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3-12 19:05:39
우리가 하필 인간이라서, <팟 제너레이션>
나와의 분리, 조건 없는 수용, 맹목적인 믿음, 그리고 애쓰는 인간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자세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팟 제너레이션 The Pod Generation, 2023
영국 / 109분
감독: 소피 바르트
우리가 하필 인간이라서, <팟 제너레이션>
적당한 공포와 적절하게 배합된 연민과 침묵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장치로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이 순뱡향이든 역방향이든 상관없이, '멈춰 있는 순간'에만 발동한다. 절대 피할 수 없으며, 강제적으로 작동해 기어이 멈춰 선 이의 발을 지면에서 떼게 한다. 인간에게 '정지' 행위는 죽음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는 어리석은 결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이 필수조건은 철저한 계획하에 만들어진 거창한 방책이 아니다. 직접 경험으로 얻은 교훈과 지식을 축적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게 된 이른바 생존 본능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인간을 위해 비극을 적극적으로 생산하며 사는 일이 자연의 순리와 같다는 점에서 우린 매 순간 죽음을 향해 가지만 절대 죽지 않기 위해 애쓰는 존재다.
인간은 단순하다. 생존을 우선시하는 본능이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고, 우린 각자 자기만의 방법을 정립하며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여러 방식이 존재하지만, 그중 세 가지 방식이 공통적으로 포함되어있다. '나와의 분리', '조건 없는 수용', '맹목적인 믿음'. 앞서 언급한 공포와 연민, 침묵이 인간의 내면에 박힌 생존용 고정핀이라면 분리와 수용, 믿음은 생을 향한 원초적인 욕구가 실행되는 길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 덕분에 인간인 우린 계속 길을 걷는다.

소멸을 부정하기 위해 시작된 인간의 생존 본능은,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개인의 가치관, 신념, 취향,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단순히 숨이 끊어지는 순간만이 아니라 현재 내가 누리고 바라고 원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때도 죽음은 물론이고, 죽음이 주는 극단적인 감정까지 느끼게 됐다. '어떻게 죽음을 피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해졌고, '앞으로 있을 죽음'보다 '지금 당장 없는 무언가'를 더 갈망하게 됐다. 흥미로운 건, 삶의 태도와 관점이 변화되었어도 고정핀은 여전히 박혀있으며 공통 방식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떠한 위협 속에서도 온전히 '나'를 따로 분리해 보호하고,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며, 그 선택을 진실하다 믿는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린 어떠한 상황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스릴 있게 투쟁하는, '격렬하게 애쓰는 존재'가 됐다.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 인간은 더 이상 살고 죽는 간단한 문제에 속한 동물이 아니니까. 자연의 순환 속에서 경계 없이 자기 세상을 확장하면서 그에 따른 온갖 난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활용까지 하며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보면, 우린 참 뭐라 설명하기 힘든 존재다. 예측불허하면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고 정말 단순하면서 그만큼 복잡한 인간. 죽음과 생존을 같다고 여기며 끊임없이 삶을 욕망하는 인간. <팟 제너레이션>은 이 모든 걸 담고 있다.

레이첼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회사에서 똑똑하고 능력이 뛰어난 여성 임원이다.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눈을 감기까지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의 힘을 사용하며 합리적으로 편하게 산다. 하지만 앨비는 다르다. 그는 자연을 사랑하는 식물학자다. 인간이라면, 인간이 만든 과학 기술적 세계가 아닌 자연 속에서,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진정한 인간다움을 가꾸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두 사람은 다르다.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체크해 주는 행복 지수가 말해준다. 앨비는 늘 낮거나 측정 불가이지만 자기만의 자연(섬에 있는 집)을 갖고 있어 진짜 미소를 지으며 산다. 레이첼은 인공지능의 행복 지수 관리를 신뢰한다. 적당한 지수를 유지하면서 간혹 높지 않은 날엔 거짓 미소를 짓기도 하지만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아침마다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바다가 보고 싶으면 대중교통으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할 필요 없이 공원에 설치된 '네이처팟'에 들어가면 된다. 굳이 자연을 현장 체험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현재, 레이첼이 사는 곳은 쓸모보다 편리함이 더 귀한 가치로 여겨지는 아주 좋은 세상이다.
레이첼에겐 '이 환경'이, 앨비에겐 이 환경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생존한 자연'이 존재하기에, 부부의 삶은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첼이 인지능력이 더 높은 인공지능 '마샤'를 성공적으로 출시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회사가 그녀에게 승진 혜택으로 인공 자궁(팟)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부부에게 인기몰이 중인 페가수스의 자궁 센터는 팟이란 플라스틱 알 모양의 기기로 임신과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고, 사실 레이첼도 아기를 갖고 싶은 마음에 남편 몰래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놨었다. 예상대로 자연 임신을 원했던 앨비는 아내에게 논의 없이 아기가 알에서 나오게 하는 대가를 지불했다며 화를 낸다. 그러나, 결국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선택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다.

선택. 앨비와 레이첼이 함께 쌓아온 규칙이 다시 재정립되는 순간인데, 그 공은 두 사람이 아니라 레이첼의 심리치료사 일라이저, '인공지능'에 있다. 거대한 눈, 일라이저는 훌륭한 아이를 갖는 것뿐이라며 레이첼이 내면 깊숙이 원했던 말을 대신해 줬고, 인공지능이기에 인간의 영혼을 못한다고 믿는 앨비에겐 최고 등급의 사생활 보호 서비스를 제공했다. 남편의 반대와 자연을 반하는 행위를 한다는 죄책감에서 해방된 레이첼과 자연만을 믿고 살면서도 혼자 남모를 속앓이를 했던 앨비는 일라이저의 한 마디 처방에 그동안의 문제를 '나'에게서 분리하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생각을 전환한다. 이제 두 사람의 목적은 혼란스럽고 낯설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는 우리의 팟을 잘 돌보는 일이다.
팟은 정말 엄마 배 속에 있는 것처럼 그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영양분을 달라며 알람을 울려대고, 자기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이며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앨비와 레이첼은 각자의 속도로 팟을 받아들인다. 팟을 먼저 품기 시작한 건 예상과 달리 식물학자 앨비다. 팟 캐리어(유모차 같은)를 메던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는 어느새 캐리어 달인이 되어 팟을 자기가 일하는 온실에 동행한다. 나아가 집 밖에서도, 집 안에서도 끊임없이 팟과 교감한다. 팟은 자연을 사랑하는 그의 예외적 선택으로 자연이 됐다. 임신과 출산에서 자유로워진 후 계속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성으로 살던 레이첼은 백팔십도 달라진 남편의 모습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빠가 어떻게 엄마보다 더 아기와 가까워질 수 있지? 그도 그럴 것이 자연대로라면 태아와의 강력한 교감은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엄마만이 체감할 수 있는 감정들을 인공 자궁을 선택한 레이첼이 무슨 수로 경험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레이첼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임산부의 배에 손을 올리고 태동을 느끼며 자신도 임신 중이라고, 당신처럼 아기를 품고 있다고, 아무리 되뇌어도 '나'의 임신과 '그녀'의 임신은 절대 같을 수 없다는 진실을 말이다.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레이첼은 팟과 남편을 데리고 다시 일라이저를 찾아간다.

레이첼은 팟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부터 볼록하게 나온 자기 배를 만지며 평화로운 모래사장을 걷는 꿈을 꿨었다. 팟이 생긴 이후엔 조그만 알을 출산하는 섬뜩한 꿈을 꿨었는데, 일라이저는 꿈은 자의적이며 구시대적인 산물일 뿐이라며 더 이상 인간은 꿈을 해석하거나 이해하지 않는다고 그녀를 안심시켰었다. (자궁 센터 원장도 인간은 꿈을 꾸지 않는 게 정상이라고 당당히 말했고, 한술 더 떠서 아기에게 부모가 원하는 꿈도 꾸게 할 수 있다며 신제품 드림팟을 선전한 바 있다) 즉, 자연과 여자의 자궁, 이젠 인간의 꿈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상에서,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며 걱정하는 레이첼의 우려는 불필요한 고민이었다. 그런데도 쉽사리 고민을 떨쳐내지 못하는 그녀에, 일라이저는 팟 안에 든 태아와 자신을 연결해 달라고 말한다. 그 순간 레이첼과 앨비는 처음으로 멈칫하며 거대한 눈에게서 빠르게 도망친다.
그동안 그들은 숱하게 합리화를 해왔다. 여성의 자궁 대신 팟에서 태아가 자라는 것뿐이며, 자연임신으로 부모가 된 부부와 똑같은 경험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레이첼의 말처럼, 중요한 건 플라스틱 알이 아니라 태어날 '우리 아기'니까. 분명 자연의 선물로 받은 축복이라 생각했는데, 인간의 기술로 태어나 조작으로 만들어지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무언가' 같은, 이 불쾌감과 거북스러움이 그들을 덮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동안 해왔던 분리와 수용, 믿음 방식을 계속 유지한다. 레이첼은 남편처럼 회사에 팟을 들고 다니면서, 아기와 유대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오로지 자신에게 올 '아기'만을 생각하면서.
팟의 대기 명단이 길어지자, 자궁 센터는 부부에게 유도분만을 제안한다. 광고할 때만 해도, 아기가 스스로 나오고 싶은 순간에 신호를 주면 출산 과정을 돕는다며, '자연이 결정'한다고 온갖 위대한 척은 다 하더니 결국 자본의 흐름에 아기를 다루고 있던 것이다. 레이첼과 앨비는 거부한다. 팟은 페가수스의 자산이지만, 그 안에 든 아기는 우리 전부니까. 앨비는 곧바로 팟을 몰래 집으로 데려오고, 아기를 백화점에서 골라 사는 꿈을 꾼 레이첼은 섬에서 가정 분만을 하자고 선언한다. 부부는 진짜 자연 속에서 진짜가 된 팟을 품고 자연과 온전히 동화된 시간을 보낸다. 원격으로 팟의 기능을 꺼버린 페가수스의 저급한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아기를 믿고 기다린다. 드디어 온 아기의 신호. 앨비는 플라스틱 알을 강제로 개봉해 아기를 꺼내 품에 안는다. 감격스러워하는 앨비와 레이첼 그리고 그들의 축복, 팟 제너레이션의 탄생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분리, 수용, 믿음. 두 사람은 부단히 노력해 아기를 얻었다. 그럼 된 것일까? 해피엔딩인가? 태어난 아기는 부부의 사랑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레이첼은 내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더 편한 선택을 하기 위해, 자신의 복제품(일라이저)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라이저를 통해 팟 서비스가 좋은 선택임을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확인받았다. 그러나 부부가 사는 세상이 오직 지금, '현재에 사는 이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인 것처럼, 그들의 선택 역시도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아기를 욕망하던 오늘의 나만'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 결과 꿈꾸지 않는 팟 제너레이션을, 아니 '꿈꿀 수 없는 인간'을 탄생시켰다. 꿈은 영화 속에서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시켜 주는 유일한 장치였다. 꿈이 인간다움이라면, 팟 제너레이션 이후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들의 아이는 정말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그 아이들이 계속 태어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미래엔 무엇이 살아남을까.
<팟 제너레이션>은 우리가 얼마나 변덕을 부리면서도, 카멜레온처럼 나란 존재를 끊임없이 긍정하며 사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나아가 이를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부부의 새로운 도전을 평범한 일상 안에 평이하게 녹여내는 데 집중한다. 인간의 생존 본능과 변화무쌍한 능력들도 악인의 횡포처럼 풀지 않는다. 단지 잔잔하게 흘러가는 부부의 개인사가 끝을 향해 갈수록 우리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는 것뿐이다. 점점 더 무겁게 짓누르는 위기감과 섬뜩함에 생존 본능이 발동되는 순간, 페가수스 사장이 쿠키 영상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궁 센터의 고객은 부모가 아닌 아기임을 확인시키며 언젠가는 아기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디, 그들이 현명한 부모를 선택하길 바란다며 인터뷰를 마친다.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분명 팟으로 합리적으로, 더 안전하게 아기를 얻으려는 부부의 이야기가 전부일뿐인데, 물음 하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역시 어쩔 수 없겠지? 우리가 하필 인간이라서."
참신하고 흥미롭지만, 여러모로 행복 지수를 높이는 영화는 아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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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원자폭탄을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한 A to Z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이 될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들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
그럼 다같이 살펴보실까요?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론물리학자이자 "원자폭탄의 아버지"인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을 바탕으로 한 <오펜하이머>의 개봉으로 2023년 영화계에 복귀할 예정인데요. 놀란은 지금껏 전기 드라마를 만든 적이 없지만 놀란의 모든 영화들이 그렇듯이, <오펜하이머>에 관한 한 예상치 못한 결과를 기대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이 프로젝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거의 없지만, 보도에 따르면 놀란은 2억 달러 이상의 영화 <테닛>이 상영된 이후 이보다는 제작비를 축소할 것이라고 하는데요. 막대한 제작비의 영화를 만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차기작은 어떤 모습일지 천천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1. 첫번 째 스틸 공개
킬리언 머피는 전기 물리학자인 J. 로버트 오펜하이머로 변신한 스틸 사진을 첫 공개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2023년 7월 21일 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2. 케네스 브래너와의 협업
케네스 브래너가 <테닛>에 이어 크리스토퍼 놀란과 함께 다시 작업한다고 합니다.
케네스 브래너는 2022년 2월 <오프네하이머>에 미공개 역할로 정식적으로 캐스팅됐다고 밝혔습니다.
3. 프로덕션 In 멕시코
매거진 할리우드 리포터가 2월 22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 영화의 제작은 뉴멕시코에서 시작될 것이며, 맞춤 제작 세트장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합니다.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손수 한땀한땀 제작하기로 유명한 감독이죠?)
4. 드라마 <더 보이즈>의 '잭 퀘이드'의 출연
드라마 <더 보이즈>의 스타 '잭 퀘이드'는
2022년 2월, 영화 <오펜하이머>의 출연자로 발표되었습니다.
5. 배우 '데인 드한' <오펜하이머> 출연하다
'데인 드한'은 <오펜하이머>의 출연진에 합류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역할을 맡았다고 합니다.
데인 드한은 또한 HBO 맥스의 '캐슬린 피터슨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곧 개봉될 실화 범죄 시리즈인 <The Stairs>에도 출연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6. 훈남 배우 '조쉬 하트넷'의 캐스팅 결정
과거 국내 여성팬들의 남친짤로 유명했던 배우 '조쉬 하트넷'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출연진에 합류할 것이라고 보도된 바 있습니다.
그가 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또한 그는 가장 최근에 가이 리치 감독의 <Wrath of Man>에 출연한 바 있습니다.
7. 플로렌스 퓨, 라미 말렉, 베니 사프디 등의 그야말로 핵 캐스팅 라인업!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플로렌스 퓨', 보헤미안 랩소디의 '라미 말렉', 감독 겸 배우인 '베니 사프디' 또한 영화에 출연합니다. 그들은 이전에 먼저 주연배우로 캐스팅이 확정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맷 데이먼, 에밀리 블런트, 그리고 킬리언 머피와 함께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플로렌스 퓨는 오펜하이머와 불륜 관계인 공산당 당원 '장 타트록' 역을 맡았으며, 사프디는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가장 잘 알려진 헝가리 물리학자이자 맨해튼 프로젝트의 동료인 '에드워드 텔러' 역을 연기할 것이라고 합니다.
8. 할리우드 대스타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맷 데이먼 출연
할리우드 소식지 데드라인에 따르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맷 데이먼은 놀런의 <오펜하이머>의 합류를 발표한 가장 최근의 할리우드 톱스타 배우입니다. 아직 맷 데이먼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이 프로젝트에서 연기할 사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비밀에 부쳐지고 있습니다.
한 영화 속에서 맷 데이먼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요.또한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멧 데이먼은 전작 <인터스텔라>에서의 짧은 조연 이후 재결합을 기념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9. '에밀리 블런트', 오펜하이머의 아내 역할을 맡다!
할리우드 소식에 따르면 '에밀리 블런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펜하이머>에 합류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소식에 따르면 그녀는 원자폭탄 발명을 이끈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과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아내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요.
에밀리 블런트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정글 크루즈>, 파라마운트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배우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에는 첫 출연합니다.
10.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항상 전기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닛>의 후속작이자 그의 12번째 장편 영화가 될 것인데요.
특히, <오펜하이머>는 감독의 첫 전기 드라마가 될 것입니다.
놀란 감독의 연출은 흔한 전기영화의 특성을 따라갈 것 같지 않기에 전기 영화라고 칭하기 애매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요. 그는 과거의 전작 <더 프레스티지>에서도 현실의 인물(니콜라 테슬라)을 다루긴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이번 영화에서는 역사적인 인물의 삶이 이번 프로젝트의 주요 서사 추진력이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한 전기 드라마 장르는 항상 놀란의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11. 워너 브라더스에서 유니버설로 이적
<오펜하이머>를 둘러싼 가장 큰 뉴스는 이 영화가 2002년 <인썸니아> 이후 놀란 감독의 첫 워너브라더스 영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놀란 감독과 워너 브라더스의 협업은 거의 20년 동안 지속되었만,
둘 사이의 관계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악화되었는데요.
올해 모든 워너 브라더스 영화들은 HBO 맥스를 통해 31일간 방영될 수 있는 동시 극장 개봉을 선택했고, 이 결정에 대해 놀란 감독은 공개적으로 워너 브라더스에 반대했습니다. 결국 놀란감독과 워너브라더스의 이별이 진행됩니다.
놀란은 한 인터뷰에서 "2021년, 세계 최고의 영화 제작자들이 출연했으며, 어떤 경우에는 영화계에서 가장 큰 경험을 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에 수년간 참여한 최고의 스타들도 있다. 이 영화들은 가능한 한 가장 많은 관객들을 극장에서 보게 하기위해 제작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상의 없이 스트리밍 서비스, 즉 신생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한 희생양으로 변햇다." 라고 하면서 안타까움을 밝힌 바 있습니다.12. 유니버설 픽쳐스의 극장 배급 약속
유니버설픽쳐스로 이적하게 되면서 영화의 독점 극장 배급이 보장 받았습니다.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개봉 전 기준인 90일에서 100일 안팎의 극장 상영 기간을 가지며,
새로운 산업 표준이 되고 있는 45일보다 훨씬 길어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유니버설픽쳐스로 이적하기 전에 스트리밍 서비스와의 동시 개봉이 아님을 철저히 요구했고 그 점을 약속, 보장 받은걸로 전해진 바 있습니다.
13. 배우 킬리먼 머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에서 첫 주연 배우 역할
킬리언 머피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조연 배우 중 한 명이었으며,
이것이 그가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주연을 맡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머피는 놀런의 영화 <다크나이트> 3부작, 영화 <인셉션>과 덩케르크>에 조연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은 바 있습니다.
머피는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스는 이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마다 다르지만 크리스와 몇 차례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어 크리스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제작진, 출연진에게 매우 엄격하고 까다롭다. 집중력이 대단하다. 그의 비전은 너무 분명하고 강해서 당신은 그것의 일부가 되는 것에 자신감을 느낍니다. 그가 그것을 밀어붙일 때, 그것은 좋은 장소처럼 느껴집니다." 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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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성 정치는 끝났는가
7★/10★
정체성 정치는 끝났는가? 진보와 보수 모두가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시급히 답변되어야 할 질문이다. 우리가 사회적 소수자를 논할 때 자주 언급하는 난민, 게이 정체성을 다루는 애니메이션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이 질문에 답하는 데 비판적 참조점이 되어준다.
주인공은 덴마크 코펜하겐에 사는 실존 인물 아민(가명)이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아민은 조국이 혼란에 빠지자 가족과 함께 러시아 모스크바로 망명한 후, 이내 다시 유럽으로 밀항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들의 밀항은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실패하고 만다.
해양경찰에 발각되기 직전, 아민을 비롯한 밀항자들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커다란 크루즈 유람선을 마주한다. 작고 허름한 배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난민 무리는 그들을 동물원 동물 보듯 시큰둥하게 바라보다 사진을 찍고 이내 돌아서는 유람선 승객이 구원자라도 되는 양 반갑게 손을 흔들며 환호한다. 하지만 아민은 그러지 않는다. 그가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구원을 애원해야만 하는 처지가 그의 내면에 부끄러움을 새긴 것이다.
부끄러움은 아민이 느껴야 할 감정이 아니다. 이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일상을 불가능하게 만든 자들에게 죄책감의 형태로 발현되었어야 할 감정이다. 그러나 난민이라는 취약한 지위 앞에서 부끄러움은 길을 잃는다. 정의를 촉구하는 수단이어야 할 감정이 난민이 감당해야 할 수동적‧부정적 감정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밀항 실패 후 모스크바로 송환된 아민이 꿈꿀 수 있는 유일한 미래는 또다시 망명뿐이다. 어렵게 마련한 큰돈으로 고용한 브로커는 아민에게 가짜 여권을 쥐여주며 모든 가족이 죽은 후 간신히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했다고 말해야만 난민 지위가 인정될 거라고 수차례 강조한다. 아민은 공항에서 몇 시간에 걸친 조사를 받는 내내 울었다. 멀쩡히 살아 있는 가족이 죽었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지독한 슬픔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아민은 유럽에 정착한 후에도 일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가까운 지인에게도 거짓 각본을 반복하며 괴로워했다. 자기 존재의 오롯한 표현이어야 할 감정은 그가 난민이라는 이유로 또 한 번 수동적‧부정적 감정의 축적으로 귀결된다. “그런 감정이 사람을 얼마나 무너뜨리는지” 알고 있느냐는 아민의 물음은 권력화된 감정 회로의 말단에 방치된 소수자를 위한 정의가 무엇인지에 관한 성찰‧사유를 촉발한다.
영화는 ‘난민 아민’이 아닌 ‘게이 아민’의 모습도 비춘다. 누나들의 옷을 입고 분홍색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게 자연스러웠던 아민은 액션 스타 장 클로드 반담의 근육질 몸매를 보며 자신이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임을 알았다. 이 자각은 그에게 고통과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고통은 아민의 성적 지향이 그가 가진 유일한 사회적 관계인 가족에게 일체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데서 생긴다. ‘일반적’, ‘정상적’ 삶을 살 것이라는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죄책감이 그 원인이다. 반면 즐거움은 목숨을 건 밀입국 과정과 환대 받지 못했던 망명지에서도 그가 호감 가는 동성을 만나 웃음 짓고 설렌 적이 있다는 데서 나온다. 즐거움은 아민의 감정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지만, 이 짧고 드문 감정이 아민을 아민이게 한다. 아민이 동성 애인과 덴마크 어딘가의 안락한 집에 정착하는 장면으로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영화의 결말이 도드라지는 건 이 때문이다. 누군가를 그답게 만드는 순간이 안정적으로 존중받을 때 그곳은 ‘집’이 된다는 메시지를 그의 게이 정체성을 조명함으로써 강조하는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에, 아민이 현실에서 안온한 삶을 되찾았음은 관객에게 안도감을 준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영화가 아민의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민의 난민 서사는 제국주의 패권 다툼이 초래한 혼란이 비서구인의 삶을 얼마나 철저히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제국 내부의 각성을 촉구한다. 더불어 울타리 바깥의 존재를 향한 연대‧환대의 시급성을 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민의 게이 서사는 정반대의 효과를 야기한다. 여자 형제 옷 입기, 규범적‧과시적 남성성에 대한 불편함, 커밍아웃과 가족의 포용, 일대일 게이 파트너십 형성 등등…. 아민의 게이 서사는 서구의 주류 게이 서사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동성애’, ‘게이’라는 말이 있는지도 몰랐다는 아민이 어떻게 서구 주류 게이 서사와 일치하는 자기 서사를 가질 수 있었을까? 영화가 아민의 회고에 기반하여 전개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유럽에 정착한 아민이 참고할 수 있는 혹은 참고해야만 하는 서구의 주류 섹슈얼리티 체계에 맞춰 자기 서사를 재구축하는 과정을 거쳤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장 클로드 반담’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문화 기호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었다는 현실적 조건이 아민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또 다른 질문이 잇따른다. 아민이 유럽에서 어렵게 다시 만난 형, 누나는 아민의 정체성에 어떻게 그리 ‘쿨’하게 반응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선진국’에 사는 동안 아프가니스탄의 보수적 관습에서 자유로워진 걸까? 혹은 망명이라는 너무도 커다란 사건을 오래도록 겪으며 동성애 정도는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이 질문에도 아민의 형, 누나가 나름의 과정을 거쳐 동성애 문제를 다르게 이해하는 방식을 학습했을 거라 가정하여 대답할 수 있다. 가족의 포용 서사 역시 아민에 의해 재현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영화가 위 질문 중 어떤 가능성도 면밀히 탐구하지 않은 채 이들을 가정의 영역에만 남겨둔다는 점이다. 소수자에게 부당한 감정이 누적되는 과정을 훌륭히 담아낸 〈나의 집은 어디인가〉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는 건 바로 여기다.
누군가가 자기 서사를 구축할 권리는 물론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대의 자장에서 자유로운 개인은 없기에, 해석자는 서술자의 기억이 늘 역사‧사회‧문화적 권력관계에 기대고 있는 ‘텍스트’라는 점을 고려해야만 한다. 영화가 아민의 회고에 별다른 질문을 던지지 않은 결과는 조금은 암담하다. 아민의 난민 정체성이 벼려낸 비판적 사유는 서구의 주류 게이 서사와 성급히 결합하여 저항‧전복의 서사가 아닌 포용‧관용의 서사로 전환될 위험을 품는다. ‘불행한 난민이 선진적 서구에서 행복을 되찾았다’는 서사가 도드라져 아민이 왜 난민이 되었는지에 관한 성찰, 즉 제국주의 권력관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흐릿해지는 것이다.
퀴어가 영위하는 다양한 형태의 비규범적‧비서구적 삶이 서구 주류 퀴어 서사의 글로벌 순환에 의해 어떻게 동질화‧균질화되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을 때, 섹슈얼리티에 기반한 또 다른 식민화는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영화가 널따란 정원을 가진 안락한 집에 정착하는 게이 커플의 행복한 엔딩으로 마무리되고 그들이 곧 동성결혼을 했다는 자막이 뒤따르는 동안, 난민을 양산하는 국제질서를 어떻게 재구성할지에 관한 탈식민주의 정치 의제가 어느새 증발해버리는 건 이 때문이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가 재현하듯 서구와 아프가니스탄의 차이가 두 지역의 게이 서사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영화는 이 문제에 대한 (의도하지 않은) 무관심으로 두 지역의 차이를 ‘격차’로 전환해버린다.
영화가 퀴어라는 기표를 별 고민 없이 활용해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뭉뚱그리는 사례는 이미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퀴어 서사의 차용이 곧 퀴어를 위한 정치였던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났다. 우리는 더 나은 퀴어 서사를 요구하고 감상할 자격이 있다. 정체성 정치에 관한 보다 적확한 영화는 소수자 정체성과 감정의 관계를 깊이 있게 담아낸 이 영화가 어디서 미끄러졌는지를 잘 되새김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다. 정체성 정치가 ‘보편적‧총체적’ 관점을 ‘결여’한 채 소수자 문제에 ‘치우치고’ ‘매몰’되어 있다는 비난에 반박하는 영화, 정체성이 구체적 맥락에 따라 매 순간 새로이 구성되는 유동적 경계를 지님을 보여주는 영화, 서로 다른 정체성 범주(계급, 인종, 성적 지향, 장애, 국적 등)가 교차하며 고유한 궤적과 깊이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조명하는 영화, 정체성이야말로 동시대 권력 지형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데 가장 적확한 정치적 개입임을 보여주는 영화, 그리하여 정체성 정치의 가능성을 훼손하지 않는 영화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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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댈 곳 없는 이들이 보여주는 인생의 한 페이지
영화 소개
◇ 제목: 매달리기
◇ 개봉: 2023년
◇ 상영시간: 26분 44초
◇ 시놉시스: 만 18세. 청소년 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는 영선은, 조금 더 시설에 있어도 되지 않냐는 복지사의 만류에도 시설을 나가 독립하려는 중이다. 영선은 생일이면 만나는 엄마를 만난다. 엄마는 뜻밖에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온다.
◇ 연출 의도: 보호 종료 아동은 어린 시절 한 번 버려졌다가 성인이 되기도 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립을 해야 합니다. 부족하지만 독립을 해야 하는 막막한 상황에서 드는 다양한 감정들을 주인공과 엄마와의 하루, 특히 태어난 날인 생일을 함께 보내는 것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출처: 인디그라운드
영화 리뷰
영화는 철봉에 매달린 어린 영선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힘에 부치는 듯, 엄마를 애타게 부르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다. 결국 영선은 더 이상 매달려 있지 못하고 철봉에서 떨어진다.
단순하지만 명확하게, 보호자의 부재가 어떤 의미인지 영화는 말해준다. 이처럼 사소한 일상에서의 빈자리를 보여줌으로써 영선과 같은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물음을 던짐과 동시에, 관객은 스스로 '영선'이 되어 한순간에 몰입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18세 생일이 된 영선은 자립을 위해 새로운 집을 찾는다. 그는 설렘이 묻어나는 얼굴로 누군가와 함께 살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영선이 함께 살길 기대하는 '누군가'는 바로 엄마, 차경이다. 영선은 자신의 생일날 찾아온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말할 타이밍을 기다린다. 그러나 타로점에서 들은 충격적인 얘기로 인해 영선의 계획은 전부 꼬여버리고 만다.
“그럼 애가 생겼는데 버리니?”
영선의 입장에선 참으로 황당한 말이다. 눈앞에 있는 당신의 딸은 버려지지 않았나? 영선은 숨기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날것으로 드러낸다. 이에 차경은 '엄마도 그때는 어렸다'는 말로 분위기를 수습하려 한다. 딸은 일평생 엄마보다 어릴 게 분명한데도 말이다.
차경의 캐릭터는 양면적이다. 아주 나쁜 엄마도 아니고, 자식을 엄청나게 위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엄마'라는 이름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어쩔 수 없었기에 영선을 혼자 두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모른 척 버리고 살 수는 없는 인물. 영선은 이미 혼인신고까지 했다는 엄마에게 모진 말을 남기고 친구 미주를 찾아간다.
버려진 차에 몰래 들어가 얘기를 나누는 둘. 영선과 함께 보호 종료 아동이 된 미주는 남자친구에게 돈을 전부 줬다 말한다. 영선은 황당해하며 화를 내고 미주는 그에게 역정을 낸다.
“씨발 난 혼자라고. 난 생일이 언젠지도 모르거든? 닌 엄마라도 있지 난 아무도 없어. 답도 없는 남친 밖에 없어 근데 뭘 어떡하라고! 니가 뭘 알아? 어디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마음을 아냐고. 존나 지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줄 알아.”
'어디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마음'은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문장이다. 세 명의 등장인물(영선, 차경, 미주)은 모두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싶어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 가족에서 벗어난 이들은 그렇게 평생 자신을 붙잡아줄, 자신이 매달릴 수 있는 구석을 찾아 헤맨다. 언제라도 손 내밀어 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최선이 아니더라도 결국은 잡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무언갈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과연 존재하지 않는 걸까?
사회는 이 같은 문제를 개인의 것으로 취급하려 하지만 그런 접근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사회적 관용이다.
각자에게 매달릴 구석이 없다면 사회가 붙잡아주면 된다. 사회는 거대하고 완벽한 구조가 아니다. 사회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고 또 당신이다. 그러므로 영선도, 차경도, 미주도 서로에게 '매달릴 구석'이 되어줄 수 있다. 영선과 미주의 일탈을 눈감아준 경비 아저씨처럼, 보호 종료 아동을 끝까지 생각해 주는 선생님처럼 말이다.
영화는 결국 영선이 차경의 인생을 응원하면서 끝나지만, 결코 이것이 그들의 결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는 오직 한 페이지일 뿐이다. 좋은 영화는 영화가 끝나는 순간부터 다시 시작된다고 한 이동진 평론가의 말이 기억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상영 순간부터 끝없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짧은 시간에 관객들이 관용의 사회로 들어오면, <매달리기>는 다시 시작된다. 영선과 차경, 그리고 미주 같은 이들이 더 이상 어딘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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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스 오브 막시> 여성 영화의 자기 파괴적 발전
<걸스 오브 막시>
여성 영화의 자기 파괴적 발전
새로운 학년을 맞이한 '비비안(해들리 로빈슨)'은 절친인 '클라우디아(로런 차이)'와 등교 첫날부터 학기마다 여학생들을 품평하는 리스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불쾌한 기분을 애써 떨쳐내려고 한다. 그런 그녀 앞에 전학생 '루시(알리시아 파스칼 페냐)'가 나타난다. 자신을 포함해 여자라면 일단 집적대는 미식 축구부 주장 '미첼(패트릭 슈왈제네거)'에게 명확히 거부의사를 표하는 루시. 그런 그녀를 보면서 비비안은 왜 여태까지 쌓이던 분노를 당당히 표현할 용기를 내지 못했는지 생각에 잠기고, 여성 운동을 펼쳤던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된 후 교내 여성 운동, '막시 Moxie(용기)'를 시작한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 할리우드는 물론 국내 영화계 주류를 강타한 트렌드가 있다. 바로 페미니즘이다. 여성 인권 향상의 기치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은 <스타워즈>나 <터미네이터>처럼 오래된 프랜차이즈를 리모델링하고 <원더우먼>과 <캡틴 마블>처럼 영역을 넓혀가며 많은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언론사의 성 불평등을 고발하는 <밤쉘>, 능동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여성상을 조명한 <작은 아씨들>과 <벌새> 같은 작품들은 평단의 호평 속에 시상식을 휩쓸었다.
그러나 모든 빛에는 필연적으로 그림자가 따르듯이, 영화계의 새로운 방향성은 짙은 어둠을 만들기도 했다. 여성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여성에는 백인이나 중산층만 포함하며 여성이라는 범주 안에 존재하는 사회적, 경제적 차이를 무시하거나, 역으로 남성 차별을 정당화하는 작품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메시지 전달 방식에 있어서는 페미니즘을 '영화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걸캅스>와 같은 몇몇 영화는 개연성이나 장르의 문법과 같은 최소한의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페미니즘 철학을 전달하는 데 급급했다. 그 결과 여성 영화에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 내지는 강제하는 프로파간다라는 이미지가 덧입혀지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제니퍼 마티유의 소설을 영상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걸스 오브 막시>의 초중반부는 이러한 여성 영화의 부정적 전철을 착실히 뒤따라간다.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여성 운동을 다루는 이 영화는 상당히 작위적이고 직접적인 연출로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유도한다. 예를 들어 교내 모든 여학생들에 대한 품평이 전체 메시지로 뿌려지고, 남학생들은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전학생 루시는 이유 없이 미첼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이 문제를 알고도 교장은 무조건 사건을 덮으려고 애쓴다. 운동 장학생 선거를 앞두고서는 여성 후보인 '키에라(시드니 박)' 대신 미첼에게만 교내 방송 출연이 허가된다. 이러한 장면들은 개연성과 설득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 이전에 무조건적으로 영화의 메시지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장치다.
이에 더해 페미니즘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도덕적인 선악의 범주로 치환시키며 영화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주입한다. 비비안이 막시 운동에 소극적인 클라우디아를 일방적으로 다그치는 장면이나, 미첼에게 독립적인 서사를 주는 대신 필요한 모든 악역을 떠안기는 연출이 대표적이다. 영화의 메시지에 동의하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고, 동의하면 도덕적으로 선하다는 이분법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출은 결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없다. 왜 백인 중년 남성이 쓴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야 하느냐는 루시의 질문이 그 사례다. 이 질문은 그녀의 의견에 설득력을 더하기보다는 소설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젠더의 이분법으로 무리하게 치환한다는 비판을 낳으며 연출 상의 한계를 드러낸다.
등장인물들을 설정, 활용하는 방식 역시 인종 차별을 방패 삼아 페미니즘의 메시지와 전달 방식에 대한 비판을 도덕적으로 봉쇄하는 듯 보인다. 백인 남성 교사는 여성 운동을 지지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지만, 비비안의 애인이자 동양계 남학생인 세스는 적극적으로 교내 여성 운동인 막시를 지지하며 대조를 이룬다. 운동 특기생 장학금을 두고 경쟁하는 미첼과 키에라의 구도, 가장 먼저 교내 성차별 이슈로 대립하는 루시와 교장의 구도가 모두 흑인과 백인으로 짜인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비비안 외에 막시를 주도하는 캐릭터의 다수는 유색인종으로 설정되어 있다. 따라서 <걸스 오브 막시>는 언뜻 보기에 일부 여성 영화들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답습한다.
그러나 <걸스 오브 막시>는 멋진 반전을 선사하면서 점점 짙어지던 그림자를 단숨에 빛으로 전환시킨다. 절친인 비비안이 익명으로 팸플릿을 만들고 캠페인을 계획하며 막시 활동을 이끌고 있음을 눈치챈 클라우디아는 그녀를 돕기 위해 막시를 교내 단체로 정식 등록한다. 그러나 막시를 좌시할 수 없었던 교장은 클라우디아를 비비안 대신 정학시킨다. 소식을 뒤늦게 듣고 찾아온, 자신이 적극적으로 막시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던 비비안에게 클라우디아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백인이라서 내 입장을 몰라." 뒤이어 미국으로 이민 온 동양인의 입장에서 교육과 대학 진학은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며, 따라서 학교에서 쫓겨날 각오를 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 대화를 기점으로 비비안은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의 신념과 행동이 잘못되어 있었음을 반성한다. 본인이 옳다고 믿었던 일이 모두를 위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불의에 저항하는 일은 같은 여성이라 할지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정작 익명 뒤에 숨은 자신이 가장 용기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녀는 익명을 벗고 사람들 앞에, 연단 위로 당당히 나서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저항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공간을 열어준다.
그녀의 변화와 함께 영화의 스탠스도 180도로 달라진다. 앞서 보여줬던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상황과 분위기 연출, 여성 운동은 무조건 옳다는 신념에는 제동이 걸린다. 인종과 젠더의 대립 구도도 허물어진다. 그 빈자리는 정체성에 관계없이 자신이 받은 차별에 함께 저항하는 연대의 정신이 자리 잡는다. 일부 여성 영화가 초래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답습하던 초반부 연출과 설정을 역이용한 결과 여성 운동과 미투 운동이 현실에서 보여줬던 영향력은 영화 내에서 성공적으로 재현된다.
사실 <걸스 오브 막시>가 반전을 선사할 것이라는 점은 오프닝에서부터 암시된다. 숲에서 쫓기다가 쓰러져 버린 비비안은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하려는 찰나에 악몽에서 깨어난다. 이후 영화는 하이틴 영화의 클리셰를 충실히 재현하며 예상치 못한 오프닝을 잠시 잊게 만든다. 방학 동안 몰라보게 달라진 이성을 향한 호감과 관심, 운동부 주장과 치어리더 팀 주장 간의 연애와 같은 가십, 전학생의 등장과 그로 인한 기존 친구들과의 갈등, 주인공들의 인생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교사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모범적인 하이틴 영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비안이 여성 운동과 시위를 펼쳤던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되고, 'Rebel Girl'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막시를 만들기로 결심하는 대목에서 오프닝은 잊혔던 의미를 되찾는다. 꿈이 무의식의 통로라는 고려 하면, 숲에서 헤매는 비비안의 악몽은 모든 여성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경험하지 않아도 공통된 불안함을 느끼다는 것, 그리고 그 악몽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묻어두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클리셰처럼 평범하게 이어지는 일상의 이면에 항상 불안함이 숨어 있고, 이를 직시하고 고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다소 갑작스럽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비비안의 변화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는 홀로 어두운 숲 속에 쓰러져 있던 비비안과 대낮의 밝은 학교에서 친구들 앞에 나서 목소리를 높이는 비비안의 모습이 멋진 대조를 이루는 이유다.
이처럼 <걸스 오브 막시>는 영화 앞 뒤로 예상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에게 쓰인 여성 영화의 부정적인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난다. 여성 영화들의 잘못된 선례를 바로잡고, 자칫 일방적인 프로파간다로 전락할 위험을 영리하게 피해 가며, 이를 원동력 삼아 영화를 접하는 모든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준다. 여성과 남성, 백인과 유색인종이라는 이분법 대신 여성 문제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각자 처한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그 결과 <걸스 오브 막시>는 여성 영화의 몇몇 부정적인 전철과 이미지를 직접 파괴하면서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데 성공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모든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 법한 반성, 공감, 연대의 여성 영화
* 본 콘텐츠는 브런치 DAY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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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을 쉬지 않고 수영하는 수영선수의 이야기
- 줄거리
어릴 적 수영선수로서 서로가 라이벌이었던 원일과 우상.
어느 날 수영 천재로 불리던 원일이 갑자기 수영을 그만두고 사라진다.
우상은 최고의 수영선수로 자라 수영계의 일인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우상은 예기치 못한 사 건으로 태극 마크를 벗게 되고, 명문 체고 수영부에 가게 된다.
원일은 재학 중이던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되고, 명문 체고 수영부로 편입하게 된다.
우상은 유일하게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원일이 전과는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오자 눈에 거슬리기도 하고 한심하게 느껴진다.
원일은 친구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고, 수영을 하는 일을 피하려 한다.
수영부에서 훈련을 갔을 때 다른 수영부와 수영 시합을 하게 되고, 원일은 자신의 수영실력을 보여주게 된다.
수영 부원인 정동은 부상이 있었지만 노력해서 대회에 나가게 된다.
이를 아니꼽게 본 선배가 정동을 때리며 정동의 부상 사실을 밝히기 전에 알아서 그만두라고 협박하게 된다.
정동은 수영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가게 된다.
정동이 나간 후, 선배의 막말에 원일은 화를 참지 못하고 선배를 폭행한다.
폭행 사건으로 인해서 원일은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다.
우상은 원일에게 수영 대회 신청서를 가져다주게 된다.
우상과 원일은 각자 자리에서 훈련을 받으며 수영 대회를 준비하게 되고, 수영 대회에서 나란히 1,2등을 하게 된다.
1,2등을 차지한 원일과 우상은 국가대표가 된다.
- 기억에 남는 부분
원일은 수영만을 바라보고, 결국에는 수영을 하다가 자신과 엄마를 두고 세상을 떠난 아빠에게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우상은 학교를 나오게 된 원일에게 원일의 아빠의 마지막 대회의 인터뷰를 찾아서 보여주게 된다.
인터뷰에는 원일이 생각지 못한 아빠의 생각과 말들이 담겨있었고, 아빠에 대한 오해가 풀린 원일은 아빠의 납골당을 찾아가게 된다.
납골당 안에 있던 아빠의 수영모에는 "호흡을 멈추고 물살을 가른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위해!!"라고 적혀있었고 원일은 이를 보고 오열을 하게 된다.
원일이 아빠의 진심을 알고 나서 우는 장면에서 사실은 원일이 아빠를 진심으로 미워했던 게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모를 보고 우는 원일의 모습은 아빠와의 오해가 풀린 아들보다는 아빠가 너무 그리웠던 아들의 눈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아빠가 수영을 하면서 '노브 레싱'이라는 영법을 사용했었는데
*노브레싱: 수영 전문용어로서 ‘호흡을 멈추고 물살을 가르는 영법’을 일컫는다.
젖산 에너지 시스템에 의존해 역영하는 방법으로,
경기 처음 또는 최후에 전속력을 내고자 할 때 사용한다.
원일도 노브레싱을 연습해 수영 대회에서 노브레싱을 사용하게 된다.
노브레싱을 사용하는 것으로 원일이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는 느낌을 받아서 좋았다.
- 명대사
" 두려움보다는 간절함이, 간절함보다는 소중함이, 소중함보다는 즐거움이
그 즐거움을 찾을 때 그때 비로소 완성되는 거야
너의 노브레싱. "
파노라마_테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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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치게 영리했던 <로키>가 범한 MCU다운 실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서 2012년 시점의 뉴욕으로 시간여행을 한 어벤져스 덕분에 어부지리로 테서랙트를 손에 넣은 '로키(톰 히들스턴)'. 그는 꼼짝없이 아스가르드에 죄인으로 송환될 위기 상황에서 테서랙트를 이용해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멀티버스가 충돌하는 일이 없도록 우주의 시간선을 관리하는 조직인 TVA는 탈출한 로키를 즉시 체포하고, TVA 요원인 '뫼비우스(오언 윌슨)'는 로키에게 TVA와 함께 움직여 달라고 요청한다. 다른 우주의 로키인 '실비(소피아 디 마티노)'가 우주의 타임라인을 어지럽히고 있기에 로키에게 그녀의 계획을 알아내고 막아달라는 것이다. 요청을 받아들인 로키는 실비를 쫓아 다양한 세계를 오가기 시작하고, TVA가 숨기고 있던 진실에도 한 발짝씩 다가간다.
캐릭터쇼라고 불릴 정도로 매력적이고 친근한 캐릭터를 선보여 왔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그중에서도 로키는 가장 독특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빌런으로 등장했으나 마냥 미움을 사지는 않았고, 토르와의 애증 넘치는 관계성을 바탕으로 든든한 조력자로 변해가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역경 앞에서도 끝끝내 살아남아 왔다. 심지어 완전히 퇴장했다고 생각한 와중에도 로키는 평행세계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설정으로 다시금 모습을 보였다.
이를 가능케 한 결정적 이유로 로키가 변수를 만들어내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전투 중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환영을 만들어 내었듯이, 그의 행동은 항상 눈에 보이는 목적과 그렇지 않은 목적이 혼재되어 있었다. 특히 본인만 아는 진짜 목적은 더 큰 혼란을 유발하면서 관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토르: 다크 월드>에서는 죽은 듯했지만 살아남아 아스가르드의 왕이 되었고, <토르: 라그나로크>에서도 토르 몰래 테서랙트를 훔쳐 나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서막을 열었다. 이처럼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끌고 가는 변수라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기에 로키는 사랑받을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사건들을 만들어 내는 종잡을 수 없는 바로 그 매력 때문에 로키의 첫 단독 작품인 디즈니+의 드라마 <로키>는 만족스러움과 실망이 교차한다. <엔드게임>에서 사라진 로키를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준다는 아이디어까지는 로키스러운 콘셉트였지만, 그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는 로키다운 재기 발랄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로키>의 에피소드 6개는 그의 첫 단독 작품을 접한 만족감이 MCU의 설명서를 보는 실망감으로 변하는 시간이 된다.
<로키>를 독립된 작품으로 보면 드라마의 전반부는 예상외의 고민과 성찰을 선사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한다. <어벤져스> 1편 시점에서 평행세계로 도망친 로키는 우주의 시간선을 관리하고 멀티버스의 출현을 막는 TVA에서 그가 살았어야 할 미래와 그의 인생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운다. 이때 드라마는 마치 마블 스타일의 <테넷> 마냥 로키가 느끼는 회의감과 허무함, 그리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세심히 살핀다.
로키는 이미 인생의 행보가 결정되어 있다면 오딘의 양자이자 두 번째 왕자로서 왕이 될 수 없는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던 자신에게 자유의지는 무슨 의미가 있고, 스스로의 존재는 어떤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특히 그가 <인피니티 워>에서 장난의 신으로 죽어가면서 타노스에게 "너는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는 유언을 남긴 점을 고려하면 그의 회의와 고뇌는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세상을 파괴하고 자신의 뜻대로 다시 창조하며 신의 행세를 하려고 한 타노스가 실패할 것을 확신했던 신조차도 그저 정해진 운명선을 착실히 걷고 있었을 뿐이라는 역설적인 전개가 아이러니함을 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을 담아내면서 로키의 이야기는 시청자가 이미 알고 있던 것 이상으로 확장되며, 왜 그의 스핀오프 작품이 필요했는지를 증명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이전까지 <로키>가 이룬 성과는 빛이 바랜다. 마블 세계관을 구성하는 조각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지면서 정작 주인공이어야 할 로키의 존재감과 이야기의 비중은 급격히 낮아진 결과다. TVA를 탈출하려 하고 진통 끝에 모비우스와의 협력을 약속하던 때와 달리, 실비가 등장 이후 로키는 철저히 수동적인 존재로 기능한다. 수사물처럼 TVA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대부분의 사건은 실비가 주도하며, 핵심적인 이슈에 대한 결정 역시 그녀의 손에 달려 있다. 특히 마지막 순간 멀티버스의 시작을 알리는, 그 이전에 운명에 종속되지 않는 존재임을 어필할 기회 역시 로키가 아닌 실비에게 주어지며 로키는 단지 그 여파에 휩쓸리는 데 그친다. 특히 빌런부터 토르의 조력자까지 정체성이 거듭 변화하는 와중에 단 한순간도 사건의 주도권을 놓지 않은 캐릭터가 바로 로키였다는 점에서 드라마는 큰 괴리감을 유발한다.
이처럼 로키가 멀티버스로 인해 자신의 서사와 정체성, 그리고 일관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로키>와 마블 페이즈 4의 설정집으로서의 <로키>가 충돌하는 지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로키마저 예상치 못한 속임수를 보여주는 실비나 아스가르드의 환영을 만들 정도로 강력한 마법을 선보이는 클래식 로키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로키의 단독 이야기로 멀티버스를 소개한다는 선택은 역으로 로키라는 캐릭터를 희미하게 만들어 버렸고, 지나치게 영리한 꾀에 스스로 넘어가 버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로키>는 여러 한계점을 노출한다. 우선 야심 차게 막을 연 멀티버스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양날의 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멀티버스는 또 다른 마블의 드라마인 <왓 이프...?>처럼 다양한 상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지만, 후속작이 개연성이 떨어지는 무리한 전개를 남발하더라도 이를 합리화해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페이즈 3에서부터 줄곧 지적되었던, 하나의 영화나 드라마로서의 완성도보다는 시리즈로서의 완성도를 우선시해 점점 더 많은 배경지식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를 키운다.
한편 <이터널스>에서도 본 것처럼 MCU의 새로운 지향점으로 설정된 다양성을 녹여내는 방식도 아쉬움을 남긴다. 사실 로키는 젠더 이슈와 관련하여 정치적으로 올바른 기제를 펼쳐 보이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신화와 전승에서 엄연히 여신과 결혼한 몸이지만 암말로 변신하여 오딘이 타고 다니는 다리가 8개 달린 말 슬레이프니르를 낳기도 하는 등 분명 양성애자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는 과감한 시도를 하는 데 인색하다. 세 번째 에피소드 속 실비와의 대화와 그 대화를 장식하는 무지갯빛 조명에서 성적 정체성을 암시할 뿐이다. 또 결국 실비와 로키의 관계가 이성 간의 로맨스로 이어지다 보니 그 진의마저 의심스러워진다.
<로키>를 멀티버스의 시작점으로 삼은 것은 분명 영리한 한 수였다. 우주의 균형이 무너지는 대사건을 풀어내기에 존재 자체가 속임수, 변수, 반동분자인 로키는 멀티버스라는 설정을 확립하고 세계관을 확장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최적의 주인공이었다. 또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하나를 복귀시키고 추가적인 등장 여지도 남기면서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선택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늘 로키의 잔꾀와 속임수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왔듯이, <로키>의 결과물 역시 지나치게 영리했다. 이전까지의 시리즈와 새로운 시리즈의 간격을 가능한 한 좁혀 놓겠다는 선택은 로키를 주인공으로서 서사의 중심에 놓는 대신 거대한 세계관을 지켜보기에 급급한 목격자로 만들었다. 페이즈 4에서 단독 작품보다는 하나의 부속품에 가까운 작품을 선보이는 실수를 반복하던 마블의 고질병이 또 도진 셈이다. 이에 더해 부수적으로는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지향성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남겼다.
과거 케빈 파이기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축하는 비법을 묻는 언론의 질문에 대해 "세계관을 걱정하지 마라. 영화를 걱정하라( don't worry about the universe. Worry about the movie")"라고 답한 바 있다. 과연 현재 마블은 페이즈 4와 그 이후를 전개함에 있어서 하나의 작품을 걱정하고 있을까? 시즌 2를 확정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로키>는 우려를 달랠만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듯 보인다.
P(Poor, 형편없음)
팬들은 계속해서 MCU를 좋아하겠지만, 영화팬도 앞으로 그럴지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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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예민보스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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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 '경석'의 반에서 지갑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같은 반 학생인 '세익'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경석'은 '세익'을 불러 어떤 말을 해도 믿을 테니 진실을 말하라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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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학교에 데려왔던 ‘경석’의 딸 ‘윤희’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또 다시 ‘세익’이 범인으로 지목되는데…
의심하는 순간 모든 것이 흔들렸다
의심과 믿음 그 사이에 좋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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