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nium2025-08-26 01:33:33
괴팍함 속에 숨겨진 결핍과 고독
영화 < 내 말 좀 들어줘 > 리뷰
*스포일러 포함
영국의 리얼리즘 영화를 대표하는 마이크 리 감독의 신작 < 내 말 좀 들어줘 >는 신경질적인 주인공 팬지를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관계 단절의 이면을 가감없이 묘사한다.
영화의 처음부터 팬지는 예민하고 까칠한 태도를 보인다. 그의 아들 모지스와 남편 커들리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동생 샨텔에게도 퉁명스럽기만 하다. 괴팍한 성격으로 인해 마트나 가구점, 치과에서도 항상 언쟁을 벌이는 팬지의 공격적인 모습은 서비스직을 해본 사람이라면 PTSD가 올 정도로 현실감이 있다. 너무 리얼하여 블랙코미디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팬지의 다툼 장면을 보다보면, 팬지라는 인물이 왜 그러는 건지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팬지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공격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우려와는 달리 남편 커들리와 아들 모지스는 팬지에게 무관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과묵하며, 가족 간에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다.
동생 샨텔의 가족은 팬지네 가족과는 정반대일 정도로 다르다. 서로 있었던 일들의 대부분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농담도 스스럼 없이 주고 받는 화목한 가정이다. 이러한 차이는, 아마도 팬지와 샨텔의 성격적인 차이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극의 중반부터 팬지가 그토록 엄마의 묘지에 방문하지 않으려던 이유가 드러나는데, 팬지는 어릴 적 부터 엄마가 샨텔을 편애했었고, 자신에게는 별로 다정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음을 밝힌다. 이러한 결핍에서부터 팬지의 불안과 공격성이 시작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커들리와의 결혼도 혼자 남기 싫어서 선택했던 결정이었음이 드러나는데, 이처럼 팬지는 사람들과 진심어린 감정 교류보다는 결핍과 고립의 불안감으로 인해 관계를 시작했음이 밝혀진다.
정서적 애착이 없이 서로 감정 교류를 하지 않는 팬지네 가족의 모습은 실제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가정 모습이기도 하다. 이후 팬지는 어머니의 날을 맞아 모지스가 사온 꽃을 보고 격한 웃음과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이 장면에서 마리안 장 밥티스트의 세심한 연기가 시너지를 내며 팬지의 불안정하며 결핍어린 심리가 탁월하게 전달된다.
마이크 리 감독은 이입하기 힘들 정도로 괴팍한 팬지라는 인물을 통해 오히려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정한 심리를 세심하게 표현하여 캐릭터에 대한 공감을 자아낸다. 감정적 교류가 단절된 팬지네 가족은 소통의 부재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효과적으로 비추며 관객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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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과 낭만의 공생
도쿄에서 북쪽으로 150km 가면 오제 국립공원이 있다고 한다. 산에 둘러싸인 습지인데,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나무 널판으로 좁은 길을 만들어 놓았다. 계절이 유독 선명한 곳, 그래서 다채로운 생태계를 목격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겨울이 오면 장설이 인간의 접근을 막는 곳이다. 다시 봄이 오면 관광객들은 꽃이나 새, 작은 동물들을 구경하며 습지를 걸어 오제 깊이 들어가고, 별빛 날리는 밤을 그곳의 산장에서 보낸다.
산장에 필요한 식자재와 짐을 나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봇카라 부른다. 영화 <행복의 속도>는 그 봇카들의 삶을 담은 이야기다. 남들은 여행지로 방문하는, 그들 눈에는 더없이 낭만적으로 보일 공간. 거기 사는 이들의 어깨에 오롯이 내려앉은 현실의 무게. 그러니까 그런 영화일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삶을 생각하게 하는, 내 어깨에 얹힌 것들의 은유로 그 짐을 보게 하는. 고개를 숙이고 팔을 모으고 마치 생각하는 사람처럼, 어쩌면 고행자나 수도승처럼 걸어가는 이들이 고스란히 묻어난 포스터를 보면 더욱 그럴 것 같았다.
그러나 슴슴한 맛을 기대하고 들어선 영화관에서 깊은 감칠맛을 주는 건 역시나 독립 다큐의 묘미다. <행복의 속도>는 더없이 매력적인 인물들의 손으로 삶의 본질을 가리킨다. 삶의 본질, 이렇게나 무거운 단어를 저렇게나 담백하고 담담하게.
70kg가 넘는 짐을 묵묵히 인력으로 나르는 봇카. '미래에 사라질 직업 10'에 그들이 꼽히지 않은 이유는 단지 10위권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마이너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다소 중세적인, 잘 쳐줘도 근대 이후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직업이다. 언제부턴가 육체의 유희는 칭송할지언정 육체의 노동은 경시하다 못해 멸시하기 시작한 현대 사회에서 봇카는 분명 환하게 빛나기보다 초라하게 평가되기 쉬운 직업이다. 심지어 그나마도 겨울이 오면 못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검박한 삶은 아름답다. 영화의 한 축을 이루는 인물이자 경력이 20년도 더 된 베테랑 봇카 이가라시 부부는 오래 전의 풍속화에 가져다 놔도 그렇게 살았을 것 같은 필치로 연신 몸을 움직이고 있다. 그 모습은 자연스럽다 못해 초연하다. 짐을 나르고, 무를 씻고, 콩을 심고, 식탁을 차리고, 아이의 웃음을 제때 바라보며 함께 걷는 것. 인간에게는 자연의 사이클이 필요하다.
삶의 고민은 영화에 담긴 이상으로 이들을 덮쳐 오겠지만, 이들의 대화는 무해하다 못해 말갛다. 백석의 시에 나오는 "흰밥과 가재미와 나"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꽃이 피고 지는 속도를 바라보고, 번데기의 안위를 궁금해하고, 별 하늘을 바라볼 때에는 눈을 꼭 감고 숫자를 세며 눈을 어둠에 적응시키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친다. 일상에 놓치기 너무 쉬운 것들을 이들은 자연스럽게 손에 쥐고 있다. 스스로 모를 수도 있을 만큼 자연스럽게. 오제의 나무 길을 걷는 이들의 삶은, '남들은 다 괜찮아 보이는데 왜 나는 이러고 있지?'라는 질문을 한 번쯤 품어본 모든 이들의 삶과 닮았다.
그 길을 묵묵히 가는 건 어렵다. 현실은 늘 우리를 옥죈다. 그러나 그 길을 가지 않겠다는 선택이 우리를 구원하지는 않는다. 이가라시 부부는 그걸 알고 있는 듯하다. 스스로 안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자연스럽게. 영화는 그 자리를 정확히 포착한다. 고요한 전원생활로 신격화하지도, 팍팍한 일상생활로 거칠게 담지도 않고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두 사람의 초연함을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그가 아들과 나누는 대화는 우격다짐으로 교훈을 주려는 일방적 흐름이 아니라, 두 인격체 사이의 자연스러운 대화였다. 서로 무언가를 빼앗으려 하지 않는, 손을 뻗어 해하려 하지 않는 것. 어쩌면 오제라는 곳 자체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모래를 덮어 습지를 메우고 휘황찬란한 건물을 지어 올리는 대신, 겨울 눈과 바람을 전신으로 막아내느라 조금씩 낡아 가는 산장과 나무 길을 묵묵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다른 한 축, 이시타카 부부의 모습은 그보다 훨씬 현대사회 가까이에 있다. 이시타카는 봇카라는 직업을 조직하고, 현대화하고, 홍보하려고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이가라시처럼 초연하지도 못하고, 술잔을 내밀며 봇카라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들처럼 '속세'에 속하지도 못했다. 아이는 계속 자랄 텐데, 4대 보험이 되는 것도 아닌데...로 시작되는 다양한 걱정의 말을 들으면 얼굴에 먹구름이 낀다. 그러나 자기 나름대로 봇카의 길을 묵묵히 간다. 과거는 잃어버린 것 같고 미래에는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이런 이시타카와 비슷한 길 위에 놓여있는지 모른다. 모두가 이가라시처럼 초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혼자 걷는 길이지만 아주 혼자도 아니다. 눈이 덮여 길이 보이지 않는 어느 날, 습지로 들어간 후배가 돌아올 길뿐 아니라 발 디딜 때의 마음까지 헤아려 삽으로 눈을 툭툭 치워 길을 밝혀주는 선배. 앞날을 다 알 수 없지만 그런 선배도 있으니, 따라 하면서 나아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당당하게 반문하는 후배. '아빠가 쉬는 자리'라고 하니 '아빠와 아저씨들이 쉬는 자리'라고 힘주어 정정하는 아이. 누구나 1인분의 짐을 지고 각자의 길을 갈 뿐이지만, 꽃과 바람과 새만 있는 길은 아닌 것이다.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각자의 방법대로 그 직업 본연의 역할에 애정을 갖고, 그 삶을 계속 살아가기를 담담하게 선택하고 있다는 점만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쩌면 이건 어떤 영화감독과 어떤 사무직 직장인의 공통점일 수도, 어떤 중학생과 어떤 뮤지션의 공통점일 수도, 어떤 운동선수와 어떤 주부의 공통점일 수도 있다. 요컨대 각자 다른 색깔과 채도로 빛나는 우리는, 남들의 삶에서 보이는 어떤 면을 안정이라 믿으며 이따금 부러워하는 우리는, 괴롭게 발버둥 치는 것으로 우리의 평형을 유지한다. 남들은 그 모습을 안정이라 부른다.
예전에 <고양이 집사>라는 영화를 보다가 불현듯 생각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고양이 나만 없어'를 외치며 고양이를 예뻐하는 분위기가 된 것 같지만, 자기 옆의 한 마리 고양이를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이들에게는 벼랑 끝에 매달린 기분일 수 있다. 밖에서 보기엔 '남들 다 고양이 좋아하니까...' 싶어 손이 넉넉해 보이지만, 언제나 돕는 손, 쌓는 손, 지키는 손은 가까이에서 보면 다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 사실에 충격받지 않고 그냥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 결국 한 마리 고양이를 지키는 일은 그의 몫이 된다.
그때 나는 좀 울컥했다. '고양이' 정도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할 만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오만하게 또 쉽게도 하던 즈음이었다. 나는 '고양이'가 아닌 그 어떤 것, 굳이 따지자면 이구아나의 발톱이나 타란툴라 거미의 털끝 정도라고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저렇게 온 세상이 좋아하는 곳에서는 풍요롭겠지. 따스하겠지. 남의 세상은 다 그래 보일 수 있다는 걸, 그러나 아무리 풍요로워 보이는 곳에서도 결정적인 순간까지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걸 몰랐다.
모든 일이 그러하다면, 봇카나 독립 다큐멘터리처럼 소위 '마이너'하다고 분류되는 직업의 세계를 걸어가는 이들의 마음도 그러할 것이다. 소설 <GV빌런 고태경>의 한 구절처럼, 정말 "재개발되고 있는 풍경들 사이에서 내가 멸종된 공룡처럼" 느껴지고, "유튜브 브이로그 시대에 두 계절 동안 돈 한 푼 벌 수 없는 독립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일을 다 빼앗아갈 것 같은 기계의 굉음 앞에서도 "우리는 우리 일을 하러 가자."라고 말하며 다시 발걸음을 떼는 사람의 마음.
그 끝에 대단한 꿈은 없을지 모른다. 사당오락 칠전팔기 대기만성 인간승리 이런 거 말고. 그렇게 버틴 끝에 끝끝내 뭔가 거대한 걸 이루어 전설처럼 회자될 사람들의 이야기 말고. 이 길 끝에 아무 후일담 남기지 못한다 해도 여전히 오늘 이 길을 걸어갈 보통의 우리들의 방향. 낭만의 바다에서 서핑을 할 수도, 일상의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주행할 수도 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우리들의 속력. 소소한 일상에서 낭만을 찾고, 그 작은 낭만에서 힘을 얻어 일상을 걸어가는 우리들의 속도. 어쩌면 그것을 행복의 속도라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 속도로 걷다 보면 일상과 낭만은 등 맞댄 반대말이 아니라 손 잡고 발맞추어 공생하는 짝임을 깨닫게 된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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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이 영화의 주제는, 음식 말고 영향력 그리고 뮤즈
줄리는 줄리아를 통해 영감을 얻는다. 예민하고 불만 가득한 생활 속에서 줄리아의 자취를 따라 도전을 이어간다. 자신의 손을 붙잡고 이끌어주는 느낌에, 더욱 줄리아를 사랑하게 되고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은 현실의 줄리아가 아니다.
줄리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이상적인 줄리아"이다.언제나 드러내지는 않았던 사실 : 저는 박은태 배우 좋아했어요.
뮤지컬을 좋아한다고 하면, 늘 따라붙던 질문이 있다. 관객이건 전문가건 '뮤지컬을 좋아한다/직업으로 삼고 싶다'라고 하면 물었다.
"그래, 그럼 어떤 배우 가장 좋아해?"
그러면, 잠깐 대화의 흐름을 멈췄다. 내겐 좋아한다거나, 애정 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배우가 딱 한 명 있었다. 꼭 나보다 먼저 태어난, 내 분신을 보는 것 같았다.
단순히 누가 멋져, 누가 예뻐, 어떤 콘텐츠가 좋았어라는 수식어로 설명될 대답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들어줄 만한 사람인가'를 생각해보고 대답했다. 주로 가볍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없어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 박은태 배우요!라는 대답을 들었다면, 당신은 나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어줬던 사람! 고마워요 :D정해진 걸 재깍재깍 하던 중고교 범생이 시절을 지나, 사관학교로의 진로 고민을 하다가 방향을 틀어 경영학과에 갔고, 뮤지컬을 했다. 여기까지가 정말 닮았다. 그래서 신기했고, 응원했고, 잘 되고 행복하기를 바랐다. 내가 다른 성별로 그즈음 태어났으면 저런 행보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공연을 보고, 응원의 글을 남기곤 했다.
어느 정도로 좋아했느냐면, 동급생들이 한창 아이돌 그룹의 노래나 J팝을 듣고 부를 때, 나는 이 배우의 출연작 넘버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정확히는, 이 배우로 시작해 공연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가씨의 명대사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내가_받은_긍정적인_영향. zip
예민하고 나도 내가 어디로 튈지 모르겠던 사춘기에, 다른 엄한 데 흥미 갖지 않고 뮤지컬 넘버를 흥얼거리며 프레스콜 영상을 뒤적이게 된 건 확실히 구원. 하지만 그 후로 얼마나 공연을 보고, 돈 안 되는 공연활동을 했던가! 물론, 내 선택으로 경험한 일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고3 수험생 때는 박은태 배우(이하, 박 배우)의 모교인 대학교의 동일학과 입시 시험을 보러 갔는데,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이동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논술 시험 시작 5분 후에 도착했으면서도 긴장이 아니라 설렘으로 들떠있었다. "여기가 그 건물이구나, 여기 어디에 앉아 어떤 수업을 들었던 걸까?" 붙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물론, 해당 시험은 시원하게 떨어졌다.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소위 "성지순례를 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도 어이없는 발상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이었다.
내가 힘들 때, 앞서 간 어떤 사람의 일화를 보고 들으며 '그 사람도 이랬대, 그런데 결과를 냈대.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하는 식으로 영감을, 에너지를 얻는 것은 든든하다. 앞서 간 사람의 발길을 따라간다는 상상을 하면,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과연 공연 근처에라도 갈 수는 있을까 싶었지만, 진짜 전문가들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인터뷰로만 접하던 때보다 좀 더 생생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공연을 업으로 삼는 전문가들을 중/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많이 만났는데, 박 배우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성실하다, 겸손하다, 언제나 노력한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프로 정신이 투철하다, 늘 성장하려 한다 등. 응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애정을 받으며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리는 이미지와 실제 본인은 다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만난 적 없는 박 배우에 대한 이미지는 공연과 인터뷰 등을 조합해낸 나의 생각일 뿐이다. 그 점도 늘 인지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줄리는, 상상 속 줄리아의 손을 놓고 발자취 없는 길을 나설 때 이렇게 말한다.
"사랑해요, 줄리아."
나는 이제 뮤지컬을 예전만큼 자주, 많이 즐기지 않는다. 플레이리스트에 순도 100%로 뮤지컬 넘버만 채우던 예전에 비해 한 달에 뮤지컬 넘버는 몇 곡을 들을까 말까 한다. 그리고, 박 배우의 소식을 찾아보지도 않는다.
언제 내 이상적인 뮤즈의 손을 놓고 나만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 마음속으로라도 영화 속 줄리처럼 인사를 건넸던 것 같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행복하세요 라고 말이다.힘들었지만, 소중한 내 과거에 날 이끌어줘서 감사합니다.
본인은 전혀 모르시겠지만ㅋㅋㅋㅋ
그게 '진짜' 당신이 아닐지라도,
내게 열심과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꿈을 꾸는 희망의 불을 붙여주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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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小雪)부터 대설(大雪)까지 영화롭게
소설(小雪) 과 동시에 찾아온 강추위에 벌써 겨울이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요즘! 어느덧 올해가 한 달여 남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데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2021년이 가고 새로운 해를 맞는다는 생각에 아쉬우면서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왔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합니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을 수도, 마냥 아쉬워할 수도 없으니 남은 2021년을 행복하게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길거리에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우리의 마음을 크리스마스 바이브로 가득 채워줄 '영화'가 있다면 다가오는 겨울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씨네픽이 겨울에 의한, 겨울을 위한 겨울의 영화들을 준비해보았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겨울 바이브 가득 담은 영화들을 함께 만나볼까요?
잇츠 CINE PICK!!
<러브레터>(Love Letter), 1995
드라마, 멜로/로맨스 | 일본 | 117분
감독 : 이와이 슌지 | 출연 : 나카야마 미호, 토요카와 에츠시
⭐️ 9.39 (네이버 관람객)
오늘에서야 다시 꺼내봅니다. 당신이 머문 곳에서…
“가슴이 아파 이 편지는 차마 보내지 못하겠어요.”
첫사랑을 잊지 못했던 그녀, 와타나베 히로코
“이 추억들은 모두 당신 거예요.”
첫사랑을 알지 못했던 그녀, 후지이 이츠키
씨네 pick : "아직까지 <러브레터>를 뛰어넘는 일본 멜로 영화를 보지 못했다" (맥스무비 정유미 기자) 라는 평을 입증하듯, <러브레터>는 국내에서 무려 5번이나 재개봉된 명작입니다. '겨울' 하면 떠오르는 작품이기도 하며 절대 잊혀지지 않을 명대사를 남기기도 한 영화는 포스터만으로도 겨울의 설렘이 느껴지는데요. 여러분은 잘 지내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어떤 하루에 <러브레터> 속 오타루의 겨울이 따스한 온기를 채워주길 바랍니다.
<윤희에게>(Moonlit Winter), 2019
멜로/로맨스 | 한국 | 105분
감독 : 임대형 | 출연 : 김희애, 김소혜, 성유빈, 나카무리 유코
⭐️ 9.23 (네이버 관람객)
다시 날 가슴 뛰게 만든 그 말
"윤희에게, 잘 지내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윤희' 앞으로 도착한 한 통의 편지.
편지를 몰래 읽어본 딸 '새봄'은 편지의 내용을 숨긴 채
발신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여행을 제안하고,
'윤희'는 비밀스러웠던 첫사랑의 기억으로 가슴이 뛴다.
'새봄'과 함께 여행을 떠난 ‘윤희’는
끝없이 눈이 내리는 그곳에서
첫사랑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는데…
씨네 pick : 얼마전 개봉 2주년을 맞은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는 그 어떤 영화보다 잔잔하면서도 여운이 깊은 영화인데요. 겨울의 오타루와 '편지' 그리고 필름 카메라까지 <러브레터>와 비슷한 소재를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감정을 그려내는 <윤희에게>는 겨울을 담아낸 시 한 편을 본 듯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꿈을 꾸셨나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지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는 요즘, <윤희에게>를 감상하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멜로/로맨스, 드라마, SF | 미국 | 107분
감독 : 미셸 공드리 | 출연 :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 9.26 (네이버 관람객)
사랑은 그렇게 다시 기억된다..
조엘은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라쿠나사를 찾아가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기억이 사라져 갈수록 조엘은 사랑이 시작되던 순간, 행복한 기억들, 가슴 속에 각인된 추억들을 지우기 싫어지기만 하는데... 당신을 지우면 이 아픔도 사라질까요? 사랑은 그렇게 다시 기억된다.
씨네 pick : 이 영화 추천이 식상하다고 느껴질 수는 있어도, 영화가 식상하다고 느낄 일은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싶은 명작 <이터널 선샤인> 입니다. 여름만 되면 공포 영화가 개봉하는 것처럼, 겨울엔 특히 '사랑'과 관련된 영화가 많은 것 같은데요. 겨울 감성이 사랑이라는 감정과 맞닿아 있어서일까요? 겨울이라는 계절은 절절한 사랑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 같습니다. 요즘 여러분의 감정은 어떤 상태인가요? 우리 과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2003
멜로/로맨스, 드라마, 코미디 | 영국, 미국 | 130분
감독 : 리차드 커티스 | 출연 : 휴 그랜트, 리암 니슨, 콜린 퍼스, 엠마 톰슨, 키이라 나이틀리, 빌 나이
⭐️ 9.24 (네이버 관람객)
크리스마스에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로맨틱한 고백
사랑에 상처받은 당신을 위해,
사랑하지만 말하지 못했던 당신을 위해,
사랑에 확신하지 못했던 당신을 위해,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선물이 찾아옵니다.
씨네 pick : <러브 액츄얼리> 라는 제목만 들어도,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의 전주가 자동으로 재생되는 마법! 음악뿐 아니라, 스케치북 고백, 영국 명배우들의 열연 등 <러브 액츄얼리>는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정말 많은 영화인데요. 위 영화들이 말그대로 '겨울 영화'라면 <러브 액츄얼리>는 보다 크리스마스 영화에 가깝습니다. 선물상자 같은 포스터처럼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는 크리스마스에 봐야하는 정석 같은 영화이기도 하죠. "To me, this film is PERFECT"
<미져리>(Misery), 1990
스릴러, 공포, 드라마 | 미국 | 104분
감독 : 로브 라이너 | 출연 : 제임스 칸, 케시 베이츠
⭐️ 9.03 (네이버 네티즌)
'미저리'란 이름의 순애보적 여인상을 등장시킨 대중 소설 시리즈로 여러해 동안 인기를 누려온 소설가 폴 셸던(제임스 칸)은 연작 속의 여주인공이 죽는 마지막 완결편을 끝으로 시리즈를 마감하고, 오랫 동안 쓰고자 했던 진지한 작품 완결 후 차를 몰아 뉴욕을 출발한 폴은 산 길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휘몰아쳐 온 눈보라를 만나 길 밖 벼랑으로 핸들을 꺾고 만다. 심한 부상으로 의식 불명이 된 폴을 때마침 구해내는 수수께끼의 인물 애니 윌킨스(캐시 배이츠)는 미저리 시리즈의 애독자로 폴의 재능을 동경해 온 간호사 출신의 여자다. 애니의 집으로 옮겨져 그녀의 헌신적인 간호로 의식을 회복하는 폴. 그러나 그의 몸은 양다리가 참혹하게 부러지고 어깨마저 심하게 다친 처참한 상태다. 애니는 눈보라로 길이 막혀 그를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으며 전화마저 불통이어서 외부에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눈이 녹고 길이 뚫려도 애니는 폴을 병원에 보내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마을에 나가 미저리 시리즈의 최신판을 사다 읽은 애니는 마지막에 미저리가 죽는다는 걸 알고 폴에게 분노의 광기를 발산하는데...
씨네 pick : 겨울 로맨스 영화에 질린 당신을 위한 추천작! 진눈깨비도 아니고 폭설을 볼 수 있는 진정한 겨울 영화 <미저리>는 작년 보기 힘들었던 눈을 가득 볼 수 있는 영화인데요. 사실 '눈'은 로맨스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지면, 스릴러의 단골 소재이기도 합니다. 눈보라 치는 날, 밖에 나가면 큰일 나는 이유! 이 영화에 다 있습니다. 눈 오는 날엔 꼭 집에 있기로 해요.
여러분은 올해 첫눈을 보셨나요? 아직 못 보셨다고요?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엔 첫눈이 아니니까요~
아직 보지 못한 첫눈을 기다리며, 씨네픽 추천 겨울 영화와 함께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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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멈출 수 없는 투쟁, 실패라 말할 수 없기에 더욱 숭고했다.
시놉시스
2024년, 수배자 신분이었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기리시마 사토시는 병원에서 자신의 이름을 남긴 뒤 사망했다. <도주>는 일본을 충격에 빠뜨린 이 이야기를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아다치 마사오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병치시키면서 기리시마의 번민과 투지를 묘사한다.
영화정보
아다치 마사오 ADACHI Masao
Japan
2025
114min
DCP
Color
Fiction
12세 이상 관람가
International Premiere
영화리뷰
아다치 마사오 감독이 연출한 영화 <도주>는 기리시마 사토시의 이야기를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기리시마 사토시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소속의 테러리스트이자 지명수배자였다. 그는 50년간 도주하여 생을 마감하기 전 병원에서 자신의 이름을 남긴 뒤 사망했다. 실제 이야기를 각색한 만큼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도주를 선택한 삶의 무게, 결정의 대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투쟁을 위한 도주가 지금 바로 시작된다. 위 영화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스 섹션에서 상영된다.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은 과거 일본이 한국, 중국, 대만을 포함한 여러 동아시아 국가를 식민지화하고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그를 도왔던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 오리엔탈메탈사, 한국산업경제연구소를 테러한 조직이다. 이 조직은 크게 늑대부대, 대지의 어금니 부대, 전갈 부대로 나뉘어 각자의 임무를 맡았다. 비밀스럽고 신속하게 ‘테러’ 후 범죄를 도운 이들을 처단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인해 앞으로의 활동도 쉽지 않아보였다. 명백한 실패라고 생각했기에 작전을 종료하려 했으나 반성 후 다시 투쟁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이들은 ’테러‘를 감행한다.
이들도 ’실패’라는 것을 인지했듯이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이들의 행보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들에겐 투쟁이었지만 그 내막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테러에 불과한 행위라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각 부대의 리더들이 체포되었고 남은 조직원들도 체포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 기리시마는 ’도주‘를 결심하지만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해야 했던 탓에 막막하기만 하다. 친하게 지냈던 동기와 헤어지며 매년 같은 달, 같은 날, 같은 시간 그 자리에서 다시 보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세달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도 선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체포된 소식을 듣게 된 기리시마는 더욱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과연 기리시마는 어떤 결말을 맞게될까.
기리시마는 ‘도주’를 곧 ’투쟁‘으로 생각했다. 체포된 동지들을 위해 잡히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오로지 숨고 도망치는 것에 열중했다. 모든 것을 경계하고 의심의 여지가 있을 경우에는 또 다른 곳에 가는 등 치밀하게 행동했다. 그는 번뇌가 찾아올때마다 도주하는 것이 투쟁이며, 잡히지 않는 것이 곧 투쟁을 지속하는 것이라 되뇌었다. 하지만 투쟁에는 끝이 없었고 고독을 홀로 삼켜야했다. 그리고 그는 인생의 끝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결국 그는 투쟁의 이름으로 도주했고, 그 끝에서 자신의 존재를 되찾는다. 외롭고 고된 길이었지만, 동지들의 꿈과 자신의 이름을 지키기 위한 ‘도주‘였던 것이다.
혁명을 위해 그리고 함께한 동지들을 위해 자신의 욕망은 잠시 접어두고 오로지 투쟁을 위해 도주했다. 문장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 같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사투였다. 투쟁은 짧고 도주는 길었다. 주인공은 어떻게 신념 하나만으로 혁명의 길을 계속해서 가게 되었을까? 그는 테러행위로 인해 죽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비난 받기도 하고, 과거의 자신에게 몰아부쳐지며 끊임없이 자신의 번뇌와 싸우게 된다. 자신이 바라왔던 진정한 투쟁과는 거리가 먼 ‘도주’의 삶으로 인해 ‘투쟁’의 의미가 희미해져갈때마다 자신을 꾸짖는다. 그만큼 엄격하고 반성하는 그 태도야말로 숭고한 정신을 보여준다.
영화 <도주>는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새겨주는 작품이었다. 일본의 제국주의, 그후에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를 꾸짖을 ’갈’한다. 과거 독일 나치의 전쟁범죄로 인해 지금까지 반성의 태도를 보이는 반면,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고국이 저지른 잘못을 외면하지 않고, 그 역사에 마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본에 의해 피해국이었다고만 생각했던 우리의 시선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만행을 마주하며 다시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과연 제대로 반성하고 있었는가. 상대적으로 힘의 차이가 나는 상대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든다.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시점으로 이동하는 영화의 시선에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만큼 흥미로움을 유발한다. 시간의 틈 사이로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건 좀 엉뚱한 상상이지만 영화 속에서 미래의 나, 과거의 나를 만난 것처럼 나도 나를 그렇게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불안을 걷어내주고 확신을 심어주는 존재를 만나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가장 만나고 싶은 존재는 다름아닌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나’이기 때문이다.
상영시간표
2025.05.01
20:30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2025.05.02
18:00
CGV 전주고사 5관
2025.05.03
13:30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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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린 가족이니까 - 영화 <비밀일 수밖에>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초청받았습니다.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족에겐 나누지 않는 비밀들
가족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입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 심지어는 탄생과 죽음까지 함께 나누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가족에게 모든 것을 나누고 있을까요?
<비밀일 수밖에>는 춘천에 사는 한 가족으로 시작됩니다. 성적 문제로 아들과 다투던 아버지는 홧김에 집을 나섰다 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난 후, 엄마 정하(장영남 분)은 암 치료를 앞두고 휴직을 준비합니다. 그때 캐나다에서 살던 아들 진우(류경수 분)이 여자친구 제니(스테파니 리 분)을 데리고 돌아옵니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여자친구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줄 알았던 아들이 ‘유튜버’가 되겠다고 선언해 정하를 놀라게 합니다.
뒤이어 제니의 가족들도 정하의 집에 합류하는데, 제니의 아버지는 딸이 의사라는 것을 이유로 부조리한 것을 요구합니다.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제니의 아버지는 딸 제니와도 자주 마찰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아무리 다투고 갈등을 빚어도, 가족들은 매일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습니다. 각자가 가진 문제, 비밀이 달라도 매일 같이 밥을 나눠먹는 모습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가족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비밀이어도 괜찮아, 가족이라는 사이
매일 같이 식탁에 앉는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존재합니다.
정하는 아들에게 병을 숨기고, 자신의 동성 연인 지선(옥지영)과 동거를 하면서도 연인의 존재를 비밀로 합니다. 하지만 정하는 지선과의 관계가 들통나며 근무하던 학교에서 전근을 요구받습니다.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근 요구에 따라야 하지만, 정하는 이에 순응하지 않고 버티기를 결정합니다. 마음 속에 묻어두었던 비밀을 마냥 숨기지 않겠다고 결심한 순간입니다.
영화 <비밀일 수밖에>는 가족들이 가진 비밀과 아픔을 완벽하게 해결하지 않습니다. 가족들은 여전히 서로에게 비밀을 숨기고, 주고 받은 아픔을 어영부영 덮습니다. 그러고도 매일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습니다. 서로 비밀을 가지고 있어도, 완벽한 정답을 찾지 않아도 서로를 마주보고 하루를 나누는 것, 그것이 가족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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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위도우, 가족의 의미를 깨닫다
진정한 가족은 그 각각의 관계들을 만들어가면서 생성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태어나면서 자신의 가족이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오랜 시간 동안 현재까지 그렇게 생각해 왔다. 실제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생물학적 부모와 강하게 이어져 있다. 부모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주는 우유를 마시고 그들의 품에서 잠이 든다. 아이가 태어나 바로 말을 할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아이는 강하게 연결되어, 그 관계는 꽤 오랜 시간 지속된다. 그렇게 지속되는 관계는 쉽게 끊어질 수 없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도 그 관계는 삶의 많은 순간에 영향을 준다. 그들은 태어나서 바로 이어지는 관계지만 그들의 관계가 오랜 시간 이어질 수 있는 것은 그들 각자의 대화와 노력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 원래의 생물학적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이 있다. 부모에게 버림받았거나 사고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성인이 되거나, 기회가 있다면 제3자에게 입양을 가기도 한다. 고아원에서 자라든, 아니면 입양을 가서 생활을 하든, 그 모든 관계는 결국 다시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관계다. 그들을 신뢰해야 할지, 그들에게 여러 부분에서 의지해도 될지를 결정하는 데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 번 관계가 끊긴 경험을 한 아이들은 그 마음을 다시 열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 만나게 되는 관계들에서도 그런 경향은 그대로 반영된다. 만약 오랜 시간 후 그 관계가 이어졌다면 그들 또한 자신만의 가족을 만들어 낸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연결된 관계가 아닐지라도 그들 사이에서는 신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렇게 강한 신뢰로 이어진 관계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최근에는 그런 생각이 확대되면서 가족의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새로운 의미의 가족 이야기를 담은 영화 <블랙 위도우>
영화 <블랙 위도우>의 이야기도 최근 확대된 의미를 가지는 가족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마블 유니버스 영화에서 블랙 위도우로 등장했던 나타샤(스칼렛 요한슨)는 그동안 주변부의 인물이나 관계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나타샤는 초기에 굉장히 차가운 스파이의 이미지로 등장했고 다양한 모습의 역할로 변장할 수 있고 뛰어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였다. 그는 늘 혼자였고, 조금은 외로워 보였다. 그나마 어벤저스에 속한 다른 영웅들과 신뢰를 형성하여 세상을 구하는 여러 임무들을 하기 바빴다.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와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사이 시점에서 전개되는 <블랙 위도우>는 나타샤 캐릭터가 등장하는 마지막 영화이자 그의 과거 삶에서 가장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과 관련된 이야기다.
영화 초반에는 나타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보인다. 여동생 엘레나(플로렌스 퓨)와 엄마 멜리나(레이첼 와이즈), 아빠 레드 가디언(데이비드 하버)이 평범한 가족의 모습으로 오하이오에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나타샤의 조금은 무표정한 얼굴을 제외하고는 그저 행복해 보이는 한 가족의 모습이다. 사실은 첩보 활동을 위한 위장 가족이었던 이들은 아주 어렸던 엘레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그것이 단순한 임무였고 언젠가 끝날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가족의 역할에서 행복해 보인다. 실제로 그 첩보 활동의 마지막 날에 엄마 멜리나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싫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 3년이라는 시간은 나타샤와 옐레나가 한참 성장하던 시기였다. 실제로 생물학적 부모의 존재와는 거리가 있었던 그들에게 그 시기는 입양 후에 만들어진 가족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고 부모 역할을 하는 두 사람도 아이들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들 각자가 느끼기에 그 시간은 좋은 시간이었다. 영화는 오하이오의 첩보 활동이 끝나는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게 되는데, 영화 초반에 보여지는 나타샤와 옐레나의 유년기 시절은 그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가지고 있는 자신들의 기질과 관계를 만들어낸 시기다. 또한 그 시기 이 가족의 구성원들 사이에 어떤 신뢰가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깨지는 시점 또한 첩보 활동이 끝나는 시기와 동일하다. 가짜 가족이 깨지는 그 사건을 보고 나면, 그동안 마블 시리즈에 등장한 나타샤가 왜 그렇게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고 늘 혼자 힘든 짊을 지고 가려고 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깨져버린 어벤저스, 신뢰하지 못하는 가족
나타샤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기는 어벤저스 멤버들 간의 사이가 좋지 못할 때이고, 정부의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던 시기다. 성인이 된 이후 나타샤가 가장 크게 마음을 열고 신뢰를 했던 사람들이 바로 어벤저스 멤버들일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깨진 상황에 처한 나타샤의 표정은 시종일관 어둡고 외로워 보인다. 또한 가장 신뢰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추적하고 배신했다는 생각에 자신의 주변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 시기에 그가 다시 만나게 되는 동생 옐레나는 이미 신뢰가 깨져버린 과거 가족의 일원이다. 이 두 인물이 영화 속에서 처음 만나서 가장 먼저 하는 건 서로에 대한 경계와 적대적인 전투다. 이 장면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와 불신 그리고 상대에 대한 원망이 담겨있다. 칼을 뽑아 휘두르고 목을 조르며 한참을 다투던 그들은 이내 그 잔인한 행위를 멈추고 대화를 시작한다.
나타샤는 자신의 생물학적인 부모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3년간 보냈던 가짜 부모인 멜리나와 레드 가디언에 대해서는 기억한다. 그 3년간의 좋은 기억 때문인지 그들이 자신들을 이용하고 버렸다는 배신감에 가득 차 있다. 반면 옐레나는 부모를 비롯해 나타샤까지 미워한다. 옐레나에게 나타샤는 그저 자신을 버리고 간 언니일 뿐이다. 영화는 네 가족의 관계가 변화되는 과정을 공들여 묘사한다. 그들이 어색하게 처음 대화를 나누는 과정은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가족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나타샤와 옐리나가 다시 만났을 때 상대를 경계하며 원망을 담았던 것처럼 레드 가디언과 멜리나를 차례로 만나는 장면에서도 이들의 얼굴에는 경계심과 원망이 담겼다. 또 한편으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따뜻한 기억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영화 후반부 엄마와 아빠, 나타샤와 옐레나가 다시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은 영화가 감정적으로 공들여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들은 모두 마음속에 과거에 대한 응어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차갑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표출되는데 그들이 가짜 가족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가족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비록 나타샤는 시종일관 거리를 두고 차갑게 대하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가진 진심을 느끼는 여러 짧은 순간들에 시종일관 흔들리는 모습이 화면에 비친다. 시종일관 터프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옐레나도 마찬가지다. 그 식탁에 앉은 이후 옐레나는 말이 없어지고 심지어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 그렇게 오랜만에 한 자리에 앉게 된 그들의 머릿속에는 가짜 가족생활을 했던 3년의 따뜻한 기억이 천천히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 장면은 영화에서 던지고자 하는 영화의 주제를 명징하게 드러낸 부분이고, 그런 의미에서 가족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아마도 그 자리에서 그들은 진정으로 서로를 위하는 가족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는지 모른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 나타샤
영화에는 레드룸이라는 집단이 등장한다. 어린 소녀들을 납치하거나 고아인 아이들을 데려와 스파이로 만들 수 있는 아이들을 추려내고 그들의 자궁과 난소를 드러내고 훈련시킨다. 그리고 정신을 조정해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하게 만든다. 그들을 구원하려 하는 건 나타샤와 옐레나고 그들 역시 레드룸의 피해자다. 즉 이미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다른 피해자들을 타인의 추악한 욕망 속에서 구하는 이야기가 담겼다. 나타샤와 옐레나에게 그들은 일종의 유사 자매, 즉 가족의 일원으로 볼 수도 있다.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위도우들은 나타샤의 손에 의해 해방되는데 결국 나타샤가 가족의 의미를 깨닫고 넓은 의미에서 가족이라고 볼 수 있는 위도우들을 해방함으로써 그 모든 사람들에게 가족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블랙 위도우>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 있으며 특히 가족과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나타샤가 다시 그 믿음을 되살리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간의 마블 영화들을 보아왔던 관객들은 이미 나타샤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그가 가진 과거를 궁금해하게 되는데 그의 과거까지 다 보고 난 관객들은 나타샤의 마지막 모습이 좀 더 뭉클하게 다가올 것이다. 나타샤에겐 과거의 가족도 유사 가족이고 어벤저스 멤버들도 일종의 가족이다. 나타샤는 과거의 가족을 다시 만나며 나타샤는 그 유사 가족이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무언가 답을 찾게 된 것 같다. 가족이라는 의미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 현대인만큼 이 영화에서 나타샤의 마지막 선택은 그가 결국 그 유사 가족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로 선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그것이 바로 현재의 사회 흐름이라는 것을 영화가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부다페스트 장갑차 추격신이나 높은 고공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은 마블 영화답게 박진감 넘치게 구성되어 있다. 태스크 마스터와 나타샤가 벌이는 격투 액션과 옐레나가 보여주는 격투 액션은 사실감 있게 담겨있어 긴장감을 높인다. 그래서 영화 <본 시리즈>나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아쉬운 점은 나타샤가 잘하는 타격 액션이 많이 활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태스크 마스터의 특성과 나타샤나 직접 격투하는 장면의 비중이 적고, 그 외에 나타샤가 보여주는 격투 액션이 많이 없어 아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액션 장면은 극장에서 볼만한 큰 스케일을 보여준다.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의 멋진 퇴장
마지막으로 나타샤를 연기한 배우 스칼렛 요한슨은 그 모습 자체가 블랙 위도우가 되었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한 캐릭터로 활약해 온 그의 연기는 향후의 활약이 볼 수 없다는 점을 더욱 아쉽게 만든다. 그가 고공에서 착지할 때 보여주는 포즈는 옐레나에게 항상 놀림당하지만 블랙 위도우의 대표적인 액션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그 포즈를 그대로 따라 하는 옐레나의 모습은 그가 언니 나타샤를 이어 블랙 위도우가 될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직 누가 나타샤를 이어 블랙위도우를 할지 확정된 것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 누가 해당 역할을 이어갈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아찔한 십대>로 2004년 데뷔한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은 <로어>, <베를린 신드롬> 같은 영화를 찍어왔던 감독인데, 이번 <블랙 위도우>를 연출하면서 마블 영화 중 최초로 단독 여성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나타샤와 관련된 유사 가족들로부터 진심을 끌어내는 감정적인 연출도 잘 들어가 있으며, 액션 연출도 박진감 넘치게 들어가 있어 향후 다른 마블 영화의 연출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나타샤의 마지막 모습을 아주 멋지게 마무리했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만족할 만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블랙 위도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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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12월 15일 개봉한 작품
‘지옥의 화원’의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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