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02-19 07:57:50
죽음을 강제당하는 노인들
영화 〈소풍〉, 〈플랜 75〉


노인이 주인공인 두 영화가 같은 날(2월 7일) 개봉했다. 한국 영화 〈소풍〉과 일본 영화 〈플랜 75〉. 플롯, 캐릭터, 감성, 질감 등 많은 것이 다른 영화지만 두 영화에는 공통점도 있다. 우리 사회가 ‘노인’이라는 기표의 내용을 어떻게 채우고 있는가? 노인은 그 앞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두 영화가 공유하는 질문이다. 지금껏 살아온 삶의 맥락이 소거된 채 가족과 사회에 ‘부담’을 주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는 자괴감만 남은 현실. 이것이 과연 노인에 대한 온당한 대우일까? 두 영화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변하는지를 따라가보자.
먼저 〈소풍〉이다. 여성 노인 은심의 집에 갑자기 아들네 가족이 들이닥친다. 사업상 어려움을 겪는 아들은 은심의 보험이나 집을 처분해 목돈을 마련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 파킨슨병이 시작되어 몸에 불편을 느끼면서도 아들이 이때다 싶어 요양원 이야기부터 꺼낼까 봐 이를 전하지 않은 은심은 때마침 찾아온 고향 친구 금순을 따라 60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고향에서는 금순과 우정을 더 단단히 다지고, 고향을 야반도주하듯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마주하며, 자신을 짝사랑했던 태호와 재회해 지금껏 누리지 못한 행복한 시간을 만끽한다. 그러나 행복 속으로 불쑥불쑥 끼어드는 노환과 질병은 이들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일깨운다. 은심과 금순은 얼마 남지 않은 생애 동안 자신이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다는 데 공감하고 그 일을 매듭 지은 후 소풍을 떠난다.

그들이 마무리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기다. 영화는 계속 부모에게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는 자식들을 부정적으로 재현한다. 노인들이 기댈 데 없이 홀로 건강을 돌봐야만 하는 현실의 문제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두 노인은 결국에는 자식들에게 가진 것을 모두 넘겨준다. 사업이 망해 고꾸라지는 아들(은심), 평생 한 번이라도 가족과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은 장애인 아들(금순)은 두 노인이 자식들에게 모든 재산을 넘기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간 소풍의 장소. 바다 옆, 아름답지만 날카롭게 깎인 절벽에서 은심과 금순은 손을 잡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의 발걸음이 자식에 대한 ‘책무’를 다했다는 뿌듯함을 만끽하기 위함인지,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니 친구와 함께 세상을 등지겠다는 뜻인지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고 영화는 마무리된다. 자녀의 문제를 ‘해결’했으니 노환과 질병이라는 자기 문제에서는 자식에게도, 국가에서도 받아낼 것이 없다는 듯 홀가분한 얼굴이다. 그러나 노인이 가족과 사회 모두에게 ‘부담’이기만 한 사회에서 이들의 삶이 ‘소풍’일 수 있을까? 노인에게 행복한 삶이 가능함을, 그들의 고난이 사적인 영역에 방치되었음을 보여준 영화는 두 노인의 강요된 퇴장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자신이 제기한 비판적 함의를 재빠르게 회수한다. 모든 걸 퍼주고도 ‘부담’이 되길 거부하는 노인의 삶을 아름다운 ‘소풍’에 비유함으로써 말이다.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더한 〈플랜 75〉에서도 노인이 사회의 ‘부담’인 건 마찬가지다. 영화는 울분에 찬 청년이 노인을 살해하는 범죄 현장과 범인이 자살하며 스스로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노인 돌봄에 필요한 ‘비용’에 청년 세대가 극단적 반감을 가지는 것은 미래의 일도, 일본만의 일도 아니라는 점에서 섬뜩한 오프닝이다. 사회 갈등이 증폭되자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발표한다. 정책 이름은 ‘플랜 75’. 75세 이상 노인 중 신청자에 한해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내용이다. 기묘한 정책이다. 정책은 공공성을 담보해야 하는데 플랜 75는 공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을 사적으로 책임지라는 일에 공적 권력을 동원한다.

78살의 미치는 고민이 깊다. 혼자 사는 그는 호텔에서 청소하며 생계를 이어왔는데 최근 고령의 노동자가 작업 중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비슷한 일이 재발할까 두려운 호텔에 의해 해고당한다. 고령이라는 이유로 재취업은 쉽지 않다. 게다가 미치의 집은 철거를 앞두고 있다. 그러던 와중 정부는 플랜 75가 큰 정책적 효과를 거두었다는 데 고무되어 신청자 연령을 대폭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발표한다. 결국 미치는 플랜 75를 신청한다. 여기서 우리는 〈소풍〉과 같은 질문을 마주한다. 자식에게 모든 걸 넘겨주고 아무런 공적 부조를 받지 못하는 삶을 ‘소풍’으로 포장하는 일은 자발적인가? 플랜 75, 즉 죽음을 선택하는 미치의 결정은 자발적인가?
두 영화에서 세 노인이 내린 선택은 강제된 자율이다. ‘노인을 부양하는 데는 비용이 들고, 그건 우리 모두에게 부담이야’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존경받는 노인’으로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려면 내려야만 하는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다. 왜 국가가 노인을 방치하냐고 항의하는 자는 미래 세대를 걱정하지 않는 ‘이기적’ 노인이 되도록 이미 담론 지형이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존엄’하고 ‘품위’ 있는 마무리는 강제된 역할 기대 혹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소풍〉과는 달리 〈플랜 75〉에서는 미치가 마지막 순간에 결정을 철회하고 삶을 이어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이 장면의 배경을 은은하게 빛나는 햇빛으로 하여 노인을 ‘비용’, ‘부담’이 아닌 ‘인간’으로 대하는 사회의 모습을 상상케 한다. 같은 주제를 다루어 서로 다른 메시지를 내는 두 영화는 노인이 ‘비용’이자 ‘부담’인 시대의 분위기를 공통적으로 포착해낸다. 〈플랜 75〉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실제로 도래하기 전에 〈소풍〉이 그려내는 현실을 다르게 해석하고 풀어낼 고민이 필요하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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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영화 문법에서 약간의 변주를 주다
전쟁영화는 잘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고수, 신하균, 이제훈이 나온다기에 팬심으로 보기 시작한 영화 <고지전>. 전쟁영화인만큼 잔인한 장면이 꽤나 있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전쟁영화보다는 나름 담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고지전> 시놉시스
1951년, 우리가 알고 있던 전쟁은 끝났다 이제 모든 전선은 ‘고지전’으로 돌입한다!
1953년 2월, 휴전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교착전이 한창인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전사한 중대장의 시신에서 아군의 총알이 발견된다. 상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적과의 내통과 관련되어 있음을 의심하고 방첩대 중위 강은표에게 동부전선으로 가 조사하라는 임무를 내린다. 애록고지로 향한 은표는 그 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친구 김수혁을 만나게 된다. 유약한 학생이었던 ‘수혁’은 2년 사이에 이등병에서 중위로 특진해 악어중대의 실질적 리더가 되어 있고, 그가 함께하는 악어중대는 명성과 달리 춥다고 북한 군복을 덧입는 모습을 보이고 갓 스무살이 된 어린 청년이 대위로 부대를 이끄는 등 뭔가 미심쩍다. 살아 돌아온 친구, 의심스러운 악어중대.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은표는 오직 병사들의 목숨으로만 지켜낼 수 있는 최후의 격전지 애록고지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고지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지옥같은 2년을 그리다
전쟁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들이라 하면 6.25 초반 치열했던 전투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었다. 하지만 6.25전쟁에게 가장 많은 피해와 소모전이 있었던 시기는 초반이 아닌 전선이 고착화되고 난 후반의 시기다. 이때의 역사를 잘 표현한 작품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고지전은 그 제목 그대로 소모전의 양상과 전선 고착 지역에서의 뺏고 뺏기는 싸움을 잘 표현해낸 것 같다.
그리고 전투 장면만 담는 것이 아니라 전투 직후, 전투가 벌어지지 않을 때의 모습도 간간이 보여서 전쟁에는 전투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보여줘서 인상적이었다.
무엇을 위해 싸웠을까?
영화 <고지전>에서 인상적인 대사를 꼽아보자면 마지막 장면의 대사다. 북한군 장교였던 류승룡이 하는 말이었다. 분명히 왜 전쟁을 시작했는지 알았는데 이제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마지막 숨을 쉬는 장면이었다.
전쟁의 이유도 알지 못하고 국가가 전쟁을 일으켜서 끌려온 사람들이 살기 위해, 집에 돌아가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전쟁의 비윤리성을 바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 부분이 영화 <1917>과 통하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전쟁을 끝낼 수도 있ㅇㅆ지만 마지막 사람이 죽을 때까지, 마지막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는 전쟁의 부조리함이 잘 느껴졌다.
그래도 편안한 장면들이 곳곳에 있어 좋았던 작품
다른 전쟁영화들보다 영화 <고지전>을 조금은 편하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전투의 요소에 집중했다기 보다는 전쟁 속에서 북한군과 남한군의 개인적 교류에도 어느정도 할애를 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동원에 의해 전쟁에 참여하지만 그 이데올로기가 전면에 나온다기 보다는 개인적 감정에 방점을 찍으면서 그 요소를 북한군과 남한군이 애록고지에서 소통을 하는 부분으로 등장시킨다.
전쟁 영화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전쟁을 겪으며 느낀 개인적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서 그 정치색을 어느 정도 들어낸 것 같아서, 그리고 생각보다는 조금 드라이한 전쟁영화여서 개인적으로 거북하지 않게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전쟁영화 특유의 문법 때문에 전쟁영화를 보는 것에 지친 사람들에게 꽤나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영화 <고지전> 역시 그 특유의 문법을 따르고는 있지만 약간의 변주를 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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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곡성> 제친 <파묘>
<파묘>는 16일만에 700만 관객을 넘어서며 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넘어 오컬트 장르 최고 흥행작이 되었는데요. 한국은 지금 파묘들었다. 이번주 주말 박스오피스 씨네픽과 함께해요[국내 박스오피스]
장재현 감독의 <파묘>가 지난 주말에도 흥행 독주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누적 관객 수 804만여 명으로 <서울의 봄>보다 일주일 빨리 800만 관객을 넘겼습니다. 다음으로 <듄: 파트 2>가 누적 관객 수 128만 명, <웡카>가 340만명을 기록하며 각각 2위,3위를 기록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에선 <쿵푸팬더 4>가 <듄: 파트2>를 밀어내고 1위에 올라섰습니다. <쿵푸팬더4>는 모든 쿵푸 마스터들의 능력을 복제하는 빌런 ‘카멜레온’에 맞서기 위해 용의 전사인 자신마저 뛰어넘어야 하는 ‘포’의 새로운 도전을 그립니다. 앞서 <쿵푸팬더> 시리즈는 국내에서 약 1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 전 세계적으로 약 20억 달러의 수익을 낸 드림웍스 최고 흥행 시리즈로 국내에서는 오는 4월 10일 개봉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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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어진 집중력을 뛰어넘게 만드는 "전종서의 핏빛 액션"
집중력. 요즘 영상을 보는 내게 커다란 주제다. 한참을 유튜브 숏츠와 인스타 릴스를 돌려보다보니 짧고 강렬한 영상에 익숙진 나는 집중력이 약해졌다. 하지만 집중력을 돕는 중요한 도구가 있는데 바로 음악이다. 시각으로만 화려하고 자극적인 영상에 노출되다가 지쳐버린 집중력이 생경한 음악을 만나게 되면 다시 정신차리게 된다.
영화 발레리나는 그런 영화다.
영화는 강렬하다. 액션도 음악도. 빠르다. 액션도 전개도. 익숙한 전개이며 서사인데도 집중력을 흐틀지지 않는다. 개연성이 아쉽기도 하고, 뜬금없는 등장인물들에 물음표도 던지지만 결국 배우 전종서 그리고 그를 돋보이게 만드는 감독의 연출 거기에 귀를 만족시켜주는 천지 프로듀서 GRAY. 삼위일체는 결국 넷플릭스 세계 2위까지(2023년10월13일 기준) 오르게 만들어 버렸다.
우선 첫 등장씬에서 부터 귓가를 반갑고 즐겁게 만드는 80-90년대 오락실에서나 나올듯한 BGM이 온 신경을 집중하게 만든다. 그레이의 천재성은 영화 내내 음악에서 발견할수 있다. 편의점을 터는 무자비한 강도들. 그들의 폭력가운데 조용히 덤덤하게 등장한 주인공 옥주. 그리고 시작되는 거침없고, 사정없는 액션.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의 '우마 서먼'이 보이는 모습은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색감이 멋진 영화
자살로 마감한 친구가 남긴 소원. 그리고 그 소원을 자신이 꼭 해야할 일로 받아들인 옥주. 옥주(전종서)의 피의 복수는 거대한 조직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되고 최프로를 찾아가는 과정속에 진행되는 액션은 시원하다 못해 서늘해진다. 영화 <발레리나>는 색감이 뛰어난 영화다. 옥주와 동창인 발레리나 민희. 그둘은 서로의 무료함에 생기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회상 장면마다 나오는 파스텔 톤의 색감과 카메라 워킹은 보는이로 하여금 고단한 액션의 속도감에 환기를 가져다 준다.
이와는 정반대의 색감이 나오는 것이 바로 최프로와의 액션씬이다. 소중한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간 '최프로'(김지훈)를 찾아 붉은 빛이 감도는 호텔에서 핏빛 액션은 더욱 전종서를 전종서 답게, 최프로를 최프로 답게 몰고가는 황홀한 레드 액션이다.
건가타 액션을 즐겨보시길
또한 이 영화의 즐길거리는 바로 건 가타 액션신이다. 필자는 이퀼리브리엄턴을 좋아한다.
특히 주인공 존 프레스톤(크리스찬 베일)의 놀라운 건 카타 장면을 잊을수가 없다.
건 카타란?
커트 위머 감독의 영화 《이퀼리브리엄》에 등장하는 요원들인 그라마톤 클레릭들이 사용하는 가공의 총기 무술. 카타는 한자 形의 일본 한자음 독음으로, 본래는 일본 무술에서 태권도의 품새나 쿵푸의 투로 같은 개념으로써 무도의 기술을 규정된 형식에 맞추어 자습할 수 있도록 이어놓은 동작을 말한다. <나무위키 참고>
전종서의 건 카타를 떠오르게 만드는 액션씬은 이 영화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할 장면이다. 특히 잠깐 등장하지만 분위기를 압도하는 조사장(김무열)의 너무나 통쾌한 죽음은 나에게 있어서 발레리나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등장하는 특별출연의 총포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함께 몸담았던 조직의 문영언니 연기나 개연성이 아쉽기는 했지만 아무 생각없이 빠른 전개감에 집중력을 놓치지 않고 영화에 빠지고 싶던 내게 발레리나는 그 길로 인도해주었고, 나는 그곳에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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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결국 다시 혼자가 될 것이란걸 알기 때문에
업보. 불교에서 쓰는 말이다. 선악의 행업을 말미암아 삼은 과보를 뜻한다. 이 업보의 주체는 상황마다 다르다. 인간관계에 정답이란 없으니 당연하다. 내가 업보를 돌려받을 수도 있고 타인이 누군가에게 줬던 상처를 내가 입힐 수도 있다. 불교를 정의하는 또 다른 가치관이 있다. 윤회다. 생명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내가 지금 태어났다고 한 건 언제쯤 죽는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또 나는 다른 무언가로 태어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좋은 일 나쁜 일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지금 하품을 크게 하며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업보가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크게 준 상처의 대가를 돌려받고 있는 셈이다.
이 가정을 계속해서 곱씹다 보면 인생이 허무해진다. 공감을 못 받으면 어떡하지. 이겨내도 막상 같은 시련이 덮치면 어떡하지. 시간이 지나면 다 없어지는 일인데. 이러다 내가 받은 상처가 세상의 기준에 끼지 못한 게 된다면 참 외롭지 않을까. 이 감정이 내가 단 1마디도 반박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잘못한 거니까 그런 거겠지.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상대를 모욕할 방법을 고민한다. 그리고 알게 된다. 일어날 일이 일어났고, 나 역시 어떤 것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주변인들에게 더 감사해야 한다는 걸. 갑자기 나더러 화려하다고 했던 내 스승 중 한 명의 얼굴이 떠오른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연락할 일은 없어 마음으로만 그분의 행복을 기원한다. 나는 내가 성공했던 일들보다 훨씬 더 초라한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무언가에 휘둘리는 인간이기도 하고.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아무것도 없는 영화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눠진다. 한국의 인기 여배우가 유명 영화감독과 불륜설이 난다. 국내 여론은 당연히 난리가 나고 베를린으로 도피한다. 그리고 아는 언니랑 대화를 나눈다. 1부 끝. 2부는 여배우가 한국으로 돌아온다. 불륜이 났던 남자 감독과 만난다. 2부 끝. 이 영화는 줄거리만 단출한 게 아니다. 영화의 화법도 조용하다. 플롯이랄 게 없다. 조명도 제대로 안 된 것 같고. 인물 갑자기 튀어나오고. 대화도 사실 의미가 없다. 난 왕가위를 좋아한다. 왕가위 영화의 핵심은 때깔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왕가위의 감성과는 전혀 딴판이다. 왕가위는 스트릿룩으로 멋을 뽐낸 사람쯤 된다면 (이 영화에서의) 홍상수는 맨투맨에 슬랙스만 입었는데 신발이 짚신인 사람이다. 난 난해한 옷차림인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은 뭘까.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비춰서 과연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없다. 이 사람이 말하고 싶은 건 없다. 2021년 오늘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 알았다. 이 사람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딱히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걸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혼자 밤 해변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말이 아니라 상황을 보여주려고 했다. 감독은 어떤 감정을 생각하고 이 영화를 쓴 걸까? 난 외로움과 후회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영희가 유일한 속마음을 털어놓는 공간은 해변이다. 그녀는 애인을 좀 많이 신경 쓴다. 친한 언니에게도 애인 이야기를 한다. 지인들과 술 먹을 때도 애인 생각을 한다. 해변에서도 애인의 얼굴을 그린다. 그러다가 해변에서 잔다. 시간이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한국에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묘사되지 않는다. 그냥 그녀는 그러고 만다. 아무 일 없는 듯이. 시간이 지나 그녀의 그리움이 어떻게 됐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2부를 보자. 바다에서 지인들끼리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다. 근데 이건 꿈이었다. 영화가 보여주는 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2부가 끝났다. 영화 안에서 사랑하는 애인을 만났던 건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다. 모든 게 꿈이었다. 결국 그녀는 혼자서 길을 걷는다. 영화의 시작은 친구와 함께 대화하는 장면이었는데 끝은 혼자다. 갈등의 해결? 그런 것 없다. 주인공의 해피엔딩? 없다. 새드엔딩? 당연히 없다. 아무것도 없다. 이 상황은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외로움이란 무엇일까. 이 세상에 나밖에 없는 것 같은 기분이 외로움이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그런 막연함이 외로움이라 생각한다. 영희는 혼자서 소리친다.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냐고 주변인들에게 묻는다. 근데 이게 꿈이다. 내가 진짜 나쁜 년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 마저도 혼자만의 착각으로 끝났다. 그뿐일까? 영희의 애인인 감독은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본인만 사랑하는 나르시시스트다. 결과적으로 비행기 타고 13시간이나 걸리는 베를린에서 남자를 생각했던 것이 헛수고로 돌아가버렸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의 그리움은 꿈으로 매몰됐다. 남는 게 없는 셈이다. 이게 홍상수가 말하고 싶었던 감정이다. 외로움이다. 우리는 초입 10분 만에 이 영화가 이러다가 끝날 거란 걸 알고 있다. 감독이 홍상수니까. 근데도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밤 해변을 보는 것처럼 멍하니 앉아있다. 어차피 세상에 나를 공감할 수 없는 건 나밖에 없단 걸 우리 모두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엔 이유가 없다. 그냥 이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 가장 외로워진다. 그리고 그게 내가 만든 이유 때문이란 걸 알면 걷잡을 수 없이 후회가 커진다. 바닷가에 홀로 누워서 잠을 자고 싶다. 그냥 멍하니 시간만 지나면 좋을 테니까. 좌절과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 포함한 모든 이들이 어려움이 있으면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다. 아무것도 없을 땐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마지막 엔딩신 바로 전까지를 보니 아마 홍상수 감독도 그런 것 같다. 외로우니까. 이 모든 게 내가 자초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나 보다.
근데 마지막 엔딩신을 보자. 영희는 일어나서 똑바로 걷는다. 이 모든 게 꿈이었단 걸, 다 의미가 없어서 외로워하고 있단 걸 아는데도 앞을 보며 걸어간다. 외롭다는 뜻이다. 근데 1부에서 남자 등에 업혀 가던 모습이 아니었다. 2부는 혼자서 걷는다. 이제 더 이상 후회하지 않는 것 같다. 난 이 영화의 그녀 모습에게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외롭지 않은가 보다. 아무도 찾지 않아도 될 정도로 씩씩해졌나 보다. 영희는 후회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다. 후회는 어차피 우리의 곁에서 영원히 떠나가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게 꿈처럼 사라진다. 타인은 나를 이해할 수 없어서 용서를 해주지 않을 때가 많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영희는 이 모든 게 허상임을 알고도 이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앞으로만 걷는다. 난 이런 그녀의 모습이 우리의 삶에서 후회가 작동한 후의 방식과도 닮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 나라는 인간이 비호감 덩어리라 멀어질 수밖에 없던 모순적인 순간들. 뭐 그런 순간이 우리의 일생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걸 벗어나지 못하면 후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또 막상 그걸 세상이 이해해주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면 그냥 방 안에서 가만히 있어야 하나. 우리는 걸을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이기적일지도 모른다. 세상에게 상처를 주고도 앞으로 걷는다는 건 받은 이들의 입장에선 피가 거꾸로 솟는 셈일 테니까. 현실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홍상수는 부인에게 큰 상처를 줬다. 사실 어찌 보면 질이 안 좋은 사람이다. 그는 이런 자기의 모습을 영희에 투영해 우리의 한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 알아. 아무도 날 이해할 수 없단 걸. 그리고 내 애인도 이해할 수 없겠지. 내가 누리던 인기 영희의 주변인처럼 다 꿈처럼 사라지겠지. 사랑도 언젠가 실패할 테고. 그럼에도 영희는 벌떡 일어나서 앞으로 걸었다. 외로움과 후회를 보여줘도 사실 자기는 선택지가 없단 걸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건 홍상수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연하다. 사실 어쩔 수 없다. 내가 잘못한 일에 내가 외로움을 느끼던 타인이 나에게 가한 이기심이던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게 인생사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쩔 수 없다. 이 모든 상황이 모순이고 후회 속에 갇혀 나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변명한 셈이다. 나도 외롭고 후회한다고. 이게 내가 느낀 감정들이라는 걸 보여줬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는 바도 없이 자기 인생의 한 부분을 완벽하게 비유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끊임없는 루틴의 반복 속에 산다. 반복되는 일상 속 비호감 덩어리인 나. 이 세상에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때의 나만 있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게 꿈같아서 즐거웠던 시간은 우리를 아프게 만든다. 그러면 어때. 이 세상은 모순덩어리다. 내가 보이는 것들이 타인은 눈치 못 채는 순간의 연속이다. 타인과 교감하는 순간까지 심지어 꿈같이 사라질 때가 부지기수다. 이건 결국 후회나 외로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잠에서 깨어난 영희처럼 앞에서 걸어갈 수밖에 없다. 시간 속에 우리의 삶을 가만히 놔둘 수밖에 없다. 회의감이 가득한 게 우리의 삶이라고 한들 홍상수는 이 감정 속에서도 자기의 내면세계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여러모로 제정신이 아닌 감독이다. 홍상수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지만 나도 그에게 설득당해버렸다. 처음엔 양홍원의 <오보에>를 리뷰하려고 시작했던 글이 점점 길어졌다. 굉장히 중요한 기획서를 써서 모 교수님에게 내야 하는데 한 3시간 동안 이 글만 썼다. 이제는 해변에서 혼자 배회하지 않아야 할 텐데. 공부도 다시 시작해야 할 텐데. 7월 말의 밤이 조용히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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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자ㅇ난감 | 색다른 외관에 못 미치는 깊이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대학생 '이탕'(최우식). 어느 날, 그는 편의점에 난입한 취객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퇴근길에 그들과 다시 마주쳤다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급하게 자취방에 숨은 그는 미처 숨기지 못한 범행 도구를 떠올리며 불안해하면서도, 사망자가 악독한 범죄자였다는 뉴스를 보면서 묘한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안심도 잠시. 예상치 못한 목격자 '선여옥(정이서)이 등장하면서 이탕은 더 큰 난관에 봉착한다. '장난감'(손석구) 형사가 이끄는 수사망이 점점 그를 조여올 뿐만 아니라 여옥의 협박과 갈취도 그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 이에 자수와 도주를 두고 고심하던 이탕은 결단을 내린다. 모든 증거를 지우기 위해 살인자가 되어 살기로.
<살인자ㅇ난감>의 명암
한국 영화 시장에는 네 번의 성수기가 있다고들 한다. 여름 방학, 크리스마스, 추석과 설날 연휴. 하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특히 명절 연휴의 위력이 옛날 같지 않다. 작년 추석에는 <1947 보스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거미집>이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지난 설 연휴에도 <도그 데이즈>, <데드맨>, <아가일> 모두 외면받았다.
대신 그 자리를 OTT가 채웠다. 특히 넷플릭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오징어 게임>, <수리남>처럼 명절 연휴를 겨냥한 대형 한국 콘텐츠가 연달아 흥행하는 중이다. <살인자ㅇ난감>도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공개된 후 3주 차가 되도록 국내외에서 넷플릭스 콘텐츠 순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는 한 몸인 법. <살인자ㅇ난감>에는 성적만으로 확인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한국 콘텐츠의 고질병, 부족한 뒷심이다. 에피소드 8개 중 앞선 절반은 환상적이다. 출연진 말마따나 '팝(pop)하다'라는 표현이 안성맞춤인 독특한 연출이 정주행을 결심하게 만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풍경이 부산으로 바뀐 후부터 각 캐릭터는 표류하고, 극은 동력을 상실한다.
살인자의 난감함을 꽃피우다
<살인자ㅇ난감>의 매력은 예상을 과감하게 벗어나는 이미지의 향연에서 비롯된다. 이탕은 선여옥을 죽이려 한다. 그녀의 거실에서 머리를 향해 망치를 휘두르는 탕. 그 순간 화면이 전환된다. 탕과 여옥은 거실에 있지 않다. 웬 꽃밭에 있다. 그곳에서 탕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여옥의 머리를 망치로 후려친다.
특히 이 장면을 슬로 모션으로, 그것도 순식간에, 빨간 피는 가능한 등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색다른 배경, 교차 편집, 짧고 담백한 묘사가 한 데 어우러지니 임팩트는 강렬하다. 잔혹함을 대신하는 상쾌한 이미지를 보면 '이 드라마는 다르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팝한' 연출의 힘은 휘발성이 아니다. 살인자의 난감함이 아름다운 화면과 대조를 이루며 더 명쾌하게 드러나기 때문.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른 이후 충격에 빠진 이탕. 그의 정신적 피로감과 죄책감은 그가 선여옥을 죽일 때만큼이나 독특하지만, 기묘한 환각으로 표현된다. 그 덕분에 그가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잃고 점점 살인에 빠져드게 되는 일련의 흐름도 더 설득력 있게, 직관적으로 제시된다.
평범해진 살인자
하지만 <살인자ㅇ난감>은 첫인상의 이점을 더 살리지 못했다. <살인자ㅇ난감>의 신선함은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비롯한다. 핵심은 발상의 전환이다. 살인을 잔인하지 않게 다루는 연출과 미장센이 돋보였다. 문제는 다른 부문에서 발상의 전환을 찾을 수 없다는 것. 즉, 살인의 외양만 바꿨을 뿐, 이야기의 본질은 색다르지 않다. 그 결과 <살인자ㅇ난감>의 초반과 후반은 괴리감이 극심하다.
캐릭터의 완성도가 그 방증이다. 주인공 이탕은 자기 직감대로 사람을 죽이고, 사망자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자기 살인을 정당화한다. 그러면서도 평범한 대학생의 면모도 지녔다. 살인 이후 극심한 악몽에 시달리고, 자수를 결심하며, 가족의 품을 그리워한다. 이처럼 살인이라는 거대한 충격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청년이 이탕이라는 캐릭터의 특성이었다.
그런데 배경이 부산으로 바뀐 후부터 이탕이라는 캐릭터는 평범해진다. 그는 노빈의 도움을 받아 자기 직감이 옳음을 확인한 뒤 범죄자를 처단한다. 마지막까지도 범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은 채 정의롭다고 믿는 살인을 저지른다. 이처럼 "죽어 마땅한 놈들은 죽어야 한다"는 신념을 거침없이 실천에 옮기는 그는 다크 히어로에 가깝다. 살인의 무게감 때문에 괴로워하던 전반부의 이탕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살인 장난감도, 살인자 난감도 찾을 수 없다
'송촌'(이희준)과 장난감 형사의 존재감도 덩달아 유명무실해진다. 송촌은 본래 이탕의 내적 고뇌를 드러내는 장치여야 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을 죽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도 명확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탕에게 "죽어야 할 놈을 판단하는 너 스스로를 믿을 수 있냐"라고 묻는다. 살인 대상의 범죄를 인지하고 죽이는 자신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윤리적으로 다르다는 지적에 이탕은 혼란스러워한다.
그런데 드라마는 윤리적 딜레마를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그들 간의 차이점은 논제가 던져지자마자 퇴장한다. 분위기만 잡은 후에 이탕을 정의의 사도로, 송촌을 그에 맞서는 마지막 빌런 정도로 간략히 묘사한다. 그러다 보니 '살인자'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줄 것 같았던 첫인상을 후반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장난감 형사의 문제는 더 크다. 그는 범죄자를 법의 범위 내에서 단죄해야 하고, 죽어야 할 사람을 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경찰 혹은 검사 캐릭터다. 자연히 그와 이탕의 대립은 익숙하다. 그 와중에 드라마가 은연중에 이탕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으니, 그와 이탕의 대립각은 날카로움이 부족하다.
이에 더해 평면적인 인물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는 노력도 적다. 장난감과 아버지의 묘한 관계, 아버지와 송촌의 과거를 토대로 형사가 살인자가 되는 이야기를 쌓으려 한 시도는 엿보이나 역부족이다. 세 인물 간의 감춰진 이야기가 단순한 애증과 부조리로 귀결되기 때문. 손석구라는 배우의 독특한 마스크가 아니었다면 더 희미한 캐릭터였을지도 모른다.
반복돼서 더 아쉽다
사실 후반부가 맥 빠지는 현상은 <살인자ㅇ난감>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 한국 콘텐츠에서 볼 수 있는 문제다. 피카레스크 성향의 원작을 영상화할 때 선인-악인, 가해자-피해자로 나눌 수 없는 캐릭터가 단순해지면서 뒷심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스크걸>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웹툰 원작의 경우, 흥행이나 편의성을 고려해 대중적인 플롯에 맞춰 각색이 자주 이뤄진다. <살인자ㅇ난감>의 후반부도 마찬가지다. 연결성과 흐름은 깨져도, 이탕 중심으로 구도를 간략화했다. 장점도 분명하다. 한정된 분량 내에서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에 보여준 색다른 연출을 고려하면 결말로 향하는 과정이 평범하다는 인상도 부정할 수는 없다.
기대감을 한껏 부풀린 나머지 용두사미가 된 셈이다. 객관적인 성공과는 별개로, 가능성과 잠재력을 스스로 옭아맨 <살인자ㅇ난감>이 유독 아쉬운 이유다.
Acceptable 무난함
또 하나의 뒷심 부족을 목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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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러드 심플 - 코엔 형제
블러드 심플 - 코엔 형제
코엔 형제의 영화는 이미 데뷔작에서 완성되었다. 이후의 작품은 모두 데뷔작의 변주곡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코엔 스타일’은 처음부터 완벽하다. 이렇게 뛰어난 작품으로 감독 데뷔를 한 사람은 테렌스 멜릭, 장 뤽 고다르, 짐 자무쉬, 프랑수아 트뤼포, 쿠엔틴 타란티노, 스티븐 소더버그, 장준환 감독 등이 떠오른다.
코엔 형제가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은 이렇다. 작은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둘러싸고 사람들 사이에 오해가 생기거나 서로를 믿지 못하는 우연한 사건들이 연결된다. 우연과 실수, 난감한 상황 등이 결합하면 드물게 범죄가 발생한다.
그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은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이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어처구니 없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으로 보인다. 이것이 코엔 형제가 노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비극과 희극의 구분과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 우연한 사건이 개입 또는 발생하고, 삶은 그런 작은 사건들의 연속을 통해 이어지며, 삶과 죽음의 무게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픈 것이다.
애비(프란시스 맥도먼드)는 남편 마티(댄 헤라야)이 있지만, 남편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일하는 직원 레이(존 게츠)와 불륜 관계다. 이들이 타고 가는 차에서 두 사람의 옆모습은 극도로 클로즈업되어 있고, 그 뒤로 아웃포커스된 유리창으로 빗물이 흐른다. 이 불투명한 유리창처럼 두 사람의 미래는 불안하다.
마티는 사립탐정 로렌 비저(에멧 윌쉬)를 고용해 아내와 직원의 불륜 사실을 확인한다. 보통의 남자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영화 '해피엔드'에서 서민기(최민식)은 학원을 운영하는 아내 최보라(전도연)가 학원강사와 불륜 관계라는 걸 알게 되지만, 자신의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를 '해피엔드'에서 잘 보여주고 있는데, 더구나 이 부부에게는 어린 자식까지 있는 상황이다. 무능한 남편이라는 자책과 낮은 자존감까지 서민기를 내리누르면서, 배신, 좌절, 분노의 감정이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처럼 쌓여간다.
하지만 미키는 그렇게 냉정하거나 잔인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아내가 다시 돌아와 주길 바라고 있고, 직원 레이는 해고하면 그만이다. 그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을 유지하고픈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대화로 원만하게 문제를 풀어가려 하지만, 아내는 미키를 무시하고, 직원 레이는 두 주일치 임금을 달라고 떼를 쓴다. 아내의 뻔뻔한 태도와 시건방진 직원 레이의 행태를 보면서 마티는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다.
미키는 다시 지난 번 의뢰했던 사립탐정 로렌 비저를 찾아가 두 사람(아내와 레이)을 죽여달라고 청부한다. 로렌 비저는 마티에게 한 사흘쯤 낚시나 하고 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밤이 되어, 레이의 집에서 동침하고 있는 현장을 창문으로 바라보고, 장면이 바뀌어 로렌 비저는 미키의 술집 사무실에서 미키에게 흑백사진을 건넨다. 그 사진에는 직전에 보였던 애비와 레이가 침대에 함께 누워 있는 장면에, 총에 맞아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사건은 단순하고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우연과 욕망이 개입한다. 미키는 약속대로 사립탐정 로렌 비저에게 1만 달러를 건넨다. 두 사람을 죽이면 1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고, 현금을 건넸으니 약속을 완벽하게 이행한 것이다. 하지만 로렌 비저는 미키를 살해한다. 왜? 코엔 형제의 영화는 아주 작은 부분, 별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부분에서 발단한다. 미키가 사립탐정 로렌 비저에게 첫번째 일을 맡겼을 때, 즉 아내를 미행해 아내와 직원 레이의 불륜 장면을 확인하라고 했을 때, 로렌 비저는 그 일을 잘 해냈고, 미키는 약속한 돈을 주었다. 이때 미키가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 있는데, 그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지만, 로렌 비저는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미키가 금고에서 돈을 꺼내는 장면을, 그리고 금고 안에 현금이 꽤 많이 있었던 것을.
로렌 비저는 미키의 부탁으로 애비와 레이를 죽이고, 증거 사진을 미키에게 보여주는데, 이 사진이 조작한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미키는 순순히 1만 달러를 금고에서 꺼내 로렌 비저에게 건네는데, 이것만 봐도 미키는 천성이 나쁜 인간은 아니다. 증거를 완벽히 없애려면 미키가 로렌 비저를 다른 장소에서 살해하는 것이 더 깔끔할텐데, 미키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로렌 비저는 탐욕으로 미키를 살해하고 금고를 털어 달아난다. 그리고 미키의 사무실을 찾아온 사람은 레이. 밀린 주급을 달라고 한밤중에 온 것이다. 심상치 않은 느낌으로 사무실을 들어선 레이는 미키가 총에 맞아 죽은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두 번째 미세한 장치. 로렌 비저가 미키를 죽일 때 쓴 총은 애비의 핸드백에서 꺼낸, 애비의 총이었다. 이건 로렌 비저가 계획한 것으로, 애비와 레이의 뒤를 밟으면서 애비의 핸드백에서 권총을 훔쳤고, 그 총으로 미키를 살해하면, 당연히 애비는 살인범으로 잡혀 처벌받을 것을 계산했다. 로렌 비저는 금고의 돈과 살인청부 비용으로 받은 1만 달러까지 두둑하게 챙기고 사라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레이도 애비의 권총을 알고 있었기에, 미키의 사망과 그의 의자 옆에 놓인 애비의 권총을 보는 순간, 애비가 먼저 와서 미키를 죽였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레이가 해야 할 일은? 레이는 미키의 주검을 차에 싣고 밤길을 달려 으슥한 곳에 매장하려는데, 놀랍게도 미키는 죽지 않고 살아난다. 총을 맞아 심하게 부상 당했지만, 어떻든 미키는 의식을 차리고, 차에서 내려 기어가고 있었다. 이 정도면 병원에 데려가 충분히 살릴 수 있지만, 레이는 애비가 죽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키를 살려둘 수 없는 상황이다. 살아 있는 미키를 땅을 파서 산 채로 묻고 새벽에 그곳을 떠나는데, 미키가 묻힌 밭에서 가까운 곳에 집이 있었다. 즉, 레이는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으슥한 곳을 찾아 시신을 묻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누군가의 집앞에 미키를 암매장한 것이다. 이건 의도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보여준다.
레이는 사무실에서 미키가 흘린 피를 닦아내고, 살인의 흔적을 모두 지운 다음, 집으로 돌아간다. 애비가 레이를 찾아왔을 때, 레이는 애비가 한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표현을 하지만 정작 애비는 레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당연하다. 애비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까. 여기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걸 관객은 알게 된다.
적어도 레이가 애비를 사랑하는 건 맞다. 애비가 남편 미키를 죽였어도 그녀를 위해 증거를 없애려 최대한 노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미키의 실종이 드러날테고, 그러면 경찰이 수사를 시작해 애비와 레이는 당장 용의자로 지목될 것이 분명하다. 증거는 나오지 않겠지만, 정황으로보면 두 사람은 강력한 용의자가 된다. 어떻게든 두 사람에게는 불리한 상황이다.
여기서 세 번째 장치. 사립탐정 로렌 비저는 살인을 청부한 미키에게 사흘 정도 낚시나 하고 오라고 말한다. 미키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다. 로렌 비저가 애비와 레이를 죽이고(사실은 죽이지 않고) 미키의 사무실에서 만나 돈을 받고 나서 미키를 죽일 때, 탁자 위에 로렌 비저는 자기가 아끼는 라이터를 올려 놓았고, 그 위에 미키가 낚시로 잡아온 물고기가 라이터를 덮고 있었다.
미키를 죽이고, 금고를 털어 집에 돌아온 로렌 비저는 담배를 피우려다 라이터가 사라진 걸 깨닫는다. 그리고 라이터는 지금 미키의 사무실 탁자 위에 놓여 있다는 것도. 이 라이터만 잘 보관했다면, 로렌 비저는 깜쪽같이 이 사건에서 사라지고, 애비와 레이가 덤터기를 쓸 것이 분명하지만, 라이터의 존재는 이 모든 인과관계를 흐트러뜨리고 뒤섞이며, 관계와 시공간을 얽히도록 만드는 촉매로 작용한다.
미키의 사무실에서 라이터가 발견되면, 당연히 용의자는 로렌 비저가 된다. 그는 레이의 뒤를 밟아 레이와 애비가 함께 있을 때 두 사람을 모두 죽이려 한다. 두 사람 가운데 누군가 자신의 라이터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짐작한 것이다. 로렌 비저는 레이를 죽인다. 여기서 레이는 미키를 산 채로 매장한 벌을 받는다. 그리고 로렌 비저는 애비의 총에 맞아 죽는다. 미키와 레이를 죽인 벌을 받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 적절한 보상이나 처벌을 받게 된다는 걸 코엔 형제는 인과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미키는 아내와 직원 레이를 죽여달라고 청부한다. 물론 불륜을 저지른 아내와 직원 레이의 행위는 나쁘지만, 그것이 죽어야 할 정도인가를 묻는다. 로렌 비저는 사람들의 뒤를 캐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버는 인간이다. 그가 미키를 죽인 이유도 금고에 있는 돈 때문이었고, 자신의 범행을 감추려고 레이와 애비도 죽이려했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행동하는 배경과 서로의 관계를 추동하는 것은 의외로 작은 물건이다. 사진, 금고, 라이터, 물고기, 세면대에서 떨어지는 물 등 사물의 존재가 인간의 행위를 추동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행위와 의식을 결정하는 것이 단지 '합리적 이성'이라고 믿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걸 코엔 형제는 보여준다.
인물들은 모두 자기가 생각하거나 계획 또는 예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이거나 맞닥뜨린다. 뜻하지 않은 상황의 변화 앞에서 어떤 사람은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고 돈을 훔치거나(로렌 비저), 어떤 사람은 시신을 차로 옮기려다 살아난 사람을 다시 죽이거나(레이), 사람을 죽여달라고 청부했다가 오히려 자기가 죽는(미키) 상황에 놓인다.
이것은 마치 '나비의 날개짓'과 같아서, 어느 한쪽에서 움직인 의도가 파장을 일으키며 다른 쪽에 영향을 주는 것과 같다. 미키의 의도는 로렌 비저를 움직이고, 그 결과에 따라 레이가 영향을 받았으며, 애비에게도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간다. 가벼운 말 한 마디,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 하나가 사건을 일으키고, 그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거대한 형태로 변한다. 대부분 인간의 삶이 의도나 계획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불특정하고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는 인간의 존재는 규정할 수 없는 불확실한 존재라고 코엔 형제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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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언맨이 마블에서 창조한 빌런들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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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7. 31 영상입니다.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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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춘기를 탁월하게 표현하는 인사이드 아웃2 속 감정 🌟 #인사이드아웃2 #픽사 #영화리뷰
안녕하세요! 레빗구미입니다!
🐰✨ 오늘은 픽사 스튜디오의 신작 '인사이드 아웃2'에 담긴 세 가지 감정을 알려드립니다. 🎥🍿
엄청난 흥행 속도를 보여주고 있죠. 1편에 이어 2편도 공감가는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
사춘기 소녀 라일리의 감정이 풍부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요.
저와 함께 영화 속에 담긴 감정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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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스루 마이 윈도> 공식 예고편
모든 것은 와이파이 비번에서 시작되었다.. 매력적인 이웃집 남자 아레스를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라켈. 몰래 훔쳐 보기만 하고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는 남자. 그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을까? 아리아나 고도이 소설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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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TV+ <테헤란> 공식 예고편
"이란에 잠입한 이스라엘 정보 요원, 임무가 꼬이며 탈출할 방법도 사라진다. Apple TV+에서 '테헤란' - Tehran을 감상하세요. https://apple.co/_Tehran" "드라마 '파우다' 작가 모세 존더의 신작 첩보 스릴러. 테헤란에 잠입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던 정보기관 모사드 요원과 주변 인물들은 큰 위험에 빠지는데... 모세 존더, 다나 에덴, 마오르 콘이 제작하고 다니엘 시르킨이 연출했으며, 옴리 쉔하가 존더와 함께 각본을 썼다. 책임 프로듀서로 모세 존더, 다나 에덴, 슐라 스피겔, 아론 아란야, 줄리엥 르루, 피터 에머슨, 엘다드 코블렌즈가 참여했다. Donna and Shula Productions가 Paper Plane Productions와 함께 제작하고, Cineflix Rights 및 Cosmote TV가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