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유2025-07-22 19:31:39
<이사>, 떠내보낸다는 것에 대하여
<이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사>는 떠나보내는 것과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렌의 시선으로 담아낸다. 영화에선 소마이 신지 특유의 아이가 어른처럼 행동하고, 어른이 아이처럼 행동하며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해체하는 연출과 인물을 정적으로 두지 않고 표정을 찡그리거나, 갑자기 문워크를 하고, 늑대처럼 울고, 특정 언어를 반복시키는 등 묘한 움직임을 이용한 연출이 잘 담겨있다. 이런 연출들은 <이사> 속에서 렌에게 다가온 부모의 이혼이라는 사건을 마냥 비극으로만 보이게 하지 않도록 하는 힘을 가진다.
렌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 조명의 바로 밑이자 화면의 가운데인 상석에 있다. 또한 양옆의 엄마와 아빠에게 식재료를 자신에게 이야기했으면 사 왔을 거라는 둥, 생선을 잘 발라 먹으라는 둥 핀잔을 준다. 렌은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아빠와 길에서 복싱 놀이를 하며 상황극을 하고, 옷장에 들어가려는 등 아이 같은 모습도 공존한다. 이는 렌에게만 한정된 모습이 아니다. 엄마는 렌과 외식을 나갔다가 술에 취해 돌아와 바닥을 구르거나, 아기자기하게 꾸민 계약서를 렌 앞에 들이밀며 밤새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빠도 본인의 이사 준비는커녕 렌과 같이 상황극을 하며 놀고, 옷장에 같이 들어가려 하기도 한다. 이렇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해체하는 소마이 신지의 연출은 렌을 부모와 아이가 아닌, 대등한 가족의 한 구성원처럼 받아들여지게 만든다. 렌이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 아이처럼 그려지지 않기 때문에 렌의 고민은 결혼이나 이혼을 고민하는 어른들의 고민과 같은 무게를 가진다. 그래서 렌은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고 먼저 결정해 버린 엄마와 아빠에게 화를 낸다.
렌의 혼란과 고민은 영화 속에서 주로 색으로 표현된다. 렌의 반 친구가 렌에게 이혼을 막기 위해 이런 일을 하라고 조언해 주는 장면, 렌의 반 친구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는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알파벳이 파랑, 빨강, 노랑, 초록으로 나타나 있다. 이 장면과 첫 장면을 연결해 엄마와 아빠가 각각 왼쪽, 오른쪽에 있었고 그 가운데에 렌이 위치해 있던 것을 티셔츠에 대입한다면 엄마와 빨강, 아빠와 파랑, 렌과 노랑, 초록이 연결된다. 이렇게 부여된 색은 렌의 혼란스러운 여정에 함께하며 렌의 감정을 보여주고, 성장을 함께한다.
첫 번째로 렌의 의상은 엄마와 아빠의 의상에 비해 변화가 잦고 비교적 차분한 색을 입고 등장하는 부모님과 달리 사용되는 색의 스펙트럼이나 무늬도 넓다. 처음의 쨍한 연두색에서 노랑, 빨강, 과일이 그려진 흰 원피스 등 색이 옅어지기도 하고, 무늬가 생기기도 하며 계속 달라진다. 이혼 소식을 듣고 계속 갈팡질팡하는 렌의 감정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다.
두 번째로는 불과 비이다. 아빠의 이사한 집에서 필요 없는 물건들을 태우고 있는 아빠를 돕던 렌은 가족사진이 타자 빨리 꺼내라며 아빠를 재촉하며 사진에 붙은 불을 끈다. 가족사진을 태우는 불처럼 이혼은 렌에게 가족을 태우는 불과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아빠가 필요없는 물건을 태웠던 것처럼 엄마와 아빠에겐 이미 필요 없는 것들을 태울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렌이 사진에 붙은 불을 두고 볼 수 없었듯 렌에게는 불태울 시간이 필요하다. 과학실 장면에서 이혼한 아이와 어울린 것으로 친구들에게 추궁을 당하던 렌은 알코올램프를 과학실 책상에 떨어뜨린다. 렌은 엄마와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불태워보려 하지만, 선생님이 불을 끄고 렌을 데리고 밖으로 빠져나오며 제대로 불태우지 못한다. 그러던 렌은 부모님과 함께 호수로 여행을 가고, 축제에서 볏짚을 태우는 광경을 뚫어져라 보며 점점 그 불에 다가가려 하지만 축제를 진행하던 사람들에게 위험하다고 제지당한다.
영화에서 비가 오는 장면은 이삿짐이 가득한 캄캄한 방 안에서 의자에 앉아 비오는 바깥을 바라보는 아빠의 뒷모습이 나오는 장면과 잠에서 깬 렌이 비오는 밖을 바라보며 장마가 싫다고 말하는 장면이 첫 번째, 같은 반의 이혼한 친구와 장을 본 후 언덕길에서 짐을 나르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두 번째이다. 푸른 색채로 묘사된 비를 바라보는 아빠의 뒷모습과 비를 맞으며 자신의 아빠가 다른 사람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는 이야기하는 친구의 장면을 볼 때 불이 이혼이라면 비는 그 후의 변화 정도로 연결된다 볼 수 있다. 불처럼 비 또한 렌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나, 렌은 장마가 싫다고 말하고, 친구를 두고 비를 피해 언덕길을 달려 내려간다.
렌의 여정은 부모님과 함께 떠난 호수 여행에서 종착점을 맞는다. 렌은 여행 내내 흰색의 옷을 입는다. 렌은 엄마와 아빠를 떠나 혼자 축제에서 볏짚을 태우는 걸 구경한다. 이때 불은 사진에 붙은 불과 알코올램프의 불보다 훨씬 거대한 불로, 렌의 흰옷을 불의 붉은 빛에 물들게 한다. 볏짚을 태우던 농가를 떠나 렌은 산으로 이동한다. 토리이 등을 거쳐 가며 산을 걷는 렌은 아빠의 색처럼 푸른 색채로 묘사된다. 렌이 계속 이동함에 따라 주변은 점점 초록빛으로 변하고, 렌은 마지막 장소인 물가에 도달한다. 물가에는 배를 태우는 축제를 하고 남은 천과 장식들이 쌓여있다. 이때 천과 장식의 색은 그간 렌이 거쳐왔던 빨강, 파랑, 초록, 흰색이 모두 담겨있다. 렌은 그곳에서 푸른 물 위에 뜬 불타는 배와 흰옷을 입고 물놀이를 하는 부모님과 자신을 본다. 불과 물이 합쳐진 채 뭍에서 멀어지고, 그 길을 엄마와 아빠도 함께 걷자 어디에 가냐고 물으며 불안해하는 자신을 렌은 육지에서 보게 된다. 렌은 물 안의 자신과 엄마, 아빠, 물을 떠다니는 불타는 배에게 모두 축하한다고 반복해 말하며 물로 들어간다. 렌은 비로소 이전까지의 가족을 떠나보내고 이혼을 축하하며 미래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이사>에는 롱테이크가 많이 쓰인다. 특히 마지막의 롱테이크는 영화의 모든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데, 마지막의 롱테이크에서 렌은 빨강, 파랑과 그 둘을 섞은 색인 보라색을 모두 입고 시작한다. 나무를 지나며 그 옷도 벗어 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렌은 어디로 가냐는 물음에 미래로 간다고 답한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혼란은 렌의 보라색 옷처럼 정리된 감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렌은 새 옷을 입고 과거의 기억들에 인사를 건넬 수 있다. 그리고 렌은 다시 나무를 지나며 그 기억도 떠나보내고 중학교 교복을 입은 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렌이 떠나보낸 것들은 렌의 안에서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을 테지만, 밝게 인사했던 렌처럼 슬프게 추억할 필요도, 동시에 계속 떠올려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