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2023-06-17 15:34:41
영화 클로즈
영화 <클로즈> 리뷰
#클로즈
감독_루카스 돈트,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목 끝까지 잠겨오던 서러움을 애써 삼키다 결국 터뜨리고야마는 울음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섞여있는가. 어느 날, 문득 닥쳐온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진작에야 꺼냈어야하는 말들은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덩어리가 되어 당사자의 가슴속에 침전해버린다.
감독은 “다정함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그 다정함의 상실이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10대 시절 꼭 붙어다니던 두 소년 레오와 레미. 둘은 점차 멀어지게 되고, 결국엔 어느 것 하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나이가 듦에 따라 잃게 되는 것, 잃어버리고야 마는 것. 레오와 레미의 우정이, 사랑이,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무너지는 과정이 마음 아팠다. 그 시절에 존재하던 다정함이 이제는 무형의 것이 되었기에. 레오가 꽃냄새 자욱한 벌판을 뛰어다니다가 뒤를 돌아봐도, 레미는 그곳에 없을 것이기에.
두 배우의 연기가 인상깊었던 영화. 눈빛에 담긴 섬세한 감정선이 탁월하다.
Relative contents
-
- 정착할 수 없을 만큼, 머물 수 없는 마음들.
- 존스 레이먼의 The Half Life 원작 소설인 영화 퍼스트 카우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으로 첫 장을 여는데,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 이 문장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만큼 영화가 끝나고 나서 다시 곱씹어볼 수 있다. 이토록 낯선 곳에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난 이들의 짧지만 긴 여정이 시작된다. 서부극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말, 카우 보이, 거친 모습들이 생각나지만 이 영화는 어딘가 좀 다른 모습들로 채워져 있다. 낯선 단어에서 오는 생생한 낯섦을 경험할 수 있는 영화 '퍼스트 카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려고 한다.다소 좁은 화면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배의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진다. 평온함으로 뒤덮인 곳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때의 흔적이 현재에 의해 조금씩 형체를 드러낸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사냥꾼들의 식량을 담당하는 쿠키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킹 루에게 옷과 술을 비롯한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쿠키와 킹 루는 시간이 지나 어느 마을에서 만나고 킹 루는 쿠키에게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술과 잠자리를 제공한다. 그렇게 두 번째 만남은 진지하게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었고 그들은 공동의 목표를 세운다. 그들이 세운 목표는 어느새 명확한 구상으로 이루어져 빵을 만들어 팔게 된다. 쿠키가 만든 빵은 마을 사람들이 줄을 설 만큼 굉장한 인기를 누리게 되어 팩터 대령도 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지면서 그들이 몰래 행했던 일들도 조금씩 불안해진다. 바로 이 마을의 최초이자 유일한 젖소에게서 몰래 짠 우유로 만든 것도 모자라 팩터 대령의 암소였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이들은 끊임없이 위기에 봉착하게 되지만 이 이야기의 화자는 이들에게 어떤 감정도 가지지 않고 반문하듯 자연을 제외하곤 누구도 정착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며 어떠한 결말을 쥐어준다. 그것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명확하지는 않다.백인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비주류인 데다가 소외된 두 사람이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몸을 이끌고 우정을 유지하리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다시 만나 그 자리에 계속 머문다. 낯선 곳에서 적응할 수 조차 없이 낯선 것들 중에서 가장 낯설지 않은 두 사람이 조우하는 순간은 참 짧고도 길었다. 앞과 뒤가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는 영화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 마련인데, 이 영화도 그러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할 수 조차 없이 낯선 것들과 정착할 수 없을 만큼이나 머물 수 없는 마음들이 마주하여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 귀결되게 한다. 처음에는 오해했고 두 번째는 진지했으며 세 번째는 들킬 위기에 처하면서도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 그 우정이 참으로 빛난다.
-
- 생의 마지막 일주일, 그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6★/10★
영화 〈더 웨일〉, 그중에서도 주연을 맡은 브렌든 프레이저를 향한 관심이 뜨겁다. 브렌든 프레이저는 1999년에 첫 개봉해 2008년까지 세 편이나 이어진 〈미이라〉 시리즈에서 주연을 맡으며 훤칠한 외모와 액션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액션신을 촬영하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이혼 후 거액의 위자료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 회장이었던 필립 버크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생긴 PTSD로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가 합성하여 제작한, 넋이 나간 표정과 충혈되고 눈물이 고인 눈의 그의 사진은 ‘모든 걸 포기한 남자’라는 이름의 밈으로 소비되기도 했다. 요컨대 브렌든 프레이저는 새로운 돌파, 즉 ‘구원’의 계기가 필요했다.
그런 그가 〈더 웨일〉에서 찰리 역을 맡았다. 찰리는 대학에서 에세이 과목을 지도하는 강사다. 그는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진행하는데 화면을 켠 학생들과 달리 홀로 카메라를 켜지 않는다. 찰리가 272킬로그램의 거구이기 때문이다. 살이 너무 많이 쪄서 보조 기구 없이는 걸을 수도 없는 찰리는 자신의 모습이 역겹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카메라가 고장 났다는 핑계로 강의 시간에 검은 화면만 띄워놓는다.
찰리와 그의 삶이 이렇게 망가진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결혼해 엘리라는 이름의 딸을 낳고 키우던 중 딸이 여덟 살이 되던 해에 가족을 떠났다. 동성 제자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딸 역시 사랑했지만 그 당시의 찰리에게는 연인과의 사랑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모든 걸 버리고 선택한 애인은 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이유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찰리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죄책감, 불안, 수치, 좌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찰리는 이를 달래기 위해 미친 듯이 먹었다. 영화에는 섭식 장애로서의 폭식증과 그 위태로운 과정‧결과를 적확하게 포착한 장면이 종종 나온다. 폭식할수록 몸 상태는 안 좋아지고, 그러면 폭식을 초래한 부정적인 감정은 더 증폭된다. 이는 또다시 폭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찰리는 이 악순환을 멈출 수 없다. 그에게 폭식은 당장에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은 괴로움을 즉각적으로 달래줄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찰리의 몸 상태는 일주일 정도밖에 버티지 못할 상태까지 악화된다. 찰리의 생애 마지막 일주일. 이는 그가 구원받을 마지막 기회다.
학교에서 낙제될 위기인 딸 엘리가 찾아오는 건 바로 이때다. 아빠인 찰리를 유독 잘 따랐던 그녀는 버림받았다는 상처로 괴로워했고, 지금은 엄마조차 ‘악’이라 부를 정도로 까칠하고 반항적인 청소년으로 자랐다. 찰리는 그런 엘리에게 손을 내민다. 과거의 잘못을 만회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지금 그가 사랑하는 딸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 찰리의 죽은 연인의 동생이자 물심양면으로 찰리를 돌보고 간호하는 리즈, 종말론과 구원의 메시지를 선교하는 청년 토마스의 서사가 더해진다. 찰리, 엘리, 리즈, 토마스는 모두 나름의 이유로 삶의 끝자락으로 내몰린 사람들, 즉 누구보다도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 곁에는 서로밖에 없다. 누구보다 많은 상처를 갖고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상태의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은 처지의 누군가를 구원하라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이 네 사람은 서로 간의 뒤얽힘에서 무언가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저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이처럼 〈더 웨일〉은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구원의 길을 집요하게 질문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에세이 강사인 찰리가 늘 강조하던 ‘진실성’에서 찾고자 한다. 그러나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아픔을 놀랍도록 섬세하고 강렬하게 풀어내던 영화는 구원의 내용에서는 그만큼의 성취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물론 구원의 문제에는 당연히 명확한 답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왜 구원이 어려운지, 무엇이 구원을 가로막는지를 질문할 수는 있다. 영화의 결말, 찰리는 끝내 구원에 도달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갈구한 구원이 과연 찰리와 그 주변인 모두를 보듬을 만큼, 찰리가 환희에 젖은 표정을 지을 만큼, 무엇보다 영화에서 찰리가 내내 강조한 ‘진실성’을 온전히 담아낼 만큼 설득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더 웨일〉은 감동적인 영화다. 생의 막다른 길에 몰려 절망하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환기하고, 그런 사람들끼리도 희망과 구원의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무엇보다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의 서사와 영화의 서사가 묘하게 포개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쩌면 위로와 희망의 불씨를 전했다는 것만으로 이미 구원은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
- 절대 고요를 찾는 남데브 아저씨(Namdev Bhau in Search of Silence/2018/인도, 우크라이나)
- (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
<그의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남데브 바우는 인도 남부의 허름한 서민 아파트에 산다. 식구는 남데브 부부, 장성한 딸, 그리고 그의 형 부부. 그의 형은 무엇엔가에 취해 살며 헛소리를 하고 아내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딸은 생각하는 것을 거의 모두 말로 쏟아내는 스타일. 그의 가정은 시끄럽고 산만하다.
좁아서 물건으로 가득한 아파트, 원색의 실내장식은 그가 느끼는 소음의 게이지를 높인다. 더워서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사정이니 집안이나 밖이나 소음의 차이가 별로 없다.
남데브는, 아마도 변호사로 보이는, 부유한 사내의 자가용 운전기사이다. 그의 고용주도 쉴새없이 말을 쏟아놓는 다변가.
그는 소음이 싫다. 그래서 침묵을 견지한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침묵으로 반응할 뿐.
어느날 월급을 두둑히 받은 남데브는 아내에게 봉급 전체를 넘겨주고 평소에 가고 싶어하던 티베트로 훌쩍 떠난다. 그의 목적지는 "침묵의 계곡".
그러나 그의 여정은 결코 고요하지 않다. 기차, 버스의 소음은 그렇다 하더라도 한적한 시골의 호텔에서조차 옆방의 투숙객 때문에 혼자 잠들 수 없는 형편에 놓인다.
차라리 노숙을 결심하는 남데브. 하지만 그것도 녹록하지 않다.
목적지를 향해 점점 북으로 향하다가 역시 혼자 여행 중인 열 두 살 소년 알리크를 만난다. 계속 남데브 곁을 따라붙는 소년 때문에 남데브는 골치가 아프다. 소년의 목적지는 "붉은 성"으로 "침묵의 계곡"에서 멀지 않은 곳.
알리크가 쉴새없이 조잘대며 남데브를 괴롭게 하지만 묘한 구석이 있는 알리크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마침내 다다른 "침묵의 계곡". 그곳은 이름난 관광지에 불과했다. 단체로 명소를 찾아온 학생들 때문에 남데브는 '고요'를 찾을 수 없었다. 화가 난 남데브에게 알리크는 그가 하고 있는 게임을 알려주며 "붉은 성"까지 같이 가자고 조른다. 소년은 그곳에서 부모와 만나기로 한 게임을 완수해야만 한다고 했다.
한편 TV뉴스로 우연히 알리크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남데브는 차마 어려움에 처한 어린 소년을 혼자 가게 할 수 없어 동행하기로 한다. 알리크의 비극이 너무 안쓰러워 "붉은 성"에 이른 남데브는 자기와 함께 살지 않겠느냐고 묻지만 알리크는 게임을 마쳐야 한다며 이별을 고하고 남데브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한다.
<절대 고요를 찾는 남데브 아저씨>는 인도를 배경으로 하여 우크라이나 출신 감독이 만든 영화이다. 도입부에서 주인공이 소음에 반응하는 표정 묘사는 유머러스하다. 남데브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하는 소음은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가 양미간을 찌푸리는 소음의 세계에 관객들도 같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다 보면 영화는 어느새 중반부에 이르러 있다.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인도 북부의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눈을 시원하게 한다. 인적드문 숲에서 가방을 베고 눕는 남데브가 부러워질 지경이다. 하지만 후반부에 '명예살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부터 영화는 유머와 여유에서 멀어지고 슬픈 기운에 잠긴다.
언젠가 "명예살인"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가운데 아들 알리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게임을 만들고 메뉴얼을 작성한 알리크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간에게 신분의 차이를 규정한 어리석음, 그 차이를 지속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살인. 그래서 부모 없는 인생을 살게 되고 만 어린 소년.
시끄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고요'를 찾아 떠났던 남데브는 자기 옆을 따라다니며 쉴새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알리크를 불교사원("붉은 성"은 절이었다.)에 남겨두고 오며 비로소 한없는 적막감을 느끼게 되지 않았을까.
남데르의 소원은 그의 욕망에 갇혀있을 때 이루어지지 않고 소년의 슬픔에 공감하고 마음을 내주었을 때에야 성취되었다.
"명예살인"의 부당함을 조용히 고발하는 다르 가이 감독의 속삭임에 관객은 갑자기 섬뜩한 '절대 고요'를 느끼게 된다(©2020.최수형).
-
- 라스 폰 트리에, 어둠 속의 댄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들어가기에 앞서 1973년 발매된 Paul Simon의 싱글 <American Tune>이라는 노래를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가사를 읽어보면, 이 노래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으나 뼛속까지 지쳐버린 이민자들이 부르는 '미국식 한의 정서'를 담은 노래이다. 잉글랜드인들을 태운 메이플라워 호가 막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꿈과 이상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은 이미 아득한 옛날이 되었지만, 70년대에도 여전히 미국이라는 신화는 새롭게 쓰이고 있었다. 60년대 말에 소련보다 먼저 달에 도착하였으며,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다. 노래의 화자는, 모든 것은 진보하고 변화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이민자인 내 삶만은 나아지지 않는 것인지, 이 노동은 죽을 때까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인지를 묻는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메이플라워 이래 아메리칸 드림을 위한 여행은 계속된다. 이제는 오직 일신의 안식을 바라며 노래는 끝이 난다. 이 곡이 <마태 수난곡>의 코랄을 모티브로 했다는 것은 한참 뒤에 안 사실이다. 예수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수난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면, 이들은 무엇을 위해 그 수난을 감당해야 했던가?
Many's the time I've been mistaken
And many times confused
Yes, and I've often felt forsaken
And certainly misused
Oh, but I'm alright, I'm alright
I'm just weary to my bones
Still, you don't expect to be bright and bon vivant
So far away from home, so far away from home
And I don't know a soul who's not been battered
I don't have a friend who feels at ease
I don't know a dream that's not been shattered
Or driven to its knees
But it's alright, it's alright
For we lived so well so long
Still, when I think of the
Road we're traveling on
I wonder what's gone wrong
I can't help it, I wonder what has gone wrong
And I dreamed I was dying
I dreamed that my soul rose unexpectedly
And looking back down at me
Smiled reassuringly
And I dreamed I was flying
And high up above my eyes could clearly see
The Statue of Liberty
Sailing away to sea
And I dreamed I was flying
We come on the ship they call The Mayflower
We come on the ship that sailed the moon
We come in the age's most uncertain hours
And sing an American tune
Oh, and it's alright, it's alright, it's alright
You can't be forever blessed
Still, tomorrow's going to be another working day
And I'm trying to get some rest
That's all I'm trying to get some rest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American Tune>을 부르는 Slmon & Garfunkel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 지난 2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폰 트랩 대령 역을 맡았던 故 크리스토퍼 플러머 배우의 부음 소식을 듣고서, 부모님의 추억팔이용으로 내가 어릴 적에도 같이 DVD로 돌려 보았던 영화를 오랜만에 떠올렸다. 많은 이들이 위 영화에 대하여 세대를 아우르는 추억이자 향수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 속의 댄서>를 보았다. 12세 관람가, 아이슬란드 가수 비요크의 주연, 칸느 2관왕의 업적, 개봉 당시 평단의 극찬, 포스터에서 비요크의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표정 때문에 라스 폰 트리에 판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안이하게 관람을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영화는 악랄한 - 이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 의도를 가진 감독이 만든 2시간 20분짜리 악몽이었다. <American Tune>을 들었을 때, 희망도 절망도 아닌 <수난>의 정서를, 영화를 보면서 똑같이 느꼈다. 과거와 미래의 희망은 이 뮤지컬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을 얻기 위한 과정, 아주 지난하고 힘든 과정만이 영화 속에 담길 뿐이다.
소음은 리듬이 되고 음악이 된다
1964년 미국 워싱턴 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아들과 함께 이민을 떠나온 셀마(비요크)는 싱크대 공장에서 일하면서 자신과 같은 유전병을 가진 아들의 눈을 고치기 위한 수술비를 벌고 있다. 영화의 오프닝은 그녀가 일과 후에 뮤지컬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직장 동료 캐시(카트린느 드뇌브)도 참여하고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60년대를 풍미했던 <쉘부르의 우산>의 그 카트린느 드뇌브가 변변치 않은 무대에 억지로 올라가 있는 듯한 기묘한 모습, 일사불란한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지 못하고 홀로 겉도는 셀마의 모습을 모습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의심쩍다. 그녀의 뮤지컬 실력은 무대가 아니라 공장 소음 안에서 꾸는 몽상에서만 제대로 발휘된다. <라라랜드>에서 전주만 들어도 신이 나는 뮤지컬 ost에 맞추어 화려한 의상을 입은 이들이 LA 고속도로를 점거한 군무에 익숙했던 우리의 눈은, 미국 동부 공장 노동자들이 위험하고 비좁은 공장 안에서 추는 춤이 어색하기만 하다.
6mm 핸드헬드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셀마의 일상은 그녀가 보는 세상에 대한 어지럽고 둔탁한 인상을 담고자 노력하며, 마치 한 체코계 이민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사실성도 부여한다. 시력이 감퇴하는 대신에 예민해진 셀마의 청각은, 그녀의 삶이 매번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에 주변의 작은 소음을 감지한다. 그 작은 소음, 규칙적인 리듬으로부터 그녀의 노래는 다시 시작되고, 셀마는 혼자서 미치기 직전의 순간에 그 박자에서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뮤지컬 영화와 달리 관객은 뮤지컬 장면에 매번 온전히 몰입할 수가 없는데, 위험한 공장 프레스 앞에서 몽상을 하고 있는 셀마의 현실 모습이 점차 뮤지컬 장면 안으로 침투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같은 위태로운 현실의 침투를 통해 관객의 몰입을 일부러 훼방 놓으면서, 극이 후반부로 치달아 갈수록 뮤지컬이 나오는 몇 분을 시간이 멈춰버린 지옥처럼 길게 만들어 버리는 데 성공한다.
후반부로 치달을 수록 이 소음은 하나 둘 제거되면서 성스러운 종교 음악만이 남는다. 교도소 안에서 셀마는 '여긴 왜 이렇게 조용한가요?'라고 물으면서 절망한다. 이 때 비요크의 95년도 앨범 'It's so quiet'라는 노래와 뮤비가 즉각적으로 떠올랐는데, 설마 이것까지도 감독의 시니컬한 농담인 지를 의심했다. 이 곡의 뮤비안에서 비요크는 엠마 스톤 못지않게 화려한 원색 드레스를 입고서 뮤지컬의 여주인공처럼 '여긴 너무 조용해!'라고 주변을 조용히 시킨 다음, 가장 경쾌하고 자신 있게 꽥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셀마로 분한 그녀는 자신을 미치게 하는 고요를 쫓아내지 못한다. 겨우 통풍구로 들려오는 막연한 채플 소리에 의지하여 세상에서 가장 구슬픈 <My favorite things>를 부를 뿐이다.
비요크의 <It's so quite> 뮤직 비디오
유럽 감독이 만든 악몽 'American bad dream'
감독의 비행 공포증 때문에 이 영화가 유럽 여러 지역에서 촬영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배우 또한 데이비드 모스(빌 휴스턴 역)를 제외한 주요 캐릭터들은 모두 유럽 출신의 배우들이다. 우리는 미국 땅을 제대로 밟아본 적도 없는 덴마크 감독이 가상으로 구현해 낸 미국의 허상을 보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정치와 경제적 패권은 모두 이 신대륙으로 넘어갔고, 유럽에는 오직 과거에의 향수와 문화예술적 자부심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착란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지 못하며 무용한 지 영화는 낱낱이 그린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셀마는 동료들과 함께 <사운드 오브 뮤직>의 뮤지컬을 연습하고 있다. 마리아와 본 트랩가 아이들은 동화처럼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의 계곡과 산,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용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미라벨 궁전을 배경으로 이제 누구에게나 친숙한 '도레미송'을 부르고 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손을 거쳤으므로 티 없이 밝고, 아름답게 묘사된 장면들은 이제 관객을 골리는 악취미를 가진 유럽 감독에 의하여 생활에 찌든 유럽계 이민자들의 소일거리 취미로 축소, 재현된다.
셀마의 예술적 기질과 취미는 생산 활동에 저해되는 결격 사유가 되고, 아들의 병원비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돈을 보내고 있다는 변명은 '공산주의에서는 모든 것을 나누는군요'라는 조롱으로 돌아온다. 체코에서의 좋았던 시절을 발설하면 '그러면 체코로 돌아가지 왜 여기 있냐'는 핀잔이 돌아온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이웃의 얼굴을 한 미국 사회의 위선을 보여주는 것은 놀랍지도 않지만, 그는 2차 대전 후 더 나은 삶을 찾아서 맹목적으로 미국 땅을 밟은 유럽계 이민자들의 무력함,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백치미, 현실과 이상의 혼돈, 후세대를 위한 자발적이고 맹목적인 희생까지도 비틀어 보여준다.
빌과 제프, 체격이나 인상이 비슷한 마을의 두 남자가 셀마의 주위를 맴돈다. 빌은 그녀에게 트레일러를 내주고, 아들 진을 낮동안 돌봐 주는 친절하고 선한 이웃이고, 제프는 셀마에게 호감을 보이는 낯선 이다. 눈이 멀어가는 셀마에게는 이 둘의 의도와 진심을 분간할 능력이 없다. 결국 셀마는 태워주겠다는 제프의 호의를 거절하고 그녀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가까운 빌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결정적인 그녀의 선택, 빌을 의지하고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것을 계기로 그녀의 운명은 추락의 길을 걷는다.
영화가 빌을 묘사하는 방식은 흔한 미국 영화에서 악당을 그리는 방식과는 다르다. 그는 사악하기보다는 저열한 인물이다. 치밀하다기보다는 '눈 가리고 아웅'식의 거짓말로 둘러대고, 부인이 그의 거짓말을 믿도록 신파 장면을 연출하며, 경제적 정신적 파산으로 인해 죽음을 생각해왔으나 스스로 죽을 용기도 없어서 셀마에게 그 역할을 위임한다. 부인과 셀마뿐 아니라, 정의를 지키다 순국한 희생양으로 의로운 죽음을 맞았다고 스스로 믿을 만큼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비열한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셀마의 범죄 장면은, 살면서 웬만하면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을 만큼 지리멸렬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이 장면을 끔찍하도록 길게 느껴지게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뮤지컬 대사와 음악이다. 이제 그녀의 환상 속에서 강은 핏빛으로 흐르며, '날 용서할 수 있나요'라는 그녀의 노래는 부조리의 끝을 달린다.
수녀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수녀로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는 수녀에서 선생님으로, 다시 트랩 가 아이들의 어머니로 신분이 바뀐다. 마리아의 재기 발랄함과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는 수녀원, 트랩 대령과의 초반 대립을 거쳐, 그녀는 오직 자신의 노래로써 한 가족을 변화시킨다. 후에 그녀의 부재를 앓는 아이들을 위해 아내이자 자애로운 어머니로 돌아와 한 가족을 이루게 된다. 반면 <어둠 속의 댄서>의 셀마는 숙제하는데 이상한 질문만 하는 어머니, 아들의 생일에 자전거도 못 사주는 어머니, 범죄자 어머니, 아이가 찾아도 답이 없는 어머니이다. 셀마는 그녀의 유전병 때문에 서서히 시력이 감퇴하자 주인공 마리아 역에서 수녀 역의 조연으로 밀려난다. 이것은 어머니(Mother)에서 살인자(Murderer)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아이와 어떤 연결고리도 갖지 못하는 희생당하는 성 처녀와 같은 수녀(Nun, 아이에게는 무의미함 None)로 전락하는 것을 상징한다. 마리아의 선택은 수녀원의 자비로운 허락과 자유 의지에 따랐던 반면, 셀마에게는 점점 극단적이고 좁은 A/B 선택지만 주어질 뿐이다. 그녀를 진심을 다해 돕고자 하는 캐시마저 이 시스템에 동조하게 되는 것은 슬픈 역설이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셀마를 잔다르크에 자주 비견했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에 '진(Jean)'의 이름을 부르짖는 그녀는 브레송의 <잔다르크의 재판>에서 누구도 굽힐 수 없는 신념을 가졌던 잔(Jeanne)의 모습을 닮아있다. 그녀가 원하여 자유 의지로 신념의 전쟁을 했는지, 하늘에 있는 누군가 계시를 내렸는지를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녀는 잔 다르크처럼 의연한지를 묻는다면 역시 그렇지 않다. 그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전화기에 대고 화내며 울부짖고, 두려움과 고통 때문에 몸부림친다. 사실 그녀는 평범한 어머니, 선생님이자 아이들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되고 싶어 했던 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바라던 대로 운명의 되물림이 끊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며 결국 그녀는 자신이 치른 희생에 합당한 구원을 받았다는 듯 수그러든다.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관객 앞에서 그녀의 마지막 절규 혹은 노래가 울려 퍼지고, 한 번의 추락, 그리고 뮤지컬의 막이 드디어 닫힌다.
서론에서 언급했던 폴 사이먼의 <American Tune>에서 후렴구 가사를 다시 곱씹어 보았다. "I dreamed I was dying"에서 "And I dreamed I was flying"으로 변주, 높이 승화되는 구절은, 죽음을 통해 비로소 노동의 고통에서 해방된 육신을 말한다. 그리고 해방된 자는 이제 자유의 여신상이 바다로 항해하는 저 이상향의 풍경을 또렷하게 내려다볼 수 있다. 강탈당한 것을 지켜내고 본인 스스로까지 제물로 바치고 나서야 셀마는 시력을 되찾아 자신의 인생이 어떤 의미였는지 또렷하게 직시할 수 있다. 그렇게 더딘,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흘러가는 이 항해는 후대에게 전승된다.
And I dreamed I was flying
And high up above my eyes could clearly see
The Statue of Liberty
Sailing away to sea
And I dreamed I was flying마치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는 전쟁이 모든 것을 휩쓸기 직전에 사람들이 품었던 꿈과 희망, 가족의 결합을 노래하였다. 그리고 난민이 된 트랩 가 가족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서 알프스를 희망차게 넘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어린 시절 영화를 보면서 항상 이상했던 것은 알프스는 춥고 험할 텐데 이 사람들은 동네 뒷동산을 산보하듯 노래를 부르고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즉 영화는 불행했던 과거(트랩가 7남매 어머니의 죽음)와 다가올 불안한 미래(난민의 삶)는 잘라버린 채 온전하고 행복한 모습들만 보여준다. 마치 이에 대한 블랙 패러디처럼, <어둠 속의 댄서>는 셀마가 이민 전 행복했었던 체코에서의 과거를 보여주는 것도 생략하고 , 그리고 그녀의 희생을 통해 아들 진에게 주어진 좀 더 밝은 미래를 보여주지 않은 채 무대의 막을 내린다.
영화를 보면서 한부모, 장애인, 이민자, 블루칼라 노동자 등 모든 측면에서 의지할 곳 없는 사회 소수자인 한 여성을 여러 장치들을 가지고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가학성이 과연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실제로 영화는 많은 논란거리를 낳았고, 2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평단과 관객의 평가 또한 극명히 갈리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뮤지컬 장르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관객을 심적으로 괴롭히기 위한 인위적인 수단에 불과한 게 아니었나? 감독은 실제로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던 비요크를 비슷한 상황에 몰아넣어 과하게 몰입시킴으로써 훌륭한 연기가 아닌 그녀의 진실된 고통을 착취한 것이 아닌가?
사디스트적인 악취미를 가진 감독이 단지 본인의 유희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는 가정 하에, 이 씁쓸하고 어두운 뮤지컬 영화는 종교적인 희생과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20세기판 <마태 수난곡>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감독은 브로드웨이 뮤지컬보다는 차라리 <셀마 수난곡>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에 나무판자 위에 몸을 결박당하는 셀마의 모습을 보며 성경에 나오는 '그 존재'가 아닌 다른 누구를 떠올릴 수 있겠는가? 그녀는 20세기의 아메리칸 드림을 믿고 현실에서 구원받기 위한 모든 이민 세대들을 위해 스스로 희생당한 대속죄인이다. 따라서 그녀에게 가해지는 것들은 자식 세대가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필연적으로 감내해야 할 시련이기에, 그녀는 친구의 얼굴을 한 어떤 '사탄'의 시험과 유혹에도 이겨낸다. 이로써 그녀의 아들과 후손들은 광명의 한 자락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또 다른 결의 결핍과 상처를 떠안은 채 아메리칸 드림의 항해를 이어간다.
[Eurofilm 11. 덴마크, 독일,스웨덴, 네덜란드, 미국, 영국,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2021년 3월 6일 감상 / 2021년 3월 7일 씀
* 본 콘텐츠는 브런치 karenine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손 발만 멀쩡하면 살 수 있어
이 글은 영화 [미나리],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무 모양조차 다르고, 잔디조차 다르고.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처음 외국, 그러니까 영국 공항에 내렸을 때가 기억납니다.
마음 가득 꿈뿐만 아니라 걱정도 함께 쑤셔 넣는 바람에 두 마음이 싸우느라 울렁거리는 속을 끌어안고 싸늘한 공항에, 캐리어 두 개와 함께 한참 동안이나 덩그러니 서 있어야 했죠. 그 와중에도 영국의 스타벅스는 또 어떤 맛인가 싶어 들어간 공항 커피숍에서 인생의 흑 역사를 하나 더 얻고, (참고 1) 기가 많이 꺾인 상태에서 제 픽업 차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그때의 제 위치였습니다.
픽업하러 온 훈훈하게 생긴 청년은 제 짐을 트렁크에 싣고는 제게 웃으며 운전석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얘는 보자마자 차를 맡기네. 내일은 결혼하자 그러려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어째서) 영국은 운전석의 방향이 반대였죠.
난생처음으로 외국에 나와 연타로 흑역사들을 호로록 만든 제게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마저도 낯설기만 했습니다. 나무의 모습도, 공기도. 풍경도. 하다못해 젖소마저도 생긴 것이 달랐죠. 이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하는구나. 앞으로 최소한 6개월 동안은.이라는 생각에 울컥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꾹꾹 삼켰지만. 사람의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아 그저 콘크리트 덩어리 같기만 한 집에 도착한 순간 저는 결국 현관에서 무너져 내렸었습니다.
아마 한예리(모니카)가 남편이 약속했던 곳과 너무도 달랐던 집을 보았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을 겁니다. 울고 싶고 속상하고. 그런데도 아이들이 앞에서 보고 있으니 당장 싸울 수는 없는. 이 낯선 곳이 주는 생소함과 남편에 대한 서운함에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는 한예리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제게는 이미 여기서부터 내적 오열 포인트가 시작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처럼 집 떠나면 모든 것이 서러운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영화 [미나리]는 세밀하게, 그리고 잔잔하게 우리에게 풀어냅니다. 너무 사실적이라 아프기까지 해서 눈을 감고 싶어버리기까지 했던 이야기들을 담은 영화였습니다.
남이 보기엔 웃프기만 한 고단한 이민자들의 이야기
겪어 본 사람은 아는 디테일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사진 출처:구글 조선일보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울음을 터뜨렸던 장면은, 딸 한예리(모니카)에게 비닐봉지 한가득 싼 멸치와 고춧가루를 건네는 윤여정(순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요샌 밀폐용기도 좋은 게 참 많이 나오는데, 세련되지 못하게 꼬깃꼬깃한 하늘색 비닐봉지 한가득 담긴 그 보물들을 아무렇지 않게 모니카에게 내밀죠. 밀폐 용기 무게라도 더 줄여 조금이라도 더 담아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다섯 개의 비닐봉지로 한국에서 날아온 그 정성을 보며 오열했던 경험이 있으니까요. (참고 2)
가족 사이에 생긴 불화로 인해 아이들을 훈육하는 장면 역시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부부의 아이들은 이미 한국어보다도 영어에 익숙해 보이는데 제이콥(스티븐 연)은 회초리를 가지고 오라고 하죠. 이미 할머니에게서 한국 냄새가 난다며 자신과의 이질감이 얼마나 큰 지를 깨달은 어린 아들 데이빗이 아무 말 없이 회초리를 가지고 오는 장면에서 이들의 삶이 얼마나 보기 좋게 뒤죽박죽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이 가족의 모습이야말로 미국 사회에서 그들이 겨우겨우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엉망진창인 채로 사는 모습이 영화 내내 우리를 웃게도, 또 울게도 합니다.
농사, 수탉, 미나리.
포기하지 못하는 것, 쓸모 없어지지 않으려는 노력.
사진출처:SBS/수도꼭지 꽂을 때 진짜 어휴.
가장이지만 제이콥은 미련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농사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부인 모니카마저도 고개를 저을 정도죠. 그것이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온 소망이었다.라는 말로 치부하기엔 가장 소중한 가족마저도 뒷전으로 미루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어떤 배경 때문에 그런 집착을 보이는지도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직업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옵니다.
제이콥은 솜씨 좋고 잘 훈련된 병아리 (성별) 감별사입니다. 십 년이 넘게 일해온 커리어 덕에 버칸소에서도 칭찬받고, 아내에게도 전수한 듯 보입니다.
암탉은 알을 낳기 때문에 "상품 가치"가 있어 살려두지만, 수탉은 그렇지 않아 병아리인 상태에서 그대로 소각장으로 가게 됩니다. 그것을 십여 년이 넘게 보아온 제이콥은 양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익숙하죠. 하지만 어린 아들에겐 단지 저 연기가 무엇인지 물었을 뿐인데 쓸모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완벽히 이해될 리가 없죠 .그런 아들에게, 제이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쓸모 있는 수컷이어야 한다.
정확한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에게 실패한 모습만 보인, 쓸모없는 수탉 같기만 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아마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쓸모"에 대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또 다른 "쓸모"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농사의 성공 유무였겠죠.
그러나 이 영화가 제이콥의 농사에만 모든 초점을 맞췄다면 이 영화의 제목은 농사였거나 제이콥 포레스트였거나, 혹은 제이콥의 동물의 숲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미나리.이고 그것이 바로 당시에 제이콥이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자신들은 이미 충분히 미나리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죠.
물만 있으면 더러운 물이라도 상관없이 뿌리를 내리는 미나리. 씨가 있어도 자랄 수 있지만 튼튼한 줄기만 있어도 꺾어 심으면 잘 자라는 미나리.
반드시 농사를 성공해야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닌,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대도시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가 아니어도, 이미 충분히 살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을 영화의 마지막에서야 겨우 받아들인 제이콥은 아들과 함께 묵묵하게 미나리를 땁니다. 마치 자신들처럼 엉망진창인 채로 자라고 있지만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장하고 맛있어 보이는 미나리를 말입니다. 그 시간 동안 제이콥의 머릿속에서 " 쓸모"라는 단어가 재정비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엔딩 요정, 윤여정 배우
윤여정 유니버스의 시작
사진출처:상상대로 이뤄지는 꿈/ 이 장면이 오버랩 된다.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실 스티븐 연의 경우가 제일 걱정이었습니다. 한국어로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컸는데 오히려 영어를 어눌하게 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공을 들였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딜 가나 남들 걱정하지 말고 저만 잘 하면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소싯적에는 연기가 아닌 배우들의 허우대만 보았습니다. 그러니 잘생기고 신체 조건이 좋은 배우들을 보며 제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죠. 이젠 제 마음을 울리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에게 제 지갑과 시간을 갖다 바치고 있지만, 그런 관심조차 "이미 나이가 든" 배우들에게는 많이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윤여정 배우는 이 영화로 인해 내가 너무도 좁은 측면에서 배우들을 바라보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손자의 말처럼 할머니 같지 않은 철없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이 기분 좋은 불청객은 손자의 마음도 돌리고 우리의 마음마저도 쓸모를 찾느라 밖으로만 내도는 제이콥을 대신해 영화의 초점조차 가족으로 구심점을 잡아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이 배우의 또 다른 영화인 [지푸라기라고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까지 합니다. 불에 타버린 자신의 전부인 집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오열하는 아들 배성우 배우를 보며 치매 걸린 어머니인 윤여정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아들의 등을 쓰다듬습니다. 손발만 멀쩡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단다.라는 말을 무덤덤하게 읊조리면서요.
마치 [미나리] 영화의 포인트를 이미 대사로 다른 영화에서 한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꼴 보기 싫거나 거슬리지 않죠. 오히려 윤여정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단 한 번의 사고로 인해 다시 영화의 처음과 같은 사정으로 돌아가 버린 가족들을 조용히 쳐다보는 엄마 순자의 시선이기에 더더욱 말입니다.
마지막의 비참함을 영화는 끝까지 따라가며 비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침묵하고 툴툴 터는 또 다른 시작을 보여주죠. 아마 순자도 알았을 것입니다. 이 사고 때문에 아예 맨땅에서 다시 시작을 또 한 번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딸 부부가, 그리고 자신도 잘 해낼 것이란 걸 말입니다. 그들이 다시 겪을 고통에 가슴이 아파 흘린 눈물이라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그게 부모가 자식을 보며 갖는 마음일 테지요.
가족애 역시 이 영화의 다른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단지 작정한 것처럼 이야기 안에 집어넣으려고 하지 않죠. 그러나 결국 힘들 때 자신이 기대야 하는 것은 가족이고, 가장 힘들고 절체 절명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결국 생각나는 것이 가족이란 메시지를 참 절묘하게 집어넣었습니다.
함께 있으면 지옥 같을 수 있지만. 떨어져 있으면 살 수 없는 존재인 가족. 그들과 함께 질척이는 땅에서도 미나리처럼 꿋꿋하게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일상인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윤여정 배우의 여우조연상이 아깝지 않은 영화였어요.
참고 1
아이엘츠 점수가 each 7.0인가 했을 때여서 자신감이 눈썹까지 차 있을 때였음. 공항 스타벅스로 가서 Can I have iced americano, tall size with extra ice to stay, plz?라고 했고, OK라는 말을 들었음. 당당하게 영어 이름을 말하고 결제를 하려고 했는데 Black or white?라고 묻는 거임. 그래서 뭐래 아메리카노 달라고.라고 했더니 그래 인마 블랙이야 화이트야.라고 묻는 거임. 이걸 한 세 번 반복하고 나니 직원이 웃으며 설명해 줬음. 우리가 원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반드시 블랙이어야 함. white는 아님. 아니라고. 아니라고요.
참고 2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영국에서 한국으로 보내는 택배 비용이 그 당시에 1킬로다 1만 원이었음. 그래서 너무 비싸니 정말 없는 것들만 보내달라고 했었는데 엄마가 무게 줄인다고 모두 비닐봉지에 싸서 보내줬었음. 터질까 싶어 꽁꽁 묶은 비닐봉지에 싸인 고춧가루와 기타 등등을 보면서 울고 울고 또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이 글의 TMI]
1. 영화 보며 마시려고 커피를 샀는데 진짜 핵노맛이었음. 하. 내 돈
2. 휴지 가지고 가세요. 꽤 울 수 있어요.
3. 패딩 드디어 찾았음. 세탁소 주인분도 드디어 오셨군요.라고 하셔서 빵 터짐.
4. 오늘도 만오천보 걸었다. 이러다 지구 횡단할 기세.
5. 내일 첫 번째 팟캐 녹음할 듯.
-
- 끝없는 노력이 타고난 재능을 이길 수 있을까?
알렉스 돌은 대학 신입생이며 대통령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무척 잘한다. 그러나 그녀의 또 다른 관심사는 노비스 조정 훈련에 참가해서 대표팀으로 뛰어보는 것이다. 공부뿐만 아니라 로잉 머신으로 훈련을 지겹도록 연습한다. 그런 그녀에게는 남들이 자신을 인정해 줘야 하는 강박 때문인지 타고났다는 말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까지 공부든 조정 훈련이든 열심히 하는 알렉스 돌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점점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코치에게도 인정받자 자신을 더욱 단련하기 위해 노력한다. 경쟁자 친구에게 지지 않으려고 1등에 집착하는 알렉스 돌은 점점 자신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자신을 해치게 된다.
타고났다는 말을 듣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알렉스 돌'의 노력과
투쟁을 보여주는 영화!
남들보다 치열하게 노력해야 1등이 될 수 있다는 집착이 무엇을 힘들게 했나?
무언가에 푹 빠진 사람들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영화!
알렉스 돌은 자신에게 해를 입힐 정도로 공부와 조정 훈련을 열심히 한다. 그런 그녀에게 필요한 건 마음의 여유로움이었다.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고 친구들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노력은 노오력이 되어 자신을 힘들게 했다. 또한 1등이란 단어에 집착한 만큼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 하는 알렉스 돌은 점점 미쳐간다. 그렇기에 남들이 쉬고 있을 때 자신은 끊임없이 로잉 머신으로 신기록이 나올 때까지 연습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힘들어지는 건 자신뿐이었다. 코치가 강요하는 전문가가 되기 위한 1만 시간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 타고난 재능이 있는 친구들보다 더 잘하려고 했기에 아주 힘든 자신과의 싸움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안 좋아지고 미쳤다는 말을 듣는다.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압도하려면 필요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고 이런 알렉스 돌에게는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노력에 장점은 있었는데 자신이 계획한 목표를 향해 아주 열심히 노력하는 게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이 정한 목표를 이루려고 남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본 사람들의 끈기와 무서운 추진력을 보게 되었다. 모두 1등이 되기 힘들지만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정말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무언가에 푹 빠지면 정말 성공하는 것일까? 노력은 재능을 이길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점도 주는 영화 <더 노비스>였다.
-
- 하필 정체를 숨기고 조용히 지내던 동석이형을 건드린 깡패 ㅋㅋㅋ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에취한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allwey01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
- 루피형아와 함께 인생 영화 조 블랙의 사랑 리뷰하기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영화장수 루피형아 LuffyHyungA the Movie Vendor 님과 함께한 시간!
▼영화장수 루피형아 채널 놀러가기
https://www.youtube.com/c/%EB%A3%A8%E...
#영화장수루피형아 #루피형아 #영화장수 #루피 #조블랙의사랑 #영화블로거 #영화유튜버 #황보 #씨네마사지
[BGM 정보]
1
오정석-Bouble Gum
출처및저작권표시 - 공유마당, CC BY
링크: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
????? ???????? : https://youtu.be/jYDyPM5MT6s
2
오정석-Catcher
출처및저작권표시 - 공유마당, CC BY
링크: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
????? ???????? : https://youtu.be/jYDyPM5MT6s
3
김종형-chase 2(추격전 2)
출처 및 저작권표시 - 공유마당, CC BY
링크: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
????? ???????? : https://youtu.be/jYDyPM5MT6s
4
김재영-FUNNY
출처및저작권표시 - 공유마당, CC BY
링크: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
????? ???????? : https://youtu.be/jYDyPM5MT6s
5
오정석-Hello Strange
출처및저작권표시 - 공유마당, CC BY
링크: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
????? ???????? : https://youtu.be/jYDyPM5MT6s
6
오정석-Joker
출처및저작권표시 - 공유마당, CC BY
링크: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
????? ???????? : https://youtu.be/jYDyPM5MT6s
7
김재영-MY MISTAKE
출처및저작권표시 - 공유마당, CC BY
링크: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
????? ???????? : https://youtu.be/jYDyPM5MT6s
8
오정석-Ostrich
출처및저작권표시 - 공유마당, CC BY
링크: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
????? ???????? : https://youtu.be/jYDyPM5MT6s
9
김재영-PING PONG
출처 및 저작권표시 - 공유마당, CC BY
링크: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
????? ???????? : https://youtu.be/jYDyPM5MT6s
10
김재영-Put the Gun
출처 및 저작권표시 - 공유마당, CC BY
링크: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
????? ???????? : https://youtu.be/jYDyPM5MT6s
11
김재영-Think Of Konan(싱크 오브 코난)
출처및저작권표시 - 공유마당, CC BY
링크: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
????? ???????? : https://youtu.be/jYDyPM5MT6s
12
김재영-Traffic Jam
출처및저작권표시 - 공유마당, CC BY
링크: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
????? ???????? : https://youtu.be/jYDyPM5MT6s
13
김재영-Wear
출처및저작권표시 - 공유마당, CC BY
링크: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
????? ???????? : https://youtu.be/jYDyPM5MT6s
14
장현조-숨바꼭질
출처및저작권표시 - 공유마당, CC BY
링크: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
????? ???????? : https://youtu.be/jYDyPM5MT6s
-
- 넷플릭스 <오사카 나오미: 정상에 서서> 공식 예고편
테니스 챔피언이자 떠오르는 리더, 오사카 나오미.
다양한 문화유산을 타고난 그녀가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아 나간다.
스포츠 스타의 외면과 내면을 밀착해서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
- 영화 <탑> 메인 예고편
중년의 영화감독이 오랜만에 만난 그의 딸과 함께 인테리어 디자인하는 여자의 건물을 찾는다. 딸이 인테리어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 해서 그녀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디자이너는 직접 고친 그 4층 건물의 소유주이고, 자기가 어떻게 고쳤는지 보여주고 싶어 한 층씩 두 사람을 데리고 올라간다. 각층의 방을 다 열고 들어가 보는 세 사람. 그렇게 시작한 영화는 그리고 나서, 이제 다시 밑에서부터 한 층씩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