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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usmesentez2025-05-06 17:06:57

너는 나 나는 너

나는 나야, 둘이 될 순 없어.

  인간은 선형의 시간선 위에 놓인 존재로 앞에서 뒤로 전진한다. 처음에는 출생이 있고, 끝에는 죽음이 있다. 모든 인간에게 죽음은 반드시 찾아오지만, 그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예측 불가능한 유한함'은 현재를 소중하게 만든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은 어떤 변명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 때 고백을 했어야 했는데... 15년을 짝사랑했던 여자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했어요. 하루만 시간을 주세요'와 같은 후회섞인 애원은 저승사자를 난처하게 할 뿐,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불가역', 그것이 죽음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의 끝에서 여한없이 후련하게 눈을 감기 위해서, 그리고 저승사자를 난처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매순간 충만하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안정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 예시를 보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자녀에게 부모님이 학습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동원하는 아주 보편적인 수법은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공부 안하면 나중에 큰일난다. 돈 없이 힘들게 살래?' 어두운 미래를 담보 삼아 불안감을 조성하며, 쾌락을 추구하는 현재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지금 조금만 고생하고 좋은 대학 가서 멋진 친구들이랑 실컷 놀아.' 환상을 심어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현재의 유예를 미래를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그 미래가 현재가 되는 날 후회한다. '아 그때 조금 더 즐겨볼 걸...'

 

 

 

작은 행복의 유예가 더 큰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므로,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균형이다. 

 

 

 

-

 

 

 

  서브스턴스는 시소에 올라탄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옥신각신하는 이야기다. 

 

 

 

더 나은 나를 꿈꿔본 적 있는가. 

 

  

 

  인간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탐하고, 이미 가진 것은 쉽게 잊는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이유는 나의 떡이 그것보다 작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교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추동이 되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갉아먹게되는 고약한 습관이다. 

 

  무엇보다 자기 비교는 치명적이다. 내가 알던 내가 아닌 것 같을 때, 과거에는 우수했던 것이 지금은 보잘 것 없을 때 가장 크게 무너진다. 탓할 것이라고는 오직 자신의 게으름과 세월의 무심함 뿐. 가졌던 것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 줬다 뺐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 아닌가. 젊음은 자기 비교의 가장 큰 요소다. 젊음은 소중함을 깨닫기 어려운 삶의 가장 취약한 시기에 잠시 머무를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젊음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뒤늦게 소중함을 깨닫고, 가졌던 것을 빼았겼다는 억울함에 더 큰 좌절을 느낀다. 

 

 

 

  엘리자베스는 반짝 빛나는 스타'였'다. 소싯적 빛나는 외모로 인기를 끌며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으나, 세월이 흘러 한풀 꺾여서는 TV 에어로빅쇼 호스트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시청률에 목을 매는 사장 때문에 이제는 그마저도 위태롭다. 더 젋고 예쁜 히로인을 원하는 사장은 엘리자베스를 내치고 새로운 인물을 구하기로 결심한다. 

 

 

 

  엘리자베스는 무상한 세월 앞에서 더 나은 자신을 꿈꾼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시켜줄 수 있을 더 아름답고 더 탄력있는 존재. 서브스턴스는 내가 꿈꾸는, 더 나은 자신을 잉태시키는 약물이다. 주사 한 번이면 새로운 내가 태어난다. 주의사항은 균형을 지킬 것. 7일 주기로 지금의 나와 새로운 내가 번갈아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를 통해 수를 탄생시킨다. 수는 과거의 엘리자베스가 그랬듯, 모든 남자의 선망이 된다. 더 아름답고 더 탄력있다. 사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당연한 수순. 새로운 히로인으로 발탁되어 화려한 제 2의 삶을 시작한다. 보그 모델, 새로운 쇼의 호스트, 신년 전야제 출연까지. 높이 올라갈수록 욕심은 늘어나고, 수는 욕망에 눈이 멀어 균형을 깨트리고 만다.

 

 

 

  균형을 깨트린 대가는 치명적이었다. 엘리자베스의 손에 변형이 생겼고, 자신의 몸을 더욱 추하게 느끼기 시작한다. 엘리자베스는 수가 또 다른 자신이 아닌, 자신을 괴롭히는 독립된 인격체로 인식하며 증오하기에 이른다. 폭식을 일삼으며 수에게 죄책감을 전가했고, 수는 무책임한 엘리자베스를 혐오하며 균형을 더 극단적으로 무너트린다.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엘리자베스와 수는 서로를 부정하면서 자기혐오의 굴레에 갇힌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을 착취해서 쾌락을 얻는 수를 증오한다. 수는 자포자기 상태의 무력한 엘리자베스를 증오한다. 당면한 쾌락에 눈이 멀어 다가올 어둠을 회피하는 수는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만끽하는 자식의 모습과 닮아있다. 지금을 긍정하지 못하는 엘리자베스는 현재의 희생을 강요하는 부모의 모습과 닮아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질 나의 모습이 두려운가. 변화의 다른 이름은 재발견이다. 변한 것이 아니라,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이라고 생각해보라. 그것은 자신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일 뿐이다. 포크의 제왕이었던 밥 딜런이 록이라는 새로운 대륙에 정착해 포크록을 꽃피운 것처럼. 어떤 모습이든 당신은 하나다.  

 

 

작성자 . vousmesentez

출처 . https://brunch.co.kr/@vousmesentez/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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