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17 11:21:01
4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연기 은퇴 고민 밝힌 케이트 블란쳇

<블루 재스민>, <캐롤> 등 자신만의 연기를 펼치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연기를 그만둘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고 밝혀, 전 세계 팬들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가족들은 눈을 굴리지만,
저는 정말 진심이에요. 제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거든요”라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그는 후반 작업 중인 영화 두 편 외에 예정된 프로젝트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넷플릭스 영화 <올드 가드 2> 7월 3일 공개

2020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던 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올드 가드> 후속편이 드디어 공개일을 확정했습니다.
앞서 2022년 8월에 촬영을 마쳤지만, 자취를 감춰 궁금증을 자아냈던 <올드 가드 2>는
오는 7월 3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공개될 예정이며 “강렬한 폭력 장면과 일부 언어 사용”으로
미국영화협회(MPA)로부터 청소년 관람불가(R)등급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해 샤를리즈 테론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넷플릭스 내부의 경영진 교체로 인해 후반 작업이 갑작스럽게 중단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1편의 감독이었던 지나 프린스-바이스우드가 하자하고, 빅토리아 마호니 감독이 새롭게 메가폰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드라마 <무빙> 시즌 2 연출 바뀐다, <킹덤> 김성훈 감독 낙점

<킹덤>, <끝까지 간다> 등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이 디즈니+ 국내 최대 흥행작이었던 <무빙>의 새로운 시즌 연출자로 낙점되었습니다.
현재 <무빙> 시즌 2는 주요 배우들에게 진행 상황을 알리고,
감독 교체 내용 전달 등 촬영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차례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강풀 작가는 현재 대본 작업에 몰두 중이며,
오는 5월 프리 프로덕션에 들어가 2026년 3월 촬영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A24, 제시 아이젠버그 연출 신작 배급 예정

A24가 제시 아이젠버그의 세 번째 연출작의 배급 판권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2026년 극장 개봉 목표로 한 해당 영화는 뮤지컬 장르로, 줄리안 무어와 폴 지아마티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그 외 할리 베일리, 버나뎃 피터스, 몰릭 팬촐리 등이 출연 예정입니다.
전작인 <리얼 페인>과 마찬가지로 제시 아이젠버그도 작품에 출연하며, ‘지역 커뮤니티 극단’이라는 작은 무대를 배경으로,
내성적인 여성이 예상치 못하게 오리지널 뮤지컬의 주연으로 캐스팅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릴 예정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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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둘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9년만에 돌아온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와 [스낵 무비] 등장?
현대차와 협업한 손석구 주연의 10분 무비,
CGV에서 단돈 1000원에 개봉한다고 하는데요.
6월 14∼16일 21~23일 상영예정입니다.
영화산업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손석구의 새로운 도전!
씨네픽이 응원합니다
인사이드 아웃 2
Inside Out 2
개요: 드라마 | 미국 | 96분
감독: 켈시 맨
더빙: 에이미 포엘러, 마야 호크, 루이스 블랙
개봉: 2024.06.05.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놉시스
디즈니·픽사의 대표작 <인사이드 아웃> 새로운 감정과 함께 돌아오다! 13살이 된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매일 바쁘게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를 운영하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그러던 어느 날, 낯선 감정인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가 본부에 등장하고,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며 제멋대로인 ‘불안’이와 기존 감정들은 계속 충돌한다. 결국 새로운 감정들에 의해 본부에서 쫓겨나게 된 기존 감정들은 다시 본부로 돌아가기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을 시작하는데… 2024년, 전 세계를 공감으로 물들인 유쾌한 상상이 다시 시작된다!
너는 달밤에 빛나고
You Shine In The Moonlight
개요: 멜로/로맨스 | 일본 | 101분
감독: 츠키카와 쇼
출연: 키타무라 타쿠미, 나가노 메이
개봉: 2020.06.10.
배급: ㈜라이크콘텐츠
시놉시스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어” 생이 끝나 갈수록 몸에서 빛이 나는 발광병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소녀, ‘마미즈’ 가족이 떠난 슬픔으로 시간이 멈추어 버린 소년, ‘타쿠야’ 푸르고 푸른 시절, 한 장의 롤링 페이퍼로 만나 서로에게 빛이 된 소년소녀의 처음 그리고 마지막 봄날 이야기
퀸 엘리자베스
Elizabeth: A Portrait in Part(s)
개요: 다큐멘터리 | 영국 | 90분
감독: 로저 미첼
출연: 엘리자베스
재개봉: 2024.06.12.
배급: 영화사 진진
시놉시스
“우리는 여왕을 사랑하며 자랐습니다” -비틀즈 폴 매카트니-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왕좌에 머무른 퀸 엘리자베스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하다.
밤낚시
NIGHT FISHING
개요: SF, 스릴러 | 대한민국 | 13분
감독: 문병곤
출연: 손석구
개봉: 2024.06.14.
배급: CJ CGV
시놉시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낚싯대를 놓치지 말 것! 아무도 없는 한산한 강변, 밤새 홀로 텐트를 지키는 한 남자(손석구). 그의 차 안에선 수상한 무전이 계속 이어진다. 전기 충전소로 향한 그는 홀로 자리 잡은 채, 입질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오늘밤, 가장 위험한 밤낚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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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화와 불화하며
살아서도 죽어서도 파파라치와 가십의 대상이었던 프린세스 다이애나를 다룬 영화에서, 마찬가지로 수많은 파파라치와 가십에 둘러싸여 여기까지 온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연기한다. 자연히 이 영화를 기대하는 눈길은 많았지만, 과연 지금은 그 눈길에 파파라치의 시선이 없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도, '사건'을 보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그만큼 사건이 많은 삶이었다.
사진 속 프린세스 다이애나의 미소는 지금 보아도 산뜻하다. 지금 보아도 한 컷 한 컷이 화보처럼 보일 만큼 당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이었고, 왕세자의 불륜과 영국 왕실의 '지엄한 법도'에 눌리면서도 누구보다 선명한 존재감을 보인 사람이었으며, 봉사활동을 다니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면에서는 단단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전 세계의 열광을 받은 사람. 삶의 어느 조각을 잘라내어도 극적인 사건을 찾을 수 있을 듯한 사람.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도 다르지 않다. 판타지를 결합한 하이틴 로맨스 <트와일라잇>으로 로버트 패틴슨과 나란히 인기를 끌었고, 두 사람은 반짝 스타처럼 보였다. 연기력이나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고, 둘의 연애사는 지구 반대편까지 알려지는 걸로도 모자라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트위터에 친히 (그것도 몇 번이나) 언급되었다.
그러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세간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반짝 스타처럼 보였던 이들은 (공교롭게도 둘 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끝까지 끌고 가면서도, 동시에 결이 전혀 다른 작품을 파고들며 자기 자리를 직접 만들어 간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최근작만 살펴보아도 <트와일라잇> 때와는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나 <퍼스널 쇼퍼>, 가장 최근에는 <세버그> 등 다양한 작품을 해온 (사이에 트럼프의 트위터를 방송에서 읽기도 하면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마침내 <스펜서>에 다다른다.
가십과 파파라치에 둘러싸인 두 존재의 만남이었다. 불화와 불화하며 걸어온 존재의 만남.
그 자리, 영화 <스펜서>는 프린세스 다이애나 삶의 어느 특정한 사건보다는, 그를 둘러싼 분위기와 감정을 공 들여 재현했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별장에서 왕실 식구들이 머무르는 3일을 배경으로 한다. 그 3일 동안 다이애나는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보여야 하고, 가려야 한다. 시놉시스는 그게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실존 인물의 삶에 대해 알려진 바에 비하면 기승전결의 낙폭이 큰 영화는 아니다. 대신 촘촘하게 나아가 감정에 사람을 가둔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무엇을 보이고 무엇을 가릴지 엄격하게 정해진 세상에서 다이애나를, 뒤이어 관객을.
다이애나는 그 3일의 휴가를 시작하러 들어가는 길부터 규정을 깬다. 누구의 엄호도 받지 않고 직접 차를 운전해, 길가의 식당에서 여기가 어딘지 묻는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는 그 감정의 내부. 습도 90%의 무더운 날씨처럼 답답한. 여기에는 다이애나가 처한 상황 못지않게, 3일이라고 시간 배경을 딱 잘랐음에도 시간이 선형적이라 느껴지지 않는 전개 탓도 크다. 영화의 많은 장면은 현실과 다이애나의 상상을 오락가락하여,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즉각 파악이 어렵다. 그 여부가 관객에게는 조금 지나고야 도달하게 된다. 진주 목걸이를 힘껏 뜯어버리는 상상, 고풍스러운 복도를 헐떡거리며 걸어가는 모습,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변기 앞에 고개를 숙인 마른 등뼈, 스펜서 저택에서 계단을 밟는 모습.
그런 사람들이 있다. 과거를 덧입고 현재를 사뿐 뛰어넘어 미래로 날아가 버리려는 사람. 그의 고향은 미래가 아니었을까 묻게 만드는 사람. 현재에 들어맞지 않아 불화하지만, 물리적으로 현재를 벗어날 수 없으니 미래에 속할 수도 없다. 현재에 같이 있는 이들의 눈에는 더없이 불안해 보인다. 점멸될 듯 깜빡깜빡 현재를 산다.
대신 그가 죽은 후, 그에게 미래라 불렸을 시간이 도래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먼 훗날, 그의 미래를 현재라 부르는 이들이 돌이켜보면, 그는 과거의 사람임에도 자신이 존재했던 시절에 매이지 않고 현재에까지 유령처럼 남아 부유하고 있다. 그가 날아든 미래가 바로 여기였던 것이다.
다이애나는 그런 사람이다. 잊히지 않고 미래에서도 계속 언급되는 사람이다. 영화 <아멜리에>의 등장인물들이 계속 다이애나 이야기를 하듯이. 사후에도 그의 일부가 살아 있지만, 살아생전에도 그의 어떤 면은 유령처럼 부유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스펜서>는 프린세스 다이애나를 둘러싼 사건과 가십들을 걷어내고, 그의 유령을 옷과 목걸이 아래 재생해 놓은 영화다.
그러니 다이애나가 끊임없이 유령을 인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는 앤 불린에게서 자꾸 자신을 본다. 오래된 방의 먼지에서는 과거의 여왕에게서 탈각된 신체 일부를 느낀다. 훗날 유령이 되는 이들만이 유령을 볼 수 있다. 과거의 유령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것도 이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물리적으로 매인 몸이 시간을 유영하는 마법은 오직 마음으로만, 연민으로만 이루어진다.
다이애나가 영화 속에서 계속 거부하는 행위들은 철저하게 몸에만 속한 행위들이다. 먹기와 입기. 엄밀히 말해, 정해진 대로만 먹고 정해진 대로 입기. 대신 그는 계속해서 어디론가 움직인다. 걷고 뛰고 운전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옆에 놓인 패스트푸드 봉지는, 그가 먹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그가 자유롭게 움직여 구입한 물건이기도 하다. 그가 운전한 자동차처럼, 그가 뛸 때 흩날리는 모자처럼, 몸 이전에 마음에 속한 행위의 결과물인 셈이다.
유령을 보다가 유령이 되다가 하는 느낌으로, 상상과 현재를 뒤섞어서, 다이애나라는 인물은 어딘가에 갇힌다. 음습한 공기마저 담아내는 클레르 마통의 카메라, 그 습도에서도 팽팽하게 목을 옥죄는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이, 갇힌 자리에 자물쇠를 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다이애나에 가려졌다가, 보였다가, 반복하면서 그 자물쇠를 걸어 잠근다.
갇힌 그 자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는 유령을 기다린다. 다이애나의 영혼을, 미래에서 기다린 이들과 조우하게 만든다. 사실 다이애나 생전에도 정직한 애정만으로 그를 바라본 이들은 있었을 것이다. 황색 언론 너머에서 호의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샐리 호킨스가 연기한 캐릭터 매기처럼, 너무 다정해서 오히려 환상 같고 미래 같은 그런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허수아비가 입고 있던 아버지의 옷을 수선해 준 매기의 손길처럼, 어떤 애정이 다이애나의 어깨에 걸쳐진다.
다이애나가 책을 통해 앤 불린의 영혼을 소환했듯이, 관객이 갇힌 자리에 다이애나의 유령이 현재로-즉 다이애나의 미래로- 소환된다. 이것은 일종의 위령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앤 불린이 다이애나에게 한 것 같은 위로로 누군가에게 다가갈 것이다. 당대와 불화하며, 선대의 유령과 먼지에 자신을 비춰보는 존재들에게. 당신을 환대하는 마음이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당신은 사라져도 아주 사라지지 않는다고.
불화와 불화하며 현재를 사는, 미래에서 다시 만날 누군가를 생각하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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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플래쉬>(데미언 셔젤, 2014)에 관한 길고 장황한 글.
<위플래쉬> (데미언 셔젤, 2014)
자기 증명을 향한 외력과 내력의 주도권 전쟁
<위플래쉬>는 2014년에 개봉한 데미언 셔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고, 단연 빛나는 두 배우 J.K. 시몬스와 마일스 텔러의 연기력과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데미언 셔젤의 장기인 영화의 리듬에 재즈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에 있어서, 그리고 음악을 중심으로 인물의 성장과 그 과정에서의 서스펜스를 그야말로 박진감 넘치게 담았다는 점에서 필자도 현재까지 나온 데미언 셔젤의 최고작이자 한 해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영화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필자는 이 작품의 스릴러적인 요소가 이 작품을 ‘아주 재밌는 영화’로 만드는데 크게 한몫했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내게 이 영화가 어떤 영화냐고 묻는다면 [‘앤드류’(마일즈 텔러 분)가 파멸로 향해 가는 반성장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하고 싶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위플래쉬>의 메인 서사를 따라가되, 마지막 장면을 포함해 짚고 넘어가 볼만한 장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볼 것이다. <위플래쉬>는 관객에게 크게 어렵게 다가오는 영화도 아니기에 구태여 주요 장면들에 달아보는 해설같다는 느낌이 들어 재미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이 영화를 ‘파멸로 향해 가는’이라고 한만큼 엔딩 이후의 ‘앤드류’도 한번 해볼 생각이다. 다만 그 뒷얘기는 꽤나 삐딱한 이야기일 것 같다. 마지막으로 <위플래쉬>의 마지막 장면을 설명하기 위해 영화 속 재즈 음악이나 무대 공연에 대해 나름의 조사를 하면서 작성했으나, 이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기에 전문적인 지식을 알고 계신 분들의 수정과 첨언을 부탁드린다.
오프닝 장면부터 짚어봐야겠다. <위플래쉬>의 첫 번째 쇼트는 연습하는 앤드류를 복도에서 열려있는 연습실을 향해 롱 쇼트로 바라보다가 달리 인으로 점차 가까이 가서 컷으로 플레처 교수(J.K. 시몬스 분)가 등장할 때까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는 이보다 더 이전에 이미 시작된다. 암전된 상태에서 점차 템포를 올려가는 드럼 소리를-그리고 엔딩에서 다시 듣게 될- 들려주며 제목 ‘위플래쉬’가 나오는 게 첫 번째 쇼트다. 이 오프닝이 사실상 영화 <위플래쉬>가 어떻게 진행될지 알려주는데, 템포를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드럼 소리는 앤드류가 광기에 사로잡혀가는 과정, 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리듬과 일치한다. 이를 인지하고 다시 이야기를 진행하자. 앤드류는 플레처 교수 앞에서 연주를 보여준 뒤 무시당하고, 아버지와 영화를 보러 간다. 앤드류의 아버지는 앤드류가 음악을 공부하는 것을 것을 아마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앤드류는 플레처 교수를 처음 만났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들어봤고, 그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선망을 품고 있다.
이후 단체로 연습이 진행 중이던 강의실에 플레처 교수가 난입한다. 플레처 교수는 두 번째 등장에서 그의 카리스마와 동시에 얼마나 청각이 예민한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이때 앤드류는 본인이 연주를 잘했는지, 못 했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뜬금없이 플레처에게 교내 최고인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듣는다. 앤드류는 아무튼 ‘그에게 간택을 받았다’라는 자신감으로 평소 마음에 두던 영화관 아르바이트생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기도 하지만, 불행하게도 앤드류의 파멸은 이제부터 진짜로 시작된다.
앤드류는 잘못 알려준 시간 때문에 지나치게 일찍 도착한 뒤 9시 약 5분 전에 단체로 몰려오는 밴드 팀원들을 보게 된다. 모든 것이 초짜인 앤드류의 시선에서 이들은 교내 최고의 밴드의 일원인 만큼 제각각은 분주하지만 꽤 프로페셔널해 보인다. 이를 빠르고 리드미컬한 편집으로 보여주면서, 9시가 다가오고 있다는 시계의 쇼트는 이 분주한 와중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9시가 된 순간 플레처 교수는 이 장면의 리듬을 완전히 박살 내면서 등장하여, 모든 것은 플레처 교수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군생활 중 생활관에 등장한 대대장을 방불케 하는 이 장면은, 뒷 이야기를 위해 한 번 이렇게 설명해보겠다. 플레처 교수는 자신이 위치한 공간의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자신의 ‘템포’에 맞춘다. 오로지 그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이 밴드는 플레처의 등장 이후 분주함은 사라지고 조화를 이룬다.
플레처가 밴드를 장악하는 방식, 사람을 다루는 방식, 모든 것을 자신의 템포에 맞추도록 자극하는 방식은 대체로 정서적 학대다. 필자는 이 글의 부제를 ‘자기 증명을 향한 외력과 내력의 주도권 전쟁’이라고 했다. 여기서 외력이란 플레처 교수의 자극이고 내력은 앤드류의 욕망과 감정이다. 플레처 교수는 사람을 자극하는 면에서, 사람을 자신의 템포에 맞추도록 다루는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꽤 사람 좋아 보이는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음악을 하는 순간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까지 불사하는 분노의 화신으로 변한다.
이 대목에서 짚고 가야 할 대사는 “찰리 파커가 위대한 뮤지션이 된 건, 조 존스가 그의 머리에 심벌즈를 던졌기 때문이야”라는 대사다. 그리고 꼭 그 말을 지키기 위해서인 듯, 앤드류의 머리를 향해 의자를-심벌즈와 꼭 닮은- 집어던진다. 앤드류는 이 자극에 엉망으로 무너졌다가, 그의 템포에 맞추기 위해 말 그대로 피나는 연습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앤드류의 감정이라는 내력이 끌려 나오기 시작하는데, 피를 흘리면서 연습하는 장면의 무시무시함은 거의 호러 영화를 방불케 한다. 그리고 앤드류는 태너의 악보를 잃어버리는 아주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밴드의 메인 드러머 자리를 꿰차게 된다(이 대목은 이 영화의 몇 안 되는 미스테리로, 영화가 정확한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필자는 앤드류가 악보를 버렸다고 생각한다).
현재까지 그럭저럭 괜찮은 미래가 기대되는 와중에, 영화 초반에 암시되었던 새로운 외력이 등장한다. 앤드류의 가족 중엔 예술을 하는 사람이 없고, 신입생치고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앤드류의 행보를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앤드류의 친아버지조차도. 이 무렵부터 자기 증명을 향한 앤드류의 내력은 점차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지게 되는데, 이를 보여주는 것은 세 가지다. 즐겁다기보단 어딘가 살짝 나사가 빠진 듯한 눈으로 연주하는 앤드류를 담은 로우 앵글, 그리고 코넬리가 자기 자리를 뺏었다는 생각에 보이는 격렬한 감정적 반응, 여자친구와의 결별 선언이다. 이쯤부터 앤드류는 자기 증명 말고는 그 어떤 가치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는 드럼을 부수고 욕설을 내뱉으며 연주를 해나가는데, 이때 주의 깊게 봐야 할 반복되는 쇼트가 있다. 처음으로 피 흘리며 연습하는 장면에서 외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심벌즈에 밀려있던 앤드류의 얼굴이 이제는 완전히 나와 있다. 지금의 앤드류를 움직이는 동력은 분노라는 내력이다.
첫번째 피나는 연습 장면.
두번째 피나는 연습 장면
영화 중반부까지를 외력과 내력으로 간단하게 설명해보겠다. 플레처 교수는 앤드류는 자극하면서 자신의 템포에 맞추도록 외력을 가하며, 자극받은 앤드류는 그 템포에 맞출 수 있도록 내력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템포의 기준은 점점 높아지면서 자극의 강도 또한 강해지고-플레처 외의 요인과 함께- 앤드류의 내력은 성취욕이라기보단 분노에 훨씬 가까운 부정적인 감정으로 변하면서 더 강력해진다. 그러니까 <위플래쉬>는 오프닝에서 점점 빨라졌던 템포처럼, 앤드류의 외력과 내력이 엔딩을 향해 달리는 지옥의 밸런스 게임이다.
다음으로 나오는 플레처와 앤드류(외 2명)의 광기 어린 연습 장면은 이 지옥의 밸런스 게임을 한 장면으로 압축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1분에 330 더블 타임 스윙’ 템포의 기준을 제시한 뒤, 내력과 외력의 밸런스가 맞을 때까지 플레처는 계속 외력을 가한다. “빠르게! 더 빠르게! 멈추지 마!”
플레처의 템포에 맞춘 앤드류에게 벌어진 아주 뜻밖의 사건. 영화 <위플래쉬>의 전체의 리듬은 이 우연한 사건들을 통해 변주된다. 첫 번째는 물론 악보를 잃어버리는 사건이었고, 이 사건은 앤드류가 자신을 증명할 기회가 되었다. 두 번째 사건, 타이어 펑크로 경연에 늦는 불상사는 첫 번째처럼 플레처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건으로 본인이 간신히 얻은 기회에서 추락하는 계기가 된다. 간신히 내력을 끌어올려 맞춘 ‘더블 타임 스윙’을 보일 기회가 사라지려 하자, 앤드류는 피투성이로 무대에 오르는 기괴한 선택을 한다. 이 대목은 한 사람이 얼마나 망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며, “넌 끝이다”고 선언하는 플레처에게 앤드류는 분노를 표출한다. 왜? 한계치까지 오른 앤드류의 내력, 분노가 마땅히 분출되어야 할 지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제적당한 앤드류가 마주한 뜻밖의 진실(사건이 아니다). 플레처 교수가 눈물까지 보이며 들려줬던 음악의 주인공 ‘션 케이시’는 사고사가 아니라 자살을 선택한 것이고 그 원인은 플레처 교수의 지도를 받던 시절부터 나타난 불안과 강박 증세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확정되는 사실은 플레처 교수는 앤드류에게만 이런 외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심벌즈나 의자를 던졌다는 말로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앤드류 이전의 앤드류’가 있었으며, 그는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앤드류의 반응이 묘하다. 앤드류는 자신이 당한 가혹 행위에 관해 ‘그는 잘못이 없다’며 그를 감싼다. 왜? 그를 폭행할 정도로 분노를 표출해 제적을 당했으면서?
플레처 교수는 앤드류에게 외력으로 다가왔으나, 앤드류가 음대에 입학하면서 필요로 한 것은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은 정신적 지지였다. 그러나 앤드류의 친아버지는 앤드류의 진로를 지지해주는 것이 아니라 늘 탐탁지 않아 했고, 아들이 다른 사촌들처럼 예술 외의 진로를-그가 진정 ‘재능’으로 생각하는- 택하길 바랐다. 앤드류는 친척뿐 아니라 자기 직계가족인 아버지로부터 그의 행보에 대한 지지를 전혀 받을 수 없었고, 지옥 같은 자극을 줄지언정 그의 재능을 발굴하고 ‘Whiplash’, 채찍질해주는, 가끔은 격려를 통해 따뜻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플레처 교수를 자신의 아버지로 택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그를 감싸주는 행위를 하지만 자신을 아끼는 친아버지를 보고 끝내 앤드류는 그를 고발하는 데 동참한다. 여기서 이 장면을 플레처를 고발하는 앤드류, 어린 시절 영상을 보는 앤드류, 개인 연습실을 정리하는 앤드류로 교차편집했다. 나눠서 보여줘도 이상한 것이 없는 이 장면을 교차편집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는 무엇일까?
영화 <위플래쉬>, 그리고 앤드류를 중심으로 한 내력과 외력의 주도권 경쟁엔 ‘부자관계’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교차편집 장면을 부자 관계를 통한 설명으로 바꿔보자. 끝없이 채찍질 받으며 자신도 성장했던 애증의 아버지 플레처를 고발하는 앤드류,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한때 자신을 지지했던 친아버지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는 앤드류, 애증의 아버지 플레처를 배신하고 원래의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앤드류. 한 장면에서 현재, 과거, 미래의 부자 관계를 충돌시키면서 앤드류가 느끼는 공허감을 전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음악을 관둔 앤드류가 위치한 환경은 온갖 소리들로 가득 차 있고 화려했던 학교와 무대와 다르게 조용하고 공허하다. 공간과 청각 감각의 대비. 목표나 자기 증명을 향해 자신을 자극하던 외력도 없고 자신을 이끌었던 내력도 사라진 상태의 앤드류. 사실상 앤드류는 자신의 성취를 향한 갈망을 거세당한다. 물론 이쯤에서 영화가 끝날 리가 없다. 여기서 영화가 끝났다면 관객들은 스크린에 팝콘 통을 집어 던졌을 것이다. 영화 <위플래쉬>의 마지막 뜻밖의 사건. 세 번째 사건이 다시 이 영화의 리듬을 바꾼다.
앤드류는 길을 걷다가 아주 우연히 작은 재즈 바의 공연에서 플레처 교수를 다시 만난다. 애증의 대상이었던 플레처가 직접 보여주는 연주. 강압적인 선생이-혹은 아버지가- 아닌 재즈를 사랑하는 뮤지션의 면모. 앤드류는 자신이 배신한 과거의 아버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플레처는 바를 나서려는 앤드류를 붙잡고 자리를 마련한다.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자신이 강단에서 물러났음을 말하며 자신이 학교에서 했던 역할은 학생들이 ‘한계를 뛰어넘도록 몰아붙이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사가 퍽 인상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말은 ‘그 정도면 잘했어’(Good Job.)야.” “제2의 찰리 파커라면 좌절하지 않지.” 플레처는 재즈가 죽어가는 이유가 사람들이 쉬운 것만 하려고 해서 그런 것이고, ‘버드’ 찰리 파커와 같은 스타 탄생엔 조 존스의 심벌즈처럼 한계를 뛰어넘도록 몰아붙이는 자극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마음이 매우 복잡해지는 앤드류에게 재즈 페스티벌의 공연 자리를 제안하며, 코넬리는 앤드류를 자극하려고 데려온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네가 제2의 찰리 파커이길 기대하고 있다’와 같은 발언. 플레처는 사람을 가지고 노는 데는 도가 튼 인간이다.
다시금 가슴이 불타오르는 듯한 앤드류. 앤드류는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가게 된 그날처럼 니콜에게 전화를 건다. 카메라는 방문 프레임 안에 앤드류를 두고 바라보다가 니콜이 새로운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자 클로즈업으로 전환된다. 전화가 끊어지고도 계속 앤드류를 바라보고 있는 롱테이크. 관객들은 앤드류의 얼굴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까? 앤드류는 한 번 선택한 일은 되돌릴 수 없다고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꿈을 선택하면서 그 외의 것들은 모두 버리겠다고 선언한 순간,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랑과 꿈을 두고 양자택일하는 주제는 데미언 셔젤의 이후 영화들에서 계속 반복된다)
JVC 무대는 누군가의 커리어 혹은 인생을 아주 긍정적으로나 아주 부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큰 무대다. <위플래쉬>에서 첫 번째 사건은 기회였고, 두 번째 사건은 몰락이었다. 그렇다면 세 번째 사건은? 세 번째 사건은 둘 다다. 앤드류에겐 기회지만 플레처에겐 앤드류의 몰락이다. 자신을 고발한 사람이 앤드류인 것을 눈치챈 플레처는 이 업계에서 앤드류를 완전히 끝장내려고 부른 것이다. 플레처가 이제 바라는 것은 앤드류의 성장이 아니라 파멸이다. 이 동기라기보다 악의에 가까운 행동은, 앤드류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그리고 가장 강력한 외력이 될 것이다. 물론 앤드류는 플레처가 지휘하는 ‘Upswingin’’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연주를 망친다. 그리고 플레처의 한 마디 “아무리 생각해도 넌 아니야.” 플레처가 기다리던 제2의 찰리 파커가 아니라는 말이자, 너는 더 이상 관심 대상이 아니라는 배신에 가까운 아버지의 선언. 앤드류에게 이보다 더 끔찍한 말이 있을까? 공포에 가까운 관객의 시선을 뒤로한 채 앤드류는 무대를 나서고 친아버지는 앤드류를 안아주며 “집으로 가자”고 말한다. 그러나 앤드류는 이 말을 듣고 눈빛이 바뀌어 다시 무대로 돌아간다. 지나치게 자기 계발 격언으로 사용되곤 하는 니체의 말,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플레처의 악의 가득한 외력은 앤드류를 끝장내지 못한 것일까? 혹시 앤드류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곧 죽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 소리도 화려함도 없는 공허한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플레처가 가하는 그 가혹한 외력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까.
하여튼 앤드류는 자신을 배신한 애증의 아버지에게 플레처에게 복수해야 한다. 앤드류의 내력은 이제 분노라기보단 집념에 가까워 보인다. 앤드류가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복수는 자신이 제2의 찰리 파커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증명은 플레처의 인정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백미이자 마지막 장면의 진행은 이러한 것들을 염두에 두고 따라가야 한다.
앤드류는 플레처의 지휘 사인 없이 혼자서 연주를 시작하고 옆에 있는 콘트라베이스부터 자신의 신호에 따르게 한다. 앤드류는 플레처에게 복수하기 위해 모든 것이 그에게 맞춰진, 플레처의 템포, 플레처의 자장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강의실이라면 뭐라도 던졌겠지만, 공식적인 무대이므로 플레처는 이미 시작된 연주에 따르면서 ‘팔이나 휘두르며 박자를 맞추는’ 지휘자가 된다. 우리는 앤드류가 그리도 지독하게 연습한 더블 타임 스윙, Caravan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과연 프로 밴드답게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연주가 만족스러운 플레처는 이 무대에 합세하기로 한다. 이때 앤드류와 플레처, 다른 말로 앤드류의 내력과 외력이 얼마나 조화로운지는 데미언 셔젤 감독의 시그니처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두 화면이 주고받는 패닝 쇼트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앤드류와 플레처 둘 다 굉장히 즐거워 보인다. 플레처는 연주를 마친다는 사인을 보내는데 앤드류는 멈추지 않고 독주를 이어 나간다. 왜? 앤드류에게 아직 할 일이 더 있는 것일까?
앤드류는 이 밴드의 주도권을 플레처로부터 빼앗아 오긴 했지만, 아직 자신이 제2의 찰리 파커라고 증명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이어지는 앤드류의 드럼 솔로 독주는 자신이 제2의 찰리 파커라고 애증의 아버지 플레처에게 일갈하는 순간이다. 여기서 앤드류의 행동이 얼마나 당혹스러운 것인지 뜯어보는 일도 꽤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한다. 앤드류의 독주는 플레처, 밴드 단원들, 공연 스태프들, 모두를 당황시킨다. 첫 번째로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개인 지도를 한 적도 없으며, 독주 버전의 ‘Caravan’을 지도한 적 역시 없다. 앤드류는 자신의 방에 걸려 있던 버디 리치가 실제로 드럼 솔로가 부각되게 편곡한 버전처럼 독주를 시작한다. 두 번째, 플레처는 곡 소개를 하면서 ‘Upswingin’’이 ‘익숙한 명곡이 아닌 새로운 레퍼토리’라고 하였다. 앤드류가 자신의 주도로 Caravan을 시작하는데, 앤드류와 달리 ‘프로’인 연주자들은 악보 없이도 최상의 연주를 들려준다. 다들 손에 익을 정도로 연습이 된 곡이라는 소리이자 뒤집어 말하면 누구나 아는 명곡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명곡 뒤에 누구와의 합의도 없이 '독주'를 시작한다. 세 번째로 무대의 조명은 플레처의 지휘 사인과 함께 꺼졌다가 앤드류의 독주 시작과 함께 다시 켜진다. 지금은 페스티벌의 오프닝이고 그들은 한 팀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 밴드는 플레처가 지휘하는 밴드지, 앤드류의 밴드가 아니다. 앤드류는 이 밴드의 메인은커녕, 마지막에 들어온 일원일 뿐이다. 지금 앤드류가 하는 행동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행동이다. 앤드류는 무대의 주도권을 빼앗아 오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무대 자체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무대로, 모든 템포를 자신에게 맞추도록 바꾼다. 이것이 앤드류가 플레처에게 ‘내가 제2의 찰리 파커가 맞다’고 복수하는 방법이자 증명하는 방법이다.
피를 봐야만 가능한 수준의 연주, 앤드류는 정말 광인처럼 드럼을 두들긴다. 여기서 앤드류의 친아버지의 시점 쇼트와 클로즈업이 등장하는데, 아버지의 표정이 무척 복잡하다. 필자는 이 클로즈업이 ‘아들을 지지해주지 못한 죄책감’이라기보단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표정 같다. 끝내 앤드류를 집에 데려오지 못한, 플레처라는 악마에게 아들을 빼앗기고 만 아버지의 괴로움. 앤드류와 친아버지는 그 시점 쇼트의 거리감만큼이나 멀어진 것 같다. 시점 쇼트 직전에 잠시 사운드가 사라지고 프레임 속에 앤드류의 상체만 잡았다가 다시 사운드를 키우는 장면은 충분히 과잉 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 번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필자는 이 부분이 자신을 욕망을 거세하려 하는 애증의 아버지와 친아버지 둘 앞에서 자신의 성적 능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절정에 이르는 장면같다고 느낀다. 아까 2번째 사건에서 앤드류의 내력이 ‘분출’할 곳을 잃었다고 했듯이, 지금 이 장면은 앤드류 내력의 거대한 분출 장면이다.
영화 <위플래쉬>의 오프닝에서 끝까지 듣지 못했던 부분은 이 하이라이트에서 마저 듣게 된다. 한계치까지 끌어올린 속주 다음, 이 격렬한 영화의 마지막 분출 이후 프레임이 입까지 잡고 있지 않기에 정확하지 않지만,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뭔가를 말한다. 이 영화의 맥락상 그 발언은 높은 확률로 "Good job"이다-“네가 제2의 찰리 파커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맥락상 Good job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앤드류는 이 처절한 자기 증명에 성공한 듯하다. 영화 <위플래쉬>는 딱 이 부분에서 끝난다. 하지만 이런 영화라면 영화가 끝난 다음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위플래쉬>를 파멸로 향해가는 반성장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생각한다고 했다. 앤드류가 행복했을까 불행했을까를 논하는 것은 개인적 가치관의 문제다. 그런 얘기는 영화 이야기가 모두 끝난 다음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할 이야기는 앤드류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보다는 <위플래쉬> 이후의 앤드류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앤드류의 미래는 매우 비관적이다. 영화는 이미 끝났고 카메라로 찍히진 않았으니 사실상 추측에 불과하지만, 영화의 내용을 기반으로 해서 필자가 작성한 속편이라고 생각하면 감사하겠다.
앤드류는 JVC에서 무지막지한 연주를 보여줬고, 그는 친아버지가 조롱하던 링컨 센터에 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필자가 앤드류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까닭은 더 이상 앤드류에게 외력이 없기 때문이다. 앤드류는 이제 늘 자기 자신과 사투해야만 한다. 애증의 아버지 플레처에게 인정받았으니 앞으로도 관계가 지속되지 않을까? 라고 질문할 수 있겠으나, 플레처는 공교롭게도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말’을 해버렸다. 그는 이제 긍정적인 의미에서 앤드류에게, 제2의 찰리 파커에게 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플레처는 앤드류가 선택한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오로지 제2의 찰리 파커를 위해 자극시키는 법만 아는 인간이다. 플레처는 아버지나 선생의 위치에서 자식이나 제자를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그러므로 아주 부정적인 의미에서 앤드류는 아버지로부터 곧바로 독립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과연 ‘스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있다. 플레처는 바에서 만난 앤드류를 다시 자극시키면서 퍽 인상적인 대사를 몇 마디 내뱉는다. ‘요즘 세상은 뭐든 쉬운 걸 원해. 그러니 재즈가 죽어가지. (…) 그런 제자를 키워보려고 누구보다 노력했어. 그래서 내 노력에 대해 사과할 생각은 전혀 없어.’ 플레처는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노력을 계속해나간다면 언젠가 제2의 찰리 파커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적어도 이 영화 속에서-아마 현실 또한 마찬가지로- 재즈는 죽어간다. 그러니까 재즈라는 장르가 아예 종말을 맞이한 것은 아니지만 재즈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필자의 생각엔 재즈의 시대를 풍미할 스타는 그때 이미 탄생했고 지금은 탄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들 수도 없다. 그런데 플레처는 이 불가능한 일을 한계 이상의 외력을 통해, 정서적 학대를 통해 해내겠다고 하는 사람이다. 세상에 이런 끔찍한 인간이 있을까? 영화의 내용이 꼭 도덕이나 윤리에 부합할 필요는 없고, 가치판단에 그다지 중요한 요소도 아니다. 하지만 <위플래쉬>는 확실하게 끔찍한 이야기다. 필자는 이 영화가 훌륭한 영화라고는 생각하지만, 개봉 당시에 <위플래쉬>를 보고 자극받았다는 몇몇 네티즌들의 평가에는 다소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앤드류의 내력이 점점 더 높아져 가면서 소위 말하는 ‘인간미’를 잃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므로 앤드류는 성공 가도를 걷든, 걷지 못하든 그는 스스로 파멸하게 될 것이다. 이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것은 앤드류가 음악에 대한 열정과 성공에 대한 갈망이 있긴 했지만, 과연 플레처를 만나기 전에도 ‘이름만 남길 수 있다면 약물중독으로 단명하는 삶’을 바라고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플레처를 만나기 전의 앤드류는 성공했을지 못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영화 <위플래쉬>는 앤드류가 플레처를 만나면서 시작하고, (아마도) 함께하는 마지막 무대에서 끝난다. <위플래쉬> 이후의 앤드류는 확실히 파멸할 것으로 보인다. Whiplash… 채찍질이란 뜻의 영어단어다. 플레처는 채찍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이쯤에서 영화가 시작될 무렵의 장면을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암전이 끝난 이후 앤드류가 연습을 시작하자 천천히 달리 인으로 앤드류에게 다가가는 카메라. 앤드류가 누군가 왔다는 것을 인지하자 플레처 교수로 컷이 되지만, 앤드류로 향해 가는 카메라는 플레처의 시점 쇼트가 아니다. 명백하게 앤드류가 바라보는 시선의 위치가 일치하지도 않고 플레처의 눈높이와 카메라의 아이 레벨이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카메라 이동은 뭘까? 내 생각엔 앤드류에게 ‘플레처라는 채찍’으로 ‘불행’이 서서히 다가가는 장면처럼 보인다. 앤드류와 플레처의 더블 타임 스윙 연습 부분에서 주목해 볼만한 것은, 플레처가 외력을 가하는 대상이 앤드류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태너와 코넬리, 그 외의 밴드의 구성원들 또한 플레처의 자장 안에 있는 동안은 이 외력의 객체가 아니라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 <위플래쉬> 속 세상에서 꽤 시간이 지난 다음, 플레처 교수는 뭘 하고 있을까? 그는 아마도 제3의 찰리 파커를 위해, 아니 어쩌면 너무 빨리 떠난 제2의 파커를 다시 찾기 위해서 의자를 집어던지고 있을 것이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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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7월 첫째 주도 잘 보내셨나요?장마와 폭염의 반복으로 많이 힘든 한 주가 되었던 것 같은데이번 주에도 비 소식이 많네요...( ´•̥̥̥ω•̥̥̥` )다들 우산 잘 챙기시고! 건강도 유의하시길 바랍니다:)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토르: 러브 앤 썬더>의 개봉주 주말의 관객 수 예측'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시작해 볼까요?...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토르: 러브 앤 썬더> (NEW)▶ 7월 첫째 주 1위 영화는 예상한대로 마블 영화인 <토르: 러브 앤 썬더>가 차지하였는데요.
바로 전 시리즈인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연출한 <토르: 라그나로크> 위트 있는 연출과 영화에 어울리는 곡 선정 등의
이유로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타이카 와이티티와 함께한 이번 시리즈 역시 굉장히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번 영화는 이전 시리즈보다 코미디 요소를 더 넣으며,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제작하였습니다.
주말 동안 (7월 8일~7월 10일) 관객 수 113만 5,60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71만 6,027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줄거리
이너피스를 위해 자아 찾기 여정을 떠난 천둥의 신 ‘토르’ 그러나, 우주의 모든 신들을 몰살하려는 신 도살자 ‘고르’의 등장으로
‘토르’의 안식년 계획은 산산조각 나버린다. ‘토르’는 새로운 위협에 맞서기 위해, ‘킹 발키리’, ‘코르그’, 그리고 전 여자친구 ‘제인’과재회하게 되는데, 그녀가 묠니르를 휘두르는 ‘마이티 토르’가 되어 나타나 모두를 놀라게 한다.
이제, 팀 토르는 ‘고르’의 복수에 얽힌 미스터리를 밝히고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한 전 우주적 스케일의 모험을 시작하는데...2. <탑건: 매버릭> (▼1)▶ SNS에서 입소문이 계속 나면서 N차 관람이 많아진 작품! <토르: 러브 앤 썬더>로 인해 2위로 떨어졌지만,
현재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서 실시간 예매율을 살펴보면 <탑건: 매버릭>이 <토르: 러브 앤 썬더>를 뛰어넘어
이번 주에는 <탑건: 매버릭>이 <토르: 러브 앤 썬더>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주말 동안 (7월 8일~7월 10일) 관객 수 76만 8,78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461만 8,614명을 돌파하였습니다.
3. <헤어질 결심> (▼1)▶ 6월 다섯째 주와 비교했을 때 한 단계 떨어져 3위를 차지한 <헤어질 결심>.
주말 관객 수의 하락세도 살짝 크고, 이번 주에는 이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주말 동안 (7월 8일~7월 10일) 관객 수 19만 4,309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87만 5,11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08회 예측 이벤트는 7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유저분들이 예측해주신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 의 7월 8일, 7월 9일, 7월 10일의 관객 수 스코어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토르: 러브 앤 썬더>의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58%, 여성 42%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다른 영화에 비해 남녀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30대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20대, 40대, 10대, 50대 순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토르: 러브 앤 썬더>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13세 이하 남성과(1,206,150명)과 46세 이상 여성(1,380,402명)이었습니다.
또한 <토르: 러브 앤 썬더>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0.6%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토르: 러브 앤 썬더>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4. <범죄도시2> (-)▶ 6월 다섯 째주와 동일하게 4위를 차지한 <범죄도시2>. 다만, 6월 다섯 째주와 비교했을 때
주말 관객 수가 절반 이상 줄어 누적 관객 수의 증가도 미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에도 <범죄도시2>가 박스오피스 TOP 5에 들어가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주말 동안 (7월 8일~7월 10일) 관객 수 8만 1,46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258만 5,424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마녀 Part 2> (▼2)▶ 흥행한 전작으로 인해 화제를 얻었던 <마녀 Part 2>가 3위에서 5위로 하락하였습니다.
약 한 달간 박스오피스 TOP 5안에 들었지만, 이번 주에는 박스오피스 TOP 5 안에 들어가지 못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주말 동안 (7월 8일~7월 10일) 관객 수 5만 2,66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276만 9,482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Thor: Love and Thunder>가 개봉하면서 6월 다섯째 주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모두 한 단계씩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월 다섯째 주 5위였던 <The Black Phone>이 순위 밖으로 밀려 나갔습니다.
주말 동안(7월 8일~7월 10일) <Thor: Love and Thunder>의 매출액은 143,000,000 (한화 약 1,855억)의매출액을 달성했으며, 총 누적 매출액 역시 동일합니다.<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7월 8일 ~ 2022년 7월 10일)1. <토르: 러브 앤 썬더> 1억 4300만 달러 (누적 1억 4300만 달러)2. <미니언즈2> 4,555만 달러 (누적 2억 1,007만 달러)3. <탑건: 매버릭> 1,549만 달러 (누적5억 9,740만 달러)4. <엘비스> 1,100만 달러 (누적 9,112만 달러)5.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8,410만 달러 (누적 3억 5,032만 달러)...씨네픽의 7월 첫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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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와 사랑에 빠진 남자, 그에게 빠진 세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우연히 보고 띵작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메시지의 전달과 음악의 결합이 굉장히 탁월했고, 오스카 피터슨의 생애와 재즈에 대해 더욱 깊이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시놉시스
재즈 아이콘이자 작곡가였던 오스카 피터슨의 사운드와 스타덤, 환상적인 연주를 통해 아티스트의 생애와 그가 남긴 유산을 탐구한 다큐 콘서트 <오스타 피터슨: 블랙 + 화이트>. 명실공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은 피카소나 모차르트처럼 독특한 천재성을 지닌 것은 물론, 거침없는 연주와 개성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천재 재즈 뮤지션의 70년 역사를 담은 영화는 신동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그의 시그니처 사운드가 완성된 트리오 시절의 녹음, 유명 스타들과의 컬래버레이션, 전 세계를 누비며 펼친 솔로 공연뿐 아니라 미국 투어 시절 겪은 인종차별 속에서 그가 보인 불굴의 의지, 그리고 그가 남긴 역사적인 곡 ‘자유를 위한 찬가’(Hymn to Freedom)까지 담고 있다.
* 해당 내용은 전주국제영화제 보도자료집을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음반을 사고 싶게 만들다
취미 중 하나는 집에서 LP를 듣는 것이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LP를 들을 때 특히 아무일 없는 주말에 그러고 있으면 편안해져서 자주 듣는 편이다. 그리고 LP로 들었을 때 가장 좋았던 장르는 재즈였다. 그렇다고 재즈에 대해서 잘 알지도,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어서, 이번 영화를 보면서 재즈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스카 피터슨의 이야기를 접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예매를 했던 작품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재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스카 피터슨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그의 곡이 얼마나 훌륭한지 잘 담아내고 있는 영화였다. 오스카 피터슨이 재즈씬에 데뷔한 후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의 업적과 곡들을 순차적으로 담아내고 있어서그 연대기와 흐름을 잘 알 수 있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피터슨의 명반을 구매해봐? 이러면서 바이닐 검색을 엄청 했던 것 같다.
곡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접하다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라이브 밴드로 그의 곡을 연주하는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다. 밴드 장면 전후로 이 곡이 만들어지고, 이 곡을 가지고 투어를 다닐 때의 피터슨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곡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물론 피터슨의 곡을 조금 더 듣고 싶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건 솔직히 음원이나 앨범에서 찾아 들을 수 있기에 밴드 음악이 흘러나오고 이 음악은 점차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고, 피터슨의 이야기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당시 시대상황을 알려주는 인터뷰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접목되어서 솔직히 좋았다. 이러한 이야기가 끝난 뒤 다시 밴드음악이 메인으로 등장하면서 그 음악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된 상태에서 노래를 듣다보니 그 곡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고비를 뛰어 넘은 사람
오스카 피터슨이 언제나 전성기를 달렸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칭송하기에 은퇴하는 그 날까지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사람이라고 지레 짐작을 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뛰어났기에 전성기 시절보다 떨어진 기량임에도 압도적이긴 했지만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더 발전적인 연주를 보여준 오스카 피터슨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예체능계에서는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은퇴를 생각하고 박수칠 때 떠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피터슨의 경우에는 뇌졸증이 와 왼쪽 마비가 오면서 왼손의 기량이 현격하게 떨어졌음에도 이 과정에서 은퇴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피터슨은 기존에 트리오 편성을 쿼터로 바꾸면서 자신의 떨어진 왼손 기량을 받춰줄 기타리스트를 영입해 계속해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간다. 전성기 시절의 피터슨은 왼손으로 베이스를 다 만들었기에 다른 악기의 반주가 없이도 독주가 가능했었다. 이 지점이 다른 피아니스트와의 차별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비 이후 기량이 떨어지자 그만둘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쿼터에 도전함으로써 더 풍부하면서도 기존과는 다른 음악을 만들어내고 연주했다는 그 도전정신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간만에 음악다큐를 보고 그 명반을 찾아 들으면서 영화관을 기분 좋게 나왔던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재즈에 관심이 있으신 사람이라면 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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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럼 많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이 글은
영화 [썬다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인용 및 퍼가시는 경우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 주세요.
쳐다보기 힘든 여름의 태양 같던 영화계의 여름이 서서히 저물고 있다.
개봉 영화의 수(Number)도, 장르도 조금씩 변화하면서, 강렬하기 그지없던 여름에 대한 약간의 향수가 함께 마음속에 서서히 퍼져나가는 것 같다.
쓸쓸한 바람이 부는 것 같은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가을에 어울리는 영화들도 하나둘씩 개봉해 관객들의 마음에 남은 여름의 온기를 지켜주려 노력한다.
영화 [썬다운]은 이런 날씨처럼 인생에 있어서도 여름을 슬며시 비켜가 가을을 맞이하는 남자 닐을 통해 인생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짧지만 강렬하게 던진다. 과연 봉준호 감독도 좋은 말을 했을 법하다.라고 생각되는 순간이 꽤나 존재한다.
휴양지의 느긋하고 따사로운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아 보이는 닐의 마음과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영화가 주는 부조화가 주는 재미 또한 영화의 매력을 배가시키며, 많은 숙제 같지만 괴롭지 않은 생각도 함께 던져주어 오래 생각하며 자신만의 해답을 찾기 좋은 영화다.
태양을 피하고 싶었던 바닷가의 남자;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본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닐은 기어코 해변에 남기를 택했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피하고 싶어서. 아니, 추악하다고 말해도 모자라지 않는 진실을 말하자면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자신의 몸을 담그고 싶지 않아서.
그러나 현실은 정오 때의 태양처럼 피할 수 없는 것에 가까웠다. 영화는 몇 번이고 가장 높은(중앙) 곳에 떠 있는 태양을 비추며 너 따위가 감히 현실을 피해 숨을 수 있을 것 같냐고 조롱하듯 작열하지만.
닐은 아무런 동요도 없는 얼굴로 조용히 눈을 감아버린다. 그는 단 한순간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던 태양을 자신이 없애버렸다는 잘못된 승리감에 도취해 억지로 마음의 평온을 끌어온다.
어찌 이렇게도 태평할 수 있을까. 애써 도망쳐 도착한 바닷가 이건만, 그는 수영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물 위에 둥둥 떠서 유영하는 것을 즐길 뿐. 단 한 번도 힘센 파도를 향해 육신의 힘을 모아 헤엄치지 않는다. 이 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휩쓸려 가다 도착하는 곳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로 닐은 그저 인생을 유영한다.
그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책임도 다른 사람의 손에 손쉽게 넘기는 것도 모자라, 미안하다는 말로 교묘히 책임들을 벗어난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주어지는 이익만은 사양 않고 조용히 챙긴다. 이 현실과 인생을 향한 미적지근한 그의 태도는 닐의 주변 사람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서도 분노가 되어 닐을 향한 따가운 시선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닐은 원래 자신은 그런 사람이라는 듯. 또 한 번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들을 향해 또다시 눈을 질끈 감는다. 태양의 눈부심은 오롯이 그것을 들여다본 당신들의 몫이라는 듯한 태도로.
레다(로스트 도터)의 바다와 닐의 바다;너무도 다른 두 사람의 태도
사진출처:다음 영화
애석하게도(?) 바다는 온전히 닐 만의 것이 아니었다. 옆에 있었다고 해도 그다지 위화감이 없을 만큼 멀지 않은 곳에. 영화 [로스트 도터]의 레다도 함께 있는 것만 같았다.
레다는 안식년으로 충분한 시간을 활용해 자신이 숨겨왔던, 혹은 낯부끄러웠던 모습을 바닷물에 씻어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모성(엄마)과 인간으로서의 역할이 부딪치며 만들어낸 상처마다 들러붙은 소금과 모래알은. 그녀의 마음을 후벼 파다 못해 다시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의 트라우마를 들여다본 듯 소스라치게 한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쓰라림을 느끼면서도, 그녀는 자신에게 이 시간이 간절히 필요했음을 깨닫는다. 물론 해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아프고. 피하고 싶을 만큼 부끄럽지만. 레다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마저도 자신의 모습임을 받아들이려 애쓴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피하려 하지 않았다.
모든 면에 있어서 모자라고 깨지고 뒤틀린 자신의 모습이지만. 레다는 용기를 내었고. 딸에게 전화를 걸었으며. 여태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말을 던지는 것으로 떠날 채비를 시작한다. 그녀는 휴양지의 파도에 자신의 반성과 고뇌를 쓸어 보내는 것으로 안식년을 완성시키려 했을 것이다.
레다의 여정을. 조금은 개운하고 맑아진 표정으로 오렌지의 껍질을 벗겨내는 모습을 닐이 물끄러미 옆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정확한 사정을 다 알 수 없더라도. 레다의 웃는 얼굴을 보며 그동안 그녀의 입꼬리를 올라가지 못하게 꽁꽁 붙들고 있었을 비밀과 그녀의 속내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자신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랬다면 닐 또한.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닐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있었는지 간접적으로라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비난할 수 있을까;그래도 태양은 진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부끄럼 많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조던 피터슨이 그렇게 인생의 무게를 자신의 어깨 위에 직접 짊어지라고 피 토하듯 말했건만. 스스로의 삶마저도 타인의 말과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고. 서류에 사인하는 것 마저도 겨우 하는 이 남자를 보며 단박에 떠오른 문장이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표정과, 인생에 있어 그다지 큰 목표도, 그렇다고 완전히 엇나가지도 못하고 우유부단해 보이는 태도. 오늘도 흐물흐물하고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그저 해변가에서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기꺼이 써버리는 중년의 남자.
차라리 여동생의 죽음을 대신하는 게 훨씬 나았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이 남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밉기만 한 사람이냐. 고 묻는다면. 영화를 다 보고 나온 직후에는 선뜻 대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는 인생에 대해서도. 그리고 결국 찾아온 죽음에 대해서도. 어떤 해명도, 변명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부연 설명마저 없이 입을 굳게 닫는다. 그것이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이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을 정리하고 있기 때문인지.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앞서 뱉은 소설 [인간 실격]의 문장은 당신은 영화 초반부에는 분명 아마 이런 생을 살았을 거야.라고 생각한 관객이 떠올리기 쉬운 문장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가면, 마치 닐의 독백을 영화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인생은 소설 속 주인공보다는 조금 더 길었고. 마지막도 조금 더 풍요로웠겠지만. 스스로의 인생 한 조각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며 실토하고 있는 셈이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살았고. 이제 그 생이 끝나갑니다. 마치 일몰처럼 말이지요.
라고 말이다.
마치면서.
영화의 거의 모든 면이 참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상영 시간마저 1시간 30분 남짓으로 충격적으로(?) 짧다.
그러나 이 급작스런 끝맺음마저도 참 인생의 한 부분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찾아오는 죽음과 엔딩 크레디트처럼.
인생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이벤트들이 완벽하게 모든 것을 바꿔놓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인생 같은 영화였다.
또한 누군가의 인생의 한 부분만을 보고 입에 담는 것이 어쩌면 성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어 몇 번이고 제목을 곱씹게 되는 영화다.
[이 글의 TMI]
1. 사실 [로스트 도터]도 봤는데 리뷰 못 쓰고 있었음.
2. 근데 쓰긴 해야 할 것 같음. 이 영화를 보고 그렇게 느꼈음.
3. 이제 추워져서 반팔은 정말 다 장롱으로 넣어야 할 듯.
4. 추석 기대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나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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