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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025-06-30 12:42:02

흐릿한 세상을 또렷이 사랑하는 방법

아녜스 바르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2018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영화 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사진 작가 JR이 함께, 프랑스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사진에 담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둘은 함께 여행하며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일상과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저마다의 아주 크고, 사소한 이야기들에 사진을 찍어 붙여 표지를 만든다.

 

 

 

바르다와 JR의 프로젝트는 우리 곁에 있을, 평범한 누군가의 일상에 확성기를 대준다. 작고 사소한 목소리들을 들려주는 작품. 영화 <국외자들>처럼, 루브르 박물관을 질주하며 만난 보티첼리, 라파엘로, 아르침볼도의 예술은 아름답다. 그리고, 항만노동자들의 아내들, 철거 직전의 탄광촌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주민, 병뚜껑을 모아 자신의 집을 꾸미는 포니의 얼굴과 이야기도 아름답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나를 지나쳐가는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있다. 그들이 가진 평범한 일상과, 노동, 조명 되지 못한 여성들 속에. 바르다가 바라보는 세상과 사람들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넓어서, 도저히 이 감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둘의 여정은 우연을 따라 가고, 노르망디 해변에도 닿는다. 바르다는 해변에 있는 한 벙커에 자신과 함께 작업했던 모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붙이며 그를 추억한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사진이 파도에 씻겨져 내려가버린 사실을 확인한다. 결국 사라질 순간들을 기록하고 남기는 일. 영화 내내 바르다는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점점 보이지 않는 눈과, 힘껏 달릴 수 없는 다리. 그녀는 자신이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절대 명랑함을 잃지 않는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바르다의 발과 눈을 찍어 기차에 붙여 보내는 것이었다. 바르다의 삶이 끝나더라도, 그녀의 여정은 계속 될 것이다. JR의 말처럼, 이 사진들이 바르다가 직접 갈 수 없는 곳들까지 그녀를 데려다 줄 것이고, 결국 이가 나에게까지 와닿았다는 게 기뻤다.

 

 



 

내내 선글라스를 벗지 않던 JR이 바르다에게 맨 얼굴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 흐릿한 시선이, 사랑스럽고 총명한 할머니가, 그녀는 떠났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많은 작품들이 오래도록 남아 모두에게 위로를, 영감과 성찰의 시간을 건넬 것이다.


 

작성자 .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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