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5-29 14:02:11
형식을 박차고 나오는 메시지
영화 [씨너스;죄인들] 리뷰
이 글은 영화 [씨너스;죄인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분명, 등장인물들 뒤에는 얼음처럼 시원한 맥주와 와인 같은 매력적인 이야기보따리들이 가득 쌓여 있다. 어쩌면 상상하는 것보다 그 실체는 초라하거나 소소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까치발을 들고 목을 쭈욱 뽑아서 사방팔방 고개를 틀어가며 보아야 겨우 보이는 그 이야기들의 끄트머리 덕에, 더욱더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굴러본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들이 감춰놓은 이야기들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인물들이 가진 이야기를 이토록 들어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건만, 참으로 불친절하기 짝이 없게도 영화는 이 모든 것을 대놓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어깨너머 들은 풍문처럼, 그들의 인생이 가진 언덕과 절벽을 슬그머니 암시하게 할 뿐.
화면 양쪽 가득 끝없이 뻗은 목화밭이 자신들의 뒤로 스쳐 지나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달리는 차에 몸을 실은 채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인물들을 보면서. 눈에 가득 들어차는 화면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아주 작은 응어리가 마음 한편에 쌓이는 것 같은 불쾌함을 느낄 때 즈음. 이 작품은 모든 것을 털어낼 법한 소통의 방법을 끄집어낸다.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지는 못했지만. 영화의 중심부에 흐르던 차별과 그로 인한 울분은 흑인들의 이념과 정신이 가득 담긴 블루스로 주크 조인트를 가득 메우다 못해 터져 나간다. 진심과 현실을 담아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주었지만, 동시에 살려달라는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 묘한 감정이 마음을 가득 메웠다. 이 밤이 지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함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며,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참석한 사람들에게 그날의 밤은 파티였을지도 모르지만.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나의 입장에서는(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그들이 보내는 뜨거운 그 시간이 마치 굿판처럼 보였다. 들을 사람이 있어야 하지만 또 동시에 있어서는 안 되는. 호객은 했지만(?) 금지되어 있어서 더 강렬하게 느껴지던 그 파티는 결국 가장 뜨거운 지점에 다다랐을 때 여지없이 혼(사탄)을 불러내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게 나타난 뱀파이어(혹은 사탄)가 세력을 늘려가는 순서도 참 흥미로웠다. 불시착한 사탄이 가장 먼저 자신의 편으로 만든 것이 인종차별주의자 백인인 것에서도. 그리고 유색인종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다음에야 수세에 몰린 흑인들을 마지막으로 습격(?) 한 것도. 마치 자신의 세계에 끌어들이는 순서를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주요 인물들이 클럽에 갇힌 형태로 영화가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점 또한 이 상태에 처한 현실 속의 그들이 느꼈을 공포를 표현하는 것 같아 한결 더 서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또 나의 상상력은 변주를 틀었다. 분명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의 등장이라 했지만. 어쩐지 내 눈에는 인물들 스스로가 가진 죄, 혹은 죄책감들이 육신의 형태를 쓴 채 나타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바로 마음만 먹으면 클럽을 박살을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뱀파이어들이 아직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향해 "허락"을 구한다는 점이었다.
마치 다 놓고 죄를 저질러 버리면 그것이 인종의 문제이건 성별의 문제이건. 혹은 이해관계의 문제이건 평등한 하나(한통속이라 부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가 되지만. 스스로가 그래 이 문지방을 넘겠어.라는 마음이 없다면 절대 같은 죄인이 되어 킬킬거리며 조롱의 노래를 부를 수 없는 것처럼. 죄악의 유혹들 앞에서 무릎을 꿇겠느냐.라는 물음에 스스로의 의지가 죄악들에게는 장애물이, 스스로에게는 마지막 믿음의 항목으로 남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끝까지 사람으로 존재한 채 뱀파이어의 습격에서 살아남은 두 사람은, 상반된 선택을 한다. 스모크(마이클 B조던)는 복수를. 그리고 새미(마일즈 케이턴)는 진실된 삶을 위한 먼 여행을.
어쩌면 이 둘의 끝은 그날 밤의 끝자락에 이미 결정되었을 것만 같았다. 결국 스모크는 자신의 분신이자 전부였던 스택을 죽이지 못했고. 마음속에 남아 있던 분노도 함께 끊어내지 못한 채 자신의 목숨과 함께 총알을 모조리 KKK를 옹호하는 백인들의 육체에 박아 넣었으니까. 그러나 그의 울분이 느껴지는 총질 앞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스모크가 새미의 삶을 위해 마련해 둔 마지막 장치 덕에. 새미는 얼굴과 마음 가득 남은 상처를 가지고도 이제 자신의 남은 여생이 그날 밤에 생긴 상처만큼이나 희미하게 남았을 무렵까지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 다시 한번 사탄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비로소 새미는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여태 연주했던 음악들은 모두 진혼곡이었음을. 그리고 그저 복수로만 생각했을 스모크의 그 행동도 결국은 상실을 위로하는 다른 형태의 표현이었다는 것도. 우리 모두의 삶도 어쩌면 그런 상처를 달래며 살고 있다는 것도.
형식을 찢고 비죽비죽 모습을 드러내는 메시지를 삼키느라. 쿠키 영상속에 등장하는 어린 새미의 노랫소리가 유독 더 공허하고 슬프게만 들렸다.
[이 글의 TMI]
1. 인간적으로 델리만쥬는 영화관에 들고 오지 말자. 부럽잖아(?)
2. 영화 시간이 너무 애매해서 놓칠 뻔 했다 정말.ㅠ
#씨너스죄인들 #라이언쿠글러 #마이클B조던 #헤일리스테인펠드 #잭오코넬 #헐리우드영화 #공포장르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영화꼰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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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의미
미니언즈를 사랑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던 때 영화 《슈퍼배드》를 봤다. 이 귀여운 친구들을 그동안 외면했다니,, 옛날에는 왜 사람들이 미니언즈에 열광하는 줄 몰랐는데 이젠 알 것 같다. 그냥 귀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귀여움을 봐보고자 미니언즈가 나오는 작품들을 섭렵중이다.
영화 《슈퍼배드》 시놉시스
각 나라를 대표하는 명소들을 한 번에 훔쳐버린 기상천외한 주인공 그루. 그는 세계 최고의 악당이 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이 절대 훔칠 수 없는 것을 하나 훔치기로 마음 먹는다. 그것은 바로 달!!!달을 훔치기 위한 최신식 장비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아원의 세 소녀들을 맡게 된 그루는 세 소녀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악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소녀들을 키우는 일임을 알게 된다.
소녀들에 의해 점차 사랑을 배우고 변화되어 가는 그루. 과연 그는 달을 훔칠 수 있을 것인가? 소녀들과 그루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슈퍼배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미니언즈 이렇게 어른스러울 일이야?
사실 영화 《슈퍼배드》에서 미니언즈는 그렇게 큰 역할이 있는 존재들은 아니다. 미니언즈가 처음으로 출연한 작품이기에 그 의의가 있는 정도다. 여기서 인기를 얻은 미니언즈가 미니언즈라는 타이틀을 가진 영화 제작으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나나~나나나나~ 미니언즈들의 그 노래만 기억하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얼마나 귀여운 악당일까 기대하면서 봤는데 굉장히 어른스러운 생명체였다. 그루가 은행의 대출이 막히자 파산할 처지에 놓이면서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미니언들에게 말을 한다.
하지만 미니언들은 나 이만큼 돈있어!! 이것도 팔면 되지 않을까? 하는 티끌모아 태산 정신을 실천하며 그루를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그저 장난기 많고 어린아이 같았던 미니언들의 모습에서 그루를 살리고자하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사랑이 필요했던 그루
그루는 사실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 무언가를 시도할 때마다 그루의 어머니는 니가? 라는 말을 하며 그루의 호기심과 성장동력을 무참히 짓밟은 편이었다. 그리고 훗날 그루가 정말 슈퍼배드보이, 저암ㄹ 나쁜 사람이 되고나서야 그루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루가 실제로 피라미드를 훔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시 돌아서고 만다.
그저 결과로서만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 밑에서 그루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악당과 대적하기 위해 아이들을 입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점차 물들어가면서 ‘같이’의 대한 가치를 일깨우고 점차 사랑이 무엇인지 스스로 체득해간다.
난자리의 공허함
있을 때는 귀찮고 성가셨을지 모르지만 사라지고 나면 그 빈자리를 크게 느끼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든자리를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 라는 속담이 있는 것 같다. 그루 역시 아이들을 입양하고 나서 물론 진심으로 그 아이들을 위해 입양한 것이 아닌 달을 훔치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입양한 것이지만 입양 후 아이들이 이곳저곳 허락도 안받고 쏘다니며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모습에 굉장히 짜증낸다. 하지만 박사의 결단으로 아이들을 파양한 뒤 그는 달 포획에 집중하면서도 굉장히 공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결국 그 빈자리를 다시 돌려놓기 위해 아이들의 공연장을 찾아가고 아이들이 납치되자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로 걸어가며 아이들을 구해낸다. 그리고 정을 주지 않겠다며 굿나잇 키스를 하지 않던 그가 직접 동화책을 만들어주며 아이들에게 잘자라는 인사를 하게 된다.
영화 《슈퍼배드》 속에서는 가족이 구성됨에 있어서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반목이 일어나고 그 반목을 얼마나 잘 풀어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의지를 많이하고 있었음을 잘 드러내주고 있었다.
악당의 이야기라지만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귀여웠던 악당 아닌 악당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슈퍼배드》. 미니언즈의 매력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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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 예보보다 부정확한 인생 예보
"제75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최고작품상) 수상작인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 언론/배급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이미 영화 <더 스퀘어>로 2017년 제70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적 있는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블랙 코미디 <슬픔의 삼각형>은 극단적인 빈부격차와 계급 피라미드를 소재로 삼은 난장판 코미디입니다. 예상을 빗나가기 일쑤인 통제 불가능한 인생에 대한 알레고리이자 극단적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사회심리학 실험 같기도 합니다."
[슬픔의 삼각형] 일기 예보보다 부정확한 인생 예보
외출하기 전 창밖을 내다보니 해가 쨍쨍하다. '또 당할 수 없지.' AI 스피커에게 오늘 날씨를 물어본다. "최저 기온은 12도, 최고 기온은 24도, 오후 8시에 비 예보가 있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오후 6시쯤이면 집에 돌아와서 간밤에 다 보지 못한 스티븐 연, 앨리 웡 주연의 <성난 사람들(BEEF)>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래, 귀찮으니까 우산은 안 챙긴다.'
오후 5시,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출발하려는데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이런, 쌰... 이러니 내가 성이 나? 안 나?'
누구나 일기 예보가 틀려서 난감했던 적이 있다. 기상청의 슈퍼컴퓨터 '구루'와 '마루'가 정교한 예보모델을 활용해 정말 열심히 계산해도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기후 위기 시대이기 때문에 앞으로 정확도는 더 떨어질 수도 있다.
누구나 인생 예보가 틀려서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일일 생활계획표를 지킨 사람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정오부터 1시까지인 점심시간 이후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수학 공부를 할 시간이다. 1시 5분, 겨우 책상에 앉았더니 친구가 전화한다. "PC방 가자" 한여름의 PC방은 엄마와 달리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주는 지상 낙원이다... 정신을 차려 보니 방학 동안 푼 수학 문제보다 게임에서 획득한 아이템의 수가 훨씬 더 많아졌다. 계획대로였다면 2학기에 수학 성적은 90점을 넘어야 하지만 점수는 하락했다.
그뿐인가? 열과 성을 다해 아끼고 사랑했던 애인은 느닷없이 헤어지자고 한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별의 원인을 모르겠다. 사실 상대방은 수개월 전부터 꾸준히 이별 신호를 송출하고 있었다. 내가 애써 모른 척하고 무시했을 뿐. 뒤늦은 깨달음을 장문의 메시지로 전해 보지만 카톡의 숫자 '1'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홀로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던 행복한 가족사진은 무참히 분쇄되고 만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극단적인 빈부격차와 계급 피라미드를 소재로 삼은 난장판 코미디다. 예상을 빗나가기 일쑤인 통제 불가능한 인생에 대한 알레고리이자 극단적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사회심리학 실험 같기도 하다. 젊고 건강한 육체적 매력으로 무장한 패션모델 겸 인플루언서 커플 '칼(해리스 딕킨슨)'과 '야야(故 찰비 딘 크릭)'. 두 사람은 늙고 돈 많은 사람들이 승객의 대다수인 초호화 요트에 초대된다. 고기압이 지배하는 맑은 날씨 속에서 배 위의 손님들은 늘어질 대로 늘어진 채로 먹고 마신다. 자신들이 거액을 지불하고 구매한 사치로운 평화가 영원할 것처럼. 하지만 인생 예보는 일기 예보보다 부정확한 법이다.
괴짜 선장(우디 해럴슨)은 '선장 주최 디너 파티'를 굳이 요트가 저기압대로 진입하는 목요일 저녁에 하자고 우긴다. 폭풍우를 통과하며 요동치는 요트에서 강행된 '선장 주최 디너 파티'는 결국 재앙적 결과를 초래한다. 산해진미와 최고급 술은 멀미약이 아니기 때문에 식사를 하던 승객들은 하나둘 구토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배변도 활발해진다. 정화조까지 역류하는 바람에 번쩍번쩍 빛나던 요트가 순식간에 똥물로 도배된다. 목불인견의 엉망진창 와중에 러시아 자본주의자를 자처하는 "똥팔이" 비료 회사 사장 '디미트리(즐라트코 버릭)'와 미국 공산주의자(선장 본인 주장에 따르자면, 마르크스주의자) 선장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관련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갑작스러운 해적의 공격으로 배는 침몰하고 소수의 인원만 살아남아 외딴섬에서 명줄을 이어간다.
문명의 이기를 활용할 수 없는 원시적인 섬에서 자기 손으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부자들은 일순간 최하계급으로 추락한다. 요트에서 일개 "화장실 매니저(청소부)"였던 '애비게일(돌리 드 레옹)'은 물고기를 잡고 불을 피우는 능력 덕분에 섬에서는 선장이 된다. 계급이 완전히 전복된 것이다. 이후 벌어지는 갖가지 웃긴 상황들은 때로는 실소를 자아내고, 때로는 인간 본성의 가장 밑바닥을 건드리며 급소를 찌른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맨얼굴에서 어쩌면 우리 자신의 얼굴이 겹쳐 보일지도 모르겠다. (끝)
* 5월 9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진행된 <슬픔의 삼각형> 언론/배급시사회에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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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폐허된 억압 풀기
감독: 키라 코발렌코
출연: 밀라나 아구자로바, 알릭 카라에프, 소슬란 쿠가에프, 케탁 비빌로프
시놉시스: 한때 광산촌이었던 북오세티야. 이다는 가족을 사랑하지만 숨 막히는 통제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오빠 아킴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치유되지 못한 트라우마가 하나둘 밝혀진다.
첫 장면에서 아다는 외투를 코까지 올려 입은 채 벽에 기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의 시작에서 이 이미지를 마주했을 때 옷에 가려 보이지 않는 아다의 입이 웃고 있을지 아니면 긴장에 떨고 있는지 모르겠고 궁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인상은 이 영화가 관객에게 아다를 보이는 방식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아다가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은 집을 나갔던 오빠 아킴이다. 전사를 모른 채 재회하는 남매를 마주하게 되는 관객의 입장에서 이들의 만남은 조금 이상해 보인다. 아다는 집에 돌아온 아킴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데 그 관계가 남매 사이보다 남녀 사이로 느껴지는 부분이 더러 있다. 마찬가지로 아다의 동생 다코는 아다에게 지나치리만큼 의존한다.
가장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아다 아다 아버지가 이들을 대하는 태도다. 아다의 아버지는 아다에게 집안일을 모두 하도록 시키면서 그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모습이 매우 강압적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서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다의 아버지는 아다에게 특히나 동생을 챙기는 걸 강조하는데 동생은 한창 학생 또래의 나이로 보이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고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며 아다도 그런 시기를 거쳐왔을 것임을 추측하게 만든다. 아다가 아프게 된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관객은 이런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이상하다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단 하나 느껴지는 건 모두의 행동에 악의는 없다는 것이다.
영화 안에서 아다가 겪은 일은 직접적으로 칭해지지 않고 아다가 인질 사건을 겪었다는 정도로만 묘사되는데 이 영화는 베슬란 초등학교 인질 사건(2004)을 겪은 후 북오세티야의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베슬란 초등학교 인질 사건 당시 체첸 반군은 베슬란 초등학교에 무장 침입해 1000명 이상의 인질극을 벌였고, 체첸 반군과 러시아군 간의 총격전으로 330여 명이 사망한 러시아를 비롯해 세계 최악의 인질극으로 남은 사건 중 하나다. 아다가 어떤 상황에서 이 인질극에 처하게 됐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아다가 거의 성인이 다 됐다는 점과 배의 아문 상처는 사건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른다 해도 비극적 사건은 그것을 겪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아다의 마을에는 사건 이후 폐허와 불안의 정서를 깊게 깔려있다. 아다 아버지가 친구와 나누는 대화에서 친구의 결국엔 다들 고향으로 돌아온다며 아킴이 다시 고향으로 올 것이라는 말은 그 불안감이 아다 아버지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아다 아버지는 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끔찍이 여기는 아버지로 인정되고, 그런 아버지의 곁을 지키는 아다와 다코도 효심 있는 아이들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비극을 겪었다 해도, 어떤 이유로든 아다 아버지의 아다에 대한 억압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아다의 아버지는 아다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아다의 여권을 숨기고, 집 문을 걸어 잠갔다. 아다가 도망치는 날에는 어김없이 주변에 수소문해 그를 다시 찾아와 곁에 뒀다. 수술로 호전될 가능성이 있는지는 모르나 병원에 아다의 병에 대해 진단받으러 가지도 않는다. 결국 아다 아버지의 행동은 일종의 방치다. 아버지의 억압에 누구의 도움 없이는 도망칠 수 없었던 아다는 오빠 아킴이 옴으로써 다시 집을 떠나는 꿈을 꾼다.
결국 아다는 도망치려는 자신에 대한 충격으로 쓰러진 아빠를 그냥 두고 떠나려고까지 하게 되는데 결국엔 오빠의 도움으로 구조되긴 하지만, 아버지는 후유증으로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이제 아버지가 말을 할 수 없으니 자신이 말할 수 있게 됐다며 소리치는 아다는 울분에 차있다. 자신이 더이상 억압할 힘이 없자 취하는 행동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아다 아버지는 결국 아다에게 여권을 내미는데, 그런 아버지를 아다가 껴안고 그 상태에서 경련이 와 그대로 굳는 아버지의 모습은 가부장제 억압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의미로도 다가오는 지점이 있다.그럼에도 아다는 자신의 마을을, 아버지를 벗어난다. 아킴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두 사람을 결혼 행렬이 뒤따르면서 영화의 카메라는 그 일행이 들고 있는 캠코더로 넘어가 거친 핸드헬드 촬영으로 바뀐다. 두 사람의 뒷모습이 흔들리며 카메라에 찍히고, 아다의 여권과 기저귀가 든 가방은 한쪽 끈이 떨어져 있다. 떨어진 끈을 잡고 있던 아다는 이내 그 끈마저 놓아 버리고, 가방은 도로에 뒹굴며 멀어진다. 내내 카메라의 시선에 머물러있던 아다는 그렇게 완전히 해방된다.
아다의 모든 순간을 연기하는 밀라나 아구자로바는 처음인데도 그 연기가 엄청난데 영화의 결도, 연기의 결도 상당히 다르긴 하지만 <안티고네>의 나에마 리치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었다. <꼭 쥐었던 주먹 풀기>는 제74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Schedule
2022-08-26 13:00-14:37 <꼭 쥐었던 주먹 펴기>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3관
2022-08-31 13:30-15:07 <꼭 쥐었던 주먹 펴기>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4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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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5주차 신작 개봉 영화
2022년 3월 5주 개봉영화!
모비우스 Morbius , 2020
마블의 첫 번째 안티 히어로 무비
영화 "모비우스"는 희귀 혈액병을 앓는 생화학자 모비우스가 흡혈박쥐를 이용해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구원할 힘과 파괴할 본능을 가지게 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 입니다.
마블 원작 코믹스에서 '스파이더맨'과 맞선 적수 '마이클 모비우스' 박사를 주인공으로 한 첫 번째 실사 영화로,
마블 최강 안티 히어로의 탄생 스토리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대표 천의 얼굴로 꼽히는 배우 자레드 레토가 안티 히어로 '모비우스' 역을 맡아
또 한 번 파격 변신을 예고하면서 기대가 커지고 있는데요
흡혈박쥐를 이용해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초인적인 힘과 스피드를 얻을 뿐 아니라,
박쥐의 비행 능력과 주변의 음향 정보를 활용해 공간 내 물건들을 보는 반향 위치 측정 능력을 갖추게 되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히어로 능력을 선보인다고 합니다.
히어로의 경계가 무너지는 마블 첫번째 안티 히어로!
첫번째 추천영화 "모비우스" 입니다.예고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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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싱: 미제사건 MATIN CALME , Vanishing , 2022
역대급 글로벌 프로젝튼!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신원 미상의 변사체가 발견되고,
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 ‘진호’와 국제 법의학자 ‘알리스’의 공조 수사로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을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서스펜스 범죄 스릴러 입니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에 초청되어 한차례 관객들을 만난
"배니싱: 미제사건"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미제사건을 다룬 예측 불가 전개와 긴장감 넘치는 인물 간의 심리 묘사로
웰메이드 범죄 스릴러라는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는데요
칸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에 두 차례 노미네이트 되며 독보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은 드니 데르쿠르 감독,
그리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유연석, 예지원, 최무성, 박소이와 할리우드 대표 배우 올가 쿠릴렌코의 글로벌 연기 앙상블이
극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며 극강의 몰입감을 전할 것입니다.
한국 영화의 위상을 뒤이을 역대급 글로벌 프로젝트!
두번째 추천영화 "배니싱: 미제사건" 입니다.예고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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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컷 B Cut , 2022
참신하고 신박한 소재의 디지털 범죄 스릴러
영화 "B컷"은 일명 탐정까기로 한탕을 꿈꾸던 스마트폰 사설수리업자가
유력 대선후보의 비밀이 담긴 핸드폰을 손에 넣으면서 벌어지는 디지털 범죄 스릴러 입니다.
특히 아이돌 스타에서 연기자로 변신한 김동안과 17년차 배우 전세현, 연기파 배우 김병옥의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비롯해 스마트 기기를 다양하게 접하는 시대에
쉽게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스마트폰 소재와 정치공작까지 다양한 사건을 흥미롭게 펼쳐내면서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들 예정입니다.
'광대:소리꾼', ;연가시', ;돌려차기' 등 꾸준한 작품활동을 한 김동완의 달라진 못습을 보게될
세번째 추천영화 "B컷" 입니다.예고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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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 시그널
劇場版シグナル 長期未解決事件捜査班 , SIGNAL The Movie Cold Case Investigation Unit , 2021
한국 드라마 확장한 일본 영화 '극장판 시그널'
영화 ‘극장판 시그널’은 어느 날 고장 난 무전기로부터 시작된 간절한 신호로 연결된
2021년의 ‘사에구사 켄토’와 2009년 ‘오야마 타케시’가 과거와 현재를 뒤흔든 테러 조직과의 전쟁을 벌이는 ‘시그널’ 원작의 오리지널 스토리 영화입니다.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배우 사카구치 켄타로가 이번 작품에서 국내 ‘이제훈’ 배우의 역할을 맡았고,
일본 대표 연기파 배우 키타무라 카즈키와 키치세 미치코 탄탄한 배우들의 명연기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2016년을 강타한 김은희 작가의 ‘시그널’을 리메이크한 일본판 드라마 ‘시그널’은
2018년 일본에서 방영된 직후 ‘원작 팬들이 인정한 리메이크작’이라는 극찬과 함께 뜨거운 주목을 받았는데요
기존 원작에서 더욱 확장된 세계관을 구연한 오리지널 스토리로 더욱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에 이어 일본 극장판 시그널까지 확장된
네번째 추천영화 "극장판 시그널" 입니다.예고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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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렐 마더스 Madres paralelas , 2021
내 아이를 낳은 그녀에게 이끌리기 시작했다
영화 "패러렐 마더스"는 같은 날 아이를 낳은 두 여자 야니스와 아나 사이의 사랑과 배신, 진실과 거짓을 그린 멜로 스릴러로,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귀향' 등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페넬로페 크루즈 조합이 만들어낸 레전드 걸작의 계보를 이을 작품인데요
여성들의 연대와 모성에 대한 이야기는 관객들을 또 한번 매혹시킬 예정입니다.
홀로 출산을 준비 중인 사진작가 야니스는 같은 병실에서 어린 산모 아나를 만나게 되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딸을 낳은 두 사람은 짧지만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하지만 야니스와 아나의 딸이 뒤바뀌게되고 야니스는 그 사실을 알게 되지만,진실을 알리지 못한 채 아나와 점점 더 가까워져만 가게 되죠
운명이 만든 평행선 위, 두 여자의 비밀스릴 넘치는 스토리 끝에 따뜻한 감동과 전율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페넬로페 크루즈 조합이 만들어낸 레전드 걸작!
다섯번째 추천영화 "패러럴 마더스" 입니다.예고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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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인지 공감되는 극한의 광기
경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소노 시온 감독이 이렇게 미친 감독인진 몰랐다. 필모그래피를 본 뒤에도 이런 느낌이 들었지만,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사랑 없는 숲>을 보고 이 느낌에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것 하나 안 미친 게 없다. 영화의 모티브인 키타큐슈 연쇄 살인사건부터 그렇다. 이 사건은 타인을 시켜서 자행했던 살인과 시체를 분해해서 인적이 드문 곳에 버리는 잔혹한 시체 처리법으로 이름을 날린 적이 있었다. 얼마나 잔혹했던지 보도도 금지되었을 정도다. <사랑 없는 숲>은 이 범죄 행각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그 탓에 불쾌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폭발한다. 그것들이 극한의 광기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럼에도 <사랑 없는 숲>은 혐오감 대신 그것들을 공감하게 되는 신기하고 요상한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의 이야기는 무라타 조(시이나 킷페이)가 레스토랑에서 X표가 잔뜩 쳐진 여학교 앨범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때 남자는 직원에게 살인을 할 때의 기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침 그 때 TV에서는 어떤 숲에서 자행되었던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편 도쿄로 상경한 신(마츠시마 신노스케)에게 영화를 찍어 성공을 노리는 몇몇 청년들이 접근한다. 마침 신이 여자 경험이 없다는 걸 안 그들은 타에코(히나미 쿄코)를 통해 미츠코(카미타키 에리)를 소개 받는다. 그런데 그녀가 무라타와 사귄다는 사실을 안 미츠코는 무라타를 경계하라고 말하고, 친구들과 함께 무라타의 악행을 폭로하는 영화를 찍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무라타와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실화대로 무라타에게 빠져들고 점점 잔혹하게 변하고 만다.
왜 이들은 이렇게 바뀌었는가. 단지 무라타의 사기적인 말발과 잔혹한 처사만으로는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낼 수 없었다. 대신 이들에게는 무라타를 믿을 수밖에 없을 만큼 심리적으로 몰려 있는 모습, 아니면 그 잔혹성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노리려 했던 모습이 혼재되어 있다. 이 모습을 통해 무라타에게 빠져든 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미츠코는 억압된 가정 환경 속에서 자라왔고, 자신의 여학교에서 사랑해왔던 여자를 사고로 잃어버린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무라타를 이용하려는 계획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게 결말에서 밝혀진다. 무라타를 소재로 영화를 제작하려 하다가 무라타의 덫에 걸린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성공에 목마른 그들에게 무라타는 매력적인 피사체였을 테니까.
<사랑 없는 숲>에 짙게 드리워진 극한의 광기를 들춰보면 이처럼 일그러진 믿음이 근원으로 자리잡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1차적으로는 잘못된 믿음의 근원인 무라타에 대해 책임을 돌린다. 그러나 그와 함께 무라타에 대한 성찰 없이 그 표면적인 모습에 동조하는 사람들에 대해 지적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이상한 착각에 빠져 살았던 것이다. 미츠코가 여학교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 로미오 역할을 했었던 여학생이 자신을 사랑했다고 믿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영화 내내. 그 잘못된 믿음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죽게 만드는 역사를 누누이 만든 점은 더 지적할 필요도 없으리라. 결국 내가 <사랑 없는 숲>에 공감한 이유는 이 속의 광기가 <서스페리아>처럼 현실 속의 광기를 과장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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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자아를 남성성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전통 서부극과 현대 서부극, 카우보이의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났는지에 관하여
권총을 찬 채 말을 타고 드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소를 지키는 카우보이란 직업의 독특한 캐릭터성은 영화의 주인공으로 쓰이기에 적합합니다. 전통 서부극을 비롯해 현대 또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본질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복수하는, 전통 서부극과 같은 골자를 가진 최근의 영화까지 카우보이는 스테레오타입화되어 수많은 영화에 등장했습니다. 재밌는 부분은 개척시대 혹은 그와 가까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최근에 제작된 현대 서부극의 카우보이들은 전통 서부극의 카우보이가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타입의 일부 특징들을 비틀어서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각 영화가 가진 카우보이의 특징은 무엇인지, 그로 인해 그 영화만이 가진 특별함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는 192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당연하게 카우보이가 다수 등장하는 서부극 장르의 영화입니다. 얼핏 보면 그들은 전통 서부극 카우보이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가진 듯한 느낌입니다. 카우보이 하면 바로 떠오르는 외양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남성우월적 마초이즘·인종차별 마인드가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게 되면 <파워 오브 도그>에 등장하는 필 버뱅크로 대표되는 카우보이 또한 숨겨져 있던 비틀린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이 영화는 현대 서부극의 범주에 속하는 영화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 영화에서는 총을 사용한 액션은 찾아보기 힘든 대신, 대화와 분위기를 통해 등장인물의 심리를 숨기거나 파헤치는 데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남성성을 중시하고 강조하면서 여성스럽고 섬세한 피터를 멸시하던 필은 역설적이게도 남성성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동성애자임을 여러 메타포를 통해 은연중에, 또는 직설적으로 드러냅니다. 과거 자신의 스승이었던 브롱코 헨리의 안장을 쓰다듬는 행위는 마치 애인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밴조를 음정과 박자에 맞춰 섬세하게 연주하는 모습, 카우보이 무리와 동떨어져 홀로 멱을 감고 스승의 손수건으로 자위를 하며, 남성의 나체 사진이 담긴 잡지를 비밀 공간에 숨겨놓는 등의 행위를 비춤으로써 말입니다. 마초적인 남성의 실체가 동성애자라는, 그 괴리감으로 인한 자기 파괴적인 면모를 보이는 캐릭터는 이제는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착실한 빌드업을 거쳐서 드러낸 클리셰는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파워 오브 도그>만이 가진 특별함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통 서부극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스테레오타입을 탈피한 현대 서부극 <파워 오브 도그>, 클리셰일지라도 착실한 빌드업은 영화를 풍부하게 만든다.
나의 유일한 영혼과 자아. 개에게 잡아먹혔느냐, 저항하였느냐
개의 세력으로 직역이 가능한 영화의 제목 <파워 오브 도그>는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성경의 시편 22편 20절로부터 유래했습니다. 왜 하필 개의 세력을 제목으로 설정하였을까? 이 구절은 자신의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게서 구해달라는, 자신의 영혼을 악(惡)에게의 굴복이라는 고난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럼 <파워 오브 도그>의 악은 무엇인가? 해당 시대의 사회가 남성들에게 요구하는 권위적이고 마초적인 남성성을 의미합니다. 영화에서 로즈와 피터에게 남성성을 내세우면서 가차없고 잔인하게 대하는 필을 보면 악을 대변하는 존재로 느껴질 법 합니다. 하지만 그는 섬세한 감수성과 높은 지능, 그리고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자아와 영혼을 악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하고 굴복하여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을 대변하게 된 나약하고 가여운 자일뿐입니다.
반면에 내성적인 성격에 가냘프고 유약해 보이는 외모, 그리고 생화로 착각할 만큼 종이로 섬세한 꽃을 만드는 등 영화 초반의 피터는 전반적으로 남성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는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토끼를 아무렇지 않게 해부하고 관찰하며, 고통받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통한 살인을 벌이기까지 합니다. 또한 다른 카우보이들은 발견하지 못하던 개의 형상을 피터는 발견함으로써 필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이를 통해 필은 황무지에서의 생존법을, 더 나아가 사랑을 배웠던 브롱코와의 관계처럼 피터와 그러한 사제지간 혹은 그 이상의 관계를 형성하고자 합니다. 피터는 그를 따르고 지식을 습득하려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카우보이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피터는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이란 개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의 유일한 것, 의사가 되고자 하는 자아와 영혼을 지켜내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둘 자체의 성격과 둘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고 은유하는 존재들 역시 영화 속에 치밀하게 숨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예 외에도 인상 깊은 메타포 하나를 소개해 보자면, 필과 피터가 같이 여행을 떠났을 때 토끼 한 마리를 쫓게 되었습니다. 나무 더미 아래에서 당당하다는 듯 꼼짝 않는 토끼는, 실은 꺼내고 보니 다리를 움직이기 힘든 부상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토끼에게서, 나무 더미와 같은 주변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상태에서는 마초적이고 당당하지만 주변 환경에서 꺼내어져 실체를 확인하였을 땐 상처 입은 나약한 존재에 불과한 필의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 그 토끼를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 준 피터는 필 또한 동일하게 구원과 안식을 주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처럼 <파워 오브 도그>는 수많은 장치들을 통해 둘과 둘 사이의 관계를 치밀하고 섬세하게 담아냈으며, 이 영화가 가진 특별함 중 하나입니다.
브롱코의 안장을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하게 대하던 필과, 필이 만든 밧줄을 장갑을 낀 채 침대 아래로 밀어 넣은 피터, 악의 대물림과 끊어냄.
영화를 흘러가게 만드는 힘, 연출·배우와 소리
난해 보일 법 한 영화의 초반부 흐름과 달리 <파워 오브 도그>의 스토리는 정말 단순합니다. 부유한 카우보이 형제·동생과 결혼하게 된 과부·소심하고 유약한 그녀의 아들·그리고 모자와 형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이 이 영화의 주된 골자입니다. 이 단순한 스토리를 특별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데에는 치밀한 플롯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치밀한 플롯은 누구에게서 탄생을 하였는가 하면 연출과 배우의 연기에서 탄생하였습니다. 분명히 태양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는 드넓은 황무지를 익스트림 롱 숏으로 비추고 있음에도 그 분위기는 마치 겨울처럼 싸늘하게 느껴집니다. 또는 등장인물을 비출 때 클로즈업을 통한 감정의 묘사와,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보는 듯한 위치의 카메라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한 가지 예로, 로즈가 형편없는 실력으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을 때, 2층에서 마치 그녀를 비웃는 듯 필은 동일한 곡을 밴조로 유창하게 연주합니다. 이때 위에서 내려다본 로즈는 한없이 작아 보이고, 아래에서 올려본 필은 한없이 커 보입니다. 위축된 로즈와 위압감 넘치는 필을 자연스럽고 탁월하게 묘사해 냈습니다.
아무리 감독이 연출을 뛰어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배우들이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그 영화는 불완전한 실패한 영화일 뿐입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진정으로 배우를 위한, 배우에 의한 영화입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커스틴 던스트, 코디 스밋 맥피, 그리고 제시 플레몬스는 감독의 의도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그대로, 혹은 더 특출나게 영화에 담아냈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야 두말할 것도 없으며, 그가 맡은 배역 중에서 감히 최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컴버배치의 포스에 전혀 밀리지 않고 동등하거나 오히려 후반부에서는 그를 잡아먹어 버린 코디 스밋 맥피는 새로운 배우의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시킬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또한 커스틴 던스트의 짓눌린 듯한 압박감과 공포로 인해 병들어가는 모습 또한 그녀 역시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인 캠피온의 소리를 활용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습니다. 필이 차고 있는 박차가 찰랑거리는 소리는 그의 성격과 맞물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그에게 압도되고 공포를 느끼도록 분위기를 전환시킵니다. 게다가,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들 역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피터가 미지의 공간인 산과 황무지를 처음 탐험할 때, 처음 발을 들이는 공간이 주는 긴장감을 OST가 묘사를 합니다. 전통적으로 휘몰아치는 듯한 긴장감을 조성함에 있어 바이올린이 주로 사용되기 마련이지만 그린우드는 호른 두 대와, 커다란 공간의 잔향을 활용하여 독특한 긴장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외에도 불협화음으로 이뤄진 날카로운 피아노 소리는 로즈가 위치해 있는 장소의 분위기와 그녀의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합니다.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영화와 잘 어울리는 '소리'까지, <파워 오브 도그>는 눈과 귀 모두에 강한 자극을 선사합니다.
단순한 스토리를 받쳐주는 치밀한 플롯, 그 플롯을 받쳐주는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그들을 한데 아울러 감싸고 있는 불편하지만 어울리는 소리까지.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한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자동차를 이용하는 동생 조지와 피터와 달리 필은 오직 말을 이용할 뿐입니다. 이를 통해 필과 피터의 관계를 과거에 안주해 있는 존재와 그로부터 벗어나 현재·더 나아가 미래를 향하는 대립되는 존재로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수많은 메타포와 상징이 산재해 있는 영화이지만 관객들이 그들을 찾아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보니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물론, 그것들을 발견해 내지 못하더라도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나고 훌륭한 심리 영화입니다. 다만, 서스펜스가 형성되는 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적지 않은 분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꼭 감상하기를 추천하는 영화, <파워 오브 도그>입니다.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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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직관하는남자 영직남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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