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수2021-06-04 16:02:23
왜인지 공감되는 극한의 광기
사랑 없는 숲 리뷰
경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소노 시온 감독이 이렇게 미친 감독인진 몰랐다. 필모그래피를 본 뒤에도 이런 느낌이 들었지만,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사랑 없는 숲>을 보고 이 느낌에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것 하나 안 미친 게 없다. 영화의 모티브인 키타큐슈 연쇄 살인사건부터 그렇다. 이 사건은 타인을 시켜서 자행했던 살인과 시체를 분해해서 인적이 드문 곳에 버리는 잔혹한 시체 처리법으로 이름을 날린 적이 있었다. 얼마나 잔혹했던지 보도도 금지되었을 정도다. <사랑 없는 숲>은 이 범죄 행각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그 탓에 불쾌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폭발한다. 그것들이 극한의 광기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럼에도 <사랑 없는 숲>은 혐오감 대신 그것들을 공감하게 되는 신기하고 요상한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의 이야기는 무라타 조(시이나 킷페이)가 레스토랑에서 X표가 잔뜩 쳐진 여학교 앨범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때 남자는 직원에게 살인을 할 때의 기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침 그 때 TV에서는 어떤 숲에서 자행되었던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편 도쿄로 상경한 신(마츠시마 신노스케)에게 영화를 찍어 성공을 노리는 몇몇 청년들이 접근한다. 마침 신이 여자 경험이 없다는 걸 안 그들은 타에코(히나미 쿄코)를 통해 미츠코(카미타키 에리)를 소개 받는다. 그런데 그녀가 무라타와 사귄다는 사실을 안 미츠코는 무라타를 경계하라고 말하고, 친구들과 함께 무라타의 악행을 폭로하는 영화를 찍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무라타와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실화대로 무라타에게 빠져들고 점점 잔혹하게 변하고 만다.
왜 이들은 이렇게 바뀌었는가. 단지 무라타의 사기적인 말발과 잔혹한 처사만으로는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낼 수 없었다. 대신 이들에게는 무라타를 믿을 수밖에 없을 만큼 심리적으로 몰려 있는 모습, 아니면 그 잔혹성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노리려 했던 모습이 혼재되어 있다. 이 모습을 통해 무라타에게 빠져든 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미츠코는 억압된 가정 환경 속에서 자라왔고, 자신의 여학교에서 사랑해왔던 여자를 사고로 잃어버린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무라타를 이용하려는 계획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게 결말에서 밝혀진다. 무라타를 소재로 영화를 제작하려 하다가 무라타의 덫에 걸린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성공에 목마른 그들에게 무라타는 매력적인 피사체였을 테니까.
<사랑 없는 숲>에 짙게 드리워진 극한의 광기를 들춰보면 이처럼 일그러진 믿음이 근원으로 자리잡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1차적으로는 잘못된 믿음의 근원인 무라타에 대해 책임을 돌린다. 그러나 그와 함께 무라타에 대한 성찰 없이 그 표면적인 모습에 동조하는 사람들에 대해 지적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이상한 착각에 빠져 살았던 것이다. 미츠코가 여학교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 로미오 역할을 했었던 여학생이 자신을 사랑했다고 믿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영화 내내. 그 잘못된 믿음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죽게 만드는 역사를 누누이 만든 점은 더 지적할 필요도 없으리라. 결국 내가 <사랑 없는 숲>에 공감한 이유는 이 속의 광기가 <서스페리아>처럼 현실 속의 광기를 과장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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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후회, 미련, 아쉬움, 기대, 그리고 헤어질 결심
어느덧 꾸준히 글을 쓰기로 한 지 1년 가까이가 되고 있다. 어찌 보면 영화평론가라면 평론가인 나다(무려 내가 쓴 글로 돈 받아본 적 있음). 사실 이 아이디어를 주위의 그 누구에게도 받지 않았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에 덧붙여서 한 것뿐이다. 그러니까 난 세상이랑 대화하려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이 영화라고 하는 것이라면 꾸준히 뭔가 세상과 대화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그래도 세상 사람들 다수에게 설명할만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있구나!'라는 걸 눈으로 보는 건 참 즐거운 일이었다. 그런데, 가끔 이야기보다 영화가 더 중요한 작품을 몇 번 만난다. 작년엔 <드라이브 마이 카>, <노매드랜드>, <당신얼굴 앞에서>, <소울>이 그랬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소설가의 영화>나 <우연과 상상>이 그럴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지만 사실 수다 떠는걸 더 좋아하는 쪽에 가까운 나. 장르적으로 엄청난 영화를 보고 느끼는 소름보다 반응이 좋은 것에 행복해지는 나라 가끔은 이게 일 같이 느껴진다. 뭐 실제로 그런 축에 속하기도 하겠지? 회사도 잘되고 나도 잘되면 그게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일일 테니.
그리고 2022년 6월 29일, <헤어질 결심>의 개봉날이 왔다. 어떤 말을 해야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을까? 뭐 영화에 대한 불호 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나에게 있어 강하게 압박하는 듯한 영화였다. 사랑에 대한 섬세한 묘사, 치밀한 감정, 각본의 완성도까지 이 영화는 글로 쓰는 게 두렵다고 느껴질 정도로 걸작 중 걸작이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고 그렇게 느꼈었다. 근데 이 영화는 그 마음이 더 커진 채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글 쓰는 게 무섭다. 내가 다 담아내지 못할까 봐; 또 이 영화를 보고 먼저 생각나는 것은 주위 사람들과 감동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었다. 글 때문이 아니라 영화가 먼저 생각난 셈이다. 2022년 여름, 칸을 경유해 우리나라에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깐느박'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산에서 사람이 죽었다. 이 살인 사건에 형사가 출동했다. 동료이자 부하인 수완과 함께 등장한 해준. 피해자는 등산을 좋아하는 공무원 출신의 아저씨다. 높은 바위에서 몸이 두 번 부딪혀서 사망한 게 사인이었다. 수사를 지속하는 해준과 수완. '굳이 이렇게 해야 할까?'라는 말이 무색하게 해준은 우직한 사람이다. 무얼 하든 책임감이 있는 해준. 경찰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용의자를 하나둘씩 찾아보려 한다. 그런데 막상 용의자라고 할 사람도 한 명 밖에 없었다. 피해자 기도서의 아내였던 서래. 기도서는 서래에게 그렇게 좋은 남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기도서는 자기 물건에 이니셜을 새기곤 했는데, 아내 서래의 몸에도 그 인장을 박아놓았다. 또 가끔 손찌검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게 이유인가? 서래는 남편의 죽음에 단 조금도 개의치 않는 느낌이다. 무덤덤한 서래. 해준은 이상함을 느낀다. 베테랑 형사의 촉이 발휘되는 것 같다. 이상한 게 있어. 용의자 심문을 통해 한 두 마디 나누는 서래와 해준. 해준은 다시 한번 촉이 왔다. 이 여자, 뭔가 있다.
이 '뭔가 있다'라는 촉은 금세 행동으로 이어졌다. 차와 망원경 하나를 가지고 서래를 미행하는 해준. 먼발치의 아파트 밖에서, 그리고 차 안에서 서래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수면장애가 있는 게 도움이 됐나? 밤에 잠들 틈도 없이 서래를 미행하는 해준. 원전에서 일하는 아내를 뒤로 한 채, 해준은 미행에 형사 일에 몰입하게 된다. 이 호기심과 관심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스마트워치에 일기처럼 서래의 행보를 저장하는 해준. 근데 서래도 이상하다. 해준이 자기를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놔두기 시작한다. 마치, 무언가 결심한 사람처럼. 이 둘의 사랑은 그렇게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진행됐다. 멈추기엔 너무나도 멀리 온 상황 속에서.
필모그래피가 갖고 있는 장점 그대로
박찬욱 감독이 워낙 유명하신 분이다. 한국영화의 팬이 아니더라도 <올드보이>는 한 번쯤 보지 않았을까 싶다. 이 작품으로 국제적으로도 유명해졌으니 <기생충> 이전에 한국영화는 박찬욱 감독이 어느 정도 이끌었다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왜 인기가 많았나?라고 생각하면,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초반부 특정 인물의 자해, <올드보이>에서 장도리 액션신, <친절한 금자씨>에서 '너나 잘하세요', <박쥐>에서 '해피 버스데이, 태주 씨'까지 박찬욱은 아름다운 장면을 넣어 관객의 머릿속에 오래오래 남게 하는 것에 특화된 인물이다. 이때 기억에 남게 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올드보이>처럼 인물에게 감정 이입시켜 후반부에 폭발하는 에너지도 가능할 것이다. 또 <박쥐>처럼 색감을 잘 활용할 수도 있고 <복수는 나의 것>처럼 무미건조함으로 극을 시종일관 이끌 수도 있다. <친절한 금자 씨>에서 이영애 배우에게 그런 에너지를 만든 것도 감독의 장점을 새기는 훌륭한 디렉팅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이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장기가 전부 들어갔다. 우선 대사를 잘 썼다. 일단 이 영화를 다양한 매체에서 검색하면 '마침내'라는 단어가 주요 한줄평에 들어간 것을 볼 수 있다. 이 '마침내'라는 단어, 처음 서래의 입에서 나올 때 이질감 느껴진다. 금세 <종이의 집 : 공동 경제구역>이 생각난다. 직접적인 대사와 이질감이 드는 대화 톤이 단점으로 발현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게 나쁜 건 아닌데 아쉬운 감은 있다는 뜻이다. 이 '마침내'라는 단어는 위 드라마와는 다른 방식으로 쓰였다. 영화 이야기 전개는 익숙하면서도 굉장히 색다른 방식이라 '마침내'라는 결론을 내기 충분하다. 어찌 보면 엥? 싶은 대사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가 된 셈이니 정서경-박찬욱 두 사람의 설계가 꼼꼼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엔딩으로 달려가는 힘은 어마어마하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썼지만 '마침내'라는 단어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그렇게까지 이야기 전개가 빠른 편은 아니다. 얼핏 보면 서래와 해준이 알듯, 말듯하게 마음을 꺼내 보이는 장면의 연속이다. 이 두 사람의 미묘하게 꺾이는 감정선의 힘이 영화의 후반부까지 이어지며 잉크가 서서히 퍼지듯 영화에 녹아들게 된다. 뭐 사람에 따라 어떤 영화의 이야기가 빠르다 느리다 주관적으로 갈릴 순 있겠으나, 중후반부까지 달달했던 영화의 이야기가 후반부까지 전력질주로 달리며 강력한 에너지로 치환되는 느낌마저 든다. 이는 <올드보이>에서 하이라이트 신을 위해 오대수의 입장이 변화되는 부분이나 <복수는 나의 것>에서 잔잔하고 심심한 듯 하지만 오히려 이게 관객에게 압박 비슷하게 작용하는 지점이 감독의 특장점이 발휘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박해일-탕웨이 두 배우의 퍼포먼스 역시 탁월했다. 일단 해준 역을 맡은 박해일 배우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 서래가 중국인이고 한국어가 서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상대가 말을 이해하기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패널티가 있다. 근데 이건 우리 관객에게도 적용된다. 관객이 보기에도 '이 사람이 정말 서래에게 마음을 열고 있구나'라고 느낄만한 순수한 비주얼이 장점이 되어 극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눈빛 하나, 행동 하나가 정말 사랑에 빠진 인간이라고 보기 충분하다. 극이 진행되면 될수록 이 사람의 입장 헤처 나가기는 점점 난이도가 올라간다. 이를 소화하는 좋은 연기였다. 또 탕웨이 배우의 연기는 전 세계에서 이 사람만 가능한 연기다. 목소리 톤, 어쩔 수 없는 마음을 맞이하는 인간, 역시 로맨스 영화의 여주인공까지 우리가 탕웨이라고 기억하는 이미지에서 한 단계 스탭업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아마 우리나라 영화 팬들에게 탕웨이 배우의 인생작으로 기억에 남지 않을까? 하는 연기였다. 이 부분(서래의 캐릭터성)을 설명하는 건 영화에 굉장히 중요해서 직접 보시는 걸 추천한다. 그녀의 입장을 견지한 채로 그에 맞게 영화를 봐도 이 작품은 걸작이다. 아, 두 배우 말고 다른 분들도 연기 잘했다. 특히 김신영 배우 인상깊었다. 취조하는 신 멋있었다. 일단 표정부터 '나 이 영화 피해 안 끼치게 잘해야 함'이 묻어나와서 귀엽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의 말대로 이 천재는 영화 판에서 자주 쓰여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시 중요한 건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수도 없이 봤던 미장센의 힘이다. 초록색, 빨간색, 파란색의 3색이 영화의 중요한 메타포로 작용하고 있다. 산속에서 낑낑대며 등산하는 장면, 서래의 집 벽지, 해준의 집 벽지, 바다 두 곳, 석류 자르는 모습, 통역 앱 등등 영화 장면 장면마다 장인의 손길이 한 땀 한 땀 들어가 있다. 또 메타포도 적절히 들어간다. 일단 위치에 의한 비유다. 위에 누가 있고, 아래에 누가 있는지를 염두하고 보시면 영화의 감상이 넓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언어에 대한 비유도 상징적이다. 언어가 다르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감독이 뭘 보여주고 싶었을까?를 생각해보시라. 이 아이러니에서 오는 감정이 여러분도 마음속에 깊이 남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님은 갔지만 난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영화가 탁월한 또 다른 지점은 제목에서 온다. 제목을 잘 짓기도 했지만,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헤어질 결심>이라는 마음 그 자체다. 내가 경험하거나 주변인에게 들었던 사랑 이야기는 참 헷갈린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날 사랑했을까? 아닌가? 그 사람에게 나는 도구였던 걸까? 아니면 잠깐 불탔던 무책임함일까? 이 얄궂은 마음의 엇갈림은 인간에게 오랜 과제처럼 남는다. 정말 사랑했을까?
이 영화는 이 엇갈림을 묘사하는데 탁월한 강점이 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 이거 설명할 수 있을까? 할 수는 있다.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 공통점이라는 것도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2022년 6월 29일 18시 10분에 사랑에 빠짐'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공통점이 이거여서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말할 수는 있겠지. 근데 둘의 입장이 정확히 딱 떨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사랑은 이런 것이다. 서로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잘 모르는 것. 심지어 첫눈에 반한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공통점을 보고 사랑이 깊어지는 경우가 다수였다. 그 깊어진 사랑을 재확인하는 방법은 '우리 서로 사랑하는 거 맞지?' 식의 배타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근데 무슨 솔로몬도 아니고 그걸 일일이 직접 다 잴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모호함이 사랑이 주는 낭만과 비극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이 알듯 말듯한 마음의 차이점을 꼼꼼하게 묘사한다. 어떻게? 듬성듬성 설명하는 방식으로. 가타부타 설명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 설명을 일일이 다하고 서래가 얼마큼 이쁘고 해준이 얼마나 착하고 구구절절이 다 쓰면 재미가 없다. 영화에서 해준-서래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영화에 제시되는 장면이 전부다. 그냥 단지 감정선만 따라가는 형식으로 오히려 영화가 완벽한 설명을 성사시키는 셈이다. 이 '듬성듬성 보여줘서 완벽한 설명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보지 않은 분들이 극장에서 확인하시면 좀 더 폭넓은 감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마음의 엇갈림'이라는 모티브를 작품이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는 각자가 보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다.
찰싹 달라붙는 각본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미장센의 힘을 강점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느꼈다. 실제로도 장면 전환이나 촬영 구도나 우리나라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 함이었다. 그러나 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직도 그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왜 <헤어질 결심>일까. 이 영화는 굉장히 외로운 방식으로 그 모든 것들을 설명해낸다. 그리고 그 외로운 설명 방법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마침내 행복한" 결론으로 마무리짓는다. 이 아름답고 품격 있는 사랑 이야기는 여러분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으로 이끌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서래의 사랑에 빠져버렸다. 난 이 영화를 나이가 들어서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이는 각본이 갖고 있는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아카데미에서 볼 수 있기를
이 영화로 칸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의 팬으로서 경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오래 기다려서 봤다. 솔직히 아쉽다. 감독상도 큰 상인데, 심사위원대상이나 황금종려상까지 받을 만큼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아카데미를 기대하고 싶다. 글쓴이는 충분히 국제영화상을 비롯해 작품상이나 감독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걸작이라고 봤다. 이 영화는 사랑했기 때문에 남겨있던 감정 모든 것을 괄호 치기의 미학으로 설명한다. 이런 사랑영화는 본 적이 없다. 걸작이다. 내가 생각하는 박찬욱 감독의 최고작이다. 그리고 이는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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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꽃은 크리스마스 눈처럼 자유의 씨앗을 흩뿌렸다,
출처 : CGV
우리는 서로 적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이었다!제2차 세계대전, 인도네시아 자바섬.무사도 정신을 맹신하는 일본군 대위 요노이는포로수용소에서 영국군 소령 잭 셀리어스와 마주하게 된다.사형 직전의 잭을 자신의 수용소로 데려온 요노이는알 수 없는 매력에 끌리면서도 그의 자유분방한 태도에 끊임없이 갈등한다.한편, 유일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영국군 중령 존 로렌스는영국군과 일본군, 양측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하지만,수용소의 분위기는 점점 격화된다.전쟁의 포로이자 인간으로서의 모습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들.과연 전쟁터 한가운데에서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일어날 수 있을까?/
우선, 이 영화를 있게 한 제목과 대표곡에 드러나 있는 '크리스마스'라는 키워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중심 메타포가 아니다. 물론 크리스마스 자체의 상징성에 기대어 주요한 메시지가 더욱 강조되는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나는 이 영화를 알기 전부터 대표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수도 없이 반복해 재생한 기억이 있었고, 어린 시절임에도 곡의 멜로디를 들으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오고는 했다. 그리움, 슬픔? 그렇다면 무엇이 그립고 왜 슬픈 것일까? 지금에 와서는 쉽게 떠오르는 질문도 만들어내지 못할 정도로 미성숙했던 그때의 나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이 곡이 지닌 수많은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출처 : CGV
국내 첫 정식 개봉인만큼, 리뉴얼된 포스터는 심하게 아름다웠다. 색상의 혼합을 활용한 것도, 약간은 빛바랜듯한 배경의 질감도, 철조망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특정된 두 장면이 가지는 의미도. 작품을 직접 감상하기 전부터 직관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려 취향이 아닌 '전쟁'이라는 소재에 매력을 느낄 정도였는데, 감상한 후에는 그 마음이 더 커져 서울에서 파주까지 보위의 개인 포스터를 얻으러 가기도 했다. '전쟁', 나는 전쟁이라는 특수성 짙은 배경으로 소재를 갖는 영화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인간성이 보장되지 않는 극단적인 상황이기에 잔인한 장면이 동반되고 근본적인 불쾌감을 일으키는 부분을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포스터 디자인에 홀려 보러 갔을까? 아니다. 83년도에 제작된 영화가 지금까지 회자되고 정식 개봉을 이루어낼 만큼 부정할 수 없는 어떠한 이유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감상하고 배우는 입장에서, 긴 시간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그 이유를 직접 알아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때마침, 아트나인에서 GV를 진행하는 회차가 있어 전문가들의 설명을 통해 더욱 확실하게 납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리고,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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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장센
필름 특유의 빛바랜, 알록달록한 색감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어 눈이 즐거웠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몇 있는데,
사형 선고를 받기 전 셀리어스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외출 준비를 하고, 누군가와 단조로운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 장면이다. 비인도적인 대우를 받는 숱한 상황들 가운데에서 굳건하게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기억하고 지키는 듯해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의미심장한 노래도, 능청스러운 연기도 매력적이지만 특히 위 사진처럼 담배를 피우는 척하고, 담뱃재를 털고, 바닥에 던져 발로 짓이기는 행동이 바닥에 묻은 흰색 자국(마치 담뱃재처럼 생긴)으로서 한 씬을 완성시키는 흐름이 매우 취향이었다. 정갈한 발걸음으로 프레임 아웃하며 액팅이 마무리되는 일련의 행위들은 예술 그 자체였다.
출처 : CGV
그 직후, 사형 집행을 받는 보위가 결박되고 일본군이 안대를 씌우는 장면이 나온다. 셀리어스는 당당한 눈빛으로 이런 것 씌우지 않아도 된다며 저항한다. 손이 묶여 있는 바람에 고갯짓만으로 그들의 행동을 저지해야 하는데, 그 몸짓과 눈빛이 겹쳐져 보는 이로 하여금 오묘한 감정을 갖게 한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잭 셀리어스'라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그 자긍심이 매력적이다. 셀리어스의 뒷모습이 보이며 사격 개시의 정렬을 맞추는 일본군들의 무빙도 굉장히 정갈하다. 기계의 움직임처럼 군더더기 없는 액팅과 여백을 적당히 활용한 인물의 배치가 심각하게 아름다워 실제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2. 캐릭터
드용&가네모토(맨처음의 두 군인) / 로렌스&하라 / 셀리어스&요노이
극 초반 씬들에서 세 가지 주요 관계성이 모두 제시된다. 두 군인이 지닌 의미는 초반에, 하라와 로렌스는 중반에 드러나며, 셀리어스와 요노이는 후반부에 드러나면서 극의 진행이 마무리되는데, 관계성이 지닌 의의를 제외하고서도 각 캐릭터들의 특성이 굉장히 촘촘하게 짜여 있어 2시간 가량의 스토리가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각자의 서사가 완벽하게 묘사된다.
출처 : 미디어캐슬
우선, 데이비드 보위로서 표현된 '잭 셀리어스'가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너무 미학적이다. 위 사진은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군사재판이 열리면서 공간과 인물의 정보를 동시에 제공해야 하는 복잡한 씬이기 때문에 첫 장면을 롱샷으로 잡았으리라 판단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각 인물에 대해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정보값을 판단하고 앞으로 흘러갈 씬을 파악하게 되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중심에 위치하여 뒷모습만 보이고 있는 보위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출처 : CGV
GV에서 듣기로는 셀리어스 역에 유력했던 배우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너무 여지 없이 잘생긴 외모라서 캐스팅이 불발되었다고 한다. 이후 감독은 보위와의 캐스팅 여부를 결정하고자 하는 미팅 직전, 그의 연극을 먼저 관람하며 그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 속으로 캐스팅을 확정 지었다고 한다. 영화 이전부터 보위가 쌓아 온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그의 외모가 지닌 오묘한 매력을 증폭시켰다고 생각한다.
'요노이'의 첫 등장은 군사재판이 아닌 드용과 가네모토가 일본군에게 잡혀 존엄성을 짓밟히는 장면에서 나온다. 문제에 대해 제대로된 전후상황도 살피지 않고 하라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가네모토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요노이는 마치 '해결사'의 위치처럼 여겨진다. "폭력적인 하라와 달리 요노이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자연스럽게 그렇다,는 답변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요노이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군사재판에서 더욱 굳어진다. 말 안 통하는 극우주의자들과 달리, ‘군사재판’이라는 성격이 뚜렷한 장소에서 차분하고 논리적인 질의응답을 통해 셀리어스를 옹호해주는 씬으로 캐릭터 설명을 대신한다. 그러나 점점 드러나는 그의 실체는 일본의 역겹고 비상식적인 습성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보수적인 아집의 상징인물이었다는 사실에 빗대어, 요노이는 셀리어스에게 특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음을 감독은 꽤나 명확하게 드러내고 강조했다고 본다.
출처 : CGV
셀리어스가 드용의 죽음을 기리는 꽃과 일본군에 저항하는 만두를 배부하고 독방에 수감되면서, 요노이는 매일같이 순찰이라는 명분으로 그를 찾아갔다. 값이 꽤 나갈 것 같은 카펫을 들고. 매일밤 둘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갑작스레 찾아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로렌스와 함께 탈출한 셀리어스는 요노이를 마주하고 왜 물리적인 충돌을 감행하지 않았을까? 불의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언제나 당당함으로 무장한 그가. "나만 이기면 자유인데 왜? 왜 싸우지 않지?" 절망하는 듯한 요노이의 대사에 이어 즐거운듯 미소를 보이고 칼을 내려놓는 셀리어스의 감정이 과연 어떤 형태였을지는 미지수일 것이다.
출처 : CGV
윈체스터 학교 출신의 '로렌스'는 포로로 잡힌 영국군 중 유일하게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 때문에 일본군 주요 인사인 요노이와 하라에게 자주 대화 상대로 불려가고는 한다. 중요한 결정에 있어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영국군의 리더는 로렌스에게 어느 학교 출신인지 물어보고, '윈체스터'라는 대답을 듣고는 비웃음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당시의 '윈체스터'는 귀족으로서 세상 물정 모르고 어딜 가나 아부하는 일종의 기회주의자와 같은 특성을 시사했다고 한다. 따라서 로렌스는 스스로의 신념을 중시하고 굳건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덕목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전장에서 정반대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설정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극중 결정적인 상황에서 옳은 목소리를 내는 건 로렌스 뿐이다. 일본의 악습을 향해 '아닌 건 아니다' 명확하게 반대의사를 펼치는 것도, 셀리어스의 독단적인 행동(그러나 옳은)에 대해 옹호하는 것도, 부당한 대우의 개선을 바라고 행동하는 것도 전부 로렌스이다.
왜 제목도, 극의 플롯도 로렌스를 대상으로 했을까? 보통은 주연 캐릭터와 연관된 장면으로 엔딩 시퀀스를 구성하기 마련인데 그저 조력자인, 혹은 그들만의 개별적인 서사가 뚜렷하게 존재하는 캐릭터로 시작과 끝을 맺었는데도 의미 전달이 확실하고 주연 캐릭터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점이 매우 감탄스럽다.
3. 상징
'상징'은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파트이다. 특정 사물과 상황으로 비유하여 극의 깊이감과 레이어를 더하는 방식은 나에게 보다 강력한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집중할 상징은 당연하게도 '크리스마스'이다. 산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나아가 현대에서는 서로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주고 받는, 누구나 행복감을 느꼈으면 하고 또 그만큼 상대에게 무언가를 베풀게 되는 그러한 날이다. 그렇다면 '전쟁 속 크리스마스'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출처 : CGV
권력을 가장 폭력적으로 휘두르는 하라는 억울하게 독방에 갇힌 셀리어스와 로렌스를 본인의 임의로 풀어준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불러 술에 취해 살짝 들뜬 말투로 'Father Christmas(파더 크리스마스)'를 언급한다. 말그대로 '산타'이다. 박애주의와 인류애의 상징, 산타가 되고자 했던 하라. 전쟁 속에 존재하는 크리스마스는 어떤 형태인가? 이 질문은 무조건적인 호의와 애정을 담고 있는 크리스마스는 그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는 반인륜적인 전쟁에서는 누명을 쓴 누군가를 도와주는 정도,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지만 그럼에도 상황적 제약으로 인해 쉽게 실천할 수 없었던 정의로운 '선행'을 베푼 하라의 모습으로 대답을 대신할 수 있을 거 같다. 인간성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정상성으로 일컬어지는 행위를 감히 '실현'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전쟁 속 크리스마스가 발현되는 한계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출처 : CGV
“셀리어스가 요노이에게 씨를 뿌렸고, 우리는 그 곡식을 거두는 거 같다”
위 문장은 종전 후 전범국의 주요 인사들이 사형 당하고, 그중 하나인 하라 또한 사형을 목전에 앞둔 어느날 밤 로렌스가 면회온 씬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셀리어스가 요노이에게 자유의 씨앗을 심은 것은 각자의 속에 어떤 것이 뿌리내린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꼴을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을 것이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일본군을 토대로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일본 사람들은 적에게 잡히면 절대 내 이름을 얘기하지 않아' '우리 일본 사람들은 절대 패배하지 않아' '이미 일본을 위해 영혼을 바쳤고 죽음을 각오한 목숨이야' '우리 일본 사람들은...' 전체성에 잡아먹혀 거짓된 자긍심을 고수하고 할복자살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하라와 요노이, 그리고 이를 따르는 수많은 일본군들. 이러한 메시지는 비단 과거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지금의 우리는 체제에 순응하려고 태어났는가? 정녕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파고들고 사유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4. 노래, 사운드
현대에 와서 리마스터된 ‘Merry Christmas Mr.Lawrence’는 부드러운 음율이 돋보이는 반면,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처음 세상에 나온 ‘Merry Christmas Mr.Lawrence’는 투박한 음질이 오히려 더 감정을 증폭시킨다. 특히 오리지널 버전만이 지닌 강하게 내려찍는 느낌이 작품의 오프닝 시퀀스와 조합되며 더욱 그 느낌이 좋았다. 이와 견줄 정도로 귀를 사로잡았던 OST가 또 있는데, 바로 'Sowing the Seed'이다. 일반적인 극영화에 사용될 만한 느낌이 아닌, 오히려 애니메이션처럼 극적인 장면들에 쓰일 법한 구성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보편적인 음악이 아니었기에 전혀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크리스마스'의 고유한 이미지를 몽환적으로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영화 자체도 잘 만들어졌지만 음악을 통해 완벽한 결과물이 되었다고 느꼈다.
출처 : CGV
OST 외에도 음향 자체에 집중할 만한 장면들이 꽤 있었는데, 그중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일본군의 장례를 빌어주는 장면을 언급하고 싶다. 일본군의 반복적인 구타로 인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로렌스가 일본식 정좌를 애써 해내려는 모습, 비논리와 비상식을 자백하는 거나 다름 없는 요노이와의 대화, 격앙되는 감정 속 장례지도를 끊임없이 진행하는 하라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배경으로 깔리고, 그 모든 요소가 조화롭지 않아서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5. 일본
사실, 나는 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감독이 누구인지, 전작은 무엇인지, 제작 비화가 따로 있는지 등 관련 정보를 전혀 찾아보지 않고 극장에 들어선다. <전장의 크리스마스> 또한 감독이 일본인인줄 모르고 봤을 정도이니 가늠이 되실 거라 생각한다. 워낙 유명한 데이비드 보위와 사카모토 류이치가 만난 작품이니 그저 동양과 서양의 합작이겠거니 싶었는데, 로케이션과 배우, 제작들이 여러 인종으로 섞여 있을 뿐 감독 자체는 일본인이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일방적인 침략을 일으키고, 지금에 와서도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만행들을 자행했으며, 현대까지도 그 잘못된 방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마냥 평범한 관점으로 감독과 작품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눈에 불을 켜고 옳지 않은 대사나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웠음에도 잘못되었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거의 없었다. 후반부의 로렌스 대사 중 하나가 일본인을 옹호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잘못된 것을 옳다고 말하는 식의 비약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감독이 회피하지 않고 일본의 고질적인 악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씬들이 여럿 있었다. 극 자체가 조선인 가네모토와 네덜란드인 드용의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애정으로 구성되는 시퀀스로 시작하는 만큼, '동성애' 즉 기본적인 인권이 짓밟히고 일본인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양상을 스스럼 없이 보여주며 강조하고 싶었던 의도로 보인다.
그 시대인 걸 감안하고 요즘 시대를 기준으로 생각해봐도 여러 의미에서 앞서 나간 작품인 건 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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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피로 얻은 산 자들의 자유를 빼앗길 뻔한 날, 12월 3일, 이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인간성이 말살되는 공간인 전쟁에서, 크리스마스의 눈처럼 자유와 평등을 흩뿌리고자 했던 영화. 감독 오시마 나기사는 전쟁의 상황적 배경에서 어떤 포인트에 집중하고 싶었는지 확실하게 드러냈고, 그 제작자의 의도는 동성애를 첫 대목에 위치함으로써 사람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의 잔혹함을 극대화한다.
고전영화의 특징일까?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기교가 없고 모든 장면과 시퀀스가 매우 깔끔하고 정확하다. 담고자 하는 의미가 그대로 보이며, 컷과 컷의 연결점 또한 의도가 명확하다. 그러나 보위의 이미지와 류이치의 음악의 조합이 요즘 영화들의 화려한 스타일을 넘어서서 기교를 부리는듯 착각을 일게 한다.
다만, 모든 요소가 수려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의 창작 방향성을 잡아나가려고 하는, 말 그대로 발아하기 직전에 모여 만들어진 작품인만큼 작품이 담아내고자 하는 메시지에, 투박하지만 보다 순수한 열정이 깃들어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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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첫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극장판으로 개봉예정인 <유미의 세포들>
4월 1주차 개봉예정작 시작합니다!
댓글부대
Troll Factory
ⓒ 네이버영화
개요: 애니메이션 | 한국 | 93분
감독: 김다희
출연: -
개봉: 2024.04.03.
배급: CJ CGV, 롯데컬처웍스(주)롯데시네마
시놉시스
“사랑이의 마음이 나를 웃음 짓게 했고 불안이의 걱정이 나를 나아가게 했어” 오랜 꿈이던 작가가 되기 위해 퇴사 후 공모전을 준비하기로 결심한 유미. 완벽한 글쓰기 일정을 만드는 ‘스케줄 세포’부터 글감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는 ‘작가 세포’와 허리띠를 졸라매는 ‘자린고비 세포’까지 모두가 유미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이 유미의 ‘불안 세포’를 점점 자라나게 하고 바비와의 흔들리는 관계로 흑화한 ‘사랑 세포’까지 세포들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며 세포 마을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는데…
CINE PICK!
네이버 웹툰과 드라마로 인기를 끈 ‘유미의 세포들’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합니다. 원작의 드라마판의 애니메이션을 담당한 로커스 스튜디오가 제작을 맡고, 당시 애니메이션을 연출한 김다희 감독이 본작을 연출했습니다.
비키퍼
The Beekeeper
ⓒ 네이버영화
개요: 액션, 모험, SF | 스페인, 프랑스 | 115분
감독: 애덤 윈가드
출연: 댄 스티브슨스, 레베카 홀,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개봉: 2024.03.27.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시놉시스
법 위에 있는 비밀 기관 '비키퍼' 그곳의 전설로 남은 탑티어 에이전트 '애덤 클레이'는 기관의 눈을 피해 자취를 감추고 양봉가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거대 보이스 피싱 조직으로부터 유일한 친구 '엘로이즈'를 잃게 된 그는 피의 복수를 위해 잠재웠던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전 세계가 열광할 NEW 킬링 액션 유니버스가 시작된다!
CINE PICK!
<분노의 질주 시리즈> 각본, <수어사이드 스쿼드>, <퓨리>를 연출한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2024년 작품으로 전세계 박스오피스 7주 연속 1위를 석권하며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비밀기관 비키퍼 요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설정으로 ‘인간병기’의 모습을 선사하며 짜릿한 액션을 보여준다 합니다.
오멘: 저주의 시작
The First Omen
ⓒ 네이버영화
개요: 공포 | 미국, 이탈리아 | 119분
감독: 아르카샤 스티븐슨
출연: 넬 타이거프리, 타우픽 바롬, 소냐 브라가, 랄프 이네슨, 빌 나이 등
개봉: 2024.04.03.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놉시스
수녀가 되기 위해 로마에 가게 된 ‘마거릿’(넬 타이거 프리).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그때, 믿음을 뒤흔드는 어둠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서서히 조여오는 끔찍한 공포가 마침내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 6월 6일 6시 사탄의 아이가 태어나고, 믿음이 향하는 곳이 뒤바뀐다!
CINE PICK!
<오멘>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오멘: 저주의 시작>은 ‘666’이라는 숫자로 대표되는 악마의 자식, 데미안이 탄생한 과정을 다룰 예정이라고합니다. 미드 <왕좌의 게임>으로 주목을 받은 넬 타이거 프리와 영국의 명배우 빌 나이가 주연을 맡으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키메라
LA CHIMERA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이탈리아 | 132분
감독: 알리체 로르와커
출연: 조쉬 오코너, 알바 로르와처, 이사벨라 로셀리니, 캐롤 두아르테
개봉: 2024.04.03.
배급: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시놉시스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도굴꾼 이야기 도굴꾼 아르투에겐 땅속 유물을 감지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부의 꿈에 도취된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잃어버린 연인, 베니아미나를 찾아 헤맨다.
CINE PICK!
제 7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작품으로 <행복한 라짜로> 영화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감독은 이탈리아의 떠오르는 여성 감독으로 이탈리아 영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본인만의 창의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 감독입니다. .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cine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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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갑게 몰아치는 웃음, 짙어지는 슬픔의 삼각형
'슬픔의 삼각형'은 미간 사이에 삼각형 모양으로 잡히는 주름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영화는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길래 미용 업계에서 쓴다는 용어를 제목으로 쓴 걸까요?
제75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슬픔의 삼각형>은 다름 아닌 계급 전복 코미디입니다. 절로 <기생충>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죠. <기생충>도 제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칸 영화제의 취향을 조금은 알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칸 영화제의 취향과는 무관하게 안쪽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던 자본주의 사회의 부패를 이제는 눈감아 줄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뜻일지도 모르죠. 칸의 선택을 받은 작품이라서든, 자본주의의 모순을 그린 작품이라서든, 어찌 됐든 볼만한 작품 <슬픔의 삼각형>을 소개합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슬픔의 삼각형>의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슬픔의 삼각형>은 2023년 5월 17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슬픔의 삼각형
Triangle of Sadness
<슬픔의 삼각형>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한 초호화 크루즈의 부자 탑승객들이 외딴섬에 고립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앞으로 무엇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놓을 것인지 시작부터 과감하게 드러냅니다. '발렌시아가 표정'과 '에이치엔엠 표정'을 번갈아지어 보이는 남자 모델들을 통해서 말이죠. 소비자를 내려다보는 듯한 도도한 눈짓은 '발렌시아가 표정'이고, 모두에게 편안하고 관대한 포용적인 눈짓은 '에이치엔엠 표정'입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이미지가 다른 이유는 두 브랜드가 타깃으로 삼는 소비자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인데요. 이 사실을 아는 관객들은 1초 단위로 표정을 바꿔 짓는 모델들을 보면서 웃음을 터뜨립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분명한 진실 하나를 깨닫게 되죠. '부정하고 싶어도, 현대 사회엔 여전히 계급이 존재한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풍자를 도구 삼아 바로 이 '현대 사회 속의 계급'을 철저히 짓밟아 나갑니다. 바다 위의 고급 크루즈와 무인도는 모두 외부와 단절된 세상, 한 마디로 갇힌 공간입니다. 갇힌 공간은 언제나 매력적인 영화의 소재로 기능합니다. 고립되는 것만으로 이 안에서 만들어지는 규칙이 속세의 법과 풍습보다 우선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탄생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특징을 활용해 감독은 갇힌 공간을 풍자극의 무대로 만들어 버립니다.
위선을 행하며 부와 재력을 과시하던 부자들은 거센 비바람에 휘청거리는 배 안에서 만찬을 즐기다가 구토와 분뇨에 뒤범벅되고 맙니다.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구토와 분뇨를 부자 계급과 연결지음으로써 품격 있던 그들은 한없이 우아함과 멀어집니다. 감독은 글자 그대로 부자 승객들을 구토와 분뇨 위에 데굴데굴 굴려버리죠. 극 중 인물들이 뿜어대는 토사물은 특수효과나 연출이 아니라 실제 배우들의 구토인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합니다. 구토와 분뇨는 본능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웃음 치트키'지만, 팡파르처럼 터져 나오는 토사물과 똥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게 됩니다. <슬픔의 삼각형>은 '현대 사회 속 계급'을 향해 보내는 매서운 눈초리를 더러움으로 표현하려는 듯, 상상 그 이상으로 지저분한 묘사를 해냅니다. 따라서 비위가 약하시다면 감상을 무척 주의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 ⊙ ⊙
이 작품이 마냥 웃기기만 하느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니, 시도 때도 없이 계급 차별, 인종 차별, 성 차별, 남녀 관계와 페미니즘, 자본주의의 모순 등 논쟁적 주제들이 치고 들어오는 통에 마냥 웃을 수가 없다고 해야 정확하겠습니다. '끽끽-'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면 아무리 즐거운 상황에서도 괜히 예민해지듯이 말이죠.
그렇게 약간의 불편함을 안고 영화를 보다 보면 종국에는 또 하나의 진실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직 생존력만이 중요해진 외딴섬에서 사람들의 계급, 인종, 성별의 차이는 모두 사라집니다. 그렇게 부자 승객들의 구토와 분뇨를 청소하던 크루즈의 청소부이자 필리핀 여성인 '애비게일'이 그곳의 우두머리이자 캡틴이 됩니다. 그녀가 이곳의 캡틴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돈의 가치가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녀가 바깥세상에서 캡틴이 될 수 없었던 것은 그곳이 오직 돈의 가치만이 있는 세상이었기 때문이죠. 계급, 인종, 성별을 아우르는 모든 논쟁적 주제의 핵은 바로 돈이었습니다.
총 3부로 구성된 <슬픔의 삼각형>에서 외딴섬의 이야기는 3부에 등장합니다. 3부는 계급, 인종, 성별을 전복하고 캡틴의 자리에 오르는 '애비게일'의 역할이 무척 중요한 파트인데요. 3부의 끝자락에서 '애비게일' 역을 맡은 배우 돌비 드 레온이 선보인 표정 연기는 이 영화의 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애비게일'의 얼굴에 강하게 드리운 슬픔의 삼각형을 보고 있으면, 제 미간 사이의 슬픔의 삼각형이 함께 짙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기생충> 속 인디언 모자를 쓰고 '박사장'을 바라보던 '기태'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하죠.
영화는 상영 시작 후 5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슬픔의 삼각형'의 의미를 밝힙니다. 따라서 관객은 장장 2시간 30분에 이르는 상영 시간 내내 이것의 함의를 생각해 보게 되죠. 의미를 곱씹으며 영화의 여정을 따라 흘러가던 관객은 마침내 종착지에 다다라서야 '애비게일'의 얼굴에 선연하게 자리한 슬픔의 삼각형과 마주합니다.
⊙ ⊙ ⊙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래서였을까요? <슬픔의 삼각형>에는 화각을 넓게 잡아 화면 속 인물을 실제보다 멀리 보이게끔 연출한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 말입니다. 더불어 흔들리는 배 안을 실감 나게 연출했던 섬세한 촬영 기법도 인상적이었죠.
'애비게일' 역의 돌비 드 레온의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입니다. 자본주의를 죽도록 싫어하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크루즈의 괴짜 선장 '토마스' 역의 우디 해럴슨, 인플루언서의 지질한 남자친구 '칼' 역의 해리스 디킨슨, 그리고 당당하고 주체적인 인플루언서 '야야' 역의 샬비 딘까지. 그래서 지난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배우 샬비 딘의 죽음이 더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더 많은 작품에서 펼쳐질 호연을 기대케 했던 그녀의 유작을 극장에서 꼭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Summary
호화 크루즈에 #협찬 으로 승선한 인플루언서 모델 커플. 각양각색의 부자들과 휴가를 즐기던 사이, 뜻밖의 사건으로 배가 전복되고 8명만이 간신히 무인도에 도착한다. 할 줄 아는 거라곤 구조 대기뿐인 사람들… 이때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여기선 내가 캡틴입니다. 자, 내가 누구라고요?”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
출연: 우디 해럴슨, 돌리 드 레온, 샬비 딘, 해리스 디킨슨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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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확신이 없을 때, 정성을 담은 영화 한 편
*이 글은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 참고해 주세요 : )
유난히 힘들고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이 있다. 하루를 곱씹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스스로를 향한 의심이 파고든다.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나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일까?'
'내일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누군가 슬퍼할까?'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피곤에 지친 눈은 초점을 잃는다. 애써 노력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의심이 해결될 때까지 질문하고 파헤치는 방법도 있다. 영화 <그대 너머에>는 꼬리를 무는 의심을 통해 답을 찾으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영화 <그대 너머에>
영화 <그대 너머에>는 무명의 영화감독 '경호(김권후)'가 첫사랑이자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인숙(오민애)'과 그녀의 딸 '지연(윤혜리)'을 만난 후, 기억의 미로에 빠지는 내용을 담았다. 기억과 망각을 소재로 세 명의 등장인물이 인간관계와 스스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영화의 철학적 주제와 실험적인 연출을 인정받아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에서 소개되었다.
영화는 자칫 신파로 흘러갈 법한 소재를 독특한 창의력으로 풀어낸다. 전체적인 구조부터 장면 하나에 이르기까지 허투루 만든 부분이 없다. 일단 영화의 구조를 살펴보면 전반부와 중반부가 '경호'의 기억이 되풀이되는 듯 반복된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전반부와 똑같이 행동하지만, 현재의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기계처럼 움직인다. 마치 '경호'의 존재와 상관없다는 듯 잘 짜인 연극 같이 보인다.
이러한 구조의 대비는 장소에서도 나타난다. 영화의 전반부는 모든 가능성이 열린 야외에서 시작해서 '경호'의 집인 실내에서 끝이 난다. 이야기가 중반부로 들어설 때, '경호'는 실내에서 다시 야외로 이동한다. 충격에 빠진 그가 의미심장한 표정의'지연'을 따라가는 골목길은 주인공들의 복잡한 기억을 상징한다.
영화의 장면 하나에도 각각의 의미가 숨어있다. 특히 좁은 골목길에서 촬영된 롱테이크 장면과 360도 VR 촬영처럼 다양성 영화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연출이 돋보인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개미의 초근접 접사는 자연 다큐멘터리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섬세하게 묘사된 개미 장면은 CG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며 특수렌즈로 살아있는 개미를 직접 촬영해서 만들어졌다.
영화 <그대 너머에>의 '박홍민' 감독은 개미 장면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거리에서 무심코 지나치던 개미를 관찰하는 마음으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태도로 영화 제작에 임했다.'라고 답했다.
감독의 말처럼 개미 장면은 <그대 너머에>라는 제목의 의미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대'는 사전적 의미로 듣는 이를 높여 이르는 2인칭 대명사로, 세 명의 인물 중 누구를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다. 또한 제목에는 그들이 각자가 가진 슬픔과 답답함 너머를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갔으면 하는 응원이 담겨 있다. 영화 속 개미는 장애물에 막히고 넘어지지만, 계속 앞으로 전진한다.
Q. 지금 당신의 모습에 의심이 생기나요?
영화 <그대 너머에>는 연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 한 통 같다. 영화를 보게 될 평범한 존재들을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웠을 창작자의 고뇌와 순수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매 장면마다 담긴 정성스러운 질문을 보며 스스로의 답을 생각하게 된다.
영화 <그대 너머에>를 예고편으로 미리 만나보세요▼
영화 속 세 사람도 나름의 답을 내린다. 딸을 기억하지 못하던 '인숙'은 '딸'이라는 역할이 아니더라도 '지연'을 찾아낸다. 그들은 과거에 '경호'를 만났던 일을 떠올리며 편안한 표정으로 웃음을 짓는다.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경호'는 세상을 초월하여 영원히 시나리오를 쓰는 존재가 된다.
그들의 답이 꽉 막힌 해피엔딩이나 완벽한 답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의심 끝에 찾은 답도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답을 찾아본 사람만이 자신을 가로막은 장애물 너머로 향할 수 있다.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들고 어디로 가야 할지 삶의 방향을 잃을지라도 다시 전진할 용기를 낼 수 있다. 그렇게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다 보면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그러니 당신이 너무 많이 울거나 자책하지 말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좋겠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좌절과 버티기 위한 희망을 고민하는 밤은 생각보다 다정할 테니까.
* 제가 참석한 시사회에는 감독과 배우분들의 무대인사가 있었는데요.
감독님이 말씀하시는 걸 보고 정성스러운 영화라는 확신을 가진 것 같아요.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 것 같아 '박홍민 감독님의 인터뷰를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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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내라고 하면 힘낼 수 있나요
진짜 포기하고 싶다. 아니 포기해야겠다. 애초부터 불가능한 꿈을 꿨기 때문에 좌절감도 맛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노력을 무지막지하게 들여도 안 되는 것이 있으니 삶이란 역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다못해 메이플스토리의 데미안과 스우를 잡는 것도 숙련도가 올라가면 쉬워지는데 삶은 그런 게 없어 잔인하다. 난 근본적으로 사랑받기엔 못돼 쳐 먹은 인간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만하고 싶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당분간 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든다. 모든 것이 싫다. 무엇이든 할 맘이 안 든다는 뜻이다.
그래서 포기하면 뭐 어쩔 건데? 엄마, 아빠한테 내 정신적인 고통을 줄줄 늘어놓으면 어떤 지점이 달라지나? 사실 선생님에게 최근의 내 상태를 말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기에 이 선택이 내 인생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똑같은 하루의 반복일 것이다. 몸이 고장 난 것도 바뀌지 않을 거고. 뭔갈 사고 싶은 강박은 아마 죽을 때까지 가지 않을까 싶다. 맞다. 나는 지친 것 같다. 유럽에 갔다 와도 지친 게 해소되지 않아 '이런 식으로 가다간 나의 정신적 탈진은 아마 영원할 것'이라고 설레발을 쳤던 때가 생각난다. 다시 생각해보면 1년 동안 지치는 타이밍이 한 번도 안 오는 게 더 이상하다. 어물쩡 넘긴 나 자신이 싫다. 쉬어야 할 때 제대로 쉬질 못했으니 지금 닳고 닳았다. 요즘 나는 삶의 동기부여가 단 1%도 남지 않았다. 난 남들에게 위로해주는 법은 알았지 나 자신에게 격려를 하는 법이라곤 단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람도 사랑도 다 무섭다. <굿 윌 헌팅>과 <그린 북>이 어쩐지 환상 속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요즘이다. 가끔은 내가 쓴 글이 사실이 아니길 바랄 때도 많은데 요즘은 반대의 기분을 느끼고 있다. 정말 내가 쓴 글이 맞는 말이란 말인가.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가 돈이라기엔 난 경험해야 할 것들이 많지 않나. 상상과 희망도 재미가 없는 오늘 난 천천히 가는 버스에 기대 잡생각을 하고 있다.
<체리 향기>는 소소한 일상에 관한 영화다. 나의 인생영화 중 한 편으로 꼽는 작품이기도 하다. 트럭을 운전하는 주인공. 어쩐지 표정에서 사연이 많아 보인다. 이 사람은 갑자기 지나가는 남자 한 명을 태운다. 군인을 태운 주인공 바디. 바디는 군인에게 본인의 사연을 늘어놓는다. 그는 죽고 싶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어디 땅굴에 묻힐 테니 그 조력자가 돼 달라는 부탁을 한다. 군인은 당연히 거절한다. 다음 손님으로 신학도를 태운 바디. 같은 부탁을 하지만 역시 거절한다. 죽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바디는 세 번째 손님을 찾아 나선다.
세 번째 손님은 나비를 박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아들의 치료비가 급해 바디의 제의를 받아들인 이 노인은 주인공과 차를 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주제는 삶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다. 나 역시 죽고 싶던 때가 있었어요. 내가 인생을 살아야 했던 이유는 코 끝에 스친 체리 향에서 왔죠. 소소한 삶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는 노인. 바디는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아예 말을 안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바디에게 변화가 있긴 했다. 노인을 다시 찾아간 바디. 내일 내가 살아있을지도 모르니 적극적으로 깨워달라는 요청이었다. 영화는 웃으며 바디의 근심 걱정 모든 것을 떠나보내지 않는다. 노인의 진정성이 통했다고 해서 바디의 우울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바디는 다시 무덤 아래에 누웠다. 생각이 바뀐 게 없는듯한 바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디의 요청에서 우리는 뭔가를 기억할 수 있다. 유의미한 차이는 있지만 이 무언가가 어떻게 표현되는지는 정의해주지 않은 채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영화에 엔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바디는 죽을 곳에 다시 누웠다. 그의 생각은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당연하다. 난 인생을 얻는 동기부여의 힘이 갑자기 어느 날 번쩍하고 생기는 게 아니라고 본다. 한참을 어두운 터널 속에서 살 때 느낀 게 있다. '힘 내'는 너무 포괄적인 단어라는 것이다. 힘을 내? 힘을 낸다는 게 무슨 뜻이지? 힘 내면 내가 이 뭐 같은 일상을 이겨낼 수 있나? 당연히 이 반응이 '와닿지 않았다'란 말을 자격지심에 빠져 거칠게 하면 나오는 것이란 걸 모르지는 않는다. 말하는 이에게 상처 줄 생각 단 1도 없지만 큰 골자가 되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앞서 쓴 바와 같이 그 말을 하는 이는 내가 다시 기운을 차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것일 테지. 난 살짝 다르다. (그렇다고 힘 내!라는 말을 하는 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말을 잘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겪는 비극은 나를 다시 공격할 것이고, 난 같은 방식으로 또 표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디는 모든 걸 웃어넘겨 행복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단 조금의 변화만 있었다.
그렇기에 영화는 사려 깊다. 바디의 인생이 무조건 다 잘 풀릴 거라고 묘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서 부정적인 순간을 마주할 때를 생각해보자. 어느 순간을 극복했다고 해서 비슷한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행복이 갑자기 뚝 떨어지나? 아닐 것이다. 삶은 같은 순간의 반복이다. 그래서 어느 것을 극복했다는 생각이야 말로 인간의 교만일 수도 있다. 큰 힘을 줘가며 삶의 순간을 지나가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이 이유로 인생에 환기란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 같다. 환기가 안되기 때문에 상처는 누적될 수밖에 없다. 또 힘 내!라는 말에 힘을 내기엔 우리 인생은 너무 곪았다. 모두가 심하게 깊게 파여서 단순히 끌어올리는 게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목표에 실패하기.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나기. 영원한 이별. 이런 삶을 가로지르는 실패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이라고 하는 건 우리 머릿속에서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상처와 우울함은 천둥번개 치듯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삶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과거를 지워버린다? 지울 수 있으면 인간이 아니지.
감독은 이런 관점에서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좀 특별한 시각을 보여준다. 간단하다. 인생을 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전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는 극적인 성장을 보여주지 않는다. 생의 목적에서 진 인물이 다시 이겨내는 걸 제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분명한 연출 의도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 사람은 같은 곳에서 똑같은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여러분은 예외인가? 아니다. 여러분이 사는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같은 곳에서 머무르는 건 매한가지일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무언가를 위해 달려왔다고 생각해왔지만 나는 지금의 이 기분이 뭔지 모르겠다. 죽고 싶은 건 절대 아니다. 엄마 아빠가 나한테 못하냐? 그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기분이 뭔지 모르겠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외로움인지. 권태인지. 뭔가를 이겨내기 위해 그렇게 노력해왔지만 그게 정말 의미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또 언제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게 돈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내가 나를 속였던 거짓말이었다. 나는 내 20대를 관통하는 동기부여보다 더 얻고 싶은 것을 마음속에 둔 인간이었고 그 관점에서는 사실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다. 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이런 나를 보여주는 증거다.
근데 또 삶을 포기하라 한다면 아쉬울 것 같다. 아니 사실 지금 당장은 모든 걸 던져버리고 쉬은 게 맞긴 하다. 당장 이 세상을 뜨고 싶지는 않다. 나에겐 수많은 것들이 남아있다. 아직도 정산 못 받은 돈. 가지 못한 여행지. 공익근무지에 들어오는 바나나우유. 우리나라 아티스트가 나이키와 협업해서 나오는 새로운 스니커즈.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왠지 모르게 사실이 아닐 거라는 기대감까지. 나는 아직도 바라는 것이 많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나 무너져있다고 해서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 이 시간은 흘러가 있을 것이고, 나는 오랫동안 극복하지 못한 삶의 터널을 훌쩍 지나있을 것이다. 이 모든 걸 포기하기엔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이 상태로 살아왔다.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그건 좀 많이 어렵다. 사랑받기 위해 이제까지 달려온 모든 시간들에 실패해 지금은 괴롭지만 내가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소소한 재미들 덕이었다. 이를 위해 계속 같은 것만 하겠지. 지겹게. 그러나 삶은 원래 지겨운 것이 맞다. 근데 또 지겨워서 좋은 것이다. 실패한 인생을 살더라도 나를 일으켜주는 사소한 무언가가 있다면 하루를 버리기엔 너무 아쉽다. 그래. 사랑받는 인생 다 좋은데. 이것 역시 나에게 중요한 거 맞는데. 돈 많이 벌어서 나 좋은 거 엄마 아빠 멋있는 거 사는 거 다 좋은데. 사실 나는 어느 날 맡은 체리 향기와 같은 소소한 인생의 재미를 좇는 사람이었다. 그런 재미 하나 만드려고 일을 벌이고 돈을 벌고 하는 것이다. 난 감독이 삶의 이 지점에 대해 논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를 찾지 못한 당신에게 묻는 것이다. 과연 당신의 삶의 이유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아닐걸. 의외로 우리의 삶을 가로지르는 것은 사소한 무언가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그게 우리를 바뀌게 하고, 서서히 좋아지게 만들며, 또 살아 숨 쉬게 도와준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 매일마다 감상이 다른 내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한다. 다들 지겨울 것이다. 매일이 현타의 연속이고 우울감은 하루마다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러니까 오래 살자. 힘은 되도록이면 내지 말자. 빨리 가지 말고 천천히,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위해 살자. 그러려면 천천히 걸어야 할 것이고, 남들보다 늦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건 어차피 중요하지 않을수도 있다. 한번 사는 인생 과연 그 목표가 삶의 전부가 되더라도 우리는 그것보다 큰 가치를 지니고 있을테니 말이다. 고통받으며 살더라도 오래오래 살자. 언젠가 만날 체리 향기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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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우리가 끝이야> 메인 예고편
전 세계가 주목한 용기 있는 선택 로튼토마토 팝콘지수 92%🍅 북미 박스오피스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