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9-15 21:09:39
깨진 도형을 넘어 선
영화 <이사> 리뷰
DIRECTOR. 소마이 신지
CAST. 타바타 토모코, 사쿠라다 준코, 나카이 키이치 외
SYNOPSIS.
화목한 가정을 자부하던 6학년 소녀 렌
어느 날 아빠가 집을 나가고 엄마가 이혼을 선언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싸워도 참았어 근데 왜 엄마 아빠는 못 참는 거야?”
엄마가 만든 ‘둘을 위한 계약서’도 싫고 친구들이 이 사실을 알아챌까 두렵다
“엄마, 부탁이 있어 이번 주 토요일 비와 호수에 가자”
몰래 꾸민 세 가족 여행 엄마 아빠와 다시 함께 살 수 있을까?
POINT.
✔️ <태풍클럽>으로 뒤늦게 국내 시네필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있는 소마이 신지 감독의 작품. 아마 이 이유만으로 이 작품을 고른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 공간이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그려진 영화
✔️ 1993년 당시 46회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으로 선정되었고, 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복원영화로 상을 받았습니다.
✔️ 주인공 렌의 똑똑하고 주체적인 모습이 눈에 띕니다. 개인적으로는 <비밀의 언덕> 명은이와 소개해 주고 싶다는 생각도... 둘 다 보통 어린이가 아니니 언니동생으로 잘 지내보거라...
✔️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영화의 주요 내용이 서술되어 있는 글입니다.

도형을 이루는 최소 선의 개수는?
정답은 세 개다. 점 또한 자체의 도형이기는 하지만, 선을 여러 개 연결해 닫힌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이 최소 세 개가 필요하다. 이 중 선이 하나라도 빠지면 그건 더 이상 도형이 아니다. 남은 두 선은 그저 어떤 지점에서 만난 두 개의 선이 된다. 마치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고, 아빠가 집을 나가고, 엄마가 나름대로 애쓴다고 작성한 '둘을 위한 계약서'가 도무지 가족적이라고는 받아들일 수 없는 렌의 상황처럼.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고군분투하는 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같은 식탁에 앉아 있지만 이등변삼각형의 두 면은 서로 대화도 하지 않고 소스 병에 손 닿는 것조차 꺼린다. 두 사람의 꼭짓점은 날카로운 예각을 그리고, 그 맞은편 선에서 대화를 이어가려 애쓰는 렌의 말들은 도무지 그 예각에 닿을 수가 없다.
렌은 계속해서 "단란한 가족의 시간"을 강조하고, 심지어 아빠의 이사 당일 "단란한 가족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고도 소리치는데, 정작 아빠에게 하는 인사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코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다. 아빠에게도 재차 엄마가 보고 싶은지, 집에 가고 싶은지 묻는 렌의 말은 사실 '답정너'에 가까운 질문이다. 렌의 언어는 자신이 배워 온 (정상가족의) 세계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소망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 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을 때에는 렌의 선택권이 반영되지 않았는데, 이루어진 가족이 해체될 때조차 렌의 선택권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렌의 소망을 들어주는 어른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래서 렌은 무능한 어른들을 대신해 달리고 또 달린다. 러닝타임의 상당분을 소요해, 영화는 달리는 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은 어쩐지 미덥다. 어른들은 그저 빈자리를 침묵으로 응시하고, 술잔으로 회피할 뿐이다. <태풍클럽>에서도 그랬듯, 소마이 신지의 영화에서 어른들은 또다시, 보호자로 기능하지 못하고 부재중이다.

부재중인 어른들과 주체적인 아이들의 세계
아이들의 세계는 반대로 다채롭다. 비록 어른들에게 학습된 '정상가족'의 세계를 답습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미 아이들에게 가득하지만, 그래서 이혼이나 조금이라도 '다른' 것이 있는 가정과 어떻게든 선을 그으려고 하지만, 선을 그으려는 감각 자체가 이미 그들이 내심 알고 있다는 증거다. 어른들의 세계는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상가족'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걸. 하다 못해 엄마 아빠의 싸움에 가슴 덜컥해 본 경험이라도 있을 테니까.
아이들의 생명력은 슬쩍 지나가는 교실 장면에서도 빛난다. 교사가 잠시 잠들어 있는, 그래서 또다시 어른이 '부재중'이고 아이들만이 주체적인 생명력으로 와글와글 움직이는 교실에서. 어떤 아이는 대범하게 교사 얼굴에 장난을 치고, 어떤 아이는 그 시끄러운 교실에서 꼿꼿하게 코로 오카리나를 분다.
교실에서 렌은 (코로 오카리나를 부는 아이와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단독자다. 가족 이야기도 스스로의 힘으로 서술하고, "내가 뭐라고 하든 내 맘"이라고 한다. 스스로 렌의 편이라고 하는 미노루의 존재도 렌이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에는 거울 속에 위치하고 있다. 마침내 렌이 단독자처럼 느껴지지 않는 장면은, 부모님의 불륜과 이혼을 거쳐 여기까지 전학 온 학생, 교실에서는 척을 졌던 다치바나와 장을 보고 자전거를 끄는 장면이다.

두 아이는 가족을 위해 장을 보고, 가족 걱정이 가득한 대화를 하며 자전거를 끌고 언덕길을 올라간다. 그 모습을 흔히 '가장의 무게' 혹은 '가족을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표현되는, 부모 세대가 겪을 법한 감정을 고스란히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갑자기 내리는 폭우처럼, 현실은 아이들의 세계에 쏟아온다. 부모의 변화는 아이들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아이들이 있는 힘껏 생을 끌고 가려 애써도, 폭우처럼 쏟아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몸보다 마음이 웃자라 버린 아이들은 더딘 성장이 서럽다. 까치발도 모자라서 점프를 하면서 빨래를 널고, 엄마가 쓴 '둘을 위한 계약'을 찢어버리는 이상으로 렌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렌이 그동안 해왔던 말을 하나도 듣지 않은 듯한 부모는 뒤늦게,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며 나와서 이야기하라고 한다. 렌의 행동으로 부모의 침묵은 마침내 깨지고, 싸움이 시각화되지만, 그조차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 "이럴 거면 나를 왜 낳았냐"는 렌의 외침은 또다시 응답받지 못한다.

이것은 삼각형이 아니다
삼각형 테이블부터 해서 렌의 집안 풍경은 가족들의 관계와 사정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어 여러 모로 대단히 흥미로운데, 이 '욕실 사건' 전후로 가족들이 집안에서 빙빙 원을 그리는 것 또한 흥미로운 포인트 중 하나다. 삼각형과 원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중심점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서로의 접점이 존재한다는 것, 어떤 지점을 짚으면 그 자리에서 도형으로 뻗어나가는 선의 길이가 일정하다는 것이다. 그 모든 특징이 렌의 집안에서는 산산이 깨져 있는 것이 보인다. 더 이상 이 도형은 삼각형이 아니다.
한 번에 깨지는 것도 아니고 마치 깨진 유리를 자근자근 밟듯이, 계속해서 깨지고 또 깨진다. 렌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내민 손길들이 모두 다 거절당했다는 의미다. 낡은 기린 인형도, 심지어 렌이 야심차게 준비한 호수 여행에서 엄마와 아빠가 하는 말들도.

결국 함께 하려던 여행은 각자 제각각의 여행이 된다. 렌은 여행 기간 동안 엄마와도 아빠와도 짧은 대화를 나누지만, 같은 높이에 서지도 못하는 (아빠와는 제방의 위아래에, 엄마와는 다리의 위아래에) 상황에서 나눈 대화는 그동안 이미 이 도형이 깨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대화로 끝날 뿐이다.
결국 렌은 꿈꿨던 것처럼 엄마아빠와 불꽃놀이를 보며 "단란한 가족의 시간"을 보내는 데에 실패한다. 대신 아들이 죽었다는 노인의 가족을 만나 하루를 함께 보내고, 그 끝에 늘 뛰어다니던 운동화 대신 낯선 게다를 꿰어 신고 뒤뚱뒤뚱 걸으며 혼자 밤을 보내게 된다. 다소 주술적인 냄새마저 풍기는 렌의 그 밤은 어쩌면 일종의 성인식, 마치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는 수준의 의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붙은 짚을 돌리느라 안전모를 쓰고 물을 끼얹어 가며 버티는 사람들을 거쳐, 혼자만의 호숫가이자 불가인 곳에 다다른다.

깨진 도형을 두고, 혼자만의 선으로
성장의 필수 조건은 상실이다. 성장의 교과서 같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만 봐도 라일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빙봉을 잊고, 유니콘 장난감에 대한 애정도 여러 감정 안에서 퇴색된다. 렌의 경우에는 라일리를 비롯해 '정상가족' 안에 있는 경우에 비해 더 큰 것을 잃었지만. 밟고 선 세계의 면이 깨지고 흩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그 균열을 피하려 부지런히 달렸지만, 끝내 이미 깨진 도형의 면이 상실되었음만 깨닫고 만다.
자기 자신을 끌어안고, 온전한 홀로 됨을 축하하고,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서 엄마와 렌의 구도는 호수로 향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렌은 아주 다른 인물이 되어 있다. 렌은 더 이상 깨진 면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도형의 구성 요소가 아니라, 온전히 스스로 뻗어 나가는 선이다. 수많은 선들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수직의 각으로 만나기로 할 것이며, 어떤 선과는 평행을 감지하며 뻗어갈 선. 웃자라야만 했던 렌의 시간이 비로소, 시작된다.

Relative contents
-
- 완전한 욕망의 자리는 없다
SYNOPSIS.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50살이 되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에게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엘리자베스는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 받는다. 한 번의 주사로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마가렛 퀄리)가 탄생하는데... 단 한 가지 규칙,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킬 것. 각각 7일간의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한다면 무엇이 잘못되겠는가?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POINT.
✔️ 청소년 관람불가 다양성 영화가 50만 관객을 동원한 사례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후 최초라고.
✔️ 이 미친 흥행은 이 영화가 '잘 만든 영화' 이상의 무엇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영화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당신은 그 말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해요. 고어한 장면이 있음에도 저는 이 영화를 자꾸 슬프게 되돌아보게 되는데, 여기에는 이 영화 바깥 우리 사회의 이야기들이 깔려 있어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이 영화가 끝나지 않네요.
✔️ <에.에.올>의 양자경에 이어, 이 영화를 통해 데미 무어 또한 배우로서의 능력을 빛내 보이는 동시에, 그걸 폄하해 온 사람들에게 멋진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 그러나 배우와 메시지만 주목 받아서는 안된다 싶을 만큼... 편집과 연출도 좋았어요.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 사이의 암묵적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욕구에 관한 이야기다. 시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자유가 주어질 때 함께 솟아나는 불안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자가 성별과 여성성에 관한 깊고 견고하게 뿌리박힌 오래된 규칙들을 시험할 때 솟아나는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다. 자아와 문화의 충돌에 관한 이야기이며, 여전히 여성의 권력에 대해 심히 양가적 태도를 취한 세계, 욕구와 수치심을 똑같은 정도로 불러일으키고야 마는 세계 안에서 여성의 욕망을 속박하고 있는 고삐가 덜컥 풀어졌을 때 생기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갈수록 더 시각에 치중하고 상업성이 짙어지는 세계, 여성의 형태가 무자비할 정도로 외현화되는 세계, 여성의 욕망에 관한 관념이 너무나 협소한 틀 안에 갇혀 있는 세계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몸과 자신의 욕망에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관한 이야기다. 전통적인 심리 구조와 사회구조가 얼마나 오래도록 멀쩡히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전히 소녀들에게 자기부정의 씨앗이 뿌려지고 권장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며, 40년에 걸친 법적·사회적 변화가 진정한 대안적 변화를 아직 일구어내지 못한 까닭에 우리가 행위 주체성과 주도권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이나, 자신의 욕구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만족시켜도 될 타당성과 자격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이 부재한다는 이야기다.
캐럴라인 냅 에세이 <욕구들: 여성은 왜 원하는가>의 문장들이다. 2003년 출간된 책이지만, 마치 <서브스턴스>를 보고 쓴 감상평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문장들이다. 즉 이 문제는 수십 년 지나도록 변하지 않았으며, 엘리자베스의 에어로빅에서 수의 쇼로 넘어갈 때 느껴지는 것처럼 "갈수록 점점 더 시각에 치중하고 상업성이 짙어지는" 동시에 "여성의 형태가 무자비할 정도로 외현화되"고 있다. <서브스턴스>가 영화관을 나서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인 이유다.
우리가 지독한 외모 지상주의의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은 이제 당연스럽게 여겨지는 명제지만, 그 정도는 모두에게 같지 않다. 나이와 성별에 따라 다른 잣대가 드리워지는 이 세상에서, 여성 노화에 대한 거부감은 사실 신체 기능 상실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 이전에 사회적인 어떤 것을 상실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공포에 가깝다. 그리고 후자는 결코 전자에 비해 작지 않다.
이 영화의 초입에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두 가지를 다 경험하는데, (1) 자동차 사고로 병원에 가는 상황 (2) 진행해 왔던 에어로빅 쇼를 "더이상 젊고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그만두게 된 상황 중 관객의 뇌리에 더 강렬하게 남는 것은 두 번째 상황 쪽이다. 물론 스토리상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만일 엘리자베스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그 부고 소식을 인터넷 뉴스 연예면에서 접했다고 해도 대중이 재생산하는 쪽은 두 번째 이야기였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기반 위에 등장했기에 <서브스턴스>는 몸을 둘로 나누는 비현실적 현상을 담은 영화임에도 더없이 현실적 현상을 담은 영화로 기억될 영화가 되었다.
여성의 욕망: 내 욕망과 사회의 욕망 구분하기
영화 속 상황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접하지는 않지만, "기왕이면" 좀더 예쁘고 좀더 젊어 보이면 좋다는 정도의 생각은 절대 다수의 여성이 할 것이다. 남성들이 기초 청결에서 약간만 나아간 수준으로 외모를 챙겨도 그루밍족이니 뭐니 하는 기사가 쏟아지지만, 외모를 위한 여성들의 노력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다 못해, 그 트랙 바깥에 서겠다는 사람들에게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다느니 뭐라느니 하는 비난으로 이어진다.
문장으로 쓰면 당연한 소리 같지만 사회에서 이 사실을 매일매일 느끼는 사람을 많지 않다. 이 메시지는 대놓고 트랙 바깥에 선 사람이 아니라면, 비난이 아니라 격려의 형태로 비틀어 전달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더 예쁘고 좋잖아. 이렇게 하면 더 건강하기도 할걸? 착하기까지 할걸? 각종 미덕을 뒤섞어 쏟아놓는 말들 안에서, 여성은 사회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처럼 받아들이기 쉽다.
엘리자베스는 "젊고 예쁘지 않다"는 (더 늙은) 하비의 입에서 나온 말로 후려치기 당하며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하비의 욕망과 판단은 곧 엘리자베스의 욕망과 판단으로 내려앉는다. 복도를 가득 메운 엘리자베스의 사진은 "젊고 예뻤던" 시절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가 착실히 쌓아온 커리어라고 볼 수도 있는데, 하비 뿐 아니라 엘리자베스 본인조차 자신을 내공이 어마어마한 진행자로 바라보지 않는다. 과거의 자신을 비추어 보며 자신을 멸시하는 엘리자베스의 시선은 사회에서 그에게 실어 올린 것이다. 동시에 엘리자베스는 오랜 기간 "자신을 잘 돌보라"며 여성들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해 온 사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어딘가에서 시작된 사회적 욕망은 여성의 안에서 여성과 동일시되고, 남성이 말할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그러나 그 욕망이 시작된 지점, 하비의 입에서 여성은 새우와 과연 얼마나 다른 대접을 받고 있는가. 하비가 쩝쩝거리며 뜯어 먹는 새우 장면이 불쾌한 이유는 단순히 위생적인 거부감을 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철저하게 타자화되어 있는 살덩어리의 자리가, 하비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자리라서 더욱 그렇다. 이러한 구조에서 생존하기 위해 많은 여성들이 정작 스스로의 욕망에는 둔감해지고, 사회적 욕망에 스스로를 체화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세상에는 각종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신경이 몰려 있어 잘못 건드리면 위험해질 수 있는 턱을, 심장만큼 중요하다는 종아리 근육을... 미용이라는 정갈한 단어에 담은 사회적 욕망을 사유로 찢고 째고 주사를 놓으며 상처 낸다. 사람 몸이 레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는, 어디 살을 파내서 어디 다른 데 갖다 붙이라는 그로테스크한 광고가 영화관 가득 쩌렁쩌렁 울린다. 몸이 이물질로 인식해 면역 반응이 일어날 보형물을 몸에 집어넣는다.
이 모든 신체 학대 행위는 "노력"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더 예뻐지기 위한 노력. 자기 관리. 그리고 엘리자베스와 수로 찢어진 두 개의 신체,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말해준다. 그동안 우리가 자기 관리라고, 미용, 노력이라고 불러온 것들의 상당수가 자기 학대였음을. 그리고 사회의 욕망을 이미 체득한 우리는, 누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스스로 괴롭히는 법을 이미 가장 잘 알고 있다.
사회의 욕망: 그거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시나브로 체득하고 있는 사회의 욕망은 과연 우리의 신체와 정신 건강을 다 갉아먹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 대답은 새우를 씹는 하비에게서 들을 수 있다.
하비가 엘리자베스를 해고하고 새로운 얼굴을 찾겠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과연 얼마나 '업무적인' 과정과 고민이 있었을까? 시청률, 독자 의견, 인터넷 반응... 숫자 하나라도 보았을까? 숫자 이면의 흐름을 읽으려는 노력이 있었을까? 아닐 것 같다. 그러니까 '무엇이 끝났느냐'는 엘리자베스의 질문에 답도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자신만만하게 확신에 찬 사람처럼 움직인다. 말초적인 자극에만 의존하는 그의 방식이 결과적으로 먹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때도 먹혔고, 섹슈얼한 느낌을 전면에 내세운 수의 쇼에서도 시청률로 돌아왔다. 하비 같은 인간이 많으니 하비 같은 인간이 주먹구구 방식으로 먹고 살면서도,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개저씨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에어로빅을 하는데 꼭 수영복 같은 전신 타이즈를 입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신 타이즈 아래로 쭉 뻗은 엘리자베스의 허벅지를 보며 여성들은 또 한번 사회적 욕망을 잘 체득한 결과물을 모범사례처럼 학습한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타이즈 아닌 옷을 입어 보자 했다면, 수많은 여성들이 타이즈를 비호했을 것이다. 자세가 잘 보여야 좋은 자세를 취할 수 있다든지 하고 타이즈의 효용성을 강조하면서. 비슷한 일은 오늘날의 운동과 레깅스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날들의 결과, 이제 신체를 더 부분적으로 클로즈업하고 효과를 더 많이 넣은 수의 쇼가 등장한다. 뽀얗게 필터를 씌운 쇼 안에서 반짝거리는 수의 신체는 마치... 뽀샤시한 생닭에 스프링클을 뿌려 놓은 느낌이 든다. 최소한 인간의 신체다운 느낌마저 줄어들고 있다.
생각해 보면 무수하게 쏟아졌던, 각종 연예인 이름 뒤에 '후덕'하다는 단어를 붙여 기사를 내던 시절의 연예면을 그냥 둔 결과, 이제 연예기사와 댓글들은 여자 연예인의 신체를 부위 별로 품평한다. 허리나 다리를 언급하던 옛날 기사들도 역겹기 그지없었으나, 승모근이 어쩌고 중안부가 어쩌고 하는 내용을 보면 정말 인간을 고깃덩이로 보고 있나 싶어 할 말이 없어진다. 더 끔찍한 것은 그런 시선이 내게 체화되고, 승모근과 중안부의 차이를 인지하는 능력이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점이다. 하비의 쇼는 계속되고 있다. 자기 자신은 화장실에서도 꽤나 시간이 걸리는 주제에, 25세 이상 여성의 가임 능력을 따지고 있는 찌질하고 나약한 남성성이, 어린 여성의 반짝거리는 재능을 내세워 '성공'을 얻어가는 쇼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이브 문건이 떠오른다.)
내 안에 체화된 사회적 욕망을, 그 욕망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것에서 시작된 것인지를 깨닫는 것은 여성으로서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깨닫는다고 해서 당장 내가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밀가루와 물이 뒤섞여 반죽이 된 것처럼, 나는 여성의 몸을 품평하는 사회적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나 자신을 바라볼 수가 없다. 살이 찌면 빼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신체 부위가 있다. 여기서 온전히 초연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그래서 엘리자베스의 선택이 때로는 한심하고 답답해도, 그를 미워할 수 없다. 슬플 뿐이었다.
혹자는 엘리자베스가 "여전히 아름다움"을 들어 그를 한심해 한다. 그러나 이는 엘리자베스와 똑같은 사고 방식이다. 아름다움의 잣대 자체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결국 시간 문제일 뿐이다. 거울을 봤을 때 조금 더 주름이 없었거나 조금 더 마음에 드는 옷을 입었거나 새 립스틱을 발랐다면 엘리자베스가 당당하게 프레드와의 약속에 나갈 수 있었을까? 거울을 보지 않았어야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한심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엘리자베스에게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여성이라면.
나의 욕망: 완전한 자리는 없겠지만
그러면 어쩌라고요. 매일매일 소리도 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은 별것도 아닌 지점에서 시작된 주제에 끔찍하게 증폭되다 못해 내 안에서도 울려퍼지는데. 엘리자베스가 능멸의 말을 듣고 이리저리 밀쳐지고 끝내 터져 나갈 때, 하비 같은 인간들은 피를 좀 뒤집어쓴 외에는 무사했다. 슬프지만 현실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부분 단위로 품평 당하는 자리에 세워진 수 같은 여자들이 부족한 면면을 이유 삼아 욕을 바가지로 먹을 때 뒤에서 새우나 씹고 이나 쑤시며 무사한 배를 두드리는 이들의 시선이 너무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나의 욕망이 오롯이 홀로 서는 것이 과연 가능한 걸까? 캐럴라인 냅의 문장들을 더 들어보자.
그래서 이대로 충분한가? 상태가 비교적 괜찮은 날, 더없이 괜찮은 날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내게 주어진 축복을 하나하나 꼽아볼 것이고, 힘들게 얻어낸 친밀한 관계들에 대해, 두려움을 상대로 한 작은 승리들에 관해, 친구들과 개와 숲과 일에 관해 말할 테지만, 그래도 완전한 확신을 갖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완전히 확신하는 답, 최종적인 휴식의 장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내 모든 욕구를 이해하고 충족하는 일,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는 일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흡족함의 순간들, 별안간 몸과 마음과 정신이 나란히 연결되는 순간들이 있고, 마치 우주가 보낸 선물처럼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찾아오는, 내가 잘 먹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순간들은 더없이 소박하게 포장되어 도착한다. 내 개가 보내는 사랑의 시선으로, 친구와 나누는 농담으로, 여기서 느끼는 애정의 불씨, 저기서 느끼는 이해로. 그 순간들은 내가 막 노를 젓기 시작할 때 수면을 비추는 아침 햇빛 속에서, 완벽한 한 끼 식사, 완벽한 한 문장, 어떤 손길, 어떤 눈빛 속에서 온다. 마침내 이 삶에서 얻는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를 순간들이 있다. 섬광처럼 스치는 만족감, 얼핏얼핏 희미하게 반짝이는 희망의 빛과 맛, 파이처럼 깊이 음미하며 완전히 누려야 할, 금세 지나가는 순간들이.
엘리자베스가 이런 문장들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몸과 마음과 정신이 나란히 연결되"어서, "애정의 불씨"와 "이해" 안에서 이따금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면.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는 오늘도 현실에서 울려퍼지고 있고, <서브스턴스> 약물은 액티베이터 약병에 담겨 있지만 않을 뿐, 숱한 광고물과 방송과 알고리즘 곳곳에서 우리에게 내리꽂힌다. 좀처럼 필사를 하지 않는 편이지만, 오늘은 캐럴라인 냅의 문장을 종이에 사각사각 적어 보면서 천천히 음미해야겠다.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지만, 만족스러울 수는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면서. 아무튼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법은 평생 배워야 할 일이니까.
-
- <집없는 천사> 일제 당시 영화는 ‘역사’ 없이 말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최인규 감독의 영화 <집없는 천사>는 겉보기에는 고아를 구제하고 새로운 삶으로 이끄는 계몽적 드라마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를 본 후, 그 역사적 맥락을 되짚어본 뒤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는 고아들의 ‘개인적’ 구제를 국가 이데올로기의 ‘집단적 교화’로 치환하는 식민지 파시즘의 내면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낸 영화였다.
용길, 일남이 등 조선 아이들은 조선 민중을 상징적으로 대변해 제도 밖에서 무질서하고 이기적인 상태로 묘사돼 방 선생으로부터 ‘가르쳐야 할 존재’, ‘국가적 교화의 대상’으로 치환된다. 이때 일본 역사적 정치 방법인 스스로 일본의 규율과 질서를 내면화 당하는 ‘황국신민’의 정치적 방법이 담겨있다. 이때, 방선생이 세운 고아원은 제국이 설계한 새로운 인간을 양성하는 ‘교화의 장’으로 조선의 ‘미성숙한 국민성’을 제거하고 일본적 가치로 뱌꿔놓는 정신적 공장이다. 실제로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은 일장기 앞에 모여 일본어로 맹세문을 낭독하며 자연스럽게 일본 제국의 규율을 익히고 일본 제국의 충성까지 이어지는 결말로 끝이 난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을 계속 교화시켜 국가의 충성까지 이어지는 국가 이데올로기의 내면화까지 연결되게 만들었다.
1930년대와 40년대 초반은 한국 영화 산업이 아직 기술적으로 기초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집없는 천사>를 시청하는 내내 음향의 불안정성과 촬영 기술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장면 곳곳에서 들리는 기계음, 세트장보다는 자연 배경을 그대로 담은 화면 등은 당시 영화 제작 환경의 제약을 여실히 보여줬지만, 그 한계 속에서도 감정선과 서사를 최대한 진실되게 담아내려는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특히 인물의 내면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된 클로즈업, 과장되지 않은 절제된 감정 연기, 꾸며내지 않은 듯한 장면 구성은 영화 전반에 사실주의적 미학을 부여했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의 고통과 순수함을 더 깊이 공감하게 만들었고, 바로 그 사실성 덕분에 아이들이 황국신민으로 변화해 가는 장면은 더 불편하게 다가왔다.
나는 이 영화가 식민지 시대의 고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떠올리면서 식민지 시기 예술이 어떻게 당시의 억압과 이데올로기를 표현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저항의 틈을 어떻게 찾아내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영화 내내 나를 사로잡았다. 겉으로는 철저히 황민화 이데올로기를 따르며 만들어진 영화 같았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조선인의 상처와 구제의 욕망, 공동체 회복에 대한 희망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일본 당국은 그 영화 속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의 계획 속에서조차 조선인의 자율성과 연대의 기억이 억제할 수 없는 형태로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그런 미세한 저항의 흔적이 위험으로 다가왔을 것 같아 한편으로는 통쾌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식민지 시기의 영화가 항상 그 역사적 배경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고아들이 모여 앉아 국수와 엿을 만들고, 도색을 하는 평범하고도 행복해 보이는 장면 속에서 나는 그들이 그저 순수와 평온함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순간들 속에서도 ‘일본 제국‘이라는 배경은 그들 하나하나를 교묘히 타락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 또한 그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저들처럼 자연스럽게 신민화되었을 것이라는 죄책감이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그들의 일상에서 피어나는 순수함 속에 깃든 어두운 그림자는 바로 제국주의가 어떻게 사람들을 지배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게 그들은 어느새 자기 민족의 기억과 자율성을 희생하고, 황국신민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교묘하게 짜여진 억압의 서사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나는 그 시대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그 체제 속으로 끌려갔을 것이라는 비극적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영화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존재하는 위험 속에서 점차 잃어가는 자율성과 연대의 기억에 관해 나에게 질문했고,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을 마주하며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
- 꼬리를 자르고 달리는 도마뱀
이 글은 영화 [좀비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니가 제일 귀엽더라.
6천 원 할인의 힘은 참 컸다.
문화의 날과 겹쳐 단돈 천 원이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평소에 즐기지 않는 장르임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예매를 할 수 있었으니까. 바꿔 말하면 그만큼 이 영화에 기대하는 것은 적었다는 것이고. 천 원 정도면 영화가 별로라 하더라도 손해 본다는 생각은 좀 덜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부담 없는 마음으로 영화관으로 갔다.
보통 영화가 취향을 타겠다는 말을 할 때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라는 표현을 쓰는 편인데. 이 작품은 그런 표현보다는 어딘가 "기울어져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미디 영화로서 갖춰야 할 훌륭한 구색들이 어느 정도 존재하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구색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구멍을 만들어 놔야 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사진출처:다음 영화
특히 영화가 후반부에 감동을 주기 위해 부여한 설정들에서 그런 어색함이랄까. 혹은 자가당착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좀 더 구체화하자면 연화(조여정)와 정환(조정석)의 러브라인, 빌런의 존재(조한선)가 정환의 부성애와 맞물린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연화와 정환의 안전한(?) 러브 라인을 구축하기 위해서 정환과 수아(최유리)가 사실은 진짜 부녀가 아니라는 설정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수아의 친부(Biological father)는 따로 있는 데다 그가 천하의 호로자식이라는 설정도 빼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무엇이 먼저인지, 어떻게 얽히기를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부분이 보여주는 얄팍함에서 영화는 한 김 식다 못해 두 번 다시는 끓지 않을 것 같은 냉랭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이런 지루함, 혹은 깊게 공감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연화라는 캐릭터의 기용에 있다. 연화는 세계 최후의 좀비(?)를 향한 적대감을 끝까지 유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벽한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거나, 하나의 대가족이 되었다는 소속감도 제대로 뿜어내지 못한다. 아주 미묘하게 그려져야 했을 조심스러운 러브 라인에서도 그다지 큰 여운이나 기대감을 주지 못한다.
만약 다른 영화 같았다면 캐릭터를 적절히만 활용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여기서 하는 것이 맞겠지만. 문제는 애초에 연화라는 캐릭터가 진짜로 필요했는가.라는 질문에 먼저 가닿는 점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패착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연화는 애초에 빌런에게 없었던 정환의 부성애를 좀 더 강조하기 위해 부차적으로(보다는 억지로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수도 있다) 넣은 이야기의 희생양인 것이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코미디 영화에서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논리적으로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이야기의 전개에 도움이 되었는가.라고 본다면 그다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할 수 있기에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이다.
분명 즐거운 마음으로 편하게 앉아 피서를 즐기고 있는 것은 맞으나, 인물들의 저 발치 밑에서 뎅겅 꼬리를 자른 채 부리나케 도망가는 도마뱀을 발견한 그 순간부터. 모든 관심이 한 마리의 도마뱀에게 집중되는 것을 멈출 수는 없는 것처럼. 영화는 그렇게 부성애라는 꼬리를 남겨둔 채 달리고 또 달린다.
[이 글의 TMI]
옆자리엔 나이가 지긋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온 모녀가 앉았다. 슬픈 예감은 단 한치도 틀리지 않아서, 어머니의 영화관 매너는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좋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한 마디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난리 법석을 부렸을 정도였지만. 충분히 아주머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영화에 누구보다 푹 빠져 있었으며, 그동안 많이 겪어보지 못한 영화 관람이라는 활동에 설레고 있다는 것도. 여기까지 마음이 미치자 내게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찾을 수 없는 인류애가 퐁퐁 솟았다. 비록 지속될 수 없고 무분별하게 뿌려서는 안 될 할인쿠폰이지만. 이 기회를 빌어 발걸음을 영화관으로 향한 모든 사람들이 즐거웠으면 한다. 그리고 할인 쿠폰이 없더라도, 그들의 여가 활동 선택지에 영화 관람이 더해지길 바란다. 다음번에 그 아주머니를 내 옆자리에서 만난다면. 나 역시 좀 더 성숙한 매너를 가진 옆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기를.
#좀비딸 #필감성 #조정석 #이정은 #조여정 #윤경호 #한국영화 #코미디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CGV #롯데시네마 #영화꼰대
-
- 레모네이드의 씁쓸한 맛은 왜 그녀의 몫이 되었나.
여러 시선이 모여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면 우리는 어느 곳을 봐야 할까. 당연하게도 여러 시선이 모인 한 방향을 봐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소한 진실로 인해 발버둥 치듯 현실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레모네이드를 소개하려고 한다. 영화의 끝맛이 쓸지 달지는 보는 관점에 달렸다. 루마니아에서 온 마라는 미국인과 결혼하여 아메리칸드림을 꿈꾸고 있다. 다니엘과 함께하며 안정을 찾고 싶은 마라는 사랑해 마지않는 아들도 만났고 이제 영주권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왠지 모를 두려움에 둘러싸인 마라는 여러 문제가 얽혀 있어서 더욱 불안해진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으로 인해 그 상황을 견디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미국인이 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지만 그를 대가로 하는 현실을 맞닥뜨린다. 나아갈 수도 없고 뒷걸음칠 수도 없는 마라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디즈니랜드는 아니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나아가는 수많은 사람은 마라를 통해 비친다.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책임지고 동시에 잔혹해지며 거짓이 섞인 진실을 타협해야만 했다. 그것이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현실이자 현재였으니까. 이질감과 이분화된 개념들이 소외감을 불러일으켜 버겁게 느껴지지만 그런데도 나아가는 마라의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우직해서 이 사랑 섞인 환상이 환상이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특정인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닌 만큼 영화가 내어주는 분위기가 굉장히 힘들게 느껴졌다. 상황을 전달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자기 세계로 빨아들이려는 사람들로 인해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깨닫는 방식이 아프게 느껴졌다. 타인의 약점 앞에 선 인간은 한없이 잔혹해지는 것 같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헤쳐 나가는 마라가 무사히 살아가길 바라며 이 영화의 달콤씁쓸한 맛을 전한다.
-
- 현대 시대에도 미신은 살아있고 그에 대한 불안함은 여전하다
우진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이서라는 아기를 키우는 초보 아빠이다. 하지만 자신의 대학 동창인 세영의 장례식에 와달라는 문자를 받게 되고 자신의 아내가 부정을 탄다는 미신을 믿기 때문에 장례식장에 가는 우진을 말리지만 기어코 세영의 장례식장에 가게 되고 문상을 할 때 세영의 쌍둥이 동생인 예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우진이 세영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후로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아기인 이서는 열이 나면서 아프게 되는데... 과연 미신 따위 믿지 않는 우진에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우진은 왜 자신에게 죄의식과 수치심을 가지고 있었을까?
미신이라는 주제를 스릴러 영화로 잘 담아냈다!
세영은 우진을 사랑했으며 임신했지만 끝내 유산되고 만다. 그 이후로 세영은 목숨을 스스로 끊게 되고 우진은 그녀의 장례식에 다녀온 후로 잊혀진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다. 그런 그에게 여러 가지 시련들이 찾아온다. 그 시련들이 하나둘씩 나타나자 가까운 지인들은 그를 의심하게 되고 떠나게 된다. 또한 세영의 쌍둥이 동생인 예영의 의미심장한 말투에 자신이 세영과 함께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괴로움에 빠지면서 죄의식을 갖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민속 신앙과 미신을 믿는 것에만 중점을 둔 게 아니라 우진한테 생긴 공포감으로 인해 생기는 일들도 함께 보여준다. 결론은 현대 시대에서도 미신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속에서 탄생하는 불안함을 느끼는 인간의 모습을 잘 표현해낸 작품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현대 시대에도 미신은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계속 전파되고 있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가정의 달, 가족과 함께 다시 보고 싶은 영화 5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은 날이죠.
오늘 씨네랩은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가족들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를 5편을 뽑아봤습니다.
따뜻해지는 날씨와 함께 냉소를 녹일 따뜻함이 가득한 영화 5편, 지금 만나보시죠!
코코 (2018)
Cocoⓒ 네이버 영화
감독: 리 언크리치
출연: 안소니 곤잘레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벤자민 브랫
장르: 애니메이션, 모험, 코미디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04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황홀한 모험이 시작된다!
뮤지션을 꿈꾸는 소년 미구엘은 전설적인 가수 에르네스토의 기타에 손을 댔다 ‘죽은 자들의 세상’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의문의 사나이 헥터와 함께 상상조차 못했던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데… 과연 ‘죽은 자들의 세상’에 숨겨진 비밀은?ⓒ 네이버 영화
'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관람객 코멘트 왓챠피디아 c***님
패밀리 맨 (2000)
The Family Man
ⓒ 네이버 영화
감독: 브렛 라트너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티아 레오니, 돈 치들
장르: 코미디/판타지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4분
니콜라스 케이지의 감동 판타지 코미디
월스트리트를 주무르는 최고의 실업가 잭 캠벨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일로만 보낸 후 잠이 든다. 그러나 잠에서 깬 그의 곁에는 13년 전 야망을 위해 헤어졌던 애인 케이트가 누워 있고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뉴저지 타이어 가게의 영업사원이 돼 있다. 하루 아침, 그의 다른 삶 속에 들어가게 되는데...ⓒ 네이버 영화
'가장 평범한 삶이 가장 위대한 삶임을 보여주는 영화.'
관람객 코멘트 네이버 qjsd****님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2012)
We Bought a Zoo
ⓒ 네이버 영화
감독: 카메론 크로우
출연: 맷 데이먼, 스칼렛 요한슨, 엘르 패닝, 패트릭 후짓
장르: 가족/드라마/코미디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24분
용기와 희망 속에서 건네는 삶, 가족의 의미
모험심 강하고 열정적인 칼럼니스트이자 두 아이들의 아버지 벤자민 미(맷 데이먼)!
최근,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사를 결정하고, 마침내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게 된다.
하지만, 그 집엔 무려 250여 마리의 리얼 야생 동물들이 사는 폐장 직전의 동물원이 딸려 있는 것!
동물원의 ‘동’자도 모르는 벤자민은 인생의 마지막 도전을 위해
전 재산을 털어서 동물원을 사기로 결심한다.ⓒ 네이버 영화
'이 영화를 왜 5점을 주는가라고 묻는다면 "Why not?"이라 대답할수 잇을것이다.'
관람객 코멘트 왓챠피디아 김광*님
행복을 찾아서 (2007)
The Pursuit of Happynessⓒ 네이버 영화
감독: 가브리엘 무치노
출연: 윌 스미스, 제이든 스미스
장르: 드라마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17분
절망 속에서 살아남은 희망, 그리고 용기, 전 세계를 울린 기적 같은 감동 실화!
하나뿐인 아들 ‘크리스토퍼’(제이든 스미스)를 위해서라면 살아남아야 하는 그에게 인생 마지막 기회가 다가온다.60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 속에서 반드시 행복해져야 하는 그의 절실한 도전이 시작되는데…ⓒ 네이버 영화
'행복한 꿈을 망상이 아닌 현실로 이어주는 절실함과 부성애'
관람객 코멘트 씨네랩 모모**님
집으로 (2002)
The Way Homeⓒ 네이버 영화
감독: 이정향
출연: 김을분, 유승호
장르: 가족/드라마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87분
이 땅의 모든 할머니께 바칩니다
“할머니, 저 왔어요. 할머니 손주 ‘상우’예요”
도시에 사는 7살 개구쟁이 ‘상우’가 외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 시골집에 머물게 된다.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읽는 외할머니와의 시골살이… ‘상우’ 인생 최초의 시련은 과연 최고의 추억이 될 수 있을까?ⓒ 네이버 영화
'가장 한국적인 영화, 가장 한국인의 눈물과 닮은 가족영화'
관람객 코멘트 네이버 ohju****일상적인 것이 때론 가장 그립고 소중하듯,
올해 5월은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여운이 가득한 영화를 함께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GONI 였습니다.
-
- 영국의 괴물 복싱 챔피언과 견자단의 대결 시간 순삭 무술 액션의 끝판왕 엽문2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결말포함된 영상이니 시청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엽문2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의 사용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
- ? 18th JIMFF 이은정 감독님 interview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오랜만이다 의 #이은정 감독님 본격 탐구! ?♀️
? JIMFF X HISTRANGER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한국경쟁 상영작 [오랜만이다]의 이은정 감독님을
하이스트레인저 웹 데일리 팀이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8월 25일 대개봉!! ??
? 씨네픽쳐(스틸컷 퀴즈) 절찬리 진행중!! ?
? 씨네픽 큐큐(Quote Quiz) 절찬리 진행중!! ?
? 씨네픽 숏-퀴즈 절찬리 진행중!! ?
아이폰 다운로드 https://apps.apple.com/kr/app/%EC%94%...
안드로이드 다운로드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
#씨네픽 매주 목요일 밤 11시 59분 오픈
-
- 영화 <유물의 저주> 메인 예고편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살아가는 에드나가 사라지자, 딸 케이와 손녀 샘은 그녀를 찾아 시골의 낡은 집으로 찾아간다.
낡은 집에는 그녀의 치매 증상의 흔적이 집안 곳곳에 남아있다.
모두가 에드나를 찾기 위해 열심히 수색하던 중, 실종된 줄 알았던 그녀가 홀연히 집에 나타나지만 어디에 갔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전혀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듯하다.
케이와 샘은 이전의 모습과 완전히 변해 버린 듯한 에드나의 충동적 행동을 예측할 수 없게 되자 집 안의 불길한 존재가 에드나를 조종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
- 영화 <그대 너머에> 메인 예고편
지워져 가는 기억을 붙잡으려는 인숙.
다른 이들의 기억 속을 헤매는 지연.
과거의 기억 속으로 던져진 경호.
서로의 기억 너머,
존재의 의미를 찾는 히치하이커들의
눈물겨운 사투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