까지 했다. 이식증과 헌터가 갖고 있는 서사가 연결성이 있는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해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완벽해보이는 헌터의 결혼생활이 그렇게 행복해보이지도 않았고 헌터의 외양마저 헌터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헌터의 이야기는 상담실에서 자신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시작된다. 이전까지는 주어진 배경이나 선택에 순응했다면 상담 이후 헌터는 누군가가 자기에게 강요하는 선택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거부하며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남편을 위한 선택이나 태어날 예정인 아이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기 시작한 행동들이 마음에 들었다. 임신중절약을 삼키는 행위를 제목과 연관지어 말한 동아리원의 감상도 인상깊었다. 나는 이 감상문을 보고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먹은(스왈로우)것도 제목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내가 마음먹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늘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아왔기에 그때마다 새로운 다짐을 하기 바빴다.
수없이 삼키고 삼켰지만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 더욱 좌절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영화 속 헌터가 수많은 것들을 삼키며 마침내 그것을 실제 현실에서 드러내기까지 오랜 시간을 버티고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을 견뎠던 것처럼 나도 수십번 수백번 그런 다짐을 삼키며 그것을 실제로 드러내볼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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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주말은 건강히 잘 보내셨나요?
오늘은 1월 2주차의 주말 박스오피스를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씨네픽과 함께 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
'박스오피스 예측(결과) 콘텐츠'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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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5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말동안 (1월 14일~16일) 관객 수 17만 1927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현재 689만 7608명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무색하게도 연일 흥행 독주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하우스 오브 구찌> 등 할리우드 거장 감독들의 대작들이 개봉하고,
그리고 한국영화 기대작인 <특송>의 개봉에도 불구하고 꿋꿋히 관객 수를 동원하고 있는데요.
이 기세로 누적 관객 수 700만명을 이번 주 안에 돌파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2위. <특송>(▲5)
▶이번 주 주말 박스오피스 2위는 지난 1월 12일 개봉한 <특송>입니다.
주말동안 (14일~16일) 주말 관객 수 16만 0147명을 동원했고, 총 누적 관객 수는 23만 3432명입니다.
개봉 후 5일간 <특송>은 쟁쟁한 경쟁작들 속에서 순조로운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으며,
실관람객들의 평점은 CGV골든에그 지수 93%를 기록하며 흥행열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특송>은 박소담 배우의 원톱 주연작으로 성공률 100%의 특송 전문 드라이버 ‘은하’가 예기치 못한 배송사고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추격전을 그린 범죄 오락 액션 영화입니다.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짜릿한 카체이싱 액션과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으로
극장에서 꼭 봐야할 극장 필람 영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3위. <씽2게더>(-)
▶주말 박스오피스 3위는 유니버설 픽쳐스의 <씽2게더>입니다.
같은 기간(14~16일)동안 주말 관객 수 13만 4346명을 동원했으며, 충 누적 관객 수는 49만 9047명입니다.
애니메이션 영화인 <씽2게더>의 흥행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관객들의 뜨거운 입소문에 힘입어 개봉 3주 차에도 굳건히 CGV 골든에그지수 98%를 기록하며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작품 및 신작들 대비
압도적인 수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오히려 박스오피스 1위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나 2위인 <특송>보다도
좌석 판매율은 16.4%로 더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무난히 이번 주 누적 관객 수 5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83회 예측 이벤트는 1월 2주 차 주말 박스오피스 예측 이벤트입니다.
먼저 1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64%, 여성 36%로 남성 관객들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20대 비율이 45%, 다음으로는 30대가 3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럼 제83회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에 한 주동안 참여한 씨네픽 유저들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위의 표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씨네픽 제 83회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의 참가자 중의 대부분은
박스오피스 1위 -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예측하셨고, 박스오피스 2위 -<특송>, 3위 - <씽2게더>를 예측해주셨습니다.
이 순위는 실제 박스오피스 순위와 일치한다는 점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83회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의 참가자 중 35%의 참가자분들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박스오피스 1위,
27%가 <특송>의 박스오피스 2위를 예측, 3위도 마찬가지로 32%의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씽2게더>의 박스오피스 3위를 예측했습니다.
또한 제 83회 박스오피스 순위예측에 참여하여 1위, 2위, 3위를 모두 맞혀 상금을 받아가실 분들은 모두 36명 입니다.
상금을 받아가신 정답자는 전체 참가자 중 10%가 넘는 수치입니다.
여러분들도 많이 많이 참여해주시어, 상금을 많이 받아가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제 83회 예측 이벤트에 참여해주신 모든 참가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정답자분들 36분에게는 진심으로 축하인사 드립니다!
다음 주에는 더 재밌고 유익한 제 84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위. <경관의 피>(▼2)
▶주말 박스오피스 4위는 지난 주 순위에 비해 2계단 하락한 <경관의 피>입니다.
<경관의 피>는 주말 관객 수 9만 0725명을 기록, 총 누적 관객 수는 55만 7141명을 기록했습니다.
조진웅, 최우식, 권율등 주요 출연진들이 예능이나 라디오에 출연하여 연일 홍보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소 아쉬운 흥행실적입니다.
물론 극장가는 계속해서 할리우드의 대작 신작들이 줄줄이 개봉하고 있고 무엇보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굳건히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행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5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
▶주말 박스오피스 5위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 4만 2074여명의 관객 수, 총 누적 관객 수는 7만 8483명을 기록했습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생애 최초 뮤지컬 영화로 많은 화제를 받았습니다. 또한 최고의 안무가,
최고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등 최고의 제작진들이 영화에 참여했다고 전해지는데요.
게다가 30,000 : 1의 경쟁률을 뚫고 배우로 참여한 '레이첼 지글러'의 환상적인 연기와 가창력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은 작품입니다.
다소 흥행 성적은 아쉬운 결과를 보이고 있는데요. 제7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3관왕을 석권한 작품이고, 아직 개봉 1주도 안됐기 때문에 앞으로의 박스오피스 순위가 상승할 수 있을지 기대해보겠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11년만에 다시 돌아온 <스크림>시리즈의 새 영화 <스크림>이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14~16일) 북미기준 $30,600,000 (한화 약 394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
이 기록은 역대 프랜차이즈 <스크림> 시리즈 중에서 최고 스코어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평단에서는 故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유산을 훌륭하게 계승함과 동시에 신선한 재미와 반전까지 두루 갖춘
양질의 오락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영화로 평가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국내에도 1월 개봉을 확정지은만큼 곧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크림>은 "우즈보로의 첫 번째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25년이 지난 뒤, 새로운 살인마가 나타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TOP 7> (2022년 1월 14일 ~ 2022년 1월 16일)
1. <스크림> 3060만 달러
2.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2080만 달러 (누적 6억 9872만 달러)
3. <씽2게더> 827만 달러 (누적 1억 1935만 달러)
4. <355> 234만 달러 (누적 841만 달러)
5.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231만 달러 (누적 2868만 달러)
6. <벨> 164만 달러
7. <아메리칸 언더독> 160만 달러 (누적 2106만 달러)
이번 주 박스오피스 분석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다음주에도 더욱 더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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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년 만에 다시 만난 기념비적 SF
잘생긴 사람이 부산 사투리로 어떤 말을 한다. 남자는 입담이 엄청 좋다. 이 남자의 이름은 '사이먼 도미닉', 이하 '쌈디'다. 굉장히 좋은 행보로 AOMG의 사장을 지나 현재 한국 힙합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이 남자. 이 사람의 언더신에서의 행보는 아주 훌륭하다. 여전히 그는 한국 힙합의 전설이 되어 좋은 음악을 발표하고 있다(글쓴이도 쌈디를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 이름을 처음 알리게 된 계기는 MBC의 <아바타 소개팅>이다. 그렇게 잘생긴 사람이 말을 저렇게 재미있게 한다고? 그 프로그램 자체의 아이디어도 신박했다. 일단 누군가가 직접 보이지 않은 채로 타인을 대하면 민망한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내 일 아니거든. 이 프로그램은 그 지점을 똑똑하게 활용하며 지금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몇몇 레전드 클립을 남겼다.
어떤 영화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건 대단한 일이다. 단순히 <범죄도시 2>에서 손석구 배우의 카리스마로 그가 스타덤에 오른 것도 굉장히 좋은 일이다. 일단 손석구 배우 개인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어떤 영화가 TV 프로그램 몇 개 만들다 못해 '아바타'라는 개념 자체를 갖고 온 것이라면 그건 감독이 선견지명이 있다고 보는 게 당연하다. 아, 이 영화는 이 선견지명만 남기고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SF 명작이 되어 그렇게 남아있다. 12년을 돌아 메타버스를 꿰뚫은 영화를 만나보자. 다음 주 수요일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하는 <아바타>다.
아주 먼 미래
2150년. 상이군인 제이크 설리는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가족도 없이 혼자서 사는 것 같다. 나라를 위해 투신했지만 보상이 노력한 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에게 잊히고 있는 제이크. 어떤 술집에서 웬 부랑자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다. 정신을 차릴 즈음 누군가가 말을 건다. "이 자가 제이크야?" "맞는 것 같은데요." 남자 둘은 제이크를 끌고 어딘가로 향한다. 도착한 곳은 일종의 연구실이다. 여기가 뭐하는 데야? 처음 겪는 상황이다. 어리둥절한 제이크.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 그레이스 박스는 싹수가 없다. 아무튼 제이크에겐 임무가 주어진다. 1kg당 2천 달러나 하는 물질 언옵테늄을 채취하는 것. 이 언옵테늄이 있다면 가상의 행성 판도라를 개발해 인류의 평화로운 삶을 기약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대규모 부대를 판도라에 파견하는 인류. 판도라에는 원주민 나비족이 살고 있었다. 인류는 나비족과의 공존을 위해 가상으로 된 몸 '아바타'를 만들어 외계인과의 소통에 나선다.
아바타를 통해 외계인과 통신하는 제이크. 임무를 하던 도중이었다. 원래 판도라에서 살던 외계 동물에게 공격을 받고 무리에서 낙오된다. 절망스러운 상황. 헤매던 제이크를 오마티카야 부족의 여전사 네이티리가 발견하고 그를 구해준다. 묘하게 시작되는 인연. 사실 네이티리는 제이크에게 화살을 겨눴지만 사살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바로 지역의 수호신 같은 존재 에이와가 이를 제지한 것. 제이크에게 뭔가 다른 걸 느끼는 네이티리. 살고 있는 고향으로 데려간다. 술렁이는 부족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와의 계시를 받았다는 네이티리의 말에 제이크가 부족과 함께 동화되는 것을 허락한다.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동상이몽인 채로 서로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과연 아바타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기념비적이라고 할 수 있지
글쓴이는 97년이다. 이 영화의 개봉 연도는 2009년이다. 이때 <무한도전>이 인기가 많았다. <무한도전>의 팬이었던 나. 엄마는 많이 바빴기 때문에 주말이 아니면 극장에 갈 수 없었다. 토요일 저녁 6시 40분. 애매한 시간대에 표 예매를 잡았다. <무한도전>이 삶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에 극장 가기 직전까지 엉엉 울었다. "우리 아들. 왜 그래? <무한도전> 보고 싶어?" 지금 다시 생각하면 이마빡을 손바닥으로 쳐버리고 싶지만 아무튼 그땐 <무한도전>에 진심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 3시간 분량이 끝나고 난 뒤 뭔가 신세계가 열린 느낌이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SF였던 <아바타>. 메이플스토리를 필두로 한 아바타 게임은 적지 않았지만 그걸로 이런 서사를 짰다는 건 굉장히 신선한 시도였다.
13년이 지났다. 마블이 휘황찬란한 영화들을 발표하고 드니 빌뇌브가 <듄>을 발표했다. 긴 시간 동안 SF 장르에 햇살 같은 축복이 내렸다. 그런데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아바타>의 임팩트를 넘어선 SF가 없었다는 것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도 파란 피부에 신기하게 생긴 외계인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 무슨 날개 달린 외계 생물체를 달고 비행하던 쾌감은 지금 봐도 신선하다. 어릴 때야 '그때 그거 쩔었지'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분명하게 이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이 영화가 가진 시각적 쾌감은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거장이 가진 연출력 덕택에 나왔다. 180분 동안 살짝 진부할 수도 있는 스토리를 매 번 다른 느낌으로 끌고 간 감독의 개인능력이 돋보인다. 괜히 기념비적인 SF가 아니다.
뭐가 있냐면
일단 시각화 수준이 대단하다. 이 영화는 SF영화다. SF영화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시각적인 게 중요할 것이다. 기존의 세계를 새로 만드는 게 이 영화의 주요 과제다. SF이니 만큼 기존에 없는 대신 설득력 있게 사실적으로 가상의 현실을 구현해야 한다. 이곳에서의 CG 연출은 우리를 설득하기 충분하다. 일단 나비족을 CG로 연출한 방식은 '적당히 신선하다'라는 말과 어울린다. 우리는 살면서 외계인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이 영화에서는 사람처럼 구성하되 외관만 살짝 빗겨 난 형식을 썼다. 또 부분적으로 근육질의 묘사도 인간의 것을 따온 것이 보인다. 다들 '불쾌한 골짜기 이론'에 대해 알 것이다. 기괴함과 신선함의 차이는 정말 간발의 차다. 그런데 이 영화가 초반부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유지하고 있었던 건 이 시각 연출의 힘이 크다. 또 판도라에 사는 외계동물 연출도 공룡을 연상케 하는 좋은 시각화였다. 우리 인류가 처음 탄생하기 이전에 공룡이 살았다. 그리고 판도라 역시 도시를 개발하기 이전이다. 이 점에서 '인류의 역사와도 닮으면서 신선함을 유지했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 공룡들을 활용한 액션도 이 영화의 강점 중 하나다. 타고 다니는 동물이 있다. 이 타고 다니는 동물을 가지고 하는 전투신이 이 영화에서 제시되는데, 실제로 이 동물들을 타고 싸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 CG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장면을 구성했다는 이야기인데 운동의 디테일이 구석구석 살아있어 생동감을 더한다.
이런 시각화를 뒷받침하는 이야기 구성도 눈에 들어온다. 사실 이 영화 줄거리 별 것 없다. 자연을 개발하려는 인간과 원주민의 대립은 우리 역사책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를 설정한 건 어느 정도 노림수가 있다. 우선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것도 분명히 의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감독이 하고자 했던 메시지와도 관련이 있다. 그런데 글쓴이의 생각은 이야기를 통해 힘을 주고 싶었던 것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시각화에 힘을 빡 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아바타'라는 매개체를 통해 외계 문명과 소통하는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럼 3자의 관점에서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하는 게 뭘까? 외계인과의 신기한 소통 과정일 것이다. 그러면 이야기를 신선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각화에 힘을 주는 것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가 조금 진부하더라도 액션과 CG에 힘을 주는 방식은 우리 요즘 할리우드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단 올해 국내에서 800만 관객을 동원한 <탑건 : 메버릭>만 봐도 그렇다. 따지고 보면 베테랑 조종사 메버릭의 이야기가 서사의 전부다. 그럼에도 메버릭의 저세상 액션 하나만큼은 정말 끝장났다. 이렇게 이 영화가 후의 상업영화들에 적지 않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건 그렇게 어려운 가정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외계인들과의 소통' 중 어떤 것을 소재로 삼았는지 생각해보면 이는 감독의 노림수가 꼼꼼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단 주인공 제이크의 인물 설정이 흥미롭다. 바로 하반신 마비라는 점이다. 이 하반신 마비라는 특성은 1) 초반부에 아바타를 연결하고 난 다음의 카타르시스 2) 아바타 프로젝트에 참여할만한 근거 제시 3) 후반부 인물의 선택지에 합리적인 근거 제시라는 점에서 꼼꼼하다. 또한 액션 신에서 탈것이 되어주는 동물과의 교감을 넣은 것, 후반부에 인류와의 대립이 있는 것, 네이티리의 전투신까지 '이걸 넣으면 영화의 시각적 요소가 풍부해질 것'을 고려한 티가 난다. 일단 아크란과의 교감과 비행은 극에서 중요한 위치도 차지하면서 불필요하게 삽입하지 않았다. 인류와의 대립 액션신은 핵심 인물들의 내적 변화를 꼼꼼히 만들었기 때문에 일반 관객들도 '그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나?'를 설득할 수 있다. 또한 네이티리의 맨몸액션은 초반부에 이 인물이 어떤 캐릭터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방식 중 하나다. 이 사람이 내적으로 강인하지만 그렇다고 빈틈이 아예 없는 인물은 아니라는 걸 경제적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12년을 돌아 다시 직면하다
이 영화에서 주요하게 작동하는 테마 중 하나는 '인간의 것은 과연 무엇인가?'다. 대사에서도 언급된다. '모든 에너지의 것들은 잠시 빌린 것이며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라고. 이 영화가 개봉한 2009년 12월부터 세계는 다양한 사건을 맞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팬데믹 사태를 겪어도 변하지 않았던 뜨거운 감자는 사실 명확했다. 바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지구 온난화 문제였다.
감독이자 각본가 제임스 카메론은 이 지구 온난화 문제에서 환경에 대한 소재만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이야기 전개는 어디서 봤다. 또 소재는 우리 책에서 많이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익숙한 소재를 갖고 왔다고 해서 절대 깊이가 얕지 않다. 인류가 자기를 희생하기 위해 타자들을 어디까지 희생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과학의 진일보를 어디까지 바라볼 것인가, 복제인간은 과연 인간과 어떤 차이점을 갖는가,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논의, 대화와 소통 없는 의사소통 방식까지 영화는 다양한 층위로 이루어져 넓은 이야기를 한다. 과연 이게 2009년의 세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일까? 아닐 것이다. 금세 우리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생각난다. 팬데믹 사태를 불신했던 몇몇 정상들도 생각난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찾을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인형에 대한 논의는 뜨거운 감자였다. 이런 일에 대해 감독은 각각의 해결책도 제시하지만 결정적인 키워드로 어떤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뭐. 사람에 따라 고리타분하게 느낄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인 걸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0여 년을 지났지만 시대상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유효하다는 것은 제작자들의 인사이트가 탁월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단순히 눈요깃거리로 뛰어난 영화가 아닌, 우리 스스로의 삶에 대해 통찰해보면 좋은 영화가 <아바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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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탈과 이탈, 도피와 탈피 사이를 나지막하게 가로지르는 선율.
하스미 시게히코의 저서 [영화장화]에서는 ‘영화는 활극이어야만 한다. 활극이란 숏의 반복, 거듭되는 숏이 새로운 숏으로 바뀔 때마다 커다란 충격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충격은 완만하다. 부드럽지 않게 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마지막은 액션이 연결돼서 아주 부드럽게 흘러간다.’라고 <도쿄 소나타>를 평한다. 정적인 숏 속에서 <도쿄 소나타>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행동한다. 어떠한 결심을 하고 몸을 움직인다. 그 속에 큰 목적성은 없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지배적인 무의식이 행동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사사키 가족은 일탈과 이탈, 도피와 탈피를 경험한다. 네 명의 인물들은 각자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메구미는 일탈하는 인물이다. 오프닝 시퀀스, 열린 문 사이로 빗줄기가 들이친다. 서둘러 문을 닫고 바닥에 고인 빗물을 닦던 메구미는 다시금 문을 열어 허공을 응시한다. <도쿄 소나타>에서 집이란 정돈되어 있는 안락한 곳, 사사키 가정을 의미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 가정을 위협하는 폭풍우는 앞으로의 갈등을 암시하는 듯하다. 여기서 문을 다시 여는 메구미의 행동은 굉장히 상징적이다. 관객은 가정의 갈등이 외부에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균열을 만들고 고통을 내부로 들이는 것은 메구미임을 알 수 있다. 류헤이의 실적에서부터 비롯된 폭풍우는 애써 모른 척해주는 메구미가 문을 닫기 때문에 집에 들어올 수 없다. 하지만 이미 고인 빗물처럼 균열을 감지한 메구미는 다시 문을 열고, 결국 폭풍우는 사사키 가정을 침범하게 된다.
작중 메구미는 수많은 프레임 속에 갇혀 있다. <도쿄 소나타>의 주배경인 집은 세트를 지어 촬영했다. 그렇기에 집의 구조와 가구의 배치 같은 공간적 특성은 모두 의도된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속에서 구로사와 기요시는 사사키 가족을 결코 허투루 잡지 않는다. 힘을 준 숏이라는 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런 기요시가 메구미를 보여줄 때는 필수적으로 장애물을 배치한다. 책장, 찬장, 창틀 사이로 보이는 메구미는 언뜻 철창 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반복되는 이중 프레임은 메구미에게 있어 평온한 가정이 얼마나 감옥처럼 느껴지는지를 가시화한다.
메구미가 일탈하고자 하는 시도는 영화 전반적으로 등장한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자동차를 보러 가는 것이 그러한 예시이다. 류헤이의 이탈을 알아챈 것도 바로 일탈의 과정 속에서다. 메구미는 애써 전업주부의 삶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좋은 엄마이자 아내이지만, 반복되는 일상과 가정의 불화에 심한 염증을 느끼는 인물이기도 하다. 류헤이의 권위가 하락하며 자아를 되찾은 메구미는 납치범에게 잡힌 인질일지라도 가정을 떠난다는 선택을 내린다. 결정권이라고는 메뉴를 고르는 것뿐이던 메구미가 처음 적극적으로 행동한 순간이다. 정해진 삶에서 벗어나 도착한 곳은 어떠한 프레임도 없는 망망대해다. 쓸려가 버릴 듯 파도를 느끼는 메구미는 도로로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 강인한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강렬한 햇빛. 메구미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엉망이 된 집은 예전처럼 정돈되어 있진 않지만 따스한 햇볕이 들어온다. 다시 밥을 짓는 메구미는 이전과 같지 않다. 균열을 느끼고 받아들인 순간부터 메구미는 일탈을 통해 변화했기 때문이다.
류헤이는 이탈하는 인물이다. 가족을 지키는 권위적인 가장, 류헤이를 한 줄로 설명하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앵글은 류헤이를 권위적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기요시가 메구미를 이중 프레임 속에 가둔다면, 류헤이는 거대한 헤드룸으로 짓눌러버린다. 필요 이상으로 긴 헤드룸은 류헤이를 불안정하고 왜소하게 만든다. 영화 초반부 오피스에 뜬금없이 자리한 나무 모형은 류헤이와 닮았다. 가정을 지키는 가장 같기도 하고,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일을 하는 공간 속에 섞여 들지 못한 이물질 같기도 하다. 그런 나무에는 거대한 옹이가 자리하고 있다. 속이 텅 비어 버린 구멍을 품은 류헤이는 끝내 무리에서 이탈해 버리고 만다. 하지만, 류헤이는 이탈할지언정 도망치지는 않는다. 여자와 아이, 젊은이들만 태우고 가버린 구명보트, 즉 출근하는 행렬에 섞여 들지는 못하지만, 사회적으로 혹은 가정적으로 도망쳐버린 망자들의 행렬에도 동참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직으로 인한 이탈은 곧 권위의 상실로 이어진다. 메구미가 문을 열어 균열을 받아들일 때, 류헤이는 켄지의 가방을 잠가주며 균열을 외면한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잃지 않기 위함이다. 기요시는 류헤이의 권위를 식사 장면에서 주로 다룬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통해 사사키 가족 내 류헤이가 가지고 있는 위치를 시각적으로 그려낸다. 모두가 밥 먹을 준비를 마쳤음에도 류헤이가 맥주를 마시는 걸 기다리는 모습을 통해서는 서사적으로 표현한다. 그런 류헤이의 권위 싱실은 메구미가 류헤이의 실직을 알고 있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항상 높은 곳 혹은 동일선상에 위치해 있던 류헤이가 메구미보다 낮은 층고에 위치함으로써 전복이 일어난다. 이후로 류헤이는 백화점에서 메구미를 마주했을 때 아니라고 소리친다. 자신이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청소하다 발견한 목돈을 탐냈다는 사실을 외면하면서. 켄지를 2층에서 1층으로 밀어버린 시점에서부터는 그 어떠한 가장 노릇도 하지 못한다. 그런 류헤이는 차에 치인 후 일종의 부활을 겪는다. 비로소 류헤이는 권위를 내려놓는다. 엉망이 된 몰골로 청소부 복장을 한 채 집으로 돌아온 류헤이를 메구미와 켄지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야 식사 시간은 온기를 되찾는다.
타카시는 도피하는 인물이다. 타카시는 작중 내에서 가장 분량이 없는 인물이다. 그가 도피하는 인물이기에 그렇다. 타카시는 본인 스스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불황의 일본 사회 속에서 취업도 하지 못하고, 행복도 찾지 못한 채 방황할 뿐이다. 타카시는 일본의 평화를 지켜주는 건 미국이라고 말하며, 일본에 회의감을 가지고 미군에 지원한다. 하지만 국경을 그어 놓은 채, 메구미와 류헤이가 가져다주는 안락함에 기대 사는 건 오히려 타카시다. 국경을 벗어난 타카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버스 창틀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이다. 그러나 기요시는 도망친 곳에 결코 낙원은 없다고 말하진 않는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을지도 그 과정에서 타카시는 새로운 시야를 얻는다. 도피보다 삶을 마주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일임을 깨닫는다. 메구미가 이혼하지 않고 다시 밥을 짓는 것처럼, 류헤이가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켄지는 탈피하는 인물이다. <도쿄 소나타>는 선형적 내러티브 구조로 진행되다가, 영화의 중반 지점부터는 역순행적 회상 내러티브로 바뀐다. 플롯이 변화한 그 시점, 백화점에서 메구미와 류헤이가 마주한 뒤부터 사사키 가족은 각자의 사건을 겪기 시작한다. 만남 이후 메구미는 화면상 오른편으로 운전하고, 류헤이는 화면상 왼편으로 달린다. 켄지는 타구치를 만나 전에는 메구미처럼 오른쪽으로 걷는다. 이후, 켄지는 가출한 타구치가 아빠에게 잡히지 않게 도와주다 결국 타구치를 지키지 못한다. 류헤이가 가정을 지키지 못한 것처럼 켄지도 관계의 상실을 겪는다. 그때부터 켄지는 류헤이처럼 왼편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계단 갈등 이후 켄지가 류헤이를 이해하게 된 순간이다. 그럼에도 가정으로 가장 먼저 돌아온 건 켄지이고, 류헤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도 켄지의 연주이다. 켄지는 방어적이던 자신의 모습에서 탈피해 설익은 위로를 전하기보다, 진심으로 공감하고 곁에 머무르기를 선택한다.
메구미와 켄지, 류헤이와 타카시는 각각 궤를 같이하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사사키 가족은 각자의 여정 끝에 다시금 식탁 앞으로 모인다. 그렇게 반복되는 식사 장면은 관객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사사키 가족은 자신들이 어떤 일을 겪고 왔는지 구태여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그저 묵묵하게 다시 밥을 먹을 뿐이다. 하스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던 것이 흔들리고 무너지도록 만드는 것이 영화이다.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알게 되는 순간이 살아있는 현재를 뒤흔드는 아주 현실적인 체험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도쿄 소나타>를 통해 관객은 무엇을 느꼈을까. <도쿄 소나타>는 사회가 머금고 있는 수많은 아픔을 일상적으로 살아내고 있을 사람들에게 충격이 되어주었을까, 혹은 나지막한 선율로 위로가 되어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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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튼 아카데미 | 뻔한 이야기 속에 숨은 진주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국 뉴잉글랜주의 고등학교 '바튼 아카데미'에서 역사 교사로 재직 중인 '폴'(폴 지아마티). 이렇다 할 가족도, 친구도 없는 그는 책과 자기 세상에 갇힌 채 살아간다. 그래서 그는 크리스마스 방학 동안 숙직을 맡아 기숙사에 남은 학생들을 지도해 달라는 교장의 제안도 큰 불평 없이 받아들인다. 어차피 그의 크리스마스는 달라질 게 없으니까.
하지만 크리스마스 방학 첫날부터 그의 예상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앵거스'(도미닉 세사)가 갑작스레 학교에 남았기 때문. 입이 튀어나온 앵거스는 교칙대로 공부를 강요하는 폴의 지도에 틈만 나면 반기를 든다. 거기에 아들과 사별한 기숙사 주방장 '메리'(데이바인 조이 랜돌프)까지 학교에 남으면서 무미건조할 예정이었던 폴의 크리스마스는 자꾸만 궤도를 벗어난다.
알렉산더 페인이 크리스마스 영화를 변주하는 법
'크리스마스 영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가족과 떨어져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주인공. 그는 가족이 아닌 이들과 여러 모험을 겪는다.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을 되새기며 그렇게 한 층 성장한다. <나 홀로 집에>나 <해리 포터> 시리즈 초반부가 대표주자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 폴 지아마티 주연의 코미디 드라마 <바튼 아카데미>도 마찬가지다. 비둘기 아줌마나 늑대인간은 없지만 큰 틀은 같다. 엄마와 새아빠의 신혼여행 때문에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방학을 보내야 하는 앵거스. 불만 가득한 앵거스는 당직 교사 폴, 학생 식당 조리사 메리와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결 성숙해진다.
이렇게 보면 특별할 게 없다. 잘 만들고 감동적인 크리스마스 영화. 그뿐이다. 그러나 정말 이뿐이라면 <바튼 아카데미>가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남우주연, 여우연, 각본, 편집상까지 다섯 부문에 후보로 선정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칫 익숙해 보이는 크리스마스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다. 가족, 교육, 그리고 1970년대다.
학교에서 새로운 가족을 찾다
폴과 앵거스는 단순한 학생과 교사 관계가 아니다. 앙숙이다. 규칙을 준수하는 교사와 자유분방한 청소년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이 친구가 아니기에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은 더 감동적이다. 특히 그 문을 여는 열쇠가 눈에 띈다. 그들은 가족과 관련해서 남몰래 간직한 아픔을 털어놓고, 서로 위로를 건넨다. 그 순간 그들의 크리스마스는 비로소 따뜻해진다. 옆에 있는 새 가족을 찾았기 때문이다.
앵거스는 가족을 잃었다. 친아빠는 정신병원에서 치료 중이라 만날 수 없다. 친엄마는 계부와 신혼여행을 즐기느라 자기를 학교 기숙사에 처박아뒀다. 그래서 그는 유일한 가족사진에 유독 집착한다. 바튼 아카데미에 집착하는 폴은 괴짜로 유명하다. 교칙을 어기거나 공부를 안 하는 학생에게 유달리 엄격하다. 그런 그에게도 속사정이 있다. 어릴 적 엄마와 사별한 후, 그에게 집은 바튼 아카데미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앵거스와 폴은 그토록 바라던 가족과 집을 서로에게서 발견한다. 도저히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서로 마음에 안 들던 둘은 같이 병원을 가고, 저녁을 먹고, 서점을 가고, 볼링을 치면서 상대방의 고독함을 발견한다. 앵거스가 숨기고 있던 우울증 약도, 하버드에서 쫓겨나 바튼 아카데미로 돌아와야 했던 폴의 사연도 공유한다. 가장 비참한 순간을 보여주면서 그들은 누구보다도 끈끈한 사제 관계로 거듭난다.
메리도 빼놓을 수 없다. 아들을 최근에 잃은 그녀는 후유증에 시달린다. 두 남자는 그녀 옆에서 같이 TV를 보고, 크리스마스 파티에 동행하며 외로운 시간을 채워준다. 메리도 앵거스와 폴이 싸울 때 은근슬쩍 앵거스의 손을 들어주고, 폴이 앵거스를 학생이 아니라 제자로 대하도록 충고를 건넨다. 그렇게 가족을 잃은 이들이 마침내 새 가족을 찾는다. 셋이 함께 칠면조를 먹는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크리스마스인 이유다.
학교에 저항하는 사제지간
그러면서도 <바튼 아카데미>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실제로 영화 곳곳의 힌트를 따라가면 앵거스와 폴을 매개로 삼아 암시하는 이야기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다운 블랙 코미디와 찰진 대사를 쫓으면 <바튼 아카데미>의 진짜 풍미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셈이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바로 교육이다. 흥미롭게도 배경은 학교지만, 두 주인공은 학교에 썩 어울리지 않는다. 명령과 교칙을 준수하는 교사나 학생은 아니기 때문. 일례로 폴은 교장에게 뻗댄다. 부유한 집 아이에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점수를 부여하라는 교장 지시를 단칼에 거절한다. 그 아이들이 바튼 아카데미라는 명문 학교에 입학한 것만으로 그들은 이미 특혜를 받았으니, 좋은 성적을 따는 것을 그들 몫이라면서.
그뿐만이 아니다. 관례를 따르는 다른 교사들과 달리 폴은 방학 직전까지도 수업을 강행한다. 자연히 학생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을 리 없다. 이 점은 앵거스와 폴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유달리 입이 거친 앵거스는 다른 학생의 인신을 공격하는 데 도가 텄기 때문. 방학 첫날부터 주먹질을 유발할 정도다.
진정한 학교와 교사를 만나다
그런데 <바튼 아카데미>는 오히려 그들의 비뚤어짐을 비난하지 않는다. 학교라는 시스템이 강제하는 일방향 규칙을 마음껏, 제대로 어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라고 말한다. 일례로 폴이 앵거스에게 교칙을 지키라고 요구할 때 그들의 관계는 악화일로였다. 오히려 그들이 규칙을 깰 때 변곡점이 생겼다. 앵거스가 체육관에서 난동을 부릴 때. 그들이 교칙을 깨고 보스턴 여행을 떠났을 때. 비로소 그들은 서로를 이해했다.
이처럼 <바튼 아카데미>는 단순히 몇몇 개인 방학과 연휴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바튼이라는 학교가 대표하는 교육 시스템에 대한 저항, 규율에 대한 도전이 영화의 핵심이기 때문. 그보다는 삶의 축소판에 가깝다. 정해진 길을 알려주는 교육을 따르는 대신, 능동적으로 반응하며 필요하면 반항할 줄 아는 삶의 과정을 그려냈다.
시작과 끝 역시 주인공, 더 나아가 관객의 반항을 응원한다. 교장과 대면하는 첫 장면에서 폴은 키케로의 어록을 인용한다. ‘우리 중 누구도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Non nobis solum nati sumus).’ 마지막 순간, 그는 그 말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직접 증명해 보인다. 본인에게는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는 바튼 아카데미를 포기하려 한다. 이제는 아들과도 같아진 앵거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래서 폴이 앵거스에게 슬며시 건네는 악수는 그 어떤 대사와 제스처보다도 감동적이다.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찾아온 추운 겨울날 같은 현실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따뜻하기도 하다. 마음의 흉터를 못 지웠거나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한 이들 간의 연대를 단 한 순간에 꾹꾹 눌러 담았으므로.
70년대 터치 덕분에 더 감성적인
극 중 시대상이 1970년대임을 고려하면 <바튼 아카데미>는 더 의미심장해진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인한 히피 문화가 퍼지며 사회에 대한 저항이 꽃피우는 시대였으니까. 페인 감독은 시대적 환경을 절묘하게 활용하며 강압적인 제도에 맞설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에 힘을 더한다. 군사 학교에 가기를 두려워하는 앵거스를 비추면서 베트남 전쟁을 암시하는 식이다.
여러 기술적 접근에도 페인 감독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다소 과하게 느껴지는 줌 렌즈, 1.66:1의 화면비, 필름 스크래치, 디졸브 효과가 배경에 깔린 올드팝과 어우러지는 순간 스크린 위에는 1970년대가 되살아난다. 오래전에 사용된 영화사 로고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다소 평범한 듯한 각본도 의도된 것처럼 느껴진다. <바튼 아카데미>는 관객을 70년대로 초대함으로써 가족, 학교나 학생, 더 나아가 사회 분위기에 관해서 까지도 한 번 더 사색할 수 있는 시공간을 선사하는 영화이기 때문. 이 대목에서는 류승완 감독의 <밀수>가 떠오르기도 한다. 겉보기에는 투박한 <바튼 아카데미>가 '따뜻한 크리스마스 영화'라는 무미건조한 평가에 갇히면 안 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배우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폴 지아마티와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의 연기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미 성과로 보여줬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올랐을 뿐만 아니라,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각각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눈에 띄는 배우는 따로 있다. 고등학교 연극부 활동이 경력의 전부라는 도미닉 세사의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가 퍽 탁월하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이상
진흙 속의 진주를 발견하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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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처럼 건조해도 사랑이야
헬싱키의 빈티지 로맨스라는 문구와 Fallen Leaves라는 제목에서 꽤나 궁금증이 생기던 영화였다. 칸 수상도 하고, 로튼 토마토의 평가도 매우 좋은 편!
로튼 토마토 신선도지수 99%
제7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제96회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핀란드 출품작
2023 국제영화비평가연맹 그랑프리빈티지함 물씬한 포스터도 너무 매력적이고요
그 누구보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는 두 남녀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술과 담배 없이 못 사는 홀라파, 그렇지만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상남자 중에 상남자. 금요일 밤에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고독한 밤을 보내려고 하지만 직장동료의 꾐으로 오랜만에 가라오케를 간다. 술만 홀짝 거리며 무심히 공연을 보다가 우연히 안사를 보게 되는데, 안사 또한 홀라파에게 강렬한 끌림을 느낀다. 그렇지만 그날 둘은 보는 사람이 짜릿할 정도의 시선만 나눌 뿐,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다.
운명은 이 둘을 이어주다가도, 운명의 장난처럼 갈라놓기도 한다. 중간중간 나오는 핀란드식 특유의 유머는 생각도 못했는데,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하고 있었다. 이 영화 특징은 대사보다 노래가사가 더 많은 느낌이었는데, 중간에 두 사람의 타이밍이 안 맞을 때 나오던 노래가 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위 사진 속의 밴드의 노래) 노래가 매우 슬픔.
분명 시점은 현재인데, 10년, 20년 전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이 영화에는 특유의 버석함이 매력이다. 모든 사람들이 감정이 절제되어 있는 편이고, 당연히 이 둘도 별 말을 안 한다. 근데 이렇게 로맨틱하고, 이렇게 잘 통한다고? 싶고.
이때 안사가 윙크를 하는데 너무 사랑스럽다.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일만 하던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참고로 저 강아지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반려견이라고 한다. 여기서 감독 특유의 개그 코드가 묻어 나온다. 드라이한 일상 속에서 달콤한 사랑에 취한 남녀의 이야기, 12/20(수)부터 개봉한다고 하니 친구와 연인과 함께 보는 것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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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선형적 세계로의 첫걸음
* 스포일러 주의
* 지극히 개인적인, 횡설수설한 감상
1. '사피어-워프 가설'https://pixabay.com/images/id-1418613/
'사피어-워프 가설'이란 사람은 그 언어를 바탕으로 사고한다는 가설이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눈(雪)'은 지구 어디에서나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찬 기운을 만나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출처: 표준국어대사전)'를 일컫는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그것을 함박눈, 싸리눈, 진눈깨비 등으로 정의내릴 때, 에스키모인들은 수십가지의 다양한 단어로 표현한다. 비슷하게, 인간이 볼 수 있는 '색(色)'의 스펙트럼은 동일하지만, 영어에서 각각 green과 blue라고 칭하는 범주의 색들을 한국어에서는 이 범주의 색을 '푸른색' 하나로 통칭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신호등의 녹색불을 파란불이라고도 하고, 초록불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는 언제나 green light지, blue light가 아니다. 즉, 사람이 사고하는 방식에 언어가 관장하는 것이다. 사피어-워프 가설이 아직까지 '가설'에 불과하기는 하지만(인간의 인지 능력을 직접적으로 측정할 길이 아직까지는 확고하게 개발되지 않았으므로), 그럼에도 우리는 많은 언어 현상에서 이런 '언어가 우리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체험하곤 한다.
이 가설은 작중 인물인 루이스가 헵타포드들에게 접근하는 가장 근원적인 밑바탕이 된다.
2. 인간과 외계인의 소통 방식은?인간과 전혀 다른 삶과 사고 방식을 가졌을 외계인들과 어떻게 소통을 할까? 인간이 인간의 언어를 바탕으로 사고를 한다면, 외계인은 그들 나름대로의 사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루이스는 언어학자답게 가장 단순하지만 성실한 방법으로 그들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바로 우리의 언어를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 사피어-워프 가설에 기반하여 생각하자면, 이는 즉 인간의 사고방식을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동시에, 이는 인간이 헵타포드'어'를 학습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인간의 언어가 선형적이라면 헵타포드어는 비선형적이다. 일련의 원으로 그려진 그들의 언어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문장이다. 작중에서 이안은 이들 헵타포드들이 수초만에 이러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을 경이로워하는데, 이는 작품의 후반부에서 모습을 드러나듯, 헵타포드들의 '비선형적인 시간'에 기인한다. 인간이 과거와 현재, 미래로 규정하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동시에 일어나는 어떤 현상이므로, 인간에게 그들이 만들어내는 문장은 동시다발적이며 즉각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헵타포드 어는 또한 비음성적이다. 헵타포드들의 언어는 왜 음성(소리)과 유리되어 있는걸까? 그것은 아마 음성이라는 것은 선형적 시간의 차원을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소리는 언제나 처음과 끝이 있다. 그러나 문자는 동시적이다. 인간의 문자에는 한계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헵타포드어는 다르다. 그들은 그들의 언어를 한 눈에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들은 별다른 도구 없이도 그러한 문자를 자유롭게 쓰고 지울 수 있으니 음성은 그들에게 그다지 필요한 언어수단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헵타포드들은 대체 왜, 인류에게 왔는가.
3. 새로운 언어의 힘: 불안정함의 극복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 애봇과 코스텔로는 '인류에게 '무기'를 전해주러 왔노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무기란, 인간이 사로잡혀 있는 선형적 시간의 틀을 깬 새로운 언어를 전수하는 것.
언어를 전수받는 것이 왜 무기가 될 수 있나?
루이스는 헵타포드어를 익히면서 끊임없이 잔상을 본다. 영화 속에서는 마치 회상을 하는 것처럼 보여지던 장면들은 사실 루이스가 앞으로 겪을 일들이다. 즉, 헵타포드어를 학습함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어떤 초월적인 시간관념을 가지게 된 것. 코스텔로는 이러한 전수가 3000년 후의 미래에 인류가 그들을 도울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렵다. 헵타포드어를 배운 것은 루이스 개인이 아닌가. 심지어 루이스는 본인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 눈치다. 다수가 아닌 개인이 배운 언어가 과연 인류 전체라는 거대한 집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영화 속에서 단편적 장면들을 살펴보면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은 yes가 될 것이다. 섕 장군과의 만남에서의 휘장, 헵타포드어 책을 낸 장면 등을 미루어 보았을 때, 우리는 루이스가 결국 헵타포드어를 완전히 해독해내고, 이런 성과를 통해 헵타포드어를 인류에게 전수하게 된다는 점을 알게 된다.
자, 다시 헵타포드어가 어떤 무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헵타포드어를 인류에게 전수한다는 건, 인류가 헵타포드어를 배운다는 것은 인류가 선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비선형적인 사고가 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먼 미래에, 모든 인류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알고 파악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애봇과 코스텔로가 말하듯, 인류는 헵타포드들을 돕게 될 것이다.
왜? 지구 상에 떠있는 미확인 비행물체에 그토록 벌벌 떨며 저희들끼리 다투었던 인류가 과연? 이란 질문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스크린 너머의 인류는 어떤 미지의 존재의 등장으로 인해 혼비백산하여 혼란에 빠진다. 사람들은 불안해 한다. 왜냐고? 그들이 대체 뭐하는 존재들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12개의 서로 다른 국가들이 서로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얼마간 통신이 두절되었을 때, 전세계는 혼돈에 빠지지 않았던가.
이렇듯 불확실성은 인류에게 공포와 절망, 그리고 혼란을 야기한다.
선형적인 삶에 놓여있다는 것은 미래에 어떠한 사건이 발생할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며, 이는 곧 눈을 가리고 돌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은 일이다. 두려운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헵타포드어의 전수는 인류가 가진 이러한 불확실성을 제거한다.
이미 예정된 삶이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절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루이스가 앞으로 태어날 자신의 딸이 죽음을 맞이할 것, 남편은 끝내 그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그와는 결국 이혼할 것이라는 것 등의 사실을 미리 알아버리는 것처럼 미래는 때론 절망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루이스는 기어코 그녀의 삶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피하지 못해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미래의 한켠에는 그녀가 사랑하는 딸과 남편이 있고, 그녀는 그러한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이러한 운명에 대한 순응은 루이스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토록 독불장군처럼 굴던 섕이 단 한 통의 전화로 마음을 바꾼 것이 그러하다. 선형적인 시간을 벗어난다는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던 불안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작품이 보내는 메시지는 희망적이다. 인류는 헵타포드어를 익힐 것이고, 우리가 본디 가지고 있던 시간적 흐름에서 벗어난 다른 차원의 사고를 영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관용과 포용이라는 것 또한 싹트리라. 헵타포드가 3000년 후에 인류가 그들을 도울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알지 못함에서 오는 고통에서 해방되어 평안을 찾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무척 불교적인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미 예정된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칼뱅의 예정설이 떠오르기도 한다. 현자의 돌을 접한 연금술사의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벗어나 원형적인 삶을 살았다던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이집트의 미라, 한국의 조상신 숭배 등)이 머릿속을 스치기도 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산다는건 어떤 느낌일까?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 선형적 세계를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거대한 불가사의 앞에서 인류는 한 없이 작고 초라하며, 나약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루이스를 비롯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헵타포드어를 해독해내고, 소통하고자 노력한다. 루이스가 지구 반대편의 중국까지 전화를 건 것, 이안이 루이스의 해독을 돕는 것, 루이스가 헵타포드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자 발벗고 나서는 것. 그러한 소통의 장면들이 그를 보여준다.
어쩌면 헵타포드들은 인류에게 있는 어떤 '씨앗'같은 걸 본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그들의 접촉은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발화점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작중 나오는 '논제로섬 게임'이라는 개념은 루이스왈, 윈윈(win-win), 협력 등과 유의어인데, 이는 결국 이 작품이 소통에 대해 가지는 개념과 일치한다. 소통은 어떠한 이득을 갈취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루이스와 애봇, 코스텔로가 서로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자 했던 태도와 그를 통해 서로의 사고를 이해하고 알아가게 된 일련의 과정들은 소통이란 것이 어떠한 성질의 것인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쯤에서 작품의 제목을 다시 돌아보자. 'Arrival'. 이는 도입, 또는 도착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다. 시작과 끝. 말하자면, 낯선 외계 생명의 방문은 ufo의 도착이자, 새로운 인류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재미있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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