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2025-05-25 21:14:07
영화 <분리수거>, “마음도 분리수거가 될까요?”
[시사회 후기] 2025.05.21.(수) 개봉
“마음도 분리수거가 될까요?”
“감정도 재활용이 되나요?”
다가오는 여름에 길어진 해를 저녁 시간까지 느긋이 즐기며, 연희동의 예술영화관 ‘라이카 시네마’를 찾았다. 한 관에 40명 남짓이 들어가는 작은 영화관 로비가 사람들로 북적인다. 영화 <분리수거>의 ‘게스트하우스 파티 GV’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관객들이다. 영화사에서 준비한 맥주 한 캔씩을 살짝은 어리둥절한 채로 받아 들고 영화관에 들어선다. 하지만 영화와 함께 맥주를 마시다 보니 ‘이 영화, 맥주와 함께여야 영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영화 속 이야기도 술 없이는 듣기 힘든 사랑 이야기들이고 말이다.
* 씨네랩(cinelab)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한 GV 후기입니다.


영화 <분리수거> 포스터와 제주도로 향하는 주인공 재연 (C) ㈜모그픽쳐스
영화 <분리수거>는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 모인 여섯 인물의 가슴 아픈 연애담을 풀고 있다. 약혼자의 바람을 눈앞에서 목격해 버린 재연(박보경 역)은 모든 걸 뒤로한 채 제주도로 떠난다.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들 행복해 보이면서도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상처를 품은 채로 모인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공유할까. 도망쳐온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상처입고 제주도에 모인 여섯 명의 등장인물 (C) ㈜모그픽쳐스
이번 영화는 이소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단편영화 <한까치>(2021)로 청주국제단편영화제, 충무로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그가 약 4년 만에 장편으로 다시 관객들을 찾아왔다. 그의 이번 작품 <분리수거> 속 가슴 아픈 연애담은 일부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소민 감독이 실제로 주변에서 접한 이야기들을 각색하여 영화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현실에 감독만의 상상을 더한 이야기는 그 속의 아픔과 슬픔에 반해 담담하게 연출됐다.
<분리수거>에는 스크린에서는 신인으로 볼 수 있을 배우들이 빛나는 작품이었다. 첫 장편 주연을 맡은 박보경 배우, 연극이 아닌 영화에는 처음 도전하는 윤혁진 배우, 캐스팅을 위해 남다른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는 박민서 배우, 원래 성격과는 다소 다른 캐릭터라고 했지만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준 문경태 배우와 백민지 배우가 출연했다. 그리고 그간 조연과 단역으로 다수 작품에 출연해 온 태항호 배우는 이번 영화를 통해 기존과는 다른 부드러움을 보여줬다.
여담으로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감독이 직접 수중 촬영을 진행했다고 (C) ㈜모그픽쳐스
‘게스트하우스 파티 GV’에서 맥주 한 캔과 함께 만난 <분리수거>는 등장인물들로부터 전해 듣는 연애담이었다. 실제라면 말 그대로 술 없이는 들을 수 없었을 이야기 말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상처를 품은 채 본인의 일상으로부터 도망쳐 제주도라는 육지로부터 떨어진 게스트하우스에 모인다. 그들은 그곳에서 쉬이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상처를 공유하며 새로운 경험을 통해 지난 감정을 분리수거한다.
영화 <분리수거> (2025)
감독 이소민
출연 박보경, 윤혁진, 태항호, 박민서, 문경태, 백민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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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압축 파일을 풀다.
이 글은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한겨레
명백하게 내가 '불호'라고 외쳐야 할 작품이었다."왜?"라는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하는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데다가 어떻게 타임라인이 꼬이는 것인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게다가 4화에 걸쳐 한 사건을 설명하는 동안 마치 노래방 간주 점프 마냥 겅중겅중 시간을 건너뛰어 버린다.
그런 것만 있다면 내가 억울하지라도 않지(?). 일 진행 속도가 마치 우리 부장님 수기 사인 한 번 받아내는 속도로 진행 되지를 않나(대충 매우 느리다는 뜻), 사건의 다각화는커녕 내 성격만 다각화되나(?) 싶을 정도의 집요한 원테이크로 사건을 따라가니, 이건 뭐 그냥 나라는 사람에게 안 봐도 된다고 말로 해도 충분할 것만 같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덩그러니 내 마음속 저장이 아니라 저장 공간에 덩그러니 다운되어버린 이 방대한 압축 파일은. 자물쇠가 조금씩 열리는 그 모든 순간동안 내 다리를 초조함으로 떨게 하는 대신, 두려움과 숙연함으로 떨리게 했다. 이보다 더한 공포와 숙연함을 담은 파일은 앞으로도 한동안 보기 힘들 것임을 직감한 사람의 심정으로.
사진 출처:매일 경제
네 시간가량의 작품이 던져놓은 화두들 중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어른들로 대변되는 부모의 무지(無知, 존 스노우)가 과연 면죄부가 될 것인가? 였다.
세 명의 도둑이 있는데 한 명은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 행했고, 다른 한 명은 옆의 걔를 따라왔으며 나머지 한 명은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을 모르고 행동했다 했을 때. 과연 어떤 도둑이 제일 나쁜 놈이냐.라는 문제(?)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정답(?)은 세 번째 도둑이었으며, 무지라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 것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이 예시가 아니라도 악의 평범성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으로도 알 수 있다.
물론 부모 중 자기 자식이 나쁘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자식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먹고 사니즘에 집중하다 보니. 아이들은 다 커 있었을 것이고. 그런 의도로 키우려 하지 않았음에도 제이미(오웬 쿠퍼)는 "그렇게" 커 버린 채였을 테니까.
게다가 이 작품과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될 법한 영화인 [케빈에 대하여]를 보았을 때. 결과적인 참사는 비슷했지만. 과연 이 두 부모가 모두 똑같이(혹은 유사하게라도) 나쁜가.라고 본다면 당연히 제이미의 나머지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님들이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했던 제이미의 갇힌 우주를 상징하는 듯한 벽지로 둘러싸인 아들의 방에서 오열하는 아버지(스티븐 그레햄)를 보면서도 처량함이라는 감정이 불쑥 치고 나오지 못했던 이유는. 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래도 짧은 이 작품의 모든 시간마저도 가해자를 위해서만 할애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해자라고 해서 이런 사정이 있었습니다.라는 말조차 할 수 없게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피해자는 그저 잔인하게 살해되는 모습으로 CCTV와 수사자료 속 모습에서만 존재할 뿐. 피해자의 부모들에게는 말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물론 제이미의 아버지가 아들을 범인으로 확정 짓게 한 살해 현장에 가서 추모의 의미로 꽃다발을 놓고 오긴 하지만. 오히려 그 말할 수 없는 심정을 먼저 전달해야 했을 곳은 피해자들의 부모였다. 게다가 제이미 마저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겠다고 했지만. 피해자를 위한 사과 따위는 준비조차 되지 않은 듯 보였다.
무지를 인정하지만 의도는 없었던 부모와. 제이미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누나는 선택하지 않은 길을 가기로 한 제이미의 결단이 얽힌 복잡하고도 떨떠름한 사건 앞에서. 나는 제이미의 아버지가 마치 스스로가 화를 내며 파란 페인트로 낙서를 덮어버린 그의 회사용 봉고차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덮으면 안 보일 수는 있지만. 신경질적인 페인트 자국 때문에 원래 있던 낙서가 더 궁금해지는 역효과를 낳는 그의 방식. 결국 해결책이 되지 못해 타야 하는 곳이 아닌 반대편으로만 탈 수 있게 되어버린 반쪽짜리 방식. 그의 눈물이 마치 그 정도의 임시방편 정도로만 보일 뿐이었다.
마치면서
사진 출처:맥스 무비
이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나니. 그제야 제목이 눈에 띄었다.
Adolescence.
한국말로 하면 청소년기, 혹은 사춘기에 해당하는 단어를 [소년의 시간]이라는 한국어로 번역해 냈다는 것이 처음에는 마더퍼커 장인을 효자로 만들어 버린 사건처럼 느껴져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시간이라는 것에 압축된 모든 감정들을 풀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필요한지를 깨닫자 아보다 더 나은 제목은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의 흐름은 담백하다 못해 건조하다고 느낄 정도였기에. 이 부조화에서 오는 복잡한 이 마음을 어찌할 바 모르는 채로. 나는 단 한 사람의 관찰자가 되어, 카메라가 인도해 주는 대로 그저 넋을 놓은 채 작품을 감상해야만 했다.
이 시간에 담긴 의미를 풀어내려면. 나조차도 수많은 시간을 들여 이 드라마를 소화해야 할 것만 같다.
다음 리뷰 예고.
아마도 파과가 될 것.
[이 글의 TMI]
1. 크로와상 너무 맛있다... 버터 최고...
2. 갑자기 에어컨 켜야 할 정도로 날씨 덥다
3. 이번 달 용돈 아직 10만 원 남음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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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이토록 뚝심 있고 암울하며 끈적한 조폭 영화라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독] 김창훈 KIM Chang-hoon
출연] Xa-bin HONG 홍사빈 Joong-ki SONG 송중기 Hyoung-seo KIM 김형서
KOREA|2023|124 min|DCP|Color|Special Premiere
시놉시스
명완시에 나고 자란 18세 고등학생 '연규'(홍사빈). 중국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의 꿈은 엄마 '모경'(박보경) 함께 네덜란드로 이민을 가는 것. 하지만 현실을 녹록지 않다. 새아빠 '정덕'(유성주)의 딸 '하얀'(김형서)을 도와주려다 일진과의 싸움에 휘말리고, 졸지에 합의금 300만 원을 토해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도움의 손길이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명완시를 떠나 본 적 없는 '치건(송중기)'이 선뜻 300만 원을 준 것. 이를 계기로 연규는 치건처럼 명완시에서 살아남으려 한다. 치건이 중간 보스인 조폭 조직에 합류해 이것저것 일을 배우는 연규. 그러나 연규가 치건에게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치건이 연규를 신뢰하면 신뢰할수록 그들에게는 점점 더 위험한 일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갱스터 영화의 사회적 맥락
갱스터 영화는 필연적으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영화다. 지나치게 남성적, 마초적이라고 비판받고, 높은 수위 때문에 불쾌하다는 지적도 피하지 못한다. 그러나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폭력성은 갱스터 영화에 남성 판타지 이상의 사회적 의의가 깃드는 힘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갱스터 영화의 전성기가 두 차례 있었다. 금주법이 시행된 대공황 시기,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사회가 혼란했던 70년대다. 갱스터 영화의 폭력성과 선정성은 당대의 사회 구조적 불안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비정상적인 시스템 하에서 성공하고 싶은 욕구를 반영한 몸짓인 셈이다. 한편으로는 그 폭력성과 선정성을 스크린 안으로 제한하면서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는 기제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제76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섹션에 초청된 <화란>은 장르의 본분을 충실히 해낸 수작이다. 신인 감독 김창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은 마지막까지 톤을 유지하는 뚝심, 달라붙은 껌처럼 찐득한 장르적 쾌락이 돋보인다. 조폭의 가장 말단에 위치한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한국 조폭 영화의 익숙한 틀을 깨부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부인 오프닝
사실 <화란>은 오프닝이 전부인 영화다.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남학생 일진 무리. 연규가 그들에게 다가간다. 무리 중 한 명을 붙잡더니 돌덩이로 머리를 내리친다. 그러고는 돌덩이를 내려놓는다. 이때 운동장에 고여 있던 물덩이에 피 묻은 돌이 떨어지고,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사이 흙탕물이 된 물덩이 표면에 제목 <화란>이 나타난다.
아무 맥락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마주한 오프닝은 충격적이다. 예상치 못하게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 물론 영화는 그 직후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규연은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남매 하얀을 돕기 위해 폭력을 행사했다. 그녀가 학교 내 일진이 여자 속옷을 거래하는 일에 휘말려서 협박당하고 있었기 때문.
대신 충격만큼 <화란>의 주제는 간명히 드러난다. 고요한 물덩이가 피로 물들고 파동 치기 시작한 이상, 흙탕물을 되돌릴 수 없다고. 즉, 폭력의 굴레에 발을 내딛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고. 실제로 영화는 현실 속 온갖 폭력으로 가득하다. 연규네 가족은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에 시달린다. 불법 사채업자 치건은 오토바이 절도 사업을 병행하고, 정치인 뒤를 봐주는 조폭이다. 심지어 사회적 혐오와 책임회피 같은 이슈도 끼어들어 있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이들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일절 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를 감싸 안으려고 하지 않는다. 연규도, 치건도, 하얀도, 새아빠도 모두 폭력이 잘못된 것인 줄 안다. 심지어 부패 정치인 '정의석'(서동갑)도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영화는 더 냉혹하다. "열심히 공부해라"라는 말이 빈말로 느껴지는 암울한 사회상과 폭력의 굴레를 고발하겠다는 의지도 강렬하다.
갱스터인 척하는 멜로드라마
악의 굴레를 멜로드라마로 바꿔서 보여주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를 지닌 두 남자의 브로맨스 덕분에 폭력의 의미와 역할이 더 잘 전해진다. 연규는 아버지가 없다. 친아빠는 어릴 적 자기를 버리고 떠났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엄마는 새아빠와 결혼했다. 하지만 새아빠는 술만 마시면 연규와 엄마를 두들겨 팬다. 하얀이 말려야 간신히 말을 들을 정도다.
자연히 연규에게는 머리를 다친 일진에게 줄 합의금 300만 원을 마련할 재주가 없다.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로는 택도 없다. 그런 그에게 치건이 나타난다. 연규에게 홀연히 300만 원을 선물하더니 결코 자기를 찾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폭력에 시달리던 연규는 끝내 치건을 찾아간다. 어떤 힘이든 있어야 맞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런 그를 보면서 치건은 망설이다 못해 자기만의 생존 방식을 하나 둘 알려준다. 그 역시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가정폭력 피해자였으므로. 폭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과 그럴 수 없는 일. 더 나아가 손가락 하나, 손톱 한쪽으로 책임지는 방법에 대해서도. 그렇게 처한 상황도 성격도 다르지만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 두 사람은 형과 동생, 가족이 된다. 이 과정은 마치 한 편의 멜로 같다.
연규와 치건의 관계는 뻔해 보이기도 한다. 절망에 빠진 주인공에게 의지할 대상이 홀연히 나타난다. 주인공은 그를 닮고 그와 함께 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맞지 않는 길을 걷는다. 여느 갱스터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관계다. <신세계> 속 이자성과 정청,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속 재호와 현수 관계를 자연히 떠올릴 순간도 스쳐 지나간다.
'화란' 속에 '화란'이 있는가
하지만 연규와 치건 사이에는 낚시찌에 걸린 물고기 마냥 애매한 대목이 있다. 그들의 관계가 특별한 이유다. 서로에게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같은 존재이기 때문. 치건은 연규가 말하지 않아도 그의 아픔을 알아본다. 그래서 그가 자기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절망에 빠진 그를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
연규도 치건의 삶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물론 폭력의 달콤함에 잠시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큰 형님 '중범'(김종수)의 살인 지시에 불복할 만큼의 사리 분별은 한다. 이처럼 원치 않지만 자기 모습을 발견한 형과 잘못을 알지만 형이 되고 싶은 동생. 영화는 쌍방이 빚어내는 애매한 긴장감을 극한으로 몰고 가서 터뜨린다. <화란>의 멜로가 다른 갱스터 영화 속 브로맨스와 차별화되는 이유다.
그 중심에는 제목이 있다. '화란'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재앙과 난리를 뜻하는 말이자 네덜란드의 한자어다. 이때 전자는 현실의 유의어다. 연규와 치건이 사는 세상은 그 자체로 지옥이니까. 후자는 희망의 유의어다.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를 데리고 네덜란드로 이민을 가는 게 연규의 꿈이니까.
두 형제 사이의 긴장감은 두 번째 화란의 유무에서 비롯된다. 연규에게 화란은 두 가지 의미이지만, 치건에게 화란의 의미는 하나뿐이다. 연규의 금속 보관함이 비상금과 네덜란드 여행 가이드북으로 꽉 차 있는 반면, 치건의 나무 보관함은 끝내 비어있듯이. 이 차이가 둘의 말로를 갈라놓는다. 동생은 화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울 의지가 있지만, 형에게는 그럴 화란이 없기 때문. 이는 영어 제목이 <Hopeless(희망이 없는)>인 이유다.
한국 영화의 클리셰를 거부하다
이러한 멜로드라마는 <화란>이 한국 조폭 영화의 틀을 탈피하는 원동력이 된다. 사실 배경은 유사하다. 한국 조폭 영화는 주로 재개발 지역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비열한 거리>, <강남 1970>, 심지어 1달 전쯤 개봉한 <보호자>까지도. 조폭은 철거민을 밀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이는 고도의 압축 성장을 이뤄낸 한국 사회의 집단적 욕망을 가장 잘 반영하는 설정이라 할 수 있다.
조폭 영화 속 신축 부동산은 중산층으로 발돋움하려는 평범한 서민의 욕망을 보여준다. 이는 장르는 달라도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궤를 같이 하는 지점이다. 조폭 또한 부동산 재개발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조직 내외적으로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한국 조폭 영화는 정치인, 기업인, 조폭의 삼각관계를 주로 반복한다. 조폭인지 정치인인지 분간하는 게 의미 없는 <아수라> 속 박성배 시장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 삼각관계에는 올드하다는 이미지와 클리세 범벅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인 감독은 과감한 시도를 한다. 정치인, 기업인, 조폭이 아닌 조폭의 말단, 막내에게 집중한다. 치건의 큰 형님은 재개발 사업 이권을 두고 국회의원 선거를 주무르려 한다. 그러나 연규에게 이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윗사람이 어떤 이익을 두고 싸우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조폭 영화에 담긴 새 세대의 현실
대신 영화는 새로운 세대의 고민에 집중한다. 치건은 연규에게 묻는다. "언제 여기 왔어?" 연규가 답한다. "태어날 때부터요." 이는 단순히 명완시에 언제 왔는지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언제부터 폭력의 굴레에 빠졌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린 연규 입장에서는 답이 어렵지 않은 질문이다.
이 문답의 연장선상에서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성년을 앞둔 고등학생이 이미 존재한 카르텔, 폭력의 굴레를 어떻게 버텨내는지, 책임 지고 빠져나갈 방법은 있는지. 이미 자리 잡힌 사회 구조, 상승할 희망조차 찾기 힘든 시스템 안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한다. 이는 <화란>의 분위기가 여느 영화보다도 암울하고 처절한 이유다.
그렇다고 <화란>은 그저 냉혹한 현실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는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한 가닥 응원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 치건과 헤어진 후 집에 돌아온 연규는 새아빠에게 맞아 죽은 엄마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는 새아빠에게 복수하는 대신 하얀과 함께 집을 나온다. 다른 도시로 떠난다. 자기 손으로 폭력을 거부하고, 굴레를 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화란>은 고여 버린 장르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다.
물론 마지막 장면이 마냥 희망적이지는 않다. 과연 연규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를 완전히 떠날 수 있을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두 주인공의 표정도 홀가분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그들이 새 출발을 알린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화란>은 회의감을 떨치지는 못해도, 이제 막 성년이 될 두 주인공에게 마지막 응원은 보내려고 노력한다.
좋고 싫은 이유가 같다
분명히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다. 15세 관람가치고 잔인한 장면이 꽤 많다. 완성도 문제도 있다. 여기저기 생략된 지점이 많다 보니 뒤로 갈수록 영화가 버거워한다. 특히 조직 상부에서의 의사결정과 음모, 하부 조직원과의 감정선과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 하얀처럼 점점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캐릭터도 생긴다. 정교한 스토리텔링 대신 배우들의 연기력과 분위기에 기대기 때문. 서사의 빈 공간을 유추해야 하는 불친절한 작품인 셈이다.
다만 역설적으로 좋아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인 영화이기도 하다. 반지하방의 습기처럼 답답하고, 운동화에 달라붙은 껌처럼 찐득한 분위기는 근래 한국 영화에서 맛보기 어려운 개성이다. 도를 넘는 듯한 잔혹함은 그 분위기와 현실을 강조한다. 그 덕분에 송중기의 새로운 모습, 홍사빈과 김형서라는 신인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더 나아가 웃음을 단 한순간도 허용하지 않는 뚝심까지 고려하면 <화란>은 근래 한국 영화 중, 특히 갱스터(조폭) 영화 중 보기 드문 수작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들짐승처럼 맹목적이고 폭력적이며 진득한 갱스터 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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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일강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이 글은 영화 [나일강의 죽음]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감독들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페르소나를 앞세우곤 한다.
팀 버튼에겐 조니 뎁이 있었고, 웨스 앤더슨에겐 빌 머레이가. 그리고 마틴 스콜세지에겐 로버트 드 니로가 그 역할을 충실히 시행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표지판 같은 페르소나의 얼굴을 보며 손쉽게 감독의 작품이 주는 포인트나 느낌을 알아챌 수 있었다. 문학 작품을 쓰는 작가에게도 자신이 쓰는 책의 사이를 겅중겅중 뛰어넘어 다녀줄 인물이 필요했다. 절대 소멸하지도, 그렇다고 한 작품으로 안녕을 고하지도 않으며, 작가의 작품마다 작가 대신 독자들에게 따스한 인사를 건네줄 인물들. 그렇게 셜록 홈스와 브라운 신부, 그리고 멋들어진 콧수염을 가진 에르퀼 푸아로(참고 1)가 탄생했다.
회색 뇌세포라는 애칭까지 가진 탐정 푸아로는 전작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도 자신의 특기인 추리로 열차가 달리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사건을 해결했고. 이번엔 나일강 위의 배 한 척에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1937년에서 오늘로의 큰 걸음을 선택했다.
영화 [나일강의 죽음]은 원작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나일강과 이집트의 아름다움은 물론, 갤 가돗의 고전미 넘치는 모습도 함께 담고 있으니. 원작의 내용과 비교해 보며 영화를 보는 재미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원작과의 싱크로율;거의 제목만 같은 것 같은 이 기분.
사진 출처:다음 영화
원작이 있는 작품의 숙명은 참으로 가혹하다. 무엇을 살리고 어디까지 축소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제작 과정에서부터 해야 하며,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개봉을 하고 난 뒤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대표 역작 중 하나로 꼽히는 [나일강의 죽음]을 두고, 마치 [해리 포터]처럼 원작의 재림을 선택할지. 아니면 [나는 전설이다]처럼 완전히 다른 성격의 영화를 만들지. 제작진들의 고뇌는 매우 깊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그러나 [나일강의 죽음]은 대부분의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과 반대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푸아로의 활약을 줄이고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서사 하나씩을 고이 쥐여주는 방법 말이다.나일강을 가로지르는 배 위의 모든 용의자들은 원작에도 없는 자신의 사연을 푸아로 앞에서 털어내기 바쁘며, 이로 인해 추리 영화의 필수 요소인 "떡밥"의 관리가 소홀해져버린다. 교묘하게 연결되고 순서를 건너뛰어가며 진실의 문양을 서서히 띄어야 할 떡밥이 인물들의 하소연으로 인해 뚝뚝 끊어지고 생기를 잃는다. 그 결과 영화의 템포는 나일강의 길이만큼이나 늘어지고 따분해져 추리는 이미 저 멀리 밀려났음을 느낄 지경이 되어버린다.
영화의 말미에 들어서자 그제서야 추리가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버린 주인공의 의자는 다른 잡다한 것들이 엉덩이를 들이 민지 오래다.
카리스마를 되찾으려 목소리에 힘을 싣는 푸아로의 외침은, 마치 자신의 자리 외엔 어디라도 돌아다닐 수 있는 기세로 뛰어다니는 유치원생들의 귓등을 스치는 잔소리 정도의 위력 밖에는 지니지 않는다. 애처롭고, 외면받으며 사태를 진정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붉은색. 사랑, 그리고 생명.;사랑의 화신. 자클린.
사진 출처:다음 영화
영화 속 모든 사람들은 사랑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마치 이 배 위에 승선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승차표의 값으로 내야 했던 것처럼.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아주 조금씩의 위선과 비밀을 적당히 뒤집어쓰고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눈과 사회의 위치라는 감시망 덕에 적당히 숨겨진 채 마음속에서 선뜻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재클린(에마 매키)의 사랑은 다르다.
그녀에게 사랑은 생명과도 같고, 사랑이 끝나면 목숨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라 말하는 만큼 재클린의 태도는 열정적이다. 자신의 그 불타는 감정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음은 두말할 것 없다. 그녀는 사랑의 화신임과 동시에 순수함을 상징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사랑에 대한 태도는 리넷(겔 가돗)을 대하는 것에서도 차이가 난다. 다른 사람들 모두 리넷이 가진 돈에 관심을 보일 때. 재클린은 그런 의도 전혀 없이 리넷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리넷 또한 엇갈린 사랑으로 인해 재클린을 잃는 것이 마음 아팠던 것이다. 어쩌면 재클린은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조각의 순수였을 테니.
드레스만큼이나 붉은 그 열병을 유지하기 위해 죄 없는 세 명의 피를 제단에 바칠 때도. 그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제단 위에 기꺼이 자신의 순수함과 영혼마저도 올려놓고 나서야. 재클린은 깨달았다. 열정만으로 가득했던 사랑은 이미 이 배를 타기 전에 끝이 났다는 것을.
재클린의 죽음은 마치 그녀의 말에 대한 책임감처럼, 피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500일의 썸머 푸아로편;그의 성장기
사진 출처:다음 영화
추리 소설의 중심은 탐정이 되어야 한다.
그는 작가의 분신이며 사건의 중재자인 동시에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탐정의 정체가 회색 뇌세포를 가진 푸아로라면, 기꺼이 영화의 많은 지분을 할애했어야 했다. 그러나 영화는 그러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영화 초반에 암시하는 푸아로가 겪은 사랑의 상실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쟁 중 자신의 사랑을 잃었고 이로 인해 마음마저 회색빛을 띤 채 영원히 자물쇠를 채운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로 인해 푸아로의 눈은 다른 인물들이 가진 사랑, 혹은 사랑의 상실에 더 많은 관심을 얹어 세상을 보고 있었다. 마치 이별 뒤에 들리는 모든 노래들이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노래로 들리는 것처럼 말이다.
비록 수단과 방법은 잘못되었지만.
사랑에 대한 열정을 확실히 보여주고 숨을 거둔 재클린을 보며. 푸아로는 사랑의 상처를 안고도 살아가는 법에 대해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잠깐 보인다.
그는 마치 영화 [500일의 썸머]의 톰(조셉 고든 레빗)이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여름 정오의 햇빛 같던 썸머(Summer,조이 데샤넬)를 건너 드디어 오텀(Autumn)을 만날 준비가 된 것처럼. 자신의 상처임과 동시에 다음 사랑의 장애물 같기만 했던 멋들어진 콧수염을 자르고 살로메(소피 오코네도)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푸아로는 "탐정"이 아닌 "사람"으로의 역할을 자처한 셈이다. 중심인물이 가진 문제점이나 결핍은 늘 한 작품의 주제를 차지하고 뒤흔들기에, 이 작품은 추리 영화로서의 매력을 단 하나도 보여주지 못한다. 나일강을 여전히 표류하고 있는 배 마냥. 영화는 그렇게 그냥 물살에 흘러가 버리다 끝이 나 버린다.
마치면서
원작을 알고 보는 사람이라면 매우 아쉬운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많은 감정선들이 생략되었고 푸아로의 능력에 감탄해 문장 사이에 머물던 시선을 빨리 끌어당겨 책장을 넘기게 하던 긴장감을 영화에서 재현하지 못했다.
영화 자체가 푸아로 개인의 성장에 희생당한 느낌이 든다.
물론 탐정이라고 해서 매일 사건 속에 파묻혀야 하는 것만은 아니겠지만, 이번 영화에서의 명탐정은 자신의 의무는 모두 내려놓은 채 제목과 원작에서 오는 모든 스포트라이트만큼은 다 챙기려 한다. 이 점이 원작의 영화화를 기대하던 모든 관객들에게도 아쉬움을 남길 것이다.
참고 1
많은 표기법이 있지만 정식 한국어판에서 쓴 이름으로 통일하기로 한다.
[이 글의 TMI]
1. 다이어트 중간보고:8킬로 감량.
2. 독일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살 빠졌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나일강의죽음 #영화추천 #최신영화 #에르큘포와로 #추리소설원작영화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영화리뷰 #케네스브래너 #갤가돗 #레티티아라이트 #애거사크리스티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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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입 베어 물어 보면
SYNOPSIS.
퇴근 후 뱀파이어 웹툰을 그리는 웹툰 작가이자 비정규직 웹디자이너 ‘정서’(나애진). 남자 친구 ‘경현’(강봉성)과의 결혼을 앞두고 서울의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지만 계약금 준비가 쉽지 않다. 이에 엄마 ‘미영’(박현숙)은 이혼할 때 ‘영주’(안석환)에게 받은 차용증이 붙은 색소폰을 건네주고, ‘정서’는 아버지 ‘영주’가 있는 강원도 동해시의 묵호항 벌교횟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가깝지만 먼, 낯선 가족들의 욕망에 휘말리게 되는데…
POINT.
✔️ 다양한 배우들의 연기가 맛깔나는 작품. 주연 나애진 배우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시상헀으며, (대단한 거 알았지만 역시나 너무나도) 대단한 안석환/박현숙 배우의 호연도.
✔️ 그리고 이 호연은 촘촘하게 설정된 캐릭터와 미술이 있기에 가능. 저기 어디 사는 누구처럼 느껴지는 캐릭터들.
✔️ 묵호라는 공간을 훌륭하게 활용한, 좋은 로컬시네마
✔️ 음악감독 김사월. 상서롭고 신비롭게 퍼지는 음악과 중간중간 색소폰 소리, 엔딩크레딧에서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사운드까지 모두 좋았습니다!
✔️ 어쩌면 우리가 '한국 독립영화'에 기대하는 건 바로 이런 영화 같기도!
✔️ 영화는 1월 15일 개봉합니다.
혈연이라는 말의 무게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들 중에 '피가 당긴다'는 말이 있다. 대충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어감에 더해, 그래서 어쩔 수 없을 만큼 속절 없이 끌린다는 어감으로 쓴다. (비록 구글 검색 결과는 고혈압이 나왔지만... 종종 들어본 말이다. 나만 들은 건 아니겠지?) 그런가 하면 부모자식처럼 혈연으로 가까운 사이를 더러는 '피붙이'라고도 한다. 늘 그렇다. 피라는 단어는 끈끈한 단어들과 접착력이 좋다. 비록 실제 피는 매우 주의해서 섞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점에서 가족영화에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작게나마 붙이는 것은 생각보다 좋은 조합이다. 보통 뱀파이어물에 가족을 작게 붙이는 형태에 더 익숙한 우리에게 상당히 생소한데도 말이다. 가족은 사랑과 돌봄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여야 하기에 많은 경우 간과되지만, 사랑 없이 돌봄의 역할만 부여하는 것은 결국 고혈을 빨아먹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영화에서 뱀파이어는 정서가 업무 전후 시간에 틈틈이 그리는 웹툰에 등장한다. 포털에 웹툰을 연재하며 언젠가 웹툰 작가로 대박 날 꿈을 꾸는 동시에, 디자인 회사에서 비정규직 자리를 간당간당 유지하고 있다. 익숙한 사회 초년생의 모습이다. 청약을 발판 삼아 결혼을 준비하고, 지금 하는 일과 양립 가능한 파이프라인을 찾고... 그러나 무엇 하나 녹록하지 않은 모습이.
어찌저찌 피붙이라는 말에 걸치기는 하지만, 혈연 관계가 애매한 새 가족이 섞여 있고, 그나마 그들을 보지 않은 시간도 꽤나 길었다. 그 어색한 관계 위에, 영화는 가족 구성원들이 가진 각자의 욕망과 각자의 계산을 촘촘하게 보여준다. 이들은 아무튼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고, 그걸 거부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자기 속내를 언제 드러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래서 어쩐지 이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조금 촌극처럼 보인다. 이는 정서의 예비 남편인 경현까지 등장하면서 극에 달한다.
가짜처럼 뻣뻣한 법적 '진짜'와
어떻게 보면 정해진 듯 자연스러울 수도 있는 광경이다. 청약이 당첨된 아파트를 위해 계약금을 마련해야 하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은데, 그러려면 부모님이 각자의 자리에서 쌓아 온 역사를 관망하게 되고, 다소 현타가 오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친구들 앞에서는 또 자랑처럼 이야기하고. 아무튼 돈은 필요하니까 예비 신부를 달래 가며, 한우와 과일을 사서 재빨리 달려오는 남자친구의 모습까지.
그러나 이러한 장면들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자꾸 불화한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혈연을 기반으로 한 아빠-정서의 관계 혹은 엄마-정서의 관계, 혼인이라는 법적 안정성을 기반으로 하는(혹은 했던) 아빠-엄마의 관계, 아빠-새엄마의 관계, 경현-정서의 관계가 각각 뱀파이어 이미지와 맞물리면서 다소 차갑게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차용증을 보내는 게 자연스러운 엄마와 아빠도 그렇다. 아빠와 헤어지고 열심히 일하면서 정서를 키운 엄마의 역할은 누가 보아도 톡톡했을 것이고, 아빠 또한 나름대로 용돈이나 다른 방법들로 정서와의 혈연을 자연스럽게 연장해 나간다. 이들은 딸에 대해 의무가 있음을 알고 있고 또 가끔은 권리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세 사람 사이의 관계는 차용증 때문인지 다소 역할극처럼 뻣뻣하다.
경현과 정서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마루와 강아지 같은 부드럽고 희망적인 일상어들을 사용해 미래를 설계하지만, 아파트 하나만 빠지면 훅 위태로워질 관계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규직-비정규직의 차이, 안정적 삶을 위해 회사를 버티고는 있지만 사실 그 안에서 포기한 각자의 꿈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점 등이 하중을 보탠다.
진정성 있는 '가짜'와
애초에 별로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는 관계로 시작했고, 서운하면 "가짜 언니"를 운운하고, 멀리 산 시간이 있어 서로 신뢰가 깊지 않음에도, 오히려 정서-정해 자매의 관계 쪽이 좀더 가족의 바이브를 풍긴다. 이들을 가족으로 묶어낸 것은 공간을 공유했다는 것 하나 뿐이다. 심지어 같은 시간에 존재하지도 않았는데도 이들은 공간을 공유한 상대의 시간을 미루어 보며 친근감을 느낀다.
정서가 고향 집에 두고 간 것들을 정해도 먹고 자랐다. 정서가 본 영화 제목에서 거북이 이름을 따 오고, 오래된 만화책을 쌓아 놓던 언니가 그린 웹툰에 좋아요를 꼬박꼬박 누른다. 담배나 남자친구처럼 아직은 부모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언니의 그림자를 느끼며 살았다. 정서 또한 자신이 거쳐 온 시간과 중간중간 닮아 있는 정해가 아주 먼 존재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얼핏 대조적인 것 같지만 사실 둘 다 각자의 삶에 매여 있는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도움을 구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동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 제법 괜찮은 자매의 모습처럼 보인다. 가족을 가족으로 만드는 건 무엇일까. 혈연은 중요한 요소지만 혈연이 다는 아니라는 문장은 이제 진부하지만, 여기서도 명확히 느껴진다.
내 안의 '진짜'와 '가짜'
사실 피를 빼앗기기도 하고 내어주기도 하는 뱀파이어는, 피의 이동 방향만 놓고 보면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다.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촌극처럼 뻣뻣한 장면을 연출하는 관계가 있고,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녹아든 면을 보여주는 관계가 있지만, 전자가 절대악이고 후자만이 진짜인 것은 아니다. 가족은 그냥.... 그런 것이다. 늘 진심이기만 한 관계는 없다.
여기에는 우선 정서의 내부에도 '진짜'와 '가짜'가 오가고 있는 존재라는 것, 이 사회에서 사는 우리 모두 실은 진정성을 품을 때와 적당히 뻣뻣할 때가 있는 존재라는 이유도 있다. 자본이 사람을 얽어매고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이 첨단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가 진짜 원하는 모습도 아니라 그냥 '남들 다 그러고 사니까' 정도의 감각을 갖기 위해서 자아의 어떤 부분을 버려야만 충족될 수 있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정서의 가족에서는 차용증이라는 형태로 매우 명백히 드러났고, 그만큼 아빠의 욕망이 유난히 두드러지지만... 사실 그 감정 자체는 낯선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일 만한 것들이다. 오랜 친구, 결혼을 약속한 연인, 가족의 관계에서도 이는 온전히 예외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자아는 영영 버려지지 않는다. 지금은 환멸밖에 남지 않은 정서의 아빠와 엄마 사이 같지만, 어렸던 정서에게 아빠가 남긴 색소폰 연주 CD에 얽힌 추억을 말하는 엄마는 분명 빛바랜 사랑과 오랜 상처까지 스산하게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었다. 오래 전에는 사랑만을 가득 끌어안고 있었을 사람. 지금은 욕망의 폭주 기관차처럼 살고 있는 아빠는 뿌리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또한 생선 머리를 단숨에 잘라 피가 배지 않도록 회를 치는 기백을 정서에게 물려준 사람으로서, 그 열정을 사랑으로 승화했던 시간이 있었으리라.
자본주의 사회의 차가운 은빛 단면이 우리의 살갗에 끊임없이 느껴지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은빛 살구라고 하지만, 은행에는 고소한 속살이 있듯이.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결말과,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에 강렬하게 깔리는 사운드가 마음에 들었다. 그게 마치 정서의 은행 속살 같아서. 김치찌개에 먹는 밥 두 그릇 같아서.
어린 시절을 묵호에서 보낸 정서의 그림에는 곰치를 비롯한 물고기들이 등장한다. 졸업 작품을 큰 돈 들여 구매하는 아빠나 물고기 위에 기어이 매직펜으로 정서의 이름을 적게 만드는 엄마나, 둘 다 정서의 마음 가까이에 있지 않은 건 매한가지지만, 정서의 물고기들은 붉은 피를 넘어서 푸르게 생동할 것이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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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피커 인터뷰] 프로덕션 대표 / 풀림필름, 창업
Q. 프로덕션 창업 계기는?
A. 영화과를 졸업을 하고 나서 오랫동안 영화를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되게 많이 들었는데 영화라는 직업이 사실은 그렇게 안정적인 직업은 아니다 보니까 그리고 제가 글을 쓰고 제가 영화를 만든다고 그래서 당장 누가 돈을 주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내가 안정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오랫동안 하기 위해서는 뭔가 그렇게 만들어주는 수단이 있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었고요.
학교에서 영상 만드는 걸 배웠고 영화 찍었던 버릇이 있으니까 이걸 살려서 영상 프로덕션을 한번 창업을 해보자. 그때 시작할 땐 인맥도 없고 뭐 아무것도 없이 그냥 친구들이랑 해보자 해서 시작을 했었습니다.Q. 친구들과 함께 창업하게 된 계기는?
A. 동네 친구들 3명이랑 같이 창업을 했는데, 그렇게 거창한 의미에서 시작을 했던 것은 아니었고, 때마침 또 친구들도 다 군대 전역을 했고 저도 졸업을해서 고민을 하던 찰나에 프로덕션을 할 건데 혼자 하기에는 자신이 없었어요. 그러곤 옆에 딱 봤더니 친구들이 있고, 사실 친구들은 그 당시에는 전공을 하지도 않았고 영상 쪽을 아예 시작을 안 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하자 했죠.
Q. 풀림필름이 하는 일은?
A. 일단은 모든 영상들을 제작을 하고 있고요. 요즘에는 주로 웹 드라마 제작을 많이 하고 있고 행사 스케치 영상, 기업 홍보 영상, 인터뷰 영상,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영상들을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웹 드라마로 자리를 잡는 것이 목표고요. 나아가서 ott가 되었든 혹은 영화가 되었든 구분 없는 이야기가 있는 영상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Q. 친구랑 창업해서 좋은 점은?
A. 좋은 점이요? 일하는 게 재밌습니다. 일하는 게 재밌고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체력적으로는 힘든데 그냥 친구들이랑 같이 있으니까 그렇게 막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것 같습니다.
Q. 친구들은 전공이 아닌데, 역할 분담을 어떻게 했는지?A. 일단 제가 연출을 했었고, 이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유가 뭐냐면 전공이 아닌 친구 중에 한 명이 갑자기 유튜브에서 편집을 해보고 싶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넌 편집을 해라 그렇게 된 거고, 다른 친구는 예전에 잠깐 문창과 입시 준비를 했었어요. '그럼 너는 글을 써보고 나랑 같이 연출 쪽을 하자', '그럼 일단 넌 조 감독으로 시작을 하자' 그래서 시작을 했었죠.
Q. 프로덕션에서 안소회 감독님의 역할은?
A. 영업이랑 미팅 같은 것들이 있을 때도 제가 하고, 영상 의뢰가 들어오면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고 구성안이 될 수도 있고 연출까지 제가 하고 있고요. 연출이자 CP자 PM이자 EP이자 그런 것들 다 제가 하는 거죠. 나중에는 저는 제작을 하고 연출 감독을 따로 두는 메커니즘도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계속 연출을 하고 싶고, 사실 나눌 만한 정도의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해서 계속 연출을 할 것 같아요.
Q. 프로덕션 운영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A. 돈이죠, 돈. 사실은 이게 다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이잖아요. 근데 돈이 없는 게 제일 힘든 거죠. 일을 할 준비는 다 되어 있는데 일이 없다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고, 업계 자체가 그렇게 호황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영상 업체가 너무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경쟁력을 가져야 하고, 퀄리티 경쟁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퀄리티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의뢰가 들어와야 하잖아요. 그렇다고 오리지널을 만들자니 그것에 대해서도 투자 자본금이 필요한 상황이고, 돌고 돌아서 돈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게 돈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시작한 프로덕션인데 오히려 더 하고 있는? 그런데도 또 같이 일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뭔가 한 건, 한 건 프로젝트를 수행했을 때 얻는 보람 같은 것들 때문에 놓지 못하고 계속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Q. 프로덕션에서 하고싶은 작업이 있다면?
A. 요즘에 워낙 또 버추얼이라든지, 그동안 좀 쉽게 접하지 못했었던 기술과 예술이 종합하는 결과물들이 되게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것들을 한번 시도를 해보고 싶기는 합니다.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영역들의 한계가 좀 없어지는 느낌인 것 같아서, 아직 해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꼭 시도를 해보고 싶은 영역 중의 하나입니다.
Q. 감독님의 최종 목표가 있다면?
A. 처음에 프로덕션을 시작할 때 프로덕션의 목표와 제 목표를 나눠서 고민을 했었어요. 나는 영화 감독이 되고 싶고 프로덕션에서는 돈만 벌어갔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한 지가 4년 차거든요.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그게 조금씩 하나로 합쳐지는 것 같아요. 내가 이곳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 라는 생각이 지금의 제 목표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어떤 매체가 되었든 ott가 될 수도 있고 tv가 될 수도 있고 영화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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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화와 불화하며
살아서도 죽어서도 파파라치와 가십의 대상이었던 프린세스 다이애나를 다룬 영화에서, 마찬가지로 수많은 파파라치와 가십에 둘러싸여 여기까지 온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연기한다. 자연히 이 영화를 기대하는 눈길은 많았지만, 과연 지금은 그 눈길에 파파라치의 시선이 없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도, '사건'을 보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그만큼 사건이 많은 삶이었다.
사진 속 프린세스 다이애나의 미소는 지금 보아도 산뜻하다. 지금 보아도 한 컷 한 컷이 화보처럼 보일 만큼 당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이었고, 왕세자의 불륜과 영국 왕실의 '지엄한 법도'에 눌리면서도 누구보다 선명한 존재감을 보인 사람이었으며, 봉사활동을 다니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면에서는 단단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전 세계의 열광을 받은 사람. 삶의 어느 조각을 잘라내어도 극적인 사건을 찾을 수 있을 듯한 사람.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도 다르지 않다. 판타지를 결합한 하이틴 로맨스 <트와일라잇>으로 로버트 패틴슨과 나란히 인기를 끌었고, 두 사람은 반짝 스타처럼 보였다. 연기력이나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고, 둘의 연애사는 지구 반대편까지 알려지는 걸로도 모자라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트위터에 친히 (그것도 몇 번이나) 언급되었다.
그러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세간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반짝 스타처럼 보였던 이들은 (공교롭게도 둘 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끝까지 끌고 가면서도, 동시에 결이 전혀 다른 작품을 파고들며 자기 자리를 직접 만들어 간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최근작만 살펴보아도 <트와일라잇> 때와는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나 <퍼스널 쇼퍼>, 가장 최근에는 <세버그> 등 다양한 작품을 해온 (사이에 트럼프의 트위터를 방송에서 읽기도 하면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마침내 <스펜서>에 다다른다.
가십과 파파라치에 둘러싸인 두 존재의 만남이었다. 불화와 불화하며 걸어온 존재의 만남.
그 자리, 영화 <스펜서>는 프린세스 다이애나 삶의 어느 특정한 사건보다는, 그를 둘러싼 분위기와 감정을 공 들여 재현했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별장에서 왕실 식구들이 머무르는 3일을 배경으로 한다. 그 3일 동안 다이애나는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보여야 하고, 가려야 한다. 시놉시스는 그게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실존 인물의 삶에 대해 알려진 바에 비하면 기승전결의 낙폭이 큰 영화는 아니다. 대신 촘촘하게 나아가 감정에 사람을 가둔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무엇을 보이고 무엇을 가릴지 엄격하게 정해진 세상에서 다이애나를, 뒤이어 관객을.
다이애나는 그 3일의 휴가를 시작하러 들어가는 길부터 규정을 깬다. 누구의 엄호도 받지 않고 직접 차를 운전해, 길가의 식당에서 여기가 어딘지 묻는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는 그 감정의 내부. 습도 90%의 무더운 날씨처럼 답답한. 여기에는 다이애나가 처한 상황 못지않게, 3일이라고 시간 배경을 딱 잘랐음에도 시간이 선형적이라 느껴지지 않는 전개 탓도 크다. 영화의 많은 장면은 현실과 다이애나의 상상을 오락가락하여,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즉각 파악이 어렵다. 그 여부가 관객에게는 조금 지나고야 도달하게 된다. 진주 목걸이를 힘껏 뜯어버리는 상상, 고풍스러운 복도를 헐떡거리며 걸어가는 모습,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변기 앞에 고개를 숙인 마른 등뼈, 스펜서 저택에서 계단을 밟는 모습.
그런 사람들이 있다. 과거를 덧입고 현재를 사뿐 뛰어넘어 미래로 날아가 버리려는 사람. 그의 고향은 미래가 아니었을까 묻게 만드는 사람. 현재에 들어맞지 않아 불화하지만, 물리적으로 현재를 벗어날 수 없으니 미래에 속할 수도 없다. 현재에 같이 있는 이들의 눈에는 더없이 불안해 보인다. 점멸될 듯 깜빡깜빡 현재를 산다.
대신 그가 죽은 후, 그에게 미래라 불렸을 시간이 도래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먼 훗날, 그의 미래를 현재라 부르는 이들이 돌이켜보면, 그는 과거의 사람임에도 자신이 존재했던 시절에 매이지 않고 현재에까지 유령처럼 남아 부유하고 있다. 그가 날아든 미래가 바로 여기였던 것이다.
다이애나는 그런 사람이다. 잊히지 않고 미래에서도 계속 언급되는 사람이다. 영화 <아멜리에>의 등장인물들이 계속 다이애나 이야기를 하듯이. 사후에도 그의 일부가 살아 있지만, 살아생전에도 그의 어떤 면은 유령처럼 부유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스펜서>는 프린세스 다이애나를 둘러싼 사건과 가십들을 걷어내고, 그의 유령을 옷과 목걸이 아래 재생해 놓은 영화다.
그러니 다이애나가 끊임없이 유령을 인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는 앤 불린에게서 자꾸 자신을 본다. 오래된 방의 먼지에서는 과거의 여왕에게서 탈각된 신체 일부를 느낀다. 훗날 유령이 되는 이들만이 유령을 볼 수 있다. 과거의 유령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것도 이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물리적으로 매인 몸이 시간을 유영하는 마법은 오직 마음으로만, 연민으로만 이루어진다.
다이애나가 영화 속에서 계속 거부하는 행위들은 철저하게 몸에만 속한 행위들이다. 먹기와 입기. 엄밀히 말해, 정해진 대로만 먹고 정해진 대로 입기. 대신 그는 계속해서 어디론가 움직인다. 걷고 뛰고 운전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옆에 놓인 패스트푸드 봉지는, 그가 먹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그가 자유롭게 움직여 구입한 물건이기도 하다. 그가 운전한 자동차처럼, 그가 뛸 때 흩날리는 모자처럼, 몸 이전에 마음에 속한 행위의 결과물인 셈이다.
유령을 보다가 유령이 되다가 하는 느낌으로, 상상과 현재를 뒤섞어서, 다이애나라는 인물은 어딘가에 갇힌다. 음습한 공기마저 담아내는 클레르 마통의 카메라, 그 습도에서도 팽팽하게 목을 옥죄는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이, 갇힌 자리에 자물쇠를 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다이애나에 가려졌다가, 보였다가, 반복하면서 그 자물쇠를 걸어 잠근다.
갇힌 그 자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는 유령을 기다린다. 다이애나의 영혼을, 미래에서 기다린 이들과 조우하게 만든다. 사실 다이애나 생전에도 정직한 애정만으로 그를 바라본 이들은 있었을 것이다. 황색 언론 너머에서 호의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샐리 호킨스가 연기한 캐릭터 매기처럼, 너무 다정해서 오히려 환상 같고 미래 같은 그런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허수아비가 입고 있던 아버지의 옷을 수선해 준 매기의 손길처럼, 어떤 애정이 다이애나의 어깨에 걸쳐진다.
다이애나가 책을 통해 앤 불린의 영혼을 소환했듯이, 관객이 갇힌 자리에 다이애나의 유령이 현재로-즉 다이애나의 미래로- 소환된다. 이것은 일종의 위령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앤 불린이 다이애나에게 한 것 같은 위로로 누군가에게 다가갈 것이다. 당대와 불화하며, 선대의 유령과 먼지에 자신을 비춰보는 존재들에게. 당신을 환대하는 마음이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당신은 사라져도 아주 사라지지 않는다고.
불화와 불화하며 현재를 사는, 미래에서 다시 만날 누군가를 생각하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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