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신고

댓글 신고

K2025-06-14 10:57:52

놓아주다의 의미가 뭔가요?

샌디 탄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2018

 

어떤 이야기들은 쓰고 싶어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쓸 수밖에 없었기에 쓰여진 것 같다. 창작자와 창작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작품들을 마주하게 되면 정말 기쁜 마음으로 그 모든 이별에 함께하고 싶다.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는 영화평론가로 일하고 있는 샌디 탄이 감독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를 만들고, 평론가가 되었다가 영화 학교를 찾아간 그녀는 작품의 앞머리에 이런 내레이션을 넣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뒤로 가야했다.’

 

 

 

1990년대의 싱가폴에서 10대 소녀로 살아가는 영화광 샌디와 친구들은 로드 무비 <셔커스>를 만든다. 그들에겐 교사이자 셔커스의 감독이기도 한 어른 친구가 있었는데, 바로 조지이다. 이후 그는 패기와 열정이 반짝거렸을 셔커스의 필름을 들고 잠적하고, 샌디와 친구들은 필름뿐만 아니라 그 시절을 모두 잃은 듯한 허망함을 느낀다. 특히, 샌디는 셔커스를 잊으려 애썼다.

 

 

 

20년 후 조지가 죽고 셔커스의 필름이 다시 샌디에게 되돌아왔다. 하지만 이 말이 그 때의 셔커스가 돌아왔다는 의미는 아니다. 샌디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절과 아픔을 마주한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보기 두렵다는 이유로 등에 지고 가는 게 아니라 직접 바라보고 끌어안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우린 대상을 온전히 마주하는 순간에만 작별인사를 건넬 수 있다.

 

 

 

 

 

네가 할 일은 셔커스를 다시 살리는 게 아니라 셔커스에 내세를 주고 우리에게 돌아오게 하는 거야.’

 

 

 

이 글에서만큼은 조지가 왜 필름을 훔쳤을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는 셔커스에서 떼어낼 수 없는 존재지만, 이 멋진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셔커스가 정말 좋았던 건 감독이 상실과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이고, 비슷한 아픔을 겪는 이들이 함께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며, 더하여 영화는 무엇인지, 왜 우리가 영화를 사랑하는 지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실존하지 않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건 어찌나 외롭고 환상적인지. 작품을 보며, 세상에 없는 셔커스를 그리워하는 샌디와 내 모습이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겹쳐 보였다. 결국 영화라는 이름의 허상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 외로운 사람들이 허상의 존재에 마음을 기워 붙여 무게를 더하고, 부피를 키워온 걸까.

 

 

 세 친구가 여전히 영화 일을 하고 있어 기쁘다.

 

 

작성자 . K

출처 .

  • 1
  • 200
  • 13.1K
  • 123
  • 10M
Comments

Relative contents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