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usmesentez2025-04-21 15:56:35
복수는 정말 달콤할까?
1. 복수의 아이러니 - 복수는 상처의 처방전?
가장 완벽한 복수는 무엇일까. 똑같이 되갚아주는 것? 보란듯이 잘 사는 것? 아무래도 받은만큼 돌려주는 쪽에 마음이 동한다. 내가 아팠던만큼 상대도 아파야 평등한 것이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사람의 팔을 부러뜨린 자는 팔을 부러뜨리고, 눈을 멀게한 자는 눈을 멀게 한다는 동태(同態)복수 원칙을 명시했다. 암 역시 그렇고 말고. 그렇지만 이 원칙이 개인적 복수의 당위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복수를 끝마친 피해자는 다시 가해자로 법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될 테니까. 가장 정의로운 방식처럼 보이지만, 본인이 다시 복수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부작용이 있다. 안타깝게도, 복수는 위임된 권력이 대신 행할 때에만 정당성을 갖출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복수의 칼날은 제자신에게 돌아온다. 복수는 달콤한만큼 유독하다.
복수의 유독성이 가장 강력하게 분출하는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복수가 성공하는(혹은 성공했다고 믿는) 순간이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복수의 이중성을 잘 담고있다. 복수라는 덫에 갇혀 허우적대는 두 남자의 이야기. 한 남자는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파멸했고, 다른 한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멈췄지만 영원히 구속된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사는 남자 '오대수'가 평생 수습하지 못할 과오를 저지르며 벌어지는 복수극이다.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15년 간 그를 감금했다. 오대수가 함부로 혀를 놀렸기 때문이다. 오대수는 이수애(이우진의 누나)와 이우진이 관계를 가지는 것을 목격했고, 친구에게 소문을 퍼뜨렸다. 이수애는 학교에서 깨끗하지 못한 여자로 소문이 났고,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때문에 이우진은 오대수를 몹시 증오했다. 그래서 좁은 골방에 가두고는 군만두만 먹였다. 심지어는 오대수의 부인을 살해하고 그가 범인인 것처럼 꾸미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우진은 멈추지 않았다. 평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우진은 최면을 걸어 오대수와 미도가 서로 사랑에 빠지도록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두 사람이 부녀관계였음을 폭로한다. 오대수가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이우진의 복수는 평등해졌다. 이우진은 자살함으로써 한 발 더 나아간다. 오대수는 홀로 덩그러니 남은 채 혀를 자름으로써 인과응보를 받아들인다.
"누나하고 난 서로 알면서도 사랑했어요... 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
이우진이 오대수를 15년 간 감금한 것은 더 '잘' 복수하기 위해서다. 오대수를 죽이거나 그의 딸 미도를 해코지할 수 있었음에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오대수와 미도가 사랑에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두 사람이 부녀 관계임을 밝힘으로써 마주하게 될 죄책감과 수치심을 온전히 느끼기 바랐기 때문이다. 오대수가 이우진을 일찍이 죽이지 않은 것 역시 마찬가지다. 감금한 이유가 너무 궁금했기 때문에, 복수의 명분을 밝히기 위해서 게임에 끝까지 참여했다.
공교롭게도 복수가 완성되는 순간 붕괴는 시작된다. 오대수가 감금의 이유를 알아내고 의기양양하게 이우진을 몰아붙이는 순간, 알고보니 모든 재앙이 스스로 몰고 온 것임을 인식한다. 오대수가 혀를 잘라냄과 동시에 이우진은 일생의 후련함을 느끼지만, 이내 삶의 이유를 상실하고 자살한다. 복수가 달콤함 뒤에 숨겨둔 독이빨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두 사람은 모두 복수의 피해자다.
이우진은 멈출 수 없었다. 누나를 잃은 뒤로 삶은 피폐해졌고 오직 복수만이 구원이라고 믿었다. 복수에 중독되고부터 어쩌면 누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결로써 복수를 완성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대수는 멈출 수 밖에 없었다. 15년의 세월을 빼앗아 간 이우진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대수는 복수의 대상을 잃었고, 삶의 추동을 상실한 채 방황하게 됐다. 역설적이게도, 그토록 증오했던 이우진이 죽음으로써 살 이유가 사라졌다. 다만 그에게 남은 것은 불편한 진실을 감내하는 일 뿐이다.
복수에서 승자는 없다. 복수에 성공했지만 삶을 멈추게 된 이우진도, 목숨을 부지했지만 복수에 실패한 오대수도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복수의 달콤함은 끝내 두 사람에게 독이 됐다. 복수는 상처의 처방전이 될 수 없다. 상처의 근본적 해결은 환부를 치료하는 것이지, 남에게 똑같이 상처를 내는 것이 아니다.
복수를 멈추고 용서를 한 자만이 자유롭다. 용서만이 구원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과연 그 자유는 정말 행복할까? 다음 편에서는 용서라는 덫에 빠진 한 여인, 이신애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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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 '전하지 못한 퍼즐 조각을 맞춰가다.'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개봉일 : 2021.05.14 (넷플릭스 공개)
감독 : 김성호
출연 : 이제훈, 탕준상, 홍승희, 정석용, 정영주, 임원희, 지진희
전하지 못한 퍼즐 조각을 맞춰가다.
가장 인간답기에 가장 아프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무브 투 헤븐>은 특별한 시선을 가진 유품 정리사 나무와 그의 후견인 상구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마지막 이사를 도우며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가고 본인의 이야기와 흔적들을 남긴다. 각자 다른 형태의 죽음, 다른 인생, 다른 이야기들을 한 아름 담은 노란 유품 상자의 무게가 꽤나 묵직하게 느껴진다. 유품 정리사인 나무는 그 무게감을 끌어안고 오늘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살아있는 것들은 언젠가 죽는다. 인생과 죽음의 과정은 공평하지 않을지언정 죽음이란 결과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온다. <무브 투 헤븐>은 시청자들이 누군가의 죽음과 마주하게 만들며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나는 <무브 투 헤븐>을 보며 몇 년 전 내가 처음으로 마주했던 죽음과 작년 여름쯤에 읽었던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을 함께 떠올렸다.
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꽤 많은 반려동물들과 함께하고 그 친구들을 보내며 ‘반려동물의 죽음’을 겪어봤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23살의 나이가 되어서야 처음 겪어보았다. (동물과 인간의 죽음의 무게를 나누려는 의도를 가진 표현은 아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죽음과 생은 고귀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어린애를 굳이 상갓집에 데려갈 필요는 없다는 부모님의 신조 아래 자란 나는 먼 친척들이 돌아가셔도 상갓집에 가보지 못했다. 사실 정말 어릴 때 한두 번 본 사이라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어른들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누가 돌아가셨단다.”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별다른 감정을 느낀 적도 없었다. 내 눈앞에, 마음에 그의 죽음이란 것이 와닿지 않았으니까.
내 주변엔 어린 나이에 가족의 죽음을 겪은 친구들이 꽤 있었다. 중학교 때 함께 어울렸던 친구는 초등학생 때 산업재해로 아버지와 이별했고, 고등학교 때 함께 어울렸던 친구는 나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쯤 할아버지와 이별을 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간혹 아물지 않은 이별의 상처를 털어놓기도 했는데, 나는 그저 “네 마음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진짜 힘들겠구나.”와 같은 내 감정에 충실한 반응을 뱉어내기만 했다. 그땐 나름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지만, 돌이켜보니 그 친구들에게 미안할 만큼 영양가 없는 한마디였던 것 같다.
그렇게 ‘죽음’이 무엇인지 티끌만큼도 가늠하지 못한 채 나는 20살을 넘겨 성인이 되었고 23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만난 <무브 투 헤븐>은 그때의 기억과 고민들을 다시 떠오르게 만들었다.
<무브 투 헤븐>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목소리를 전함과 동시에 억울한 죽음, 외로운 죽음,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 등 여러 인물들의 죽음에 담긴 사회적 문제들을 따끔하게 꼬집는다. 산업 재해 사망사건을 돈 몇 푼으로 해결하려 하는 회사, 노인이 된 어머니를 방치하고 돈만 챙기려는 아들, 데이트 폭력으로 사망한 피해자, 차가운 사회의 시선에 내몰린 연인과 노부부, 무책임한 부모들에게 버려져 해외 입양된 아이의 외로운 인생까지. 각 화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생 이야기를 함께 더듬다 보면 그들이 겪어야 했던 차가운 시간들과 고질병처럼 고쳐지지 않는 문제의 까끌함이 마음속에 깊이 스며든다. 정말 힘들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하나도 없다.
그들이 떠난 자리엔 유품 한 박스와 슬픔, 후회가 가득하다. 슬픔과 후회는 그들을 지키지 못한 남은 이들의 몫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 외롭고 억울한 죽음을 겪지 않도록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하는 것 또한 남은 이들의 몫이다.
사람은 죽어서 자신의 이름과 몇 개의 흔적을 남긴다. <무브 투 헤븐>의 주인공 그루는 비정형적으로 흩어진 흔적을 정리하며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들의 조각을 맞춰간다. 고인들의 자리에 남은 단출한 짐들은 그들의 인생을 말해주고 그 몇 마디가 남긴 무게감은 그루의 어깨에 내려앉는다. 그루는 진심이 담긴 고인들의 마지막 말들을 마음으로 품어내며 조금씩 성장한다. 아빠(정우)와 헤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던 아이가 아빠의 빈자리를 받아들이고 그 자리를 슬픔이 아닌 아빠가 남겨준 사랑으로 채워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더불어 형(정우)에 대한 오해로 인해 그를 미워했던 상구가 형이 오래도록 쌓아두었던 마음과 마주하며 변화하는 과정 또한 꽤나 감동적이다. 본인도 어리면서 더 연약한 동생을 위해 모든 마음을 내주고도 후회하고 미안해했던 정우의 마음이 두텁게 쌓인 캐비닛 문을 열었을 때, 상구의 세상은 정우가 남긴 사랑으로 가득 찬다.
그루는 사랑하는 동생과 아들을 위해, 못다 한 말을 남기고 떠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마음과 사랑을 모두 내바쳤던 아빠 정우의 길을 그대로 따라 걷는다. 아빠가 남긴 사랑과 마음가짐을 연료 삼아 아주 천천히, 하지만 아주 바른 걸음걸이로 말이다. 그리고 그 옆엔 그루의 삼촌, 상구가 있다.
그루가 들고 있는 유품 박스의 색깔은 노란색이다. 봄이란 계절과 희망을 담은 듯이 아주 예쁜 노란색. 어쩌면 죽음은 끝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죽음이란 새로운 생이,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지점이 될 수도 있으며 떠난 이가 남긴 말과 흔적들은 새로운 희망이 되어 이 세상을 바꿔놓을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루의 품에 안긴 노란 유품 박스가 슬픔이 아닌 희망과 그들의 아름다운 추억들로 가득 차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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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릿한 세상을 또렷이 사랑하는 방법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영화 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사진 작가 JR이 함께, 프랑스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사진에 담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둘은 함께 여행하며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일상과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저마다의 아주 크고, 사소한 이야기들에 사진을 찍어 붙여 표지를 만든다.
바르다와 JR의 프로젝트는 우리 곁에 있을, 평범한 누군가의 일상에 확성기를 대준다. 작고 사소한 목소리들을 들려주는 작품. 영화 <국외자들>처럼, 루브르 박물관을 질주하며 만난 보티첼리, 라파엘로, 아르침볼도의 예술은 아름답다. 그리고, 항만노동자들의 아내들, 철거 직전의 탄광촌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주민, 병뚜껑을 모아 자신의 집을 꾸미는 포니의 얼굴과 이야기도 아름답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나를 지나쳐가는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있다. 그들이 가진 평범한 일상과, 노동, 조명 되지 못한 여성들 속에. 바르다가 바라보는 세상과 사람들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넓어서, 도저히 이 감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둘의 여정은 우연을 따라 가고, 노르망디 해변에도 닿는다. 바르다는 해변에 있는 한 벙커에 자신과 함께 작업했던 모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붙이며 그를 추억한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사진이 파도에 씻겨져 내려가버린 사실을 확인한다. 결국 사라질 순간들을 기록하고 남기는 일. 영화 내내 바르다는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점점 보이지 않는 눈과, 힘껏 달릴 수 없는 다리. 그녀는 자신이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절대 명랑함을 잃지 않는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바르다의 발과 눈을 찍어 기차에 붙여 보내는 것이었다. 바르다의 삶이 끝나더라도, 그녀의 여정은 계속 될 것이다. JR의 말처럼, 이 사진들이 바르다가 직접 갈 수 없는 곳들까지 그녀를 데려다 줄 것이고, 결국 이가 나에게까지 와닿았다는 게 기뻤다.
내내 선글라스를 벗지 않던 JR이 바르다에게 맨 얼굴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 흐릿한 시선이, 사랑스럽고 총명한 할머니가, 그녀는 떠났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많은 작품들이 오래도록 남아 모두에게 위로를, 영감과 성찰의 시간을 건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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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성애의 다양한 형태들과 연대감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이 영화는 다양한 여성의 모습과 다양한 어머니의 형태를 보여준 영화였다. 1999년도에 나온 영화인데 요즘에서야 다루어질 수 있는 이슈를 담았다. 또한 영화 속에선 다양한 소수자들이 얼마나 차별적인 환경에서 살았는지에 대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닌 다른 영화와 다를 바 없이 등장 하였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다른 퀴어 영화랑은 다른 점이었다. 영화를 볼 때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해지기도 하였다. 여성으로 성 전환을 하는 트랜스 젠더인데 여성과의 아이를 낳는 점도 그렇고 내가 아직 많이 보지못한 사람들이 영화 속에 등장해서 이 영화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상식 밖의 내용과 설정이 담겨있던 영화였다.
아들을 잃어버린 미누엘라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 치유를 하는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치유 받는 대상이 아들의 아빠가 아닌 오히려 우연히 만난 여성들이 었다. 자신의 남편이었던 사람의 아이를 가진 로사와의 연대감이 돋보였다. 과연 나 였다면 로사를 돌봐주고 곁에 있어 줄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배우의 싸인을 받으러 갔다가 아들이 죽은 것인데 그 배우를 찾아가 원망을 할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 배우를 도와주고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 그 배우 또한 에스테반의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에스테반의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어머니라는 큰 틀로 포용이 되는 것 같았다. 어찌보면 미누엘라의 적이 될 수도 있는 관계들인데 그렇게 그리지 않고 연대의식으로 그려낸 점이 인상깊었다.
하지만 롤라라는 캐릭터는 영화 속 미누엘라가 용서 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보면서 가장 민폐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이 소수자로써 존재 한다고 하더라도 롤라가 한 행동이 이해가 되거나 용서 받을 행동은 아니었다. 모성애를 다룬 작품이라고 하지만, 미누엘라가 과하게 희생을 한 것 처럼 보여졌다.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여성의 다양한 이미지를 담고 싶어했고 어머니의 다양한 형태와 그로 인해 이어지는 여성들의 연대를 담고 싶어한 영화라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캐릭터나 내용을 하나 하나 생각해보면 충격적인데 너무 자연스러운 것으로 영화 속에 담겨있어서 나에게는 낯설고 본능적으로 이상하다는 감정이 생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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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흐르지만, 기억은 여전히 우리의 내면을 뒤흔든다
영화 <하얼빈>이 개봉된 후 극장가와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어떤 관객은 이 작품을 ‘엄숙하게 다시 써 내려간 독립운동의 한 페이지’라고 평하고, 또 누군가는 ‘감정적으로 울컥하게 만들면서도 담담하게 흘러가는 독특한 분위기’에 주목한다. 개봉을 기다려온 사람들 중에는 앞서 안중근을 다룬 여러 작품을 기억하는 이도 있고, 이제 막 안중근이라는 인물과 그의 역사적 역할을 자세히 접하는 이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언제 이런 순간이 다시 와도 우리는 과연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곱씹으며 극장을 나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얼빈>은 단순한 역사극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무겁고도 절실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영화 속에서 안중근(현빈 분)과 독립 투사들은 러시아와 만주가 뒤섞인 복잡다단한 국경 지대, 그중에서도 하얼빈을 활동 무대로 삼는다. 시대는 1909년.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만큼 이미 조선 땅은 일본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중근과 동지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걸고 필사의 싸움을 이어간다. 그들은 하얼빈의 얼어붙은 기차역, 어둡고 취약한 뒷골목을 거점 삼아, 비밀리에 정보를 교환하고 작전을 짜낸다. 눈 내리는 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서 고국으로부터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거대한 제국의 압박은 점점 더 거칠게 이들을 죄어 온다.
그러나 영화는 안중근과 동지들의 처절한 현실을 단순히 영웅적 의지로만 채우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당위는 분명하지만, 눈앞의 죽음을 피할 방법이 마땅치 않고, 주변을 살펴보면 배신과 협잡이 난무하며,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노선을 주장하는 갈등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하얼빈>은 ‘독립 투쟁’의 표면 뒤에 묻혀 있는 수많은 난관과 엇갈린 이해관계, 인간적인 번민을 담담하게 그려낸다.독립 투사들의 인간적 번민
이렇듯 실제 역사적 사건인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향해 치닫는 과정이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 안에서 새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거기서 관객은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라는 거대 담론과, ‘한 사람의 인간 안중근’이 겪는 작고 숨 막히는 고민 사이에서 끊임없이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이런 부분에서 <하얼빈>이 이전에 안중근을 다뤘던 영화 <영웅>과 <도마 안중근>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영화 <영웅>은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틱한 감정선에 강점을 두어, 안중근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결연한 의지와 함께 감동을 자아내는 노래들로 극의 정서를 극대화했다. 반면 <도마 안중근>은 안중근의 재판 과정과 그가 가톨릭 신자로서 품고 있던 신념, 그리고 ‘도마’라는 세례명을 부각해, 그가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신앙적·윤리적 갈등을 깊게 파고들었다. 완성도를 떠나 이런 시도들은 '안중근' 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려는 시도들이었다.
이에 비해 <하얼빈>의 안중근은 묵묵하고, 동시에 인간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는 안중근이 태생부터 ‘결단력으로 가득한 의인’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처절한 현실 속에서 “과연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되뇌며 심리적 갈등을 겪는 존재로 나타난다. 스스로가 택한 길에 한 치의 후회도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길에 따라붙는 죽음의 그림자와 가족, 동지들의 희생, 그리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를 옥죄인다. <하얼빈>의 안중근은 그래서 더욱 현실적인 감정을 이끌어낸다. 영웅서사로만 보면 희생과 결단이 낭만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내가 정말 이 모든 걸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안고 있기 마련이다.그렇다면 안중근의 심리적 고민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화가 비추는 장면들을 보면, 먼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길’이라는 명분 안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를 직시하게 된다. 독립운동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두려움과 슬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이토록 거대한 상대를 저격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 혹은 일이 성공한 뒤에 남아 있는 것은 과연 자유일까,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의 시대일까 하는 걱정 또한 안중근의 머릿속에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내부의 신념,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겹치며, 그는 스스로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영화는 이러한 심리를 매우 건조하고 진지한 톤으로 그려내며, 관객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라고.
안중근의 인간적 고민들
안중근이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현실을 매우 또렷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매 순간 실패와 죽음을 예견하는 일이다. 배후 세력이 든든히 버티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근거지를 안전하게 마련할 방법도 없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조국은 더욱 식민지화되어 간다. 반역자나 스파이의 위협도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너무나도 불리하고 암울한 환경에서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 그를 고뇌하게 만든다.
동시에, 그가 만일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총알을 꽂는다면, 적어도 전 세계에 조선을 도살장에서 끌려가는 짐승 취급하지 말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토는 일본 제국의 상징적인 인물이자 침략 정책의 주체였으므로, 그를 제거한다는 행동이 동아시아의 정세에 어떤 충격을 불러올 수 있는지 안중근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즉, ‘나라가 망할지언정, 우리 민족의 끈질긴 투쟁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에게는 존재했다. 이는 단순한 애국심 이상의, ‘나와 동시대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왜 다시 안중근을 떠올려야 할까.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안중근의 행위는 단순히 ‘역사적 의거’가 아니라, 억압받는 개인과 국가가 저항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과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 정치는 여전히 치열한 대립 구도를 안고 있다. 서로 다른 이념과 이해관계 속에서, 때로는 법과 원칙이 무너지고,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쥐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기도 한다.
계엄령이나 내란과 같은 단어가 뉴스 헤드라인에 등장할 정도로 정세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100여 년 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안중근의 ‘간절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의 총성은 단순한 살상 행위가 아닌, 더 넓고 깊은 맥락에서 ‘정의를 외치는 나팔소리’였고, 그 울림은 우리 사회가 지금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독립군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장은 잔혹한 현실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듯 보이지만,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다는 암시를 영화는 마지막 장면까지 내비친다. 역사적으로도 알고 있듯, 안중근 이후로도 독립운동은 수많은 형태로 전개되었다. 만주 벌판을 누비는 무장투쟁 세력부터 해외 각지의 외교 활동까지, 일제강점기 내내 ‘해방’을 꿈꾸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바로 그 끈질긴 의지를 오늘의 관객에게도 전해주면서, <하얼빈>은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힘들다고 해서, 혹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멈춰 서선 안 된다. 어떤 형태로든 계속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길이다.’ 이러한 격려는 지금을 사는 이들에게도 분명히 힘이 된다.
영화에서 보이는 현실의 정치상황
물론 <하얼빈>은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느리고, 말 그대로 ‘건조한 듯 진지하게’ 흘러간다는 점에서 일부 관객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전투 장면이나 의거 장면에서 극적인 음악과 연출을 더해 감정선을 폭발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우민호 감독은 이를 절제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쌓아 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이 덕분에 영화 전체가 허황된 영웅주의에 기댄다기보다는, ‘정말 그 시대에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고민했겠구나’라는 현실감을 심어준다. 관객에게는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그 인내 끝에 오는 묵직한 감동이야말로 <하얼빈>이 가진 특별한 강점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도 큰 몫을 한다. 안중근을 맡은 현빈의 연기는 서사를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는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말없이 굳센’ 동시에 ‘내면의 흔들림이 분명한’ 상태로 끌고 간다. 대사를 통해 감정을 일거에 폭발시키기보다는, 상황과 상황 사이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 다짐을 되뇌는 듯한 미묘한 눈빛 변화로 캐릭터의 심리를 전달한다. 동지로 나오는 조우진, 유지태, 전광렬 등 중견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거창한 애국심을 노래하기보다, 항시 떠나는 자들의 슬픔을 눈빛으로만 보여주고, 은밀한 접선을 기다리는 초조함을 낮은 목소리로만 드러낸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 나면, 그저 웅장한 역사극 한 편을 본 것이 아니라, 한 세기를 뛰어넘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듣고 나온 듯한 느낌이 든다.
우민호 감독의 연출 스타일 역시 이런 연기에 잘 어우러진다. 그는 이미 <내부자들>, <마약왕> 등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드는 방식을 선호한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번 <하얼빈>에서는 더욱 절제되고 묵묵하게, 시대의 풍경을 탁하게 그려내면서도 인물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는다. 때로는 극적인 클로즈업 대신 인물들을 배경에 작게 배치한 채, 눈 쌓인 하얼빈 거리나 기차역 풍경과 함께 묘사함으로써 시대적 고독과 혹독함을 배가시킨다. 덕분에 영화의 미장센이 매우 사실적이며, 동시에 서늘한 느낌을 전달한다.
결국, 지금 계엄과 내란의 기운이 감돈다는 뉴스가 흘러나올 정도로 정치적 혼돈이 이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하얼빈>은 다시 한 번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고,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온전한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투쟁했다. 그 정신을 잊은 채, 그저 분열과 힘겨루기에 빠져 있다면, 과연 우리는 100년 전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로부터 무엇을 배운 것인가.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안중근의 망설임, 결단, 그리고 최후의 총성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끈질기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서, 혹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이 작품이 단지 ‘역사 재현’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유효한 독립군의 정신, 잃지 말아야 할 자유와 인간의 존엄,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용기가 진정한 <하얼빈>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는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정치적 혼돈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쉬운 이 시점에 더없이 소중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몇몇 관객에게는 결코 가볍게만 볼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마음 한구석에 새겨야 할 작품이다. 어쩌면 그것이 <하얼빈>이 우리에게 주는 ‘차분하지만 강력한 울림’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이 영화를 지루하다고만 치부하기에는, 지금 우리의 현실에 너무나도 절실한 목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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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라는 가면
줄거리
의문의 병을 앓고 있는 엄마 대신 수하물을 부치는 어린 소년 엘리아스.
아들의 도움으로 가발과 선글라스로 자신을 무장하곤 주사를 맞은 뒤 비행기에 타는 나디아.
평화로운 비행기 안은 갑자기 칼과 총을 들이미는 테러범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고,
비행기가 반대로 돌자, 나디아는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감상 포인트
1. 처음 보는 장르인 듯, 그동안 봐 왔던 장르인 듯 신선한 영화.
2. 잔인함 지수 매우 높음 주의!
3. 강렬한 악역 등장!
감상평
영화에 대한 정보 없이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예고편만 보고 튼 영화. 처음에는 좀비를 기대했는데 초반부를 좀 보다 보면 뱀파이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완전히 좀비가 아니라고 하기엔 비슷한 특성을 가진 독특한 흡혈귀를 만든 것 같다. 알고 보니 이미 넷플릭스에선 유명한 영화라고 한다.
"여인은 생존 싸움을 시작한다. 그간 힘겹게 숨겨온 어둠의 힘을 뿜으며."
이게 네이버에 등록된 영화 소개인데, 마지막 구절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생존하기 위해 어둠의 힘을 빌린다는 듯한 느낌이지 않은가?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재난 영화의 치트키인 가족, 모성애나 부성애를 등장시키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영화에서는 어김없이 어린 빌런이 등장한다. 내 생각엔 처음부터 엘리아스가 가만히 있으라는 엄마 말만 잘 들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 같다. 어쩜 처음부터 끝까지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고 일을 다 그르치는지... 뒷목 잡고 쓰러질 뻔.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영화는 오히려 실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극한의 상황이 펼쳐진다면 인간은 어디까지 이기적이고 잔인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뱀파이어라는 형태로 화답을 하는 것처럼.
"네 안에 사악한 힘이 있어. 넌 그걸 통제할 수 없어."
뱀파이어의 모습은 인간 내면의 악한 본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이 악함을 극대화해 절정에 치닫게 만든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뱀파이어라는 존재는 '악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좀비가 원초적 본능만 남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로는 아무래도 승무원으로 위장했던 테러범, '에이볼트'를 꼽을 수 있겠다. 그는 나디아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자 겁에 질리거나 도망가기는커녕, 혈액을 채취하는 미친 사이코패스다. 그 피를 취하기 전부터도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데에 능숙한 천부적 또라이. 에이볼트는 나디아의 피를 스스로 주사한 후에 본격적으로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VS 내면에 가두어놓은 악한 본질
영화를 한 줄로 정리하자면 그렇다. 나디아와 에이볼트가 대립하는 것은 사실 나디아 내면의 악함과 싸우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과도 같다. 나디아는 계속해서 인간으로서, 엄마로서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 발악한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피를 마시는 장면에서 나온다. 나디아가 수하물 칸에서 어떻게든 인간의 피만은 마시지 않겠다고 개의 피를 마시는 것에 반해, 에이볼트는 자신이 살기 위해 한때 동료였던 자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장면에 있다. 이 장면도 본질적으로 인간과 동물에 대한 부분을 떠올리게 하지만... 어쨌든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게 아닐 테니 지금은 잠시 넘어가겠다.
나디아는 피를 마시고 이성을 잠시 잃어도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곧장 마음속의 동아줄을 붙잡는다. 그러나 에이볼트는 본능적인 움직임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인간의 피를 마신다. 나디아의 얼굴이 변해가는 과정이 매우 더뎠던 것에 비해, 에이볼트는 곧바로 이빨이 돋고 귀가 뾰족해졌던 것을 생각하면 쉽다.
나디아에게 아들이라는 존재는 굉장한 아이러니다.
아들 때문에 악한 본성을 억누르지만,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어둠의 힘이 필요하다.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나디아는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만은 잊지 않으려 애쓴다.
비행기에서 에이볼트를 물리친 후, 엘리아스는 엄마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나디아의 입속에 떨어트린다. 하지만 깨어난 나디아는 다가오는 아들을 뿌리치며 거세게 저항하고, 이내 도망쳐 버린다. 악한 본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더 이상 말도 할 수 없으면서, 자신의 이런 모습을 아들에게 보이는 것이 창피하단 듯.
그러나 마지막에 비행기에서 내렸을 땐,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뛰어오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앞에서 아들을 뿌리치는 장면보다 아들을 먹잇감으로 인식하고 달려드는 모습이 더욱 슬펐다.
이 영화에서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은 바로 파리드다.
파리드는 미국의 컨벤션에 참가하기 위해 비행기에 탄 물리학자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열리지도 않는 컨벤션에 초대받은 것으로, 테러범들이 나중에 중동인인 파리드를 테러리스트로 몰아가기 위해 수를 쓴 것이었다. 그를 데려가 성명서를 읽게 한 것까지, 모든 것이 계획의 일부였던 것. 그 때문에 파리드는 마지막까지 아이를 구하고 한 쪽 팔을 잃었는데도 테러범으로 오해를 받는다.
영화 중반에서는 비행기를 돌리자는 그의 말에 백인 남성이 반대하는 것도 그렇고, 끝까지 그를 체포하려 드는 경찰들도 그렇고,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뱀파이어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성악설을 주장하지 않는다.
파리드는 뱀파이어에게 물리고도 끝까지 멀쩡한 유일한 인간이다. 손을 물렸지만 곧바로 잘라냈기에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 이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스스로 뱀파이어에게 물려 영생의 길을 택했던 환자와 대조된다. 마음속에서 계속 피어나는 악의 뿌리를 잘라내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이렇게 사는 것은 내가 이렇게 살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정 내 마음속 악의 뿌리를 잘라내려고 노력하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의 악한 본성은 인간이라는 가면으로 가려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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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단호크, 이완 맥그리거 신작영화에서 만나다!
애플스튜디오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재회하는 이복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이완 맥그리거와 이단 호크가 함께 나오는 새 장편 영화 ' 레이먼드와 레이’로 돌아온다. ' Albert Nobbs '와 ' In Treatment '의 연출을 맡았던 로드리고 가르시아가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이완 맥그리거는 레이먼드 역을, 에단 호크는 레이 역을 맡아 까다로운 부모와의 어려운 관계 속에서 유산을 놓고 갈등을 겪는 인물들을 연기를 한다. 로그라인에 따르면, "그들은 여전히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고, 아버지의 장례식은 그들 자신을 재건할수 있는 기회이다. 분노도, 고통도, 어리석음도 있고 또 사랑이 있을 수도 있죠. 물론 무덤을 팔 수도 있습니다.”라고 전한다.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수상자인 알폰소 쿠아론(로마), 보니 커티스(라이언 일병 구하기), 모킹버드 픽쳐스의 줄리 린(앨버트 놉스)이 제작한다. 가브리엘라 로드리게스와 쉬 카머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는다.
“레이먼드와 레이 "는 애플의 최신작이다. 최근 애플 TV 플러스 스트리밍 플랫폼에는 앙투안 푸콰 감독과 윌 스미스가 함께한 'Emancipation',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로버트 드니로가 출연한 마틴 스콜세지의 'Killers of the Flower Moon', 톰 행크스와 함께한 'Finch' 등 여러 편의 영화가 공개됐다. 코엔형제의 ‘The Tragedy of Macbeth”에는 덴젤 워싱턴과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주연을 맡았다. 애플스튜디오는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출품한 이래로 2500만 달러(약 2500억 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가족 드라마 '코다(CODA)'를 최근 공개했고, 행크스와 함께 2차 세계대전 드라마 '그레이하운드'도 프리미어 되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맥그리거는 최근 "Halston"에 출연하여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차기작으로 디즈니 플러스의 오비완 케노비 스트리밍 시리즈에 출연한다. 호크는 미국 쇼타임의 드라마 "더 굿 로드 버드"에 출연하여 극찬을 받았다. 그는 앞으로 블룸하우스의 "더 블랙 폰"과 "나이브 아웃 2"에도 출연할 것이다.할리우드에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두 레전드 배우의 연기를 하루빨리 보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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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종」리뷰ㅣ여자가 예쁘고 야한 장면이 나오는 과학적 이유ㅣ스포없음ㅣ영화보는건데ㅣ공포영화 여자ㅣ
? "랑종" 으로 알아보는 공포영화의 과학원리(*스포없음)
- 랑종 정보
장르: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페이크 다큐멘터리, 오컬트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각본: 나홍진, 반종 피산다나쿤
제작: 나홍진, 반종 피산다나쿤
원안: 최차원, 나홍진
- 랑종 스토리 시놉시스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 낯선 시골 마을.
집 안, 숲, 산, 나무, 논밭까지,
이 곳의 사람들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무당) ‘님’은
조카 ‘밍’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날이 갈수록 이상 증세가 점점 심각해지는 ‘밍’.
무당을 취재하기 위해 ‘님’과 동행했던 촬영팀은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밍’과 ‘님’, 그리고 가족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
피에 관한 세 달간의 기록
#랑종 #랑종리뷰 #랑종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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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수요일이 사라졌다> 예고편
교통사고 이후, 요일마다 바뀌는 7명의 자아가 생긴 '나'.
조금 불편하지만 평온한 날들이었다. 수요일이 사라지기 전까지...
일주일 중 '나'의 날은 화요일.
여느 날처럼 하루를 마무리하고 일주일 후를 기약하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수요일 아침에 눈을 뜬 '나'는 화요일이었다. 수요일이 사라졌다.
화요일만 살아온 '나'에겐 조금은 낯선 수요일이었지만,
꿈만 같은 하루가 계속되길 바랐다.
그날 밤, 누군가가 나타나기 전까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진짜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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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메인 예고편
불안이 X 당황이 X 부럽이 X 따분이 등장? 올여름, NEW✨ 감정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라일리 작전이 시작됩니다? [인사이드 아웃 2] 6월, 극장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