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2025-04-23 03:00:26
어둠 속 빛을 담는 여성들의 두 눈,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내 안에서 영화의 개념화는 서양, 특히 유럽과 미국의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 시절 영화를 제대로 전공해보자고 결심한 이후 처음 수강한 강의가 프랑스, 미국, 영국 등의 영화들로 모든 역사적 자취를 설명하는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영화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존재했는지, 하다 못해 아시아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수업을 탓할 수는 없다. 영화가 설명되는 방식이 으레 그랬으며, 눈을 돌려 관심을 가지더라도 그 범위를 벗어나는 정보는 알기 어려웠다. 서양 국가를 주제로 한 발표와 그 외 국가들에 대한 발표는 분량부터 차이가 났다. 유수한 영화제라 불리우는 국제영화제들은 모두 일부 국가들에게 집중되어 있으니 그럴 만했다.
영화를 더욱 넓고 깊게 소비하게 되었다고 자부하는 지금의 나 또한 변함 없이 몇 국가의 작품들과 그 방식에만 익숙해져 있었고, 다양한 국가영화를 접하고 싶던 차에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었다. 여성감독이 여성 주연들과 함께 연출한 작품이었기에 더욱 눈이 갔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으나 그들의 녹록치 않은 삶을 멀리서나마 접해왔기에 영화로 만나는 인도 여성들은 어떤 모습일지 하루 빨리 알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는 빛을 상상하는 게 어려워요” 시간을 훔치는 대도시 뭄바이,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에겐 해결되지 않는 사정들이 있다.
그러나 세 여자의 우정은 작은 빛을 만든다.
미리 말해두겠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여성영화는 아니다. '세 여자의 우정은 작은 빛을 만든다'라는 문장을 보고 당신은 무엇을 떠올릴 수 있는가? 여성들이 모여서 함께 주거공간을 꾸려 나가거나, 기혼/미혼/비혼 여성들의 각 가치관들이 모여 건강한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라 감히 예상해본다. 그렇다면 해당 작품을 관람하고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오히려 남성과의 연애와 결혼이 자연스럽게 스토리의 주축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 내에 만연한 종교에 따른 가치관과 여성을 억압하는 뿌리 박힌 것들에 맞서는 요소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도 여성'들에게 동일시되어야 조금 더 잘 보이는, 하지만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는 섬세한 작품임은 명확하다.
* 뭄바이를 느낄 수 있는 오프닝 시퀀스
극의 첫 장면은 누군가가 인터뷰를 하는 듯한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뭄바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겪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다른 목소리들이 짧게 풀어낸다. 그리고 배경은 분주히 움직이는 도시의 밤을 그대로 담아낸 샷들이 나온다. 빠르게 이동하는 차량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 가운데 수많은 빛들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자동차 전조등, 조명, 기차 혹은 지하철이 뿜는 빛. 고스란히 빛을 받는 사람들은 어쩐지 지쳐보인다. 이렇다 할 주인공 없이 도시 그 자체를 담으며 꽤 긴 시간동안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는 흡사 다큐멘터리 영화 같기도 하다.
그만큼 도시의 모습을 충실하게 담아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복잡한 도로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토바이의 행렬은 베트남 하노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하노이에서 잠깐 머물렀던 적이 있다. 언어를 공부하며 영상도 제작하고자 했던, 도시를 마음껏 즐기다 떠나면 되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도 문득 외로움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버거운 마음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이렇게 상상만 하던 현지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게 된 느낌이었다. 눅눅한 공기와 도로의 소음, 즐비해 있는 길고 얇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가는, 도시의 오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샷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 여성들의 사소한 일상 또한 상세하게 묘사된 덕분에 그들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 가는 극을 경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컸다.
** 감각적인 이미지와 사운드
초반부가 다큐멘터리 같았다면, 중반부는 실험영화 같은 면모를 보인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프라바'와 '아누'의 일상이 리드미컬한 사운드와 함께 독특한 편집으로 표현된다. 하루종일 좁디 좁은 사무실에서 고객 응대를 하고 있는 '아누'가 종종 나누는 문자 텍스트가 자막으로 화면에 보이는 호흡은 여느 극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힙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직관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장난기 서린 음악이 본능적인 호감을 자아냈다. '아누'가 단독으로 나오는 사무실 몽타주는 아주 귀엽고 익살스러운 연기가 매우 돋보인다.
시간을 훔치는 대도시는 주로 밤으로 표현되었지만 모든 걸 뒤로 하고 바닷가 마을로 모인 세 주인공의 시간들은 대부분 낮으로 구성된다. 어둠에 잡아먹힌 도시와 달리 한적한 바닷가는 눈부신 빛으로 가득 차 있다. 푸른 나무들 사이로 뻗어 나가는 빛줄기를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게 화면에 담아냈다. 그리고 마지막, 세 주인공이 모인 장면에서는 ㅡ 알게 모르게 쌓아 두었던 마음 속 응어리가 풀린 채 ㅡ 새까만 하늘과 밤바다 속에 별과 조명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비로소 그들의 주변 환경을 이루던 모든 빛이 한 데 만난 것이다.
다만, 극영화로서의 힘은 약하다. 각 등장인물의 서사는 미약하며, 접점은 모호하다. 현재진행형의 일상을 제시하는 방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 연락이 오지 않는 남편을 기억하는 '프라바'와 사랑하는 이가 있음에도 숨겨야 하는 '아누', 일평생 살아왔던 공간을 집이라고 인정 받지 못하는 '파르바티'. 각 사건들의 앞뒤상황이 제시되지 않는 만큼 그들의 감정선에 이입하기도 쉽지 않다. 심지어 플롯 자체는 느리고 차분하게 진행된다. 명확한 대사보다는 주어가 분명하지 않은 비유적 표현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스토리의 흐름에 탑승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다큐멘터리 영화였다면 수작이라고 판단했을 거 같다.
*** 어둠 속 빛을 담는 여성들의 두 눈
극중 '빅 클로즈업' 샷이 자주 사용되는 특징이 눈에 띄었다. 특히 얼굴, 그리고 얼굴 중에서도 눈 주위를 중심으로 샷을 잡는다. 눈은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사물의 상을 담는다. 그리고 그 눈은 항상 빛이 있다. 주인공 자체가 빛이기에 바라보는 모든 사물들에도 자연스럽게 빛이 옮기는 건지, 눈이 향하는 모든 곳에 빛이 있었고 그대로 담아냈을 뿐인지 알 수 없다. 정확한 건, 빛은 어둠이 있기에 인식될 수 있다. 어둠 속에서는 빛을 상상할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 나자신 혹은 어둠 속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빛 그 자체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감독이 바라보는 인도, 여성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드러낼 줄 알고 그들의 우정이 존재하는 한, 그곳은 애써 빛을 상상하려 하지 않아도 애초부터 희망이 함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당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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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주 개봉영화 5편!
캔디맨 Candyman , 2021
'겟 아웃', '어스 조던 필 감독 공동각본 제작
영화 "캔디맨"은 조던 필 감독 공동각본 제작 작품으로,
거울을 보고 이름을 다섯 번 부르면 나타나는 미지의 존재 ‘캔디맨’을 둘러싼 미스터리 공포입니다.
'겟 아웃', '어스'로 새로운 공포 영화의 지평을 열며 하나의 장르가 된 조던 필 감독이
영화 "캔디맨"의 공동각본과 제작을 맡아 전 세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조던 필은 일찍이 시카고 카브리니 그린의 ‘캔디맨’ 도시 괴담을 소재로 한 1993년 영화 '캔디맨'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품 중 하나였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흥미로운 괴담을 조던 필과 니아 다코스타 감독의 시각으로 새롭게 탄생시켰습니다.
거울을 보며 ‘캔디맨’을 5번 부르면 그가 나타나 끔찍한 갈고리로 죽음을 선사한다는 괴담!
첫번째 추천영화 "캔디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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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흑역사 로맨티카 SUL PIU BELLO , Out Of My League , 2020
청춘의 우정과 사랑을 재치 있게 담은 이탈리아 청춘 로맨스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 는 가진 거라곤 추진력밖에 없는 엉뚱한 그녀 ‘마르타’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급이 다른 완벽남 ‘아르투로’와 사랑에 빠지겠다고 선포하며 시작되는 흑역사 로맨스로,
이탈리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며 속편까지 확정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이탈리아에서 흥행 기록을 세우고 속편 제작이 진행 중인데요.
미국에서는 지난 8월 18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고 국내에서는 넷플릭스가 아닌 스크린으로 공개를 합니다.
이탈리아 토리노를 무대로 한 아름다운 풍경,
다채로운 색감과 감각적인 음악까지 오랜만에 눈과 귀가 즐거운 로맨틱 코미디!
두번째 추천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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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의 소원 Robin's Wish , 2020
할리우드의 명배우이자 코미디언인 로빈 윌리엄스
2014년 8월 11일, 할리우드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사망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스타이자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 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자살 소식은
황색 언론이 활용하기에 너무나 알맞은 먹잇감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로빈의 소원"은 바로 그런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만든 영화입니다.
전 세계인들이 사랑했던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죽음을 둘러싼 루머와 숨은 진실들이
주변인의 인터뷰를 통해 새롭게 밝혀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무성한 소문 사이, 로빈의 아내 수잔 슈나이더 윌리엄스는
로빈이 남 모르게 ‘루이소체 치매’라는 희귀한 퇴행성 뇌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죠
"로빈의 소원"은 로빈이 생을 마감하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밝히며 그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한 세대를 넘어 영화사에 역사로 남을 위대한 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깊은 감동!
세번째 추천영화 "로빈의 소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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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테이크 온미 a-ha: the movie , 2021
레전드 밴드 a-ha의 탄생과 성공 이야기
영화 "아-하: 테이크 온 미" 는 레전드 밴드 a-ha의 성공과 그 후의 일상을 바라보는 뮤직 콘서트 음악 영화입니다.
아-하는 1982년 모튼 하켓(보컬), 마그네 푸루홀멘(키보드), 폴 왁타(기타) 3명의 멤버로 구성된
노르웨이 출신의 신스 팝 밴드로 자국을 넘어 전세계 팬들을 사로잡은 레전드 밴드입니다.
아-하는 1984년 워너브라더스와 계약 후 발매한 첫 앨범 'Hunting High and Low'가 전 세계적으로 1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앨범 수록곡인 ‘Take On Me’가 대히트를 기록하며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됐습니다.
이번 영화는 레전드 밴드 아-하의 무대, 음악, 인생까지 모든 것을 담은 뮤직 콘서트로
센세이션 아이콘 아-하의 과거의 모습부터 현재도 아-하에 열광하는 관객들과 라이브 무대 장면까지
스크린으로 만나는 아-하 콘서트까지 모두 담았습니다.
유튜브 13억 뷰,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세기의 메가 히트송 ‘Take On Me’!
네번째 추천영화 "아-하: 테이크 온 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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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역 Short Vacation , 2020
세상의 끝에서 만나는 14살의 소녀들
영화 "종착역"은 중학교 1학년 학생 4명이 '세상의 끝'을 찍어오라는 방학 숙제를 하기 위해
지하철 1호선 신창역으로 향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시연은 여름방학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옵니다.
친구들과 친해지지 못해 아쉬워하는 시연에게 교내 사진 동아리 '빛나리'에서 만난
세 명의 친구 연우, 소정, 송희가 살갑게 다가오죠
그렇게 가까워진 네 친구들은
'세상의 끝'을 카메라로 찍어 오라는 방학 숙제를 받고
1호선 노선도 끝 '신창역'으로 소녀들은 낯선 여정을 떠납니다.
풋풋하고 따뜻한 14살의 성장 로드무비!
다섯번째 추천영화 "종착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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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우정과 성장 이야기, 영화 <라스는 웃음폭탄>
영화 <라스는 웃음폭탄: Lars is LOL>은 제12회 서울국제 어린이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노르웨이 작품으로 유럽 어린이 영화연합에서 대상을 수상한 만큼 그 작품성이 뛰어납니다.
영화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라스가 아만다가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아만다와 짝이 된 라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친구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우정과 갈등을 다루며, 학내 괴롭힘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냅니다. 영화는 우정과 배신, 분노와 용서, 갈등과 포용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이 영화는 특별한 드라마틱 요소 없이도 감동을 주는 힘이 있습니다. 아만다의 내적 성장과 라스의 불안과 고독,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용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씨네랩의 영화 크리에이터로 영화의 시사회에 초대받아 좋은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라스는 웃음폭탄>은 따뜻한 감동과 유머가 잘 어우러진 작품으로, 부모와 청소년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서로 다른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진정한 우정과 성장의 이야기는, 보는 이에게 긴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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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 생물들 사이에서 믿음과 인류애를 외치다.
주요 내용
- 진부한 전개와 신파 등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아쉬움을 극복한 연상호 감독
- <반도>의 서대위에 이어 또 한 번 구교환 배우에게 딱 맞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선물한 연상호 감독
- 사회에 불신과 두려움을 심어준 기생 생물. 기생 생물의 등장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 믿음을 지키려는 자 vs 믿음을 잃은 자의 대립과 상반되는 기생 생물을 대하는 태도
- 준경이 남편의 기생 생물에게 씌운 특수 가면의 의미
- 배신보다 큰 힘을 가진 믿음과 희생. <기생수: 더 그레이>가 말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
기생수: 더 그레이 (Parasyte: The Grey, 2024)
기생 생물들 사이에서 믿음과 인류애를 외치다.
개봉일 : 2024.04.05.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스릴러, SF, 액션, 크리처, 판타지
러닝타임 : 6부작, 총 300분
감독 : 연상호
출연 : 전소니, 구교환, 이정현, 권해효, 김인권, 문주연, 유용, 이현균, 윤현길
개인적인 평점 : 3.5 / 5
연상호 감독의 이전 작품에서 느껴졌던 아쉬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기생수: 더 그레이>
<기생수: 더 그레이>는 크리처 장르의 신기원이었던 애니메이션 <기생수>의 세계관을 차용한 리메이크작이다.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드라마 <지옥>, <괴이>, 영화 <부산행>, <반도>, <정이>, <염력> 등의 매력적인 크리처, SF 장르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그가 연출, 각본을 맡은 작품들은 신선함과 상업성을 갖췄다는 호평과 진부한 전개와 신파가 너무 심하다는 혹평을 동시에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기생수: 더 그레이>는 다행히도 취향 차를 제외하면 혹평을 받을 일은 크게 없을 것 같다.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을 모두 좋아하는 편이지만, 가끔 분위기를 깨는 과도한 감정, 액션이 나오거나, 감정을 챙기느라 개연성을 놓치는 부분이 보일 때면 참 아쉬웠다. 그런데 <기생수:더 그레이>에선 이런 부분들을 최소화하여 이전 작품에서 느꼈던 아쉬움 들을 잘 만회해냈다. 크리처 물이라면 보통 누군가의 희생과 그에 따른 각성 과정이 나오기 마련인데 여기서 감정과 액션을 너무 폭발시켜버리거나 질질 끌게 되면 매번 봤던 신파라고 욕먹기 딱 좋지만, 이번엔 적당하게 잘 잘라냈다. 약간의 개연성 공백들은 회상과 대사를 활용해 친절하게 채운다. 멋있는 방법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빈틈은 잘 막아냈다. 덕분에 초반부엔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캐릭터의 분노와 공황도 후반부에 가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개연성과 감정 다음으로 걱정했던 건 액션과 비주얼이었다. 손이 아닌 머리 자체를 변화시키는 기생 생물이라니. 이런 설정 탓에 캐릭터의 외관이나 액션이 좀 바보같이 나오는 건 아닐까? 걱정했으나 그 부분도 잘 극복했다. 개인적으론 신체가 변형되는 것과 촉수 괴물을 싫어해서 초반부엔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불쾌하지 않게 적당한 선에서 구현해낸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 촉수와 총만을 이용한 액션이었음에도 작위적이거나 속도가 떨어지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아 액션 또한 괜찮은 편이다.
캐릭터의 밸런스도 좋다. 전체적으로 출연 배우들의 능력치가 좋아서 연기 구멍이 크게 없고 극 중 캐릭터의 설정과 합도 좋다. 특히 구교환 배우의 강우 캐릭터가 공감이 될 듯 말 듯하면서도 동시에 매력적인 게 딱, 배우와 잘 맞았다. 배우가 캐릭터를 잘 소화해서 매력적이었던 걸수도 있지만, 애초에 이 캐릭터 자체가 배우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이전에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맡았던 <괴이>에선 구교환 배우의 매력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번엔 <반도>때처럼 배우에 딱 맞는 캐릭터 구성을 제대로, 매력적으로 해낸 것 같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다양한 크리처가 나오는 박력 있는 액션 드라마를 기대하고 있는 시청자보다는 그 안에 있는 이야기와 캐릭터에 집중하는 걸 좋아하는 시청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크리처 물로서 매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넓은 세계관과 다양한 기생 생물의 모습을 기대한다면 조금 아쉽게 다가올 것 같다. 그리고 기생수 설정만을 가져와 이야기 자체를 새롭게 만든 거라 원작과 비스무리한 리메이크작은 아니니 이 부분을 고려하여 선택하길 바란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기생 생물과 함께 사회에 파고든 강력한 불신
인간은 강하지 않다. 신체적인 장점이 없어 커다란 짐승 한 마리를 만나면 무조건 도망을 쳐야 살아남을 수 있고, 자연재해 앞에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다. 그래서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사회라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한곳에 똘똘 뭉친 인간들은 각자의 생각과 능력을 모아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와 자신의 삶을 지켜왔다. 사회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사회에 종속되어 살고 있다. 어쩔 땐 든든하고 어쩔 땐 불안하지만 그래도 가까운 누군가를 믿으며, 이 사회가 아직은 살만한 것이라 애써 믿으며 대한민국이란 사회와 그 아래의 작은 사회들을 지켜가고 있다. 사회를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건 각자의 힘이 아닌 서로를 향한 믿음이다. 인간이 서로를 믿지 않고 미워한다면 사회는 금방 와해되고 말 것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 ‘믿음’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생 생물들이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기생 생물은 사람의 뇌를 먹어 그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한다. 감염되기 전과 생김새는 달라지지 않지만, 정신과 신체적 능력치는 기생 생물과 동기화된다. 기생 생물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자신의 강력한 힘을 드러내며 명령받은 대로 인간을 먹어치운다. 얼굴에 변형이 일어나기 전까진 누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상황, 기생 생물을 인식한 순간,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워지는 건 당연하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끝까지 믿음을 지켜가는 인물들과 믿음을 잃은 인물
준경이 기생 생물에게 씌운 특수 가면의 의미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이런 삭막한 배경과 여러 역경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공생하는 인물들을 통해 믿음과 공생의 가치를 보여준다.
주인공 수인은 어릴 때 가정 폭력을 당했다. 사람들은 어린 수인을 ‘자기 아빠를 신고한 독한 애’라며 손가락질한다. 그래도 수인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어른이 되어 열심히 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이번엔 또 어떤 미친놈이 수인을 죽이려 뒤따라온다. 수인은 언제나 불행하고 외로웠고, 수인을 둘러싼 세상은 항상 그녀를 배신했다. 강우는 돈을 벌기 위해 조폭 조직 망나니파에 들어갔다가 한순간에 배신을 당하고 만다. 조직의 리더뿐만이 아니라 끝까지 믿었던 조직의 동생마저도 그를 배신한다. 수인을 구해준 형사 철민은 가까운 사이였던 원석에게 배신당해 목숨을 잃는다.
세 사람은 모두 세상에, 자기가 속해있던 조직에서 배신을 당한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누군가를 배신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을 보인다. 수인은 믿을 구석 없어 보이는 강우를 살리기 위해 절벽 끝에서 손을 뻗었고 하이디는 자신을 죽이려 끝까지 쫓아온 준경을 살리기 위해 뒤에서 다가오는 기생 생물을 타격한다. 강우는 배신당했단 걸 알면서도 죽어가는 규민(조직원 동생)을 챙기려 했고 더 이상 엮이지 않아도 될 수인의 일에 뛰어들어 수인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수인에게 손을 뻗는다. 철민은 수인이 기생 생물이 되었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있지만 끝까지 수인을 지키려 했으며 원석이 괴물이라는 제보를 듣고도 그를 바로 고발하지 않는다. 철민은 수인과 원석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의심은 갖고 있지만 끝까지 둘을 믿으려고 노력했다.
수인, 강우, 철민과 반대쪽에 서있는 인물은 더 그레이 팀의 팀장 준경이다. 준경은 기생 생물에 감염된 남편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고, 그에게 공격을 당해 귀 한쪽을 잃는다. 남편을 빼앗았기 때문일까, 준경은 기생 생물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갖고 있다. 그래서 기생 생물을 박멸하기 위해 기생 생물이 된 남편을 미끼로 이용한다. 단, 얼굴이 보이지 않게 가면을 씌운 채로 말이다. 경찰서에서 상황 설명회를 가질 때, 서장이 ‘그래도 사람(준경의 남편)을 저렇게 괴롭혀도 되냐’고 말하자 준경은 “그들을 인간으로 생각해선 안돼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잘린 귀와 손등의 상처를 보여준다. 기생 생물이 된 남편을 목격한 순간부터 준경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가장 믿었던 남편이 괴물이 되었는데 과연 누굴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수인과 하이디는 끝까지 준경에게 믿음을 보여준다. 원석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 하이디는 특수 가면을 쓰지 않은 모습 그대로 준경을 바라보고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눈 준경을 지키기 위해 기생 생물을 타격한다. 준경은 이런 하이디의 모습을 보고 마지막엔 ‘정수인은 괴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마 수인이 강우의 도움을 받지 못해 특수 가면을 벗지 못했다면 이러한 극적인 화해 장면은 보지 못했을 거다.
준경은 남편의 모습을 한 기생 생물에게 특수 가면을 씌워 얼굴을 가리고 사냥개로 이용한다. 이제 그는 남편이 아닌 괴물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이성적인 판단이지만 너무도 냉정한 모습이다. 보통 좀비물엔 “내가 아는 가족의 모습 그대로인데, 어떻게 죽이지? 얘가 진짜 괴물/좀비라고?”하는 딜레마와 슬픔이 등장한다. 극 중에서 철민도 잠시 이런 딜레마에 빠져 준경과 대립을 이루는데 준경은 단호하게 남편을 괴물로 분류한다. 그런데 남편이 원석에게 죽은 후 그의 가면을 벗겼을 때 준경은 잠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괴물에게 씌워둔 가면을 벗겨보니 내가 알던 남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기생 생물에게 씌워둔 가면은 준경을 단호하고 강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인격이 그대로 남아있는 수인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준경과 수인이 처음 창성랜드에서 마주쳤을 때 원석이 남편을 공격하는 바람에 준경은 급하게 차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준경은 수인과 얼굴을 오래 마주하지 못했고 다시 돌아왔을 때도 수인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 바로 가면을 씌운다. 마지막쯤에 와서야 준경은 가면을 쓰지 않은 수인/하이디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한다. 그리고 무조건 인간을 해하는 게 아닌, 인간에게 믿음을 주는 기생 생물 하이디를 목격하고 마음을 바꾼다.
배신보다 큰 힘을 가진 건 믿음
원석은 개인의 이득을 위해 인간 사회를 배신하고 기생 생물들에게 빌붙는다.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도 매일 비슷한 월급만 받고 신세도 못 펼 바엔 기생 생물 하나를 인간 사회의 머리, 꼭대기 쪽에 앉히고 자신도 한몫 받아먹으려는 속셈이다. 이기적이고 멍청해 보이지만, 왜 배신을 했는지는 이해가 간다. 원석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배신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원석과 목사의 기생 생물은 배신을 반복하며 인간에게도 기생 생물(경희)에게도 적이 되었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목이 날아가고 만다.
수인과 하이디, 강우는 본인에게 하나도 이득 될 것이 없지만 사회를 위해 희생한다. 누가 죽든 누구 머리에 기생 생물이 앉든, 그건 수인과 하이디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사회는 그들을 괴물이라 칭하며 공개 수배까지 내렸다. 그럼에도 수인, 하이디는 기생 생물을 잡기 위해 풍물축제 현장으로 향하고 강우는 그들의 뒤를 따른다. 그저 조용히 살아만 있는 것이 목적이었던 하이디는 수인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 수인에게 물들어 그녀의 믿음을 따라 해보기에 이른다. 어차피 내 알 바도 아닌데 왜?라는 의문이 드는 비합리적인 선택과 믿음이었지만 이 선택과 믿음은 수인과 하이디, 강우.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구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희생과 믿음이지만 그럼에도
원석의 기생 생물은 최용재 의용대장 기념관에서 ‘사람들은 이 전쟁 기념관처럼 머리만 기억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후대 사람들은 최용재 의용대장만 기억한다. 사실 사회가 그렇다. 꼭대기에 앉아있는 사람만 기억하고 그 밑에 있는 이들의 노력, 희생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런데 여전히 누군가는 사회를 위해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한다. 비합리적인 일이란 걸 알면서도 말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두 종류의 생명체와 극중 사회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믿음과 희생이 이 사회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공생을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반복해 이야기한다.
어디선가 툭 나타난 기생 생물처럼 언제부턴가 나타난 불신과 혐오가 사회 여기저기에 스며들었고 우리는 큰 불안감과 분노를 느끼며 살고 있다. 우리가 <기생수: 더 그레이>를 보며 느껴야 하는 건 단순한 장르적 쾌감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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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보다는 빌런? 영화 <나폴레옹> 리뷰
86세의 리들리 스콧 감독이 새로운 작품을 내놓았다. 영화 <나폴레옹>이다. <글래디에이터>, <에이리언>, <블레이드 러너>, <델마와 루이스>, 그리고 <마션>을 연출한 노장의 거장이 만든 귀한 작품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을 직접 스토리보드로 그려 감독이 상상한 장면을 관객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거로 유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마틴 스콜세지 감독, 그리고 봉준호 감독과 통한다. 이 영화는 거대한 전투씬이 포함되어 천문학적 제작비가 들었다. 스콜세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문>과 마찬가지로 애플에게 투자지원을 받아 손익분기점 스트레스 없이 영화를 찍었다.
<글래디에이터>에서 뛰어난 영상미를 보여준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든 <나폴레옹>의 전투신을 OTT 스트리밍으로 보아서는 양이 찰 수가 없다. 큰 화면의 스펙터클한 즐거움을 주는 극장을 찾았다. 영화는 나폴레옹이 포병 장교에서 장군으로, 장군에서 황제로, 황제에서 망망대해 외딴섬의 유배자로 드라마틱하게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 속 나폴레옹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영웅의 일대기가 아니다. 영화는 나폴레옹이 조세핀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찌질하고 병적인 모습을 강조하여 보여준다. 조세핀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저열한 인간으로 나폴레옹을 그려낸다.
나폴레옹을 상징하는 모습 중의 하나는 전투에서 속전속결 적은 병력으로 대병력을 격퇴시키는 뛰어난 전략가이다. 영화는 이런 나폴레옹의 특출함에 대해 조명하지 않는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연합군의 대병력을 괴멸시킨 아우스터리츠 전투마저 단순한 매복전술로 승리한 것처럼 표현한다.
나폴레옹 역할을 <조커>의 주인공인 호아킨 피닉스가 맡을 때부터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 역을 한 러셀 크로우가 아니라 빌런 콤모두스 황제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라니. 콤모두스는 막시무스에게 왕위를 넘기려는 부황을 살해하고 왕좌에 올라, 막시무스와 그의 가족을 죽이라고 명령한 저열한 악당이 아닌가. 영화가 역사의 사실(史實)과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지만, 역사적 인물을 찌질하게 만들어 왜곡한다면 하늘에 있는 나폴레옹으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은 나폴레옹이 치른 수많은 전투별로 희생된 전사자 수를 보여준다.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죄 없는 젊은이 3백만 명을 희생하게 했다는 역사적 평가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나폴레옹이 영웅이 아니라 빌런이라고 확실하게 못을 박는 메시지다.
극장을 나오면서 아내가 말했다,
“나폴레옹을 너무 찌질이로 만들었네. 프랑스 사람이 보면 열받겠네.”
“프랑스가 낳은 영웅 나폴레옹을 영국인 감독은 단지 그는 괴팍한 빌런일 뿐이라고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었네.”
영화를 보면서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프랑스 사람에게는 나폴레옹이 적국인 영국의 언어를 쓰는 것부터 짜증 나게 할 거야. 혹시 외국 감독이 이순신 장군 영화를 만들면서 장군이 일본말로 대사를 한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황당하겠어.”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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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여인의 향기 / Scent of a Woman: 복기와 맞수 그리고 빛
/ 원본 출처 블로그로 가시면 제가 걸어둔 링크 영상들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
[리뷰] 여인의 향기 / Scent of a Woman: 복기와 맞수 그리고 빛
크리스마스에 고향에 가기 위해 부활절 연휴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고등학생 찰리(크리스 오도넬 분)은 교내 아르바이트 게시판을 보고 찾아간 집에서 퇴역한 장교 프랭크 슬레이드(알 파치노 분) 중령과 만나게 된다.
/ 네이버 소개 /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한 가지의 능력을 잃으면 다른 한 가지의 능력을 얻는다.
여섯번째 감각이라고 할까.
극 중의 슬레이드도 여섯번째 감각을 가지고 있다.
'여인의 향기'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후각은 물론, 청각이며 미각이며 그 어느하나 특출나지 않은 감각이 없다.
이 특출난 감각들이 모여 슬레이드만의 '여섯번째 감각'이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그는 맹인임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들여다 본다.
사람들을 꿰뚫어보고 파악할 수 있는 슬레이드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절대 볼 수 없는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프랭크 슬레이드'가 누구인지 전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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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고의 남자였다.
여러번의 군 경험과 중령이라는 타이틀은 그를 더욱 빛나게 했다.
불의의 사고로, 화려한 타이틀을 갖고 있던 그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시력마저도.
이제 프랭크 슬레이드는 누구인가?
타이틀빼고는 그가 누구인지 그 자신조차 설명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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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의 '여섯번째 감각'을 활용하여 추억을 회상하고 기억을 복기한다.
그는 뉴욕으로 돌아가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다시금 밟아본다.
어떤 결말이 있을지 알고 있는채로.
그러나 그가 예상하지 못한 수가 있다.
바로 '찰리'이다.
찰리는 그의 복기를 흐트려놓기 시작한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못하게 방해를 한다.
마지막 한 수만 두면 결과가 완성되는데도, 찰리는 그 마지막 한 수를 안간힘을 써서 막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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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in the dark! I'm in the dark here!"
어둠 속에 있는, 그리고 어둠 속에 있어야만 하는 흑돌 슬레이드의 마지막 한 수를 방해하는 백돌 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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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그가 예상하지 못한 수를 뒀다.
죽일거라고 협박하면 포기할 줄 알았는데 이 녀석은 포기할 줄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똑같은 처지였을지도.
똑같이 죽기살기로 허우적대고 있었기에 맞수가 붙은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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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다.
잃을게 없기에 그만큼 줏대있을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줏대가 있기에 잃을게 없듯 행동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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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서로를 구원했다.
서로의 눈동자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
구원 이후의 삶,
이보다 향기로운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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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에는 틀린게 없다.
틀린 것 마저 탱고이다.
삶도 마찬가지.
삶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그러니까 틀린 것 같아보여도 그저 지나가보자.
그것마저 삶이니.
저 장면은 내가 꼽는 꽤나 슬픈 장면이다.
모든 의욕을 상실한채 살던 슬레이드가 자랑스럽게 뽑내는 탱고가,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이, 삶을 향한 처절한 울음소리 같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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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알 파치노를 좋아해서 그가 출연한 영화들을 꽤나 봤는데, 이 영화에서의 연기가 단연 1등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눈동자 초점 하나 흔들리지 않는 시각장애인 연기가 정말로 대단하다. 그리고 앞서 올린 첫번째 클립 속 연기도 감탄만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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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있으니 꼭 다들 봐주셨으면 하는 영화.
"여인의 향기"
5점 만점에 5점 드립니다.
올 해 첫 '못 일어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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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주하는 아이 도망가는 어른, <도주하는 아이>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주하는 아이> System Crasher , 2019 제작
독일 | 드라마 | 110분
감독: 노라 핑샤이트
도주하는 아이, 도망가는 어른
출처: 영화 <도주하는 아이> 스틸컷
여기 어느 누구도 보호해 줄 수 없는 아이가 있다.
핑크 공주 베니. 막대 사탕을 입에 물고 먹잇감을 노려보는 맹수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 정신병원에는 너무 어려서 입원할 수 없고, 정부나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보호시설(기관)에서는 쫓겨나기 일쑤다. 어렵게 배정된 위탁가정에서도 아이를 향한 사랑 유통기한은 터무니없이 짧다. 초반부에 휘몰아치는 베니의 현실은 아이가 어른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인지, 어른이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하여 세상을 향한 베니의 거친 비명은 끝날 줄 모르고, 진행되는 모든 이야기는 매 순간 충격적이다.
핑크색 옷을 입은 작은 발이 첫 장면으로 등장하고, 이후 온몸에 의료기구를 달고 있는 베니의 무표정이 비친다. 아이의 무표정은 맹수가 사냥을 하기 전의 고요한 움직임이다. 누구를 물어뜯기 위함일까. 순간 등골이 오싹해질 때 그녀는 도끼 같은 눈을 한 채 고르지 못한 이빨을 드러낸다. 무표정의 베니가 사랑스러운 이빨을 내밀 때마다 <도주하는 아이>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심지어 반복적이다. 리셋 버튼이 주인공의 폭력에 의해 눌러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숨 가쁘게 진행된다.
이 작품은 출구가 없는 베니의 비극적인 삶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양반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시스템에도, 인간적이고 따뜻한 이웃에게도 베니의 존재는 미쳐버린 개와 같다. 베니는 그들이 인정하기 싫은 인간성과 딱 정해놓은 도덕성의 한계를 폭로한다. 그래서 그들은 "전 할 만큼 했어요. 제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네요."란 말로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이미 초록불에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넜기 때문에 매번, 불시에 빨간불에 뛰어드는 아이를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선 너무나도 당연한 항변인 셈이다. 이 얼마나 대단하고도 간단한 마음가짐인가.
선생님들 역시 베니를 감당하지 않으려 한다. 베니를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베니와 거리를 둔다. 세상을 물어뜯는 아이는 착한 아이도, 착한 어른도 될 수 없으니까. 베니를 보호할 수 있는 어른이 부재한 건, 아이의 탓일까. 모든 아이는 어른의 관심과 사랑을 선택적으로 받는 존재인가? '착한 아이' 프레임과 '착한 어른' 코스프레가 어떠한 검증 없이 무차별적으로 견고해지자, 베니는 더 처절하게 소리 지른다. "전부 다 싫어!"라고. 그리고 그들에게서 미친 듯이 도망친다.
출처: 영화 <도주하는 아이> 스틸컷
어렸을 때 기저귀로 얼굴을 눌린 후 트라우마를 갖게 된 베니는 엄마에게만 자신의 얼굴을 만질 수 있도록 허락했다. 엄마, 베니에게 엄마란 존재는 모든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 속에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건 엄마와 다시 함께 살 수 있을 거란 희망 때문이니까. 베니는 자기를 만나러 오지 않는 엄마를 보고자, 보호소를 탈출한다. 도로 위에서 한참 동안 세워주지 않는 차에 쓰레기를 던지고 미친개처럼 왈왈 짖어대고 나서야 겨우 히치하이킹에 성공한다. 그렇게 어렵게 집에 온 베니를 맞이한 건, 낯선 아저씨. 사실 엄마도 딸을 자기 삶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베니가 또 폭력적으로 변해 자신을 때릴 거란 두려움과 작은 아들이 베니와 같은 행동을 학습해 학습해고 있다는 불안이 원인이었다. 충분히 베니를 다시 집에 데리고 올 수 있음에도 엄마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겠다는 말로 딸을 외면하고 있었다. 베니를 향한 엄마의 모성애에도 유통기한이 존재했다는 비극 앞에, 배니는 또다시 리셋, 리셋된다.
엄마의 등을 조각상으로 내리치며 "죽여버릴 거야!! 개년!!"이라 욕하고, 낯선 아저씨의 주먹에 얼굴을 몇 번 구타당한 후 바닥에 질질 끌려 장롱 속에 처넣어질 때까지 말이다. 베니는 광기를 내뿜으며 희망을 줬던 엄마를 향해 울부짖는다. 아이는 자신의 손을 물어뜯지 않고서는 분노를 표출할 수 없었고, 또 엄마는 도망치고 베니는 또 홀로 남는다. 반복되는 리셋, 사실 베니는 보호소 직원들에게 끌려갈 때마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 유통기한이 정말 다했음을 매번 온몸으로 받아들였음에도 또다시 엄마의 품이 그리워 몸을 잔뜩 웅크려왔다. 엄마와 함께 사는 꿈을 꾸고, 엄마가 좋아할 만한 가방을 가게에서 훔치고, 또 만나러 오지 않는 엄마에게 분노 대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던 딸이었다. 잔인하게도, 이것이 <도주하는 아아>가 주는 유일한 희망이다.
출처: 영화 <도주하는 아이> 스틸컷
다행스럽게도 엄마를 제외하고, 베니의 웃음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두 명의 어른이 존재한다. '비파네'와 '미하'. 두 사람은 베니의 얼굴을 만져도 되는 어른이다. 비파네는 베니에게 안전한 가정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아동 보호사이고 미하는 비행청소년의 행동을 교정하는 일을 하는 전문가다. 이 두 사람만이 핑크 공주를 상처 입은 아이로만 바라본다. 함께 가슴 아파하고 안쓰러워하며 베니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비파네는 베니를 끝까지 놓지 않는다. 어떻게든 아이를 위해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려 한다. 베니에게 엄마가 결국 너를 버렸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대신 흐느끼는 그런 어른이다. 그래서 아이는 비파네만큼은 두 팔 벌려 안아주고, 함께 하고 싶어 한다. 비파네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외적으론 무기력한 인간이지만, 베니에겐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품어주는 몇 안 되는 어른이니까.
미하는 온몸이 묶인 채 병실에서 분노를 삼키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베니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무엇이 저렇게 어린아이를 분노로 가득 차게 만들었을까. 겨우 아홉 살인 저 아이가, 얼마나 큰 고통과 슬픔을 품고 있는 걸까. 결국 그는 베니를 숲 속에 있는 자신의 오두막(상담소)에 3주 동안 데리고 있겠다고 자신 있게 선언한다. 그러나 베니를 경험한 자들은 미하를 믿지 않는다. '미하의 프로그램'이 아무리 효과적이어도 '베니의 리셋'은 막을 수 없음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그들의 말대로 미하는 실패한다. 시종일관 베니와 베니를 대하는 어른들의 자세를 확고하게 고수하던 <도주하는 아이>의 태도가 180도 바뀌는 순간이다. 영화는 이후부터 애매한 자세를 취한다. 일례로, 미하의 자발적인 포기가 정말 자의인지 아닌지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다. 모두 관객의 몫으로 남긴다.
미하는 베니의 리셋을 통제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는 사람이 됐다. 그가 베니에게 가족(아내와 자식)을 보여주고, 오두막이 아닌 자기 집에서 베니를 재워준 순간, 그렇게 결정됐다. 베니가 미하에게 사랑을 갈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베니는 미하에게 아빠가 되어달라고 고집을 부리며 아무렇지 않게 얘기한다. "부인과 아이를 죽이면요? 그럼 완전 제 것이 되는데?"라고. 오랫동안 느껴보지 않았고 어쩌면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따라서 어떡해서든 갖고 싶었던 사랑, 베니에겐 반드시 필요했다. 미하는 평생 지켜오던 직업과 가족을 무참히 파괴해 버릴 것 같은 베니에게 큰 두려움을 느끼고 결국 비파네에게 고백한다. 자신을 과대평가해서 베니에게 희망을 줬고, 그 결과 통제블능이 되어버렸다고. 그렇게 베니는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잃고, 비파네와 미하는 본인들 역시 도망가는 어른임을 인정한다. 어른들은 베니를 정신과 치료가 가능한 케냐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케냐로 떠나야만 하는 베니의 상황, <도주하는 아이>가 남긴 마지막 말줄임표다.
출처: 영화 <도주하는 아이> 스틸컷
베니는 버려지기 전에 반드시 도주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다시 도주할 수 있다. 잡히고, 또 잡히면서 크지 않으면 아이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 이제 베니는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고, 더 쉽게 칼을 휘두를 것이고, 더 잔인하게 자신의 얼굴을 만진 이들에게 폭력을 가할 것이다. 그 아이가 어른이 될 수 있을지도 가늠할 수 없다. 반복되는 리셋에 스스로 폭주하는 일만 남았다는 것이 <도주하는 아이>가 처음부터 계속 보여줬던 명확한 진단이다.
아이를 포기한 어른의 탓인가. 어른도 포기하게 한 아이의 탓인가. 영화는 아이는 도주하고 어른은 도망간다는 결과만 내놓았다. 숲 속에서 베니를 향해 짖어대던 미친개만이 아이를 품어주는 장면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겠지. 그래서 도주하는 베니의 얼굴에 띈 웃음이 가슴을 더 두근거리게 한다. 그 두근거림이 설렘이 아닌 두려움이란 사실을 <도주하는 아이>도, 우리도 모두 알고 있다. 또 한 명의, 도망가는 어른의 떨리는 두 눈을 봤을 테니까. 베니의 마지막 호소이자 세상을 향한 다신 없을 답변이 떠오른다.
"웃기시네!"
이제 베니의 얼굴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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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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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대학교X환몽씨네, 채널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 (feat. 최민식, 김윤석, 이병헌 외)
중앙사랑과 함께한 예능형 콜라보 콘텐츠입니다!
졸업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학교를 떠나기 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재밌게 즐겨 주신 중앙사랑 27기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본 영상은 지난 2월에 촬영한 콘텐츠입니다.)
#중앙대학교 #중앙대 #중앙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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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콜린 : 흑과 백의 인생> 공식 예고편
당신이 아는 게 전부가 아니다. 콜린 캐퍼닉과 에이바 듀버네이 제작의 《콜린: 흑과 백의 인생》은 단지 공으로 하는 운동이 좋았을 뿐이던 소년, 그러나 훗날 많은 것들을 이루게 될 소년의 성장 스토리를 들려준다. 미식축구 선수에서 사회 활동가로 변신한 콜린 캐퍼닉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담은 6부작 시리즈. 제이든 마이클이 10대 시절 콜린을 연기한다. 《콜린: 흑과 백의 인생》, 10월 29일 최초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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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극장판 포켓몬스터 : 정글의 아이,코코> 메인 예고편
포켓몬의 손에서 자라
자신이 포켓몬이라고 믿는 소년 ‘코코’가
처음 만나게 된 인간 소년 ‘지우’와
파트너 포켓몬 ‘피카츄’의 친구가 되면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