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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2 17:12:23

한여름 날의 불꽃놀이 같던 아름다운 우리의 추억과 작별하기

영화 <이사>를 보고

모든 영화는 작별을 가르친다. 극장에서 보내는 두 시간, 우리는 다른 세계를 산다. 그저 타인의 삶을 바라보듯 관조하게 만드는 영화도 있다. 주인공과 나는 본질적으로 타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다른 영화들도 있다. 내가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 그의 삶에 이입하게 웃고 울게 된다. 그러나 극장에서의 시간은 유한하다. 영화가 끝나고 스크린을 비추던 형형색색의 빛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현실로 돌아와야만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한 영화와 작별한다.

 

 

 

 

 

 

영화 <이사>는 이혼을 앞두고 별거 생활 중인 부부와 이들의 재결합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딸 렌의 이야기다. 영화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짐을 맞이할 것이다. 이혼 전의 별거는 주로 작별의 유예에 불과하니.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딸의 마음이다. 렌은 아빠에게 전화로 두 사람의 마음과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자 아빠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한다. 그때 렌은 말한다. 나에겐 생각할 시간이 없지 않았느냐고. 이것은 이혼이라는 어른들의 분쟁에 휘말린 아이의 마음을 응축적으로 대변하는 장면이다. 아이에겐 언제나 선택권이 없다. 그저 눈앞에 차차 다가오는 이별을 받아들여야 할 뿐이다.

 

 

 

작별은 관계의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일까. 영화는 불의 이미지를 자주 사용한다. 가정의 불화로 혼란에 빠진 아이는 학교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과학 시간 아이들과 싸움이 붙었을 때, 렌은 알코올램프를 던져 자신의 분노를 표한다. 영화의 말미에서도 불은 중요한 요소로 사용된다. 렌은 두 사람의 재결합을 위해 마지막으로 필사의 시도를 한다. 세 사람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던 장소로 두 사람을 불러 모은 아이. 그곳은 세 사람이 함께 축제를 즐기던 장소이다. 아빠는 아이의 간절함에 재결합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은 늦었을 뿐이다. 그렇게 축제의 밤은 찾아오고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렌은 이제 인정한다. 그 아름다운 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엄마에게 말한다. “내가 어른이 될게”. 작별은 성장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화는 그 순간 끝을 맺을 법도 하나, 환상과 닮은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정글과 같은 공간에서 끝없이 헤매는 렌. 풀숲에서 바다로 나온 렌의 얼굴에는 성숙함이 묻어난다. 그리고 렌의 눈앞에는 세 사람의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이 펼쳐진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행복의 순간. 그 순간마저 불로 인해 사그라든다. 그때 렌은 “축하합니다”라고 연달아 외친다. 아이는 더 이상 분노하지도 떼를 쓰지도 않는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야 한다는 체념의 정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는 기쁨은 공존한다. 그렇게 렌은 한여름 날의 불꽃놀이 같던 아름다운 우리의 추억과 작별한다. <이사>의 러닝타임 동안, 나는 잠시나마 렌이 되었다. 나 또한 수많은 작별들을 만났다. 그리고 작별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것쯤은 안다. <이사>는 작별을 통한 성장이 아픈 성장일지언정 필연적인 것이라면, 조금은 성숙하고 아름다운 작별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지게 만드는 영화였다. 미련투성이인 삶이나, 오늘만은 내 작별들을 축하하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이 영화와 만나서, 작별해서 무척이나 좋았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으로 관람한 작품을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작성한 것입니다]

 

 

작성자 .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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