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2025-05-27 17:04:47
허상뿐인 이념이 인간의 얼굴을 할 때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고
사회학자 김동춘은 근대 국가를 사회 계약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전쟁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국경을 설정했고, 동시에 진행된 이념 전쟁은 국가의 발전 방향성을 결정했다. 한국은 미소 간의 이념 전쟁에 휘말린 대표적인 국가다. 1945년 세계 대전은 마침표를 찍었으나,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한반도의 분단은 시작되었다. 나아가 발생한 1950년 발생한 한국 전쟁은 분단 상황을 공고화시키기에 이른다. 이같은 분단의 역사는 이제 80년, 남한과 북한은 여전히 ‘군사 분계선’을 사이에 놓은 채 대치 중이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 관계에 있어 화합과 갈등이라는 모순적인 기능을 수행해 온 판문점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북한군 초소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 남북 관계에 위기를 초래하고, 이 사건에 중립국 감독 위원회가 개입하여 수사에 착수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피의자인 남한군 수혁과 유일하게 생존한 북한군 피해자 경필. 온전히 다른 주장을 펼치는 두 사람의 진술서를 기반으로 과거는 회상된다. 중립국 감독 위원회에서 파견된 소피는 그 빈틈을 파고드는 인물이다.
영화는 그녀에 의해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의 파편을 비추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시간으로 관객들을 데려다 놓는다. 갑자기 등장하는 외국인 관광객 무리. 군사분계선의 남한 측에서 외국인 모자가 바람에 의해 날아가고, 북측으로 날아간 모자는 덩그러니 비춰진다. 카메라가 틸트업하면 보여지는 것은 경필의 모습이고, 모자를 주워 건네는 그의 모습은 부감으로 포착된다. 판문점이라는 공간에서 남북한의 경계란 흐릿하기 그지없다.
곧바로 보여지는 장면은 남한 군사들이 훈련 중 실수로 북한의 영역을 침범하는 모습이다. 당황한 이들은 바로 퇴각하나, 잠시 무리와 떨어져 있던 수혁은 낙오된다. 엎친 데 덮친 격 지뢰를 밟은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북한군 경필과 진우는 우연히 그를 발견하고, 그의 생명을 구해준다. 고마운 마음에 편지와 녹음테이프를 교환하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북한군 초소에 방문하기에 이르는 수혁. 세 사람은 점차 가까워지며, 수혁은 후임인 성식을 북한군 초소에 초대하기까지 한다.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가는 이들. 이들은 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눈 것일까.
정해진 비극의 수순을 밟다

영화 속에서 총은 중요한 요소로 쓰인다. 수혁이 처음으로 북한군 초소를 찾은 날,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세 사람의 모습은 마치 러시안룰렛을 돌리는 순간처럼 연출된다. 세 사람의 중앙에서 원을 그리며 도는 카메라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낳는다. 서로를 도발하다 먼저 총을 드는 수혁. 세 사람의 장난은 금세 중단되나, 이는 미래의 불행을 알리는 씨앗이다. 시간이 흐르며 이들에게 총은 장난감으로 기능한다. 성식 또한 이들의 친구가 되며 네 사람은 총알로 공기 놀이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이들은 적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 성식은 경필과 진우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자신들을 월북시키려고 근무를 서는 ‘적공조’가 아닐까라는 의심을 수혁에게 표한다. 자신의 생명의 은인인 이들이 그럴 리 없다고 하지만, 그의 손은 북한군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데 쓰인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며 우정은 견고해진다. 하지만 유사 전쟁 상황에 놓인 남북 청년들의 우정이 영원할 리 만무하다. 마지막 인사를 위해 모인 네 사람의 모습은 또다시 러시안룰렛이 펼쳐지듯 연출된다. 수혁은 묻는다. “정말로 전쟁 나면 우리도 서로 쏴야 돼?”
다행히도 전쟁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북한군에게 네 사람의 관계가 발각되며, 이들의 관계는 위기에 처한다. 살기 위해 총을 드는 이들. 누구보다 깊은 우정을 나누던 이들은 결국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이들의 유한한 우정은 이렇게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그날, 판문점에는 비가 내렸다

영화의 말미, 사건의 진상에 도달해 가는 소피는 ‘인민군 장교의 딸’이라는 의혹을 받는다. 이념의 순수성을 의심당한 그녀는 중립국 감독 위원회의 직위를 잃고 만다. 그리고 판문점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수혁과 면담의 시간을 가지는 그녀. 두 사람은 흥미로운 대화를 나눈다. 이미 그녀의 소문을 들은 수혁에게 소피는 묻는다. “내가 인민군 장교의 딸이라는 얘기를 듣고 기분이 어떻던가요?” 수혁은 답한다.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수혁은 최소한 소피에게만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어차피 진실을 숨기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녀는 네 사람의 우정을 파악한 지 오래다. 그렇게 소피는 마지막으로 진실을 들려달라는 부탁을 한다. 수혁이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 즉 경필을 지켜주겠다는 것이 그녀의 조건이다. 그렇게 수혁의 입을 통해 네 사람의 깊은 우정과 비극은 전해진다. 소피는 경필에게도 마찬가지로 접근한 듯하다. 진실을 말하면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약속하에 두 사람이 전하는 각기 다른 진실을 듣는다. 일치하는 듯, 불일치하는 두 사람의 주장. 수혁은 진우를 쏜 것이 성식이라 주장했으나, 경필은 진우를 쏜 것이 수혁이라 말한다. 초소에서의 첫 만남에서 벌어진 러시안룰렛 속 수혁이 진우에게 가장 먼저 총구를 들이밀었던 복선은 이렇게 회수된다. 소피는 이를 전하며 누가 먼저 쏜 것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혁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회피해왔을 진실을 마주한 그는 자살을 선택한다. 군번줄과 함께 달고 다니던 경필이 해체해준 지뢰의 잔해 위로 붉게 흐르는 피. 북한을 적대시해야만 하는 남한의 군인으로서의 정체성, 인간 대 인간으로서 북한의 군사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만 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양립하지 못한 채 비극을 낳는다.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건넌 자는 안다. 수혁에게 더 이상 경필과 진우는 적이 아니다. 그렇게 ‘친구’가 된 이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결국 수혁을 죽인다.
총격 사건이 벌어진 날엔 판문점에는 비가 내렸다. 수혁이 죽음을 선택한 날에도 판문점에는 비가 내렸다. 고작 군사분계선상에서 동서 800m, 남북 400m로 구성된 정방형의 작은 공간. 이곳에서는 남과 북이 공존하며 대립한다. 이 멀고도 가까운 두 나라에서는 동시에 거센 장대비가 쏟아졌다.
빈껍데기에 불과한 이념 전쟁을 넘어서

결국 <공동경비구역 JSA>는 빈껍데기에 불과한 이념 전쟁 속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개인들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분단의 반세기 그 오욕과 고통의 세월을 뛰어넘”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이 작품 속에 특별한 이념이 어디에 존재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 어떤 이념이란 허상이며 이름 붙이기에 불과하다. 아(我)와 비아(非我), 즉 대립항에 불과한 것이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빈껍데기에 불과한 이념이다. 이들이 서로를 부르는 ‘빨갱이’라든지 ‘괴뢰군’이라든지 하는 호명들엔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념 전쟁은 ‘남북’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념 전쟁은 ‘남한’ 사회 내부에서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은 1980년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이들을 ‘빨갱이’로 매도한 역사를 지나왔다. 그러나 2020년대가 된 지금도 별다를 것 없다. 노동과 소수자 의제를 논하는 이들에게는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는 일은 이어지고 있다. 즉, 냉전 체제에 놓인 이 사회에서 아직도 ‘빨갱이’는 사어가 되지 못했고,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개봉 25주년이 된 이 작품이 현시대에 가지는 시사점은 단순히 통일에 대한 염원만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자국 내에서도 이념 전쟁이 팽배하는 시대에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제는 허상뿐인 이념을 넘어, 이념 너머의 얼굴을 봐야 할 때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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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초 블랙 미션'에 물 탄 영화
'젠틀맨'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감독 가이 리치가 또 하나의 '젠틀맨'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젠틀'한 나라 영국의 특수 부대가 실제로 실행했던 블랙 미션을 모티브로 하는데요.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윈스턴 처칠의 '언젠틀한 작전 명령'이 무엇이었는지, 영화를 통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언젠틀 오퍼레이션>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2025년 3월 19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언젠틀 오퍼레이션
The Ministry of Ungentlemanly Warfare
Summary
제2차 세계대전, 나치의 살상 무기 유보트를 막기 위해 ‘처칠’의 지휘 아래 최초의 비밀 특수 부대가 탄생한다. 통제 불능의 미친개, 지옥에서 돌아온 근육질 군인, 냉철한 폭발물 전문가, 암살이 주특기인 미인계 특수 요원까지··· 대장인 ‘거스 마치’를 필두로 막 나가는 그들이 뭉쳤다! 영국군에 잡히면 감옥에, 나치에게 잡히면 죽음뿐! 유보트를 막기 위한 거스 마치 일행의 ‘언젠틀’한 작전이 시작된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가이 리치
출연: 헨리 카빌, 앨런 리치슨 외
아무리 세계 최초 블랙 미션이라도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이 극비리에 실행했다는 포스트마스터 작전을 영화화했습니다. 포스트마스터 작전은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이 만든 특수 부대가 1942년 1월 실행에 옮긴 블랙 미션인데요. 정부에서조차 공식적인 허가를 내리지 않은 작전이었기에, 독일군은 물론이거니와 영국군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는 임무였지요. 2016년에 공개된 비밀문서를 통해 드러난 이 세계 최초의 블랙 미션은 탁월한 영화적 소재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구체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럴싸한 첩보물로 재탄생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의 아쉬운 점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첩보물의 껍데기는 필히 긴장감이어야 합니다. 핵심에 무엇을 담고 있든지 간에, 겉으로는 긴장감을 유발하는 구색을 갖추고 있어야 하지요. 첩보물로서 이 영화를 선택한 관객은 '블랙 요원들이 어떤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며 미션 임파서블을 파서블하게 하는가' 또는 '영국 총리가 자신의 자리를 내어놓고 명령할 정도로 위험한 이 임무가 얼마나 스펙타클한 전개 끝에 완수되는가'를 기대하게 됩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율을 느끼면서도 임무 완수를 응원하게 하는 바로 그 긴장감 말입니다.
하지만 평화의 뒷면에서 행해지는 '언젠틀한 작전 명령'에서 긴장감이나 흥미를 찾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신사의 나라' 영국이 비신사적으로 펼치는 작전답게 가차 없이 때려 부수고 죽이는 난장이 반복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적의 보급선을 막고 해양 패권의 균형을 되찾는 과정은 너무 순탄합니다. 한두 가지의 위기 상황이 발생하기는 하나, 특별한 고난 없이 얼렁뚱땅 타개해 버립니다. 긴장감과 흥미를 강화하는 갈등 요소가 조금 더 정교하고 세밀하게 그려졌다면 작품의 재미가 더 커졌겠지요. '세계 최초 블랙 미션'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갖다 썼는데도, 영화의 매력이 소재만 못해 진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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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일 수 있었던 캐릭터들
작전을 지휘하는 핵심 인물들의 매력이 도드라지지 않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배우 헨리 카빌이 연기한 '거스 마치 필립스'는 신사다운 무례함, 비신사적인 예의를 뽐내는 인물인데요. 캐릭터에게 부여되는 모순적인 성격은 인상 깊은 캐릭터를 만드는 장치이지만, 어쩐지 긍정적인 인상이 남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어쩌다 이런 광기 어린 젠틀맨이 되었는지, 그 서사가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일인을 향한 영국인의 분노 섞인 마음을 모든 행동의 동기로 보기에도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다른 캐릭터들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지옥에서 돌아온 근육질 군인, 냉철한 폭발물 전문가, 암살이 주특기인 미인계 특수 요원'들도 딱 시놉시스에 설명된 정도의 모습으로만 드러날 뿐, 각 캐릭터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요소는 없었습니다. 영화의 중점을 사건에 둘지, 캐릭터에 둘지의 기로에서 명확한 방향을 잡지 못한 것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중점을 캐릭터에 두고, '언젠틀한 작전 명령'을 수행하는 '언젠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그렸다면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았을까요?
잘 만든 영화는 내레이션이나 과거 회상 따위로 캐릭터의 서사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인물의 성격과 행동을 명료하게 설명하지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는 평소 좋아하지 않는 내레이션이나 과거 회상이 문득 그리워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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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았던 영화였습니다. 그런데도 한 가지 볼만한 것이 있다면, 앙상블로 등장하는 블랙 요원들이 휘황찬란 멋지다는 점이겠습니다.
One-Liner
매력적인 소재도 얼마든지 평범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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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왈로우 (Swallow, 2019) - '그녀가 피를 토해내며 삼켰던 것들'
스왈로우 (Swallow, 2019)
감독 :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
출연 : 헤일리 베넷, 오스틴 스토웰, 데니스 오헤어, 엘리자베스 마벨
‘그녀가 피를 토해내며 삼켰던 것들’
2020 CGV CAV 전을 통해 선공개 된 후, 최근 왓챠에 공개된 영화 <스왈로우>. 여름에 그렇게 봐야지 봐야지~ 했지만 상황과 우선순위에 밀려 결국 보지 못하고 넘겼던 작품이었는데, 드디어 왓챠에 공개되었다.
<스왈로우>의 장르는 스릴러로 분리되어 있다. 근데, 이 영화의 공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스릴러와는 조금 다르다. 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장면이 나오거나,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간혹 몸에 난 상처와 혈흔을 보여주긴 하지만 눈을 찡그릴 만큼 무서운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의 서스펜스는 밖으로 터져 나오는 피가 아닌, 억지로 삼키며 토해낸 몇 방울의 피로 만들어진다.
널찍하고 예쁜 집, 최연소 상무이사가 된 남편, 새로 잉태한 생명. 넉넉한 집안과 충분한 능력을 가진 남편 리처드를 만난 주인공 헌터는 이제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닌 꿈을 좇을 수 있는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남편이 출근한 후 커다란 집에 남겨진 그녀는 집안일을 하고, 남는 시간엔 푹신한 소파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드넓게 펼쳐진 숲과 맑은 하늘. 헌터는 그림을 그리다가 이내 북북 지워낸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터는 여유로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편이 출근한 사이 집안일을 하고, 남는 시간엔 삽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무엇보다 일을 하지 않고도 돈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일명 ‘사모님’의 삶인 것이다. 헌터도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입버릇처럼 말한다. 나는 운이 좋았고, 행복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가짜 행복은 천천히 헌터를 옥죄고 있었다. 그녀는 리처드와 결혼한 순간부터 남편의 가족들 덕에 행복해진 사람이 된다. 그래서 그들 앞에선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그저 습관처럼, 주문처럼 ”행복하다“고 말할 뿐이다. 그 외에 다른 말은 쓸모없는 말이다. 헌터는 서슬 퍼런 눈빛들 앞에서 새빨간 말들을 속으로 삼킨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그녀를 물들인다.
사회가 규정한 여성의 역할과 비밀을 숨기고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은 헌터를 더욱 강하게 비튼다. 이러한 강박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헌터의 행동을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만큼 이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아플지도 모르겠다.
스왈로우 시놉시스
완벽한 남편과 함께 그림 같은 집에 사는 사랑스러운 아내 ‘헌터’. 그러던 그녀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먹어서는 안 될 금지된 것을 삼키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되는데…
"우리 아들 만나서 신세폈네"
회사를 운영하는 시부모님과 최연소 상무이사가 된 남편 리처드. 시부모님이 사준 집엔 넓은 마당과 수영장, 아름다운 풍경, 고급 가구가 그득하다. 누가 봐도 부잣집이다. 헌터는 그 집안의 며느리가 된다. 리처드와 결혼하기 전 욕실용품을 판매하던 그녀는 이제 진짜 꿈인 삽화가가 되기 위해 그림을 그릴 시간도 얻었고,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리처드가 출근하고 나면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고, 휴대폰 게임을 한다. 그리고 리처드가 오기 전에 저녁을 준비하고 그와 행복한 저녁식사를 하면 된다. 여유로운 일상이다. 하지만 헌터의 마음은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헌터를 집으로 부른 시어머니는 헌터에게 "우리 아들 만나서 신세폈네"라고 말한다.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헌터는 리처드를 만나면서 자유시간을 얻었고, 든든한 경제적 지원군이 생겼으니 말이다. 헌터는 습관처럼 나는 행복하고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리처드의 가족을 만나며 행복을 얻었다고 말이다. 근데, 이 행복은 그들과 진정한 가족이 되었을 때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헌터는 리처드의 가족이 아니다. 이건 영화를 오래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리처드의 상무이사 취임을 축하하는 저녁 자리, 리처드는 헌터를 언급하며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아내라고 칭하고, 시어머니는 임신을 한 헌터에게 기쁨을 얻는 재능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을 선물한다. 리처드 가족에게 헌터는 헌신적인 아내이자 타인(리처드 가족)에게서 행복을 얻어내는 재능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리처드는 헌터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넥타이를 잘못 다리는 사소한 실수에 화를 내고, 정성껏 차린 저녁 식탁 앞에서 헌터가 아닌 휴대폰을 바라본다. 헌터의 임신을 축하하는 저녁 자리에서조차 그녀는 완전히 배제된다. 인사치레처럼 나누는 아기에 대한 몇 마디 대화가 지나가고, 리처드의 부탁으로 시작된 헌터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잘려버린다. 리처드 가족에겐 헌터의 말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저 헌신적이고 남편이 좋아하는 긴 머리를 가져야 하는 아내일 뿐이다.
"매일 새로운 것을 시도해라"
임신을 했지만 행복하지만은 않다. 헌터의 시간은 매일 의미 없이 흘러간다. 아내로서의 의미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녀는 시어머니가 준 '기쁨을 얻는 재능'을 읽는다. 그 책엔 기쁨을 얻기 위해선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헌터는 책을 읽고 구슬을 먹는다. 그리고 내가 삼켰던 그 동그랗고 매끈한 것이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온 걸 본 순간, 기쁨을 느낀다.
헌터의 이식증 증상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매끈한 구슬을 시작으로 뾰족한 핀, 배터리, 매트리스 충전재, 못, 반지, 여러 금속들. 몸의 작은 곳들에서 피가 비치고 고통이 찾아오지만, 헌터는 작은 물건들을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을 느끼며 고통을 잊는다.
"내가 괴물이라 미안해"
헌터는 리처드에게 자신이 괴물이라 미안하다고 말한다. 헌터에게 직접적으로 괴물이라 칭한 사람은 없었지만 헌터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헌터를 괴물이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헌터는 강간 피해자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아이다. 어머니는 새로운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했고, 헌터에겐 배다른 동생들이 있다. 상담사 앨리스는 헌터에게 여러 번 어머니와 가족에 대해 묻지만 헌터는 "평범한 가족이다"라는 말만 반복한다. 그러다 홧김에 뱉어버린 어머니와 문제가 있다는 말을 시작으로 헌터는 앨리스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리처드도 몰랐던 깊은 상처와 고민들. 괴물 같던 범죄자 아버지 아래서 태어난 자신. 헌터는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했다고 말하지만, 가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녀의 눈빛엔 생기가 없다.
범죄로 인해 태어난 아이. 세상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헌터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리처드를 만나 드디어 행복한 삶을 살아보나 했는데, 헌터는 여전히 행복할 수 없다. 무신경한 남편과 며느리를 아이의 엄마 정도로만 생각하는 시부모님. 리처드의 아버지는 임신했다는 헌터를 만나자마자 "미래의 CEO가 여기 있다"라고 말할 뿐, 헌터에 대한 축하와 존중의 말은 하지 않는다.
헌터는 여전히 외로운 사람이다. 리처드 가족 사이에 불편하게 끼인 듯 앉아있는 그녀는 온전하고 따듯한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헌터는 그저 안정적인 삶 속에서 행복하다고 반복해 말하고 있는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일 뿐이었다. 영화 속에서 헌터에게 위로가 되는 인물은 남편도 그의 부모님도, 헌터의 어머니도 아닌, 헌터와 똑같이 외로움을 느끼는 인물들뿐이다.
리처드가 야밤에 직장 동료들을 데리고 집에 왔던 날. 혈흔을 지우는 헌터를 발견한 건 리처드가 아닌, 그의 직장동료 에런이었다. 에런은 헌터에게 외로우니 포옹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헌터는 에런을 안아주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살짝 묻어본다. 포옹을 끝내고 헌터는 에런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어째 부탁한 사람과 부탁을 들어준 사람의 입장이 바뀐 것 같기도 하지만.. 아마 헌터가 외롭다고 말하는 에런을 안아주는 순간, 외면하고 있던 자신의 외로움을 다시 느끼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헌터에게 위로가 된 또 다른 사람은 간병인 루아이다. 헌터의 이식증을 알게 된 리처드 가족은 아직 몸이 안 좋은 헌터를 위해 고용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녀를 감시하기 위해 간병인을 루아이를 집에 상주시킨다. 루아이는 고용인 리처드를 위해 헌터를 감시하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헌터를 보며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그는 침대 밑으로 들어간 헌터의 옆에 따라 들어가 "여긴 안전해요"라고 말하며 그녀의 어깨를 천천히 토닥인다. 그리고 헌터가 정신병원에 입소하기로 한 날, 헌터의 도망을 돕는다.
이 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헌터에게 진실된 위로와 사랑을 전하지 않는다. 리처드와 가족들은 리처드의 평범한 삶을 위해 헌터의 이식증을 고치려 했고, 리처드의 직장동료는 이식증 사실을 안다며 형식적인 응원과 위로를 전할 뿐이다. 상담을 진행했던 앨리스는 트라우마를 치료할 열쇠가 될 수도 있다며 헌터의 과거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관심 있는 척하지만 상담 시간 끝을 알리는 타이머가 울리자마자 상담을 정리해버린다. 집을 뛰쳐나와 갈 곳이 없어진 헌터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헌터의 어머니는 언제 와도 반갑다며 반겨주는듯하더니, 동생이 아이를 낳아야 해서 방이 없다며 딸의 방문을 거절한다.
"내가 당신을 닮았나요?"
헌터가 갈 곳은 이제 한 곳뿐이다. 남편도, 시부모님도, 어머니도 나를 외면했으니 남은 건 아버지의 집뿐이다. 어머니를 강간했던 남자이자 아버지인 윌리엄 어윈. 헌터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마주한다. 헌터는 묻는다. 내가 당신과 닮았냐고. 어윈은 답한다. 닮지 않은 것 같다고, 당신(헌터)은 내가 아니라고.
"당신은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아무 잘못도 없잖아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헌터는 이 말을 듣고 싶어 어윈의 집에 찾아온 것이다. 범죄에 의해 태어난 존재. 그런 존재를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헌터는 자연스레 자신의 출생 비화를 숨겼고, 그렇게 평생 모든 것을 숨기며 살아왔다. 헌터는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한마디를 듣기 전까지, 범죄자 아버지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원망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신문에 난 아버지의 사진을 오려 지갑 속에 넣어둔 그녀는 그렇게 깊고 가깝게 자신의 존재를 미워하고 있었다.
"내가 있어서 행복해?"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한 아내로, 상류층 집안을 만나 자유로워진 며느리로, 어머니에게 사랑받으며 자란 딸로. 헌터는 리처드의 행복을 위해 살았고, 남편의 집안에 의해 행복해진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리처드의 집안은 그런 헌터의 존재를 괄시한다. 그들에게 헌터는 잘하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내 애를 가진 여자였다. 헌터는 항상 불안과 공허함에 떨고 있었다. 반복해서 내가 있어 행복하냐고 묻고,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니냐며 묻는다. 리처드는 당연하다는 듯 "넌 잘못하려 해도 못할 거야"라고 답한다.
이식증은 보통 만 1세에서 2세 사이에 나타난다고 한다. 흔히 아동들이 많이 겪는다고 하며 빈곤이나 아동학대, 가족의 혼란과 같은 상처들이 이 같은 증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헌터는 위와 같은 상처들을 모두 겪은 어른이다. 그녀는 이식증 증세를 처음 겪는다고 말한다. 왜 어릴 적이 아닌 지금 이 증상이 나타난 걸까?
그건 아마도 헌터가 지금껏 자신의 모든 상처를 외면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그걸 인식할 여유조차 없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리처드와의 결혼, 시부모님의 압박, 그리고 임신 등 인생의 커다란 변화를 겪으며 지금껏 덮어두었던 상처가 곪기 시작한 건 아니었을까. 유년시절에 생긴 상처는 사라진 것이 아닌, 그 자리에 그대로 덮여있었을 뿐이었다.
결혼을 하고 리처드 가족들 사이에서 살아가며 헌터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저녁식사를 하며 남편에게 말을 꺼내볼까-하면 리처드는 문자 답장을 하기에 바빴고, 리처드의 부모는 망설이며 시작한 헌터의 말을 가차 없이 잘라버린다. 그녀의 말은 항상 쓸모없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헌터는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자신의 말들을 다시 목구멍으로 삼켜 넣는다. 그리고 쓸모없는 잡동사니들로 취급받는 것들도 함께 삼킨다. 고통을 주고, 혈흔을 남긴다 해도 그녀는 행복하기 위해 그것들을 다시 삼킨다.
음식이 아닌 차갑고 날카로운 속성을 가진 물건들이 헌터의 혀에 닿을 때, 헌터는 그 느낌이, 그것을 넘길 때 차오르는 자신감이 좋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리처드 집안에 들어온 여자가 아닌 나도 삼켰던 것을 다시 내뱉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생동감. 그것만이 유일하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헌터는 리처드의 집에서 도망치기 전까지, 온전한 나의 모습을 담은 거울을 본 적이 없다. 거울을 보는 리처드의 옆에 서있거나, 리처드와 동료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비치는 유리창을 바라보거나, 리처드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가 된 나를 보거나.
영화의 마지막, 화장실에서 약을 먹고 하혈을 한 헌터는 가방을 다시 메고 거울을 바라본다. 전보다 길어진 머리를 편하게 묶고, 여성스러운 원피스가 아닌 편안한 맨투맨과 청바지를 입고, 진한 눈 화장이 아닌 자연스러운 눈매를 가진 헌터의 모습. 온전한 나로서의 모습이 담긴 거울. 이제 그녀는 할 줄 아는 것 없는 누군가의 아내, 아이를 가진 엄마가 아닌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된다. 이제 여유로운 부잣집 사모님의 모습은 없지만 헌터는 한결 편안해 보인다.
헌터가 화장실에서 나가고, 수많은 여성들이 화장실에 들어오고 나간다. 여성들만이 들어오는 공간인 여자 화장실에서 이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헌터가 서있던 자리에서 거울을 보고, 같은 출구를 향해 나가는 수많은 여성들. 그들도 헌터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처를 가진 사람을 서슬 퍼런 눈빛으로 바라보던 세상 속에서 헌터는 말을 삼킨다. 모든 것은 비밀이 되어야 했고, 비밀과 함께 삼킨 물건들이 다시 세상으로 돌아올 때. 그녀는 작은 행복을 느낀다. 오래도록 자신을 괴롭히던 강박과 억압을 끊어내기까지 헌터는 목까지 차오르는 것을 수도 없이 삼켰고, 그것들은 혈흔이 되어 그녀의 창가에 들러붙는다. 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은 붉은빛으로 바뀌어 방을 가득 채운다. 그게 그녀가 바라보던 세상이었다.
* 본 콘텐츠는 네이버 블로그 Kyung film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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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픔의 단절을 딛고 인연을 만들어가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을 보는 이유는 ‘빛의 마술사’라는 그의 별명답게 신카이풍 작화를 보기 위해서다. 필자는 그렇다. 그가 항상 만든 애니메이션 작화는 왠지 모를 감동이 있다면, 스토리 면에서 그 감동을 저하시킨다. 영화는 분명 재밌었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나 목적을 이해하기에는 힘든 면이 있었다. 하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은 여타 필모그래피와 다르게 신카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뚜렷하다. 이제부터 그 의도를 파악할 예정이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문단속이라는 정의를 국어사전에 검색하면 ’ 사고가 없도록 문을 잘 닫아 잠그는 일‘이라고 나온다. <스즈메의 문단속> 스토리는 ‘소타’와 ‘스즈메’가 지진을 일으키는 ‘미미즈’를 막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여기서 문단속은 가시적인 면과 비가시적인 면으로 나뉜다. 스즈메가 가시적으로 보이는 문은 재해를 막고, 사람을 구하는 작용을 한다.
하지만, 스즈메 내면의 문은 대화의 단절과 인연을 만들어가는 작용을 한다. 스즈메는 어렸을 적 사고로 돌아간 엄마를 대신에 4살 때부터 자신을 돌봐준 이모 ‘타마키’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둘 사이에 엄마와 언니라는 존재를 애써 잊어가며 살아가지만, 그 눈덩이는 커져가며 점차 둘의 대화는 붕 뜨게 된다. 하지만, 스즈메가 미미즈를 막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통해 둘은 과거를 인정하고, 관계가 회복 및 개선된다. 이뿐만 아니다. 스즈메는 어렸을 적 엄마를 찾겠다고 길을 헤매다 우연히 저승으로 향하는 문을 넘는다. 그리고 후반부 스즈메는 과거의 자신을 만나며 어릴 적 느꼈던 엄마를 잃었던 슬픔을 공감하고, 위로한다. 단순히 표면적인 스토리의 ‘문단속’이 아닌 스즈메라는 캐릭터가 갖는 외내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한층 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인연의 연속성을 지닌다. 비록 단절된 인연이라도 그 인연이라도 말이다. ‘인연’이라는 명사는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몇 개를 꼽으며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사람과의 관계다. 스즈메가 요석이었던 다이진을 쫓고, 미미즈를 막기 위해 일본 동부지역을 도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여정 중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각자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는 장면들은 인간 내면의 따뜻함과 함께 일상의 순간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는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이다. 영화는 인적이 드문 공간에 있는 문이 열리며 지진을 일으키는 미미즈가 등장한다. 이를 막기 위해 스즈메와 소타는 문을 닫기 위해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데 과거에 있었던 장소의 분위기와 모습을 떠올리며 신의 가호를 외치며 문을 닫는다. 이때, 과거를 떠오르는 모습들은 단절되었던 인연을 잇게 만들어준다. 애초에 <스즈메의 문단속>이 12년 전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을 스토리라인에 직접적으로 대입한다. 스즈메가 문을 닫는 지역들은 실제 당시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던 곳들이었고, 미미즈의 형태도 잘 보면 지구 과학 시간에 봤던 지각판 선을 연상케 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다면 신카이 감독은 이런 아픈 사건을 스토리라인에 왜 직접적으로 대입하여 만들었을까. 어쩌면 두 번째 인연은 ‘어떤 사물’을 넘어 과거와 관계되는 연줄을 극복해 나가는 인연일 수 있다. 스즈메가 과거의 사건을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영화를 본 이들도 각자가 가졌던 과거의 아픔을 딛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길 바라는 게 아닐까.
<스즈메의 문단속>은 평범한 일상과 인연의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동일본 지진과 같이 가슴 아픈 사건으로 없어질 뻔한 일상의 행복을 상기해 주고, 개인주의로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 보여주는 인연의 감사를 보여주며, 과거를 딛고 미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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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일상이 스릴러가 되다
전주국제영화제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작품이었던 영화 <풀타임>. 지난주 전주에 내려와서 풀타임 포스터를 받고, 일상 스릴러라는 카피에 굉장히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폐막작으로 선정된만큼의 작품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전주돔을 찾아갔다.
영화 <풀타임> 시놉시스
영화 <풀타임>은 파리 교외에 살며 홀로 두 아이를 기르는 쥘리의 하루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마켓리서처로 일하다 4년 전.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실업자가 된 그녀는 설상가상 남편과 헤어지면서 지금은 파리 시내에 있는 호텔에서 룸메이드로 일하며 겨우 생활비를 번다. 아이들은 옆집 아줌마에게 맡겨놓고 허덕이며 일을 해야 하는 쥘리. 마침 프랑스 전역을 휩쓴 노란조끼시위로 기차를 비롯한 대중교통 역시 장기 파업에 돌입하면서 그나마 쥘리가 잡고 있던 깨지기 쉬운 균형마저 위태로워진다. 다시 전공을 살려 전업 마켓 리서처가 되고자 하지만, 파업은 출퇴근은 물론 그녀가 면접에 가는 것조차 쉬 허락하지 않는다. 양육비도 보내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는 전남편,더 이상 아이들을 봐주지 못하겠다고 성을 내는 옆집아줌마, 놀다가 다치는 아들 등 쥘리의 삶은 도무지 숨 쉴여질 틈이 보이지 않는다. 과연 쥘리는 성공적으로 정규직 직장을 구해 고통스러운 나날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이 이후로는 영화 <풀타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연기
로르 칼라미의 연기는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비정규직에 경력이 단절이 된 두 아이의 엄마라는 캐릭터를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잘 표현해낸 배우였다. 프랑스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그간 봐왔던 프랑스 영화들은 굉장히 지루한 부분이 많았어서 프랑스 영화와 나는 결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 <풀타임>을 보는 내내 그동안 내가 알던 프랑스 영화의 답답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마 그 역할을 해준 것이 쥘리 역을 맡은 로르 칼라미의 연기 덕분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든 경력이 이어가보고자 면접에서 초롱초롱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하며 아이들을 돌볼 곳을 찾기 어려워 난감해하는 엄마의 모습, 파업으로 인해 출퇴근이 어려워지고 심지어는 집에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좌절하는 직장인의 모습까지 과장됨 없이 정말 사실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어서 극의 몰입도를 더 높여주지 않았나 싶다. 특히, 파업으로 인해 직장에 지각을 하게 되는 장면에서 작년 한찰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할 때 맞닥뜨린 시위현장이라던지, 파업이 생각나면서 영화 속에서만큼의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정말 크게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불안한 음악과 우울한 날씨
지난번 영화 <시계공자의 아나키스트>를 통해 영화음악 없이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영화음악을 잘 쓰면 긴장감과 극의 분위기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 영화음악의 역할을 영화 <풀타임>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영화 <풀타임>은 초반부터 불안함을 끌어올리는 음악을 사용한다. 주인공 쥘리가 기차를 향해 달려가면서 가까스로 탑승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험난한 하루하루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음악이 깔리는데 그 순간 그 큰 전주돔의 분위기 착 가라앉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음악과 함께 극중 배경 역시 우울함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했다. 영화 속에서는 두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가 내리거나 우중충한 날씨를 보여준다. 심지어 주인공은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거의 우산을 쓰지도 않는다. 맑은 날의 장면은 아들의 생일파티와 마지막 장면에서의 합격전화를 받는 장면 밖에 없었는데 그만큼 쥘리의 일상 자체가 우울하고 피곤한 상태라는 것을 날씨를 통해서 잘 표현하고 있었다.
일상이 스릴러인 이유
어찌보면 그저 험난한 출근길과 계속되는 악재로 인해 계약직 호텔일도 잘리는 것이 어떻게 스릴러일까 싶기도 하지만 연출을 잘해서 그런지 보는 내내 심장이 조여오고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그 일상이 스릴러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자를 내지 못해 카드가 정지되기 직전의 상황에서 집에 가지 못하자 내야하는 호텔비와 다음날 면접을 위해 구매해야할 옷까지, 정말 이 때 카드 결제가 안되면 어쩌나 싶을만큼 엄청난 긴장감을 주더니 다행이 결제가 되는 안도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핸드헬드 카메라를 통해서 흔들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찍으면서 주인공의 극대화되는 불안감을 관객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이 영화는 제작되었다. 험난한 출근길에서 시작한 일상의 무너짐은 퇴근길이 무너지면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게 되고, 와중 면접을 보러가야 하는 상황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호텔에서 대타를 구할 수 없게 되고, 그 사실을 호텔 담당자가 알게 되어 짤릴 위기에 처하다가, 와중 아들의 생일이어서 카드값이 밀려있지만 선물과 파티 준비를 해야하고, 대중교통 총파업이 이뤄지면서 결국 잦은 지각으로 인해 호텔에서 잘리는 악재가 반복되는 이 구조가 정말 하루하루 숨쉬는 것이 공포 그 자체처럼 다가오도록 연출이 돼서 왜 이 작품이 일상 속 스릴러라는 카피를 썼는지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기대를 많이 하고 본 영화 <풀타임>. 그 기대만큼 만족도 역시 컸던, 폐막작으로서 최고였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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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총을 든 남자의 비밀
* 이 글은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 참고해 주세요 : )
나쁜 감정엔 바닥이 없다.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두렵고 불안한 마음은 점점 커지고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하지만 감정을 원하는 대로 해결하기란 몹시 까다롭다.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나쁜 감정에 휩쓸리는 순간,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비극이 탄생한다.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에도 나쁜 감정에 고통받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그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자고 있는 아내에게 총을 겨눈다. 그에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가정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데이빗(클레인 크레포드)'에게 일어나는 사건과 감정을 담았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제36회 선댄스 영화제 공식 초정작으로 선정되었다.영화는 앞서 말했듯 '데이빗'이 아내 '니키(세피데 모아피)'에게 총을 겨누며 시작한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세월이 지나 결혼생활의 권태로 인해 잠시 떨어져 지내기로 결정했다. 별거 중인 어느 날 '데이빗'은 자신이 살던 집에서 벌거벗은 채 자고 있는 아내와 남자 '데릭(크리스 코이)'을 보게 된다. 부부 사이에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도 된다는 약속을 했었지만, 화가 난 '데이빗'은 아내에게 총을 겨눈다.
숨이 멎을 듯 멈췄던 시간은 거실에서 떠드는 아이들 목소리에 의해 깨진다. 창문을 통해 집을 빠져나온 남자는 무작정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고 카메라는 그의 뒷모습을 따라간다. 동시에 금속과 살이 부딪히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들린다. 듣는 사람마저 불쾌한 감정을 전염시키는 특유의 효과음은 '데이빗'이 나쁜 감정에 사로잡힐 때마다 들린다. 음향을 담당한 '피터 알브레히첸(Peter Albrechtsen)'은 '데이빗'의 삶과 연관된 소리를 찾아내려 노력한 끝에 상영 시간 84분 동안 자동차 문이 84번 열고 닫히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효과음을 만들었다.연출의 특징도 눈 여겨볼만하다.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화면 비율을 4:3 정도로 줄인다. 화면은 크면 클수록 좋고 IMAX가 대세인 요즘 영상과 확연히 다른 선택이다. 좁은 화면은 인적 드문 공터나 도로처럼 영화 속 배경이 주는 여백과 대비되어 훨씬 답답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소화해서 한 장면을 길게 촬영하는 단조로운 구도를 사용했다. 그중 인물의 전신이 보이도록 촬영된 장면이 많은데 관객은 그들의 동선과 대화만 확인할 수 있고 자세한 표정은 알 수 없다. 영화의 감독 '로버트 매코이언(Robert Machoian)'의 인터뷰에 따르면 '카메라에 담긴 특정 인물에게만 집중하기보다 등장인물 누구나 공평한 가치를 지니길 원했다'라고 설명했다. 감독의 의도대로 주인공 '데이빗'을 담는 카메라조차 철저히 방관자에 입장에서 그의 고통을 관찰한다.
Q. 나쁜 감정을 숨기며 지내나요?
'데이빗'은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나쁜 감정을 숨긴다. 그는 '니키'가 다른 남자와 잔 걸 모르는 듯 태연하게 행동하거나 소원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저녁 데이트 코스를 준비한다. 그리고 다정한 아빠 역할을 충실히 해내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거나 신중하게 장난감을 고른다.아무리 덤덤한 얼굴로 괜찮은 척 해도 '데이빗'은 어느 하나 숨길 수 없다. 영화의 배경인 미국 유타주 카노시는 사람이 적은 한적한 동네여서 동네 사람들은 그가 처한 상황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마트에서 아내의 남자 친구를 마주치고 이웃과 안부 인사를 건네며 가출한 딸을 잡는다. 심지어 딸에게 '니키'를 둘러싼 삼각관계를 들키며 딸은 방황하고 부녀 사이는 갈수록 나빠진다.
꾸역꾸역 감추던 감정은 폭력으로 표출된다. 그는 아이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없게 되자 '니키'와 큰소리로 다투는 일이 잦아지고 비아냥거리며 거친 말을 내뱉는다. 급기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사람 모양의 샌드백에 마구잡이로 주먹질을 하고 총을 쏜다.
글에서 설명한 장면을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 예고편에서 만나보세요▼
그의 분노를 한 꺼풀 벗기면 나쁜 감정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데이빗'은 애쓸수록 망가지는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혼란스럽다. 만약 '데릭'으로 인해 아내와의 관계가 끝난다면 가족에게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까 봐 두려움을 느낀다. 감독은 영화 속 그의 처지를 노숙자에 비유하는데, 별거로 인해 가족과 한 집에서 지낼 수 없으며 아버지 댁에서도 임시로 머무는 손님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나마 집이라고 할 만한 장소는 자신의 낡은 트럭뿐이기에 좌절과 외로움을 홀로 견뎌야 한다.
나쁜 감정엔 바닥이 없다. 그러나 시작된 이유는 분명히 있다. 이유를 알아내는 첫 단계로 감정을 숨기는 대신 솔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의 절정은 아내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주저앉아 우는 장면이다. 결국 그는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두려움을 인정했다.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면 '데이빗' 주변에 나쁜 감정의 찌꺼기가 남은 듯 불안감이 감돌지만, 그가 바라던 대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감정을 숨기는 게 익숙한 사람이라면 영화 속 '데이빗'의 슬픔이 긴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비극이길 바라는 주인공은 없으니까.
영화 리뷰를 꾸준히 쓰고 있지만, 장면마다 숨겨둔 감독의 의도가 이 정도로 궁금한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참고한 감독의 인터뷰와 다른 리뷰는 아래 링크로 남깁니다.
https://www.abc.net.au/news/2021-09-16/the-killing-of-two-lovers-review/100463886
https://www.slashfilm.com/581177/the-killing-of-two-lovers-director-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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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업데이트가 덜 끝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의 한글 패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종전이 선언된 한반도. 분단의 상징이었던 공동경비구역 JSA는 공동경제구역 JEA로 전환되고, 남북의 공동 화폐 생산을 위한 조폐국이 설립된다. 그러나 남북의 경제협력이 예상과 달리 더욱 극심한 빈부격차와 사회적 혼란을 유발하자, 평양에서 서울로 왔지만 꿈과 달랐던 현실에 분노한 '도쿄(전종서)'는 무장 강도가 되어 경찰의 추적에 시달리는 신세가 된다. 그런 그녀에게 불공정한 사회에 반격을 가하자고 제안한 '교수(유지태)'. 그의 설득에 넘어간 도쿄는 북한 출신 수배범 '베를린(박해수)', 땅굴 은행털이범 '모스크바(이원종)'와 '싸움꾼 덴버(김지훈)', 해커 '리우(이현우)' 등과 한 팀이 되어 조폐국을 점거하고, 인질극을 벌이며 4조 원 규모의 지폐를 찍어낸다. 한편, 조폐국 밖에서는 남한 협상 전문가 '선우진(김윤진)' 경감과 북한 특수작전부대 '차무혁(김성오)'대위로 구성된 공동 대응팀이 갖가지 방안을 동원하며 강도들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하이스트 장르의 핵심
당연한 말이겠지만, 하이스트 장르의 핵심은 '강도'라는 행위에 달려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강도라는 행위를 어떻게 부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강도짓을 하는 사람에게 주목할 수 있다. 은행을 턴다면, 그들이 은행을 터는 동기와 목적, 그 강도 행위에 담긴 상징성이 다른 결의 서스펜스를 이야기에 불어넣을 수 있다. 또한 강도 행위 자체를 강조할 수도 있다. 은행을 털고 도주하는 일련의 과정이 낳는 긴박함과 쾌감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두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하이스트 장르물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아미 오브 더 데드>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공개 당시 좀비 영화로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지만, 하이스트 영화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아쉬움이 크다. 영화는 좀비가 점령한 라스베이거스에 침투해 은행 금고를 강탈한다는 이야기를 잘 살려내지 못했다. 감독의 개인사에서 비롯된 아픔과 깨달음이 투영된 드라마는 인상적이었지만, 하이스트 영화로서 갖추어야 할 액션과 장르적 쾌감은 부재했었기 때문이다. 역대 넷플릭스 전체 2위를 차지한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의 한국판 리메이크,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 1도 같은 맥락에서 문제를 노출한다.
<종이의 집> 한국어판 각색의 핵심
리메이크 작품으로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 1>가 갖는 가장 큰 차별점은 통일 직전 한반도라는 배경 설정이다. 사실 김지운 감독의 <인랑>에서도 볼 수 있었던, 통일을 앞두고 혼란에 빠진 한반도라는 설정은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런데도 이 설정을 굳이 활용한 것은 해당 내용이 리메이크로서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 단지 하회탈이나 한국 전통 악기인 꽹과리, 징 등의 전통적인 사운드가 더해진 배경음악 같은 외적인 요소 외에도 한국적 특성을 녹여내려 한 시도인 것이다.
실제로 이는 강도 행위의 이유, 목적, 상징성과 캐릭터의 성격을 완전히 뒤바꾼다. 즉, 드라마는 강도 행위 자체가 아닌 행위자에게 주목한다. 교수가 조폐국 강도를 계획한 이유만 봐도 알 수 있다. 원작에서 교수는 자신의 병원비를 위해 은행 강도를 시도하다가 죽은 아버지의 계획을 물려받는다. 반면에 한국판에서 교수는 디스토피아로 변해가는 통일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목적으로 조폐국에 침입한다. 이는 교수의 과거사가 드러나는 6화부터 올해 하반기에 나올 파트 2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남북 경제협력계획에 참여했던 교수는 자신의 비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과거는 현재 그의 범죄 행각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자신이 주장한 욕망에 의거한 경제 부흥이 자본주의의 병폐를 극대화하자 본인이 직접 이 문제를 충격적인 방식으로 공론화하는 모습에는 명암이 한 데 존재한다. 덕분에 인질극의 기획자이자 자신의 여자에게 따뜻한 카페 주인이라는 그의 이중성도 더욱 돋보인다.
또한 강도짓이 이처럼 단순히 돈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거시적 안목에서 이루어진다는 서사는 도쿄의 캐릭터성도 바꿔 놓는다. 원작 속 도쿄는 어디로 튈지 모를 감정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캐릭터였지만, 한국판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교수의 계획과 신념에 진심이다. 작중 과거사가 드러난 이들 중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한국의 자본주의 사회에 크게 다치고 또 실망했기 때문에, 교수의 계획대로 한국 사회에 멋지게 복수하고 싶은 욕망은 그 누구보다도 강렬하다. 이에 더해 생존과 욕구에 충실한 베를린의 역할도 빛난다. 교수와 도쿄가 개인적 욕망을 거시적 안목에서의 욕망과 일치시키는 반면, 북한 수용소에서 폭동 후 탈출한 수배자인 베를린은 개인적 이익에만 충실하다. 그는 사익과 일치될 때에만 교수의 계획을 따르며, 박해수의 연기력이 더해져 그의 악랄함은 더욱 배가된다. 인질들을 남북으로 갈라 치거나 공포심으로 인질을 통제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베를린은 교수와 도쿄의 대척점으로서 모든 에피소드에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변화가 와닿지 않는 이유
이처럼 <종이의 집> 리메이크는 새로운 배경 설정을 통해 첫 화부터 하이스트 장르와 거시적 서사를 결합하는 각색을 시도한다. 문제는 강도 사건의 행위자에 주목한 변화, 그 중심에 위치한 통일 직전의 한반도라는 배경 설정을 세련되게 묘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전반적인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한 1화에 어설픈 연출이 집중되다 보니 남은 다섯 에피소드 역시 덩달아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다. 먼저 한국 영화의 여러 클리셰가 눈에 띈다. '선수 입장'이라는 워딩만 없을 뿐, 그에 버금가는 "대기들 타시고" 혹은 "오빠, 쓸데없는 짓 하다가 대가리에 빵꾸 나"와 같은 대사는 긴박해야 할 강도 작전의 김을 빼버리는데 일조한다. BTS를 굳이 강조하는 연출은 그들의 인기에 탑승하려는 얕은 술책처럼 보인다. 빈곤을 겪는 여성을 다시 한번 성매매 현장에 빠뜨리는 전개 또한 넷플릭스 작품에게서 기대할 법한 신선한 매력을 느끼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작중 북한에 대한 묘사가 낡은 화법에 의존한다는 점이 아쉽다. 1화는 북한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남한을 선망하고 남한의 발전된 사회상에 무지할 것처럼 묘사한다. 북한 사람들이 모두 문명과 거리가 멀 것이라는 편견을 담아내며 한국 영화나 드라마 속 북한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작품의 화자이면서 동시에 교수의 계획과 신념을 보충해주는 인물인 도쿄라는 캐릭터의 완성도를 저해한다. 단지 서울말을 쓰기 때문이 아니다. 평생을 지방에서 살았어도 서울에 올라온 후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도쿄의 서울말은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그녀가 북한 사람으로서 무시당하지 않고 남한에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무장한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다만 북한 자체를 평면적으로 묘사한 결과 도쿄라는 캐릭터가 교수에게 설득되고, 그를 신뢰하며, 그의 계획을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이 입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그녀는 단순히 한국 문화가 좋아서 남한으로 향했다가 배신당한 후 적개심을 갖게 되었다는 작위적인 서사 안에 갇혀 버린다. 특히 그녀가 교수와 함께 작품의 주제 의식을 책임지는 캐릭터이다 보니 결국 이 문제는 드라마 전반의 완성도까지 하락시킨다. 드라마의 메시지 자체도 덩달아 얕아지기 때문이다.
강도 행위도, 행위자도 잡지 못한 하이스트 장르물
이처럼 강도 사건의 행위자에 주목한 각색이 불완전한 가운데, 심지어 강도 행위 그 자체를 묘사한 장면들도 그리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조폐국 내외에서 벌어지는 인질극의 전개가 원작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이스트 장르물은 인물들의 드라마만큼이나 그들이 벌이는 강도 행각 자체를 예상치 못한 장면들로 채워 넣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반전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모든 위기 상황이 어떻게 귀결될지 알 수 있으니 8명의 강도가 벌이는 인질극도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 1은 하이스트 장르물이 충족시켜야 할 두 요소를 모두 놓친 것이다.
물론 원작을 보지 않은 입장이라면 충분히 몰입하여 즐길 수 있는 대목이 존재한다. 특히 여론전을 펼치는 부분은 교수의 계획에 내포된 정치적 함의와 맞물려 꽤나 흥미롭다. 파트 1의 후반부에 등장하여 리메이크작이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은 듯 보이는 거시적 서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고립된 조폐국 내부에서 인질극의 긴장감을 극도로 높여주는 베를린과 조폐국장의 관계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조폐국장 조영민 역을 맡은 박명훈의 생생한 발암 연기 덕분에 악역인 베를린에게 공감하게 되는 아이러니함은 각자의 욕망에 충실해야 하는 작중 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대목들도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 1을 구해내지는 못한다.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볼 수 있게 하는 응급처치는 될지언정, 이미 장르물로서 차포를 다 뗀 하이스트 드라마를 소생시킬 힘까지는 없다.
물론 이 작품이 엄연히 '파트 1'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6화는 파트 1과 2를 나눌 분기점에 불과하며, 작중 조폐국 강도 사건과 인질극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을 한 작품으로 본다면 파트 1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중 발단과 전개 혹은 발단과 전개 및 위기의 일부까지만 보여준 채로 끝난 것이다. 따라서 파트 1의 정확한 평가는 파트 2가 공개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장윤주의 '나이로비'가 대표적이다. 예고편에서부터 부자연스러운 스타일링과 대사를 지적받은 나이로비 캐릭터는 사실 캐릭터에 대한 설명 자체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과거사가 부각되는 만큼, 이 문제는 충분히 파트 2에서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가기 위한 중간다리에 불과했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영화 자체의 완성도 덕분에 호평을 받은 것을 보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 1을 향한 비판은 충분히 일리 있다. 조폐국과 주변 경관의 CG가 상당히 부자연스럽다거나, 조폐국 내부도 세트장 티가 많이 나는 것,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일관성 있게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인상만으로도 드라마의 부족한 완성도는 감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파트 2까지 기다리지 않더라도 지적할 수 있는 확실한 문제다. 그렇기에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 1을 보고 나서 실망감은 쉬이 감춰지지 않는다. 단지 리메이크 작품으로서 시도된 각색의 방향성으로부터 파트 2가 보완하고 또 온전히 완성할 한 편의 드라마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P(Poor, 형편없음)
야심한 목표와 허술한 계획의 만남. 파트 2에서의 업데이트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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