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댄2021-08-06 11:54:09
결혼 이야기, 존중 없는 사랑은 족쇄
영화 <결혼 이야기> 리뷰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아내를 꼽는 남편. 남편의 가능성을 믿고 영화판을 떠나 극단 무대를 택한 아내. 더없이 이상적인 관계로 보이는 이들은 어느 순간 차에 치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 부부 사이에 사랑은 있을지언정 존중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노아 바움백의 영화 <결혼이야기>는 존중 없는 사랑으로 파경을 맞는 부부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LA 출신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배우였던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고 영화배우가 됐다. 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작품에도 주연으로 출연했다. 어쩌면 잘 나가는 할리우드 스타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뉴욕에 자리 잡은 극단 감독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찰리의 연극에 매료된다. 결국 니콜은 터전인 LA 대신 낯선 땅 뉴욕에서 삶을 꾸린다. 꿈과 기회를 포기하면서 사랑을 택한 것이다. 그 선택은 니콜을 한 사람의 아내, 극단의 평범한 배우로 전락시킨다. 사랑하는 아들 헨리도 니콜에게 '엄마'라는 이름의 또 다른 짐을 지운다.
같은 시기, 남편 찰리의 몸값은 높아져만 간다. 소위 천재들만 받는다고 알려진 맥아더 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찰리는 극단 사람들이 잘해준 덕분이라며 상금을 극단 유지에 사용하겠다고 말한다. 극단의 헌신적인 리더답다. 하지만 니콜이 잘해준 덕분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나 보다. 니콜은 자신의 유명세까지 이용하며 극단 홍보에 나서고, 극단의 실험극들을 뛰어난 연기력으로 완성도 있게 만들어갔다. 니콜의 몫은 부부라는 이유로 어느 순간 당연한 게 되어버렸다.
니콜에게 오랜만에 영화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찰리의 성향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찰리는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아내 니콜을 꼽아놓고도 아내의 재기를 축하하지 못한다. 자신과 극단이 있는 뉴욕을 떠나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LA로 가야 했으니까. 찰리는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했지만 결국 니콜을 막지 못한다. 하지만 허락을 할 때조차 출연료를 극단 유지 비용으로 쓰자고 제안한다. 니콜은 자꾸만 몸이 극단에 잠식당하는 기분이 든다.
찰리와 니콜. 이들 부부가 감독과 배우의 관계인 건 대단히 상징적이다. 감독과 배우는 언뜻 대등한 파트너로 보인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감독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배우를 활용한다. 배우는 역할에 몰두하기 위해 본인을 지워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니콜이 이혼이라는 카드를 꺼내게 된 이유는 사랑이 식어서라기보다는 '부부의 세계'에 매몰된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함이다.
니콜은 대화 대신 소송을 택한다. 재산을 더 많이 가져갈 요량은 아니었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찰리와 대화로 상황을 풀 용기도, 여유도 없었기 때문. 영화 '결혼 이야기'는 찰리와 니콜의 지리멸렬한 이혼 소송 과정을 그린다.
소송은 진흙탕 싸움이었다. 좋게 마무리하고 싶은 의뢰인의 진심은 변호사들에게 닿지 않는다. 변호사들은 소송에 들어갔을 때만 상대를 향해 분노한다. 상처를 받는 건 당연하게도 니콜과 찰리. 그들은 '나를 이렇게 창피하게 만드는' 서로에게 점점 실망한다. 부부의 사랑은 형태를 바꿔 간다. 애틋함에서 애끓는 증오로, 또 공허한 평화로. 다시 애틋함으로.
이혼 준비는 그 어느 때보다 결혼에 대해 많이 상기하는 시기였다. 헤어진 이후 서로의 진심을 알고 눈물을 삼키는 일도 있었지만 이들 부부는 부부로 돌아가지 않는다. 니콜과 찰리에게 결혼 생활은 '우리는 어긋나 있구나'라고 확신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 찰리의 품을 떠난 니콜은 배우상이 아니라 감독상 후보가 된다. 그것도 우수한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 수여하는 에미상이다. 이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찰리는 TV를 보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애초에 니콜의 세계를 존중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극단의 멋진 리더이자 헨리의 다정한 아빠였지만 니콜에게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족쇄였던 것.
TV 채널을 돌리다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이혼한 연예인 부부가 다시 만나 한 집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가능성을 만들어 보는 관찰 예능이었다. 출연한 부부들의 재결합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마음에서 쓸쓸한 바람이 인다.
아내는 "이 사람은 여전히 내 말을 듣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남편은 자꾸만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는 아내가 불편하다. 이미 자신들의 '결혼이야기'라는 책을 써 내려간 관계다. 서로의 간극을 확인하고 이별을 감행한 상태인 것. 결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책 한 구석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은 제삼자들에게도 아프게 다가온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가사가 귓가를 맴돈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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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내가 인도에 살던 시절, 이웃에는 남루한 단칸방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저래 봬도 브라만 출신이라고 수군거렸다.
카스트에 대해 입밖에 낸 말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누가 실은 브라만이래,라고 웅성거릴 때가 아니면 들을 일이 없었다는 소리다.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4계급이라고 학교 다닐 때 배웠지만... 그 얘기를 꺼내면 인도 사람들은 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제로는 수천 개의 계급이, 실은 직업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나중에 들었다.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인도 사람들끼리는 이름만 들으면 대충 알아본다는 얘기도.
돈이 또 하나의 카스트라는 씁쓸한 말도 그즈음 들었던 것 같다. 이건 듣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단출한 생활을 하는 이웃집 할머니더러 '저래 봬도 브라만 출신'이라고 하는 것만 봐도, 돈과 명예를 가진 이들의 성공 신화에서는 낮은 카스트도 좋은 소재거리가 되어 있다는 것만 봐도.
카스트는 법적으로 폐지되었지만, 각양각색의 차별은 더욱 은밀하고 촘촘하게 자라났다. 게다가 카스트 자체도 현실에서 폐지되지 않았다. 일상의 차별은 물론이고 공적 문서로 카스트 증명서 발급이 가능하니, 카스트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인도에서는 안 되는 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다"는, 또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넷플릭스 영화 <화이트 타이거>를 보면서 떠오른 상념들이다. <화이트 타이거>의 길잡이가 되어줄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화이트 타이거>를 재질에 비유하자면 녹이 슬고 거친 양철 판 같다. 금방이라도 나를 쓱 베고는 파상풍을 안겨줄 것 같은 영화. 동시에 살짝만 손 대도 묻어나는 녹 가루처럼, 순식간에 확실한 흔적을 남기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발람이라는 인물과 함께, 가장 흡입력 있는 1인칭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발람은 인도에서는 신에게 찬양을 드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발리우드 영화들 초반에 '하레 크리슈나'처럼 힌두교 크리슈나 신을 찬양하는 노래가 나오거나 향을 피우는 장면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가 보다. 그러나 정작 발람의 청자는 인도에 방문하는 중국 총리 원자바오다. 매끈한 사업가의 외양을 하고 총리에게 메일을 쓰는 발람. 발람의 신은 돈과 권력일까.
발람의 회고를 따라간다. 그의 어린 시절에는 돈과 권력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는다. 이따금씩 지주가 수금하러 오는 작은 시골 마을, 대가족의 둘째 아들로 자랐다. 발람은 학교에서 영어를 줄줄 읽고 "한 세대에 한 마리만 나오는 백호가 너다"라는 칭찬을 받을 만큼 똑똑하지만, 백호로 자랄 기회는 없다. 마을 찻집에서 석탄 깨는 일, 그것이 발람의 카스트이자 주어진 자리였다.
수금하러 오는 지주를 '황새'로, 그 큰아들을 '몽구스'라고 부르며 속으로 싫어한다. 그래도 앞에선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출세 기회도 없지만 그나마 있다면 지주들을 통해서 올 수밖에 없으니까. 구세대의 산물인 황새, 전형적인 깡패 느낌의 몽구스와 달리 미국 유학파인 둘째 아들 아쇽이 나타났을 때 발람은 기회를 찾았다고 느꼈다. 아쇽은 오랜 외국 생활로 아버지나 형에 비해 비교적 "하인"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운전면허를 따서 지주의 운전기사가 되겠다는 손주를 할머니는 고깝게 본다. 집안의 모든 수입을 틀어쥐고 대가족을 관리하는 할머니에게는 아들도 손주도 대가족의 부품이다. 부품이란 기능에 맞게 기량을 발휘해야지, 무한한 꿈을 꾸거나 자리 바깥으로 나가선 안 되는 것이다. 할머니만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오래전부터 굴러온 시스템이 그렇다.
하지만 발람은 최선을 다해 그 자리를 따낸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 마침내 아쇽과 함께 델리로 가는 길에 기사로 동행하게 된다. 아쇽이 미국에서 만난 아내 핑키까지 모시게 되어, 충직한 하인의 자리에 걸맞게 행동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속으로는 아쇽을 어린양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이내 그가 어린양이 되기도 한다. 풀숲에 숨어 고개를 떨구는 초식동물.
델리에서 어떤 사건들을 보고 듣고 겪었기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그가 영화 초입에 보여주었던 단정한 사업가의 얼굴을 이뤄낸 것일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0에 가까운 전환이기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 자꾸 그의 이야기를 뒤따라가게 된다. 중간쯤 발람이 "앞으로 자기 이야기가 더욱 어두워질 것"이라 경고해도 멈출 수 없다.
발람은 인도가 "빛의 인도"와 "어둠의 인도"로 나뉘어 있다고 말한다. 그 어둠의 인도 한가운데, 인도의 가장 찬란한 발명품인 "닭장"이 있다고. 눈앞에서 도살되는 다른 닭을 보면서도 닭장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 "하인" 계급 카스트의 하층민들을 일컫는 것이다. 발람의 표현대로라면 배부른 자와 굶주려 허리를 움켜쥔 자 중 후자. 이들은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저 더 잘 기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개인의 일탈이 가족 몰살로 이어질 수도 있어 조심스러운 것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대대로 굴러내려 오며 눈덩이처럼 커져버린 업(業)의 수레바퀴가 이들을 짓누르고 있다. 카스트에 충직하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내 역할을 어떻게든 다해야 한다. 반대로 내 역할만 다한다면 그밖에 자잘한 잘못이 있어도 죄과가 아니다. 만약 장사꾼의 업이 이득을 보는 것이라면, 그 과정에서 저울을 속이는 것은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충직한 하인들의 입말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난다.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는 그토록 미워하는 지주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시라고 말하는 발람의 표정에도 그 비릿함이 묻어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익숙해진 아쇽 부부에게는 그 비릿함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불편한 감정만으로 거대한 카스트의 수레바퀴를 걷어내기엔, 마찬가지로 그 수레바퀴 아래 있는 이들에게도 역부족이다. 가족의 굴레는 발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쇽 부부의 대처방식은 더욱 나약하다. 아쇽은 싫다고 하면서도 아버지와 형 말대로 정치권에 뇌물을 성실하게 전달한다. 핑키는 발람에게 "열쇠를 찾아 헤맸겠지만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라고 말하는데, 그야말로 미국에서 살아온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과연 발람의 닭장 문이 활짝 열려 있었을까?
영화 초입에서부터 보여주었듯 발람은 번듯한 사업가가 되었으니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긴 했다. 발람은 자신이 닭장을 탈출했다고 믿지만, 정말 그럴까?
발람이 겪은 모종의 사건들을 척척 엮어 보여주는 동안, 자연스럽게 인도 사회의 사다리가 눈앞에 드러난다.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소름마저 오소소 돋는다. 발람이 닭장이라 믿은 공간은 실은 사다리의 한 층이었다. 사람과 사람과 사람을 수직으로 겹겹이 포개어 쌓아 낸 지옥도. 사다리 위층도 여전히 사다리 위다. 여느 성공 신화와 달리, 올라간 자리 또한 지옥이라는 것. 그렇게 이 영화는 끝까지 절망에 녹슨 채로 강렬하게 문을 닫는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선이정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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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영화/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오늘은 5월 넷째 주 주말 동안의 박스오피스 분석 결과를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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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5월 넷째 주 주말 관객 수는 1,527,405을 기록하며
지난 주말(1,315,176)과 비교했을 때 0.01%가량 증가했습니다.
개봉 전인 ‘범죄도시3’가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였고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는
지난 주말 동안 약 3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선두하고 있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는 3위로 하락하였으며, 24일 개봉한 ‘인어공주’는 4위를 기록하였습니다.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는 지난 주말에 이어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현재 15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석가탄실일 연휴동안 50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으며 개봉 2주차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 자리를 지켰습니다. 국내 박스오피스 흥행뿐만 아니라 시리즈 누적 70억 달러 이상의 높은 수익을 올리며, 글로벌 박스오피스에서도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 <범죄도시 3> (new)
정식 개봉 전 흥행을 예고한 <범죄도시 3>는 주말 기준 박스 오피스 2위를 차지하였습니다.
27~29일 대규모 유료 상영을 명목으로 약 46만 명의 관객을 모았으며
개봉 전 높은 사전 예매율을 기록하며 앞으로의 흥행에 더욱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3.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는 개봉 이후 식지 않은 열기와 함께 3위를 기록하였습니다.
전 주말 대비 한 단계 내려간 순위이지만 5월 4주 차 주말 관객 수 30만 명 이상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흥행 레이스를 펼치고 있습니다.
4. <인어공주> (+)
24일 개봉한 <인어공주>는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4위를 기록했습니다.
국내 박스오피스 순위는 아쉬운 성적일수 있으나 개봉 첫 주말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였으며
26일부터 29일 메모리얼 데이까지 4일 동안 북미에서만 1175만 달러를 벌어 들였습니다.
5.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
지난 2019년 개봉한 영화 '라이온 킹'을 뛰어 넘고 애니메이션 장르 북미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5위를 차지하였으며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아기공룡둘리: 얼음별대모험 리마스터링>는 6,7위를 기록했습니다.
(2)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5월 넷째 주 북미 박스오피스는 역시 ‘The Little Mermaid’인 <인어공주>가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지난주 북미에서 개봉한 인어공주가 개봉 후 사흘간 약 9천550만 달러, 우리 돈 1,268억 원의 흥행 수입을 올렸으며 <분노의질주 10>,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가 2,3,4위를 차지했습니다.
국내 개봉 미정인 소니 픽쳐스 영화 <더 머신>은 5위를 차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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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5월 넷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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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되면 생기는 또 하나의 마음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해 이미 많은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이야기해왔다. 예를 들어, <니모를 찾아서>에서는 아버지 물고기 말린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를 누비며 아들 니모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부모로서의 사랑과 헌신을 그린다. <라이온 킹>에서는 무파사가 어린 심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심바 역시 아버지의 가르침을 통해 성장하며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배운다. 이처럼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이야기는 보편적이며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다. 그래서 어쩌면 이 주제는 새롭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드림웍스 스튜디오가 30주년 기념으로 내놓은 영화 <와일드 로봇>은 이 보편적인 이야기의 중심에 로봇을 배치해 색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로봇은 감정이 없고, 단지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향한 사랑을 느끼는 마음도, 따뜻함도, 고민도 없는 존재다. 이 로봇이 부모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감정이 생기고 변해가는 과정이 매우 따뜻하게 그려진다. 이 영화는 로봇이라는 존재를 통해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감정] 로봇 로즈의 무감정
로즈(목소리: 루피타 뇽오)는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 로봇으로, 처음 등장할 때는 감정이 전혀 없는 기계적 존재로 묘사된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로즈는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행동할 뿐,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며 동물들에게 여러 차례 도움을 주려 하지만, 동물들은 그를 경계하고 거부한다. 이 과정에서 로즈는 끊임없이 거절당하지만, 그에게서는 실망이나 슬픔 같은 감정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명령을 따라 행동할 뿐인 로즈의 모습은 기계적으로 느껴지며, 감정이 결여된 그의 행동은 차갑게 보이기도 한다.
어느 날, 로즈는 부모를 잃은 아기 새의 알을 발견하고 그것을 돌보게 된다. 하지만 그때도 로즈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단지 알을 보호하고 새끼 새를 키우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의 행동에는 사랑이나 애정 같은 인간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으며, 로즈는 자신이 왜 아기 새를 돌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입력된 지시와 학습된 내용을 바탕으로 행동할 뿐이다. 이 모습은 마치 우리가 부모가 되기 전, 아이에 대한 감정이 없는 상태와도 비슷하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이에게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는 상태에서 로즈는 그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로즈의 무감정은 영화 초반부에서 관객들에게 조금은 어색하고 낯설게 다가온다. 그는 자신이 왜 아기 새를 돌봐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기계적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이 무감정의 상태는 로즈가 점차 변해가는 과정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준다. 관객들은 무감정의 로즈가 어떻게 변해갈지, 그리고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를 지켜보게 된다.
[두 번째 감정] 아기 새 브라이트 빌의 따뜻함
아기 새 브라이트 빌(목소리: 키트 코너)은 로즈에게서 깨어난 뒤, 그를 엄마로 인식하게 된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기 새의 입장에서 로즈는 세상의 전부였고, 자연스럽게 그를 따르게 된다. 브라이트 빌은 로즈에게 끊임없이 다가가며 얼굴을 맞대고, 그의 주변을 맴돌며 애정을 표현한다. 이런 아기 새의 행동은 로즈를 당황하게 만들고, 로즈는 왜 브라이트 빌이 자신을 따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로즈에게는 애정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브라이트 빌과 로즈 사이에는 추억이 쌓이기 시작한다. 브라이트 빌은 로즈에게 의지하며 성장하고, 로즈는 그런 브라이트 빌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의 성장 과정을 함께 한다. 이 과정에서 로즈는 비로소 브라이트 빌의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에게 따라오는 존재로만 여겼던 브라이트 빌이지만, 이제는 그의 존재가 로즈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어간다. 브라이트 빌의 따뜻한 마음은 로즈를 변화시키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로즈에게 새로운 감정을 심어준다.
브라이트 빌과 로즈의 관계는 단순히 로봇과 아기 새의 관계를 넘어선다. 그들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가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서로를 통해 성장해 나간다. 브라이트 빌의 따뜻함은 로즈에게 감정을 가르쳐주고, 로즈는 그 감정을 통해 진정한 부모로서의 역할을 배우게 된다. 이는 단순히 로봇과 새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감정] 부모의 사랑
시간이 지나며 로즈는 브라이트 빌의 엄마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브라이트 빌에게 수영을 가르쳐주고, 나는 법을 알려주면서 점점 더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브라이트 빌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로즈는 조마조마한 긴장감을 느끼고, 그가 다칠까 걱정하며 지켜본다. 하지만 브라이트 빌이 스스로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로즈는 큰 감동을 받게 된다. 이 순간, 로즈는 자신이 브라이트 빌을 얼마나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깨닫는다.
영화는 로봇인 로즈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과정을 매우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로즈는 이제 단순히 입력된 명령을 따르는 기계가 아니라, 진정으로 브라이트 빌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부모가 되었다. 로봇에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하나의 시스템이 추가된 것처럼 표현하며, 그 감정이 어떻게 로즈의 행동과 사고를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로즈에게 생긴 이 새로운 감정은 기억으로 남아 지워지지 않으며, 그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결국 이 이야기는 부모의 사랑과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로즈는 로봇으로서 감정이 없는 존재였지만, 브라이트 빌을 돌보며 사랑을 배우고, 부모로서 성장하게 된다. 이는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성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모든 부모가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
<와일드 로봇>에서 로즈는 단순히 브라이트 빌을 돌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단지 프로그램된 임무로서 브라이트 빌을 돌보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로즈는 브라이트 빌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아는 존재로 변해간다. 브라이트 빌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로즈는 자신의 몸을 던져 그를 보호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그의 안전을 지킨다. 로봇으로서의 본래 목적을 넘어, 로즈는 이제 브라이트 빌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된 부모가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로즈는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자신의 신체를 소모하면서까지 브라이트 빌을 보호하려 한다. 이는 부모가 아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편안함과 안정을 포기하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시간을, 에너지를,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꿈과 욕구까지도 희생하게 된다. 로즈가 보여주는 이러한 희생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결국,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를 위해 자신의 일부를 희생할 줄 아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즈는 브라이트 빌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희생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부모로서의 역할을 완성하게 된다. 이 영화는 로즈의 희생을 통해 부모가 되면서 얻게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마음, 즉 아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줄 아는 사랑을 깊이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는 부모와 아이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깊고 특별한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영화 <와일드 로봇>은 부모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로즈는 브라이트 빌을 돌보며 다른 동물들과 함께 아이를 키워낸다. 이는 아이를 키울 때 부모뿐 아니라 주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말처럼, 이 영화에서는 숲속에 사는 모든 동물들이 브라이트 빌의 성장과 독립을 위해 힘을 모은다. 그들은 브라이트 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그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돕는다. 이러한 공동체적 지원은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며, 영화는 이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로즈의 변화 과정은 우리가 부모가 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아이를 향한 마음, 조바심, 그리고 그 모든 행동들은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처음에는 감정이 없던 로즈가 브라이트 빌과 함께하면서 점차 감정을 배우고, 사랑을 느끼게 되는 과정은 매우 감동적이며,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며,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이 영화를 꼭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크리스 샌더스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로봇과 동물이라는 이질적인 존재들 간의 관계를 매우 따뜻하게 그려냈다. 루피타 뇽오와 키트 코너, 페드로 파스칼 등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훌륭하여 캐릭터들에게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이 영화는 드림웍스 스튜디오의 30주년 기념작으로,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작품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관람하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성장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이 영화는 많은 가족들에게 추천할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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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고요를 찾는 남데브 아저씨(Namdev Bhau in Search of Silence/2018/인도, 우크라이나)
- (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
<그의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남데브 바우는 인도 남부의 허름한 서민 아파트에 산다. 식구는 남데브 부부, 장성한 딸, 그리고 그의 형 부부. 그의 형은 무엇엔가에 취해 살며 헛소리를 하고 아내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딸은 생각하는 것을 거의 모두 말로 쏟아내는 스타일. 그의 가정은 시끄럽고 산만하다.
좁아서 물건으로 가득한 아파트, 원색의 실내장식은 그가 느끼는 소음의 게이지를 높인다. 더워서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사정이니 집안이나 밖이나 소음의 차이가 별로 없다.
남데브는, 아마도 변호사로 보이는, 부유한 사내의 자가용 운전기사이다. 그의 고용주도 쉴새없이 말을 쏟아놓는 다변가.
그는 소음이 싫다. 그래서 침묵을 견지한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침묵으로 반응할 뿐.
어느날 월급을 두둑히 받은 남데브는 아내에게 봉급 전체를 넘겨주고 평소에 가고 싶어하던 티베트로 훌쩍 떠난다. 그의 목적지는 "침묵의 계곡".
그러나 그의 여정은 결코 고요하지 않다. 기차, 버스의 소음은 그렇다 하더라도 한적한 시골의 호텔에서조차 옆방의 투숙객 때문에 혼자 잠들 수 없는 형편에 놓인다.
차라리 노숙을 결심하는 남데브. 하지만 그것도 녹록하지 않다.
목적지를 향해 점점 북으로 향하다가 역시 혼자 여행 중인 열 두 살 소년 알리크를 만난다. 계속 남데브 곁을 따라붙는 소년 때문에 남데브는 골치가 아프다. 소년의 목적지는 "붉은 성"으로 "침묵의 계곡"에서 멀지 않은 곳.
알리크가 쉴새없이 조잘대며 남데브를 괴롭게 하지만 묘한 구석이 있는 알리크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마침내 다다른 "침묵의 계곡". 그곳은 이름난 관광지에 불과했다. 단체로 명소를 찾아온 학생들 때문에 남데브는 '고요'를 찾을 수 없었다. 화가 난 남데브에게 알리크는 그가 하고 있는 게임을 알려주며 "붉은 성"까지 같이 가자고 조른다. 소년은 그곳에서 부모와 만나기로 한 게임을 완수해야만 한다고 했다.
한편 TV뉴스로 우연히 알리크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남데브는 차마 어려움에 처한 어린 소년을 혼자 가게 할 수 없어 동행하기로 한다. 알리크의 비극이 너무 안쓰러워 "붉은 성"에 이른 남데브는 자기와 함께 살지 않겠느냐고 묻지만 알리크는 게임을 마쳐야 한다며 이별을 고하고 남데브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한다.
<절대 고요를 찾는 남데브 아저씨>는 인도를 배경으로 하여 우크라이나 출신 감독이 만든 영화이다. 도입부에서 주인공이 소음에 반응하는 표정 묘사는 유머러스하다. 남데브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하는 소음은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가 양미간을 찌푸리는 소음의 세계에 관객들도 같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다 보면 영화는 어느새 중반부에 이르러 있다.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인도 북부의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눈을 시원하게 한다. 인적드문 숲에서 가방을 베고 눕는 남데브가 부러워질 지경이다. 하지만 후반부에 '명예살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부터 영화는 유머와 여유에서 멀어지고 슬픈 기운에 잠긴다.
언젠가 "명예살인"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가운데 아들 알리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게임을 만들고 메뉴얼을 작성한 알리크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간에게 신분의 차이를 규정한 어리석음, 그 차이를 지속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살인. 그래서 부모 없는 인생을 살게 되고 만 어린 소년.
시끄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고요'를 찾아 떠났던 남데브는 자기 옆을 따라다니며 쉴새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알리크를 불교사원("붉은 성"은 절이었다.)에 남겨두고 오며 비로소 한없는 적막감을 느끼게 되지 않았을까.
남데르의 소원은 그의 욕망에 갇혀있을 때 이루어지지 않고 소년의 슬픔에 공감하고 마음을 내주었을 때에야 성취되었다.
"명예살인"의 부당함을 조용히 고발하는 다르 가이 감독의 속삭임에 관객은 갑자기 섬뜩한 '절대 고요'를 느끼게 된다(©2020.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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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진짜 그렇게 별로였어?
그가 돌아왔다! 최동훈 감독이 돌아왔다! 이창동 감독이 <버닝>을 내고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냈으며 홍상수 감독이 <소설가의 영화>를,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을 내고 나서야 그가 신작을 발표했다. 제목은 <외계+인>. 우리나라 충무로의 슈퍼스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무려 김태리, 류준열, 김우빈이다! 최근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호평을 받았던 두 배우와 류준열이라는 스타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감독이 최동훈인데 믿고 보는 배우 세명이 등장했다. 이거 실패할 수가 없는데?
그런데 영 시원찮다. 시사회 평부터 관객 평까지 안 좋은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이를 증명하듯 관객수도 200만 명이 안 된다. 손익분기가 700만 명인데 관객수가 200만이다. 또 다음 주에 <한산 : 용의 출현>부터 조던 필 감독의 <놉>까지 기대작이 주마다 한 번 있기 때문에 여기서 터트려야 관객을 더 모을 수 있다. 그런데 영 답답한 흥행성적은 아쉽기만 하다. 나는 이 영화가 좀 아쉽다. 근데 이 정도면 여름 한국영화 대작 상영회의 좋은 스타트를 끊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기대했던 신작이 지금 극장에 걸려있다. 1380년의 고려와 2022년의 대한민국으로 날아간다. <외계+인>이다.
두 시점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가드는 일을 하고 있다. 가드가 하는 일은 탈옥한 외계인을 잡아 포획하는 것. 고려시대의 어느 시기로 돌아간 가드. 도착하니 한 여자의 몸이 부유하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것 같은 여자. 이미 죽은 여자를 뒤로 하고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썬더가 가드를 멈춰 세운다. 아이 한 명이 저기서 울고 있다는 썬더. 아이를 해치려는 불량배들을 손쉽게 때려잡고 다시 현재로 돌아간다.
어느덧 현재. 아이는 학교에서 적응하는 게 어려워 보인다. 깔끔한 슈트를 입고 아버지처럼 교장실에 앉아있는 가드. 딸이 경찰에게 아버지를 신고했던 것 같다. 뇌를 자극해 실험 개체로 사용하고 있다는 걸 폭로한 것 같다. 황당할만한 이야기지만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다. 로봇이라 그런가? 아무렇지도 않게 썬더에게 영상 삭제를 주문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 가드에게 누군가가 말을 간다. 아마 같은 학부형인 것 같다. 누가 봐도 가드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 할 일이 또 생겼기 때문에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차를 탄다. 썬더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외계행성이 침입해 인간의 몸에 침투하려는 일을 계획하는 것 같다. 모든 인간들을 서서히 포박시켜 일을 벌이는 외계인. 그런데, 가드가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일어났다.
시점은 과거로 돌아간다. 도사 무륵은 동네 주막에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냥 조용히 도술만 부리고 사는 게 아니다. 사람들 앞에서 도술을 뽐내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는 무륵. 무륵은 현상금 사냥꾼이다. 어느 날 현상금이 꽤 달려있는 여인과 신검이라는 무기를 보게 된다. 엥? 이 정도나 해? 개똥이를 찾아가 신검에 대해 묻는 무륵. 신검은 개성에 있는 현감 도사에게 있었고 이를 찾기 위해 수도에 도착한다. 그렇게 만난 현감의 집에서 21세기의 수트를 입은 남자를 찾은 무륵. 저 놈 뭐지? 금세 남자는 현감을 살해하고 신검을 찾아 도주한다. 무륵을 어렵지 않게 제압한 현감 도사이기에 무륵 일행은 놀란다. 그렇게 신검을 찾는 모험을 떠나는 무륵. 여행을 지속하면 할수록 이상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7년 만에 돌아오다
최동훈 감독이 7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재미있는 영화 만들기로는 서러운 최동훈 감독이다. 타짜>부터 <도둑들>까지 캐릭터 설정과 서스펜스 만들기로는 둘째 가기론 서럽다. 이 감독 손 아래에서 만들어진 밈도 굉장히 많다. 오래전 밈인 ‘나 이대 나온 여자야’부터 비교적 최근 것인 ‘묻고 따블로 가!’까지 섹시한 대사 작문법이라고는 우리나라 최고다. 또 캐릭터 간 갈등 구성을 잘 만들었다. <도둑들>에서 마카오박을 중심으로 짜인 갈등이나 <도둑들>에서 나온 친일파 처단 서사는 흥미롭다. 친일파 처단 서사는 안성탕면 같은 느낌이다. 사실 너무 많이 나온 이야기다. 근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일제의 만행에 분노했던 적이 한번쯤 있기 때문에 알면서도 시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우리 기억 속에 남은 이유는 당연히 감독의 연출 능력 때문 아니겠어? 염석진 캐릭터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는 건 이 인물이 무작정 악하다는 식의 묘사가 아닌 인간적으로 나쁜 내면을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아는 맛’을 맛깔라게 살린 후반부의 ‘그리 될 줄 몰랐으니까!’와 함께 시너지를 낸다.
또 기존 배우들의 다른 면모를 뽑아내는 시각 역시 최동훈 감독의 특장점이다. 이정재 배우가 <암살>에 출연하기 전까지 그는 상한가를 제대로 치고 있었다. <관상>에서 수양대군을 맡아 악한 캐릭터도 잘 소화했고, <도둑들>에서도 뭔가 찌질해 보이는 나쁜 놈 역할을 잘 묘사했다. 근데 이 두 악역과는 살짝 결이 다른 염석진 캐릭터로 이정재 배우의 (당시까지) 최고작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앞서 쓴 바와 같이 친일파 서사는 다 아는 맛이다. 그 아는 맛이 시원하긴 한데 전형적인 느낌이 강하단 건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사람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이정재 배우에게 특별히 악한 캐릭터를 덧붙인 최동훈 감독의 개인 역량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당시 라이징 스타 바로 직전이었던 김수현 배우를 섹시하면서도 순수한 이미지를 부여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또 <전우치>에서 강동원 배우가 맡은 전우치 역도 이 배우가 아니면 소화하기 어렵다. 일단 잘생겨야 하며 액션 연기도 괜찮아야 한다는 기본 전제조건에서 벗어나 꼼꼼한 설정을 잘 소화했으니 전형성에서 벗어나 임팩트 있는 인물을 만든 건 감독의 특장점 중 하나다.
그리고 이 감독은 근본이 있다. 무슨 말이냐면.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이야기 잘 만든다. 흥행이 잘 된다? 대중적인 이야기를 잘 만든다는 말이 된다. 평균 관객 810만 명대의 수치가 증명한다. 이 이야기 만들기의 최고 강점은 <범죄의 재구성>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뭐 없는데 이야기랑 대사만으로도 빨려 든다. 아무 생각 없이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잘 만드는 최동훈 감독. 자타공인 영화 덕후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호불호가 안 갈리게 추천할 수 있는 그의 필모그래피다. 이 <외계+인>에서도 세 장점이 발휘되었다고 생각한다.
희미하게 박혀있는 인장
그의 장점을 역시 영화에서 확인할 수는 있다. 일단 캐릭터 설정이다. 조우진, 염정아, 김의성 세 배우의 열연은 대단하다. 일단 이 세 배우들은 충무로에서 입증이 된 배우들이다. 근데 뭔가 내 기억 속에 이 배우들이 전형적인 조연은 맡은 적 없던 것 같다. 그나마 <부산행>에서 본 느낌? 이 영화에서 세 배우가 맡은 캐릭터들이 어느 정도는 뻔함에도 불구하고 개성이 있고 생생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최동훈 감독이 장점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우진, 염정아 배우는 시종일관 빛난다. 뭔가 루즈한 부분 부분마다 적절하게 등장해서 분위기를 환기한다. 후술 하겠지만 뭔가 좀 달라붙지 않는 대사 톤을 이 둘의 개인기로 주파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또 김의성 배우가 맡은 역도 연기에 페널티가 있지만 이를 극복하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또 다른 역으로 소지섭 배우가 맡은 역할도 초반부가 좀 많이 어색해서 그렇지 중후반부 이야기를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되어준다. 뭔가 네 배우가 이런 역을 잘 맡았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막상 하니 너무 잘해서 오히려 그게 신선한 느낌? 조연진이 아니더라도 류준열-김태리-김우빈 배우는 개성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배우들이 얼마나 뛰어나냐! 의 차원이 아닌 캐릭터의 개성이라는 관점에서 이 세 배우는 기억에 남는다. 특히 김우빈 배우는 정말 열심히 연기했다.
그러나, 이 캐릭터 설정이라는 장점이 뒤돌아와서 단점으로 작용됐다. 바로 썬더 역이다. 극의 설정상 썬더는 목소리 더빙으로만 출연한다. 이 목소리 더빙은 차라리 없는 게 나았다. 담당 배우가 중성적인 톤이라서 넣은 것 같은데 기계와 어울리지도 않았고 연기 디렉팅도 어색했다. 이게 단순히 디렉팅의 문제로 끝나면 다행인데 이는 극에서 번갈아 제시되는 현대 서사의 응집력까지 깨버린다. 대비가 될 정도로 고려시대 서사에서 잘 된 집중을 썬더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전부 해체시킨다는 건 이 영화의 접근 장벽을 높이는 장애물이 된다. 이 단점은 유머가 재미없다는 것과 이어진다. 현대 시점의 유머는 재미까지 없고 어색한 썬더의 목소리 톤 때문에 산만하기까지 하다. 이 현대시점의 영화의 요소들끼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치명적이다. 안 그래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액션신에 불호 요소를 덧붙히기까지 하니 말이다.
또 이야기 구성 역시 잘 짰다. 이 영화의 장르는 여러 가지가 있다. 스릴러, 미스터리, sf, 다크 판타지, 스페이스 오페라, 액션, 로맨스, 드라마까지 여러 요소를 붙여놓은 것이 이 영화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알겠지만 사실 겉으로 보이기에 그렇게 보이는 거지 영화는 자체는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SF 탈을 쓴 미스터리 영화다. 부차적으로 코미디 요소가 들어가거나 로맨스 코드가 들어가긴 하지만 극을 이끄는 원동력은 미스터리다. 이 미스터리로 밀어붙이는 힘 자체는 좋은 편이다. 이 때문에 여러 단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을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은 이유가 된다. 감독의 연출력이 발휘된 셈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단점으로 발현된다. 일단 이야기에 떡밥이 너무 많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MCU 영화들도 다른 작품에 대한 떡밥이 많다. 일단 글을 쓰며 갑자기 생각나는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와 <팔콘 앤 윈터 솔저>다. 마블 코믹스 원작에 '썬더볼트'라는 조직이 있다. 어쩔 땐 빌런이 되고 히어로가 되는 조직이다. 이 팀을 조직하는 건 헬무트 제모다. 제모는 끊임없이 <썬더볼츠> 떡밥을 던졌다. 그리고 이 떡밥은 실현된다. 차후에 mcu에서 <썬더볼츠> 관련 영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mcu도 떡밥을 천천히 던진다. 앞에 쓴 <시빌 워>에서도 후반부 반전 요소도 mcu의 다른 영화들 속에서 끊임없이 제시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주인공 3인방의 서사 + 신검의 용도 + 외계인들의 목적까지 2시간에 다 때려 박았다. 이 때려 박은 떡밥들이 중후반부에서는 어느 정도 치환되긴 하지만 좀 영화가 급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이 떡밥을 전부 소화시키기 위해 극이 너무 친절하기까지 하다. '전투 승리까지 1%, 2%' 식의 대사는 거의 한 4년 만에 들은 대사 같다. 의도가 보였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2부 흑막과의 대결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장점도 분명하고 단점도 명확했던 셈이다. 물론 이런방식과 퀄리티도 최동훈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너무 조급했는지 마블이 서서히 쌓아 올린 이야기를 너무 간단하게 접근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 단점은 앞에서 쓴 '대사 톤이 따로 노는 것'과 어울려서 불호 요소를 하나 더 추가한다. 심지어 유치한 대사들이 도드라지기까지 하니 최선의 선택지에 딸려온 단점이 되는 셈이다. 분명 이야기는 재밌다. 잘 만들었다. 근데 안 좋은 것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그래서 이런 불호 요소가 모이다 보니 영화 자체가 2부를 위해 소모적으로 쓰인 느낌이다. 영화가 왜 유치하냐. 이 세계관을 확실하게 설명해야 하니까. 왜 코미디 요소를 넣었냐. 대중적인 코드를 공략해야 2부의 이야기를 소화할 수 있으니까. 떡밥 왜 많냐. 자신 있으니까. 다 이해는 된다. 그런데 이런 극의 방향성이 2부의 완결성을 위해 제시됐다는 느낌이 강하니 이런 표현방식이 과연 옳은지는 모르겠다. 영화 재밌었다. 근데 아쉬운 게 너무 많다. 돈 많이 쓴 티 난다. CG도 좋고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하나로 해소되는 쾌감도 좋다. 그런데 이게 정말 최선일까? 싶은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나의 이 영화 총평은 '재밌었다'다. 엄청 잘 만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 만든 것도 아니다. 그냥 액션/sf 영화로 보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여름 기대작 4편의 스타트를 잘 끊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게 가하는 혹평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분명히 단점이 맞다. 이 사람이 만들었다고 볼 수 없는 유치함은 크리티컬 하다. 그런 안 좋은 평에도 이 영화는 극장에서 볼 가치는 있다. 섬세하게 끝내지는 못했어도 단점들에 대한 성찰이 보이기는 하며, 감독의 장점도 발휘되는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 주 수요일(7월 27일) 개봉하는 <한산 : 용의 출현> 평가가 지금 심상치 않다. <명량>에서 제기됐던 악평을 보완한 좋은 영화가 나왔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탑건 : 메버릭>과 <헤어질 결심>의 뒷심이 무서워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흥행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이런 혹평에도 이 영화의 장점이 외면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재미있다. 기대치를 높이던 안 높이던 보기는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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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엘 하네케 - 히든
미카엘 하네케 - 히든
10년도 더 전에 이 영화를 보고 잊혀지지 않는 장면 두 개가 있었다. 그때는 감독이 누구인지 몰랐고, 다시 찾아보고 싶어도 영화제목도 몰라 찾지 못하고 있다가 엊그제 한 페친이 쓴 글을 보고 곧바로 찾아서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마카엘 하네케 감독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그의 작품은 이후에 만든 '퍼니게임'과 '아무르', '하얀리본'을 봤는데, 모든 영화가 다 관객의 마음을 몹시 불편하게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기억에 또렷이 남은 두 장면은, 영화가 시작하면 보이는 길고 고정되어 있는 카메라 응시 화면이다. 프랑스 어느 지역의 도시, 평범한 주택단지를 무심하게 비추고 있는 이 카메라는 영화가 시작하고, 타이틀이 올라가는 동안 마치 스틸 사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 사람이 지나가고, 자전거를 탄 사람, 자동차가 드물게 지나가지만, 카메라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프레임을 고정한다. 좁은 골목과 주차한 자동차, 정면으로 보이는 주택과 그 뒤의 아파트. 특별하다고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럼에도 이 고정되어 있는 장면은 왠지 기분 나쁜 느낌이다. 카메라에 보이는 대상-골목과 자동차와 정면의 주택과 아파트-을 관객인 내가 바라보고 있지만, 그 시선이 관객(나)이 아닌, 타인의 시선이라는 걸 관객(나)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관객(나)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시선을 강요당하고 있기 때문에 불쾌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화면은 곧 리와인드되면서, 관객이 보고 있는 장면이 비디오테이프로 녹화된 과거의 어느 시점에 촬영된 장면임을 알게 된다.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사람은 조르주와 안느 부부다. 자기 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촬영한 비디오테이프가 비닐봉투에 담겨 문앞에 놓여 있었고, 부부는 이상하게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도를 달리해 찍은 비슷한 비디오테이프가 계속 문앞에 놓이고, 조르주는 누군가 자신과 가족을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기억에 남는 두번째 장면은, 조르주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알게 된 어느 아파트, 가난한 사람들-주로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좁고 낡은 아파트의 주소로 찾아갔을 때, 그를 기다리던 마지드가 조르주 앞에서 칼을 꺼내 자신의 목을 긋고 죽는 장면이다. 이 장면 역시 카메라가 조금 멀리 떨어져 응시한다. 마지드는 조르주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자살하지만, 그의 죽음은 마치 등을 보이고 있는 조르주가 살해한 것처럼 보인다.
이 두 장면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까닭을 이번에 다시 영화를 보면서 알았다. 영화 제목이 '히든'이라는 건 마카엘 하네케 감독이 의외로 관객에게 친절하게 힌트를 준 것이다. 이 영화에서 '히든'은 여러 개가 존재한다.
조르주는 프랑스의 중산층으로, 텔레비전에서 문학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이다. 그의 아내 안느도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부부의 집은 중산층답게 부족한 것 없이 잘 꾸며져 있고, 특히 거실 겸 서재는 삼면이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문학, 출판과 관련한 일을 하는 부부답게 지성인이며, 책도 많이 읽고, 책장에 꽂힌 책은 장식용이 아닌, 그들의 삶을 반영하는 책들이다.
하지만, 조르주와 안느는 다른 사람을 속이는 위선자들이자,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고, 감추는 비열하고 타락한 지식인이다.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장면은 짧게 몇 번 나오지만, 그것만으로도 이 부부의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비디오테이프가 계속 문앞에 놓이고, 누군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위협을 느끼자, 조르주는 범인이 누구일까 깊이 생각하다 가능성 있는 한 명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연일 수 없는 다음 비디오테이프에서 어떤 아파트가 보이고, 조르주는 그 아파트를 찾아가 그가 생각하고 있던 인물을 만난다. 생각은 했지만, 막상 만나게 되자, 조르주는 당황한다. 그것은 벌써 40년이 넘은, 오래된 기억을, 결코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소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르주는 마지드를 40년만에 만나지만, 곧바로 마지드를 협박한다. 자기에게 비디오테이프를 보내지 말라고. 하지만 마지드는 영문을 모른다. 40년만에 찾아와서 자신을 협박하는 조르주를 보면서, 마지드는 조르주가 어릴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40년 전, 조르주와 마지드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조르주의 부모는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꽤 부유하게 살고 있었다. 그때 조르주의 집에서 집안 일을 도와주며 함께 살던 사람이 마지드와 그의 부모였다. 마지드 가족은 알제리 사람으로, 알제리에서 프랑스로 이주했다. 조르주가 6살 때, 마지드가 닭을 잡는 장면을 기억하는데, 마지드는 작은 도끼로 닭의 목을 쳤고, 닭피가 튀어 마지드의 얼굴에 묻었다. 닭은 대가리가 잘렸어도 푸드덕거리며 뛰어다녔고, 마지드는 얼굴에 피를 묻힌 채,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조르주를 바라보고 있다.
그 사건 직전 또는 직후에 마지드의 부모는 사망한다. 영화에서는 아주 짧게, 조르주의 입에서 대충 얼버무리듯 나온 사건이 있었다. 조르주의 어머니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은 프랑스 파리 한복판, 생 미셀 다리에서 수백 명의 알제리인이 프랑스 경찰에 맞아죽고, 수십 명이 다리 아래로 뛰어내려 익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1961년, 10월 17일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 영화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바로 이 사건을 말하기 위해 만들었다. 아주 짧게 언급하지만, 주인공의 운명을 모두 바꾸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1961년 10월 17일, 알제리인 약 3만 명이 세느 강이 흐르는 생 미셀 다리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이곳에 모이기 전에 발생한 사건들은 당연히 알제리 식민지 해방투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제국주의 프랑스가 식민지로 만든 알제리의 해방투쟁과 직접 관련이 있고, 프랑스의 국가범죄를 고발하는 영화인 것이다.
1961년 8월부터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은 프랑스 경찰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그해 10월까지 프랑스 경찰 11명이 FLN의 폭탄 공격으로 사망했다. 그러자 파리 경찰국장 모리스 파퐁은 10월 5일 파리 전역에 걸쳐 야간통행 금지령을 발표한다. 저녁8시 30분부터 다음날 새벽 5시 30분까지. 단, 프랑스인은 예외였고, 오직 알제리 무슬림 노동자, 프랑스 무슬림, 알제리의 프랑스 무슬림만 해당하는 통행금지였다. 이 시기에 파리와 그 근교에 살고 있던 알제리 사람은 약 15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차별하는 프랑스 경찰의 통행금지 발표에 항의하기 위해 시위를 조직한 것이다. 그리고 10월 17일, 알제리인들이 생 미셀 다리를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프랑스 경찰과 공화국 보안기동대, 국가헌병대 등 국가폭력기관이 총동원되어 시위에 참여하는 알제리인, 모로코인, 튀니지인들을 체포했다. 그럼에도 이들 시위대가 끊임없이 몰려들자 마침내 발포를 시작하고, 총에 맞아 죽은 사람, 다리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 등 무려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프랑스의 공식 입장은 1998년에 사망자 32명, 1999년 프랑스 총리실에서 센강에 버려진 시체 48명, 1961년 알제리 독립운동과 관련해 사망한 사람 246명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FLN의 발표는 1961년 한해 프랑스에서 죽은 알제리인은 사망 200명, 실종 400명, 부상 2300명으로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처벌받은 프랑스 경찰은 한 명도 없었고, 프랑스는 이 사건 자체를 철저하게 은폐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프랑스 경찰국장인 모리스 파퐁이 나치 부역자였다는 것이다. 파퐁은 게슈타포와 협력해 유대인 1600명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공을 세웠다. 이 사실은 1997년이 되어서야 밝혀졌고, 모리스 파퐁은 1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마지드의 부모가 생 미셀 다리에서 뛰어내려-경찰에 의해 떠밀려 떨어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고, 마지드가 고아가 되자, 조르주의 부모는 마지드를 입양할 생각을 했다. 마지드를 입양했다면 이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르주의 부모가 마지드를 고아원으로 보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조르주의 거짓말이었다. 조르주는 마지드를 형이라고 부르며 따랐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지드의 입양을 반대했다. 그는 불과 6살 어린이였음에도, 마지드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거짓말을 부모에게 한 것이다.
조르주는 마지드를 만나고도 전화로는 아내 안느에게 아파트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거짓말 한다. 하지만 조르주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조르주와 마지드가 만나 이야기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안느가 보고 있었고, 그것을 본 조르주는 마지 못해 사실을 털어놓는다. 조르주의 변명은, 안느가 걱정할까봐, 라는 것이지만, 그가 이미 여러번 아내에게 거짓말하는 걸 본 관객은 조르주를 믿지 않는다. 그는 비열한 인간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 아들 피에로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조르주와 안느는 아들이 누군가에게 납치당한 것이라 생각하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마지드의 집을 찾아간다. 그곳에 아들은 없었고, 마지드와 그의 아들만 있었지만, 경찰은 두 사람을 체포한다. 다음 날, 아들 친구의 엄마가 집으로 데려다주면서 이 사건은 헤프닝으로 끝나고, 마지드와 그의 아들도 경찰에서 풀려나지만, 마지드는 조르주를 집으로 불러, 그가 보는 앞에서 칼로 목을 그어 자살한다.
아들이 왜 가출했는지 이유를 묻는 안느에게 피에로는 엄마 안느의 불륜을 의심한다. 안느는 직장 동료이자 가까운 친구인 피에르(이들 피에로와 이름이 비슷하다)와 친한 사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단지 가까운 동료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영화에서 안느와 피에르가 불륜 관계라고 단정할 만한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안느의 태도에서 피에르에게 감정적, 정서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피에로는 그걸 눈치 채지만, 안느의 남편 조르주는 눈치 채지 못한다. 그리고 안느는 아들에게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아들 피에로나 관객은 안느를 의심한다.
마지드의 자살로 조르주는 경찰의 조사를 받고, 결백하다는 인정을 받고 사건은 끝난다. 하지만 마지드의 아들은 조르주를 찾아와 할 말이 있다고 한다. 조르주는 마지드의 자살이 자기 때문이 아니라고, 그건 마지드 본인의 문제라고 강변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처럼, 카메라가 피에로의 학교 입구를 고정해서 바라보고 있다. 학생들이 몰려나오고, 서로 웃고 떠들고,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장면들이 보인다. 그리고 피에로가 학교에서 나와 계단에 서 있을 때, 마지드의 아들이 다가와 인사하고, 두 사람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는 끝나지만, 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비디오테이프를 누가 촬영했고, 누가 보냈는가다. 감독이 아무런 단서를 보여주지 않고, 범인이 누구인가도 밝히지 않는다. 비디오테이프를 보낸 건 감독 자신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극(영화)에 개입해 극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외부의 의도적 관계-또는 권력-로 보여주는 방식인데, 이때 '외부'는 진실을 드러내려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닉슨이 민주당 선거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도청한 사건을 두고 FBI의 수사를 방해한 것으로 드러나 사임하게 되는데, 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을 신문기자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 사람이 언론사의 입장에서는 '진실을 드러내려는 의지'였던 것이다.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는 사건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자신이 직접 개입해 극의 인물에게 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즉, 비디오테이프의 존재가 없다면, 이 영화는 설립할 수 없게 되고, 진실은 드러나지 않게 된다.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기억을 은폐하고,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기억을 왜곡, 조작해 합리화하려는 가해자에게 진실을 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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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도 바깥으로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내가 인도에 살던 시절, 이웃에는 남루한 단칸방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저래 봬도 브라만 출신이라고 수군거렸다.
카스트에 대해 입밖에 낸 말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누가 실은 브라만이래,라고 웅성거릴 때가 아니면 들을 일이 없었다는 소리다.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4계급이라고 학교 다닐 때 배웠지만... 그 얘기를 꺼내면 인도 사람들은 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제로는 수천 개의 계급이, 실은 직업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나중에 들었다.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인도 사람들끼리는 이름만 들으면 대충 알아본다는 얘기도.
돈이 또 하나의 카스트라는 씁쓸한 말도 그즈음 들었던 것 같다. 이건 듣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단출한 생활을 하는 이웃집 할머니더러 '저래 봬도 브라만 출신'이라고 하는 것만 봐도, 돈과 명예를 가진 이들의 성공 신화에서는 낮은 카스트도 좋은 소재거리가 되어 있다는 것만 봐도.
카스트는 법적으로 폐지되었지만, 각양각색의 차별은 더욱 은밀하고 촘촘하게 자라났다. 게다가 카스트 자체도 현실에서 폐지되지 않았다. 일상의 차별은 물론이고 공적 문서로 카스트 증명서 발급이 가능하니, 카스트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인도에서는 안 되는 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다"는, 또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넷플릭스 영화 <화이트 타이거>를 보면서 떠오른 상념들이다. <화이트 타이거>의 길잡이가 되어줄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화이트 타이거>를 재질에 비유하자면 녹이 슬고 거친 양철 판 같다. 금방이라도 나를 쓱 베고는 파상풍을 안겨줄 것 같은 영화. 동시에 살짝만 손 대도 묻어나는 녹 가루처럼, 순식간에 확실한 흔적을 남기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발람이라는 인물과 함께, 가장 흡입력 있는 1인칭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발람은 인도에서는 신에게 찬양을 드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발리우드 영화들 초반에 '하레 크리슈나'처럼 힌두교 크리슈나 신을 찬양하는 노래가 나오거나 향을 피우는 장면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가 보다. 그러나 정작 발람의 청자는 인도에 방문하는 중국 총리 원자바오다. 매끈한 사업가의 외양을 하고 총리에게 메일을 쓰는 발람. 발람의 신은 돈과 권력일까.
발람의 회고를 따라간다. 그의 어린 시절에는 돈과 권력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는다. 이따금씩 지주가 수금하러 오는 작은 시골 마을, 대가족의 둘째 아들로 자랐다. 발람은 학교에서 영어를 줄줄 읽고 "한 세대에 한 마리만 나오는 백호가 너다"라는 칭찬을 받을 만큼 똑똑하지만, 백호로 자랄 기회는 없다. 마을 찻집에서 석탄 깨는 일, 그것이 발람의 카스트이자 주어진 자리였다.
수금하러 오는 지주를 '황새'로, 그 큰아들을 '몽구스'라고 부르며 속으로 싫어한다. 그래도 앞에선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출세 기회도 없지만 그나마 있다면 지주들을 통해서 올 수밖에 없으니까. 구세대의 산물인 황새, 전형적인 깡패 느낌의 몽구스와 달리 미국 유학파인 둘째 아들 아쇽이 나타났을 때 발람은 기회를 찾았다고 느꼈다. 아쇽은 오랜 외국 생활로 아버지나 형에 비해 비교적 "하인"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운전면허를 따서 지주의 운전기사가 되겠다는 손주를 할머니는 고깝게 본다. 집안의 모든 수입을 틀어쥐고 대가족을 관리하는 할머니에게는 아들도 손주도 대가족의 부품이다. 부품이란 기능에 맞게 기량을 발휘해야지, 무한한 꿈을 꾸거나 자리 바깥으로 나가선 안 되는 것이다. 할머니만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오래전부터 굴러온 시스템이 그렇다.
하지만 발람은 최선을 다해 그 자리를 따낸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 마침내 아쇽과 함께 델리로 가는 길에 기사로 동행하게 된다. 아쇽이 미국에서 만난 아내 핑키까지 모시게 되어, 충직한 하인의 자리에 걸맞게 행동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속으로는 아쇽을 어린양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이내 그가 어린양이 되기도 한다. 풀숲에 숨어 고개를 떨구는 초식동물.
델리에서 어떤 사건들을 보고 듣고 겪었기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그가 영화 초입에 보여주었던 단정한 사업가의 얼굴을 이뤄낸 것일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0에 가까운 전환이기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 자꾸 그의 이야기를 뒤따라가게 된다. 중간쯤 발람이 "앞으로 자기 이야기가 더욱 어두워질 것"이라 경고해도 멈출 수 없다.
발람은 인도가 "빛의 인도"와 "어둠의 인도"로 나뉘어 있다고 말한다. 그 어둠의 인도 한가운데, 인도의 가장 찬란한 발명품인 "닭장"이 있다고. 눈앞에서 도살되는 다른 닭을 보면서도 닭장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 "하인" 계급 카스트의 하층민들을 일컫는 것이다. 발람의 표현대로라면 배부른 자와 굶주려 허리를 움켜쥔 자 중 후자. 이들은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저 더 잘 기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개인의 일탈이 가족 몰살로 이어질 수도 있어 조심스러운 것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대대로 굴러내려 오며 눈덩이처럼 커져버린 업(業)의 수레바퀴가 이들을 짓누르고 있다. 카스트에 충직하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내 역할을 어떻게든 다해야 한다. 반대로 내 역할만 다한다면 그밖에 자잘한 잘못이 있어도 죄과가 아니다. 만약 장사꾼의 업이 이득을 보는 것이라면, 그 과정에서 저울을 속이는 것은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충직한 하인들의 입말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난다.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는 그토록 미워하는 지주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시라고 말하는 발람의 표정에도 그 비릿함이 묻어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익숙해진 아쇽 부부에게는 그 비릿함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불편한 감정만으로 거대한 카스트의 수레바퀴를 걷어내기엔, 마찬가지로 그 수레바퀴 아래 있는 이들에게도 역부족이다. 가족의 굴레는 발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쇽 부부의 대처방식은 더욱 나약하다. 아쇽은 싫다고 하면서도 아버지와 형 말대로 정치권에 뇌물을 성실하게 전달한다. 핑키는 발람에게 "열쇠를 찾아 헤맸겠지만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라고 말하는데, 그야말로 미국에서 살아온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과연 발람의 닭장 문이 활짝 열려 있었을까?
영화 초입에서부터 보여주었듯 발람은 번듯한 사업가가 되었으니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긴 했다. 발람은 자신이 닭장을 탈출했다고 믿지만, 정말 그럴까?
발람이 겪은 모종의 사건들을 척척 엮어 보여주는 동안, 자연스럽게 인도 사회의 사다리가 눈앞에 드러난다.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소름마저 오소소 돋는다. 발람이 닭장이라 믿은 공간은 실은 사다리의 한 층이었다. 사람과 사람과 사람을 수직으로 겹겹이 포개어 쌓아 낸 지옥도. 사다리 위층도 여전히 사다리 위다. 여느 성공 신화와 달리, 올라간 자리 또한 지옥이라는 것. 그렇게 이 영화는 끝까지 절망에 녹슨 채로 강렬하게 문을 닫는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선이정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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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영화/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오늘은 5월 넷째 주 주말 동안의 박스오피스 분석 결과를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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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5월 넷째 주 주말 관객 수는 1,527,405을 기록하며
지난 주말(1,315,176)과 비교했을 때 0.01%가량 증가했습니다.
개봉 전인 ‘범죄도시3’가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였고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는
지난 주말 동안 약 3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선두하고 있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는 3위로 하락하였으며, 24일 개봉한 ‘인어공주’는 4위를 기록하였습니다.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는 지난 주말에 이어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현재 15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석가탄실일 연휴동안 50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으며 개봉 2주차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 자리를 지켰습니다. 국내 박스오피스 흥행뿐만 아니라 시리즈 누적 70억 달러 이상의 높은 수익을 올리며, 글로벌 박스오피스에서도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 <범죄도시 3> (new)
정식 개봉 전 흥행을 예고한 <범죄도시 3>는 주말 기준 박스 오피스 2위를 차지하였습니다.
27~29일 대규모 유료 상영을 명목으로 약 46만 명의 관객을 모았으며
개봉 전 높은 사전 예매율을 기록하며 앞으로의 흥행에 더욱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3.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는 개봉 이후 식지 않은 열기와 함께 3위를 기록하였습니다.
전 주말 대비 한 단계 내려간 순위이지만 5월 4주 차 주말 관객 수 30만 명 이상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흥행 레이스를 펼치고 있습니다.
4. <인어공주> (+)
24일 개봉한 <인어공주>는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4위를 기록했습니다.
국내 박스오피스 순위는 아쉬운 성적일수 있으나 개봉 첫 주말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였으며
26일부터 29일 메모리얼 데이까지 4일 동안 북미에서만 1175만 달러를 벌어 들였습니다.
5.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
지난 2019년 개봉한 영화 '라이온 킹'을 뛰어 넘고 애니메이션 장르 북미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5위를 차지하였으며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아기공룡둘리: 얼음별대모험 리마스터링>는 6,7위를 기록했습니다.
(2)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5월 넷째 주 북미 박스오피스는 역시 ‘The Little Mermaid’인 <인어공주>가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지난주 북미에서 개봉한 인어공주가 개봉 후 사흘간 약 9천550만 달러, 우리 돈 1,268억 원의 흥행 수입을 올렸으며 <분노의질주 10>,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가 2,3,4위를 차지했습니다.
국내 개봉 미정인 소니 픽쳐스 영화 <더 머신>은 5위를 차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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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5월 넷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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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되면 생기는 또 하나의 마음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해 이미 많은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이야기해왔다. 예를 들어, <니모를 찾아서>에서는 아버지 물고기 말린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를 누비며 아들 니모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부모로서의 사랑과 헌신을 그린다. <라이온 킹>에서는 무파사가 어린 심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심바 역시 아버지의 가르침을 통해 성장하며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배운다. 이처럼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이야기는 보편적이며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다. 그래서 어쩌면 이 주제는 새롭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드림웍스 스튜디오가 30주년 기념으로 내놓은 영화 <와일드 로봇>은 이 보편적인 이야기의 중심에 로봇을 배치해 색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로봇은 감정이 없고, 단지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향한 사랑을 느끼는 마음도, 따뜻함도, 고민도 없는 존재다. 이 로봇이 부모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감정이 생기고 변해가는 과정이 매우 따뜻하게 그려진다. 이 영화는 로봇이라는 존재를 통해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감정] 로봇 로즈의 무감정
로즈(목소리: 루피타 뇽오)는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 로봇으로, 처음 등장할 때는 감정이 전혀 없는 기계적 존재로 묘사된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로즈는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행동할 뿐,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며 동물들에게 여러 차례 도움을 주려 하지만, 동물들은 그를 경계하고 거부한다. 이 과정에서 로즈는 끊임없이 거절당하지만, 그에게서는 실망이나 슬픔 같은 감정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명령을 따라 행동할 뿐인 로즈의 모습은 기계적으로 느껴지며, 감정이 결여된 그의 행동은 차갑게 보이기도 한다.
어느 날, 로즈는 부모를 잃은 아기 새의 알을 발견하고 그것을 돌보게 된다. 하지만 그때도 로즈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단지 알을 보호하고 새끼 새를 키우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의 행동에는 사랑이나 애정 같은 인간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으며, 로즈는 자신이 왜 아기 새를 돌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입력된 지시와 학습된 내용을 바탕으로 행동할 뿐이다. 이 모습은 마치 우리가 부모가 되기 전, 아이에 대한 감정이 없는 상태와도 비슷하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이에게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는 상태에서 로즈는 그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로즈의 무감정은 영화 초반부에서 관객들에게 조금은 어색하고 낯설게 다가온다. 그는 자신이 왜 아기 새를 돌봐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기계적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이 무감정의 상태는 로즈가 점차 변해가는 과정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준다. 관객들은 무감정의 로즈가 어떻게 변해갈지, 그리고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를 지켜보게 된다.
[두 번째 감정] 아기 새 브라이트 빌의 따뜻함
아기 새 브라이트 빌(목소리: 키트 코너)은 로즈에게서 깨어난 뒤, 그를 엄마로 인식하게 된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기 새의 입장에서 로즈는 세상의 전부였고, 자연스럽게 그를 따르게 된다. 브라이트 빌은 로즈에게 끊임없이 다가가며 얼굴을 맞대고, 그의 주변을 맴돌며 애정을 표현한다. 이런 아기 새의 행동은 로즈를 당황하게 만들고, 로즈는 왜 브라이트 빌이 자신을 따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로즈에게는 애정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브라이트 빌과 로즈 사이에는 추억이 쌓이기 시작한다. 브라이트 빌은 로즈에게 의지하며 성장하고, 로즈는 그런 브라이트 빌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의 성장 과정을 함께 한다. 이 과정에서 로즈는 비로소 브라이트 빌의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에게 따라오는 존재로만 여겼던 브라이트 빌이지만, 이제는 그의 존재가 로즈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어간다. 브라이트 빌의 따뜻한 마음은 로즈를 변화시키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로즈에게 새로운 감정을 심어준다.
브라이트 빌과 로즈의 관계는 단순히 로봇과 아기 새의 관계를 넘어선다. 그들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가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서로를 통해 성장해 나간다. 브라이트 빌의 따뜻함은 로즈에게 감정을 가르쳐주고, 로즈는 그 감정을 통해 진정한 부모로서의 역할을 배우게 된다. 이는 단순히 로봇과 새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감정] 부모의 사랑
시간이 지나며 로즈는 브라이트 빌의 엄마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브라이트 빌에게 수영을 가르쳐주고, 나는 법을 알려주면서 점점 더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브라이트 빌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로즈는 조마조마한 긴장감을 느끼고, 그가 다칠까 걱정하며 지켜본다. 하지만 브라이트 빌이 스스로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로즈는 큰 감동을 받게 된다. 이 순간, 로즈는 자신이 브라이트 빌을 얼마나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깨닫는다.
영화는 로봇인 로즈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과정을 매우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로즈는 이제 단순히 입력된 명령을 따르는 기계가 아니라, 진정으로 브라이트 빌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부모가 되었다. 로봇에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하나의 시스템이 추가된 것처럼 표현하며, 그 감정이 어떻게 로즈의 행동과 사고를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로즈에게 생긴 이 새로운 감정은 기억으로 남아 지워지지 않으며, 그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결국 이 이야기는 부모의 사랑과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로즈는 로봇으로서 감정이 없는 존재였지만, 브라이트 빌을 돌보며 사랑을 배우고, 부모로서 성장하게 된다. 이는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성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모든 부모가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
<와일드 로봇>에서 로즈는 단순히 브라이트 빌을 돌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단지 프로그램된 임무로서 브라이트 빌을 돌보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로즈는 브라이트 빌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아는 존재로 변해간다. 브라이트 빌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로즈는 자신의 몸을 던져 그를 보호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그의 안전을 지킨다. 로봇으로서의 본래 목적을 넘어, 로즈는 이제 브라이트 빌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된 부모가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로즈는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자신의 신체를 소모하면서까지 브라이트 빌을 보호하려 한다. 이는 부모가 아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편안함과 안정을 포기하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시간을, 에너지를,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꿈과 욕구까지도 희생하게 된다. 로즈가 보여주는 이러한 희생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결국,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를 위해 자신의 일부를 희생할 줄 아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즈는 브라이트 빌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희생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부모로서의 역할을 완성하게 된다. 이 영화는 로즈의 희생을 통해 부모가 되면서 얻게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마음, 즉 아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줄 아는 사랑을 깊이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는 부모와 아이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깊고 특별한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영화 <와일드 로봇>은 부모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로즈는 브라이트 빌을 돌보며 다른 동물들과 함께 아이를 키워낸다. 이는 아이를 키울 때 부모뿐 아니라 주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말처럼, 이 영화에서는 숲속에 사는 모든 동물들이 브라이트 빌의 성장과 독립을 위해 힘을 모은다. 그들은 브라이트 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그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돕는다. 이러한 공동체적 지원은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며, 영화는 이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로즈의 변화 과정은 우리가 부모가 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아이를 향한 마음, 조바심, 그리고 그 모든 행동들은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처음에는 감정이 없던 로즈가 브라이트 빌과 함께하면서 점차 감정을 배우고, 사랑을 느끼게 되는 과정은 매우 감동적이며,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며,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이 영화를 꼭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크리스 샌더스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로봇과 동물이라는 이질적인 존재들 간의 관계를 매우 따뜻하게 그려냈다. 루피타 뇽오와 키트 코너, 페드로 파스칼 등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훌륭하여 캐릭터들에게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이 영화는 드림웍스 스튜디오의 30주년 기념작으로,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작품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관람하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성장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이 영화는 많은 가족들에게 추천할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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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고요를 찾는 남데브 아저씨(Namdev Bhau in Search of Silence/2018/인도,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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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남데브 바우는 인도 남부의 허름한 서민 아파트에 산다. 식구는 남데브 부부, 장성한 딸, 그리고 그의 형 부부. 그의 형은 무엇엔가에 취해 살며 헛소리를 하고 아내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딸은 생각하는 것을 거의 모두 말로 쏟아내는 스타일. 그의 가정은 시끄럽고 산만하다.
좁아서 물건으로 가득한 아파트, 원색의 실내장식은 그가 느끼는 소음의 게이지를 높인다. 더워서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사정이니 집안이나 밖이나 소음의 차이가 별로 없다.
남데브는, 아마도 변호사로 보이는, 부유한 사내의 자가용 운전기사이다. 그의 고용주도 쉴새없이 말을 쏟아놓는 다변가.
그는 소음이 싫다. 그래서 침묵을 견지한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침묵으로 반응할 뿐.
어느날 월급을 두둑히 받은 남데브는 아내에게 봉급 전체를 넘겨주고 평소에 가고 싶어하던 티베트로 훌쩍 떠난다. 그의 목적지는 "침묵의 계곡".
그러나 그의 여정은 결코 고요하지 않다. 기차, 버스의 소음은 그렇다 하더라도 한적한 시골의 호텔에서조차 옆방의 투숙객 때문에 혼자 잠들 수 없는 형편에 놓인다.
차라리 노숙을 결심하는 남데브. 하지만 그것도 녹록하지 않다.
목적지를 향해 점점 북으로 향하다가 역시 혼자 여행 중인 열 두 살 소년 알리크를 만난다. 계속 남데브 곁을 따라붙는 소년 때문에 남데브는 골치가 아프다. 소년의 목적지는 "붉은 성"으로 "침묵의 계곡"에서 멀지 않은 곳.
알리크가 쉴새없이 조잘대며 남데브를 괴롭게 하지만 묘한 구석이 있는 알리크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마침내 다다른 "침묵의 계곡". 그곳은 이름난 관광지에 불과했다. 단체로 명소를 찾아온 학생들 때문에 남데브는 '고요'를 찾을 수 없었다. 화가 난 남데브에게 알리크는 그가 하고 있는 게임을 알려주며 "붉은 성"까지 같이 가자고 조른다. 소년은 그곳에서 부모와 만나기로 한 게임을 완수해야만 한다고 했다.
한편 TV뉴스로 우연히 알리크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남데브는 차마 어려움에 처한 어린 소년을 혼자 가게 할 수 없어 동행하기로 한다. 알리크의 비극이 너무 안쓰러워 "붉은 성"에 이른 남데브는 자기와 함께 살지 않겠느냐고 묻지만 알리크는 게임을 마쳐야 한다며 이별을 고하고 남데브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한다.
<절대 고요를 찾는 남데브 아저씨>는 인도를 배경으로 하여 우크라이나 출신 감독이 만든 영화이다. 도입부에서 주인공이 소음에 반응하는 표정 묘사는 유머러스하다. 남데브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하는 소음은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가 양미간을 찌푸리는 소음의 세계에 관객들도 같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다 보면 영화는 어느새 중반부에 이르러 있다.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인도 북부의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눈을 시원하게 한다. 인적드문 숲에서 가방을 베고 눕는 남데브가 부러워질 지경이다. 하지만 후반부에 '명예살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부터 영화는 유머와 여유에서 멀어지고 슬픈 기운에 잠긴다.
언젠가 "명예살인"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가운데 아들 알리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게임을 만들고 메뉴얼을 작성한 알리크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간에게 신분의 차이를 규정한 어리석음, 그 차이를 지속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살인. 그래서 부모 없는 인생을 살게 되고 만 어린 소년.
시끄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고요'를 찾아 떠났던 남데브는 자기 옆을 따라다니며 쉴새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알리크를 불교사원("붉은 성"은 절이었다.)에 남겨두고 오며 비로소 한없는 적막감을 느끼게 되지 않았을까.
남데르의 소원은 그의 욕망에 갇혀있을 때 이루어지지 않고 소년의 슬픔에 공감하고 마음을 내주었을 때에야 성취되었다.
"명예살인"의 부당함을 조용히 고발하는 다르 가이 감독의 속삭임에 관객은 갑자기 섬뜩한 '절대 고요'를 느끼게 된다(©2020.최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