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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072025-10-16 15:21:46

개인의 구체성에서 시작하는 사회 비평

영화 <아노라> 리뷰

 

 

 

나는 성노동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노동자의 인권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기 때문이다. 개인에게는 누구나 자기 소유의 삶이 있다. 먹는 것과 입을 것이 필요하며, 같은 사회 안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기본 조건 아래 인간의 삶은 비슷한 귀퉁이를 가진다. 

 

션 베이커 감독은 언제나 사회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인물들을 탐색한다. 그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리얼리즘으로, 극적인 음악이나 의도성이 드러나는 연출 대신 인물의 현재를 묵묵히 뒤쫓는다. 그러나 그가 추적하는 현재의 시간은 극영화의 카타리시스적 갈등 구조를 따라가며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음악 대신 몰아붙이듯 이어지는 인물들의 대사로 사운드를 채우며 긴장감 있게 극을 이끌어간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리얼리즘의 사실성과 극영화의 서사를 정교하게 결합한 대중적인 독립영화의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시상식 5관왕을 한 이번 영화 <아노라>로 돌아가보자. ‘아노라’는 성노동자이자 현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이다. 사회는 그녀의 삶이 지닌 구체성을 오래도록 외면해왔다.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 중에 어느 것일까? 그때 나는 ‘과거’라고 답했다. 특히 인격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유년기부터 청소년기 시절은 평생에 걸쳐 본인에게 영향을 준다.

 

영화는 플래시백 없이 오직 현재의 단면을 통해 과거를 유추하게 만든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과거가 궁금하다. 사람들은 성노동자를 쉽게 ‘스스로 추악하고 더러운 삶을 선택한 속물적인 존재’라고 판단하지만 나는 자기방어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생각한다.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성적 존재로 규정지어왔으며, 살고 싶다는 본능 이전에 가족, 사랑, 자유와 같은 개념들을 깨우칠 시간이 얼마만큼 존재해왔을지 생각한다. 소유하거나 배워본 적 없기에 가까이에 있는 엉성하고 연약하게 꾸며진 가족, 사랑, 자유를 스스로 상상하고 갈구하며 살아왔을지 모른다. 개인의 삶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지만 애초부터 선택지가 없었다는 말이다.

 

 

 

 

‘아노라’에게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있다. 재벌 2세와 진정한 사랑에 빠져 평생 함께하는 사이가 될 거라던가 부모님은 자식이 하는 일을 모두 지지해줄 것이니 자신도 가정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거라던가 그러니까 이 모든 꿈 같은 가정이 현실로 이루어질 거라는 희망이라던가.

 

현실적으로 그게 말이 되니?

 

나는 이런 말들이 싫다. 오히려 함부로 희망을 꿈꿀 수 없는 현실이 더 추악하고 더럽다고 생각한다. 희망을 꿈꿀 수 있는 현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고르’는 ‘아노라’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영화 내내 그의 시선이 불편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노라’는 고맙다는 말 대신 자신이 살아가면서 유일하게 배운 일로 그에게 말을 걸고, 그가 키스를 하려고하자 울음을 터뜨린다. 그는 그녀를 품에 안는다.

 

 

 

 

‘이고르’는 ‘아노라’를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봤을지 몰라도 결국 그의 시선도 우위에 있으며 성적 욕망을 내포하고 있다. 이제까지 그녀를 착취해왔던 사회 구조와 비슷한 폭력성을 가지고 있으니 ‘이고르’를 구원자라고 부르기 어렵다.

 

오히려 ‘아노라’가 직장 동료와 함께 있을 때 자유로워 보이는데 그들은 연대와 비슷한 경험을 나누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타인의 삶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개인으로부터 멀어진다.

 

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돌봄의 부재에서 생기는 사각지대를 발견한다. 개인의 삶을 동정하기보다 사회의 결함을 직시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각자가 스스로 만들어낸 사회일뿐이니.

 

 

작성자 . 여름07

출처 . https://blog.naver.com/dreamingink/224043299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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