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7-21 21:37:43
자기 세계를 빚어가는 사람에게
영화 <비밀의 언덕> 리뷰
DIRECTOR. 이지은
CAST. 문승아, 임선우, 장선, 강길우, 장재희 외
SYNOPSIS.
"가족은 무엇일까요? 저에게 가족은 물음표에요"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5학년 소녀 ‘명은’이 글쓰기 대회에 나가 숨기고 싶었던 진실과 마주하는, 그 시절 나만 아는 이 여름 우리가 꺼내 보는 비밀스러운 이야기
POINT.
✔️ 유년기를 담은 성장영화로 한국 영화 계보에 길이 남을 사랑스러운 수작
✔️ 주인공 명은을 맡은 문승아 배우부터 엄마아빠의 장선/강길우 배우, 선생님 임선우 배우... 세상의 톤을 말갛고 자연스럽게 영화에 투영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나 훌륭합니다
✔️ 들꽃영화상,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부일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과 각본상을 쓸어담은 이지은 감독의 다음 또한 너무나 기대됩니다. 어떤 장르의 어떤 작품으로든 멋지게 뻗어나갈 수 있을 힘!
✔️ 자기 이야기로 자기 세상을 쌓아 올린, 당당하고 사랑스러운 소녀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영화입니다. 조 마치, 빨간머리 앤, 주디 애버트, 마틸다, 레이디 버드... 그리고 명은이!

명은이에게.
명은아. 그거 알아? 수전 손택이라는 작가가 있어. 미국의 20세기를 대표하는 엄청난 작가거든. 검색해 보면 알겠지만 그냥 사진만 봐도 아우라가 장난이 아니야. 이런 사람은 위대하게 타고나는 걸까 싶을 만큼 카리스마가 넘쳐. 근데 그 작가가 뭐랬게. "일기에서 나는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창조한다"라고 했대. 그토록 위대한 작가조차, 사실 '보여지는 내 모습'을 고민하고 있었다는 거야. 책에서 그 얘기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좀 웃었어. 이렇게 멋진 말을 잔뜩 하고, 현실 세계에 대해 자기 해석을 거침없이 내놓은 작가도... 사람이구나 싶어서.
네 이야기를 보고 나는 너에게 꼭 수전 손택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 어마어마한 작가도, 오늘 하루 멀쩡한 어른처럼 사회 생활을 끝내고 집에 온 나도 (이 점은 너희 선생님도 같지), 너도... 다 그래. 발돋움을 해서라도 더 좋은 자신이 되고 싶어서, 내 이야기를 척척 쌓아 올려 내 세상을 빚어가는 사람들은 다 그래.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말이야.

너와 비슷한 사람들을 많이 알아. 어린 시절부터 늘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왔어. <작은 아씨들>의 조, <빨간 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 <마틸다>, 몇 년 전에는 <레이디 버드>도 만났고... 그리고 너를 만났지.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내가 너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애정보다 감탄이 더 많이 섞였는데, 그건 네 어마어마한 결단력과 실행력 때문이야.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더 예쁜 선물을 드리고 싶고, 학교에서 배운 이상적인 내용을 잘 갖추고 살고 싶고,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도 보내고 싶고,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을 자꾸 깨닫게 만드는 엄마아빠의 말들이 싫게만 느껴지고, 그런 자신이 비참해 보여서 감추고 싶고... 그런 마음을 갖는 사람은 많지만, 거기서 너처럼 결단력 있게 움직이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근데 있잖아, 명은아. 크면 알게 된다. 젓갈이 얼마나 비싸고 좋은 음식인지도, (네가 젓갈 버릴 때 나 눈물이 났다...) 마냥 게을러 보였던 아빠가 나름대로 너희 남매의 등하교 패턴에 맞추어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도, 가족들이 서로에 대해서 하는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도. 그 역할 분담 안에서 나름대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이었다는 것도.
근데 사실 너도 이미 조금 알지? 할아버지와 삼촌의 대화도 다 들었잖아. 누구에게나 장점도 단점도 있다는 걸, 그리고 삶은 결코 방학 숙제로 그린 원형 계획표대로 쳇바퀴 구르듯 굴러갈 수만은 없다는 걸. 살아가다 문득 삶이 갑자기 너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네 계획이 다 무력해지는 순간을 한 번은 맞닥뜨리겠지. 그때 비로소 빛이 날 거야.

엄마의 억척스러움, 아빠의 빤들빤들함... 네가 싫어했던 그런 면면들이 언제나 널 지켜준 일상의 씨실과 날실이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날도 올 거야. 엄마아빠가 만들어준 씨실과 날실 위로, 네가 부지런히 코를 뜬 일상이, 그렇게 쌓아온 것들이 너를 지켜주는 날이 올 거야.
거기서 시간이 더 흐르면 네 시각이 달라질 거야. 서로 달라 티격태격하는 엄마아빠의 모습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고, 그런 엄마아빠 모습이 문득 귀여워 보이는 날이 오고, 그러다 눈물 나게 그리워지는 날도 오겠지.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브러쉬 업 라이프>라는 일본 드라마를 보다가 알게 된 건데 말이야. 그 정도 나이일 때 누구나 한 번쯤 자기 가족이 싫어지기도 하나 봐. 어쩌면 호르몬 아닐까. 오래 전 인류는 십대 중반쯤이면 부모에게서 독립을 했을 테니까. 가족을 사랑하고 싶고 착한 아이가 되고 싶고 잘 하고 싶은데, 엄마아빠가 날 위해 애써주는 걸 너무 잘 아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이 불편한 날들이 쌓이는 건, 어쩌면 그 시절의 불가항력일 수도 있어.
시간이 지나면 또 달라질 테니까. 지금은 그냥 너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줘.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나만 그랬던 게 아니라, 네 친구들도, 내 친구들도, 네 눈이 너무 눈부셔 보이는 사람들, 부족함 없이 당당해 보이는 사람들도. 어떤 식으로든 그런 시기를 겪게 되나봐. 그러니까 우리 내일부터는 우리를, 또 주변을 조금 더 너그럽게 볼 수 있게 되는 그 날을 기다리면서 또 하루 열심히 잘 살아가 보자.

물론 매일 어렵겠지. 어떨 땐 솔직한 게 유리하고, 또 어떨 땐 솔직이 능사도 아니야.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것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숨기는 게 방법일 때도 있는 것처럼. 어떤 이들에게는 솔직함이 무기처럼 쓰이는 것처럼. 갈팡질팡하다 보면 내 마음을 전혀 돌보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흐르기도 하고, 가족을 배려하지 못한 채 할퀴는 말이 툭 나올 때도 있어. 우리는 그렇게 갈지자로 휘청휘청거리면서 균형을 잡을 듯 말 듯 살아가겠지. 그건 말로 포착되기 정말 오묘해.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랑하고 있었던 너처럼.
앞으로도 우리는 그렇게 휘청거릴 거야. 실수도 하고 상처도 낼 거야. 더 좋은 자신이 되고 싶어서 까치발을 들지만, 누구도 평생 까치발을 든 채 살아갈 순 없다는 걸 깨닫고 눈물로 무너지는 날도 있지.
그래도 괜찮아. 시간을 따라 부지런히 걷다 보면 그런 날들은 어느새 저기 멀리 모자이크화의 한 조각처럼 작아져 보일 거거든. 그렇게 언덕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새 그 언덕이 꽤나 완만하고 다정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멀리서 볼 땐 너무 높아 보였던 언덕이더라도.

그리고 명은아. 헤맨 만큼 네 땅이 되는 거래. 네가 오르내린 언덕은 다 네 거야.
너 자신에 대해 거침없이 쓸 수 있었던, 자신감으로 빛나던 네 얼굴. 거기서 보였던 맑은 기쁨이 어떤 감각인지 나도 알고 있어.
나는 그 길들을 거쳐서 영화에 이르렀고, 그렇게 너를 만났어. 너는 그 길에서 무얼 만날까?
Relative contents
-
- [DMZ DOCS] 스스로 화산에 걸어간 부부 이야기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불 속의 연인: 카티아와 모리스 크래프트를 위한 진혼곡
(The Fire Within: A Requiem for Katia and Maurice Krafft)
France, UK, Switzerland, US/2022/86min/베르너 헤어조크 감독 작품
프랑스 출신의 화산학자 부부 카티아 크래프트와 모리스 크래프트. 그들은 1991년 화산 폭발을 연구하러 방문한 일본에서 사망했다. 대피하라는 당국의 지침을 따르지 않고 폭발을 앞둔 산에 너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망하기 전까지 부부는 세계 곳곳의 폭발 중인 화산을 찾아 200시간 분량의 영상을 남겼는데, 〈불 속의 연인〉은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이 부부에게 바치는 헌사를 담아 이를 편집한 영화다.
폭발 중인 화산재는 내부 온도가 500도 이상이고 시속 600킬로미터로 이동한다. 극도로 위험하다. 하지만 부부는 화산 폭발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혹을 느낀다. “화산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카티아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화산은 부부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화산에 대한 부부의 매혹은 곧 죽음에 대한 매혹이다. 웅장하고 경건한 음악과 함께 나오는 화산 폭발 장면은 극장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부부가 촬영한 영상을 감상하는 관객에게 숭고함을 선사한다. 말을 잃게 하는 압도적 경관 앞에서 한없이 위축되고 겸손해지는 성찰적 감정인 숭고 말이다.
화산 폭발의 장엄한 이미지는 우리가 현실에서 애착을 느끼는 모든 것의 의미를 지극히 하찮게 만든다. 강렬한 죽음의 이미지를 대면하는 순간에야, 우리는 삶의 본질적 소탈함을 자각하고 모든 번잡스러운 욕망에서 초탈한다. 부부가 화산에 느끼는 순수한 매혹은 아마 여기서 생겨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죽음에의 매혹은 생명에 대한 애착으로 재탄생한다. 부부는 화산 폭발을 그저 숭고한 스펙터클로만 다루지 않는다. 붉고 검은 용암과 하늘 높이 솟은 화산재를 향하던 부부의 카메라는 이내 재난의 현장으로 방향을 튼다. 수많은 사람과 동물의 삶 터전이 화산 앞에서 모두 회색빛으로 변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과 자연에 존재하던 것은 잿빛 죽음 아래서 비로소 평등해진다. 화산재에 뒤덮여 헐떡이는 소와 천천히 감기는 새의 눈 그리고 또다시 이어가야만 하는 살아남은 자의 삶. 아이들은 화산재를 모아 빨대를 꽂고 바람을 불며 논다. 마치 그 화산재가 자기 삶의 터전을 초토화시켰다는 사실을 잊은 듯이 말이다. 부부의 관심이 학술 연구에서 인도주의적 관점으로 확장된 것은 필연이었다.
요컨대 부부는 화산 폭발에서 죽음과 삶을 동시에 봤다. 적어도 화산 폭발의 현장에서는 죽음과 삶이 대립하지 않는다. 모두를 일깨우는 둘 만의 현장. 〈불 속의 연인〉은 이 놀라운 확장의 계기를 선사한다.
*이 글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 받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기자단으로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상영작은 온오프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
- 4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뱀파이어 영화 <씨너스: 죄인들>이 지난주에 이어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난 주말 동안 오프닝 4,800만 달러 대비 고작 6% 하락한 수치인 약 4,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안정적인 흥행세를 기대케 하고 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2위는 개봉 20주년을 맞아 극장가를 다시 찾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가 차지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누적 수익 약 2,5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스타워즈 팬덤의 건재함을 증명했습니다.
3위에는 벤 애플렉 주연의 액션 영화 <어카운턴트2>가 안착하며,
1편의 오프닝 스코어를 소폭 넘어선 약 2,45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국내 박스오피스 역시 왕좌의 자리를 지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유해진, 강하늘, 박해준 등 유수의 배우들이 등장하는 한국 영화 <야당>이 개봉 2주 차에도 1위에 올랐습니다.
누적 관객 수 160만 명을 넘긴 <야당>이 마동석 주연의 오컬트 액션 영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마블의 새로운 히어로 영화 <썬더볼츠*> 등 대형 영화들이 대거 개봉하는 5월 1주 차에도 1위를 지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2위는 누적 관객 수 30만 명의 <마인크래프트 무비>가 차지했으나,
북미 관객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았던 것과 비교해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3위에는 누적 관객 수 200만 명 돌파에 성공한 <승부>가 올랐습니다.
-
- 배고파지는 요리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우리 삶 속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을 주제로 잡아봤는데요!
영화를 보고 나면 배고파지는 영화! 맛있는 음식이 등장하는 영화!를 추천해볼까 합니다.
씨네랩이 추천하는 영화와 함께 음식으로 눈으로 즐겨볼까요?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배고파지는 요리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라따뚜이
Ratatouille, 2007
ⓒ IMDB
synopsis
레미는 쓰레기만 주워먹는 쥐들의 삶을 벗어나 진정한 요리의 세계에 입문하겠다는 꿈을 꾼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들어간 최고급 식당 주방에서 그는 온갖 종류의 위험 속에 처하고, 그러는 가운데 자신의 재능을 꽃피워 나간다. 식당 청소부 링귀니와의 우연찮은 만남으로 레미의 재능은 빛을 발하게되고 둘은 기묘한 우정을 쌓아가며 나름의 생존법을 터득해간다
cine pick!
요리사를 꿈꾸는 쥐라는 독특한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며, 역동적이고 코믹한 연출과
동시에 호소력 짙게 이야기를 전달하였다. 영화 속 나오는 음식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침샘을 자극한다.
줄리 & 줄리아
Jule & Julia, 2009
ⓒ 네이버 영화
synopsis
전설의 프렌치 셰프 ‘줄리아 차일드’ (메릴 스트립). 외교관 남편과 함께 프랑스에 도착한 줄리아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생활에서 먹을 때 가장 행복한 자신을 발견하고 명문 요리학교 ‘르꼬르동 블루’를 다니며
요리 만들기에 도전, 마침내 모두를 감동시킨 전설적인 프렌치 셰프가 되는데...
cine pick!
등장인물이 전체적으로 굉장히 매력적이고, 지치고 무기력할 때 보면 힘이 나는 영화이다.
요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요리에 관심 생기게 만들 정도이며, 식욕을 돋우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메리칸 셰프
Chef, 2014
ⓒ 네이버 영화
synopsis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 칼 캐스퍼는 레스토랑 오너에게 메뉴 결정권을 뺏긴 후 유명음식평론가의 혹평을 받자 홧김에 트위터로 욕설을 보낸다.
이들의 썰전은 온라인 핫이슈로 등극하고 칼은 레스토랑을 그만두기에 이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는 쿠바 샌드위치 푸드트럭에 도전,
그 동안 소원했던 아들과 미국 전역을 일주하던 중 문제의 평론가가 푸드트럭에 다시 찾아오는데…
과연 칼은 셰프로서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까?
cine pick!
영화 포스터에 적혀있는 대로 '절대 빈속으로 보지 말 것"!!
주인공의 엄청난 요리 실력으로, 보고 나면 배가 안 고플 수가 없다.
영화가 가진 메시지도 굉장히 좋고, 이와 더불어 좋은 음악이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리틀 포레스트
Little Forest, 2018
ⓒ 네이버 영화
synopsis
시험, 연애, 취업…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오랜 친구인 재하와 은숙을 만난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재하’,
평범한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은숙’과 함께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끼 한끼를 만들어 먹으며
겨울에서 봄, 그리고 여름, 가을을 보내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게 된 혜원.
그렇게 특별한 사계절을 보내며 고향으로 돌아온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된 혜원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는데…cine pick!
마음이 공허할 때 보면 공허함이 사라지는 ,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힐링 영화이다.
사계절 음식 뿐만 아니라 풍경을 다 담아 영상미도 무척 예쁜 영화이다.
카모메 식당
Kamome Diner, 2006
ⓒ 네이버 영화
synopsis
싱키의 길모퉁이에 새로 생긴 카모메 식당. 이곳은 야무진 일본인 여성 사치에(고바야시사토미)가 경영하는 조그만 일식당이다.
주먹밥을 대표 메뉴로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지만 한달 째 파리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다.
그래도 꿋꿋이 매일 아침 음식 준비를 하는 그녀에게 언제쯤 손님이 찾아올까?
일본만화 매니아인 토미가 첫 손님으로 찾아와 대뜸 ‘독수리 오형제’의 주제가를 묻는가 하면, 눈을 감고 세계지도를 손가락으로찍은 곳이 핀란드여서 이곳까지 왔다는 미도리(가타기리 하이리)가 나타나는 등 하나 둘씩 늘어가는 손님들로 카모메 식당은 활기를 더해간다.
사치에의 맛깔스런 음식과 함께 식당을 둘러싼 사연 있는 사람들의 정체가 서서히 밝혀지는데….
cine pick!
영화가 아닌 현실 속 누군가의 일상을 보는 듯 편안한 분위기 속 진행되는 이야기.
영화 자체는 잔잔하지만, 마음에 큰 파도를 일으키는 영화이다.
개그 코드가 맞다면 웃기기까지 한 인생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족: 라멘샵
Ramen Teh, Ramen Shop, 2018
ⓒ 네이버 영화
synopsis
아빠의 요리 ‘라멘’과 엄마의 요리 ‘바쿠테',
둘이 만나 가족 레시피가 탄생했다.
오직 당신을 위해 요리하는 깊고 진한 가족의 맛,
따뜻한 한 그릇을 대접합니다.cine pick!
로튼 토마토 신선도와 관객 지수 80%의 높은 평가를 받은 영화.
3대 국제영화제를 휩쓴 쿠 감독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며,
일본과 싱가포르를 배경으로 하여 이국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시각적 볼거리가 가득한 영화이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
- 61세의 톰 형,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얘들아!"
마지막 임무
영화의 첫 장면은 잠수함 ‘세바스토폴’호에서 시작한다. 이 배는 완벽하게 스스로를 숨길 줄 안다. 어떤 탐지에도 잡히지 않는 세바스토폴 호. 배 안에는 군인들이 탄 것 같다. 하지만 이 날은 달랐다. 갑자기 레이더에 무언가가 잡힌다. 전투태세를 갖추는 세바스토폴 호. 어뢰를 발사한다. 그런데 갑자기 레이더에 적이 잡히지 않는다. 어리둥절하는 배 안 군인들. 레이더가 오작동한 것으로 파악한다. 그럼 그렇지.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세바스토폴 호가 직접 발사했던 어뢰가 방향을 꺾어 스스로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발사한 무기가 결국 자충수가 되어버렸다. 배는 결국 부서졌고 군인들은 전부 전사한다.
다시 현재. 에단 헌트가 건물 안에 덩그러니 있었다. 에단을 찾아온 한 남자. 그 남자는 IMF 요원이었다. 누가 봐도 신입 요원이었던 남자. 에단은 그에게 애정 어린 조언 몇 마디를 건넨다. 외로워 보이는 에단. 하지만 이런 그에게 임무가 주어졌다. “두 열쇠가 있다. 한 열쇠는 행방이 묘연하지만 다른 하나는 당신의 친구 일사 파우스트가 갖고 있다. 이 두 열쇠를 갖고 돌아오길 바란다. 아. 네가 IMF에 어떻게 들어오게 됐는지 잊지 않길 바란다”라는 말이었다. 이번엔 또 뭐지? 에단 헌트는 자기 앞에 놓인 임무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전투기 타고 바로 돌아왔지
5년 만에 돌아온 시리즈의 신작이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는 1996년이었다. 1편이 뛰어난 액션영화였다는 것은 이견이 없지만 이 7편처럼 스케일이 큰 영화는 아니었다. 당시 이단 헌트와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모두 살해당하고 누명을 써 주인공이 이를 벗어나는 것이 작품의 핵심 플롯이었다. 본작처럼 전 세계의 정보망을 하나로 조종해 인류의 위기를 유발할 무언가는 아니었다. 이야기는 점층법처럼 점점 스케일을 키워간다. 언제는 부르즈 할리파에 맨 몸 비행기에 달라붙어 무조건 버티던 에단 헌트가 선하다. 이야기의 넓이만큼이나 액션의 수위(?)가 더 커졌던 것이다.
사실 같은 시리즈 영화 7편이 나오면 물릴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액션을 매번 다르게 보여줘야 한다는 건 분명한 부담이다. 영화는 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반대측면에서 시리즈의 후속작이기 때문에 전작을 오마주한 부분도 분명 있다. 이는 한 장면에서 변주와 승계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느껴진다. 1편 <미션 임파서블>을 봤던 관객들이라면 하이라이트 액션신이 벌어졌던 곳이 어딘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벌어지는 액션신은 돌아보면 익숙하지만 처음 볼 때는 완전히 새로운 쾌감을 선사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응하기
영화에서 빌런을 묘사하는 방식이 아주 흥미롭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바로 톰 크루즈의 맨몸액션이다. 2편에서 볼 수 있었던 직접 하는 암벽등산, 4편의 부르즈 할리파에서 살아남기 등등 스턴트를 최소화하고 직접 보여주는 액션신은 보기만 해도 고통스럽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첩보전의 양상이다. 1편에서부터 묘사하고 있는 적들은 최소한 인간이다. 이는 imf가 ‘미국’이라는 존재를 상징한다고 했을 때 이런 선악구도를 어떻게 기획했는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국제정세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의 유행으로 시각을 옮겨가도 마찬가지다. 마블이 MCU를 만들어서 시리즈를 이끌었고,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카체이싱을 떠나 빌런과 대결하고 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전통과 근본이 있는 건 현대의 관객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1편이 개봉한 지 현재 26여 년가량이 지났다. 이걸 그대로 끌고 오는 게 과연 좋은 선택일까?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션 임파서블’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이는 액션뿐만 아니라 새로운 수를 갖고 와야 한다.
영화는 이 빌런 세팅으로 이러한 세태에 대해 대답한다. 그걸 핵심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누구일까? 글쓴이는 세 사람이라고 본다. 이는 후술 하기로 하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해 보이는 대사는 예고에서 나오는 문장이다. “인생은 모든 선택의 결과이며, 너는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라는 말이다. 이 문장을 해석하는 건 간단하다. ‘네 운명이 정해져 있다’라는 의미이다. 범죄사실로 잡혀온 피의자가 재판받기 전의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다 죄인은 아니다. 사람에겐 자유의지가 있어서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다. 작중에서 에단 헌트가 어떤 과정을 통해 imf요원이 됐는지가 들어갔다는 걸 보면 이 이야기의 설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졌는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이제 인류가 직면한 선악개념은 무분별하다. 극 중에서 제시되는 IMF 요원과 두 캐릭터처럼. 이 과정을 묘사하는 방식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좋은 수였다.
일사 파우스트
영화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여성 캐릭터들이다. 특히 일사 파우스트 캐릭터가 가장 훌륭하다고 느꼈다. 이 여성 캐릭터들이 무슨 스테레오타입의 무언가를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인물들은 다 조금씩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캐릭터들이 구체적으로 어떻다고 말하는 것은 스포일러가 된다. 하지만 레베카 퍼거슨이 맡은 일사 캐릭터는 시리즈에서 꾸준히 나왔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을 것이다. 글쓴이는 이 영화에서 등장했던 모든 캐릭터들 중에 이 ‘일사’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일사의 핵심은 모호함이다. 일사는 첫 등장이었던 5편부터 선역인지 악역인지 히로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던 캐릭터였다. 자기가 속해있던 조직인 m16을 위해 행동하는 듯 하지만 에단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모호함의 속성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뒤집는다. 어떻게? 사막에서 벌어지는 액션신이다. 모래가 강하게 휘날리기 때문에 상대방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서 일사가 어떤 행동을 한다. 이 장면은 사실 우리가 5,6편에서 봤던 일사의 모습을 단적으로 함축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호함을 다른 방식으로 대비시킨 측면이 있다. 이는 그레이스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레이스와 일사의 대비 중 차이점을 드러내는 방식이 일사에게 개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레베카 퍼거슨 개인의 카리스마와 액션 퍼포먼스 소화능력과 별개로 감독이 어떻게 이야기를 잘 설계했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반대로 영화에서 빌런 캐릭터인 '가브리엘'은 살짝 아쉽게 느껴졌다. 일단 이름이 왜 가브리엘일까?라는 점은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성경에 등장하는 ‘가브리엘’에서 따왔다고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스스로를 신의 사도로 생각하는 것 말고 캐릭터의 속성을 알 기 어려웠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의 전제적인 이야기 전개가 과하게 두다다다 던지고 그냥 어물쩍 넘긴 느낌? 이 가브리엘에 대한 부족한 설명은 영화 전체적인 연출 방식과도 이어진다. 무슨 말인진 모르겠는데 일단 가브리엘이 위협적인 것처럼 보인다. 뭔진 모르겠는데 저 아저씨가 무섭다. 이런 점에서 관객들이 가브리엘과 관련한 무언가는 연출이 디테일을 챙기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액션 연기의 극단
이 영화는 강력한 액션 서스펜스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2023년까지 블록버스터/액션 장르에서 영화제작자들이 액션 시퀀스를 연출하는 방식의 많은 비중은 컴퓨터 그래픽에 있었다. 이 ‘미션 임파서블’은 또 사이즈가 다른 액션 설계에 장점이 있는 편이다. 이 영화에서 불 수 있는 액션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가도 정말 긴장감의 극단까지 끌고 간 흔적이 돋보인다. 하지만 글쓴이가 이 영화가 액션 장르영화로서 아주 좋다고 느꼈던 부분은 톰 크루즈가 생사를 가로지르는 연기를 보여줘서는 아니다. 바로 고전적인 맨몸 액션 연출 때문이다. 특히 일사와 에단이 각각 상대방과 보여주는 액션은 정말 대단했다. ‘블랙 위도우’의 스칼렛 요한슨보다 이 ‘일사 파우스트’가 액션 더 잘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톰 크루즈가 하이라이트 신에서 보여주는 액션은 이 사람이 나이가 정말 무색할 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했구나라는 걸 느끼게 한다.
-
- [JIMFF 데일리] 처음 그리고 계속
처음 그리고 계속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리뷰감독] 권하정, 김아현
출연] 권하정, 김아현, 구은하, 이승윤
시놉시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 최종 우승자이자 "장르가 30호"라는 수식어로 불리며 일약 스타가 된 이승윤이 유명인이 되기 직전, 우린 무명이었던 그를 찾아갔다. 우연한 기회로 그의 노래를 듣고 팬이 된 우리는 2년 뒤 무작정 그를 찾아가 뮤직비디오를 찍어주겠다고 했다. 뮤직비디오는 한 번도 찍어본 적 없는 무명인들의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시작으로 우리들의 이름을 되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음악 예능을 좋아한다. 무대를 준비하는 가수들의 고생이 너무 느껴져서 미안할 정도지만, 아무튼 좋아한다. ‘무명 가수’들의 이름을 가리고 진행되었던 경연 프로그램 ‘싱어게인’도 열심히 봤다. 모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볼 수 있어 더욱 좋았다. 가수 이승윤의 우승 후, 이전에 그가 남긴 말들이 인상깊다는 말을 듣고 과거의 라디오를 찾아 들어보았다. 이루지 못했으면서 애초에 꿈꾸지 않은 척하는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 올해 사활을 걸고 뭐든 할 것이라는 말을 미래에서 듣는 기분이 묘했다. 그가 사활을 건 결과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알기에.
당시 내게 아무런 성장이 없는 듯해 괴로웠던 때였기에, 라디오를 듣고 일기를 썼다. 내 글이 읽히면 좋겠다고. 글쓰기를 자기만족만으로 한다는 건 내게, 사실 이루지 못했으면서 꿈꾸지도 않은 척하는 거짓말이라고. 지치지 않으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자고 일기장에 썼다. 그리고 지금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데일리에 글을 쓰고 있다. 내일 일은 알 수 없지만, 아직 나는 지치지 않았고 또 행복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었다.
처음: 안녕 난 무명성 지구인이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영화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힘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더없이 진솔하게 담았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촬영되던 시점을 기준으로 미래인 지금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노래했던 이는 ‘유명’ 가수가 되었고, 이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영화제에서 매진 행렬을 기록했다는 것을. 그러나 카메라가 돌아가던 그때의 이들에게는 미지의 일이다.
이들은 아직 모든 게 처음이다. 영화를 전공하고 뮤직비디오라는 낯선 세계에 성큼 뛰어든 것도, 정성스러운 작업물을 받고 뮤직비디오 촬영을 협업하는 것도.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처음이라는 점에 기가 죽어 우려하기보다,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더 적극적으로 일한다. 전문가들이 연신 말하는 ‘No’를 들어도, 코로나바이러스로 발이 묶여도, 어떡하지 싶은 순간에도 계속해서 해야 할 일들을 한다.
이들은 서로가 다 처음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힘을 얻는다. 시작했고, 하고 있다는 자체로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이 된다. 각자의 처음을 나란히 어깨동무처럼 걸치고 더 힘이 되어주는 마음이다. 모두가 그런 마음이었기에, 이들이 ‘듣보인간’이든 ‘무명성 지구인’이든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툰 시작을 불안해하는 모든 이들이 참고할 법한, 다정하고 안전한 자세다.
계속: 힘든 길은 같이 올라가자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점은 뮤직비디오를 준비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협업이다. 옷을 입어보거나 비대면 회의 중에 오물오물 뭔가를 먹는 등 사소한 일상에서도 재미있는 것을 숨 쉬듯 발굴해 내고, 둥근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음식을 먹고,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신뢰하며, 의견을 경청한다.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 때나, 마음이 복잡할 때, 부끄러울 때조차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털어놓은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여 주면서도 서로 다정한 말을 쌓아 올려준다.
‘영웅 수집가’라는 강렬한 곡을 데모 버전으로 받아 밑그림을 그리면서, 농담처럼 “이렇게 데모 받았는데, 나중에 어쿠스틱 돼 있고…” 하며 웃는 모습은 이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최종 완성본이 아니기에 다른 느낌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데모 버전 노래처럼, 이들이 하는 일 자체가 오락가락한다. 커졌다 작아졌다, 뚜렷했다 희미했다 반복하는 구불구불한 언덕길이지만 이들은 밝은 에너지로 웃으며 올라간다. “오르기 힘든 길은 같이 올라가자!” 외치면서. 설령 그 뒤에서 우황청심환을 먹거나 26시간째 깨어 있을지라도.
이들의 노력은 두 편의 뮤직비디오와 한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로 열매를 맺었지만, 설령 열심히 한 프로젝트가 중간에 엎어졌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우리가 이들의 다른 열매를 만나볼 수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이미 죽어버린 노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눈물이 났던 것 같”다던 이승윤의 노래가 우리 곁에 흐르고 있듯, 이들의 프로젝트 또한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찾아왔을 것이다. 꼭 세상의 성공이 기준일 필요는 없지만, 서로 다독이고 격려하고 신뢰를 주고받으며 ‘으쌰으쌰’ 애쓰는 이들이라면, 이런 사랑스러운 협업은 자랑스러운 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평생 이렇게 살래
열심 있게 시작해서 뚝심 있게 계속해 가도, 어느 선 이상으로 가면 지칠 수밖에 없다. 지쳤지만 일에 계속 몰두해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얼굴은 마치 아수라 백작처럼 일의 기쁨과 슬픔이 반반씩 묻어나기 시작하는데… 그 상태로 시장을 뒤져 소품을 준비하고, 몰드에 석고를 떠서 직접 소품을 만들고, 세트장을 조금씩 세워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 승모근까지 뻐근하게 아파지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들은 짜증이나 투정이 아닌 미소와 함께 말한다. “평생 이렇게 살래!” 비록 “하루 3~4시간씩 자면서 이렇게 일하는 거 되게 힘들다”는 말이 바로 딱 돌아오지만, 평생 이렇게 살겠다고 툭 내뱉은 권하정 감독의 얼굴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는 피로와 행복이 물씬 느껴졌다.
창작하는 마음은 결국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깊이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마음 끝에서 손을 움직일 때, 결과물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 같다. 처음 이승윤이라는 가수에게 제안을 보내기 위해 ‘무명성 지구인’ 뮤직비디오를 가내 수공업으로 만들면서, 스마트폰을 끼운 삼각대를 드르륵 밀며 어설픈 달리 인, 달리 아웃을 하던 이들이 이제는 뮤직비디오 현장에서, 제대로 레일을 깔고 달리 인, 달리 아웃을 하며 이승윤을 직접 찍은 것처럼. 아주 멀어 보이는 것들도 그렇게 한 걸음에서 시작되고, 그 한 걸음은 언제나 “평생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는 깊은 애정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애정에는 전염성이 있다. 묵묵히 사랑해온 음악에 사활을 걸었던 이승윤의 음악이 두 감독에게 또 수많은 사람에게 전해진 것처럼. 두 감독의 영화가 수많은 사람에게 ‘처음’ 그리고 ‘계속’의 감각을 일깨워준 것처럼. 그래서 우리가 두 감독을 응원하게 되는 한편, 나도 무언가 시작하고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솟는 것처럼.
두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관객과 만나면서 “계속해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 “계속”이라는 말이 내 마음에도 와 박혔다. 두 감독을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관객으로서 앞으로도 그들을 더 만나고 싶다. 더 이상 ‘듣보인간’이 아닌 이들의 또 다른 생존신고가 언젠가 유리병 편지처럼 동동 찾아오는 날을 기대해 본다.
-
- <스파이 코드명 포춘>가이 리치에게 기대치 않은 무언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전 세계를 파괴할 만한 위력을 지닌 무기 '핸들'이 도난당한다. 이에 영국 정보부는 '네이선'(캐리 엘위스)에게 '핸들' 회수를 의뢰한다.
경쟁자 '마이크'보다 먼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네이선은 최고의 팀원을 소집한다. 업계 최고의 스파이 '포춘'(제이슨 스타뎀), IT 전문가 '사라'(오브리 플라자), 만능 요원 'JJ'(벅지 말론)까지.
그들은 '핸들'의 거래를 담당하기로 알려진 세계적인 무기상 '그렉'(휴 그랜트)에게 접근하기로 결정하고, 그렉이 가장 좋아하는 할리우드 스타 '대니'(조쉬 하트넷)를 포섭해 임무에 나선다.
첩보 영화의 과거와 현재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장르가 없지만, 첩보 영화는 유난히 시대적 흐름에 민감하다. 첩보물은 국가의 역할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 스파이 영화의 핵심은 이해관계다. 첩보원, 기관, 국가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서스펜스는 극대화된다. 따라서 변화하는 국가의 역할, 이익을 반영하기에는 첩보물만 한 장르가 없다.
예를 들어 냉전이 한창일 때 미국, 영국 첩보 영화에서는 소련이 주요 적국이었다. 냉전이 끝나갈 때쯤에는 북한 같은 공산권 국가가 표적이었다. 9.11 테러를 기점으로는 이슬람 테러 조직이 자주 등장했다. '테러와의 전쟁'이 끝난 후에는 자성의 물결이 일었다. <본> 시리즈처럼 국가의 폭력으로 인한 희생자와 피해자의 역공을 다뤘다. 즉, 첩보 영화는 각 시대마다 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을 보여줬다.
그다음은 뭘까? 관객과 시민은 어떤 적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까? <스파이 코드명 포춘>은 나름대로 답을 내놓는다. 가이 리치의 첩보 영화는 국가의 영역에서 벗어나 국가의 기능을 잠식해 가는 적을 겨냥한다.
'진짜와 가짜'에 주목하라
보통 가이 리치 영화는 화려한 편집과 연출 스타일을 즐기는 오락 영화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스파이 코드명 포춘>은 기대와 다르다. 의외로 깊은 스토리와 플롯이 먼저 눈길을 끈다. 그 중심에는 '진짜와 가짜'라는 모티브가 있다.
IT 재벌 빌런은 전 세계 금을 전부 매입한다. 고차원 AI인 '핸들'을 이용해 디지털 금융 세계를 유명무실화 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다. 계좌 상 숫자는 사라질 수 있는 약속에 불과하고, 오직 금만 실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노린다. 비슷한 뉘앙스의 대사도 반복된다. 작전이 막힐 때마다 포춘은 사라에게 직접 현장에서 부딪히라고 말한다. IT 전문가라고 의자에만 앉으면 안 된다면서.
'진짜와 가짜'라는 모티브에 주목하면 어색한 장면이 필요한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사실 작중 휴 그랜트와 조쉬 하트넷은 이상할 정도로 높은 비중과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그나마 그렉은 '핸들'의 거래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할리우드 스타 대니는 대체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아무리 그렉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라고 해도.
하지만 대니의 서사를 뜯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의 이야기는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진짜를 찾아가는 여정이나 다름없다. 일례로 그는 포춘의 협박 때문에 작전에 참여한다. 포춘은 그에게 자기 자신을 연기하면 된다고 조언한다. 이를 기점으로 그는 달라진다. 꺼져가던 연기에 대한 불씨를 다시 키우기로 마음먹는다.
그 이후도 마찬가지다. 촬영장에서 스턴트 연기를 하던 그는 자기가 촬영 때 탔던 소품 차를 몰면서 진짜 카 체이싱을 펼친다. 다음 작품에서 억만장자 백역을 연기할 때는 억만장자가 썼던 진짜 대사와 제스처를 고스란히 따라 한다. 이처럼 그는 진짜와 가짜 중 전자를 찾아가는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첩보원이 아닌데도 첩보 영화에서 비중이 큰 이유다.
진짜 적을 찾아서
이에 더해 '진짜와 가짜'는 첩보 영화의 현재를 엿볼 수 있는 모티브라서 중요하다. 이 영화 속 빌런은 철저히 모습을 숨긴 상태로 진행된다. 보이는 적이 있고, 진짜 적이 따로 있다. 이를 빌런의 존재와 결합하면 꽤 의미심장하다. IT 기업가, PMC를 연상시키는 프리랜서 첩보 집단, 무기 거래상은 손을 잡고 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을 대신하고 있는 주체들이 흑화해서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한다.
이는 <위기의 국가>에서 바우만과 보르도니가 지적한 바와 같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는 초국가적 자본, 기술, 조직에게 권력을 내줬다.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중재자, 경제 규제의 주체, 안전의 보장자라고 보기 어렵다. 이처럼 국가의 영역을 벗어나서 국가가 통제하지 못하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 그들이 내포한 위협을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스파이 코드명 포춘>은 바로 이 대목을 겨냥하는 영화다.
그러다 보니 인공지능이 등장해도 <미션 임파서블 7>과는 결이 다르다. <미션 임파서블 7>에서는 인공지능이 빌런이었다. 하지만 <스파이 코드명 포춘>에서는 AI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문제다. 달리 말해 인공지능은 그저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마지막 장면까지 등장하지만, 미묘하게 이야기의 핵심은 아니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 3>의 토끼발 같은 맥거핀이다. 이조차도 '진짜와 가짜' 놀이 안에 있는 셈이다.
오락 영화라는 변명 혹은 핑계
그런데 <스파이 코드명 포춘>은 여기서 멈춘다. 문제의식의 핵심은 건들지 않는다. 영화 속 스파이 묘사가 대표적이다. 작중 첩보원은 프리랜서다. 스포츠 스타나 다름없다. 스카우트할 수도 있고, 이적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 임무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고, 커리어를 쌓는 일이다. 국가의 대리인으로서 고뇌하던 이전까지의 스파이와는 다르다. 제임스 본드, 제이슨 본, 이단 헌트, 심지어 킹스맨과도 다르다.
역으로 그렇기에 그들의 존재는 더 섬뜩하다. 그들에게는 사명이나 책임감이 없다. 내적 갈등도 없다. 돈만 준다면, 조건만 맞춰주면 그들은 언제든 영화가 지목한 잠재적인 적이 될 수도 있다. 마이크와 네이선의 경쟁 구도처럼. 네이선이 포춘을 애국자라서 고용한다는 말이 단순한 농담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영화는 묘한 경계선을 이용하지 않는다. 국가의 영역이 상업화되는 세태를 다룰 듯하다가 이내 잊는다. 아군도 적도 될 수 있다는 양면성은 유머의 소재로 휘발된다. 이번에는 어디로 휴가를 갈지, 어떤 와인을 마실지 고민하는 이들 앞에서 주제 의식은 무의미하다. <007> 시리즈 같은 첩보 영화와 비교하면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007> 시리즈도 엄연히 오락 영화이고 상업 영화라는 걸 고려하면 더 그렇다.
장르에 충실해서 문제다
또 다른 문제도 파생된다. 상술했듯이 <스파이 코드명 포춘>의 스토리텔링은 첩보 영화치고 얕다. 그런데 반대로 연출이나 편집은 지나치게 첩보 영화스럽다. 그래서 영화 자체의 매력이 약하다. 언뜻 듣기에는 이상한 말이다. 장르에 충실해서 문제라니? 하지만 감독이 가이 리치라면 말이 된다. 가이 리치 영화는 장르적 쾌감 못지않게 독특한 스타일이 빛날 때 호평받기 때문. 안타깝게도 <스파이 코드명 포춘>은 해당되지 않는다.
가이 리치 스타일은 독보적이다. 그는 템포를 가지고 논다. 쉬어갈 때는 확실하게 분위기를 잡다가, 필요한 순간에는 빠른 편집과 의도적인 급전개로 관객을 현혹한다. 특히 편집이 인상적이다. 한 편의 영화를 서로 다른 시점과 시간대로 분해한 후 짜 맞추는데 능하다. 전작인 <캐시 트럭>도 현재 시점, 6개월 전, 5개월 전 3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전체 퍼즐을 맞춰가는 재미가 있다.
<스파이 코드명 포춘>에는 그 맛이 없다. 시간 순서를 뒤집고 화려한 화면 분할을 활용하는 장면은 팬서비스처럼 스쳐 지나간다. 제이슨 스타뎀이 '핸들'을 훔쳐간 테러리스트 거처에 침입했다가 빠져나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캐릭터나 정보량이 많아서 기존 스타일을 고집하면 영화가 난잡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직전 작품인 <젠틀맨>과 <캐시 트럭>이 워낙 색깔을 잘 보여줬기에 아쉬움이 크다.
어떤 의미로든 밋밋한 하위 호환
액션도 기대 이하다. 일반적으로 가이 리치는 액션을 평범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작전을 세우는 장면과 작전을 실행에 옮기는 장면을 대비한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세련된 액션을, 그렇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유머와 쾌감을 즐길 수 있다. <셜록 홈즈>에서 홈즈가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하거나 <킹 아서>에서 아서의 런던 침투 계획이 어그러진 장면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스파이 코드명 포춘>은 분량도 적지만, 개성도 없다. 볼만한 맨몸 액션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액션씬은 대부분 제이슨 스타뎀의 역량에 기댄다. 그 결과 다른 첩보 영화에 비해 눈을 사로잡을 만큼 차별화된 개성이나 매력을 느끼기는 어렵다. '가이 리치라면 달라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도 특유의 유머 감각은 살아 있다. 서로 빠르게 주고받는 영국식 유머를 재치 있게 활용한다. 누구 한 명 빼놓지 않고 혀놀림이 화려하다 보니 유머 타율도 나쁘지 않다. 007을 비튼 대목도 재밌다. 마티니를 찾는 본드랑 달리 포춘은 최고급 와인만 고집한다. 이 티키타카만 즐겨도 영화는 충분히 흥미롭다.
종합하면 <스파이 코드명 포춘>은 인기 첩보 시리즈의 하위 호환이라는 인상이 짙다. 소재나 주제의식은 근래 <007> 시리즈에 미치지 못한다. 영화의 구성은 <미션 임파서블>을 연상시킨다. 팀업무비라는 점이나, 팀원들의 역할 분배가 겹친다. 유일한 차별화 방법도 놓쳤다. 가이 리치 감독의 스타일을 강조하는 대신 장르의 관습에 기댄다. 그 결과 <스파이 코드명 포춘>은 여러모로 가이 리치에게 기대하지 않은 결과물이 됐다.
Acceptable 무난함
'가이 리치'도, '첩보 영화'도 뽑다 말았다
-
- 하루만에 넷플릭스 전세계 1위 한국 드라마 지옥 정주행 하기(해석)
넷플릭스 오리지날 한국 드라마 지옥 1~3 편의 내용입니다.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
-
- 영화 <북스마트>
- 춤은 글로, 파티는 책으로 배운 두 사람은
고3의 마지막 졸업 파티에서
잊을 수 없는 레전드 핵인싸가 되기 위해
사상 초유의 일탈을 계획하는데…
-
- 넷플릭스 <아케인> 공개 발표 예고편
[2021년 가을, 넷플릭스 공개]
《리그 오브 레전드》 제작진이 선보이는 신작 애니메이션 시리즈, 《아케인》이 곧 찾아온다.
모두가 꿈꾸는 유토피아 필트오버, 억압적이고 끔찍한 지하 세계 자운.
두 세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두 명의 리그 챔피언이 전설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간다.
그리고 불가사의한 힘이 그들을 어떻게 갈라놓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