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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artist2025-07-21 22:26:19

성장하지 못한 어른들의 당당함과 성장한 아이들의 처연함

영화 <이사> 리뷰

 

'어른'이라는 단어는 '얼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남녀의 육체적 사랑을 뜻하는 '얼다'라는 결국 어른이란 결혼을 맺은 남녀 성인을 의미하게 한다. 이에 유추해 본다면 '어린이'란 곧 결혼을 맺지 않은 나이가 다소 낮은 아이를 뜻한다. 현대 사회로 넘어와 어른과 어린이의 의미적 구별은 단순히 성교 여부로 나뉘지 않는다. 나이를 기준으로 표현을 달리하지만, 그 안에는 의식과 지적 성장 그리고 성숙도가 함축된다. 우린 흔히 어른을 어린이보다 더욱 성숙한 존재라 생각하고 그렇기에 어린이를 종속의 대상 혹은 피교육의 대상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소위 몸만 큰 어른', '전혀 성장하지 못한 어른'이라는 말이 있듯 숫자만으로 성숙도를 판단하기란 모순이다. 어쩌면 개구리의 문제의 답을 아는 건 높이 뛰지만 결국 듬성듬성 찾는 개구리보다 낮은 자세로 꼼꼼히 찾아다니는 올챙이일지 모른다.


 

영화 <이사>는 이혼한 가정이 겪을 가정의 불화를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다. 어떠한 사유로 별거를 시작했고, 이혼하게 되었는지가 아니라 그렇게 별거된 상황 속 아이의 관점에서 바라본 어른들의 비굴한 모습을 비춘다. 그러면서 여껏 어른의 결정만이 정답이라 생각했던 우리의 편협했던 지난 생각들을 반성하게끔 한다.

 

 

 

 

삼각형 테이블에 모여 식사 중인 주인공 가족을 비추며 영화는 시작한다. 보통의 영화들이 한 가정의 식사 장면을 촬영한다면 아버지 역할의 남성을 테이블의 중앙에 위치시키거나 혹은 대개 어른을 상석에 위치시킨다. 그러나 영화 <이사> 속 중앙 자리는 주인공 '렌'으로 채워져 있고, 양옆으로는 엄마와 아빠가 자리한다. 영화는 구도로서 갈등이 해결될 방식과 방향을 넌지시 제시하는 듯하다. 작품은 식사 장면 이후로 아내와 남편의 관계가 좋지 않아 별거를 택하게 된 상황과 그 상황 속 렌의 태도를 비친다. 영화는 별거와 이혼의 구체적 사유를 거의 말해주지 않는다. 작품의 초/중반부, 렌을 임신했을 때의 불화를 언급하긴 하지만 보다 구체적인 이유를 안 알려준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상황 속 렌의 자세이다. 영화는 부모의 선택과 결정에 그저 따르기만 하는 온순한 아이가 아닌 천방지축에 사고도 잘 치는 것 같지만 주체적이면서 생각이 깊은 아이인 렌을 관객에게 소개한다. 엄마와 단둘이 생활하게 된 상황 속 엄마가 집안 규칙을 설정하지만, 렌은 본인이 함께 제작한 것이 아니기에 인정할 수 없다며 찢어버린다. 이전 장면 속 외식 후 술에 취한 엄마를 부축한 렌의 모습에서도 그렇듯 그녀의 의젓함이 영화 전체를 뒤덮는다.

 

 

영화는 어른들의 미성숙함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어린이들의 성숙함을 비추며 대조시킨다. 서로를 가장 아끼고 의지해야 할 부부관계의 불화와 폭력성을 비추면서 어린이 간 우정 속에서 의지와 화해 그리고 위로를 표현한다. 또한 결국 그렇게 무너진 가정 속 아이들이 겪을 심리적 고통과 혼란함을 비춘다. 특히 어떠한 상황에서도 울지 않던 렌이 끝내 몇 방울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과 이후 너무 당연한 듯 자신의 가정이 이혼했음을 말하는 학급 친구를 보여주는 장면은 아이들의 의젓함이 오히려 처연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만 오히려 고래 싸움인 것일까. 아니면 베어진 물 밑으로 상처 입은 생태계를 우리가 간과한 것일까. 결국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피해의 규모다. 그 피해가 싸운 당사자들에게만 발생한다면 그건 그들이 감당해야 할 문제이겠지만 제삼자에게도 발생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렌은 틀어져 버린 가정을 다시 봉합하기 위해 두 팔을 걷는다. 아빠를 찾아가기도 하고 삼자(三者) 간의 월간 식사 자리도 주최하며 가족의 추억 장소인 '비와 호수'로 여행을 가기 위해 렌은 숙소를 직접 예약한다. 작품의 초반부가 대부분 가정 내에서 이루어졌다면 작품의 후반부는 비와 호수라는 지역에서 대부분 이뤄진다. 호텔에 도착한 순간 아빠가 도착해 대화가 치러진다. 이전 장면에서 스스로 무언가 깨달은 게 있다며 아빠는 다시 가정을 합치자고 말하지만, 이때 렌은 마치 어른들의 이런 독단적 결정에 현기증이 나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정처 없이 헤매던 와중 아들을 잃은 노인과 그의 딸이 있던 집에서 한숨 자게 되고, 노인과 지역 축제를 보던 와중 엄마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달리다 산과 호수까지 다다르게 된다. 정처 없이 헤매다 볏짚 불태우기 행사가 한창이던 현장을 보게 된 렌은 잠시 눈을 붙이게 되는데, 눈을 뜬 순간 호수 위로 무언가 떠오른다. 마치 지난 가족 여행 속 한순간을 회상하는 것만 같은 연출이 이어지던 와중 그 장면 속 렌과 현실의 렌이 서로를 마주하며 포옹한다. 그리고 렌은 불타는 조형물과 이를 따라가는 엄마, 아빠 형체에 대며 연거푸 '축하합니다'를 외친다.

 

 

 

 

영화 전반에 걸쳐 불에 대한 묘사가 빈번히 등장한다. 불꽃놀이, 볏짚을 불태우는 기념행사, 렌이 던져 불이 난 알코올램프 등이 작품의 불이다. 오토바이에 렌과 함께 타며 불타는 볏짚을 본 아빠는 그다음 날 생각의 변화를 겪게 된다. 렌이 알코올램프를 던져 불이 나게 된 이유도 과거와는 달리 이혼한 가정에 대한 렌의 인식 변화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불꽃놀이를 본 렌은 무언가 성장한 듯 혹은 답을 찾은 듯 환영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다. 영화는 불을 성장의 촉매제로 사용하는 듯하다.

 

 

그럼 불타는 호수의 조형물과 이를 따르는 엄마와 아빠의 환영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렌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해당 장면 이후 엄마는 렌을 찾게 되고, '축하합니다'가 새해맞이 개그냐며 말을 거는데, 이때 렌은 카메라를 응시하며 웃음을 짓는다. 결국 '축하합니다'라는 엄마의 생각처럼 단순한 개그용 대사가 아닌 일련의 사건과 모험을 통해 성장한 렌이 내린 가정의 불화에 대한 정답이다. 영화는 이후 렌의 가정이 재결합했는지 아니면 아직 별거 중인지 알려주지 않고, 또한 이에 대한 렌의 구체적인 자세를 비추지 않기 때문에 정답의 뜻을 유추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정답에 대해 엄마, 즉 어른은 결코 이를 알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다. 결국 영화는 어른의 무능함과 오히려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의 문제를 바라보고 이에 따라 성장해 가는 아이의 모습을 담아낸다.

 

 

 

 

 

 

 

 

 

 

 

영화는 엔딩 크레딧으로 나무에 가려짐에 따라 옷이 바뀌며 웃는 얼굴을 한 렌을 비추며 끝나게 된다. 저 웃음 뒤로 어떠한 고통과 시련 그리고 혼란이 있었을지 감히 예상하기 힘들다. 그 과정으로 어떠한 성장을 할 수 있었는지 또한 감히 추측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는 자신이 더 위일 것이라는 어른들의 오만한 편견을 깨며 어린이의 모습을 비춘다.

작성자 . being artist

출처 . https://blog.naver.com/le_film_artiste_ho/2239420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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