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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nium2025-08-26 01:33:33

괴팍함 속에 숨겨진 결핍과 고독

영화 < 내 말 좀 들어줘 > 리뷰

*스포일러 포함

 

 

 

 

영국의 리얼리즘 영화를 대표하는 마이크 리 감독의 신작 < 내 말 좀 들어줘 >는 신경질적인 주인공 팬지를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관계 단절의 이면을 가감없이 묘사한다.

영화의 처음부터 팬지는 예민하고 까칠한 태도를 보인다. 그의 아들 모지스와 남편 커들리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동생 샨텔에게도 퉁명스럽기만 하다. 괴팍한 성격으로 인해 마트나 가구점, 치과에서도 항상 언쟁을 벌이는 팬지의 공격적인 모습은 서비스직을 해본 사람이라면 PTSD가 올 정도로 현실감이 있다.  너무 리얼하여 블랙코미디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팬지의 다툼 장면을 보다보면, 팬지라는 인물이 왜 그러는 건지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팬지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공격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우려와는 달리 남편 커들리와 아들 모지스는 팬지에게 무관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과묵하며, 가족 간에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다.

동생 샨텔의 가족은 팬지네 가족과는 정반대일 정도로 다르다. 서로 있었던 일들의 대부분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농담도 스스럼 없이 주고 받는 화목한 가정이다. 이러한 차이는, 아마도 팬지와 샨텔의 성격적인 차이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극의 중반부터 팬지가 그토록 엄마의 묘지에 방문하지 않으려던 이유가 드러나는데, 팬지는 어릴 적 부터 엄마가 샨텔을 편애했었고, 자신에게는 별로 다정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음을 밝힌다. 이러한 결핍에서부터 팬지의 불안과 공격성이 시작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커들리와의 결혼도 혼자 남기 싫어서 선택했던 결정이었음이 드러나는데, 이처럼 팬지는 사람들과 진심어린 감정 교류보다는 결핍과 고립의 불안감으로 인해 관계를 시작했음이 밝혀진다. 

 

 

 

 

 

정서적 애착이 없이 서로 감정 교류를 하지 않는 팬지네 가족의 모습은 실제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가정 모습이기도 하다. 이후 팬지는 어머니의 날을 맞아 모지스가 사온 꽃을 보고 격한 웃음과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이 장면에서 마리안 장 밥티스트의 세심한 연기가 시너지를 내며 팬지의 불안정하며 결핍어린 심리가 탁월하게 전달된다.

마이크 리 감독은 이입하기 힘들 정도로 괴팍한 팬지라는 인물을 통해 오히려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정한 심리를 세심하게 표현하여 캐릭터에 대한 공감을 자아낸다. 감정적 교류가 단절된 팬지네 가족은 소통의 부재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효과적으로 비추며 관객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작성자 . Somn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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