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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지2025-07-31 11:06:54

더는 참지 않기로 한 여자들

<발코니의 여자들>

 

 

 

40도가 넘는 프랑스 마르세유의 폭염은 정말로 이 여자들을 미치게 만들었나? 현기증 나는 한낮,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남편을 삽으로 내리친다. 폭염이라는 외부 조건은 분노의 기폭제로 작용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그동안 아내가 너무 오랫동안 참기만 했다는 반증 아닐까. 숨이 턱턱 막히고 불쾌지수가 극에 달해야만 이 여자는 겨우 첫 반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너무 오랫동안 참아줬고, 이제 더는 참지 않기로 한 여자들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소설가 지망생 니콜, 캠 걸 루비, 무명 배우 엘리즈가 발코니 건너편에 사는 남자의 집에 초대받은 후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시작된다. 이는 마르세유의 폭염과 중첩되면서 세 여자를 궁지로 몰아넣는데, 그로 인해 세 여자를 둘러싼 억압의 실체가 하나둘 선명하게 드러난다.

 

 

니콜의 눈앞에 나타난 수많은 남성 유령들은 가정 폭력과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지만,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호소한다. 이들은 자신이 가질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것 — 즉 여성의 사랑과 지지, 섹스 — 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폭력이 정당하다고 믿는다.

 

 

미국의 철학자 케이트 만은 저서 <남성 특권>에서 이러한 남성들의 행동을 인셀의 특징으로 정의한다. 인셀은 ‘타인이 자신을 지속적으로, 애정과 존경을 담아 우러러보길 기대하는 남성들이 가진 유해한 특권의식의 결정체’ 이며, ‘여성의 성적, 물질적, 재생산적, 감정적 노동을 그저 남성이라는 이유로 마땅히 받고 누려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남성 개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는 가부장제의 남성 특권에서 기인한다.

 

 

캠 걸 루비가 맞닥뜨리는 것은 언제나 허용하지 않은 선을 넘어버리는 남자들의 폭력과 비난이다. 그들은 루비의 옷차림과 직업을 이유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언뜻 보기에 엘리즈에게 절절 매는 것 같은 남편 폴은 또 어떤가. 그는 엘리즈에게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며 통제하려 들고, 급기야 마르세유까지 찾아와서는 성관계를 요구한다. 그는 섹스를 엘리즈가 당연하게 제공해야 할 의무쯤으로 여긴다. 이 남자들은 맡겨놓은 듯 당연하게 여성의 애정과 헌신을 요구하다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적대적으로 돌변하고, 자신을 피해자의 자리에 위치시킨다. 이들의 행동은 뿌리 깊은 남성 특권 문화 속 여성 혐오와 인셀적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이 유해한 남성 특권의 세계 안에서 더 이상 피해자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 여자들은 무엇을 하는가.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고함을 터뜨리고,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방귀를 참지 않는다. 그리고 셔츠를 풀어헤치고 마르세유의 밤거리를 행진한다. 더위? 사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셔츠를 풀어헤치면 그뿐. 이는 더위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신체 통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간단한 것을 왜 우리는 하지 못하고 살까’ 하는 물음에 이르게 된다.

 

 

 

작성자 . 손민지

출처 . https://brunch.co.kr/@minzyson/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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