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6-30 14:13:31
넷플릭스로 돌아오는 <나이브스 아웃2>, 그리스에서 본격적인 촬영 시작!
라이언 존슨 감독이 밝힌 <나이브스 아웃2> 그리스 제작 일정
라이언 존슨은 지난 월요일 오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그리스의 따뜻한 지중해 연안에서 <나이브스 아웃2>의 제작 일정이 시작됐다고 발표했습니다.
각종 언론 보도에 따르면, 촬영장소는 그리스 북동부 펠로 폰 네소스 해안에 위치한 풍요로운 섬 '스페 체스(Spetses)'이며, 영화는 7월 말 또는 8월 중으로 촬영을 마칠 예정입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전편에 이어 또 한번 영리한 사립 탐정 브누아 블랑 역을 맡았는데요. 이와 함께 존슨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완전히 새로워진 출연진 또한 선보인다고 합니다. 먼저 <아미 오브 더 데드>의 데이브 바티스타, <버드맨>의 에드워드 노튼, <히든 피겨스>의 제넬 모네, <완다비전>의 캐서린 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레슬리 오덤 주니어에 이어 케이트 허드슨, 매들린 클라인, 제시카 헨윅 등의 배우들까지 새롭게 합류하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4천만 달러의 예산을 가지고 시작한 본편 <나이브스 아웃>은 라이온스게이트에서 배급을 맡아 글로벌 박스 오피스에서 약 3억 천 백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는데요. 2020년 2월, <나이브스 아웃>의 속편 제작이 확정되면서 존슨 감독과 공동 프로듀서인 램 버그만은 라이온스게이트를 떠나 약 1년의 시간 동안 그들의 배급사를 찾아 헤맸습니다.
마침내 올 3월, <나이브스 아웃>의 후속 시리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와 손을 잡게 되었습니다. 넷플릭스는 HBO Max, Disney Plus, Apple TV Plus, Amazon Prime이 주요 경쟁사로 부상함에 따라 <나이브스 아웃2>, <나이브스 아웃3>의 판권을 4억 5천만 달러 이상에 구입하며 보다 경쟁력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한 메이저 영화 선점에 나섰습니다. 그동안 넷플릭스는 세간의 이목을 끄는 영화들의 경우 일부 극장과 동시 상영하기도 했는데요. 이번 <나이브스 아웃2>의 출시 전략은 과연 어떻게 될지 앞으로 주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Jade.
Relative contents
-
- 영화로 만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Cinelab Curation]❣️
이번 주에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을 만나보려고 하는데요!
원작에 충실한 작품부터 현대적으로 또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각색한 작품까지!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꾸준히 영화화되고 있죠.
고전은 영원하다는 말처럼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만나러 가보실까요?🧡_______
_____
-
- 관객을 사냥하고 싶었던 <늑대사냥>
과거에 교통사고가 나는 모습을 앞에서 본 적이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 택시가 사람 한 명을 쳤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잠깐 넘어지는 선에서 끝난 교통사고. 큰일이 아니었어서 다행이었지만 이 기억은 나에게 굉장히 크게 남아있다. 안 그래도 겁이 많은 나는 이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잔인한 거 잘 못 본다. 잔인한 걸 잘 못 보지만 스릴러 장르는 취향에 맞는 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아무튼 그런 타입이라고 설명하기로 한다. 타란티노와 크로넌버그가 그렇게까지 끌리지 않았던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내 취향저격 300%인 <큐어>와 <추격자>도 수위 묘사가 있는데 아무튼 이런 장르는 박진감이 있으니 좋아한다고 주장하고 다닌다. 그러면 이 영화도 완전 취향저격이어야 할 텐데? <아수라>도 나쁘지 않았던 나는 이 영화가 내 시간을 사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필리핀으로 배를 타고 이동해서 한 영화를 만났다. <늑대사냥>이다.
아수라장 5분 전
어느 날의 대한민국.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배 안이다. 강력범죄자들을 데리고 이동하고 있는 프런티어 타이탄. 온갖 나쁜 놈들은 죄다 모아놨기 때문에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살인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범죄는 다 저질렀던 범죄자들이지만 이송 과정은 나름 인격적인 대우를 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잡무에 시달리는 형사들. 투정을 내뱉는 부하들을 다독이며 석우는 항해를 시작하고자 한다. 카메라는 지상으로 옮겨간다. 아마 해안 쪽을 담당하는 경찰의 한 부서로 보인다. 모니터로 해안 상황을 감시하고 있던 사람들. 갑자기 어떤 남자가 들이닥친다. 대웅과 일당들은 경찰 인원들을 내쫓고 경비단에 자리를 잡는다. 대웅의 일당들 역시 같은 경찰인 것으로 보인다.
카메라는 다시 배 안으로 옮겨간다. 여전히 어수선한 배. 범죄자들을 수송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얼른 작전이 마무리됐으면 하는 마음은 어린 형사 다연도 마찬가지다. 다연은 형사가 직업이라지만 이 남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의사 경호는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가 싫다. 그런데 경호에게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것 같다. 수상한 기색은 경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찰 내부에서도 이상한 눈빛을 교환하는 남자들이 있다. 폭풍전야 속에 있는 배. 배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이상한 눈빛을 교환한 남자들이 배의 사람들을 죽이고 죄수들의 탈옥을 도운 것이다. 아수라장이 된 배. 죄수들은 한국으로 향하는 항로를 뒤엎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과연 그들의 계획이 성사될 수 있을까?
하드보일드
우리나라가 확실히 잔인한 장르가 발달한 나라는 아니다. 일단 나부터 그렇게까지 잔인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많은 분들의 취향과도 이어진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우리나라 시네필들한테나 익숙하지 일반 대중들은 사실 잘 모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외화 수입이 발달했긴 했지만 한국에서 로컬화를 시켜서 표현하긴 좀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화라는 게 말이 쉽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 지점에서 이 영화가 도달한 성취, 또 가지고 있는 장점 중 하나는 폭력에 대한 수위다. 영화는 하루 온종일 내내 피 튀기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고. 이런 건 기본이다. 심지어 팔다리 뜯는 게 꽤나 자주 나온다. 팔과 다리가 몸을 관통하기도 하고 목을 조르다 못해 손가락으로 찌르기까지 한다. 이런 취향이 있으신 분들은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느낄 만큼 수위가 굉장히 세다. 이렇게 수위를 세게 설정하면 장르적으로 아드레날린이 급상승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건 후반부 장르 비틀기와도 관련이 있다. 이 장르와 높은 수위는 확실히 시너지가 있다.
또 예고편에서도 잠깐 모습을 드러낸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담당 배우가 이 영화에 캐스팅됐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도 한데, 바로 이 영화는 장르가 중반부를 넘어서 한번 뒤바뀐다(또 이 장르 변화가 영화 엔딩이랑 크게 관련이 없기도 하다). 그러니까 영화 구성이 1부/2부로 나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전반부/후반부에서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기는 한다. 1부는 스릴러물이다. 범죄자들이 합심해서 경찰들을 죽이고 탈옥을 도모하는 게 영화의 중심 내용이다. 2부는 호러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등장해 배 승객들이 생존게임을 펼친다는 것이 주요 서사다. 1부 범죄/스릴러물에서 빌런 종두가 강력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좋은 연기를 펼쳐 보이며 시각적으로 압도한다. 또 뭔가 찝찝한 화면 색감이나 배 안을 구현한 미술까지 나름 장르적인 특색을 잘 갖췄다고 볼 수 있다. 2부 호러물에서는 '초대받지 않은 그것'의 연출이 좋았다. 동선이나 액션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했다. 중후반부 영화를 이끄는 주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당 배우가 연기력으로는 검증받은 사람이기도 하고 이 인물을 중심으로 한 승객들의 리액션이 잘 구성되어 있어서 2부 자체로도 몰입하기 좋다. 또 극후반부 액션도 잘 뽑았다. 후반부 액션 연출은 이 영화의 최고 장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의아한 선택
1, 2부 각각의 완성도 자체는 좋았다. 두 장르의 특성을 잘 살린 부분이 러닝타임 곳곳에 보인다. 이거까진 좋았다. 그런데, 사실 이 장르 변동이 영화에 플러스가 됐는지는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써보자면 전후반부의 구분선 때문에 러닝타임을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단 전반부. 경찰을 살해하고 탈옥을 도모하는 죄수들의 이야기다. 후반부. 예상하지 못한 변수 때문에 배 안이 혼란 속에 빠진다. 이 두 가지를 기준선으로 잘라 중심인물로 다르게 설정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전반부는 서인국 캐릭터가, 후반부는 성동일 캐릭터가 이끈다. 제목이 두 번 들어가는 건 이 구분선을 더 선명하게 해 준다. 가장 처음에 '늑대사냥'이 제시되는 부분이나 후반부에 제목이 왜 '늑대'가 들어갔는지를 보면 이는 극이 두 번으로 나뉘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1,2부가 딱 달라붙지 않는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가령 <헤어질 결심>을 보자. 이 영화 역시 1,2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래의 남편 기도서의 살인사건이 1부, 사기꾼 임호신의 피살사건이 2부다. 두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서래와 해준의 사랑이야기가 영화의 주요 서사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사건 사이에는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1부의 로맨스를 2부에 감정적으로 터트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박찬욱, 정서경 두 사람이 극을 위해 필수적으로 설정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또 홍콩 영화 중 명작으로 꼽히는 <중경삼림>은 그냥 옴니버스 영화다. 애매모호하게 떡밥을 해소한 게 아니라 양조위, 왕페이 캐릭터의 사랑이야기와 금성무 캐릭터의 사랑이야기가 공간만 같지 아예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이런 설정도 이해할 수 있다. 애초부터 감독이 그걸 노리고 영화를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이 1,2부 구성이 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일단 영화 자체가 1-2부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1부에서 뿌린 일부 떡밥이 2부에서 회수되기 때문이다. 인물도 비슷하고 주요한 사건까지 공유한다. 그럼 <헤어질 결심>처럼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뜻이다. 장점으로 발휘되면 좋았겠지만 이 형식이 영화의 오히려 단점이 되어버렸다. 2부가 있기 때문에 1부가 의미 없이 느껴진다. 2부에서 불청객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마무리될 건데 1부에서 범죄자들이 경찰은 왜 죽이고 탈옥 계획은 왜 잡아? 어차피 그렇게 될 건데? 이는 반대로도 작용한다. 1부의 범죄자들의 탈출기를 주요 서사로 잡아도 이 영화는 큰 문제가 없다. 그냥 시놉시스만 생각해도 편하다. '범죄자들이 힘을 합쳐 잔혹하게 경찰을 죽이고 탈출하는 범죄/스릴러물'이라 생각하면 살짝 뻔하기는 해도 이야기에 손상이 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중요한 이야기가 전반부랑 큰 관련이 없으니 앞의 서사가 '왜 넣었지?'라는 의문점만 든다.
이는 이 영화의 폭력 수위와도 비슷한 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끌고 가는 주요한 원동력은 폭력적인 에너지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굉장히 강한 수위로 영화는 내내 기를 빨아놓는다. 그런데 전반부에서 맡았던 피비린내가 비슷한 템포로 후반부까지 이어지니 아무래도 극을 보는 게 지루할 수밖에 없다. 또 그렇게 온 에너지를 분출하며 러닝타임을 봤는데 후반부에 들어서고 이야기가 평면적으로 전개되면 다 예상이 가기 시작한다. '영화 계속 이런 톤이었으니까 앞으로 저렇게 되겠네' 그렇게 예상한 것이 정확히 이루어지고, 이내 곧 맞는다. 사람이 죽는 걸 고민을 많이 했을 영화다. 애초에 감독은 이런 지점을 장점으로 염두하고 만들었을 테니까. 그런데 이 부분만 생각하고 형식과 이야기 구성이 산만하니 러닝타임 동안 관객의 세상을 설득시키기가 어려웠다.
꼼꼼하지 않은 디테일
이렇게 영화 내내 겉돌다 보니 자잘 자잘한 아쉬움도 크게 다가온다. 첫 번째는 퀴어 캐릭터 활용법이다. 이 영화에는 퀴어 캐릭터가 나온다. 이 퀴어 캐릭터의 첫 번째 등장은 전화를 받으며 뭔가를 지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성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이거 사실 이럴 이유가 없다. 굳이 그 상황에서 그 성적인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그냥 의자에 앉아서 지시하는 장면만 나와도 극 전개에는 아무 무리가 없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 영화에서 퀴어라는 소재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냥 이 사람만 퀴어로 설정된 것 빼곤 아무런 특징을 잡을 수 없다. 왜 이렇게 설정했을까? 간단하다. 자극적이니까. 이 상황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 같은 강렬한 이미지를 넣고 싶으면 그 인물의 그 행동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영화 전반적으로 과한 폭력 수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생각은 더 탄력을 받는다. 이 연출 방식은 사실 굉장히 불쾌했다. 서사에서 1도 중요하지 않고 자극적으로만 쓰기 위해서 넣었다. 이게 소수자의 입장인 퀴어를 활용해서 그런 연출 방식을 쓴 건데 그냥 동성애 혐오같이 느껴졌다. 쓸데없이 자극적인 느낌?
또 영화 전반적으로 사운드 편집은 굉장히 아쉽다. 아마 이 부분은 영화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아도 충분할 것이다. 간단하다. 내내 귀가 아프다. 그 전부터 귀가 아프지만 특히 '그것'이 등장하고 나서가 더 아팠다. 물론 영화 안에서 '그것'의 존재감이 강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게 이 귀 따가움의 변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의 존재감으로 고통받아야 할 건 극 중 인물들이지 관객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에서도 꼼꼼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하나도 기대가 안 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아는 부분이 있다. 솔직히 여기서 좀 기대했다. 극 전개의 핵심이 있을까 봐. 근데 그런 것 없다. 승객들의 대응은 굉장히 단순하다. 이 때문에 이야기 전개가 다 예상 가능하고 서스펜스를 느끼기도 어렵다. 그리고 극후반부 하이라이트가 되는 액션신이 있고 나서 진주 인공과 관련된 어떤 설정이 있다. 이거, 좀 많이 이상하다. 극에서 내내 제시됐던 큰 설정이랑 안 맞는다. 이게 전형적인 이야기와는 벗어나긴 했는데 그걸 위해서 기본적인 토대까지 흔들어버린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 전체가 극 전체적으로 장르의 특성을 따르기보다는 '클리셰를 부순 신선함'을 추구한 티가 난다. 그런데 그것도 기본적인 완성도가 보장이 되어야 유효타로 작동하는 지점이다.
그래도 장점은 있어
뭐 그렇게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영화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있다. 성동일, 서인국, 정소민, '그것'을 맡은 배우, 그리고 극후 반부의 액션신이다. 일단 성동일 배우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많이들 아는 배우다. 또 <아빠 어디 가>나 <슛돌이> 시리즈에서 입담이 좋은 배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개인적으로 글쓴이는 성동일 배우의 진지한 연기를 한번 보고 싶었다. 초중반부까지는 베테랑의 클래스를 보여주지만 중반부에선 뭔가 매가리가 없었다. 그리고 후반부는 이 배우의 모든 경험치가 다 드러난다. 후반부 극을 마무리 짓는 카리스마로는 손색이 없었다. 또 서인국 배우는 처음 보는 악역 연기였는데 꽤 잘했다. 이 사람이 욕을 하는 게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 이 부분도 무리가 없었다. 또 배우가 비주얼을 어떻게 구현하나? 도 영화에서 주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좀 기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문신을 그냥 좌시하지 않고 톤, 표정, 제스처로 시너지를 내는 좋은 연기가 돋보였다. 이 인물의 행보는 극에서 중요하다. 이 들쭉날쭉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보를 설득력 있게 묘사한 좋은 연기였다. 또 정소민 배우는 존재감이 돋보였다. 비율이 은근히 좋으시던데 이런 배우였나? 싶었다.
또 극후반부의 액션신은 정말 대단하다. 두 배우의 합이 엄청났다. 그렇게 잔인하지도 않은데 이 두 사람의 전투신이 러닝타임 내내 전개되는 고어함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두 배우가 액션을 하는 건 그렇게 자주 봤던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 하나만큼은 탄탄하게 구성해서 극의 생동감을 부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성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지점이었다.
-
- 예술로서 드러내라, 예술가로서 저항하라
영화를 볼 때, 저는 자주 영향적 감상에 빠지곤 합니다. 영향적 감상은 '나를 변화시킬 만큼 큰 영향을 주는 영화 감상'이라는 뜻인데요. 영화에 감명을 받고 마음을 다잡는 일이 너무 많아 제가 지어낸 말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습니다. 사진을 아끼는 사람이기에 이번 영화는 제게 특히 더 많은 영향을 주었죠.
사진의 힘은 위대합니다. 사진을 훑는 것만으로 기억의 파편들은 이야기로 재생됩니다. 그리고 여기,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의 파편들을 사진으로 담은 한 사진작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2024년 5월 15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Summary
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사진은 나의 유일한 언어였다. 나는 생생하게 반짝이는 뉴욕에서 죽어가는 친구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포착했고, 있는 그대로의 내 얼굴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이제는 내 모든 명성을 걸고 거대 제약회사에 맞서 싸운다. 생존과 투쟁의 기록이 담긴 나의 일기장을 당신에게 펼쳐 보인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로라 포이트라스
명성을 이용해 폐단을 무너뜨리다
낸 골딘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입니다. 거장이나 대가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엄청난 분이죠. 그런 그가 미술관을 돌며 시위를 벌입니다. 그중에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했던 미술관도 있고, 곧 자신의 회고전을 열 미술관도 있습니다. 낸 골딘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미술관 바닥에 약통을 뿌리고, 바닥에 드러누워 죽은 시늉을 합니다.
그의 저항 운동은 제약사 퍼듀 파마와 그 배후에 있는 새클러 가문을 향합니다. 퍼듀 파마는 '옥시콘틴'이라는 진통제를 만든 회사입니다. 옥시콘틴은 가벼운 고통을 느끼는 환자에게도 의사가 쉽게 처방해 주던 약이었죠. 하지만 이 약은 퍼듀 파마가 매출을 높이기 위해 만든 마약성 진통제였습니다. 퍼듀 파마는 부작용을 은폐하고, 거짓 광고로 현혹하고, 공격적인 영업으로 판매를 촉진했죠. 옥시콘틴을 처방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마약에 중독됐습니다. 옥시콘틴은 판매가 금지되기 전까지 무려 720억 정이 팔렸으며, 이로 인해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퍼듀 파마를 운영하는 새클러 가문은 옥시콘틴으로 벌어들인 돈을 예술계에 후원함으로써 이미지를 세탁했습니다. 전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기부금과 후원금을 제공한 덕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구겐하임 뮤지엄, 루브르 박물관 등 유수의 미술관에 이른바 '새클러 갤러리'라는 이름을 건 전시관이 개관했습니다. 예술을 방패 삼아 탐욕의 벽을 쌓아 올린 새클러 가문의 악명을 알리기 위해서는 내부자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예술계를 움직이는 내부자의 힘, 이를 발휘한 사람이 바로 낸 골딘이었죠.
낸 골딘은 사진작가로서 쌓아온 자신의 명성을 이용했습니다. 위대한 사진작가의 전시를 유치해야 하는 미술관의 입장에서 그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었죠. 미술관들은 하나둘 새클러 가문의 후원을 거부하고, 갤러리에서 새클러의 이름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 ⊙ ⊙
생존, 그 자체로 예술
낸 골딘이 새클러 가문에 대한 저항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은 그 역시 옥시콘틴을 복용했다가 약물에 중독된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명성까지 거침없이 이용하는 그의 저항력이 오직 당사자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중첩되어 온 그의 과거가 저항력의 힘과 크기를 키운 것이었죠. 영화는 낸 골딘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강력한 저항력의 출처를 탐색해 나갑니다.
언니의 자살 이후, 어릴 때부터 바깥 생활을 전전해 온 그는 소외된 자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베스트 프렌드들은 대부분 사회에서 터부시되던 성소수자였고, 그 역시 그랬습니다. 낸 골딘은 무언가를 억지로 꾸며내 프레임에 담기보다는 자신의 일상을 고스란히 포착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그에게 사진은 표현의 두려움을 대신할 도구이자 해방처이기 때문이었죠. 낸 골딘은 일상의 모든 아름다운 면과 유혈사태를 가감 없이 사진에 담아냈습니다.
내밀한 일상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소외된 자를 드러내는 예술적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예술과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저항을 실천해 온 셈입니다.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고, 사회에서 바뀌지 않는 것을 바꾸는 것. 정해진 답을 따르는 것은 예술가의 행보와 어울리지 않지만, 낸 골딘이 포착한 기억의 파편들을 보다 보면 '예술가는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물씬 밀려옵니다.
어떠한 행운 또는 불운의 결과로 제게도 권력이 생긴다면, 저도 낸 골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쌓인 기억의 파편으로 저항력의 힘과 크기를 키운 사람,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메시지에 힘을 더하는 사람, 권력을 권력답게 쓰는 사람 말입니다.
⊙ ⊙ ⊙
지금껏 자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지만, 항상 예쁘고 멋진 순간만 포착하려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낸 골딘이 그러했듯이, 있는 그대로의 일상에서 숨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싶어졌습니다. 영향적 감상 끝에, 평소와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으로 가방에 카메라와 삼각대를 넣어봅니다.
One-Liner
예술의 가치는 표현의 자유에서 오고, 표현의 자유는 예술을 저항의 도구로 만든다.
-
- 친구가있습니까?
친구.
내 인생애 있어서 너무 커다란 가치.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차츰 잊고 있던 단어.
돌이켜보면 "나" 라는 존재를 이루어지게 했던 단어. 바로 친구다.
지란지교라는 말을 좋아한다.
《명심보감(明心寶鑑)》〈교우(交友)〉편에 나오는 말로 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향기를 맡지 못하니, 그 향기에 동화되기 때문이고, 선하지 선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절인 생선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악취를 맡지 못하니, 또한 그 냄새에 동화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란지교는 여기서 유래한 성어이다.
우리의 인생은 지초와 난초가 있는 곳의 향이 가득할 때가 있고, 때로는 절인 생선 가게에의 비린내에 절여져 있을 때가 있다. 철이 없을 때 내가 만나고, 어울리는 친구들의 무리의 향을 분별하기 어렵다. 그것이 내게서 나는지 그들에게서 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의 무게가 버거워지고, 작고 커다란 어려움을 통해 조금씩 성숙해지며 어렴풋이 알아간다. 지초와 난초 같은 친구와 절인 생선의 비린내가 가득한 인간들을 조금씩 알게 되고, 조금 더 성숙하다 보면 나에게 풍기는 냄새가 향기인지, 비린내 인지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냄새나는 사람과의 만남이 편한 이 세상에서 조금 더 맑고 깊은 향기가 나는 이들과의 만남을 선호하는 것이 한 인간의 보편적 욕구다.
<영화 내친구 정일우> 중에서..
그런 면에서 내 친구 정일우라고 불렀던 그들이 부러워졌다. 피부색도 다르고, 쓰던 언어도 다르고, 삶과 종교도 달랐지만 영화 <내 친구 정일우>에서 보여준 그의 삶은 지란지교를 바라는 내 삶에 경종을 울렸다. 영화 속에서 정일우 신부님을 보고 이렇게 표현한다.
“사람들은 신부님을 보고 예수를 닮았다 했죠. 하지만 예수의 삶을 몸소 사셨다는 표현이 더 가깝습니다. 당신이 사신 예수는 근엄한 존재가 아니라 고민과 갈등이 많던, 피와 살이 있고 술도 잘 먹고 아무 데서나 잘 주무시던 그런 예수님을 사셨죠”
<내친구 정일우> 중에서...
영화는 정일우 신부님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와 담배를 찾고, 언제나 동네를 돌아다니며 잔치가 있는 날에는 ‘노란 샤스 입은 사나이’를 부르며 술을 즐기던 분. 이 같은 외형적 모습도 독특하지만 그의 삶은 더욱이 특별하다.
대학에서 교수로 살아가며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일부로 찾아간 청계천에서의 가난. 그곳에서 이 땅을 변화시키지 않는 지식인들과 부자들을 향해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이 있다며 그들을 일깨우는 삶을 사셨던 분. 직접 가난에 처해 있으며 그들과의 우정을 위해 일생을 쏟아붓고, 그렇게 살면서 우정의 공동체를 이루어가는데 자신의 소명이라 여겼던 인생.
그는 우정을 위해 애썼다기보다 실제로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우정을 만들던 삶의 족적을 바라보며 한 신학자의 말이 생각났다.
“우정에는 시간이 들지. 서로를 알게 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거든.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고 믿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친구가 되는 데 필요한 모든 시간을 주셨단다.
서로 친구가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법을 배우게 돼.
- 스텐리 하우어워스 "덕과 성품". 49.이 영화는 지금도 지란지교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우정이란 단어의 가치를 소생시킨다, 그리고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묻는 이들에게 생각해볼 여백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친구가 있습니까?
없다면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어주지 않겠습니까?
-
- 이민자 가정이 겪는 정체성 혼란을 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정착한다. 자신에게 익숙한 고향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나라에서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해외로 발걸음을 돌린다. 그 새로운 곳에서 정착하기 위해 이민자의 삶을 택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작은 일부터 시작해 조금씩 수입이 괜찮은 일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 겨우 자리잡을 수 있을 때 즘에 자신의 모습을 보면 이미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들은 이민1세대로 타국에 살아남아 2세들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선사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한다.
처음 이민을 갔던 부모세대들은 그들 자신을 보살피느라 고향에 남은 가족들을 세심히 살피지는 못한다. 늘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 하지만 먼 거리와 당장 해결해야 하는 생계문제 때문에 긴 시간 방문할 기회를 놓쳐버린다. 또한 그들의 자녀들을 챙기는 시간까지 더하면 그들이 느끼는 고향의 거리감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이민간 나라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부모세대 보다는 좀 더 적응이 빠르지만 그들의 삶 내내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 사람의 자녀라면 그는 한국사람 일까, 미국 사람일까. 어쩌면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한번즘은 고민하고 있을 질문이다.
미국내 중국계 이민자 빌리 가족의 이야기
영화 <페어웰>은 미국에서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는 빌리(아콰피나)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다. 빌리는 아빠(트지마)와 엄마(다이애나 린)과 함께 뉴욕에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아직 완전한 독립 생활을 하지 못하는 빌리지만 중국에 있는 할머니(자오 슈젠)와 통화하면서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할머니에게 위로 받으며 기운을 내고 생활해 가던 빌리는 할머니가 폐암으로 몇 개월 내에 돌아가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할머니가 금방 돌아가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할머니 본인에게는 하지 못한다. 할머니 외의 모든 가족들은 죽음의 순간 직전까지 할머니에게 비밀을 말하지 않기로 한다. 영화는 이 상황에서 가족들과 빌리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를 천천히 보여준다.
빌리의 할머니는 두 아들이 있지만 큰 아들은 일본으로, 작은 아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따로 살고 있다. 자식들을 해외로 보내고 20여년이 넘게 중국에서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의 형제와 친척들과 교류하고, 또 해외의 손주들에게 전화하면서 그 외로움을 달랜다. 꽤 외로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가 비추는 할머니의 모습은 시종일관 밝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이 그동안의 외로움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가족들이 중국으로 돌아와 모이게 된 공식적인 이유는 큰 아들의 아들 즉, 할머니의 손자가 결혼식을 하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할머니가 있는 중국에서 하게 되면서 20여년 동안 한 자리에 모이지 못했던 모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다. 결혼식은 아주 기쁜 일이지만 할머니를 제외한 모든 가족의 표정은 아주 어둡다. 할머니에게는 그 결혼식이 정말로 축하하는 집안의 경사지만, 다른 가족들에게는 죽음을 앞둔 할머니의 환송회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게 대조되는 모습 자체가 그렇게 우울해 보이지 만은 않는다. 그 행사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합쳐져 따뜻함과 미소로 돌아온다. 그래서 영화는 죽음을 다루지만 시종일관 따뜻함을 유지한다.
이민자 2세 빌리가 겪는 정체성 혼란
빌리는 할머니와 20여년을 떨어져 살았지만 그에게 할머니는 꽤 소중한 존재다. 늘 자신의 편이 되어주고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할머니가 곧 돌아가신다는 말을 들은 빌리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단 한치의 주저함도 없는 빌리의 모습은 그가 중국에 있는 가족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빌리는 이민자 2세대로써 미국에서조차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자신이 중국 사람인지 아니면 미국 사람인지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또한 빌리의 아버지 세대도 이런 혼란을 겪는 장면이 나온다. 한참 식구들과 식사를 하며 대화하고 있는 중간, 누군가 묻는다. "중국 사람이에요? 아니면 미국 사람이에요?". 빌리의 큰 아빠는 자신은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하지만, 빌리의 아빠는 자신은 미국 여권을 들고 다니므로 미국 사람이라고 이야기 한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고국에서 오랜 시간 떨어져 살게 된 이민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이민자들을 바라보는 주변인의 태도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다. 빌리가 할머니 댁 근처 호텔로 가서 자신의 방으로 갈 때, 짐을 들어주던 직원이 묻는다. "중국이 더 좋아요? 미국이 더 좋아요?". 이 단순한 질문을 빌리는 회피하려 한다. 사실 주변인의 시선에서는 이 질문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되겠지만 빌리에게는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빌리는 중국인이기도 하지만, 미국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직원의 질문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과 동일한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민자들에게는 고국도 소중하고 자신의 생활터전인 국가도 소중하다. 어느 것을 선택해 선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는 그런 상황들을 작은 에피소드 형태로 보여주며 그들이 항상 처하게 되는 난처한 위치를 관객에게 전한다.
동양적 정서와 서양적 정서 사이에서 갈등하는 빌리
영화는 이런 이민자들의 혼란스런 상황을 보여주면서도 분명한 한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바로 가족이다. 빌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지만 그의 할머니에게는 빌리가 미국 여권을 가졌는지 중국 여권을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소중한 손녀이고 가족일뿐이다. 할머니는 영화 내내 빌리를 하나의 가족으로 대한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에게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옆에서 다른 식구들의 밥을 챙기고 손을 잡으며 이야기를 한다. 가족 간 티격태격 하는 상황에서도 할머니는 따뜻한 말로 각자를 설득해 나간다. 이것이 영화 <페어웰>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정서다.
사실 누군가 죽을 병에 걸리면 당사자에게 말하지 않는 행위는 전형적인 동양 정서다. 그것도 아주 구세대의 정서라고 볼 수 도 있다. 물론 지역이나 가족의 특성에 따라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곳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 <페어웰> 안에서는 이것은 꽤 중요한 정서로 인식된다. 그래서 빌리의 가족들은 할머니에게 차마 그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성장기를 보냈던 빌리는 그나마 가족 중 미국적인 정서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일 것이다. 그는 계속 할머니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부모님과 다른 가족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나간다. 하지만 가족 그리고 할머니와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 역시 가족의 전통대로 할머니에게 말하지 않는 결정을 한다. 그렇게 빌리도 그 가족의 일원으로 같은 결정을 내린다.
영화 <페어웰>은 감독인 룰루 왕의 개인적 가족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감독 자신이 중국계 미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왔고, 중국에도 친척들이 있다.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면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영화적 감성을 넣어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완성하였다. 또한 주인공 빌리 역을 맡은 배우 아콰피나는 과거에는 웃기고 재미있는 캐릭터를 연기해 왔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절제되고 슬픔을 억누르는 감성적인 연기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영화는 무엇보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민 가정의 모습을 잘 담고 있다. 어쩌면 자신의 나라에서만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민자 가정의 모습이 어떤지 알고 싶은 관객들이나, 또 가족 내 이민자가 있는 관객이라면 공감하며 볼 수 있는 따뜻한 영화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페어웰 영화 리뷰>
-
- 무수히 생산되는 '나' 속에서 진정한 내 이름을 찾기.
자본과 번호, 이름과 사랑
퇴근하고 잔뜩 지친 몸을 이끌어 지하철에 오른다. 각자의 온도로 하루를 보낸 사람들의 뜨끈한 등과 어깨를 꾹, 꾹 밀며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 본다. 한 정거장 지나자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순간, 당신의 눈이 드물게 번쩍 빛난다. 그러나 옆에서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던 중년 여자가 당신보다 훨씬 빠르게 엉덩이를 붙여버린다. 당신은 미간을 팍 구기고 다시 고개를 숙여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다. 유해한 도파민이니, 뇌세포를 파괴한다느니의 말들은 쓸모없다. 무의미한 작은 직사각형의 세상으로 당신은 있는 힘껏 오늘로부터 도망친다.
결국, 21 정거장 내내 서서 온 당신은 길거리에서도 핸드폰에 눈을 떼지 않는다. 아무리 편한 운동화를 신어도 언덕을 오르는 종아리는 풍선처럼 부풀어 터질 것만 같다. 당신은 길고도 긴 여정 끝에 엘리베이터를 타 버튼을 누르다가 무심코 거울 속 자신과 마주한다. 그 속의 사람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당신의 자리가 아닌) 당신의 자리를 뺏은 중년 여자와 얼굴이 겹쳐지면서, 핸드폰으로 겨우 외면했던 질문이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내가 원래 이런 표정이었나?"
나는 정말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름 모를 여자와 비슷하게 생긴 거울 속 나는 몇 번째 '나'일까?
블랙 코미디 + SF + 우화의 공식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지독히 사실적이면서도 어쩐지 동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블랙 코미디 + 우화' 공식으로 성공한 작품을 말하자면 당연히 <기생충>(2019)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자본과 계급으로 분명하게 나뉜 두 가족의 이야기를 보면 속이 울렁거리면서도 어쩐지 헛웃음이 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폭싹 젖는 감각이 생생한 동시에 몽롱한 동화 같으니 말이다. 한국 SF 장르와 봉준호 감독 세계관에 한 획을 그은 <설국열차>(2013)도 디스토파이 세계관에서 아주 긴 열차 칸으로 나뉜 계급 이야기다. 위와 아래, 앞과 뒤. 뒤집으면 언제든 서로가 될 수 있는 구조. 그는 열과 행의 이미지로 끊임없이 자본주의에 잠식된 현재와 미래를 그리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그의 대표적인 크리처 무비인 <괴물>(2006)과 <옥자>(2017)도 전체적인 세계관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빠질 수 없다. 이렇게 계승한 블랙 코미디 + SF + 우화로 더욱 견고해진 봉준호 감독의 작가 주의 세계관을 통해 <미키 17>(2025)이 세상에 나왔다.
<미키 17>은 지구가 멸망을 앞둔 디스토피아적 근미래 배경이다.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자고 주장하는 이들과 망가진 지구를 어떻게든 고쳐서 쓰자 주장하는 정당의 대립이 이루어지는 혼란함 속에서, 친구 '티모'와 차린 마카롱 가게가 쫄딱 망해 거액의 빚을 진 주인공 '미키'는 빚쟁이를 피해 지구를 떠나려고 한다. 얍삽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티모와 달리 자존감도 낮고 기술도 없었던 미키는 어떻게든 영토 개척 프로젝트 우주선에 탑승하기 위해 모두가 기피하는 '익스펜더블'에 지원한다. 접수를 받는 직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지원서를 제대로 읽었는지 몇 번이나 물어봤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익스펜더블은 진짜 '극한 직업'이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모두 미키를 앞세운다. 우주선을 고치는 줄 알았더니 사실 방사능 실험이었고 끔찍한 고통 속에서 어떻게 몸이 망가지는지 설명해줘야 한다. 4년의 항해 끝에 도착한 얼음행성 '니플하임'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있을 수도 있으니, 당연히 미키가 먼저 땅을 밟고 있는 힘껏 공기를 마신다. 그리고 피를 토한다.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몇 번이고 죽음은 미키'들' 덕분에 다른 요원들도 마음껏 차가운 입김을 볼 수 있게 된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사랑은 꽃핀다. 주변 사람들의 무시와 일상에 도사리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미키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나샤'의 사랑이다. 미키는 어떤 상황에서도 늘 곁을 지켜주는 나샤를 사랑하면서도, 최고의 요원인 그녀가 왜 하찮은 자신을 사랑하는지 의문을 품으며 그녀를 내조한다.
그날도 17번째 미키는 추락사로 몸이 반토막이 나 죽었어야 했는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얼떨결에 살아남아 지나가던 티모에게 구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티모는 떨어진 무기만 챙기고 다친 그를 향해 재수 없는 질문만 툭 던진다.
"죽는 건 어떤 느낌이야?"
그렇게 덩그러니 남은 미키는 행성의 주인인 '크리퍼'에게 잡아 먹히며 최후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크리퍼는 잡아먹긴커녕 미키를 질질 끌고 가 얼음 동굴 밖으로 내보낸다. 크리퍼가 자신을 눈밭에 던져 얼려 죽일 작정이라고 생각한 미키 추위에 떨며 힘겹게 함선으로 돌아온다. 잔뜩 지친 몸을 침대에 내던지는 순간, 어떤 인기척에 이상함을 느끼고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또 다른 자신, 미키 '18'과 마주한다.
복제의 사이클
'익스펜더블'은 사뭇 다른 원작과 영화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지금까지의 '복제 인간'과 다른 점은 미키가 자신이 익스펜더블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이것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징그럽고 코믹한 정치인 마샬 부부의 영토 개척지 정책의 핵심은 좋은 유전자로만 구성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몇 번이나 복제된 미키는 불량품에 불과하다. 나샤와 카이, 과학자 도로시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도 미키가 느낄 고통과 죽음을 경시한다. 죽음에 대한 무례한 질문을 던지고, 누구도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살피지 않는다. '그게 네 쓸모고 직업이야.'라는 폭력적인 말 한 마디면 미키마저도 고개를 끄덕이니까. 과학자와 의료진도 처음엔 프린팅 되는 몸을 잘 받아줬지만, 나중에는 바닥으로 꼴사납게 떨어져 구겨진 몸에 주사 바늘을 꽂을 뿐이다.
시체, 쓰레기 등 자본과 사회의 찌꺼기는 모두 '사이클러'에 던진다. 용광로처럼 생긴 사이클러는 단순히 쓰레기를 소각하는 게 아닌, 단백질을 다시 분해하고 재생산해서 다음 미키를 만들어내고 선원들의 식사가 된다. 익스펜더블이 아닌 인물들도 자기도 모르게 이 사이클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셈이다. 미키는 끊임없이 소각되고 다시 출력되며, 권력에 의해 멸시받는 노동자들의 응집된 몸이 된다.
꼭 프린터기에 들어가야만 복제 인간의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마샬 부부는 특히 우수한 가임기 여자 요원들에게 관심이 많다. 그들이야말로 자신들의 원대한 계획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궁, 아니 열쇠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샬 부부를 향한 카이의 날카로운 질문처럼 그들에게 여성은 다른 의미의 '인간' 프린터다. 인류 번식과 자신들의 부를 위해 끊임없이 노동자를 출산할, 인간이지만 프린터의 역할을 해줄 존재들인 것이다. 그래서 크리퍼와 인간의 첫 대면에서 미키가 아닌 제니퍼가 죽었을 때 추악한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카이와 제니퍼가 연인 사이인 줄도 모르고, 여성이라면 당연히 남성과 결합해 아이를 생산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거란 편견도 끼얹으며 말이다.
다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일파 마샬은 이상하리만치 '소스'에 집착한다. 살아있는 베이비 크리퍼의 꼬리를 잘라 바로 믹서기에 갈아버리는 장면은 경악스럽다. 굳이 손가락에 찍어 맛을 보라고 권유하고, 배양육인지도 모르고 게걸스럽게 고기를 먹는 미키에게 메인 디쉬가 아닌 소스 맛이 어떤지 묻는다. 이렇듯 소스는 일파가 강력하게 표현하는 권력의 상징이자 일개 노동자들과 자신의 차이다. 효율을 위해 정해진 칼로리 안에서 구역질 나는 음식을 먹는 게 아닌, 맛과 건강을 추구하고 음미하는 삶이 최고의 권력인 것이다. 미키를 공개적으로 무시하긴 하지만, 마샬 부부의 눈에는 다른 노동자들도 비슷하다. 노동자 1, 노동자 2, 비위를 잘 맞추는 노동자, 말을 안 듣는 노동자. 선원들은 자신들을 미키와 달리 분명한 이름과 존엄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겠지만, 부부의 시선에선 언제든 대체 가능하고 휴지 조각 같은 존재들일뿐이다. 생존을 인질로 잡고 있는 자본의 힘이 있는 한 사이클러는 무엇보다 뜨겁고 부지런히 권력을 위해 움직인다.
인간보다 나은 크리퍼
’Creepy’에서 유래된 이름인 ‘크리퍼‘는 마마 크리퍼를 중심으로 완전한 공동체 생활을 한다. 인간의 시선에선 낯선 외형이 두렵고 징그럽긴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니플하임에 마음대로 정착해 들쑤시고 다니는 인간이야 말로 외계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저 이름도 꽤 무례하게 느껴진다.) 애초에 크리퍼들은 인간을 잡아먹는 생명체도 아니었고, 유일한 친구인 티모마저 외면한 위험에 빠진 미키를 구해준다. 미키는 크리퍼의 의도를 완전히 오해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나샤는 '크리퍼가 구해줬다'라고 정확하게 짚어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2000)를 본 사람들이라면 크리퍼를 보자마자 ‘오무’가 떠올랐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 나라와 나라의 대립을 그린 영화로 주인공 ‘나우시카’가 전쟁을 멈추기 위해 오무 무리들과 소통하는 장면은 미키가 통역기를 사용해 크리퍼에게 곧 가스가 살포될 테니 도망치라고 알리는 장면과 비슷하다. 크리퍼가 본격적으로 서사에 등장하는 시점부터 영화는 어쩐지 애니메이션처럼 보인다. 이러한 지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장르 믹싱 기법이 눈에 띈다.
크리퍼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소통하며 정보 공유가 가능하다. 미키의 이름도 잡혀있는 베이비 크리퍼 ‘조코’를 통해서 들었을 것이다. 마마 크리퍼는 외형이 똑같은 두 베이비 크리퍼의 이름을 정확히 구분한다. 죽은 아이는 ‘로코’, 잡혀 있는 아이는 ‘조코’. 마마 크리퍼를 중심으로 하나의 정신을 공유하지만, 그들은 명확하게 각자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으며 공동체가 힘을 합쳐 움직여야 하는 순간이 언제인지 잘 알고 있다. 외형도 전부 다르고 고유한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치환되는 인간들이, 정작 동료가 위험에 빠진 순간 힘을 합치는 이들은 지극히 소수라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아마 미키가 크리퍼였다면 마마 크리퍼는 단순히 그의 이름에 번호를 붙여 구분하는 단순하고도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익스펜더블이라는 비윤리적인 직업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고, 더 앞서 삶의 터전인 행성을 그렇게 오염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역사를 넘나들며 과학적,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으니 당연한 대가라는 말은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받은 만큼만 되갚고, 선의를 보이는 이에게는 관용을 베푸는 태도. 이러한 크리퍼의 자세에서 우리는 진작 갖추어야 할 인간성을 배운다.
나를 마주하기
영화는 미키 ‘17’과 미키 ‘18’이 대면하면서 본격적인 위기에 닥친다. 미키 18은 지금까지 누적된 미키의 정보를 다운로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키 17과 완전히 반대의 성격이다. 뭐만 하면 죽여버린고 말하며 높은 폭력성을 띄고, 대책 없이 충동적이며, 엄청 밝힌다. 17은 자신을 가차 없이 죽이려는 18과 몸싸움을 하면서 나샤에게 전해 들었던 지금까지의 미키와는 차원이 다른 녀석이라는 걸 실감한다.
시간을 앞당겨 익스펜더블이 윤리적 논란에 휩싸였을 때로 돌아가본다. 악용하는 사람이 생길 거라고 주장하자마자 한 미친 과학자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위해 '멀티플'을 만들어 노숙자를 죽인다. 둘도 아니고 셋이나 만들어 무고한 이들을 잔인하게 죽인 사건을 계기로, 익스펜더블은 공식적으로 지구 안에서 시행이 금지되며 멀티플은 중범죄가 된다.
다시 돌아와 미키 18을 죽이려고 나름 노력해 보는 미키 17의 눈을 보자. '또 다른 나'와 처음 마주한 그는 이제 곧 세상에서 사라지고 죽을 거란 공포와 자신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다는 놀라움, 혼란 등에 빠져 제대로 대항하지 못한 채 몸이 반쯤 사이클러 속에 들어간다. 반면, 미키 18은 17에 대한 확실한 반감이 있다. 거울을 보듯 겁에 질린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모습에 17은 더 혼란스럽다.
비슷하지만 미세한 차이점이 있는 얼굴로 나란히 서있는 둘의 모습은 마치 자아 분열의 가시화된 것 같다. 얼음 동굴에서 무심코 쓰레기를 버리듯 던진 티모의 질문은, 실험쥐처럼 수없이 이용당하는 미키의 내면에 잠들어있던 자기 방어와 누적된 폭력성을 발현시킬 트리거로 작용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미키 17이 처음으로 욕하고 분노하는 존재가 18이라는 점이다. 처세술에 강하고 얍삽한 티모를 비꼬는 발언은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부당함을 주장하거나 무례함에 대응한 적 없던 미키 17은 나샤에게 접근하는 또 다른 '나'를 향해 화를 참지 못한다. 심지어 마샬 부부와의 만찬에서 입에 올리지도 못할 끔찍한 고통과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7이 씩씩 거리는 대상은 다름 아닌 18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호기심에 빨간 버튼을 눌러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미키는 죄책감에 모든 우선순위에서 자신을 제외한다. 17의 이러한 위축된 태도는 18의 화를 키운다. 만찬에 초대해 놓고 실험 중인 배양육을 먹인 것도 모자라, 타인의 목숨보다 카펫이 소중한 부부에게 뭐라고 하고 나왔냐는 질문에 17은 작은 목소리로 답한다.
"저녁 식사 감사하다고... 하고 나왔어."
그런 수모를 겪고도 감사하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냐고 불같이 화를 낸 18은 당장이라도 케네스를 죽이겠다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정말 그를 향해 망설임 없이 총구를 겨눈다. 폭발하는 공격성이 온전히 '나'를 지키기 위해 표출될 때, 관객은 17을 향한 18의 반감이 애증이었음을 깨닫는다. 생각해 보면 미키 18은 17과 대치하던 중 티모를 보자마자 사이클러에 던져 죽이려 든다. 비록 분열된 두 사람이지만 미키가 처음으로 자신을 지키려고 시도한 순간이었다.
내가 너라서 알 수 있는 열등감과 자기혐오, 그리고 트라우마. 빨간 버튼 따위로 사고가 날 만큼 자동차를 엉망으로 만든 회사 잘못이라는 18의 말은 평생 미키가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그는 무모하고 폭력적인 또라이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용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뻔해도, 결국 우리를 구하는 건 사랑
서로 으르렁 거리는 17과 18 사이에서 혼자 신난 사람은 다름 아닌 연인 '나샤'다. 지금껏 다양한 미키를 봐온 나샤는 정반대 성격의 두 미키를 보며 굉장히 흥분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신날 수 있냐는 미키 17의 질문에 그녀는 '반대 상황이라면 너도 나처럼 좋아할걸?'하고 가볍게 받아친다. 멀티플인걸 숨겨줄 테니 미키를 나누자는 카이의 말에는 불같이 화를 낸다. 16이든 17이든 18이든, 나샤에게 미키는 오로지 단 한 명이니까.
나샤는 엉뚱한 면이 있지만, 인정받은 소수 정예 엘리트 요원으로서 단단한 내면과 외면을 갖춘 인물이다. 미키는 다방면에서 월등한 그녀가 대체 왜 가장 낮은 계급인 자신과 사랑을 나누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바이러스와 각종 실험으로 죽어가는 미키를 두고 볼 수 없던 그녀는 직접 진공복을 입고 실험 캡슐 안으로 들어간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자는,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서 희생하는 자를 돌본다.
베이비 크리퍼를 구하기 위해 몸이 묶인 채 이로 밧줄을 잡은 나샤는 미키에게 신호를 받고 'C3' 전략을 펼친다. C3는 아기를 안는 것 같은 자세로, 미키와 나샤의 섹스 체위 중 하나이다. 칼로리마저 철저히 계산하고 먹어야 하는 우주선 안에서 섹스는 가장 비효율적인 에너지 활동이다. 마샬 부부는 생존을 빌미로 니플하임에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 섹스를 금지시키지만, 그들은 장난으로 체위를 그려가며 계속 몸을 겹친다. 나샤가 미키의 전략으로 베이비 크리퍼를 구해 눈밭을 달리는 장면은, 그들의 섹스가 결여된 존중과 냉소적 자본주의로 만들어진 노동과 권력보다 더 가치 있음을 증명한다.
케네스와 대치하던 18은 기어코 죽음의 순간을 마주한다. 그의 눈에서 두려움을 읽은 케네스는 그런 감정이야 말로 인간성의 증거라고 자극한다. 그러나 미키 18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나샤와 함께 서 있는 미키 17을 보며,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이름을 불러줄 사랑이야말로 지금 모두에게 필요한 본성이라는 것을. 뒤에 붙는 거지 같은 숫자 따위는 집어치우고 미키 '반스'라는 이름을 되찾기 위해, 지금까지 그들을 괴롭혔던 동그란 버튼을 꾹 누른다.
거대한 스케일의 SF 영화로 봉준호 감독은 사랑을 말한다. 너무 큰 서사와 화제성에 비해 작은 주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만 더 고민해 보자. 사랑이 조금 뻔하긴 해도, 작았던 적은 없다. 우리는 언제부터 나를 사랑하는 것도, 너를 사랑하는 것도 식상한 말처럼 느껴져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나? 무수한 호칭에 짓눌려 더미 속에 묻혀버린 내 이름을 건져 먼지를 툭툭 털어주고, 어쩐지 낯선 내 얼굴도 한 번 바라보자. 그리고 힘이 남는다면 아끼는 이들의 이름도 찾아 숫자는 치워버리고 광이 나게 닦아보자. 미키와 나샤, 크리퍼의 사랑으로 우리는 그 가치를 배웠으니까.
무수히 생산되는 '나' 속에서 진정한 내 이름을 찾기
-
- 【결말포함】어른은 없다, 주름진 아이만 있을 뿐
#기쿠지로의_여름 #스포일러_없는 #리뷰
최신 일본 영화를 리뷰하고 추천합니다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을 소개합니다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제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4. 함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연락처
adonai0919@gmail.com※ 트위치
https://www.twitch.tv/sura_chtr※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writer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
- 내 친한친구의 아침식사 - 양산형 대만 청춘 멜로영화
-
“가슴이 두근대는 느낌 알아?”
세상 종말이 와도 먹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귀요미 먹방 요정, 웨이신
좋아하는 친구에게 1년 동안 아침 조공을 하는
댕댕이 조공 소년, 요우췐
“나는 1년 동안 절친 앞으로 온 아침 조공을 먹었다”
절친에게 아침 조공을 바친 친구와 사랑에 빠질 확률은?
러블리 먹요정 + 댕댕이 조공 소년 = 첫사랑 먹방 로맨스♥
-
- 영화 <잘리카투> 티저 예고편
폭주하는 물소, 광기 어린 인간들, 진정 누가 짐승인가?
푸줏간(도축장)에서 도망친 물소가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닌다. 마을 남자들은 폭주하는 물소를 잡기 위해 나서고 이웃 마을 남자들까지 몰려들자 한바탕 대소동이 벌어진다. 평화롭던 마을은 물소를 제압하려는 남자들로 인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버리고, 인간과 짐승의 구분이 사라져 버린 물소 사냥은 점차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광기로 변해간다.
※ 잘리카투(또는 살리카투) JALLIKATTU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의 수확축제인 퐁갈에서 진행하는 전통있는 집단 경기다. 황소를 남자들 무리 속에 풀어놓으면 참가자들은 황소의 등에 올라타서 최대한 오래 버티거나 소를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는데, 이 과정에서 살벌한 장관이 펼쳐진다. 리조 조세 펠리세리 감독의 <잘리카투>는 잘리카투 경기를 묘사하는 영화는 아니다. 확실히 그렇다!
-
- 영화 <듄> 메인 예고편
10191년,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인 폴(티모시 샬라메)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과거와 미래를 모두 볼 수 있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유일한 구원자인 예지된 자의 운명을 타고났다. 그리고 어떤 계시처럼 매일 꿈에서 아라키스의 행성에 있는 한 여인을 만난다. 아라키스는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인 스파이스의 생산지로 대가문 세력들의 음모가 격돌하는 전쟁터. 귀족들이 지지하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에 대한 황제의 질투는 폴과 그 일족들을 죽음이 기다리는 아라키스로 이끄는데…
두려움에 맞서라,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라! 이것은 위대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