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28 14:58:16
4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20주년을 맞아 재개봉한 <스타워즈 3>, 북미 박스오피스 2위 등극!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뱀파이어 영화 <씨너스: 죄인들>이 지난주에 이어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난 주말 동안 오프닝 4,800만 달러 대비 고작 6% 하락한 수치인 약 4,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안정적인 흥행세를 기대케 하고 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2위는 개봉 20주년을 맞아 극장가를 다시 찾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가 차지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누적 수익 약 2,5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스타워즈 팬덤의 건재함을 증명했습니다.
3위에는 벤 애플렉 주연의 액션 영화 <어카운턴트2>가 안착하며,
1편의 오프닝 스코어를 소폭 넘어선 약 2,45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국내 박스오피스 역시 왕좌의 자리를 지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유해진, 강하늘, 박해준 등 유수의 배우들이 등장하는 한국 영화 <야당>이 개봉 2주 차에도 1위에 올랐습니다.
누적 관객 수 160만 명을 넘긴 <야당>이 마동석 주연의 오컬트 액션 영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마블의 새로운 히어로 영화 <썬더볼츠*> 등 대형 영화들이 대거 개봉하는 5월 1주 차에도 1위를 지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2위는 누적 관객 수 30만 명의 <마인크래프트 무비>가 차지했으나,
북미 관객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았던 것과 비교해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3위에는 누적 관객 수 200만 명 돌파에 성공한 <승부>가 올랐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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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 싫어서 | 모험은 위험할수록 좋으니까
계나는 한국을 떠난다.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 더는 못 살 것 같아서.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의 졸업장, 안정적인 직장, 오래 사귄 금수저 남자친구, 그와의 결혼, 조금만 버티면 다가올지 모르는 약간 더 나은 미래. 이런 것들은 계나에게 행복이 되어주지 못한다. 계나는 불확실한 내일을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당장 행복하고 싶다. OECD국가 중 자살율 1위인 이곳에서 계속 살다간 ‘자살하거나 암 걸려 죽거나 둘 중 하나‘라는 비관적 결론에 이른 계나는 떠난다. 영하의 날씨에 어깨를 움츠리지 않아도 되는 따뜻한 나라로. 지구 반대편의 뉴질랜드로.
뉴질랜드로 떠난 계나의 삶은 순탄치 않다. 행인에게 영어 실력을 지적당하고, 인종차별을 일삼는 직장 동료도 있다. 한순간의 치기로 재판에 회부되기도 한다. 영화는 외부인으로서의 계나의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도망친 곳이 낙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계나는 여러 인물들의 죽음에 함께 있다. 이번이 마지막 겨울이기를 바랐던 고시생 친구 경윤의 죽음, 돈 대신 행복을 모으라던 희망 전도사의 죽음, 겉으로는 완전해 보였던 하준이 가족의 죽음까지. 계나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도망쳐도 나름의 추위와 슬픔은 존재한다는 것을.
계나의 행복은 소박하다. ‘춥고 배고프지만 않으면’ 행복한 계나에게 한국에서의 매일은 시리고 굶주리다. 겨울이 아닐 때에도 발걸음은 종종거리고 어깨는 한없이 움츠러든다. 모든 것에 계급이 존재하고, 자신의 위치에 집착하고, 타인의 인정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한국에서 계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자꾸만 매년 더 추워지는 겨울이다. 뉴질랜드가 계나의 낙원이 아닐지라도, 추울수록 가난이 드러나는 얇은 코트를 걸치고 한없이 초라해지지 않아도 되기에 계나는 그곳에서 자유롭다.
이 영화는 번잡하게 시점을 넘나들고, 감정이 넘치고, 결론이 모호한 불친절한 영화이다. 엔딩에서 계나가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영화를 관통하는 한 문장을 추출해 보자면 포기는 결코 뒷걸음질이 아니라는 말이 되겠다. ‘공기 좋고 햇빛 잘 드는 것’이 행복이라던 경윤은 마지막 기회를 포기하지 못해 시들었으나, 한 학기 남은 졸업을 포기하고 다른 꿈을 찾은 재인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뉴질랜드로 온 계나는 뉴질랜드에서의 학위 또한 내던진 채 또다른 따뜻한 나라로 떠난다.
사실 행복은 과대평가된 개념일지도 모른다. 거창해 보이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사소하고 주관적이며 모두가 원하는 것이 행복일 것이다. 지나온 길을 포기하지 못해 잔혹한 현실에 기대어 행복을 향유하지 못하는 청춘들에게 영화는 새로운 마음을 먹었다면 포기는 뒷걸음질이 아니라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된다고 말한다.
영화 속 재인의 삶이 ‘희망편‘이라고 한다면, 계나의 삶은 지독하게도 ’현실편‘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뉴질랜드에 정착해서 살게 된 재인과는 달리, 계나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시행착오 속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또다시 한국을 떠나는 계나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어떠한 다짐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시는 춥지 않겠다고, 더 따뜻한 곳을 찾고야 말겠다고. 이 시험에 붙지 않더라도 어딘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있겠지? 라고 묻던 경윤의 질문에 새로이 가방을 싼 계나는 이번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어때. 그걸 찾느라 좀 헤매면 어때. 그게 한국이 아니면 어때.
영화는 명확한 끝맺음을 주기보다는 그저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자꾸만 한국을 떠나려는 계나에게 어디로 가나 힘든 것은 똑같다고,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옳다며 참견하고 싶어진다면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 계나가 한국을 떠나 행복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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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 있다면 지르자, 다만 현실은 잊지 말고
1957년 런던, 전쟁에 나간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살고 있는 ‘해리스’는 청소부로 일하던 가정집 부인의 값비싼 디올 드레스를 발견하고 아름다움에 빠진다. 이후 오랜 시간 기다려온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게 된 ‘해리스’는 이제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벌어온 돈을 모아 막연히 꿈만 꾸었던 디올 드레스를 사기 위해 파리 여행을 결심한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도 잠시, 파리의 디올 매장에서 무시를 당하는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게 되는데…
1. 흔한 듯 흔하지 않은 판타지
처음엔 이 영화가 '에밀리, 파리에 가다'와 뭐가 다른 걸까 생각했었다. 파리라는 도시가 가진 상징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흔하디흔한 영화구나 라고 생각했다. 뭐, 이를테면 미드나잇 인 파리 같은 영화였달까.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나이가 들대로 든 중년과 노년 그 어딘가에 있는 여성이라는 점이 차별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여성이 젊은시절 누리지 못한 외적 허영을 충족하는 과정을 응원하게 될 뿐더러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연륜의 짬바가 참 따뜻하다고 느껴진다. 역시 인간은 해보고 싶은 걸 해보고 살아야 이후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걸 해리스 부인을 보면 느낄 수 있다. 최근 들은 어른의 말씀 중 좋은 말이 "젊었을 때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는 게 늦바람 불어 주변인에게 민폐끼치는 것보단 낫다."였는데 해리스 부인을 보면서 남편이 죽고 나서야 자아를 찾아나선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에 무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그 모습이 별거아닌 거 같아도 멋있어 보였다.
2. 겉모습과 속사정은 누구나 다르다
다분히 영화적 설정으로 배치된 러브라인이 보이지만 그 러브라인을 이어주기 위한 미시즈 해리스의 오지랖도 적당히 따뜻해서 좋았다. 패션계에 종사하는 두 남녀는 누구보다 철학을 사랑하는 반전이 눈길을 끈다. 그들은 허영과 사치의 상징과도 같은 패션계에 종사하면서도 직업과 당신의 삶을 동일시하지 않고 분리함으로써 인생의 동력을 잃지 않는 점이 그들의 멋있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설정이 참 새로웠던 것이, 겉모습이란 참 얄팍한 것이라서 해리스 부인같은 청소부도 디올 드레스를 살 수 있다는 생각들을 못하고, 모델이 철학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들을 잘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외모로 평가하는 사람일수록 당신의 얄팍함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다양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한다는 점만으로도 '에밀리 파리에 가다'와는 달리 파리에 대한 판타지 충족만 하지 않는 나름 알맹이가 있는 영화라는 인상을 준다.
3. 판타지를 쫓되, 현실도 잊지 말 것
세상엔 당신이 현실은 무시한 채 갖지 못한 것에만 몰두하며 남에 대한 부러움으로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리스 부인도 당신이 누리지 못한 화려함을 쫓아 파리에 오지만 곧 이 세계에서 당신은 청소부라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깨닫고 잠시 낙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갖지 못한 화려함의 환상에 젖어 허우적대지만은 않고 다시 노동자로서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어른으로서 파업을 주도하는(약간은 오지랖이지만) 모습은 그녀가 환상에 젖어 당신의 위치를 버리는 무모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꿈을 이루려는 행위는 고귀하지만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그저 지르는 행위는 무모하고 이기적일 수 있다. 특히 결혼한 사람이라면 더하다. 현실의 상황을 유념하고 지를 것. 내 현실을 잊지 않은 상태에서 약간의 무모함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성취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꿈을 이룬다는 명분 하에 현실을 때려치우면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리스 부인도 파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청소부로 돌아오지만 그녀는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있다. 부당함에 조금 더 소리칠 수 있게 되었고, 조금 더 자신감을 찾았기 때문인데, 이런 그녀의 모습을 통해 판타지에 젖어 현실을 대단히 뒤바꾸지 않아도 내가 조금만 바뀌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내가 판타지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판타지를 이룰 기회는 금방 사그라든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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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쾌한 느낌표 대신 도덕적 자문의 물음표
나쁜 짓을 해서라도 짐승만도 못한 이들을 처단하는 이야기가 환영받는 시대! 근데, 그 나쁜 짓이 살인이라면, 그리고 그 횟수가 많아진다면, 과연 우리는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있을까? <살인자 o 난감>은 법의 사각지대 안에서 한 개인이 범죄자를 처단하는 이야기로, 드라마 <모범택시> <비질란테>처럼 공권력 대신 정의 구현에 힘쓰는 다크 히어로(혹은 자경단)가 등장한다. 통쾌함을 주 무기로 사용했던 비슷한 콘셉트의 작품들과 달리, 이 시리즈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범죄자를 죽이는 행동이 과연 옳고 정의로운 일인지, 죄는 아닌지에 대한 딜레마를 안긴다. 마치 통쾌한 느낌표보다는 도덕적 자문의 물음표를 던지는 것처럼.
삼류대에 다니며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이탕(최우식)은 편의점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도중 인생이 바뀐다. 근무 중 친절했던 손님과 퇴근길에 마주친 후, 갑작스럽게 몸싸움을 벌이다 편의점에서 가져온 망치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근데 신이 도와준 것일까? 살인 증거는 모두 사라지고, 그 남자는 죽여도 마땅한 연쇄살인범이었다.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이탕의 우발적 살인은 계속되는데, 거짓말처럼 증거는 모두 증발하고,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죽는 이는 모두 흉악범이다.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 했던가. 이탕은 스스로 악인을 알아보는 능력으로 악을 처단하는 일을 하며, 그들은 죽어도 싸다는 자기 합리화에 빠진다. 한편, 편의점 사건 담당 형사 장난감(손석구)은 이어지는 살인 사건을 마주하며, 유력한 용의자로 이탕을 지목, 그의 행적을 뒤쫓는다.
|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난감한 제목?
<살인자 ㅇ 난감>은 시작도 하기 전에 난감하다. 과연 이 제목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설마 오타가 아닐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동명 웹툰 제목도 마찬가지이니 원작자 꼬마비나 이창희 감독이 등장해 이건 이렇게 읽어줘달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제목에 대해 이창희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공식적으로 ‘살인자 ㅇ(이응) 난감’이다. 하지만 누구의 관점에서 이 작품을 보는가에 따라 제목이 달라지지 않는가 싶다.
공식적으로 부르는 제목이 궁금하기도 전에, 누구의 관점에 따라 제목이 달라진다는 그 말이 확 와닿는다. 감독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듯, 최우식은 제목을 ‘살인자 장난감’으로 읽는 게 많이 끌렸다며, 뭔가 장난감처럼 놀아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손석구와 이희준은 ‘살인자 ㅇ(오) 난감’으로 읽었다고 밝혔고, 이희준은 ‘모두가 다 난감한 상황’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관객은 물론, 출연 배우들도 제목을 받아들이는 게 제각각인 영화는 각각의 관점에 따라 각 인물과 상황이 달리 보인다. 주인공 이탕만 봐도 우발적이지만 악랄한 죄인을 살인한 그의 행동을 놓고, 누군가는 죄인으로, 누군가는 영웅으로 바라본다. 전자는 난감, 후자는 이탕에게 자경단 활동을 하자고 권한 사이드킥 노빈(김요한)의 시선이다.이탕 뿐만 아니다. 그에게 살해당한 첫 인물인 편의점 손님(조현우) 경우, 친절한 겉모습과 달리 살인을 일삼은 연쇄살인범이고, 두 번째 인물인 선여옥(정이서)도 시각 장애인처럼 보였지만, 한 쪽 시력은 남아있고, 부모의 사망보험금을 받아내기 위해 존속살인을 저지른 패륜아였다. 이처럼 겉선속악(겉으론 선하지만, 속으로 악한) 인물들은 매회 등장해 이탕과 우리의 눈을 교란한다. 감독 또한 극의 긴장감을 부여하고 혼란을 부추기는 장치로 매치컷(match cut, 시각적으로 유사한 두 장면을 이어 붙이는 편집 방식)을 자주 활용한다.
감독은 이런 이중성을 각 인물에게 투영하며, 각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극 중 난감은 후배에게 형사라는 직업의 경험에 기반, 가해자에서 한 글자만 바꾸면 피해자가 되는 것처럼, 한순간 가해자가 피해자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는 이탕을 비롯해 난감 자신을 포함한 다수의 인물을 관통하는 주제로 마지막 8회까지 묵직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 도스토옙스키가 배트맨, 다크 히어로는 로빈?
<살인자 ㅇ 난감>의 큰 뼈대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그리고 배트맨을 앞세운 다크 히어로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스토예프스키가 배트맨(히어로), 다크 히어로는 로빈(사이드킥)이라 할 수 있다. 시리즈에서 이탕은 흉악범을 감별하는 능력으로 다크 히어로의 옷을 입는다. 하지만 이 능력이 신이 준 선물인지, 아니면 저주인지 매번 되묻는다. 살인을 거듭할수록 첫 살인 때보다 두려움과 고뇌는 줄어들지만, 꿈이나 환상에서 죽인 놈들이 나타나 그를 괴롭히는 건 똑같다. 능력이 곧 그에겐 족쇄인 셈. 그의 살인 행각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장면들이 즐비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캐릭터의 성향은 곧 기존 다크 히어로와 궤를 달리하는 드라마의 특성을 대변한다. 배트맨의 고뇌 중 가장 큰 부분은 과거 부모의 죽음과 이를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기인한다. 흉악범들을 처단할 때 그는 살인에 대한 정당성의 고민이 크지 않다. 이런 부분에 있어 이탕은 다크 히어로의 옷만 입은 채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옷을 입은 주체는 따로 있다. 바로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 그는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고, 전당포 노파와 그녀의 이복여동생을 죽인다. 완전범죄였지만,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자수한다. 그 또한 자기합리화에 빠져 정당한 살인이라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인물로서 이탕과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편, 극 중 ‘죄와 벌’이란 책은 이탕의 마음을 대변하는 매개체이자, 다크 히어로 활약하는 그의 약점으로 활용된다. 후반부 이탕과 대척점에 있는 변질된 다크 히어로이자 빌런인 송촌(이희준)은 이 책을 훔치고, 이탕에게 가져가라고(한번 뺐어 보라고) 말한다. 이탕의 약점을 제대로 간파한 송촌의 공격이다.
| 피해자가 곧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
이탕, 장난감, 송촌의 공통점 중 하나는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된 사례라는 점이다. 이탕은 학폭, 장난감과 송촌은 부모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인해 오랜 시간 피해자로서 살아간다. 마치 누군가의 장난감이 되어 놀아나다가 싫증 나면 바로 버리는 존재처럼, 이들은 피해자로서 많은 상처를 받는다. 그러다 한 사건으로 인해 응축된 분노가 쏟아져 나오고, 결국 가해자의 길을 간다. 종국에 이르러 저마다 비슷한 내상을 입은 채 마지막 대결을 치른다.세 인물과 더불어 성폭행 이후 자살한 딸의 고통스런 사연을 지닌 강상묵(이중옥), 안타까운 가족사를 가진 노빈 모두 피해자였지만, 살인을 담보로 한 가해자가 된다. 그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
드라마는 이런 인물들을 통해 계속해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며, 정의 구현을 목적으로 살인이 용인될 수 있는지, 그 목적이 살인이란 죄를 사해줄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묻는다.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피가 끓고, 사적 복수에 통쾌함도 느끼지만, 한편으론 살인이란 두 글자에 머뭇거리게 되는 건 바로 이 때문. 사회가 하지못하는 일을 개인이 했음에도 행하는 이도, 보는 이도 남는 건 죄책감 뿐이다.
| 살아 있네, 살아 있어! 캐릭터
<살인자 o 난감>이 추구하는 이야기와 주제 의식을 생생하게 살리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주요 캐릭터인 최우식, 손석구, 이희준은 각자 맡은 캐릭터를 자신만의 가공법으로 특색있게 만든다.
최우식은 목표 없이 살아가는 20대의 모습은 물론, 죄의식에 사로잡힌 다크 히어로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거인> <기생충> 등 그의 불안한 눈빛으로 발화하는 청춘의 모습은 물론, 피해자로서의 아픔과 가해자로서의 죄책감 등 기민한 감정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망치, 벽돌 등 둔기를 사용해 살인을 범하는 액션 또한 현실감 있게 구현한다.
손석구는 또 한 번 디테일한 설정이 돋보인다. 원작에서 가져온 껌을 계속 씹으며, 세상을 관조적으로 보는 특유의 눈빛과 걸음걸이는 장난감의 성격을 충분히 유추하도록 한다. 특히 껌을 씹는 건 마음 속 화와 분노를 조절하는 복용약처럼 느껴질 정도다. 여기에 법, 죄, 사회적 규칙 등 자신이 믿었던 것에 배신당하며 울분에 쌓이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이에 질세라 이희준은 느리고 친근한 말투와 빠르고 과격한 행동의 간극을 통해 공포감을 조성한다. 특히 개인의 기준으로 흉악범이라 생각한 이를 포박해 반성하면 죽이지 않을 것처럼 하다가도 결국 살인을 저지르는 그의 의외성은 극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극 중 당뇨 환자에 나이 든 캐릭터로 연기하지만, 다크 히어로이자 빌런으로서의 잔인함을 더 세게 가져가며 송촌이란 캐릭터를 쌓아 올린다.
이뿐인가. 최고의 사이드 킥으로, 등장하는 노빈 역에 김요한, 이탕의 첫 살해를 목격하고 그를 협박하는 선여옥 역에 정이서, 딸의 비통한 죽음에 결국 칼을 든 아비 강상묵 역에 이중옥, 리벤지 포르노에 당해 이름과 얼굴을 바꾸고 살아가는 최경아 역에 임세주와 약혼녀가 있음에도 그녀에게 접근해 착취하는 하상민 역에 노재원 등 이들은 각 회차를 잡아먹을 정도의 연기력으로 승부한다.
물론, <살인자 ㅇ 난감>도 제목처럼 난감한 부분이 있다. 기존 다크 히어로를 내세운 드라마와 다른 매력을 지녔고, 살인 및 성적 수위와 흉악범들의 턱 빠질만한 악행 구현, 5회부터 떨어지는 극적 긴장감, 정치인을 떠올리게 하는 유사 장면 등은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다크한 장르 드라마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이창희 감독의 전작이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였던 것만 봐도 진보했지 퇴보하지는 않았다. 이는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 부문(비영어) 2위, 지난 11일 기준 한국·인도·태국·베트남 등 11개국에서 시청시간 1위(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오르는 등 각종 수치가 대변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구독자들이 이 드라마가 담고 있는 주제에 충분히 공감했다는 것. 시간이 더 지나 봐야 알겠지만, 시즌 2를 암시하는 장면으로 끝낸 드라마의 다음 행보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현실에서는 드라마보다 더 난감한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아이러니하게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사진= 넷플릭스 제공
평점: 3.5 / 5.0
한줄평: 성장형 다크 히어로를 내세운 현대판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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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밀히 내통하는 '데이빗 로워리'의 세계
은밀히 내통하는 ‘데이빗 로워리’의 세계
데이빗 로워리의 필모그래피를 훑다보면 당혹스럽다. 일련의 영화들은 하나의 카테고리로 범주화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편차도 꽤 있는 편이라 한 감독 밑에서 탄생했다고는 도무지 믿기 어렵다. 텍사스의 풍광을 중심으로 서사의 밀도보다 고독과 우울의 뉘앙스를 전면화한 멜로드라마 <에인트 뎀 바디스 세인츠>, 가족을 잃은 소년과 온순한 드래곤 사이의 가족애를 그린 디즈니 실사 애니메이션 <피터와 드래곤>, 아내 곁을 부유하는 한 유령의 절절함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저예산 영화 <고스트 스토리>, 전대미문의 은행털이범을 범죄 코미디의 형식으로 느슨하게 전개한 <미스터 스마일>, 켜켜이 쌓아올린 상징의 구조와 초현실적 공간을 기반으로 신화적 모험담을 장엄하고 기이하게 풀어낸 <그린 나이트>에 이르기까지(심지어 그의 다음 작품은 <피터 팬>을 실사화한 디즈니 영화 <피터 팬&웬디>이다). 데이빗 로워리는 특별한 사조로 묶이거나 단일한 수사로 명명되길 거부하는 감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내밀한 특징이 전무하다는 것은 아니다. 로워리만의 전략과 세계관은 서로 다른 외피로 포장된 필모그래피에 은밀히 내장돼 점차 확장되고 있다.
1.
로워리 영화의 도입부에는 서사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순간이 등장한다. 그 순간은 항상 죽음의 얼룩으로 칠해져 있는데, 초기작의 경우 동료의 죽음(<에인트 뎀 바디스 세인츠>)이나 가족의 죽음(<피터와 드래곤)>을 위시한 2인칭 죽음에서 후기작으로 갈수록 자신의 죽음(<고스트 스토리>)과 낯선 존재의 죽음(<그린 나이트>)이라는 (각각) 1인칭, 3인칭 죽음으로 확장된다. 일차적으로 로워리의 영화를 추동케 하는 것은 자신 혹은 타인의 죽음, 그리고 그것이 지닌 매혹의 힘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죽음이 사건이 아니라 일종의 ‘가정’처럼 주어진다는 점이다. <에인트 뎀 바디스 세인츠>에서 로워리는 연인 관계인 밥과 루스가 어째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지, 그들의 범행 계획은 어떻게 어그러졌으며 어떤 경위를 거쳐 경찰과 대치하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그들의 동료 프레디의 죽음을 슬그머니 밀어 넣는다. 프레디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진 밥은 경찰에게 체포되고 루스는 그와 떨어져 뱃속의 아이와 외로이 생을 보내야만 한다. 관객에게 제시되는 정보는 밥과 루스의 사랑이 꽤 깊다는 것뿐이다. 그렇게 영화는 연인 관계의 두 사람이 동료의 죽음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분리된다면 그 이후의 생은 어떻게 될지 질문한다. <피터와 드래곤>은 더욱 극단적인데, 시작과 동시에 피터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고, 자취를 감추고 사는 드래곤과 조우하여 유사 가족을 이뤄 살게 된다. 의아한 것은 차가 전복되어 성인 두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할 정도의 대형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유아기의 피터는 별다른 상처 없이 살아남아 심지어 멀쩡히 숲으로 걸어간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로워리에게 인물의 과거와 현재의 정보를 배합하려는 시도, 그러니까 인물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일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는 인물을 수식하는 최소한의 수사를 제시한 다음, 죽음이라는 가정법을 통해 죽음이 낳은 이후의 삶과 그 영향 하에 흘러가는 시간의 뉘앙스를 시각화하는 데 관심을 둘 뿐이다. <고스트 스토리>에서 C의 죽음 또한 교통사고라는 우연적 사건으로 덩그러니 제시되며, <그린 나이트>에서 상대에게 목 베임을 당하는 녹색 기사의 타살 퍼포먼스도 허무맹랑한 게임의 규칙으로 존재할 뿐 그 본질과 통하는 논리적 인과 관계는 부재하다. 그런 점에서 로워리의 영화를 ‘죽음의 가정법’이 추동하는 영화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로워리가 죽음의 가정법이라는 전략을 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로워리의 영화들을 보다 보면, 정황이나 뉘앙스가 우선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다르게 말하면 그의 영화에는 캐릭터가 부재하다. 캐릭터라이징에 앞서 위에 기술한 가정법이 선제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제공되는 것은 가정법의 성립을 위한 최소한의 정보뿐이다. 때문에 로워리의 인물들은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에인트 뎀 바디스 세인츠>에서 루스와 밥은 현실 세계의 연인처럼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곧 잊혀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속담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직접 실험을 감행하는 수행자처럼 보이며, <피터와 드래곤>에서 피터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접점에서 두 세계의 공존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관찰자처럼 그려진다. 또한 <고스트 스토리>에서 C는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놓고 떠난 자의 시간성을 가늠해보기 위한 영화적 존재처럼 기능하고, <그린 나이트>에서 가웨인은 위엄과 재생의 신비함으로 무장한 영화적 존재 ‘녹색 기사’의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 비루한 현실적 존재로 형상화된다. 로워리에게 중요한 것은 인물의 성격이 아니라, 그들이 수행하는 탐구와 그에 대한 주관적 응답이다. 로워리는 이 성실한 수행자들을 통해 특정 명제나 세계, 혹은 추상적 개념을 시각화하고, 그것의 진실을 풀어내는 데 애쓴다.
2.
로워리는 영화와 현실 간의 역학을 탐구하고 그것들을 질료 삼아 서사를 구축하는 시네아스트다. <고스트 스토리>, <그린 나이트>에는 무엇보다 초현실적인 존재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영화 그 자체의 환유처럼 형상화된다. <고스트 스토리>에서 C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고스트로 환생한다. 하얀 천을 머리에 두른 괴이한 형상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자아를 체현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행할 수 있는 신체적 기능이 오직 응시뿐이라는 점이다. 그는 하얀 천에 뚫린 두 개의 구멍으로 시종일관 현실의 대상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때로 접시를 집어 던지고, 피아노 건반을 내리치는 등 현실의 물질적 조건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순간적이며 소박하다. M이 바닥에 누워 C에게 선물 받았던 노래를 들으며 과거를 회상할 때 머리맡으로 뻗힌 손이 고스트의 하얀 천과 거의 접촉되는 듯 보이는 쇼트는 그래서 외설적이고 신비롭다.
더불어 고스트는 줄곧 남겨진 아내 M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가 머무는 집의 구석구석을 탐방하며 시간의 흐름을 감각하게 만든다. 가령, M이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이웃이 선물한 파이를 우걱우걱 입에 집어넣는 긴 쇼트에서 프레임 가장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정지된 형상의 고스트는, 화면 내 유일하게 운동하고 있는 M의 처연한 몸짓과 대비를 이루며 시간의 흐름을 역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응시와 시간성이라는 감각 기능을 탑재한 고스트는 마찬가지로 관객에게 응시의 기회를 부여하고 시간성을 체감하게 해주는 ‘영화’와 유독 닮아 있다.
사랑하는 아내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난 남자의 영적 멜로드라마처럼 보였던 영화는 의아하게도 중반부가 되자 그 둘을 완전히 떼어놓는다. 고스트는 집을 떠나는 M을 멀리서 바라볼 뿐 그녀를 따라가지 않는다. 왜 고스트는 그 집에 남아야만 했을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녀가 문설주 틈에 새겨 넣은 메시지, 그러니까 현실이 남긴 진실을 발견해야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고스트 스토리>는 현실이 남긴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의 숙명에 관한 영화다. 다만, 그 메시지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마침내 고스트가 쪽지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그는 일순 하얀 천만 남기고 소멸된다. 현실의 진실을 알게 된 완전한 영화는 그 순간 영화가 아니며, 현실의 다른 버전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고스트 스토리>가 고스트로 분한 영화가 현실을 응시하며 그 물질적 조건에 대응하고 끝내 소멸하는 과정을 그린다면 <그린 나이트>는 비루한 기사 가웨인으로 대변되는 남루한 현실이 녹색 기사로 분한 성스러운 영화로 이행되는 과정을 그린다. 녹색 예배당으로 향하는 가웨인의 긴 여정은 현실이 영화로 이행되는 과정에 수반되어야 할 덕목들을 탐구하고 점검함으로써 종국에 영화가 현실과 분리되어 독자화되는 과정에 대한 거대한 은유이다.
<그린 나이트>는 크리스마스 연회가 열리는 예배당에 이르러 비로소 제대로 시작된다. 이때 카메라에 붙잡힌 가웨인은 예배당 상층부에 뚫린 원형의 창에서 사선 아래 방향으로 내려오고 있는 푸르고 투명한 빛을 바라본다. 빛은 원탁의 중심부를 성스럽게 비추는데, 이 형상은 마치 스크린에 투영되는 영사기 렌즈의 광원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원탁의 중심부는 그 빛이 가닿아 무대화된 스크린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무대 위에 서는 녹색 기사는 스크린에서 퍼포먼스를 행하는 영화적 존재, 혹은 영화 그 자체이다.
사창가에서 유흥을 즐기는 게 일상인 부패한 기사 가웨인에게 왕은 “무용담 없이 왕위 계승은 꿈도 꾸지 말라.”는 일종의 압박이자 명령을 하사한다. 이로써 가웨인은 왕이 되기 위해 무용담이 필요한 현실적 자리에 머문다. 그는 방탕한 성적 유희로 얼룩져 있는 남자이고, 권력을 노리는 탐욕가이면서 한편으론 엄마와 여자 친구를 사랑하는, 남루하면서도 지극히 평범한 현실적 존재이다. 그런 그의 앞에, 즉 무대화된 스크린에 재생의 신비함으로 무장한 녹색 기사가 출연한다. 녹색 기사는 자신과 겨뤄 승리한 자에게 본인이 당한 만큼 다음 해 크리스마스에 똑같이 되갚아 준다는 황당무계한 목 베기 게임을 제안하고, 가웨인이 이에 동참하면서 남루한 현실이 성스러운 영화로 다가가는, 그 긴 이행의 과정이 시작된다.
녹색 예배당으로의 여정은 크게 네 개의 시퀀스로 구성되는데, 이는 곧 네 개의 시험대라고 말할 수 있다. 관문에서 요구되는 것들을 요약하자면 (피해자에 대한) 연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상상력에 따른 생경함의 창조, 사랑의 윤리와 죽음의 두려움에 대한 극복이다. 각 시퀀스들은 매번 출제자처럼 보이는 인물 혹은 대상, 이를 테면 소년병, 성 위니프레드, 환각의 버섯, 성주와 성주부인을 내세워 문제를 출제하고, 가웨인이 그것들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 정답과 오답을 오가며 마침내 녹색 기사 앞에 다다른 가웨인은 죽음 앞에서, 만약 지금 녹색 기사의 도끼를 피해 집으로 달아난다면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에 빠진다. 공교롭게도 상상 속 미래는 그간의 여정에서 끝내 체현하지 못한 덕목들, (전쟁 피해자에 대한) 연민, 사랑의 윤리,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의 문제가 고스란히 발현되며 끔찍한 결과로 치닫는다. 그런 점에서 이 몽타주 시퀀스는 필수 덕목들을 놓친 현실이 영화로 이행되었을 때의 결과를 상상 속에서 미리 상연해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진실을 알게 된 가웨인(현실)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영화로 이행될 자격을 얻는다. 그렇게 현실은 소멸되고 영화는 독자화된다.
로워리의 세계에서 그것이 영화든 현실이든 서로에 가닿을 때 그중 하나는 필연적으로 소멸한다. 두 세계가 등가적 관계에 있다면 어느 쪽이든 하나는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본질은 불완전함에 있다. 두 세계는 불완전하기에 영원히 존속된다. <미스터 스마일>에서 전설적인 은행털이범 포레스트 터커는 자신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확신이 없을 때, 꼬마였던 과거를 떠올리며 그 아이가 노년이 된 현재를 자랑스러워할지 상념에 잠긴다. 그리곤 다행히 매일 그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러자 그의 연인 주얼이 답한다. “하지만 절대 완전히 다다를 순 없을 거예요, 그렇죠? 그건 죽어서나 가능하니까.”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바라보는 로워리의 시선은 이 대사로 명료히 설명된다.
3.
로워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보이지 않는 것이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피터와 그래곤>은 이 믿음을 일차원적으로 표면화한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숲에 사는 드래곤을 본 적 있다고 주장하는 미챔은 본인의 말을 믿지 않는 딸에게 “네가 못 봤다고 없는 건 아냐.”라고 단호히 말한다. 그리고는 그녀를 ‘눈앞의 것밖엔 못 보는’ 존재로 규정한다. <피터와 드래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자와 보이지 않지만 그것의 실존을 믿는 자들 사이의 대립과 화해를 그린 이야기다. 다만, <피터와 드래곤>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문제는 그저 작중 인물들 사이에 국한된다. 관객은 도입부에서 작중 현실과 화면에 이질감 없이 동화되어 있는 드래곤의 형상을 이미 보았고, 실사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관습에 익히 훈련되어 있는 탓에 그 존재를 구태여 부정할 아무 이유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스트 스토리>에 이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때 화목했으나 잠시 아내 M과 사이가 냉랭해진 C는 돌연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뒤, 하얀 천을 머리에 쓴 고스트의 형상으로 느닷없이 부활한다. 관객은 그간 한 번도 학습되지 않은 고스트의 부활 장면과 그 괴이한 형상을 직시하며, 심지어 그가 존재하지 않는 듯 행동하는 작중 인물들의 동선과 행동방식을 관찰하며, 이 황당무계한 존재의 실존을 믿어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작중 인물 간의 문제를 관객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린 로워리는 이 구도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의 실존 가능성을 암시하며, 그 존재가 추동하는 서사의 가능성을 선보인다. 그리고 <그린 나이트>에 이르러 이 믿음의 유무가 영화의 존재 혹은 영화 제작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필수 덕목이라고 설파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남루한 현실적 존재인 가웨인이 영화적 존재 녹색 기사에 가닿으려는 이행의 과정에서 가웨인과 성 위니프레드의 만남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의 문제를 분명히 드러낸다. 그녀는 멀쩡히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머리가 허상이라는 듯 연못에 빠진 자신의 머리를 건져와 달라고 부탁한다. 두 눈에 명백히 보이는 그녀의 머리를 두고 혼란에 빠진 가웨인은 묻는다. “아가씨, 당신은 사람인가요? 정령인가요?” 달리 표현하면, “보이는 것을 믿어야 하나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하나요?” 가웨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로 결심하고, 연못에서 그녀의 머리를 꺼내줌으로써 잃어버렸던 녹색 기사의 도끼를 보상으로 돌려받는다. 그렇게 로워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영화의 근간으로 삼으며 이에 대한 공감을 관객에게 요청하는 방식으로 독창적 우주를 구축해 나간다. <피터와 드래곤>의 미챔의 말을 빌리자면, 로워리는 관객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는 것 같다. “그냥 마음의 눈을 열어보라고 말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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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점을 뒤집는 천재감독의 명대사
천재? 괴짜? <이터널 선샤인> <무드 인디고> 등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씨네필들을 사로잡은 미셸공드리 감독.
공드리 감독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비주얼, 음악과 영상의 조화, 섬세하고 깊이 있는 대사들로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데요.
미셸 공드리의 영화 제작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공드리의 솔루션북>이 8월 14일 개봉합니다.
<이터널 선샤인> 2005
조엘은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라쿠나사를 찾아가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기억이 사라져 갈수록 조엘은 사랑이 시작되던 순간, 행복한 기억들, 가슴 속에 각인된 추억들을 지우기 싫어지기만 하는데... 당신을 지우면 이 아픔도 사라질까요? 사랑은 그렇게 다시 기억된다.
<무드 인디고> 2014
VIVID 칵테일을 제조하는 피아노를 발명해 부자가 된 콜랭과 당대 최고의 철학가 장 솔 파르트르에게 빠진 그의 절친 시크. 두 사람은 우연히 클로에와 알리즈를 만나게 되면서 운명과도 같은 사랑을 시작한다.
PASTEL 서툴지만 진실된 고백으로 클로에와 결혼에 성공한 콜랭. 반면 시크는 알리즈와 함께 파르트르의 강연에 다니고, 그의 물건을 수집하는 등 값비싼 열정을 이어간다.
MONO 그러던 어느 날, 콜랭은 클로에의 폐에 수련이 자라고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고, 치료를 위해 전재산을 바치기에 이른다. 한편, 시크는 콜랭이 결혼자금으로 건넨 돈마저 파르트르 물건 수집에 모두 써버리고, 이런 그에게 알리즈는 점점 지쳐간다.
COLORLESS 사랑하는 이를 위해 난생 처음 험난한 노동을 시작한 콜랭과 우상에 미쳐 사랑을 등진 시크. 마침내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환상은 색을 점점 잃어가는데…
<수면의 과학> 2006
삭막한 현실에서 벗어나 꿈 속에서 살고픈 드리밍 보이 ‘스테판’. 짝사랑하는 옆집 그녀 ‘스테파니’가 영혼의 짝이라 확신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기란 꿈처럼 쉽지가 않은데… 꿈꾸는 모두를 위한 ‘스테판’의 Sweet Dream!
<마이크롭 앤 가솔린> 2016
작고 소극적이지만 섬세한 예술가, 마이크롭 ‘다니엘’.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가솔린 냄새 풀풀 풍기는 괴짜 모험가, ‘테오’. 첫만남에 서로의 특별함을 알아 본 소년들은 영혼의 단짝이 된다.
단조로운 일상에 지쳐가던 중, 길고 긴 여름방학을 맞아 다니엘과 테오는 프랑스 전국을 누비는 로드 트립을 계획한다. 가진 건 고철상에서 주운 잔디깎이 모터와 널빤지뿐. 우여곡절 끝에 제법 그럴싸하게 완성된 시크릿 드림카! 낭만 없이 볼 수 없는 미운 열여섯의 깜찍발칙한 반항이 시작된다.
<공드리의 솔루션북> 2014
영화감독 마크는 자신의 새로운 걸작이 제작자들 때문에 망할 위기에 처하자 컴퓨터를 통째로 들고 숙모가 있는 마을로 탈출한다. 머릿속에 쏟아지는 아이디어들을 하나씩 실행하기 시작하는 마크.
세계가 인정한 천재 감독과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감독을 동시에 해내는 그는 영화의 완성이 늦어지자,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솔루션북’을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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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도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여자 중에 그렇게 던지는 선수 전 세계에 몇 명 안 될걸?"
어릴 때부터 야구 신동으로 유명했던 주수인. 그는 청소년이 되면 야구를 할 수 없을 거란 편견을 깨고 고등학교 야구부까지 진학했다. 하지만 재능과 노력을 다 갖추었다고 해도, 신체 조건에서 남성 선수들에게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주수인에게 “여자 중에 그렇게 던지는 선수 전 세계에 몇 명 안 될걸?”이라는 감독의 말은 칭찬이 아니다. 그는 ‘여자 야구’가 아닌 그냥 야구가 하고 싶은 것이기에.
"내가 130 던지는 게 대단한 거야? 그게 왜 대단한 건데?"
주수인과 함께 야구를 시작한 이정호. 그는 프로팀의 지명을 받아 프로 선수가 되었다. 같은 곳에 있었던 두 친구 사이의 위치가 달라진 것이다. 상심한 주수인에게 이정호가 구속 130이면 대단한 것이라 말한다. 그러자 주수인이 응수한다. “내가 130 던지는 게 대단한 거야? 그게 왜 대단한 건데?” 주수인이 화가 난 건 이정호의 말에 ‘여자 선수 치고는’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주수인은 ‘여자 야구’가 아닌 그냥 야구가 하고 싶다.
"나처럼 못 가면? 포기하는 게 맞는 걸 수도 있어."
주수인의 야구팀에 새로 코치로 온 최진태. 그 역시 프로 야구선수를 꿈꿨으나 이를 이루지 못했다. 그는 주수인에게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준다. 주수인이 왜 코치님도 프로에 도전했으면서 나는 못 하게 하냐고 따지자 최진태가 말한다. “네가 여자라서 내가 이러는 거 같아?", "나처럼 못 가면? 포기하는 게 맞는 걸 수도 있어.”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라는 건 있다. 최진태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수인인 지금부터가 더 힘들 겁니다."
하지만 주수인은 야구를 향한 진심과 집념으로 최진태를 감동시키고, 최진태는 주수인이 프로팀에서 뛸 수 있도록 돕는다. 최진태는 주수인에게 남자 선수를 따라 하지 말고 자신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고 코칭한다. 투수를 평가하는 일반적인 기준인 강속구가 아닌, 볼 회전이 좋은 주수인의 강점을 살린 너클볼로 승부를 보자는 것이다. 결국 주수인은 한 프로팀 2군에서 선수로 활동할 기회를 얻는다. 단장은 꿈에 그리던 프로선수가 되어 기뻐하는 주수인의 어머니에게 말한다. “수인인 지금부터가 더 힘들 겁니다.”
결국 우리 삶을 빛내는 것은…
영화는 주수인이 2군 팀과 계약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주수인에게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진 않다. 여자인 주수인이 마초적 남성성이 헤게모니를 쥔 곳에서, 신체적 ‘한계’를 딛고 장밋빛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건 너무 순진한 일이다. 하지만 합리성 너머의 무언가에 도전하는 주수인은 큰 울림을 준다. 주수인의 ‘비합리적’ 열정을 내내 조명하는 영화는 이런 것들이야말로 오히려 우리 삶을 빛내줄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인다. 결과와 숫자 너머에, 우리 삶을 빛내는 무언가가 있다.
덧. 네이버 영화 평점을 보면, 이 영화가 '현실'도 모르면서 여성 서사를 억지로 야구에 끼워 맞췄다는 이유로 혹평한 것들이 많다. 그러나 아래 기사에서 보듯, 현실을 모르는 건 〈야구소녀〉가 아닌 영화에 혹평을 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변화를 마주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10901280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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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언맨의 진정한 후계자는 누가 될까?
#산돌구름 #아이언맨후계자 #아이언맨4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1. 24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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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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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2 스파이더맨
02:37 아이언하트
03:43 할리 키너
05:06 모건 스타크
06:28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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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히어> 메인 예고편
인생이라는 대단한 모험 그 모든 순간은 여기서✨ [히어] 메인 예고편 공개📸 2025년 2월 메가박스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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