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2025-09-26 23:17:11
참상에 대한 관(観)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 리뷰
찍히거나 찍는 사람
주인공 'Lee'는 젊은시절 유명한 모델로 활동하며, 유명 잡지의 모델로 커버를 장식하던 인물이다. 그랬던 그녀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을 종횡무진하며 참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여성'은 'shooting'이 금기된 시대, 그는 그만의 시선과 감성으로 전쟁의 면면들을 포착한다. 피사체로서 아름다움을 뽐내던 자아와 그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자아 사이에서, 그는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걸작을 남기기도 한다. (히틀러의 욕조에서 촬영한 사진이 그 예다.)
촬영자의 마음
전쟁이라는 사건 안에서는 그가 촬영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 자신 또한 당사자다. 때문에 공포에 떠는 아이, 독일군에게 속아 마녀사냥을 당하는 여성에 대한 시선을 촬영으로 거두는 그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필요한 일이었으리라. 네모난 프레임에 담아낸 생애 마지막 모습들이 관에 담긴 것처럼 애처로울 때, 우리는 Lee의 마음이 된다.
/ 9/16(화) 오후 7시 30분,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관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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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렬하고 자극적인 이미지와 사운드 속에 엘리자베스도, 수도 없었다.
아름다움과 젊음의 집착이 초래하는 파국
릴리 글래드스턴과 마거릿 퀄리가 출연하고, 코린 하디가 연출한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는 단순한 SF 호러를 넘어,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강박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현대 사회의 집착을 파고들며, 외모지상주의와 자기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강렬한 비주얼과 사운드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강렬한 시청각적 경험
<서브스턴스>는 시각적, 청각적으로 매우 강렬한 작품이다. 한 장면, 한 장면마다 감독의 야심찬 연출이 돋보이며, 색감과 조명, 카메라 앵글은 인물의 내면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사운드 디자인 또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캐릭터들의 심리 상태를 대변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숨소리, 심장 박동 소리, 찢어지는 듯한 음향 효과들은 영화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며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되풀이된 카르마
주인공 엘리자베스(마거릿 퀄리)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되찾기 위해 ‘수(Substance)’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이 ‘수’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엘리자베스의 또 다른 자아이자, 그녀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영화는 엘리자베스가 ‘수’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을 따라가지만, 두 존재의 관계는 점점 균열을 일으킨다.
‘수’는 엘리자베스의 이상적인 모습을 구현한 듯 보이지만, 점차 그녀를 위협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영화는 이들의 대립을 통해, 인간이 원하는 완벽한 자기 자신이 실재하는 자아를 밀어내고 파괴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구조를 제시한다. 이는 곧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한 몸’, ‘완벽한 이미지’에 대한 강박이 결국 자기 자신을 소멸시키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모든 것을 터트리다
<서브스턴스>는 외모지상주의와 현대 사회의 비인간적인 아름다움 기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던지지만, 그 메시지가 충분히 깊이 있게 전달되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영화는 엘리자베스가 젊음을 되찾고자 하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파멸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한 사회적 구조에 대한 고찰은 다소 부족하다.(그것이 의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가 피로 얼룩진 파국적 결말로 치닫는 과정에서, 메시지의 설득력이 다소 약해진다. 3막에서 엘리자베스의 변모는 극단적인 폭력과 혼란 속에서 그려지며, 영화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호해지는 경향이 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엘리자베스 개인의 자기 파괴적인 모습에 집중되며, 젊음과 아름다움을 향한 집착이 어떻게 한 인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가 비판하는 외모지상주의와 자본주의적 소비 시스템이 단순한 공포와 충격적 이미지로 대체되면서, 근본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깊이 있는 서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결국 남은 것은 공허
<서브스턴스>는 시각적, 청각적으로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며, 관객의 감각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나며, 특히 마거릿 퀄리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혼란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그러나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충분히 깊이 있게 전달되지 못하며, 그저 강렬한 이미지와 사운드의 충격으로 끝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결국, 이 영화는 보이는 외모와 젊음을 향한 강박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지를 그린다. 하지만 그 파괴의 과정이 단순한 공포적 서사로 마무리되면서, 사회적 비판 의식이 다소 피상적으로 느껴진다. 그렇기에 <서브스턴스>는 강렬한 감각적 체험을 원한다면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지만, 보다 깊이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아쉬움을 남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영화에는 욕망과 욕구와 깊이 축적된 열등감과 자기 파괴적이 뒤섞인 '충동된 감정'만 있었다. 새롭게 태어난 '나'를 영리하고, 치밀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엘리자베스와 수의 균형 있는 관계가 지속된 기간이 단 '일주일'뿐이었다. 새롭게 태어난 수의 되풀이된 현재는 엘리자베스의 과거였으며, 미래일 수 있었다.
이 굴레는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정말 엘리자베스와 수가 기괴하게 혼합된 '몬스터의 파괴'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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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죽어도 그 욕망은 남을지니
들어가며
지난주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 <귀신들> 시사회에 초청을 받아 개봉전에 미리 만나보고 왔다.
AI가 상용화된 근미래 세대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다섯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였다. 제목이 <귀신들>이지만 정말 귀신이 나오지는 않는다. 공포영화도 아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디스토피아적인 부분에서 공포감을 느낄 수도 있음.) 그렇다면 제목을 왜 귀신들로 지었을까? 리뷰와 함께 살펴본다.
#1. 보이스피싱 Boy's fishing
체감상 가장 인기가 많았던 에피소드였다. 첫번째 에피소드이기도 했고 아이돌 출신 배우 찬희와 고인이 되신 이주실 배우의 유작으로 알려진 보이스피싱은 영어제목대로 voice가 아닌 boy's라는 점이 반전이었던 이야기였다. 드라마적으로도 연출적으로도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싶다.
첫 장면에서 엄마와 아들의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는 그림부터 이들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더니 1억이나 되는 돈을 달라는 아들의 재촉에 결국 노모는 그 돈을 주고 만다. 아들이 피싱 AI였다는 설정은 반전이 되지 못한다. 진짜 반전은 그녀가 아들을 닮은 피싱 AI를 이용해 사실 가장 바라왔던 일을 해내려고 하는 순간 벌어진다. 그녀에게는 오래전 실종된 아들이 있었고 평생을 그 집에서 혼자 아들을 기다렸다는 사실은 설정을 넘어서는 비통함이 있었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모든 기술이 사실은 그녀를 영원히 상처입힌 세상 속에 가두어버렸다는 사실도 많은 생각이 들게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죄와 상처, 욕망을 밸런스 있게 그려낸 좋은 작품이었다.#2. 모기지 Mortgage
원본인간의 AI로 남아 새 아파트로 이사오기 위해 자신의 사후(비활성화 이후) 일할 또 다른 AI를 만들까말까한 딜레마에 처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에피소드도 재미있었다. 그와 시종일관 다정하게 대화하던 분양사무실 직원도 사실은 키오스크 AI였다는 사실도 소소한 반전으로 재미를 더 했다.
부동산 신화가 건재한 대한민국에서 집을 사기 위해 인생 몽땅을 저당잡히는 것도 모자라 죽은 뒤의 자신의 분신에게까지 빚을 연대하게 만드는 설정에서 집이 인간을 사는건지, 인간이 집을 사는건지 모르는 아이러니를 깔끔하게 잘 풀었다. 다만 재밌는 설정을 전달하는 정도로 싱겁게 끝나버리는 점이 아쉬웠다.
#3. 음성인식
반려 동물처럼 반려 AI를 맞이하는 세계라면 유기동물처럼 버려지는 AI도 있는 법. 이 에피소드에선 진짜 자식이 생긴 뒤 버려진 아이AI가 등장한다. 아이는 유기된 아파트 단지에 남아 계속해서 혼잣말을 해댄다. 이 설정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A.I.>가 떠오르기도 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그런 AI들을 찾아다니는 여자(이요원)이 주인공이라는 점인데 사실 이요원이 맡은 캐릭터는 명확하게 설명되진 않지만 아마 애니멀 호더의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불명확한 스토리라인에도 불구하고 이 에피소드는 이 영화의 중심이다. 영화의 제목이 <귀신들>인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귀신 역시 누군가의 '한'으로 만들어져 인간세상을 떠도는 존재라 생각하면 귀신과 버려진 AI의 유사성을 쉽게 연결지을 수 있다.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탄생된 AI는 인간이 프로그래밍한 대로 말하고, 생각하며 평생을 인간 맞춤형으로 살지만 시효가 끝나고 나면 간단하게 버림받게 된다.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혼자 남아 끊임없이 사람을 부르고, 애정을 갈구하는 설정은 작가이자 감독이 AI의 정체성을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남을 욕망의 헌신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었다.*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외간 찻집에서 첫사랑을 기다리는 남자. 드디어 그녀가 오고 두 사람은 함께 했던 예전의 이야기를 나눈다. 여전히 말이 잘 통하는 두 사람. 남자는 어렵게 자신의 진심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데... 그는 이미 죽었고 그녀 역시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 AI였기 때문. 뒤늦게 나마 서로의 마음을 안 그들은 이제 행복해졌을까?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대사만으로 전달하기에는 핍진성이 떨어지는 점이 아쉬운 에피소드였다.
#5. 업데이트 update
정경호 배우의 1인 2역이 돋보이는 <업데이트>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설가 위기찬이 죽고난 뒤에서 그의 정신과 성격을 이어받아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서 보험사는 위기찬의 AI를 보내며 시작된다. 외모가 똑같은 두 사람. AI는 빠른 속도로 위기찬의 학습하며 그가 남들 앞에서 얘기하지 않은 욕망을 드러내게끔 하는데.... 드러나는 충격진실은? 그 역시 AI였다는 것.
이건 창작자라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만한 에피소드였다. <모기지>의 예술가 버전이라고 해야할까? 직장인은 AI로 대출금을 갚는 노동자 복제를 남기고, 예술가는 자신이 죽은 뒤에도 미완으로 남을 소설 끝까지 써줄 창작자 복제를 남긴다. 마지막 에피소드 <업데이트>는 앞에 나온 네 개의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는 책이었고 영화의 에피소드는 모두 위기찬이 상상한 미래사회의 AI에 대한 허구의 소설이었던 것으로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귀신들> 총평! 추천? 비추천?
이 영화는 확실히 호불호가 나뉠 듯 하다. 평소 기승전결의 짜임에서 깊이 있는 스토리나 영상미, 캐릭터의 변화와 성장을 즐기는 관객분들이라면 불만족스러우실 것 같고. 가볍게 친구들과 영화관 나들이를 하면서 새로운 소재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관객분들 또는 배우분들의 팬들이라면 소소하게 즐거운 관람을 하실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영화개봉이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참고하셔서 즐거운 관극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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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13구, Les Olympiads (2021)
자크 오디아르 감독
“사랑이든 인생이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화를 내든 울든 너의 틀을 벗어나서 비로소 찾게 되는 너의 자리가 좋은 거야.”
회색 빛의 집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뿜어낸다. 그 안에는 누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어떻게 사랑을 나누고 있을까?
에밀리와 카미유.
이 영화의 제목은 파리 외곽 비즈니스 지구인 라데팡스(La Défense)와 비슷한, 파리 외곽 주거 지역인 13구 (13th arrondissement) 를 뜻한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은 파리 13구의 에스플러네이드, 영화의 주인공인 중국계 프랑스인 에밀리가 거주하고 일하는 차이나 타운도 있다고 써있다.
영화의 시작은 수많은 집들을 보여준다. 입체적인 사각 면체 안의 수많은 방들, 쓸쓸한 집들에게서 번져 나오는 외로움들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그저 시간만 흐를 것 같은 공간들 속에서, 구슬픈 목소리로 중국어 노래를 부르는 에밀리의 나체가 눈에 들어온다. 에밀리와 카미유는 룸메이트로 만났고, 처음 만난 날부터 즉각적인 육체 관계를 가진다. 박사 학위를 준비하면서 학교 선생일을 하는 카미유는 일에서의 스트레스는 ‘격렬한 섹스’로 풀어낸다고 에밀리에게 말한다. 파리 정치 대학을 졸업하고도 OTT 스트리밍 멤버십 가입을 권유하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에밀리는, 사실은 어딘가 조금 부서져 있고, 사랑과 자유 – 가족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꿈꾸는 여자다.
그녀는 섹스를 할 때만,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그녀에게 그것은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행위인 것 같고, 그녀가 가장 그녀 자신일 수 있는 순간인 듯하다. 그러나 카미유와 에밀리의 관계는, 카미유가 다른 여자친구인 스테파니를 집에 들이면서 틀어진다. 스테파니에게 집세를 내라는 둥, 카미유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둥 하며 이간질을 하던 에밀리는, 카미유에게 화가 난 감정을 주체 못하고 일할 때 그것을 풀어내고 만다. 성적인 뉘앙스로 고객 응대를 했다는 것을 빌미로 회사에서 잘리고 만 에밀리. 설상 가상 카미유도 집을 나가 버려 그녀에게는 수입원이 사라진다. 그렇게 에밀리에게는 ‘어쩌면 필요했을지도 모를’ 변화의 시기가 찾아온다.
다음으로 등장한 엠버 스위트. 그녀는 화상 채팅으로 자신의 ‘성’을 팔고 있다. 동시에 30대 초반에 법대생으로 파리에 온 노라가 등장한다. 고향에서의 아픈 기억을 뒤로 하고 홀로 서기를 하기 위해 대학의 문을 두드린 그녀는 그러나, 신입생들과 어울리기 위해 참석한 파티장에서 쓴 금발 가발 때문에, 포르노 모델인 엠버 스위트와 동일 인물로 오해를 받고 만다.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공공연히 그녀에게 야유를 보내고, 그녀는 휴학한 뒤 원래 했던 일인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자 카미유가 친구 대신 운영하던 사무실에서 그와 처음 만난다.
여자를 좋아하는 카미유가 능력있고 매력적인 노라를 그냥 두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에밀리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는 카미유의 문자에, 가능한 한 모든 욕을 섞어서 답변하는 에밀리. 그와 만나는 자리에서도 뻔뻔하게만 구는 그녀. 하지만 카미유는 그녀에게 노라와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에밀리 또한 새 직장인 중국 레스토랑의 동료 웨이트리스들에게 알아낸, 데이트 매칭 앱에서 만난 남자들과의 잠자리 이야기를 한다. 업무 시간에도 잠시 집에 가서 그 행위를 하고 돌아오는 그녀는, 누구보다도 자유로워 보인다. 치매로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의 유산인 집에서, 카미유라는 룸메이트가 없이 살았던 에밀리는 일과 집에 눌려 박제된 사람처럼 매일을 살던 그런 여자였다. 카미유와의 일들이 없었다면, 그런 자신의 인생에 화를 내는 일도, 섹스에 눈뜨는 일도, 사랑을 찾으려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을 것만 같은데. 노라에게 일어나는 변화도 다르지 않다.
학교에서 야유를 당한 노라는 직접 자신과 닮았다는 포르노배우 엠버 스위트와 유료 채팅을 시작한다. 그녀에게 돈을 주면서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노라, 야동 사이트에서조차 정직하게 자신의 본명을 쓰는 노라에게 엠버 스위트도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털어놓고, 둘은 개인 스카이프 계정을 통해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로 발전한다. 노라는 또, 카미유와 정기적인 성관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큰 재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인 고객의 통역을 위해 부동산 사무실에 들른 에밀리를 보고, 노라는 깨닫는다. 카미유에게 필요한 그녀는 노라 자신이 아니라는 걸.마음이 헛헛하고 추울 때, 매일이 그냥 어제와 같을 때, 나를 둘러싼 것들이 답답해 견딜 수 없을 때, 그럴 때. 섹스는 그저 내가 있는 곳을 확인할 수 있는 행위일 뿐일 때. 다들 어딘가의 자기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걸 하지만 그걸 뛰어넘을 수 있는 것 또한, 큰 용기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이 셋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까. 그게
‘일’ 외에 ‘사랑’이라면, 방법이 섹스만이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
포스터 카피가 인상적이다. 서울도 파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미디어가 발달한 만큼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온라인/오프라인 구분이 명확하다.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는 건, 내가 서울을 난 10년 전보다 더더욱 어려워 보인다. 오랜만에 들른 서울에서 이 영화를 보며 감명 깊었던 것은, ‘아직 포기를 모르는’ 에밀리의 절제 없는 매력. 어디로 튈 줄 모르지만 자기 자신은 명확히 알고 있는 그녀의 당찬 모습이었다. 파리 13구 차이나 타운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가 찾아가는 파리에서의 사랑 이야기. 단조로운 듯 해도 감각적인 Rone 의 음악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
영화니까 비로소 가능했던 이야기일까? 나의 관점에서 에밀리와 노라, 엠버와 카미유는 모두 닮아있다. 그저 외로운,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현실에도 수많은 에밀리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대부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이 계절이면 좋겠다.
..메마른 감성의 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한 시사회를 바탕으로 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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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독립 사건을 독립 사건으로
SYNOPSIS.
여동생과 함께 산 정상으로 소를 몰아야 하는 소년.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들, 귀여운 남매가 어우러진 모험이야기
PROGRAM NOTE.
부모님이 마을에 간 사이 에브라힘과 그의 여동생 일마는 산에서 소들을 돌본다. 에브라힘이 다리를 다쳐 바위벽 위로 올라올 수 없게 되자 일마는 혼자서 모든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녀는 씩씩하게 임무를 수행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일마는 점점 불안해진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 어린 남매의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더구나 남매가 심각한 상황에 빠질수록 남매의 대화는 코믹하게 흘러간다. 팽팽한 긴장감과 무해한 웃음을 오가며 보는 이를 쥐락펴락하는 연출과 남매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가 매력적이다. 귀여운 남매의 일화에 소박한 가족의 애정과 신뢰가 깊이 스며있는 영화. 가족관객에게 추천하고 싶다. (함유선)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 말을 증명하듯, 이 영화는 헬리캠으로 찍은 원경에서 시작한다. 아이들이 사는 세상, 초원과 염소 소리, 황금빛 햇살까지 담아내면서. 그 안에 아이들은 그림의 일부처럼 존재한다. 엄마와 아들, 딸과 아빠, 뛰고 손을 씻고 아빠의 입맞춤을 받고, 풍경의 일부로.
가족이 사는 방식은 더없이 검박하고 단출하여 아름답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노동을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나누어 한다. 모처럼 마을로 나가는 부모님의 '쇼핑 리스트'도 네 식구가 나란히 앉아 적는다. 이제 막 철자를 배우고 있는 듯한 막둥이, 딸 일마(Ilma)가 알쏭달쏭 헷갈려 하며 글자를 써 가면서. 얼핏 퉁명스러운 것 같아도 아이들이 원하는 건 또 하나씩 다 사주는, 화목한 가정이다. 남매도 적당히 남매답게 투닥투닥하며 사이가 좋은 것이 귀엽기만 하다.
부모님이 마을로 먼 길을 떠난 날, 에브라힘(Ebrahim)과 일마 두 사람은 부모님이 남겨주신 미션을 차곡차곡 수행한다. 양을 돌볼 것, 도토리를 말려둘 생각이니 양이 먹지 않도록 주의할 것, 피스타치오 열매를 좀 따둘 것. 동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오빠 에브라힘에게는 "일마도 이제 다 커서 알 건 다 안다"는 말도 남겨둔다. 두 아이는 제법 능숙한 솜씨로 양을 친다. 둘러멘 가방 속 라디오에서는 '이란 국민 여러분' 어쩌고 하는 말이 흘러나오지만, 이들은 어느 나라의 국민보다는 그냥 이 땅의 일부로 사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다 일마가 벌을 발견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벌이 있다는 건 꿀도 있다는 뜻. 아빠가 분명 가지 말라고 했던 절벽 가에 매달려 꿀을 확인한 에브라힘은, 갑자기 등이 간지러워 손을 놓치면서 벼랑 아래로 떨어진다. 발목을 다쳐 올라올 수 없는 에브라힘과, 그 위에서 엉엉 울기 시작한 일마, 두 사람의 하루는 뜻밖의 점입가경으로 갈수록 고달파진다. 이 영화는 두 남매가 절벽에서 보낸 하루를 꼬박 담은 영화다.
#전통, 기대거나 혹은 반하거나
두 아이는 일단 재난영화의 법칙을 어겼다. 가지 말라는 금기가 있는 곳에는 가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이미 가버린 이상, 일이 벌어진 이상 두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이었을까? 어린 시절 각자가 배운 내용을 들추어 보자.
나는 엄마에게 "길을 잃어버리면 반드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혹시라도 (예를 들어 낯선 사람이 쫓아와 유괴의 위험이 있다던가 하는) 위험 상황에 처하면 아무 가게나 들어가 도움을 요청하라고 배웠다. 어느 가게를 들어가도 가게 주인과 부모님이 다 알음알음 아는 사이일 법한 작은 지역 사회였고, 20년쯤 전이니 지금과는 다른 가르침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이들이 했어야 하는 제1의 행동은, 에브라힘으로서는 가만히 있는 것, 일마가 달려가서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두 아이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어른들을 불러오겠다는 일마를, 에브라힘이 말린다. 사유는 여자 혼자 다니다가 낯선 사람을 마주쳤을 때 실추될 "명예". 10살도 채 되지 않은 일마, 가축을 돌볼 때는 너무 어려서 돌보기 귀찮은 동생으로 여겨지는 일마가 바깥에 나가면 여자로 인식되어야 하는 현실을 말한다.
그밖에도 두 아이가 내린 선택 중에는 전통에 기대느라 '오... 저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싶은 것들이 더 많이 있었다. 일마의 머리를 가리는 데 쓰는 스카프가 벼랑 아래로 내려가 에브라힘의 부어오른 발목을 감았다가, '혹시라도 낯선 사람을 마주칠 가능성' 때문에 다시 벼랑 위로 올려보내는 순간도 그렇고. 자칼이 다가왔을 때 여차하면 도망칠 수 있게 신발을 단단히 신는 대신 혹시나 하는 미신을 따르기 위해 신발을 거꾸로 신는 일마의 선택도 그렇고.
그러나 두 아이가 마음 기대는 곳 또한 전통이다. 불사조 깃털을 태우면 불사조가 도와주러 온다는 설화를 생각하며 불사조 깃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설화 속 인물이 태우지 않은 깃털이 지금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 하는 오색찬란한 상상력은 아이들이 그 하루를 버틸 힘이 되어준다. 상태가 좋지 않아 나오다 끊겼다 하며 사건의 긴장감을 더하던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서른 마리 새' 시무르 설화 또한 그렇다. 잠깐이지만 두 아이를 미소짓게 한 일마의 노래 또한 입에서 입으로 배운 방식일 것이다.
불사조의 깃털은 전설 속에서 사람을 구해준다고 하지만, 사실 에브라힘의 등을 간질인 것부터가 깃털이었다. 전통과 관습은 절대 일면만 가질 수 없다. 사람을 따스하게 감싸고 기댈 곳이 되어주는 면과 갑갑하게 옥죄는 면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병존할 수 있다.
#현명하고 다정하고 용감하게
따뜻한 면과 갑갑한 면을 동시에 품은, 전통과 관습이라는 세계. 그 안에서 아이들은 자라왔다. 그래서 현명하고, 그래서 다정하며, 그래서 용감하다. 동시에 이따금씩, 그래서 비합리적이고, 그래서 무정해 보이고, 그래서 겁을 낸다.
그러나 전통이 가진 엄정한 면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충분히 현명하고 다정하고 용감하다. 에브라힘은 하늘의 기색과 양들의 행동을 바탕으로 날씨를 예측하고, 일마에게 적절한 대처 방법을 일러준다. 떨어지면서 입은 부상에 아프고 당황스럽지만, 일마가 너무 겁 먹지 않도록 소리도 지르지 않고, 선의의 거짓말도 적당히 섞는다. 일마 또한 오빠가 시킨 일을 충실히 하고, 시키지 않은 다정한 일까지 고사리 손으로 바지런히 한다. 자기들이 지쳐가는 와중에도 새끼 염소가 지쳐가고 있다며 불쌍히 여기고, 심지어 자칼까지도 안쓰러워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가진 현명하고 다정하고 용감한 면이 가장 빛난 장면으라면, 나는 극악의 상황에서 일마를 달래던 에브라힘의 대사를 꼽고 싶다. 아빠 말대로 일마도 알 건 다 알 만큼 컸기에, 이 파국을 시간 순으로 배열한다면 가장 앞쪽에는 자신이 벌을 보고 오빠를 부른 일이 놓일 거라는 걸 안다. 아직 어린 일마에게 받아들이기 너무 어려운, 패닉이 몇 번이나 찾아오는 상황 속에서도 일마는 엉엉 울면서 오빠에게 미안해 한다. 자기가 신에게 죄를 지어서 그런 것 같다는 말도 한다.
그런 일마를 에브라힘은 부드럽게 달랜다. "사랑해, 일마. 네가 뭘 잘못했어?" 더불어, 벌과 꿀을 발견한 것은 잘못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일마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과 함께. "마을 세 개를 다 합쳐도 네가 가장 용감해."
두 아이의 나이를 합쳐도 스물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서른이 넘은 내가 너무 배우고 싶어하지만 잘 되지 않는 것을, 에브라힘은 이미 알고 있다. 그건 바로 독립 사건을 독립 사건으로 보는 능력이다.
시간 상 앞에 놓였다고 해서 반드시 인과 관계인 것은 아니다. 그 합리적 사고 방식을, 에브라힘은 알고 있다. 전통이 이따금 그들에게 묻힌 비합리적이고 무정해 보이고 겁 나는 마음과 태도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기만의 힘으로 현명하고 다정하고 용감한 것이다.
#Somewhere between the rocks
영화를 보면서 '아동 보호'라는 말을 많이 떠올리긴 했다. 안온한 보호가 부재한 상황을 통해 아동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영화이기도 했으므로. 불사조의 깃털도 튼튼한 밧줄도 없는 아이들에게 목소리 높여 부를 호칭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묘하게 안심하게 하는, 그런 안전망이 모든 아이들에게 있길 바라게 만드는 영화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안전망은 어른들이기 이전에 아이들 자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에브라힘을 절벽에서 끌어올려 줄, 그래서 에브라힘에게 내일을 선사할 힘은 어른들에게 있겠지만, 아이들의 미래는 에브라힘과 함께 이 바위 틈 어딘가에 걸려 있다는 생각.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Somewhere between the rocks 바위 사이 어딘가'인데, 거기야말로 불사조의 깃털 같은 미래가 깃들어 있다는 생각 말이다.
이유는 현명하고 다정하고 용감한 아이들의 면면 그 자체. 자기 나름대로 사투를 벌인 하루가 꼬박 지나고 나서야, 에브라힘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부르고 일마는 멀리서 어른들을 모시고 달려온다. 비로소 문제의 해결점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 등장한 것이다. 하루만큼 더 현명하고 다정하고 용감해진 아이들이, 이렇게 세상을 안전히 살아갈 방법을 또 하나 배운 아이들이 자라난다.
독립 사건을 독립 사건으로 볼 줄 아는 아이들의 시각으로 전통과 관습을 해석해 간다면, 전통와 관습이 사람을 옥죄는 면보다 따뜻하게 감싸주는 면이 더 강력하게 기능하지 않을까? 사실 여성이 머리카락을 스카프로 가리는 것과 여성(을 비롯한 가족)의 "명예 실추"는 각각 별도의 독립 사건이다. 여성이 혼자 걷다가 낯선 사람을 마주치는 것과, 그에게 해코지를 당하는 것 또한 논리적인 인과 관계가 없다. 범죄가 일어난다면 범죄와 인과 관계를 맺는 것은 가해자의 행위뿐일 테니까.
그러므로 에브라힘의, 그리고 그 에브라힘의 애정 어린 말로 위로를 받은 일마의 성장으로, 바위 틈 어딘가에 매달려 있는 미래는 점차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이란에서 머리카락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미래 또한. 모든 독립 사건이 독립 사건으로 존재하는, 지금보다 가뿐하고 산뜻한 미래를 꿈꿔 본다.
9월 15일 13:30-14:52 롯데시네마 은평 7관
9월 16일 10:00-11:22 롯데시네마 은평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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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약한 연민이 이어지는 밤
나는 항상 좋은 어른을 만나고 싶었다.
철없는 나를 보듬어 주고, 다양한 선택지를 알려주고,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그런 어른은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이미 내가 (사회적인) 어른이 된 후였다.
나는 타인의 못남을 어루만지지도, 먼저 손을 내밀지도 못하는 그저 그냥 그런 어른으로 자라났다. 아직도 나를 돌보기에도 능력과 시간이 부족하다.
타인을 위한 마음을 내는 것은 어찌나 어려운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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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슬립, 2023> 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배우상을 수상한 독립영화로, 우연히 마주치게 된 길호(최준우)와 기영(김영성)이 서로 부딪히며 함께 살아가 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특별할 것 없는 캐릭터에, 평범한 이야기를 하며 새롭지 않은 메시지를 던진다. 그냥 지나가면서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묻는 사람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과하지 않은데 따뜻하고, 얕은 것만 같은데 묘하게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담배와 식물
처음으로 피식거렸던 장면은 기영이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면서 식물들에 물을 주는 씬이었다. 이 장면 하나로 별다른 설명 없이도 기영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에 충분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상한 핑크색 슬리퍼를 대충 구겨 신고, 앞에서는 담배를 뻑뻑 피워대면서 물을 챙겨주는 사람이라니.
어머니가 남겨준 식물들이 죽지 않도록 정성껏 돌봐주는 행위 그 어디에도 진한 애정은 보이지 않는다. 잘 자라길 바란다거나, 어느 식물은 어떤 주기로 물을 주어야 한다거나 그런 깊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흙이 마르면 물을 준다. 그게 다다. 그냥 거기에 식물이 있으니까, 할 만큼 한다. 기본적으로 기영은 생명에 대한 연민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길호에게 식물에 물을 주는 방법을 알려줄 때는 뿌듯해 보이기까지도 한다. 물을 주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기영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안 느꼈을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가 알려주고자 한 것은 물을 주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일상에 대한 사소한 부채감과 비슷한 어떤 기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을 주는 대상이 꽃에서 길호로 옮겨간 것은 기영의 성장과도 맥락이 이어진다.
#2. 야, 일어나봐
집 앞 평상에 자는 (누가 봐도) 가출 청소년을 건드리는 건 좋지 않다. 요즘처럼 무서운 세상에, 굳이 타인과 엮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기영은 그냥 '일어나'라는 말로 길호를 툭툭 건드린다. 그리고 그냥 으레 그렇듯이 잔소리만 하고 제 갈 길을 가버린다.
기영이 아마 길호에게 1mm의 마음의 틈을 열게 된 건 길호가 기영이 시킨 대로 평상의 쓰레기를 싹 치웠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 말을 따르는 구석이 있는 아이들은 티가 난다. 겉으로는 툴툴거려도 어딘가 보살펴 주고 싶은 구석이 보인다.
기영은 본가에서 반찬을 얻어오던 날 길호를 집으로 초대한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기영의 본가에는 '아줌마'라고 불리는 사람이 아버지를 돌봐주고 있다. 언뜻 보면 아무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기영은 꼬박꼬박 아줌마라고 부르면서도 겉옷을 사 입으라며 돈뭉치를 억지로 쥐어주고, 아줌마는 도망치다가도 그냥 집으로 돌아온다. 별다른 부연 설명이 없어도 알 것 같았다. 그냥 그런 평범한 가족이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런.
순간적인 연민이 불쑥 커진 그날 밤부터, 기영은 길호를 조금씩 돌보기 시작한다. 마른 흙에 물을 주듯, 서툴고 천천히 양육이 시작된다.
하지만 당연히 양육은 쉽지 않다. 길호는 기영이 집을 비운 날 친구들에게 휩쓸려 집에 패거리들을 재우고 만다. 이 상황에서 길호가 잘못한 건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기영이 혼자 집을 비운 것부터 부주의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또 기영도 서투른 어른일 뿐이니까. 아버지의 똥을 열심히 닦고 와보니 또 길호가 똥을 싸놨다. 기영은 남의 똥을 치우기만 해야 하는 사람은 아닌데, 자꾸 주위 사람들이 똥만 싼다.
#3. 머리 위의 랜턴
영화를 보면서 랜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길호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도둑질을 할 때나, 어두운 굴다리를 걸어갈 때 주로 랜턴을 끼고 나오는데, 마치 길호의 시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랜턴이 있으면 눈 바로 앞은 밝게 잘 보인다. 내가 보고자 하는 건 잘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곳의 시야는 막상 가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어딜 봐야 하는지 당최 파악을 할 수는 없다. 길호도 마찬가지다. 길호의 눈앞에 당장 필요한 것은 잘 곳, 먹을 것, 그리고 있을 곳이다. (잘 곳과 있어야 하는 곳은 다르다)
하지만 길호는 랜턴을 벗고 싶어 하는 의지를 가진 아이다. 나쁜 일이란 걸 알고 있고, 벗어나고도 싶지만 랜턴을 벗으면 어둠뿐인 것을 알기에 벗지 못한다. 당장 먹고 자기 위해서라도 랜턴을 껴야만 했다, 기영을 만나기 전까지는.
기영은 길호에게 쉼터를 제공했다. 집도 기영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라면도 있고 TV도 있고, 서로 결혼을 못 할거라는 사소한 악담도 나눈다. 마지막에 길호가 기영을 찾아가면서 친구들과 반대로 걷는 장면이 매우 인상 깊고 좋았다. 드디어 길호는 랜턴을 본인이 정말로 가야 하는 길을 찾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다. 길호가 랜턴이 필요 없는 일상을 보내기를 바란다.
#4. 연민의 확장
기영은 길호랑 지내는 기간 동안 직장에서도 한층 밝아진 모습을 보인다. 우는 모습도 못 본 척하며 무관심하던 기영은 어느새 초은(이랑서)과 조금씩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고, 집에 데려다준다는 전에 없던 다정한 태도도 드러낸다.
참 조그맣던 기영의 세계는 본인도 모르게 길호로 인해 조금씩 넓어지고 밝아진다. 아마 길호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길호를 내쫓은 후 기영이 일하는 모습이 첫 장면과 비슷하게 나오는데, 지게차를 모는 장면은 같은 장면을 두 번쓰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똑같았음에도 불구하고 달라 보였다. 원래 사람은 잃어봐야 그게 마음에 있던 거라는 것을 알아챈다고, 사실 예전 일상과 다를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영은 많이 허전하고 공허했을 것이 분명하다. 같이 돌을 던지는 장면에서, 그 호수가 기영과 길호의 마음이라는 건 스크린에서 본 나도 알겠으니까. 던진 돌은 결코 다시 안 던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5. 빅슬립
기영은 길호에게 '불쌍한 척 하지마, 그럼 진짜 불쌍해지는 거야'라며 충고한다. 기영은 스스로를 불쌍해하지 않는 사람이다. 현실에 타협하지도, 반항하지도 않는 적당한 사람. 여러 사회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관객이 보기에도 그는 불쌍하지 않다. 그냥 하루를 적당히 잘 보내고, 할 만큼 하고,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사람.
영화는 매우 남성적이다. 영화 보는 내내 여자 두 명의 이야기였으면 갈등부터 해결까지 단 하루밖에 안 걸렸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극단적으로 소통이 불가한 캐릭터 두 명을 갖다놓으니 이해가 가면서도 너무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유일한 여자 캐릭터인 초은이 등장해 명확한 의사 표현을 할 때는 마치 사이다를 마시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으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출과 꽤 높은 수준의 음향, 그리고 무엇보다 연기력이 놀라웠다. 평범한 이야기를 하면서 몰입도를 끌어낼 수 있는 건 독립영화에서 약간 과장해서 8할은 배우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역 배우가 나온다면 연기력에 대한 기대는 사실 반쯤 내려놓고 보는 편인데, <빅슬립>의 두 배우 모두 캐릭터 그 자체로의 모습이어서 연기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앞으로도 어디에 나온다면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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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젠가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를 불쌍해하지 않으면서 대가 없는 식사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는 마음이 남아 있을까.
내가 받았었던 약한 연민들의 순간, 그리고 그 찰나들이 지탱해 준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해 보면서 오늘은 잠을 청해봐야겠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크리에이터 시사회에 참석하여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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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현재 일본 영화감독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감독인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 <Our Apprenticeship>이 프랑스에서 촬영될 예정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줄거리나 출연진에 대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일본 소녀가 파리에서 공부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프랑스-일본 합작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이며, 곧 제작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더불어, 본 작품은 2019년 제작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2020년 팬데믹으로 폐기되었던 프로젝트를 부활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Our Apprenticeship>는 하마구치 감독의 첫 비일본/비한국 제작 작품으로, 프랑스인 게이 커플, 시리아인, 벨기에인, 한국인, 일본 여성을 중심으로 한 젊은 출연진이 등장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 <미키 17>,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이 오는 2월에 열리는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될 예정입니다. 최근 워너브라더스에 의해 여러 차례 개봉일을 변경한 바 있는 해당 작품은 국내 개봉 2월 28일, 북미 개봉 3월 7일로 개봉 일자를 최종 확정 지었습니다.
한편, 주연 배우인 로버트 패틴슨이 1월 20일에 내한하여 푸티지 상영회, 무대인사 등 만남의 자리를 가질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클레어 드니 신작 <The Cry of the Gurads>, 이달 촬영 예정
클레어 드니의 신작 <The Cry of the Gurads>가 1월 세네갈에서 촬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주연으로 예정되었던 ‘라일리 키오’가 하차하면서 영화 <하우 투 해브 섹스>로 신예로 떠오른 미아 맥케나-브루스가 새롭게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영화는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살인마 잭의 집>의 맷 딜런, <죽음은 두렵지 않다>로 클레어 드니와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이삭 드 번콜도 함께 출연할 예정입니다.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 뉴욕에서 차기작 촬영 예정
자파르 파나히와 더불어, 이란 영화계의 거장으로 칭송받는 아스가르파르하디 감독이 올해 뉴욕에서 차기작을 촬영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배경 외에 줄거리나 출연진에 대한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2024년 1월 Le Monde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40년 동안, 이란의 예술가들은 억압과 검열에도 불구하고 매년 창작을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특히 영화 제작 부문에서 생산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저 역시 더 이상 같은 조건에서 작업을 이어갈 수 없다."라며 현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당분간 이란에서 영화를 제작하지 않을 것이라 답했습니다.
아스가르 파르하디는 이전에도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각각 두 편의 영화를 촬영한 바 있습니다.( 스페인 <누구나 아는 비밀>, 프랑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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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린 나이트> 런칭 예고편
”녹색 기사의 목을 잘라 명예를 지켜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앞에 나타난 녹색 기사,
“가장 용맹한 자, 나의 목을 내리치면 명예와 재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1년 후 녹색 예배당에 찾아와 똑같이 자신의 도끼날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이 도전에 응하고
마침내 1년 후, 5가지 고난의 관문을 거치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전설이 될 새로운 모험, 너의 목에 명예를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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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트립 투 그리스> 메인 예고편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어 이번엔 그리스다!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따라가는 그리스 대리만족 미식 여행기영국 유명 배우 스티브와 롭은 ‘옵저버’ 매거진의 제안으로
6일 동안의 그리스 여행을 떠난다.
터키 아소스를 시작으로 그리스 아테네, 이타카까지 [오디세이] 속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낭만적인 여행을 통해
인생과 예술, 사랑에 대한 유쾌한 대화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