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7-07 18:24:13
연기 욕심 있었던 봉준호 출연작 모음
뉴욕타임즈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 <기생충> 선정 기념
얼마 전, 뉴욕타임즈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 1위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름을 올렸죠.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인데요…! 👏
그 소식을 듣고 문득 떠올랐습니다.
감독이 아닌 ‘배우 봉준호’의 얼굴.
작품 속 인물로 깜짝 등장하던 그의 카메오 모먼트들…사실 알고 보면 연기에 대한 은근한 욕심(?)도 있었던 봉 감독. 그의 짧지만 인상 깊은 출연 순간들을 한데 모아봤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연기는 배우 고유의 영역이라,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 고 말하며,직접적인 지시보단 질문을 통해 배우 스스로 감정을 찾도록 유도한다고 밝혔는데요.
어쩌면, 그가 직접 연기에 나섰던 순간들은
연기를 ‘통제’하기보단 ‘이해’하려는 노력,
영화를 더 잘 만들기 위한 공부의 일환이었나 봅니다.
심지어 잠깐이지만 연기도 자연스럽잖아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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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쓴 이야기의 여정
올해 초에 출판 편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편집 실무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을 배우는 수업이었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책의 무엇을 구매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는데 다른 것보다도 관점이 선명해서 흥미로웠다. 저마다 쉽게 대답할 수는 있지만 정답을 가늠하기란 어려운 그런 문제였다. 읽기 위해 구매하는 것이니 책의 내용을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책을 다 읽고 그 책을 팔면 기억이 사라지는가? 책이 더 이상 우리의 소유가 아니더라도 우린 그 내용을 알고 있다. 여타의 상품이라면 그럴 수 없다. 라면 한 봉지, 러닝머신, 양키캔들이나 책가방까지도 수중에서 사라지면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책은 팔더라도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진 않는다. 뭐 유별난 차이인가 싶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그 얇고 세밀한 틈이 책의 지향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저작물이다. 저작권이 발생하는 저작물. 사상이나 감정, 아이디어와 같은 메시지를 일정한 표현 형식에 담으면 저작권이 발생한다. 그러니 아이디어 자체만으로는 저작권이 발생하지 않는다. 일정한 형태로 그 생각을 담아내야 한다. 저작물은 작가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책은 저자의 생각과 인격을 담아낸 저작물이다 보니 이를 편집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조심스러운 과정이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라고 하는 것이 미묘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함께 책을 만들어간다는 마음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책을 쓰고 편집하는 과정은 훨씬 어려워진다. 문장을 바꿔나가는 일에 있어서는 특히나 그렇다. 전하고자 하는 말뜻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꼭 작가 혼자만의 힘으로 책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편집자의 시선에서 비로소 더 정확해질 수 있으니까. 책을 만든다는 건 그런 점에서 파트너십이 필요한 일이다.
기묘한 협업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야 많지만 루시와 해리스의 관계만 한 상황이 또 있을까. 루시는 가업으로 물려받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 냈던 신간은 혹독한 평가를 들었고 경영난에 회사를 팔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지경까지 몰려있다. 다시금 좋은 작가를 찾아 신간을 만들어 반등의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데 마침 발견한 작가가 해리스 쇼였다. 아버지 대에 이미 계약금을 지불했고, 계약에 따라 책을 한 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단 한 권만 내고 50년째 신간 소식이 없었지만 유일한 기회기에 희망을 걸어야 했다. 다만 계약 조건이 있었다. 작가가 제출한 초고를 편집하거나 수정할 수 없다. 대신 작가는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책을 홍보해야 한다.
편집은 불가, 북투어는 가능. 인물들의 이유가 부딪히면서 상황은 흥미롭게 흘러간다. 아내와 사별한 후로 세상에 어떤 미련도 남지 않은 냉소적인 작가 해리스와의 북투어 과정은 험난했다.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던 이유가 사라졌으니 그의 입장에선 거리낄 것이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압류되어 빼앗길 위치에 놓인 집과 50년 전의 계약이었다. 노작가의 귀환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고 세상은 너무 많이 바뀌어 있었다. 해리스는 그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을 뿐인 루시의 실력을 의심하고, 루시는 해리스의 상태를 못 미더워한다. 여하튼 신간은 나왔으니 어떻게든 책은 팔려야 한다.
그동안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는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일을 하면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유독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만드는 건 '이건 일이니까 그냥 받아들여'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공동의 목표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의견을 아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으니까. 두 사람의 전사가 밝혀지는 과정은 그래서인지 여러모로 감동적이었다. 서로를 신뢰하는 결과를 얻기까지의 여정이 성실하게 묘사되니까. 신뢰라는 것이 그렇다. 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눈에 번해야 믿는다. 보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 신뢰에는 샛길이 없다. 빠르게 가로지를 방법도 없다. 관계에는 정독만이 존재한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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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옆엔 누군가가 필요해
개봉 전 시사회에서 먼저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누구나 홀로서기를 꿈꾼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면서 가장 원하는 건 자유일 것이다.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잔소리를 듣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수많은 구속된 상황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목표다. 자유에 대해 바라보다 보면 주변의 도움이나 지원이 별거 아닌 듯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해나갈 수 있다는 느낌은 어떤 사람의 도움도 거절하게 만든다.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특히나 아주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면 더욱 그 도움은 받기 어려울 것이다. 한참을 보이지 않거나 옆에 없었던 사람이 나타나 도움을 주려한다면 당연히 그 사람의 진의를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가능하면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노력할 것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데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병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 조지
영화 <스크래퍼>의 주인공 조지(롤라 캠벨)는 얼마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조지는 아주 어릴 때 엄마 곁을 떠난 아빠의 존재를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주변에 바로 도와줄만한 어른이 없다는 의미다. 정부의 지원으로 성인 보호자를 지정받아야 하지만 조지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우면서 손쉽게 정부의 관리에서 벗어난다. 그렇게 십 대 초반의 아직 어린 조지는 혼자 모든 걸 관리하며 생활을 이어나간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조지는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훔쳐 용돈과 생활비를 해결하고 있다. 영화는 그 모습을 심각하게 보여주기보단 경쾌하면서도 조금은 건조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 자체는 범죄지만 그 일은 조지가 어쩔 수 없이 생활을 하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지의 독립적인 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집으로 아빠 제이슨(해리스 디킨슨)이 찾아오면서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영화가 집중하는 건 조지와 제이슨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것이지만, 제이슨의 등장으로 혼란을 겪는 조지의 감정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조지는 아직 엄마를 잊을 수 없는 나이다. 그는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보고 싶은 엄마를 보기 위해 집 밖을 나와 작은 골목에 들어가 휴대폰에 저장된 엄마의 동영상을 본다. 마지막으로 저장된 엄마의 모습에는 조지의 모습과 엄마의 모습이 함께 담겨있다. 그 동영상을 보는 순간은 조지에게 엄마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그렇게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아무렇지 않게 해야 할 일을 한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등장
갑작스러운 아빠의 등장은 조지에게 굉장한 혼란을 준다. 아빠 제이슨도 마찬가지다. 조지가 커가는 걸 보지 못했고, 시간을 보낸 적이 없는 딸의 앞에 나타나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제이슨은 조지에게 따뜻한 모습을 할 수도, 잔소리하는 모습을 할 수도 없다. 아빠지만 사실은 아빠 노릇을 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이다.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지난 과거에 대한 사과다. 영화 속 제이슨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것을 깨닫는다.
제이슨이 선택한 건, 잔소리하는 아빠도 아니고 따뜻한 아빠도 아니다. 좀 더 다가가기 위해 친구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조지가 자전거를 훔치러 갈 때 슬쩍 따라가 같이 그 도둑질에 동참한다. 그리고 경찰로부터 도망가고 기차역에서 한참을 어린아이처럼 조지와 놀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두 사람의 거리감은 조금씩 줄어든다.
엄마와 아내를 잃은 두 사람은 서로 교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두 사람이 만나서 가까워지는 과정이 <스크래퍼>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다. 무척 우울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영화는 이 두 사람의 모습을 우울하게 그리지 않는다. 어떤 때는 경쾌하게 또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아주 슬픈 일을 경험하고 나서도 누군가에게 의지할 존재가 있다는 것을, 어쨌든 서로 의지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영화의 맨 처음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그 문구는 혼자서도 자랄 수 있다는 식의 문구로 수정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아이가 자라는데 누군가는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지에게 아빠 제이슨이 나타났고 제이슨은 주변 이웃들과 교류도 시작한다. 완전히 혼자 있던 조지는 조금씩 마을 속으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제이슨의 등장이었고, 그 끝은 제이슨이 조지의 집에 살기로 결정한 순간이었다.
우울하지 않고 따뜻한 이 영화의 정서
조지와 제이슨이 좋은 부녀 관계가 되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은 서로가 어떤 결핍이 있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각자에게 서로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첫 만남에서 서로의 마음을 긁으며 속을 썩였지만 두 사람은 이내 상대방을 품어 안는다.
영화에는 조지가 방에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 탑을 쌓는 장면이 나온다. 하늘에 있는 엄마에게 닿으려는 듯 쌓아 올린 작은 탑은 조지가 우울할 때마다 누워서 쉬는 방이다. 그 방은 일종의 치유의 공간이다. 제이슨이 그 방을 처음 본 순간, 아마도 그때가 제이슨이 조지의 아빠가 되기로 결심한 시점일 것이다. 그 공간은 추억의 공간이면서 위로의 공간이다. 조지가 만든 그 추모의 탑은 마치 조지의 마음속에 있는 잡다한 추억들의 집합소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조지의 마음이 바로 그때 제이슨의 마음에 닿았다.
영화 <스크래퍼>는 무척 따뜻한 영화다. 태어나 처음 만난 아빠와 딸이 조금씩 서로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 무척 잔잔하게 담겨있다. 영화를 연출한 샬롯 리건 감독은 이번 영화가 첫 장편 데뷔작이다. 이 따뜻한 이야기로 39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영화는 결국 아이가 자라나는데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무척 따뜻한 방식으로 조지의 삶을 비추는 영화는 슬픔을 억누르고 있는 조지가 다시 누군가의 도움으로 따뜻한 가족이 함께하는 삶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무척 경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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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태어나길 잘했어'
주인공 '춘희'는 본래 손에 땀이 많은 다한증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는 인물입니다.
심한 다한증으로 인하여 집에서 걷기만 해도 바닥에 땀이 다 묻어 닦어야 할 정도로 곤람함을 많이 겪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외숙모네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같이 살고 있는데,
아무래도 눈치 보이고 다한증으로 인해서도 집 안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인물이라 딱한 마음이 들었죠.
춘희는 그렇게 외숙모네 집, 좁은 다락방에서 지내게 됩니다.
이 모습은 현재의 춘희 모습인데요.
여전히 외숙모네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는 그 집에서 거의 혼자 지내는 것처럼 살다시피 하지만요.
춘희는 현재 마늘을 까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한증을 수술하기 위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손에 땀이 많은 것이 스트레스이자 콤플렉스였던 춘희는
과거 학창 시절 때 불에 손을 댈 정도로 힘들어합니다.
결국엔 손에 화상으로 인해 상처를 입으며 살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많은 양의 마늘을 손질하여 까고
외삼촌네 식당으로 가져가 일당을 받으며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번개에 의해 피하지 못하고 전류로 인해 쓰러집니다.
이때 !
영화 속 등장하는 터널이라는 공간은 상당수의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터널이라는 공간 속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고, 이곳에서 주인공들의 감정도 엿볼 수 있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거든요.
암튼, 춘희는 번개를 맞은 일로 인해 과거 학창시절 때의 나 자신을 종종 만나게 되는 굉장히 특이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아 학창시절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간혹 놀라긴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 둘밖에 없는 절친처럼 마음을 공유하게 됩니다.
위 장면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화상입은 손을 보여주며 얘기하고 있는 장면인데요.
현재의 '나'가
"어? 너는 손에 상처가 없네?"
하며 과거의 나에게 말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사실 맨 처음엔 춘희가 터널을 지나가다가 갑작스럽게 번개를 맞는 연출을 보고 좀 부자연스러우면서도 '장르가 바뀌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는데, '과거의 춘희와 현재의 춘희를 만나게 해주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 고찰해주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하나의 과정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 같아 왜 그렇게 연출했는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 장면을 하나의 명장면으로 뽑고 싶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니까요.
더불어, 학창시절 때의 춘희와 현재 모습의 춘희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연결한 점에서 연출적인 부분에서 큰 감명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이게 과거의 일인지 현재의 일인지 모를 정도로 처음에는 약간의 혼란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대비시켜서 주인공 춘희가 여태 살아왔던 인생의 과정을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어떠한 마음의 변화를 겪어 왔으며 지내왔는지 등의 속사정을 대중의 입장에서 원활하게, 진지하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죠.
과거 나 자신과 마주치게 되고 진솔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다시 한번 진정으로 나 자신에 대해 이해하고 알아가는 뜻 깊은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춘희도, 우리 모두에게도.
그래서인지 더욱 더 마음 속 깊은 울림이 남아있습니다. 아직도.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 속 등장하는 사촌오빠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슴 속 어딘가를 쿡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꽤 오랜 시간 사촌 오빠의 말을 곱씹었습니다.
어쩌면 그냥 흘러가는 말일 수도 있고, 영화를 보면 이 말이 순식간에 지나가서 캐치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그 말들이 너무 크게 와닿았습니다.
"살아줘서 고맙다."
극 중 사촌오빠는 춘희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데요.
제가 이 말에 꽃혔던 이유는 아마도 누군가에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가장 듣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을 사촌 오빠가 해줘서 더 여운이 남습니다.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았거든요.
알게 모르게 잘 지내는 듯 싶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저도.
'살아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나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해준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영화 중반 쯤에 사촌 오빠는 춘희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너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게 뭐야?"
이 부분에서 살짝 뜨끔했습니다..ㅎㅎ
오히려 나에게 물어봤죠.
날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
이 말은 참 쉬워보이면서도 대답하기 참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정곡을 찌르시는지요...
여러분은 여러분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게 무엇인가요?
'태어나길 잘했어' 영화는 대중들에게 이렇게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를 끊임없이 던져주고, 그 안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함께 전달해주고 있어서 속이 깊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춘희는 우연히 '주황'이라는 한 남자와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됩니다.
주황은 어렸을 적 부모님의 가정폭력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말을 심하게 더듬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 둘은 무언가의 끌림에 의해 서로 자주 들여다보게 되고, 주황의 적극적인 구애로 춘희의 마음을 조금씩 열리게 하여 사로잡습니다.
주황의 등장으로 인하여 한층 무겁기만 했던 영화의 공기가 조금은 유쾌하게 풀어져서 더 매력적인 영화로 거듭난 느낌이었습니다.
그만큼 주황이라는 캐릭터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라는 의미이죠!
덕분에 같이 영화보고 있던 사람들도 주황만 나왔다 하면 환히 웃으며 그에 맞게 같이 즐기면서 봤던 기억이 나네요.
그동안 홀로 외롭게 지내왔던 춘희는 주황을 만나 함께 하는 기쁨을 알게 되고 하루하루 웃으면서 지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춘희는 주황에게 이런 질문을 건넵니다.
"주황씨는 어렸을 때의 나를 만나면 어떨 것 같아요?"
이에 주황은 "저는.. 어렸을 때의 저에게 부모님께 맞지만 말고.. 맞서 싸우라고 하고 싶어요..!"와 같은 뉘앙스로 답합니다.
여러분은 어떨 것 같나요?
저라면 어느 상황이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게 자존감 좀 높이고 단단해지는 마음 훈련을 하라고 건넬 것 같네요.
그리고
그리고 춘희는
"제가 춘희씨 지켜드릴게요."
라는 말을 주황이 할 때마다
"주황씨, 사람 지켜준다고 하는 거 쉽게 말해선 안 되는 거예요."
라는 말을 하며 약간의 방어적인 태세를 취합니다.
상처가 많은 춘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마음으로 이런 말을 주황에게 수십 번씩 건넵니다.
더 이상은 상처받기 싫은 거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춘희는 주황에게 헤어짐을 뜻하는 인사말을 건넵니다.
"우리 그만 만나요. 저 자신에게 너무 지친 것 같아요."
와 같은 뉘앙스로 말입니다.
춘희는 이렇듯 주황에게 인사말을 할 때도 역시 배경은 터널이였는데요.
터널이 주는 공간적인 의미가 무엇일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춘희가 학창시절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살아왔던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까 하는데요.
학창 시절엔 사촌 가족들과 함께 지냈지만 춘희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거의 혼자 지내다시피 그 공간을 사용하게 되었는데요.
이 집이 이제는 부동산에게로 넘어가고,
춘희는 예전에 자신에게 이 집을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 되어서 한 마디를 건네죠.
"그 집 제가 지켰어요."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집 제가 지켰어요.'라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로 자신을 향한 말로도 성립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렸을 때의 외롭고 지친 나를 온전히 지킨 건 나 자신밖에 없었다고 말이죠.
이 영화에 대한 소감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럴 것 같아요.
[잔잔하게 흘러가는 듯 싶다가도 그 안에 담긴 따뜻한 메시지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눈을 뗄 수 조차 없게 만드는 영화이다.]
여러분도 이 영화를 보시고
'아, 태어나길 잘했구나.'하는 마음이 드시길 바랍니다.
<내가 가장 눈여겨 봤던 점!>
1. '터널'이라는 공간적 의미가 나타내는 게 무엇일지.
2. 과거의 춘희와 현재의 춘희를 대비시킴으로써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고 있는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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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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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헤어질 결심> 박찬욱, LA 미술관 아트·필름 갈라 수상
ⓒ 네이버 영화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의 아트 필름 갈라의 올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박찬욱 감독은 미국 아티스트 헬렌 파시지안과 함께 수상자로 선정됐다.
<엔시티 드림 더 무비: 인 어 드림>, 글로벌 예매 오픈
ⓒ 드림메이커 / CJ 4DPLEX
NCT DREAM의 첫 번째 영화가 오늘 글로벌 예매 오픈과 함께 메인 예고편과 보도스틸을 공개했다.
영화는 11월 30일 한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한국 예매는 11월 중순에 진행될
예정이다.
정려원, <하얀 차를 탄 여자> 샌디에이고영화제 수상
ⓒ 네이버 영화
배우 정려원 주연의 영화 <하얀 차를 탄 여자>가 올해 샌디에이고국제영화제에서 국제 영화
부문에서 '베스트 인터내셔널 피처' 상을 받았다. ‘하얀 차를 탄 여자’는 피투성이가 되어 작은
병원에 나타난 여자 도경과 사건의 진실을 좇는 형사 현주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스릴러물이다.
<아바타: 물의 길>, 러닝타임 3시간 10분
ⓒ 네이버 영화
13년 만에 개봉하는 <아바타>의 속편 <아바타: 물의 길>의 러닝타임이 3시간 10분으로 확정
됐다고 미국 매체 할리우드포터가 보도했다. <아바타>보다 러닝타임이 29분 정도 늘어났다.
해외
<13일의 금요일 프리퀄>, 프리퀄 시리즈 <Crystal Lake> 제작
ⓒ 네이버 영화
유명 공포 영화 <13일의 금요일>의 프리퀄 시리즈인 <Crystal Lake>를 Peacock에서 A24와 함께
제작 중이라고 한다. 원작 작가와 함께 제작하여 원작의 요소가 담긴 프리퀄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완다 비전> 스핀오프, <비전 퀘스트> 제작 예정
ⓒ IMDB
디즈니 플러스에서 <완다 비전>의 스핀오프 시리즈로 <비전 퀘스트>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화이트 비전이 기억을 되찾는 여정을 담은 작품이며, <완다 비전>의 메인 작가 잭 쉐퍼가 각본에
참여한다고 한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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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사를 바라보는 성찰의 태도
과거사를 바라보는 성찰의 태도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파이의 아내>는 NHK에서 방영된 TV 드라마를 영화의 형식으로 다시 제작한 영화다. 일본의 어두운 과거를 폭로하고 성찰하는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투자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공영방송 NHK의 제작지원 하에 이 영화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본래 8K 카메라로 촬영되고 NHK 자사의 4K/8K 채널에 한정적으로 방영 예정이던 드라마는 베니스 영화제 극장 상영을 위해 재작업하는 과정에서 화면비 변경(1.78:1->1.85:1)과 색보정 작업 등을 거쳐 2K로 변환됐다. 8K의 선명한 화질이 2K가 되면서 그 선명도가 떨어진 것임은 분명할 것이나 이 영화가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이고, 예산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 때문에라도 둘 사이의 화질 차이를 따지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를 만든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은사자상)을 받으며 이 영화는 더욱 회자되었고, 영화화는 잘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시대극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모던하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이 생각은 영화를 볼수록 독특한 영화라는 판단으로 확대됐다. 이 영화는 분명 1940년대 고베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이고, 인물들의 연극적은 대사 톤과 당시대를 옮겨 놓은 듯한 세트, 인물의 동선을 팔로잉하는 연극적인 촬영 방식 이를 분명히 드러낸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가 이 영화가 전통적인 역사 내지 시대극의 형식이나 스파이 장르물의 공식을 따르고 있느냐는 질문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물론 이 말이 이 영화가 과거 사실을 왜곡하거나 어떠한 관점에 편향된 영화라는 말은 아니다. 이 영화가 구성되는 방식에 독특한 지점이 있다는 뜻이다.
먼저, 이 영화의 방점은 어디에 찍혀있나. 보통의 정통 스파이물과는 다르게 이 영화의 방점은 제목대로 스파이보다도 '아내'에 찍혀있다. 보통의 스파이물이라면 범인 찾기 혹은 범인이 범인임을 들키느냐 마느냐 하는 데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스파이가 누군지를 초장부터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영화의 초점 자체가 스파이가 아닌 그의 아내 사토코에게 맞춰져 있다. 영화는 대부분 사토코의 시점을 따라가고, 관객은 사토코의 심정에 이입을 하며 극을 따라가게 된다. 유사쿠가 스파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둘은 섬유무역회사를 운영하며 유복한 생활을 즐겼다. 이들의 집 내부를 보면 유사쿠가 서양의 문화를 동경하고 그에 매료됐다는 걸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고, 무척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은 다가오는 전쟁과 함께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어느 날 유사쿠는 전쟁이 더 심해지기 전에 만주를 보고 오겠다며 급히 만주로 떠나고,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만주에서 돌아온 유사쿠는 달라져있다. 이상함을 눈치챈 사토코는 그를 추궁하고, 그가 만주에서 일본군이 병균으로 생체실험했고, 그로 인해 죽은 수많은 주검을 목격하고 그 증거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미국으로 가져가 폭로하려는 그의 계획을 듣는다. 헌병대장이 되어 돌아온 사토코의 옛 친구 야스하루의 존재가 부각되는 건 이 시점부터다. 세 인물이 서로를 의심하며 빚어내는 갈등은 이 영화의 서스펜스를 지탱해나간다. 야스하루는 유사쿠를 의심할 만한 정보를 일부러 그녀에게 흘리고,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풀리지 않는 그의 행동에 점점 의심을 갖게 된다.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형식을 가지기도 한다.
자신은 '코스모폴리탄'이라며 세계시민을 자처하는 유사쿠는 자국 일본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려 하고, 사토코는 지금까지 유사쿠의 곁에서 누린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사토코는 처음엔 그를 배신한다. 남편의 금고에 있던 노트를 야스하라에게 가져가 조카 후미오가 체포되게 만들고, 자신의 남편 또한 의심받게 만든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사랑하는 남편을 택하고, 남편이 스파이라면 자신은 스파이의 아내다 되겠다 선언한다. 그녀를 움직인 것은 '진실'을 밝힌다는 대의보다 사랑이었고, 그녀에게 중요한 건 오직 유사쿠였다. 그러나 대의가 동기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녀는 남편이 만주에서 가져온 필름을 영사해 그가 보고 들은 만주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목격하고, 그를 돕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러나 미국으로 떠나는 날, 사토코는 유사쿠에게 배신당한다. 누군가 사토코의 행방을 고발해 미국으로 가는 배 안에 숨어있던 사토코는 일본군에게 발각되고 붙잡힌다. 사실 그녀가 맞이하는 결말은 암시됐다. 그녀가 유사쿠, 후미오와 함께 찍은 필름에서. 바로 이 필름, 영화 안의 또 다른 영화 안에서 사토코는 연인의 금고를 털다가 연인에게 들키고, 연인은 그녀가 쓰고 있던 가면을 벗겨 배신자가 자신의 연인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달아나는 연인 사토코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사토코는 그 총알에 맞아 죽음을 맞는다. 연인은 죽은 사토코를 안고 슬퍼한다. 이 필름은 영화 마지막에 가서 다시 상영된다. 많은 일본군들 앞에서. 관객은 그때서야 사토코가 봤던 만주의 참상을 담은 영상을 재촬영한 필름의 일부를 보게 되며, 또한 거기에 입혀진 유사쿠의 필름을 다시 보게 된다.
필름이라는 매개의 의의는 사실상 이 영화의 핵심이다. 관객은 만주에서 벌어지는 생체실험을 직접적으로 목격하지 못하고, 유사쿠가 만주에서 가져온 실험노트와 영상을 찍어온 필름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게 된다. 진실을 밝히고 전달하는 수단으로써 기능한다. 또한 필름은 사토코가 유사쿠를 적극 지지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단순 전달을 넘어 새로운 의의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사쿠가 만주에서 가져온 필름은 그가 그곳의 참상을 직접 보고 들으며 찍어온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영상물을 재촬영한 결과물이다. 그곳의 진실은 필름 안에 다시금 담겼고, 누군가가 그것을 그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 목격하고 진실을 알게 되도록, 그것에 대한 직시와 판단을 가능토록 만들었다. 유사쿠가 사토코와 함께 찍은 필름이 덧입혀진 필름을 일본군이 다 같이 보게 되는 것 또한 반대의 의미에서 이 영화의 중요 씬 중 하나다.
덧입혀진 필름에 당황하던 사토코는 남편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주 훌륭하다"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다. 이어서 배를 타고 떠나며 유유히 손인사를 하는 유사쿠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을 배신했던 연인을 역으로 배신한 인물의 통쾌한 복수극으로 끝날 수도 있었겠으나, 이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수감된 사토코에게로 다시 초점을 맞춘다. 패전의 그림자가 고베에까지 드리웠을 때, 사토코가 불바다가 된 조국을 바라보며 뱉는 대사는 당시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미친 나라에서 미치지 않은 사람은 미친 사람이 되고, 미친 사람은 미치지 않은 사람이 된다. 정상적이지 않은 조국의 패전은 그 비정상의 무너짐에 있어서는 기쁨이 되겠지만, 조국의 패배라는 면에서는 슬픔이 된다. 바닷가에 가 그제야 울분을 토하는 사토코의 모습은 그런 조국을 둔 개인이 결국 맞닥뜨리게 된 피할 수 없는 비극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일본의 군국주의 과거사를 보여주면서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금의 일본이 가져야 할 양심과 반성 의식은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전쟁 중인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시대물을 작업해보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자유와 행복이 어떤 것인지를 보이고, 국가 안 개인이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국가에 의해 어떻게 빼앗기게 되는지 그려낸다. 감독의 반성적이고 성찰적인 양심선언처럼도 느껴지는 이 영화는 군국주의의 잔재 속 극우주의가 만연한 일본에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같다. 지식인이자 예술인의 입장에서 자국의 과거사를 드러내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작금의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묻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성찰적 태도는 일본 영화계의 주목할 만한 새로운 물결 중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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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강제당하는 노인들
노인이 주인공인 두 영화가 같은 날(2월 7일) 개봉했다. 한국 영화 〈소풍〉과 일본 영화 〈플랜 75〉. 플롯, 캐릭터, 감성, 질감 등 많은 것이 다른 영화지만 두 영화에는 공통점도 있다. 우리 사회가 ‘노인’이라는 기표의 내용을 어떻게 채우고 있는가? 노인은 그 앞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두 영화가 공유하는 질문이다. 지금껏 살아온 삶의 맥락이 소거된 채 가족과 사회에 ‘부담’을 주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는 자괴감만 남은 현실. 이것이 과연 노인에 대한 온당한 대우일까? 두 영화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변하는지를 따라가보자.
먼저 〈소풍〉이다. 여성 노인 은심의 집에 갑자기 아들네 가족이 들이닥친다. 사업상 어려움을 겪는 아들은 은심의 보험이나 집을 처분해 목돈을 마련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 파킨슨병이 시작되어 몸에 불편을 느끼면서도 아들이 이때다 싶어 요양원 이야기부터 꺼낼까 봐 이를 전하지 않은 은심은 때마침 찾아온 고향 친구 금순을 따라 60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고향에서는 금순과 우정을 더 단단히 다지고, 고향을 야반도주하듯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마주하며, 자신을 짝사랑했던 태호와 재회해 지금껏 누리지 못한 행복한 시간을 만끽한다. 그러나 행복 속으로 불쑥불쑥 끼어드는 노환과 질병은 이들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일깨운다. 은심과 금순은 얼마 남지 않은 생애 동안 자신이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다는 데 공감하고 그 일을 매듭 지은 후 소풍을 떠난다.
그들이 마무리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기다. 영화는 계속 부모에게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는 자식들을 부정적으로 재현한다. 노인들이 기댈 데 없이 홀로 건강을 돌봐야만 하는 현실의 문제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두 노인은 결국에는 자식들에게 가진 것을 모두 넘겨준다. 사업이 망해 고꾸라지는 아들(은심), 평생 한 번이라도 가족과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은 장애인 아들(금순)은 두 노인이 자식들에게 모든 재산을 넘기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간 소풍의 장소. 바다 옆, 아름답지만 날카롭게 깎인 절벽에서 은심과 금순은 손을 잡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의 발걸음이 자식에 대한 ‘책무’를 다했다는 뿌듯함을 만끽하기 위함인지,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니 친구와 함께 세상을 등지겠다는 뜻인지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고 영화는 마무리된다. 자녀의 문제를 ‘해결’했으니 노환과 질병이라는 자기 문제에서는 자식에게도, 국가에서도 받아낼 것이 없다는 듯 홀가분한 얼굴이다. 그러나 노인이 가족과 사회 모두에게 ‘부담’이기만 한 사회에서 이들의 삶이 ‘소풍’일 수 있을까? 노인에게 행복한 삶이 가능함을, 그들의 고난이 사적인 영역에 방치되었음을 보여준 영화는 두 노인의 강요된 퇴장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자신이 제기한 비판적 함의를 재빠르게 회수한다. 모든 걸 퍼주고도 ‘부담’이 되길 거부하는 노인의 삶을 아름다운 ‘소풍’에 비유함으로써 말이다.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더한 〈플랜 75〉에서도 노인이 사회의 ‘부담’인 건 마찬가지다. 영화는 울분에 찬 청년이 노인을 살해하는 범죄 현장과 범인이 자살하며 스스로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노인 돌봄에 필요한 ‘비용’에 청년 세대가 극단적 반감을 가지는 것은 미래의 일도, 일본만의 일도 아니라는 점에서 섬뜩한 오프닝이다. 사회 갈등이 증폭되자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발표한다. 정책 이름은 ‘플랜 75’. 75세 이상 노인 중 신청자에 한해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내용이다. 기묘한 정책이다. 정책은 공공성을 담보해야 하는데 플랜 75는 공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을 사적으로 책임지라는 일에 공적 권력을 동원한다.
78살의 미치는 고민이 깊다. 혼자 사는 그는 호텔에서 청소하며 생계를 이어왔는데 최근 고령의 노동자가 작업 중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비슷한 일이 재발할까 두려운 호텔에 의해 해고당한다. 고령이라는 이유로 재취업은 쉽지 않다. 게다가 미치의 집은 철거를 앞두고 있다. 그러던 와중 정부는 플랜 75가 큰 정책적 효과를 거두었다는 데 고무되어 신청자 연령을 대폭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발표한다. 결국 미치는 플랜 75를 신청한다. 여기서 우리는 〈소풍〉과 같은 질문을 마주한다. 자식에게 모든 걸 넘겨주고 아무런 공적 부조를 받지 못하는 삶을 ‘소풍’으로 포장하는 일은 자발적인가? 플랜 75, 즉 죽음을 선택하는 미치의 결정은 자발적인가?
두 영화에서 세 노인이 내린 선택은 강제된 자율이다. ‘노인을 부양하는 데는 비용이 들고, 그건 우리 모두에게 부담이야’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존경받는 노인’으로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려면 내려야만 하는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다. 왜 국가가 노인을 방치하냐고 항의하는 자는 미래 세대를 걱정하지 않는 ‘이기적’ 노인이 되도록 이미 담론 지형이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존엄’하고 ‘품위’ 있는 마무리는 강제된 역할 기대 혹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소풍〉과는 달리 〈플랜 75〉에서는 미치가 마지막 순간에 결정을 철회하고 삶을 이어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이 장면의 배경을 은은하게 빛나는 햇빛으로 하여 노인을 ‘비용’, ‘부담’이 아닌 ‘인간’으로 대하는 사회의 모습을 상상케 한다. 같은 주제를 다루어 서로 다른 메시지를 내는 두 영화는 노인이 ‘비용’이자 ‘부담’인 시대의 분위기를 공통적으로 포착해낸다. 〈플랜 75〉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실제로 도래하기 전에 〈소풍〉이 그려내는 현실을 다르게 해석하고 풀어낼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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