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7-05 23:23:46
[BIFAN 데일리] 애정의 물성, 물성의 애정
영화 <일시정지>

감독] 서원태
출연] 정윤철, 임필성, 임대형 등
프로그램 노트] 뉴욕에 5만 5천 점이 넘는 방대한 보유작을 자랑하는 ‘킴스 비디오’의 김용만 대표가 있다면, 광주에는 비디오 5만여 점과 책 5만여 권을 평생 수집해온 ‘호모 시네마쿠스’ 조대영 광주 동구 인문학당 디렉터가 있다. 그는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1991년, ‘굿펠라스’라는 영화동아리를 결성한 이래 30년 넘도록 광주 지역 영화 운동에 몸담아왔다. 조대영의 방대한 VHS 비디오 수집품 중 약 2만5천 점을 2022년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원초적 비디오 본색〉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다. 이른바 ‘시네필’ 문화가 싹텄던 1990년대, 남한에서 VHS 비디오는 서구 시네마테크의 셀룰로이드 필름을 대체하는 물리적 지지체였다.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를 계기로 제작된 〈일시정지〉는 함께 모여 필름 대신 비디오를 보았던 또 다른 ‘굿펠라스’들이 들려주는 ‘비디오 본색’에 대한 이야기다. (신은실)
이 영화는 비디오를 처음 틀었을 때의 컬러 화면으로 시작한다. 순간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장면인지 얼떨떨한 동시에, 저 이미지 자체가 진작에 지난 세기의 것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비디오라... 유치원 시절을 떠올린다. 유치원이 마치면 차량 한 대가 아이들을 동네 별로 나누어 1호차, 2호차, 3호차 순서대로 태워 날랐고, 3호차를 탔던 나는 1호차와 2호차로 먼저 떠나는 아이들이 다음 장면을 궁금해할 때 느긋하게 앉아 비디오를 볼 수 있었다.
주로 디즈니 영화나 <호호아줌마> 같은 걸 봤고, 매일 유치원의 일상을 마치는 순간은 어떤 비디오를 틀지 고르는 시간이었다. 이따금 흥미 없던 로봇 만화 같은 것을 무감하게 보았던 기억도 난다. 일시정지를 눌렀을 때 화면에 은색으로 실금처럼 그어져 올라가던 노이즈도. 되감기, 빨리감기, 같은 글자와 그때의 소리들도.
생각해 보니 제목인 ‘일시정지’는 아직 존재하지만 영문 제목에 들어간 ‘rewind’, 되감기라는 단어도 이미 사라진 것 같다. “10초 앞으로” 혹은 “30초 뒤로”가 있을 뿐이다. 시간의 흐름은 그렇게 모든 것을 멀리 보낸다. 신기술은 옛 것이 되고, “첨단 사업 전람회장”을 담은 뉴스는 꼭 박물관에서 미디어 아트로 틀어줄 것만 같다. 비디오도 이미 그런 존재가 되어 있다.

이 영화는 비디오 세대를 기억하는, 통사적인 관점에서 비디오 시대를 말해줄 수 있는 여러 명의 감독 인터뷰를 꼼꼼하게 담았다. <말아톤>, <대립군> 등을 연출한 정윤철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었다. (옛날 이야기 맞지만.)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OTT 경쟁 시대인 지금은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스크린을 갖고 사는 게 당연하지만, 당시만 해도 사적인 상영 공간이란 부재하는 개념이었다. 80년대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는 집이 하나둘 늘어나고, 90년대에는 급부상한 비디오 플레이어와 함께 비디오 렌탈점이 성행한다.
비디오와 영화는 서로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성장한다. 비디오가 영화 필름의 질감을 담으려 노력했던 시절이 있는데, 필름과 필름 사이 자신의 무언가를 밀어 넣던 사람들의 노이즈 자글자글한 예술 세계가 있었는데… 이제 어디서 필름 생산을 멈췄다더라 하는 소리가 들려오다 못해 캠코더조차 ‘레트로 감성’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계에서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인터뷰어들이 비디오에, 비디오 가게에 품은 그리움 또한 흥미로웠다. 유튜브만 뒤져도 전문가의 영화 추천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지금과 달리, 당시엔 비디오 가게가 장르적 추천 기능을 했고, 좋은 영화를 많이 추천해 주었다는 아르바이트생의 존재는 마치 ‘무림고수’처럼 느껴져 재미있었다. 영화 모임 기록도 있고. 서로의 영화 리스트를 직접 볼 수 있고, 얼굴을 맞대며 알 수 있었으니 사실 요즘의 모임들보다 더 솔직하고 흥미로웠을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키워내기 딱 알맞은 자리였을 것이다. 좋은 영화를 서로 추천하고, 복제하고, 나눠 보고… 그러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태동했을 것이다. 1980년 광주 관련 영상물이나, 아직 일본 문화가 개봉되기 전의 <러브레터>도 그렇게 번졌다.

과거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이 영화가 과거를 위무하는 데만 그쳤다면 아쉬웠을 것이다. 과거를 위무하는 마음은 이후 세대에게 필연적으로 위화감을 남기기 때문이다. 인터뷰어들의 말에서도 나로서는 조금 위화감을 느꼈다. 90년대 ‘에로 영화’와 맞물렸던 비디오 문화의 성행을 말하면서, 에로 영화 사장 이유로 페미니즘과 성 인지 감수성만을 언급했지만, 매체의 변화와 궤를 같이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 인지 감수성과 페미니즘이 이유였다면 포르노 시장, 끔찍한 디지털 성범죄가 없었을 테니까. 우리 사회 성 인지 감수성이 뭐 얼마나 높다고 이럴 때만 “아쉬움”의 사유 자리에 놓이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불어 인터뷰어들 말대로 에로 영화 소비층의 존재가 기술의 발달에 기여한 점도 분명 있겠지만… 양으로만 기능할 수 있나? 음으로도 기능했다. 언급된 마틴 스콜세이지 같은 헐리우드 감독에 비해 과거 우리 나라 영화 감독을 디깅하는 문화가 잘 정착되지 않은 이유는, 과거 한국 영화의 이미지 브랜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성 인지 감수성”을 비롯해 다양한 감수성이 낮은 영화들과 맞닥뜨리거나, 그걸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아쉬움 타령 듣는 건 별로 재미있지 않아서.
그런 위화감도 잠시, 영화는 과거의 낭만과 풍요를 말하면서도 과거의 낭만만을 그리지 않고 나아간다. 유해환경 정화를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대통령의 “헌법적 능력”까지 써서 “불량 비디오”를 금지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청소년 보호구역에 성인 비디오 가게가 횡행하는 일은 지양해야 옳지만, 이외의 사적인 비디오에 관해서라면, 과연 관에 의해 이렇게 쓸어버리는 형태가 옳은가 하는 질문은 남는다. 미풍양속은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나, 관이 쓸어버리는 형태도 아름다운지.
그것도 다 옛 일이다. 이제는 물성으로 소유하는 것이 약해진 시대. 책도 영화도 모두 손에 잡히는 물성을 잃고 구독 경제의 사이클로 들어가 버렸다. 언제든 스크린에 띄워 볼 수 있지만, 구독을 해지하는 순간 스크린에 띄울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나도 처음에는 이런 구독 경제에 저항감이 있었으나, 지금은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과 영화를 소유하지 않고도 언제든 볼 수 있으니, 구독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이득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실제로는 ‘찜’, ‘보고 싶어요’만 바삐 눌러 놓으면서도.

그래서 이 영화의 메시지가 충격이었다. OTT에서 내려가면 그 영화를 더 볼 수 없고, OTT의 큐레이션은 대체로 작품성과 다양성보다는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마의 이득을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갈수록 자극적이 되어 가는 데 반해 인간에 대한 고민은 옅어져간다고 느꼈던 어떤 작품들을 떠올렸다.) 기술 발전만 보면 모든 것을 클라우드에 올려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현실은 오히려 물리 매체로 영화를 보던 시절에 비해 영화의 다양성이나 폭이 더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의외로 그 사이 사라지는 영화들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은 내게 충격이었다. 그렇지. 기술의 발전이 꼭 우리의 발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
우리는 자본주의 세계 한복판에 살고 있으니, 자본의 논리를 완전히 제하고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영화 또한 자본 없이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가 파도처럼 거세게 밀려오는 세상에도, 지켜야 할 무언가는 있지 않을까. 비록 마이너해도, 많은 사람의 사랑과 선택을 받지 않아도, 자극적인 맛 하나 없이 슴슴하다 못해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그런 작품들의 자리를 작은 섬처럼 빼꼼 내어줄 필요 있지 않을까. 그 자리에서 안온하게 쉬어 갈 사람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사람들이 또 있을 테니까. 인터뷰 중 나온 말처럼, 맥락 속에서 아카이브는 살아있을 것이다.

물성 없는 시대, 여전히 애정은 물성에 어린다. 비디오가 없는 시대는 굿즈 포화의 시대이기도 하다. 나는 영화 굿즈를 꼬박꼬박 모으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굿즈들은 집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 영화와 눈 맞춘 시간을, 영화가 내게 와 닿고 나를 바꿔준 지점을 기억하고 싶어서. 영화는 스크린 위를 흘러가고, 장면은 짧게 눈 맞춘 후 멀어지지만, 굿즈는 내 손에 남아 있으니까. 이 찐득한 애정을 물성으로 만져보곤 한다…고 얼마 전에 일기처럼 쓴 적이 있다. 언젠가 먼 훗날, 이들이 비디오를 추억하듯 나도 굿즈를 만지작거리며 애정의 물성을 이야기하게 될까.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 상영시간표
7월 2일 20:00-21:02 CGV소풍 8관 (상영코드 443)
7월 5일 17:00-18:02 부천시청 판타스틱큐브 (상영코드 722)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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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TI_INFJ 영화인들 모아보기
내일 놀래? / infj : 생각해볼게 (놀 의향 / 생각해볼의향 없음)
웃으면서 거절 잘하는 인프제. 친한 지인들은 안다는 인프제의 영혼리스 리액션..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마음은 정말 따숩답니다(?) 친구들의 고민 들어주기 장인, 도어슬램 장인, 혼자있기 장인.
알다가도 모를 인프제! mbti infj라고 밝혀진 영화인들 같이 만나보아요
✅ 친구들에게 내 성격 알려주기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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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모와 연기력 겸비한 2세대 여배우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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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_@cine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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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도적인 CG와 영상미, 하지만 새는 스토리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개봉 직후, 아주 다양한 시무리우의 밈들이 온라인을 지배해서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을 일인가 싶어서 보러 간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마블은 마블이었고, 하지만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시놉시스
텐 링즈를 차지하는 자, 세상을 지배한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텐 링즈의 힘으로 수세기 동안 어둠의 세상을 지배해 온 웬우. 샹치는 아버지 웬우 밑에서 암살자로 훈련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평범함 삶을 선택한다. 그러나 샹치는 목숨을 노리는 자들의 습격으로 더 이상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어머니가 남긴 가족의 비밀과 내면의 신비한 힘을 일깨우게 된다.벗어나고 싶은 과거이자, 그 누구보다 두려운 아버지 웬우를 마주해야 하는 샹치. 악이 될 것인가? 구원이 될 것인가? 마블의 새로운 시대, 세상에 없던 힘이 탄생한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동양 스테레오타입이 맞긴 하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를 기대했던 이유는 주위에서 엄청 재밌다고 꼭 보라고 말하는 지인들이 있어서기도 했으나 개인적으로는 마블이 그리는 아시아의 세계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새로움이 없는 전개였다. 어째서 동양권은 항상 전토을 고수할까? 서양이들이 느끼는 그런 환상이 있는 것인가 싶었다. 마블 세계관에서 서양에서 활동하는 어벤저스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새로운 수트에 첨단 무기를 사용하더만 왜 동양의 힘은 ‘전통’, ‘고대’에서 기원하는 것일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의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동경인것인가...? 싶었다.
그의 절정이 중국 무술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대나무숲에서 휘리릭휠리릭 날라다니는 초절정 무림고수를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다시 마주했다. 중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법한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지는 이 아름답고 유려한 중국 무술을 만나볼 수 있다. 물론 파괴력보다 유려한 선을 강조하는 것이 중국 무술의 특징이어서 일반적인 마블 영화를 볼 때보다 전투신이 굉장히 아름답게 느껴지긴 했다. 마침 춤을 보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슬로우모션이라니! 솔직히 그렇게 표현을 안해도 다른 전투신들과는 이미 차이를 잘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걸 강조하는 모습이 조금은 유치하게 다가왔다.
마블은 역시 영화관용이다
전혀 바뀐 것 없는 서양인들의 동양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녹여내고 있어서 솔직히 욕을 하고 싶었지만 엄청난 비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상미 하나는 끝내줬기 때문이다. 웅장하고 압도적인 영상미에 줄줄 새는 스토리 전개와 캐릭터의 함정 따위 상관없게 다가왔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친구와 한 말이 ‘CG 하나는 끝내준다’였다. 정말 압도당해서 욕을 할 수가 없었다. 단톡방에서도 이 작품은 집에서 봤다면 욕을 오지게 했을 것 같은데 스크린이 너무 커서 그 웅장함에 할 욕을 잊어버렸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영상미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마블의 팬인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시즌1에서는 이 캐릭터가 왜 마블의 영웅의 일원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개괄적으로 전개가 되다보니 스토리가 좀 줄줄 새는 편이라고 하던데,,, 과연 그럴지는 다음 편이 나와봐야 알 것 같다.
샹치의 캐릭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까?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를 보면서 계속 들었던 의문은 도대체 샹치는 뭐하는 것일까? 였다. 온갖 멋있음은 양조위 ‘웬우’가 다 보여주고 있어서 이 카리스마와 위압감, 그 와중에 아내를 향한 로맨티스트적인 모습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에 반해 샹치는 캐릭터가 진중함인지 코믹인지 모를 그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노선을 잘 모르겠다.
게다가 혼자서는 그 스크린을 채우질 못한다. 친구 케이티가 여페 등장을 할 때만 둘의 시너지로 스크린을 채우는 느낌이랄까요? 게다가 그 마왕인지,,, 영혼을 빨아먹는 그 용,, 솔직히 그 용과의 싸움에서 전세를 역전시킨건 케이티의 화살이었다. 샹치,, 능력이 있는게 맞는 것일까? 마왕을 죽인 것도 사실 용이 한거고, 샹치는 그냥 용만 타고 있던데,, 도대체 샹치가 이번 영화에서 한 일은 무엇일까? 양조위 빛내주기였나? 싶을 정도였다. 3억 7천만원 짜리 관상어 웬우를 살려냈으면 좋겠다. 어쩜 그리도 허무하게 죽을 수 있는지. 다음 시즌에서는 샹치가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길 바란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영상미와 CG는 정말 좋았지만 그 외에는 솔직히 볼게 없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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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를 향한 아주 짧은 예고편, <파문>
*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파문> Ripples, 2025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모두를 향한 아주 짧은 예고편, <파문>
<파문>은 다르다. 인물의 서사만으로 진한 감정적 파동을 일으키는 <강변의 무코리타>(2021)나 <카모메 식당>(2006)과 같으면서도 다른 보법을 가진다. 마음이 아픈 인물들을 치유하기 위해 모든 영화적 요소를 감독만의 색깔로 버무린 방식과 이들이 긴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를 얻게 된다는, 이미 완성된 이야기가 아닌 완성 ‘되어가는’ 이야기, 즉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음미하도록 유도한 연출은 같다. 하지만 따뜻함이 가득한 치유 과정에 집중했던 전작들과 달리 <파문>은 블랙코미디 가득한 해방 과정에 몰두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인공의 삶을 ‘이미지’란 형태로 바꿔 보여준다. 극을 이끄는 주체가, 가짜 평화로부터 진짜 평화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요리코)이 아니라 그녀가 생산한 수많은 사진이란 점이다. 시각적 즐거움은 장면과 장면이 연결되는 그때, 의도적인 찰나의 멈춤으로 발생한다. 카메라 화면 구성과 편집점이 계획적으로 만든, 눈에 보이는 공백이라 요리코도 관여할 수 없다. 그 결과 요리코의 삶이 흐를수록 관객은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환경(일본 사회)을 사진으로 인식하는 낯설고도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출처: 영화 <파문> 스틸컷
요리코가 등장하는 첫 장면을 보자. 잠에서 깬 그녀를 반기는 건 남편의 발뒤꿈치와 그의 우렁찬 코골이다. 분명 흠칫할 상황이지만 그녀에겐 익숙한 아침 풍경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는 부부(한 컷)를 통해, 함께 하지만 부부관계는 이미 멀어졌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아침마다 마트에 달려가 생수를 사고, 가족을 위한 밥은 생수로, 투병 중인 시아버지 밥은 오염된 수돗물로 하는 요리코나,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우면서 며느리에게 성추행을 계속 시도하는 시아버지, 마당(꽃밭)은 애지중지하면서 방사능 괴담엔 무력하기만 한 남편, 가족보다 망해가는 세상에 더 관심 있는 아들까지 감독은 각 인물의 첫 이미지만으로 요리코가 처한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게 보여준다. 일본 여성을 향한 가족 내의 암묵적 희생 강요와 사회와 개인의 삶에 전반적으로 짙게 깔린 (대지진과 원전 사고로 인한) 무기력과 자포자기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특히 두 요소는 참을 수 없는 웃음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씁쓸함을 적재적소로 유발해, 블랙코미디의 맛과 이야기의 집중도를 끌어올린다.
요리코는 행복해 보이지 않지만, 딱히 불행해 보이지도 않는 기이한 평화에 갇혀 있다. 어찌할 수 없는 원전 사고와 다를 바 없는 ‘가족’ 덕이다. 세 사람은 요리코의 삶에 가족이란 이유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열심히 뿜어대고 요리코는 기꺼이 흡수하는 식인데 그녀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심지어 남편의 가출(자발적 실종)과 시아버지의 죽음, 아들의 집 탈출로 혼자가 됐음에도 변함없다. 세 남자에게 치여 살다가, 사이비 종교(녹명회)가 만든 생명수(녹명수)를 믿으며 혼자 자유롭게 살게 된 삶은 당연히 전과 다르지만, 어디까지나 그녀의 착각일 뿐이다. 자기희생적 기질을 가진 요리코 마음에 사이비 종교가 가족을 대신해 들어온 것뿐이니까. <파문>은 이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리코가 남편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화면이 끊기고 ‘수면 위로 물방울이 똑 떨어지는 아주 짧은 영상’이 삽입된다. 공백이 그녀를 흔드는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 ‘단절’로 변주해 나타나는 것으로, 아주 짧은 예고편과 같다.
출처: 영화 <파문> 스틸컷
단절은 그녀에게 반갑지 않은 과정이다. 방사능이 무서워 가출해 놓고, 암에 걸려 돌아온 것도 기막힌데 비싼 항암 치료비까지 요구하는 남편과 연상의 청각장애인 여자친구를 연락도 없이 데려와 결혼을 통보하는 아들, 아들과 헤어져 달라는 부탁을 당당히 맞받아치는 예비 며느리, 거기에 멀쩡한 물건에 하자가 있다며 제값의 반값을 요구하는 마트 진상 손님까지, 단절 이후 벌어지는 상황이 죄다 그녀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단절로 인한 그녀의 혼란은, 진정한 해방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니까.
가족들이 수면 위에서 요리코에게 가시 박힌 말을 내뱉을 때마다 그들의 발밑(수면)에서 시작된 물결이 그녀에게 닿는다. 이 흑백 장면들은 <파문>에서 가장 주요한 순간 포착이다. 가족의 이기심이 요리코의 고통 원인이자 전부임을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다른 얘길 하고 있다. 사실 그녀 또한 가족과 같은, 파문을 일으키는 자로 무수히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피해자가 가해자였다는 얘기도, 가족이 더 괴로웠고 그녀가 덜 괴로웠다는 식의 결론도 아니다. 가족들 역시 그녀에게 영향을 준 만큼 그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상황 자체를 인지하는 일이다. 하지만 희생과 침묵이 당연한 삶을 살아온 그녀였기에, 요리코는 자신의 파문을 보지 못했다. 상처받은 원인을 들여다볼 생각 없이, 또 자신에게 철저히 무지한 채, 고통받는 나를 계속 억눌러 왔던 것이다. 요리코는 진작 ‘여러 일을 겪은 나’란 사람을 정확히 파악하고 보살폈어야 했다. 가족들의 이기적인 행보에 화가 났고, 슬펐으며, 한없이 무력했음을, 그래서 고통스러웠고 외로웠다고 표현했어야 했다. 돌아온 남편의 칫솔로 화장실 세면대를 몰래 청소할 게 아니라, 자신이 정말 원하는 바를 말하고 행동했어야 했다. 요리코가 진심으로 바랐던 건, 꽃밭을 없애고 만든 고산수식 정원도, 정원을 정성스럽게 가꾸며 영혼 정화와 영혼의 차원을 높이는 희망도 아니었으니까.
출처: 영화 <파문> 스틸컷
진전이 없는 요리코에 단절은 진짜 평화를 가진 듯한 새 친구, 마트 청소부 미즈키를 소개한다. 미즈키는 요리코가 버거워할 때마다 어느새 나타나 위로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들 때가 있고, 누구나 궁지에 몰리면 이성을 잃을 때도 있다고 말이다. 남편이 암에 걸렸든 말든 쫓아내라고 대신 화내주거나, 마음이 힘들 땐 녹명수를 마시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는 게 좋다며, 자기가 하는 수영을 권하기도 한다. 현실적이면서 효과적이기까지 한 미즈키식 위로에 그녀는 반응한다. 그러나 미즈키 또한 내면이 곪을 대로 곪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린 아들을 잃고 대지진으로 집이 엉망이 된 후 완전히 주저앉았다. 쓰레기장이 된 집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건 수영복이었고, 유일하게 신경 쓰는 건 반려 거북이 한 쌍뿐이었다. 방식만 다를 뿐 두 사람은 서로 다를 바 없는 삶을, 몰래, 숨죽이며 살고 있던 것이다.
거북이를 돌봐주겠다고 약속한 요리코는 친구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동안 모른 척해 왔던 고통의 실체를 마주하고 오열한다. 자신에게 얼마나 무지했고 가혹했는지 깨달으며 그동안 삼켜왔던 울분을 토해낸다. 그리곤 미즈키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처럼,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집을 깨끗하게 치워주며, 힘들었던 자신을 함께 위로한다. 마침내, 요리코의 삶에, 서로에게 대가 없는 희생이 아닌, 대가 없는 치유가 발을 들인 것이다.
출처: 영화 <파문> 스틸컷
요리코는 거북이가 정원을 헤엄치는 걸 보며 그토록 염원했던 자유의 꿈틀거림을 느낀다. 처음으로 후련한 미소를 짓는 그녀만의 따뜻한 파문이 해방의 파도로 관객에게도 닿는 순간이다. 요리코의 깨달음 이후 단절은 사라진다. 여전히 아픈 남편과 살고 아들의 사랑도 말릴 수 없지만, 더는 그들의 파문에 힘겨워하는 요리코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귀한 녹명수를 권하는 교인에게 자기 발등을 내리찍는 눈물로, 숭배의 마침표를 찍는 그녀만 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고, 남편 시신이 담긴 관을 든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 집을 나온다. 가짜 평화의 축소판인 고산수식 정원을 망가트리지 않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건너던 사람들은 결국 관을 떨어트리고 만다. 관 밖으로 나온 남편의 시신을 보며 모두가 당황한 그때, 요리코의 쾌활한 웃음이 울려 퍼진다. 당황한 아들의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원에, 해방의 파도에 몸을 맡긴 남편을 보며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그녀‥. 요리코에게 해방은 무엇일까. 그녀에게도 이제 진짜 평화가 온 걸까. 요리코는 단절이 주는 절망이, 사실은 희망임을 받아들이면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나에게서, 그들에게서 벗어났고, 동지를 얻었으며 함께 기쁨과 슬픔을 겪어내는 법도 배웠다. <파문>의 정체성이자 메시지 그 자체인 강렬한 포스터가 이를 증명한다.
출처: 영화 <파문> 스틸컷
상복을 입은 요리코가 비를 맞으며 해방의 파도를 휩쓸며 플라멩코를 추기 시작한다. 정열적인 춤사위는 상복 안에 감춰진 붉은 드레스를 끄집어내고, 대문을 나서면서도 계속된다. 그리고 마침내 들리는 활기찬, 감탄사 올레!! 하늘을 보고 활짝 이를 보이며 웃는 요리코가, 내면이 아픈 이들의 치유와 희망을 반드시 전하고 마는 감독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예고편이다.
영화 <파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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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우리를 평안케 할 ‘궁극의 수학 공식’을 찾아서
수학영재 형주
코리안시네마
시놉시스
16살 수학영재 형주는 엄마의 죽음 이후 자신의 아버지가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라고 의심을 하게 되고 몰래한 친자 확인 유전자 검사에서 친부가 아니란 걸 알게 된다. 혼란에 빠진 형주는 자신의 수학적 능력을 이용해 생물학적 아버지를 추리해 나가고 단짝인 지수와 함께 친부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스케이트 타기를 좋아하는 16살 수학영재 형주는 종종 이렇게 되뇐다. “나는 수학을 믿는다. 교과서뿐만이 아니라 온 우주는 수학으로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수학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을 안정화한다. 수학의 렌즈로 보면 오류와 변수로 가득한 세상이 순식간에 질서정연해진다. 형주가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다. 하지만 수학은 형주에게 기쁨의 원천인 동시에 필요의 대상이기도 하다. 형주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가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라는 의심에 비밀리에 친자 확인 검사를 진행하고,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친부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물론 수학적인 방식으로.
영화는 기괴한데 따뜻하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형주가 엄마가 남긴 옛 일기장을 통해 친부 후보 세 명을 추리자, 형주의 친구는 온갖 공공기관을 해킹해 그 세 명이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형주가 최단거리로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들어준다. 영화는 평범한 학생이 갑자기 노련한 해커처럼 구는 이 짓궂은 장면을 능청스레 내놓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듯 자연스럽고 능청맞은 전개에 절로 웃음이 난다. 서사를 ‘매끄럽게’ 풀어내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수학영재 형주〉는 자기만의 호흡과 문법을 가졌다. 독립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이러한 연출이 극에 몰입을 방해할 때도 종종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되레 수학으로 세상을 보는 형주의 관점에 더 깊이 몰입하게 해주고, 이 영화만의 인장으로 작용한다.
세 명의 친부 후보를 만나며 형주는 알지 못했던 엄마의 과거를 접하고 친부를 찾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형주와 마찬가지로 엄마에게서 똑똑한 머리를 물려받은 형주의 엄마는 언젠가는 형주가 친부를 찾아 나서리라고 여긴 듯하다. 그래서 형주의 여정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남겨두었다. 형주는 엄마가 남긴 문제를 ‘풀면서’ 조금씩 삶과 가족을 대하는 자신의 공식을 바꿔나간다. 기존 공식과 풀이법이 적용되지 않으면 조금 더 복잡한 환경에서도 적용할 수 있도록 공식과 풀이법을 업그레이드하고 또 다음 문제를 풀어나간다. 삶에는 오류와 변수가 무한하기에 형주의 공식도 그에 맞춰 점점 더 복잡해진다. 그러나 영원히 그럴 수는 없다. 그 어떤 복잡하고 대단한 공식도, 증명하는 데 수백 년이 걸렸다는 수학 정리定理도 변수와 오류를 통제하는 곳에서만 적용 가능하다.
형주는 때때로 삶이 수학을 초과한다는 사실, 나아가 이 명제야말로 ‘궁극의 공식’이라는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이것이야말로 엄마가 형주에게 전하고 싶은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친부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지금껏 형주를 아끼는 마음으로 보듬어준 사람이 누구인지이다. 나아가 지금의 형주를 아끼며 그의 곁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이다. 영화의 마지막, 늘 자신을 키워준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고 ‘민규 씨’라고만 부르던 형주가 마치 오랫동안 그래왔다는 듯 ‘아빠’라는 말을 마침내 입 밖으로 낼 때, 영화는 굉장한 온기를 뿜어낸다.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대구 남자 둘이 만들어내는 이 뜻밖의 다정함에 입을 헤 버리고 미소 짓지 않기는 정말 어렵다.
〈수학영재 형주〉가 특히 인상 깊은 건 이 영화가 남성 어린이, 청소년의 성장을 다루는 다른 영화와 구분되는 지점에 있다. 모든 성장 영화에서 아이, 청소년이 마주한 세계는 부정적인 대상이다. 아름답기만 한 세계에서는 주인공이 이를 비판적으로 극복‧지양해 성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독립영화에서 어린이, 청소년이 마주한 세계의 부정성은 유독 도드라졌다. 이들 영화가 그려내는 세계는 비판적으로 극복‧지양할 대상이라기보다는 폐쇄적인 미로, 절대적 폭력이 영구적으로 지배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경향이 남성 어린이, 청소년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더욱 도드라졌다는 점이다. 여성 어린이, 청소년이 주인공인 영화는 마찬가지로 답답한 세계에서도 숨이 트이는 지점을 마련해놓는 일이 잦다. 폭력적인 세계일지라도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두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 어린이, 청소년 성장영화에서는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암울한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이 주요 정서였다. 각 성별에 부여된 문화적 관습과 젠더 역할의 영향일 터다. 그런데 〈수학영재 형주〉는 이 구도를 비껴간다. 마치 지금껏 그런 구도는 없었다는 듯 따뜻하고 다정하고 남성 청소년의 성장을 그린다. 〈수학영재 형주〉는 영화 그 자체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기존 한국 독립영화의 궤적에서도 주목할 만한 놀랍도록 매력적인 영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5회 국제전주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수학영재 형주〉 상영 시간은 아래와 같습니다. 다른 영화 상영 시간은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5월 2일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6관(113)
-5월 4일 17:30 CGV전주고사 4관(343)
-5월 8일 17:30 CGV전주고사 4관(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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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생각하면
수많은 영화 중에 떠오르는 영화가 있어요
바로,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인데
여기서 조정석의 코믹한 연기와 신민아의 러블리한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리며 더욱더 재미있게 봤던 영화인데요
그럼,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로맨틱 코미디
감독 : 임찬상
각본 : 김지혜
출연진 : 조정석, 신민아
개봉일 : 2014년 10월 08일
평점 : 8.39
스트리밍 : NETFLIX
기획 의도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정말 결혼하면 다 이래?!
4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대한민국 보통 커플,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달콤한 신혼생활도 잠시 사소한 오해와 마찰들이 생기며
'결혼의 꿈'은 하나둘씩 깨지기 시작하는데...
이 결혼, 과연 잘 한 걸까?
도대체 말이 안 통하는 철부지 남편 '영민' 사사건건 잔소리만 늘어나는 아내 '미영'
정말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상상하고 꿈꿔 온 결혼,
그 이상의 ' 속'깊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담
영화<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1990년 박중훈, 최진실 주연의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최적화되어 있는
조정석의 믿고 보는 연기력과 신민아와의 러블리한 조합은 상상 이상으로 케미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후기 및 결말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결말
미영(신민아)와 4년차 연애 중인 영민(조정석)은
그녀에게 청혼을 하며 행복한 신혼의 맛을 본다.
알콜달콩만 할 줄 알았던 결혼 생활에서
영민은 시인이 되기 위해 더더욱 글쓰기에 매진하며 미영에게는 무뚝뚝해지기만 해진다.
미영은 배가 아파 응급실에 실려갔지만,
다행히 큰 병은 아니었지만 영민에게 화가 난 미영은 그에게 헤어지자고 말하고, 그러다 영민과 미영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서로 화해하며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풋풋하고 달콤한 이야기만 있어야 하는 신혼 생활에서 점점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는 것을 너무 현실 그대로 잘 반영하여 녹여낸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이다.
재미있게 울고 웃고 싶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찾는다면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추천하고 싶다.
8점 대의 높은 평점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조정석의 능청스러운 초반 연기력에
영화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한줄평 : 사랑해 미영, 미안해 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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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리뷰 (스포일러 O) - 정답보다 중요한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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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보다 중요한 건 답을 찾는 과정이야”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
그는 자신의 신분과 사연을 숨긴 채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인 자사고의 경비원으로 살아간다.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학생들의 기피 대상 1호인 `이학성`은
어느 날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수학을 가르쳐 달라 조르는
수학을 포기한 고등학생 `한지우`(김동휘)를 만난다.
정답만을 찾는 세상에서 방황하던 `한지우`에게
올바른 풀이 과정을 찾아나가는 법을 가르치며
`이학성` 역시 뜻하지 않은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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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공조2 : 인터내셔날> 티저 예고편
삼각 공조로 더 강력하게! 짜릿하게! 돌아왔다!?? 현빈X유해진X임윤아의 뜨거운 재회부터 다니엘 헤니X진선규의 신선한 에너지까지!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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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트랜스포머: 워 포 사이버트론 트릴로지 - 그들의 왕국> 공식 예고편
[2021년 7월 29일, 넷플릭스 공개]
누가 먼저 사라진 올스파크를 찾을 것인가.
이제 오토봇은 맥시멀과 힘을 합쳐, 프레데콘과 팀을 이룬 디셉티콘에 맞서야 한다.
하지만 메가트론과 개인적으로 연관된 미스터리의 유물인 황금 디스크를 갖고 있는 프레데콘.
메가트론은 상대인 옵티머스 프라임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최후의 결전에서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가?
사이버트론의 미래를 결정할 마지막 싸움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