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8-26 17:02:48
타임지 선정 '2021년 최고의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절찬 상영 중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어제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개봉을 했는데요!
매력적인 소재가 담긴 스토리와 주연 배우들의 연기에 빠져든 관객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관람객들의 실시간 반응을 살펴볼까요?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나'라는 인간은 곧 내가 범한 엉망진창이고
아름다운 오류들의 집합체
씨네랩 에디터 cammie
Relative contents
-
- <그녀 her>, 인공지능에게 배우는 사랑
2013년 개봉해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미국 작가 조합상의 각본상을 받은 영화 <그녀 her>는 2025년을 배경으로 한다. 이전부터 미래를 다루고 있는 SF 영화들은 배경이 되는 미래가 현재가 되었을 시점이면 다시 거론되고는 한다. 지난 2015년, <백 투 더 퓨처>가 얼마나 현실이 되었는가에 관해 얘기했듯 말이다. 그래서 현재를 배경으로 상상을 펼쳐낸 과거의 SF 영화를 통해 현재를 만나고 싶었다.
<그녀>는 인공지능 서비스와 사랑에 빠진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의 이야기를 다룬 SF 로맨스 영화다. 영화계에 로봇과 AI(인공지능)를 소재로 창작된 영화는 많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인간이 통제 가능한 범위를 넘어 발전한 로봇과 AI가 공격적인 자아를 띠며 인간을 공격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아이, 로봇>은 로봇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벌어진 로봇의 살인 사건을 다룬다. <A.I.>는 인간과 감정을 지닌 로봇의 구분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는 인공지능을 통해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녀>의 한국 포스터와 인공지능 시스템을 다운로드하는 주인공 테오도르(역 호아킨 피닉스) (C) 한국 배급 ㈜더쿱
<그녀>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를 대필해 주는 회사에 근무한다.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이전 편지와 사진 등을 통해 유추해 대신 작성하며 음성인식으로 타이핑된 글자를 필기체로 편지지에 인쇄해 낸다. 아내와 이혼 소송 중에 있는 그는 홀로 지내던 중 ‘당신을 이해하고 귀 기울이며 알아줄 존재’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서비스를 구입한다. 스스로를 ‘사만다’라고 부르는 인공지능을 만난 테오도르는 처음에는 거리감을 느끼다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공유하다 더 깊은 감정을 나누게 된다.
‘올해 가장 독창적인 로맨스 – New York Times’라는 한국판 포스터의 홍보 문구와 같이 <그녀>는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애초에 이 영화를 로맨스 영화라고 불러도 괜찮을지 의문도 든다. <그녀>는 담백하게 흘러가지만 묘하게 기시감이 들고 불안감이 느껴진다. 어딘가 불편하고 잘못된 것만 같다. 하지만 그렇게 주인공이라는 캐릭터의 경험에 관객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닌, 제삼자로 이야기를 접하게 함으로써 영화는 인간들 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럼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찬찬히 풀어보도록 할까.
모두가 무선 이어폰을 끼고 각자의 일을 하는 영화 속 미래와 인공지능에게서 걸려오는 전화 (C) 한국 배급 ㈜더쿱
편안함과 불안감을 동시에 선사하는 영화
앞서 말했듯 영화는 2013년에 공개된 2025년의 모습을 담고 있다. 12년이라는 어쩌면 그다지 머지않은 미래를 다루기 때문일까, 영화 속 2025년은 꽤 현실적이다. 무선 이어폰을 끼고 공중에 얘기하는 사람들, 구두로 하는 컴퓨터 타이핑, 인공지능이 읽어주는 메일, 노래를 창작하는 인공지능 등 모습이 오늘의 우리에겐 크게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영화의 배경은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으며, 그 부드럽고 차분한 색감은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영화 내내 알 수 없는 감정이 관객을 영화의 마지막까지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영화의 도입부, 전화로 밤을 달래는 테오도르의 장면 속 주인공의 상상과 상대의 욕구는 관객에게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게 만든다. 많은 점에서 잘못된 그 상황을 통해 영화의 주인공이 불안하며 다소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음을 알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불편함과 불안감에는 기존에 관객들이 가지고 있을 영화 속 인공지능에 대한 이미지도 한몫한다. 수많은 영화에서 과도하게 발전한 인공지능은 다소 잔혹하며 인간에 해로운 존재로 등장한다. 물론 그런 영화들에서는 인간적인 면을 가진 인공지능이 등장해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가 관객에게 남긴 것은 ‘인공지능은 과하게 발전하면 인간에게 해로울 수 있다’라는 인상이다. 게다가 ‘영화’라는 특성상 무언가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지 자연스레 대비하게 되는 관객은 다음 장면에서 중대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을지 걱정하게 된다. 인공지능의 공격성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트루먼쇼>처럼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고, 사실 사만다는 살아있는 사람이자 단순히 일로써 행동한 거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영화 내내 함께 한다.
심지어 영화 속 인공지능, 사만다는 지속적으로 예상치 못한 면을 보임으로써 긴장을 더한다. 보이스피싱과 인공지능의 개인정보 유출 위협 속에서 사는 2025년의 인간에게 사만다의 작동 범위는 다소 불안하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모든 개인정보를 그의 허락 없이 접속할 수 있으며, 그 외의 사람들과도 연락을 취한다. 자아를 발전시키며 인간처럼 사고하기 시작하면서는 테오도르와 말다툼까지 벌인다. 그렇게 평온하고 부드러운 화면과 대비되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긴장감이 영화의 마지막까지 함께 한다. 하지만 테오도르에게 인공지능, 사만다는 사랑이었다. 물론 인간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다는 점까지 관객에게 기시감을 더하지만 말이다.
인공지능과의 사랑, 언젠가는 이런 상상 또한 현실로 다가오기도 할까? (C) 한국 배급 ㈜더쿱
AI에게 배우는 사랑
사만다를 만나기 전 테오도르의 현실은 부재로 가득했다. 그의 집은 어딘가 텅 비어있고 어수선했다. 책장에는 장식과 책이 모두 제일 아래 칸만 채우고 있었으며, 조명과 잡동사니는 대부분 바닥에 방치되어 있다. 누군가의 편지를 대신 써준다는 직업 또한 부재 그 자체였다. 대신 써진 편지에는 보내는 이의 애정이 빠져있었고, 대신 편지를 쓰는 테오도르에게는 그의 이름이 남는 작업이 없었다. 테오도르와 그의 아내, 캐서린 사이의 부재는 소통이었다. 감정을 얘기하지 않는 테오도르에게 소통의 부재를 느낀 캐서린은 그를 떠났다. 테오도르의 회사 엘리베이터는 도시에는 없는 나무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었고, 회사 동료이자 친구가 개발하는 게임 속에는 남편이 없었다. 이처럼 테오도르의 삶은 그도 모르는 사이 무언가 빠져있었다. 영화의 전반, 테오도르는 다소 바람직하지 못한 연애 상대로 그려진다. 그는 친구에게 소개받은 여자와 자고 싶지만, 연인이 되고 싶지는 않아 한다. 그러면서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며 이혼 서류에 서명해주지도 않는다. 그렇게 테오도르의 삶은 모순과 부재로 가득했다.
그런 삶에서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만난다. 처음은 낯선 존재인 사만다를 경계하지만, 자신에게 맞춰주는 그녀를 이내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그러고는 자아가 성장하는 사만다를 점차 한 인격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갓 사랑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여주던 둘은 이내 관계에 대해 말다툼까지 한다. 뒤이어 화해하지만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되기까지,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는 한 연인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만다는 떠나지만 그에게는 무언가가 남았다. 눈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C) 한국 배급 ㈜더쿱
모순과 부재로 가득했던 테오도르는 인공지능을 통해 사랑을 배웠다. “서로 맞춰가기보다는 순종적인 아내를 원했지”라는 전처 캐서린의 말처럼 테오도르는 상대가 아닌 자신만을 생각했다. 문제나 고민이 생기면 상대와 공유하지 않고 홀로 앓다가 상대까지 고장을 냈다. 사람 간의 관계는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며 지탱해 주어야 유지될 수 있음을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관계를 통해 배웠다.
처음에 인간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사만다의 성장을 돕는다. 그러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주고받으며, 테오도르의 지식과 한계를 넘어 그 이상으로 나아간 사만다로부터 타자와의 관계를 배웠다. 그렇게 처음에는 자신만을 위해 모든 것을 맞춰는 인공지능일 뿐이라 여겼던 사만다로부터 테오도르는 오히려 배움을 얻고 버림을 받는다. 자신만이 주체라고 생각했던 관계 속에서 그는 그녀 또한 주체임을 배운다. 이 점에서 어쩌면 <그녀>는 두 등장인물 간의 로맨스라는 이야기에 인공지능이라는 설정만 더해졌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상대를 주체성이 없는 순종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하다가, 점차 그 상대가 성장하여 그로부터 배움을 얻게 만들고, 나아가 주인공 또한 버려질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기 위해. 상대 또한 생각하고 성장하는 주체임을 보여주기 위해. 관계에 있어 주체는 모두임을 보여주기 위해.
테오도르는 이후에는 어떤 사랑을 할까 (C) 한국 배급 ㈜더쿱
일반적으로 연인관계는 타인으로 시작하여 연인이 되었다가 부부가 되거나 다시 타인이 되면서 끝난다. 그런데 ‘타인이 되면서 끝나는’ 경우 우리는 상대를 만나기 이전인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 상대와 함께 한 경험도 없던 일로 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 관계에서 누군가는 사만다처럼 자아의 성장을 경험해 다음으로 나아갈 것이고, 누군가는 테오도르처럼 지난날의 자신을 반성하며 차츰 성장해갈 것이다. 영화 초반의 테오도르처럼 현실을 부정하고 타인과 혹은 스스로와의 대화를 단절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로맨스 영화는 보통 관객들이 등장인물에 자신을 대입하여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하지만 <그녀>를 보는 관객은 묘한 불안감과 거리감을 느끼며 제삼자로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렇게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그녀>는 과연 로맨스 영화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영화 속 배경이 현재가 되어버린 지금에서는 이 영화를 SF 영화라고 해도 괜찮을까 하는 등의 고민이 든다. 하지만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역시 로맨스 SF 영화를 기대하고 시작했다 곱씹어보게 된 지난날 타자와의 관계들이다.
더하는 글로, 오랜만의 로맨스 영화에 다소 두서없는 글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뒤로하며,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한국 독립영화 <마이디어>(2023)를 추천하고자 한다. <마이디어>는 청각장애가 있는 여자 주인공이 인공지능 어플 ‘마이디어’를 사용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인공지능과 감정을 주고받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청각장애라는 주인공이 마주하는 현실을 비장애인은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측면에서 담아내고 있다. 지난 2024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만났던 이 작품이 <그녀>를 보는 내내 떠올랐다. 그러면서 최근 자주 사용하는 인공지능 '뤼튼'에서 제공하는 '나만의 AI' 기능을 떠올리며, 어쩌면 인공지능과의 사랑이 SF가 아닌 현실이 될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 <그녀 her > (2013)
감독 스파이크 존스
주연 호아킨 피닉스, 스칼렛 요한슨
-
- '단 한 명의 외로운 사람'에게 바치는 따뜻한 편지
돼지의 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일본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는 사오리(안도 사쿠라)와 미나토(쿠로카와 소야)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 대형 화재사고가 일어났다. 모자는 타오르는 불길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 “근데.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돼지일까, 사람일까?” 아들이 엄마에게 묻는다. 무슨 말이 그래? “누가 그런 말을 해?” 되묻는 사오리. 아들은 학교 담임 선생님인 ‘호리 선생님(나가야마 에이타)’이 그랬다고 답한다. 아들이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의아한 사오리. 이후부터 아들에게 이상한 우연이 겹친다. 아들이 갑자기 머리를 자른다.”왜 머리를 잘라?”라는 질문에 어물쩡 대답하는 미나토. 이뿐만이 아니다. 텀블러에서 흙이 나오거나 귀에 상처가 났던 일도 있다. 불안한 사오리. 미나토가 다니던 학교에 방문한다. 사오리에게 대응하는 학교 교직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영혼 없이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교장과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호리 선생님은 사오리를 화를 돋우기만 했다. “호리 선생님에게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있나요?”라고 묻는 사오리. 분명 아들 미나토의 학교생활에 뭔가 문제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 학교에 있는 그 누구도 사건의 정확한 경과를 알지 못했다.
재미있는 미스터리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미스터리다. 이 영화를 중반부까지 이끄는 힘은 ‘괴물이 누구야?’다. 이 괴물의 근원지를 좇는 각본의 힘이 탁월하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여러 사람의 관점을 엇갈리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원래 사람들끼리 갈등이 있었다고 하면(내지는 여러 사람 사이에서 안 좋은 일을 만든 ‘괴물’을 찾는다고 하면) 양 쪽의 입장을 듣는 게 당연지사다. 이 영화는 이 형식의 플롯을 차용한다. ‘괴물 찾기’에 최적화된 이야기 방식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다. 1차원적으로 특정 누군가의 입장에서 원인-결과의 해결방식만 나열한다면 이야기가 지루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인 이상 모든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짓기도 불가능하다. <괴물>은 이를 탈피하는 각본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A의 관점을 쭉 전개하다 새로운 의문점을 만든다. 그걸 B의 관점에서 해결해 준다. 그런데 B의 입장을 보여줄 때 A의 시점에서 보여준 상황을 바탕으로 새로운 궁금증을 만든다. 그걸 C 서사에서 해결한다. 이렇게 물리고 물리는 플롯은 해소되지 않는 물음표를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가 좋은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아, 이렇게 쌓아 올린 미스터리가 엔딩에서 어떻게 치환되는지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엔딩은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선생님
영화의 두 번째 장점은 윤리의식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이 수많은 소재들을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데에 있다. 이것은 이 영화가 악인을 어떻게 설정했는지와도 관련이 있다. 보통 세상이 만든 괴물을 설명하는데 악인은 필수적이다. '이 인간이 나쁘다'로 영화의 많은 부분을 편의적으로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많은 분들이 ‘이 <괴물>에는 악인이 없다’라고 하실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영화의 핵심 인물들을 영화가 그리는 방식을 보면 양면적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에 악인은 분명히 있다고 보는 쪽이다. 하지만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특별하다. 이 악인들은 인물의 형태(?)로 등장하긴 하지만 특정한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왜 이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하는가’를 주인공의 시점에서 설명한다. 이 주인공(들)이 어떤 것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보시길 바란다.
아역 명가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배우들의 연기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을 맡은 쿠로카와 소야와 히이라기 히나타는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가진 장점 중 하나를 그대로 승계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전 세계에서 아역의 연기를 가장 잘 이끌어내는 감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톡톡히 수행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나토가 화를 내는 장면이 있다. 또 극후반부에 어떤 인물과 독대하는 장면이 있다. 이 두 장면에서 느껴지는 진한 울림은 많은 분들의 관객들의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글쓴이가 요리의 명장면으로 뽑은 것은 어떤 일을 겪고 씩씩하게 일어서는 장면이다. 이 사소한 장면 하나가 요리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장치인데, 미묘한 표정 차이를 이끌어낸 감독의 역량이 돋보였다.
어른 캐릭터 중 미나토의 어머니 사오리 역을 맡은 안도 사쿠라도 아주 뛰어났다. 글쓴이는 그녀가 등장한 모든 장면이 다 기억에 남는다.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는 미나토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신이다. 여기서 미나토를 격려하는 장면은 아들을 홀로 키우는 어머니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을 한 번에 다 축약한 듯한 애처로움이 있다. 그리고 이 인물은 서슬 퍼런 연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교장 선생님 역을 맡은 타나카 유코와 대면하는 모든 순간이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영화의 질문을 다채롭게 만드는 좋은 연기였다. 또 호리 선생님을 맡은 나가야마 에이타는 감정적으로 진폭이 가장 큰 인물이다. 왜 감정적으로 진폭이 클까? 역시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다. 어쩔 땐 웃으면서 분노를 삭이고 있고, 다른 때는 굉장히 불쾌해하지만 표정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이 양면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배우의 역량이 극에 이입하게 만든다.
사카모토 류이치
이 영화의 음악은 아름답다는 점에서 작품과 잘 어울린다. 이 영화가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마냥 스트레스만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이 와중에도 아름다움과 추함을 오고 가는 교묘한 연출방식을 감독이 구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영화가 인물들의 밝고 어두운 내면을 모두 상징한다는 점에서 극에 윤활유가 되는 요소다. 특히 예고편에도 삽입된 ‘Monster 2’라는 트랙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엔딩에 삽입되는 음악은 이 영화의 아름다움에 방점을 찍는 곡이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느낄 수 있었던 처연한 아름다움을 이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는 셈이다.
단 한 명의 외로운 사람에게
글쓴이는 이 영화가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봤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 이 영화를 바라보는 건 쉬울 수도 있다. 영화가 시점을 확 넘기는 것도, 인물들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도 관객 입장에서 바라보면 판단이 용이하다. 하지만 이 판단이 쉽다는 것에 근거해서 답해보자. 우리 역시 이 영화의 인물들과 별 차이점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글쓴이는 다르지 않다고 본다. 우리 모두 다 이렇게 모난 부분이 하나쯤은 있고, 그래서 세상이 함부로 들 대한다. 근데 또 우리는 모났기 때문에 세상을 함부로 대한다. <괴물>은 이 아이러니에 다룬 영화다. 왜 내가 세상을 함부로 대하는지. 그 대하는 이유가 내가 괴물이기 때문은 아닌지. 그런 우리가 정말 괴물이라고 볼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
- [BIKY 데일리]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을 빼앗는 이는,
제20회 BIKY 기획기사 [유스 단편 5]
<곰을 기억하다>
감독장 & 나이트
국가United Kingdom
제작년도2024
Cast Anna Calder Marshall, Lewis Cornay
시놉시스
영국 시골 마을에서 정체 모를 금속음에 집착하는 소년 피터는 소리를 따라 녹음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리가 담긴 장면을 노인에게 보여주자, 그는 어린 시절 곰이 언덕을 떠돌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감각적인 사운드의 디자인, 교차 편집의 스타일을 통해 세대 간의 감정을 연결하고, 과거와 현재를 영화적인 동시에 서정적으로 연결해 냅니다. 환상과 현실의 교차하는 세대 간의 공감을 일으키는 단편.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소음인가? 언젠가부터 그레이힐에 쇠와 같은 무언가가 부딪히는 마찰음이 울려 퍼진다. 마을 전역에 메아리처럼 퍼진다. 창문을 매트리스로 막고, 더 큰 노래로 잠재워보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귀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방송사에서 취재하러 올 정도로 사안이 커질 즈음, 유일하게 신이 난 듯한 소년 ‘피터’가 등장한다. 자신이 들고 있는 드론 카메라보다 훨씬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취재진들에게 말을 건다. 저 엄청난 영상을 찍었는데, 보여 드릴까요? 그들에게 대답을 듣기는 커녕 무시 받았음에도 여전히 장난기 넘치는 눈빛을 보인다. 그런데, 마을의 흥밋거리를 찾아 온 외지인들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또한 소년에게 큰 관심이 없다, 마을의 골칫거리인 ‘소음’의 원인을 파고들고 해결할 만한 유일한 인물임에도.
마을과 묘하게 동떨어져 있는 인물은 피터 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에 남아 있지 말라는 관리인의 말을 듣고도 저항하지 않는 인물이 보인다. 건물 청소부 ‘에바’,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홀로 남아 있던 피터는 갑작스레 들리는 라디오 소리에 그가 지내는 곳으로 이끌려 온다. 자신은 남동생과 함께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이곳에 거주하는 거라며 반사적으로 해명하는 에바는, 그저 예전에 불에 타 사라진 마을의 유물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공간에 매료되었을 뿐인 피터의 모습을 보고 한층 경계를 푼다. 그리고 피터가 계속 자랑해 마지 않았던 어떠한 영상을 함께 본다. 계속 희미하게 들려오던 쇠 마찰음.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한 무언가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가까이서 마주하니 무언가 다르다. ‘곰의 정령’이 돌아왔음을 에바는 바로 알아챈다.
이미 사라진 마을을 찾아 헤매던 곰의 정령은 다함께 춤을 췄던 기억을 더듬으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나,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이미 있었던 소리. 그 소리에 집중하고 추억을 기억해 준 건 피터와 에바 뿐이다. 화재가 일어난 이후 마을의 이름도, 위치도, 모든 게 바뀌어 버린 지금에 와서는 에바와 정령 또한 춤을 온전히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들을 이루던 근간을 잊는다. 이 땅 위에 분명히 있었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곰의 정령은 떠난다. 소리와 함께 기억도 사라진다.
<양>
감독하디 바바이파르
국가Iran
제작년도2024
Cast Rose Tabatabaei(Gelavij Alam)
시놉시스
테헤란에 사는 10살 소녀 로즈는 축제에서 사용을 양들을 구하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은 이란의 전통에 맞서는 과정이 되고, 전통의 엄격함이 지배하는 분위기에서 어린 소녀의 선택과 결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양을 구하기 위한, 어쩌면 소녀를 닮아 있는 양을 둘러싼 모험은 어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희망은 어떻게 피어나는 것일까요.
<할아버지>
감독콩스탕스 들로름, 에르완 딘
국가France
제작년도2024
시놉시스
네 명의 손주가 할아버지 집을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평범한 가족 모임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현실과 환상이 자유롭게 교차한다. 시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 속 각자의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여러 생각과 울림을 준다. 보통의 날들인 것 같지만 아주 특별한 할아버지의 손주들의 만남을 다룬 세대를 잇는 상상력이 번뜩이는 작품.<양>과 <할아버지>는 <곰을 기억하다>와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약간의 몽환적인 이미지를 곁들여 작품의 주제를 표현해낸다. 그리고 인간 이전부터 존재했던 동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양>은 특히나 아이의 시선을 통해 성경 구절 중 하나를 꼬집는다. 어른들이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성경을 차용한다. 이기적인 마음을 성스러운 행위로 탈바꿈하여 양을 죽인다. 수많은 양을 마당에 데려와놓고 그들의 앞에서 동족을 죽이는 모습을 목격한 ‘로즈’는 그날부터 고기 반찬을 입에 대지 않는다. 대신 집에 있던 채소를 한껏 챙겨 그 마당에 들어가 양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리고 줄곧 조용하던 로즈는 엄마에게 이웃집에 대해 질문한다. 양을 제물로 바치는 거라며 별 일 아니라는 듯 차분하게 설명하는 엄마에게 다시 묻는다. 성경이 우리에게 양을 직접 도살하라고 시켰어요? 엄마는 대답하지 못한다. 사사로운 감정과 이해관계에 물들지 않은 아이의 순수함은 무언가 옳지 않다는 강렬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고민하던 로즈는 어느새 세 마리의 양 밖에 남지 않은 마당으로 다시금 몰래 들어가 자신의 집에 데리고 온다.
새를 집에 박제해두고 새에 관련된 영상만 보는 ‘할아버지’의 집에 네 명의 손주가 놀러온다. 그리고 다시금 현실과 환상이 교차된다. 어쩌면 극의 첫 시작부터 환상 속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아이들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일까? 아이들과 즐겁게 대화하고 TV를 감상하던 할아버지는 손주들에게 밥을 챙겨주려는 순간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외마디 소리와 함께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죽음을 모르는 건지, 외면하는 건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할아버지에게 음식을 먹여준다. 아무 일이 없다는 듯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할아버지인 척 문자를 보내고, 박제된 새의 깃털을 뽑고 꼬리를 부러뜨린다. 그리고 깃털이 마구 뽑힌 새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몸에 깃털이 듬성듬성 붙어 있는 할아버지가 아이들의 앞에 나타난다. 아이들은 당연히 할아버지가 돌아올 줄 알았다는 듯 다같이 놀고 TV를 본다. 아이들을 멀쩡히 보내주고 새의 모습을 한 할아버지는 집 난간에서 도약한다. 동시에 나무에 앉아 있던 실제 새도 날아오른다.
새는 할아버지의 손에 박제되어 거짓된 생명을 유지한다. 얼마나 더 생생하게 살아 있어 보이게 만들까, 하는 욕심 뿐이다. 할아버지는 날지 못해 죽었고, 새는 죽은 순간 날지 못하게 되었다. 상반된 죽음이 한데 모이며 환상 속 존재를 만든다. 아이들의 눈에는 두 존재가 겹쳐 보였을까? 죽음을 앞두고 있던 세 마리의 양은 과연 살아 남았을까?
<나는 이르핀에서 죽었다>
감독아나스타시야 팔릴레이예바
국가Czech Republic, Slovakia, Ukraine
제작년도2024
시놉시스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룬 애니메이션인 동시에 기억의 다큐멘터리. 2022년 2월 키이우에서 이르핀으로 피신하여 열흘 간 고립되었던 상황을 회상한다. 컷아웃 기반의 흑백 연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애니메이션 특유의 간결함을 취하는 동시에 전쟁의 공포를 사실적으로 표현해 낸다. 전쟁의 상처와 죽음의 무게를 교차하면서, 개인의 기억을 앞세운 빼어난 작품.
<나를 그려줘>
감독코헤이 키야스
국가Japan
제작년도2024
Cast Kobayashi Momoko(Koyori Edogawa), Takizawa Erika(Kiriko Asai)
시놉시스
고등학교 만화가 지망생 코요리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친구 키리코로부터 “너의 만화가 최고였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또한 키리코는 “나를 그려 줘”라고 요청한다. 소녀들의 성장담을 바탕으로 외면과 내면 사이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학원영화의 감성을 건드리면서 진짜 모습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풋풋한 감성의 드라마.
<나는 이르핀에서 죽었다>와 <나를 그려줘>는 감정의 정적인 표현과 과장된 표현이 대비되어 함께 감상하면 각 작품의 매력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또한 애니메이션과 그림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부분 또한 집중할 만한 부분이다. <나는 이르핀에서 죽었다>는 감독 자신의 경험담을 독백으로 다루고 있는 자전적인 작품이다. 역사 속에서 종식되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고 있던 전쟁이 발발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국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특징이 적극 활용되어, 자신이 경험한 모든 부분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절제하고 비워두고 관객에게 상상의 틈을 열어주면서 세세한 감정을 완성시킨다. 전쟁에 대한 경험이 한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관객들에게 그 감상을 전달할 만큼, 개인의 시간이 죽고 또 죽을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이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나를 그려줘>는 극영화로서, 주인공 ‘코요리’의 성장담을 코믹하게 담고 있으나 <나는 이르핀에서 죽었다>와 주인공이 지닌 ‘사실’을 그림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생님과 학생들을 캐릭터화하여 자신에게 일어나는 은근한 따돌림을 만화로 그려 승화시킨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코요리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궁금해하지 않고 그만두기를 강요한다. 그럴수록 코요리는 그만둘 수 없다. 그런 주인공 앞에 학교 내 유명인사 ‘키리코’가 나타난다. 모든 이들에게 비난 받던 만화를 전적으로 응원한다며 칭찬의 말을 건넨다. 하지만 그 속내는 금방 드러난다. 자신을 그려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의 완벽해보이는 가면을 벗기고 망가트려 달라고 한다. 코요리는 유일하게 호의적으로 다가와준 인물의 특징을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하지만, 가득하다 못해 넘쳐나는 악의로 구성된 그림으로는 키리코를 그려낼 수 없다. 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은 선망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갈등이 극에 달하는 순간, 코요리는 키리코를 그린다. 키리코는 코요리의 그림 속 진실된 자신과 마주한다. 한번도 미소를 잃은 적 없던 그가 포효한다. 만화적인 이미지로 주인공의 감정을 여과없이 표출해내는 장면에서 독특하고 독자적인 연출 방식이 눈에 띈다.
두 작품 모두 각 주인공만이 경험할 수 있는 성장을 다루고 있다.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결정으로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그들의 성장담이 탁월하게 그려진다.
상영일정
2025.07.14(월) 13:30 소극장2025.07.16(수) 10:00 사하구청 대강당
BIKY 2025. 07. 08. (화) ~ 2025. 07. 19. (토)
-
- 다큐멘터리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2020)> 리뷰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쉽게 지나갈 수 있을까. 내가 넷플릭스에서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이하 당신의 눈을 속이다)>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다큐멘터리를 튼 건 불가항력에 가까웠다.
예술의 역사만큼 위작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기실, 인간의 욕망과 돈이 결합된 분야라면 스캔들이 없을 수가 없다. 가치가 높은 대상이라면 스캔들의 폭은 더욱 넓고 깊어지리라. 당장 떠오르는 스캔들만 해도 적지 않다. 베르메르 위작으로 유명한 반 메헤렌은 물론이요, 올해 미국 올랜도 미술관에서 발생한 바스키아 위작 스캔들도 있다. 시선을 국내로 돌린다 해도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으로 인해 미술계가 크게 흔들렸던 적이 고작 5년 전이다. 어쩌면 위작 스캔들은 전 세계의 박물관이나 갤러리라면 어디든, 또한 누구든 안고 있는 점화되기 전의 폭탄일 터다. 그러하므로 내가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기 전 가장 궁금해했던 건 이런 것이었다. 165년 전통을 자랑하는 갤러리가 위작 스캔들에 휘말렸던 이 사건을 대체 왜 공개했을까? (만일 다큐멘터리의 목표가 갤러리의 무고함을 밝히는 것이라면) 이미 자취를 감춘 갤러리의 결백을 주장한다 한들,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출처: Netflix
일단 <당신의 눈을 속이다>가 다루는 사건은 위에서 언급한 노들러 갤러리 스캔들이다. 이 사건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노들러 갤러리는 1846년에 문을 연, 긴 역사를 지닌 명망 있는 갤러리인데, 본디 1950년대 추상 표현주의에 퍽 취약했다. 그런데 어느 날, 노들러 갤러리의 전 직원이 글라피라 로잘레스라는 (자칭) 미술품 중개인을 노들러 갤러리의 전 관장이었던 앤 프리드먼에게 소개하였고, 글라피라는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과 등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화가의 그림을 거뜬히 가져왔다. 가문의 힘조차 업지 않았던 글라피라의 수완은 정말이지 대단했던 모양이다. 노들러 갤러리는 그를 통해 거의 20년 동안 60여 개의 위작을 판매하며, 총 8천만 달러(약 1,054억 원) 규모의 사기에 발을 디뎠다. 단순한 개인과의 거래였다 해도 문제가 작지 않을 텐데, 일류 컬렉터와 유명한 미술관들도 노들러 갤러리에서 위작을 구매했으니 미술계가 발칵 뒤집힌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앤 프리드먼이 Freedman Art라는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이 사안은 종결된 지 오래이다. 그래서인지 다큐멘터리는 수사극, 추리극의 형태라기보단 일종의 인터뷰의 연속체로 기능하는 듯하다. 제작진은 영리하게도 시청자에게 결정권을 넘겨주는 방법을 택했다. 사법부가 호명한 피의자가 이미 명확히 존재하는 만큼, 굳이 다른 이를 지목하는 자극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고, 어떻게 이 ‘파렴치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느슨하게 재구성한다. 이를테면 그들의 태도는 이런 식이다. 사건은 이미 발생했다. 사기꾼이 있는 건 분명한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기꾼의 범주인지를 밝히는 게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부분을 재조명하고 싶다. <당신의 눈을 속이다>에는 그렇게 초대받은 예술계 인사들과 심리학자가 있으며 모두가 한통속이라며 억울함을 강력히 호소하는 피해자와 당시의 상황에 대해 첨언하는 기자가 있다.
출처: IMDb
사기꾼의 경계를 결정하기 전, 시청자라면 앤 프리드먼을 딱하게 여기든, 수상쩍게 여기든 ‘어떻게 그들이 취급한 작품이 위작이라는 걸 모를 수가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앤 프리드먼은 누구든 자신의 처지에 있었더라면 위작임을 알 수 없었으리라고, 자신 역시 많은 노력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폐쇄적인 예술계의 특성상 특별한 이유 없이 감정을 맡기는 것 자체를 노들러 갤러리의 명성에 흠이 간다고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순히 갤러리의 주인 측에서 압박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또한 위작은 인류의 역사 내내 번번하게 유통되었고 카렐 아펠 등의 사례만 보아도 알 수 있듯 때로는 작가들조차 진품과 가품을 판별하지 못하니, 그의 말이 정당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이었던 토머스 호빙조차 자신이 15년간 살펴본 미술품 중 40%가량이 위작이었다고 말한 바 있지 않은가. 만일 프리드먼이 명예욕과 금전욕에 의해 의도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면, 그의 잘못은 앤의 말마따나 ‘미술품과 사랑에 빠져’ 관습적으로 일을 처리한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명예욕에서든, 금전욕에서든 그가 “위험 신호를 무시”했다는 사실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IFAR에서의 감식 결과가 없었던 것도 아니니까. 허술한 프로비넌스를 눈 감은 것, 친분 있는 학자에게만 기댔던 것, 피상적인 몇 개의 견해에만 귀 기울이며 모든 신호들을 대수롭지 않지 여긴 시간들은 단숨에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그러나 앤 프리드먼의 동기가 어떠하든, 위작 구매자이자 사건의 피해자인 아트 컬렉터 데 솔레 부부의 분노를 달래는 데엔 역부족이다. 소더비, 톰 포드 인터내셔널 회장이라는 명성과 자부심에도 흠집이 생겼고, 금전적으로도 손해를 보았으며,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에서 시간 싸움까지 진행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만 동시에 미술계의 특수성에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때로는 이렇게 믿을만한 이력서조차 없는 작품을, 화랑의 명성 혹은 딜러와의 친분만으로 거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왜곡된 시장이지 않은가? 작품 감별을 위해 활용하는 방법이 고작 프로비넌스를 확인하며 극장의 우상에 기대는 것에 불과하다니. 무려 하나의 작품에 800만 달러를 지불하면서!
물론 미술계가 위작에 대해 늘 침묵하는 건 아니다. 당연하지만 모든 갤러리가 이토록 허술하진 않을 것이며, 위작 감별에 관한 전문가들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위작 거래를 최소화하기 위해 투명한 거래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엄정한 처벌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과연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출처: IMDb
값어치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던 그림은 위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후 앤 프리드먼의 변호사의, 루크 니카스의 사무실에 걸린 벽화가 되어 아무도 거들떠도 보지 않는 신세가 되었다. 정교한 위작이라는 걸 알기 전 감상자들이 경험했다는 작품의 아우라는 대체 언제 증발한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 노양진의 해석을 인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물리적 대상은 유기체의 기호적 경험, 즉 우리의 ‘기호적 사상’을 통해서 비로소 기호적 해석의 대상인 ‘기표’가 된다(노양진, 2020)”고 언급한 바 있다. 결국 작품의 가치는 작품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작품 외부에 있다는 이야기다. 위작이 활개를 치는 미술시장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미술품 외부에 있는 우리의 인식을 해체하고 바꾸는 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시장이 예술을, 혹은 예술이 시장을 적극적으로 삼켜버린 시대이므로. MZ세대의 아트테크 열풍과 같은 기사가 신문의 경제면을 휩쓸고, 이제 손에 쥘 수도 없는 토큰인 NFT를 이용해 작품을 쪼개어 소유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동시에 예술은 뒤샹과 워홀의 등장 이후 소비 이데올로기 하위에 존재하던 온갖 상품까지 넉넉하게 받아들였다. 보드리야르의 입장을 알고 있었다지만, 예술의 종말은 진작부터 거론되었다지만, “예술이 그저 상품으로만 남을 것인가?”따위의 질문이 아니라, “어쩌면 미술품이란 ‘상품’이라는 속성이 본질임에도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많은 가치를 입혀 두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 그야말로 피부로 느껴지는 듯하여 나는 두렵다. 세계를 해석하는 인간의 능력을 꺾어버리고, 사유를 헐값에 거래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가 어떠한 도덕적 양태를 잉태하거나 공유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출처: IMDb
같은 작품이라 해도 사람마다 저마다 다른 메시지를 읽어낸다. 내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읽어낸 메시지는 앤 프리드먼이 운 좋게 풀려난 범죄자가 맞느냐, 아니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이었다. 21세기의 미술품은, 그 어느 때보다 상업 기호에 가까워졌다는 것. 어쩌면 ‘기호’조차 사라지고 예술이 자멸할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당신은, 아니 어쩌면 나는, 한때나마 예술이 존재했다는 흔적만을 쥔 채, 그것을 알아보지도 못하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오로지 그뿐이다.
참고문헌
노양진 "기호의 역전" 담화와 인지 27.3 pp.47-62 (2020) : 47.
-
- 번뇌와 번민, 요괴로 재탄생하다
삶에서 고민이나 걱정거리는 항상 찾아온다. 평생을 살면서 이런 고민들이 없이 살아가는 시간은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은 그 무수한 고민들의 해답을 찾지 못해 우울하거나 절망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 고민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삶의 방향성을 찾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쉽지 않다. 불교에는 번뇌(煩惱)라는 말이 있다.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을 뜻한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의식주를 비롯해 발생하는 자신의 마음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이 번뇌들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은 상태가 곧 열반의 경지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모든 인간은 마음속에 찾아오는 다양한 번뇌를 각자의 방법으로 억누르거나 조절해가며 살아간다. 이것이 잘 조절되지 않거나 억눌러지지 않으면 그것은 번민(煩悶)이 된다. 마음이 답답해진다는 의미의 번민은 열반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속을 가득 채워 괴로움을 만든다. 어쩌면 과거의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현대의 사람들은 번뇌를 해결하지 못해 번민이 가득해 더욱 우울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엄청난 발전을 이룬 지금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마음의 갈등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번뇌와 번민에 대한 영화 <제8일의 밤>
영화 <제8일의 밤>은 번뇌와 번민에 대한 영화다. 불교의 개념을 가지고 와서 두 단어를 어떤 기이한 존재로 형상화했다. 붉은 눈과 검은 눈을 일종의 요괴의 눈으로 설정하고 과거 부처가 별도의 장소에 각각을 봉인하여 묻어버렸는데 현재에 그것의 봉인이 풀려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봉인이 풀린 붉은 눈은 검은 눈을 찾기 위해 사람을 징검다리 삼아 조금씩 검은 눈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면서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의 맨 첫 장면부터 산스크리트어로 설명되는 요괴의 봉인 과정은 꽤 흥미롭다. 마치 불교 삽화처럼 구성된 애니메이션이 현지어와 함께 설명되며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분위기를 만든다.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묵언 수행 중인 스님으로 등장하는 청석(남다름)이다. 등장인물 중 가장 마음의 짐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며 순수해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큰 틀에서 보면 그가 요괴의 두 눈이 다시 만나는 것을 돕기도 하고 또 그 반대로 막기도 하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꽤 중요한 인물이다. 그리고 과거 스님이었으나 지금은 평범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인 진수(이성민)는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다.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번민하는 인물인데 그 과거는 청석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에서 진수가 가진 번민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지는 요괴와의 싸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 외에도 형사 호태(박해준)와 후배 형사 동진(김동영) 그리고 신비한 인물 애란(김유정)이 등장해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 애쓴다. 주요 등장인물 중 진수와 호태는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마음 한구 석에 큰 번민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표정은 시종일관 어둡고 심각하다. 요괴에게 희생당한 인물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쫓아가게 되는데, 진수는 그 이유와 막는 방법을 알고 요괴의 흔적을 따라가는 반면 호태는 이면에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모른 채 그 길을 따라가게 된다. 동진과 애란의 경우, 요괴와 연관성 있는 인물로 그들이 요괴가 지나가는 징검다리가 되는지 여부가 영화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번민으로 가득 차 있는 인물 진수
관객의 입장에서는 사실 진수의 시선과 입장을 주로 따라가게 되기 때문에 그가 가지고 있는 태도나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영화 초반 진수와 청석이 만났을 때는 거의 대화가 없다. 청석은 묵언 수행 중이며, 진수는 상대방과 별로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석이 자신이 생활하던 절에서 봉인된 검은 눈을 들고 내려온 후, 자신의 스승과 함께 생활했던 진수를 만나게 되는데 그 어느 순간에 청석은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가 2년 넘게 하고 있던 묵언 수행이 중단된 이후 두 인물의 대화가 많아지고 교류가 시작된다. 그런 게 이렇게 대화가 많아진 이후 청석을 바라보는 진수의 눈빛은 더 큰 번민에 휩싸이는 듯 보인다.
결국 영화가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진수와 청석의 관계는 복잡해진다.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인물은 진수는 자신과 연관된 청석을 지켜야 하지만 그에 대한 분노가 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 두 마음이 그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것을 영화는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이 영화에서는 어떤 영적인 속삭임을 통해서 전달되거나, 진수의 망설임과 표정으로 드러난다. 아마도 영화에서 가장 좋은 지점을 뽑으라면 진수와 청석의 애매한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들일 것이다.
영화가 가진 번뇌와 번민의 형상화는 꽤 독특하고 괜찮은 아이디어다. 그것을 실체화하고 살아 움직이게 하면서 불교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퇴마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영화 안에 퇴마사라고 불만한 인물은 없다. 진수가 그에 가장 가깝지만 완성된 요괴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요괴의 약점이 전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중간에 그에 대항하거나 싸우는 장면은 너무 일방적이어서 오히려 맥이 빠진다. 중간중간 요괴가 사람들을 옮겨 다니면서 요괴가 조종하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기괴한 모습은 공포스럽지만 그 이외의 장면에서는 그런 긴장감이 연결되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호태와 애란의 경우, 영화가 꽤 공들여 이야기 속에 등장시키긴 하지만 결국 그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영화는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영화는 추진력을 잃고 자꾸 뒷걸음친다. 이 두 인물은 아마도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반전을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고, 또 근본적으로 번뇌와 번민의 부득이한 희생자일 텐데 그들이 영화 말미에 하는 역할은 미미할 뿐이다. 결국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진수와 청석이며, 특히 진수가 가진 번뇌와 번민을 그가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느냐가 영화의 결말과 연결된다. 영화는 번뇌와 번민을 요괴로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그 요괴는 진수의 마음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밀어붙이지만 아쉬움이 많은 영화
영화 <제8일의 밤>은 사실 1일부터 8일까지의 각 날짜가 중요하지는 않다. 대부분은 8일 밤에 벌어지기 때문에 그 전의 날들은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요괴가 이동하는 단계가 있지만 그것이 마지막 날짜를 제외하고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1일에서 7일까지 벌어지는 일들을 볼 때 이야기가 많이 늘어진다. 그래서 8일에 벌어지는 일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 쉽지 않다. 8일 밤에 벌어지는 마지막 장면들에서는 꽤 긴장감 있는 상황들이 이어지지만 요괴들을 상징하는 검은 연기나 그래픽들이 다소 어색해 보여 아쉬움을 남긴다.
이 영화의 감독인 김태형 감독은 <제8일의 밤>으로 각본과 연출 데뷔를 했다. 첫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최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주연 배우 이성민은 그가 가진 특유의 어두움과 과묵함으로 진수 역을 잘 소화하고 있다. 또한 창석 역을 맡은 매부 남다름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순수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어른 스님의 연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에서 단독으로 공개된 <제8일의 밤>은 극장보다는 집에서 불을 끄고 관람할 때 더욱 괴기스러움이 전달될 작은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제8일의 밤 리뷰>
-
- 낭만에 가려진 현실을 들추는 로맨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화려한 패션으로 무장한 이 도시는 수많은 영화에서 로맨틱하고 사랑이 꽃피울 것만 같은 부드러운 인상으로 등장했다. 파리의 예술에 대한 판타지가 집약된 로맨스로 유명한 <미드나잇 인 파리>나 시즌 2까지 공개되어 큰 인기를 끈 <에밀리, 파리에 가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미국 그래픽 노블 작가의 단편 세 편을 각색한 자크 오다아르 감독의 <파리, 13구>는 다르다. 파리의 20개 행정구역 중 하나로 유럽에서 가장 큰 아시아 타운이 있는 파리 13구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파리는 그저 흑백 필름의 배경일뿐이다. 우연적인 만남은 있을지언정 그 만남은 드라마 같은 낭만적 사랑 이전에 더 큰 혼란을 초래한다. 그렇게 영화는 절제된 도시의 느낌과 배경을 통해 청춘의 사랑, 자유, 방황, 불안정한 삶을 온전히 전해 준다.
오다아르 감독이 그려내는 파리는 첫 장면에서부터 알 수 있다. 텅 빈 도시의 밤거리를 비추던 카메라는 이내 불 켜진 창문들을 칸칸이 스쳐 지나간다. 네모난 칸 안에 분절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칸 안에서 비슷하게 또 다르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채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 외로움은 서로 다른 캐릭터의 모습으로, 또 그들 간의 관계와 섹스 안에서 등장한다. 사랑을 갈구하는 '에밀리(루시 장)',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 채 쫓기만 한 '카미유(마키타 삼바)', 다른 이를 사랑하는 일이 두려운 '노라(노에미 메를랑)', 사랑이 값비싼 '앰버 스위트(제니 베스)'가 그들이다. 영화는 제각기 처한 상황과 사랑과 삶을 마주하는 태도가 다른 이들이 우연히 스치고 만나는 시간과 그 시간에 담긴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첫 만남은 에밀리와 카미유의 만남이다. 파리 정치 대학을 졸업하고도 OTT 멤버십 가입을 권유하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에밀리는 룸메이트를 구하다가 박사 학위를 준비하면서 학교 선생일을 하는 카미유를 만난다. 첫 순간부터 카미유와 눈이 맞은 에밀리. 그녀는 함께 섹스를 할 때 비로소 자신을 옥죄는 가족을 잊고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그녀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고, 가장 자기 자신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에밀리만 카미유를 사랑한 일방향적 관계는 이내 틀어진다. 카미유와 다른 여자 친구인 스테파니를 집에 들인 것을 두고 갈등을 빚은 끝에 카미유가 집을 나가 버리고, 에밀리 본인도 성적인 뉘앙스로 고객 응대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다.
다음 만남은 노라와 엠버 스위트의 만남이다. 고향에서의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홀로 서기를 하기 위해 30대 초반에 법대생으로 파리에 온 노라. 그러나 그녀는 신입생들과 어울리기 위해 참석한 파티장에서 쓴 금발 가발 때문에 포르노 모델인 엠버 스위트와 동일 인물이라는 오해를 산다. 학교에서 야유를 당한 노라는 결국 신과 닮았다는 포르노 배우 엠버 스위트와 직접 유료 채팅을 시작한다. 엠버에게 돈을 주면서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노라. 포르노 사이트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본명을 쓰는 노라를 보면서 엠버도 자신의 본명을 알려주고, 둘은 개인 계정을 통해 화상 채팅을 이어가며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로 발전한다.
다음은 노라와 카미유다. 학교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던 노라는 휴학을 선택한 뒤, 고향에서 원래 종사했던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자 카미유가 친구 대신 운영하던 사무실에 취직한다. 에밀리와 몸을 섞으면서도 마음을 주지는 않았던 카미유지만, 그는 능력 있고 매력적인 노라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장벽이 있다. 노라는 카미유와 관계를 맺을 때마다 분위기에 맞춰 자신의 감정과 몸의 반응을 연기한다. 이미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엠버에게 큰 위로를 받고 있던 노라에게 진실되지 않은 카미유와의 만남은 매력이 없다. 그런 노라를 보면서 카미유는 카미유대로 에밀리에 대한 생각을 지우지 못하며 그녀와 재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인 고객의 통역을 위해 부동산 사무실에 들른 에밀리를 보고, 노라는 카미유에게 자신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이들의 만남은 항상 섹스와 쾌락이 우선하고, 그다음에 사랑과 관계에 대한 고뇌가 뒤따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그 고뇌가 단지 로맨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각 캐릭터의 삶에 관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처음 만난 날부터 즉각적인 육체관계를 갖는 에밀리와 카미유, 그저 대화를 원한다는 노라에게 망설이지 말고 원하는 서비스를 말해보라는 엠버, 각자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관계를 맺는 카미유와 노라. 이것이 세 여성과 한 남성이 만들어 낸 관계도다. 이 관계도는 통상적인 사랑과 쾌락의 관계가 뒤바뀐 듯하고, 무척이나 가볍지만 무시할 만한 무게는 아닌 감정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파리, 13구>는 인터넷으로 만난 관계는 진지할 수 없다는 통념을 조금씩 벗겨내는 감정, 희미한 호감이 있지만 적극적 구애로 전환하기는 애매한 감정이 빚어내는 현대적 사랑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때 영화는 단지 중심 없이 혼란스러우며, 두루뭉술한 사랑의 그림을 보여주는 데에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림 밑바탕에 있는 스케치의 모습을 밝혀내고자 한다. 그 스케치는 청년들이 확신에 찬 사랑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시대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그 핵심은 불안감이다.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사회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이에 사랑은 부차적인 이슈가 된다. 경제적 조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믿지 못하고, 그 불안감으로 인해 사랑을 잡을 날을 요원해진다.
에밀리, 카미유, 노라, 앰버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만남은 어느 로맨스 영화처럼 우연으로 시작되지만, 그 우연은 곧장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감정들은 사랑에 앞서 삶을 돌아보고 뒤바꾸는 기회가 되고, 그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을 기회가 된다. 에밀리는 직장과 집을 오가며 답답한 삶을 살았지만, 카미유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수입원이 사라지고, 가족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며, 사랑을 찾으려는 노력에 이르기까지 언젠가 필요했을 변화의 순간을 초래한다. 노라에게 일어나는 변화도 다르지 않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가벼운 성욕 너머에 있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캐릭터들의 진짜 외로움이다. <파리, 13>가 '낭만의 도시’라 불리는 파리를 흑백으로 담아내어 전달하려는 건 이 혼란스러운 감정의 흐름이다. 그래서 영화는 현재의 사건과 대화를 인물들을 둘러싼 과거의 배경과 사연으로 눈으로 돌린다. 대만계인 에밀리의 가족을 통해, 카미유의 가족을 통해, 화상 채팅을 통해 그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왜 그들이 사랑에 집착하고 또 사랑을 알지 못하는지를 납득시킨다. 적나라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사랑의 감정은 카미유가 동생 에포닌과 오해를 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외적으로 닮았지만 전혀 다른 이들이 담담히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그 결과, 클라이맥스의 키스신은 덜 섹슈얼하더라도 그 어떤 장면보다도 농도가 높고, 외로운 청춘들의 욕망은 깊은 계곡을 넘어 낭만적 사랑으로 마무리된다.
네 주인공의 만남과 욕구, 사랑의 서사를 더욱 진하게 만드는 것은 감각적 요소, 특히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의 활요이다. 우선 영화는 흑백 촬영을 선택해, 파리에 기대하는 일반적인 이미지에 변화를 주었다. 화려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도시의 색을 없앴다. 그 덕분에 쾌락과 섹스처럼 즉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 너머에 있는 이야기들에 집중할 수 있다. 자칫 매우 자극적인 영상의 향연일 수 있었지만 파리라는 도시를 이루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성공한다. 이에 더해 제한적으로 등장하는 음악의 존재감은 네 주인공의 삶의 무게를 극대화한다. 내용이 전환될 때 들려오는 빠른 템포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전반적인 영화의 분위기와 대비를 이루며 이질적인 인상을 준다. 이는 마냥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속사정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청춘들의 이면을 음악으로 담아냈다고 할 수 있겠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에 따르면 “<파리, 13구>는 현시대를 보여주는 시대극이라 말할 수 있다.” “이 도시에 사는 등장인물이 성취감을 얻고, 성적인 면에서는 정체성을 깨닫고 쟁취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던 포부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리 13구역에서 성장통을 겪는 네 명의 캐릭터들은 다양한 배경과 문화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모든 젊은이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 느껴진다. 그렇게 <파리, 13구>는 육체적 쾌락에서 시작해 낭만적 감성을 충족시키며 파리의 색다른, 또 색이 없는 사랑을 그려낸다.
A(Accepatble, 무난함)
낭만을 잠시 버린 파리의 색다르고 색 없는 사랑 이야기
-
-
- 9월 4주 최신 개봉영화(캔디맨, 나의흑역사 로맨티카, 로빈의 소원, 아하 테이크 온미, 종착역)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9월 4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캔디맨 #나의흑역사로맨티카 #로빈의소원 #아하테이크온미 #종착역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
- 영화 <기담> 메인 예고편
경성 최고의 의료기술이 갖춰진 ‘안생병원’,
동경 유학 중이던 엘리트 의사 부부 ‘인영’(김보경)과
‘동원’(김태우)이 부임하고
병원 원장 딸과의 정략결혼을 앞둔 의대 실습생 ‘정남’(진구)은
유년 시절 사고로 다리를 저는 천재 의사 ‘수인’(이동규)과 함께
경성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저마다 비밀스런 사랑에 빠져든 이들은
점점 지독한 파멸의 공포와 마주하게 되는데…
1942년 경성 안생병원
우리는 죽은 자와 사랑을 시작했다
-
- 넷플릭스 <우리 함께 아웃백으로!> 공식 티저 예고편
깜찍한 줄만 알았더니 댄스도 죽여준다! 호주 야생동물 공원을 탈출한 치명적인 매력의 동물들. '프리티 보이'라는 유명 코알라와 함께 친구들이 아웃백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추격전이 시작된다! 아일라 피셔, 팀 민친, 에릭 바나, 가이 피어스, 미란다 탭슬, 앵거스 임리, 키스 어번, 아이슬린 데르베스, 재키 위버가 출연하는 가족 코미디 신작. 댄스 본능을 발휘할 준비는 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