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5-10 20:38:08
컴백이 아냐 떠난 적 없으니까
영화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리뷰
둘리가 돌아왔다.
아기공룡 둘리의 유일한 극장판,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이 4K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마음에 떠올랐던 문장이다. 그러나 정작 극장에서 둘리를 만난 순간, 마음속 문장을 수정했다. 컴백이 아냐 떠난 적 없으니까! 하는 블랙핑크의 노래 가사로.
다시 보니 명확히 알겠다. 둘리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였다는 거. 그리고 둘리는 어른 되어 보면 더 재미있다는 거.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은 1996년 개봉 작이다. 시골 마을의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는 1996년 이후의 그 어느 날, 노란색 비디오로 이 영화를 처음 접했다. 그리고 질리도록 돌려 보았다.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둘리도 보고, 비디오도 보고, 딱히 둘리를 되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일상에는 둘리가 가득했다. 12색 둘리 물감이나 24색 둘리 크레파스, 필통 같은 데에.
학년이 올라가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둘리는 어쩐지 촌스럽게 느껴졌다. 크레파스도 필통도. 사실 내 그림 실력에는 딱 참했던 12색 둘리 물감 대신, 나도 뭔가 좀 더 멋지게 생긴 전문가용 튜브 물감 쓸래. 둘리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좀 더 청소년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 그렇게 한동안 둘리를 잊었다. 귀여운 비눗방울 노래도. 좋아했던 색감의 그림도. 특히 볼 때마다 '작화를 간단히 했는데 색감만으로 저렇게 맛있어 보일 수 있나?' 신기해서 유난히 좋아했던 둘리 특유의 라면 그림까지.

1억 년 전 빙하는 다시 녹고, 둘리는 더 선명한 색채를 덧입고 우리 곁에 돌아왔다. 나도, 나를 둘러싼 세상도 달라졌다. 너무 어린아이 같다고 싫어했던 크레파스는 다시 비슷한 느낌의 오일 파스텔로 유행하고, 지금의 나는 둘리 굿즈 내준다면 냉큼 사러 갈 기세. 그래 우리에겐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 이전에 둘리가 있었지. 이거 잘 돼서 둘리도 시즌제로 뽑아줘요. 짱구나 코난처럼 영영 다 해먹자. 그날을 기다리는 동안, 둘리의 매력 포인트를 짚어본다.

첫 번째, 어른의 눈으로 보니 더 매력적인 둘리의 모험
둘리의 모험은 당시 어린 눈에 너무 참신했다. 미래로든 과거로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타임코스모스도 신기하지만 그걸 타고 간 우주에서 버스 정류장이나 공중전화를 보는 것이 더 신기한 기분이었다. 익숙한 것들과 낯선 것들이 뒤섞여 더 독특하고 흥미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달까. 우주해충이나 가시고기도 임팩트 있는 캐릭터라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1996년 작품인데 지금 어른이 되어 보아도 여전히 흥미진진하고, 불편하지 않고, 유쾌하고 다정하다. 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어른의 눈으로 보니 더 재미있었다.
인터넷에서 가끔 단편적인 기억만 가지고 둘리와 친구들을 민폐 취급하는 글이 많았는데, 막상 보니 둘리와 친구들은 그런 말을 듣기엔 매우 현실적인 시각을 가진 어린이들이었다. 둘리가 저런 말도 할 줄 아는 애였구나... 둘리와 친구들은 아이의 순수함과 호기심을 가졌으면서도 묘하게 쌍문동에 거주하는 현대 서울 사람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이번 재개봉은 8090 서울을 사랑스러운 감각으로 채색한 배경 위로 몽글몽글 떠오를 추억의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둘리는 훨씬 더 매력적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역시...

두 번째, 별사탕처럼 통통 튀는 캐릭터 케미스트리
고길동 아저씨도 이제 희대의 빌런이라는 오명을 벗은 것 같지만, 둘리 등장인물들은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진상인지 아닌지' 평가받는 것 같다. 그만큼 둘리가 오래 사랑받고 모두가 아는 콘텐츠라는 뜻도 되겠지만, 그만큼 우리가 진상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만큼 지친 사회를 살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둘리를 오랜만에 다시 펼쳐보니, 짧은 대사에서도 각자 성격이 확실하게 묻어나는 캐릭터들이 서로 톡톡 튀면서 펼치는 케미스트리가 그저 유쾌하기만 했다. 한때 얄미워 보였던 캐릭터조차 왜 이리 귀엽기만 한지. 고길동 아저씨는 '불쌍한 사람' 그 이상으로 다시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는 놀랍게도 둘리와 친구들과 수평적 관계를 맺는 어른이며, 툴툴대면서도 자식조카 밥 야무지게 챙기는 남성이었다. 게다가 왕년에 홍콩 영화 좀 본 K-소드마스터였고요.


다른 캐릭터들도 21세기의 시선으로 보니 더욱 독특한 매력이 있다. 20세기 최고의 슈퍼스타를 꿈꿨던 마이콜은... 21세기에 활동했으면 혁오와 잔나비를 이어 인디씬의 독보적 존재감을 담당했을 텐데. 유퀴즈는 못 나와도 라디오스타에서 소소한 입담을 자랑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재발굴해 줄 필요가 있다.
묘하게 세파에 지친 어른의 시각을 가지고 있어, 볼 때마다 아동노동 근절을 외치게 만드는 또치의 '어른식' 현명함도. 성깔 있지만 의리도 있는 도우너도. 그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둘리의 MBTI는 아마도... ENFJ... 아닐까? 귀여운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 구역 최강자였던 희동이도. 피지컬 공격력과 상황 판단력, 어떤 상황에도 요동하지 않는 마음을 갖춘 장군감이지 민폐 빌런이 아니다. (종종 회자되는, 희동이가 둘리와 엄마의 재회를 방해하는 장면은 이 극장판 내용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보시길.)






세 번째, 그 시절 사랑했던 면과 오늘 새로 사랑하게 된 면
그 시절 사랑했던 성우들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일도 즐거웠다. 박영남 성우는 짱구 이전에 둘리였고, 이선 성우는 뽀로로이기 이전에 또치였지. 성우 정미숙(희동이), 최덕희(도우너), 이인성(고길동), 홍시호(텔레비전 아나운서/간수) 등 익숙한 이름들의 노련한 연기 또한 반가웠다. 캐릭터도, 연기도, 그 둘이 어우러지는 놀라운 케미스트리도 모두- 그때는 좋았고 지금은 더 좋다.

엔딩 크레딧 영상도 아기자기 예쁜 데다가, 옆에 일러스트로 나름의 쿠키라고 할 수 있는 후일담이 펼쳐진다. 그러면서 “요리 보고~ 조리 봐도~”로 시작하는 익숙한 주제가의 2절까지 듣게 되었는데, “고향은 다르지만 모두가 한 마음”이라는 가사에... 어른은 울컥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고향이 다 다르네... 둘리도 기후 난민이었네... 그런데 이 우정 너무 아름답잖아... 고길동 씨를 포함하여 둘리의 모든 친구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면 바로 이 것, 배척하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둘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만으로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어른이 되고 싶어 씩씩거리던 아이들이 우주로 향했듯, 아이였단 우리들도 자라 둘리에서 새로운 것들을 본다. 둘리는 떠난 적이 없었으므로 컴백할 필요도 없다. 컴백은 내 몫이었다. 어른이 되어 둘리 앞자리를 떠났던 나의 몫. 분주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여전히 어른된 우리를 충분히 이해해 줄 만큼 다정하고 즐거운 둘리와 친구들을 만나러 가 보자.
*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은 5월 24일 재개봉합니다. 배경 하나까지 사랑스러운 추억 속 둘리를 극장 스크린으로 다시 만나 보세요!
**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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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을 통해 전하는 감동 메시지
씨네렙에서 영화 <디베르티멘토> 시사회에 초대를 했다. 음악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다. 음악이 잘 짜인 스토리와 결합하면 영화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하며, 보는 내내 행복감과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는 실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열일곱 살 쌍둥이 자매 자히아와 페투마에게 음악은 엄마아빠의 사랑과 함께 삶의 전부다. 두 자매는 알제리 이민자 가정출신으로 겪는 차별과 장벽에 종종 노출된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첼리스트라는 꿈을 향한 열정과 엄마아빠의 격려로 도전하고 극복해 나간다.
영화 제목인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는 18세기 중엽에 나타난 격식을 벗어나 자유스러운 형식으로 만든 기악 모음곡으로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칭한다. 이른바 ‘멋대로의 음악’으로 희유곡(嬉遊曲)으로 불리기도 한다.
두 자매가 직접 결성하고 이름 지은 디베르티멘토 오케스트라는 파리의 전문음악학교 학생과 파리 교외의 음악도, 프로 연주자, 선생님, 다운 증후군의 소녀까지 단원으로 함께한다. 그들은 모두 함께 각자의 소리들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며 감동의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의 중심에는 클래식 음악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세 가지 춤곡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사로잡는다. 라벨의 ‘볼레로’, 프로코피예프의 ‘기사의 춤’, 생상스의 ‘바카날'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악들은 스토리와 연계하여 보는 사람에게 깊은 몰입을 하게 한다.
그 외에 베토벤 교향곡 7번, 슈베르트 교향곡 5번,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등 다양한 클래식 명곡들이 나온다. 이 들을 웅장한 사운드로 들을 수 있어 새삼 극장에서 보아야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다.
영화를 보고 영혼이 정화된 느낌으로 집에 도착하니 아들이 물었다
“영화 어땠어요?”
아내가 엄지척을 하며 '강추!'라고 답했다.
나의 생각도 아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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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끌리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시놉시스를 보고 재밌어보여서 보기 시작한 영화 <동네사람들>. 마동석의 통쾌한 액션과 추리를 기대했지만 실망스러웠던 작품이었다.
영화 <동네사람들> 시놉시스
여고생이 사라졌지만 너무나 평온한 시골의 한적한 마을, 기간제 교사로 새로 부임 온 외지 출신 체육교사 기철은 동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다. 실종된 여고생의 유일한 친구 유진만이 친구가 납치된 거라 확신하여 사건을 쫓고, 의도치 않게 유진과 함께 사라진 소녀를 찾기 위해 나선 기철은 누군가에 의해 그녀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두가 침묵하는 사라진 소녀,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그녀를 찾아야만 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동네사람들>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마동석표 액션
범죄도시, 신과함께 등 전작에서 봐왔던 마동석 배우의 영화 속 캐릭터들은 대부분 할리우드에서 볼 듯한 체격에 기술보다는 남다른 체격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스타일의 액션을 많이 보였다. 그래서 마동석 배우가 이번 영화 <동네사람들> 속에서 다른 액션을 선보일 것이라고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한국에서 남다른 피지컬로 헐크처럼 쓸어버리는 액션을 선보일 수 있는 남자 배우는 마동석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액션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영화 <동네사람들>의 연출이 잘못한 것 같다. 하나도 통쾌하지 않다. 액션을 선보이고 있는데 어쩜 그렇게 지루할 수 있을까. 전작에서 그의 액션 역시 영화 <동네사람들>의 액션처럼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액션이었지만 엄청난 희열감과 통쾌함을 주었다. 하지만 영화 <동네사람들>은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은 액션 영화였다. 좋은 배우를 가져다가 나쁘게 써먹은 예로 영화 <동네사람들>이 한동안 거론되지 않을까 싶다.
범접할 수 없는 악인의 부재
어쩌면 마동석표 액션이 큰 통쾌함을 주지 못한 이유에는 악한 상대가 그렇게 크게 부각되지 않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악인의 힘이 크면 클수록 마동석의 액션은 더욱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영화 <동네사람들>에서 악역을 하는 캐릭터는 기존 범죄물의 악인들과 비교해봤을 때 유약한 면이 많이 부각됐다. 대표되는 악인이 미술선생님과 그 아버지다. 미술선생님 김지성은 몰카를 달아 여학생들을 훔쳐보고 여학생들을 유인해 집까지 끌어들이지만 그렇다고 살인까지 계획을 하진 않는다. 어쩌다 보니 여학생을 기절시켰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가 살인을 하게 된다. 그리고 미술선생님은 아버지에게 맞으면서 자라다보니 측은한 느낌마저 자아내다보니 악인이라는 이미지가 크게 부각되지 않아서 액션의 통쾌함이 반감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주제가 무엇인가?
영화 <동네사람들>을 다 보고 나서 이 작품을 보고 도대체 내가 무엇을 느껴야 하나? 하고 혼란스러웠다. 화끈한 범죄 오락 액션이었다면 보는 동안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고, 액션, 스릴러, 추리였다면 적어도 추리하는 데 머리를 쓰면서 그 에너지를 소비라도 했을텐데 이 작품은 약간 3초 스포식으로 머리 속에서 다음 내용을 넌지시 알아서 알려주다보니 흘러가는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회 기득권층의 부정부패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요즘 극심하고 있는 몰카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어서 영화의 방향이 모호한 상태에서 끝나다 보니 끝나고 얻은 깨달음은 ‘아! 끌리지 않는 영화는 시간이 남더라도 보지 말아야겠다’였다.
영화 <동네사람들>은 마동석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나쁘지 않지만 작품 자체는 추천하진 않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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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둘러 말하는 것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이 영화는 정호라는 말 없는 남자와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작품에 풀칠을 하는 그의 모습과 애인 수진, 그를 짝사랑하는 인주, 그의 전 애인 유정의 애로사항이 교차된다.
바람을 피고 있는 수진과 마음을 숨기는 인주, 정호의 자살시도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유정은 모두 조심스럽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145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에둘러 드러나는 이들의 사연이 흥미진진하다.
'검은 개'라는 마지막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검은 개는 '마지막'을 은유하는 듯하다.
자신이 시한부인줄 알았던 인주와 연인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앓는 유정, 그리고 관계의 끝을 목도하는 수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개'와 함께한다.
죽음을 예감하자 계획하게 된 고백, 전 연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들, 바람으로 인해 모든 관계를 끝내는 상황들... 이렇듯 마지막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와 행동이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깨짐으로 퍼져나가듯.
하나의 조각이 깨짐으로써 멀리 퍼져나가듯.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일상의 실수, 말장난 등 사소한 일들이 미치는 파장을 목격한다.
그것이 뚜렷한 결말을 맺지 않을지라도 은근하게 번지는 후회라는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 8/20(수) 오후 7시 30분 시사회 메가박스 코엑스
* 위 기사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써 초청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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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디어 조이, 디어 재클린
편지로 영화 리뷰를 써보기는 처음입니다만, 당신들의 이름을 꼭 부르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이 <고독의 지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명명해 주었듯이.
우선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대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감히 추측해보자면 수상이 당신들의 일과에 큰 변화를 줄 것 같지는 않아요. 조이는 여전히 매일 세이블 섬의 해안에서 죽은 새를, 말똥을, 쓰레기를, 물범을 살피겠죠. 재클린 당신도 어디선가 내가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끌어내고,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담아내며 작업을 계속할 같습니다. 우리 셋(이라고 묶어도 된다면) 중 이런 소식에 연연하는 사람은 저뿐일 것 같네요. 이 영화와 가장 무관한 사람인데 말이죠...
하지만 한 관객으로서, 이 이야기가 더 멀리 퍼져 나가길 바라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고 무작정 주장해 봅니다. 아무튼 기뻐요. 결과를 예상하고 예매한 건 아니었지만요. 뭐가 경쟁 부문인지 아닌지도 신경 쓰지 않고, 저의 일정과 영화에 붙은 짧은 소개글만을 보면서 영화를 고르거든요. 참고로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당신들의 영화는 한국어로 이렇게 소개되었습니다. 한번 보세요.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해역의 외딴곳, 세이블 섬에 두 여성이 있다. 환경 보호 활동가인 조이 루커스는 1970년대에 처음 이 섬에 당도했을 때 미술학도였다. 조이가 이 가느다란 땅에서 지낸 세월은 벌써 수십 년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내왔다."
"70년대 미술을 공부하던 조이 루커스는 캐나다 세이블 섬을 방문하고, 이후 그곳에 거주하기로 결정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섬의 식물과 동물을 연구하는 데 쓰고 있다. 카메라는 조이의 일상을 따라가며 섬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곳을 배회하는 야생마들을 비춘다. <고독의 지리학>은 감독과 그의 관찰 대상인 루커스의 삶과 작업에 대한 철학을 내포한 작품이기도 하다. 물질적 가치와 관계없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일에 대해 장인 못지않은 헌신적인 태도로 임하는 이들의 모습은 세상사와 관계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면서 기쁨을 찾는 두 여성의 행복감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비록 이런 삶이 외로움을 동반한다 하더라도 이는 진정한 예술가의 운명이기도 할 것이다. [문성경]"
노바스코샤는 제가 사랑하는 빨간 머리 앤의 출생지예요. 프린스 에드워드 섬 에이번리 마을은 그가 자란 곳이고, 부모님이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기 앤은 노바스코샤에 있었죠. 게다가 야생마라니. 저로서는 <작은 아씨들>의 조 마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말과 책만 있으면 된다고, 그렇게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던 사랑스러운 십대 시절의 그를.
내 어딘가가 잘못된 게 아닐까 스스로를 불안해한 적이 있고, 책을 좋아하며, 꿈이 많았던 여자아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앤과 조 마치를 그려봅니다. 저 또한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직도 사회가 기대하는 "삼십대 여성"의 삶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더 가깝게 느껴요. 그래서 그들을 연상시키는 단어에 끌렸고, 이어 당신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당신은 왜 그 섬에서, 왜 그 연구를 할까? 당신은 왜 거기서 그 모습을 촬영했을까? 무엇이 당신들을 그렇게 움직였을까?
언제부턴가 "이제 어디로 가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갈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많은 길 중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서요. 정답지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습니다. 오늘을 사는 건 처음이니까.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생을 톺아보다 문득, 지금이 나의 최전선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실 평생 동안 매일 마찬가지였는데 참 새삼스럽지요.
삶을 길에 비유하는 건 익숙하지요? 거긴 어떤지 몰라도 여긴 나이에 따라 할 일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어, 그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어떤 감정들에 부딪히게 됩니다. 내가 이상한 걸까 하는 고민부터, 내 선택을 행복과 성공으로 증명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까지. 솔직히 저는 스스로가 아주 이상한 케이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평범과 거리가 멀다고 여기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긴 해요.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인생 전체에 대해서 아무 생각 없던 제 자신이 불안합니다. 내가 나를 책임져야만 할 것 같은데 방법을 몰라서요. 앞으로를 어떻게 그려갈 것인가 밑그림을 잡아두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직장인 생활을 몇 년 하고 나니 "커리어 패스career path"가 종종 입에 오르고, 주변에서는 결혼 계획을 묻습니다. 질문이 늘어갈수록 가볍게 떨쳐지지 않습니다. 훌륭한 직업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계획 없이 취미에 몰두하는 내가 너무 안일한 걸까?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 여기는 내가 이상한 걸까? 어른들이 인생의 지혜로 하는 말들을 나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걸까? 불안과 질문이 삶의 전방위로 거미줄처럼 뻗어갑니다. 점점 더 불안해집니다. 내가 한 선택들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해야만 할 것 같고요.
영화를 보면서 이 마음에 도움이 될 만한 실마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의 삶을 멋대로 기대해서 미안합니다만, 영화 속에 확신에 찬 당신들이 있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불안해지는 질문들 앞에 이 영화를 방패처럼 휘두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이유로 들어선 영화관에서, 기이하리만큼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파도가 깨진 자리에 빛이 튀기고, 바람이 풀밭을 쓸어주는 모습은 그래도 전에 좀 보았지만... 태어나 처음 보는 것들이 그토록 많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이런 걸 볼 수 있다 상상도 해보지 못했어요. 암실에서 작업하는 대신 별빛에 노출시키고 해초로 현상한 필름. 말똥에 묻었다가 들풀로 현상한 필름.
작업하면서 둘이 보냈을 시간을 상상해 봅니다. 잔잔하고 평온한 애정의 시간. 동시에 단조롭고 이따금 지치는 노동의 시간. 생이란 본디 그런 것일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무용한 것들이 정말 무용한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당신들의 작업에 자꾸 "왜?"를 붙이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말똥 속 벌레를 왜 잡아서 보는 거지? 물범이 새끼를 뱄는지 왜 살피지? 그걸 어디다 쓰지? 이 질문들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당혹하게 만듭니다. 나는 그걸 왜 묻지?
습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중구난방의 삶을 어떻게든 그럴듯해 보이도록, 멋진 일직선의 설계를 할 수 없을까 고민하면서, 매 순간 저에게 하나하나 따져 묻고 있던 것입니다. 이걸 해도 되나? 왜 하려는 거지? 대신 저걸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신들의 작업물에는 "왜"가 없었습니다. 단지 앎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기반으로 내린 수많은 선택이 있었습니다. 순간의 자잘한 선택들이요.
미대생이었던 조이 당신이 지금 모습이 되기까지, 그저 이 섬이 좋아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다는 오늘까지, 수많은 선택들이 중첩되었을 뿐. 무수한 선택들이 모여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갑니다. 3년용 프로젝트로 지은 집이 20년을 버티기도 하고, 때로는 한 번의 만남이 모든 걸 바꾸기도 하죠. 그러니 저는 예상할 수 없는 이 삶의 여정 각 단계를 설계하겠다고 아등바등 애쓰는 게 아니라,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내가 오래 바라봐도 지치지 않을 방향이 어디인가, 조용히 묻고 답을 찾으면 그만이었던 거예요.
"일단 해보자"는 재클린 당신은 또 어떤가요. 나무가 그림을 그리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는 사람이라니. 세상에 누가 개미의, 달팽이의, 딱정벌레의 음악을 전달해 주겠어요.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음악들이 있죠. 요즘 케이팝은 표절 시비를 피하기 위해 여러 곡을 믹스해 내기도 한대요. 그러다 보니 같은 곡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전혀 다른 곡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딱 케이팝이 복잡해진 만큼 세상 모든 게 다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알아야 할 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하나라도 놓치면 도태될까 두렵습니다. 이런 마음을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라고 부른다는데... 저는 이런 단어까지도 놓치지 않겠다고 아등바등, "포모"로 살아왔네요.
재클린, 당신이 음악에 조예가 깊은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만 당신이 포모가 아니었음만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일단 해보는 그 마음 하나로, 세상 가장 고유한 음악을 (저작권료 지불도 없이!) 여기까지 데려왔어요. 음악의 역사에 정통할 필요도, 지식을 섭렵할 필요도 없었을 거예요. 결국 세상이 뭐라든, 뭐가 어떻든, 자기 길을 가는 것만이 정답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알면서도 어딘가에서 더 손쉽고 덜 외로운 해답이 뿅 나와주지 않을까 기웃거리던 마음을 부정할 수 없네요.
두 사람이 내게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깊은 생각 하지 않고, 네 할 일을 하라고. 당장은 에둘러 가는 길처럼 보일 수도 있고, 뒤죽박죽 오락가락하는 것 같아 보여도 괜찮다고. 굵직한 일 없어도 단지 계속하는 게 얼마나 강한 일인지 아느냐고. 물개 연구 모임에 취사 담당으로 자원해 세이블 섬을 다시 밟았던 조이, 당신이 지금 거기 남은 유일한 사람이듯이.
그 섬을 집이라 부르기까지 당신이 놓쳐버린 것들도 물론 많음을 인정하지만, 사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기에 그걸 인정하는 게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는 태도일 거예요. 그 끝에, 사랑이라 말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경지에 이르는 거겠죠.
저는 이제 저에게 "왜"라고 묻지 않으려 합니다. 이걸 해서 뭐에 쓸 거냐는, 생산성의 질문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무실의 일에서처럼 전체를 가늠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을, 제 인생을 대상으로도 해보겠다고 애쓰지 않을 거예요. (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단지 바라볼 겁니다. 풀숲에 앉아서, 풀잎과 바람 속에서 녹색 바다를 보는 눈이 있다면 다 괜찮을 거예요. 오늘의 쓰레기를 줍고 숫자를 헤아리면서도, 조이 당신처럼 장미와 향나무 냄새를 느끼겠지요. 그거면 돼요.
재클린은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사랑으로 한 일a lavour of love"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이 삶을 들여다보려 해요. 지금 사랑하는 것들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흘러갈지 아직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걸 지금 말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다만 우연으로 보이는 것들조차 첩첩 쌓이다 보면 상당한 무게가 생기고, 무게가 생긴 것들이 어디로 기우는지 보면 되겠죠. 놓치는 것도 낭비는 아닐 겁니다. 방목되다가 잊힌, 연안의 섬을 뛰어다니는 야생마들은 멋졌으니까. 제 삶에 그런 말들이 뛰어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무튼 끝에는 반드시 어딘가로 흘러갈 것만은 확실합니다. 당신들의 세이블 섬처럼. 직접 만든 드림캐처와 엽서가 가득 붙어 있는, 그 멋진 책상 위처럼. "일단 해본" 그 모든 아름다운 필름 위처럼.
거기서 다시 만날게요. 고독의 지리학도들에게 소실점은 그곳일 테니까.
전주국제영화제 정보
▶ 아쉽지만 이번 영화제의 모든 상영이 끝났어요.
▶ 자세한 정보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의 초청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프레스로 참석하였습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2022년 5월 7일까지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계속 진행됩니다.
일부 온라인 상영작도 있어요. 어디 계시더라도 우리 전주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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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1986)> 리뷰
지브리 스튜디오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2023)>가 개봉했다. 개봉일에 곧바로 달려가진 못했으나 개봉 첫 주 안에 달려가 영화를 보며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쩐지 이전 작품을 보고 싶어졌다. 여전히 지브리의 작품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번 작품 역시 만족스러웠는데 말이다. 아마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2023)>내에 지브리의 타 작품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많아 내 안의 어떠한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리라. 그중에서 이번 11월, 내가 돌아간 작품은 <천공의 성 라퓨타(1986)>다.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정말이지 멋쩍을 만큼 없다. 그저 내가 주기적으로 열어볼 만도 한데, 자주 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틀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바라보는 '비행'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하늘을 난다는 건 오랜 역사 내내 인류의 꿈이었고 낭만이었다. 마치 그곳엔 지상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꿈이라도 있을 것만 같다는 환상을 품으며 천사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상상 속 신은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렇기에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푸른 하늘을 떠도는 천공의 섬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건 퍽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극장에 걸리는 그들의 만화는 그야말로 가공된 상상 그 자체이지 않은가. 그런데 떠올려보면, 이 애니메이션, 굉장히 이상하다. 하늘을 떠도는 섬을 제목으로 삼았음에도 이 애니메이션은 끝없는 상승을 거부한다. 대뜸 주인공의 추락으로 이야기를 열더니만, '비행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돌은 소녀와 소년을 안전히 착륙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대지의 가장 깊숙한 구석에서 수런대는 돌을 가공한 결과물이라는 게 밝혀진다. 심지어 천공의 성 라퓨타의 부활을 열망하는 이는 빌런으로 설정된 무스카밖에 없다.
등장인물들이 이미 오래전 멸망하여 전설에 가까워진 왕국으로 향하기야 한다만 관심사는 각자 다르다. 주인공인 파즈가 라퓨타에 관심을 갖고 있긴 하지만, 이는 불명예스러웠던 아버지의 최후 때문이니 그가 실질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버지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것에 가깝다. 또한 해적 도라 역시 라퓨타에 관심을 갖고 있으나 그는 '해적'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라퓨타에 숨겨져 있을 고대의 보석에 관심이 있는 것뿐이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라퓨타를 인도할 수 있는, 적법한 후계자인 주인공 시타는 어떤가? 그는 이름과 비행석, 약간의 마법을 알고 있으나 그게 전부이다. 아이는 희미해진 고대의 지식에 목매지 않으며, 조상이 가졌을 절대권력에도 무관심하다. 허황된 상상을 할 법도 한데 시타는 자연에 가까운 소박한 삶을 추구할 뿐이다. 그가 라퓨타를 향한 여정에 동참하게 된 건 순전히 무스카가 그를 납치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고작 그 정도 이유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라퓨타가 하나의 맥거핀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등장인물들이 끝없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 역시 사실이다. 비행선을 타야 하기에, 추락했기에 자신의 높이를 가늠하기 위해서, 감방을 탈출하기 위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라퓨타를 찾아야 하기에. 실로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이유들이지 않은가! 그러나 지브리 스튜디오가 정말 전하고 싶어 하는 건 땅 -평범함의 가치-이다. 라퓨타의 공주인 시타는 자신의 마을 곤도아를, 야크를 키우며 보냈던 평범한 나날을 그리워하며 무스카에게 땅을 떠나 살 수는 없다고 선언한다. 광부 마을 출신 소년 파즈는 시타를 순수한 마음으로 돕는 주요 조력자이며, 그가 살던 곳의 마을 사람들은 쫓기는 둘을 군말 없이 도우며 끈끈한 애정과 선의를 과시한다. 더군다나 라퓨타 성이 지나갈 때면, 지하의 비행석은 감응하며 수군댔다. 도라 해적단은 '해적'이긴 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했고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시타와 파즈에겐 그들과의 모험조차 순간의 접점일 뿐이다.
어쩌면 간단히 이런 도식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비행과 하늘이 꿈이라면 땅은 현실이라고. 그렇기에 애니메이션 속 소녀는 떨어지고 땅에 도착한 후, 파즈와 관객을 자신의 불안정한 세상으로 초대하며, 우리를 몰입하게 만들고, 라퓨타에서 미련 없이 대지를 위한 선택을 했다. 하지만 지브리의 다른 애니메이션처럼 라퓨타가 전하는 다정은 이런 곳에 있는 듯하다; 영영 인간이 찾을 수 없도록 라퓨타를 행성 밖으로 보내며 자유를 선사하고선 소녀와 소년을 땅으로 돌아오게끔 안전히 바래다주는 것. 심장 뛰는 거대한 모험 한 두 개가 아니라 자그마한 일상의 연속만으로 너, 나, 우리는 충분하다는 메시지. 배제 없이 따뜻해지는 순간과, 그리고 라퓨타를 띄운 게 비행석이었던 것처럼 꿈의 뿌리는 언제나 지하에 닿는다는 사실.
80년대 작품이라 한들, 꿈을 선물하는 애니메이션의 다정함과 순수함은 유통기간이 없는 게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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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보면 희극
소위 '사적 다큐' 작품들을 좋아한다. 나와 공통점도 별로 없는 개인의 삶이 정성스럽게 담겨 있는데, 들여다보면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나 보편적인 마음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지점에서. 게임을 즐기지 않았어도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보며 동년배의 마음을 뭉클 느꼈고, 영재교육이나 부동산 투자와 먼 삶을 살았지만 <디어 마이 지니어스>나 <버블 패밀리>를 보며 동시대 사람들의 사랑과 노력, 착잡함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박강아름 감독의 전작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도 재미있게 보았다. 오랜 세월의 영상을 잘라 모아, 박강아름 감독 자신을 둘러싼 외모 품평부터 소개팅 후기, 복잡한 시선을 담았다. 애정 어린 친구의 조언일 때도 있고, 학생들이 툭툭 뱉는 말일 때도 있지만, 이들 누구의 말도 낯설지 않다. 내게도 익숙한 지식이다. 우리는 아름다움에는 다양한 방향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사실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강요받는 때가 훨씬 많으니까. 그나마 협소한 변주라도 이루어지며 조금씩 미의 기준이 확장되어 온 지금에 비해, 이전은 더했다. 우리는 참 야만적인 사회에 살아왔고, 살고 있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의 박강아름 감독을 담으며 마친다. 상대의 무례함을 갈라내어, 그들의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자주 몸무게를 재며 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슬퍼했지만 거기에 카메라 무게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마지막에야 깨닫는다. 우리가 보는 우리에게도 그런 시선의 무게가 항상 달려 있겠지. 그리고 분명 카메라보다 무거울 것이다.
그리고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끝에 함께 있던 두 사람은 강아지 슈슈와 함께 프랑스로 향한다. 프랑스어를 아는 아름이 행정과 경제를 맡고, 프랑스에 큰 뜻이 없었던 남편 성만이 가사와 이후 육아까지 주로 맡게 된다.
한국에서 한 사람의 여성과 남성이 만나 결혼하는 풍경을 하나의 그림으로만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떤 보편적인 스토리라인이 존재한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흔히 말하는 보편적 삶의 모양새란 게 있기도 하고, 어쩐지 결혼이 가까워 오면 제각각의 연애담들이 소실점 따라가듯 비슷한 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박강아름 감독과 성만 씨의 결혼은 그 보편적 모양새와 조금 다르다. 프랑스로 떠난 영화감독과 그 배우자라는 점도 그렇지만, 맞벌이를 하면 했지 남편이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경우는 확실히 드무니까. 그럼에도 이 영화에 그려진 정서는 보편적이다. 끝없는 가사는 전쟁 같고, 육아는 눈 뗄 틈조차 허락하지 않고, 생활비는 늘 빠듯하고, 일상은 숨 가쁘게 바쁘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에서 인물들의 말을 평가하고 또 나를 돌아보며, 박강아름 감독의 몸으로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를 깊이 비춰냈다면, <박강아름 결혼하다>에서는 결혼과 결혼에서 파생되는 노동과 두 사람의 관계를 촘촘하게 이어, 질문을 던진다.
두 사람의 일상에도 먹구름이 낀다. 독박 육아와 끝없는 가사에 지친 성만은 주부 우울증을 앓고, 출산 이후 이전과 달라진 몸으로 (그리고 임신과 출산이 몸에 이런 변화를 가져다준다는 걸 전혀 몰랐던 마음으로) 학교 생활과 영화 작업을 병행하는 아름은 너무 바쁘다.
결혼은 원래 이런 걸까? 왜 결혼을 한 걸까? 결혼이란 무엇인가? 박강아름 감독은 질문하기 시작하고, 그 질문을 해소하고자 자신의 기억도 돌아보고 사람들에게 질문도 던져 본다. 그 수단은 집에 차리는 한 테이블 식당, 외길식당이다. 성만의 주부 우울증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생활로 시작했다가 멈춘 프로젝트를 다시 굴려본 것이다.
수없는 질문과 대화가 해답을 찾아줄 수 있을까? 그럴 리 없다. 다양한 부부 혹은 연인에게 그들만의 서사가 있고, 상황이 있고, 입장이 있으니까. 부분적으로 공명할 수는 있다. 프랑스인과 결혼해 프랑스에 거주한 한국인 여성이 성만의 깊은 외로움을 안쓰러워하는 장면에서처럼. 박강아름 감독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공명하며 질문을 던지듯이.
* * *
이 글을 쓰기 직전, 설문 요청을 하나 받았다. 한 문항은 현재 나의 상태와 가장 가까운 것을 고르라고 했고, 보기에는 결혼과 자녀 유무에 대한 다양한 선택지가 들어 있었다. 500자로 서술하라고 해도 답하기 어려운 고민들이지만, 아무튼 질문은 '현재 나의 상태'에 '가장 가까운' 것을 물었으므로 나는 답했다. 결혼과 자녀 둘 다 원치 않는다,라고. 인생은 시시로 몸피를 뒤트니 앞으로 언제 내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보기 중 제일 가까운 선택지였다.
얼핏 단순한 객관식 선택지 같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질문과 고민이 깊다. 결혼이 더 이상 의무가 아닌 지금 결혼 적령기로 분류되는 나이를 살면서 더욱 그렇다. 이십대 내내 생각했다. 결혼이라는 관계는 희망적으로 바라보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하기 위한 목적의 결혼은 할 마음이 없다고. 지금 품고 있는, 아직은 잗다랗게 반짝거리는 꿈의 궤도를 모두 수정해야 하는 결정이니만큼, 잘할 수 없을 바엔 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이 '잘'은 나의 인력으로 되지 않으니, 현재 나의 상태에 가장 가까운 대답은 '원치 않는다'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를 보면서는 저런 결혼이라면 참 좋다, 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이 덩케르크의 바다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두 사람은 흐린 날 바다를 찾는다. 성만은 몸이 좋지 않아 불편하고, 아름은 성만이 투덜댄다는 느낌이 들어 불편하다. 가볍게 던지는 타박과 잠깐의 침묵. 익숙한 갈등의 언어들. 그러나 그 갈등 끝 두 사람이 하는 것은, 유모차가 슥슥 나가지 않는 모래사장에서 유모차를 들고 낑낑거리며 바다를 보는 것이었다.
손발을 맞추고 수평을 맞춰 원활하게 척척 들고 가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비바람이 맹렬히 몰아쳐대 바다는 오래 보지도 못했다. 우산도 들어야 하고 사진도 찍고 싶어 두 사람은 또 생각이 일치하지 않고, 소리 없이 멀리 보이는 조그만 모습으로도 두 사람이 티격태격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 끝에 굳은 얼굴로 나란히 기차에 앉아있는 두 사람에게, 아기 보리는 스노볼을 내민다. 엄마가 흔들어준 스노볼을 보며 생긋 웃다가 아빠에게 그것을 내민다.
언젠가 스리랑카 바다에서, 나중에 누구 보여줘야겠다 생각하며 사부작사부작 사진과 영상을 몇 개 찍고 돌아섰던 적이 있다. 흐린 날 바다 아니라 맑은 날 청록빛 바다라도 혼자 보고 돌아서는 길은 조금 쓸쓸했다.
비록 당일에는 굳어진 입매와 편치 않은 침묵으로 기억되더라도, 언젠가 훗날 돌아보면 유모차를 들고 낑낑거리다 비바람에 휩쓸린 기억에 웃음 짓게 된다면. 결국 함께 있다는 것, 함께 산다는 것이 결혼 아닐까. 어쩌면 순적하고 매끄러운 삶은 유니콘처럼 환상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 늘 우당탕쿵탕 굴러가는 게 삶이려니 받아들인다면, 초연하고 호젓하지는 못해도 스노볼처럼 작게 반짝이는 일상을 즐길 수는 있을 것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 꼭 비극과 대치하지 않더라도 맞는 말 같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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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 고마워요, 판타스틱4! 영상
우주로 갔다 완전히 달라져서 돌아온 판타스틱한 우주비행사 ④명 고마워요, 판타스틱④!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 7월 극장 대개봉 #판타스틱4_새로운출발 #TheFantasticFourFirstStep #판타스틱4 #마블 #Marvel #7월대개봉 #페드로파스칼 #바네사커비 #조셉퀸 #에본모스바크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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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2> 티저 예고편
게임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모두 준비되었는가? 《오징어 게임》 시즌 2, 12월 26일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