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롬2021-04-11 16:03:18
동심을 찾고 느낄 수 있다
<어린 왕자> ⭐⭐⭐
친구하나 없이 엄마(레이첼 맥아담스)가 짜놓은 인생계획표대로만 살던 소녀(맥켄지 포이). 어느 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옆집의 괴짜 조종사 할아버지(제프 브리지스)를 만나면서 오래 전 조종사가 사막에 추락했을 때 만난, 다른 행성에서 온 어린왕자의 존재를 알게 된다. 소녀는 조종사 할아버지와 친구가 되어가면서 어린왕자가 살던 소행성 B612와 다른 세계로의 여행, 모두를 꿈꾸게 하는 가슴 벅찬 모험을 시작한다.
모모
영화를 보며 소설 책 <모모>가 불현듯 떠올랐다. 두 작품 모두 어른의 세계를 부정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찾길 원하는 주인공의 소재와 둘다 판타지 형식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혹여나 <모모>를 읽어보지 못했다면 <어린 왕자>를 보고,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당신의 어린 모습을 떠오를 수 있고, 어른이 되버린 나에게 동심의 근황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린왕자
이 영화는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모티브를 따와 만든 영화이다. 그래서 영화의 내용도 소설의 이야기에서 새로이 추가된 캐릭터들이 사이에 들어가 영화가 진행된다. 어린왕자만의 따뜻한 성격이나 종이 냄새가 날 거 같은 기분좋은 편안한 색채는 소설에서 느껴진 몽글몽글한 느낌을 잘 표현해준다.
객관적 상관물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하면 기존의 물건에 의미를 부여해서 자신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문학 작품만의 표현방식 중 하나이다.
영화에서는 소설에서 등장한 '바오밥나무' ,'장미' ,'별' 등에 의미를 부여하여 소설에서 공감한 느낌을 영화에서도 이어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주제도 부각시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자아성찰을 깨우칠 수 있는 시간도 만들어준다. (다시 보면 원작의 뛰어남이 묻어 나온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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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유하는 청춘을 어루만지는 온기
- 브레이킹 아이스 (The Breaking Ice, 2025)부유하는 청춘을 어루만지는 온기
개봉일 : 2025.06.04.
관람등급 : 15세이상관람가
장르 : 청춘, 멜로, 로맨스
러닝타임 : 100분
감독 : 안소니 첸
출연 : 주동우, 류호연, 굴초소
물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출렁이고 흘러넘치며 특정 온도를 지나면 얼음이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다. 청춘도 이와 비슷하다. 항상 출렁이며 작은 충격에도 큰 영향을 받고 어느 한계점을 지나면 특유의 생동감을 잃어버린다.
‘일정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의미의 단어 ‘안정’. 그의 반하는 단어 ‘불안정’. 사전적 의미로 봤을 때 불안정함은 다소 연약하고 부정적인 단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는 불안정함을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불안정한 물질과 청춘의 가변성 그 자체를 존중하고 응원한다. 그리고 그 아래 숨겨진 아름다움을 스크린에 펼쳐내기에 이른다.
<브레이킹 아이스>의 주인공 나나는 여행 가이드다. 그는 다른 이들의 여정을 이끄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가야 할 길은 찾지 못한다. 가장 편안해야 할 내 집. 그 안에서마저도 신발을 벗지 못하는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다.
나나의 오래된 친구인 샤오는 이렇다 할 목표도 아쉬움도 없이 그 자리에 멈춰 서있다. 이리저리 밀리다 연길에 정착하게 된 그는 나나와 함께 차가운 겨울바람 속을 헤맨다.
여행객 하오펑은 금융계에 종사하는 청년이다. 친구들은 그의 직업과 경제적 능력을 부러워하며 ‘성공한 사람’이라는 왕관을 씌워주지만 하오펑은 자신의 인생이 즐겁지도 아름답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어색하게 몸을 끼워 넣어 보지만 곧바로 대열 밖으로 튕겨져 나온다.
<브레이킹 아이스>는 상처 입은 세 청년. 나나, 하오펑, 샤오의 이야기다. 세 사람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떤 모양이든 될 수 있는 물처럼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청년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사건과 아픔을 겪으며 꿈을 포기하고 연길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현실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꽁꽁 얼어붙는다. 그렇게 한 번도 끓어오르지 못하고 불투명한 얼음이 되어버린 세 사람은 이제 스스로 얼음을 녹여낼 힘이 없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세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스쳐 지나갈 거라 생각했던 인연은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길게 이어지고 나나, 하오펑, 샤오의 세상에 새로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브레이킹 아이스>의 공간적 배경은 연길이다. 연길은 중국 유일의 조선족 자치주로 중국과 한국의 문화가 공존하고 중국어와 한국어 간판이 한데 뒤섞여 있는 곳이다. 많은 것들이 혼재되어 한국 같기도 중국 같기도 한 도시. 이곳에 정착한 이방인 나나와 샤오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서로를 붙든 채 간신히 버티고 있다. 그래서 나나는 자신과 비슷한,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말하는 여행객 하오펑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손을 내민다.
세 사람은 그렇게 별거 아닌 이유로 한자리에 뭉친다. 그리고 술과 저녁 함께 먹기, 오토바이 타기, 길거리에서 라면 먹기, 서점에서 도둑질하기 등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가까워진다. 세 사람은 그렇게 옆 사람의 체온을 느끼며 천천히 두꺼운 얼음을 녹여낸다. 그리고 마침내 얼음 아래 갇혀있던 찰랑이는 물을 만난다.
나나는 하오펑, 샤오와 함께 얼음 위에 발을 올려놓고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 덕분에 과거를 가까이 마주하며 다시 스케이트를 신을 용기를 얻는다. 샤오는 나나, 하오펑과 내기를 하며 구매하게 된 책 속에서 새로운 시작점을 찾고 하오펑은 나나와 온기를 나누며 ‘남들이 말하는 성공한 삶’을 의미하는 손목시계를 풀어 내려놓는다. 혼자였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을 온기와 안정감은 세 사람을 성장시키고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브레이킹 아이스>는 여러 인부들이 호수의 얼음을 깨고 옮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장비를 들고 얼음을 자르는 인부 한 명과 그의 허리에 감긴 로프를 잡고 있는 또 다른 인부. 두 명의 인부는 한 팀이 되어 얼음을 자르고 기계로 옮긴다.
호수를 뒤덮은 얼음을 깨는 일을 안전히 해내려면 함께할 파트너가 필요하다. 인생의 전반을 뒤덮은 얼음을 거둬내는 일도 그렇다. 하지만 고립과 각자도생이 기본 옵션이 되어버린 사회적 분위기는 청년들을 각각의 얼음 속에 가둬버린다. 청년들은 그 안에서 홀로 벌벌 떨거나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스러지고 있다.
안소니 첸 감독은 이런 차가운 사회에 떨어진 청년들을 위해 <브레이킹 아이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물은 낮은 온도에서 얼음이 되지만 얼음을 꺼내 수면 위에 올려놓으면 순식간에 놓기 시작하고 다시 물로 돌아간다. 이 원리를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에 적용해 보고 싶었다.”라고 언급한 그는 단단한 얼음 상태를 벗어나 물처럼 유연하게 뒤섞이고 서로를 발전시키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내일에 대한 희망과 관계의 소중함을 전한다.
<브레이킹 아이스> 속 자연 풍경들은 이러한 안소니 첸 감독의 마음을 투영하듯 굉장히 아름답고 무해하게 표현된다. 연길의 겨울바람은 꽤 차갑지만 세 사람이 마음껏 누빌 수 있는 눈밭과 얼음 연못을 만들어주고 백두산에서 마주친 거대한 곰은 조용히 나나의 발목 흉터를 킁킁대다 사라진다. 자연은 나나, 하오펑, 샤오를 해하지 않는다. 그 덕에 세 사람은 마음껏 자연을 누비며 울고 웃고 회복한다.
우리 사회도 이 영화 속 자연처럼 청년들에게 조금 더 무해하고 아름다웠으면 한다. 목적지가 없어도 마음껏 헤맬 수 있는 긴 도로를 주고, 안전히 구를 수 있는 폭신한 눈밭을 주고, 타인의 흉터에 눈길을 건네는. 그런 사회 말이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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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받지 못한 자
용서받지 못한 자
영화를 서너 번 봤지만, 이번에 보면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이 영화를 생각했다.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거의 드러나지 않는 여성들이 있다. 기존의 영화 해석에서는 주인공 윌리엄 머니의 심리적 변화와 기존의 서부영화가 보여주었던 전형적 틀을 깨는 새로운 형식의 서부영화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는 몇 가지 점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깊은 관련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과거 미국 서부영화에서 뛰어난 총잡이로 활약해 왔고, 영화, TV 시리즈에서도 머플러를 휘날리며, 시가를 물고 악당들을 쓰러뜨리는 총잡이의 아이콘이었다. 심지어 그는 이탈리아에서 만든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에도 출연해 미국 서부영화를 희화화하는 영화에도 출연했으며, 존 웨인 이후 서부영화의 주인공으로 깊게 각인된 인물이다.
이 영화는 과거 화려했던 총잡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총을 놓고 시골에서 농부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물 간 과거의 총잡이 윌리엄 머니는 어린 아들과 딸을 키우며 외진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인공 윌리엄 머니 역을 맡은 것은 필연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다른 배우라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과거에 유명하고 잘 나가던 총잡이였기 때문이며, 그 인물이 시간이 흘러 퇴물이 된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기 때문이다.
퇴물이 된 윌리엄 머니는 몰락한 서부영화를 상징하며, 이제는 흘러간 한 시대의 영화(榮華)에 조종(弔鐘)을 울리는 영화다. 이야기 전개는 단순하다. 시골에서 평범한 농부로 살아가던 윌리엄 머니에게 스코필드 키드가 찾아와 함께 돈을 벌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윌리엄 머니는 거절한다. 그가 다시 말을 타게 되는 동기는 크게 두 가지다. 키우던 돼지가 콜레라에 걸려 죽게 되면서 먹고 살 길이 막막해져 돈이 필요하게 된 것과, 스코필드 키드가 말한 내용에서, 카우보이에게 어떤 여성이 칼로 난자당했다는 말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나레이션이 나오는데, 이 나레이션은 처음과 끝에만 나온다. 나레이션은 윌리엄 머니가 어떤 인물인가를 짧고 강렬하게 표현하는데, 여기서 관객이 알 수 있는 내용은 윌리엄 머니가 총을 버리고 시골에 정착하게 된 것은 그의 아내 때문이며, 아내는 두 아이를 남기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악당은 개과천선해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그를 개과천선하도록 만든 사람이 그 악당의 아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언듯 봐도 윌리엄 머니의 두 아이 - 딸과 아들 -는 어리다. 나이로만 보면 윌리엄 머니에게는 손자처럼 보인다. 그의 아내는 겨우 스물 아홉살에 세상을 떠났다. 윌리엄 머니와 아무리 적어도 2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데,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윌리엄 머니를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시켰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윌리엄 머니는 죽은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고 있으며, 그는 아내를 만난 이후 11년 동안 총을 잡지 않았다. 그러니 아들의 나이는 많아야 열한 살일 것이고, 딸은 여덟, 아홉 살 정도로 보인다. 윌리엄 머니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악행 때문에 가능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그는 아내를 만나 과거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그의 과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의 인성이 하루아침에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잔인하고 흉포한 인간이지만, 그것이 타고난 인성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그의 삶 전체가 어떤지 관객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여성들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모습은 나타나지 않지만 윌리엄 머니의 아내가 중요하게 드러나며, 윌리엄 머니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동기는 빅 위스키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 내건 현상금이다. 1870년대 와이오밍주는 준주였으며 미합중국에 포함되기 직전이었다. 이때도 인구가 많지 않았지만, 현재 와이오밍주는 인구가 50만 명에 불과한, 아주 작은 주정부다. 중서부의 거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워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총을 가져야만 했다.
남성들은 총을 갖고 싸우거나, 처음부터 총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강도떼와 살인자들이 날뛰면 현상금 사냥꾼들이 그 뒤를 쫓았던 시대였다. 보안관은 그 지역의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이 영화에서 '리틀 빌'이 그런 인물이다. 리틀 빌도 과거에는 무법자, 범죄자로 살았지만, 운이 좋아서 작은 마을의 보안관이 되었고, 그는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남성들의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보통은 평범하게 살았지만, 살기 어려운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았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여성이 성매매를 하게 되는 원인은 가부장사회의 구조적 압력 때문이다. 즉, 사회가 여성을 성매매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빅 위스키에 사는 여성들도 자신들이 원해서 성매매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포주에게 묶여 있는 몸이며, 카우보이에게 얼굴을 난자당한 여성은 심각한 피해자였음에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포주가 카우보이에게 말을 일곱마리 받는 것으로 보안관 리틀 빌이 판결한다. 여성은 피해당사자였음에도 마치 유령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포주는 여성들을 '재산'이라고 말한다. 즉,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다. 보안관 리틀 빌 역시 여성들을 무시하고, 여성을 가해한 카우보이의 행동을 인정하고 용서한다. 이것은 명백히 남성우월주의자의 모습이며, 여성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일방으로 당하기만 하는 여성들이 스스로 단결해 가해자인 카우보이를 응징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여성들은 힘들게 모은 돈을 현상금으로 내놓고, 두 명의 카우보이를 죽이는 사람에게 돈을 주겠노라고 소문을 낸다.
여성들이 이런 결정을 한 것은 남들이 보기에 천한 일-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을 하지만, 스스로 자존과 명예를 지키려는 그들의 최소한의 행동이었다. 자신들(여성들)을 함부로 대하면 어떻게 된다는 걸 본때를 보임으로써 다른 남자들이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도 노린 것이다.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애송이 스코필드 키드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 청년은 왕년의 총잡이 윌리엄 머니의 행방을 알고 있었고, 그와 함께라면 카우보이 두 명을 쉽게 처치하고 무려 1천 달러라는 거액을 둘이 나눠 가질 수 있을 거라 계산했다.
하지만, 스코필드 키드가 윌리엄 머니를 발견했을 때, 윌리엄 머니의 몰골은 형편 없었다. 다 늙어가는 시골 촌뜨기 농부였고, 자기 몸도 온전히 가누지 못하는 퇴물 늙은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키드는 함께 할 생각이 있으면 나중에라도 따라오라고 말하고 먼저 길을 떠난다. 윌리엄 머니는 옛 동료 네드 로건과 함께 키드를 따라간다. 윌리엄 머니의 과거를 가장 잘 아는 네드 로건은 원주민 여성과 둘이 조용하게 살고 있었다. 그 역시 윌리엄 머니와 함께 온갖 악행을 저지른 인물이지만, 지금은 평범한 늙은이로 살아가고 있었다.
현상금을 노린 세 명은 어렵게 빅 위스키에 도착하지만, 윌리엄 머니는 차가운 빗속을 오는 동안 심한 몸살을 앓게 되고, 여기에 리틀 빅에게 걸려 호되게 엊어 맞고 마을에서 쫓겨난다. 키드와 로건은 2층에 있는 여성들을 찾아 올라갔다가 리틀 빅에게 걸리지 않고 도망하고, 셋은 마을 외곽 허물어진 집에서 겨우 모일 수 있었다.
이 세 명의 현상금 사냥꾼을 돕는 사람도 역시 여성들이다. 특히 윌리엄 머니는 리틀 빅에게 죽을 만큼 구타당하고, 몸살까지 앓아서 누군가 돌봐주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었지만, 여성들이 돌아가면서 간호하고, 구완해 정신을 차린다. 즉, 이 영화에서 서사가 이어질 수 있는 바탕에는 여성들의 헌신이 깊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들의 헌신은 사건에 묻혀 관객에게 인식되지 않는다.
카우보이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윌리엄 머니가 쏴죽이고, 다른 한 명은 스코필드 키드가 쏴죽인다. 총잡이라고 큰소리 치던 스코필드 키드는 화장실에 쭈그려 앉은 카우보이를 쏴죽이고, 처음 사람을 죽였다고 머니에게 고백한다. 결국 로건도 살상을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키드도 현상금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남은 건 윌리엄 머니.
그가 다시 총을 잡게 되는 동기는 오랜 친구 로건의 죽음 때문이다. 이 정보를 알려준 사람도 역시 여성이다. 마을 보안관 리틀 빅과 그 일당에게 사로잡힌 로건은 모진 고문을 당하다 죽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머니는 그동안 참았던 분노가 폭발한다. 그는 아내를 만난 이후 술을 끊었지만, 로건이 죽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술을 마신다.
이후 벌어지는 쌀롱에서의 결투는 과거 서부영화에서 보여준 화려하고 멋진 결투가 아니라, 그저 개싸움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참혹한 살인 장면이다. 이것 역시 감독의 의도이며, 서부영화는 더 이상 멋지고 화려한 총싸움도 아니고, 과거의 서부영화가 보여준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장면들이다.
윌리엄 머니는 뛰어난 총잡이가 분명하지만, 그는 총을 잘 쏜다기보다, 죽음 앞에서 초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에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었다. 리틀 빅 일당은 총을 쏘기는 해도 이미 당황하고 있으며, 윌리엄 머니의 명성에 기가 죽었고, 총에 맞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다보니 명중률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윌리엄 머니는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며, 냉정한 태도로 정확하게 상대를 향해 총을 쐈고, 다섯 명을 빠르게 해치울 수 있었다.
싸롱 밖에도 리틀 빅 일당이 있었지만, 윌리엄 머니는 당당하게 외친다. 자신을 향해 총을 쏘면, 그 사람의 가족, 친구도 모두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르겠다는 엄포였다. 이건 실제 벌어지지 않겠지만, 충분히 공포를 느낄 만큼 윌리엄 머니의 과거 악행은 유명했다는 걸 뜻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자들을 건드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며 사라진다. 결국 윌리엄 머니가 꼭 하고픈 말은 이 마지막 말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영화가 실화는 아니지만, 윌리엄 머니가 빅 위스키의 악당들을 모두 처치한 이후 와이오밍주는 미국연방에 포함되고, 여성들의 참정권은 미국연방 가운데 가장 먼저 시작되었으며, 악당이 보안관을 하는 불법도 사라지게 된다. 즉, 미국의 흑역사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윌리엄 머니는 두 아이와 함께 살던 곳을 떠나고, 소문에 의하면 캘리포니아주로 갔다고 한다. 와이오밍에 남았던 사람들은 금 때문에 온 경우가 많았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금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와이오밍을 찾았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남았고, 많은 사람들은 서쪽 끝 캘리포니아까지 갔다. 윌리엄 머니 역시 더 이상 와이오밍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고, 신변의 위험도 느꼈을 것이다. 그는 도시에 정착해 평범한 노동자가 되지 않았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총을 잡은 건, 그가 갚아야 할 빚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삶에서 진 빚은 피로 갚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최소한 아내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자가 되고 싶었던 그의 마음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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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5월 둘째 주도 잘 보내셨나요?이번 주는 맑고 따뜻한 봄날씨가 예상된다고 하는데요.다만, 이번 주에도 일교차가 심하다고 하니 겉옷 챙기셔서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의 개봉 주 주말의 관객 수'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시작해 볼까요?...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은 마블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많은 마블 팬을 보유한 나라인데요.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박스오피스 순위인 것 같습니다.
주말 동안 (5월 13일~5월 15일) 관객 수 83만 8,901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490만 6,526명을 돌파하였습니다.셋째 주에는 누적 관객 수 5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입니다.2. <범죄도시2> (NEW)▶ 아직 개봉 전인 <범죄도시2>가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였는데요.
개봉 전 주말 프리미어 유료 상영회가 열리며, 개봉 전부터 박스오피스 순위권에 들게 되었는데요.
개봉 전부터 뜨거운 반응과 호평이 연달아 나오는 것으로 보아, 좋은 성적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말 동안 (5월 13일~5월 15일) 관객 수 17만 1,732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8만 2,93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줄거리가리봉동 소탕작전 후 4년 뒤, 금천서 강력반은 베트남으로 도주한 용의자를 인도받아 오라는 미션을 받는다.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와 ‘전일만’(최귀화) 반장은 현지 용의자에게서 수상함을 느끼고,
그의 뒤에 무자비한 악행을 벌이는 ‘강해상’(손석구)이 있음을 알게 된다.
마석도’와 금천서 강력반은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역대급 범죄를 저지르는 ‘강해상’을 본격적으로 쫓기 시작하는데...3. <배드 가이즈> (▼1)▶ 가족 관람객을 사로 잡은 드림웍스의 <배드 가이즈>가 둘째 주에 누적 관객 수 30만명을 돌파하였는데요.
주말 동안 (5월 13일~5월 15일) 관객 수 5만 8,831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3만 855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씨네픽의 이번 주 100회 예측 이벤트는 5월 2주 차 박스오피스(순위) 예측입니다. 한 주동안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는데요.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5월 2주 차 박스오피스 순위의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씨네픽 유저 예측 결과
정답자 비율(%)
▶ 한 주 동안 많은 씨네픽 유저분들이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해 주셨는데요. 박스오피스 1위 순위를 가장 많은 분들이 맞혀주셨고,
그다음으로 3위, 2위 순으로 많이 맞춰주셨습니다. 90% 이상의 사람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예측에 성공하였는데요. 이에 비해 2위와 3위를 맞춘 비율이 굉장히 적었습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98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3주 동안 박스오피스 TOP 5 순위권 안에 들었는데요. 저번 주말 순위를 유지해 4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주말 동안 (5월 13일~5월 15일) 관객 수 2만 3,729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9만 3,16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극장판 엉덩이 탐정: 수플레 섬의 비밀> (▼2)▶ <극장판 엉덩이 탐정: 수플레 섬의 비밀>은 두 단계 내려가 5위를 차지하였는데요.
이번 주 개봉 예정작을 생각했을 때 셋째 주에는 TOP 5 순위권 밖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주말 동안 (5월 13일~5월 15일) 관객 수 1만 9,186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37만 7,22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국내 박스오피스와 동일하게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가 차지했습니다.
또한,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성적과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성적은 하나 빼고 모두 동일하였는데요.
<Firestarter>가 개봉하면서 순위권에 올라갔고, <Fantastic Beasts: The Secrets of Dumbledore>가 순위권 밖으로 떨어졌습니다.
주말 동안(5월 13일~5월 15일)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의 매출액은 $61,003,000 (한화 약 783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총 누적 매출액은 주말 매출액과 동일하게 $291,862,523 (한화 약 3,747억)을 기록했습니다.<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5월 6일 ~ 2022년 5월 8일)1.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6,100만 달러 (누적 2억 9,186만 달러)2. <배드 가이즈> 689만 달러 (누적 6628만 4,000만 달러)3. <수퍼 소닉2> 455만 달러 (누적 1억 7,570만 달러)4. <파이어스타터> 382만 달러 (누적 382만 달러)5.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330만 달러 (누적 4,710만 달러)...씨네픽의 5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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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하는 것과 어떻게 하는 것과의 차이
전작의 명성을 잇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전작이 장르영화로서 호평을 받았을 경우에 영화는 새로운 과제를 하나 더 부여받는다. 전작이 가진 영화의 재미를 그대로 유지한 채 후속작만의 독보적인 강점을 갖는 것. 영화 <검은 수녀들>은 이러한 점에서 절반은 성공하고 절반은 실패한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익숙함과 새로움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였으나, 장르영화의 재미는 챙겼다. 다만 이 재미를 어떻게 챙겼느냐에 관하여는 관객의 몫에 달린 듯하다.
서품을 받지 못하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악령을 퇴치하는 일에 있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유리아수녀. 그녀는 악마를 믿지 않는 담당의와 원칙을 준수하는 천주교 원로들을 뒤로하고 12형상 중 하나에 빙의된 구마자를 구해야 하는 과제에 놓인다. 구마자 희준과 유리아에게 동질감을 느낀 미카엘라 수녀는 그녀를 도와 구마의식을 돕게 되고, 수녀는 구마할 수 없다는 금기를 깨고 두 사람은 희준을 구하고자 한다.
영화 <검은 사제들>의 성공요소에는 한국에서는 잘 그려내지도,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오컬트장르를 감독의 덕심하나로 성공시켰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서양의 오컬트문화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것이 아닌 그 점 그대로 잘 표현해 냈다는 점에 관객의 마음이 동했다. 어쭙잖게 따라 하지도 않았으며, 어설프게 그려내지도 않았다. 영화 <검은 사제들>은 감독이 본인이 그려내고자 하는 장르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의 열정과 이해도가 높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영화 <검은 수녀들>은 전작이 가진 장점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나 이에 관점을 조금은 달리하여 전작과의 차별화를 꽤 했다. 천주교 원로회로 분하는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 짐작할 수도 있듯이 이 영화는 보수적인 집단에서의 두 여성이 연대하여 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여성서사에 가깝다. 단순히 여성 2명이 등장하였기에 여성영화라고 칭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에 참여할 수 없는 수녀'라는 설정 자체가 어떠한 제한을 가진 여성 자체를 상징하고 있고 영화 말미에 악마를 봉인하는 의식에서는 오로지 여성이기에 할 수 있는 유리아의 희생이 잇따른다. 영화 <검은 사제들>이 '검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영화 <검은 수녀들>은 '수녀'에 초점을 맞추었다고나 할까.
관점을 조금 달리하여 전작과의 차별화를 꿰하였다는 점이나, 토속신앙 등 다양한 요소를 가미하여 극의 내용을 풍부히 했다거나 하는 등의 장점을 가진 이 영화는 다만 배우를 잘 활용하지 못하였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닌다. 송혜교배우의 전작 <더 글로리>에서의 문동은이란 역할이 수녀복을 입은 것과 채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유리아수녀는 배우의 전작에 기대며 몹시도 평면적이다. 주인공인 그녀를 제외하고도 극 중 전여빈배우가 분한 미카엘라를 제외하고는 모든 인물들의 과거사는 거세된 편에 가깝다. 이는 극에 집중하고자 하는 의도적인 이유일 수도 있겠으나 중요한 점은 그림자와 같은 과거사를 없애었더니 모든 인물이 평면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충분히 입체적인 역할을 그릴 수도 있었던 극 중 주인공들은 오로지 자신이 부여받은 한 가지 목적 외에 다른 관점은 골몰하지 못한다. 종이인형처럼 극 안에서 움직이는 것과도 같아 보이는 이들은 얼핏 열정적으로 보이면서도 무채색에 가까워 보인다. 어쩌면 영화 <검은 수녀들>은 이미 자신이 부여받은 과제를 충실히 이행하였을지도 모른다.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워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부분 성공한 듯처럼 보인다. 다만 이 영화가 그리하여 매력적이냐에 대해서는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역할을 잘 수행한 것과, 어떻게 수행한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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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리는 가족이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돌아왔다. 스토커는 관객의 눈치를 본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최근 영화 '괴물'을 다시 보면서 떠올랐던 그의 영화, 서사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보고자 한다.
1. 담백한 이야기의 매력
그의 이야기에 빠진 이유는 담백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울어달라는 뉘앙스를 풍기지 않게 한다. 관객을 말 그대로 관찰자로서 기능하게 한다.
그의 영화의 인물들은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소소한 행복들을 추구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그들의 행복은 이질적으로 비춰진다. 어느 가족에서는 훔친 물건으로 한 가족의 밥상을 차려내 하하호호 웃음짓고 있고,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자매들도 복잡한 가정사를 가졌지만 누구보다도 따뜻한 밥상을 함께 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들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담백하게, 하지만 밝게 서로의 상태를 살필 뿐이다. 그들이 가진 특유의 멋이라고나 할까.
2. 그들과 대비되는 사회의 무심함
그의 영화를 보고 있자면 주류 사회의 허망함을 느낀다. 사회 속에 속하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한 사회의 일원이 되면 누군가는 낙오되는 생존 게임이라고 생각한다면 난 이긴 자라는 오만 아래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과 함께. 그들은 주류 사회에서 낙오되었지만 행복에 가장 가까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류 사회는 여전히 중요하다. 주류 사회에 편입되어야 가장 최악이 상황에서 구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도 배다른 여동생과 오래 함께하려면 호적이 중요하고, 나의 가족 속 가짜 가족들도 그들을 증명할 호적이 없어 사회에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내가 사회에 속해있다는 호적의 존재, 그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내리는 인간의 무정함도 알 수 있다. 그의 영화들은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지못하는 현대인들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류의 관점에서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타인의 관심이 가있지 않는 것을 미끼로 범죄자가 되어 있거나 어딘가 사회의 보호가 필요한 사람처럼 보인다.
이런 걸 보고 있자면 혈육이라는 개념의 무의미함을 그의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피를 나누었다고 해서 가족이라고 할 수 없고 타인이어도 가족이 될 수 있다'가 그의 작품 세계 속 공통 키워드이다. 가족은 피가 아니라 관계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게 그의 영화가 가진 무심함 속 따뜻함이다. 주류 사회가 혈연 중심의 가족을 외칠 경우, 가족 안의 관계성이 모두 좋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가식적인 가족애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관계성이 빛나는 경우 나이, 직업, 사회적 위치에 관계없이 진실된 가족애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에서도,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도, '어느 가족', 그리고 기타 다른 영화에서도 그가 그리는 가족이 그렇게 따뜻해 보였던 게 그런 이유 때문 아니었을까. 그래서 요란하지 않지만 보고나면 힐링이 되는 그의 영화가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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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파더> 혼란의 한가운데에 내던져지다
런던의 한 집에서 평화로운 오후를 즐기던 '안소니(안소니 홉킨스)'. 그를 찾아온 딸 '앤(올리비아 콜맨)'은 돌연 자신이 파리로 떠날 것이라고 말한다. 앤이 나이 든 아버지를 부양하는 게 힘들어서 자신을 떠나려고 한다면서 불평을 내뱉는 안소니는 본인이 애지중지하는 손목시계를 찾으며 방문을 닫고 앤과의 대화를 거부한다. 그러다 집에서 낯선 소리를 듣고 문 밖으로 나가 본 그는 큰 딸과 사위, 작은 딸과 간병인의 얼굴과 목소리가 기억하던 것과 전혀 다른 이상한 상황에 처했음을 깨닫고, 본인의 현실, 기억, 더 나아가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매년 2월 전후(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올해는 4월 전후)에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작품들이 많이 공개된다. 거대한 스펙터클과 막대한 제작비를 자랑하는 블록버스터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경우가 많은 이 영화들은 주로 한 인물의 내면을 깊숙이 관찰하고 따라가며 관객들이 자연히 그에게 공감하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은 대게 두 가지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는 시간 순서에 맞춰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의 과거와 현재를 인과관계로 묶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의 주인공을 보여주면서 과거의 사건을 궁금하게 만들고, 인과관계를 역순으로 보여주면서 몰입도를 높이는 것이다.
<더 파더>의 첫 장면은 이러한 관습적인 전개를 자연히 기대케 한다. 안소니와 앤의 대화를 지켜보다 보면 남은 러닝타임 동안 어떤 에피소드가 등장할지 예상할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기억을 잃어가는 안소니와 그를 부양하는 앤의 모습은 그들이 겪었고 앞으로도 겪어야 할 갈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될 것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또한 앤의 얼굴을 얼어붙게 만드는 여동생과 관련된 과거의 비극, 앤소니가 집착 수준으로 소중히 여기는 손목시계에 담긴 그만의 인생사까지 영화는 특정 대사나 제스처, 소품 등을 강조하며 부녀의 사연을 보여줄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더 파더>는 두 개의 길 중 어떤 것도 걷지 않으면서 모든 예상과 기대를 벗어난다. 영화는 분명 첫 장면 이후 시간 순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을 제시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사건들의 내용은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안소니가 만나는 앤과 사위, 새로운 간병인은 매번 서로 다른 배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새로운 남자를 만나 파리에서 살 것이라던 앤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언제 그런 소리를 했냐며 안소니를 타박한다. 또 안소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어떻게든 책임지기 위해 간병인을 고용하던 앤은 갑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정도의 극심한 원망을 표출한다. 바로 앞선 장면이 다음 장면을 부정하고 또 바로 다음 장면이 앞선 장면을 부정하며 논리적으로, 인과적으로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 사건들이 이어진다. 그 결과 도통 안소니의 현재 상태와 그의 과거 사연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없고, 혼란에 빠져버린다.
혼란은 영화 내내 관객의 시선을 붙드는 손목시계와 문이라는 소품을 활용해 시공간을 뒤집어 놓는 연출 덕분에 금세 공포로 변한다. 우선 안소니는 딸을 비롯한 주변 인물의 배우가 변할 때마다 자신의 손목시계를 찾으며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를 가늠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언제나 손목에 존재하지 않는 시계는 그를 혼란에 빠뜨린다. 대표적인 장면이 안소니와 앤, 사위가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다. 그는 딸 내외가 자신을 요양원에 보내야 할지 의논하는 순간을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가 마법을 걸어 시간의 루프에 빠뜨린 것 마냥 반복해서 접하며 큰 충격을 받는다.
또한 영화는 안소니가 문을 열고 자신의 방과 같은 특정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장면을 거듭 보여준다. 이때 문 너머의 공간은 시간이 꼬이고 반복되는 것만큼이나 안소니에게 혼란과 공포를 준다. 방에 있다가 문을 열었더니 집인 줄 알고 들어간 곳이 병원이라서 갑자기 진료를 받거나, 딸과 사위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나 하는 말이 정반대로 달라지거나, 자신을 위협하는 일이 똑같이 발생하는 등 예상할 수 없는 전개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손목시계와 문을 활용한 연출은 관객과 안소니가 처한 상황, 그들의 혼란스러움과 충격, 그로 인한 공포를 일치시키며 긴장감과 몰입도를 극도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특히 인상적이다. 칸트가 부정할 수 없는 선험적 감성형식으로 제시한 형식인 시공간은 현상을 경험하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기에, 안소니는 자신의 시공간이 무너지는 가운데 이를 어떻게든 복구하려고 발버둥 친다. 이때 안소니의 시점에서 영화라는 세상을 따라가는 관객에게 그가 경험하는 시공간의 붕괴는 남의 일이 아니기에 그가 느끼는 여러 감정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이야기가 그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만큼 그를 러닝타임 내내 가득한 혼란을 헤쳐나갈 기준점, 북두칠성으로 삼은 채 그의 이야기에 계속해서 몰입할 수 있다.
이렇게 혼란스러움과 의아함, 더 나아가 두려움을 느끼는 관객에게 영화는 마지막 공간, 보육원 병실에서 지내는 안소니의 모습을 탈출구로 제시한다. 엉망진창이었던 영화의 모든 내용이 단지 자신의 담당 간호사와 방도 알아보지 못하고 딸이 자신에게 보낸 엽서도 못 알아볼 정도로 치매를 앓고 있는 한 노인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임을 알려준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 상황, 이미 떠나보낸 사람과 지금 같이 지내는 사람이 모조리 뒤섞인 자신만의 기괴한 현실에 갇혀버렸던 그의 내면이 약 90분 간의 혼란과 공포의 원인이자 결과였던 것이다.
이를 깨닫는 순간 혼란과 의아함을 품은 채 밀려들었던 공포의 파도가 빠져나간 관객의 해변가에는 홀로 남은 그의 고독함과 쓸쓸함만이 존재한다. 그런 그를 바라보아야만 하는 안타까움과 연민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영화는 이 모든 감정을 "내 잎들을 모두 잃고 있는 거 같아(I feel as if I'm losing all my leaves)"라는 안소니의 대사와 대비되는, 그의 병실 밖에 수북이 자란 파아란 나무들의 잎사귀들 하나하나에 담은 채 끝난다.
이처럼 마치 주인공 옆에 서서 그와 하나 되어 그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더 파더>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를 연상시킨다. 단지 <그래비티>가 촬영과 CG, 배우의 연기가 조합된 체험하는 영화라면, <더 파더>는 촬영과 CG를 관습과 예상, 기대를 전부 벗어난 각본의 힘으로 대신했을 뿐이라는 점만 다르다.
<더 파더>는 약 3주 뒤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각색, 남우주연, 여우조연, 편집, 미술상 후보에 지명되었다. 이는 간호사를 엄마 삼아 아이처럼 눈물을 터뜨리는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 엄청난 공포와 혼란스러움을 한 순간에 연민과 고독함으로 뒤바꾼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각본과 연출력을 볼 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다.
하지만 설사 시상식의 후보로 선정되지 않았어도 이 작품이 지닌 가치가 퇴색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언제든 닥칠 수 있고, 또 언젠가는 닥치게 될 일들을 짧은 순간이나마 내 일처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더 파더>는 쉽사리 잊을 수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4dx가 아니어도 사실감, 몰입감, 현장감, 감정선을 모두 잡는 이야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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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5주 최신 개봉영화(007 노 타임 투 다이, 수색자, 스쿨 아웃 포에버, 서유기: 재세요왕, 용과 주근깨 공주)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9월 4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007노타임투다이 #수색자 #스쿨아웃포에버 #서유기재세요왕 #용과주근깨공주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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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웬디> 스페셜 예고편
‘피터팬’ 탄생 110주년 기념,
새로운 주인공, 새로운 시각의 All New ‘피터팬’!기찻길 옆, 작은 식당이 세상의 전부인 소녀 ‘웬디’는
내면에 차오르는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매일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가 나타나고
‘웬디’와 쌍둥이 형제 ‘더글라스’, ‘제임스’를 이끌고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어른이 되지 않고 영원히 어린이로 살 수 있는
신비로운 섬에 도착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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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지옥> 공식 예고편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세상이 지옥이 되었다 이것은 살인인가 천벌인가 《지옥》 11월 19일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