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2-02 16:02:19
영화를 더 가까이, [CLOSER TO CAROL] 텀블벅 오픈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여러분, '겨울'하면 혹시 떠오르는 영화가 있으신가요?
저희는 추운 계절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영화 <캐롤>을 떠올리곤 한답니다.
오늘은 이런 <캐롤>을 테마로 기획된 프로젝트를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바로바로... 이름부터 설레이는
[ CLOSER TO CAROL ]
이라는 프로젝트인데요~ 지금부터 클로저 투 캐롤에 대해 씨네랩이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취향 커머스 플랫폼 [클로저]
<클로저 투 캐롤>은 영화 취향 커머스 플랫폼 [클로저]의 첫번째 프로젝트입니다.
먼저 [클로저]를 소개해 드릴게요.
"Hello, stranger?"
영화 <클로저>(2004)의 첫 대사였던 '나탈리 포트만'의 대사를 기억하시나요?
정적인 영화였던 만큼 '데미언 라이스'의 ost "The Blower's Daughter"가
더 기억에 남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I can’t take my eyes off you”
영화를 볼 때만큼은 철저히 관객의 입장에서,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봄에도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을 끌어당기고, 우리는 속절없이 관계의 틈으로 빠져듭니다. 이것이 영화의 매력이고, 저희가 영화를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클로저 프로젝트는 영화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를 만지고, 향을 맡고, 맛을 보기도 하며,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나누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영화를 더 가까이 더 오랫동안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어요.
영화 <캐롤>

줄거리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루니 마라)와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을 느낀다. 하나뿐인 딸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인 캐롤과 헌신적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확신이 없던 테레즈, 각자의 상황을 잊을 만큼 통제할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감정의 혼란 속에서 둘은 확신하게 된다. 인생의 마지막에, 그리고 처음으로 찾아온 진짜 사랑임을…
CINE PICK!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되었고, 호주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노미네이션되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습니다. 타임즈 선정 20세기 100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캐롤>은겨울만 되면 국내에서 재상영을 할 정도로 팬층이 두터운 작품이기도 해요.
<클로저 투 캐롤>
클로저 팀에게 <캐롤>은 선물 같은 작품이라고 해요.
좋아하는 영화 속 장면들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서 갖고 싶은 물건들을 만들고 싶었으니까요.
<클로저 투 캐롤>은 클로저 팀의 이러한 마음을 듬뿍 담아서 구성품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특별해요.
영화 <캐롤>의 팬이라면 누구나 소장하고 싶을 상품들을 지금부터 자세히 보여드릴게요 :)
시그니처 박스
테레즈가 일하던 장난감 코너 한 켠에 놓여 있던 박스를 기억하시나요?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50년대에 판매된 "Carol・Sue"라는 인형 박스인데요, 소품의 디테일까지 살아 있는 이 작품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클로저의 무드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광택이 없는 고급 재질을 통해 빈티지 무드를 살린 박스는 "캐롤"의 시그니처 컬러이자 원 박스의 색감을 최대한 살려 디자인 하였습니다. 박스 상단에는 CLOSER TO CAROL 금박 로고가 박혀 있으며, 패키지 옆면에는 <캐롤>을 드러내는 아이콘이 담겨 있습니다.
흑백 일회용 카메라
<캐롤>에서 카메라는 매우 중요한 소품입니다. 사람을 찍는 것이 어쩐지 프라이버시 침해 같다고 말하던 '테레즈'가 '캐롤'이라는 인물을 찍기까지. 그 심정의 변화가 고스란히 느껴지니까요.
Some people change your life forever.
영화 포스터에 쓰인 글귀처럼 테레즈의 인생이 바뀌게 된 그 순간을, 우리 인생의 찰나를 간직할 수 있도록. '테레즈'의 카메라 Argus C3를 그대로 담아낸 흑백 일회용 카메라입니다.
디셈버 노트
한 글자씩 소중히 담아낸 '캐롤'과 '테레즈'의 약속처럼, 모두의 일상에 설레는 계획과 약속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테레즈와 캐롤의 첫 약속이 적힌 1952년 12월 21일 페이지가 내지로 담긴 노트입니다.
명대사 각인 연필
캐롤과의 약속을 써내려가던 장면, 테레즈에게 보낼 편지를 써내려갔을 마음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추억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연필의 가치를 재해석하는 '작은연필가게 흑심'과의 협업을 통해 '캐롤' 시그니처 컬러 Cherry Red 색상으로 제작된 연필이에요.
두 사람의 사랑이 돌고 돌아 모두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에서 '캐롤'과 '테레즈'의 약속의 날 "DEC 21, 1952"와 클로저 투 캐롤 프로젝트가 기획된 날 "CLOSER TO CAROL, 2022"를 각각 연필에 새겼답니다.
패턴 편지지 세트
Red & Green 은 크리스마스 대표 컬러인 만큼 겨울에 특히 자주 사용되는 색상입니다. 2016년 이후, '겨울' 하면 떠오르는 대표 작품이 된 <캐롤>에서도 '캐롤'과 '테레즈'의 첫 만남 장면을 비롯하여 의상, 소품 등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이 색감을 느낄 수 있죠.
팀 클로저가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6가지 패턴은 <캐롤>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영화 속 장면과 분위기를 가득 담아 제작되었습니다.
이외에도 패턴 마스킹 테이프, 떡메모지, 판 스티커, B&W 스티커팩, 파자마 세트 등 다양한 구성품이 준비되어 있으니 평소 <캐롤>을 좋아해 주셨던 분들이라면 꼭 한번 둘러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아래 사이트에 접속하시면 더 많은 상품사진과 구성품을 확인하실 수 있답니다 :)
https://tumblbug.com/closertocarol
생각을 얼릴 만큼 찬 공기와 성냥 냄새, 날리는 눈을 맞으며 빨갛게 언 손으로 필름카메라를 감는 장면 등 "겨울"과 매우 맞닿아 있는 영화 <캐롤>.
좋아하는 영화를 물건으로 소장하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일 게 분명해요.
이번 겨울 나에게, 또는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해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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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광 감독님이 너무 크게 상처받지 않으셨으면
웅남이 탄생
빠라바라빰~ 안녕하세요! 말봉 티비입니다! 유튜버 말봉.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초 하이텐션으로 방송을 이끄는 말봉. 구독자는 열 명 밖에 없다. 그래도 돈 벌어야지. 방송 진행을 멈추지 않는다. 짜자잔-! 이번 게스트는 나 웅 남! 이 말을 하자마자 어류를 입에 물고 웅남이가 튀어나왔다. 웅남이에게 멘트를 거는 말봉. 웅남이가 지 맘대로 대답하는 탓에 방송을 갑자기 마무리했다.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 얼핏 보면 무슨 주종관계 같은 느낌이지만 둘은 아무래도 친구다.
웅남이는 좀 특별한 존재다. 웅남이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느 동굴에 있었는데, 곰 사이에 껴있는 아이를 가지고 왔다. 그래서 이름을 웅남이라고 정했다. 곰이 사람이 된 걸 아는 웅남이의 부모님. 곰이 사람이 됐기 때문에 갖는 특성이 몇 개 있다. 밥을 엄청나게 먹어야 한다. 그것만 있나? 겨울잠도 자야 한다. 근력을 비롯한 운동능력도 뛰어나다. 이런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경찰 일도 했던 웅남이. 곰이 사람이 됐기 때문에 경찰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별안간 사람 같지 않은 웅남이. 이 나웅남에게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새로운 임무가 주어진다. 과연 웅남이는 흑막의 목표를 제지하고 임무를 달성할 수 있을까?
가장 어려운 시놉시스
영화는 기본적으로 시놉시스라는 것이 있다. 이 시놉시스는 관객을 어필할 수 있는 외모 같은 존재다(물론 포스터와 예고편도 '외모' 축에 속한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이 작품의 '시놉시스'를 쓸 수 있어야 이야기의 토대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는 거 아닐까 싶다. 이야기가 쭉 뻗는 직선 주로 가 아니었던 <타르>도 시놉시스를 쓸 수 있으니, 처음 두 문장으로 영화를 요약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야 영화의 기본적인 설득력이 임팩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요약이 좀 어렵다. 왜냐? 영화가 뚝뚝 끊기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안 웃기는 유머 때문은 아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깔끔하게 달라붙지 않는다는 것은 영화의 전체적인 퀄리티에 흠이 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글을 쓰는데 문장을 불필요하게 꼬아 쓰는 평론가들이 몇 있다. 아무리 영화 비평이라지만 글쓰기는 상대방과 소통하려고 하는 건데 이해하기 어렵다는 거는 뭘 위해 글을 쓰는지 의문점이 든다. 이 영화는 마치 꼬아 쓴 비평문처럼 시퀀스마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 첨삭이 필요한 영화인 셈이다.
호평할 만한 구석도 있긴 해
뭐 영화 보면서 '여기에 힘을 줬네' 싶은 구석이 있다. 영화는 두 장르를 병치시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나웅남이 갖고 있는 가족 드라마와 이정학이 품고 있는 누아르다. 가족드라마적인 특성은 후에 설명하려고 하니 패스한다. 느와르의 장르 특성을 이끄는 데 있어 박성웅 배우는 장르 전문가답게 어떻게 해야 관객들이 이 작품을 이해할지 잘 끌고 간다. <신세계>의 이중구 역 이후 코미디 영화 많이 나오시는 것 같은데 이 분은 그냥 느와르 하려고 태어나신 분 같았다. 공허한 표정과 이정학의 무력을 묘사하는 액션연기까지 그동안 우리가 알던 박성웅의 카리스마는 여기 다 있다. 또 박성웅 배우와 함께 힘을 합쳤던 최민수 배우 역시 연기가 좋았다. 분명 더 광기 어려야 할 인물의 카리스마가 터지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것이 배우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최민수 배우는 극의 긴장감을 혼자 보여주는 연기로 끌고 갔다는 점에서 호평할 만하다.
또 영화 중반부 찍고 넘어가는 이야기 전개가 있다. 이 이야기 전개를 활용한 방식은 좋은 평을 내릴 수 있다. 큰 틀을 잘 짰다. 영화를 보다 보면 나웅남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긴 설명을 바탕으로 어렵지 않게 '어 그럼 그렇게 되는 것 아냐?' 싶다. 이 부분을 나름 딱딱 맞아떨어지게 회수하는 방식은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훌륭했다고 느낀 지점이다. 이 부분의 내적인 연결고리를, 사건 중심으로 영화를 재구성하면 알 수 있다는 점은 오랜 기간 동안 공들인 부분이 조금 느껴진다.
가학적인 캐릭터
영화를 보면서 캐릭터들에게 의문부호가 생겼던 지점이 굉장히 많았다. 우선 첫 번째. 웅남이의 친구 말봉이다. 말봉이는 유튜버다. 팔로워가 10명밖에 없지만 아무튼 유튜버다. 뭐 유튜브 크리에이터라고 직업의식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람은 유튜버라는 직업적 특색에 너무 심취해 있다. 비밀 작전을 하고 있다고 치면, 당연히 카메라를 꺼두는 게 옳다. 아니 초등학생도 그건 다 안다. 영화는 이 유튜브라는 소재를 미친 듯이 쓰고 싶었던 듯이 흐름을 끊을 정도로 남발한다.
또 웅남이와 주변인들의 관계는 가족드라마적인 특성에서 영화의 핵심이 된다. 모르겠다. 웅남이를 바보로 만들면 웃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웅남이만 바보같이 행동하면 모르겠는데 말봉이가 웅남이를 대하는 방식은 불필요함과 동시에 가학적이라고 느꼈다. 웅남이와의 관계에서 뭔가 좀 이상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다. 어떤 인물은 후반부에 수미상관처럼 재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웅남이의 리액션이 이해 안 가는 건 둘째치고 신을 구성하는 대사가 조악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게 2003년이면 웃겼을 것이다. 사람을 사람취급 하지 않고 동물취급하는 게 이 사람의 인물세팅과 조응하지 않는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이렇게 후반부 웅남이의 선택이 설득력이 있게 다가오려면 인물 간의 유대감이 있어야 하는데 염혜란 배우가 밥 해주는 장면만 있으니 아쉬울 뿐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윤제문 배우가 맡은 캐릭터는 연출과 연기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윤제문 배우가 지난 세월 동안 한국영화에서 보여준 얼굴은 무궁무진했다. 괴랄한 작품도 몇 편 나오셨지만 <마더>나 <아수라> <한산 : 용의 출현> 등등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다. 그런 게 아무 의미가 없다. 배우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연출은 무작정 화만 내라고 한다.
또 영화의 주인공인 웅남이에 대한 연출은 가장 아쉬운 캐릭터 설정으로 뽑을 수 있다. 웅남이는 곰의 운동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멀리서 작은 글씨도 다 보이고 근력도 세며 달리기도 빠르다. 영화에서 제시되는 핵심 과제들이, 이 곰 같은 피지컬로 해결할 수 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어떤 때는 능력이 발휘되고 어떤 때는 또 안 되는 불규칙함은 영화의 통일성과 설득력을 깬다.
사족(들)
영화 초반부는 웅남이의 능력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곰이 사람이 됐다. 그럼 운동능력이 비정상적이겠지? 이 부분을 묘사하는 것은 좋았다. 편의점에서 뭐 하고. 싸울 때 뭐 하고. 근력이 세고 어쩌고 등등 이 영화를 구성하는 핵심이 되는 셈이니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부분에 너무 길게 할당했다. 초반부에서 스타트를 이상하게 끊었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어차피 이럴 것 아닌가?' 정확히 그렇게 한다.
또 러닝타임 중반부에 웅남이가 작전을 위해 훈련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비중이 큰 코미디로 묘사된다. 여기에 들어갔던 인물들 대부분이 소모적이다. 우선 윤제문 배우를 위시로 한 경찰 쪽 캐릭터는 세 명이다. 여기서 윤제문 배우 옆에 있는 남자 경찰 캐릭터는 없어도 큰 문제가 없다. 뿐만 아니라 훈련하는 교관들은 '개그 콘서트'에서 재현 개그로 쓸법한 걸 그대로 영화로 갖고 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훈련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그것도 아니다. 작전 실행에 있어 영화의 핵심이 되어야 할 부분이 웃기지도 않은 채로 표류하는 것이다.
위의 문단과 연장선상의 측면에서 영화의 카메오들은 난잡해 보이는 러닝타임을 더 산만하게 만든다. 영화에 개그맨들 세 분 나온다. 첫 번째 개그맨은 '배우 개그'를 하고 싶었던 듯 보인다. 그거 외에는 이 개그맨 분들이 인물 연출의 뒷심이 모자란 탓에 웃기지 않는다. 그냥 신인 배우 써서 맡았어도 이 캐릭터들을 소화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그리고 쿠키영상 즈음에 등장하는 배우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솔직히 이 배우가 등장하는 모습도 의문점이 있으나, 필요한 섭외였나?라는 점도 아쉽게 느껴진다. 그 장면이 있어서 시리즈물을 기획할 것인가? 그것도 아닐 것이다. 도플갱어라는 소재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장면을 굳이 넣은 거는 박성광 감독이나 박성웅 배우가 인맥이 넓다는 거 말고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도전에 박수를
우리는 개그맨 박성광을 잘 알고 있다. '개그 콘서트'가 방영하던 당시 기라성 같은 동기, 선배, 후배들과 함께 개그계를 이끌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용감한 형제들'에도 나오지 않았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도 갖고 있다. 그래서 뭐 글쓴이 같은 20대들에게 박성광 감독의 인지도는 어느 정도 확보가 되는 셈이다. 이게 당연히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영화감독 법 이런 건 없지 않나? 개그맨 출신 영화감독 중 뛰어난 역량을 가진 분들은 많다. <놉>의 조던 필, <돈 룩 업>의 아담 맥케이, <소나티네>의 기타노 타케시가 그렇다. 박성광 감독이 영화 퀄리티로 비판받을 수는 있어도 개그맨이라는 이유로 노력이 폄하되어선 안되지 않나 생각한다. 이는 수많은 선배 영화인들이 필모그래피로 증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 영화는 비판받을 여지가 공-장히 많다. 그러나 박성광 감독이 더 절치부심하는 계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콧대를 짓밟아주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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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계속 걸어가겠지만
내게 <러브레터>는 겨울날 아득히 보이는 오두막, 불 밝힌 창문 같은 영화다. 보는 것만으로도 추운 밤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주는 이야기다. 인물들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고 느껴서 그렇다. 이츠키에게는 언젠가 반짝이는 사랑을 받았던 기억, 히로코에게는 있는 힘껏 후회 없이 사랑한 기억. 그 힘을 이따금 떠올리며 잘 살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마음도 그런 힘을 찾고 싶어 자꾸 들여다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찬 바람 불면 한번 보고, 겨울 깊어가면 또 보고, 겨울 다 가기 전에 아쉽다고 본다. 더운 여름 날도 눈발 내리는 풍경이 그립다고 보고, 문득 떠올리면 아무 때나 본다. 그 버릇이 10년도 넘었다. 이제는 너무 많이 봐서, 아는 사람들의 옛 사진 앨범을 보는 기분이 든다. 가본 적 없는 공간임에도 가본 듯이 그려보게 되고, 만져본 적 없는 옷의 촉감까지 생생하다. 동시에 딱 그만큼 멀기도 하다. 성에 낀 유리창 너머 들여다보이는 오두막 내부 풍경은 결코 닿지 않듯이. 내쉬는 내 숨결에 성에만 더 짙어지듯이.
그러던 차에 또 한 번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이번에는 <라스트 레터>다. 다시 한번, 편지의 마법에 걸리고 만다.
제목에서 예상되듯이 이 영화는 편지를 타고 흘러간다. 언니 미사키의 장례식을 마치고, 유리는 조카 아유미에게 편지봉투 하나를 건네받는다. 동창회 초대장이다. 언니의 부고를 알리려고 참석한 동창회 자리에서 동문들은 유리를 미사키로 착각한다. 그 시절 모두가 사랑했던 미사키, 오랫동안 보지 못한 미사키를 모두가 반가워한다. 유리는 차마 언니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곧 철거될 학교 건물 사진을 보고, 정리하다 발견했다는 테이프 속에서 졸업생 대표 인사를 읊는 미사키 목소리를 들으며 유리는 먼저 자리를 뜬다.
그런데 동창회 장소에서 누군가 유리를 따라 나온다. 유리가 좋아했던, 미사키를 좋아했던 쿄시로. 자신을 미사키로 알고 있을 쿄시로에게 유리는 편지를 한 장 남기고, 두 사람은 편지로 재회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편지 하나가 미사키의 딸 아유미에게 닿으면서, 이들 모두는 편지를 통해 지금은 죽고 없는 미사키를, 그리고 그 시절의 마음들을, 각자의 오늘을 훑기 시작한다.
잘못 전달된 편지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시놉시스만 보아도 <러브레터> 냄새가 난다. 감독은 아예 이 영화가 <러브레터>의 쌍둥이 영화라고 직접 밝혔는데, 곳곳에서 데칼코마니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한겨울 눈밭의 추도식으로 시작하는 <러브레터>와 빛 고운 여름날 장례식으로 시작하는 <라스트 레터>, 학교의 사진을 찍는 장면, <러브레터>의 이츠키처럼 <라스트 레터>의 유리도 도서관에서 일한다는 점 등등. 편지가 잘못 닿는 오래된 집의 분위기도 비슷하고, 교복 입은 회상 장면과 현재가 교차한다는 점도 겹친다.
<러브레터>뿐이 아니다. 소위 '화이트 이와이'로 대변되는 영화를 모조리 담은 종합 선물세트 느낌이다. <4월 이야기>에서 선배가 좋아 '사랑의 기적'을 만들었던, 배우 마츠 다카코가 유리 역을 맡았다. 도서관에서 일하며 선배를 좋아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얼굴에서, 서점을 서성이다 빨간 우산 아래 말갛게 웃던 얼굴이 절로 떠오른다. 유리의 딸 사야카와 미사키의 딸 아유미가 함께 있는 모습에서는 어쩐지 <하나와 앨리스> 느낌도 난다. 연락처를 주고받는 SNS는 <립반윙클의 신부>에서 사용된 가상 SNS 플래닛이다.
다만 <러브레터>에서 한 발짝 달라진 점은, 오타루까지 가서 이츠키를 만나지 못하고 뒤돌아섰던 히로코와 달리 쿄시로가 로드무비 느낌이 들 만큼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 모로 히로코와 다르다. 끝의 끝까지 사랑에 최선을 다했던 히로코와 달리, 미사키와의 관계에서 일찌감치 물러나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츠키의 기억을 편지로 받았다가 되돌려준 히로코와 달리, 그는 미사키의 기억을 아예 <미사키>라는 제목의 소설로 펴내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첫사랑에 매여있다는 점에서 남자 이츠키를 떠올리게도 한다. 어떻게 보면 남자 이츠키의 순정은 그의 죽음으로 박제되고 완성된 것이기도 하기에, 처음에는 쿄시로가 미사키의 기억을 되짚어가는 과정을 의구심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미사키> 이후 어떤 소설도 더 쓰지 못한 소설가라서 더욱 그랬다. 자신의 이야기를 위해 미사키를 찾는다면 그 또한 사랑일까? 더 이상 손 닿을 수 없는 사랑을 찾아다니는 그의 마음은 사랑일까 아니면 소재에 대한 집착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마음만큼이나 내 비뚜름한 시선도 흔들렸으나, 끝내 미사키의 영전에 선 그와 함께 눈물을 떨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25년이나 지난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면 믿겠느냐는 질문은 미사키가 아니라 관객에게 던진 것인지도 모른다. 순정이라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순정을 더 믿지 않게 될 뿐이다. 십대 때 이와이 슌지가 '영원한 십대들의 내부자'라는 말을 어디선가 읽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는데, 시간이 흐르고 십대들의 내부자가 아니게 되어버린 나는 이제 오랜 사랑 앞에 의구심부터 던진다. 하지만 그는 변치 않았다.
단순하지만 잔잔하게 마음을 파고드는 피아노 선율에, 어쩐지 눈물 날 듯 아름다운 빛. 이전과 똑같은 도구들로 이와이 슌지는 순정을 말한다. 늘 그랬듯 마음을 선물처럼 곱게 담아 전한다. 마음을 담은 상자가 편지일 때도, SNS일 때도 있지만 도구가 어떻든 늘 순정을 간직한 채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상자의 모양이 바뀌어도, 그 안의 것들은 세파에 좀먹지 않고 아스라이 빛난다. 그래서 그의 편지에는 여전히 힘이 있다.
그의 순정에는 한 세월이 묻어 있다. 그의 영화 속 십대들이 애틋한 이유다. 지금 이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말갛게 웃는 그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아는 우리로서는 애틋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순간의 설렘, 사소한 일상 뒤에서도 삶과 죽음은 아른거리고 있다는 진실을, 우리가 모두 알고 있지만 잊고 사는 사실을 일깨우기에. 이런 점에서 <라스트 레터>는 분명 그의 전작들에서 직선으로 이어진 연장선이다.
그 연장선에서 뜻밖의 한 걸음을 내딛는다. 이후의 이와이 월드가 어떤 색깔로 펼쳐질지 기대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러브레터>에서 이츠키/히로코와 아키바를 각각 맡았던 나카야마 미호와 토요카와 에츠시가 출연하는데, 한때 이야기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의 얼굴을 빌어서 하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잠시 눈을 의심해야 할 만큼 폭삭 늙은 토요카와 에츠시의 얼굴로, 조금은 지치고 피로한 나카야마 미호의 표정으로, 두 사람은 말한다. 이야기는 이야기고 현실은 현실임을. 인간은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피아노 선율과 고운 빛으로 구성된 세계에서 가장 먼 이야기를, 온갖 세파에 지치고 닳아버린 얼굴로 건넨다.
그래서 내게는 이 작품이 소위 '화이트 이와이'로 분류되던 영화들에게 안녕을 고하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오래 전의 그들에게 인사를 건넬 기회를 준 느낌. 과거가 아닌 앞을 보고 나아가기 위해 가장 아름답게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하나하나 기억을 포개 놓은 느낌이다. 그렇게 그 자리를 떠나라고 다정하게 말하는 느낌이다. 미사키의 기억을 되찾은 쿄시로에게, 비로소 엄마를 떠나보낼 준비를 한 아유미에게, 그의 영화를 내내 돌아보며 살아온 관객인 내게도.
영화가 시키는 대로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넨다. 지금은 잃어버린,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 소중한 사람들을 향한 기억을 고이 갈무리한다. 이제 그 자리를 과거에 내어주고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도록. 오랜 세월 꾹꾹 담아둔 향기로운 마음이라고 해도, 불가능에 가까운 순정을 누군가의 죽음으로 얼려 잡아두었다 해도, 그 마음은 오래된 편지처럼 접어두어야 할 것이다. 나는 오늘을 뚜벅뚜벅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잘 알고 있는데 여전히 그의 순정은 다정한 유리창처럼, 자꾸 돌아보고 싶게 만든다. 기억의 시공간은 돌아봐도 잡히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계속 걸어가겠지만, 또 계속 돌아볼 것이다. 아직은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슬프고 두렵지만은 않다. 사랑의 잔상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따뜻하게 불 밝힌 유리창으로 존재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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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성탈출 4 | 아직은 오지 않은 '새로운 시대'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진화한 유인원과 퇴화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땅. 성년식을 기다리던 '노아'(오웬 티그)와 독수리 부족은 갑작스레 '프록시무스 시저'(케빈 듀랜드) 군대의 습격을 받는다. 노아는 혈투 끝에 간신히 살아남지만, 아버지는 죽고 모든 부족은 프록시무스 시저의 왕국으로 끌려간다. 이에 노아는 부족을 구출하고 아버지의 복수를 이루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여행길에서 고생하던 노아는 우연히 두 친구를 만난다. 유인원 '라카'(피터 메이컨)는 노아에게 전설적인 유인원 지도자 '시저'의 가르침을 알려준다. 또 자신처럼 프록시무스 시저에게 쫓기던 인간 소녀 '메이'(프레이아 앨런)는 노아에게 유인원과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려준다. 이러한 도움을 토대로 노아는 시저의 가르침을 기만하는 프록시무스를 무찌르고 유인원과 인간 모두를 구할 전투에 나선다.
4편의 저주에 걸리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2024년 봄 극장가는 4편으로 가득하다. <쿵푸팬더 4>가 긴 공백을 깨고 돌아왔고, <범죄도시4>는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다만 성과는 기대 이하다. <쿵푸팬더 4>는 지난 시리즈의 매력과 캐릭터에만 기댈 뿐이었다. <범죄도시4> 역시 여전한 흥행 파워를 과시했지만, 장기 시리즈의 피로감은 가중됐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이하 <혹성탈출4>)는 올봄의 세 번째 '4편'이다. 2011년에 리부트 된 시리즈의 4편이고, <혹성탈출: 종의 전쟁> 이후 7년 만의 속편이다. 그런데 제목이 퍽 흥미롭다. 지난 삼부작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속편인데도 불구하고, 제목에서 '4'라는 넘버링을 활용하지 않았다. 이로부터는 시리즈의 새 출발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지난 주인공인 '시저'(앤디 서키스)를 등장시키지 않듯이.
하지만 <혹성탈출4>도 '4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시리즈의 메시지와 주제의식을 적절히 계승한 전개를 보여주지만, 비주얼을 제외한 대부분이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하다. 그 결과 4편까지 이어진 시리즈에 신선한 피를 수혈할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선뜻 끄덕이기는 어렵다.
시리즈의 정수를 계승하다
<혹성탈출>의 핵심은 유인원과 인류의 대립이다. 하지만 거대한 스케일의 전쟁만 화두가 되지는 않았다. 시저에게는 인간 친구가 여럿 있었다. 자기를 키워준 윌. 아내를 치료해 준 말콤. 인간을 향한 복수심과 증오심을 꺾어 준 소녀 노바. 의견이 다른 유인원 및 인간과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시저가 인류와의 공존을 추구한 이유였다. 이처럼 사적 감정을 공적 책무로 승화하는 시저의 여정은 <혹성탈출>의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전편으로부터 300여 년 후를 다루는 <혹성탈출4>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종족 간의 전쟁 사이에서 싹을 틔우는 두 유인원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다. 인류를 무시하는 유인원 노아와 유인원에게 사냥당하던 인간 메이는 우연히 같이 여행을 떠난다. 노아는 프록시무스 시저에게 붙잡혀 간 자기 부족을 구출하기 위해. 메이는 인류의 미래를 건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물론 둘은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자기 종족의 존속이라는 목표가 언제나 최우선이기 때문. 하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조금씩 덜어내면서 둘은 우정 비슷한 관계까지 나아간다. 친구는 아니지만, 차마 서로를 죽이지는 못하는 관계로.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미래의 화근을 잘라낼 수 있는데도. 그렇게 <혹성탈출4>는 재개될 유인원과 인류의 전쟁을 미묘한 애증의 감정선 속에 포함시키는 데 성공한다.
아이디어는 좋았다
앞선 시리즈의 계승만큼 프랜차이즈를 일신하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유인원 대 인간의 대립 구도뿐만 아니라 유인원 간의 갈등에도 초점을 맞춘다.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는 인간과 공존할지, 아니면 인간을 제거하고 지구를 차지할지를 두고 다툰다. 이는 2편 <반격의 서막> 속 시저와 코바의 대립을 극대화한 듯 보인다.
이름만 봐도 두 주인공의 대립은 필연적이다. 성경에서 노아는 신의 뜻에 충실한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로부터 모든 생명체를 구할 수 있었다. 영화 속 노아도 마찬가지다. 그는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와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라는 시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유일한 유인원이다. 그래서 그는 나름의 방주를 만들어 시저의 뜻대로 인간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리더로 거듭난다.
반면에 프록시무스 시저는 시저를 사칭한다. 인간과 유인원을 모두 지배하는 왕국을 만들고, 인간의 기술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라는 가르침을 악용한다. 그 과정에서 죽어가는 유인원은 신경 쓰지 않는다. 라틴어로 '가장 가까운'이라는 의미를 지닌 '프록시마(Proxima)'를 이름으로 쓰지만, 정작 시저가 가장 지양할 선택만 지향한다.
이에 더해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의 대립은 종교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여러 세대가 지난 뒤 시저는 숭배의 대상이 됐고,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는 시저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툰다. 마치 예수의 가르침을 두고 여러 교파가 싸웠듯이. 또 무함마드의 후계자 자격을 두고 수니와 시아가 전쟁을 벌였듯이. 이렇게 보면 <혹성탈출4>는 <혹성탈출> 버전 <듄>이 될 수도 있었다.
스토리텔링의 한계
그러나 기존 삼부작과 차별화될 가능성은 미처 꽃 피우지 못했다. 제작진의 스토리텔링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 영화는 두 주인공의 본질적인 차이를 보여줄 다양한 맥락과 복합적인 함의를 외면한다. 일례로 프록시무스 시저의 왕국을 묘사할 때는 정복 전쟁, 노예제, '시저'라는 호칭처럼 고대 로마를 연상케 하는 요소를 활용한 반면,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의 대립은 단순히 부족의 생존과 탈출 차원으로 국한시킨다.
그러다 보니 여러 장치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 독수리 부족의 통과 의례가 대표적이다. 노아의 부족에게는 독수리 알을 훔쳐 키우는 성년식이 있다. 이때 둥지마다 최소한 알 하나는 남겨둬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이는 독수리 부족이 본질적으로 타 생명체와의 공존을 추구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하지만 영화는 노아와 독수리의 관계를 개인적 차원에만 국한한다. 노아에게 독수리는 부족의 리더로 거듭나고 아버지의 복수를 완수하는 도구일 뿐이다. 결국 미묘한 함의는 끝내 전해지지 않는다.
스토리텔링 문제는 메이의 묘사에서도 드러난다. 노아 혹은 유인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메이는 철저히 인간중심적이고, 노아의 행보를 방해하는 빌런처럼 보인다. 인류와 유인원의 대립은 극대화되지만, 둘 사이에 작게나마 피어난 우정의 싹은 더욱 작아진다. 그 결과 서사는 다소 평면적이고, 지난 삼부작에 비해 인간 캐릭터의 매력도 찾아보기 어렵다.
뒷심 부족한 볼거리
볼거리 역시 아쉬움이 적지 않다. 물론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웨스 볼 감독이 새로 메가폰을 잡은 만큼 전체적인 스타일의 변화는 인상적이다. 이전 감독인 맷 리브스가 전반적으로 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분출하는 연출력을 과시한 반면, 이번에는 유인원과 인간의 추격전처럼 역동적인 카메라워크가 눈길을 끈다.
이에 더해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 제작 경험을 살려 수풀로 뒤덮인 도시와 철골구조, 녹슨 배와 무너진 부두로 만든 프록시무스 시저의 왕국 등의 디스토피아 세계관도 유려하게 펼쳐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라이온 킹> 실사 영화가 사자를 비롯한 동물의 표정을 효과적으로 구현하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유인원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도 놓치지 않고 포착한 CG 기술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스펙터클은 약해진다. 이전 시리즈에 비해 스케일이 소소하다 보니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를 보는 것 같은 실망감이 밀려들 수 있다. 특히 클라이맥스의 구성이 아쉽다.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의 대결은 공격도 반격도 일방적이라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노아와 결속된 독수리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암시가 너무 많아서 반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공은 속편에게
결과적으로 <혹성탈출4>의 결말은 아쉬움이 크다. 독립된 작품이면 모르겠지만, 네 번째 시리즈에서도 인간과 유인원의 전쟁을 다시 한번 암시하는 결말은 신선함이 부족하다. 돌고 돌아 시저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게 아닌가 싶기 때문. 여러 프랜차이즈가 같은 실수를 범했기에 특히 우려스럽다. 시리즈 리부트 후에도 매그니토와 프로페서 X의 갈등 구도를 마지막까지 되풀이 한 <엑스맨>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결국 공은 속편에게 넘어간 듯하다. 속편의 전개에 따라 <혹성탈출4>가 새로운 시대를 위한 한 걸음일지가 결정될 테니. 달리 말해 어떤 의미로든 속편을 기다리는 재미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Acceptable 무난함
진짜 무대는 다음으로 미루는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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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애니메이션 원작 '나의 행복한 결혼' 결말 포함
나의 행복한 결혼
23.10.11 개봉
판타지, 12세 관람가
일본, 113분
원작: 만화 <나의 행복한 결혼>
출연: 이마다 미오, 메구로 렌 등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으로 나오기도 한
만화 원작 '나의 행복한 결혼'!
저는 만화도 애니도 보지 않고 영화를 보러 갔는데
캐릭터 설정부터 기승전결 전개까지
너무 자세히 알려 줘서 기본 설정 알고 갈 필요 없어요 ㅎㅎ
장르는 로맨스 판타지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요
각 가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있다는 세계관이고
주인공인 미요는 능력이 없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존재예요
약간 일본판 신데렐라 같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사이모리 가문의 능력을 이어받지 못해
집안의 미움을 받던 ‘미요’는
쿠도 가문의 당주이자 냉정한 이능력자 ‘키요카’와
갑작스러운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원하지 않은 정략결혼으로 ‘미요’를 냉대하던 ‘키요카’는
이전의 약혼자들과는 다른 그녀의 모습에 점차 빠져들게 되고,
‘미요’ 역시 무자비한 줄로만 알았던
‘키요카’의 다정한 모습에 자꾸 설레기 시작한다.
그렇게 ‘키요카’와 ‘미요’가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던 중
‘미요’는 자신에게 숨겨진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녀의 능력은 두 사람의 행복한 결혼을 방해하게 되는데…
원치 않은 정략결혼,
그 이후 진정한 사랑이 시작되었다!
영화 <나의 행복한 결혼> 줄거리
진짜 궁금한 건데
일본은 왜 그렇게 영화 포스터를 이상하게 찍을까요?
예고편이랑 포스터 보고 일본 실사화 또 만들었네;; 했는데
영화 보고 진심... 감격했어요
여주 남주 얼굴 대박이고 얼굴합도 개쩔어 줍니다
이건 비주얼 때문에라도 봐야 하는 영화 ^^,,,
암튼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ㅎㅎ
줄거리 빼고 봐도 이미 캐릭터만으로
기승전결 다 끌고가기에 충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영애의 집안에서 홀로 능력이 없어
새엄마와 이복 동생에게 구박당하며 사는 미요는
항상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불쌍한 여주예요
남주인 키요카는 모든 사람들에게 쌀쌀맞지만
지금까지의 약혼자들과 어딘가 달라 보이는 미요에게
동정심과 호기심, 사랑의 감정이 피어나죠
이미 이 관계성만 봐도... 신데렐라 이야기 뚝딱이죠?
후에 이복 동생이 자기가 키요코와 결혼하겠다며
미요에게 파혼하라며 괴롭히는데
미요는 이번 만큼은 원하는 걸 포기할 수 없다며
물고문을 당하는 와중에도 키요코를 떠올려요 ㅠㅠ
현대가 배경이었으면 흔하고 진부하다고 욕먹었겠지만
기모노 입고 다니던 옛날이 배경이기에 용인되는 것도
없지 않아 있습니닷 하하
그러나 로맨스만 있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
거대한 세계관을 가진 영화인 만큼
황실, 군대 등... 거창한 내용들이 등장하는데요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벌레'라는 존재가 나타납니다
이 '벌레'는 사람의 몸에 기생충처럼 기어들어가서
인간들을 조종하고 다니며 서로 죽고 죽이는 매개체예요
그 벌레는 사실 키요코 가문의 위대한 힘을 두려워한
왕이 뿌린 것이었
그 과정에서 자신의 부하들을 죽여야만 하는
키요코의 눈물겨운 싸움이 진행됩니다
이 싸움이 사실 기승전결의 '전' 부분에 해당하기 때문에
갈수록 로맨스가 흐려지고 세계관에만 집중하는 게
많이 아쉽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나름 잘 짜여진 구성이라고 생각해서
이걸 뺐다면 또 허전한 로맨스로 남았을 것 같아요
OST까지 완벽하게 구성한 영화라
중간중간 마음을 울리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펑펑 울 정도는 아닌 ㅎㅎ 영화였습니다
아 CG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는 판타지 장르 영화였는데
엄청 어색하진 않지만 또 오글거리지 않는 건 아닌
그 중간 ㅋㅋㅋㅋ 단계였어요
제목에 쿠키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쿠키에서는 몽견? 의 능력을 눈치 챈 악의 무리들이
미요를 잡으러 가겠다는,, 뭐 그런 멘트로 끝나거든요
아무래도 시즌 2를 암시하는 것 같죠?
역시 로맨스는 일본이다~ 라는 한 줄 평과 함께
오늘 리뷰 마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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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중한 것이 그 자리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마음, 피닉스
대체할 수 있는 기만, 대체할 수 없는 마음.
고통으로 이루어진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돌아온 넬리는 레네와 함께 고향으로 갑니다.
그러기 위해 검문소를 거치는데 고통으로 침철된 상처를 보여주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는 시대의 참혹함을 들여다볼 수 있었죠.
더 고통스러운 것은 얼굴 재건을 위해 성형수술을 해야 하는데, 이전과는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술로도 원상태로 돌릴 수 없었던 겉모습과 마음은 조니의 흔적에서는 찾을 수 있었는지 만류하는 내네의 말에도 조니와 함께합니다.
그와 함께하면서 시작된 기만을 비롯한 연극이 비극의 끝을 향하고 있는 걸까요.
넬리에게 소중하고 특별한 추억이 조니에게는 바래진 추억일 뿐이라는 게 슬퍼졌습니다.
그렇게 당연하게 여겨진 것을 잃어가며 소중한 것을 되찾게 되길 바랄 뿐이었죠.
복수보다 무서운 용서가 마지막을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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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
프란시스와 레이디 버드
처음으로 <프란시스 하>를 본 건 입시 준비를 하던 여름이었다. 계속 이곳저곳을 방황하는 프란시스를 보는 게 정말 힘들었다. 같은 해, <레이디 버드>를 본 후에는 영화 말미에 대학에 들어가는 크리스틴이 참 부러웠다. 수능 성적이 좋은 것도, 방과 후에 연극을 하고, 줄리와 대니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것도 전부 대단해 보였다. 스물 한 살이 되어 당시에 느꼈던 무력감과 긴장감에서 한 발짝 물러나고, 새로운 고민이 생긴 후 두 작품을 다시 봤을 때 비로소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레이디 버드가 새크라멘토를 그리워하듯, 프란시스가 방황하던 시간을 지나 ‘자기만의 방’을 찾듯 그레타 거윅이 그린 성장은 단순히 귀감이 되기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지나온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We were in one parking lot and we went to another parking lot."
레이디 버드’는 고등학생인 크리스틴이 자신에게 직접 붙인 이름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크리스틴이라고 부르면 반드시 고쳐 부르게 하고, 명단에 쓰인 이름은 새로 쓴 후 밑줄까지 그어 둔다. 반듯하게 인쇄된 글자 아래 적힌 손글씨는 어디서든 '개인’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레이디 버드를 소개하는 듯하다. <레이디 버드>는 수십 벌의 예쁜 의상과 함께 밝은 미래를 노래하는 ‘하이틴’ 영화에서 벗어나 그 이미지를 보고 자란 소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깊이가 각기 다른 수많은 고민, 견뎌내야만 하는 상황, 결코 설명하지 못할 결정들, <레이디 버드>가 주인공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모녀의 이야기라는 점은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관객에게도 호소력을 지닌다.
그레타 거윅이 공동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프란시스 하>는 꼭 <레이디 버드>의 다음 이야기처럼 보인다. 프란시스는 여러 모로 불안정하다. 현대무용가가 되고 싶어하고, 뉴욕에 살며, 함께 살던 친구가 떠나며 갈 곳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어진다. 영화는 색조차 빼앗아 가며 복잡한 감정과 걱정을 솔직히 드러내고, 레이디 버드처럼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원동력을 절실히 원하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프란시스가 자신의 이름을 줄여 쓰지 않고 반 접어 우편함에 끼워 넣은 것처럼, <프란시스 하>는 때때로 한 발자국 물러나거나 타협하는 것이 결코 최악의 선택지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화려한 스토리와 미장센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프란시스 하>는 불완전한 삶과 끝나지 않은 성장으로 위로를 준다.
레이디 버드는 “우리 주차장에서 출발했는데 또 다른 주차장에 왔네.”라고 말한다. 주차장은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출발해야 하는 장소이다. 스치듯 읊조린 대사지만 <레이디 버드>와 <프란시스 하>의 정서를 모두 설명하는 것만 같다. 두 작품은 떠난 후에야 사랑하게 되는 것들, 다시 말해 과거의 경험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되기까지의 성장을 담았기에 특별하다.
그레타 거윅이 그린 여성의 성장
<레이디 버드>와 <프란시스 하>가 유독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두 이야기를 충분히 내면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 프란시스와는 공통점보다 다른 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집에서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적도 없고 무대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며, 태어난 연도와 사용하는 언어조차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에서 위로를 받거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나를 위한 영화다’라고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레타 거윅의 캐릭터들이 여성으로 살아온 경험을 가로지르는 공통의 정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와 프란시스는 섹슈얼한 관계를 쟁취하지 않는다. 단지 자연스러운 욕망과 꼬이고 풀어지는 관계들, 보편적이고 사소한 고민을 보여준다. 현실적이고 솔직한 모녀 관계와 친구 관계 또한 위와 같은 감상에 큰 영향을 준다.
<굿 윌 헌팅>, <죽은 시인의 사회>, <길버트 그레이프>, <바스켓볼 다이어리> 등은 모두 다양한 감상과 감동을 주는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영화와 소통하고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자라면서 수도 없이 돌려 본 <금발이 너무해>, <클루리스>, <하이 스쿨 뮤지컬> 같은 작품들은 여성 제작자의 손을 거치거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것임에도 아름다우면서 유능한 캐릭터를 모델로 제시한다. 이러한 영화들을 수없이 본 경험 이후에 그레타 거윅이 참여한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 여성 제작자로서 그레타 거윅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이야기와 연출이 좋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나 다른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내면화하고, 다시 새로운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 개인의 삶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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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대학교X환몽씨네, 채널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 (feat. 최민식, 김윤석, 이병헌 외)
중앙사랑과 함께한 예능형 콜라보 콘텐츠입니다!
졸업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학교를 떠나기 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재밌게 즐겨 주신 중앙사랑 27기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본 영상은 지난 2월에 촬영한 콘텐츠입니다.)
#중앙대학교 #중앙대 #중앙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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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퍼펙트 케어>
영혼까지 탈탈 터는 ‘완벽 케어’ 서비스!
친~절 머리나는 그들이 온다!은퇴자들의 건강과 재산을 관리하는 CEO 말라,
알고 보면 일사불란한 한탕 털이 기업이다.
사람을 요양원으로
집과 가구는 경매로
모든 것을 탈탈 터는 게 그들의 주업.
법꾸라지 그들은 치밀한 계획 하에
법의 테두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완벽한 말라의 케어 비즈니스에
순진한 양 같은 다음 타겟이 잡히고
더욱 더 완벽한 케어 서비스를 계획하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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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청춘열애> 메인 예고편
뛰어난 실력과 아름다운 외모를 갖춘 무용수 리마이.
작은 도시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만을 바라는 원차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조직에 얽혀 불법 행위에 가담하게 된 펑쯔.
한 편의 영화 같은 인생을 살기를 꿈꿨던 세 청춘의 사랑, 고난 그리고 성장에 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