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er2022-10-31 13:42:47
잘 쓴 이야기의 여정
영화 '베스트셀러' 리뷰
올해 초에 출판 편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편집 실무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을 배우는 수업이었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책의 무엇을 구매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는데 다른 것보다도 관점이 선명해서 흥미로웠다. 저마다 쉽게 대답할 수는 있지만 정답을 가늠하기란 어려운 그런 문제였다. 읽기 위해 구매하는 것이니 책의 내용을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책을 다 읽고 그 책을 팔면 기억이 사라지는가? 책이 더 이상 우리의 소유가 아니더라도 우린 그 내용을 알고 있다. 여타의 상품이라면 그럴 수 없다. 라면 한 봉지, 러닝머신, 양키캔들이나 책가방까지도 수중에서 사라지면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책은 팔더라도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진 않는다. 뭐 유별난 차이인가 싶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그 얇고 세밀한 틈이 책의 지향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저작물이다. 저작권이 발생하는 저작물. 사상이나 감정, 아이디어와 같은 메시지를 일정한 표현 형식에 담으면 저작권이 발생한다. 그러니 아이디어 자체만으로는 저작권이 발생하지 않는다. 일정한 형태로 그 생각을 담아내야 한다. 저작물은 작가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책은 저자의 생각과 인격을 담아낸 저작물이다 보니 이를 편집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조심스러운 과정이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라고 하는 것이 미묘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함께 책을 만들어간다는 마음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책을 쓰고 편집하는 과정은 훨씬 어려워진다. 문장을 바꿔나가는 일에 있어서는 특히나 그렇다. 전하고자 하는 말뜻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꼭 작가 혼자만의 힘으로 책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편집자의 시선에서 비로소 더 정확해질 수 있으니까. 책을 만든다는 건 그런 점에서 파트너십이 필요한 일이다.

기묘한 협업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야 많지만 루시와 해리스의 관계만 한 상황이 또 있을까. 루시는 가업으로 물려받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 냈던 신간은 혹독한 평가를 들었고 경영난에 회사를 팔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지경까지 몰려있다. 다시금 좋은 작가를 찾아 신간을 만들어 반등의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데 마침 발견한 작가가 해리스 쇼였다. 아버지 대에 이미 계약금을 지불했고, 계약에 따라 책을 한 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단 한 권만 내고 50년째 신간 소식이 없었지만 유일한 기회기에 희망을 걸어야 했다. 다만 계약 조건이 있었다. 작가가 제출한 초고를 편집하거나 수정할 수 없다. 대신 작가는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책을 홍보해야 한다.
편집은 불가, 북투어는 가능. 인물들의 이유가 부딪히면서 상황은 흥미롭게 흘러간다. 아내와 사별한 후로 세상에 어떤 미련도 남지 않은 냉소적인 작가 해리스와의 북투어 과정은 험난했다.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던 이유가 사라졌으니 그의 입장에선 거리낄 것이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압류되어 빼앗길 위치에 놓인 집과 50년 전의 계약이었다. 노작가의 귀환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고 세상은 너무 많이 바뀌어 있었다. 해리스는 그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을 뿐인 루시의 실력을 의심하고, 루시는 해리스의 상태를 못 미더워한다. 여하튼 신간은 나왔으니 어떻게든 책은 팔려야 한다.
그동안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는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일을 하면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유독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만드는 건 '이건 일이니까 그냥 받아들여'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공동의 목표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의견을 아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으니까. 두 사람의 전사가 밝혀지는 과정은 그래서인지 여러모로 감동적이었다. 서로를 신뢰하는 결과를 얻기까지의 여정이 성실하게 묘사되니까. 신뢰라는 것이 그렇다. 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눈에 번해야 믿는다. 보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 신뢰에는 샛길이 없다. 빠르게 가로지를 방법도 없다. 관계에는 정독만이 존재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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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성탈출 4 | 아직은 오지 않은 '새로운 시대'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진화한 유인원과 퇴화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땅. 성년식을 기다리던 '노아'(오웬 티그)와 독수리 부족은 갑작스레 '프록시무스 시저'(케빈 듀랜드) 군대의 습격을 받는다. 노아는 혈투 끝에 간신히 살아남지만, 아버지는 죽고 모든 부족은 프록시무스 시저의 왕국으로 끌려간다. 이에 노아는 부족을 구출하고 아버지의 복수를 이루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여행길에서 고생하던 노아는 우연히 두 친구를 만난다. 유인원 '라카'(피터 메이컨)는 노아에게 전설적인 유인원 지도자 '시저'의 가르침을 알려준다. 또 자신처럼 프록시무스 시저에게 쫓기던 인간 소녀 '메이'(프레이아 앨런)는 노아에게 유인원과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려준다. 이러한 도움을 토대로 노아는 시저의 가르침을 기만하는 프록시무스를 무찌르고 유인원과 인간 모두를 구할 전투에 나선다.
4편의 저주에 걸리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2024년 봄 극장가는 4편으로 가득하다. <쿵푸팬더 4>가 긴 공백을 깨고 돌아왔고, <범죄도시4>는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다만 성과는 기대 이하다. <쿵푸팬더 4>는 지난 시리즈의 매력과 캐릭터에만 기댈 뿐이었다. <범죄도시4> 역시 여전한 흥행 파워를 과시했지만, 장기 시리즈의 피로감은 가중됐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이하 <혹성탈출4>)는 올봄의 세 번째 '4편'이다. 2011년에 리부트 된 시리즈의 4편이고, <혹성탈출: 종의 전쟁> 이후 7년 만의 속편이다. 그런데 제목이 퍽 흥미롭다. 지난 삼부작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속편인데도 불구하고, 제목에서 '4'라는 넘버링을 활용하지 않았다. 이로부터는 시리즈의 새 출발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지난 주인공인 '시저'(앤디 서키스)를 등장시키지 않듯이.
하지만 <혹성탈출4>도 '4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시리즈의 메시지와 주제의식을 적절히 계승한 전개를 보여주지만, 비주얼을 제외한 대부분이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하다. 그 결과 4편까지 이어진 시리즈에 신선한 피를 수혈할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선뜻 끄덕이기는 어렵다.
시리즈의 정수를 계승하다
<혹성탈출>의 핵심은 유인원과 인류의 대립이다. 하지만 거대한 스케일의 전쟁만 화두가 되지는 않았다. 시저에게는 인간 친구가 여럿 있었다. 자기를 키워준 윌. 아내를 치료해 준 말콤. 인간을 향한 복수심과 증오심을 꺾어 준 소녀 노바. 의견이 다른 유인원 및 인간과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시저가 인류와의 공존을 추구한 이유였다. 이처럼 사적 감정을 공적 책무로 승화하는 시저의 여정은 <혹성탈출>의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전편으로부터 300여 년 후를 다루는 <혹성탈출4>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종족 간의 전쟁 사이에서 싹을 틔우는 두 유인원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다. 인류를 무시하는 유인원 노아와 유인원에게 사냥당하던 인간 메이는 우연히 같이 여행을 떠난다. 노아는 프록시무스 시저에게 붙잡혀 간 자기 부족을 구출하기 위해. 메이는 인류의 미래를 건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물론 둘은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자기 종족의 존속이라는 목표가 언제나 최우선이기 때문. 하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조금씩 덜어내면서 둘은 우정 비슷한 관계까지 나아간다. 친구는 아니지만, 차마 서로를 죽이지는 못하는 관계로.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미래의 화근을 잘라낼 수 있는데도. 그렇게 <혹성탈출4>는 재개될 유인원과 인류의 전쟁을 미묘한 애증의 감정선 속에 포함시키는 데 성공한다.
아이디어는 좋았다
앞선 시리즈의 계승만큼 프랜차이즈를 일신하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유인원 대 인간의 대립 구도뿐만 아니라 유인원 간의 갈등에도 초점을 맞춘다.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는 인간과 공존할지, 아니면 인간을 제거하고 지구를 차지할지를 두고 다툰다. 이는 2편 <반격의 서막> 속 시저와 코바의 대립을 극대화한 듯 보인다.
이름만 봐도 두 주인공의 대립은 필연적이다. 성경에서 노아는 신의 뜻에 충실한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로부터 모든 생명체를 구할 수 있었다. 영화 속 노아도 마찬가지다. 그는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와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라는 시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유일한 유인원이다. 그래서 그는 나름의 방주를 만들어 시저의 뜻대로 인간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리더로 거듭난다.
반면에 프록시무스 시저는 시저를 사칭한다. 인간과 유인원을 모두 지배하는 왕국을 만들고, 인간의 기술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라는 가르침을 악용한다. 그 과정에서 죽어가는 유인원은 신경 쓰지 않는다. 라틴어로 '가장 가까운'이라는 의미를 지닌 '프록시마(Proxima)'를 이름으로 쓰지만, 정작 시저가 가장 지양할 선택만 지향한다.
이에 더해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의 대립은 종교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여러 세대가 지난 뒤 시저는 숭배의 대상이 됐고,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는 시저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툰다. 마치 예수의 가르침을 두고 여러 교파가 싸웠듯이. 또 무함마드의 후계자 자격을 두고 수니와 시아가 전쟁을 벌였듯이. 이렇게 보면 <혹성탈출4>는 <혹성탈출> 버전 <듄>이 될 수도 있었다.
스토리텔링의 한계
그러나 기존 삼부작과 차별화될 가능성은 미처 꽃 피우지 못했다. 제작진의 스토리텔링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 영화는 두 주인공의 본질적인 차이를 보여줄 다양한 맥락과 복합적인 함의를 외면한다. 일례로 프록시무스 시저의 왕국을 묘사할 때는 정복 전쟁, 노예제, '시저'라는 호칭처럼 고대 로마를 연상케 하는 요소를 활용한 반면,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의 대립은 단순히 부족의 생존과 탈출 차원으로 국한시킨다.
그러다 보니 여러 장치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 독수리 부족의 통과 의례가 대표적이다. 노아의 부족에게는 독수리 알을 훔쳐 키우는 성년식이 있다. 이때 둥지마다 최소한 알 하나는 남겨둬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이는 독수리 부족이 본질적으로 타 생명체와의 공존을 추구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하지만 영화는 노아와 독수리의 관계를 개인적 차원에만 국한한다. 노아에게 독수리는 부족의 리더로 거듭나고 아버지의 복수를 완수하는 도구일 뿐이다. 결국 미묘한 함의는 끝내 전해지지 않는다.
스토리텔링 문제는 메이의 묘사에서도 드러난다. 노아 혹은 유인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메이는 철저히 인간중심적이고, 노아의 행보를 방해하는 빌런처럼 보인다. 인류와 유인원의 대립은 극대화되지만, 둘 사이에 작게나마 피어난 우정의 싹은 더욱 작아진다. 그 결과 서사는 다소 평면적이고, 지난 삼부작에 비해 인간 캐릭터의 매력도 찾아보기 어렵다.
뒷심 부족한 볼거리
볼거리 역시 아쉬움이 적지 않다. 물론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웨스 볼 감독이 새로 메가폰을 잡은 만큼 전체적인 스타일의 변화는 인상적이다. 이전 감독인 맷 리브스가 전반적으로 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분출하는 연출력을 과시한 반면, 이번에는 유인원과 인간의 추격전처럼 역동적인 카메라워크가 눈길을 끈다.
이에 더해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 제작 경험을 살려 수풀로 뒤덮인 도시와 철골구조, 녹슨 배와 무너진 부두로 만든 프록시무스 시저의 왕국 등의 디스토피아 세계관도 유려하게 펼쳐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라이온 킹> 실사 영화가 사자를 비롯한 동물의 표정을 효과적으로 구현하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유인원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도 놓치지 않고 포착한 CG 기술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스펙터클은 약해진다. 이전 시리즈에 비해 스케일이 소소하다 보니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를 보는 것 같은 실망감이 밀려들 수 있다. 특히 클라이맥스의 구성이 아쉽다.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의 대결은 공격도 반격도 일방적이라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노아와 결속된 독수리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암시가 너무 많아서 반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공은 속편에게
결과적으로 <혹성탈출4>의 결말은 아쉬움이 크다. 독립된 작품이면 모르겠지만, 네 번째 시리즈에서도 인간과 유인원의 전쟁을 다시 한번 암시하는 결말은 신선함이 부족하다. 돌고 돌아 시저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게 아닌가 싶기 때문. 여러 프랜차이즈가 같은 실수를 범했기에 특히 우려스럽다. 시리즈 리부트 후에도 매그니토와 프로페서 X의 갈등 구도를 마지막까지 되풀이 한 <엑스맨>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결국 공은 속편에게 넘어간 듯하다. 속편의 전개에 따라 <혹성탈출4>가 새로운 시대를 위한 한 걸음일지가 결정될 테니. 달리 말해 어떤 의미로든 속편을 기다리는 재미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Acceptable 무난함
진짜 무대는 다음으로 미루는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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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결혼 이야기>,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결혼에 대해 꿈꾼 적은 없다. 굳이 따지면 한 번쯤은 해볼 만하지 않을까? 평생 흔들리지 않고 혼자 살 때보다 둘 이상일 때 조금 더 든든하지 않을까. 맛있는 것을 더 많이 나눠먹고 대화를 좀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찌감치 행복한 가족이나 행복한 결혼생활도 믿지 않았다. 결혼식이 해피엔딩으로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둘이서 여행만 가도 한 번은 싸우는데 결혼이 그렇게 좋기만 할리가. 결혼을 계약처럼 연장하는 게 낫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가족과 결혼에 대해 충격적이지만 슬픈 사실을 한 가지씩 깨달았다. 가족은 생각보다 그렇게 화목하고 평화롭지 않다. 잘 사는 집이든 못 사는 집이든 어느 집에나 속 썩이는 사람이 있고, 콩가루가 솔솔 날리는 듯한 분쟁이 있기 마련이다. 위안 아닌 위안이라면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다. 결혼에 대해 놀랐던 점은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보다 결혼을 생각하는 그때 마침 가까이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결혼에 수많은 조건이 있다면 사랑 역시 그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사이에 사랑이 있다면 좋고, 사랑이 없으면 정으로 산다고 하더라. 그래도 반평생을 함께 할 텐데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어떻게 결혼을 해버리냐고? 막상 결혼의 압박이 들어오는 나이가 되니 이해는 된다. 결혼을 하라는 주변의 눈초리나 말소리는 지겹다. 그렇다고 혼자 살자니 혼자만 사는 삶은 자신이 없다. 해치워버리듯 해도 비난하지 못하겠다.
과거와 확연한 차이점은 요즘 결혼은 과거만큼의 인내심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참지 않아도 된다. 헤어져도 된다. 이혼 역시 나쁜 것이 아니다. 의무감으로만 지속했던 결혼이야말로 나쁘다는 인식이 확고해졌다. 이혼하는 시기는 인내심이 어디까지 발현되었느냐 정도의 차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서, 혹은 자리를 잡고 나서 황혼에 이혼하거나 졸혼을 하는 경우도 많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헤어질 수 있다. 나조차도 정말 밥맛 떨어질 때면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러게 말이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의외로 그래도 가장 중요한 순간 결정을 내릴 때는 아빠와 가치관이 비슷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래서인가. 정말 중요한 50%만 맞으면 나머지는 맞추면서(혹은 어차피 맞추지 못할 테니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살라던 말씀이. 그게 엄마의 결혼 철학이었는지도.
<결혼 이야기> 속 니콜과 찰리는 변호사 없이, 소송 없이 '둘만의 원만한 합의'로 이혼하기를 꿈꿨다. 바람대로 되면 좋았겠으나 애초부터 둘의 입장 차이는 너무나 명확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고 공감되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둘의 감정이 극도에 치달았을 때 말다툼을 보고 확실해졌다. 찰리에게 공감할 수 없었다.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그의 희생이 적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도 니콜은 찰리에게 저주를 퍼붓지는 않았다. 찰리의 말에 말문을 잃은 건 니콜만이 아니었다. 헨리만 괜찮다면 병에 걸리거나 차에 치여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니. 내가 당신을 더 사랑했다는 니콜의 말에 그게 LA에 가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반응은 맥빠졌고, 같은 극단 메리 앤과의 외도에도 그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따졌다. 결혼 생각도 없고, 나에게 바라는 게 많은 당신 때문에 내가 수많은 유혹을 젊은 나이부터 얼마나 피하느라 힘들었는지, 당신이 나를 먼저 거부했으니 바람이 아니란다. 유혹에 관해서라면 니콜 역시 마찬가지일 텐데?
찰리는 이기적이다. 본인이 아프다는 이유로 끝까지 가버린다. 총알이 살을 뚫고 나서도 회전을 하면서 몸속에 파편을 남기듯이. 후벼파는 것 이상의 말을 쉽게 하더라. 그가 말하고 나서 바로 후회하지 않았다면 고개를 저으면서 그를 선택했던 니콜을 처량하게 바라봤을 것이다. 누가 봐도 상처받은 눈이면서 미안하다며 찰리를 꼭 안아주는 그녀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게 사랑인 걸까. 내가 상처받아도 그 사람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는걸, 그 말을 하면서 본인이 상처받았다는 것을 알고 안아줄 수 있는 게. 사랑을 하기엔 나 역시 너무 이기적일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영화를 봤다. 찰리를 정말 이해할 수 없을지 궁금했다. 물론 이해할 수 없어도 상관은 없다. 찰리는 내 남편이 아니니까. 다시 보니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그는 왜 뉴욕을 놓을 수 없었을까? 뉴욕이 집이고 자신의 가족은 '뉴욕'의 가족이라고 무척 강조한다. LA는 왜 안 되는 걸까. LA의 변호사와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공간도 넓고 살기 좋다는데도, 니콜의 가족을 좋아하면서도, LA에 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심지어 그가 사랑하고 상처 주고 싶지 않았던 니콜이 원하는데도. 뉴욕이 대체 그에게 뭐길래. 'LA'의 가족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뭐길래.
니콜이 변호사 노라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찰리는 이혼을 피할 수 있었다. 그가 니콜의 의사를 좀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말이다. 니콜은 LA에서 살고 싶었고 다양한 장르에 참여하는 배우이자 감독이 되고 싶었다. 지금처럼 '찰리의 극단'에서 '찰리가 가장 아끼는 배우'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화나 드라마, 연극 등에서 종횡무진하고 싶었다. 남편의 외도에 상처받은 사이 마침 LA에서 하는 드라마가 기회처럼 찾아왔다. 찰리의 응원을 기대했건만 그는 쓴소리만 뱉었다. 그가 LA에 잠시라도 살려고 시도했다면, 그가 함께 극단에서 공동 감독을 맡아 공연을 준비했다면, 니콜에게 네 생각은 어떤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는 말을 했더라면. 수많은 가정법 중 하나라도 있었다면 니콜은 결혼을 유지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찰리의 이야기는? 니콜은 찰리와의 이혼을 피할 수 있었을까. 니콜이 '찰리의 아내'로 살기로 체념하는 것 말고, 찰리가 막무가내로 뉴욕을 고집하는 이유를 알고, 그를 설득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영화를 살펴봐도 찰리의 이야기는 니콜의 이야기만큼 자세히 알 수 없었다. 찰리도, 그의 변호사도 그런 이야기를 터놓지 않았다. 그러니 다만 추측할 뿐이다. 니콜이 찰리에 대한 장점에 썼던 것처럼 그는 아무것도 없이 뉴욕에 와서 자수성가했다. 누구보다 뉴요커 같다. 직업적인 명성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 집이 생겼다. 뉴욕은 그의 마음의 고향이다. 알콜중독에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와 좋은 기억이 없는 어머니와 태어난 고향은 뒤로했다. 그는 소중한 니콜과 아들 헨리, 인턴마저 가족 같은 극단 사람들을 만났다. 좁고 경적소리가 넘치는 뉴욕에 스스로 가족을 만들었다.
찰리 입장에서 LA는 어디까지나 니콜의 고향일 수밖에 없다. 찰리의 뉴욕은 흔들려도 이상할 것 없이 뿌리가 얕다. 10년을 넘게 산 니콜은 뉴욕보다 LA를 그리워하지만 찰리에겐 10여 년 된 뉴욕이 전부다. 그 뉴욕엔 편히 볼 수 있는 부모님, 형제 같은 혈연이 찰리에겐 없다. 은연중에 니콜과 그녀의 가족을 보면서 LA의 넓은 공간만큼이나 휑한 공허함을 느꼈을 것이다. LA에 있는 니콜과 헨리는 찰리가 없어도 자연스럽다. 헨리를 너무나 쉽게 LA에, 니콜의 손에 맡긴다면 그는 그의 부모님과 그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부모님은 그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고 그는 그런 부모의 모습이 자신에게 남아있지 않을까 염려한다. 그가 힘들게 만든 가족이 무너졌을 때조차 그는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게 아무것도 없이 뉴욕에 와서 자수성가한 뉴요커가 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는 이기적이다. 그래서 솔직하지 못한 채 마음에 담아둔다. 대체로 진심과 좋은 말은 담아두었을 것이다. 니콜이 자신을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뉴욕을 떠나면 이 가족이 부서질 것 같은 걱정도, 그녀의 연기를 비평하지만 감동받았던 마음도.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을 거부하고, 사랑하는 배우가 자신을 떠나 LA로 난생처음 활동을 하러 간다니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 가 버려. 갈 테면 가. 그러고도 당신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당신은 누굴 만나도 불행할 거야. 그녀가 떠나가 버리기 전에 먼저 이혼하자고 하진 않았을까? 둘 중에 이혼을 먼저 이야기한 건 찰리였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이혼하자는 말을 먼저 꺼내도록 니콜을 몰아붙였든지. 초반에 이혼 준비로 성질을 내고 눈물을 보이는 니콜의 모습에 비해 침착한 찰리를 보면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게 둘은 이혼했다. 남들 다 하는 것처럼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좋은 사람, 좋은 부모인지 시험받았다. 추억은 무능과 부도덕의 증거가 되었다. 찰리는 조금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니콜이 늘 잘라주던 머리는 이발소에 가서잘라야 하고, 빨래방에서 빨래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그는 3800km를 날아 뉴욕에서 LA로 와야 헨리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양육권도 45:55의 비율로 손해를 봤다. 영화의 끝 무렵이 되어서야 그는 '살아있는 것(Being Alive)에 대해 노래를 불렀다. 나를 필요로 하고, 상처 주고,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혼자가 아니라.
이 싸움에서 결과적으로 니콜이 이긴 걸지도 모른다. 그녀는 솔직했고 더 많이 사랑했고 그리고 이제는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니콜의 눈빛 역시 종종 촉촉해진다. 니콜이 읽지 못했던 편지를 찰리가 읽었을 때, 'I'll never stop loving him, even though it doesn't make any sense now'라는 문장을 들었을 때. 서로를 축하하고 싶지만 예전처럼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없을 때. 찰리가 UCLA 전임으로 오게 되어 한동안 여기 머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녀의 표정은 쓸쓸했다. 이혼하기 전엔 왜 그럴 수 없었을까 싶은 표정이었다.
변호사나 판사에게는 지지부진한 한 사건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결혼 이야기든 당사자에게는 며칠 밤낮을 해도 끝나지 않을 이야기다. 헨리라는 아들을 둔 찰리와 니콜 커플의 이야기는 그래도 사랑이 있는 결혼이었다. 보기 좋았다. 서로의 장점을 읊는 장면으로 시작했을 때 두 사람이 반대라서 보완해주고 있어서 보기 좋았다. 진흙탕 싸움을 하지 말자던 사람들이 진흙탕에 빠져들어 이혼을 하는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뭘 모르고 어리석어서 진흙탕에 발을 담근 게 아니다. 서로 약점을 아는 사람들끼리 일부러 급소를 건드리면서 상처를 내는 다툼. 그 말이, 그 행동이 이렇게도 쓰인단 말인가? 놀라진 않았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건 그들이 너무나 가까웠기 때문이다.
마음은 칼질하듯 날카로운 단면으로 잘리지 않는다. 사람과 시간이, 사랑이 남아있다. 다만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함께 할 필요는 없다는 깨달음도 남았다. 당신을 사랑하는 수백 가지 이유가 있더라도 단 한 가지 감당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누구와도 헤어질 수 있다. 당신을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 원하는 삶에서 멀어질수록 마음 한 켠에서는 엉켜있는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새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우리를 부른다.
<결혼 이야기>를 보면 결혼에 대한 양가감정에 휩싸인다. 결혼은 이래서 해볼 만하고, 이래서 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이혼 역시 그래서 희망찬 행동이기도 하고 절망스러운 밑바닥이 될 수도 있다.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가 너무나 많다. 결혼은 사랑 하나만으론 충분하지 않은 이야기다. 아직도 절절한 둘의 눈빛과 별개로 그들은 이혼서류에 서명했다. 그들이 수많은 결혼의 위기를 넘겼음에도 이번에 정말 이혼을 했다는 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풀린 신발 끈은 묶어주지만 같은 방향을 볼 수 없고 나란히 걸을 수 없다. 잔잔한 오보에 소리에 서로에게 등진 채 자신이 갈 곳으로 걸어가는 찰리와 니콜을 보면서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이 떠올랐다. 둘에게 들려준다면 아마 눈이 빨개진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찾을 때의 마음으로.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귓가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대 음성 빗속으로 사라져 버려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리겠지 외로움으로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그대를 사랑했지만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리겠지 외로움으로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 김광석 <사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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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로 태어난 대가
엄마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 베스는 보육원에서 일하는 샤이벌로부터 체스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10세 소녀의 체스 실력은 근처 고등학교의 체스부원들을 모두 이겨버릴 만큼 가히 천재적이었다. 하지만 보육원에서 원활한 아이들의 관리를 위해 비타민이라는 이름으로 먹였던 신경안정제의 효과에 눈을 뜬 베스는 서서히 신경안정제가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게 된다. 그 와중에 참가한 주 체스 대회에서 첫 출전에서 우승을 하면서 베스는 스타 체스 플레이어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이미 약물중독이었던 베스, 스타 플레이어로서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1. 재능은 마치 선악과와도 같아서
베스는 체스에 천재성을 보였고, 체스에 대한 야망이 있었지만 한 때는 고아였고, 그렇게 화목하지는 못한 집안에 입양이 되었던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 그녀를 더욱더 신경안정제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좋지 않았던 환경은 그녀를 체스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는데, 암울한 환경을 잊고 체스를 연습하기 위해서 신경안정제를 먹으면 보이는 체스판 환영을 통해 체스 연습을 했던 것이다. 점점 성장해가며 그녀는 체스 이외의 삶은 거의 파탄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술과 남자와의 관계 그리고 신경안정제에 지배당한 삶이었다. 점점 그녀의 삶은 신경안정제를 먹고 체스연습을 하는 일의 연속이거나 가끔은 술먹고 술김에 남자와 자기도 하면서 일탈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녀는 체스를 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을 원초적인 감각 충족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체스 연습에 온 힘을 쏟고 나면 그녀에게는 자극제가 필요했는데, 그녀가 체스 연습에 힘을 쏟은 만큼 아니 더 많은 힘을 보충할 필요가 있었고, 그 힘을 즉각적으로 보충하기에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던 것이 신경안정제, 술 그리고 주위에서 얼쩡거리는 남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가진 애착 장애는 체스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으로 이어졌고, 그런 강박적인 성향이 그녀를 원초적 자극에 대한 중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역사 속의 유명한 천재들은 무엇인가에 중독이었던 경우가 많다. 어니스트 헤밍에이,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였고, 모차르트는 도박 중독이었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재능을 보였던 어느 한 분야에 집착적으로 파고들었었기 때문에 재능있는 사람이 노력까지 하니 일반 사람들은 그들이 일궈낸 성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남긴 성과들은 후대의 우리들도 여전히 접할 수 있는 성과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성과 뒤에는 그들의 강박적인 성향, 원초적인 자극에 대한 갈구에 미쳐서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평범하고 별일 없이 사는 삶'은 살 수 없었다. 늘 천재라는 타이틀 아래 다른 이들의 기대에 맞춰야 했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더더욱 자신의 재능을 더 빛을 발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으며, 그 시간과 노력만큼 그들은 점점 더 강박, 원초적 자극이 만들어놓은 함정 속으로 걸어들어간 꼴이 된 것이다. 천재들은 그들의 재능을 소비한 대가로 에덴 동산에 살던 아담과 이브가 먹었던 선악과(원초적 욕구)를 먹은 것이다. 문학에서 선악과는 이브를 유혹한 뱀과 함께 원초적 자극, 원초적 욕구의 대표적인 비유로 쓰이는데, 이 드라마 시리즈를 보면서 재능은 제 3자가 볼 때는 축복으로만 보이지만 재능있는 사람들의 1인칭 시점에서 보면, 그들은 선악과를 베어문 아담과 이브와 다를 바가 없는 존재들일 뿐이었다.
2. 뜻이 있는 자에게 구원이 오리니
그러나 점점 증세가 심해져 술과 약으로 매일을 연명하던 그녀에게 결정적으로 손을 내민 세 사람이 있었다. 첫 번째 인물이었던 해리 발틱. 그는 베스가 굴욕적으로 러시아 선수에게서 처음으로 제대로된 패배를 맛보게 된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에게 트레이닝을 받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온다. 해리 발틱은 베스가 약물 중독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차린 외부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약에서 벗어나라는 충고를 지속적으로 해준, 그녀의 재능을 아낀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한 명, 베니 와츠, 미국 (전) 체스 챔피언인 그도 그녀의 재능을 높이 산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녀의 알콜 중독 증세를 알고, 그녀를 해리보다 더 하드코어하게 트레이닝 시킨다. 두 남자의 베스에 대한 관심은 그녀의 재능에 대한 인정과 그녀의 이성으로서의 매력 모두에게서 비롯된 것 같긴 하지만 그들은 결국 베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었음은 틀림없다. 그리고 샤이벌 씨가 베스와 헤어지고 나서도 베스의 스타 플레이어로서의 길을 묵묵히 응원해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옛 친구와 다시 재회하게 되면서 한없이 외로워보였던 그녀의 인생에서도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었음을, 그리고 그들도 베스의 체스에 대한 야망 못지 않게 그녀의 체스 인생의 꽃길을 응원했던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재능은 그녀의 개인사에서는 선악과였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재능은 다른 이들에게는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불빛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재능은 누군가에겐 흑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차별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것이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그저 나보다 더한 재능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고 또는 나와 함께 시간을 공유했었던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았을 때의 뿌듯함이었을 수도 있다. 혼자 한없이 방황하던 베스에게 이런 지원군들의 등장은 그녀가 그녀의 재능과 삶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법, 힘들 땐 약을 찾을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 등을 실생활에서 그녀가 실행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었다. 그들은 베스가 재능, 선악과가 만들어놓은 덫에 더이상 빠지지 않고, 재능이 제공하는 에덴 동산 속에서 오래오래 살 수 있게끔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함께 손잡아준 존재들이 되었다. 마침내 그녀는 구원받았다.
인간은 원초적 자극을 한 번 맛보면 잊지 못하지만 그 자극은 더 큰 자극을 바라게 하고, 더 큰 자극에 대한 욕구는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꽃피우려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큰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이 정말 건실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을 꾸준히 키우고 있다보면 언젠가 당신을 좋게 봐주는 사람들의 등장으로 당신의 인생은 차츰 더 밝은 길을 찾아낼 것이다. 이 드라마는 천재의 삶을 조명하고 있지만 천재도 결국 나약한 인간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퀸즈 갬빗은 인간이 살아가려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과 좋은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 시리즈였다. 이 둘은 상호연결된 관계라서 건전한 목표의식이 있고, 당신이 계속 그 능력을 연마한다면, 그리고 그 능력이 아주 유용하다면 언젠가 당신을 알아봐줄 좋은 사람이 등장할 거라는 메시지가 계속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맴돌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계속 나의 글을 써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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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두 한 번 살고 한 번 죽지
SYNOPSIS.
“가장 낯선 곳에서, 가장 깊은 사랑으로”
파독 간호사로 낯선 나라 독일에 이주한 뒤 지역 사회와 소수자를 위해 목소리 내는 일에 앞장선 ‘수현’. 간호 학교를 졸업하고 신학 연구에 뛰어들며 이주민의 마지막 길을 동행하는 호스피스 리더 ‘인선’.40여 년 전, 재독여신도회에서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 이민 1세대, 이주 노동자, 그리고 레즈비언으로서 서로에게 쉴 곳이 되어주고, 곁에서 여생을 함께하기로 한다. 첫 황혼에서 두 손을 마주 잡은 <두 사람>의 무지갯빛 블루스가 시작됩니다!
POINT.
✔️ 파독 간호사 다시 말해 이민자, 노년의 퀴어 커플.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이들의 이야기 자체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 많은 이야기가 사랑이 가장 화려하게 무르익는 시절을 주목하는 세상에서, 이미 무르익고 단단해져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노년을 맞이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일상 톤으로 담은 이야기는 늘 귀합니다.
✔️ 짧은 다큐멘터리이지만, 더 깊은 사랑과 더 넓은 돌봄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참 아름답습니다.
영화는 반박지은 감독이 처음 두 사람을 알게 된, 두 사람이 손을 단단히 맞잡은 사진에서 시작한다. 두 사람은 한때 파독 간호사라는 사회적 호칭으로 묶여 불리며 독일에 당도했고, 지금까지도 베를린에 살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그렇듯 당사자들에게 처음인 오늘을 살뜰히 함께 보내고 있다.
모든 삶은 일면적이지 않다. 당연한 소리지만, 우리는 삶에서 다양한 역할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딸로서 존재하는 나, 교실에서 학생으로 있는 나, 직장에서도 상사와 있는 나와 후배와 있는 나는 각각 다르다. 다른 역할, 다른 위치의 면면에서 '소수자성'이라는 말도 이따금 교차한다. 어떤 순간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되면서 불편을 경험하지만, 또 어떤 순간 이성애자여서 사회에서 '정상성'으로 규정되어 아무 불편을 못 느끼고 넘어가는 순간도 있다.
이민자, 노인, 퀴어. 사회에서 너무 쉽게 배제되고 이따금 논리 없는 혐오의 말조차 쏟아지는 단어들이지만, 이 영화는 두 사람을 이 정체성 안에서 규정하기보다 그냥 "두 사람"인 인선과 수현으로 바라보기를 택한다. 물론 두 사람의 삶에 이 단어들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럼에도 어떤 범주화되는 단어가 아닌, 개인의 삶을 가장 앞에 그려내겠다는 영화의 의지가 분명히 느껴졌다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인지되는 것은 두 사람의 일상 노동이다. 한 명이 요리를 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옷을 다리고 있다. 병에 살뜰히 담긴 피클과, 베를린에서도 콩나물을 준비해 간장에 밥을 비벼 먹는 모습. 둘 중 한 명이 더 강단 있는 성격이라는 점은 이내 드러나지만, 그런 성격의 차이가 노동의 불평등을 야기하지는 않는다. 영화 내내 식사를 준비하고 전등을 고쳐 달고 깃발을 수선하며 두 사람은 일상을 일상답게 만든다.
두 사람의 살뜰한 손길은 자신들의 집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은퇴한 간호사의 지식과 실력을 십분 살려 이웃집 노인을 방문해 그의 상처를 돌본다. 타향에서 생을 마감하는 이방인의 삶을 감지하며,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살피고 돕는다. 이들의 삶의 궤적은 계속해서 돌봄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 공간에는 두 사람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깃든다.
두 사람은 서로의 수고를 당연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일일이 알아주고 고마움을 표한다. 내 마음 같지 않아 서운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의견 차이가 있고, 나는 같이 하고 싶은데 상대는 아닐 때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마음을 귀엽게 표현할 뿐 상대와 끝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 쿨하게 자기 할 일을 한다. 두 사람의 삶을 보며, 성숙한 관계의 일면을 어깨 너머 배운다.
두 사람은 나가서 시위를 하기도 하고, 같이 걷다가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고, 일을 하기도 하고, 장을 봐서 들어와야겠다며 따로 걷기도 하고, 교회에 따로 가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집 노인을 함께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더없이 일상적인 이러한 순간들이 영화에서 올망졸망 예쁘게 맺혀 있다고 느껴지는 건, 이 영화의 영제이기도 한 unrehearsed life, 누구도 연습이 없이 단 한 번 사는 것임을 두 사람이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비슷한 하루하루를 적당히 굴리는 게 아니라, 유일한 하루하루를 알뜰살뜰 채우며 살아가는 것. 그럴 때 일상은 자연스럽게 돌봄과 온기를 품는다. 보라색 부분이 뜯어진 무지개 깃발을 수선하면서, 빨간색과 파란색 실을 엮어 빈 자리를 메운 세심한 마음처럼. 일상은 이러한 모양이어야 할 것이다.
탄생과 죽음 사이, 삶은 하루하루 계속되고 생일은 매년 돌아온다. 그 안에는 모두에게 비슷하게 흘러가는 일상만 있지 않다. 유럽이고 독일이니까 아무래도 우리 나라보다는 편안하려니 싶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미디어의 조명을 받는 것을 여전히 불편해하는 가족이 있고, 손을 잡고 걷는다는 가벼운 행위조차 혹시라도 유별나 보일까봐 조심스러웠던 시간이 있다.
아마 영화에 비추어지지 않은, 더 많은 시간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보면서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했다. 호스피스 리더가 될 만큼 타향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생각하기까지 인선 씨가 어떤 시간을 보내 왔는지. 두 사람은 교회 신도 모임에서 만났고 지금도 한인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영화에서도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에 많은 번민이 있었음이 암시되는데,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 왔는지. 영화가 주목하지 않기로 결정한 뒷단의 시간들에 대해서도 언젠가 더 들을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아쉬운 마음도 있다. 일상을 주목하기로 했다 해도, 두 사람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켜켜이 쌓여야 하는데, 중간중간 당사자들에게는 너무 당연해 관객에게는 듬성듬성 전달되는 정보들이 있었다. 예컨대 두 사람 다 파독 간호사인 것도 자료에서 읽은 것이지, 영화만 보면 앞부분에서는 둘 중 한 사람은 파독 간호사였고 다른 한 사람은 남편을 잘 만나 공부만 하던 사람처럼 오독되기 쉽다. 두 사람이 어디 갈 때 왜 가는지도 모르고 시선으로 따라가는 장면들은 조금 아쉽긴 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발걸음이 산뜻했던 것은, "아픈 데 약 발라주고 등허리에 로션 발라주"는 이러한 날들을 찬찬히 보여주는 기획 의도가 선명하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과장과 희화화 없이 동성애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세상에, 숭늉처럼 깊고 산뜻한 이야기는 얼마나 속을 따뜻하게 하는가. 더 많고 다양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한 세상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더해졌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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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에서 튀어나온 무색무취함의 끝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릴 적 헤어진 형 새뮤얼 드레이크가 남겨준 추억과 반지를 간직한 채 바텐더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네이선 드레이크(톰 홀랜드)'. 어느 날, 그는 늘 그렇듯이 손재주를 발휘해 손님의 귀중품을 훔치던 사이 ‘설리’(마크 월버그)로부터 인생을 바꿀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잠적한 형의 소재를 찾고, 동시에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마젤란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자는 것. 고민 끝에 제안을 받아들인 네이선은 설리와 함께 마젤란과 그의 선원들이 남긴 기록을 살피며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찾을 힌트들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막대한 보물을 노리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고, '몬카다(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위협과 추격 속에서 네이선과 설리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에 발을 내딛는다.
<언차티드>는 너티 독이 개발한 플레이스테이션용 액션 어드벤처 게임 시리즈를 영상화한 작품이다. MCU의 스파이더맨인 톰 홀랜드와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마크 월버그가 각각 네이선 드레이크와 빅터 설리번 역을 맡았고, <좀비랜드> 시리즈와 <베놈> 1편을 연출한 루벤 플레셔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많은 게임 원작 영화처럼 <언차티드>는 기대보다 우려가 큰 작품이었다. 물론 화려한 배우와 감독의 면면과 본편만 4개고 외전도 2개나 출시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끈 원작의 존재는 기대를 키우는 요소였다. 그러나 게임을 원작으로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 중 성공적이라고 할만한 선례가 많지 않은 것, 신선함을 담보하지 못하는 액션 어드벤처 장르인 점은 그 기대를 가라앉히기에 충분했다. 예상대로 <언차티드>의 결과물은 본편에서 잔뜩 예고하는 속편이 왜 필요한 지조차 설득시키지 못하는 무색무취함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우선 <언차티드>는 유명 게임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다는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영화는 원작 게임 시리즈의 스토리 라인이 시작되기 이전을 그려내는 일종의 프리퀄 같은 위치에 있다. 실제로 오프닝과 동시에 등장하는 비행기 화물 클라이밍 씬, 게임 음악을 변형한 메인 테마곡, 네이선의 형인 샘이 중요 인물로 등장한다는 등의 부분적인 유사점을 제외하면 철저히 오리지널 스토리로 진행된다. 그래서 영화는 네이선과 샘의 관계, 샘과 설리의 관계, 네이선의 반지와 같은 주요 소품 등에 대한 설정을 원작과 다르게 묘사한다. 문제는 과한 각색과 오리지널 설정의 삽입이 팬들의 비토를 이끌어내는 주된 원인이 되고, 이는 게임 원작 영화가 실패하는 결정적인 이유라는 사실이다. 자연히 <언차티드>는 굳이 게임의 이름을 달고 나올 정도의 영화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자아낸다.
그렇다고 해서 <언차티드>가 오리지널 작품이라는 이점을 적절히 활용한 것도 아니다. 지나치게 안전한 길만 답습하기 때문이다. 당장 영화는 마젤란의 세계일주에 보물 찾기라는 상상력을 더하고 있는데, 이 상상력은 예측 가능한 선을 벗어나지 않는다. 마젤란이 여행 중 필리핀 막탄 섬에서 전투 중 사망했다는 점만 알아도 보물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러다 보니 마젤란의 보물이 숨겨진 장소가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다는 의미의 제목인 '언차티드(uncharted)'는 물론, 보물을 쫓는 주인공들의 겪는 고생과 역경은 좀처럼 와닿지 않는다. 같은 문제는 영화의 쿠키 영상에서도 반복된다. 쿠키 영상은 나치의 숨겨진 보물을 언급하며 속편을 암시하는데, 나치가 찾거나 감춘 보물은 작년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레드 노티스> 같은 작품에서도 곧장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진부한 소재다.
한편, 액션 어드벤처 영화로서도 <언차티드>는 다른 시리즈와 차별화되는 대목을 찾기 어렵다는 패착을 둔다. 일반적으로 <인디애나 존스>나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로 대표되는 액션 어드벤처 영화들은 다음의 스토리 진행을 공식처럼 따른다. 전설 혹은 역사 속 미스터리 속에 숨겨져 있던 보물이 실재함을 깨달은 주인공은 팀원과 의기투합하여 그 보물을 추적하지만 배신에 배신을 거듭한 끝에 실패를 맛본다. 그러나 그 역경까지도 극복하면서 그들은 서로를 향한 신뢰를 회복하고, 반드시 보물이 아니라 해도 그에 못지않은 마지막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한다. 이는 결국 어드벤처 영화가 무언가 변화를 주거나 자신만의 매력을 뽐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뜻이며, 그나마 화려한 볼거리를 뽐내거나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이 시도할 수 있는 선택지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언차티드>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일단 잔뜩 힘을 준 듯 보이는 액션은 무미건조하다. 네이선과 설리가 보여주는 육탄전은 그 구성이 아주 재치 있거나 유머러스하지도 않고, 색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며, 두 인물의 특성이나 성격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지도 않는다. 그나마 클라이맥스 장면은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듯 보인다. 헬리콥터가 범선을 인양해 가는 가운데 범선의 구조를 역이용하거나 배에 딸린 대항해시대 당시 무기나 대포를 이용하는 액션은 분명 생동감을 불어넣기 충분한 장면이다. 다만 이조차도 분량이 얼마 없고 짧게 지나치기에 순간적인 서프라이즈로서의 기능은 할지 언정 그 이상의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한다.
이에 더해 <언차티드>는 두 주인공인 네이선과 설리에게 어떠한 매력도 부여하지 못했다. 인디아나 존스, 툼 레이더, 잭 스패로우처럼 계속 보고 싶게 만들고 대체될 수 없는 캐릭터를 구축하지 못한 것이다. 당장 네이선은 배우인 톰 홀랜드 혹은 그의 대표 캐릭터인 피터 파커로 보일 뿐이고, 설리 역시 그저 마크 월버그라는 배우로만 보인다. 두 캐릭터 모두 그저 기능적으로 소비되다 보니 그들이 주체적으로 사건을 이끌어간다기보다는 사건에 이끌려 간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기 때문이다.
작중 네이선과 설리의 파트너십 형성 과정 묘사가 단적인 예시다. 형의 영향을 받아 과거 탐험가들의 모험과 전설에 심취한 네이선은 모험에 나선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하고, 보물을 찾는 것보다도 오래전 헤어진 형과의 재회에 더 기뻐하는 낭만파다. 반면에 설리에게는 그 어떤 낭만도 없다. 그에게 모든 것은 오로지 보물을 찾고 부자가 되려는 목표의 수단일 뿐이다. 가족의 죽음이나 죄책감마저도 그 욕망을 가로막지는 못한다. 영화는 이처럼 가치관이 극과 극으로 다른 두 인물이 일련의 소동을 겪으면서 점차 신뢰를 쌓아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언차티드>라는 제목은 설령 눈에 보이지 않아도 물질적 가치보다 더 뜻깊고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영화는 이 대목에 설득력을 불어넣지 못했다. 두 인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문다. 대신 원래 이 둘은 이러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주입시키려는 듯 유사한 대사와 갈등, 반복되는 장면을 거듭 보여준다. 이렇게 평면적이고 작위적인 설명과 묘사 때문에 둘이 마지막 순간 서로를 변화시키는 모습을 통해 메시지를 완성 지으려는 노림수는 너무나도 쉽게 간파된다. 결국 이들의 파트너십은 아무런 감흥도 깊이도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귀결된다.
마지막으로 게임 원작 영화인 것이나 어드벤처 장르 영화임을 차치하더라도, 한 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어설픈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언차티드>는 좀처럼 관객들을 긴장시키지 못한다. 보물찾기 힌트가 지하 터널이 아니라 패스트푸드 음식점 혹은 클럽에 숨기는 식으로 클리셰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기는 하나, 완벽한 타이밍마다 등장하는 힌트와 조력자의 도움은 네이선의 여정을 너무나도 매끈하게 다듬어 준 나머지 오히려 몰입을 저해한다.
그럴듯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악역들의 드라마를 지나치게 얕고 빠르게 다루면서 그들을 손쉽게 소비하는 전개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강렬한 반전을 선사하거나 서스펜스를 끌어올리는 데 빌런 간의 갈등이나 배신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최소한의 암시만 주어진 채 배신을 일삼다 보니 클라이맥스로 향할수록 영화에서는 허무함마저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국 남는 것은 지극히 무난한 킬링타임용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다. 영화를 보고 나서 크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어떠한 장점도 특색도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작품이 뇌리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사실 <언차티드>는 제작 과정 중에 수차례에 걸쳐서 제작진과 감독이 교체되는 난항을 겪은 바 있다. 심지어 주연 배우인 톰 홀랜드마저 GQ 인터뷰에서 "아주 터프하고 자신의 내면을 잘 보이지 않고 심각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는데(...) 내 근육이 제대로 나왔는지 등에 대해서만 신경 쓴 거 같았다."라고 회고했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언차티드>의 무색무취한 결과물이 아주 놀랍지만은 않다.
P(Poor, 형편없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 트레져 헌터 듀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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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화라서 더 놀라운 영화 | 추격자
혹시 "4885" 혹은 "슈퍼아줌마"를 아시나요?!
영화는 몰라도 아직까지 회자되는 4885와 슈퍼아줌마는 한번쯤은 들어보셨을텐데요.
이 키워드는 바로 영화 추격자에서 나온 단어로 대한민국을 뒤흔든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추격자 입니다.
추격자 영화감독은 우리가 지금은 흔히 아는 "나홍진감독"의 데뷔작품으로
이 작품을 계기로 나홍진, 김윤석, 하정우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과 배우로 자리매김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은 다시보는 영화 추격자 결말까지 싹 살펴보겠습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범죄, 스릴러, 느와르, 액션, 공포, 서스펜서, 슬래셔, 고어
감독 / 각본 : 나홍진
출연진 : 김윤석, 하정우
개봉일 : 2008년 02월 14일
평점 : 9.09
스트리밍 : 티빙, 넷플, 왓챠, 쿠팡
기획 의도
그날 밤 놈을 쫓던 단 한 명의 추격자
"4885... 너지?"
출장안마소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 '중호'
최근 데리고 있던 여자들이 잇달아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고,
조금 전 나간 미진을 불러낸 손님의 전화 번호와 사라진 여자들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번호가 일치함을 알아낸다.
옷에 묻은 피를 보고 영민이 바로 그놈인 것을 직감하고 추격 끝에
그를 붙잡는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희대의 살인마, 그가 잡히던 그날밤... 놈을 쫓던 단한명의 추격자
여담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믿고 보는 감독으로 유명한 '나홍진'감독의 데뷔작품이다.
영화 추격자를 기점으로 범죄, 액션, 연쇄살인마 같은 영화의 판도가 확 바뀌면서
관람객의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영화의 눈을 만들어준 작품이다.
연쇄살인이라는 충격적인 소재와 범죄 액션의 클리셰를 다 무너트리면서 흥행에 성공하여 할리우드 리메이크 판권까지 팔았다고 한다.
후기 및 결말
영화 추격자 결말을 살펴보자면...
연쇄살인마 영민(하정우)를 피해 슈퍼마켓으로 간신히 도망친 미진(서영희).
하필 그때 슈퍼에 방문한 영민에 의해 슈퍼마켓아줌마와 미진은 죽고만다.
슈퍼마켓 아줌마 " 그 아가씨 여기 있다니까"의 대사 한마디로...
중호(김윤석)은 끝내 영민을 제압하고,
경찰들은 영민의 집 앞마당에 묻어둔 시신을 찾아내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추격자는 2008년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가 되고 있는 충격과 공포의 영화이다.
"4885"가 궁금하다면 이 영화 꼭 한번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한줄평 : 충격과 공포의 "슈퍼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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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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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오디너리 조> 공식 예고편
순간의 선택으로 바뀌는 서로 다른 인생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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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하 : 테이크 온 미> 메인 예고편
메가 히트송 'Take On Me'의 주인공 레전드 밴드 A-ha의 탄생과 성공 그리고 음악으로 연대하는 이들의 무대 위, 무대 밖의 진짜 이야기
전율의 이름 a-ha의 스크린 콘서트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