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3-02 20:59:55
완전한 욕망의 자리는 없다
영화 <서브스턴스> 리뷰
SYNOPSIS.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50살이 되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에게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엘리자베스는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 받는다. 한 번의 주사로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마가렛 퀄리)가 탄생하는데... 단 한 가지 규칙,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킬 것. 각각 7일간의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한다면 무엇이 잘못되겠는가?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POINT.
✔️ 청소년 관람불가 다양성 영화가 50만 관객을 동원한 사례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후 최초라고.
✔️ 이 미친 흥행은 이 영화가 '잘 만든 영화' 이상의 무엇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영화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당신은 그 말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해요. 고어한 장면이 있음에도 저는 이 영화를 자꾸 슬프게 되돌아보게 되는데, 여기에는 이 영화 바깥 우리 사회의 이야기들이 깔려 있어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이 영화가 끝나지 않네요.
✔️ <에.에.올>의 양자경에 이어, 이 영화를 통해 데미 무어 또한 배우로서의 능력을 빛내 보이는 동시에, 그걸 폄하해 온 사람들에게 멋진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 그러나 배우와 메시지만 주목 받아서는 안된다 싶을 만큼... 편집과 연출도 좋았어요.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 사이의 암묵적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욕구에 관한 이야기다. 시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자유가 주어질 때 함께 솟아나는 불안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자가 성별과 여성성에 관한 깊고 견고하게 뿌리박힌 오래된 규칙들을 시험할 때 솟아나는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다. 자아와 문화의 충돌에 관한 이야기이며, 여전히 여성의 권력에 대해 심히 양가적 태도를 취한 세계, 욕구와 수치심을 똑같은 정도로 불러일으키고야 마는 세계 안에서 여성의 욕망을 속박하고 있는 고삐가 덜컥 풀어졌을 때 생기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갈수록 더 시각에 치중하고 상업성이 짙어지는 세계, 여성의 형태가 무자비할 정도로 외현화되는 세계, 여성의 욕망에 관한 관념이 너무나 협소한 틀 안에 갇혀 있는 세계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몸과 자신의 욕망에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관한 이야기다. 전통적인 심리 구조와 사회구조가 얼마나 오래도록 멀쩡히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전히 소녀들에게 자기부정의 씨앗이 뿌려지고 권장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며, 40년에 걸친 법적·사회적 변화가 진정한 대안적 변화를 아직 일구어내지 못한 까닭에 우리가 행위 주체성과 주도권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이나, 자신의 욕구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만족시켜도 될 타당성과 자격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이 부재한다는 이야기다.
캐럴라인 냅 에세이 <욕구들: 여성은 왜 원하는가>의 문장들이다. 2003년 출간된 책이지만, 마치 <서브스턴스>를 보고 쓴 감상평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문장들이다. 즉 이 문제는 수십 년 지나도록 변하지 않았으며, 엘리자베스의 에어로빅에서 수의 쇼로 넘어갈 때 느껴지는 것처럼 "갈수록 점점 더 시각에 치중하고 상업성이 짙어지는" 동시에 "여성의 형태가 무자비할 정도로 외현화되"고 있다. <서브스턴스>가 영화관을 나서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인 이유다.

우리가 지독한 외모 지상주의의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은 이제 당연스럽게 여겨지는 명제지만, 그 정도는 모두에게 같지 않다. 나이와 성별에 따라 다른 잣대가 드리워지는 이 세상에서, 여성 노화에 대한 거부감은 사실 신체 기능 상실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 이전에 사회적인 어떤 것을 상실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공포에 가깝다. 그리고 후자는 결코 전자에 비해 작지 않다.
이 영화의 초입에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두 가지를 다 경험하는데, (1) 자동차 사고로 병원에 가는 상황 (2) 진행해 왔던 에어로빅 쇼를 "더이상 젊고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그만두게 된 상황 중 관객의 뇌리에 더 강렬하게 남는 것은 두 번째 상황 쪽이다. 물론 스토리상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만일 엘리자베스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그 부고 소식을 인터넷 뉴스 연예면에서 접했다고 해도 대중이 재생산하는 쪽은 두 번째 이야기였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기반 위에 등장했기에 <서브스턴스>는 몸을 둘로 나누는 비현실적 현상을 담은 영화임에도 더없이 현실적 현상을 담은 영화로 기억될 영화가 되었다.

여성의 욕망: 내 욕망과 사회의 욕망 구분하기
영화 속 상황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접하지는 않지만, "기왕이면" 좀더 예쁘고 좀더 젊어 보이면 좋다는 정도의 생각은 절대 다수의 여성이 할 것이다. 남성들이 기초 청결에서 약간만 나아간 수준으로 외모를 챙겨도 그루밍족이니 뭐니 하는 기사가 쏟아지지만, 외모를 위한 여성들의 노력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다 못해, 그 트랙 바깥에 서겠다는 사람들에게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다느니 뭐라느니 하는 비난으로 이어진다.
문장으로 쓰면 당연한 소리 같지만 사회에서 이 사실을 매일매일 느끼는 사람을 많지 않다. 이 메시지는 대놓고 트랙 바깥에 선 사람이 아니라면, 비난이 아니라 격려의 형태로 비틀어 전달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더 예쁘고 좋잖아. 이렇게 하면 더 건강하기도 할걸? 착하기까지 할걸? 각종 미덕을 뒤섞어 쏟아놓는 말들 안에서, 여성은 사회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처럼 받아들이기 쉽다.

엘리자베스는 "젊고 예쁘지 않다"는 (더 늙은) 하비의 입에서 나온 말로 후려치기 당하며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하비의 욕망과 판단은 곧 엘리자베스의 욕망과 판단으로 내려앉는다. 복도를 가득 메운 엘리자베스의 사진은 "젊고 예뻤던" 시절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가 착실히 쌓아온 커리어라고 볼 수도 있는데, 하비 뿐 아니라 엘리자베스 본인조차 자신을 내공이 어마어마한 진행자로 바라보지 않는다. 과거의 자신을 비추어 보며 자신을 멸시하는 엘리자베스의 시선은 사회에서 그에게 실어 올린 것이다. 동시에 엘리자베스는 오랜 기간 "자신을 잘 돌보라"며 여성들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해 온 사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어딘가에서 시작된 사회적 욕망은 여성의 안에서 여성과 동일시되고, 남성이 말할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그러나 그 욕망이 시작된 지점, 하비의 입에서 여성은 새우와 과연 얼마나 다른 대접을 받고 있는가. 하비가 쩝쩝거리며 뜯어 먹는 새우 장면이 불쾌한 이유는 단순히 위생적인 거부감을 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철저하게 타자화되어 있는 살덩어리의 자리가, 하비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자리라서 더욱 그렇다. 이러한 구조에서 생존하기 위해 많은 여성들이 정작 스스로의 욕망에는 둔감해지고, 사회적 욕망에 스스로를 체화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세상에는 각종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신경이 몰려 있어 잘못 건드리면 위험해질 수 있는 턱을, 심장만큼 중요하다는 종아리 근육을... 미용이라는 정갈한 단어에 담은 사회적 욕망을 사유로 찢고 째고 주사를 놓으며 상처 낸다. 사람 몸이 레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는, 어디 살을 파내서 어디 다른 데 갖다 붙이라는 그로테스크한 광고가 영화관 가득 쩌렁쩌렁 울린다. 몸이 이물질로 인식해 면역 반응이 일어날 보형물을 몸에 집어넣는다.
이 모든 신체 학대 행위는 "노력"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더 예뻐지기 위한 노력. 자기 관리. 그리고 엘리자베스와 수로 찢어진 두 개의 신체,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말해준다. 그동안 우리가 자기 관리라고, 미용, 노력이라고 불러온 것들의 상당수가 자기 학대였음을. 그리고 사회의 욕망을 이미 체득한 우리는, 누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스스로 괴롭히는 법을 이미 가장 잘 알고 있다.

사회의 욕망: 그거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시나브로 체득하고 있는 사회의 욕망은 과연 우리의 신체와 정신 건강을 다 갉아먹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 대답은 새우를 씹는 하비에게서 들을 수 있다.
하비가 엘리자베스를 해고하고 새로운 얼굴을 찾겠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과연 얼마나 '업무적인' 과정과 고민이 있었을까? 시청률, 독자 의견, 인터넷 반응... 숫자 하나라도 보았을까? 숫자 이면의 흐름을 읽으려는 노력이 있었을까? 아닐 것 같다. 그러니까 '무엇이 끝났느냐'는 엘리자베스의 질문에 답도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자신만만하게 확신에 찬 사람처럼 움직인다. 말초적인 자극에만 의존하는 그의 방식이 결과적으로 먹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때도 먹혔고, 섹슈얼한 느낌을 전면에 내세운 수의 쇼에서도 시청률로 돌아왔다. 하비 같은 인간이 많으니 하비 같은 인간이 주먹구구 방식으로 먹고 살면서도,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개저씨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에어로빅을 하는데 꼭 수영복 같은 전신 타이즈를 입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신 타이즈 아래로 쭉 뻗은 엘리자베스의 허벅지를 보며 여성들은 또 한번 사회적 욕망을 잘 체득한 결과물을 모범사례처럼 학습한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타이즈 아닌 옷을 입어 보자 했다면, 수많은 여성들이 타이즈를 비호했을 것이다. 자세가 잘 보여야 좋은 자세를 취할 수 있다든지 하고 타이즈의 효용성을 강조하면서. 비슷한 일은 오늘날의 운동과 레깅스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날들의 결과, 이제 신체를 더 부분적으로 클로즈업하고 효과를 더 많이 넣은 수의 쇼가 등장한다. 뽀얗게 필터를 씌운 쇼 안에서 반짝거리는 수의 신체는 마치... 뽀샤시한 생닭에 스프링클을 뿌려 놓은 느낌이 든다. 최소한 인간의 신체다운 느낌마저 줄어들고 있다.
생각해 보면 무수하게 쏟아졌던, 각종 연예인 이름 뒤에 '후덕'하다는 단어를 붙여 기사를 내던 시절의 연예면을 그냥 둔 결과, 이제 연예기사와 댓글들은 여자 연예인의 신체를 부위 별로 품평한다. 허리나 다리를 언급하던 옛날 기사들도 역겹기 그지없었으나, 승모근이 어쩌고 중안부가 어쩌고 하는 내용을 보면 정말 인간을 고깃덩이로 보고 있나 싶어 할 말이 없어진다. 더 끔찍한 것은 그런 시선이 내게 체화되고, 승모근과 중안부의 차이를 인지하는 능력이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점이다. 하비의 쇼는 계속되고 있다. 자기 자신은 화장실에서도 꽤나 시간이 걸리는 주제에, 25세 이상 여성의 가임 능력을 따지고 있는 찌질하고 나약한 남성성이, 어린 여성의 반짝거리는 재능을 내세워 '성공'을 얻어가는 쇼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이브 문건이 떠오른다.)

내 안에 체화된 사회적 욕망을, 그 욕망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것에서 시작된 것인지를 깨닫는 것은 여성으로서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깨닫는다고 해서 당장 내가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밀가루와 물이 뒤섞여 반죽이 된 것처럼, 나는 여성의 몸을 품평하는 사회적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나 자신을 바라볼 수가 없다. 살이 찌면 빼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신체 부위가 있다. 여기서 온전히 초연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그래서 엘리자베스의 선택이 때로는 한심하고 답답해도, 그를 미워할 수 없다. 슬플 뿐이었다.
혹자는 엘리자베스가 "여전히 아름다움"을 들어 그를 한심해 한다. 그러나 이는 엘리자베스와 똑같은 사고 방식이다. 아름다움의 잣대 자체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결국 시간 문제일 뿐이다. 거울을 봤을 때 조금 더 주름이 없었거나 조금 더 마음에 드는 옷을 입었거나 새 립스틱을 발랐다면 엘리자베스가 당당하게 프레드와의 약속에 나갈 수 있었을까? 거울을 보지 않았어야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한심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엘리자베스에게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여성이라면.

나의 욕망: 완전한 자리는 없겠지만
그러면 어쩌라고요. 매일매일 소리도 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은 별것도 아닌 지점에서 시작된 주제에 끔찍하게 증폭되다 못해 내 안에서도 울려퍼지는데. 엘리자베스가 능멸의 말을 듣고 이리저리 밀쳐지고 끝내 터져 나갈 때, 하비 같은 인간들은 피를 좀 뒤집어쓴 외에는 무사했다. 슬프지만 현실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부분 단위로 품평 당하는 자리에 세워진 수 같은 여자들이 부족한 면면을 이유 삼아 욕을 바가지로 먹을 때 뒤에서 새우나 씹고 이나 쑤시며 무사한 배를 두드리는 이들의 시선이 너무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나의 욕망이 오롯이 홀로 서는 것이 과연 가능한 걸까? 캐럴라인 냅의 문장들을 더 들어보자.
그래서 이대로 충분한가? 상태가 비교적 괜찮은 날, 더없이 괜찮은 날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내게 주어진 축복을 하나하나 꼽아볼 것이고, 힘들게 얻어낸 친밀한 관계들에 대해, 두려움을 상대로 한 작은 승리들에 관해, 친구들과 개와 숲과 일에 관해 말할 테지만, 그래도 완전한 확신을 갖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완전히 확신하는 답, 최종적인 휴식의 장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내 모든 욕구를 이해하고 충족하는 일,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는 일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흡족함의 순간들, 별안간 몸과 마음과 정신이 나란히 연결되는 순간들이 있고, 마치 우주가 보낸 선물처럼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찾아오는, 내가 잘 먹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순간들은 더없이 소박하게 포장되어 도착한다. 내 개가 보내는 사랑의 시선으로, 친구와 나누는 농담으로, 여기서 느끼는 애정의 불씨, 저기서 느끼는 이해로. 그 순간들은 내가 막 노를 젓기 시작할 때 수면을 비추는 아침 햇빛 속에서, 완벽한 한 끼 식사, 완벽한 한 문장, 어떤 손길, 어떤 눈빛 속에서 온다. 마침내 이 삶에서 얻는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를 순간들이 있다. 섬광처럼 스치는 만족감, 얼핏얼핏 희미하게 반짝이는 희망의 빛과 맛, 파이처럼 깊이 음미하며 완전히 누려야 할, 금세 지나가는 순간들이.
엘리자베스가 이런 문장들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몸과 마음과 정신이 나란히 연결되"어서, "애정의 불씨"와 "이해" 안에서 이따금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면.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는 오늘도 현실에서 울려퍼지고 있고, <서브스턴스> 약물은 액티베이터 약병에 담겨 있지만 않을 뿐, 숱한 광고물과 방송과 알고리즘 곳곳에서 우리에게 내리꽂힌다. 좀처럼 필사를 하지 않는 편이지만, 오늘은 캐럴라인 냅의 문장을 종이에 사각사각 적어 보면서 천천히 음미해야겠다.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지만, 만족스러울 수는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면서. 아무튼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법은 평생 배워야 할 일이니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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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기, 우리가 스쳐간다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터에 현미경을 갖다대면 역사적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평범한 인간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대면 뭐가 될까? 이 영화가 된다.
영화 <히어>다.
들어가며 : 먼저 남기는 총평
제리 맥과이어의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히어>는 포레스트검프의 감독인 로버트 저메키스와 각본가인 에릭 로스가 협업을 했고 톰행크스도 주역으로 참여했다. 이래저래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쁘지는 않았다. 식상함과 실험의 밸런스에서 개인적으로는 호의 영역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사덕후의 개취로는 메인메뉴보다 가니쉬가 맛있는 영화라고 해야겠다. 드라마는 새로울 것이 없는데 그 드라마를 전달하기 위한 영화적 실험기법들이 새로워서 스토리 외적으로 상상력이 구동되는 영화랄까. 특히, AI와 CG 기술로 구현한 젊은 톰행크스의 모습은 필연적으로 관객인 나와 내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도 했으므로 이제는 영화의 주제가 AI기술을 통해서 와닿을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구나를 실감하게 되었다. 이 영화의 특별함에 대해 하나씩 알아보자. 일단 줄거리부터다.
<히어>의 줄거리와 등장인물들 : 주인공은 집입니다만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것이 주인공이라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장소’다. 그 위로 백악기 시절부터 코로나19가 창궐한 현재까지 한 공간에 살았던 존재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생로병사 희노애락이 옴니버스식으로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은 아래와 같다.
그러니까 <히어>는 일반적으로 영화의 내러티브를 만드는 ‘한 명의 주인공이 등장해서 자신의 초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시간을 일직선으로 전진시키는’ 법칙을 따르는 대신 자연의 내러티브라 할 수 있는 탄생과 소멸, 그 사이의 길흉화복을 기승전결로 따른다. 굳이 말하자면 옴니버스적 구성에 가깝달까. 그렇다보니 이야기 자체는 서스펜스도 없고 심심하게 느껴진다.
언급했던 것처럼 주인공을 ‘집(공간)’으로 볼 때, 인류의 삶은 어느 시대이건 반복된다는 전제 하에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역사성(시간)’을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한 그 곳에 인물들이 생기는 느낌. 이런 이야기에서 인물들에게 캐릭터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메인스토리라인에 등장하는 리차드의 인생은 다른 인물들에 비해 풍부하게 그려진다.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리차드는 로즈와 알의 첫째 아들로, 화가를 꿈 꾸는 소년이었다.
세계대전을 경험한 아버지 밑에서 대공황을 겪으며 어른이 된 그는 고등학교에서 만난 마가렛과 일찍 결혼을 하게 된다. 마가렛은 대학을 포기하고 (한국식으로 시부모의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시작한다. 그녀는 분가를 희망하지만 경기는 계속 나쁘다. 리차드는 딸의 학비를 벌기 위해 노력하고 마가렛도 비서로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한다. 장성한 그녀의 딸은 로펌에 들어가고 그 사이 로즈와 알은 쇠약해진다. 부모들이 캘리포니아의 요양원으로 떠난 뒤에야 비로소 마가렛이 그토록 원하던 ‘둘만 사는 집’을 갖게 되지만 그녀는 이혼을 원한다. 이 순간을 위해 달려왔는데 말이다. 잠시나마 리차드의 인생에 몰입했던 우리는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원하는 걸 갖는 순간은 왜 이토록 찰나인가?
이 필연적인 질문 위로 리차드 이전에 이 곳에 살았던 인물들의 인생들이 겹쳐진다. 만나고 꿈꾸고 떠난다.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도구적으로 사용된 것 같던 인물들의 삶은 사실 하나의 질문을 위한 반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나니 이 영화에 한 명의 주인공이 없는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한 사람의 인생만 특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럴 이유도 없다. 이 집이 역사적으로 남은 유명 정치인(아마도 프랭클린)의 저택이 아니라 그의 앞집에 사는 평범한 가정집으로 설정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유추해본다.
우리는 죽는다. 그러나 모두 꿈이 있다.
<히어>는 결국 심심하게 만나고 헤어지고 죽는 이야기다.
허무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왜 이렇게 따뜻할까? 아마 그것이 우리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2시간 내내 정박되어있던 카메라를 객석으로 돌려보자. 주인공이 된 우리의 인생은 카메라 너머 캐릭터의 삶과 얼마나 다른가? 또 얼마나 같은가? 아무리 특별한 사건도 둘러보면 나만의 사건이 아니게 되는 보편의 인생일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의 입장에서 본인들의 삶이 평범하고 심심하기만 할까? 아닐 것이다. 그렇다. 이 작품에 짧게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는 희망과 좌절 그리고 꿈이 있었다. 각자의 객석의 앉은 우리의 삶처럼 말이다. 이 대목에서 마가렛의 50살 생일파티 장면이 떠오른다. 그녀는 그 동안 미뤄왔던 꿈들을 이야기하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녀가 그것들을 이루는 것을 담아준다. 이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인생은 짧고 우리는 결국 죽는답니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들을 놓치지 마세요.”
집은 언젠가 빈집이 되고 우리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이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남이 어떻게 보든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하나쯤은 가진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결심을 하게 된다.
이제는 맛있는 가니쉬에 대해서 이야기할 차례 : 이 영화는 클로즈업이 없다.
<히어>에서 작품의 의미와 개성을 만드는 포인트는 역시 포인트다. 지구의 기나긴 역사에서 공룡이 등장했다 퇴장했던 것처럼 인류도 그리고 그 안에 나라는 인물도 등장했다 퇴장하게 될 것이다. 그런 메타포를 가장 잘 활용한 매체는 사실 연극이다. 전통적인 연극은 인물의 등장과 퇴장을 통해 무대 위에서 사건을 전개시켰다. 이 작품은 매우 영화적이지만 프레임인-아웃이 마치 연극의 등퇴장처럼 느껴지는 효과도 백분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무대는 정박되어 있고 객석도 고정되어 있으니 궁금하다고 가까이 가서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럴거면 영화일 이유가 없다. 감정을 전달받아야 하는 씬은 어떻게 하지?
정답! 배우들이 다가온다.
<히어>의 싱글 카메라의 위치는 집안의 중심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거실과 부엌 사이의 어느 벽 또는 경계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다. 연극으로 치면 무대의 외곽이다. 연극에선 인물들이 은밀한 이야기를 할 때 상수든 하수든 사이드로 내려오면 관객에게는 가까워지고 무대의 균형은 깨트리게 된다.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듯 튀어나온 것에 눈과 마음이 더 가는 법이다. 그렇게 전달받는 정보는 자연히 귀기울이게 된다. <히어>는 클로즈업이 필요한 씬에서 배우들이 직접 카메라 가까이로 오게 만드는 방식으로 카메라 거치라는 컨셉을 유지하면서 감정 전달을 해냈다.
예컨대 로즈와 집주인이 개인적인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씬, 성장한 리차드(=젊은 톰행크스)가 등장하는 첫 씬, 원주민족의 여성(태초의 여성)의 시체를 운반하는 씬, 가족들의 추수감사절 식사씬, 분가를 원하는 싸움신 등에서 배우들의 동선은 무대의 외곽이자 카메라 가까이로 조정된다. 기발했다. 위치를 정할 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히어>에는 정말 카메라 무빙이 없나요?
사실 있다. 딱 한 번. 영화의 엔딩에 단 한번 카메라의 무빙이 있다. 치매로 기억을 잊어가는 로즈를 위해 리차드는 빈집에 그녀를 데리고 오는 장면이다. (사실 영화의 첫 장면이기도 하다.) 그녀는 집을 둘러보고 문득 기억을 찾는다. 집을 둘러보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이제껏 벽이라고 생각했던 관객의 시점은 마치 새의 시점처럼 집의 반대편을 처음으로 보게 되고 그녀의 회한에 젖은 표정을 가까이서 바라보게 된다. ‘이 곳을 좋아했다’는 마가렛의 대사를 끝으로 창밖으로 빠져나간 카메라는 관객들 역시 이 영화라는 공간에서 퇴거시킨다. 시간이 되었다는 듯. 그리고 평범한 집들이 보이는 풍경에 고대의 새 한 마리가 날아오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여담이지만 : 다 좋았냐?
그렇지는 않았다. 특히 가장 현재의 집주인이었던 아프리카계 가족들의 삶의 쓰임이 현대적 인물로서의 특성이 있기보다 오직 앞서 보여준 에피소드와 대응하는 위치에서 식민지 시대와 달리 개선된 인권, 달라진 생일파티 풍경, 코로나, 그럼에도 남아있는 사회적 차별 같은 걸 보여주는 기능으로만 쓰였다는 생각을 한다. 아쉬운 점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자연의 공간이었던 곳에 원주민이 살게 되고 그곳이 어는 미국인 가정의 자산이 되어 가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웠던 것 역시 미묘하게 불편한 지점이었다.
사실 영화예술이 모든 면에서 육각형이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침략을 당해온 민족의 입장에선 침략을 해온 민족들의 영화는 어느 순간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좋은 점이 9개가 있는 영화에도 이 부분에선 늘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하게된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인가 고도의 문화통치인가. 이거 뭐 답이 있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여담이지만2 : 어떻게 찍은걸까?
<히어>를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집 자체가 변화무쌍한 캐릭터 같다. 초기의 빈집부터 맥시멀리시트의 집까지 그 사이 가족구성원들의 변화와 크리스마스처럼 특수한 날을 연출하기 위해 동원한 소품과 미술이 장난이 아니다. 심지어 같은 시간대 내에서도 밤과 낮에 따라 리얼리티를 느끼게 하는 미묘한 변화들이 굉장하다. 그런데 이 복잡한 작업을 하면서 카메라 한 대를 어떻게 단일 장소, 단일 지점에 고정해서 찍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스튜디오 집 내부에 두 개의 세트를 만들어서 한 세트에서 촬영하는 동안 다른 세트에서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식으로 찍었다고 한다. 방의 창문 뒤에 위치한 LED 벽은 배경이자 방의 조명기이기도 했다고.
총 촬영기간은 33일에 불과했지만 첫 촬영 몇 달전부터 블로킹을 해서 완벽한 타임라인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컷이나 다른 각도가 없었기 때문에 촬영이 끝나면 모두 카메라 뒤로 돌아가서 테이크를 확인했다는 것도 대단하다. 알면알수록 어마어마한 제작진에 어마어마한 작업물이다.
여담이지만3 : 영화의 미래
<히어>의 장르는 휴먼드라마지만 여느 SF장르 영화와 견주어도 될만큼 화려한 기술력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나 CG야! 느낌은 전혀 없다. 그만큼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얘기다. 사실 동일 배우가 20대부터 80대까지를 연기한다는 건 배우 입장에서도 굉장한 부담이었을텐데 다운에이징 스킬, 디지털 메이크업 기술 등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주연 배우들도 20대였던 시절의 신체반응이나 감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러프버전이나마 현장에서 바로 AI기술로 20대의 얼굴로 바뀐 자신들의 연기를 모니터하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는 인터뷰를 봤다. 스토리에 완벽히 스며드는 기술이라니, 앞으로 펼쳐질 영화스토리텔링의 변화도를 상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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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하인츠 에미히홀츠 드로잉전: 기울어진 비전
고양시 예술창작공간 해움과 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공동 주최하는 '기울어진 비전'은 독일의 다큐멘터리 감독 하인츠 에미히홀츠의 다채로운 예술 세계를 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해당 전시는 크게 두 가지 갈래를 가진다. 하나는 하인츠 에이미홀츠의 꿈에 기반하여 무의식을 기록한 드로잉 시리즈로, 2차원으로 존재하는 꿈의 이미지를 3차원적 형식으로 부피감 있게 전시한 콘텐츠이다. 다른하나는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2004년부터 2021년까지 그가 작성한 공책과 스케치북, 길가의 나무 등이 비추어진다. 이는 자연에 의한 건축물을 해체를 기록하고 있으며, 다양한 텍스트와 콜라주를 통해 예술가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기울어진 비전>은 영화와 드로잉의 관계성을 가지는 작품들을 위주로 추린 드로잉을 전시한다. 평면적인꿈의 이미지는 전시장 내에서 이리저리 꼬여 입체감을 가지는 3차원적 형태를 가지게 된다. 관람객은 롤러코스터를 연상케 하는 드로잉 배치 형상을 통해 운동감을 느낄 수 있으며, 이미지의 재현은 관람객의 관람 속도와 거리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해당 전시의 드로잉은 보는 이의 주관적 경험과 판단에 기반한다.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장면들의 해석은 관객의 상상에 기댄다. 감독이 일방적으로 메세지를 전달하는 전통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관람객이 주체가 되어 사유할 수 있도록 능동성을 부여함으로써 해당 전시는 관객의 위치를 보다 동등하게 상승시킨다. 영화 연출 기법에서 불연속편집을 통해 흔히 의도되는 ’낯설게 하기‘ 가 전시에 적용된 셈이다.
하인츠 에이미홀츠 감독은 도전적인 전시 행태를 통해 관람객이 ‘기울어진’ 시선으로 새롭게 대상을 바라볼것을 의도하고 있다.
<전시 정보>
고양시 예술창작공간 해움 2024. 9. 26. (목) ~ 10. 2. (수) 10:00 ~ 18:00
도슨트 : 14시, 16시(약 15-20분 소요 * 9.29~30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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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4주 차, 위클리 씨네 뉴스
- 안녕하세요.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지난 한 주, 국내외 영화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정리해 보는 '위클리 뉴스' 차례가 왔습니다!그럼, 지난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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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관 1분기 관객·매출, 지난해 52% 증가
ⓒIMDB
19일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표한 1분기 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 1~3월 매출액은
1천 135억원으로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약 52% 늘었다. 올해 개봉한 <해적: 도깨비깃발> <킹 메이카> <경관의 피> 등이
1분기 매출액과 관객 수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일주인간 한국 영화, 1천원
ⓒ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침체된 영화관과 한국 영화를 살리기 위해
한국 영화 특별 기획전을 1천원에 관람할 수 있는 캠페인을 진행한다.
특별 기획전에는 <박열> <정직한 후보> <극한 직업>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덕>, 제24회 우디네극동영화제 공식 초청
ⓒ 네이버 영화
영화 <성덕>이 제24회 이탈리아 우디네극동영화제 비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우디네극동영화제는 대중적이고 작품성을 인정 받은 아시아 영화를 소개하는 영화제로,
이전에 <다만 악에서 구하소> < 독전> <남산의 부장들> 등이 초청된 적이 있다.
마블, 이태원에서 팝업 전시 시작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완다비전> <문나이트>의
예술 작품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문화공간 '마블: 더 리플렉션' 팝업 전시는
현재 현대카드 바이닐 앤플라스틱에서 체험할 수 있다.
장현성·유인나,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사회자 선정
ⓒ YG엔터테인먼트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가 개막식 사회자로 배우 장현성과 유인나를 선정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개막식이 3년 만에 전주돔에서 열리기 때문에 사회자 선정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훌륭한 연기력은 물론, 유려한 말솜씨를 갖고 있으면서 친근한 이미지인 장현성, 유인나 배우가 개막식 진행을 맡게 되었다.
전주국제영화제와의 좋은 인연이 시작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해외
<마인크래프트> 제이슨 모모아 캐스팅
ⓒIMDB
18일, 미국 연예 매체에서 워너 브라더스가 제이슨 모모아를 <마인크래프트 더 무비>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는 최종 단계에 이른 것으로 확인 됐다고 밝혔습니다.
원래 <마인크래프트 더 무비>는 2019년 개봉을 목표로 했으나 코로나 19로 제작이 연기 됐고, 감독 또한 여러 차례 교체되었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 2023년으로 개봉 연기
ⓒ IMDB
소니픽쳐스가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의 개봉을 2023년 6월로 연기했다.
이에 따라 본 영화의 두 번째 파트인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 파트 2>의
개봉도 2024년 3월로 연기했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동성애 캐릭터로 사우디 개봉 금지
ⓒ 네이버 영화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동성애 캐릭터의 등장한다는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봉이 금지됐다고 보도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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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앰뷸런스>의 질주에 담긴 치유의 드라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암에 걸린 아내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윌(야히아 압둘 마틴 2세)'. 그러나 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막대한 치료비를 구할 길이 막막해지자 그는 외면한 채 지냈던 이복형 '대니(제이크 질렌할)'를 찾아간다. 배 다른 동생의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들은 대니는 역으로 그에게 한 가지를 제안한다. 자신이 계획한 은행 금고 털이에 참여하라는 것. 이에 함께 자랐지만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형제는 오랜만에 한 팀을 이룬다. 그러나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서 계획이 엉망이 되자 두 형제는 앰뷸런스를 강탈해 탈출을 시도하고, 부상당한 경찰을 치료하기 위해 앰뷸런스에 타 있던 구급대원 '캠(에이사 곤살레스)'을 인질로 삼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LA 도심을 질주하기 시작한다.
<진주만>과 <트랜스포머> 시리즈, <6 언더그라운드>를 만든 마이클 베이는 할리우드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스타 감독이다. 카메라 워킹, 구도, 공간감과 조명 등을 이용해 관객의 시선을 붙들어 놓는데 탁월한 그의 영화는 설령 이야기의 흐름이 이상하고,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언제나 보는 재미가 있다. 2005년에 공개되었던 동명의 덴마크 영화를 리메이크한 그의 신작 <앰뷸런스>도 마찬가지다. 제이크 질렌할, 야히아 압둘 마틴 2세, 에이사 곤살레스와 같은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이 작품은 격렬한 액션과 휘몰아치는 추격전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그러나 <앰뷸런스>가 유달리 인상적인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마이클 베이 감독에게서 기대하지 않았던, '앰뷸런스'라는 소재의 특성을 살려낸 드라마와 캐릭터가 바로 그것이다.
우선 <앰뷸런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액션이다. 최소한의 도입부와 마무리를 제외한 러닝타임이 앰뷸런스를 쫓는 추격전으로 가득하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마이클 베이 감독의 변화, 혹은 초심으로의 회귀가 자아내는 재미다. 사실 베이 감독은 난장판을 뜻하는 단어 'Mayhem'과 그의 이름 'Bay'를 합친 'Bayhem'이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폭발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히트작인 <트랜스포머> 시리즈나 가장 최근작인 <6 언더그라운드>에서는 폭발하는 장면이 너무 많아서 눈이 피로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앰뷸런스>에서는 폭발씬의 비중이 크지 않다. 대신 영화를 가득 채운 것은 베이 감독의 또 다른 전매특허인 카 체이싱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찍을 때도 매번 한 차례 이상 선보였던 그의 카 체이싱 시퀀스는 계속되는 폭발과 액션, 화려하나 어지러운 CG의 향연 속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번에도 그의 특기는 빛을 발한다. 특히 드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구도와 장면을 더한 점이 인상적이다. LA 도심 상공과 지상을 1인칭 시점으로 자유롭게 오가면서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추격전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하고, 앰뷸런스나 다른 차들에 직접 타고 달리는 듯한 속도감을 체감시키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걸음 더 발전한 카체이싱 액션에 집중한 덕분에 폭발씬의 비중이 적은 <앰뷸런스>는 전작들에 비해 피로감이 덜할 뿐만 아니라,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된 폭발 그 자체의 임팩트를 더 강렬하게 선보인다.
이러한 <앰뷸런스>의 액션은 구급차 안에서 운전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캐릭터와 그들의 드라마가 단단하게 받쳐주기에 더욱 빛난다. 특히 액션이 이동수단으로서의 앰뷸런스에 주목했다면, 드라마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수송하는 앰뷸런스의 기능을 조명하기에 더욱 그렇다. 구급차를 타고 거친 추격전을 펼친 끝에 세 주인공이 제각기 자신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받는 이야기이기에 그들의 앙상블은 인상적인 것이다.
실제로 본격적인 사건의 시작인 은행 침입이 시작되기 전에 영화는 그들이 품은 상처를 짧지만 확실하게 짚어주고, 앰뷸런스가 병원으로 향하는 마무리는 그 상처가 어떻게 치유됐는지를 간명하게 드러낸다. 일견 프로페셔널한 구급대원인 캠의 경우, 그녀는 의사를 꿈꿨지만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과거를 품고 있었다. 한 맺힌 과거 때문인지 캠은 다른 대원들과 일절 교류를 하지 않고, 본인이 목숨을 구한 이들에 대해서도 직업적인 관심 그 이상은 결코 주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는 납치된 앰뷸런스 안에서 수술 집도를 통해 직접 생명을 구하는 경험이라는, 냉소적인 태도를 버리고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날 분기점을 마주한다.
이복형제인 윌과 대니에게도 마음의 흉터가 있다. 범죄 조직을 운영하던 양부로부터 벗어나고자 군 입대를 선택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윌.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의 암조차 치료하지 못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고,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대니가 계획한 은행털이에 가담한다. 한편 오랜 기간 자신과 연을 끊고, 아내와 조카조차 만나게 하지 못한 이복동생에게 말 못 할 서운함을 느끼던 대니. 그에게 은행 강도 침입은 자신의 사업 수단이자 동시에 뒤틀린 방식으로나마 윌과의 관계와 가족애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렇듯 세 주인공이 제각각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한 치료를 받는다는 점에서 구급차가 보여준 136분간의 질주는 모두에게 해피 엔딩은 아니어도 충분히 치유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치유의 드라마는 감정적으로 영화의 서스펜스를 조성하는 주요한 동력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의 상처와 치유라는 맥락에서 살펴보면, 앰뷸런스 안에서 펼쳐지는 인질극은 자신의 상처를 승화시켜서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이들과 상처를 분노로 폭발시키고자 하는 이들 간의 갈등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갈등이 중심에는 윌이 위치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형의 위험한 계획에 휘말린 윌은 자신과 가족의 미래, 그리고 형제지간까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동시에 그는 부상당한 경찰관, 의도치 않게 인질이 됐지만 그저 옳은 일을 하려는 캠과도 감정적 관계를 맺는다. 그러다 보니 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세 주인공의 심경 변화는 액션 못지않게 흥미를 자아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앰뷸런스>가 어디까지나 리메이크 작품이기에 마이클 베이 감독도 전작들과 달리 단단한 드라마를 보여준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스케일도 작고, 각본도 단순한 가운데에서도 영화의 구성이나 연출력이 진일보한 점을 고려할 때, 원작이 있다고 해도 캐릭터성과 드라마를 적절히 살려낸 것은 충분히 유의미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는 사소한 설정으로도 순간적으로 위기를 조성하고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뛰어난 연출력을 과시한다. 예를 들어 캠이 의사들과 화상통화로 응급수술을 진행하던 중 화상 연결이 갑작스럽게 꺼지고,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속출하면서 극의 흐름이 요동치는 식이다.
또한 인물의 특징을 상황적 맥락과 결부시키기도 한다. 대니의 경우, 무엇이든 저지르며 일을 키우는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특성을 지닌 인물이다. 영화는 그런 그를 앰뷸런스에 탄 사람들을 압박해오는 상황에 집어넣으면서 아이러니한 장면들을 만들고, 덩달아 상당한 긴장감도 조성한다. 당장 경찰에게서 벗어나야 하지만 경찰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인질로 잡힌 부상당한 경관을 치료해야 하고, 그로 인해 오히려 구급차의 속도를 늦춰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대니와 윌을 압박한다. 또 그 경관을 치료하기 위해 대니는 자신이 캠을 인질로 잡고 이용하는 와중에도 그녀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물론 <앰뷸런스>는 단점들도 많은 영화다. 일단 완급 조절에 실패하고 있다. 영화 내내 카체이싱 액션이 쉴 틈 없이 몰려오는 데다가, 평범한 대화 장면에서도 화면 전환이 매우 많고 카메라의 움직임이 과하다 보니 분명 피로감이 적지 않다. 단순한 각본을 2시간 11분이라는 비교적 긴 러닝타임으로 다루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덜하다는 게 위안일 뿐이다.
초반부의 범죄극에서 중반부 인질극으로 넘어갈 때 잔뜩 조여진 서스펜스에 순간적으로 구멍이 나기도 한다. 이전까지는 대니와 윌, 그리고 캠에게만 포커스를 맞췄다가, 그들을 쫓는 경찰에게까지 초점을 넘기다 보니 극의 흐름이 늘어지는 것이다. 경찰의 대사나 분량이 베이 감독 특유의 과한 유머로 점철된 것도 문제를 악화시킨다. 또한 응급 구조 요원이 구급차 안에서 응급수술을 집도하는 것처럼 언뜻 생각해 보아도 납득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전개도 몰입을 방해한다.
그러나 위의 단점들은 다행히도 <앰뷸런스>를 즐기는 데 결정적인 방해가 되지 않는 듯 보인다. 우선 기본적으로 전격전을 펼치듯 직선적인 에너지로 무장한 영화이기에 강렬한 액션을 기대할 경우 단점이 오히려 장점도 될 수 있다. 또한 영화의 선택과 집중이 탁월하기도 하다. 당장 범람하는 액션 사이사이에 깊숙이 스며든 세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들과 함께 앰뷸런스의 뒷문을 열고 순식간에 드라마의 끝을 맞이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예상치 못한 선물, <앰뷸런스>의 매력은 뇌리에 깊이 남는다.
A(Acceptable, 무난함)
줄어든 스케일과 제작비에 반비례해서 늘어나는 만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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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2021)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2021)
감독: 요아킴 트리에
출연: 레나테 레인스베, 안데스 다니엘슨 리 등
장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국가: 노르웨이
상영시간: 121분
개봉일: 2022.08.25
사랑을 통해 찾아가는 진정한 내 모습
서른을 앞둔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는 의대생에서 심리학 전공으로, 사진작가에서 작가 지망생으로 직업을 수시로 바꾸고, 진로의 변화에 따라 만나는 애인도 함께 바뀐다. 유명한 만화가 '악셀(안데스 다니엘슨 리)'과 안정적인 연애를 하는 듯하지만 커리어를 쌓아 사회적 위치를 확보한 그와 달리 서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자신의 상황에 심리적인 갈등을 겪는다. 이후 우연히 파티장에서 만난 비슷한 또래의 '에이빈드(할버트 노르드룸)'를 만나 편안하고 유쾌한 시간들을 보내지만 여전히 모호하기만 한 정체성과 장래가 다시 한 번 '율리에'를 괴롭힌다. 그는 진정한 사랑과 자신이 꿈꾸는 것 모두를 찾을 수 있을까?
과감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 감각적인 로맨스 영화의 탄생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마치 단편 모음집처럼 여러 개의 플롯으로 쪼갠 구성, 과감한 쇼트와 독특한 연출 방식을 통해 혼란이 깃든 '율리에'의 심리로 몰입을 이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처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해 각각의 부제가 있는 14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음에도 줄거리가 뚝뚝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챕터별 구성 때문에 내용을 질질 끄는 구간이 없고, 호흡이 빠르기 때문에 지루함이 없고 라디오에서 각기 다른 연애 사연을 듣는 것처럼 모든 챕터가 흥미롭다.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모든 것이 멈춘 세상에서 '율리에' 혼자만이 '에이빈드'를 향해 뛰어가는 장면이라던가 약에 취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신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 것 등 로맨스 장르의 작품을 풀어내는 방식도 매우 신선하다. 대중영화에서 쉽게 보기 힘든 도시 '오슬로'를 배경으로 해 길가에서 달리는 장면마저도 로맨틱하게 그려지며 섹슈얼한 장면마저 아름답고 감성적으로 표현한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감정 표현을 요하는 '율리에'로 분한 '레나테 ㄷ레인스베'와 '악셀'이라는 사람이 실존하는 것처럼 현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연기를 보여준 '안데스 다니엘슨 리' 두 배우의 열연이 이끄는 힘도 강렬하다. 심도 있는 이야기와 감각적인 장면들, 뛰어난 배우들이 만나 '나'와 '사랑'을 주제로 한 감각적인 작품을 완성도 있게 그렸다.
사랑은 거들 뿐, 골치아픈 자기탐색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보통의 범주에 속한 로코 무비는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란 본디 사랑으로 맺어진 남녀 주인공의 관계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그리지만, 이 작품은 주인공 '율리에'가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랑이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다. 단순히 로맨스적인 측면만을 고려하면 율리에의 행동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악셀'은 율리에의 꿈을 누구보다 응원하고, 대화도 잘 통하는 남자였으며 '에이빈드'는 다정하고 헌신적인 애인이었다. 율리에는 부족함 없는 연애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녀의 마음은 완전하게 채워지지 않았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이어진 남녀의 관계 속에 자신의 이름으로 온전히 설 수 있는 위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율리에'는 서른을 앞둔 사회초년생이지만 40대 중반의 남자친구 '악셀'은 인지도와 커리어를 모두 갖춘 인기 만화가다. 율리에는 그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진로를 바꾸기만 하고, 아르바이트생에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그와 비교하며 마치 자신이 인생의 조연인 것처럼 느꼈다. 비슷한 나이대의 사회적 위치가 크게 다르지 않은 '에이빈드'를 만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율리에를 위해 헌신할 줄 아는 남자였지만 서로를 따스하게 감싸주는 사랑만으로 그녀의 갈망을 모두 채울 수는 없었다. 결국 이 작품은 '율리에'가 뜨거운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부딪히고 쓰러지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핵심이다. 사랑은 단지 '나'를 찾는데 쓰이는 수단일 뿐이며 '율리에'는 두 남자와 사랑의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을 만나 행복해 하고 아파하는 시간을 겪으며 자아를 조금씩 찾아나간다. 남녀의 로맨스가 아닌 '율리에'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영화를 바라본다면, 그의 모순적인 태도를 답답해하기 보다는 그녀와 헤어진 것과는 별개로 끝까지 성장을 응원하던 '악셀'처럼 율리에가 자아의 혼란과 내적 갈등을 이겨내기를 바라게 된다.
최악일지도 모르는 나, 누구에게나 있을 방황의 시간
극중 '악셀'은 '율리에'에게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 같다는 말을 한다. 그녀 또한 이를 인지하고 있지만, 자신이 기다리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이는 애인들을 답답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원제에 대한 번역이 작품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은데, 직역하면 '세상 최악의 인간'에 좀 더 가깝다. 번역된 제목만 놓고 봤을 때는 여러 남자와 사랑을 하며 최악의 인간들을 경험하는 스토리가 예상되지만, 작품에서 말하는 최악의 인간은 결국 '율리에' 자신이라고 볼 수 있다. 글을 잘 썼다고 칭찬을 해줘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뭔가를 원하긴 하는데 스스로도 알지 못해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고 싶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 때문에 뜻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는다. 이러한 방황의 시기에 두 남자를 만나며 이별을 반복함으로써 사랑할 때 최악의 인간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품은 변덕스럽고 모순적인 '율리에'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으며 관객에게도 이를 유도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저 이상을 향한 욕망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극심한 심리적 갈등을 겪고, 진로 결정에 대한 큰 고민을 하는 사회초년생일 뿐이기 때문이다. 과연 상대방에게 최악의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악셀'과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거나 '에이빈드'의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아가는 선택지를 고르는 게 바람직했을까? 인생에서 사랑도 빼놓을 수는 없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진정한 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상대에게 최악의 인간이 되는 것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면, 설령 누군가 비난을 할지라도 본인을 위한 선택을 내리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같은 형태는 아닐 지라도 젊은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방황이기에 우리는 '율리에'를 욕하지 않고 기꺼이 공감하고 응원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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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언론 시사회에 초청 받아 작성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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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사람의 딸과 동거를 시작했다.
- 줄거리
재식은 행사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며 돈을 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아 돈이 궁하다.
그 와중에 직원중 한명이 죽게 되고, 그 아이인 은혜를 만나게 된다.
죽은 직원인 지영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서 사실혼 관계였던 척 행세를 하게 되고, 은혜에게 아빠소리를 들으려고 악을 쓴다.
하지만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은혜가 재식을 받아들이기에는 재식의 방식이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어느날 은혜와 함께 지내던 집에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압류스티커를 붙이게 된다.
이로 인해서 재식은 보험금을 받을 수 없게 되고, 사실혼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재식은 지영이 이모라고 부르는 어떤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은혜를 데리고 이모를 찾기위해 시골로 내려가게 된다.
이모라는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재식은 더이상 은혜와 함께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시골로 내려오기 전부터 은혜에게 글자를 알려주고 있던 재식은 시골로 내려와서 더 다양한 것들을 은혜에게 알려주고있었다.
재식은 은혜를 시설에 맡기려 하지만 이미 서로가 소중한 사람이된 두사람은 헤어질수가 없게된다.
- 기억에 남는 부분
재식은 돈을 얻기위해서 은혜에게 접근했고,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기를 바란다.
하지만 서로가 너무 소중해지고 나서 은혜는 재식을 아빠라고 부른다.
은혜가 처음으로 재식을 아빠라고 칭할때의 상황이 너무 슬프다.
은혜가 자신이 누구냐고 재식에게 묻고, 재식은 은혜에게 이름을 알려준다.
은혜가 재식에게 누구냐고 묻자, 재식은 아무말도 할수가 없게 된다.
그때 은혜는 재식의 손에 아빠라고 적는다.
재식이 차마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재식의 죄책감이 정말 잘 드러났던것 같다.
돈이 목적이었던 재식에게 진심을 알려준 은혜와 진심을 받아들인 재식의 관계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라 기억에 남는다.
중간에 은혜를 학교같은 곳에 보내려고 하는 장면이 있다.
은혜는 시청각 장애인으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
제공하는 수업중에는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교육이 없었고, 은혜는 어느 수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현실에서도 시청각 장애인에 대한 정확한 규정도 없을 뿐 아니라, 제공되는 교육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비록 영화 소재일지는 몰라도 현실에서 이러한 부분들은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 명장면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서 기다리던 도중에 신호가 바뀌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안내도 울리지만 시청각 장애인인 은혜는 재식의 손을 잡은채 해맑게 웃고만 있다.
재식은 그런 은혜를 빤히 쳐다본다.
마지막에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은혜가 재식의 손에 아빠라고 적는다.
파노라마_테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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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4주 최신 개봉영화(모가디슈, 정글 크루즈, 방법 재차의, 배틀 크랙, 갈매기 )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7월 2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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